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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시대에 진화론 전파에 누구 보다 앞장서며 활약했던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1.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해는 1859년이고 그때 다윈의 나이는 이미 50세에 다다렀지만, 다윈은 이미 오래전 약관 29살의 나이에 진화의 개념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다만 그 증거를 모으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하기까지 무려 20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과 친분을 맺고 있던 Charles Lyell, Joseph Hooker 등의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곤 하였었는데, 헉슬리도 다윈보다 16살이나 어린 나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비범함을 인정받아 그 모임에 초청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였을 때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설명 방법에 대하여, 헉슬리가 "이것을 (진작에) 생각해내지 못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How extremely stupid not to have thought of that!)"라고 외치며 감탄해 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평소 비판적인 태도로 곧잘 다윈의 입장을 난처하게도 하곤 하던 그였지만, <종의 기원> 이후 비로소 그는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그는 진화론의 열렬한 전파자가 됩니다.   2. 하지만 헉슬리가 비록 진화론 자체는 사실로 받아들였더라도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여전히 "자연선택"을  통한 점진적 진화의 방법에 대하여 100% 확신하는 대신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헉슬리는 비교해부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매우 경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고,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윈이 주장하는 점진적 이론에 대하여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이를테면 가축의 교배를 통하여 후대에 새로운 종이 나오게 되는지 같은 것) 자신의 확고한 결론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화론과 윤리학> 같은 그의 저서를 통하여 사람의 정신적 특징들마저도 생물의 육체적 속성들과 마찬 가지로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인간의 도덕 및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결국 토마스 헉슬리야 말로 어쩌면 단지 생물학에만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진화론을 소위 “다윈주의”로 끌어 올려 후대에 까지 널리 퍼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3. 참고로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할 당시의 생물학 수준은 아직 제대로 "돌연변이"에 대한 개념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었고, 잘 아는 것처럼 멘델의 유전법칙이 나온 것이 1865년인데 그나마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 들어서서야 재발견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진화론에 제대로 된 돌연변이 이론이 반영된 것은 1940년을 전후로 등장한 “현대종합이론”이 나오면서 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오늘날 소위 "신-다윈주의 (Neo-Darwinism)"는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라는 두 바퀴의 축 위에서 굴러 가는 모습을 갖게 되고, 그 중에서도 "돌연변이'이야말로 진화의 기전을 논하는데 있어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0: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5 02:48:57 | 김정훈
안녕하세요?   오늘은 자원 봉사자를 찾고자 합니다. 미국의 아둘람 필름사에서 "A Lamp In the dark: The untold history of the Bible"이라는 3시간 짜리 킹제임스 성경과 교회 역사에 대한 DVD를 만들었습니다.   http://www.adullamfilms.com/ALampInTheDark.html   이것은 성경 관련 비디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비디오입니다.   그 필름 제작사의 대표에게 이것을 우리가 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말 자막을 넣어 마음 대로 보급해도 좋다고 하면서 오리지널 AVI 파일과 영어 대사을 하드 드라이브에 담아 보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용묵 형제님과 남윤수 자매님께서 영어 대사를 반씩 번역해서 대사가 우리말로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자막만 넣으면 되는데 Adobe Premier나 자막 프로그램 등을 잘 쓸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자막을 넣어 DVD로 만들고 또 wmv 파일로 만들어 우리 사이트에 무료로 올려 놓으려고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대 교회 역사 2. 카톨릭 교회의 종교 재판소 출현 3. 위클리프로부터 시작되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완성된 성경 번역 역사 4. 종교 개혁의 이유와 의의 5. 개혁자들이 의문을 제기한 교리들(연옥, 성경의 영감, 구원, 미사, 마리아 숭배, 교화의 권위 등) 6. 카톨릭 교회의 예수회에 의한 반(Anti) 종교개혁 7. 바티칸의 비평 본문(바티칸 사본, 시내 사본)과 현대 역본들의 문제   이 영화를 보면 참된 교회사와 천주교의 정체, 바른 성경과 부패된 성경의 출처와 원인 등의 모든 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자그만치 3시간이고 여러 전문가들이 나오고 진귀한 자료들도 있습니다.   우리 독자 중에 비디오 편집(자막) 전문가가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연락을 주세요.   우리 힘으로 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동수              
2012-02-14 11:45:00 | 관리자
누구의 소개로 한글킹제임스의 성경을 읽었습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이 흠정역한글킹제임스성경을 추천하였습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흠정역한글킹제임스성경이(번역) 다른가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알고싶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0:0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4 10:08:31 | 이혜신
계6:2절의 흰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 가요 여러 견해가 있는 데 예수님 으로 보는 견해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사역자로 보는 견해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 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0 18:45:33 | 김삼일
미국이 변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최신 뉴스를 소개합니다. 2월 9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의회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날 표결에서 워싱턴주 하원은 찬성 55 대 반대 43으로 동성 커플 간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가결했는데, 이제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만 하면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뉴욕,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버몬트, 뉴햄프셔, 아이오와에 이어 미국에서는 7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주(州)가 됩니다.   한편, 하루 전에는 캘리포니아주가 제정한 동성 결혼 금지법에 대하여 미국 연방법원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일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12월 동성 연애를 범죄 취급하고 있는 국가에 대하여 차별정책을 철폐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려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해외 지원금도 중단하는 방법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국무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 기관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0 10:43:11 | 김정훈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 광주에서 목회하는 형제입니다. 킵 바이블을 접하고 개역 개정에서 흠정역으로 성경을 바꾸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난처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장로 교단의 교리와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점차 자리를 잡아갑니다. 지금도 답답할때면 교제할 분들이 그립네요. 제가 아는 장로교단 목회자들과 몇 몇 성도들에게도 흠정역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분들은 진리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제 의견에 동의도 하지만 아직까지 옛 습성이 몸에 베인 분들이라 쉽게 바꾸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여러 형제분들의 기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 땅에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에 눈뜨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3:13:56 성경교리에서 이동 됨]
2012-02-09 22:00:24 | 김지혜
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66번 글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같이 읽고 참조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이 그 후대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똑 같이 적용이 되는 것일까요?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담이 아닐진대 이거 좀 억울한 것 아닐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창세기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먼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선 아담의 범죄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지요. 그것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은 것 즉, ‘불순종’입니다. 선악과가 필요한 이유 또한 바로 선악과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인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자유게시판 #1461 글 참조). 이제 하나님은 아담에게 처음 말씀하신 약속대로 죽음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창 2:17).   2.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처음 창조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명령이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고,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것” 입니다 (창 1:28). 그런데 이제 아담이 죽어야 합니다. 아담이 다산하고 번성하여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게도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죽을 자를 정하시되 바로 자신의 독생자로 정하시고, 대신 아담은 계속 살리어 이 땅 위에 번성하게 하심으로 본래 계획하신 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3. 그러나 그 분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하심의 시간표에 따라 많은 세대가 지나가며 ‘때’가 차야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분이 마침내 이 땅에 오시어 그 분의 ‘의’를 이루시기 까지는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인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4. 성경은 말하기를,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one blood)에서 만드셨다" (행 17:26)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음을 의미 합니다.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죄인’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도 이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사람도 없으며 (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본인이 죄를 많이 짓든지 적게 짓든지 혹은 (그러기는 거의 불가능 하지만) 아예 안 짓든지에 상관없이 모두 죄인이며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 율법은 죄를 죄로 인정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율법이 없던 때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지만 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롬 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롬 5:14)” 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아직 율법이 없어 정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군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자칫 오해 하듯이 우리가 살면서 짓는 죄, 즉 율법이 정죄하는 그 수많은 죄를 지어야만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심지어 사람 이외의 다른 창조물조차도 썩음의 속박 가운데 놓여 있으며 (롬 8:21),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면서 (롬 8:22), 하나님의 아들들 즉, 구속함 받아 양자되는 우리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롬 8;19, 23). 창조물과 창조 세계가 우리처럼 율법이 정죄하는 죄를 질리가 만무한데 그들도 썩음의 속박과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이 땅에 들어 온 ‘사망’의 권세 아래 모두가 같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5. 이와 같이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었으나,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이 사망의 법을 ‘믿음의 법’으로 바꾸기로 하십니다. ‘믿음의 법’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는 법이요, 차별이 없으며, 그 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롬 3:21-28). 그러므로 이제 아담에게 내렸던 ‘사망’의 저주는 ‘영생’으로, ‘정죄’는 ‘의’로, 그리고 마침내 아담의 ‘불순종’은 ‘순종’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누구를 통해 들어왔었습니까? 한 사람 아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역전 드라마는 또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롬 5:17). 이것이 바로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롬 5:14)”라고 말씀하신 뜻입니다.   6. 그러면 아담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믿음의 법’을 따를 수 있을 까요? 가령 아브라함은 역시 아담의 자손으로 예외 없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롬 4:1-3). 그런가 하면 다윗은 “자기 불법들을 용서 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시편에서 노래한 바 있음을 바울이 알려 줍니다 (롬 4:6-8). 이 말씀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법’이 완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법’ 아래 놓여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믿음의 법’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행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는 성경이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다시 아담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담의 죄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면서 (창 3:21), 이브의 씨가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예언 하셨습니다 (창 3:14-15).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이고, 이 소망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 여기시려는 새로운 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은 이 소망을 후대에 열심히 전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비록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는 모든 창조물까지도 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종노릇하게 되었음에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소망의 믿음을 갖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믿음의 조상들로 세워 나가신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에서 아담이 불순종하였지만,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선악과 대신 이 메시야 소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여전히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갖게 된 것이 됨으로 여전히 선악과가 주고자 했던 의미는 지속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완성된 ‘믿음의 법’ 아래서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물으심으로 아담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법’을 순종하여 의에 이를지, 아니면 아담이 선악과 앞에서 그랬듯이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믿음의 법’에 또 다시 불순종하여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를지 (롬 6:16),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4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9 21:16:55 | 김정훈
이런 질문을 하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인지...의문이 들면서   그래도, 많은 분들의 감사한 댓글로 많은 깨달음을 얻기에 질문을 드려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의 죄를 모든 인류의 죄가 되도록 하셨나요?"   범죄한 것은 아담이었는데,, 아담의 잘못이 수천년을 지난 우리 아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한 죄의 몫이 지워졌는데....   왜 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만 죄의 댓가를 물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아담이 죄를 지었으니까요.)   왜 궂이 아담의 죄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다고 하여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몫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나요?   내 부모가 범죄를 저지른 강도라고 해서 자식까지 죄인이지는 않지 않나요...?   과연,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는건가요? 아니면, 죄라른 것은 원래 유전이 될 수 밖에 없게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신 것일까요? 아니면, 죄의 속성이 그런 것인가요?   좋은 답변 부탁드려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9 11:23:41 | 나창주
서울시 강동구 성내2동 139-2(공안과 의원 옆)에 위치한 성서침례교회입니다(최육열 목사님). 작년 말을 기점으로 100%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2-02-09 10:18:41 | 관리자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필요하시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일 하기를 원하신다 (고전 3:9).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 분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어 우리에게 면류관과 상까지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빌 3:14; 고전 9:24-27; 히 10:35).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며 (히 12:1), 다만 이 모든 명령 받은 일을 행한 후에 그저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겸손히 고백할 뿐이다 (눅 17:10).   이러한 하나님의 같이 일하심과 맡김의 원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잘 나와 있다 (마 25:14-30).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종에게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김에 대하여 칭찬을 하시되, 1 달란트를 받고 그저 땅에 묻어둔 종은 크게 나무라셨다. 그때 1 달란트 받은 종이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말하였는데 (마 25:24),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 말은 자신의 주인 즉, 하나님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만 믿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하지 않은 종이 되었기에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막연히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한다는 다소 충성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칫 놓치기도 한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맘먹을 때 하면 되지 하는듯한 방관된 자세로 그저 멀리서 팔짱끼고 계신 그런 분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사 9:7).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완수하게 격려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뤄낸 성과들로 인하여 같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시며 세워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달란트에 맞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탁월함을 들어내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 다니엘을 보라. 다윗을, 모세를, 바울을 보라. 그들은 모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이었지만, 동시에 세상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들어낼 수 있는 분야에서도 모두 탁월함을 일군 사람들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성공을 이룬 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버리거나 세상 유혹만을 쫒아간다면 세상에서의 그 성공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한갓 이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에 다름없게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간절히 간구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분 앞에서 어떤 존재로 서있는지 관심이 있을 수 있다. 흔히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그 일로 이뤄낸 어떤 성과 따위는 하나님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계시며 단지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재를 따지기로 말 한다면, 우리의 구원 조차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이며 (롬 5:8), 성화를 위해 싸워 가는 과정에서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여전히 버거워 하는 존재일 뿐이다 (롬 7:13-25). 그런 ‘존재’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같이 일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죄의 법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도 하시며, 그 크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낸’ 우리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 작은 일을 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상을 주시며 칭찬하시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7 21:58:03 | 김정훈
저번주말에 누나의 생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12세등급 실사영화도 욕이 난무하고, 정말 애들보기 민망한 장면도 너무 많아서   초등학생인 조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니메이션 해피피트2를 보았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며, 정동수목사님의 UFO실체와 아귀가 딱 딱 맞아감을 두려움속에서 느꼈습니다.   어찌 이런 어린애들이 보는 것에 이런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다 들어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가족영화로 애와 어른이 다 볼수있고, 이런 내용을 어릴적부터 본 아이들이 나중에 중장년층이 되면   평화의 세계단일화에 박수갈채를 보낼 교육을 받고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교리 게시판에 있는 UFO실체 글을 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그것을 꼭 읽고 세상을 보는것이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 내용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이 영화는 눈 요기거리와 노래로 사람을 감성적으로 이끕니다.   해피피트2는 펭귄을 의인화한 영화입니다.(저는 이런영화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 잘 살던 펭귄(인간)들이 자연의 힘(재해)에 고립되어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잠시 나와있던 에릭과 친구들 아빠는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다른 지역(나라)의 펭귄(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곳의 펭귄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펭귄이 아닌 다른 종)은 펭귄이면서 하늘을 날수 있습니다.   (펭귄들은 같은 종족인줄 알고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가 됩니다.)   스벤이 이끌고 온 다른 펭귄(인간)들은 열심히 도움을 주는데   이전에 스벤과 그의 심복 A(이름을 잊었습니다.)가 만났었던 인간(외계인)에게 말이통하지 않지만   바디랭귀지로 도움을 요청하여 그들의 기술(고도의 기술)로 고립 되었던 펭귄(인간)들을 금새 구출(혹은 구원)하려 합니다.(공교롭게도 영화내에서 인간들을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자연의 힘에 인간(외계인)들은 구출작전을 중단하고, 그곳을 빠져 나가 버립니다. (UFO실체에서 언급된 외계인이 우리와 기술을 나누다가 전쟁하여, 이젠 그 기술을 얻을수 없는 내용과 일치)   다시 죽음의 기로에 선 펭귄(인간)들은 다른 종인 바다코끼리(다른 나라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도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영화는 중간 중간에 진화론을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된다! 된다고 믿으면(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노력하면) 불가능한 무엇이든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며 시청하는 애와 어른들에게 주입시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인 수많은 새우 종들이 함께 힘을 합하게 됩니다.   각 지역의 펭귄들과 그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위대한 스벤, 다른 종) 그리고 바다코끼리, 수많은 새우들이   자신들의 힘으론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자신들의 의와 행동으로 다른 종족(세계 각 나라)과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세계단일화,종교단일화) 열심을 내어 일을하니   인간이 인간을 죽음 앞에서 구원해 버립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들의 우상이었던 위대한 스벤은 원래 펭귄(인간)이 아님을 실토하며, 펭귄 암컷(인간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당연히 교미를 하여 아이를 낳겠지요. 버림받은 천사들, 유전자조작.. 거인들 다른 외계종)   이것을 보고 마음이 요동하여, 어머니(교회 권사)께 이런 저런 말씀을 했더니 "너 정말 왜그러니","도끼눈을 뜨며 저를 피하십니다."   더구나 누나와 조카는 그걸 보고 두번이나 감동하여 울었다고 합니다.   정말 미칠노릇입니다. (교회 다니지요..)   어찌 이런것을 보고 우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감동하여 울거나 울뻔한 세상사람들이 많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제 누나는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 것을 좋아하며, 즐기지만 삶이 고통스럽던 차에 최근에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분별력이 없고 또한 그것을 분별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 것을 말하는 것은 왠만큼 믿음생활했다는 교인들에게 꼭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 KJV, 킹흠정을 알게 되었을때는 수개월동안 이것이 붙잡아도 될것인지 확인을 거듭했습니다. 다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하나님 말씀"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확신을하며 한글화 된 KJV 번역본 중에서는 가장 좋은 흠정역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KJV1611이 최종권위=변개되지 않은 하나뿐인 성경책임을 믿습니다.   정동수목사님 계열이 극도로 세대주의적이고 한킹계열과 좀 다를뿐이지 인정하지 않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자신이 정말 확인하며, 시험을 거듭하여 증명해본 것입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남들이 하는말 또는 어디서 보거나 줏어들은 말을 읊을뿐이지 직접 확인하지 않음이 우리 눈에는 얼마나 미련해 보이는지 아십니까??"   그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요? 아니면 두개의 가면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십니까??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리는 당신들이 세상속의 교인들과 뭐가 다릅니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발 담그면 더 따뜻할까요? 이도 저도 아닌게 될 뿐입니다.   [계 3: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각종 헐리웃영화를 보며 항상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내용들을 매번 빠짐없이 접합니다. 주님오실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어릴적보다 더욱 가깝게 느끼며 바른말씀을 붙잡아야 함을 알게됩니다.   벧전 4:7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     저는 정말 부족하고 못난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련한 저에겐 "바른" 하나님 말씀이 꼭 필요 합니다.   무조건 적인 신뢰와 믿음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바칩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6:00: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6 08:18:36 | 이민혁
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58번의 댓글로 달았던 글을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독립글로 다시 올리는 것임을 밝혀 둡니다.   선악과는 과연 왜 있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선악과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적어도 한번쯤은 고민해 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선악과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음을 보여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하나님 또한 그 분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그 분을 의지적으로 순종함으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소위 '짝사랑'의 존재로 지으시기 보다는 우리도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은 바된 존재 답게 그 분을 우리의 의지로 '사랑'하길 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2. 선악과가 있는데 그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가 지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하셨던 그 말씀 그대로 그 자체가 이미 천국입니다. 천지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력하여 만드신 것처럼 에덴동산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거했을 것입니다. 3. 선악과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먹었다면, 그 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이 되고 그것은 곧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우리의 영원한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죄인된 모습으로 성육신 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그 방법에 참여하는 자에게 이제는 양아들 자격을 주시어 (엡 1:5)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구요. 안타깝게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4.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악과의 존재 자체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사랑의 표현이며, 이것에 대하여 '순종'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함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없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거닐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2번의 경우에 해당). 따라서 이번 글의 서두에서 질문한 "선악과 사건이 있어야지만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입니다. 선악과 사건 이전에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우리의 믿음에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5. 마찬가지로 또 다른 질문으로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될수 있게끔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라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선악과 사건이 저질러진 이상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를 잘 따져 보시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 그 방법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지 선악과 사건 그 자체가 우리를 양자 삼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여 지지요. 6.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선악과 사건을 계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었고 그것의 결과로 인하여 비로소 구속을 계획하심이 맞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5 02:42:43 | 김정훈
우상 숭배와 인본주의 진화론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 기초는 진화론의 토대 위에 서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고 인간을 우연 발생한 동물의 연장으로 이해한다. 진화론의 주장이 결코 성경과 같이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적 방법을 인정하면서 창조도 믿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진화론의 핵심은 목적성 없는 무작위적 자연발생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절대 그런 목적 없는 분이 아니시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게 됨은 너무도 자명하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리차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의 말처럼 하나의 “망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도전이다.   과학과 신앙   과학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연구하여 그 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주신 문화명령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많은 부분에 있어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그분께서 권능의 말씀으로 떠받치고 계시며 (히 1:3),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골 1:17). 사실,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분의 발끝에도 못 미칠 만큼 아주 적은 것이다. 신앙엔 분명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신앙이 진리에 관한 문제라면, 그 믿음이란 것이 결단코 무조건 적인 믿음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도 더욱 공고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진정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 분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사실이라면, 자연 만물 속에서도 그 분의 존재를 발견할 수밖에 없어야 한다 (롬 1:19-20).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증거 없이 믿음만을 강조하지 않으신다. 증거는 믿음을 더욱 강화 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활의 증거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듯이, 창조의 증거 또한 우리에게 분명히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을 발견하고 찾기를 원하신다. 과학도 그 분이 허락하신 축복이다. 따라서 그 분 안에서 올바른 과학을 한다면, 반드시 그 연구 결과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고통 받는 욥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의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것 위에 줄을 팽팽히 쳤느냐? (욥 38:4-5)”, “누가 아무도 없는 땅과 아무도 거하지 않는 광야에 비를 내리게 하며, 연한 채소로 하여금 싹을 내게 하였느냐? (욥 38:26-27)”, “누가 속 중심부에 지혜를 넣어 주었느냐? 혹은 누가 마음에게 명철을 주었느냐? (욥 38:36)” 욥기에 기록된 이 같은 하나님의 많은 질문들은 바로 그분이 우주를 지으시고 우리에게 과학을 할 수 있는 지혜까지 주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며,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또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마음속의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한 자세로 자연세계를 들여다보면, 그곳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숨결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올바른 과학은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발견하는 과학자들   실제로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발견을 통하여 초월적 설계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 가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저 우주의 수많은 평범한 행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어쩌면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일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세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수록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그 구성물질들의 정교함과 복잡함에 더욱 경탄하며 그 기원에 대한 무작위한 우연 발생적인 설명 방식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많은 물리화학자들이 마치 발견되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듯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자연의 법칙들과 수학적 상수들에 대하여 예사롭지 않은 경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학은 과연 하나님을 발견했는가? “무신론을 향해 가던 길은 과학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도 그랬다.” 한 때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하여 지금은 목사가 된 리 스트로벨 (Lee Strobel)의 말이다. “내게 있어 지적 능력을 갖춘 신의 존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강력해 보이는데, 그것은 최근의 과학적 발견들로부터 온다.” 오랫동안 인본주의 무신론 진영의 최고 리더였던 안토니 플루 (Antony Flew)의 말이다. 과연 그들의 고백처럼 오늘날 과학은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냄 (시 19:1)” 을 증거 할 뿐만 아니라, 마치 미세 조정된 다이얼이 가득 찬 것과 같은 모습의 이 우주를 움직이는 뛰어난 지성의 존재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과 기독교   분명히 우리는 다윈 시대보다 앞선 과학적 지식 속에 살고 있다. 한 때 소위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의 의식 가운데 ‘하나님’을 몰아내고 무신론의 강력한 토대를 세운 다윈의 진화론이 이제는 동일한 ‘과학’에 의하여 상당수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부정되어 지는 사실을 목도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손에 갖고 있는 기독교는 ‘기원’ 문제에 있어서 항상 명쾌하고 분명한 답을 갖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진화론은 일부 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어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 내지 ‘점진적 창조론’ 등의 타협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은 교회 내에서 확고한 “성경적 창조론”을 세우고 가르치는 일을 매우 등한시 하였다. 만약 인간이 정말 우주 진화의 부산물로서 우연 발생한 존재라면, 죄의 문제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고, 도대체 복음을 사실로 받아드릴 논리적 이유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하면 복음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진화론의 주장은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과는 조화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결국은 기독교의 토대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 찬란했던 유럽의 교회들이 썰물처럼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고 오늘날 텅 비게 된 이유는 바로 진화론의 출현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교회여, 창조주를 선포하라!   하지만, 진화론이 어떤 절대적인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최신 과학 정보들을 볼 때 설계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걸 보면, 성경을 떠나 진화론과 타협을 시도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언젠가 또다시 그 이론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이제 답은 분명하다. 교회는 성경에 기술된 분명한 창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선포 하고 전하는데 조금도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일부 교회가 진화론 과학자들의 눈치를 적당히 보면서 이론적 타협을 하고 있는 동안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진화론을 잉태한 동일한 과학의 이름으로 이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고 계시다. 과학자들의 입을 통하여 창조 사실을 증거 하게 함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전도할 때 창조의 메시지를 들고 복음을 전하였던 것처럼 (행 14:15, 17:24-25),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기초가 들어갈 마음의 밭을 준비케 하는데 창조과학적 내용이 도구로 사용되어 질 수 있다. 기록된 바, 말세에 천사가 전할 ‘영존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분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바로 그 분이 창조주 되심을 새삼 선포하는 것이며, 동일한 그 분께서 이제 곧 심판주로 오실 것이란 뜻이 아닌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 4:8). 하나님께서는 그 분께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요 4:23). 우리들이 입을 열어 그 분을 창조주라고 인정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분을 믿을 만한 확신을 주셨다 (행 17:31). 올바른 과학은 참 신앙과 대립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한다. (고후 10:5)”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4 18:58:16 | 김정훈
우리교회는 흠정역 귀한 말씀을 보고 있읍니다, 그런데 귀한 진리의 말씀을 알리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현수막을 걸려고 하는데 글귀을 알려주시면 감사 하겠읍니다, 김문수님께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분들도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감사합니다.
2012-02-04 08:35:50 | 김삼일
인도인들에게 갠지스강은 어머니와도 같은 상징적 존재이다. 그들이 힌두교의 여신 쉬바의 신비스러운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이 강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거룩한 성지이며, 인도인의 정신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매년 수백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몰려 드는 이 곳의 실상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오염과 부패로 얼룩져 있다. 무려 2,500여 Km에 달하는 긴 강이지만, 강변을 따라 몇 몇 도시 주변에는 소위 '가트'라는 장소가 발달되어 있고, 이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종교 의식과 빨래, 목욕, 그리고 죽은 자들의 화장까지 행하고 있다.   문제는 죽은 자들의 시체와 정수 되지 않은 채로 방류되는 분뇨가 섞인 하수들로 인해 강물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 강물을 성수로 여기며 이 물로 목욕도 할 뿐만 아니라, 마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용가능한 일반적인 목욕물의경우 100ml당 150마리 정도의 대장균이 있는데 반하여, 이 곳의 물은 대략 수 백만에서 천 만마리에 이르는 대장균이 검출될 만큼 오염이 심각하여 각종 수인성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인도인들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인 강이 오염 되었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기에 정부 차원의 환경 운동은 적어도 아직 까지는 크게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잘못된 믿음, 어긋난 정신, 왜곡된 진리가 가져다 주는 참상을 보는 듯하여 가슴 한 쪽에 깊은 아픔을 느끼며 관련 사진 몇 장을 같이 소개한다.   (참고로 일부 사진은 매우 역겨울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 법을 고려하여 허가 받지 않은 사진을 삭제하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3 00:14:39 | 김정훈
제가 자주 들러서 자료를 검색하고 동향을 살피는 블로그나 카페 중 하나인 '분별하라'는 카페의 글을 퍼스팅했습니다. 저는 킹제임흠정역성경이 한국사람이 읽을 수 있는 킹제임스성경(KJV) 번역본이라고 믿고 최종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이 40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로 401년을 시작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의 가치가 잘 전달되지 못하고 읽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성교회와 교단들이 개역, 개역개정성경을 토대로 발전해 왔지만 아직 성경의 번역의 옳고 그름, 개역성경이 많은 부분에서 번역이 잘 못된 것과 변개된 사실을 모르며 인정을 하지 않는 가운데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형제님들이 KeepBible.com 통해서 바른 진리와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려는 이 싸이트를 통해서도 많은 변화들이 그래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래의 스크랩 자료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모래시계님, sironeko님 그밖에 댓글을 다신 분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스크랩한것에 대해서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또한 저는 이 카페와 개인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정회원도 아닌 준회원으로 자료들을 참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안에서 본다면 주님나라에서 이 형제들을 보게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래의 스크랩한 내용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그리고 믿음안에서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지며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며,  읽혀지며, 구원받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은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화이팅!!!!   ========================스크랩 자료======================   성경책에 관한질문입니다. - KJV 한글번역본 선택에 대한 조언 - sironeko님의 글입니다.   제가 알고있는 범위내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한국내에 몇가지 종류의 KJV 한글번역본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알고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제가 직접 접해본 번역본은 3가지정도 밖에는 되지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광고를 통해 많이 알려진 이송오 님(목사)의 한글킹제임스성경 (약칭 '한킹', 말씀보존학회 출간)이 있고, 요즘들어 광고하며 세를 키워나가는(?) 정동수 님(목사)의 킹제임스성경 흠정역 (약칭 '흠정역', 그리스도예수안에 출간)이 있고, 서달석 님(목사)의 성경전서 KJV 완역한글판 (한국 킹제임스성서협회 출간)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안티오크의 박만수 형제님이 번역중인 성경도 있고, 제가 접해보지 못한 한글번역성경중에는 개인적으로 번역중(또는 번역완료한)인 다른 형제님들의 성경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는 이정도 입니다.   어떤 한글번역성경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입니다...   저의 개인 경험을 말씀드린다면,   1) 말씀보존학회의 광고덕분에 킹제임스성경 이슈라는 것(변개된 성경 vs. 보존된 성경)을 알게되었고, 교보문고에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구입하여 읽던 중에 성경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고 또 깨닫게되었습니다. 그 뒤에 이송오 님의 개인적인 인격의 문제점을 느끼면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문제점도 알게되었습니다. 번역의 근간이 되는 텍스트가 온전히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된 것이 아니라, TR 외에도 여러가지를 편집하였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한킹'만이 보존된 성경말씀이라 주장하며, 여러번의 수정을 거치기도 하는 등, 말과 행동이 다르며, 그 주장이 과격하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2) 그러던 중에 정동수 님의 흠정역 성경을 알게되었고, 현재까지 흠정역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다만 정동수 님 계열은 세대주의에 대한 과도한 신뢰, 무조건적인 KJV onlyism 등의 문제로 그 진영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고, 제가 읽는 성경말씀에만 근거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 제가 읽는 영문 KJV 와 한글번역이 차이가 있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흠정역의 번역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저는 조금 우려되기도 합니다.   3) 서달석 님의 한글KJV 는 위의 두 사람의 번역보다는 한 세대 이전부터 추진된 것으로 저는 알고있습니다. 다만 조용히 일하시는 스타일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70-80년대에 '칙 출판사'의 '알베르토' 시리즈 외에도 많은 좋은 믿음의 글들을 '생명의 서신'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하는 등 수고해주신 것으로 최근에야 알게되었습니다. 다만 한글번역성경은 제 스타일에는 맞지않아, 구입하기는 했지만 실제 읽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번역체가 다르고 번역자(대표)의 성향이 다른 것으로 압니다. 몇 가지를 놓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는 일단 구입을 한가지라도 하셔서 읽어보시면서, 부족함을 느낄때 다른 성경도 구입하여 비교하며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성경을 선택하시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시간될 때 답글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래시계 12.01.19. 13:15 시코님의 리서치 감사 드립니다..가장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음이 중요한것 입니다지금 번역되는 킹제임스 성경이 완벽할수는 없습니다..하지마는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의 하나님의 말슴에 대한 존중과 믿음을 공유하고 나가는것이 중요하다 생각 합니다   ┗ 모래시계 12.01.19. 13:19 저는 개인적으로 한킹을 이미 가지고 계신분들은 ...굳이 ...다른 흠정역을 사실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자기의 손때와 시간이 묻어난 성경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저는 한킹을 흠정역 이전에 갖고 있었고 흠정역이 나온후 ...구입하여 보았으나 ....아무래도 익수하여 지고 손때가 묻고 ...줄이 쳐지고 찾기 쉬운 한킹을 계속 보게 되고 ...흠정역은 손이 안가고 아직도 깨끗히 책장에 꽂히어 있습니다..하지마는 처음 구입하시는 분들은 ....여러가지 생각하여 볼때 흠정역을 구입하시는것이 낮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추전하여 봅니다   ┗ sironeko 12.01.19. 13:23 저 또한 처음 구입하신다고 한다면 정동수 님의 흠정역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그런데 의외로 흠정역이 자신과 맞지않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구요...그래서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번역 스타일이 있구나... 생각되었습니다.그런 점때문에 여러종류의 KJV 한글번역본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봅니다.번역본때문에 고민되시는 분들은 일단 아무 번역본이라도 저질러 놓고 시작해보십시오.그리고는 영 아니다 싶을때 바꾸어 보십시오.다만 이송오 님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주의해서 읽으시고, 또 그들의 주장도 조심해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토담 12.01.19. 22:32 저는 한킹을 9년정도 보았으며 6년전에 흠정역으로 바꾸었습니다.짧은 영어 실력탓에 뭐라 말씀드리긴 곤란해도 두곳을 비교 한다면 흠정역을 권하고 싶습니다.이유인즉슨 한킹보다 흠정역이 더 영어답게 변역 했다는것 입니다.위의 코멘트 하신 분들처럼 단순하게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한것을 비교해 볼때 말보회는 번역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흠정보다 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오역이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그런 자료는 많이 있지만 공개하긴 곤란 하구요...하지만 기도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기도하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시길 바라겠습니다.주안에서 강건하시길 간구 하오며...   씽씽이 12.01.19. 16:42 좋은말씀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바로 서점에 다녀와야 겠습니다.   엔조이최 12.01.20. 10:47 이번에 처음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구입한다면, 저는 킹흠정역 400주년판.. 생명의 말씀사를 추천합니다.   진짜자스민 12.01.20. 11:03 대게 흠정역을 추천하시는듯하네요. 시코님 남기신글중에 ((다만 이송오 님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주의해서 읽으시고, 또 그들의 주장도 조심해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말씀남기셨는데...그것에대해 좀더구체적으로말씀해주지않으시겠어요?이송오목사님을개인적으로 아시나요?   ┗ sironeko 12.01.20. 13:40 이송오 님(목사)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이 쓰신 글과 행적들을 보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일례로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보존하신 성경으로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바른 자세라 할 수 있을 겁니다.(킹제임스성경만이 올바르다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존하신 성경이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그러나 다른 킹제임스성경 한글번역에 대해서 비난하며, 다른 번역본성경을 읽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 누가 보아도 도가 지나칩니다.그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부분을 사람인 이송오 님(목사)이 판단, 평가하는 듯한 태도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 sironeko 12.01.20. 13:44 그리고 자신이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성경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반에 수고해주신 박만수 형제님이나 정동수 님(목사) 등 같이 수고한 형제들이 있음에도 자신만이 수고한 듯한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번역자체도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였다 하면서도, 다른 영문성경이나 TR등 짜깁기 번역을 하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자신이 번역한 결과물을 완전한 하나님의 작품이라 생각하며 숭앙한다는 점에서...저는 이스라엘 민족이 만든 금송아지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때도 있습니다...   ┗ sironeko 12.01.20. 13:47 이런 여러가지 정황과 행태등을 볼때 저는 이송오 님(목사)을 무조건 믿기보다는취할 것은 취하되 주의하여 분별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특히나 말씀보존학회(말보회)의 강경한 입장을 고려해 볼 때 자칫 그곳의 주장에 동조하면 성경 중심의 마음을 잃게 되지않을까 우려됩니다.그러하기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읽기는 읽되 (현재 저도 가지고 있고, 예전에는 밑줄쳐가며 읽었습니다.)주의하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토담 12.01.20. 20:08 한킹(스코필드 주석 성경) 서문 3페이지 중간 단락엔[...신약은 처음에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킹제임스성경>과 대조하여<킹제임스성경> 에 철저하게 어휘를 맞췄고....]라고 스스로 킹제임스 주의자가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이밖에도 번역상의 오류들을 지적하려면 이곳 까페의5~6페이지 이상 기록해야 합니다.포천의 홍성율 형제(목사)가 이송오님(목사)에게 질문한 내용들을 까페에서 찾을 수있을 것입니다.정동수 형제(목사)가 번역한 400주년판 흠정역이 더 낫다고 보는것은 이번에 약 1여년에 거쳐 수정작업(여러사람들이 번역상 지적한 오,의역)을 했습니다.읽기에 처음엔 불편합니다.   ┗ 토담 12.01.20. 20:09 개역성경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지만 스타디용이나 한영 대조판을 보시면 이해를 하실 수있을것이라 사료됩니다.     엉클 12.01.21. 15:27 제가 염려했던 소극적인 상황이 전개가 되네요.   ===================  끝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2 13:52:13 | 노영기
오늘 아침 다음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1/2012020102438.html?news_Head2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1 23:11:34 | 관리자
(신명기 14장 26절)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 등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네 집안이 먹고 기뻐할지니라.   전에는 술에 대해서 완전금주해야 하며 한 모금이라도 마셔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오래전에 신명기 14장 26절에서 독주를 먹어도 된다는 글을 보고는 조금 당혹스러웠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술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지만, 신명기 14장 26절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글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아닌 것 같아서 술을 주량만큼 마시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대한 적지 않은 글들을 봤을 때 위의 구절을 언급한 글은 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잘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6:04: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30 20:39:54 | 김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