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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카톨릭의 기도 카톨릭 주의는 기도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 봅시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곧 기도하자면 먼저 기도하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제4편 p.903 #2650]. 위의 교리 문답서 인용문에서 우리는 심각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두 가지 진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그 반대입니다! 성경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분출한 기도의 예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 셀라(시3:4)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나를 고치셨나이다(시30:2). 내가 고통 중에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시120:1).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시62:8). 카톨릭 주의의 기도는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쓰여 있는 단어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이교도들이 하는 행습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기도 방법을 금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기 때문이라(마6:7). 둘째로,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교리 문답서는 성경이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카톨릭 교회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가 있기 오래 전에도 사람들은 기도했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료하사 자녀들을 낳게 하셨으니(창20:17).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주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민11:2). 시리아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그가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이 사람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니 그분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시니라(왕하6:18) 이러한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의 도움 없이도 자발적으로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초청하십니다.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연 발생적인 감정의 표현을 인정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속  박? 이러한 카톨릭 주의의 교리가 신자들을 보다 더 카톨릭 교회의 속박 안에 가두게 만든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고 결정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결    론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팽팽한 두 개의 주장에 직면해 있습니다. 성경은 카톨릭 주의의 기도법을 정죄하고 카톨릭 교회는 성경적인 기도법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말씀 편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전통 편에 서시겠습니까?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건짐을 받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22:5).
2009-07-09 14:55:16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경 해석 과연 카톨릭 신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도 될까요? 문답서의 말을 들어 봅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제1편 p.46 #100]. 오직 교황과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성경으로 달려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바울과 실라가 베레아에서 전도했을 때 그 사람들의 태도는 이러했습니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행17:11). 다시 말해 그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스스로 성경 말씀을 해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막12:24) 만일 사두개인들이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어째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질책하셨을까요? 어째서 카톨릭 주의의 초대 ‘교황’이라는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일까요?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벧후1:20).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면 어째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강하게 권유했을까요?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충고하셨습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5:39). 과연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이 성경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요구했다는 말입니까? 누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특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성경 말씀을 해석하실 것이며 또 그들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자기를 가르치신 분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이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고전2:12-13).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것들을 암기하도록 명하셨을까요?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내 아들아, 내 말들을 지키며 내 명령들을 네게 쌓아 두라.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잠7:1-3). 경고의 말씀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성경을 해석해 줄 교회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너희를 유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6-27). 하나님의 입장이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습니까? 결    론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당신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해석해 주기로 결정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당신을 통제하고 카톨릭 주의에 계속해서 묶어 두려는 의도가 아닙니까? 그들은 혹시 당신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서는 카톨릭 주의의 교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된다는 것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은 카톨릭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가 그들을 위해서 성경을 해석해 줄 필요를 느끼면서 영적인 무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카톨릭 교회의 성경 해석권이 사람의 전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가 당신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해석해 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입니까, 아니면 로마 카톨릭 교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당신이 누구에게 복종할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이 영원을 어느 곳에서 보내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 많은 명철이 내게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시119:97-100).
2009-07-09 14:46:41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면죄부 살아 있는 자들과 연옥에 있는 자들을 다 포함해서 로마 카톨릭 신자들의 죄는 대사(大赦)즉 면죄부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카톨릭 교리 문답서는 말합니다. 신자들은 대사(大赦)로써 자신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 즉 일시적인 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제2편 p.545 #1498]. 다음은 대사에 관한 교리 문답서의 정의 내용입니다. 대사란 이미 용서되어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인 벌(잠벌)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주고 적용한다[제2편 p.539 #1471] 이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나오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대사 즉 면죄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선행에 대한 복잡한 체재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대사에 관한 모든 규정들 역시 사람들의 전통이라는 점 또한 언급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들 중 단 하나도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죄의 종류? 교회의 이러한 교리(대사)와 관습을 이해하려면 죄는 두 가지 결과를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제2편 p.539 #172]. 그러나 성경은 모든 죄의 결과는 동일하다고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우리가 어떤 특별한 죄는 소죄라고 생각한다 해도 죄의 최종적인 결과는 언제나 죽음입니다. 카톨릭 교인들은 대사를 통해서 죄 값을 지불하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는 나 역시 전해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니 그것은 곧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고전15:3).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이 선행 즉 선한 행위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구원받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구원받은 이후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런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사람이 한 번 은혜에 의해 구원받으면 선한 행위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선행이 구원을 위한 필요 조건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필요 조건도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선행을 요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카톨릭 주의는 또한 대사(면죄부)가 이미 죽은 자들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도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인한 잠벌을 면하게 하는 대사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제2편 p.541 #1479]. 그러나 이것 역시 사람이 만든 전통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에 관한 어떠한 가르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당신의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간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뿐입니다. 세 가지 주제 이 교리에서도 또 세 가지 주제가 반복되어 부각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신성이 또 한번 과소평가 됩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카톨릭 주의는 일개 카톨릭 교인의 선행을 통해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 대사 즉 면죄부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계속해서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가기보다는 카톨릭 교회가 부과하는 선행을 실천하면서 부단히 힘쓰고 애써야만 합니다. 카톨릭 주의가 말하는 선행과 성경이 말씀하신 선행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의하십시오. 성경적인 선행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행하는 일들입니다. 반면에 카톨릭 주의의 선행은 주로 교회의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 즉 미사, 묵주 기도, 카톨릭 기도문, 촛불 밝히기 등에서 맴돕니다. 선행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들을 교회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3. 대사 즉 면죄부는 영적인 공갈 협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령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에 충실하게 붙어 있지 않으면 언젠가 그들의 죽은 가족들이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입니다. 결    론 이러한 선행 제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주제에 관해 자신의 거룩한 성경 말씀에 무엇이라고 적어 놓으셨는지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스스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5).
2009-07-09 14:43:49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고해성사 죄의 용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두 가지 중요한 교리를 검토해야 합니다. 첫째로, 모든 죄는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제2편 p.544 #1493]. 사제에게 하는 고백은 고해성사의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이다[제2편 p.532 #1456]. 이 성사를 고백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제 앞에서 죄를 자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성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제2편 p.522 #1424]. 카톨릭 주의는 신자들로 하여금 사람에게 그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지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좌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고백하리이다, 하고 주께 내 죄를 시인하며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편 32:5)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다윗은 기도할 때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내 불법에서 나를 완전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이는 내가 내 범죄들을 시인하기 때문이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2-3). 다음 구절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왕좌까지 직접 다가갈 수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히10: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 주신 정결한 피로 인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의 왕좌로 직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황’의 모범 사도행전을 보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소위 초대 교황이라 일컬어지는 베드로에게 와서 성령님의 능력을 돈 주고 사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던가요? 시몬더러 바로 그곳에서 자신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종용했나요?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회개하고 그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행8:18-22 참조). 사제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교리의 두 번째 측면은 카톨릭 사제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제2편 p.544 #1495]. 여기서도 역시 카톨릭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가 됩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느냐?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들을 용서하겠느냐? 하더라(막2:7). 카톨릭 주의는 사제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라고 가르칩니다(교리 문답서 #1456 참조).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분의 중재자만을 인정합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다시 한번 교리 문답서는 이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가르침이 아니고 사람들의 전승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은 난파 후 얻는 구원의두번째 구명대’라고 소개한다(테르툴리아누스의 참회론 4,2 ; 트리엔트 공의회:DS 1542)[제2편 p.530 #1446]. 가중되는 속박의 굴레 교회의 계명에 따라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대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989조;DS 1683; 1708조)[제2편 p.533 #1457]. 의무라는 말이 또 한번 등장했습니다. 교부들(Church Fathers)이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로 묶어 놓는 또 하나의 전통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카톨릭 교인들을 얽어매기 위해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매우 강력한 무기입니다. 본질적으로 이 교리는, 만일 당신이 카톨릭 교회를 떠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디 기억하십시오. 이것들 중 어떤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협박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고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이 종교가 얼마나 단단히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지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더 이상 이 종교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자유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결    론 수천만 명의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이 신부가 자기 죄를 용서해 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눈먼 채 고해소 앞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죄를 용서받기 위해 당신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사람이 만든 종교인 카톨릭 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한 사람의 죄인에 불과한 사제에게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시겠습니까? 오 주여, 내가 깊음들 속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나의 음성을 들으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주의 귀를 기울이소서. 오 주여, 주께서 불법들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능히 서리이까? 그러나 용서가 주께 있사오니 이것은 주를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시130:1-4).
2009-07-09 14:40:3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견진성사 교리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카톨릭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유익을 준다고 말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양자로서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제2편 p.485-486 #1316]. 문답서는 견진성사가 카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께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보다 견고히 연합시킨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여러분이 일단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면 여러분을 그 위치에서 제거시킬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임이니라(롬8:38-3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보다 견고히 연합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견고히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영적인 표시라고요? 견진성사의 이른바 또 다른 유익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제2편 p.486 # 1317].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뒤져 봐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시를 새기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구절은 없을 터인데 그 이유를 교리 문답서가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카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당연히 인정하였으며[제2편 p.476 #1288]. 견진성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전통 곧 카톨릭 신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동안 행해야 할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아무 사제라도 견진을 주어야 한다(교회법 제883조 3항). 왜냐하면 교회는 그 자녀들 중의 누구라도 아주 어린아이까지라도,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선물로 완전해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제2편 p.485 #1314]. 견진성사의 숨은 의도 이러한 종교 예식의 실제적인 결과는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로 보다 깊숙이 끌어들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리 문답서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은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제2편 p.475 #1285].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음이 분명한데 어째서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종교 예식에 구속되고 싶어하거나 또는 그럴 필요를 느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요8:3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결    론 사람이 만든 카톨릭 교회의 전통인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은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씀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무시하고 “예!”라고 주장합니다.   누구를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명령입니까?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2009-07-09 14:37:15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상들 교리 문답서는 모든 카톨릭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나 혹은 마리아 및 기타 다른 사람들의 성상이나 성화들을 공경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분들을 공경한다[제2편 p.448 #1192]. 성상들이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두 번째 명령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4-5). 하나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작은 숲을 심지 말며 너를 위하여 어떤 형상도 세우지 말지니 주 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느니라(신16:21-22). 성경은 어떠한 형태의 조각된 상이든지 그것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사람은 부패한 사람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주께서 호렙에서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모습도 보지 못하였으니 그런즉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두렵건대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너희를 위해 새긴 우상 곧 어떤 형상의 모습이든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모습이든지, 공중에 나는 어떤 날짐승의 모습이든지, 땅 위에 기어다니는 어떤 것의 모습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물고기의 모습이든지 만들까 하노라(신4:15-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는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고 네 주 네 하나님께서 금하신 새긴 형상이나 어떤 것의 모습을 만들까 염려함이라(신4:23).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사람들이 새긴 형상에 경배드리는 것을 명백히 금하는데 사실 이러한 행위는 카톨릭 교회에서 늘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들입니다. 교황이 마리아 상 앞에서 절하는 모습을 보실 때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성경 말씀에 관해 깊이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는 나 곧 주 네 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니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4-5).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상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은 무엇이냐?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19-20). 모든 우상의 배후에는 글자 그대로 마귀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마귀와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상(우상)의 사용을 금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는 우상들에게로 돌이키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부어 만든 신들을 만들지 말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레19:4).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혐오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너희에게 쓰는 것은 만일 형제라 일컬음 받는 자가 음행하는 자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이거나 우상 숭배하는 자이거나 욕설하는 자이거나 술 취하는 자이거나 강탈하는 자이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하는 것이라(고전5:11).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하리라(엡5:5).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다음 구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아무도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엡5:6). 카톨릭 교회가 당신을 헛된 말로 속이고 있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그것을 판단하십시오. 이러한 교리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카톨릭 주의는 이러한 교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양 가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결정한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다시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에, 벽과 화판에, 그리고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천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모친이신 동정 마리아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제2차 니케아공의회)[제2편 p.438 #1161]. 이러한 교리는 교부들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카톨릭 주의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러한 교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도록 거룩하게 영감 받았다고 믿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편 기자가 이 주제에 관해 우리에게 조금 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우상들은 금과 은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도 우상들과 같으며 우상들을 신뢰하는 자들도 다 그와 같도다(시135:15-18). 다시 말해 우상은 벙어리요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들을 신뢰하는 자들은 모두 지각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결    론 카톨릭 교회는 '성상들(우상들)이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여러분의 신앙을 일깨우고 고양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들의 사용을 엄격하게 금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하시겠습니까?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우상들이나 새긴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서 있는 형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돌로 된 형상을 세우고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레26:1).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곧 단지나 잔을 씻는 것과 너희가 행하는 바와 같은 다른 많은 일들이라(막7:8).
2009-07-09 14:32:24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과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돕기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카톨릭 교리에 따르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교회헌장 50항).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intercession)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958]. 여기서 세 가지 진술이 성경과 모순됩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1.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장하지도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치고 죽은 자를 위해서 그들의 죄가 용서되도록 기도한 예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2.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여기 하나의 전통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전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이러한 진술이 참된 것이라고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대로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죽기 전에 그들의 죄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합니다. 3.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intercession, 중보)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블록을 쌓듯이 그들은 아무런 성경적 기초도 없이 전통 위에 전통을 얹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한 지경에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중보)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이제 명백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째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많은 중재자들이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도록 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연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는 말입니까? 이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훼손시키는 태도입니까? 카톨릭 주의의 입장은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대로 설득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방관자로 예수님을 묘사함으로써 우리의 주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내게 주셨느니라(마28:18). 여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또 다른 묘사가 있습니다. 그분(하나님)께서 그 권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사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하늘의 처소들에서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모든 정사와 권능과 강력과 통치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음을 받을 모든 이름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시고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시고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엡1:20-22). 주 예수님을 권위와 능력이 부족한 영적 무기력자로 격하시키려는 카톨릭 주의의 입장은 성경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친애하는 카톨릭 친구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임무를 혼자서도 잘 해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 그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라(히7:25).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부디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간이 만든 종교적 규정이라는 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도 없습니다. 제가 젊어서 카톨릭 신자였을 때 늘 저는 어쨌거나 이 모든 종교 규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성경을 읽고 확인해 보십시오. 카톨릭 교리 문답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의 전통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들 이제 여러분께서는 예수님께서 또 한 번 심각하게 좌천을 당하게 된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시던 유일하고 신성한 중재자의 위치로부터 쫓겨나 죽은 인간들의 무리 속으로 내몰렸고 결국 많은 중재자 중 하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왜 카톨릭 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이러한 못된 짓을 하는 걸까요? 결    론 다시 한 번 여러분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사람들의 전통인 것을 알면서도 죽은 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는 교리를 고수함으로써 교회의 전통을 드높이겠습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사람이 만든 전통을 따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시겠습니까?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께서 결정하셔야 할 것들입니다. 결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9).
2009-07-09 14:27:39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교리 문답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선행으로 인해 교회가 성인(saints)으로 선포한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 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제4편 p.914-915 #2683]. 이번 장에서는 먼저 ‘성인’(saint)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카톨릭 주의는 성인이란 살아 있을 때 행한 선행들로 인해서 죽은 후에 성인으로 공포된 ‘엄선된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신자들을 시성(諡聖, canonize)함으로써 즉 그 신자들이 영웅적으로 덕행의 길을 닦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히 살았음을 장엄하게 선언함으로써 교회 안에 강력히 작용하는 성령의 힘을 인정하고 그 신자들을 다른 신자들에게 모범과 전구자로 세워 줌으로써 그들의 희망을 북돋아 준다(교회헌장 40;48-51항)[제1편 p.322 #828].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성인(saint) 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인들(성도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롬1:7). 많은 다른 성경 구절도 똑같은 진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saints) 가운데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게 하시고(엡3:8). 아담으로부터 일곱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saints)와 함께 오시나니(유14).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saints)을 완전하게 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엡4:11-12). 이 외에도 행9:13, 32, 41; 26:10; 롬8:27, 12:13, 15:25, 15:26, 15:31, 16:15; 고전6:1; 고후1:1; 엡 1:1과 기타 신약성경의 많은 구절을 참조해 보십시오. 왜 이러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것일까요? 간략하게 말해서 이들이 꾸며낸 각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톨릭 주의는 ‘성인’(성도)에 대한 성경의 정의를 던져버리고는 새로운 것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런 다음에 신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비성경적인 ‘성인들’(성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를 듣고 응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데 왜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기도해야만 하는가? 성인들(성자들)이 중재자라고요? 카톨릭 주의는 소위 성인들(성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중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재자 곧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이에서 벗어나 딴 소리를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전통일 뿐입니다. 성인들에 관한 흥미 있는 내용이 교리 문답서에 있습니다. 지상 여정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인들과의 일치’(our communion with the saints)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는 것이니[제1편 p.363 #957]. 카톨릭 교회에 따르면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보다 가까이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러한 교리 역시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나 예수님께서 전혀 가르친 바 없는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인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죽은 자들과 접촉하는 행습은 접신술에 가까운 것으로 위험 천만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와 비슷한 행위를 강력히 정죄했습니다(신명기 18:10-12을 보십시오). 결    론 여러분이 대답해야만 하는 끈질긴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살아 계시고 능력이 막강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하나님 대신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람들의 전통이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이 ‘성인들’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쓸모 없이 지껄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당신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놀라운 약속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2009-07-09 14:24:08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연옥 카톨릭 주의는 죽음 이후에 일부 사람들은 연옥이라 불리는 장소로 가서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좀더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제1편 p.389 #1030].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제1편 p.389 #1031]. 과연 이 위험한 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요, 아니면 또 하나의 사람들의 전통일까요? 여기 정확히 카톨릭 교리 문답서로부터 나온 대답이 있습니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제1편 p.389 #1031]. 사람들이 이러한 이단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 내세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는가를 물어 보는 것이 과연 부당한 일입니까? 로마 카톨릭 신자 여러분, 만약 여러분께서 연옥에 있다고 믿는 여러분의 사랑하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면 그들이 그곳에 있다고 말해 준 분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일단의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의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세상 여정에 남아 있고 어떤 이는 죽어 단련을 받고 어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뵈오며’ 영광을 누리고 있다(교회헌장 49항)[제1편 p.362 #954]. 여러분이 고통을 당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교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성경이 전혀 그러한 장소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죽은 후에 좀더 정화를 거치는 것이 천국 가는 데 필요하다고 지적하지도 않습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나니(롬5:18).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직하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시고는 나중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당신이 고통을 당하도록 하신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그분이 성경 말씀 안에서 거짓말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성경대로 믿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좀더 정화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9).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3:24). 사도 바울도 이러한 관점을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정화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죄값을 지불하고 사셨으므로 구원받기 위해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그 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결    론 이 문제에 관해서 성경이 이토록 분명한데 어째서 카톨릭 교회는 신실한 신자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을 바치도록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스스로 대답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최소한 연옥이라는 교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부화되어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2009-07-09 14:20:33 | 관리자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 미사 교리 문답서를 그대로 믿는다면 천주교 미사를 행할 때마다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현재화되고 우리의 대속 사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이 희생 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트리엔트 공의회)[제2편 p.502 #1367]. 성찬례를 거행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Passover, 유월절)를 기억하며 이 파스카는 현재화된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항상 현실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우리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십자가의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제2편 p.501 #1364]. 그러나 성경은 대속 사역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단 한번에 완성된 행위임을 계시해 줍니다.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10:10).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을 때 그 단 한 번의 행위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대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오직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대속을 얻으셨느니라(히9:12). 성경은 이러한 희생 제사를 날마다 드려야 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요(히7:27). 이럼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의 입장은 완고합니다. 이 신비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고’…(교회 헌장 3항)[제2편 p.517 #1405].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역시 단호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 한번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헌물로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 문제와 상관없이 두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9:28).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히10:1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끝내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영광을 받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서 카톨릭 교회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고 교리 문답서는 주장하는데 사실 이 같은 주장은 갈보리에서 성취하신 일로 인해 주 예수님께서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예를 그분으로부터 도적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한번에 영원히 모든 것을 끝내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희생으로서 신성한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단 한번 일어났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 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제2편 p.502 #1367]. 이러한 발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종의 종교적 의식을 수행하는 사제가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스러운 죽음에 어떤 기여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 모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의 종교 의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대속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아무런 역할도 한 것이 없으며 따라서 아무런 영예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카톨릭 주의는 강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아 카톨릭 교회와 나누어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    론 독자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전통 중에서 어느 쪽을 신뢰할지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2009-07-09 14:17:02 | 관리자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거룩히 구별된 곳으로 그분께만 경배 드리는 건물. 이곳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인데 우상이 있는 이교도들의 신전과는 달리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지성소에서 그룹들 사이에 거하신다. 다윗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단 대언자를 통해 그가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것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이에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해 많은 물자를 예비하였다. 성전을 세울 장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었다(창22:2, 14; 대하3:1). 성전의 모델은 성막과 거의 비슷하며 단지 외형만 커졌고 그 안의 기구들도 거의 비슷하다. 성전을 짓는 데 7년 6개월이 걸렸으며 봉헌식을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대하5:1-14; 6:1-42; 7:1-22). 성전 자체는 주랑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그리 크지 않았으며 주변의 뜰과 방이 있는 지역이 넓었다.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지성소가 있는 건물만을 뜻하지 않고 종종 뜰을 포함한 전체 성전 구역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성전 선도 참조(57). 성전의 크기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6장과 역대기하 3-4장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솔로몬의 성전은 처음 33년 동안만 아름다움을 유지하였고 이집트의 시삭 왕이 이곳을 약탈한 뒤부터(왕상14:25-26; 대하12:9) 하사엘, 디글랏빌레셀, 산헤립 등이 더럽혔고(왕하12:1-21; 16:1-20; 18:1-37) 마침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래서 첫 성전은 424년 3개월 8일 만에 땅에서 사라졌고 그 뒤 52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스룹바벨과 유대인들이 두 번째 성전의 기초를 놓았고(스1:1-4; 2:1; 3:8-10) 그 뒤 이방인들의 많은 방해를 받으면서 성전 공사가 진행되어 21년이 지난 뒤 완공되었다(스6:15-16). 이 성전의 크기는 이전 것과 같았으나 겉모습은 이전 것보다 떨어져서 처음 성전을 본 사람들은 초라한 모습의 새 성전을 보고 슬퍼하였다(학2:3). 하지만 주님은 이 집의 영광이 처음 것보다 크리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학2:9). 이 성전에는 언약궤, 긍휼의 자리, 눈에 보이는 영광, 제단의 거룩한 불, 우림과 둠밈, 대언의 영 등이 없었다. 주전 168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대제는 매일 드리는 성전 희생 제사를 금하고 제단에 돼지 피를 드림으로써 이 성전을 더럽혔고 근 3년 동안 주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유다 마카비는 주전 165년에 다시 경배를 부활시키고 성전을 새롭게 봉헌하였다. 헤롯은 자신의 통치 제1년인 주전 37년에 두 명을 빼고 산헤드린의 모든 회원을 죽였으며 이것을 속죄하기 위해 성전을 재건하고 미화하기로 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자재를 모은 뒤 스룹바벨의 성전을 허물고 46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이렇게 완공된 성전에 주님이 들어가셨으므로 학2:9; 말3:1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헤롯의 성전은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빼어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하였다(막13:1; 눅21:5). 그러나 그 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여겨지던 성전은 우리 주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막13:2). 헤롯의 성전 선도 참조(57). 왕들의 시대에는 레위 사람들이 항상 성전을 지켰다(대상26:1-32; 대하23:19). 로마의 통치 때에는 성전과 붙은 안토니아의 성채 안에 로마 사람들의 수비대가 있었다(요18:12; 행4:1; 5:26; 21:31-40). 경건한 유대인들은 언제나 성전을 향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전을 사랑하였다(시84:1-12). 그런데 어떤 이들은 헛된 열심에 빠져 위선과 우상숭배로 성전을 자랑하였으며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을 향해 신성모독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마26:61; 27:40; 요2:19-20; 행6:13; 21:27-30). 한편 신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신자의 몸이며(고전3:16-17; 6:19; 고후6:16) 신약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는 결코 성전이 아니다. 교회가 의식화되어 천주교처럼 변하면서 목사가 제사장(사제)처럼 행세하고 예배당이 성전이 되는 구약 체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우리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이다. 니골라당 참조.    
2009-07-05 01:19:19 | 관리자
  하나님께 구분된 거룩한 장소. 성소는 종종 성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며(시73:17; 히9:1) 향 제단과 금 등잔대와 보여 주는 빵을 둔 성소(Holy place)를 가리키기도 하고(대하26:18; 히9:2) 어떤 때는 성전의 가장 거룩한 곳 즉 언약궤가 있고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가는 지성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성소는 광야에서 세운 성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였다(레4:6). 성막과 성전 참조. 땅의 성전 혹은 성소는 하늘의 것의 상징이며(시102:19; 히9:1, 24) 도피하는 사람이 성전을 피난처로 삼을 때에는 하나님이 성소라 불리기도 한다(사8:14; 겔11:16).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의 추격을 받는 죄인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그분이기 때문이다.    
2009-07-05 01:18:36 | 관리자
  고대에 도시나 성채의 성벽을 부수기 위해 사용된 장치로서 공성퇴라 불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100명 이상이 공성퇴의 탑 밑에서 일하고 활 쏘는 자들이 탑의 위에서 성 안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겔4:2; 21:22).      
2009-07-05 01:17:47 | 관리자
  이것은 보통 장막을 가리키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세운 특별 장막을 뜻한다. 이곳은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던 곳이었으며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지시 사항과 이것을 수행한 내용은 출25:1-40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보통 회중의 성막 혹은 증언의 성막이라 불렸다. 성막 선도 참조(56).   성막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는 각각 30, 10, 10큐빗이었고(출26:15-30; 36:20-30) 입구는 네 종류의 덮개로 덮인 채 동쪽에 있었다. 성막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동쪽의 삼분의 이는 성소 그리고 서쪽의 삼분의 일은 지성소로 쓰였는데 이 두 곳에는 창문이 없었으므로 성소에서 섬기려면 등잔불이 있어야 했다. 성막의 뜰에는 번제 헌물 제단과 물두멍이 있었고 제단은 뜰의 문과 성막의 문 사이에 있었으며(출40:6, 29) 물두멍은 번제 헌물 제단과 성막의 문 사이에 있었다(출38:8). 바로 이 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헌물과 기도를 드렸다.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는(히9:6) 향 제단과 진열하는 빵을 두는 상과 금 등잔대가 있었다. 향 제단은 성소의 중앙에 휘장 앞에 있었으며(출30:6-10; 40:26-27) 여기에서 아침저녁으로 향을 태웠다. 제사장의 오른편 즉 북쪽에는 보여 주는 빵이 있었고(출26:35; 40:22-23) 남쪽에는 금 등잔대가 있었다(출25:31-39). 대제사장만 1년에 한 차례 들어가는 지성소에는 그룹들과 긍휼의 자리로 덮인 언약궤가 있었다(히9:7).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난 뒤 둘째 해 첫째 달 첫째 날에 세워졌고(출40:17)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움직여야 했으므로 분해해서 쉽게 조립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성막의 이동에 따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옮겨 다녔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움직인 횟수만큼 성막도 레위 사람들에 의해 옮겨졌고(민4:1-49) 그들이 진을 친 곳에 다시 조립되어 세워졌다. 가나안 정복 때에 성막은 길갈에 있었으며(수4:19; 10:43) 정복이 끝난 후에 여러 해 동안 실로에 있었다(수18:1; 삼상1:3). 삼하6:17과 대상15:1은 다윗이 기럇여아림에 오래 머물다가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오려고 한 장소를 정하고 거기에 성막을 세웠다고 말한다(대상13:6, 14; 참조 삼하6:11-12). 한편 대상21:29는 모세의 성막이 그 당시에 기브온에 있었다고 말하므로 언약궤와 성막은 이미 오랫동안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솔로몬의 때에도 성막은 여전히 기브온에 있었으며(대하1:3, 13) 아마도 이것이 성막에 대한 마지막 언급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 안으로 궤와 함께 들어온 성막은(대하5:5) 오랫동안 시온에서 궤를 보관해 온 장막이었기 때문이다(대하1:4; 5:2).    
2009-07-05 01:16:35 | 관리자
  성령님이 신자 속에 들어와 거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이 같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 둘은 매우 다르다. 성령 침례에 대한 구절은 신약에서 11번 나온다(마3:11; 막1:8; 눅3:16; 요1:33; 행1:5; 11:16; 롬6:1-7; 고전12:13; 갈3:26-28; 엡4:5; 골2:12). 이 중 다섯 번은 성령 침례를 미래 시제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성령 침례가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과거 시제도 있는데(행11:16) 이것은 오순절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그 날 이루신 성령 침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머지 다섯 번은 서신서에 있으며 모두 성령 침례의 본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신약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I. 침례는 ‘담그다’는 뜻을 가지며 ‘하나의 사물을 다른 데로 옮겨놓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성령 침례는 이런 일이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 침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일어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를 성령님 안으로 푹 잠기게 하신다. 여기서도 침례라는 단어가 쓰이며 이는 곧 그를 성령님의 세계로 옮김을 의미한다. 둘째, 성령님께서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푹 잠기게 하신다. 이것은 곧 그를 그분의 교회라는 세계로 옮긴다는 말이다(요1:33; 고전12:13). II. 성경은 성령 침례가 성도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 일어나는 경험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성령 침례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거듭날 때 일어난다. 따라서 성령 침례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필수불가결의 관계에 있는데(갈3) 그것은 곧 성도가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침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에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III.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 침례를 받았다고 가르친다. 성령 침례가 구원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 침례를 받은 것이다. 성경도 성도들이 다 한 성령을 통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고전12:13).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다면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하기에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 따라서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신자는 있을 수 없다. IV. 성경에는 성령 침례를 추구하라는 명령이 없고 심지어 그 같은 것에 대한 암시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미 성령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 침례가 구원받는 순간 이루어지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복된 소유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굳이 이것을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성령님, 성령 충만 참조.    
2009-07-05 01:15:39 | 관리자
  신자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서 그리스도의 일을 실행하기 위해 애를 쓰며 육신을 죽이는 상태. 이것은 신약성경에 15번 등장한다(눅1:15, 41, 67; 4:1; 행2:4; 4:8, 31; 6:3, 5; 7:55; 9:17; 11:24; 13:9, 52; 엡5:18). 이 중에서 14구절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데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어떤 개인이나 모임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에베소서 말씀에서만 성령 충만이 명령으로 나와 있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이 말씀은 충만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의 통치하에 있다’ 혹은 ‘무엇에 의해 지배당하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진리는 술에 취하는 것(술에 지배당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비교한 데서 알 수 있다. 또 이 말씀은 성령 충만이 언제 일어나는지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충만하라.”는 단어는 현재 시제로서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다시 쓰자면 “계속 충만하라.”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믿는 이들이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제라고 해서 성령 충만이 한 번 이루어지면 영원히 지속되거나 혹은 살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유지되어야 하며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때는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은 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성령 충만하라.”는 명령은 모든 믿는 이에게 적용된다. 이 명령은 특정 소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모두에게 적용된다. 성령 충만의 명령은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님께 순종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있지만 주님께 불순종하여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롬6:13; 12:1) 성령의 권능 안에서 걸을 때(갈5:16)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성령 침례는 단 한 번 일어나지만 성령 충만은 여러 번 일어날 수 있다. 성령 침례는 거듭나는 순간에 일어나며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일어난다. 모든 신자는 항상 성령 침례를 받은 상태에 있지만 성령 충만은 믿는 자가 순종하는 때에 이루어진다. 성령 침례는 명령이 아니지만 성령 충만은 명령이다. 성령 침례는 믿는 자의 신분과 관련이 있고 성령 충만은 믿는 자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성령 침례는 사람을 그리스도안으로 옮기는 것이고 성령 충만은 사람의 행동을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성령님, 성령 침례, 침례 참조.    
2009-07-05 01:14:46 | 관리자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체.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과 본질에서, 능력에서, 존재 면에서 동등하며 아버지나 아들에게서 발출된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보내진 경우에 한해서 아버지에게서 나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제자들에게 보내어졌다(요14:26; 15:26). 이분은 아버지의 영이며(마10:20; 고전2:11) 또 그리스도의 영이다(갈4:6; 빌1:19).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향력이나 힘이 아니고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분은 스스로 행동을 하고 생각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인격체이시다. 이분이 인격체가 아니라면 기뻐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수 없으며 또 말씀하거나 위로하거나 중보하거나 자신의 선물(은사)들을 나누어 줄 수 없다. 물론 그리스말이나 영어에서 이분은 남성을 가리키는 he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님께서 신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다른 두 분과 함께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으로부터 증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조의 사역에서(창1:2; 시33:6; 104:30) 그분이 함께 하셨다. 성령님은 또한 침례를 주는 방식에서도 다른 두 인격체와 함께 찬송을 받으시며(마28:19) 사도 바울의 축복 기도에서도 다른 두 분과 함께 나타나고(고후13:14) 이름을 받으시고(고후3:17) 하나님의 특성들을 행하고 보여 주신다(롬8:14; 고전2:10; 6:19; 히9:14). 물론 그분이 하나님이므로 그분께 기도드릴 수도 있으며(계1:4-5) 그분께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행5:3-4; 엡4:30) 그분께 신성 모독을 범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마12:31). 성령 모독 죄 참조.성령님의 일은 신성을 띠고 있다. 그분은 옛날부터 성경 기록자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고 여러 사람들에게 기적의 선물(은사)들을 나누어 주었다. 교회 시대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람들의 마음에 적용시키며 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요16:8-9)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들을 보여 주며 조명을 주사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요3:5; 엡2:1). 성령님은 교회의 위로자이시며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증언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그들을 인도하며 성화시킨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반드시 성령의 증거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살아 있는 사과나무가 반드시 사과를 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13:5).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만을 드러내며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요15:26; 16:14-15; 고전12:3). 그러므로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 인물로 가장 매력적인 존재가 되며 그래서 그분을 알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려는 열망이 생긴다(요5:39-40).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성경 읽기와 탐구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갈5:22-23). 성령의 열매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라 할 수 있으므로 성령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보인다. 그러므로 역경과 시험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의 열매를 보아 성령 충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성령은 결코 우리를 제어하지 않으며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어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단히 자기 성찰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삶이 매우 필요하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도록 자신을 내어 놓으며 사람들을 섬기려 한다. 성령의 선물(은사)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선물은 섬기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벧전4:10; 고전12:7).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은 선물(은사) 중심이 아니라 섬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선물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성령님을 표현하면서 그분께서 외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강조할 때는 the Holy Ghost로, 내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강조할 때는 the Spirit으로 구분하여 표기하므로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도 the Holy Ghost는 성령님으로 the Spirit은 성령으로 구분하여 표기했다. 성령 침례, 성령 충만 참조. 성령 모독 죄(Blasphemy against the Holy Ghost) 이것은 보통 ‘성령 훼방 죄’로 알려져 있으며 은사주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성경적인 선물(은사)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성경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면 그들은 대개 ‘성령 훼방 죄’를 운운하며 진리를 보여 주는 성도들을 저주하려 하지만 실제로 성령 모독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마12:31-32; 막3:28; 눅12:10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이 베푸시는 기적들이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의 힘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 사람들에게 성령 모독죄가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죄는 땅에 계시던 예수님과 관련된 죄이며 현 시대 사람들은 이런 죄를 지을 수 없다. 현 시대에서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으며 누구든지 무슨 죄라도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모두 용서해 주신다. 신성모독 참조.    
2009-07-05 01:14:09 | 관리자
  원래 이 말은 성인 즉 거룩한 사람을 뜻하며 하늘이나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 친구를 뜻한다(신33:2). 이 말은 구약시대의 경건한 유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으나(시16:3; 34:9) 대개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말로 사도 바울에 의해 사용되었다(롬1:7; 8:27; 12:13; 15:25, 31; 16:2). 다시 말해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성도 즉 성인이라고 부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했고 결국 천주교는 스스로 성인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을 성인으로 만들어 신자들이 그들에게 기도하고 그들의 은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가르치는 가증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2009-07-05 01:13:20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