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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의 메리   1539년에 크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성경까지 나온 뒤에야 영국은 확실히 개신교 국가로 탈바꿈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죽은 후 개신교 계열의 에드워드 6세(병으로 요절)와 그 후의 9일천하 레이디 제인 그레이(지못미..;;)가 제대로 권력 승계를 못 하면서 메리 1세가 역사를 다시 뒤로 되돌려 놓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운의 9일천하 여왕인 제인 그레이는 삶이 정말 기구했다. 왕위에 앉을 마음이 없었고 사실은 “너 여왕 됐어”란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졸도를 할 정도였던 여인도 아니고 소녀였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등쌀에 떠밀려 정략 결혼을 하고, 조국의 개신교 노선을 이어 나갈 여왕 자리에까지 여차여차 올랐지만 백성들의 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   결국 골수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메리가 혈통이 더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메리 1세는 제인 당사자가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제인의 부모가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살려 두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인더러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는 카드를 제안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결국 20살도 못 된 고등학생 나이에 처형 당했다. 그땐 단두대 같은 것도 없었고, 사형 방식은 그냥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이었다..;;     제인 그레이는 라틴· 히브리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똑똑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외모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냥 귀족하고만 결혼해서 학자나 교사로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인데 저렇게 정치· 종교적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만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도 자기 신앙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크리스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시편 51편을 외웠으며, 집행을 앞두고 눈이 가려진 뒤엔 “어, 형틀이 어디 있지?” 하면서 당황하며 자신이 목을 내밀 곳을 손을 더듬어 찾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주변 사람들의 애처로움을 더욱 자아냈으며, 이것이 그림으로 남아 전해진다.   이런 사연을 거쳐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잘 알다시피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회를 포함해 개신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선왕이 구축해 놓은 영국 내의 종교 개혁 인프라를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래서인지 메리 1세는 초상화를 봐도 좀 표독스러운 모습의 못생긴 여자로 그려져 있고, 특히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는 네로에 필적하는 싸이코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그때 화형 당한 크리스천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여 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숫자만 보면 그래도 1000단위도 아니고 생각보다는 적은 규모인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공산당 숙청 수준은 아닌 듯. 하지만 메리 여왕이 사람만 죽인 게 아니라 성경까지 죄다 불태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세속 역사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종교 문제를 빼면 메리는 사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악한 군주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 분야에까지 막장이었으면 진작에 짤렸겠지;; 또한 메리 역시 여왕에 오르기까지 개인사나 가정사는 불운한 편이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지병으로 인해 자녀 한 명 못 낳고 중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이 메리 1세를 제임스 왕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둘은 이름이 같고 가톨릭 신자인 것까지도 일치하지만, 통치 영역부터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서로 다르다. 잉글랜드의 메리는 자식을 전혀 못 남긴 채 병으로 죽었지만, 스코틀랜드의 메리는 처형당했다.)   이렇게 영국에서 갑자기 개신교 박해가 시작되자, 영국에 있던 종교 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죄다 외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피신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 구축된 원어 자료를 집대성하여 더욱 좋은 성경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제네바 성경이다. 예정론과 개신교 교황이라는 오명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좋지 않은 평판을 갖고 있는 존 칼빈이 그래도 이때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을 잘 보호해 준 공로를 세웠다.   제네바 성경은 처음으로 66권 전서를 모두 원어에서 번역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장· 절 구분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무슨 스터디 성경처럼 온갖 난외주가 첨가되어 성경의 각 구절마다 편찬자들이 생각하는 해설과 강해가 성경 본문의 양보다도 많이 들어갔다.   4. 킹 제임스 성경 -- 종교 개혁 성경의 종결자   메리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되면서 영국은 다시 개신교 노선으로 돌아갔다. 이 시절에 영국 내부의 종교 대립은 가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우 이념 대립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반가톨릭 진영에서는 진짜 반공 교육 수준으로 교황을 험담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나는 교황이 싫어요” 급이었으며, 교황이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 바로 그놈이라고 대놓고 가르쳤다.   예전에 헨리 8세에 이어 왕위를 잠시 이었던 에드워드 6세 왕은 어릴 때부터 궁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초등학생 나이인 겨우 11살 때 “교황은 레알 마귀 자식이며, 나쁜 놈이요 적그리스도요 가증스러운 독재자”라고 썼을 정도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승복 어린이 수준이지 않은가? “교황을 죽입시다 교황은 나의 원수”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정치적으로도 가톨릭과 앙금이 생길 대로 생긴 게 사실이다. 또, 과거의 역대 교황들이 자신을 예수님 급으로 신성시하면서 “교황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같은 안하무인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을 보면, 어차피 그들은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긴 했다.   제네바 성경은 재야(?)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해 온 좋은 성경이긴 했으나 외국에서 자기네끼리 제작된 사역(私譯)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시절엔 국교회 내부에서 또 그레이트 성경의 개정판 격인 비숍 성경이라는 걸 만들어 썼다. 가톨릭-개신교뿐만이 아니라 같은 영국의 개신교 노선 내부에서도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 게 이 시기이다. 가톨릭으로부터의 박해가 없어진 뒤엔 영국 교회가 또 대립과 반목으로 인해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후, 후임인 제임스 1세 왕은 청교도와 성공회를 중재하는 차원에서, 이제 다시는 성경을 또 만들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성경을 만들기로 승인을 내려 준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 드디어 1611년에 나왔다. 장과 절 구분, 100% 원어 번역, 청교도와 성공회 모두 OK, 국내 인쇄 등 예전 성경들이 차츰차츰 확보한 좋은 속성을 모조리 물려받았다.   이 책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킹 제임스 이후 영국에서는 먼 훗날, 1881년에 부패한 웨스트코트· 호르트 본문에 기반한 RSV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새로운 성경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역본이 나올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대립 구도로 인해, KJV가 번역될 때는 성경 번역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이것 덕분에 KJV는 전무후무한 고품질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위기가 기회로 승화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종교 개혁을 거꾸러뜨릴 목적으로, 바티칸의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예수회라는 무지막지한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KJV에 앞서 듀에이 레임스라는 판타지 짝퉁 성경을 만든 바 있으며, 엘리자베스 다음으로 영국에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왕이 즉위하자 용병을 고용하여 화약 폭발로 제임스 1세 왕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모는 기적적으로 사전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세속 역사가들은 인류가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휴머니즘을 추구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본인의 시각에서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세상이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교황이 역사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고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는 본인 역시 세속 역사가의 시각과 100% 일치한다만, 그것이 기독교라고 싸잡아 분류되는 것에는 본인은 동의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 중 영국만이 종교사가 저렇게 특이한지, 왜 영국만 국가 교회가 존재하며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는지? 왜 영어 성경만 여러 계보가 존재해 왔는지? 더 나아가 하필 킹 제임스 성경이 세계에 퍼져 나간 최종 권위 성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KJV 신자라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도 역사를 잘은 모르지만 내 신앙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력은 공부해 두려 한다.   오늘날 인도에 불교가 없으며 예루살렘에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영국도 이제 성공회의 노선은 천주교 쪽으로 다시 거의 기울었고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잘 모른다. 발간 400주년을 맞이한 작년에 반짝 조명 정도나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야만인 바이킹들이나 뛰놀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이 전반적으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식민지 개척을 할 정도로 강대국이 된 것에 성경과 복음이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22:49:39 | 김용묵
오래 전에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 프로그램 가운데, “특수 공작원 소머즈” 라는 프로가 있었다. 사고로 잃게 된 오른 팔과 두 다리 그리고 한쪽 귀를 인공전자기관으로 대체하여 정상인과는 다른 초능력을 갖게 된 한 여성 특수공작원의 이야기였다. “소머즈”에 있어서 특히 인기 있었던 것은 초능력적인 전자 인공 귀였는데, 멀리서 들려 오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귀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과학은 아직 소머즈 같은 초능력은 아니지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사람의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하여 청력을 회복하여 줄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이런 식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해 간다면 실제로 공상과학 속에나 나오던 ‘소머즈의 귀’를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에 얼마만큼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귓속을 들여다보면 그 세밀한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귀에 부딪힌 소리는 먼저 외이도-우리가 귀지를 팔 때, 귀 후비개로 지나면서 건드리게 되는 부분으로 대략 2.5 cm 길이에 7 mm의 직경을 갖는다-라고 부르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그 통로의 끝에 연결된 마치 펼쳐진 우산 모양으로 생긴 얇은 고막을 진동 시킨다. 이때 만들어진 진동은 고막에 연결된 세 개의 작은 이소골을 차례로 통과 하면서 그 귀에 들어온 소리의 강도를 증폭시키는데, 이소골이 들어 있는 이 부분을 중이라고 하며, 대략 우리가 보통 커피에 넣어 먹는 각설탕만한 크기의 공간에 해당한다. 중이 속의 이소골은 그 구조와 배치가 소리를 증폭시키기에 매우 적절하게 놓여 있어 우리의 귀에 들어온 소리를 거의 잃어버림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이소골을 통과한 소리는 마지막으로 대략 완두콩만한 크기의 달팽이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달팽이관 속에는 약 눈물 한 방울에 해당하는 부피의 액체가 들어 있어, 고막에서부터 이소골을 통해 전해져온 소리의 진동은 이제 이 달팽이관 속 액체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이 액체 위에는 얇은 막이 하나 떠 있는데,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이 막이 같이 움직이면서 거기에 붙어 있는 미세한 머리카락 모양의 신경세포들이 이 막을 통해 전해지는 물결의 높낮이를 감지하게 되고, 그것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 방울의 적은 액체 속에서 생겨나는 물결의 파고를 가지고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소리의 신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사람의 귀는 보통 20에서 20,000 Hz 사이의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참고로 이야기 하면, 피아노의 소리는 27.5에서 4,186 Hz의 소리를 내며, TV를 켜고 소리를 가장 낮게 줄여 놓았을 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는 16,000 Hz에 해당 한다), 그 중에서도 약 2,500 Hz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외이도의 구조가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를 가장 잘 증폭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주파수 부근의 소리는 자그마치 우리의 고막이 불과 1억 분의 1cm 즉, 수소 원자의 두께에 해당하는 길이만큼만 움직임으로도 소리를 전달 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수소 원자의 직경에 해당하는 길이만큼의 고막의 미세한 움직임이 달팽이관 속의 눈물 한 방울만한 액체에 파고를 일으키고, 그 물결의 높낮이를 머리털 같은 신경세포가 감지하여 전기 신호를 일으키고 그것을 뇌에 전달하여 마침내 소리를 듣게 하는 과정을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를 통하지 않고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는가?   우리들은 아주 어릴 적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주변의 소리에 익숙해 와서 듣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래서 청각을 잃어버린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쉽지 않은데, 마치 TV의 벙어리 화면을 보는 답답한 기분은 아닐까? 사실 소리는 우리에게 많은 신비감을 주며, 또 상상을 자극한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성을 떠 올려 보라. 소리의 세계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지만, 우리를 또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삼중고의 유명한 헬렌켈러는 만약에 한 가지를 골라서 회복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겪고 있는 삼중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소리를 듣고 싶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과연 듣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새롭게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연 몇 번이나, 우리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청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었던가?   성경에서는 소리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요한복음은 처음에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 1:1).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으로 ‘이르심으로’ 천지를 지으시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의 길을 예비한 침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마 3:3). 예수님이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있으며 성령이 임하셨다 (마 3:16-17).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에도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으며 (행 2:2),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할 때에도 하늘에서는 음성이 있었다 (행 9:3-4). 이제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 질 때에도 하늘에는 큰 음성이 있어 축제의 소리가 하늘에 자자하게 될 것이다 (계 19:1-8). 이와 같이 성경은 매우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소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청각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소리가 있어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신다. 그것도 아주 고요한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왕상 19:12) 그 분의 음성에 우리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그야말로 우리의 고막을 수소 원자 두께 만큼, 눈꼽의 눈꼽만큼 움직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귀를 열어 그 분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싶은 것이다. 태초부터 계시어 우리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며, 너희는 내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 7:23)라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 귀를 진리로부터 돌이켜 꾸며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니 (딤후 4:4), 주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교회에 거듭하여 말씀 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3: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계 2-3장).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19:21:56 | 김정훈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 있는 그랜뷰침례교회에서 한국인 회중을 섬기고 있는 최요셉(종우) 목사입니다.한글 KJV와 한글 개역 성경을 비교하면서 읽다가 Keepbible에서 소개하지 않은 개역성경 오류를 추가로 발견하고 연락드립니다. 욥기 13:15은 완전 오역이고, 마태복음 21:28~30의 두 아들 비유에서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4도 잘못번역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바른 성경을 한국 땅에 소개하고 전파하는 일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어렵더라도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9 15:26:41 | 최종우
1. 유럽의 중세 암흑기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장구한 시간이다. 성경에는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한편, 한국사에서는 신라가 AD 900년대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존속하여, 도읍인 경주 역시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본인이 경주 출신이다만, 그 작은 도시가 천년고도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교회사가 시작되었으나 진리의 빛이 꺼졌던 중세 암흑기가 거의 1000년에 가까이 계속되었다고 여겨진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나중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되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유럽이 본격적으로 동양을 과학 기술로 압도하기 그 전에! 그 사이 기간에 대해서 나만 아무 정보가 없는 걸까? 그 사이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이라고는 진짜 십자군 전쟁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과 잔다르크는 1400년대 사건이니, 중세 중에서는 그나마 나중인 편이고. 그 기간 동안 어느 샌가 교황이 유럽을 모조리 장악했으며 성경은 금서가 되었고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횡행했다. 어떻게 해서 교황이 저런 국제적인 종교 괴물로 등극할 수 있었는지 그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교회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대한 지식이 보충되어야 할 것 같다. (아 하긴, 우리나라만 해도 이단 교주들이 얼마나 돈 잘 버는지를 생각해 보면, 교황이 종교 장사로 큰 대박을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은 했겠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유레카 학습 만화 세계 역사 시리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 제6권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나오는데, 제8권은 곧바로 메디치 가문이 어떻고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콜럼버스, 루터 따위가 나온다. 시간 차이가 장난이 아닌데 중간에 그야말로 엄청난 skip을 한 것이다. (제7권은 칭기즈 칸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 같은 아시아 편이고 유럽 얘기가 아님.) 더 정확히는 6권의 뒷부분에 ‘중세 유럽’이 특집 형태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짚고 넘어가 있었다. 세심하게 여러 에피소드를 편성하고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넣은 게 아니라, 글과 벽화 소개 위주로 백화사전식으로 “그냥 이런 게 있었다. 끗”이었던 것이다. 중세는 정말 긴 기간이었는데도 이때의 유럽 역사는 이렇다 할 위인이나 큰 변화가 그다지 없었고 사료도 부족하고... 세속 역사가들로부터도 가히 흑역사로 취급받는다는 걸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들의 주 배경이 되기도 하고.. 이 글에서는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시기에 있었던 일을 영국의 교회사 위주로 요약해 보겠다.중세에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성경을 읽고 침례를 행하던 크리스천들은 알비겐시스, 왈덴시스처럼 지역이나 모임 리더의 이름을 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숨어 지내던 소수의 무리들이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하기 전부터 이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고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럼 아무 기회도 없이 다 지옥 갔냐”라고 기독교에 트집을 잡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중세엔 서양도 복음에 대한 접근성이 동양하고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쪽에서는 어차피 교황이 성경을 다 빼앗아 불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교리로 지옥으로 보내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양엔 왈덴시스 같은 집단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종교 재판소도 없지 않았는가? -_-;;; 피장파장이다. 도미니크 구즈만(천주교에서 성 도미니크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라는 수도승이 그런 크리스천들과 교리 논쟁(오늘날로 치면, 종교갤에서의 키배)을 종종 벌였으나, 그들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가톨릭은 교리도 완전히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부터가 로마 제국 시절에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순교자들의 피를 부르며 시작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곱게 회유가 안 되는 반동분자들을 적당히 꼬투리 씌워 조지기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가 만들어 낸 게 종교 재판소의 원조이다. 서기 1223년,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드디어 정식 공표된 종교 재판은 마녀도 아니고, 이슬람 같은 완전히 다른 이교도도 아니라 전적으로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그들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나머지 목적은 2순위, 3순위일 뿐이다. 2.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성경 번역의 역사 그러다가 존 위클리프라는 영국 사람이 처음으로 14세기에 처음으로 영어 성경이라는 걸 만들었다. 열악한 당대 상황 때문에 비록 본문이 부패한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 기반이었지만, 영어 철자법도 아직 정립해 있지 않던 시절에 원어가 아닌 영어 성경이 나온 것만 해도 어디냐. 그 위상이 가히 영국의 개역성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구한말에 나온 한글 개역성경도 부패한 본문 기반 + 맞춤법 비정립 시기! 1881년 RSV 할 때의 그 개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한 덕분에 천주교로부터 극심한 미움을 받았으며, 나중에 죽고 나서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무덤에서 시신이 다시 꺼내어져 목이 잘렸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국어에서 욕설로 쓰이는 육시(戮屍)를 실제로 당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영국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오래 된 영국 왕으로 헨리 8세 아니면 기껏해야 7세 정도까지만 기억을 할 것이다. 이 헨리 8세는 원래는 당시 유럽의 여느 군주들이 그랬듯이 막강한 교황의 권세 앞에서 깨갱 하고 있었다. 친가톨릭이었고 딱히 소신 있는 종교 개혁자 성향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부인을 6명이나 둔 호색한이었던 그는 치정 문제로 인해, 더 정확히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라고 불리는 왕비와의 이혼을 교황의 승인 없이 추진하려다 보니 교황과 결별· 단절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바티칸은 이 소식에 당연히 발칵 뒤집혔으며, 헨리 8세에게 험담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이 사람을 루터만큼이나 몸서리치게 미워하며 나쁘게 말한다. 비록 헨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똘끼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국이 천주교의 손아귀에서 정치적으로 벗어날 징조가 보이던 15~16세기엔 천주교에는 악재, 기독교에는 호재가 연달아 터졌다. 에라스무스라는 학자가 바른 성경 계보인 공인 본문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당대 정세도 기여를 했다. 이때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공인 본문을 기반으로 신약 성경을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마침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로 책을 값싸게 많이 찍어 보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에 필적하는 정보화 혁명이었다. 그리고 영국에는 윌리엄 틴데일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등장하여 그 독일어 성경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영어 성경을 만들었다(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를 만들지는 못함). 바른 원문 계보에서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휴대하고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소 몰고 밭 가는 촌뜨기 아이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많이 알게 만들어 놓겠다”라는 도발적인 공언까지 했는데, 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발상이었고, 그런 열성 때문에 그는 결국은 나중에 순교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교수형과 화형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당하면서 죽었으며, 죽기 전에 “주여, 우리나라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크게 외쳤다. 아직 영국은 친가톨릭과 친개신교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고, 영국의 고위 관료나 성직자 중에는 친가톨릭 성향에 틴데일을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헨리 8세 왕이 틴데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틴데일의 기도는 그가 죽은 지 6개월 남짓한 시간 만에 응답되어, 헨리 8세는 틴데일의 친구인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국 성공회가 공식 사용할 영어 성경을 만들게 했다. 커버데일은 사역(私譯)이던 틴데일의 번역물을 십분 활용하여 1535년, 커버데일 성경을 만들었다. 왕이 승인하고(公譯) 성경 66권이 모두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존 로저스라는 사람이 매튜라는 가명을 써서 매튜 성경을 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라는 자국내에서 인쇄된 최초의 성경이라 한다. 틴데일과 커버데일 성경은 모두 영어 성경이지만,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인쇄된 후 영국으로 밀반입되었기 때문이라고. 국가가 떳떳하게 대놓고 성경을 찍을 정도로 개신교 세력이 충분히 크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 며칠 뒤에 올라올 下에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아마 킹제임스 흠정역의 부록에 실려 있는 성경 역사 글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이 내용이 비교적 친숙할 것입니다.- 갑자기 제가 왜 이런 글을 올리는지는 몇 달 정도 뒤면(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저의 세계사 지식의 무지로 인한 내용 실수 지적은 환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6: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7 10:50:11 | 김용묵
* 참고로 이 글은 필자가 전에 다른 매체를 통하여 소개한 적이 있는 글이지만, 이곳 KeepBible site를 방문하는 분들과도 같이 은혜를 공유하고자 여기에 소개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병 고침의 이적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전체 이적 가운데 3 분의 2에 해당되며,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까지 합치면 전체 이적의 80 퍼센트가 육신의 질병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그 분은 우리가 죄악 가운데에서 영혼이 죽어 갈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또한 육신이 고통을 받고 있는 사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런데, 그 분이 그렇게 많이 행하신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이적이 만약에 사실이 아니라면, 3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을 제한된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셨던 예수님에게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병을 낫겠다고 찾아오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병 고침이 어떤 눈속임이었거나 혹은 일시적 착각으로 병이 나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밝혀졌다면, 그 소문이 또한 쉽게 사람들 사이에 퍼졌을 것이고, 또한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틈만 나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트집을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이 같은 사실이 하나라도 발견이 되었다면, 결코 예수님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으로만 보더라도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불신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에 잘 출석하며 신앙이 있는 일부 교인들 중에는 여전히 성경에 나타난 여러 이적들을 하나의 허구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 안타깝다. 그들은 이적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 말은 결국 자연계에 초자연적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과학은 당연히 자연 현상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며, 초자연 현상은 설명할 수가 없다. 문제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와 같은 사실이 존재치 않느냐 하며는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병 고침의 이적들에 대해서 그 병 고침의 기전(mechanism)을 우리는 잘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에 당시에는 불가능 했지만 오직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 지식을 통해 알고 있는 어떤 병 고침 이후에 나타나는 특이한 호전 증세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미루어 병 고침의 역사가 사실이었음을 강력히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와 같은 사실은 성경 기자가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상상이나 허위로 거짓 증언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목격한 것을 기록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8장(22-26절)에 보면, 한 가지 매우 흥미 있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벳새다라는 한 지방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경이 눈을 뜨고 나서 무엇이 보이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매우 의미심장한 대답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대답인즉, “사람들이 나무처럼 생긴 채 걷는 것을 내가 보나이다.” (24절) 하였는데, 이 말은 쉽게 말하면, 나무와 사람이 같이 하나로 섞여 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과 나무가 각각 부분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나무가 사람처럼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도대체 왜 중요할까? 그것은 바로 이 구절이야말로 이 소경이 정말로 장님이었는데 이제는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거 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려서나 혹은 날 때부터 소경이 되었던 사람이 어른이 된 후에,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의학적인 방법에 의하여 시력을 회복하게 되면, 보통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상적인 시각을 완전히 회복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눈을 회복했다고 해서 전에는 보지 못하던 사람이 금방 사물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인데, 이것은 오늘날 현대 신경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소위 ‘본다는 것 (seeing)'의 신경생리학적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 들어온 새로운 정보가 뇌에 전달되었을 때, 이미 기억을 통하여 미리 저장되어 있던 기존의 정보와 새로운 정보와의 연관을 통하여 뇌에서 새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비로소 그 새로운 정보에 대한 해석을 내림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본다는 것 (seeing)'도 비록 눈이라는 감각 기관에 의존하여 정보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정보를 처리하여 그것이 ’무엇이다‘라는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뇌가 같이 발달되어 있지 않으면, 엄밀히 말해서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게 된다. 시각이 정상인 사람은 처음 눈을 뜬 갓난아기 시절부터 시각이 완전히 형성될 때까지의 일정 기간을 지나오는 동안 수 없이 많은 시각 정보를 뇌에 저장하면서 발달해 왔기 때문에 눈을 잠시 감았다 뜰 때 한 눈에 여러 가지 사물을 인지할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어릴 적 시각 발달에 매우 중요한 시기를 눈의 장애로 놓치게 된 경우에는, 그에 따른 뇌의 시각피질의 미발달로 말미암아 비록 나중에 눈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뇌에서 그 정보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가 없게 되어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된다. 미국의 신경학자 Oliver Sacks는 그의 저서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Virgil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세 살 때 소아마비와 뇌막염을 같이 앓으면서 망막에 손상을 갖게 되었는데, 또 여섯 살 때부터 두 눈에 두꺼운 백내장까지 생겨 단순히 밝고 어두운 정도만 어렴풋이 구별하는 정도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된 채로 약 45년을 소경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그에게 어느 날 백내장 수술로 다시 시력을 갖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고, 비록 망막이 손상은 되었지만 그래도 사물을 어느 정도 볼 수 있게 되는 정도로 시력이 회복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쁨은 잠깐이고 그는 ‘본다고 하는’ 새로운 고통을 갖게 되었는데, 눈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시각 정보들이 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도 많은 불편을 주게 되었다. 오랫동안 소경으로서 발달된 남다른 촉각과 청각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고 있던 그에게 시각이라는 새로운 정보는 그야말로 커다란 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 후에 폐렴을 앓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뇌에 산소 결핍 증세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게 원인이 되었었는지 그나마 남아 있던 망막의 시각세포들이 모두 손상되면서, 다시 한번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잠시나마 시력을 회복하였을 동안에 그에 대한 많은 관찰이 이루어졌는데, 그가 사물을 보는 것은 마치 조각 단편들을 어떻게 맞춰야 될지 모르는 사람과도 같이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예로 고양이를 본다면, 얼굴과 발과 몸, 그리고 꼬리가 모두 따로 따로 연결이 안 되고 흩어져 보인다든지, 혹은 나무를 보는데 그 잎사귀와 밑둥이 따로 떨어져 보인다고 말하는 식이다. 바로 이것이다.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님께서 벳새다의 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후 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 그 소경이 대답한 말과 동일한 현상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소경이었다가 실제로 눈을 떠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벳새다의 소경은 말한 것이다. 이것은 마가가 상상으로 지어낼 수 있는 성질의 말이 아니다. 여러분 같으면 앞에서 기술한 현대 신경과학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소경의 눈 뜬 후의 반응을 마가가 기록한 것처럼 기록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눈이 밝아져 사물을 전혀 어려움 없이 보았다고 기술하지 않았겠는가?              벳새다의 소경은 예수님께서 한 번 더 안수하심으로 완전히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는데(25절), 첫 번 안수 때에 눈을 회복하였다면, 이때에는 뇌까지도 회복하여 만물을 밝게 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중요한 사항은,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에 눈과 뇌를 고치실 수도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의 다른 기사에는 소경이 눈을 뜨는데 마가와 같은 임상기록은 나와 있지 않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였다고 기록된 요한복음 9장의 소경도 마가와 같은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왜 유독 마가복음에는 두 번에 걸쳐 치료를 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현대 과학이 이 기록을 발견하고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증거 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경이 정말로 눈을 떴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성경에 예언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바로 그 메시야임을 증거 한다는 것이다(사 35:5-6; 마 11:2-5). 할렐루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6 19:30:03 | 김정훈
안녕하세요.  저희가게에 여호와증인 분들이  한달에  두번 정도는 방문을 하세요. 그때마다 같이 일하시는분이(여호와증인분들과친함)  성서 공부를 하세요..파수대인가 그거하고 성경공부요  전  정동수 목사님 강해를  그분에게 가끔씩 보여드렸는데..그분이 여호와증인 성서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구???   천년왕국 이야기도그렇고 너무 똑같은 말씀들이 많다고  하시는데..정말그런건가요??  지옥이 없다는거 빼곤 다  똑같다구  지옥이란 말은 성경 말씀에  없다는게  좀 이해가 안가면서도  인간을  지긋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일 없다는 말엔  너무나 공감이 가더라구요.   저희집에서 함께 일하시는분도 말씀을 잘모르고 저두 잘모르니.....인생의 삶도 괴로움에 연속인데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실 분이 아니란 말만빼고 거의  똑같다는데..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26 17:35:23 | 정현정
현재 미국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반-기독교적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주 잘 보여 주는 최근에 나온 글이 있어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3위와 8위의 내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것이다. 1위와 2위의 내용은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법안을 생각할 때 더욱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 'Defend Christians'가 온라인 투표를 통해서 2011년 미국에서 일어난 반(反) 기독교 10대 사건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이 단체의 게이스(Gary Gass) 박사는 이번에 선정된 10대 사건에 대해 놀라면서, 이는 기독교인들이 나라의 정치적 발전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미국에서 2011년 일어난 반 기독교 10대 사건 목록이다.   10위: NBC 텔레비전 방송국이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에 나오는 ‘하나님 안에서(under God)’ 문구를 문제 삼다.   9위: 메사추세츠(Massachusetts) 주(州)에서 낙태를 반대하는(pro-life) 한 남성이 평화적으로 낙태 반대 홍보지를 나누어 주다 경찰에게 테러 용의자로 몰려 폭행을 당하다.   8위: 미네소타(Minnesota) 주(州)에서 직장 동료를 자신의 아내가 인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한 남성이 해고를 당하다.   7위: 플로리다(Florida) 주(州)의 한 기독교인 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전통적 결혼을 옹호하는 글로 인해 정직 당하다.   6위: 몬타나(Montana) 주(州)에서 낙태 반대자들이 낙태 시술소 앞에서 기도 모임을 갖다 폭탄 테러를 당하다(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음).   5위: 미국 자유인권협회(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제소로 미국 순회 법정이 샌 디에고(San Diego)에 있는 솔레다드(Soledad) 산(山) 전쟁 용사 묘지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하다.   4위: 한 동성연애 인권운동가의 고발로 낙태 반대 기독교 단체들의 온라인 모금 활동이 조사를 받다.   3위: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州)의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San Juan Capistrano)시(市) 당국이 공공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된다는 이유로 한 성경 공부 모임을 폐쇄시키다.   2위: 오바마(Obama) 대통령이 6월을 ‘동성연애자와 양성애자 그리고 성전환자(transgender)의 긍지의 달(pride month)’로 선포하고 백악관에서 동성연애자들이 참석한 기념식을 거행하다.   1위: 캘리포니아의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주지사(위 사진)가 동성연애자, 양성연애자 그리고 성전환자들을 ‘축하(celebrate)’하는 내용을 공공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하다.   Defend Christians는 이번 10대 사건들이 자신의 단체의 인터넷 회원들의 투표로 선정되었지만, 선정된 사건들과 자신의 단체의 사역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출처: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791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19 21:22:09 | 김정훈
천주교라고도 하고 예배당의 이름을 '성당'이라고 부르며, 외국어 표기로는 카톨릭/캐톨릭과 얼추 비슷한데 공식 표기는 가톨릭인 종교가 있다. 심지어 아마 한국 한정으로, '개신교'의 반대 개념으로서 이 종교를 '구교'라고 표기한 게 간혹 통용되기도 한다.많은 사람들은 이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각 기독교의 subset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신을 팔고 예수 파는데, 둘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른다.이 천주교에 대해서 본인은 도대체 무엇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막막하고 한숨만 나온다.최대한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내가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천주교는 그냥 그럴싸한 인본주의 종교일 뿐 왜 성경을 믿는 기독교라고 여겨질 수 없는지에 대해 오랜만에 좀 써 내려가도록 하겠다.1. 기독교는 구원관과 내세관에 관한 한 매우 극단적이다. 예수님 외에 그 어디에도 구원이 없으며, 인간의 그 어떤 선행으로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한번 죽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은 완전히 끝이지만, 사람의 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하늘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자기 의식을 갖고 산다고 가르친다.특히 기독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친다. 한번 회개하고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 뒤에 제아무리 잘못하더라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 내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니, 내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아멘. 이런 대인배적(?) 교리가 있는 다른 종교? 난 못 봤다. 그리고 반대로 제 2의 기회가 없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뜨거운 지옥을 가르치는 곳도 흔치 않다. 천주교는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되었을 정도로 천주교의 큰 교리 차이 중 하나이고, 지옥의 경우 천주교는 연옥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2. 기독교의 '주의 만찬'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이때 같이 먹는 빵과 포도즙은 당연히 그냥 상징일 뿐이다. 그런데 천주교는 이걸 이상하게 배배 틀어서 그 빵과 포도즙 자체가 예수님의 진짜 옥체와 보혈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사제가 라틴어로 주문을 외우면서 평범한 빵과 포도즙을 예수님 자체로 변신시킨다고. 화체설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이게 도대체 뭔 궤변인가 싶지만, 이거야말로 가히 중세에 무수히 많은 크리스천들의 피를 부른 치명적인 교리이다.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에도 잠깐 언급돼 있다. 천주교 하면 떠오르는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동그란 빵.. 이거 굉장히 사악한 배후에서 시작된 거라 한다.3. 또한 기독교는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유아 세례는 더욱 거부하는데... 이건 과거의 종교 개혁자들조차도 가장 청산을 못 한 분야에 속하는지라 어지간한 개신교 교파들도 천주교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강하게 말을 못 하겠다.성경 구절을 편 각종 증명들과 세례의 역사적 폐해 나열은 시간과 분량상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도록 하겠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구원의 증표는 침례이다. 스스로 구원 간증을 하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사람이 물에 잠겼다 나오는 침례만이 맞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거 뭐 침례를 주는 교회만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현실은 얼마나 시궁창인가?4. 마리아는 그냥 신실하고 현숙한 여인이고, 우리와 똑같은 죄인의 피를 물려받았다가 구원받은 평범한 크리스천이었을 뿐이다. 기독교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한다거나 경의를 표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마리아가 오늘날 자기 신분이 얼마나 날조되고 있는지를 안다면, 아마 놀라 기절초풍하고 까무러치다 못해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이휘소 박사가 핵 물리학자로 왜곡된 것하고는 스케일이 급이 다르다.마리아의 시점에서 천주교의 교리 오류에 대해 잘 써 놓은 전도지 <Why Is Mary Crying?> 클릭5.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이고 유대인을 주 대상으로 사역을 하다가(바울은 이방인들 대상) 세상을 떠난 사도이다. 그는 천주교나 교황 제도 같은 건 알지도 못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돌멩이라는 뜻일 뿐이며,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 결코 아니다.6. 기독교에 따르면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은 이미 하늘이나 지옥으로 가 버렸으니까 끝이다. 이는 제사나 추도 같은 망자에 대한 관념까지 바꿔 놓는다. 좋게 말하면 깔~끔하게 바꿔 놓는다.허나, 죽은 사람을 갖고 고인드립을 치면서 “헌금 많이 바치면, 뭘 열심히 하면 연옥에 가 있는 사람이 연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난 구원관과 사후 관념이 모 아니면 도로 깔끔한 지금의 내 신앙을 좋아한다.7. 그리고 끝으로, 천주교는 성경을 보는 마인드부터가 기독교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창조론 같은 쪽으로 들어가면 성경을 절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성경을 본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종 교회 전통, 교회법 등을 더 우선시한다. 아니, 중세 암흑기 때는 오히려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고, 라틴 벌게이트 같은 부패한 역본이나 자기네들끼리 돌려 보고 성경을 읽던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집단이 그들이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기독교를 자처하는 어지간한 개신교 교회들도 성경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고.난 차라리 아예 안 믿고 말지, 하나님 팔고 예수 팔고 성경을 판다면서 천주교처럼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했다. 천주교의 각종 성화, 성상, 특히 마리아 형상을 보면 이것들의 배후와 기원이 떠오르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며, 어떨 때는 오싹 소름까지 돋는다만..얘네들은 어째 세상 불신자들을 상대로는 굉장히 좋은 이미지로 appeal해 있다. 세례고 침례고 나발이고 교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일반 사람에게 천주교는 종교적인 비주얼이 아주 그럴싸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는 천주교는 아주 정의롭고 이성적이고 좋게 그려져 있는 반면(조선 명탐정처럼), 기독교 쪽은 그냥 뻘건 십자가에 개념 없는 광신자나 나약한 loser 내지 위선자 이미지이다(도가니, 파괴된 사나이, 밀양 등). 그래서 한숨뿐.천주교는 기독교와 이렇게도 다른데도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 재판, 갈릴레이 갈릴레오 재판도 다 기독교의 과오라고 싸잡아 부르고 있으며, 종교 개혁으로 인해 개신교가 생기기 전부터 명맥을 유지해 왔던 기독교 집단(천주교로부터 탄압 받고 존재가 부정되어 온)들에 대해서는 절대 무지하다. 알비겐시스, 왈덴시스 등.난 애시당초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이 기독교에 플러스가 된 사건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건 기독교를 무력으로 박멸하는 게 불가능하고 그래 봤자 국익에 보탬이 되지도 않으니, 자기 식으로 융합· 짬뽕된 짝퉁 종교를 기독교라고 로마 황제가 공인해 준 것일 뿐이다. 싸움의 양상이 이젠 더욱 교묘해졌다. 마치 이북 평양에 있는 국영 교회라든가, 일제 강점기의 문화 통치하고 완전히 똑같다. 저게 어떻게 기독교계의 승리란 말인가? 그 로마 교회는 성경의 로마서가 기록되던 시절의 로마 교회가 절대 아니다.천주교치고 친이스라엘· 친유대인 노선을 주장하거나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을 믿는 사람은 단언하건대 결코 없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말이 굉장히 길어지니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천주교치고 킹 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천주교의 오류를 가장 잘 까발리는 성경인데 좋아할 리가. 적장은 적장을 알아보는 법이다.천주교는 종교 개혁을 종교 분열이라고 부르고, 루터 역시 종교 분열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교 개혁 이전의 각종 듣보잡 기독교 집단들은 다 이단 사이비들이며 자기네가 기독교 정통이라고 여전히 잡아떼는 중. 위클리프, 틴데일 같은 사람을 오늘날까지도 엄청나게 싫어한다.옛날에 천주교의 성경 변개는 이 정도로 막장이었다.예를 들어,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 (눅 13:3,5)에서 '회개'(repent)를 고해(do penance)로 바꿔서 고해성사 교리를 지지하게 해 놨다거나,눅 1:28에서 천사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될 마리아에게 “너는 정말 복이 많기도 해라. 하나님으로부터 큰 호의를 입으니 참 좋겠다”(수동)라는 뉘앙스로 말한 걸 “넌 정말 은혜가 너무 너무 충만한 사람이구나”(능동)로 바꿔서 마리아를 마치 제 스스로 은혜가 가득해서 남에게 무슨 은총을 잔뜩 베풀 수도 있는 성인으로 신격화했다.이들의 마리아 '빠' 기질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의 씨, 즉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는 약속(창 3:15)을 “여자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바꾸기까지 했다.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황당한 조작이 성경을 두고 벌어져 온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Douay-Rheims라는 옛 천주교 성경의 본문을 직접 보기 바란다.비록 오늘날의 변개된 성경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비해 여전히 좀 불량 구절이 남아 있긴 하지만, 최소한 저런 짓을 하지는 않으며, 한국어 공동번역이나 영어 New American Bible 같은 오늘날의 천주교 성경들도 저건 고쳐졌다.이것도 그나마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진리의 빛이 퍼지면서 쟤들이 중세 암흑기 같은 깽판을 대놓고 벌이지는 못하게 되어 상황이 개선된 것이다.성경이 천주교 수뇌부의 전유물이어서 내가 구원으로 이르는 참된 길을 몰랐다면... 그래서 저런 변개된 성경에 속아서 평생 교회의 노예로 고생하다가 죽어서는 지옥 갔다면...? 이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내가 믿는 이 믿음을 피로 지키면서 전해 준 믿음의 선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간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서 열나게 고문 당하거나, 아예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신앙이라는 건 인생의 본질과 영원을 다루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의 핵심을 보질 않고 왜 다들 대외 이미지라든가, 겉보기로 거~룩하고 경건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만 보는지 모르겠다. 한낱 인간이 제 깜냥에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다고?여기 들어오는 분들 중에 천주교의 실체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색 결과를 통해 우연히 이 글을 접한 분, 적진 염탐(?)을 목적으로 여기 몰래 들어와서 이 글을 읽는 천주교인 중에는 기분이 언짢은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나도 이런 글은 몹시 조심해서 쓴다.그러나 그렇더라도 제발 내 글에 악이 받쳐서 해코지하고 어떻게든 지엽적인 허점 찾아내고 반박하려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길 바란다.아예 무교나 기독교 안티라면 말도 안 한다. 천주교라면.. 당신은 도대체 천주교의 무엇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과 같은 종교관을 갖고 있는지, 당신에게 예수님이나 성경은 어떤 존재인지를 곰곰이 좀 생각해 본 뒤, 이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사실, 이런 사람치고 자기가 소속된 천주교 교리를 제대로 알기라도 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겨우 인간적으로 고상하고 그럴싸한 종교 생활을 하는 게 목표라면 차라리 나처럼 철도교에 입문해라.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종교 레벨 자체가 아니다.아무쪼록 독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따르길 원한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7: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16 00:49:57 | 김용묵
유인원 행성의 출현?   왠 낯선 침팬지   얼마 전 거리를 누비는 시내버스에 왠 낯선 침팬지 얼굴이 커다랗게 하나 그려져 있는 영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사실 옛날에 TV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던 오래된 추억의 명화인데.. 정확히 1968년에 개봉 되었으며, <벤허>로 유명한 찰턴 헤스턴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의 제목이 바로 <혹성탈출>이었다. 최근 버스에 광고된 이 영화는 말하자면 그 뒤에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 <혹성탈출>의 앞 이야기인 셈이다.                       <저작권 법을 고려하여 허가 받지 않은 사진을 삭제하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는 필자의 기준을 일단 통과할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치매를 치료하려고 개발하던 약물이 공교롭게 실험용 침팬지의 지능을 상상 외로 높이게 되고, 그 한 마리의 침팬지가 주변의 다른 유인원들을 일깨우며 점차 무리를 확대하여 인간과 분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반면 침팬지의 지능을 높여 주었던 동일한 약물에 감염된 인간은 면역체계가 급격히 약해지고 결국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피를 토하고 죽는 일이 발생한다. 아마 이 영화의 다음 편이 만들어진다면 사람은 점차 멸종되어 가고 지능이 높아진 유인원들은 반대로 인간이 사라진 이 지구를 대신하여 지배하는 이야기로 전개될 것이 충분히 예측된다. 참고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유인원 행성의 출현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이다.   영화를 보면 어떻게 유인원들의 감정을 진짜 같이 섬세하게 표현해 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전에 <아바타>라는 영화에서 화제가 되었던 소위 요즘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이모션 캡쳐 (emotion capture)'라는 기술적 방법에 흥미가 당길 수도 있겠다. 유인원들이 한 명의 영리한 리더를 통해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가고, 급기야는 인간이 만든 울타리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들 속에서 혹자는 어떤 이유로든 억압 받는 이 사회의 소수를 생각하며 사회적인 측면의 문제의식을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인공 침팬지 ‘시저 (Caesar)’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빠르게 언어 능력을 획득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또 ‘그래.. 과거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느 운 좋은 유인원이 저렇게 인간으로 진화했을 거야..’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앗, 그렇다면 이건 좀 곤란한데..! 영화에 사용된 기술적인 내용이나 혹은 사회적 문제를 영화 속 유인원들에 은유적으로 비유하여 하나의 담론으로 풀어내는 것은 뭐 상관없지만, 과학적 사실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사람과 동물의 인지능력 차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인간의 혈통>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을 단지 ‘커다란 뇌를 갖고 있는 원숭이’ 정도로 여겼다. 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인지능력들의 기본적인 형태를 모든 동물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람은 그저 운 좋게 좀 더 큰 용량의 뇌를 가진 덕분에,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운 좋게? 도대체 사람과 동물의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에 이것들이 다윈이 상상한 대로 그저 ‘운 좋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진화론자들이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침팬지를 포함한 모든 동물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인지능력의 차이에는 도저히 우연히 생겼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상상 이상의 엄청난 간격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영화에서 주인공 침팬지 ‘시저’가 관객의 시선을 고정 시키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하는 아주 중요한 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인간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비록 ‘No'라는 한 단어 이었을지라도 영화를 보는 관객은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강렬한 효과를 끌어내는지.. 왜냐하면 바로 그 언어야 말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인지능력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엄청난 힘이 있는 능력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다른 동물은 물론이고 침팬지조차도 인간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그런 언어능력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 탁월한 언어능력은 가령 원하는 정보를 무한 반복하여 집어넣어 표현할 수 있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범주를 구별하여 인식할 수 있는 등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읽어 보라.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들어 보라. 지금까지 인간과 침팬지의 언어를 연구하여 얻어낸 중요한 결론이 있다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개념들을 습득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보통 3살을 넘어 가면서부터 배우게 되는 내용부터는 침팬지가 결코 따라 올 수가 없으며 그때부터 점점 인간과 침팬지의 언어 능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탁월한 인지능력 가운데 또 하나는 인간에게서만 관찰되는 복잡한 사회 인지능력이다. 가령 18개월 된 어린 아이도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인형이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 가서 위로해 주거나 고쳐 주는 등의 행동을 한다. 또한 6개월밖에 안 된 아이도 이미 마음속에 사물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심리적 표상을 갖고 여기에 긍정 혹은 부정의 값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마치 여러 개의 마주 댄 거울의 상이 겹쳐 보이듯이 속에 겹겹이 끼워진 여러 개의 심적 상태를 가질 수 있기도 하다. 가령, “A는 B의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것을 C가 믿고 있다고 D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실제 행동으로 관찰되는 상황을 가령 “선생님을 쳐다보는 A를 바라보는 B를 응시하는 C를 관찰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술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성에 기초한 인간의 심층적인 인지능력은 동물에게서는 그와 비슷한 것조차도 찾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동물에게는 소위 ‘지식’의 심적 표상이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관찰되는 형태의 ‘가르침’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동물에게서 간혹 관찰되는 ‘가르침’과 유사한 행동은 대부분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으며 ‘적응’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인간의 ‘가르침’은 제한이 없는 많은 목표를 향한 광범위한 영역에 적합한 가르침이다.     인간과 동물의 뇌, 그 구조적 차이점   이제 인간의 뇌는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 잠시 살펴보자. 신경과학자들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는 다윈이 말한 대로 다른 포유동물의 뇌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이에 힘입어 인간의 뇌를 보다 미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즉, 사람의 뇌는 침팬지를 포함한 다른 포유동물의 뇌와는 달리 훨씬 복잡한 신경 연결망으로 엮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특히 언어와 연관된 부위나, 감정이입과 죄책감 등 사회적 정서와 연관된 뇌 부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저작권 법을 고려하여 허가 받지 않은 사진을 삭제하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 한 과학자가 치매 치료제로 개발한 약을 침팬지에게 주사함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능을 획득하고 그 결과 침팬지가 인간처럼 도구를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논리 및 언어 능력을 얻게 되는 설정은 영화를 재미있게 끌어가기 위한 스토리 전개에는 필요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그런 약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앞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영화 속의 그 약은 필경 신경 세포의 재생 및 성장을 촉진 시키는 약일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 뇌 속의 신경 세포는 단순히 그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망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 기능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때 연결망은 어떤 선행된 프로그램을 따라 기초 회로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반복적인 학습 및 경험을 통하여 가지치기를 해나가도록 짜여 있다. 따라서 어떤 약이 비록 신경세포의 양이나 가지 수를 증가시키도록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복잡하고 정교한 인지능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위에 이것들을 안내하는 또 다른 절차와 메커니즘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결국 이것은 ‘정보’의 개념으로의 선행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간의 뇌에는 대략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는 자그마치 은하계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와 동일하며, 이들 천억 개의 뇌세포 중 같은 것은 또한 단 하나도 없다! 인간의 뇌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이 어떻게 지각, 기억, 감정, 사회성과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능력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지 그 규칙을 해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리고 있지만, 그 답의 극히 일부를 밝혀내는 것만도 아직은 너무도 버거운 상태이다. 뇌 속을 흐르는 신경암호들은 종종 디지털 컴퓨터의 기계암호에 비유되곤 한다. 한 계산에 의하면, 뇌의 약 10% 정도만 동시에 작동해도 뇌는 적어도 초당 약 1천조개의 정보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인간이 만든 가장 우수한 슈퍼컴퓨터보다 1,000배가 넘는 엄청난 능력이다.   침팬지가 우연히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망상   지난 2001년에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잘 알려진 것처럼 인간의 DNA는 총 30억 개 정도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를 DNA 염기배열만 액면 그대로 단순 비교하여 약 2%, 즉 6천만 개의 염기에 해당되는 정도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배열 가운데서도 염기치환이 일어난 것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만들어진 수치이며,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단백질을 만드는 DNA 염기 배열 이외에 아직 그 기능이 밝혀져 있지 않은 다른 DNA 영역까지 고려하게 된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염기서열의 차이점은 10% 이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이 보다 정밀히 연구할수록 소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어떤 가능한 유전적인 원인 또한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있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잠시 계산을 해보고 넘어가자. 진화론자인 할데인(Haldane)은,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한 개체군 내에서 어떤 돌연변이를 고착하는 데 드는 높은 유전적 비용을 고려해 볼 때, 인간의 유전자 내에 약 천 개의 유익한 돌연변이를 고착시키는 데는 대략 600만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수학적으로 계산한 바 있다. 그렇다면 1개의 유전자를 형성하는 데 평균 2천 개의 염기가 요구된다고 가정했을 때, 천 개의 유익한 돌연변이는 적어도 2백만 개의 염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200만 개의 염기마다 600만 년이 걸린다면, 어떤 공통조상으로부터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져 나와 그들의 DNA 중 2% 즉, 6천만 개의 염기 배열의 차이를 만드는 데는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적어도 1억 8천만년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화론자가 말하는 인류가 유인원으로부터 분리되어 진화되었다고 보는 200~400만 년의 시간과는 적게는 45배에서 많게는 90배가량의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나타나는 너무나도 현격한 인지능력과 또 이를 뒷받침할만한 뇌구조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유전적 차이가 요구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도 모르고 있다.   생물의 우연 발생적 존재의 기원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더 많은 유전자는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물은 단순히 유전자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것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순서로 발현되느냐를 지정하는 단계적 명령계통도, 즉 소프트웨어가 또한 필요하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 역시 소위 해부학적 ‘회로’의 구성이 절대적이다. 이를 지시하는 어떤 상위 계통의 명령체계가 필요하고, 이것들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과 가정이 요구된다. 여기서 잠시 인간이 만든 컴퓨터를 생각해 보자. 컴퓨터는 결국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이 이상 없이 잘 구동이 되어줄 때라야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한다. 컴퓨터를 사용해 보면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이것이 매우 정교한 지적 설계의 산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뇌라는 하드웨어적 구조의 존재도 우연히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낮은 확률에 기댄 막연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놀랍도록 정교한 소프트웨어적 인지기능의 발현과 그것들을 나타내주는 문법(syntax)의 작동은 더더욱 우연 발생적 기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슈퍼컴퓨터를 초월하는 인간의 뇌의 효과적인 정보처리 능력을 볼 때, 더구나 언어, 의식,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인간만의 놀라운 인지기능을 생각해 볼 때, 이 모든 것들이 발현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뇌의 존재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도 지적 설계론적 기원, 즉 지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음을 강하게 증거 한다. 침팬지가 인간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이다! 미안하다, ‘시저~’!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 질서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분명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게 창조 되었다. 그 차이점이 유전자 상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현재 사람이 갖고 있는 총 DNA 염기의 수 30억 중에 그것들이 우리의 세포 내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아는 것은 고작 2% 미만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8% 이상은 아직 베일에 덮여 있다. 즉, 인간 유전자 지도를 책으로 비유 한다면, 책의 글자를 읽을 줄은 알았지만, 읽고도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는 단지 2% 정도 밖에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유전학의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면 될 수록 그 새로운 결과들이 진화를 증거 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체의 설계 가능성을 더 뒷받침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증거들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야 비로소 사람들이 창조주의 살아 계심을 고백하게 될 것인가?   사실 바울이 말한 “그분의 보이지 아니 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는 말씀처럼 인간의 육체만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그 놀라운 창조주의 설계 솜씨를 발견하지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창조주를 증거 한다. 성경은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사람들이(창 1:27)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고 말한다(창 2:7). 더 나아가 “사람의 혼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고 목이 탄다 (시 42:1-2)”고 말한다. 물질로부터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분의 설계를 강력히 증거 한다.   영화 속에서 약물을 개발하는 과학자 ‘윌’의 여자 친구 ‘캐롤라인’이 몇 번인가 이런 말을 한다. “윌, 자연의 법칙을 거슬려선 않되.” 과학은 잘 다스리면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지만, 인간의 탐욕과 오만함이 결합되면 치명적인 재난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것이 SF 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도구로서의 과학조차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법칙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잊는다면 그것은 현대의 바벨탑일 뿐이다! 캐롤라인의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윌,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법칙을 거슬려선 안 돼!!”   - 김정훈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10 23:16:03 | 김정훈
* 사랑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형제입니다. Keepbible 사이트를 통하여는 처음 인사 드립니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외계 생명체를 찾고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며, 일반인들도 외계인의 존재에 대하여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들 생각하는 이유는 대개 우주가 너무도 크고 넓기 때문에 우주 한 구석 어딘가에는 어떤 형태라도 생명체가 있을 법 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당연히 진화론적 사고가 깔려 있다.    최근에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여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Science Times>에 이런 생각을 바꿔 줄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기에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57313     P.S. 여기에 실린 글이 창조과학 진영의 매체가 아닌 일반 과학언론 매체에서 나온 글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09 11:44:09 | 김정훈
  <머리에 쏙쏙~ 창조과학 만화교실>이 2011년도 28회 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생명의말씀사와 그림을 그려준 바오바브 님을 비롯,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흠정역으로 만들어진 책이 수상의 영광을 얻게 되어 더욱 감사합니다.    >>도서구매 할인 이벤트(1월 말까지)   말씀사 저자전 http://www.lifebook.co.kr/final/book/201112createani.asp 갓피플 저자전 http://mall.godpeople.com/?GO=kids_sm1112   26회는 <1318 창조과학 A to Z>으로 청소년부문 우수상, 27회는 <어린이를 위한 창조과학 이야기>로 어린4이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는데, 이번에 3년 연속으로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상은 그 해에 출간된 기독서적들 중 주요 서적들을 각 출판사가 출품하고 선정된 심사위원들이 가려내서 뽑는 것입니다. 상 자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계에서 바른 콘텐츠를 인정받은 것이므로 안심하고 읽으실 수 있는 도서임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월 중 <1318 창조과학 A to Z>의 2탄인 <1318 신앙질문 A to Z>가 출간됩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배운 내용들을 위주로 Atonement, Bible, Christ로 시작하여 Free-will, Hell, Islam, New-age, Wine, X-mas, Zionism까지, 바른 성경지식을 거의 총 망라한 좋은 내용들이 될 것입니다. 막바지 작업 중인데 여러분의 기도와 응원을 당부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7: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08 13:14:41 | 김재욱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선 엘리야 선지자 처럼 기도에 능력을 가지신거처럼 매번 말씀하시고  병고치는은사..제몸에  악한 영이 들어 있다면서  기도해주시고  금식 하신다며  저를  부담을  주십니다....개역성경으로  성경 공부를 사모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  제가  도중에  그만뒀어요...자꾸 절 위해  목사님이  사역하시기두  힘드신데   금식기도를  너무 힘들게  계속 하신다고  강조 하셔서...제느낌이지만.....전  하나님를  잘모르는  사람입니다..말씀에  갈급함을  좀  느낀달까~~~~  이곳에  다는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꼭  주일  예배를  참석해야하나요??  집에서  동영상 설교 들으며  예배보면  안되나요??? 또  목사님께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영적인 목사님께  저주 받을수도있나요?? 목사님께서  예언 해주셨는데..그걸 믿어야할지??   그리고  흠정역 성경요  진짜!! 이단 종교아니죠?? 넘  바보같은 질문인가... 잘  모르니  이해해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7: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07 17:20:29 | 정현정
http://www.ted.com/talks/lang/ko/alexander_tsiaras_conception_to_birth_visualized.html#.Twaa4oLXV9k.facebook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7: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07 10:24:03 | 허광무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브릿지 퀘이거학교에서... 레즈비언 긍지의 날에 벌어지는 교육... 한글 자막영상이 페이스북에서 봤는데 유튜브에는 없어서 그냥 올림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7: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06 09:44:22 | 허광무
안녕하세요? 작년에 가입해서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되네요.   저는 사회 초년생이라 한동안 업무를 배우느라 몇 개월간 정신이 없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감격이 많이 식어버리지는 않았나 짐짓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새해에는 아주 기본적인 성경 읽기부터 시작하여 말씀에서 우러나오는 감격과 간증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는 성경적인 인사일까요...?   조심스레 건네보겠습니다~ (^-^)
2012-01-02 17:42:51 | 김형찬
주님의 인도 하심과 보호 하심으로 일본에서 다 들  감사함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사이다마에서 사시는 박종길 형제님이 새롭게 오셔서 같이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형제님은 2시간 30분정도 걸려서 자전거로 오십니다.   차도 있지만 평일에는 일하느라 운동 할 시간이 없기에 10시 30분예배 드리러 아침 8시에 출발하여 후나보리까지 오십니다.   좋은 점은 사이다마에서 후나보리까지 하이킹코스가 생겨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배드리고 나서는 같이 식사하고 한 주간 동안의 간증과 함께 티 타임을 하고나서  이형제와 서형제 또 신주쿠에서 일요일날 만 오시는 예비 조형제와 함께 자전거로 박형제를 반 정도 거리까지 바래다 줍니다.   강해말씀 공부는 각자 숙제를 하고 검토하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본 동경에는 대 부분의 한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분들이 많습니다. 각각 신앙의 자유에 따라 교회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우리교회에 오라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바른 성경과 바른 말씀을 알고 또 들으므로 구원받고 각자 교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믿음 생활 할 수있도록 부족하지만 도움이 되기를 힘 쓰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날은 비가 오지 않으면 동경에서 제일 가까운 다카오산에 갑니다. 같이 등산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만끽하면서 감사찬송합니다. 자주 만나고 얼굴을 대하니 친 가족들보다도 더 가족같습니다.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뜻 깊은 400주년 기념 성경책으로 새해를 시작하여 더 없이 기쁨이 넘칩니다.   비록 적은 성도이지만 예배드릴때는 국립합창단에 맞춰 찬송을 부를때는 성도들이 많은것같습니다. 형제님들도 힘껏 찬양합니다.   이 모든것이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400주년 성경이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이  저희 모두들 감격과 기적입니다.     다카오산에서 등산 중 뒷 모습입니다. 지진때문에 나무가 많이 쓰러졌습니다.       박 형제 서 형제 이 형제 입니다.     중앙에 계신 분은 예비 조 형제입니다. 동경에 사는 한인들을 위해 여러가지로 힘 쓰시는 분 입니다.   끝으로 가루이자와 폭포사진으로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2011-12-21 00:57:07 | 채희녀
킹제임스흠정역을 사용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장로교 합동측 목사 김경완 목사입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분들이 형제 자매로 부르더군요.   93년도부터 신학을 시작할때 말씀보존학회에서 나온 한글킹제임스를 알게 되어 개역성경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목사님들에게 물어 봐도 오히려 개역성경을 인정을 하더군요. 저 역시 점점 KJV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있었는데 올해 4월 즈음에 아는 선교사님을 통해 킹제임스흠정역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즉시로 서점에 가서 성경책을 사서 개역성경과 비교하고 킵바이블 싸이트와 사랑침례교회 싸이트를 열심이 살펴가며 킹제임스흠정역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와서도 역시 다른 목사님들에게 이 성경을 소개 해주었는데도 그들 역시 거들떠도 안보더군요. 말만, 한 번 보겠다,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물었지 직접 사서 보거나 인터넷을 살펴보지도 않더군요. 한번은 개역성경에 문제점에 대하여 살며시 이야기 가운데 나와서 대화하였으나 역시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더군요.   우리에게 진정한 성경은 있는가? 라는 의문점을 가지려고 노력도 하지도 않고 오히려 킹제임스흠정역을 의심하더군요.   금년 4월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읽어보며 킵바이블싸이트를 거의 다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킹제임스흠정역은 무오류의 성경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금일 12월 18일 오전 예배 마치고 광고시간에 선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성도는 지역 연합회에서 모두 같이 의결한 것이냐? 질문하더니 좀 아이러니 하더군요. 잠시후에 집사람이 들어와서 하는 말이 당신 잘못생각한거야! 내가 볼때는 뭔가 잘못 된거야! 당신 기도하며 결정한거야? 그냥 생각으로 작정한거야? 라고 말입니다.   몇몇 안되는 성도들과 개척한지 2년 6개월이 되었지만 바른성경을 찾아 바로 살자고 하는데도 도대체 이해를 하지 못하더군요. 낙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와 같이 킹제임스흠정역을 선택하고 저처럼 이런 일을 겪으신 분들에게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일들이 여러가지 현상이 나타날 것인데, 먼저 선택하고 이 길을 걷고 있으신 분들께서 저점 도와주세요.   새해부터 아에 주보 뒷면에 킹제임스흠정역에 대하여 인쇄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킵바이블이나 사랑침례교회 분들과 전혀 만난적도 없고 대화한적도 없지만 여러 글을 통해 도움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고, 조언의 말씀들을 부탁합니다.   서평택생명나무교회 김경완 목사 올림
2011-12-18 13:21:40 | 김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