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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니시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65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 하였노라.하시니라.   요한복음을 읽다가... 오병이어 사건후에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만 남게 될때 배반할 자가 있다고 말씀셨는데,   그 배반할 자는 가롯유다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65절의 말씀에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이 말씀이 가롯유다를   생각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유다를 예수님을 팔자로 만든것, 예수님을 믿지 않게 한것이 아버지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인가요?   하나님 아버지가 유다에게는 예수님께로 올 수 없도록 만들은 것인가요?   질문이 이상하다면, 부드러운 충고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4: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5 07:46:24 | 나창주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배도 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빌리 그래엄 같은 사람들이 예전엔 엄청난 전도자로 알려줬지만   요즘에 보면 다른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종교통합을 비롯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악한 사귐을 통해서 배도를 할 수 있습니까??(부끄러운구원을 받나요??)   아니면 그는 처음부터 가라지 였는데 추수때 알게 되는것입니까????(가라지로 판명 영원한 불지옥입니까??)   그리고 성경에 보면 성령을 훼방하는것과 모욕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되있는데   이런엄청난 일에 해당하는일은 어떤것인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도 저버리는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두번밖는 모욕적인(?)일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그러면 구원이 취소되나요?   아니면 애초부터 거듭나지 못한사람인가요??   한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으며 지옥을 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세한 답변좀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1 20:07:47 | 윤재일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축도할 때 목사님들이 늘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후13:14).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개역성경에서는 끝부분을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성경도 가능하면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4판까지는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ㄹ지어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ㄹ지어다‘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해라할 자리에 쓰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 어미. 장엄한 어감을 띤다.    즉 'ㄹ지어다'는 명령형 종결 어미입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목사들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내리라고 명령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즉 "있을지어다"를 쓰면 마치 목사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그러나 원어와 영어는 단순한 기원문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May God be with you! May God bless you! 이것을 짧게 하면 God bless you!입니다. 이런 구문은 기원문입니다. May의 용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후13:14도 앞에 기원문의 May가 생략된 것으로 보면 단순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지 명령해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이런 것을 오용/남용해서 마치 자신들의 축복 기도를 통해 무언가가 될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 5판(400주년 기념판)에서는 이런 기원문을 모두 '하기를 원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것은 대개 바울의 서신서의 첫부분과 끝부분에서 발견됩니다(고후1:2 등 참조).   "있을지어다'로 안 하면 성경을 변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 변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편 비슷한 축복 문이라도 구약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부분에서는 "있을지어다"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을지어다(창14:19).   이런 경우는 높은 자 - 예수님의 예표인 멜기세덱 - 가 낮은 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고 blessed be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기를 원하노라"를 쓰면 오히려 문장을 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몇 부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말이 복잡하여 어미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순 현상이니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1-11-21 11:30:03 | 관리자
가나안 족속들의 경계는 시돔에서부터 네가 그랄에 이를 때에 만나는 가자까지며 또 네가 가면서 만나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까지 곧 라사까지였더라(창10:19_.   And the border of the Canaanites was from Sidon, as thou comest to Gerar, unto Gaza; as thou goest, unto Sodom, and Gomorrah, and Admah, and Zeboim, even unto Lasha.   이런 구절에는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부분 전체를 빼거나 thou만을 빼서 매끄럽게 처리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으며 따라서 영어 성경은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thou(너)는 누구일까요? 여기의 thou는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당시에 창세기를 읽는 히브리 독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너도 알다시피 지금도 거기로 가면 그게 나오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말이나 영어나 심지어 히브리말에서도 이런 표현은 조금 어색합니다. 갑자기 너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기에 저희는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읽으시면서 이런 부분이 나오면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샬롬.  
2011-11-21 11:04: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자유 게시판에 여러 종류의 글이 올라오는데 지금까지는 이런 글들을 분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유 게시판 글 가운데 성경공부 메뉴의 성경교리나 성경Q&A 등에 들어가야 할 글들은 거기로 옮기겠습니다. 분명한 카테고리에 넣어야 추후에 그런 카테고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김문수 형제님의 글은 많은 경우 성경교리나 성경Q&A 카테고리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글을 보실 때 자유 게시판보다는 최근 등록 자료를 보시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오늘도 이미 몇 개를 그렇게 분류해 놓았습니다. 글을 자유 게시판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자유 게시판에는 그 글이 없어지지만 최근 등록 자료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근 등록 자료를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사이트가 더 유익할 것으로 판단이 되어 이렇게 조치를 취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7 12:28:22 | 관리자
'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가 나와서 그와 관련된 전도지를 올려 봅니다. 전에 전도지로 만들었던 2종의 전도지 내용을 간략히 담은 것입니다. 이곳에는 성경지킴이 주소를 넣었습니다. 필요하시면 활용하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7 12:31: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7 11:27:40 | 김재욱
태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먹고 자라나다가 생각에 잠겼죠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것 보다 더 나은 생활이 있을거야"   다른 애벌레들을 만났으나   "그들도 삶에 대해선 나보다 더 아는게 없어" 라고 한숨을 쉬었죠   그러다 애벌레 기둥을 만났고,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채 오르기 시작했죠   그렇게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가나 노랑 애벌레를 만나서  기둥을 오르는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게 아님을 깨닫고 내려가죠.  다른 애벌레들과 싸우지 않아도 됨을 기뻐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끌어안는 일 조차 시들해졌죠. 서로를 털 한올까지도 속속들이 알게되었으니까요.   줄무늬애벌레는 다시 기둥에 오르기 시작했죠.   "내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랑애벌레는 한숨을 내쉬었죠. 그러다 다른 애벌레를 만나서 꼬치를 만들기 시작했죠.   줄무늬애벌레는 열심히 기둥을 올랐으나 애벌레 기둥 꼭대기에서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쉿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아래 있는 애벌레들이 듣겠어. 우리들은 그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곳에 와 있다구. 이곳이 바로 그 곳이지."라는 대화를 들었죠.     줄무늬 애벌레는 다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내려가면서 만나는 애벌레들에게 "나는 꼭대기까지 올라갔었어.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대부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알부는 "그건 여우의 신포도 같은 애기야. 장담하지만 그는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구." 어떤 애벌레는 고뇌에 찬 목소리로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그런말은 하지 말아. 우리도 별 도리가 없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수 있단 말야 줄무늬 애벌레는 꼭대기에 오르려는 본능을 얼마나 잘못 해석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선 기어 올라가는것이 아니라 날아야 하는것이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래는 내려와서 꼬치를 틀었고.....나비가 되었죠.   요약이 어설픕니다만, 이 책이 성경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스스로 새롭게 태어날수 있다는것을 암시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화를 통한 비유임으로 어느정도는 읽어볼만한 책인 듯 합니다.   예전에 XXX감리교회에 다닐 때 공부하라고 해서 읽었던 책중의 하나인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입니다.  오늘 아침 책상위에 있던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한번 적어봤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피를 마귀에게 대속물로 주고 우리를 구해왔다는 구속사적 설교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합디다. 성도들이 열심히 하면 예를 들면 ""홍길동전서"란 성경이 추가된다는 미친(?)소리까지도 하더군요. 저희가 떠날 것 같으니 성도들 앞에서 간증을 하라고 해서, 간증하라고 하는 주일날 다른 교회를 갔습니다. (지금 저희가정은 다시 교회를 옮기려 합니다. 감리교(예전)->장로교(현재)->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2012년 2월19일)로....)     오늘 아침 파스칼의 팡세 한구절을 음미해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     우리가 우리와 닮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안식하는것은 우스운 일이다.  우리처럼 비참하고 우리처럼 무력한 그들은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혼자 일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화로운 집을 짓겠는가. 그는 주저없이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진리의 추구보다 사람들의 존경을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낸다. 파스칼. 팡세.
2011-11-17 09:04:52 | 윤영원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솔로몬은 여기서 우리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남자들 가운데서는 1000명 가운데서 하나 정도가 나올 정도로 그런 사람은 희박하다고 이야기하며 여자들 가운데서는 심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여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의 교육과 문화 등이 남자 중심이었으므로 남자들 가운데서도 찾기 어려운데 심지어 여자들 가운데서는 어떠하겠느냐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1000명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아내와 첩의 수입니다(왕상11:3). 즉 그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을 상대해 봤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로 지혜로운 여인은 찾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것은 26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2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잔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비뚤어진 것들을 만들어 내어 이렇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알지만 좋은 것이라고 사람이 발명한 것들이 후에는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주석들은 제가 말씀드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꼭 100%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참조만 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6 16:47:21 | 관리자
새들백교회가 오는 12월 11일을 Good Neighbor Weekend로 선포하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2만명의 성도가 5시간씩의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4 17:04:40 | 박종철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For by grace are ya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이 구절의 그것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인지 믿음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서 질문해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4 17:11: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2 22:17:11 | 나창주
오늘부터 전북CBS에서   소망침례교회에서 후원하는 성경읽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이라서 미흡한 점도 있지만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말씀이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방송녹음 파일을 링크합니다. 인내로 2분만 들어보세요)   * 프라임 시간대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1:3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9 14:17:53 | 김재근
안녕하십니까?   다른버전에서는 :" 자기를 아는 지식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엡 1:17) 라고 되어있고 흠정역에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라고 되어있습니다.   두 버젼의 번역차이가 현저함을 느낍니다. 이해해보려고 여러가지로 노력했으나 저의 어학실력의 부재로 난관에 처해있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9: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7 18:17:49 | 김형렬
--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한국 철도의 역사와 체계를 어디에 비유할까? 혹은 그것을 무엇과 비교할까? (막 4:30 패러디)   1. 영동선 인클라인의 구배   철도는 쇠로 된 궤도 위를 쇠바퀴가 구른다는 특성상 마찰이 작다. 그래서 수송 효율이 우수하여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대형 차량이 연료를 적게 들이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그러나 이런 특성 때문에 철도는 자동차보다 가감속이 더디고, 경사를 오르는 데도 훨씬 더 취약하다.   자동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스펙 중엔 등판능력이라는 게 있다. 교통수단의 최대 등판능력은 x축으로 1만큼 진행하는 동안 y축인 위로 얼마만치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다. 기울기, 즉 탄젠트값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성능 제원을 보면 등판능력이 0.3~0.4대가 보통인데, 이것을 각도로 환산하면 18도에서 22도 사이가 된다.   그 정도 구배는 1단 기어가 아니면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평지에서 너무 가파른 언덕을 갑자기 오르면, 엔진의 힘이 받치기 전에 일단 차 바닥부터가 긁힐 것이다. 군용차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일부 사륜구동 차량만이 30도가 넘는 경사를 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차량은 정말 기름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는 그렇고, 그럼 철도 차량은 어떨까?1940년에 개통한 강원도 영동선의 통리-심포리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간이 있었다. 아래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사진임. 이 정도 경사의 탄젠트가 약 0.27 정도였다고 한다. 각도로 환산하면 15도 정도.이건 자동차로나 간신히 오르지, 철도 차량의 등판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울기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무리 없이 버티는 오르막의 기울기는 고작 0.035. 1km당 35m를 오르는 구배를 각도로 환산하면 겨우 2도밖에 되지 않는다!그래서 사실 철도 업계에서는 구배를 나타낼 때 탄젠트값에다 1000을 곱한 퍼밀, 즉 천분율 단위를 즐겨 쓴다. 다루는 값의 범위가 자동차 도로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철도를 요 모양으로 만든 덕분에, 당시 영동선은 결국 이 언덕 앞뒤로 쪼개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로 통과할 수 없는 철도 구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과 자원으로는 길을 이렇게밖에 낼 수 없었나 보다.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차를 모두 쪼개고, 기관차와 각 객차를 하나씩 케이블로 연결하여 별도의 크레인 시설로 끌어올려야 했다. 그 동안 승객은 내려서 1km 남짓한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느리고 불편하고...   이 방식을 인클라인이라고 부르는데, 인클라인은 1963년에 진작에 없어졌으며, 1km 거리를 7~8km의 완만한 경사로 빙빙 돌며 우회하는 경로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35퍼밀로 270 퍼밀치 높이를 오르려면 7.7배의 우회가 필요하다는 걸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영동선 인클라인의 평균 구배인 270퍼밀은 사해의 소금 농도와 비슷한 값이고,35퍼밀은 전세계 바닷물의 평균 소금 농도와 거의 같은 값이라는 것.세계 지리 상식과 철도 기록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 내는 데 성공했다.   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종류의 비둘기   과거에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여행비둘기(Passenger Pigeon)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개체수가 수십억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한때 새 가운데 개체수가 가장 많은 녀석으로, 아니 당대의 인구 수보다도 더 많은 날짐승으로 여겨졌다.   어느 탐험가의 1838년도 일기에 따르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채 머리 위를 통과하는 여행비둘기 떼가 다 지나가는 데 꼬박 사흘 밤낮이 걸렸으며, 그 동안 주변은 햇볕이 가려져서 낮에도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무는 하얀 새똥으로 온통 뒤덮였고, 잎사귀와 열매는 남아나질 못하고 흔적도 안 남고 사라지곤 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을 향해 아무 데나 엽총을 쏴도, 우수수 떨어지는 여행비둘기들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새조차도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씨가 말라 버렸다. 고기와 깃털의 품질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이 새는 절대 멸종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굳이 식용이 아니라도 포수 한 명이 취미로 여행비둘기를 몇백 마리씩 잡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19세기 말부터 미국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행비둘기를 보호하려 애썼으으나, 개체수가 줄어든 이 새는 설상가상으로 작은 집단에서는 번식도 잘 되지 않았다. 야생에서 이게 발견되고 잡혔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전해진 건 1906년.   그 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겨우 보존 중이던 마지막으로 여행비둘기도 번식에 실패한 채 수컷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1914년 9월 1일 오후 1시 무렵, 최후의 여행비둘기이던 암컷 마사(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영부인의 이름에서 땀)가 죽음으로써... 여행비둘기는 완전히 멸종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짐승의 종류(kind) 중 하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없어진 것이다.이제 이 새는 박제된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어째, 대약진 운동 시절 마오쩌둥의 “저 새는 해로운 새다” 해프닝이 떠오르는데,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므로 더 언급은 하지 않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링크를 따라가 보시라.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9684   한글이 이례적으로 창제자와 창제 목적· 시기가 알려져 있는 유일한 문자인 것만큼이나, 여행비둘기는 인류 역사상 멸종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가 딱 알려져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한때 대한민국의 최하위 열차 운행 등급이던 비둘기호는 강원도 정선선에 마지막 유일한 노선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운행을 중단하였고, 이로써 비둘기호라는 열차 자체가 없어졌다.   똑같이 비둘기라는 단어가 있다니, 게다가 그냥 비둘기도 아니고 여행비둘기!! 영어로는 아예 '승객'이라는 뜻이니까 교통수단과도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비둘기호가 사라진 날은 공교롭게도 2001년도 수능 시험 바로 전날(수능일은 2000년 11월 15일, 14일에 마지막 운행)이었다. 본인은 그때는 아직 철도 덕후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생 철덕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나라 최후의 협궤 열차이던 수인선 디젤 동차도 운행 등급은 응당 비둘기호였다. 1995년 12월 31일에 퇴역했다. 철도 덕후는 열차의 퇴역에 대해 특정 동물의 멸종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오늘날 비둘기호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비둘기가 사라진 지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음 최하위 등급이던 통일호도 2004년의 KTX의 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정화조도 없이 승객의 대소변이 선로로 바로 배출될(비산식) 정도의 구닥다리 열차를 21세기가 되기까지 굴리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면모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다. 특히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가 마지막 운행을 한 2004년 3월 31일엔 전국 각지에서 철도 덕후들이 모여서 마지막 통일호 열차를 시승하였고, 열차의 퇴역을 아쉬워했다.   Conclusions   - 이 글은 철도의 날 특집으로 올리기엔, 내년 철도의 날까지 기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지금 올립니다. - 성경도 이런 식으로 광산에서 금을 캐듯 fact를 발견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따지고 예표와 패턴을 발견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크리스천들 중에 철도를 사랑하는 분도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5 15:51:42 | 김용묵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서 올해의 책과 올해의 저자, 올해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투표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킹제임스 흠정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수고로운 일이 아니니 가능하신 분들은 참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많이 읽힌 좋은 책들과 저자 분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올해의 저자 부문에는 반가운 이름도 보이네요^^ 올해 여러분의 책장을 빛낸 한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http://www.lifebook.co.kr/final/book/2011book4.asp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04 18:26:35 | 유준호
한글로 된 책 중에 어거스틴신학, 칼빈주의, 개혁신학에 대한 책을 소개 받고 싶어서   부탁드려 봅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칼빈신학과 개혁신학에 대하여서   쓰여진 책이 있다면 조언 부탁 드려봅니다.
2011-11-01 09:23:48 | 나창주
    이번 주 목사님의 설교(11.10.23, 생각하는 교회)를 듣고 혹시 성화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올까 찾아봤습니다. 직접적으로 그 단어가 나오지는 않더군요. 이 개념이 왜 나에게 중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원이 우선일까요, 성화가 우선일까요. 물론 구원이 우선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구원과 성화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으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들도 구원과 성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세상의 모든 종교라 불리는 것들과 대부분의 이단들 속에는 이런 개념이 아예 뒤죽박죽 혼재해 있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A와 B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게 거기서 거긴데 왜 말장난을 하느냐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믿는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다음에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지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 :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화의 길을 걷는다. 구원의 길은 하나이며, 오직 예수님 뿐이다.B :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성화의 길을 걷는다. 그 정상은 하나지만,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   이 정도까지 얘기해주면 사람들도 그 차이를 확실히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등을 돌립니다. 이때 당신은 죄인이라는 얘기까지 해주면 더욱 분위기가 훈훈해지지요.   세상에 그런 말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기초적 진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며 진심으로 죄들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다 이루어놓으신 공로의 선물을 그저 공짜로 내가 스스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서론이 길어졌네요, 제가 생각해 본 것은 이다음부터인데요,, 믿고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히 구별된 다른 종류의 사람입니다.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비해주신 사람들이며,다른 하나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요. 그렇다면 성화는 어떨까요. 이는 인격함양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통한 과정 중에 평소 생각과 마음가짐이 언행을 통하여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알고 지내다 보면 다른 주변 사람들의 눈으로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성화의 과정은 구원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고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새 사람과 육체 안의 옛사람의 본성과의 싸움이고, 평생을 걸어야 하는 머나먼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높이에서 보시기에 성화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이거야말로 정말 거기서 거기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며, 한낱 인간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해 보았자 그 역시 더러운 죄인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높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의 의로움도 하나님의 눈높이에서는 모두 형편없는 누더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성화를 위한 험한 길을 걸어야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 일주일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개개인 하나하나의 인격과 평판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인격과 평판이 되고, 결국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겉모습을 보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절대 옳다 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사람들의 눈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교회시대의 막바지인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요.   마셜 맥루언이라는 사람이 쓴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 첫 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이 너무 어려워 첫 챕터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이 세상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만큼 읽고 이해하기 쉬운 책도 없습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의 성격이 메시지의 내용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미디어(매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미디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먼저 작용한다는 말입니다.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가사라 하더라도 록 음악을 예배에서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코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지요.)   기록된 구원의 진리는 분명한 사실이며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으시며 천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지도 않으십니다.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없으신 게 아니라 단지 현재 교회시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이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보존하셔서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달하도록 맡기신 것입니다.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에 믿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게 선택받은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화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골키퍼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이 성화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 돌아오는 대부분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성화를 게을리하면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 또는 더 못한 모습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몫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제 말은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실히 말씀만 전달하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그럼에도 성화가 중요한 건 말하는 이도 사람이요, 듣는 이도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의 귀를 닫아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과격한 표현 죄송합니다...)     끝으로 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란 사람의 특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교만함과 허영심, 음욕입니다.이것들은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고 제 혼이 거듭난 이후에 새 본성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르고 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몸속에 그대로 남아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려 하여 저를 깜짝 놀라게하는 옛 본성입니다.   교만함은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 - 사탄의 대표적인 본성입니다.허영심은 내 본질보다 더 나를 포장하고 부풀려서 꾸미는 마음 - 허세.음욕이야 뭐...가끔 제 눈을 뽑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평생 싸워야 할 저 자신의 모습이자 저의 적들입니다.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제가 이 가증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갈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9 11:00:33 | 유준호
며칠 전에 제가 철도· 항공 과학 상식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은 저의 취미 내지 부업에 대한 글이었습니다.이번에는 오랜만에 저의 생업 내지 본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할 때, 한국에서는 두벌식이든 세벌식이든 일단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한글 자모를 배열한 전용 글자판이 쓰입니다. 제가 개발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라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세벌식 글자판을 배려한 특수 기능이나 편의 기능이 굉장히 많으며, 입력기의 전반적인 구조가 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이나 한글 글자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한글을 입력할 때 선호되는 입력 방식은 바로 로마자 발음 방식입니다. '한'이라는 글자를 예로 든다면 영문 글자판의 H, A, N을 순서대로 입력해서 입력하는 것이 되겠죠.   비록 오래 빠르게 입력하기에는 그리 능률적이지 못하고 불편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초기 진입 장벽이 없고 친숙하다는 게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글을 제외한 일본어나 중국어는 다 로마자 발음으로 입력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쪽 언어는 문자 입력기가 훨~씬 더 복잡하지요.   로마자 입력 방식은 아래아한글 워드 프로세서는 초창기 버전부터 지금까지 잘 제공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맥 OS도 전통적으로 기본 제공하고 있습니다.그러나 PC 시장의 90%를 넘게 장악하고 있다는 Windows 운영체제는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기본 제공한 적이 없습니다.이런 이유로 인해, 국내에서는 제 프로그램이 세벌식 사용자들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을 지원한다는 점 때문에 차츰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이트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제 프로그램으로 로마자 입력 방식을 설정하는 방식을 소개한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의 운영자는 네이버 재팬에서 근무하는 어느 일본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어권에서도 어느 '네이버 지식인' 같은 Q&A 사이트에서 “Windows용으로 아래아한글 같은 한글 로마자 입력을 지원하는 입력기가 없나요?”라는 질문에 제 프로그램이 소개된 것을 발견했습니다.외국에서는 로마자 입력 방식의 수요가 이 정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답변을 작성한 사람은 전형적인 금발 백인인 청년이던데, 글을 읽어 보면 제 프로그램의 본질을 잘 알고서 상당히 잘 소개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tremely customizable Korean IME that has romanization input as an option.”한국에서밖에 안 쓰이는 이렇게 마이너한 제 프로그램을 알 정도면, 저 사람은 다른 분야에는 얼마나 박학다식할지 모르겠습니다.저 답변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고맙다고 추가로 리플을 단 일본인(이름으로부터 국적을 유추할 수 있는) 역시 프로그래머입니다.   제 프로그램은 한국어가 아닌 운영체제에서 설치하면 영문 GUI는 제공합니다(대화상자나 에러 메시지). 그러나 대외적으로 영어로 딱히 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으며, 무엇보다도 방대한 양의 기능 설명서 겸 도움말을 저 혼자 영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로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계층을 위주로 외국인 사용자가 차츰 생기고 있는 것은 저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안으로 저의 개인 홈페이지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같은 주요 컨텐츠는 영문 페이지를 추가하고, 가능하면 일본어 페이지도 만들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외에서 제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일본이니까.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컴퓨터로 한글을 처리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는 기술은 그야말로 모조리 집어넣은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다른 예로 옛한글 표현이 있습니다. 과거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 옛한글을 표현하는 방식도 몇몇 방식이 오늘날 내부적으로 난립하고 있는 게 있는데, 제 프로그램은 그것을 모두 지원하고 텍스트를 상호 변환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세벌식이든 두벌식이든, 심지어 휴대전화 입력 방식이든, 옛한글이든 현대 한글이든 어쨌든 컴퓨터에서 한글을 입력하고 입력과 관련된 자동화 기능을 구현하려면, 제 프로그램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게 목표이며, 어느 정도 그 목표는 달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런 스케일로까지 한글 입력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이 프로그램은 저의 고등학교 말기이던 2000년에 처음 개발되어 11년이 지난 지금은 버전 6.0을 넘어섰고, 내년 초를 목표로 6.5 버전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역시 2000년에 첫 발간된 킹제임스 흠정역과 나이가 비슷하다고 예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을 겁니다. 프로그램에 들어간 아이디어의 일부는 가까운 미래에 저의 석사 학위 논문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박사 가서는 이번엔 입력기 말고 한글과 관련된 다른 새로운 분야를 연구할 생각.)   저는 어지간한 다른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것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5無가 있습니다.   1. 수능(대학 입학과 관련된 시험)을 친 적이 없음2. 군대 자대 생활을 한 적이 없음3. 과외를 뛴 적이 없음4. 불신자의 사고방식으로 살아 본 적이 없음 (구원· 복음에 관해서)5. 그리고, 연애 경험도 지금까지 전혀 없음   저런 걸 안 해서 확보된 엄청난 양의 개인 자유시간들이 대부분 프로그램 개발 아니면 글쓰기에 투입되었다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90% 이상의 사용자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쓰지 않을 기능들을 더욱 가다듬고, 지극히 극단적인 환경에서나 발생하는 미세한 버그를 잡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 때문에 제 홈페이지를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킹 제임스 성경에까지 눈을 뜬 분도 꽤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예비하셔서, 과거에 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글을 쓰던 시절에도 시험 들지 않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_=;; 물론 그런 분들이 지금은 저의 철도 글들에도 엄청 노출되고 있으니, 그 방면으로도 영적 출생을 하는 분이 나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저로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프로그램의 유지 보수를 계속하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고, 특히 수익 기반이 생겨서 GUI의 외국어 번역이라든가 각종 디자인 작업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한글 타자에 익숙하지 못한데 한글을 입력할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의 본디 주제인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써 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이미 한국인이라면 세벌식 글자판에 관심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8 00:55:58 | 김용묵
--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조금 용납하라. 내가 철도를 대신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을 그대에게 보이겠노라. (고후 11:1, 욥 36:2)   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그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을 것이고 본인의 인생과 우리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야 인간이 만든 다른 종교와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진리이니까 차치하고,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관점에서 나의 종교는 철도이다. 그것도 은사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종교이다.나의 종교는 죄, 심판, 지옥 같은 부정적인 이념을 논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교통수단이 철도밖에 없다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으며, 반대로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한다. 이 얼마나 건전하고 좋은 종교인가?   잘못된 은사주의 집회에 가서 '날랄랄따따따' 방언을 하러 애쓰고 사기극인 병고침 받느라 노심초사하지 말라.진짜 은사주의가 뭔지 몰라서 저런 데에 빠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영어와 일본어 열차 안내방송 방언이 터진다.철도 성령을 받으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기고,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보는 눈이 바뀐다. 전철 노선도와 간선 철도, 그리고 우리나라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 노선까지 저절로 달달 외우게 된다.우리 애가 철도에 미치더니 사회와 과학, 그리고 예체능 중엔 음악 점수가 급상승했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저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정말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철도 성령을 받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풍미한 철도 차량과 노선, 역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과 애증을 담고 표현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난 이따금씩 식사 전 기도는 빼먹어도, 열차 타기 전에는 “이 땅에 이런 철도와 새마을호 같은 열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 드리는 게 습관이 됐다.이 정도면, 킹 제임스 성경이 세상을 바꿔 놓은 책이라면,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음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는 고차원적인 반어법과 역설이 섞여 있으니 알아서 분별해서 받아들이시고..;;어쨌든 이 철도 덕분에 본인은 철도 말고 주변의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도 집요하게 늘었다.'철도'와 비교했을 때 기계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엔진 소리와 승차감에 이르기까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중장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와 비교되곤 하는 비행기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본인은,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바퀴에 작용하는 원심력과 관성 등으로 손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느낌으로 완전히 이해도 한다.쇠로 만들어진 집채 만한 선박이 물에 뜰 수 있는 이유 역시 부력으로 설명 가능하며 본인은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건 어디서나 예상과 측정과 재연이 가능한 과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7) 같은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에 뜨는지는... 머리로 공식은 알고 있으나, 그 자연 현상을 100% 직관적으로 이해는 못 하겠다. 어렵다. 하긴, 이건 18~19세기까지만 해도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참으로 인류의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한 장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부력(buoyancy)을 설명하는 게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면, 양력(lift)을 설명하는 건 베르누이의 원리이다.   호스에서 시간당 같은 양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호스 끝부분을 눌러 좁히면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나오는 것, 빠르게 통과하는 열차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곁의 사람까지 열차 쪽으로 빨려 들어가서 인명 사고가 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이다.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켜 바퀴를 굴리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터보차저(turbocharger)라든가 ABS 브레이크는 원래는 이런 항공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군사 시설 중에서도 비행장만은 그 특성상 지하화해서 덮을 수 없고, 규모도 워낙 크다 보니, 위성 사진으로 노출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1.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그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2.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비행선은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 독일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3.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양력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40배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4. 끝으로, 새들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일러 주리라.” (욥 12:7b)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 점진적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연구하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응당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만든 날개와 하나님이 만든 날개의 차이이다.   ..   증기 기관은 아직 효율이 낮고 성능에 비해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자동차나 배는 굴려도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었다.터보 프롭이든 터보 팬이든 램 제트든, 비행기의 엔진은 내연 기관의 원리가 확립되면서 발명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쓰는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중에서 등유에 가까운 정도의 연료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라는 가벼운 유체의 흐름을 교란하는 게 목적이니 터빈에 의한 빠른 회전력이 필요할 뿐, 자동차 엔진처럼 큰 무게 부하가 직접적으로 걸리는 건 없으므로 특별히 저속 회전에서 토크가 큰 출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수단들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유· 중유급의 연료가 쓰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라이트(Wright) 형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9   그리고 해로(seaway)라는 것을 발견한 매튜 머리도 시 8:8에서 연구의 영감을 얻은 크리스천이었다.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8오늘날은 해로도 모자라서 비행기의 순항 고도에도 기류라는 게 있어서 이를 잘 타면 연료를 아끼고 효율적인 비행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것처럼, 철도를 개척한 선구자 중에 혹시 크리스천 과학자· 엔지니어가 있진 않았는지(리처드 트레비식, 제임스 와트?) 난 정말 궁금하다.그리고 혹시 성경에서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성전· 성막이나 천년왕국 때의 관습에 대한 묘사에서 힌트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우측통행이나, 영국이 대영제국 시절에 영어와 표준궤 철도와 더불어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좌측통행이다. 여객기는 승객 탑승구가 진행 방향 기준 왼쪽에 달려 있으며, 전세계의 공항들도 그 기준으로 건설되어 있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사진을 아무거나 찾아보기 바란다. 이는 과거에 선박의 관행을 물려받은 것이다.   승객이 왼쪽으로 타니 화물은 오른쪽으로 싣고, 비행기의 시동을 걸 때도 오른쪽 엔진부터 켜는 게 항공업계의 관행이다. 이는 과거에 프로펠러기 시절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언제부턴가 생긴 불문율이나, 오늘날 같은 제트기 시대엔 큰 의미는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0: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5 14:58:31 | 김용묵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이 생명의말씀사 온라인 판매에서 베스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월별 집계 결과 9월은 1위를 포함해 8종이나 10위 안에 들었고, 지난 주 집계상으로도 5종이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온라인 상에서의 베스트는 생각보다 그 양은 많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홍보와 소개를 통해 흠정역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념판 출간과 홍보 과정에서 흠정역에 대한 많은 오해가 풀렸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흠정역을 접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1:1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24 09:31:25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