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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칼빈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혁신학 혹은 개혁주의 청교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칼빈주의가 널리 파급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인 교리입니다. 저는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마틴 로이드존스, 국내의 많은 장로교 목사님들이 좋은 분들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종하는 칼빈주의는 성경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보면 칼빈주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창시자 어거스틴에서 출발한 이교도들의 믿음 체계입니다. 어거스틴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교회가 다스리는 지상 왕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만들어 중세 천주교 암흑 시대를 열어 준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어거스틴의 토대 위에 그의 신정정치 교리를 수립하였습니다.   다음의 PDF 파일은 클라우드가 칼빈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쓴 기사입니다. 5-6쪽에 보면 전 세계적인 칼빈주의 확산의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1. 근본주의 교회들 안에서 거의 회개 없이 구원을 가르치는 추세로 인한 반작용 2. 칼빈주의의 인기 있는 목사들에 의한 파급 3. 칼빈주의의 이단적 요소에 대한 무지 4. 말세에 프로테스탄트들이 자기들의 모교회인 천주교회로 회귀하려는 배도 현상 등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결코 비성경적인 칼빈주의의 덫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저는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구구절절 옳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과 열정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글도 많이 읽고 좋아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청교도 신학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15-17 세기에 이 땅에 신정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과 칼빈주의는 맞지 않습니다.   한국 땅에도 청교도 개혁신학이라는 기치 아래 칼빈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우려가 되어 간단하게 글을 썼습니다.   샬롬   (*) ReformedDangers라는 PDF 파일은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 에서 다운받은 것입니다. 이 사이트로 가서 Doctrine 부분에서 The Dangers of REFORMED THEOLOGY를 보면 자세한 기사들이 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0-06 13:59:11 | 관리자
올해 7월 말에 한 포털 회사에서 해킹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회사에 가입했던 사람들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이 되었습니다. 이 암호화된 것이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는데요. 저 역시 회원이었던지라 제 정보 역시 노략질 당했습니다.   오늘은 이 컴퓨터 보안과 성경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1.   컴퓨터 공학에는 여러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 컴퓨터 그래픽, 음성 인식, 패턴 인식, 컴퓨터 비전 등등...   이 중에 한 분야가 보안입니다. 다른 분야와 이 보안이라는 분야가 다른 점은 "보안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생겨난 분야"라는 것입니다. 위에 적은 여러 분야들은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분야이지만, 보안은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이 지구 상에 한 명도 없으려면, 마귀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보안은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몇 안 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그 나쁜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들을 지키려다 보니 보안에 시간을 쏟아야합니다.     2.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마 24 : 43)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말씀을 "도둑이 자기 집 어디로 뚫고 올 지 모르니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훔치러 오는 도둑들도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도 우리의 상급을 못 받게 방해하러 언제 올 지 모르니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벧전 5 : 7-8)     3.   마귀는 가장 약한 곳을 뚫고 옵니다. 마귀가 인류를 처음 넘어뜨릴 적에도 아담의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왔습니다.   이브는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아담을 통해 들었습니다. 3장에서 뱀과 대화할 적에 '만지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확실히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귀는 약한 믿음을 가진 이브를 먼저 공략했고, 그 약한 부분을 통해서 강한 아담까지 넘어뜨렸습니다.   보안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하다."   둥근 고리 10개를 묶어 놓았습니다. 9개는 무척 강하지만, 하나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진다고 합시다. 결과적으로 그 열 개 고리의 강도는 사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만큼 강하다가 됩니다. 다른 고리가 아무리 강해도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합니다.   마귀가 뚫고 올 곳이 없는지 자기 자신을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의 모든 모양을 삼가라.(살전 5 : 22)   그런데 이 모든 부분을 막는다는 것이 심하게 어렵습니다.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영을 다스리는 자는 도시를 취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 : 32)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이 보안 문제는 만드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못 만들었기 때문에 생길까요? 프로그램은 아래 보시는 것처럼 글로 작성이 됩니다.     이런 글에서 몇 줄이 잘못되어야 이런 큰 문제가 생길까요?   차이야 많지만, 한 두 줄인 경우도 많습니다. 3000만 줄 정도 잘 작성해 놓고, 두 줄 정도 이상하게 작성하면, 해커들은 그 이상한 두 줄을 통해서 헤집고 들어 옵니다.   개역 성경을 보다 보면 이런 한 두 줄이 조금씩 보입니다. 이런 한 두 줄을 이용해서 마귀는 계속 침투를 하고, 많은 기독교도들이 계속 당하고 있는 세태가 참 안타깝습니다.     5.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 : 23)   뭔가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는 창이 매우 유리합니다. 창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방패에게는 작은 구멍 하나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는 우리 각각에게서 작은 구멍 하나만 찾아서 공격하면 되지만, 우리 각각은 죄가 될 모든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곧 포도나무를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붙잡으라. 우리의 포도나무에 연한 포도들이 있느니라.(아 2 : 15)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큰 여우가 아닙니다. 작은 여우입니다.   이렇게 약한 우리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보안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싸울 날에 대비하여 말을 예비해도 안전은 {주}로부터 오느니라.(잠 21:31)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 : 57)[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0-01 13:03:29 | 허국현
펌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재미있는 유머 입니다.       웃기지만 슬픈 유머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 군대에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를 가면 사돈이 된다.   아들을 낳으면 1촌, 대학가면 4촌,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를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딸 둘에 아들 하나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 도둑, 딸은 예쁜 도둑, 사위는 강도.   남편과의 사랑은 운명적인 사랑, 아들과의 사랑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손자와의 사랑은 짝사랑, 며느리와의 사랑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랑, 딸과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남편을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 수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내 아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다.   미친 여자,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여기는 여자.   아들에게, 재물을 안 주면 맞아죽고, 반만 주면 쫄려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5: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30 13:55:25 | 허광무
지금 전 세계가 무상 파동에 휩싸이고 있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공짜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특히 오바마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인들에 의해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심각한 양극화와 사회주의의 무상 체제의 급부상입니다.양극화 현상 속에서 빈곤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문제 해결' 구호에 넘어가미끼를 따먹을 것입니다. 성경은 무자비한 자본주의는 반대합니다.하지만 성경은 신약시대에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지지합니다.이 원칙 하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다음은 미국의 어느 분이 보내 주신 글입니다.남윤수 자매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특히 다섯 째 문장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던 유럽의 복지 국가들의 대부분이 결국 이 정책으로 인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말세의 징조이므로 사람이 못 바꿉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징조가 말세의 징조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여 글을 올립니다.     ------------------------------------------- 여기 다섯 개의 문장들은 사실입니다.워싱턴의 관료들(오바마 행정부)은 그런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당신은 그것들을 믿습니까?그렇다면 다른 분들께 보냅시다. 이것들은 아마 당신이 이제까지 읽을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문장들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1. 당신은 부자들을 부유함 속에서 빼내려는 것을 입법화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부유함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입법화 할 수는 없습니다. 2. 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받은 것, 그것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은 대가도 없이 일을 해야 합니다. 3. 정부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먼저 얻어내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4. 당신은 부유함을 나누어서 부를 증대시킬 수는 없습니다. 5. 인구의 절반이, 인구의 다른 절반이 자기들을 돌보아 줄 것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그리고 그 다른 절반이 누군가가 자기들이 일한 것을 취할 거라는 생각에 일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그것은 곧 그 국가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조입니다. These Important 5 Sentences Are True.Washington Bureaucrats Do Not Believe Them.Do YOU Believe Them?If So, Pass Them On. These are possibly the 5 best sentences you'll ever read: Unfortunately, most voters don't know this.  1. You cannot legislate the poor into prosperity, by legislating the wealthy out of prosperity. 2. What one person receives without working for, another person must work for without receiving. 3. The government cannot give to anybody anything that the government does not first take from somebody else. 4. You cannot multiply wealth by dividing it. 5. When half of the people get the idea that they do not have to work because the other half is going to take care of them; and when the other half gets the idea that it does no good to work, because somebody else is going to get what they work for, that is the beginning of the end of any nation.[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9 09:56:04 | 관리자
건전한 정신과 양심을 가진 대부분의 크리스찬이라면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사 내용이 한국 교회의 상당수가 교회 건물을 세우고자 하는 행태와 관련하여 나름대로 잘 지적한 부분들이 있어서 글을 그대로 링크하여 올립니다.   지금 이 시대의 참 성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신약 교회에 걸맞는 모임 장소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20 21:50:53 | 신대준
철도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의 주역이던 증기 기관차이다.우리말의 경우 기차(汽車)라는 한자어부터가 증기라는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단어이며, 칙칙폭폭 역시 증기 기관차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철도 건널목 표지판은 연기를 모락모락 내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증기 기관차가 달리면서 연기를 온 천지에다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기차 화통 삶아먹었나?”란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 중에 저렇게 연기를 뿜으면서 칙칙폭폭 하면서 달리는 녀석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철도의 첫 구현체인 증기 기관차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뿌리 깊다. 마치, 플로피 디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3.5인치 디스켓 아이콘은 ‘저장’ 아이콘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에는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열역학이라는 관점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열로 바뀐다.하지만 반대로 열을 에너지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열을 에너지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 일을 하는 물건을 통상 기관 내지 엔진이라고 부른다.   그 기관 중 증기 기관은 외연 기관이라고 불린다.증기 기관은 연료를 태워서 물 같은 다른 매개체를 끓여 증기를 만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이나 터빈을 움직인다. 연소가 동력을 만드는 곳과는 별개의 장소인 보일러에서 행해진다는 점에서 ‘외’(external)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밥솥 내지 냄비에서나 나오는 그 연약한 수증기가 평소보다 10수 배로 압축만 하면 집채만 한 무거운 열차를 움직이게도 한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요즘이야 기관차형 열차에는 기관차 뒤에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다. 객실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발전차가 아니라 석탄을 실은 별도의 화차가 한 량 필요했다. ^^;; 기관사 밑에서 일하는 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삽으로 석탄을 아궁이에다 열심히 퍼 넣어야 했다. ㅎㄷㄷㄷ;;그리고 증기 기관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역에는 급수탑이 필요했다. 수원, 영천 등 몇몇 역에 있던 급수탑이 지금은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오늘날의 철도 차량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당시 증기 기관차의 특징 중 하나는 바퀴 크기가 큼직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앞바퀴가 유난히도 큼직한 자전거가 존재하기도 했던 것과 따지고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증기 기관차는 꼭 둥근 원통형이고 색깔은 새까맸다. 어차피 매연 묻어서 시꺼멓게 되는 걸 가리려고 검은색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듯.또한 증기 기관차는 20세기 중반에 세상에 컬러 사진이 보편화할 무렵엔 모두 은퇴했기 때문에, 최소한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정지 사진이 아닌 컬러 동영상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증기 기관은 오늘날의 내연 기관에 비해서야 구조가 간단해서 만들기 쉽고, 저속에서도 비교적(언제까지나 '비교적!') 토크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차보다야 월등히 더 뛰어난 수송력으로 물류 혁명을 달성한 건 사실임. 그리고 무슨 방법을 써서든 물을 끓게만 만들면 됐으니 옥탄가가 크지 않은 저가의 저질 연료를 써도 괜찮은 점 역시 장점이었다.   그때 증기 기관차에는 별도의 변속기라는 게 없었다. 외연 기관은 태생적으로 연소 따로, 구동 따로인데 어차피 바퀴의 부하가 엔진에 바로 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석탄 열나게 많이 때면 빨리 가고, 적게 때면 느려졌다. 수증기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유체/유압 변속기 역할을 자연스럽게 했다.변속기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기관차의 바퀴 크기 자체가 동력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으며, 바퀴마다 크기가 들쑥날쑥이기도 했다. 여객용 기관차는 속도를 중요시해서 바퀴가 유난히 크고, 화물용 기관차는 견인력을 중요시해서 작은 바퀴 여러 개였던 식.   나름 증기 기관도 발전을 거듭하여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더욱 출력이 향상되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동력을 쓰는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많았다.증기 기관 자체가 물리학적으로 볼 때 태생적으로 미치도록 열효율이 저조하고 열차를 굴리기에는 출력이 부족했다. 가감속이 쥐약이고 고속화 역시 곤란했다.   또한 증기 기관은 보일러가 필요하고 물탱크에 석탄까지 있어야 하다 보니, 구조는 단순하지만 덩치가 커지는 게 불가피했고 소형화하기가 곤란했다. 증기 기관이 자동차의 동력원으로는 프랑스의 퀴뇨 이후로 일찌감치 실패하고 그나마 철길이라든가 증기선으로 살 길을 찾은 게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비열이 큰 물이 끓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석탄 같은 고체 연료는 취급하기가 번거로워서 여전히 큰 골칫거리였다. 시동 시간이 굉장히 길고, 차를 세우거나 움직이게 하는 게 고역이었다는 뜻. 연탄재 치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다량의 석탄재 처리는 어떻게?   요즘 일부 국가에서는 관광용으로 일부러 증기 기관차를 굴리는 곳이 있는데, 걔네들은 석탄 대신 더 깨끗하고 취급하기 더 쉬운 연료인 석유나 가스로 물을 끓인다. 200년 전의 증기 기관차를 100% 그대로 재연한 건 아니라는 뜻. 사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실용화한 시기 자체가 영국의 산업 혁명과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처럼 대량의 석유를 값싸게 전세계에 공급하는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이었다.   18세기에 제임스 와트 같은 선구자에 의해 발명되어 인류의 동력원으로 활동한 증기 기관은, 19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내연 기관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최소한 교통수단에서는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오늘날 증기 기관은 발전소의 증기 터빈 같은 곳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은 내연 기관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기 철도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결론:   - 내일은 9월 18일, 철도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날짜(1899년 9월 18일)에서 유래됐습니다. - 철도의 날에 딱 맞춰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 런칭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17 21:24:48 | 김용묵
한번 읽고는 버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후자의 책들은 스캔 회사에 보내 스캔해서 컴퓨터에 두고 또 패드에 넣고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 '설교와 설교자'는 후자의 책입니다. 목회와 설교에 무기력감을 느낄 때 읽으면 힘을 주는 책입니다. 그분의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듣는 이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설교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성도일 때는 설교가 지루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예배당에 앉아 설교를 들어보니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설교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매일 구원만 설교합니다. 어떤 구절이든 읽으면 다 구원으로 끌고갑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또 종종 성경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교회 목사들은 성경 한 구절 읽고 다른 이야기 하다 끝냅니다. 어느 목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구절만 인용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로 착각합니다. 어느 교회는 설교와 성경 공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설교 시간에 성경을 가르칩니다. Preaching(설교)과 Teaching의 구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00명이 앉아 있다고 할 때 헛된 설교로 1시간을 보내면 100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처럼 한번에 2-3만 명이 앉으면 2-3만 시간이 허비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경우 한번 예배당으로 내려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듣거나 집에서 차에서 자기의 설교를 들어보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서고 쓰러짐은 목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특히 목사의 설교에 달려 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의 1장(설교라야만 한다)을 올립니다.   성도들도 그냥 읽으면 힘이 솟아날 것입니다.   참고로 복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에서 낸 책을 추천합니다. 많이 구매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에 소망을 둡시다. 좋은 목사들을 이 나라에 보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합시다.   샬롬.
2011-09-17 11:48:31 | 관리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을 보니..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젠 학생이 동성애적 성적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상담을 해도 함부로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격려하고 용기를 내라고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제2장 1절 6조 학생은...........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② 학생은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설하는 행위나 모욕,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4절 제13조 ① 학생은 ..........., 성적지향ㆍ성정체성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7절 ②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및 학교의 장은 .....성소수자 학생......,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사유로 권리 실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배려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예산 등의 자원을 배정하여야 한다.   ----- 조례안의 의도는 명확한 것 같네요.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항목에 저촉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바로잡아야 할 것을 괜찮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 않는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3: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09 10:20:20 | 박종철
침례회 출판사에서 아주 좋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침례교 신학 논쟁: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월터 셔든이고 역자는 김용복과 김태식입니다.   제1장침례교의 기원 논쟁: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2장선교 논쟁: 이방인 선교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3장흑인 논쟁: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4장교단 논쟁 : 교회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5장신학 논쟁 : 교리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6장창세기 논쟁: 성경에 대한 침례교인들의 입장제7장근본주의 대 온건주의 논쟁최근 남침례교 총회의 교권 투쟁   결론: 침례교 논쟁을 통해 배운 교훈들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침례 교인(Baptist)입니다. 침례교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과 달리 인간 창시자도 없고 교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래서 침례교 안에는 칼빈주의자도 있고 세대주의자도 있습니다(물론 후자가 대부분임). 침례교는 획일적이지 않고 모두가 자기 양심에 따라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을 지고의 선으로 여깁니다. 이러다 보니 이단 교리나 극단적 교리도 가끔씩 나옵니다(국내에서도 과거에 극단적인 교리들을 편 교회들의 상당수가 침례교회였음. 김기동의 베레아 등).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침례교회가 형성되면서 생긴 여러 가지 갈등에 대한 것입니다. 침례교인들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들 내부의 중요 갈등들을 다루는 것은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 치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다루는 모습이 바로 성도들의 바른 자세라고 믿습니다.   랜드마키즘(Landmarkism,지계석주의)   침례교인들 중에는 랜드마키즘(지계석주의 혹은 지계표주의)이라는 특정 교리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랜드마크는 성경에서 지계표로 번역됨). 이것은 한 마디로 "침례교회만, 그것도 미국식 독립침례교회만 교회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장로교나 감리교 등은 실제로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때부터 이미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우리는 오순절 날에 교회가 형성되었다고 믿습니다). 더 극단적인 이들은 침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이 침례교회의 창시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장로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회는 천주교회에서 갈라져나온 창녀라고 주장합니다(지금은 고인이 된 잭 하일스 목사 등의 주장).   또한 예수님의 몸인 교회 즉 전 우주적인 교회를 무시하고 땅에 있는 지역 교회만 교회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지역 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져 한다고 주장합니다(성경 번역 및 출판, 신학교, 대안 학교, 문서 사역 등 거의 모든 일).   이런 구조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교회의 성도들은 극단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매우 배타적이 됩니다. '우리 교회만 바른 교회'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교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같이 믿음 생활하다가 무슨 이유로든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향해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비난을 합니다.  국내에도 구원파라는 침례 교파의 경우 공공연히 자기들만 주님께 붙은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회를 떠나면 자동으로 구원 받지 못한 자가 됩니다. 이러다 보니 교회에서 심한 갈등이 형성됩니다. 교회에 남느냐, 떠나느냐로 큰 갈등이 빚어집니다.    미국의 경우 이보다 좀 더 극단적인 자들은 Baptist bride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예수님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만 휴거가 되겠지요.  그러므로 다른 데서 성경적인 침례를 받았어도 그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그 교회에서 다시 침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이런 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목사가 심한 독재를 합니다. 은밀하게 독재하는 목사도 있고 드러내놓고 독재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가 더 많지만 이렇든 저렇든 독재는 주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잘못된 교회관 즉 랜드마키즘에서 비롯됩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는 다음의 글에 자세히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랜드마키즘의 에러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lochurch/landmark.htm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의 4장은 이 문제의 배경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남부 지방에는 랜드마키즘 교리가 상당히 강합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에 파송되어 온 독립침례교회의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교리를 강하게 가르쳐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초창기 침례교회, 구원파 교회 그리고 최근에 형성된 근본주의 독립침례교회들 중에 몇몇 교회가 이 교리를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것은 개인 양심의 문제이므로 제가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의 영혼이 피폐하게 되므로 경고를 줄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4장을 PDF 파일로 올립니다.   1장도 대단히 중요하므로 꼭 이 책을 요단출판사에서 구입해서 보기 바랍니다.   교회도 실수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우리만 교회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에 다니면 빨리 그런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무엇이 부족한가?"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는 부족합니다. 죄 투성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에서 대리 만족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이 다 걸어 다니는 교회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2011-09-08 13:49:08 | 관리자
사람들이 만약 나에게 종교와 복음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 행위를 하는   그 사람 자신이 수없이 속습니다.   왜냐고요? 종교란 그것이 곧 사람 자신이 만든 것이므로   오직 종교 행위를 하는   자신의 입맛을 맞추어 주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자신은   자신 속의 깊은 곳에 사는 자신의 영혼의 눈이   점점 멀어가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계속 그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벧전2:19b)   종교 행위를 하면 할 수록   사람 자신의 본연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마치 문둥병이 발생할 때 환자가 병의 진행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 병이 온 몸을 잠식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마7:13)   사람들은 오직 자기 눈에 편해 보이는 것만 찾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란 것은 이 땅위에 살아 숨쉬는 이 동안만 만족을 줄 뿐입니다.(고후4:18)   그런데 사람의 행위는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다 맞추지 못합니다.(벧전1:18)   결국 종교를 택하는 자에게는 불지옥만이 기다릴 뿐입니다.(사5:14; 계21:8)"       "그러나 복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점차적으로 한 사람이 스스로 거짓말에 속고 있었다는 것을   늘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될때마다 그의 영혼은 점차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겠지요. 하지만 그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입니다.(욥5:18)   사람 자신이   결코 자기 자신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돌이켜 나오는 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다는 아닙니다.   그 사람을 부끄럽게 했던 모든 추악한 모습들을   가려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 자신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는,   가지고 있는 의조차도 더러운 누더기일 뿐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사64:6)   따라서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기준조차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롬3:10, 23)   이런 사람이란 존재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 두셨습니다.(요19:30)   이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14)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요1:14)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낮아지사(빌2:8)   하나님을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거부하고(시10:4; 14:1)   모든 불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던(엡2:1-2)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귀한 피를 흘려주사 죽으셨으며   묻히시고, 성경 기록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고전15:3-4)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사람의 행위와 행실에 기초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공로에 기초를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게 합니다.(고전1:29)"   그리고 이에 덧붙인다면...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이 복음의 복을 누리실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고후6:2)   바로 지금 말입니다.(히3:13)   여러분이 직접 그 진실을 확실하게 대면하게 될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잠27:1)   그게 1초 뒤가 되었든, 1분 뒤가 되었든, 1시간 뒤가 되었든, 1일 후가 되었든, 1개월 뒤가 되었든, 1년 뒤가 되었든.... 여러분의 숨이 언제 끊어질지는 여러분 자신도 모릅니다.(약4:14; 히9:27)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찾고 신뢰하시며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그 존재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나오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여러분 자신의 영원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시고   오직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마9:13; 롬10:9-10)   그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엡2:8-9)   하늘나라 행의 영원한 티켓, 즉 영존하는 생명을 받으신 것입니다.(요3:16; 5:24)   여러분을 지옥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길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롬1:1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8:0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07 20:13:26 | 소범준
안녕하세요?   21세기 인본주의 시대에는 창조와 진화 문제가 기독교 믿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진화론에 세뇌 당한 것은 아닙니까?' 라는 제목의 만화 전도지를 조그만 책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그것을 다시 소책자 형태로 만들어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에서 넘기면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한기만 형제님이 영어 책자를 스캔 받아서 한글 타이핑 작업 해 주었고 신실한 한 형제님이 전체적인 레이아웃 작업을 했습니다. 두 분의 도움으로 멋 있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PDF 파일은 마음대로 배포해도 되며 여러 종류의 기독교 포털과 블로그 등에도 올리기 바랍니다. 한국 창조과학회 등에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샬롬.   정동수
2011-09-01 15:43:31 | 관리자
  현재 표준어와 같은 뜻으로 추가로 표준어로 인정한 것(11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간지럽히다 간질이다 남사스럽다 남우세스럽다 등물 목물 맨날 만날 묫자리 묏자리 복숭아뼈 복사뼈 세간살이 세간 쌉싸름하다 쌉싸래하다 토란대 고운대 허접쓰레기 허섭스레기 흙담 토담     현재 표준어와 별도의 표준어로 추가로 인정한 것(25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길래 ~기에 ~길래: ‘~기에’의 구어적 표현. 개발새발 괴발개발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이고, ‘개발새발’은 ‘개의 발과 새의 발’이라는 뜻임. 나래 날개 ‘나래’는 ‘날개’의 문학적 표현. 내음 냄새 ‘내음’은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냄새로 제한됨. 눈꼬리 눈초리 ․눈초리: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눈에 나타나는 표정. 예) ’매서운 눈초리’ ․눈꼬리: 눈의 귀 쪽으로 째진 부분. 떨구다 떨어뜨리다 ‘떨구다’에 ‘시선을 아래로 향하다’라는 뜻 있음. 뜨락 뜰 ‘뜨락’에는 추상적 공간을 비유하는 뜻이 있음. 먹거리 먹을거리 먹거리: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음식을 통틀어 이름. 메꾸다 메우다 ‘메꾸다’에 ‘무료한 시간을 적당히 또는 그럭저럭 흘러가게 하다.’라는 뜻이 있음 손주 손자(孫子) ․손자: 아들의 아들. 또는 딸의 아들. ․손주: 손자와 손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어리숙하다 어수룩하다 ‘어수룩하다’는 ‘순박함/순진함’의 뜻이 강한 반면에, ‘어리숙하다’는 ‘어리석음’의 뜻이 강함. 연신 연방 ‘연신’이 반복성을 강조한다면, ‘연방’은 연속성을 강조. 휭하니 힁허케 힁허케: ‘휭하니’의 예스러운 표현. 걸리적거리다 거치적거리다 자음 또는 모음의 차이로 인한 어감 및 뜻 차이 존재 끄적거리다 끼적거리다 〃 두리뭉실하다 두루뭉술하다 〃 맨숭맨숭/ 맹숭맹숭 맨송맨송 〃 바둥바둥 바동바동 〃 새초롬하다 새치름하다 〃 아웅다웅 아옹다옹 〃 야멸차다 야멸치다 〃 오손도손 오순도순 〃 찌뿌둥하다 찌뿌듯하다 〃 추근거리다 치근거리다 〃     두 가지 표기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 것(3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택견 태껸 품새 품세 짜장면 자장면     국립국어원은 1999년에 국민 언어생활의 길잡이가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발간한 이후 언어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단어들을 검토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표준어를 새로 인정하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어서 어문 규정에서 정한 원칙, 다른 사례와의 관계, 실제 사용 양상 등을 시간을 두고 조사하였다. 이를 토대로 새 표준어로 인정할 수 있는 항목을 선별하여 2010년 2월 국어심의회(위원장 남기심)에 상정하였다. 이 회의의 결정에 따라 어문규범분과 전문소위원회가 구성되어 각각의 항목에 대해 총 3회에 걸친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 표준어 대상으로 선정된 총 39항목이 2011년 8월 22일 국어심의회 전체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8: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9-01 10:45:05 | 관리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까요? 쉬운 일 같지만 때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으므로 어떻게 옷을 입든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신명기를 인용하며 극단적인 어조로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하나님께 가증한 자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을까요?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이 글을 보면서 옷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떻게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성경 해석의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단정한 사람이 되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는 길을 터득할 것입니다. 바르게 성경을 보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많은 경우 문제는 성경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책자가 성화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파일을 공개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08-19 17:27:42 | 관리자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그림이 조잡한 것에 양해를.. ㄲㄲ)   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내 전공에 이어서 나의 신앙, 사상, 가치관 같은 정신 세계가 형성되어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7 09:59:58 | 김용묵
성경적인 경배(예배)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라.”   이 시간,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는 경배’가 있고, ‘가증한 경배’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가증한 경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분노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내가 숫양의 번제 헌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가 부른즉 수소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올 때에 누가 너희 손에서 이것을 요구하였느냐? 단지 내 뜰을 밟을 뿐이니라. 다시는 헛된 봉헌물을 가져오지 말라. 분향하는 것은 내게 가증한 것이요, 월삭과 안식일과 집회로 모이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니 곧 엄숙한 모임 그 자체가 불법이니라. 내 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명절들을 미워하나니 그것들이 내게는 괴로움이니라.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지쳤느니라.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사1:11-15)   아무리 엄숙하고 경건하게 경배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확인 하고 그 동안 잘못된 경배로 드렸다면, 진심으로 회개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성경적 회개’는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잘못된 경배에서 올바른 경배로 돌아서는 열매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믿는 교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오늘날 마지막 때에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는다 하면서도 성경에 엄연히 기록된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우리의 믿음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경배 받으시기를 고대하고 계신다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요4:23-24)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반드시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만 합니다. 오늘 이 시간도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경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고대하시며 기뻐 받으시는 ‘성경적인 경배’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먼저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복음주의 교회라는 곳에서는 ‘우리는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다’고 말하며 주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섬기는 것’이 ‘경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섬김’과 ‘경배’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4장 10절에서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경배와 섬김이 분명히 다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경배’를 통해서 ‘섬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본뜻인 섬김의 목적이 ‘많은 사람의 대속물’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이 죽음에 내어주시는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성경적 ‘섬김’ 이라는 본말을 무시하기 때문에, ‘율법적인 행위’ 인 오직 ‘사람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행위적인 섬김’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섬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죄로 인한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받아야 할 ‘구원의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헛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과 관계없는 이러한 ‘헛된 수고’의 열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해지면, 주님의 사명을 훌륭히 감당한 것으로 오해하며, 이러한 목사나 교회는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교회들이 소위 ‘성경적인 교회’로 이해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회들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입에서 ‘토해 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 자체를 비난하고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적인 ‘섬김’의 뜻을 잘못 행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중요한 목적은 사람을 섬기기 이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 즉 기록된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순종의 열매는 "서로 사랑하며"(요13:34-35), 예수님을 소개하는 ‘구원의 복음’으로 연결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마29:19-20, 행1:8).   예를 들면, 1) ‘믿음’은 보는 것(표적, 체험)을 믿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기록된 말씀을 “믿음”이라 한다면, 보이지 않는 기록된 말씀을 믿을 때, 성경은 그것을 ‘섬긴다’고 정의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하시고 여섯 째날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3) 성경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곧, ‘예수님’ 자신 이라는 성경기록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4) 죄에 대한 심판과 죄인이 죽으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는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 죄에 대한 심판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대속하신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 한 몸 안으로 부르신 각 지체를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7) 성경의 말씀은 일 점 일 획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되며 이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계22:18-19).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이러한 ‘섬김’은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경배’는 전적으로 내 몸과 마음과 뜻과 생각의 모든 것을 드릴 때 가능합니다. 쉽게 말씀 드려서 내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은 거듭난 사람이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으로 드리는 ‘경배’입니다.   두 번째는, ‘영과 진리’로 ‘경배’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요4:23-24)   여기에서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드려야만”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반대로 ‘영과 진리’로 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받으시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실족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음 자니라.”(고후13:5)   여기에서 ‘영과 진리’ 는 개역성경 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은 율법적인 ‘경배’입니다. 이 말씀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깨끗한 마음과 진실된 마음과 열심 있는 수고를 통해서 드린다는 종교적 행위 입니다. 행위를 중요시 하는 것이 이방 종교들이 갖는 공통점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겉 사람, 즉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속 사람을 보신다’는 기록된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헛된 경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이러한 ‘헛된 경배’를 매 주일 반복적으로 드리지는 않았습니까?   킹 제임스 성경은 분명히 ‘영과 진리’로 드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영’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죄인인 우리가(엡2:1) "그리스도의 복음", 즉 ‘구원의 복음’을 통하여 은혜의 선물로 받은 ‘거듭난 영’(요3:5)을 말합니다. 즉 ‘구원받고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엡1:13)을 말합니다.   ‘진리’는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것을 “경배”라 합니다(갈1:10).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성경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예수님 자신 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거듭난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주인으로 거하고 계십니다. 즉, 예수님이 곧 “진리” 이시기 때문에 내 안에 계신 “진리”(말씀)를 드린다는 뜻이며, 회개를 통해 죽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몸(거듭난 영, 살아있는 희생물)을 전부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사도행전 17장 1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가, 주의 깊게 살펴서 대조하며, 기록된 말씀을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일꾼으로 인정 받도록 연구하라’(딤후2:15)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믿음 생활을 위해서는 꾸준히 성경을 공부해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경배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며, 그렇지만, 경배 받으시는 방법에는 조건이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경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경배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여 드리는 예배만 받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삶에서의 오해와 착각과 잘못은 육신적인 삶에서의 일시적 손해로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만, 영적인 삶의 잘못된 실수는 죽은 후에 받아야 할 영원한 삶이기 때문에 영적인 삶은 절대로 착각 속에 속아서 믿음생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 30절에서는 착각 속에 믿음생활 하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후회하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경고하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기록 대로 하나님께 경배드림으로, 믿음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적인 경배는 거듭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구원받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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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7 07:56:08 | 최영선
▶미국의 저명한 작가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그가 마지막 순간 남긴 말...   "오 하나님! 어떤 일을 행했길래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합니까?""제발 내 곁에 있어 주시오. 어린 아이라도 내 곁에 머물게 해 주시오""홀로 있다는 것은 지옥이기 때문이오""마귀에게 대리인이 있다면 내가 바로 그였을 것이오" `▶프랑스 여류작가 - "롤랑드"(Madame Rolland 1866~1944)   "오 자유!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들이 범해졌는지..."   ▶무신론자 - 프랜시스 뉴돈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수없는 고통을 나는 받게 되었노라!"   ▶영국의 대법관 - "토마스 스코트 경"(Sir Thomas Scott 1535 – 30 December 1594)   "나는 이 순간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둘 다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전능자의 공정한 심판에 의해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구나!"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대표적 계몽사상가 -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이교도작가로서 기독교를 방해하고 분쇄하기 위해 펜을 사용했다.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받았소!" "만일 당신이 내게 여섯 달동안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내 소유의 절반을 주겠소." "나는 지옥으로 갈거요. 오 예수 그리스도여!"   ▶독일 문학가 - "괴테"(Johann W. von Goethe 1749~1832)    그는 세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파우스트, 진리와 허구 등을 집필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한가지를 요청했다   "빛이 더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라."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두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함)   ▶무신론자 - "윌리엄 포프"(William Pope 영국, 1797년 사망)    교황을 의미하는 성을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며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비웃은 그가 했던 일은 성경을 마루바닥에 차고다니거나 찢는것이었다.    그의 임종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그가 죽으면서 부르짖는 모습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고 한다.   "나는 회개하지 않네. 아니 회개할 수 없다네. 하나님은 나를 저주할 것일세!" "나는 은혜의 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안다네""자네들은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을 보고있네. 오! 영원! 영원! 내게는 지옥밖에 없다네. 오라 영원한 고통이여!""나는 하나님이 만든 모든것을 증오했네. 내가 증오하지 않은것은 마귀뿐이라네. 그와 함께 있기 바라네""지옥에 있기를 갈망하네. 자네들은 보지 못하는가? 그를 보지 못하는가? 나를 위해 그가 오고 있는것을..."   ▶이교도 케이(Kay) 마지막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지옥, 지옥, 지옥"       * 참고서적 : 죽음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 (허버트 로켜, 생명의말씀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2 23:35:02 | 최홍진
마태복음 4장(누가복음 4장, 마가복음 1장)에는 주 예수님께서 친히 시험을 받으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째는 주님께서 메시아로 오신 분이심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의 3장에서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공표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따라서 마귀는 그분을 메시아의 길에서 실족시키고자 주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두 번째 는 히브리서 2:18과 4:15에서 밝히고 있듯이 연약함을 갖고 있는 믿는 이들을 시험에서 능히 구조하시는 구주(救主)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에게 계시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히 4:15)   따라서 마귀의 목적은 시험을 통하여 주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을 이기지 못한 자는 다른 이를 시험에서 능히 구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공관복음서에 기술된 기사를 살펴볼 때, 주님은 40일 낮과 밤을 금식하시며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변에 야생 짐승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진 인성 안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시험은 어떠한 시험이며 얼마나 많은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히브리서 4:15는 이 시험의 범주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40일 동안의 시험에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갖고 온갖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곧, 죄의 본성을 입고 태어난 자들이 연약함 가운데 받게 될 모든 시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받는 시험 가운데 주님이 몸소 겪지 않은 시험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긍휼이 많은 대제사장이 되시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영과 혼과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고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왜 KJV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가?"에 대한 믿음의 증거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4:15에 대한 역본들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KJV : For we have not an high priest which cannot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our infirmiti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like as we are, yet without sin.   RSV : For we have not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in every respect has been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NIV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 yet was without sin.   NAS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   NKJB :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as in all points tempted as we are, yet without sin.   KJV과 현대 역본 사이의 차이점은 "몸소 느끼다"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KJV는 이 부분을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한데 비하여, New KJV를 포함한 모든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sympathize wi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헬라어 원어는 "sumpatheo"로서 "with"+"passion"의 합성어임). 영어로 "sympathize"는 "공감하다", "위로하다", "동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KJV가 왜"sympathize with"로 번역하지 않고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로 번역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왜 KJV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분께서 인성 안에서 갖고 계신 연약함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동일하게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굶주리셨고, 목마르셨으며, 여행길에 지치셨으며, 시험을 당하셨습니다(눅 4:2). 때로는 분노를 나타내셨으며,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눅 7:34),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잠을 주무셨으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때로는 슬퍼하시고, 때로는 아파하시고, 때로는 기뻐하시고, 때로는 즐거워하시며, 죄인들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들과 같이 잡수시고 그들의 연약함의 감정을 세밀히 느끼시고 그들의 어리석음과 약함과 어둠에 갇힌 모습을 불쌍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인성을 입고 살과 피에 참여하시면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의 감정을 가지셨지만, 그분은 본성에서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벧전 2:22).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잘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께서는 본성 안에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시험이 올 때 죄의 본성이 반응을 하여 그 시험에 굴복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그분 안에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주님은 시험에 대하여 내부에서 반응하여 죄를 범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본성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시험만 겪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be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번역하는 것이 주님의 본성과 주님이 어떻게 시험을 받으셨는지를 나타내는 바른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역본들처럼 "sumpatheo"를 "공감하다(sympathize)"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마치 우리의 연약함의 모든 감정을 하나하나 시험을 받는 가운데 직접 몸으로 체험하신 분이 아니라, 동정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만 보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혹 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나 자녀가 심한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고통을 당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도 실제로 동일한 질병으로 아파보지 않았다면, 그 환자의 아픔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가 없으며, 그 환자와 고통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역본은 주님을 단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거나 공감하시는 분으로 만들어서 주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로 약화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죄 없으심을 보여주는 더 정확한 번역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 가운데 외적으로 시험을 받으신 분으로 묘사하는 "touched with the feeling of" 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한 채 섬김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친히 인성 안에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들고 약하고 어려울 때 팔짱을 끼고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셨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에서도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를 능히 구원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오늘날 믿는 이는 시험이 임할 때, 그 시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인성을 입으시고 2000년 전에 겪으시고 승리하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신약의 믿는 이가 겪어야 할 모든 시험에 대한 피할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가요! 그분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요! 그분은 참으로 긍휼이 많고 신실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40:4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8-12 15:17:36 | 임재영
지옥이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장소라는 건 알지만, 불신자들이 죽어 간 지옥에도 혹시 그들을 고문하는 마귀가 있지는 않지요? 범죄한 천사들을 묶어 놓은 타타루스는 알지만.  지옥의 한자풀이를 보니까 개와 마귀가 지키는 옥이라는 뜻이라던데, 성경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현재 지옥에 마귀가 있다는 말은 없어서요.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는 간증을 보니까 - 지옥사자들이 불신자들을 고문하고 있다는 - 이런 내용이 있던데, 이것도 비성경적인 내용이면 무시하면 되죠?[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5:0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3 15:56:19 질문과 답변에서 이동 됨]
2011-08-09 20:16:55 | 김현석
 The Wicker Basket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자매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little house on the prarie"에서 보는 그런 집의 그림입니다. 이런 집에서는 겨울에 난로에 집어넣을 석탄 (혹은 갈탄)을 사용하여 난방을 하는데 그런것을 담는 잔 나무가지로 만든 바구니를 wicker basket이라고 부릅니다.   The story is told of an old man who lived on a farm in the mountains of eastern  Kentucky with his young grandson.     이것은 동부 켄터키 산속에서 농장을 하며 그의 손자와 같이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ach morning, Grandpa was up early sitting at the kitchen table reading from his old worn-out Bible.  His grandson who wanted to be just like him tried to imitate him in any way he could. 매일 아침, 할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식탁에 앉아 그의 낡아떨어진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를 너무 닮고 싶어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따라 하려고 했습니다.  One day  the grandson asked, 'Papa, I try to read the Bible just like you but I don't understand it, and what I do understand I forget as soon as I close  the book.  What good does reading the Bible do?' 어느날 손자가 "할아버지처럼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것을 책을 덮자마자 바로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는 게 뭐에 좋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The Grandfather quietly turned from putting coal in the stove and said, 'Take this old wicker  coal basket down to the river and bring back a basket of water.' 할아버지는 난로에 석탄을 넣다가 조용히 돌아보면서 "이 낡은 석탄 바구니를 강으로 가져가서 물을 담아가지고 오너라" 고 말했습니다.  The boy did as he was told, even though all the water leaked out before he could  get back to the house. 아이는 집으로 오기전에 모든 물이 이미 새어버렸지만 그대로 했습니다. The grandfather laughed and said, 'You will have to move a little faster next time,' and sent him back to the river with the basket to try again.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 너 다음에는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해 보라고 아이를 강으로 보냈습니다.This time the boy ran faster, but again the old wicker basket was empty before he returned home.  Out of breath, he told his grandfather that it was 'impossible to carry water in a basket,' and he went to get a bucket instead. 이번에는 아이가 더 빨리 뛰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집에 오기전에 바구니는 비어버렸습니다. 숨이 차서 그는 할아버지에게 '이 바구니에 물을 담아오기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고 대신 물통을 가지러 갔습니다. The old man said, 'I don't want a bucket of water; I want a basket of water.  You can do this.  You're just not trying hard enough,'  and he went out the door to watch the boy try again. 할아버지는 "나는 물통의 물을 원하는 게 아니고 바구니의 물을 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최선을 하고 있지 않구나". 그리고 그는 아이가 다시 시도하는 것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씁니다. At this point, the boy knew it was impossible, but he wanted to show his grandfather that even if he ran as fast as he could, the water would leak out before he got far at all.  The boy scooped the water and ran hard, but when he reached his grandfather the basket was again empty.  Out of breath, he said, 'See Papa, it's useless!'  이쯤에서 아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물은 금방 새어버린다는 것을 자기 할아버지에게 보여 주기 원했습니다. 허리를 굽혀 물을 담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왔을때는 그의 바구니는 비어 있습니다. 숨이 차서 그는 "할아버지, 소용없잖아요!"라고 했습니다. 'So you think it is useless?' the old man said.  'Look at the basket.'할아버지가 '쓸데없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으며 바구니를 쳐다보라고 합니다. The boy looked at the basket and for the first time he realized that the basket looked different.  Instead of a dirty old wicker coal basket, it was clean.아이는 바구니를 쳐다보았고 처음으로 달라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석탄바구니였는데 지금은 깨끗해졌습니다.  'Son, that's what happens when you read the Bible.  You might not understand or remember everything, but when you read it, it will change you from  the inside out.' '아들아, 그것이 성경을 읽을때 일어나는 일과 같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할 수 있으나 네가 그것을 읽을때 그것이 너를 뒤집어 바꾸어 놓는단다'  Moral of the wicker basket story: 이 이야기의 교훈 Take time to read a portion of God's word each day;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도록 시간을 냅시다It will affect you for good even if you don't retain a word. 한 단어도 간직할 수 없을지라도 당신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Thought  for Today:  오늘을 위한 생각     God's Love is like the ocean, you can see its beginningsbut not its end.  하나님의 사랑은 바다와 같아서 우리가 시작부분만 볼 수 있지 끝을 볼 수 없습니다. I really like this story because I don't retain things too well anymore...age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it but I figure my brain  just gets overloaded! God isn't concerned about my brain anyway;He's more concerned about my soul.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기때문에 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나이가 먹으니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아마 나의 뇌가 너무 많은 것으로 과부하에 걸렸는지도요!  어쨌든 하나님은 나의 뇌에 대한 것보다  다만 나의 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2011-08-06 09:35:05 | 관리자
종교와 기독의 다른 점(차이 점)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서 잠시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keepbible 홈페이지의 오른 쪽에 링크되어있는 "성경공부"에 들어가서, Middletown bible church의 성경공부 자료 중에서 얻은 것입니다. 영어를 대부분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여겨지므로, 영어를 공부하기 위함이 아니요, 내용 자체를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옮깁니다..^^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ㅎㅎ..   대구 갈보리침례교회 신혜경 자매,   The Difference BetweenRELIGION and CHRISTIANITY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CHURCHIANITY and CHRISTIANITY. Many are GOING TO CHURCH but few are GOING DOWN THE ROAD WHICH LEADS TO LIFE (Matthew 7:13-14). Many name the Name of Christ (2 Tim. 2:19) and claim to be Christians but few understand what a Christian really is. Many are RELIGIOUS but few are RIGHT WITH GOD. May God help us to understand the difference between RELIGION and true CHRISTIANITY as set forth in the Word of God, the Holy Bible.   종교 행위로서 교회에 습관적으로 출석하는 것(churchianity-christianity를 경멸조로 부르는 말-From Wikipedia)과 기독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고 있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마 7:13-14)로 가고있는 자들은 소수의 사람들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내신 바 대로 종교와 참된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을 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The following chart may be helpful: 다음의 대조 표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RELIGION (종교) CHRISTIANITY(기독교) "Salvation is something I must do. I must somehow earn or gain salvation by the way I live." "구원은 내가 무엇인가 해야만하는 어떤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방식에 의해서 노력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을 얻어야 하고, 또 구원에 도달해야만 한다." "Salvation is something only God can do. Salvation is of the LORD!" (Eph. 2:8-9; Jonah 2:9). "구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주께 속하였다!"(엡 2:8-9, 요나 2:9) Religion is summed up in one word: DO--man trying to DO different things to please God and earn His favor. 종교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하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Christianity is summed up in one word: DONE--Christ dying on the cross to save sinful man (John 19:30). 기독교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끝마쳤다--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 The religious man is busy "working" (doing good works) in order to be saved. 종교적인 사람은 구원받기 위하여 "일(선한 일들을 행함)"을 하느라 바쁘다. The saved person is "not working" (Rom. 4:5) but is RESTING upon the finished work of Another. 구원받은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다."(롬 4:5) 그러나 다른 분께서 끝마치신 일에 의지하여 안식한다. TRYING 노력하는 것 TRUSTING (Acts 16:31) 신뢰하는 것(행 16:31) A Work to Do which is never done (How can anyone work well enough and hard enough to earn salvation?) 결코 끝마쳐지질 않을 일을 하는 것(어떻게 사람이 구원을 얻을 만큼 충분히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가?) A Word to Believe (1 Pet. 1:25) about a Work that is Done (1 Pet. 1:18-19). 끝마쳐진 일에 대한(벧전 1:18-19) 말씀을 믿는 것(벧전 1:25) Man hoping to save himself 자신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인간 God saving hopeless man (1 Tim. 1:15) 소망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딤전 1:15) RELIGION is man trying to BRING HIMSELF TO GOD (by human effort, good works, ritualism, traditionalism, sacraments, etc.). 종교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께로 데려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인간의 노력, 선한 행위들, 의식, 전통, 성사들, 등등에 의해서). CHRISTIANITY is Christ BRINGING US TO GOD on the basis of what He did for us on the cross (1 Peter 3:18).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일을 근거로 하여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것이다(벧전 3:18) Religion is man trusting his own good works (Titus 3:5). 종교는 사람이 자신의 선한 행위들을 의지하는 것이다(딛 3:5). Salvation is man trusting the good work which the Lord Jesus did on the cross (Rom. 3:22-26). 구원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셨던 선한 일을 신뢰하는 것이다(롬 3:22-26). A religious ritual 종교적인 의식 A. real relationship (John 17:3) 실질적인 관계(요 17:3) Following rules 규칙들을 따르는 것 Enjoying life (John 6:47; 10:10). 삶을 즐기는 것(요 6:47; 10:10) "I must reform my life and turn over a new leaf" "나는 나의 삶을 개혁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한다" "I must be born again" (John 3:7). "나는 거듭나야만 한다"(요 3:7) Doing Something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 Knowing Someone (John 17:3) 누군가를 아는 것(요 17:3) Man trying to please God in the wrong way (Rom. 8:8--"So then they that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한 인간(롬 8:8--"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Man truly pleasing God in the only way (Hebrews 11:6--"But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he that cometh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em that diligently seek him"). 유일한 방법으로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간(히 11:6--"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Seeking to earn God's favor by works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고자 구하는 것 Receiving God's favor by grace through faith (Eph. 2:8 and see Eph. 1:6). 믿음을 통한 은혜로 하나님의 호의를 받는 것 (엡 2:8과 엡 1:6) "I can work my way to heaven and earn my salvation" (Romans 6:23 teaches that we have earned our way to hell: "the wages of sin is death") "나는 하늘 나라로 가고 구원을 얻기 위해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로마서 6장 23절은 우리는 지옥으로 가기 위해 일을 한다고 말씀한다: "죄의 삯은 사망") "I could never live well enough to earn my way to heaven. Christ had to pay the price for my salvation (1 Cor. 6:20; 1 Pet. 1:18-19). "나는 내가 일을 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 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값을 지불하셔야만 했다."(고전 6:20, 벧전 1:18-19) "Salvation is something that a person must earn." "구원은 사람이 일을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Salvation is a free gift" (Romans 6:23; Ephesians 2:8-9; John 4:10). "구원은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롬 6:23; 엡 2:8-9; 요 4:10) The sinner sees himself as good (Luke 18:11-12). 그 죄인은 자신을 선하다고 알고있다(눅 18:11-12). The sinner sees himself as sinful (Luke 18:13). 그 죄인은 자신이 죄로 가득찼다고 알고있다(눅 18:13). The religious man compares himself with others (Luke 18:11). 종교적인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눅 18:11). The saved man sees himself as God sees him (1 Samuel 16:7; Psalm 53:1-3; Rom. 3:10-12).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그를 아시는 바 처럼 알고있다(삼상 16:7; 시 53:1-3; 롬 3:10-12). TRUSTING SELF (Luke 18:9) 자기 자신을 믿는 것(눅 18:9) TRUSTING CHRIST (Eph. 1:12-13)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엡 1:12-13) BOASTING IN SELF (Luke 18:11-12) 자기 자신 안에서 자랑하는 것(눅 18:11-12) BOASTING IN THE LORD (1 Cor. 1:29-31; Eph. 2:9)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것(고전 1:29-31; 엡 2:9) "I have kept the law! I have done that which God has required" (Matthew 19:16-20). "나는 율법을 지켰다! 나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다 행하였다"(마 19:16-20) "I have broken the law but I am trusting the One who came into this world to save guilty lawbreakers" (1 Tim. 1:15). "나는 율법을 어겼지만 유죄의 범법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을 신뢰하고 있다"(딤전 1:15) A religious man trying to earn his way to heaven by works may be likened to a man trying to swim from New York to London by his own efforts and energy and strength. He will never make it!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여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힘과 능력으로 뉴욕에서 런던까지 헤엄을 쳐서 건너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The person who is saved by faith is likened to a man getting on a ship in New York and trusting that ship to bring him safely to London. This man simply rests upon the ship and lets the ship do all the work.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뉴욕에서 배를 타고 자신을 런던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그 배를 신뢰하는 사람과 같다. 이 사람은 단순히 배를 타고 안식하면서 그 배가 모든 일을 하도록 맡기는 사람이다. The religious man is seeking to establish his own righteousness (Rom. 10:3). 종교적인 사람은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롬 10:3). The saved man is satisfied with the perfect righteousness of Jesus Christ (2 Cor. 5:21).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만족한다(고후 5:21). Religion is pictured in Genesis 3 by the fig leaves that Adam and Eve made for themselves--a terrible covering (Gen. 3:7 and see Isaiah 64:6). 종교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자신들을 위해 엮어서 만들어 입은 무화과나무 앞치마로 묘사된다 -- 형편없는 옷(창 3:7, 사 64:6) Salvation is pictured in Genesis 3 by the coats of skin which God provided by way of the shedding of blood--a perfect covering (Gen. 3:21; Rev. 19:8). 구원은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피 흘림의 방법으로 공급하여 주신 가죽옷으로 묘사된다 -- 완전한 옷(창 3:21, 계 19:8) CAIN'S RELIGION--"I bring to God the labour of my own hands" (Gen. 4:3). 카인의 종교 -- "나는 나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여 얻은 것을 하나님께로 가져간다"(창 4:3) ABEL'S FAITH--"I bring to God a blood sacrifice. An innocent substitute must die to save me" (Gen. 4:4). 아벨의 믿음 -- "나는 피 흘린 희생제물을 하나님께로 가져간다. 죄없는 대속물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창 4:4) Hoping to be saved by good works (a false hope) 선한 행위들에 의하여 구원받기를 바란다(잘못된 희망) Saved unto good works by God's grace (Eph. 2:10).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행위를 하도록 구원받았다(엡 2:10). Religion teaches that good works are the cause of salvation. 종교는 선한 행위들이 구원의 근거라고 가르친다. The Bible teaches that good works are the result of salvation. 성경은 선한 행위들이 구원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Religion says, "Good works are those things that a person does to be saved."종교는 "선한 행위들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하여 행하는 일들이다"라고 말한다. The Bible says, "Good works are those things that a saved person does" (James 2:14-26). 성경은 "선한 행위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행하는 일들이다"라고 말씀하신다(약 2:14-26) "Christ is my Example and Teacher. I try to follow Him and live as He lived."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본보기이며 선생이다. 나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이 살았던 처럼 살기 위해 노력한다.' Christ is my Saviour and Substitute. I am trusting Him and only Him to save me" (Luke 23:40-4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구주이시며 구속자이시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고, 오직 그분만이 나를 구원하신다(눅 23:40-43). "I hope I will be saved.""I think I will be saved.""I feel that I will be saved, maybe." "나는 내가 구원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내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아마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느낀다." "I KNOW I am saved right now" (1 John 5:13-"These things have I written unto you that believe on to name of the Son of God; that ye may KNOW that ye have eternal life"). "나는 바로 지금 내가 구원받았음을 안다."(요일 5: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35:0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3 15:57:20 질문과 답변에서 이동 됨]
2011-08-05 13:40:45 | 신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