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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린 뒤 누가 덧글을 달면 그 글을 올린 분이 후에 내용을 수정하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사해 사본에 대해 한 분이 글을 올렸는데 그 안의 사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본 글을 수정하려면 덧글을 지워야 합니다. 그분은 스스로 자기의 글을 수정하기를 원한다고 다시 덧글로 달았습니다.   이런 경우 관리자가 보고 통보 없이 덧글을 임의로 지우겠습니다. 부디 이런 일로 실족하는 일이 없기를 원합니다.   인터넷 공간이라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어서 이런 공지문을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2011년 6월 18일   정동수 
2011-06-18 22:54:35 | 관리자
고린도후서 1장 12절과 함께 보세요.   샬롬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 속한 진실함으로 하였고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또 너희를 향하여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또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photo1&write_id=228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5: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16 20:32:04 | 관리자
75세이신 부친께 드디어 킹제임스 성경책을 보내드립니다 시골에 계시지만 몇해전에 보내드린 개역 성경을 읽고 계셧는데... ( 아직 교회는 출석하지 않코 계심 )동네 어른신들 눈치보시느라고 ㅎㅎㅎ 기회가 되면 다시 킹제임스 성경 책을 보내 드려야 되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시골계신 집에 들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성경이야기를 하고 .... 킹제임스 성경을 소개 했더니  꼭 한번 읽고 싶다고 하시어  발송해 드렸읍니다 ,... 앞으로  창세기,계시록,마태복음도 강해도 보내려고 준비중입니다. 부친께서 비록 교회는 출석 하시지 않치만 말씀을 진리안에서 찾고자 하시는 열정이 하나님앞에서 넘  감사하여 글을 올립니다....  
2011-06-12 19:59:52 | 우기성
http://well.hani.co.kr/16324 한겨레신문에서 "내 종교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건 우상숭배"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냈습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이것 때문에 갈등을 할까요? 정말 끝까지 주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축복해주세요.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7: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11 23:32:13 | 박주영
안녕하세요. 가입하자 마자 질문 글부터 써봅니다.   이전에 오리지널 초판도 읽어보고 1769년에 나온 버전도 읽어봤는데, 흠정역 한글버전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은데 막상 구매하려고 여기 저기 뒤져보니 스터디만 있어서요. 혹시 한영대역버전은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네요. 아이패드로 보면 되긴 하는데, 오래보면 눈이 아파서요.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36   어디서 팔고 있는지 아시는 분은 댓글 좀 달아주세요~ ^^   (홈페이지 링크 따라 가봤는데, 품절이라고만 나와서요)   부탁드릴께요.
2011-06-11 08:38:57 | 박범준
잠시(어제-오늘) 들로 산으로 갔다와서 다시 글을 씁니다. 이것은 바른 성경인 흠정역 성경을 왜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거나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여 거부부터 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글입니다. 제 부족한 실력으로 다듬어 올립니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바로 연락해 주십시오. 주님 사랑합니다. 지체님들도 사랑합니다. 샬롬^^     혹시, 빛이 어두운 랜턴을 쓰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함께하는 랜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랜턴이 혹시 빛이 어둡지 않습니까? 혹시 배터리는 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랜턴이 배터리가 약하거나, 전구에 이상이 있어서 빛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마 어두컴컴한 밤길을 헤매다가 목적지에 이르지도 못하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치기도 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여러분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집의 형광등 상태는?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의 형광등 상태는 어떻습니까? 불빛이 어둡지 않습니까? 형광등을 정기적으로 확인하신 적은 있습니까? 만약 집의 불빛이 어둡게 된다면, 실로 상상하기도 끔찍하겠지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도 바닥을 기어서 가거나 손과 발로 더듬어서 갈 수 밖엔 없습니다. 참으로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성경 상태는?   이제 깨달으시길 바랍니다.(마24:15b) 여러분의 성경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길의 참된 등불(시119:105a)로서의 기능을 하기에 적합합니까? 앞길의 인도자로서, 어두운 밤길의 빛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기에 적합합니까? 위의 랜턴이나 형광등처럼 성경의 문제도 금방 드러납니다. 만약 성도의 등불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이 어떤 이유에서든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빛과 인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구실을 하기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보고(딤후2:15, 흠정역) 잘 비교해 볼 때(고전2:13) 그 문제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갈5:9) 랜턴이나 형광등의 불빛이 희미한 것처럼, 성경 말씀이 서로 모순이 되거나 애매모호한 번역이 된 것 등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바로 여러분의 불빛입니다!(시119:105)   자, 이제 논지가 확실하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랜턴이 여러가지이듯, 지금 성경의 이름으로 나오는 책도 여러가지입니다. 최상품의 랜턴이 빛의 밝기나 수명으로 결정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분명히 - 여러분이 믿기 힘들어도 - 말씀의 명확성과 정확성이라는 척도로 그 가치가 분별될 것입니다.(시12:6,7; 19:7,8; 119:130; 고후3:12) 하나님이 주신 참 성경 말씀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은 곧 수많은 랜턴과 등불 가운데 최상품을 가려내는 것과 비슷한, 혹은 거의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훌륭한 길잡이요, 훌륭한 '랜턴'과 '등불'이 될(시119:105)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B)은   첫째,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섭리로 올바르게 보존해 주신 말씀들이 담겨 있습니다.(시12:6,7; 사40:8; 마24:35)   둘째, 말씀이 매우 명확해서 '단순한 자도 회심시키는'(시19:7b) 능력이 있습니다!   셋째, 의미가 매우 분명해서(고후3:12)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줍니다.(시119:130)   넷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신8:3; 마4:4)이 온전히 이 작은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바른 성경은 곧 여러분의 최상품 '랜턴'입니다! 이 랜턴을 구비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어두운 밤길도 환하게 비쳐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두운 마음 속에도 빛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시119:130a)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7, 8)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119:130)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8:1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07 13:57:48 | 소범준
킹제임스 성경 출간 400주년이 되면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 책들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Zondervan 출판사에서 나온 1611년 오리지널 킹제임스 성경 디지털 복사판 성경입니다. 이것은 Greatsite.com이 소장한 원본 KJV를 디지털 스캔해서 그대로 만든 오리지널 성경입니다. 가격도 8달러 뿐이 안 합니다. 카드 결제하고 항공 우편으로 보내라고 해도 25달러 정도면 국내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원본과 같으므로 1권씩 소장하면 기념이 될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Holy-Bible-1611-James-Version/dp/0310440297/ref=sr_1_1?ie=UTF8&s=books&qid=1307371382&sr=8-1   물론 이 안에는 철자 등의 실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리지널 판에 권위를 두지 않습니다. 다만 400주년을 맞아 1권 정도 소장하며 가끔 보면 기쁨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고딕체로 되어 있어 실제로 읽기에는 힘듭니다).    NIV를 출간하는 Zondervan에서 이런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 큰 아이러니지요. 그냥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샬롬   정동수
2011-06-06 23:51:12 | 관리자
직장동료의 질문으로 생각해보게 됐지만, 이제는 제가 더 궁금하게 되어서 질문드립니다. 저의 직장에 선교사의 아들인 동료가 있습니다. 저에게 성경에 관한 여러가지 질문을 주고받는 중에 국제결혼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과연 국제결혼은 성경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직은 우리나라 정서와 거리가 멀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다소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들과의 결혼문제로 인해 나쁜 결과를 낳았기에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성경으로 찾아보려 했지만 답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우리나라 정서로는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절대적이지만,비그리스도인만 아니라면, 거칠 것이 없어보입니다.TV에서 국제결혼 이야기와 다문화 가정 이야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직장동료의 질문으로 생각해보게 됐지만, 성경적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아있어 이렇게 질문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5: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04 19:27:25 | 윤태근
이 글의 주제:- 창조· 진화 논쟁에 관심이 많은 크리스천이 알아 두면 재미있는 세상의 실태- 본인의 간단한 기독교 변증- 철도 얘기는 말미에 인체에 무해(?)한 극미량 수준만 있으므로 안심해도 된다.   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상(prize)이 있다.그 중 세계구급인 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입상자를 배출하려고 애써도 결국 못 받고 있는 노벨 상(과학 분야)이 있고, 수학 분야에서 노벨 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필즈 상이 있다.그리고 전산학계에는 튜링 상이 있고, 사회· 정치 분야에는 막사이사이 상도 있으며 교육· 문화 분야에는 세종대왕 상도 있(었)다고 카더라.   이런 상들은 연구 실적을 기관에서 따로 평가하여 입상자가 결정되는 상이지만, 아예 contest, competition을 치러서 입상자를 결정하는 대회 성격이 짙은 상도 있다(고전 9:24). 각종 올림픽, 올림피아드가 그 예이며, 이런 곳은 상이 메달의 형태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많고 많은 상 중엔 영예(honor, pride)가 아닌 굴욕(humiliation)에 가까운 상도 있으니,다윈 상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는가?이건 개그 내지 풍자 성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수여되는 상인데...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씨를 스스로 끊음으로써 인류의 발전/진화-_-에 공헌한 경우 수상할 수 있다.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darwinawards.com/   그래, 한 마디로 개소리이다. -_-;;;굉장한 바보짓을 해서 개죽음을 맞이하거나 최소한 생식불능이 된 사람이라면 이 상을 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1. 수상자는 기막히고 놀라울 정도로 충분히 멍청한 짓을 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해야 한다.2. 수상자는 그로 인해 죽거나 고자가 돼야 한다.3. 그 행동은 의도했건 안 했건 자신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인해 야기된 것이어야 한다.4. 당연한 말이지만, 수상자는 정상적인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침례를 받을 만한)5. 행적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공신력 있는 매체에 보도되었다거나, 증언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거나.   예를 들자면,- 공짜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기울이다 자판기에 깔려 죽은 사람. -_-;;; (1994년)- 독사에게 물렸는데, 병원에 안 가고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시면서 깡으로 “난 독사에게 물리고도 끄떡없어”라고 자랑을 하고는 곧 죽어 버린 어느 미국인 남성 (1997년)- 자기 집에다가 수심이 자기 키보다 얕게 수영장을 설치하고는 다이빙 후 목이 부러져 죽은 사람 (1998년)- 광산에서 수정을 캐고 있었는데 위에 달려 있던 수정이 떨어지면서 거기에 정통으로 찔려 죽은 멕시코의 광부.. (2001년)- 벌집을 옮기려고 온몸을 얼굴까지 보호막으로 둘러쌌는데, 작업 중에 그만 밀폐된 비닐봉지 안에서 질식사한 농부.. 숨구멍을 안 뚫었다. -_-;; (2002년)   이런 사람들이 받아 왔다. ㄲㄲㄲㄲㄲㄲㄲㄲ 이런 상이 다루는 사건들이든, 이런 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든 모두 단순히 엽기 해외 토픽 정도로 치부될 법도 한데이 다윈 상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왜냐하면 작년(2010)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첫 다윈 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대전 지하철 서대전네거리 역에서 휠체어 탄 채로 추락사한 어느 장애인.. ㅠㅠㅠㅠㅠ 구체적인 스토리를 아는 분도 있겠지만...고인은 8월 25일, 지하철 타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한참 전에 먼저 탄 어느 60대 여인 혼자만을 싣고 매정하게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내가 알기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한번 문이 열리고 나면 닫히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열려 있으며, 주행 속도도 아주 느리다. 비장애인들이 남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몇 분이 그냥 날아가는지 모른다.   나라도 짜증 났겠다. 그래서 고인은 빡쳤는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휠체어로 쾅쾅 들이받았다. 그런데 2타 때는 약한 엘리베이터 문이 벌어졌고, 3타 때는 그가 그대로 밑으로 엘리베이터 문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서대전네거리 역이 얼마나 깊은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이 무슨 여의나루나 만덕 같은 역이 아닌 이상, 설마 사람이 추락사할 높이였겠나 싶다. 허나, 몸이 불편했던 장애인은 충격을 최소화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는지, 아래의 엘리베이터 상부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떨어져서 그대로 사망. 떨어지면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_-;;;   여인이 탄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막 도착하려던 찰나, 그 장애인과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카 위로 쾅 떨어졌으며, 충격을 받은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불이 꺼지고 고장이 났다. 결국 그 여인도 엘리베이터 안에 한동안 갇혔다. -_-;;;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모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으며, 외국에까지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은 이 사람을 올해의 다윈 상 1등급 수상자로 뽑게 되었다.   듣자하니, 당시 엘리베이터에 구조적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무거운 휠체어로 그 속도로 저 정도로 작정하고 쾅쾅 들이받는 건 어차피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충격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관리자의 관점에서는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그러니 고인의 죽음은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자업자득인 꼴이 됐다. 완전 캐굴욕. 그저 묵념뿐이다.   다윈 상의 취지 자체가 고인드립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식 정서라면 망자에 대한 명예 훼손감일 텐데. 에휴...;;사실은 찰스 다윈조차도 그런 상의 이름에 자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인해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에 대한 고인드립 ㄲㄲㄲㄲㄲ하지만 다윈 상의 발상 자체가 진화론적이니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참고로, 우리나라는 한때(일제 강점기 때) 다윈의 기일을 기려서 과학의 날을 제정하기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다윈일까.;;   다윈 상 자체에는 뭔가 노골적인 종교적 이념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창조· 진화 논쟁을 의식해서, 더 나아가 기독교를 좀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 그 역시 거짓말일 것 같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FSM 날스괴;;)처럼 말이다. 전산학에서 말하는 유한 상태 기계가 아니다!FSM 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venganza.org/   FSM 하니까 여러 모로 라면교 교주가 떠오르던데.. 한국 버전은 라면이고 서양 버전은 스파게티이다. -_-;;라면교 교주는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셨다거나, 극악한 사탄의 무리인 비빔면과 짜파게티 무리를 조심하고 적그리스도인 뿌셔뿌셔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둥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패러디 수준인 반면..FSM에는 좀 더 수위가 높은 비수가 꽂혀 있다.   FSM 신도들이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짓1.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마음 상하지 않으며, 어차피 안 믿는 자들에게 하려는 말들이 아니므로 말 돌리지 마라.2.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6.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 데 쓸 데가 많다.7. 웬만하면 내가 임하여 영지를 내린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을 사랑하랬다. 좀 알아 먹어라.뭐 이런 것들이 있다.   흔히 “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수단이지. 난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그거보다 조금 온화(?)한 사람이 한다는 말은 뻔하다. “뭐, 심신 수양을 위해서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고, 특히 네 종교만 옳다는 독단에 빠지지는 마라”   국내외의 유~명한 개독안티 석학들은 종교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온갖 폐해들, 종교 때문에 벌어진 각종 참극은 둘째치고라도 그게 사람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고 우민화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걸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고 교묘하게 sarcasm을 섞어 풍자하다 보니 FSM 같은 것도 만들어진 것이리라.애초에, FSM교는 “어이쿠! 창조론과 지적 설계를 가르칠 정도로 학교 교육이 막장으로 치닫는다면, 아예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님을 가르쳐도 되겠네요 ㅋㅋㅋㅋㅋ” 이런 비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난 그런 것에는 별로 대응할 필요를 못 느껴서 대응 안 한다.걔네들의 말 중에서 한 20~30% 정도는 특정 문맥에서 '몇몇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 하에서' 맞는 말도 물론 있다.마치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문장 자체는 참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필요할 때 신을 찾으려 애쓴 것도 인간이고 그 신이 필요없다고 신 없이 살자고 부르짖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데 과연 신 없이 인간이 잘 살면 얼마나 훌륭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과연 당신의 혼을 사랑하고 걱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게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는 눈으로,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으며 돈과 권력과 과학 기술로 얻을 수 없다.그걸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 제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아무리 사회 개혁을 외쳐도 사회 구조는 여기서 저기로 쳇바퀴만 돌 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아무리 돈을 처발라서 스펙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상류층들이 이혼을 엄청 많이 한다. 이래도 아직 이해가 안 되겠는가?   뭐 이런 예가 부지기수이다. 인간이 우주에 갔다 오고 핵무기를 발명하고 지구촌을 인터넷으로 연결했다 한들, 과연 저 구도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만, 세상에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이토록 심하고 환경과 여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건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저렇게 영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부족한 것이 존재하는 한,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절대자를 찾는 사람(굳이 기독교가 아니어도)은 없어질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무신론자 중에 미신에 빠진 유신론자들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세상에 저런 데에 왜 매달리는지 내 머리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시한부 종말론자, 도박 중독자, 이단들도 세상에 절대로 안 없어지고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게 당신의 논리에 설득되어 없어질 거라고? 꿈 깨라.   차라리 나의 종교가 '철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말이 될 것이다. 난 새마을호를 타고서 가히 황홀경을 경험했다. 철도를 통해 교양을 높이고 정서를 순화했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키웠다. 철도는 내 삶에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철도님을 안 믿는 사람은 지옥 간다고 말하지 않으며, 버스를 다 배척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철도에 너무 심취해서 빠져 지내지도 않...는다...? 어? -_-;;; 이 정도면 세상 관점에서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종교 생활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이 어찌 철도와 비교가 되겠냐 말이다.   끝으로, “도대체 기독교는 왜 이리도 교파가 많고 이단들도 많습니까?”란 고전적인 질문에 답하며 글을 맺겠다.“윈도우즈에만 온통 악성 코드나 보안 이슈가 들끓고 있고 맥OS나 리눅스는 바이러스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한--같지는 않지만-- 이유 때문입니다. 설마 그게 OS의 기술적 우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 . . . .   해설: 흔히 마이크로소프트를 필요 이상으로 모함하는 진영이나, 컴퓨터에 대해서 뭘 모르는 사람은 윈도우즈가 불완전하고 버그투성이여서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윈도우즈에만 보안 문제가 넘쳐나는 이유는 단 하나, 전세계 개인용 PC의 90%를 넘게 점유할 정도로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리눅스 내지 맥OS는 컴퓨터 매니아· 전문가들이나 주로 쓰는 반면, 윈도우즈 사용자 중에는 보안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컴맹도 엄청 많다.   당신이 해커라면 어느 운영체제를 공략하겠는지 답은 뻔하지 않은가. 그쪽 세계에서도, 윈도우즈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낸 것과 여타 OS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낸 것은 기술적으로 똑같은 난이도라고 하더라도 거래되는 가격이 서로 차원이 다르다. 맥이나 리눅스가 현 상태 그대로 윈도우즈만치 사용자가 많고 그 정도로 해커들의 집요한 공격 표적이 되었다면, 당연히 윈도우즈 이상으로 털린다. 과거에 PC 환경이 열악하고 윈도우즈가 호환성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무방비이던 시절에는 많이 취약한 게 사실이었지만, 최소한 비스타부터는 그것도 다 옛말이며 기술적인 보안 수준은 세 OS가 모두 호각이다.   그런 것처럼, 유달리 기독교계에만 입구가 유난히 지저분해 보이고 온갖 이단 사이비 문제가 창궐하고 루머가 많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조화가 아닌 진짜 꽃 주변에만 진딧물들이 들끓는 이유와 동일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건 90% 정도가 아니라 100% 유일하고 참된 길이니까..;; 아전인수격 해석 같아 보여도 본인은 이게 논리적으로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철도계에도 이단, 사이비 문제 같은 건 없다. -_-;;[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5: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01 12:21:12 | 김용묵
요즘 페이스 북을 시작 하였습니다. 처음이라 흥미롭기도 하고 같은 관심사를 같고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됨니다. 그러다 유소영씨라는 미국 Albany, California에서 거주하는 분의 글이 공감이가 한번 올려 봄니다.   사단의 전략 회의   역사 속에서의 사단의 전략   “친애하는 마귀 여러분,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나님과 커다란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였고,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임으로써 첫 번째 순교자를 만들어 내는 데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 우리는 유대 교인들의 신앙을 하나의 형식과 의식으로 변질시키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 결과 유대 교회의 신앙은 바짝 메마른 율법주의로 전락되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참 사랑과 진리를 가리우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 땅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한 후, 열 두 제자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교회의 참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자 잠시 우리가 구석에 몰리는 듯 했지만, 우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 제국의 사자 굴과 원형 극장에서 한 사람을 순교시켰을 때에 열 사람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급히 우리의 전략을 수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즉시로 핍박을 중단하는 대신, 교회 안에 돈과 세속을 넣어 주었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교회가 재물과 탐욕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교회 안의 진리를 제거하고 오류를 퍼트리는 데에도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가 기독교회 안에 슬며시 넣은 가짜 복음과 거짓 교리들은 지금까지 남아서 현대 기독교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중세기는 정말 우리 마귀들의 전성 시대였습니다.   일천여 년의 긴 종교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개혁자들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면서 진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으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중세기 동안에 교회 안에 침투시켰던 거짓 복음과 가짜 교리들의 실체가 혹시라도 드러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조였는지 모릅니다. 16세기에 일어난 마틴 루터의 개혁 운동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가자,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후예들은 개혁자의 정신을 잃어버렸고 뜨겁게 불타올랐던 개혁 운동의 불길은 꺼져갔습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반격을 가했습니다.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를 사랑하는 대신에 자신이 속한 교파를 사랑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교단 제일주의에 빠진 개혁자의 후예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대신 교단과 교단 사이에 높은 벽을 세우고 서로 자신의 교세를 크게 확장시키는 일에 골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기도로서 성경의 진리를 연구하여 중세기에 무너진 진리를 회복시키는 일에 매진하는 대신에 개혁자들의 실수와 미처 깨닫지 못한 오류들의 구덩이에 앉아서 교파와 교회의 성장을 즐겼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과 공업이 크게 발전되면서, 교통이 발전되면서 한동안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듯 보여서 우리가 긴장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은 그리스도인들을 물질만능주의의 파도에 휩쓸려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유사 이래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그와 함께 그리스도 교회도 부와 힘을 상징하는 거대 교단 속에서 풍요로움을 즐겼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사단의 전략    사랑하는 마귀 형제 여러분들이시여, 이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이제부터의 전쟁의 승패야말로 우리 모두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하면 이 마지막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을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세속적 정신과 오류로 인하여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기도를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도는 세속에 깊이 몰입되어 있는 심령과 진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그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허공에 던져지는 그들의 기도는 단지 물질과 복에 매달린 어리석은 요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목사들의 설교를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설교는 지금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와 정치와 사회 문제로 채워져 있고, 의와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성경의 복음 그대로를 정확하게 강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와 같은 중요한 예언서를 강론할 것에 대해서는 아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류와 무지로 혼탁해진 그들의 설교가 아무리 크게 외쳐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들의 생애와 마음을 하늘로 이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내가 이 마지막 시대에 여러분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관건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비록 그들이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기도를 하고, 교회에 매 주일마다 출석한다고 할지라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믿도록 해놓고, 그들의 시간을 우리가 장악하기만 하면 그들의 마음과 생애는 불신자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들을 사소한 일로 바쁘게 만들면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 버는 일로 바쁘게 만드십시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좇는 일에 모든 시간을 소비하도록 유도하십시오. 사람들의 지출을 가능한 한 늘리게 만들고, 그 빚을 갚기 위하여 불철주야로 일하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가정에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물건이나 제품을 광고하는 전단물을 정기적으로 배포하고,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여신 한도를 크게 올려 주십시오.   행복은 물질에서 온다는 허상을 믿도록 가르치고, 아내들의 사치심을 부추겨서 남편들로 하여금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이상 일하도록 만들고 일주일에 7일을 일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만드십시오. 필요하다면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갖도록 유도하고, 가정을 지켜야 되는 어머니도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직업 전선으로 내몰아 가십시오. 가족의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계속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설득하십시오. 일단 여인들로 하여금 밖에 나가 일한 후에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가정으로 돌아오게 만들면, 그들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정성 어린 식사와 환한 미소를 제공할 여력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짜증과 신경질과 투정이 자주 새어 나오게 될 것이며,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가정에는 조그만 일로도 다툼과 투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고, 결국에는 이혼이라는 파국으로 끌려가는 케이스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돈과 이기심을 채우는 일로 인하여 극도로 지쳐있습니다. 하루 종일 과로한 일을 한 후에 그들이 귀가하는 저녁 시간에는 자극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뉴스와 드라마를 보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그들의 양심에 속삭이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만한 여유를 도무지 가질 수 없도록 몰아가십시오. 모든 가정과 상점과 직장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음악을 무차별하게 퍼부으십시오. 어디를 가든지 신문과 잡지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인터넷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도록 현대 사회를 만드십시오. 대형 광고판과 연예 뉴스와 비디오와 영화를 통하여 불결하고 거룩하지 못한 그림과 말들이 계속해서 튀어 나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선정적 그림과 영화를 다량으로 공중에 살포하고, 결혼에 대한 가치를 혼돈케 하여 청년들의 도덕과 윤리와 신앙을 완전하게 무너뜨려야 합니다. 각종 토크 쇼에 나오는 말 잘하는 사회자와 출연자들을 통하여 이 사회의 가치관과 풍조를 부도덕과 불법으로 망가뜨리십시오. 그리하면 남자가 남자와 연애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동성 연애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이 지성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선은 실현 불가능한 특별한 것이고, 악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의 일면인 것으로 부각시키십시오.   일주일 내내 사람들의 마음을 항상 바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전략입니다. 사람들이 헛된 것에 소모하는 시간이 많을 수록 그들이 하나님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가정마다 컴퓨터를 살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각 컴퓨터마다 초고속 통신망을 연결시키십시오. 날마다 그들에게 흥미로운 광고 이 메일을 무수히 보내고, 각종 정보와 스팸 메일을 다량으로 퍼부어 그들의 머리를 혼미하게 만드십시오. 또한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막론하고 모두가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풍조를 유행시켜서 마음과 정신이 조용한 가운데 거룩한 하늘의 분위기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전혀 주지 마십시오. 아이들도 각종 시험 공부와 스포츠와 음악 레슨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만들고, 어려서부터 이기적이고 경쟁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상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어야 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게 하여 부모와 격리하여 살도록 유도하면, 그들이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되어 부모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어린 나이부터 성과 마약과 노름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사단의 전략   만일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이 다니는 교회를 이용해야 합니다. 교인들 사이에 불화와 경쟁이 멈추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각종 영성 훈련이나 제자 훈련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목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수적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골몰하게 만들면, 그들은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채 교인들에게 숫자와 크기를 강조하는 가르침과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의의 원칙들은 점점 더 내려가게 될 것이며, 교회는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만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보다는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는 예배 방식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모으게 될 것이며, 성경의 진리보다는 눈에 보이는 기적과 은사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기적들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내줌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훔칠 수 있는데, 그것으로 그들은 우리의 완전한 대리인들이 될 것입니다. 만일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 일과 교회 안에 각종 기적과 은사를 넣어주는 일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교회는 우리의 가장 효과적인 서포터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결국에 가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무당이 귀신을 모시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목사로 하여금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하는 설교를 하도록 만드는 것도 매우 효과적으로 교인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그분의 진리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교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사회적 이슈를 주장하기 위하여 거리로 나서게 될 것이며, 급기야는 데모와 무력 투쟁도 불사하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마귀 형제들이시여, 우리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일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시간을 빼앗아 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지 못한 채 세상과 교회 안을 방황하다가 그들의 삶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여러 마귀 형제들에게 꼭 드리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온 세상 사람들은 지금 사단이 운전하는 급행 열차에 타고 있다. 열차의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로 그 열차는 가득 차 있다. 그 급행 열차는 너무나 빨리 달리고 있기 때문에 열차에서 뛰어 내리고 싶어도 온 몸을 던지는 위험을 각오하고 뛰어 내리지 않는 한 내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급행 열차에 몸을 맡긴 채 무작정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결정을 하기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런 결정이나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이런 저런 행로에서 기회들을 주실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 되어서 인생은 사단이 인도하는 급행 열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인생 최후의 날에 마지막 호흡을 하면서 후회의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게 된다. 이렇게 끝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단순한 마음과 단순한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단순한 환경이 필요하다. 조용하고 소박한 환경 속에서 하루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를 만나서 대화하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마다 그분과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간이 허락되는 환경을 찾아야 한다. 그분의 진리와 의와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연구하고 명상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리는 항상 단순한 것에 있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사단이 던진 그물에 잡힌 꽁치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가? 인생은 짧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경건하고 단순한 삶을 위해서는 뼈를 깎아내는 듯한 결정과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삶을 위해서는 단순한 가정 경제가 필수이다. 빚과 지출을 줄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의복과 차와 집이 지금보다 더 소박해져야만 단순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해질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의 탐욕과 욕심을 버려야만 단순한 삶이 실현될 수 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31 10:29:09 | 허광무
※ 수요일에 올린 저의 거리 설교 원고문에 수정을 가미한 제 2판입니다. 다시 실수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혹시라도 보시면 제게 연락해 주시면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참여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이 글이 형제 자매 여러분들의 적극인 참여로 완성되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많이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샬롬.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초등(국민)학교 음악 시간에 불러봤음직한 우리 민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네 어르신들이나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셨으리라 싶습니다.   참으로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민요는 이 <아리랑>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네 가슴에 쾅 박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한 명 한 명의 죄인들을 바라보시고 끊임없이 참고 말리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품을 끝까지 떠나려 하는 죄인인 인간의 경우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창1:1) 그 위의 모든 만물들을 만드신(창2: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고(마10:30) 우리 몸 속에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시139:15)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시139:7-10)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하나님을 전혀 의식할 수 없게 하고, 그래서 마침내는 그분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게 하는 것이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사59:1-2)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사59:1-2, 킹제임스 흠정역)   이것이 바로 원죄(sin)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시면 피상적인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무슨 이유로 원죄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며, 무슨 이유로 그토록 제가 여러분들께 이를 애타게 호소해야만 하는 것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원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죽은 사람입니다.(엡2:1) 우리는 거의 모두 어떤 사람이 겉보기에 몸이 건강해 보일 때에 '그 사람은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겉보기에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전반적으로 건강할까요?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도 있습니다.(고후5:7) 어떤 사람은 몸은 건강한데 혼, 즉 정신과 마음이 약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몸은 약하지만 혼에 속하는 정신과 마음이 강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을 판별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도구입니다.   그러면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물론 이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딜 가나 원죄가 있는 사람을 '죄들 가운데서 죽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본래적으로 하나님과 관련한 모든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영적인 세계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고전2:14) 그와 동시에 여러분은 하나님 눈 밖에 나 있었던 것이고(엡2:11-12),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정죄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요3:18) 읽는 자(듣는 자)는 깨달으시길 바랍니다!!(마24:15b)   둘째, 여러분은 다른 죄들이 아니라, 선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요3:18, 36; 계20:15) 여러분은 적어도 한 번 쯤은 '에이.. 나는 남들에 비하면 얼마나 착한데~', '저런 나쁜놈! 저런 놈은 불살라 버려야돼! 에잇!', '아무쪼록 선행을 많이 해야 죽어서도 평안해.. 그래야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을테니깐 말야.' 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 여러분과 같았을 땐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사55:8-9) 그리고 말씀을 알게 되면서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이 '원죄' 때문에 - 다른 죄들을 용서하시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시게 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17:5)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사64:6a)   그렇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자기 자신을,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이유가 이 두 구절에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그래서 모든 악의 근원인 '원죄'가 여러분들 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본래적으로 여러분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절대자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롬3:23) 즉, 여러분의 힘으로는 그토록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엡2:8)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롬3:23) 모든 사람들은 지옥 불의 정죄를 영원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계20:10, 15) 그것도 지옥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라는 사실입니다!(막9:44,46,48 - 흠정역만 44,46절이 있음) 지옥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없는 줄 아십니까? 천국이 있다는 것은 믿으시면서 지옥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은 거부하시렵니까? 지옥은 실존합니다! 성경에 무려 54번이나 나온 장소입니다! (분변이 있는 분들은 나중에 찾아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 오직 흠정역 성경으로만) 읽는 자(듣는 자)는 깨달으시길 바랍니다!!(마24:15b)   셋째,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롬13:11-12; 벧전4:7; 벧후3:10a)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원인 모르게 우리들의 평안을 가로채는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여러분도 비록 배우시지는 않았어도 말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롬1:19b) 이제 제가 여러분께 왜 그렇게 긴박하게 '수선을 떠(?)'는지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딤후4:2)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때는 늦으리~~'입니다. 오직 성경은 지금 이 때, 여러분이 이 땅위에 살아계실 때에만 영존하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모든 거듭난 성도 - 그리스도인 - 들이 마지막 때에 채여 올라가면(휴거: 살전4:16-17) 그 때에는 정말로 온 땅에 악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살후2:7-8) 예수님께서도 직접 이제껏 없었고, 그 후에도 없을 대 환란이 그 때 있을 것이라고 한번에 강력히 선포하셨습니다!(마24:21) 게다가 대환란기에는 인류의 3분의 2 이상이 악한 통치자에게 죽는다고 합니다.(슥13:8b) 정말 이 시대에 일어나는 구원을 그 때 받으시렵니까? 그렇다면 그 때에는 짐승의 표 '666'을 받으시면 절대 안됩니다!!(계19:20; 20:4) 이래도 그 때 가서 구원 받으시렵니까? 때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어서 하나님께 돌아오시길 바랍니다!(전12:1)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딤전2:4; 벧후3:9) 읽는 자(듣는 자)는 깨달으시길 바랍니다!!(마24:15b)     지금,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 피하려 했고,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아담과 하와처럼(창3:6-8, 23, 24) 하나님을 멀리 떠나보려 하시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안타까움으로 펜을 잡았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여러분처럼 나의 죄가 넘쳤으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려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엡2:8)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주님의 간절함으로 여러분께 호소하고 있습니다.(잠8:1)   저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의 기분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지 마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 글, 이 은혜의 복음을 읽고 듣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약4:14) 그리고,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히9:27) 이것은 여태껏 변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사40:8; 마24:35)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절대 불변적인 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토록 고치기 어렵다는 암도 고쳐볼려고 무슨 일이든 하려 하는데, 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영혼의 문제는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육신에 걸리는 암조차도 쉽게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안고 사는 평생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인 영혼의 문제는 아무도 고쳐줄 수 없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고쳐줄 분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요14:6; 행4:12)   저는 이제 여러분께 강력히 선언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값을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로 지불하시고 고귀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골1:14(흠정역))   이제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자신의 구원자로 시인하시면 됩니다.(롬10:9-10)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분을 직접 자신의 구원자라고 시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받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이 구원이란 선물을 과감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어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시기 전에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딤전2:4) 오늘 저와 같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다! 오늘 저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길 원합니다!(눅10:20b)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7 18:36:03 | 소범준
심순덕   엄마...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덕없는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외할머니 보고 싶다!외할머니 보고 싶다!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아!......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6 11:10:27 | 허광무
블로그를 정리하다 한참 전에 퍼논 글이 좋아서 여기에 올려 봄니다.    여친 생긴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편지      아들아, 세상의 반은 여자,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남자로 이루어져 있단다. 하느님은 어떤 생각을 하셧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게 하셧어. 엄마가 인생의 짝인 아빠를 만났듯이 우리 아들도 나머지 반쪽을 찾게 되겠지.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너는 잘 모를 거야. 왜냐구? 그건 자석의 극과 극처럼, 그녀는 여자고 넌 남자이기 때문이지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할 줄 알아라는 말을 하고 싶구나. 그러기 위해서 네가 알아야 할 몇가지를 엄마는 당부하고 싶단다.   ♡ 아들아! 그녀의 몸은 유리와도 같아 너의 그녀의 가장 큰 차이는 뭐니뭐니해도 신체적인 차이겠지? 그러나 아들아,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자 몸의 소중함이란다. 여자는 유리와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잘못했다간 영영 붙일 수 없는 깨진 유리조각이 되 버리고 만단다. 요즘 너희들 세대의 성 가치관이 많이 개방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행동이 앞서갈 때는 이미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해. 낙태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가고 사랑없이 쾌락만 좇아서는 안되겠지? 엄마가 너를 낳았을 때의 그 아픔은 실로 상상하기 힘든 것이란다. 하지만 아픈 만큼 믿음직한 아들을 보게 되었지. 그런데 여자의 몸이란 너무나 복잡하고 하나라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이야. 특히 한 번 낙태를 하는 것은 출산의 아픔, 후유증과 맞먹는 것이기 때문에 젊음은 물론 건강까지 앗아가게 되지. 네가 정말 사랑하는 "그녀"라면 그녀의 신체까지 소중히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해. 장차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생명을 잉태하게 될 그녀의 귀중한 몸을 조심스럽게 다뤄져야겠지?   ♡ 아들아! 작은 섬세함이 그녀를 감동케한단다 설마 너까지 여자는 화려한 것과 크나큰 이벤트에 감동하는 존재로 알지는 않겠지? 수백송이의 장미와 값비싼 반지, 브랜드 옷만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네가 무심코 내던진 자상한 말 한 마디, 길을 걷다 무심코 생각난 그녀를 위해 꺾은 들꽃 한 송이, 잘 자라는 전화 한 통화에 여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야.  그녀를 위해 뭔가 큰 것만을 해주려 골머리를 앓지도 말 것이며 그녀를 감동시키는 자체가 귀찮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정말 사랑한다면 너의 감정 가는대로, 그녀를 위한 노력 그대로 표현하면 그녀도 가슴속으로 느끼게 될 거야. 여자를 감동시키기 위한 방법, 그것은 바로 작은 섬세함이란다.    ♡ 아들아! 때로는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다 왜 너는 항상 그녀에게 이기려 드니?  모든 싸움은 서로의 기와, 자존심, 고집 등이 부딪쳐서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네가 그 조그만 여자에게 이겨서 무얼 어쩌려고 그러니.  여자란 말이지, 자신이 잘못 했다는 걸 안다 해도 고개를 굽히려 들지 않아.  그건 고집이나 뻔뻔함만으로는 설명이 안돼. 최소한의 여자로서의 "자존심"때문이지. 여자는 자존심이 꺾이는 순간, 여자로서의 매력도 일순간에 상실하지.  이 세상이 모두 끝난 것만 같은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기도 하거든. 물론 너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여자의 속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단다.  혹시 그녀와 싸우게 되더라도 5번 중 3번 정도는 항상 져 주어라. 그렇다고 해서 넌 패자, 그녀는 승자가 되어 의기양양하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전보다 더 상냥하고 부드러워진 그녀의 태도를 접하게 될 걸? 여자는 남자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갈구할 때가 많아. 알아도 모른 척, 그녀의 자존심을 받들어 주는 것이 현망한 길이며 사랑을 가꾸는 비결이란다.    ♡ 아들아! 환상은 욕심의 씨앗! 여자든 남자든 이성에 대해 크고 작은 환상을 갖고 있단다. 물론 너 역시 여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거야. 너희 아빠만 해도 총각 시절, 여자는 화장실도 안 가고, 이슬만 먹고사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너희 세대야 그런 "순진함"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여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라.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야. "사랑하니까", "여자니까"라는 이유들로 그녀의 생각이나 행동에 한계를 긋다 보면 그녀도 힘들겠지만 오히려 네가 더 힘들어질 거야. 비록 네 눈에 못마땅한 점도 있을 테고 눈에 띄는 단점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옥에서 티를 찾으려 하지 말고, 티에서 옥을 찾는 습관을 길러라.  지나친 환상은 널 괴롭게 할뿐만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단다. 괜스레 욕심을 키워 한참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나이에 불만 투성이어야 되겠니? 너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네 주위의 여자들의 장점부터 찾는 습관을 길러라. 특히 네가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녀의 단점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단다.    ♡ 아들아! 화려한 꽃보다는 너만의 꽃을 찾아라 화려한 꽃은 꺾기 쉽겠지만 모두 한 순간이란다. 예쁜 여자를 보면 엄마도 같은 여자이지만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 그때뿐이지, 그녀가 너의 꽃은 될 수 없을 거야. 그녀의 가치관, 성격, 말투, 행동가짐, 취미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졌을 때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외모의 여자들은 이미 너 뿐만 아니라 뭇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 그만큼 경쟁률도 높을 뿐더러 알고 보면 그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는거야. 하지만 너의 안목, 심미안으로 고른 꽃은 오로지 너만의 꽃이 되는 것이지. 한 순간 폈다 져버리는 화려한 꽃보다는 꾸준하게 빛을 더해 가는 실속 있는 꽃을 골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여자란 사랑받는 만큼 빛나게 되어 있어. 진실한 너의 사랑을 그녀에게 듬뿍 쏟아 보렴.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한 송이 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5 15:23:18 | 허광무
※ 최대한 글을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다듬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알게 모르게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수단(쪽지,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시면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 저는 제 글에 대하여 읽으시는 형제 자매님들의 열린 참여를 기다립니다. 언제라도 제 글에 대해서 참여하실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참여해 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다립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초등(국민)학교 음악 시간에 불러봤음직한 우리 민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네 어르신들이나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셨으리라 싶습니다.   참으로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민요는 이 <아리랑>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네 가슴에 쾅 박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하는 한 명 한 명의 죄인들을 바라보시고 끊임없이 참고 말리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품을 끝까지 떠나려 하는 죄인인 인간의 경우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창1:1) 그 위의 모든 만물들을 만드신(창2: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고(마10:30) 우리 몸 속에 있는 것까지도 다 아시고(시139:15)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시139:7-10)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하나님을 전혀 의식할 수 없게 하고, 그래서 마침내는 그분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게 하는 것이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사59:1-2)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사59:1-2, 킹제임스 흠정역)   지금,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을 멀리 피하려 했고,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아담과 하와처럼(창3:6-8, 23, 24) 하나님을 멀리 떠나보려 하시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안타까움으로 펜을 잡았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여러분처럼 나의 죄가 넘쳤으므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려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엡2:8)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주님의 간절함으로 여러분께 호소하고 있습니다.(잠8:1)   저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의 기분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글을 읽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지 마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 글, 이 은혜의 복음을 읽고 듣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약4:14) 그리고,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히9:27) 이것은 여태껏 변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사40:8; 마24:35)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절대 불변적인 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토록 고치기 어렵다는 암도 고쳐볼려고 무슨 일이든 하려 하는데, 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영혼의 문제는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육신에 걸리는 암조차도 쉽게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안고 사는 평생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인 영혼의 문제는 아무도 고쳐줄 수 없습니다. 영혼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고쳐줄 분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요14:6; 행4:12)   저는 이제 여러분께 강력히 선언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값을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로 지불하시고 고귀한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골1:14(흠정역))   이제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자신의 구원자로 시인하시면 됩니다.(롬10:9-10)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분을 직접 자신의 구원자라고 시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이 구원이란 선물을 과감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어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시기 전에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저와 같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2011-05-25 14:41:51 | 소범준
한참 전에 본 글인데 여기에 올려 봄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않을때 "괜찮아,괜찮아"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면서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곳을 직장이라고 한다)에는 즐거운 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세개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 시킬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여기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살이든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 : 아빠와 선생님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다. 14세때 : 우리 아버지요? 세대차이가 나요. 25세때 :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 : 아버님 께서 살아 계셧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를 안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하고 성가도 부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 옮긴 글입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4 14:58:13 | 허광무
112TH CONGRESS 1ST SESSIONH. CON. RES. 38   Recognizing the 400th anniversary of the publication of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킹 제임스 성경의 출판 400주년에 부쳐   IN THE HOUSE OF REPRESENTATIVESAPRIL 12, 20112011년 4월 12일, 미국 의회   Mr. ADERHOLT (for himself and Mr. RAHALL) submitted the following concurrent resolution; which was referred to the Committee on Oversight and Government Reform 공동 결의 (CONCURRENT RESOLUTION)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된 지 400주년이 되었다.킹 제임스 성경은 미국에서 출판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킹 제임스 성경은 권위역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영어의 언어적 형성에 독자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는 수백 종류의 관용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킹 제임스 성경의 언어는 무수히 많은 시와 연설, 설교문, 음악, 노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미국의 문화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성경이 가르쳐짐으로써 미국의 건국 이념에 담긴 시민 정부라는 개념과 관련 법률이 태동하였으며, 이에 대한 결정적인 공로자도 킹 제임스 성경이다.대통령을 포함해 공직에 종사하는 관료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 취임 선서를 킹 제임스 성경에다 손을 얹고 해 왔다.역대 국가 원수들도 성경이 미국의 발전에 끼친 탁월한 영향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민주당의 앤드류 잭슨 전대통령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조국을 지탱하는 반석”이라고 일컬었으며,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국내외로 대면하고 있는 이 모든 복잡하고 무시무시한 문제들의 대한 해답은 저 작은 책 안에 들어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킹 제임스 성경은 수많은 개인, 가정, 사회의 교육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역사상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널리 읽힌 저작물이며, 올해로 드디어 출판 400주년을 맞이했다.2011년의 킹 제임스 성경 출판 400주년 기념은 교회 차원에서와 공공 행사 차원에서 행해질 것이며 관련 학회에서는 추가 연구가 논의되고 연설· 설교들이 오갈 것이다.킹 제임스 성경이 미국에 끼치는 영향력과 사회 기여도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그러므로 이제 국회는 상· 하원 공히(1) 킹 제임스 권위역 성경의 출판 400주년을 기념하며,(2) 그 성경이 미국의 수많은 가정과 개인과 기관들에 끼친 영구한 영향력을 인정한다. 그리고(3) 그 성경이 미국에 지금까지 베푼 공적을 치하하는 바이다. * 우리 같은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인데, 번역문이 올라와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그냥 발번역 한 걸 올립니다.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원문 사이트는 예나 지금이나 페이지가 굉장히 더디게 뜨며 속도가 느린 듯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1: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3 23:29:52 | 김용묵
* 스포일러: 이 글은 잘 나가다가 뒷부분부터 삼천포로 빠지는 구조임을 밝힌다. 분명히 예고했다.   본인은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모르는 일명 '예수쟁이'이다. 고등학생이던 1998년 가을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 번 완독했으며, 2002년 무렵에 KJV believer가 되고 세례 대신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전체 거리 설교 때 난생 처음으로 preaching을 해서 지금까지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   주변의 불신자, 개독안티, 무신론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교회 댕기는 주변 사람들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접했는지 별 희한한 교회, 예수 사칭하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에 의한 온갖 나쁜 기억과 응어리는 꼭 하나씩 갖고 있는 듯했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고.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실은 불신자들이 보는 성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상대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본인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예외가 아니다-_-. 그런 못난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상하게 산 사람들도 다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그것만치 기분 나쁘고 정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는 애시당초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란, 열심히 도 닦고 인격 수련해서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고매한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이다. 병원에 완벽한 사람, 성한 사람이 다닐 리가 없잖아..;; 100%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가입하고 나면 그 교회의 100% 완벽 무결성은 깨진다. -_-;;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초청에 차별이 있던가?? 신앙생활이란 그런 마인드로 하는 거다.   그리고 기독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안목이 늘 객관적이고 정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형 교회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비리 많고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진짜 성경대로 좁은 길을 고집하는 마이너 교회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고 편협하고 옹고집 교조주의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면? 교회는 어떤 노선을 가든 어차피 욕을 하게 돼 있는 불신자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마 11:18-19 같은 부류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는데, 신앙생활에 관한 한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실족한 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온갖 오덕질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이 원래 다 저렇나 식으로(ㄲㄲㄲㄲㄲㄲㄲㄲ) 시험 들게 하고 간증 망친 게 더 많을 것이며, 기독교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내가 빚진 게 더 많을 것이다. -_-;;; 죄인을 받아준다는데 내가 왜 마다하며, 다른 죄인으로부터 끼친 여파에 그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인간의 의는 몹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그에 반감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에 불쾌해하기에는 인간의 죄악이 너무 극심하다는 현실에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이런 발상의 차이가 불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누구 만만찮게 나만의 인생 개똥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죄의 결과와 여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열폭하고 인생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고전 15:10)   길거리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패턴이 있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이 어떤 책인지 먼저 얘기한 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죽음과 심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경제· 교육· 정치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이걸 전하려고 한다.   거리 설교라는 게 처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다. 본인도 초창기에는 원고를 미리 써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 봤는데, 결국은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요즘은 원고 없이도 한번 말을 하면 최하 15분은 금방 지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복음과 구원 메카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조리 있게 얘기도 곧장 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말 더듬고 혀 꼬이고 실수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거리 설교는 꽤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다. -_- (본인, 작년 여름에 간증할 때도 얼마나 말 자주 더듬고 말투가 어눌했던가? ㄲㄲㄲㄲ)   또박또박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나면 굉장히 기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이 주는 기쁨”이라고 한다. “네가 드디어 나에 대해서 공개 석상에서 당당히 증언을 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정도? ㄲㄲㄲㄲ거리 설교가 주는 유익: http://biblebaptistpublications.org/streetpreaching.html 클릭. (영어)   그런데, 하루는 거리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선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간절히 들었다. “여러분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철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어쩌구저쩌구... 중략)이처럼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철도는 21세기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철도를 알면 역사와 지식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철도는 정서 수양과 교양 함양에 좋습니다. 철도를 알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깁니다. 이렇듯 철도 덕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한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 갈 때 철도를 적극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나눠 드리는 열차 시각표를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설마 진짜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왔다면, 여기 계시는 크리스천들께서 “용묵 형제가 부디 철도를 끊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라도 하셔야 할 배도(背道)-_- 단계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철도를 전하는 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지 않다. 철도를 전하다가 순교? 순직?했다는 사람 얘기는 못 들었다. -_-철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죄, 죽음, 심판, 지옥 같은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지 왜 너만 독단적으로 구냐?”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요즘은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을 통합해서 교통 허브로 건설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게 무슨 교통수단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랍시고 경계라도 해야 할 대상이지는 않다.   허나, 철도에는 불행히도 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하늘로부터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 철도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지 뭐, 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도 철도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는다. (뭐, 주변에서는 용묵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할 거라고 악담을 하는데... ㄲㄲㄲㄲㄲ)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내 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은 내게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절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철도와 본인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고 필연이었다.   본인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지하철이 깔리는 날을 꿈꾼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 “열 도시를 다스리라”(눅 19:17)가 ‘10개 철도 노선(사철 ㄲㄲ)을 다스리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사 40:3)는 사막에서 철도가 건설되는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강연이라도 실컷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철도 얘기를 담대하게 늘어놓고 싶다.   나는 한때는, 요즘 같은 영악하고 험악한 세상에 나 같은 별종, 괴짜, 덕후가 아니면 누가 성경 따위를 믿겠는지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나 말고는 이제 아무도 주를 안 섬긴다고 생각했던 엘리야 타입의 소영웅주의 중2병이긴 했다만, 세상의 유행 풍조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다시 말해, 철도 덕후나 KJV believer나 비슷한 수준의 geek라고 생각했....는데, 후자에 속한 분에 따르면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그 둘을 상호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러네.. ㅋㅋㅋㅋㅋ 정말인지?? ㅠㅠ[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3 23:22:37 | 김용묵
말씀을 들으면서 킹제임스흠정역성경, 개역성경, 카톨릭성경, KJV, NIV 성경을 대조하면서 탐구하시면 아마 뭔가가 가슴에 와 닷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제가 전에 올린 글에 빼먹으면 안될 것들이 있음에도 제가 빼먹어서 부담감을 가지고 늦은 시간까지 글에 대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여기서 완성도라 함은 피차 바르게 말씀의 은혜를 나누어야 하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을 잘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5월 22일 주일 설교 : 믿음에서 믿음까지 (정동수 목사님)   http://www.cbck.org/NewSermon/View/1o8       로마서 10장 17절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   개역성경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카톨릭성경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KJV : So then faith [cometh] by hearing, and hearing by the word of God.   NIV :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 개역성경은 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믿음이 온다 라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빌립보서 3장 9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개역성경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카톨릭성경 :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KJV :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NIV :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that comes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th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God and is by faith.   *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명확한 말씀과 개념으로 이해를 가지면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것을 발견하리라 봅니다.         로마서 4장 21~22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개역성경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카톨릭성경 :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KJV : But now the righteousness of God without the law is manifested, being witnessed by the law and the prophets; /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 unto all and upon all them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NIV :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갈라디아서 2장 20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개역성경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카톨릭성경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KJV :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NIV :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단 한 번 도 불순종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예수님에겐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말씀들을 묵상해 보면 아 이것이 바로 그것이구나! 하실겁니다.              로마서 1장 16~17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성경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카톨릭성경 :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KJV :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NIV :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 사탄도 짝퉁복음이 있겠죠? 누구의 복음인가가 중요하겠죠! 그리스도 라는 말이 빠져도 별 문제없는데 뭘그러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도 해 봐야겠죠! 온전히 보전된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꽝! 인쇄 도장을 찍혀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개역성경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카톨릭성경 :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KJV : Whom God hath set forth [to be] a propitiation through faith in his blood, to declare his righteousness for the remission of sins that are past, through the forbearance of God;   NIV :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갈라디아서5장 22~23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개역성경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카톨릭성경 :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KJV :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gentleness, goodness, faith, / Meekness, temperance: against such there is no law.   NIV :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 성령의 열매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인해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성품이라고 보면 될까요?  믿음은 성령님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 요~기 있네요!!!!!!!!      개역성경은 충성으로 번역되어 예수님이 자유를 주셨는데 요~기요 충성 땜에 교회에 열심히 ( ) ( ), 목사님께 ( ) ( ), ....이것은 요즘도 쌍방간에 많은 피해사례를 만들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2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그러므로 이렇게 큰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개역성경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카톨릭성경 :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KJV : Wherefore seeing we also are compassed about with so great a cloud of witnesses, let us lay aside every weight, and the sin which doth so easily beset [us], and let us run with patie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NIV :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믿음을 따라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흠정역 성경과 개역성경은 번역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킹제임스흠정역성경으로 교정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개역성경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카톨릭성경 :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KJV : And they that are Christ's have crucified the flesh with the affections and lusts. / If we live in the Spirit, let us also walk in the Spirit.   NIV :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crucified the sinful nature with its passions and desires. /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 한국교회는 '행하라' 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냥 성령안에서 삶의 길들을 걷고 또 걸으면 된다고 말하네요. 성령으로 누가 이걸 행하라 저걸 행하라 하면 참된자유가 이겁니다. 라고 프리~~한 모습 보여 줘야 하겠습니다.       ****  설교를 듣고 내용을 달아 보았습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3 02:38:09 | 노영기
(요 3:14~18)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요 5:1~4)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줄 아나니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라. /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 5: 10~1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이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또 그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 우리는 우리 안에 반드시 이 증언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말씀을 임의로 발췌합니다.   제가 믿는 믿음은 성경의 기록대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이심을 믿는 것이며 성경의 문자적 기록들 가운데 드러나는 모든 연대기적 역사적 기록들의 사실성을 믿는 것이며 인류역사 가운데 창조주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과 십자가 형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과 묻히신 것과 부활하신 것과 이것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과 이 사실과 관련된 많은 기록과 언약들이 성경의 기록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것도 나의 믿음입니다.   휴거에 대해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위 나열된 말씀들을 믿음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휴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글 : 휴거가 자신있다는 분들에게 (부분적 스크랩)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 했기에 나는 구원받았다 또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했으니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답은 옳은 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인정해주셔야 한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주체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를 휴거해 가시는 주체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주체자인 예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인정해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구원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구절을 대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성경구절들과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존재이고 얼마든지 실족하면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성경구절을 비교해볼까요?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성경구절에 몇 십 배나 많은 성경구절에서 우리는 구원을 마지막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전자는 우리의 행위의 노력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고 후자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십자가로 십자가로 나아가는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바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 중 사도바울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현재에 있다고 보십니까? 당대에 누가 있어 사도바울의 믿음을 따라 오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고전 9:27절에 남에게 복음 전파한 후 내가 도리어 버림받을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쓰며 살며 힘겹다는 뜻은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일이기에 힘들다는 것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시는지요. 육체의 소욕을 이겨냈을 때 받게 되는 성령님의 은혜 그 안에서 죄의 권세를 벗어난 참된 자유, 그리고 이어서 찾아오는 영적충만함, 진정한 행복감 그리고 평안함을 느껴보신 적이 당신은 없으십니까?   구원과 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개판으로 살면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정죄하고, 술 먹고, 담배 필 것 다 피고, 포르노 볼 것 다 보고, 지나다니는 여성들 짧은 치마 입고 허연 다리 보이면 안 보는 척 하면서도 볼 것 다 보고 속으로 음탕한 생각들을 남모르게 즐기면서   구원은 완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안착하는 날이 우리의 구원의 종료시점입니다.   휴거는, 구원은 당신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인정하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왜냐면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해주시는 주체인 예수님의 눈높이와 판단이 우리의 휴거를 결정하고...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신다는 것을 진정이 담긴 마음으로 여러 성도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1 02:18:32 | 노영기
이웃블러그를 통해서 어느 형제님의 글이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고 마음이 분개되어서 댓글을 달았었습니다. 그런데 제 견해를 밝히라는 댓글이 있어서 말씀들을 상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찌 이리 가벼이 취급하며,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데 말씀을 앞에 놓고 궤변을 저리도 늘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나름대로 자기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강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과 바르게 표현하지 못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릇된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다시 알기 전까지는 이 형제와 비슷한 생각들을 했지 않았을까?, 좀 과격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의미하는 바가 이런 것 인가보다 그렇게 받아 들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래에 이 형제의 글을 부분적으로 스크랩한 이유는 현재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성경을 이해할 수도, 이렇게 믿을 수도, 이렇게 종교행위 가운데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삼고자 해서 글을 다루었습니다.   이 형제는 현재 전도사 인것 같고 작은 개척교회를 담임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모르지만 함께 참고해서 본다는 댓글도 보았습니다.   혹시 이 형제가 올바른 말씀을 찾아 이곳까지 왔을 때 자신과 관련된 글을 보고  그 형제가 상처받을까 하는 마음에 제가 올린 글을 보시고 상처주는 말이나 댓글은 삼가 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저는 이 형제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 형제의 글도 길어서 앞부분 부터 부분, 부분 스크랩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준비한 성경관련 구절들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     (요 5: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딤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된 책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도록 연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다시태어남   (요 3: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나이까? 하매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1:12~13)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에게서 다시 태어납니다.   *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레 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   (히 9:22)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   (히 10:3~4) 그러나 그 희생물들에는 해마다 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   * 죄의 사면은 반드시 피 흘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짐승의 피를 통한 대신속죄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히 9:11~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히 9:25~28)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   *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통해서 단 한 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제거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단 한 번의 예수님 자신이 흘려주신 그 피로 죄들을 제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안 받아 들일지라도 성경은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그 보배로운 피로 죄들을 다 제거해 주셨다는 것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심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두 번째 다시 오실 때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실하신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일들을 믿으며 그 약속들을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고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100% 믿습니다.     (요 1:29)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개역성경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KJV : The next day John seeth Jesus coming unto him, and saith,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실 때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세상 죄를 짊어진,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갈 분으로 ‘지고 가는’ 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허다한 한국교회 목사들이 이 말씀을 잘 못 해석하여 행위 구원을 가르친 다던가 예수님처럼 무언가 우리도 짊어지고 가야한다든가 뭔가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소위 하나님의 일들이라고 하는 것을 성도들의 등짝에 지워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여 삼창 외치고 여러 번 회개기도도 시킵니다. 도리어 죄 짐에 눌려 살고 회개, 회개, 회개 하면서 얽매이게도 가르칩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죄 짓고 살아도 된다는 것이냐? 음란하고 타락한 많은 죄 가운데 즐기며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냐? 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상당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교인이라고 하는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 믿는 사람답지 않은 세상의 정욕과 욕심,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러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눈과 이성으로는 충분히 구원에 대해 갑론을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자면 내가 믿는 공평한 하나님은 자신을 절제하며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가는 믿는자와 믿긴 믿되 세상의 것들도 취하며 믿는자를 같은 상급으로 대우하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안목으로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크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편에서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상급의 질적 차이는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히 11:35절 일부-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고문을 당하되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순례자의 길에서 잠시 누리는 그 어떤 풍요로움보다 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것을 예비해 두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창조주 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에쿠스를 몰고 다니든지 BMW를 몰고 다니든지 돈의 풍족함을 추구한다 든지 명품을 좋아 하던지 육체의 정욕을 좋아 하든지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며 회계보고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대신속죄의 보배로운 피로 죄들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묻지 않으시고 이 땅에 보내사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물으시고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따르며 믿음의 열매들을 맺은 것들에 대해서 상급과 보상으로 공평한 판단을 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선포된 믿음을 통해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되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 살아가는 나 날 동안,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죄를 짓지만 방종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자유의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겸손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 26:28)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 예수님의 피는 새 상속 언약의 피입니다.     (골 1:13~14)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들의 용서를 받았다고 완료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1:16~20)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 또한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 [아버지]께서는 그분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즉 내가 말하노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느니라.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그 피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 즉 예수님의 창조하신 창조세계 전체가 예수님께 화해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   (롬 3:23~27)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 그런즉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바로 나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어느 누가 이유를 달 수 있겠습니까?     (롬 5:8~9)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벧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요일 1: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롬 10:9~1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또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니 / 이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 위에 계신 같은 [주]께서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니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서울대나 하버드대학이나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 10년 출석을 해야 자격요건이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침례나, 세례나 화채를 받음으로 믿는 사람으로 인정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방법대로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것 또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정해 놓으신 방법이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 믿습니다.     (엡 1: 1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느니라 /     (엡 2:1~9)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이라. /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 6:11)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9: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21 02:08:57 | 노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