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소범준 형제입니다.
이미 몇 차례 제 간증문을 구독하신 분들은 저의 여태까지의 신앙 내력을 아시겠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흠정역 성경으로 나를 인도해 준 그 이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공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008년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점에
하나님의 은혜에 나의 의지로 화답하여,
예수님의 값지고 귀한 보혈, 그리고 십자가 대속 사역,
사흘 만에 문자 그대로 부활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육신의 일에만 매달린 채
나 자신의 구원 여부, 구원 확신은 고사하고
구원받기 전이나, 구원받은 이후에나
늘 육신적으로 살아가던, 그야말로 육신적인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의 신앙 생활은 거의 은사주의자였습니다.
구원받기 이전부터, 저도 제 생각에
'내가 어떻게 구원받는 것을 알 수 있느냐,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알 수 있느냐?'
하면서 의심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은사(선물)을 구해보자' 하면서
거의 5년 정도를 은사 쫓아다니기에 바쁜 삶을 살았습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아 보고, 신유의 은사도 받아 보고,
하나님의 음성도 좀 들어 보자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기로 작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음성을 듣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인 양 착각하며 살다가,
마귀와 하나님 사이에서 헷갈리면서
거의 나락에 이르는 수준까지도 갔었습니다.
심지어는 마귀가 자기 음성으로 나를 삼킨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신유의 은사라 함은, 중 2때 제 가슴에 갑자기 이상한 통증이 와서 견딜 수 없었을 때
구원받기 일 년 전인 중 3때, 어머니가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계기로
어떤 신유의 은사가 있으신 권사님이라는 분을 찾아다니게 되면서부터 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분별이 되어서 저나 어머니나 그분께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고 2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확고하지 않을 당시에
휘트니스 리의 지방교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교회에서 노방 전도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책자 같은 것을 줘서 그 책자를 분별없이 읽다보니,그 곳에 거의 빠지게 되었는데,
친구와 함께 그 전도사라는 분과 저녁 식사를 할 때
마음 속으로 낌새가 안 좋은 것으로 판단하고
한 두번 대적 문자를 날린 뒤에
그분과 교제를 아예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 2때 말쯤, 또 한 번의 나락의 삶의 길을 걷고 있을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였습니다.(개역 성경으로)
지하철에서 잠깐 미니 성경을 보았는데, 그 때 저는 여러 군데를 훑어 보는 것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 때 저의 눈은 생전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호세아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호4:6, 흠정역)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호6:6, 흠정역)
이 말씀에 제 눈을 고정하자 이 두 말씀이 제게 찔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제 귀로 확인할 수 없는 진실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을 깊이 후벼파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하느냐,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이 때부턴가 저는 하나님의 말씀부터 잘 공부하리라고 다짐하고 말씀 공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개역과 NIV를 서로 참고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 3때 가서는 개역과 NIV 사이에 서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고,
서로를 참고하고 독해해 가면서 읽으려 하다 보니 머리만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대수능 직전에 대입 선물로 노트북 - 저는 거의 항상 노트북으로 여기 들어옵니다. -
을 사주셨는데, 컴퓨터에 설치된 MS-워드로 개역성경을 영어로 옮기기도 해봤는데,
영어로 옮기가 힘들고, 또 골치가 대단히 아파서 머리를 싸매는 데 기본이 거의 한 두 시간 정도였습니다.
곧,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한 두 시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수능 끝나면서 그동안 학업에 치중하느라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하는 통에
다음 카페 <영어성경과 창조 과학>에 올라와 있는 영어 성경,
창조 과학에 관한 많은 신선한 글을 읽고, 또한 머리도 식힐 겸 영어 찬양도 들으면서 영어 공부를 덤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성경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고,
그 글을 통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또 프리메이슨이란 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킵바이블 사이트로 연계 되어서 직접적으로 흠정역 성경에 대해서 조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문자/형식 일치 번역, 쉽고 간결한 문장, 명확한 구별, 바른 단어의 선택,
무변개, 무삭제, 무첨가의 원칙을 지킨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임을 알게 되었고
올 2011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된 1월 15일에 맘먹고 킹제임스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집안에 있는 다른 성경들과도 비교해 가면서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 자신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집에 있는 개역 개정판, 쉬운성경, 회복역 등을
킹제임스 성경과 대조하면서 많은 답을 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성경을 쓰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상 저의 흠정역 성경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더욱 인도하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저를 깨우쳐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2011-05-16 13:07:56 | 소범준
(남윤수 자매님께서 번역을 해주셧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CHICAGO ― On its 400th anniversary,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is universally recognized as a literary masterpiece that profoundly shaped both modern Christianity and the English language. 400주년을 맞이하여 KJV 성경은 현대의 기독교와 영어를 심오하게 형성해 온 문학적인 걸작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But at the Bible Baptist Church in Mount Prospect, Illinois, it’s accorded a much higher level of reverence. 그러나 일리노이주의 마운트 프로스펙트에 있는 Bible Baptist Church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존경심으로 대합니다. “Using anything but the King James Version,” said Chris Huff, the church’s pastor, “is like shaving with a banana.” 그 교회의 목사인 Chris Huff는 “KJV가 아닌 다른 역본을 사용하는 것은 바나나로 면도하는 것과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The suburban Chicago church belongs to a loosely defined denomination known as the “King James Only” movement. Members believe the King James Version is not just another translation but the indispensible underpinning of a Christian’s faith. 시카고 교외에 있는 이 교회는 “오직 KJ 성경”이라는 운동에만 집착하고 다른 교단의 법과 규칙에는 거의 집착하지 않는 편입니다. “When I’m looking for a church, the King James Bible is non-negotiable,” said Sandra Maio, after a Wednesday-evening Bible study class there.“내가 교회를 찾으려고 할때는 KJ Bible을 쓰는지가 우선 항목이지요“ 라고 수요일저녁 성경공부 후에 샌드라 마이오는 말했습니다. As it heads into another century, the King James’ achievements are being heralded around the world. Actors will recite every word from Genesis through Revelation at London’s Globe Theatre, this Easter season. Celebrations are scheduled in the hometowns of the 47 British translators who produced a work Winston Churchill called a “masterpiece” and George Bernard Shaw saluted as “magnificent.” 또 다른 세기속으로 들어가면서 제임스 왕의 업적은 전 세계에 보도 되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런던의 Globe 극장에서 이번 부활절에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에 있는 단어 하나 하나 들을 낭독할 것입니다. 윈스턴 쳐칠이 걸작품이라고 불렀고 죠지 버나드 쇼는 너무 훌륭하다고 극찬했던 작업을 했던 47명의 영국 번역가들의 고향에서 축하잔치가 예정되어있습니다. Pastor Chris Huff, of Bible Baptist Church, in Mount Prospect, Illinois, holds his copy of the King James translation of the Bible. (Chicago Tribune/MCT)일리노이주 마운트 프로스펙트의 bible baptist church의 크리스 허프목사님은 킹제임스 성경 번역 복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사진에 나와있습니다. At seminars and lectures, it will be noted that the King James’ cadences and phrasings echo in Abraham Lincoln’s speeches and Paul Simon’s lyrics.세미나나 강의시간에, 킹제임스 성경의 운율과 구절들이 아브라함 링컨의 연설에서나 폴 싸이몬의 서정시등에 울려나온다는 것을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Yet on a daily basis, most churches use an updated version or more contemporary translation, reserving the King James’ richly poetic language for weddings and funerals.그럼에도 모든 교회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시적인 언어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만 쓰기위해 접어두고 매일 갱신된 판이나 더 현대적인 번역본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When James I of England set his committee of translators to work in 1604, England was on a religious roller coaster.1604년에 영국 제임스 1세가 번역 작업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을때 영국은 종교적으로 기복이 심한 시기였습니다. Under James’ royal predecessors, England had bounced between Catholicism and the Protestant wings of the Reformation Era. With each reign, new articles of faith were adopted, others discarded. Believers whose convictions were momentarily out of date were sent to the gallows or burned at the stake.제임스왕의 선임자들 시기에, 영국은 개혁시기의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왕의 출현과 함께 믿음에 대한 새로운 논문들이 채택되고 어떤 것들은 폐지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믿음과 다른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사형대로 보내지거나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From the perspective of the throne, a Bible was needed that would command respect ― an English version that, as the translators wrote in their preface, “containeth the word of God, nay is the word of God; as the King’s speech which he uttered in Parliament, being translated into French, Dutch, Italian and Latin, is still the King’s speech.”왕좌의 개념에서 봤을때 성경은 존경심을 불러내는 면에서 필요하게 되었다 - 번역자들이 서문에 쓴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영어 번역 말입니다; 왕이 의회에서 말한 연설문은 불어로, 화란어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왕의 연설문인 것이다. Pastors of “King James Only” congregations feel much the same way. Some believe the King James version to be every bit as divinely inspired as earlier Hebrew and Greek texts.킹제임스 만을 고집하는 목사들도 같은 심정입니다. 어떤 이들은 킹제임스 역본이 글자 하나하나가 히브리 그리스 본과 같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채워져있다고 믿습니다. Gordon Campbell, author of “Bible: The Story of the King James Version 1611-2011” reports that more than 1,000 churches worldwide subscribe to a statement of faith that this 400-year-old translation “preserves the very words of God in the form in which He wished them to be represented in the universal language of these last days: English.“킹제임스 성경 1611-2011의 이야기“의 저자인 Gordon Campbell씨는 세계적으로 천개가 넘는 교회들이 400주년이 된 이 영어 성경이 ”하나님이 이 마지막 시기의 만국의 언어인 영어로 표현되기를 소망하신 형태로 하나님의 바로 그 단어들을 보존해 왔다“는 믿음의 진술들을 해 왔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Huff thinks the King James Version was produced at exactly the right moment in history. Renaissance scholars had revitalized Greek and Latin scholarship, producing new text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 printing press made it possible to spread knowledge faster than ever before.허프 목사님은 킹제임스 성경은 역사적으로 적합한 시기에 정확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쌍스 시대의 학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새로운 본문들을 만들기 위해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장학금을 강화시켰습니다. 출판사들의 출현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And the English language was at a high point of expressiveness ― William Shakespeare died five years after publication of King James’ Bible in 1611.영어는 그때 표현력의 최고조에 있었고 윌리암 쉐익스피어는 킹제임스 성경이 1611년에 나온후 5년 뒤에 죽었습니다. To that list, David Norton, author of “The King James Bible,” would add the political savvy of its translators.“The King James Bible,”의 저자인 David Norton은 그 리스트에 그 책의 번역자들의 정치적인 지식을 추가했다. “It’s most striking the degree to which their text is theologically neutral,” said Norton, an English professor at Victoria University in Wellington, New Zealand. He notes the version didn’t contribute to arguments among churchmen, no mean feat in an age of bitter disputes over religious doctrine.뉴질랜드의 웰링턴에 있는 빅토리아 대학의 영어교수인 Norton씨는 “그들의 본문이 신학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현저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이 번역본은 교인들사이에 아무런 논쟁도 일으키지 않았고 종교적인 교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특별한 일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Norton and most university-based Bible scholars don’t subscribe to Huff’s conception of a once-and-only translation storm.Norton과 대부분의 대학에 기반을 둔 학자들은 단한번의 유일한 번역 폭풍이라고 불리는 Huff 목사님의 개념을 믿지 않는다. “The King James Bible is a monument to English poetry and prose at one of its greatest moments,” said Richard Rosengarten, a University of Chicago professor who studies the intersection of literature and religion. “But if it’s so great, why are there so many other translations?”“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위대한 순간에 태어난 영국의 시와 산문의 기념물입니다” 라고 문학과 종교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시카고 대학의 교수인 Richard Rosengarten씨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처럼 위대하다면 왜 그렇게 많은 다른 번역본들이 있습니까?” In fact, the English in the King James Version was already a bit archaic in its own day, according to Rosengarten and other scholars. “Thee” and “thou” were passing out of everyday speech. So to 21st century young people, it can seem as remote as Latin.Rosengarten과 다른 학자들에 의하면, 사실상 King James Version의 영어는 이미 그 당시에도 약간은 고전어였다. “thee"와 ”thou"는 평상시의 말에는 쓰지 않았었다. 그러니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말들은 라틴어처럼 오래된 말 같았을 것이다. Many subsequent translations ― the Revised Standard, Phillips New Testament in Modern English, New English Bible ― were inspired by the idea that language evolves. Ancient manuscript-xs discovered since King James’ day give modern scholars a broader view of biblical texts.그 후에 나온 많은 번역들 - the Revised Standard, Phillips New Testament in Modern English, New English Bible들은 - 언어가 서서히 진화된다는 생각에 의해 영감 받아진 것이었습니다. 킹제임스 시대 이후 발견된 고대의 manuscript-xs는 현대의 학자들에게 성경적 본문들에 대한 폭 넓은 견해를 주었습니다. Such is the power of the King James Bible that even nonbelievers honor it above all others ― as do lapsed Protestants like Frederick William Faber. A 19th century English writer who converted to Catholicism, Faber never forgot the majesty of the King James Bible of his Methodist youth.타락한 프로테스탄트였던 Frederick William Faber가 그랬던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 조차도 킹제임스 성경을 모든 것 위에 가장 존경하게 되는 힘을 갖도록 한게 그 성경입니다. 캐톨릭으로 전향했던 영국의 19세기 작가인 Faber는 어린 시절 감리교에서 썼던 킹제임스 성경의 훌륭함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It lives on in the ear like music that can never be forgotten,” he wrote, “like the sound of church bells, which the convert hardly knows he can forget.”그는, “그것은 귀에 음악같이 결코 잊어버려질 수 없도록 생생히 남아있다”, “개종자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교회 벨소리 처럼...” 이라고 썼다.. By Ron Grossman(Chicago Tribune)- 신문회사명(McClatchy-Tribune Information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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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9:51:01 | 김정호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를 망각하고
환상, 예언, 신유, 기적, 세상 복락만을 바라는 세대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탁한 세대에 살고 있다.
특히나 이 세대의 특수성에 힘입어, 그 혼탁성은 인류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혼탁하고 흉흉해서, 심지어는 지역 교회 안에까지 그 혼탁함의 손이 뻗쳐있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참 교회요'라고 하는 이름난 자칭 '정통'이라 하는 지역교회들을 보라.
지금 그 곳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은 빛을 잃어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차 강조하신 '참 은혜의 복음'은 신속히 사라져가고 있고,
다른 것들로 대체된, 명색만 겨우 그럴듯하게 남아 있는 '다른 복음'(갈1:6)이
신속하게 뿌리를 뻗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기적의 은사 등을 받았다며
다른 사람들을 거짓말로 속이는 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거절하며(호4:6)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환상과 기적과 세상의 복락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실정이며,
은사만이 구원의 표적이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부정하는(히10:29)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에게는 모두 한결같은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모두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이유와,
성경 보존의 가치와 성경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서 공부하고(딤후2:15),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알기 원하시는(호6:6) 하나님의 절절한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한 마디로 냉담하고, 무관심한 표정들이 지금 필자의 눈 앞에 스쳐 지나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해 주신 이유는 바로 '바른 교리의 확립'과
'참과 거짓의 분별', 그리고 '바른 신앙의 확립'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딤후3:16-17; 히4:12; 호4:6; 6:6)
예수 그리스도는 닮으려 하나, 닮을 수 없는 세대
이 시대의 '교회' 청년들을 보라.
소위 '기성 교회'라고 하는 '정통'에 속한 '교회' 청년들의 모습들은 어떠한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청년인 필자도 하마터면 '교회' 청년들에 속할 뻔 하였지만,
이제 바른 말씀의 칼(히4:12)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들의 모습을 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세대'(딤후3:5)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요사이 '교회' 청년들이라 하는 자들 중 대다수는 바로 이 말씀의 대언의 성취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참 열심히 한다. 교회 일, 교회 봉사, 교회에서의 헌신, 물 불 가리지 않고 다 열심히 하려 한다.
사람들 보기에는 참 좋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핵심이 빠졌다. 필자가 말하는 핵심이란 과연 무엇일까?
바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는 데에서 양육받지 않기 때문이다.(호4:6)
세상의 이름난 '정통' 교단교회들이 대부분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 사역자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젊은 층, 특히 청년들이 자신들의 말만을 잘 따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은 젊은 층이 자기네보다 더 성경에 대해 박식한 것을 차마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쉽게 말해서, 그런 청년들을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본래적으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 아닌, 자기네가 쌓은 '교단'이라는 바벨탑(창11:1-9) 안에서
그저 조용하게 지내기만 원할 뿐, 양을 참 은혜의 복음으로 이끌어서 하나님께 이겨오고,
올바른 말씀으로 양육할 생각조차도 없는 이른바 '삯꾼 목자'들(요10:12)이기 때문이니깐.
그런가 하면, 순진한 청년 양들에게도 분명한 잘못이 있다.
아래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이제 그들이 갈 때에 그분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니 마르다라 하는 어떤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니라.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더라. 그러나 마리아는 섬기는 일이 많아 괴로워하더라.
그녀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내버려 두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즉 그녀에게 명하사 그녀가 나를 돕게 하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마리아는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38-42, 흠정역)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롬4:3)
밑줄 친 부분과 볼드체 부분을 집중해서 다시 읽어 보라.
거기에 바로 답이 있다!
이 말씀에서, 마르다는 자기 일하느라 바쁘다고 자기 입으로 '주님'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삶 속에서 제쳐둔다. 한 마디로, 세상 말로 하면 주님 앞에서 가히
'일 중독자(Workholic)'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이다. 무언가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자칭 '그리스도의 청년'이라 하는 그들은 자기 삶 속에서 살아있는 말씀이신 주님(요1:1), 곧 성경 말씀을
다른 데에 제쳐 두고, 아예 관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 같은 바른 성경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 매우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필자가 그들에 대해 경고하건대, 이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정말로 검증된 길 같고, 바른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위험한 사망의 통로'인 것이다.(잠16:25)
그들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부터 버리고, 거절하였기 때문에
겉보기에 그들은 매우 하나님의 자녀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와 사역자가 되지 못하게 버리신 것이다.(호4:6)
고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약간은 닮을 수 있으나,
완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는 데까지는 이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자신들이 신앙심 깊다고 자부하는 이른바 자칭 '그리스도인' 장년들에게도 마찬가지 현상인 것이다.
이런 '교회' 청년들의 부모 세대인 그들부터도 바른 말씀으로 양육받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 폐악이 자녀 세대들에게까지 되풀이되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십계명 중 제 2계명(출20:5)의 성취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전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주 예수님의 성장 과정은 어떠하셨는가?(갈4:30)
이제 필자는 성경 기록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누가복음 2장 41절에서 52절 사이에 보면, 어린 예수님께서
그분의 양친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에
그곳에 있는 학자들과 지혜를 겨루신 이야기가 있다.
이 말씀은 글의 길이를 고려해서 일부러 생략했으니 여러분께서 읽어 보시길 권한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여기까지 본 글을 읽은 여러분께 지금 본 글의 핵심을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공부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과연 주의 말씀에 능숙할 정도로 공부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그렇게 여러 박사들을 놀라게 하실 수 있었을까?
과연 그분의 백성들인 우리는 그런 그분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주의 말씀을 무시하는 세대여, 회개할 지어다!
이제 주님께서 교회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시는 말씀(계2:5,16; 3:3,19)을
귀 있는 자는 모두 들을지어다!(계3:22)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호4:6) 자들아,
분명히 하나님의 모든 불순종에 대한 보응은 모두 성취되었다.(히2:2)
참 목자를 잃고, 우상 목자만을 맹목적으로 따라다니고,
구원받지 못한 양들이여,
이제 은혜의 복음을 듣고 죄들로부터 회개하여,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함이 절실하지 않는가?(행16:31)
어서 주님께 돌아오라!(암5:4,6)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확실히 알고(호6:6)
주의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거기에서 자라가야 한다.(벧전2:2)
그 길만이 진리의 성경 말씀이 보증하는 참 생명의 길이다.(요5:39)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렘6:16, 흠정역)
필자주: 필자는 '기성 교회' 안의 모든 청년, 모든 장년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이들 중 대다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표현인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14:4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5-04 23:45:04 | 소범준
천년왕국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이 천년왕국은 기성교회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임을 먼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르고 명확한 것을 가르쳐도 이해를 못할 뿐 아니라 이해조차 안하고 도리어 그렇게 말하는 자들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유대 땅에 왔을 때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했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예수 믿어서 천국가거나, 휴거와 재림이 이루어지면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산다고 하는 것으로 구체적 진술이나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거의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 이상의 접근은 잘못하면 이단에 빠진다고 바운드리를 정해놓고 그 정도만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알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흠정역성경과 개역성경의 번역을 대조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끝의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창조와 죄, 타락과 회복, 심판에 대한 이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의 전반적인 흐름과 중요한 맥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문자 그대로 인식하고 믿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말씀들을 자기들의 상황과 삶에 맞게 절취해서 받아 들이다 보니 하나님 편에서의 창조의 역사들을 통해서 계획하시고 원하시는 것들,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들, 창조섭리와 회복, 구원계획과 그 이후의 일들을 말씀하심에도 사람들이 바라보지 못 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선 먼저 많은 대언서 중에서 이사야서와 계시록에 언급된 천년왕국이 왜 필요한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천년왕국을 이해하려면 성경 66권 안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 중에 하나인 왕국, 왕권, 왕의 개념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명확히 가지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침례요한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늘의 왕국에 대한 이해도 생각해 보게 되지요 많은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개신교회에는 죽어서 가는 세상으로 천국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창세기의 중요성인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사람이 창조된 이유와 에덴동산을 만드신 배경,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은 이후의 창조물들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회복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 왜 메시아로 오셔서 고난 받으셔야 했는가? 그리고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의 모습은 성경을 통해 볼 때 회복의 역사라고 저는 믿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6일 동안, 매일 새로운 것들을 만드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100% 오염이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초래했습니다.
아담 -(창3:17~19) (일부)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저주하신 내용은 평생토록 고통 중에 아담의 죄로 인해 저주 받은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1:29절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속에 씨 맺는 나무의 열매를 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노니 그것이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되리라 하셨는데 저주로 말미암아 들의 채소를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더 이상 못 먹게 하시므로 사람이 흙에서 지어졌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라 하십니다. (창3:22 (일부)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 (24절)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브 - (창3:18~19) 네게 고통과 수태를 크게 더하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으리니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 남자는 여자들의 해산하는 고통을 잘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그 고통이 크다고 하며 여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저주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남자에 의해 여자가 다스림을 받는 저주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들여다보면 여자의 수난과 고통들을 보게 됩니다.
땅 - 창3:17(일부)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땅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또한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냅니다.
모든 생명체 -{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 땅의 모든 생명체도 아담의 죄로 인해 다 저주를 받습니다. (창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속에 생명이 있어 땅에서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채소를 먹을 것으로 주었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0절 말씀을 보면 모든 생명체는 분명하게 푸른 채소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저주로 인해 지금의 생태계의 모습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창9: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노라.) 말씀처럼 노아의 방주 이후에 다시금 생육하고 번성하는 때에 모든 짐승들과 날짐승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대언자의 글을 잠깐 보면
(이사야11:6~10)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그것이 만백성의 기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
* 약육강식이 통하는 모든 동물의 세계에 평화가 임하여 살과 피를 먹는 일이 없어지고 다시금 창조의 때와 같이 동물들이 들의 풀과 식물들을 먹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 이후에 모든 짐승들과 날짐승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였는데 그러한 것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오시는 날 이루어질 대언들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9:17~19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너희는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함께 모여 /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21절-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칼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온 칼로 죽임을 당하니 모든 날짐승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
*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짐승들의 역할이라고 할까, 모습이라고 할까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천년왕국의 시작
요한계시록 20장 1~3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요한계시록 20장 7~8절
그 천 년이 다 차매 사탄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고 /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며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 사탄이 잡혀 바닥없는 구덩이에 천 년 동안 결박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풀려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일까요? 개역성경 신자들처럼 예수님 재림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위와 같은 성경구절은 어디에 적용되겠습니까?
흰 왕좌 심판 때에 있을 일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 흰 왕좌 심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지금의 땅과 하늘이 물러가고 보이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2.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3.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3-1.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3-2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3-3.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1~2절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천년왕국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기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 저주 받았던 모든 저주가 없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이사야11:6~10)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사야 대언자의 대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천년동안 볼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이 재현될 것으로 믿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죄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의 번성함이 천 년 동안 있어진 후에 사탄이 잠시 풀려났을 때에 그들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이 다시금 일어나는 것을 성경기록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사람의 자유의지 조차도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거룩하심 앞에서는 비교할 바 못되며 창조자의 완전함에 견줄 수 없는 창조물이라는 결론으로 모든 창조세계의 생명체에게 밝히 드러내시는 것으로 시간의 역사를 마감하시고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윤영원 형제님이 천년왕국기간에 사람들이 태어난다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천년왕국에는 구원받은 사람들만 들어갑니다. 그러면 장가도 안가고 시집도 안가는것 아닌가요? 라고 질문 하셨는데 저는 위와 같이 전체적 이해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로 7년 대환란 전에 휴거된 그리스도의 신부와 환란가운데 구원받은 사람들( 계20:4-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과 재림하는 순간까지 4절 말씀 같은 환란가운데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구원받은 자들을 구분해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교회로 휴거된 성도들은 예수님과 멋진 예루살렘에 거한다는 사실을 공부해 보세요 저는 이 천년왕국은 무너지고 깨지고 타락으로 더렵혀진 모든 창조세계를 회복하시고 어느 누구도 이유를 달수 없는 죄가 없는 세상을 천년동안 이루시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와 위엄과 공의를 드러내시는 것이라고 성경의 기록들을 보면서 그렇게 믿습니다.
이해가 안가실지도 모르지만 유추해석으로 휴거되어 변화된 성도들은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끝까지 살아남은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은 사람들을 통해서 1천년의 역사를 통해 1점 1획도 변함이 없는 신, 구약의 모든 대언의 성취를 이루실 것으로 봅니다.
형제님의 글에 대해 답변 글 만들면서 저도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인이야기도 기회 되면 공부하여 올려보겠습니다.
참고로 저도 부족한 것이 많아서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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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19:00:12 | 노영기
우연히 다시 성경바로보기를 또 보았습니다. 예전에 줄 그어놓았던 부분, 즉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이 아무래도 이해가 안되어 문의드리고자 합니다.
성경바로보기 127페이지, 403페이지(천년왕국 시대에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것입니다.)입니다.
성경바로보기, 에스라 성경사전을 찾아봐도 답이 명쾌하지 않네요.
천년왕국기간에 사람들이 태어난다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천년왕국에는 구원받은 사람들만 들어갑니다. 그러면 장가도 안가고 시집도 안가는것 아닌가요?
누구는 부활하지 않은 몸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들 딸들을 낳는다고도 하는데
( 인터넷에 찾아보니 http://www.headstone.pe.kr/09_dataRoom/LeeLewaeJa/Man_Ending/mille_ManEnding.htm더 헷갈리기만 합니다. 이단단체같기도 하고요.)
부족한 저로선 이해도 안되고, 성경 구절을 찾지도 못하겠네요.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예전에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을까?하는 질문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솔직히 물어볼곳도 없었고,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다는 구절이 아담을 창조한 구절보다 먼저이니까.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고, 그 다음에 가인이 태어났으니, 가인은 그전에 만들어졌던 여성과 결혼했나보다라고 생각했지요. (물론 틀렸습니다.)
칼 세이건도 이 질문을 어릴때 했는데, 아무도 답변을 못해 불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은 해답을 찾았지요. "이브의배꼽 아담의 갈비뼈"란 책에서, 아담과 하와가 건강하니까 계속 아이들(딸,아들)을 낳았고, 그 중의 하나와 가인이 결혼했을것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천년왕국때 아이들이 태어나는지에 대한 질문이 위와같이 아주 간단한 질문이거나 우스울수도 있고 혹은 제가 공부를 혹은 노력을 덜 해서 모르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은혜를 배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실 답변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꾸벅
아...제 소개가 없었네요. 저에게 관심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가끔...(아마도 1주일에 3~4번) 킵바이블에 들리는 40대 직장인 남자입니다. 아이디는 와이프것입니다. 제 이름으로도 가입했었었는데....로그인이 안되더군요.
솔직히 전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10년전 경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우연히 킹제임스성경을 알게되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알게된지는 7년정도 되는가 봅니다. 이후 많은 책(성경바로보기, 에스라성경사전, 신자들의 글등등)을 사서 보았습니다. 아니 보고 있습니다. 전 단지 하나님의 왕국에 맨 밑의 사람으로라도 구원받으면 원이 없겠다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에 아주 자그마한 공간만 허락해주시길 바랄뿐이며, 지옥에만 안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다소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두렵기만 합니다. 언젠간 킹제임스성경 교회에 다니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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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00:36:22 | 윤영원
2011년 5월 9일 자 타임지에 킹제임스 성경 400주년 기념 기사가 올라옵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2068081,00.html
샬롬
2011-05-02 10:20:20 | 관리자
크리스천 히스토리 매거진(Christian History Magazine)이라는 유명 잡지는
이번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자세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호(100호)는 전체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것입니다.
잡지 전체를 PDF로 올립니다.
샬롬
(*) 참고로 이 잡지는 왈덴시스 등에 대한 중요한 자료들도 특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료 가입해서 PDF 파일로 볼 수 있습니다.
2011-04-30 10:42:57 | 관리자
Why the King James Bible Endures
By CHARLES McGRATHPublished: April 23, 2011
미국의 뉴욕타임즈 신문은 2011년 4월 23일 판에서 위의 제목으로 킹제임스 성경이 400년간 장수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http://www.nytimes.com/2011/04/24/weekinreview/24mcgrath.html
하나님의 위엄과 원본에 충실한 점, 글의 명료함, 운율 등이 이 성경 안에서 발견되므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기자는 전합니다.
즉 사람의 천박함이 이 성경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이 성경에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샬롬.
2011-04-30 10:10:06 | 관리자
2011년 4월 27일자 국민일보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영국 황태자 결혼식이 열린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안에 400주년을 맞은 킹제임스 성경 이야기도 있습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898567&code=61221111
2011-04-30 10:01:12 | 관리자
읽기 쉽고 듣기 편한 성경, 영어 발전과 세계화 디딤돌
출간 400주년 맞은 ‘킹 제임스성경’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Sunday Focus에서 4월 24일(일)에 위의 제목으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바랍니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454
PDF 파일도 만들었으니 같이 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04-30 09:57:30 | 관리자
pdf 화일로 변환을 못해 캡쳐합니다.
기독일보 : http://www.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19189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1/04/25/0903000000AKR20110425149500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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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30 00:18:15 | 허광무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저희 손에 들려지고, 읽고, 상고하고, 연구하며, 묵상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관련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말로도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번역을 하여 주신, 또한 보급을 위해 관련 되신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보상이 있으리라 믿고, 개인적으로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400주년 기념일이 한국의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성경을 알 수 있도록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On-line 상으로도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접할 수 있도록 이렇게 KeepBible Site를 운영하여 나가는데 관련된 모든 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KeepBible Site가 개역성경과의 비교만을 하는 곳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진리를 성경에 의해, 성경대로, 바로 풀어서, 모든 사람들이 진리 안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더욱 발전하여 나갔으면 합니다.
사람들에게만 읽히기 위한 Site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즐겁게 할수 있는 Site가 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직 어린이 단계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조금 넓은 아량으로 바른 진리의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는 Site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관련자 모두에게도 또한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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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12:29:59 | 황경수
유형제님 성실하고 빠른답변으로 교제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컴퓨터를 잘못해서 꼼꼼히 잘피지 못하고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사랑침례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영적인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얻게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2011-04-26 00:00:30 | 김서기
실제로 성경을 읽는 미국 사람들의 67%가 지금도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반포 400주년을 맞아 미국의 USA Today 신문에서 조사한 결과가 다음의 동영상에 들어 있습니다.
http://www.usatoday.com/news/religion/2011-04-21-king-james-bible.htm?bctid=912521921001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 복을 주셨습니다.
샬롬.
2011-04-22 10:48:32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 반포 400주년을 맞아 미국 하원은 2011년 4월 12일자로
킹제임스 성경이 미국에 미친 위대한 공로를 기념하기 위한 결의안(H. Con. Res. 38)을 제출했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킹제임스 성경이 미국, 영국 사회에 미친 고귀한 공헌을 기리고 있습니다.
위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 영문을 그대로 올려 미안합니다.
http://kingjames400.com/2011/04/06/house-resolution-recognizing-the-400th-anniversary-of-the-kjv/
2011-04-21 15:52:18 | 관리자
저는 성경을 사랑하는 일반 청년입니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배경은 [천사와 ufo 바로 알기]를 읽고 마지막장에 추천하는 책 목록을 보면서 하나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는 결심에 의해서 성경바로보기,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등을 읽고나서 이 홈피를 알게되고 많은것을 읽고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그후 몇주전에 킹제임스흠정역을 구입해서 계속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예전부터 방언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오순절 은사주의 바로알기]와 부흥과개혁사에서 출간되는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저 옥성호, 를 읽고 그집사님이 쓴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집사님이 스승으로 삼고 있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알게되고 존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등으로 통해서 청교도 신앙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고 부흥과 개혁사에서 출판된 "로이드 존스 교리 강좌 시리즈 를 읽고 있던중에 오늘 아침 그 시리즈 2권 (성령 하나님과 놀라운 구원)을 보다가 "흠정역 성경이 안타까운 실수"라는 글귀에 이거는 꼭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1장 성령의 인격을 다루는 내용에서
p25에 아래의 내용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 자주 어려움을 겪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신약 성경의 여러 서신서 서두에 나오는 인사말에서 성부와 성자만 언급할 분 성령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위대한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13). 성령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도 자기의 첫 번째 서신에서 똑같이 말합니다. " 우리의 사귑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1:3). 여기서도 요한은 성령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헬라어에서 영(Spirit)이라는 말이 중성명사이기 때문에 성령과 그 분의 사역을 비인격적이고 중성적 의미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흠정역(King James Version)성경이 안타까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는 "성령이 친히(The Spirit itself)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는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친히" 라는 말을 "Himself"가 아닌 "itself"로 표현한 것을알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장에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the Spirit itself)간구하시느니라."(롬 8:26)라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개정역(Revised Version)이 훨씬 낫습니다 .비록 헬라어에는 명사뿐 아니라 대명사도 중성이지만 두 구절 모두 "Himself"라고 바르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의 질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부분에서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말 흠정역이 실수입니까?..아님 niv가 실수입니까..아님 로이드 존스가..실수 입니까..당연히 흠정역이 실수가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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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1 13:44:35 | 손정현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가?
제가 어릴 때는 TV에서 무서운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전설의 고향’을 보곤 하였습니다. 그 때는 그것을 보면서 무서운 귀신이 나와서 사람을 해칠 까봐 두려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어머니에게 ‘귀신 지나갔어?’ 라고 물어보곤 했었습니다. 또한,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의 ‘귀신들’이 나를 해치거나 죽일까봐 두려워하곤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의 대상이 있습니다.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인 인간은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각종 시험 및 학교에서 소위 주먹 좀 쓰는 아이들을 무서워 할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군대, 취업, 승진, 금전적 문제, 결혼, 출산, 질병, 죽음 등의 수많은 두려움의 대상들이 있습니다. 각자 마다 이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혹은 이겨내기 위해서 방법들을 고안해 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대상을 학문으로 풀어보려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운동이나 무술을 연마하고, 어떤 이들은 명상을 하고, 어떤 이들은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과 담배를 찾게 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종교생활’을 통해서 서로 위로하고 안락함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두려움은 최초의 인간 아담이 범죄이후에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이기도 합니다.
창 3:9-10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렇듯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를 짓고 난 후에 두려움을 느꼈고, 현재도 쌓여가는 죄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근간에는 죄의 결과물인 죽음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종교행위도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어떤 인간도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두려워하는 자들=범죄한 자들=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와 사망과 지옥이 던져질 불호수에 던져지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구속받은 성도들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시27:1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내 생명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3:4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두려움을 내어쫓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약속하시며 하신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창15:1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시니
또한,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주시며 하신 말씀도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주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전12:13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구속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롬3:18)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엉뚱한 대상 즉, 하나님과 반대되는 대상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 범죄하다가 결국 아시리아의 포로로 된 이스라엘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왕하17:7-8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와 이집트 왕 파라오의 손 밑에서 벗어나게 하신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죄를 짓고 또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며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교도들의 법규와 이스라엘 왕들이 만든 그들의 법규 안에서 걸었기 때문이더라.
이러한 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려니와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신명기18:10-11에서 모세는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을 치는 자나 때를 관찰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마녀나 마법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마술사나 강신술사가 너희 가운데 있지 못하게 할지니라 하며, 22절에서 자기 뜻대로 말하는 거짓대언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며, 점쟁이들의 말한마디를 하나님이 내려주신 천명인냥 따르고,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자기 위에 사제나 교주를 모시는 모든 종교에서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한,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거짓대언자들은 그러한 인간의 두려움의 본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하나님이 원치 않는 교세확장과 자기만족을 위해 일하며 열심히 자기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도들은 이런 거짓대언자를 떠나야 하겠습니다.
롬16:17-18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
빌3:18-19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런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골2:8 어떤 사람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조심하라.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벧전3:16-17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 모든 사람을 존경하며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경하라.
잠14:26-27 주의 두려움 속에 강한 확신이 있나니 그분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 샘이라 사망의 올무들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죄를 멀리하게 합니다.
시4:4 두려움 가운데 서며 죄를 짓지 말지어다.
잠23:17 너는 마음에서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며 종일토록 주를 두려워하라.
딤전5:20 죄짓는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꾸짓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내어 쫓아 주십니다.
딤후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느니라.
시118:6 주께서 내 편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거짓대언자들의 헛된 속임수에 속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단번의 속죄로(히9:28) 인해 지성소로 직접 들어가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은 우리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 당당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8:14-15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세상과 분리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완전한 거룩함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후7:1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또한, 이 하나님 안에서의 순종함과 두려움으로 우리의 구원을 당당히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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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초적인 죄악된 감정인 두려움을 항상 느끼며 삽니다. 이는 죄의 결과는 사망이며 이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환자들을 가끔 보면, 건강에 대한 많은 두려움을 갖고 병원을 찾아옵니다.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아프게 되면 어찌해야 할까 걱정에 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심하게 아플 때나 심하게 힘들 때 그 사람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평소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생각되어지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처절한 두려움 속에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간사한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 믿음을 고백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종교생활(천주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무속신앙등)을 해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주에게 묻고 의지하기도 합니다. 자기 주먹만 믿고 살아 왔다고 하며 자신을 모시며 살아오던 사람들은 스스로 이겨내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신되신 예수님의 피흘려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시고, 우리를 양자 삼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성령님에 의한 인도함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더 이상 최후의 죽음이 아니며,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뒤를 쫓아가는 우리들의 생활 방식은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아니합니다.(빌3:20)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이긴 자입니다.
요일4:16-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 점에서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게 되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
요일5:4-5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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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7 06:26:20 | 곽연우
마지막 나팔 소리
(*) 편집이 된 PDF 파일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7년 환난기를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계시록 3장 10절은 분명하게 이를 약속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5:9).
7년 환난기에 구원받는 성도들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구원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런 무서운 환난을 통과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으며 통과할 사람도 단 하나도 없다. 초대 교회시대부터 지금까지 성경대로 믿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환난전 휴거(Pretribulation Rapture)를 믿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는 환난전 휴거와 상치되는 듯한 말씀이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15:51-52)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미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남은 성도들의 몸이 변하는 때에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또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서 이미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남은 성도들이 함께 땅에서 들려서 - 휴거되어 -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이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사도 바울이 동일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이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며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 역시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므로 우리는 이 두 부분에 나오는 나팔 소리가 동일한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결론지을 수 있으며 아마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의 휴거와 관련한 살전4:16-17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당연히 고전15:52에 기록된 ‘마지막 나팔 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의 휴거 때에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린다는 사실은 ‘환난전 휴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환난전 휴거관은 교회의 휴거가 7년 환난기 전에 일어날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마지막 나팔 소리’는 반드시 환난기 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시록 8-11장은 7년 환난기에 일곱 나팔이 울린다고 말하며(사실임) 또 예수님께서도 7년 환난기가 끝나는 시점에 - 즉 일곱 나팔이 다 울린 이후에 - 친히 땅에 강림하실 때에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있다고 마태복음 24장 29-31절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선택 받은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마24:29-31).
그렇다면 어떻게 사도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 소리’가 7년 환난기 전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도 입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가 의도한 것과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검토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단순히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말한 점이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분명히 그 ‘마지막 나팔 소리’는 그들이 이미 소유한 성경 기록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거나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다른 부분에서 가르친 어떤 것임에 틀림이 없다. 혹은 그것이 그 당시의 그리스 문화권 사람들에게 익숙한 어떤 것이거나 로마 제국에서 흔히 행하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들 주변의 유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유대교의 믿음이나 실행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이 의도하지 않은 것
만일 누군가가 ‘마지막 나팔 소리’의 ‘마지막’이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면 - 다시 말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다른 나팔 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도하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이나 혹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전체가 ‘마지막 나팔’임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천사들과 함께 친히 강림하실 때에 분명히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29-31). 그런데 계시록의 순서를 보면 분명히 일곱 나팔이 다 울린 뒤에 그분께서 강림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 울릴 나팔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의 나팔이다.
둘째로, 스가랴서 14장 16-19절은 천년왕국 내내 장막절이 매해 지켜질 것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남은 모든 자가 심지어 해마다 올라와 그 왕 곧 만군의 주께 경배하며 장막절을 지키리라(슥14:16).
그런데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알 수 있듯이 장막절을 지킬 때는 항상 나팔 소리가 울린다. 천년왕국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에 시작되며 따라서 장막절의 나팔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이후에 있을 것이다.
셋째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마지막 나팔’을 언급한 뒤 30-40년이 지나서야 요한의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받았을 때에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 혹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그들이 그가 말한 ‘마지막 나팔소리’가 자기들이 아직 들어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계시록의 일곱 나팔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고린도전서를 받고 거기서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나팔’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알았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고전15:52에 있는 ‘마지막 나팔 소리’에 대해 기록하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알지 못한 계시록의 일곱 나팔 혹은 일곱째 마지막 나팔을 의미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 칼드웰(J. R. Caldwell)은 이렇게 말한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아직 계시도 되지 않은 예언에 대해 언급한다거나 혹은 기록되지도 않은 책 즉 계시록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넷째로, 사도 바울은 결코 그 ‘마지막 나팔’이 계시록의 일곱 나팔 모두(즉 복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전15:51과 살전4:16에서 그는 단 하나의 나팔만을(즉 단수)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나팔 소리’가 절대적으로 최종적인 나팔 소리 - 즉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있을 수 없는 - 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너무나 명백하며 그래서 알포드(H. Alford)는 ‘마지막 나팔 소리’의 ‘마지막’이 결코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나팔 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다른 의미의 나팔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사회에서 나팔 소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 고린도전서 15장의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회중을 모을 때 나팔을 사용하셨다. 출19:10-20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뵐 때 나팔 소리가 울렸음을 알 수 있다.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더라. 그곳의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 나팔 소리가 오랫동안 나며 점점 더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으로 응답하시더라. 주께서 시내 산에 곧 그 산의 꼭대기에 내려오시고 주께서 그 산의 꼭대기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출19:18-20)
한편 로마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용도로 나팔을 사용했다. 그들은 황제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모을 때 나팔 소리를 사용했다. 이것은 보통 ‘클래시컴’(Classicum)이라 하는데 그 기능으로 인해 이것은 ‘황제의 나팔 소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고대에는 적들을 놀라게 하거나 다가오는 심판 혹은 위험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사용했다. 성경에도 이런 용례들이 여러 번 나온다(렘4:19-21; 6:1; 겔33:3-6; 암3:6 등).
이제 고린도전서 15장의 문맥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는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이다.
둘째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 ‘마지막’ 것에 대해 언급한다: 패하여 없어지게 될 마지막 원수(사망 26절), 마지막 아담(그리스도 45절), 마지막 나팔 소리(52절).
셋째로,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여러 가지가 대비되어 있다. 바울은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 불명예와 명예, 약한 것과 강한 권능, 본성에 속한 몸과 영에 속한 몸,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 죽는 것과 죽지 않는 것,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등을 대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대비시키면서 첫 아담을 통해 육체의 죽음이 왔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몸의 부활로 사망을 이기는 승리가 있을 것을 보여 준다(20-22절, 45, 54, 57절).
넷째로 사도 바울은 고전15:56에서 죄로 인해 사망이 생겼으며(롬5:12-19) 사망을 일으키는 죄의 힘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임을 보여 주고 있다(롬4:15; 5:13, 20; 7:7-13).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휴거가 있을 때 울리는 살전4:16의 나팔 소리가 고전15:52의 ‘마지막 나팔 소리’임을 살펴보았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나팔 소리’라고 했는데(살전4:16) 이것은 곧 그 ‘마지막 나팔 소리’가 그 당시 황제들이 백성을 모을 때 사용하던 나팔 소리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표현은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다. 황제의 나팔 소리가 나면 백성들이 황제가 있는 곳으로 모이듯이 ‘하나님의 나팔 소리’ 즉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성도들이 휴거되어 그리스도가 계시는 공중으로 함께 모일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왜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했을까?
고린도전서 15장에 여러 가지가 대비되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 예를 들어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등 - 그는 그 ‘마지막 나팔 소리’와 성경에 처음 나오는 ‘첫째 나팔 소리’를 대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의 대비는 대부분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에 대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 역시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 그리고 사망의 패배를 대비시키고자 함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의 주제가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이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과 사망의 패배와 상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를 대비해 볼 때 우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의 용도와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첫째 나팔 소리의 용도와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나팔 혹은 나팔 소리가 가장 처음 언급되는 곳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출애굽기 19장 10-20절이다.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 친히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려 하시며 바로 이 시점에서 첫째 나팔 소리가 울린 것이다. 이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자신과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 모세의 율법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출19:3-8; 20:1-18). 그러므로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모세 율법과 관련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나팔 소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만났으며 율법 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 고린도전서 15장의 몸의 죽음과 몸의 부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위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죄가 사망을 불러왔고 사망을 불러일으킨 죄의 힘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임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계신 산에 다가와 그 산에 닿기만 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출19:12-13, 21-25). 바울은 율법이 진노를 이루며(롬4:15) 또 율법을 통한 죄의 정욕들이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사람들에게 이루고(롬7:5, 13) 또 율법이 사람을 죽인다고(고후3:6) 분명히 말하였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이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참으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곧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무에는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무도 영광이 될진대 의의 직무는 영광이 더욱 뛰어나니라(고후3:7-9).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어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고 그들을 율법 아래 놓이게 하였으며 또 그 율법이 죽음을 일으키는 죄의 힘이 되면서 사망의 직무를 감당하였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의 목적이 시내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로써 사망의 직무를 시작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너희는 만질 수 있는 산과 불이 붙은 산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깜깜함과 어둠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씀하시는 음성에 이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 음성을 들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하지 마시기를 간청하였으니 (그들은 주께서 명령하신 것 즉, 짐승 하나라도 그 산에 닿기만 하면 돌로 맞거나 화살로 꿰뚫림을 당하리라, 하신 것을 견디지 못하였느니라. 그 광경이 이같이 무서웠으므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히12:18-21).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린도전서 15장과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의 목적이 백성을 공중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불러 모으고 이로써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의 부활과 몸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와는 전혀 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불러내기 위해 울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사망)이 끝나고 그 직무가 폐지된다. 또한 이 마지막 나팔 소리는 고대의 나팔 소리의 또 다른 목적 즉 적을 두렵게 하거나 혹은 다가오는 위험이나 심판에 대해 경고를 주는 것 같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가 사람들을 불러내어 사망의 직무의 시작을 알렸으므로 사도 바울은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을 불러내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삶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이다. 그가 이것을 ‘마지막 나팔 소리’라고 한 것은 그 나팔 소리 이후에 또 다른 나팔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첫째 것과 마지막 것을 비교하면서 ‘마지막’이 ‘첫째’의 반대가 되므로 그 나팔 소리를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라 한 것이다. 이 나팔 소리는 교회의 휴거 때에 울릴 것이며 하나님의 첫째 나팔 소리가 울렸을 때의 목적과 정반대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공중으로 그리스도께로 모으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에 대해 칼드웰은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준다.
우리는 고전15장에서 ‘첫 사람’과 ‘마지막 사람’에 대해 읽는다. 그러므로 여기의 ‘마지막 나팔 소리’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셨을 때에 즉 정죄와 사망의 직무가 시작되었을 때에 울렸던 나팔 소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그것은 한 마디로 정죄와 사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반면에 ‘마지막 나팔 소리’는 부활과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나팔 소리는 저주를 선포했고 그 무섭고 큰 소리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서 떨게 되었다. 반면에 마지막 나팔 소리는 복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그 소리가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부활시키고 살아남은 자들을 죽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 주는 일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레날드 샤우어스(Renald Showers)의 「마라나타」(Maranatha: Our Lord Come!)에서
2011-04-16 14:13:34 | 관리자
한국의 봄입니다.
멀리 이국땅에 계신분, 책상 사무실에 계신분, 계절 감을 느끼지 못하시는분,
잠시 쉬어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빚어 주신 세상 모든 것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요!
멀리 가지않아도 집주변 돌아보니 봄이 성큼 머물고 있었습니다.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요즘,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잠시 내려 놓으세요.
앗싸!! 호랑나비말고 노랑나비!!
가끔 강아지에게 많은걸 요구 하기도 합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들을수 있을줄 알았습니다.ㅎㅎ
주님 안에서 항상 행복하시기를.....^^
2011-04-16 10:49:48 | 이청원
샬롬 ~!
오늘은 저의 관심 분야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신 섭리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는 현재 한 공업전문대학의 정보통신과 1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오늘날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 관련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보가 다량으로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통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구촌이 더욱 가깝게 되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보통신 관련 기술자들,
특히 보안 관련 전문가들은
늘 항상 여러가지 골치덩이에 시달려야만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골치덩이가 되는 문제라 하면
컴퓨터 보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 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DDoS(Distribution Denial of Service;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등
대다수의 컴퓨터가 대상이 되는 공격이 일어나면서
컴퓨터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가운데에서
과연 우리 손에 받아 쥔 하나님의 말씀책이라 할 수 있는
성경책이 과연 하나님께서 친히 오랜 시대 가운데서
정말로 보존해 주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나 시대의 손을 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정보 통신 보안의 주요 3요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보존 섭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어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가용성
컴퓨터나 정보 통신 보안에서 자료나 정보를
사용 허가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보안의 특성을
가용성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용성이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인가 받은 사용자들만
정보나 자료를 열람, 이용할 수 있는
정보 보안의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한 집단 사이에서만 이용해야하는 -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
정보/자료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제 3자의 손에 넘어갔다면,
제 3자가 입수한 정보/자료를 마음대로
편집하고 손을 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맡기실 때의 원칙과
상응하는 부분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말씀을
여러 세대,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그분의 뜻을 위해 예비하신 사람들을 부르셔서(시 4:3)
그 사람들에게만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보존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바로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사람들에게 전해 주신 말씀을
인간의 자연 언어(원본은 히브리어/그리스어)로 그대로 옮겨서
여러 세대 가운데서 보존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2차적으로 여러 민족들과 나라들의 언어를 가진
그분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각 언어로 번역해서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오직 주께서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자를
따로 두신 것을 알지어다.(시4:3, 흠정역)
그런데,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탄 것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 사악한 자 마귀를 보십시오.
바로 저 사악한 자 마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손을 대려고
치열하게 자신의 수하들을 이용해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말씀 변개(창3장)와
그리스의 인본주의-헬레니즘 사상에 도취되었던
자신의 수하들인 유대인 지도자들을 통한 알렉산드리아 변개 사건,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사용했던 기법들
(참조/비교:시편91:11-12 : 마4:6 및 눅4:10-11=>영어KJV를 참조하세요),
사탄 마귀의 최대 걸작품 로마 카톨릭(이하 RC)이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것,
RC의 첩자들(웨스트콧, 호르트 etc)이
RC의 밀지로 신약성경 공인본문(TR)을 변개한 것 등
자신의 힘으로 직접 말씀을 변개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사람들
- 말씀을 사용할 권한을 인가받지 않은 자들 -
곧 자신의 수하들을 이용하여
말씀을 수없이 날조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귀는 전 세계적으로 경악할 만한
해커/크래커들보다도 더 무서웠으면 무서웠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말씀을 여러 세대 속에서도
놀라우신 섭리로 보존해 오셨습니다.
세상에 널린 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지며,(사40:7)
이 땅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도 지금은 한 때나마 젊은 시절을 보낼 지 모르지만,
시간이 되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며(창3:19),
이 땅위에 가장 오래된 고문헌들이
아무리 유서 깊고,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패와 파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고 흐르면서
손때가 묻고, 또 여러 사람들의 편집을 거치면서
원문과는 다른 내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 흠정역)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흠정역)
하지만, 이 세상의 시간과 세월의 흔적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영원히 보존되리라는
약속을 변개치 않으셨습니다(사40:8; 시12:7; 시119:89; 마24:3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위해 예비하신
참 신실한 그분의 종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맡기시고
이 세상의 책들은 비교할 수도 없는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 사본들을 보존하셨습니다.(글자 하나하나 빠짐 없이)
그 후, 이렇게 보존해 주신 말씀의 원본들(구약 - 히브리 맛소라 전통 본문,
신약 -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
을 틴데일, 마틴 루터 등의 또 다른 신실한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언어로 번역해서
각 지역에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그대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1611년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칙령에 의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Authorized King James Bible; KJB)이 탄생하였으며 지금 우리들의 손에 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2. 무결성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순수한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결성(無缺性)이란 정보 통신상에서
시스템 내의 정보는 오직 인가된 사용자만이 수정하도록 하여,
데이터가 임의로 변조되거나 위조 등 훼손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보를 주고 받는 데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가용성에서와 같이
사전에 미리 협약하여 정보/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인가받은 사람들끼리만 정보/자료를 사용/열람할 수 있도록 하여
권한을 인가받지 않은 제 3자의 정보 시스템 침투를
방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만약의 경우에 제 3자가 중요한 정보를 유출시킬 경우
이 제 3자가 유출시킨 정보/자료를 마음대로 이용하면서
변조시키거나 훼손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정보 통신에서의 정보 보안에 있어서
오직 사전에 허가를 받은 사람만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사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원칙도 이와 같습니다.
구약 성경의 본문(히브리 맛소라 전통원문)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필사되어서
히브리인들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전해졌다고 합니다.
다음은 1960년 밀러(H.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 수록된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입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 줄에서 60 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 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 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했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 킹제임스 흠정역 한영대역 성경(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부록 <흠정역 성경의 4중 우수성>에서 인용
자, 이제 어떻습니까?
여기에서 수많은 현대 역본들과
킹제임스 성경의 확연한 차이점이 보이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주 치밀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올바로 전달될 수 있도록
글자 하나하나에 세밀한 관심을 기울이셨으며
단 한 군데라도 잘못된 곳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 점이 킹제임스 성경과
수많은 오류의 싹인 대다수 현대 역본들을
판이하게 가르는 결정적인 핵심입니다.
마귀는 자신의 음흉한 사상/생각이 담긴 수많은 성경 역본들
- 떨거지들! - 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가지의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이 탄생되기까지
아주 순수하게 말씀의 원본을 흠이 없이 보존하셨다는 것입니다.
3. 비밀성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의 말씀들이 담겨진
원본은 어떻게 해서 음흉한 제 3자의 손을 거치지 않았던 것일까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정보 보호의 비밀성과 관련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정보 보호의 보안 3요건 중에 하나인
비밀성이란 시스템 내에 전달된 정보는
제 3자가 접근할 수 없고 오직 인가된 사용자만 접근 가능하도록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비밀성은 위에서 언급한 가용성, 무결성과 결합하여
이 두 요건이 충족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으로서 시스템 내에 있는 모든 자료와 정보는
오직 사용이 허가된 사용자만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비밀성의 원칙과 비교해 보았을 때어떻게 보존되어 왔을까요?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에 이르기까지어떻게 하여 이전의 선각자들에게 전해진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후대에 자신의 말씀이변개되거나 왜곡될 수 있음을 아시고
위와 같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해 오셨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사용할 때 중요한 원칙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믿음으로 이를 행하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을 배격하고, 그분의 말씀을 바꾸려 하는 자들은
전혀 범접할 수 없게 하십니다.(신12:32; 잠30:6; 계22:18-19)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서로 간에 정보나 자료를 주고 받는 원칙이나,
인터넷/통신 상에서 정보/자료를 제공하는 원칙이나,
정보/자료 사용에 대한 규제의 원칙이 있어야만
정보/자료가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마음을 담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원칙을 그대로 지켜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손에 지금 들려진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순수한 말씀들(시12:6,7,흠정역)
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모든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 1611 에 담으신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주의 신실하심은 모든 세대에 이르나이다. (시119:89-90, 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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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2 10:29:19 | 소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