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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2년 동안 Good TV(C3TV)를 통해 창세기 강해와 요한 계시록 강해가 케이블로 전국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이 자연스레 많이 알려졌습니다.   참조: http://tv.c3tv.com/lambon/   지난 6월에 계시록 강해가 끝난 이후로 성막과 절기 강해 역시 방영되기를 원했는데 방송사 사정으로 연기되다가 9월 13일이나 20일 주간부터 방영될 것으로 보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 방송에 앞서 금주 목요일 오전과 토요일 오후에 1편이 시험 방송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화질, 자막, CG, 시청자 반응 등을 보고 정기 편성을 위한 평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목: 정동수교수의 성막과 절기강해   - 본방: 9월 2일(목요일) 오전 11시- 재방: 9월 4일(토요일) 오후 2시 50분   편성표: http://tv.c3tv.com/lambon/schedule/index.asp 9월13일 주간이나 20일주간부터 개편되면서 정기편성될 예정입니다. 우리 사이트의 회원들 중에 케이블 TV를 시청하시는 분들은 이것을 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보시고 꼭 C3TV 정기 방송 시간에 방영해 달라고 전화해 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여러분의 전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전화: 02-3219-6309, 6269, 6270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과 그 안의 진리가 우리 민족에게 전달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09-01 12:02:03 | 관리자
'사람의 아들' 과 '인자'       개역개정판 성경을 읽다가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낯설게 다가오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의 아들' 이라는 단어인것 같다. 예수님 자신을 표현할때 항상 '인자가' 라는 말로 시작했고 거기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처음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을 읽을때 한동안 낯설고 이상했었다. 물론 지금은 '사람의 아들'이 부담없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진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킹제임스 흠정역을 소개하면서 성경의 몇 구절을 찾아 보여드렸다. 현재 사용하는 개역개정판 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 드리려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불현듯 성경책을 덮으시고 침묵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나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킹제임스 성경의 글귀였던 것 같다. '인자가'가 아닌 '사람의 아들' 이라는 글귀를 접하고는 굉장히 부담스럽워 했고 이상하게 느껴지셨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말이다. 큰아들이 이상한 성경책을 보는 것 같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성교회(장로교)의 안수집사와 권사로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시한 성경을 보고는 이단들이 보는 성경으로 일축해버리신 것이다. 부모님은 나이가 있으셔서 성경을 깊이있게 들여다 보시지도 못하시고 성경을 탐구할 의지도 약하신 터라 해명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남이라면 그냥 넘어갈수도 있을 텐데 부모님이기에 꼭 알려드리고 싶었고 진실을 알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었다.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혹, 이러한 표현이 처음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접할 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낯설음, 이상함, 불안함이 아닐까?       현재 개역성경, 개역개정성경, 표준새번역성경, 우리말성경 등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인자가'를 사용하고 있다. 킹제임스(흠정역), 공동번역, 2005년도 기준 카톨릭성경, NIV성경, KJV성경, NASB성경 등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사람의 아들'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한문 : 人子 = 人(사람인) + 子(아들자) 가 합쳐진 '인자'의 뜻은 '사람의 아들'   한글 : 사람의 아들   영어 : the Son of man       어찌보면 개역성경에 사용되는 '인자'도 '사람의 아들'을 의미한다고 말할 것이다. 위에서 보듯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수십년을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에서 '인자가'를 읽을 때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을 생각하면서 읽은적은 한번도 없다. 나만 그랬을까?  아마도 많은 기존 우리말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인자가'하면 단순히 예수님을 떠올리거나, 1인칭 시점으로 예수님 자신인 '내가'라고 하는 것으로, 때로는 3인칭의 '그가(He)' 라는 의미로 인식했을 것이다.  특별히 깊은 뜻이 있지 않은 자신을 지칭하는 인칭명사 정도로 성경을 읽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아주 심오한 정의를 내린다. [인자는 예수의 지상에서의 출생, 예수의 고난, 예수의 재림과 관련되어 쓰여졌으며 이것은 인자가 메시아로서의 주권과 영광, 고난과 희생의 이념을 아울러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기를 향해 쓴 인자는 어느 것이든 메시아적 예표인 ‘수난의 종’과 ‘영광의 주’와의 합치로서 귀한 메시아적 칭호이다. 이것은 예수가 영광에 돌아가기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은 것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의 경우 하늘에서 내려와 구속사업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구속자의 관념이 강하다 등].         신학적으로는 많은 수식어로 포장된 '인자'인데  어찌 사람의 마음에 전혀 다가오지 않는 인칭명사가 되버린 것일까?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  스올, 하데스, 음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는가? 개역성경에서 지옥을 음역하여 지옥대신 스올, 하데스, 음부로 바꾼 것들이다.  끔찍한 스올에 가지 맙시다. 라는 표현속에서 마음에 무엇이 와 닿는가? "끔찍한 음부에 가지 맙시다."라는 표현은 어떠한가?  "끔찍한 지옥에 가지맙시다."라는 감정으로 바로 다가오는가! '지옥'이라고 하면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깊은 뜻을 정확히 전달 하였을 텐데 개역성경은 그렇치 못하다.       하나 더 찾아보자,  네피림, 르바임, 장대한자는 어떤가?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에서는 명확하게 거인으로 드러나 있으며 성경은 창조세계에는 거인종족들도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개역성경 사용자들 중에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곳이 르바임의 땅이다' 라고하면 이말이 '거인의 땅이다' 라는 뜻으로 마음에 와 닷는가?  마찬가지로 '인자가' 하면 그냥 단순히 인칭되는 예수님이 아닌 '사람의 아들',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으로 마음에 와 닷는가!        *개역성경에 사용되는 스올, 하데스, 음부, 네피림, 르바임, 장대한자 등에 대한 성경의 명확한 근거를 확인하고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증명할수 있는 자료를 링크했다.        지옥 과 흠정역, 개역, KJV, NIV, 카톨릭성경 대조분석(1)   http://keepbible.com/Study5/View/3T3       지옥 과 흠정역, 개역, KJV, NIV, 카톨릭성경 대조분석(2)   http://keepbible.com/Study5/View/3T4?page=8       영, 혼, 몸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과 성경 비교분석 (2)   http://keepbible.com/Study5/View/3Sr?page=8               나는 맥심커피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커피의 단어는 Coffee 라는 영어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이다. 마찬가지로 인자라는 말은 '人子' 라는 한자어가 우리말로 정착된 '외래어'인 샘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왜 예수님은 굳이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셨을까? 신약성경에는 83회에 걸처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때는 분명 뜻하시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흠정역 성경과 개역성경에 '사람의 아들'과 '인자'가 쓰여있는 성경구절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묵상해 보고 또한 성경을 대조해 보면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려는 이유와 그 뜻을 헤아려 보자!         * 마태복음에 30회, 마가복음에 14회, 누가복음에 25회, 요한복음에 12회, 사도행전에 1회, 히브리서에 1회, 요한계시록에 2회를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사람의 아들이 직접하신 말씀만 모아놓고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다. 참고로 각 복음서마다 3개씩만 대조를 사용하였다. 이유는 일관성있게 모두다 똑같은 표현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마태복음 8장 20절)   킹제임스 흠정역 :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니라   개역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카톨릭 :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KJV : And Jesus saith unto him, The foxes have holes, and the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th not where to lay [his] head.   NIV : Jesus replied,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마태복음 9장 6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그때에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 하시매   개역 :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카톨릭 :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KJV : But that ye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th power on earth to forgive sins, (then saith he to the sick of the palsy,) Arise, take up thy bed, and go unto thine house.   NIV : But so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 . ." Then he said to the paralytic,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마태복음 10장 23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그들이 이 도시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도시로 도망하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다니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개역 :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카톨릭 :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KJV : But when they persecute you in this city, flee ye into another: for verily I say unto you, Ye shall not have gone over the cities of Israel, till the Son of man be come.   NIV : When you are persecuted in one place, flee to another.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finish going through the cities of Israel before the Son of Man comes.       (마태복음 11장 19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즙을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그러나 지혜는 자기 자녀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장 8절)   사람의 [아들]은 곧 안식일의 [주]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장 32절)   또 누구든지 말로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면 그는 용서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님을 대적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는 용서받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장 40절)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마태복음 13장 37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요,       (마태복음 13장 41절)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것이요, 그들이 실족하게 하는 모든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그의 왕국에서 모아다가       (마태복음 16장 13절)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마태복음 16장 27절)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 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마태복음 16장 28절)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장 9절)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날 때까지는 그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       (마태복음 17장 12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그에게 행하였도다. 사람의 [아들]도 그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당하리라, 하시매       (마태복음 17장 22절)   그들이 갈릴리에 거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마태복음 18장 11절)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구원하려고 왔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8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시 나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마태복음 20장 18절)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죽이기로 정죄하고       (마태복음 20장 28절)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장 27절)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장 30절)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장 37절)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장 39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장 44절)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마태복음 25장 13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장 31절)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아서       (마태복음 26장 2절)   너희가 아는 대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장 24절)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장 45절)   그 뒤에 자기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그 시각이 가까이 왔으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죄인들의 손에 넘겨졌느니라.       (마태복음 26장 64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2장 10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개역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카톨릭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KJV : But that ye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th power on earth to forgive sins, (he saith to the sick of the palsy,)   NIV :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 . ." He said to the paralytic,       (마가복음 2장 28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이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니라, 하시니라.   개역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카톨릭 :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KJV : Therefore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NIV : So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마가복음 8장 31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며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시되   개역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카톨릭 :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KJV : And he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of the elders, and [of]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NIV : He then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that he must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마가복음 8장 38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장 9절)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명하사 사람의 [아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때까지는 그들이 본 것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시니       (마가복음 9장 12절)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참으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려니와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는 기록된바 그가 반드시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9장 31절)   이는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요, 그가 죽은 뒤 셋째 날에 일어나리라, 하셨기 때문이라.       (마가복음 10장 33절)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죽이기로 정죄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리라.       (마가복음 10장 45절)   킹제임스 흠정역 :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3장 26절)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3장 34절)   사람의 [아들]은 마치 자기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위를 주어 각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는 어떤 사람과 같나니       (마가복음 14장 21절)   사람의 [아들]은 참으로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려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장 41절)   그분께서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족하도다. 그 시각이 왔도다. 보라,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죄인들의 손에 넘겨졌느니라.       (마가복음 14장 62절)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5장 24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 하시매   개역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카톨릭 :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KJV : But that ye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th power upon earth to forgive sins, (he said unto the sick of the palsy,) I say unto thee, Arise, and take up thy couch, and go into thine house.   NIV :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 . . ." He said to the paralyzed man, "I tell you, get up, take your mat and go home."       (누가복음 6장 5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니라, 하시니라.   개역 :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카톨릭 :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KJV : And he said unto them, That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NIV : Then Jesus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누가복음 6장 22절)   킹제임스 흠정역 : 사람의 [아들]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자기들의 모임에서 따돌리고 너희를 꾸짖으며 너희 이름을 악한 것으로 여겨 내버릴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개역 :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카톨릭 :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KJV : Blessed are ye, when men shall hate you, and when they shall separate you [from their company], and shall reproach [you], and cast out your name as evil, for the Son of man's sake.   NIV : Blessed are you when men hate you, when they exclude you and insult you and reject your name as evil, because of the Son of Man.       (누가복음 7장 34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가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즙을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28 15:07:10 | 노영기
(누가복음 9장 22절)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일으켜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장 26절) 누구든지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자기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중에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누가복음 9장 44절)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셨으나   (누가복음 9장 56절)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누가복음 9장 58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누가복음 11장 30절) 이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에게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라.   (누가복음 12장 8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시인하려니와   (누가복음 12장 10절) 누구든지 말로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면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2장 40절)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장 22절)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날들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들 중 하루를 보고자 하되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7장 24절)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빛을 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7장 26절)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7장 30절)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같으리라.   (누가복음 18장 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31절) 그 뒤에 그분께서 열두 제자를 데려다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대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누가복음 19장 10절)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27절)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구름 가운데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   (누가복음 21장 36절) 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장 22절) 진실로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가거니와 그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누가복음 22장 48절)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느냐? 하시니   (누가복음 22장 69절) 이제부터는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편에 앉으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24장 7절) 이르시기를,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요한복음 1장 51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개역 :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카톨릭 :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KJV : And he saith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reafter ye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upon the Son of man. NIV : He then added, "I tell you the truth, you shall see heaven open,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요한복음 3장 13절) 킹제임스 흠정역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개역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카톨릭 :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KJV : And no man hath ascended up to heaven, but he that came down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which is in heaven. NIV :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요한복음 3장 14절) 킹제임스 흠정역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개역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카톨릭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KJV :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NIV :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desert,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요한복음 5장 27절)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또한 심판을 집행할 권위를 주셨느니라.   (요한복음 6장 27절)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 53절)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장 62절) 그러면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려느냐?   (요한복음 8장 28절)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며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한복음 12장 23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2장 34절) 사람들이 그분께 응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거하신다고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사람의 [아들]은 누구냐? 하매   (요한복음 13장 31절) 그러므로 그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도다.   (사도행전 7장 56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 개역 :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카톨릭 :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KJV : And said, Behold, I see the heavens opened, and the Son of man standing on the right hand of God. NIV :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히브리서 2장 6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한 사람이 어떤 곳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개역 :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카톨릭 :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KJV : But one in a certain place testified, saying, What is man, that thou art mindful of him? or the son of man, that thou visitest him? NIV : But there is a place where someone has testified: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요한계시록 1장 13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께서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 개역 :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카톨릭 :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KJV : And in the midst of the seven candlesticks [one] like unto the Son of man, clothed with a garment down to the foot, and girt about the paps with a golden girdle. NIV : and among the lampstands was someone "like a son of man," dressed in a robe reaching down to his feet and with a golden sash around his chest.   (요한계시록 14장 14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께서 앉으셨는데 그분의 머리 위에는 금관이 있고 그분의 손에는 예리한 낫이 있더라. 개역 :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개역개정 :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카톨릭 :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KJV : And I looked, and behold a white cloud, and upon the cloud [one] sat like unto the Son of man, having on his head a golden crown, and in his hand a sharp sickle. NIV :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white cloud, and seated on the cloud was one "like a son of man" with a crown of gold on his head and a sharp sickle in his hand.    *  계시록 14장 14절은 개역성경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로 번역되었다. 왜 그랬을까? 개역성경을 개정한 개역개정판에서는 이 부분을 인자로 수정하였다. 옥에 티 였을까?     많은 대언자, 선지자들의 대언과 예언성취를 통해 총체적인 이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는 것이 좋겠으나 그러하기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다니엘서 7장 13절에 기록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의 시대적 고찰 과 신약성경의 '사람의 아들'로 시작하는 성경구절들을 통해서만 그 의미와 뜻을 상고해 보고자 한다.   (다니엘 7장 13절) 킹제임스흠정역 : 내가 밤의 환상들 속에서 보는데, 보라,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와서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가니 그들이 그를 그분 앞에 가까이 데려가니라. 개역 :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카톨릭 :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KJV : I saw in the night visions,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him. NIV : "In my vision at night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one like a son of man, coming with the clouds of heaven. He approached the Ancient of Days and was led into his presence.   구약성경에 유일하게 예수님에 관련하여서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언급이 1회 있는데 다니엘서에 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니엘이 살던 시대적 배경과 환경을 생각해 보자   다니엘서는 주전 606 - 536년경 다니엘에 의해서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언급했던것 보다도 훨씬전인 5~6백년전에 다니엘이 환상을 통해 본 인물을 묘사한 말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400년의 속박에서도 살았었고 주전 732년과  721년에 2번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노예생활을 했으며 BC 606년, 597년, 586년, 3차례의 바빌론의 노예로도 살았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의 소망은 그들의 오랜 바램이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수가 있다.    다니엘은 BC 60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대의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갈때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이때 붙잡혀 갔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선발되어져서 갈대아 사람들의 학문과 말을 배우게 되었으며 훗날 다리오 왕때에는 바빌론을 120명의 통치자로 다스리게 하고 그 통지자들 위해 3명의 총리를 세웠는데 다니엘은 3명의 총리들 가운데 첫째로 으뜸가는 사람이기도 하다.(단6:1) 또한 다니엘은 어떤 실수나, 어떤 허물도 찾아볼수 없는 신실한 사람이었다.(단6:4) 이런 다니엘이 위 7장 13절의 환상을 본것이며 이 다니엘서는 1차 수신자가 포로 생활 초기에 바빌론에 거하던 유다 백성이라는 관점에 유의하여 보면 될것이다.   다니엘은 환상들 가운데 어떤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보았는데 환상을 보고있는 다니엘은 어린나이의 다니엘이 아니라 63세가량의 연륜이 있는 상태에서 본것이며(단5:31,단7:1) 이때 환상에서 보여지는 인물은 아들같은 젊은사람을 본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또 본것은 예적부터 계신이(하나님)가 사람의 아들같은 존재에게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주시는것을 목격한 것이다.(단7:14)  다시말해서 다니엘이 본것은 예수님이 맞으나 다니엘은 그가 누군지 모르고 다만 젊은 청년이 예적부터 계신이에게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받는것을 환상으로 본것이다.    (다니엘서 7장 14절)  그분께서 그에게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주시니 이것은 모든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 그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그의 통치는 영존하는 통치요, 없어지지 아니할 통치며 그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할 왕국이라.   그래서 다니엘은 그 환상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근심하였고 환상중에 옆에 있던 자들 가운데 하나에게 그 일들에 대한 해석을 묻는 장면이 나오며(단 7: 15,16),  그 젊은청년이 지극히 높으신 이 라는 것과 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막지막때 일어날 일들을 듣게 된것이다. (단 7:17~27)   (다니엘서 7장 15절,16절)  나 다니엘이 내 몸 한가운데서 내 영 안에서 괴로워하였으며 내 머리 속의 환상들이 나를 근심하게 하므로  / 내가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하나에게로 가까이 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그에게 물으매 이에 그가 내게 그 일들에 대한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이땅에 어떻게 오셨고 어떠한 삶을  사셨고 또 어떻게 죽으셨는지 알고 있으며 또한 영과혼과육의 온전한 몸으로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을 잘 알고 있다. 그분은 33세의 젊은 청년의 모습이며 사람의 아들로 보여질 그런 모습이며, 20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오실 주님의 모습은 그런 젊은 사람의 아들같은 모습으로 왕의왕으로 오실것이라 나는 믿는다. 아마도 다니엘은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과거의 예수님의 전 생애를 알지만 이것을 전혀 모르는 약 63세의 다니엘이 본 환상은 그 때로 부터 약 550년후(이땅에 메시아가 오심) 와 그로부터 2014년이 지난 현재까지 도합 약 2564년 이후의 일을 본 것이며 더 나아가 앞으로 있을 7년대환란의 후 3년반때를 환상으로 보았다는 것을 문맥을 통하여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 일의 끝이니라. 나 다니엘로 말하건대 내가 깊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였으며 내 안색이 변하였으나 내가 그 일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였느니라.(단 7:28) 라고 기록한 다니엘은 찹찹하고 이해하기가 어렵고 많이 혼란스럽지만 자신이 본 환상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기록을 통해 짐작할수 있다.   다니엘은 유대인이자 바빌론의 으뜸가는 총리였으며 어떤 실수나, 어떤 허물도 찾아볼수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대언자이었기에 그의 기록한 말씀은 메시아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기록문서 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메시아로 오셨을 당시, 전승되어오는 대언자들의 기록들이 그들의 정서와 문화, 역사적 인식에 녹아져 있었으며 삶의 배경과 토대를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성경을 읽는것 처럼 그들도 대언자들의 말씀들을 읽고, 외우고, 가르치고 낭송하였을 것이다. 대언서들 가운데 다니엘서는 그들의 왕국과 미래에 대한 기록들을 담고 있어 그들에게 더욱더 중요했으리라 믿는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 이라고 소개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언자들의 기록들에 표현된 것들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기원하셨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도 이런 대언자들의 기록들중 다니엘의 기록에서 찾아볼수 있으며  유대인이라면 인식할수 있는 그런 범주안에 있는 표현인 것이다.       약 2564년 전의 다니엘의 기록   내가 밤의 환상들 속에서 보는데, 보라,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와서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가니 그들이 그를 그분 앞에 가까이 데려가니라. 그분께서 그에게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주시니 이것은 모든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 그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그의 통치는 영존하는 통치요, 없어지지 아니할 통치며 그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할 왕국이라. (다니엘 7장 13절,14절)     약 1981년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   *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시 나게 하는 때 곧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리라   *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 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   *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누구든지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자기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중에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며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대로 내가 이것들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그 뒤에 그분께서 열두 제자를 데려다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대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또다른 의미는 말씀으로만 그려보자!   *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느니라, 하시니라.   *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이르시기를,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일으켜지리라, 하시니라.   *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또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그 큰고 높으신 분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우리와 같은 동질감을 느낄수 있는 모습으로 오신것이다.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자국을 갖고 있는 모습이며 만져지는 분이심을 우리는 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분명 사람의 아들인 것이다. 다시오실때 우리가 대통령을 만나듯 사람의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왕중의 왕인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눈으로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설레이지 않는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27 23:47:45 | 노영기
※ 고전 테마 독립 침례교회들에서 쓰는 학원-_- 같은 책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예배당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교회 특유의 롱시트를 기억하는가? 새벽 기도회. 예배 시각이 되면 가운을 입은 목사님이 종 한번 땡~치고서 근엄한 표정과 굵직한 목소리로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다함께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안 한다. "하나님께 새벽 '제단'을 봉헌하시겠습니다" 라고 한다. ^^;; 비슷한 논리로, 예배당이라는 말 잘 안 쓰고, 성전이라고 한다. =_=;; (절간에도, 성당에도 어딜 가도 종은 있는데 우리 교회 같은 곳에는 없는 게 굉장히 이색적이지 않은가? 십자가만 없는 게 아니다. ^^) 가끔은 몇 박 몇 일 부흥회도 한다. 아주 카리스마적인 부흥 강사가 이끄는 열화와 같은 분위기에 매료되며, 그 끝은 언제나 주여 삼창 통성기도이다. 물론 단순한 분풀이 스트레스 풀이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걸 계기로 잠깐이나마 신앙을 각성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래뵈어도 '주의 종'이라구. 나의 설교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거기 때문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어디 감히!" 이런 말은 아마 목사 제도 같은 거 싫어하는 분들이 굉장히 거부감을 가질 표현이다. 성도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교만이고 양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벧전 5:3) 자비심 없는 목회자의 객기이지만, 유아 세례 반대하다 파면 당했다거나,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 반대해서 교회가 폐쇄되고 목사가 잡혀 가는 그런 상황에서 밖에다 들으라고 한 말이라면.. 나름 용기와 믿음으로 한 말이지 않겠는가. 나는 권위주의는 싫어하지만 권위 자체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목사님과 비슷한 연배인 분이 대표 기도를 할 때야 "목사로 세우신 ○○○ 형제님께" 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새파랗게 젊은 애들은 더구나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 예의를 감안하더라도 목사님,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교회의 기둥인 장로님들은 대표 기도는 어쩜 그렇게 화려하게 잘 하시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성구 암송으로 시작해서 원고(?) 없이 드리는 기도문은 한 편의 시조인데 구수함과 운율과 모음 조화,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를 위하야('위하여'가 아니다) 그 높은 하늘에서 내려와 미천한 피조물들을 찾아오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주님 등등등..."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곳에서 남자들이 진노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딤전 2:8) 미국 명절하고 우리나라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수 감사절 때는 강단 위에 오곡백과가 세팅되었고, <산마다 불에 탄다 고운 단풍에> 같은 아주 한국적인 찬송가를 불렀었다. (통일 찬송가에 있음) 주일 오전 예배는 목사님의 축도로 도장을 꽝 찍어야 참석한 걸로 영적 결제가 된다. ^^;; 목사님이 안 계실 때나 구역 예배가 끝날 때는 주기도문 암송이 마무리 프로세스이다. 거기에다 성대한 행사인 부활절, 성탄절 같은 것까지 들어가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이것이 본인이 어렸을 적, 교회에 대해 갖고 있던 추억이다. 빈정대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저기서 변개된 성경, 이상한 은사주의, 구약 율법 잔재, 천주교 누룩, 비성경적인 관행 같은 것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저런 분위기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며, 친근감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 선조들이 그런 방식으로 교회 기틀을 세우고 그런 문화를 만들어서 기강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오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일단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고전 테마가 아니면....? 현대 테마가 있다. ※ 현대 테마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으면 응당 유명한 큰 교회에 나가서 상류층 자제분들과 인맥도 넓히고, 유명한 목사님의 실물도 먼 발치에서나마 구경한다. 우리나라에서 교회만치 접근성 좋고 예쁜 여자도 많고, 사교 분야에서 가격 대 성능비가 뛰어난-_- 집단이 또 있겠는가. 유명인사 내지 연예인들의 간증 집회도 적지 않다. 역시 큰물에서 노니까 한국의 기독교계에서 행해지는 소위 문화 생활을 다 손쉽게 누릴 수 있다. 예배당 주위로 교인들을 고객으로 하는 은행, 음식점 같은 상권(?)이 발달해 있다. 성경도 읽기도 힘든 세로쓰기 붓글씨로 찍힌 구닥다리 개역성경이 아니라 이제는 최신식으로 세련되게 편집된 현대어 성경을 읽는다. 영어 공부도 NIV 같은 깔끔한 영어 성경을 읽으면서 한다. 사실 예배 때는 대형 스크린으로 찬송가 가사, 성구가 다 알아서 뜨기 때문에, 개인 찬송가와 성경책을 지참할 필요도 없다. 음악은? 최신 CCM들이 넘쳐난다. 찬양 예배, 열린 예배... 별 게 다 있다. 이런 교회는 성가대에 가입하려고 해도 오디션을 봐서 합격해야 하고, 지휘자들은 음대 교수 전문가 집단으로 그냥 물갈이가 돼 있다. 청년부를 지도하는 젊은 부목사-전도사는 해외 유학파이고 엄청 똑똑하며, 소위 신세대 문화란 것도 다 꿰뚫고 있다. 고리타분하고 언뜻 보기에 우악스러워 보이는 성경 본문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이 21세기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논의하는 데는 수준급이다. . . . 현대 테마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더 쓸 게 없다. 고전 테마에서 현대 테마로 넘어가려는 과도기 직전에 나는 교회 노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싹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즉, 현대 테마는 내가 경험한 적이 전혀 없다. 비록 고전 테마의 구수함도, 현대 테마의 세련됨도 부족하거나 없을지언정, 본인은 성경대로 믿고 행하며 거품/누룩이 없는 교회를 찾게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것... 지금 못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더욱 잘 했으면 하는 것은... 우리 같은 교회도 우리 진영만의 뿌리와 전통, 기강, 경험, 문화를 착실히 축적해 갔으면 좋겠다. 가령, 관행을 예로 들자면, 하계 수양회 때 침례를 주는 것, 성탄절 때 성탄 축제-_- 대신 복음 전도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 쪽 교회만의 좋은 고유 문화가 될 수 있다. 물론 무익하고 무의미한 족보, 뿌리 논쟁도 많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신자들이 그런 개념을 괜히 따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너희가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화한다"란 책망만 본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좋은 전통도 성경에 응당 나온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살후 2:15, 3:6) 이거 뭐 킹 제임스 성경 들고서 자기네들만 옳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성도들은 자기 교회에 제대로 헌신하지도 않고, 머리만 굵고 입만 살아서 논쟁과 남 비판밖에 할 줄 모른다.. 자기네들끼리 단합도 제대로 못 한다(마 12:25),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기만 한다. 뿌리도 없고 근본도 없다 ...   이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아무쪼록 세월이 흘러, 고전 테마, 현대 테마에 이은 킹 제임스 테마가 이 땅에 잘 정착했으면 좋겠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후세에 잘 전수되어 "KJV 1세대가 다 자기 조상들에게로 거두어지고 그들 뒤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으나 이들은 주를 알지 못하였으며"(삿 2:10a 변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25 18:12:52 | 김용묵
안녕하십니까~~   흠정역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사실 정동수 목사님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한 달이 넘도록 답장이 없어서 송구스럽게도 여기에다 글을 올립니다.   And Joshua adjured [them] at that time, saying, Cursed [be] the man before the LORD, that riseth up and buildeth this city Jericho: he shall lay the foundation thereof in his firstborn, and in his youngest [son] shall he set up the gates of it.          - Joshua 6:26   ¶ 그때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엄히 명하여 이르되, 일어나 이 도시 여리고를 건축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그가 그것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자기의 맏아들을 잃고 그것의 문들을 세울 때에 자기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 여호수아기 6:26   In his days did Hiel the Bethelite build Jericho: he laid the foundation thereof in Abiram his firstborn, and set up the gates thereof in his youngest [son] Segub,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ake by Joshua the son of Nun.          - 1Kings 16:34   ¶ 그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더니 {주}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따라 그가 그것의 기초를 놓을 때에 자기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고 그것의 문들을 세울 때에 자기의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더라.                             - 열왕기상 16:34   여기서 궁금한 점은 영어성경 어디에도 '잃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없는데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는 '잃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해석 한 지 정말 궁금하고 이 구절들을 좀 더 영어성경에 맞게 해석 할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상입니다.   몹시 주제넘은 질문을 한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이번에도 답장을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8: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35:13 킹제임스 흠정역 소개에서 이동 됨]
2010-08-25 01:49:22 | 박경호
  8월 달 연변지역 다녀왔습니다. 8월 15일 저녁차로 연길에 일주일간 다녀왔습니다. 그간은 연길에 이 따끔 한 번씩 갔지만 가서 그냥 모임을 가지고 전도를 하군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기보다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교제를 나누다 오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가서 그곳에 형제자매님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연길 교회에 제일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분은 조선화 자매님입니다. 조선화 자매님은 거의 소경인 자매님입니다. 낮에는 그래도 희미하게 라도 보이기 때문에 길을 다닐 수가 있는데 조금만 어두워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자매님입니다. 자매님은 원래 이런 소경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병으로 인하여 눈이 그렇게 되자 남편은 아내와 딸을 버리고 이혼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자매님이 조금씩 벌어서 생활해나가는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를 만나게 되었고 자매님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제 한형제님과(현제의 남편)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 연길시에서 많이 떨어진, 차도 다니기 어려운 아주 깊은 산골에 들어가 초가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자매님과 살고 있는 남편은 자매님을 만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제가 연길에 갔을 적에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번에 조선화 자매님 집에 가는데 차로 약 반시간 가량 타고 가고 다음은 경운기를 타고 또 15분 정도 들어가서 자매님이 있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울퉁불퉁한 시골 산길이었습니다. 제가 경운기를 타고 조자매님 집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것은 이런 깊은 산골에 이런 곳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뻗쳐서 구원을 받은 형제자매님이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참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현제 중국에서도 그런 초가집이 보기가 드문데 그 동네는 5가정이 사는데 4가정이 초가집에서 삽니다. 그곳 분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물에 세수하고 머리를 감으며 산의 샘물을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는 고구려 역사이야기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가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따는 일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돈이 나올 때가 없으니깐 그래도 조그마한 돈이라도 벌려고 고추를 심어 시내에 가져다 팔면 푼돈이라도 쓸까 해서 사천 고추를 심어놓았는데, 지금 빨리 따서 팔아야 돈을 벌수가 있었습니다. 사천 고추 한 근에 1원 30전을 합니다. 하루 종일 두 부부가 땡볕에서 고추를 따야 겨우 30~40근의 고추를 땁니다. 사천 고추는 아주 작은 고추인데 작아도 아주 매운 고추입니다. 이 고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먹는데 아주 맵지만 맛이 있는 고추입니다. 제가 고추 따는 일을 해보니 이 일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추가 아주 작아서 아무리 따도 양이 빨리 불어나지 않고, 또한 밭이 산비탈이라 그런 고추밭 속에서 무더운 날에 옆으로 서서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따려니 참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고추를 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고, 신앙의 교제를 할 수 있어서 참 은혜로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밥을 해먹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 두 부부가 살고 있지만 그분들 마음은 정말 천국이었습니다. 조선화 자매님은 눈이 잘 안보이고 신체도 아주 약한 자매님인데 시내에서 살다가 시골로 들어와서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삶인데, 자매님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정말 밝아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육신적으로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억력도 얼마나 좋은지 한번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아있는 컴퓨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자매님이 눈이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세상에서 크게 해먹고 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화 자매님이 간증하기를 내가 눈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한없이 높아있을 것인데 눈으로 인하여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가면 더 이상 소경이 아닐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저의 마음이 찡해났습니다. 자매님의 남편 한형제님도 정말이지 아내는 눈이 잘 안보여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인데 전혀 불평하지 않고 낮에는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또 자신이 손수 밥을 해 잡수십니다. 조선화 자매님은 겨우 남편을 도와 더듬더듬 하면서 그릇을 씻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정말 웃으면서 다정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두분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지가 온전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저는 목사라는 사람이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이해해주지 못하고 마음을 꺾지 못하고 다투고 싸울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저녁 모임에서 기억하고 있는 아는 찬송이 있냐고 물으니 자매님이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이 찬송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찬송가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고 했습니다. 그 찬송을 우리 함께 부르면서 [예수 밖에는 없네]라는 찬송가 가사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옹근 이틀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정말 제가 수양회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에 수양회 말입니다. 김길동 형제님 집도 방문했습니다. 형제님은 방이 한 칸짜리 집에서 형제님 부부와 또한 자녀 3명에다가 처제네 아이까지 둘이 있는데 7명이 그 한 칸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너무 좁게 불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님의 큰 딸이 나이가 스무살이 넘었고, 게다가 열 몇 살 나는 아이들이 세 명이 있는데 그 한 칸 방에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아침 새벽 4시 반이면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 저녁 6시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옵니다. 형제님에게 유일한 신앙을 할 수 있는 삶은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말씀을 듣고 저희들과 교제를 나누는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그 인터넷 비용도 낼 돈이 다 떨어져서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형제님의 생활비로는 그 인터넷 비용까지 댈 돈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이 얼마 전에 저에게 이 일을 교회들에 좀 말해서 해결해줄 수 없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뭐 교회에서 이런 것까지 해결해 달라고 하는가? 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그 형제님 편으로 생각해 볼 적에 자신이 해결하기가 너무 힘든 것이었고 다른 것도 아니고 말씀을 듣겠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문제를 놓고 많이 고민이 되었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비용이 중국에서는 일 년 것을 한 번에 물어야 하는데, 일 년 인터넷 비용이 중국 인민페로 6백원입니다.(백불 조금 안됩니다.) 그런데 저의 교회에서도 대어 줄 수가 없고 또한 한국 교회에다 부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음에서 든 것이 제 자신부터 믿음으로 살아가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저의 생활비를 온 것에서 그 돈을 떼어내서 형제님 인터넷 비용을 내줘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도 그렇게 하자고 토론이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제 자신 육신의 마음으로는 6백원을 그곳에 떼어내 준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형제님 집에 가서 사는 모습을 보니 무조건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일 년에 것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일 년에 것을 내주었습니다. 정작 돈을 내어주고 나니 이번 한 달 우리 가정의 생활비용 걱정은 사라지고 주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김길동 형제님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읽고 할 생각을 하니 정말 마음이 기쁨으로 벅차올랐습니다. 김형제님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저녁이면 성경 한 장씩 글로 씁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신구약 한 벌 다 쓰고 새로 또 많이 써나가고 있습니다. 그냥 성경을 읽기보다 이렇게 쓰면서 보니 더 많이 마음에 남더라는 것입니다. 김길동 형제님과 그의 가족식구들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기도해주세요. 김선녀 자매님, 김명화 자매님은 또한 장애인들입니다. 허리 등이 곱추입니다. 그래서 키도 자라지 못해서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구차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화 자매님 고모님도 구원을 받았는데 70이 넘은 할머님인데 혼자서 밥을 해 잡수며 겨우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저는 연길에 갈 적마다 저와 연결되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왜 이러한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힘이 없는 사람들인가? 좀 건장하고 잘 살고 하는 사람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하지는 라는 인간적인 마음도 들기도 했지만 이러한 형제자매님들을 보면서 이러했던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가 되군 합니다. 고전1장 26절에서 부터의 말씀이 더 실감이 납니다. 현제 연길에 필요한 것은 제가 그곳에 없어도 모임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아니 그렇게 할 형편이 되는 그러한 형제님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전에 김길동 형제님이 모임을 인도했는데 김길동 형제님도 출근하다 보니 지금 제가 가지 않을 적에는 모임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님들이 여기 저기 뚝 떨어져 살고, 또한 출근을 해야 하고 하기 때문에 모임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가용들이 있어서 저녁에라도 모일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 저녁이 되면 공공 버스도 일찍 끊어지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조선화 자매님이 성경을 자유롭게 들을 수가 있는, 우리가 사용하는 킹제임스 성경 엠피스리가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킹제임스 성경 낭독을 한 것을 소경이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엠피스리로 만들 수 있는지요?   자매님이 너무 성경을 듣고 싶어합니다. 자매님이 맹인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우리 킹제임스 성경 맹인글이 없지 않습니까? 자매님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번 연변에 다녀오면서 직접 형제자매님들 집에 가서 돌아보면서 마음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왔습니다. 어째보면 제가 형제자매님들께 은혜를 끼치러 갔다 라기 보다 제가 은혜를 입고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위에 사진은 조선화 자매님 시골집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11:5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22 18:11:57 | 시님사람
상기 주제에 대해서 이승구 교수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이 쓰신 글을 오늘 아침에 읽었습니다.제대로 설명해주신것 같아, 형제/자매님들께서 한 번 읽어보시라고 글을 올립니다.신학교에서 이상한 것도 많이 가르치지만, 이렇게 바르게 가르치시는 분이 계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직도 직통계시, 환상, 꿈에 천국을 보고 왔다는둥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분들에게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삶의 방향 전환을 이루었거나 하나님의 음성에 근거하여 인생길의 여러 가지 판단을 해 나간다고 말한다. 성경 계시 시대에 그러한 것이 있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별 생각 없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현상이 있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또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이 일류(一流)가 못되는 이류(二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오해에 근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일이 많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를 취하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사유 방식과 태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 유형의 사유 방식과 태도는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자신들이 과연 어떤 유형의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첫 번째 유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놀라운 계시를 주시거나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 나가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성경 시대에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삶을 인도하셨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그의 계시의 도구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여 인간들을 인도해 가신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직통 계시파’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성경 계시와 우리 시대에 주시는 계시를 별로 구별하지 않고, 그 관계를 연속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때로는 음성으로, 때로는 꿈이나 환상으로, 또 때로는 내면적 깨달음으로 그의 뜻을 드러내어 주시는 계시적 활동을 지속하시므로 우리는 그렇게 계속되는 계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결국 각각 다른 계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주관주의적 대립에로 나아가고 말거나, 아니면 우리들로 하여금 몇몇 종교적 엘리트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여 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계시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몇몇 사람이 받았다고 하는 새로운 계시에 의존해 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직통 계시파’는 결국 성경 계시에 새로운 계시를 덧붙여 나가는 일을 하지 말라는 성경의 금령을 깨고 지속적인 계시 수납을 시도하는 이단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첫째 유형은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에 속하지 않은 이단의 주장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이들은 대개 이런 유형에 가깝게 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두 번째 유형은 ‘좀 온건한 직통 계시파’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논리적으로 철저하지 않은 입장을 보인다. 즉, 이 온건한 직통 계시의 주장은 한편에서는 성경 계시의 독특성과 종결성을 인정한다. 성경 계시와 같이 우리들의 구원에 대해 필수적인 계시는 이미 다 주어진 것이므로 그런 계시는 이제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구원에 필수적인 성경 계시의 종결성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날에도 성도의 삶을 인도하시고 교회를 인도해 가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가 지속된다고 자신들의 종교 경험에 근거한 주장을 한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우리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 계시로 만족해야 하지만, 지금도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가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개인적 계시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개인적 계시를 기다리면서 그런 계시로 주시는 바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일부 인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실 때 일상적으로는 (다음에 생각할) 세 번째 유형과 같이 하시나, 때때로 아주 특수한 경우에 주께서 직접적인 계시를 주시기도 한다고 주장한다.세 번째 유형은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임을 주장하는 유형의 입장이다. 이는 성령님께서 성경의 계시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바르게 적용하게 하시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 순종하여 성경 전반의 뜻을 파악하여, 그것에 비추어서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신다”는 주장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은 성경 계시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또한 선지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계시의 도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시기도 했으나, 성경 계시가 마쳐진 후에는 이 말씀 외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말씀을(계 22: 18, 19) 계시적인 뜻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 계시가 종결된 상황에서는 주께서 음성으로나 꿈으로나 이상(vision)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미 주셔서 성문화하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성도를 통치해 가신다”는 유형의 사유에 의하면 이제 성경 계시가 종결된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음성으로 들려오는 일은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그쳐진 것이다. 이것은 메마른 기독교의 주장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cum verbo) 우리를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며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가장 성경적으로 바르게 주장하는 기독교의 주장이며, 가장 건전한 성령파 기독교의 주장인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이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성령적인 입장이 고래(古來)로부터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 온 입장이었다.예를 들어, 17세기 영국에 살던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으로 고백하였으며, 한국의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 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 가운데서 제 1장, 1항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을 생각해 보라. (1) 이와 같은 노선에서 성경적인 신학자들은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언 인정의 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여 왔다.(2) 좋은 개혁신학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레이몬드 교수의 이런 문제에 대한 강한 입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의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3) 그는 다른 개혁 신학자들과 함께 “신약 선지자들의 영감은 그쳐졌으므로, 선지자직도 그쳐졌고,” “선지자적 직임은 가르치는 직임 속으로 편입되어졌다”고 한다.(4) 한마디로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이다.(5)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서는 오늘날 음성으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① 모든 점에서, 즉 신앙과 생활에 속한 모든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개연성이나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②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시는 말씀의 원리에 따라 매일 매일 매순간순간의 결단을 주의 백성답게 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성경을 존중해 가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하고 바른 방식으로 성령님께 의존하며 순종해 가지 않고서 이상하고 기괴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 나간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또 그런 주장자들로 인해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는 바를 모른 채 결국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 가게 되는 것을 더 안타깝게 여긴다. 또한 많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바르지 못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바른 도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부디 우리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서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주장에서 벗어나서 성경이 가르쳐 왔고 과거에 가장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 온 바와 같이 성령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통치하시는 대로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각주]1.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1, 1 & I. 1, 6.2. Cf. 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1979), 65-67; R. Fowler White, "Richard Gaffin and Wayne Grudem on I Cor. 13:10: A Comparison of Cessationist and Nocessationist Argumenta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5, no. 2 (1992): 173-81; idem, "Gaffin and Grudem on Ephesians 2L20: In Defense of Gaffin's Cessationist Exeg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4 (Fall 1993): 303-20; O. Palmer Robertson, The Final Word (Carlislie, Pa.: Banner of Truth, 1993), 85-126; Edmund P. Clowney, The Church (Downers Grove, Ill.: IVP, 1995), 257-68.3.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ennesse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 59.4. Reymond, 84. Cf. David Clyde Jones, "The Gift of Prophecy Today," The Presbyterian Guardian (December 1974), 163-64.5. John Murray, Collected Writings, 1:19-22. [출처]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작성자 향기나무 향나아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20 10:01:28 | 김학준
아래의 기사는 오늘 날짜에 중앙일보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인간은 죄때문에 죽는데(창2:17)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속적으로 죽으신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방법(칭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님에 유의)뿐인데 믿음의 대상은 그분(우리 예수님)의 피입니다. 피를 볼때에 죽음이 넘어가고(출12:13)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고(레17:11)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히9:2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사람이 죄를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롬 3:20~25)          추천도서 1, 미션하우스: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 2, 그리스도 예수안에 : 예수님의 피 바로알기 (알 레이시 저)   [한자로 보는 세상] 한자로 보는 세상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널리 읽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정의(justice)’에 대한 서양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동양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義’는 羊(양)과 무(武)가 결합된 단어다. 양은 고대 중국의 희생(犧牲·동물의 피를 신령에게 바침) 의식에서 제물(祭物)로 쓰인 동물이다. 제단에 오른 양을 칼(武)로 잡으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유명 문화학자인 이중톈(易中天) 교수는 “글자 ‘義’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고대 자전 『설문(說文)』은 ‘엄숙한 용모와 장중 있는 태도(威儀)’라고 의를 설명한다. ‘의’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맹자(BC372~BC289)다. 그는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에 ‘의’를 더해 ‘인의(仁義)’를 근간으로 한 유가 사상의 깊이를 더했다. ‘인’은 사랑이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회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맹자는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니, 그게 바로 ‘의’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잘못에도 분개하고, 기꺼이 칼을 뽑아들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맹자는 『孟子』 ‘고자(告子)상편’에서 ‘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생명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의’ 역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양자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선택할 것이다(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生而取義者也.) 나를 버려서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그게 바로 ‘의’인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 세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공동 선(善)을 고민하고, 시민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걱정하도록 이끄는 게 정치의 목적’이라고 했다(‘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선을 위한 헌신이 곧 그의 정의였다. 맹자가 말한 ‘의’와 서로 통한다. 2300여 년 전 동시대를 산 이들 동·서양 철학자가 본 ‘정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9 14:34:54 | 한기만
누가복음을 읽다가 한글로 번역 한 부분에 의문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며 36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한글 KJV) 34  I tell you, in that night there shall be two [men] in one be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shall be left. 35  Two [women] shall be grinding together;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36  Two [men] shall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KJV)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음) 여기서 KJV의 "shall be taken" 을 "붙잡혀 가고"로 번역했는데 합당하지 않다는 새각이 듭니다. 마치 결박 당하여 어디로 끌려가는 듯한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의 뜻은 한 사람은 휴거를 받고 한 사람은 남겨진다는 뜻이 아닐가요? 혹시 제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곳이 있는건지? 만약 이 부분에서 휴거를 말씀 하는 것이라면 저의 생각엔 "데려가고" 혹은 "취하여지고" 가 더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8: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9 10:51:02 | 이광희
A.부모가 모두 한 교회를 안정되게 오래 다닌 타입. 아버지가 아예 목사이거나 어느 직분 하나는 맡고 있다. (단, 교회 일에 몰두하느라 가정 내팽개치는 타입이 절대 아님) 부모가 가정 예배를 꼬박꼬박 챙기고 자녀에게 기도하고 성경 읽는 모습을 늘 보여 준다. 요컨대 가정 전체가 한 교회에 안정되게 출석하고 있고, 가장이 식사 기도 같은 사소한 것까지 포함해서 가정의 영적 건강을 잘 책임지는 중이라면, 그 가정의 영성 등급은 A이다. 집에서도 출석 교회에서와 동일한 분위기로 가족과 함께 거리낌없이 찬송, 기도, 성경 읽기가 가능하고 부모에게서 신앙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에 A등급 가정은 정말 드물다. 그런데 이런 가정에서는 부모보다도, 저런 걸 당연하게 보면서 커 온 자녀들이 이 신앙이 값지고 귀한 줄 모르고 오히려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혹은 교회와 가정에서 부모가 보이는 모순-_-된 모습이라든가 교회 사람들의 위선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자녀가 믿음을 잃기도 한다. A라는 환경 여건이 무조건적으로 자녀에게 좋게 작용만 하는 건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B.개인적인 교회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가족 중 일부가 불신자이거나 혹은 교회 출석을 중단할 정도로 신앙이 식음. 어쨌든 가정에서 뭔가 영적인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딴지를 걸 사람이 가족 중에 존재- 교리 차이 내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부모가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님- 혹은, 부모가 한 교회에는 다니고 있지만 구원 받았는지도 모르는 단순 church goer이고, 평상시의 언행도 불신자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영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함 이런 정도라면 B등급이다. 이렇게만 돼도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로 그대로 전수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자녀가 알아서 자기 신앙에 대해서 공부하고 각성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C.가족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자녀 한둘밖에 없는 한편으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방관자이거나,- "그래, 심성 수련을 위해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다만, 너무 중독되고 빠지지는 마라."- "예수쟁이 돼서 뭐 하냐?" (살짝 시니컬)중의 한 반응이지만...최소한 적극적으로 교회 가는 걸 막고 박해하지는 않는 경우이다. 아래의 D보다는 여건이 낫지만, 그래도 교회만 빠져나오면 맨날 집에서 불신자와(영적으로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부대껴야 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지치기 쉽다.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가 절실해진다. D.가족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자녀 하나밖에 없고 그 자녀가 그것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조롱과 박해를 받으며, 교회 출석 중단을 요구받고 있는 상태. 부모 몰래 교회를 가거나, 교회에서의 내 행적을 부모에게 떳떳하게 말도 꺼낼 수 없다. 이런 D급 가정에 소속된 구원받은 사람은 가정 여건 때문에 안정된 교회 출석이나 장시간 교제, 교회 직분 수행이 곤란하다. 나머지 가족은 무신론자 기독 안티일 수도 있고, 천주교나 불교나 심지어 이슬람 같은 타 종교 골수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KJV를 싫어하는 기성교회 소속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차라리 깔끔한 무교보다 더 무서운 경우도 있다.A가 드문 것만큼이나 D만치 독한 가정도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D급 가정에서 정말 독실하게 신앙 생활을 처절하게 열심히 하는 형제 자매도 있다. D급 가정을 혼자 힘으로 선한 간증을 남겨서 C를 거쳐 B나 A로 바꿔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영적 전투에서 가히 최고의 승리를 거둔 사례라 하겠다. * 여러분은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까? (성인이 돼서야 구원받은 분 제외) 참고로, 저는 B급 가정 출신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8 16:55:19 | 김용묵
niv로  영어성경을 공부하던중 킹제임스 흠정역이 있다는걸 알고 생명의 말씀사에서 한영대역 관주성경을 샀습니다. 제가 영문과를 졸업했는데도 현대영어와는 좀 다른 문장이나 단어가 많아서 당황스러움이 앞서네요. kjv을 영어로 공부할때 미리 알고 있어야할 문법적인 부분을 좀 알려주시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지금 지방이라 혼자서 공부를 하고있거든요. 다들 niv로만 영어성경을 공부하는분위기라서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9:2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7:49:00 성경교리에서 이동 됨]
2010-08-17 17:47:46 | 안상언
요즘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은사운동/종교통합운동과 같은 이상한 일들이 큰 저항없이 그들 나름대로의 지지 세력과 영향력에 의해서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은사운동의 대표적인 것이 방언을 못 받으면 성령을 못 받았다고 가르치고 더 나아가서 구원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우리 교회만이 천국가는 유일한 통로라고 극단적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등장하는가 하면, 이슬람이든 불교든 힌두교든 모든 종교에서 그냥 열심히 믿기만 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보이고 그것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이 널리 퍼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사랑과 평화라는 명목하에 이제 모든 종교는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끄럽게도 이런 유행에 편승하여 세력을 유지하고 얻고자 하는 어리석은 목사님들 또한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렇게 하라고 성경 어느 구절에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까 ?  이런 문제의 시발점은 자신의 편협된 생각을 말씀과 접목시키는 인간의 교만에서 출발한다는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은 이럴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추구되는 것을 좋아하실 것이다.” 라고 성경을 가지고 짜집기하여 자신의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고 판단하며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단 오늘날에만 벌어지는 일들이 아닙니다.과거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런 교만의 일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들이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질서가 없으며, 지식이 홍수처럼 불어나는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골로새서를 읽었습니다.  골로새라는 지역은 지금의 터키지역에 위치한 동서교통의 요충지, 사람의 왕래가 많고, 여러 가지 사상/문화가 공존했던 도시였으며 라오디게아등과 함께 번영했던 도시였습니다.  거기다가 이방신의 도시 에베소와는 불과 서울에서 대전정도의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니, 두 도시간에도 꽤 많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역이 이렇다보니 다수의 성도들이 여러 사상과 문화를 접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골로새교회에서도, 주후 60년정도 시점밖에 되지 않았지만, 겸손을 가장한 이단사상과 거짓된 가르침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골로새교회에 등장했던 이단 사상들은 3가지로 성경에서는 분류합니다.에바브로가 말씀을 전파하는 시기에 성도들이 아래와 같은 사상에 미혹된 것입니다.1) 거짓 철학: 물질에 대해서 금욕해야하고 물질과 마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결코 신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없다 라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원을 부정하는 사상과2) 율법: 할례와 같은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3) 천사숭배: 미천한 인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드리는 것은 불경한 것이어서, 하나님대신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를 우리가 숭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간의 생각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의 3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셔서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없다, 인간이 너무 미천해서 너무 위대하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할 수 없어서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는 내용들인데, 문맥상으로도 하나님을 높일 뿐이지, 인간이 교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그럴 수 있겠는데 하고 미혹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것이라 생각하고 또한 하나님을 존중한다고 한 나의 자의적인 생각에 대해 하나님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기초로 하지 않는 겸손과 존중은 교만이라는 것이며, 또한 이런 교만은 우리가 사탄에게 쉽게 당할 수 있는 큰 덫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를 보면 형태만 조금 변형되었지 위에 언급된 일들과 상당이 유사한 신앙과 현상들이 서로 혼합되어 벌어지고 있음을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것들을 보고 성경은 뭐라 말씀하시는 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권고들입니다.1) 속지마라 : 그 분안에 모든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골 2:3-4)2) 위를 소망해라 : 위에 있는 것에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마라 (골 3:2,5)  3)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속에 모든 지혜로 풍성이 거하게 하라 (골 3:16) 저는 이 부분이 바울이 하고자 하는 핵심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딤후 2:15)]4)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골 4:2)5) 너희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있게 하라 (골 4:6)   추가적으로, 골로새서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묵상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의적인 생각/판단”과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의 대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지식/환경/겸손/논리가 성경과 상충된 것을 주장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명확한 것은 구분이 가서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분명히 방향이 잡히지만, 정말 때에 따라서 애매한 상황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성경의 지식은 있지만 우리의 생각에 속아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면 좋아하시며, 이것이 그 분의 뜻이고 바른 길이다”라고 판단하여 그렇게 하는 경우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때가 지금의 때가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선 우리 속을 성경 말씀의 지혜로 부지런히 채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겸손을 그 분께 배울 수 있으며,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분의 뜻과 배치되게 행하는 것은 없는지 바르게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그래야만 우리의 “일”과 “존중”을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받으실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소홀히 여기리라(삼상2:30)[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7 13:32:24 | 김학준
한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신명기6장 4절,5절 킹제임스 흠정역 :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개역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카톨릭성경 :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KJV :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ine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ght.   이사야 43장 10절,11절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내가 택한 나의 종이니 이것은 너희가 나를 알고 나를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 이전에 지어진 신이 없었으며 나 이후에도 없으리라. / 나 곧 나는 {주}니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6장 9절 너희는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8장 58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 성경에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나 세 가지 뚜렷이 다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 이 같은 세 인격체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며 동등하며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에스라 성경사전 229페이지 삼위일체 참조.   요한1서 5장 6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개역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부분삭제) 개역개정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카톨릭성경 :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KJV : This is he that came by water and blood, [even] Jesus Christ; not by water only, but by water and blood. And it is the Spirit that beareth witness, because the Spirit is truth.   요한1서 5장 7절  킹제임스 흠정역 :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개역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6절 부분 삽입, 7절 완전삭제) 개역개정 :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삭제) 카톨릭성경 :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삭제) KJV :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요한1서 5장 8절 킹제임스 흠정역 :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개역 :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개정 :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카톨릭성경 :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KJV :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 개역성경은 7절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말씀을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6절의 말씀을 나누어서 일부는 6절에 일부는 7절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6절을 원래대로 수정했으나 7절 일부(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만 삽입하고 중요한 삼위일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인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를 또 삭제했습니다. 카톨릭 성경도 개역개정판성경과 똑같습니다.   또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7절에 분명 '하늘에' 라고 씌여있고 8절에는 분명 '땅에' 라고 기록되어 있어 정확하게 하늘과 땅을 구분지어 조화로운 신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역개정,카톨릭 성경은 이러한 중요한 하나님의 신비를 삭제하고 감추어 버렸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3장 5절  그분께서 이르시되,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고   레위기 11장 44절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할지니라. 너희는 땅에서 기는 것 즉 기는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시편47편 8편 [하나님]께서 이교도들을 통치하시며 자신의 거룩함의 왕좌에 앉아 계시는도다.   이사야 6장 3절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그 민족을 통하여 온 세상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신7:6-11; 사66:18-21). 이때, 여호와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요 이스라엘이 순종하고 신뢰할 분으로 이스라엘을 속박에서 구출하여 자신의 은혜를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오직 그분께만 경배하고 그분의 뜻에 절대 복종하여 은혜에 부응하여야 했습니다(출20:2).   성경에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엘로힘)으로 2,500여회 기록되어져 있고 ,  주 하나님(여호와)는 구약에 6,000번 이상 표현되었습니다.  그밖에 전능자 하나님(엘샤다이), 예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이레), 승리의하나님(여호와닛시), 화평,평강의 하나님(여호와샬롬), 치유의 하나님(여호와라파),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카데쉬)으로 이름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히브리말 하나님의 속성을  한국언어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바로 '하나님' 입니다.       전세계에서 하늘님(하느님)으로 섬겨졌던 신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 서왕모 ( 곤륜산에 산다는 신선으로 상제와 더불어 가장 위를 차지하는 여신 )   - 여와 ( 인간을 창조했다는 여신으로, 하반신은 용 이라고 한다 ) - 반고 ( 태초의 신으로. 까마득한 혼돈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을 갈라놓고 죽었는데 죽어서 그의 피부며 머리카락 등 모든 것이 세상의 만물이 되었다고한다 )   일본 - 이자나기 ( 일본을 만들었다는 신 ) -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 이자나기의 한쪽 눈에서 태어났다는 태양의 여신 ) - 츠키요미 노미코토 ( 이자나기의 눈에서 태어났다는 달의 여신 )     이집트 - 라 ( 태양의 신이자, 모든 신들의 아버지 )   - 아툼 ('라' 와 동일시 되는 인물. 자위행위로서 신들을 창조함 ) - 프타 ( 우주, 장인기술, 가축의 신. 하이집트에서 최고로 숭배받은 신 ) - 호르(호루스)  (  태양의 신이자, 파라오를 수호하는 신 ) - 크눔 ( 우주와 창조와 다산의 신. 숫양의 머리를 가진 신 ) - 이세트(이시스) ( 아시르의 아내이자 호르의 어머니로써, 여자와 어린 아이를 수호하고 마법에 능수능란한 여신 )   그리스 - 제우스 ( 신들의 왕, 천공, 뇌정의 신, 인간사회의 정치, 법률, 도덕등 생활을 지배하는 신 ) - 헤라 ( 신들의 여왕, 여성의 보호신, 결혼, 출산의 여신 )    인도 - 브라마[梵天] ( 우주의 창조를 주관하는 신 ) - 비슈누 ( 우주의 유지를 주관하는 신 ) - 시바 ( 우주의 파괴를 주관하는 신 ) *브라마, 비슈누, 시바  이 세 신은 삼위일체적으로 ‘트리무리티(trimriti:三柱의 神)’라고 불리며, 각각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를 주관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브라마는 이름뿐이고 신자를 모은 일도 드물었으나, 비슈누 ·시바 두 신은 많은 교도들를 모아 현재 힌두교의 2대(大) 종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  - 옥황상제 (이승과 저승은 물론, 이 세상 전체를 포괄한다는 신 ) - 환인 (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신 ) - 마고 할멈 ( 우리나라 창세 신화에서 세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 - 제석천 ( 불법을 수호하는 신. 십이천 중 하나이며 서쪽과 동쪽으르 수호함.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 살며, 모든 신들의 왕 ) - 상제님 ( 증산도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 ) - 원시천존 ( 도교의 최고신으로 옥황상제와 비슷한 신 )   위의 나열된 모든 신들과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신들이 지구상에서 고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민간신앙, 토테미즘, 정령숭배, 샤마니즘, 종교 등을 통해 숭배되었던 하늘님, 즉 하느님들입니다. 카톨릭은 이러한 하늘님 범주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하늘의 여신인 마리아를 하느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애국가 1절 가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자료1 : 2005년도 통계청자료       구  분 계 종교있음 불  교 기독교(개신교) 기독교(천주교) 유  교 원불교 증산교(대순진리회) 천도교 대종교 기  타 종교없음 종교미상 전  국 47,041,434 24,970,766 10,726,463 8,616,438 5,146,147 104,575 129,907 34,550 45,835 3,766 163,085 21,865,160 205,508 위 도표를 보면 종교란에 기독교인(개신교)으로 그나마 체크했던 사람이 18.3%정도라는 것이 공식적 사실자료입니다. 그렇다면 그밖의 많은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이 때론 감격스럽게 부르는 애국가와 여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을 노래하면서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애국가 가사가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부르기는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사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까?   한 예로, 증산교도들은 이 하느님을 노래하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하느님인 상제님의 보우하심에  감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각각의 많은 종교와 미신숭배자들은 자신들의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보우하심에 감사하기 때문에 열창하고, 흐느끼고 감격하며 부르는 것입니다.     위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 보아 알수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외에 다른신을 없으며,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각기 다른 인격체이면서 한 하나님이심과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의 수 많은 우상들과 구별하기 위해 이방신들은 '엘'(하느님)로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하나님)'으로 구분하여 불렀던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엘로힘'되시는 유일하신 창조주이자, 거룩하시며 영원에서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삼위일체이신 분을 한국언어로 하나, 유일, 혹은 최고의 의미를 포함하는 '하나님'으로 표현한 것은 가장 탁월하며 구별된 이름인 것입니다. '거룩하다'라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말이며 바꿔서 말하면 구별한다는 것은 거룩하게 높여 드린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모든 성품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역사는  13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니 수천년을 이어온 역사와 문화속에서 이미 굳어버린 하늘숭배사상속에서 내리는 정의와 가치기준은 성경적일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준과 잣대가 옳다고 말하는 것도 진리가 아닌 사회적 통념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위 성경구절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신들은 잡신이요 우상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아우성 쳐도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외 다른 신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동이민족이라는 우리나라는 엄밀히 보면 노아의 후손들이며, 다시금 번성케 된 민족이라는 것이 성경을 통한 창조세계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 이후로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속신앙과, 샤마니즘, 많은 종교들이 있어왔고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들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이름은 더 오랜것이고 명확한 것이며 66권의 글로 계시된 수천년의 성경기록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학적으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엘로힘(하나님)이며, 이스라엘에 초림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전 인류의 구원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이며 그리고  66권의 성경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진리의 영 되시는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유일하신 창조주이자, 거룩하시며 영원에서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삼위일체이신 한 하나님을 우리는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입니다.         참고자료   하나님 정의 - 에스라 성경사전 389페이지 참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01   (정말 추천하고 싶은 동영상 강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1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9   하나님의 이름2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0   하나님의 이름3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1   하나님의 이름4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2   하나님의 이름5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3   하나님의 이름6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4   하나님의 이름7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5   하나님의 이름8  -  정동수 목사님의 강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4&write_id=16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7 00:53:37 | 노영기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     카톨릭은 하느님으로 부른다   천주교인의 주장 1 : 원래 카톨릭에서는 “천주님”이라는 말을 써오다가 1971년 한국의 카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 공동번역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한국 고유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신앙을 수용하자는 중요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를 제외한 개신교에서는 이 합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으로 쓰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천주교나 불교가 우상숭배를 한다고 오해하여 그들은 다신교가 아니라 유일신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天)을 지칭하는 국가 표준말이 “하늘” 이고 애국가도 엄연히 “하느님”이라고 되어 있으니 절대자의 우리말 지칭은 하느님이란 표현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그것은 신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입니다.   천주교인의 주장 2 : 카톨릭에서는 요한 바오로2세때 포용적인 즉 크리스찬의 가장 중요한 미덕인 사랑을 위해 타종교를 배척하지 말고 포용해야하며 이해해야 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을 씁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를 뜻합니다. 대명사와 같은 거죠. 하느님은 종교인들이 말하는 자기들의 신을 말합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부처님, 알라신 처럼요! 하느님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건 타종교의 신은 부인하고 오로지 자기가 섬기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주장입니다. 부처나 알라같이 다른 신은 신이 아니다 이런 주장이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편협하고 배타적인 몰지각한 종교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본받아 행동하면 되는 것이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단지 그 종교의 교리를 잘못 해석하고는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올바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문제인거죠. 교리자체가 잘못된 종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등교육현장에서 하나님은 틀린답 !   조카가 학교에서 본 받아쓰기 중 나온 문제에 '하나님'이라 적어 틀린적이 있었다.그 때 선생님께서 우리 조카와 울 언니한테 말하기를 하나님은 하나, 두울 이런 수와 같이 하나밖에 없는 님이라는 뜻으로 기독교에서 쓰는 단어고,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애국가의 가사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면 '하느님'이 정답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주장하는 이들의 어원 개념       '하나님'이란 말은 옛날에 '하늘님'을 부르던 'ㅎㅏ / ㄴ. (아래 '아')ㄹ / 님'에서 비롯된 말이였다. 그러니까 말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하ㄴ.ㄹ님'으로 불려지던 것이 이후에 (아래'아'가 '으'로 바뀌면서) '하늘님'이 된 것이고, 현대어에서 'ㄹ' 탈락 현상이 일반화 되면서 '하느님'이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란 말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이신 주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불완전 변천으로 만들어진 단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로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하나님'은 같은 뜻을 지닌 것이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표준어는'하느님'이 맞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천주의 단어를 순 우리말로 하여 '하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중에는 'ㄹ'이 탈락되어 하느님이 된 것이다.   [야후 국어사전] + 하느님 1. 종교적인 숭배 대상,또는 신앙의 대상.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지니어 인류에게 화나 복을 내린다고 믿음. 상제(上帝). 상천(上天). 천공(天公). 천제(天帝). 하늘 2. 가톨릭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성부(聖父). + 하나님 개신교에서,‘하느님’을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 하느님1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각각의 종교에 따라 여러가지 교유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써 선악을 판단하고 길흉화복을 인간에게 내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말 : 상제(上帝)ㆍ상천(上天)ㆍ천공(天公)ㆍ천제(天帝)ㆍ현제(玄帝)ㆍ황천(皇天).2 카톨릭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천지의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만물을 섭리로 다스린다.      [위키백과] + 하느님 한국 기독교에서는 이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카톨릭과 성공회는 하ᄂᆞ님을 현대의 맞춤법에 알맞게 적으면 "하느님"이 된다고 보며, 개신교는 "하나님"으로 표기해야 더 맞는 소리가 난다고 본다. 개신교 일부에서는 범신론적인 사상과 구분되는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는 명칭이 "하나님"으로 보고 있다. 현대 한국어의 국어사전에서는 두 단어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다만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 “하느님”을 표준어로 정하고, “하나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로 풀이함으로서, 한민족에게 유일신 사상이 이어오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사전적 전통 신앙의 하느님   하느님이란 단어의 기원은 하늘님(하늘에 있는 분)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하늘(天)'을 절대적이고 지고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상이 있었다. 이들 국가의 천손사상 또한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깊으며, 중국의 '천자(天子)', 일본의 '덴노(天皇)' 모두 이러한 사상에 연원하고 있다. 이러한 '하늘'에 존칭접미사 '-님'을 붙여 '하느님'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한국어에서 절대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써 전통적으로는 단군이나 옥황상제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로 민간신앙, 토테미즘, 정령숭배, 샤마니즘이라고 통칭되는 전통 신앙에서 하느님을 불러 왔다. 하늘에 계시는 초월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으며 구체적으로 그분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심지어는 그분과 자기 자신들과의 관계도 잘 모른채 범신론의 입장에서 섬기고 절하며 불렀던 이름이다. 샤마니즘 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히브리어로써 히브리말로 '샤마임'(하늘들)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샤마니즘은 하늘 숭배 사상이라고 할수 있으며. 하늘을 숭배 하므로 하늘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월자는 '하늘님'이라고 불렀고 자음탈락으로 '하느님'이 된 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이 보는 하느님   인류가 탄생되면서 인간의 능력으로 다스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에, 어떤 초월 존재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이를 두려워하고 숭상하게 되었다. 물리적 실체인 유한세계는 비물리적 실체인 무한세계의 종속된 차원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무한한 세계를 다스리는 초월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가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초월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숭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유물과 각 민족의 전승 “신화”로서 그 실상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다.   초월 존재를 부르는 단어에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호칭이 “하느님”과 “신(神)”이라 할 수 있다. 민족마다 초월 존재에 대한 2가지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만물과 만유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분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유일신 사상과 반면에 다양한 초월적 존재, 즉 환경이나 행위마다 길흉화복을 직접 다스리는 귀신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범신 사상이다.   이처럼 초월 존재에 대한 서로 다른 관념은 세계의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타나는데, 사람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실제로 유일신인지 범신인지 뚜렷하게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민족 정신과 종교 및 문화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라서 이들 관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초기 개신교에서는 상제, 천주, 하느님, 하나님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현재 개역한글판의 뿌리인 개역성서를 펴내는 과정에서 아래아가 홀소리 ㅏ로 일괄적으로 변경되면서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의 설화등에서 보이는 신의 개념은 다분히 범신론적이어서 히브리적이기보다는 그리스의 12주신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겠다. 따라서, 유일신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히브리적 종교관에서만 보이는 개별적인 특징이고 이는 이스라엘만을 신의 민족으로 선택했다는 히브리적 선민사상을 지지하는 역사사실적인 논증으로 볼 수 있기도 한 것이다.   또다른 비판으로는 "하나님"은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ᄂᆞ님”의 함경도 사투리라는 사실을 들어서 "하나님"은 "하느님"의 동의어 또는 함경도 사투리이지, 유일신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비판이 될 수도 있으며, 하ᄂᆞ님의 발음이 지방마다 다르기에 "하느님"과 "하나님" 모두 동등한 현대적 발음임을 내세우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 처음 기독교가 우리나라로 전래될때는 중국에서부터 만주를 거쳐서 평안도로 맨 먼저 전래되었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 만난것이 평안도 사람들인데.. 따라서 이분들의 사투리인 '오마니 아바지 하나님..'을 젤 먼저 접했고, 따라서 이들 초기에 성경을 번역할때는 '하나님'으로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교의 하느님   하느님은 한자로 환인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과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는 제석천은 바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이라고 보았다. 제석천은 원래 인도 신화의 인드라신의 한자어이다. 도리천의 천주인 제석천은 전체 우주의 행정을 총괄한다고 한다. 제석천은 석가모니가 성불한 뒤에 그의 수호신이 되었다. 새해에 보신각종은 33번 친다. 기미독립선언는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했다. 도리천의 33천을 의미한다.   참고   유교는 상고 은대와 주대의 신비적 종교문화에 들어 있는 천명사상을 잠재적으로 계승하였으며 고대 우리나라에서  제천사상과 조상숭배를 비롯해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수호신-귀신숭배 등 각종 '음사(淫祀)'에 고신도적(古神道的) 전통이 바뀌거나 발전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도교는 원시천존이라고 한 이후, 원시천존-태상노군 등이 최고신으로 자리잡았으며  이 비슷한 신이 옥황상제이다. 도교의 신격으로는 옥황상제, 염라대왕, (가끔씩 등장하는) 서왕모, 조왕신(아궁이신), 성황신(서낭당: 지역/땅의 신), 북두(북두칠성) 등등이 잘 알려져있는 신이다.   불교는 신중단이라 해서 일반 사찰의 법당안에 들어가면 가운데로 불상과 탱화가 있고 (보통 석가모니불+문수보살+ 보현보살, 혹은 관세음보살+지장보살)  오른편으로는 죽은 조상들을 모신 영가단과 지장보살탱화 혹은 감로탱화가 있고, 바로 오른쪽에는 불교의 신들을 모셔놓은 신중단이 있다. 신중단은 총 104위가 있고 신장들의 레벨에 따라 상신, 중신, 하신으로 나뉜다. 불교 신장중에서 가장 높은 신은 일종의 '조물주'라고 여겨지는 제석천왕(인도의 인드라 신)이 있다. 여기까지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 카톨릭신자, 무신론자, 무속신앙인, 불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인들이 하느님에 대한 정의를 인지하고 인식하고 있는 가치관을 살펴 보았습니다.     왜 기독교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가 !     '하나님'  정의      하나님(God): 크리스천 믿음의 대상.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서 영원하고 무한하며 완전한 분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요, 자신의 권능과 섭리로 모든 것을 지키고 다스리는 분으로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는 분이시다(신6:4-5).     창조자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의와 사랑이 충만하신 인격적 존재로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유일무이하게 살아 계신 신이라는 점에서 세상의 다른 신들과 현저하게 다르다(시18:46; 42:2).   창세기 1장1절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시편 18편 46절  {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어다.   시편 42편 2절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목이 타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보이리요?   이사야 40장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영존하시는 [하나님], {주} 곧 땅 끝들을 [창조하신 이]는 기진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그분의 명철은 찾을 길이 없도다   역대상 29장 11절 오 {주}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주의 것이오니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니이다. 오 {주}여, 왕국도 주의 것이오니 주는 모든 것 위에 머리로서 높여지셨나이다.   이사야 44장 24절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부터 너를 지은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모든 것을 만드는 {주}니 곧 홀로 하늘들을 펼치고 친히 땅을 넓게 펼치며   * '여호와' 란 이름이 너무나 두려웠으므로 그들은 성경에서 이것이 나올 때마다 발음하지 않고 대신 주를 뜻하는 아도나이(Adonai)라 읽었다고 전해지며 Adonai Jehovah 즉 Lord Jehovah가 나오면 ‘주 주’라 할 수 없으므로 Adonai Elohim 즉 ‘주 하나님’으로 읽었다. 한편 복수형의 엘로힘(Elohim)은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분이 여러 면에서 완전함을 뜻하기도 하고 삼위일체를 암시하기도 한다.   사도행전 7장 48절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께서는 대언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르기를,   사도행전 17장 24절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히브리서 11장 3절 (무에서 유 창조 )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때에 그분께서 친히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일러 주신 것으로(출3:14)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무궁하심과 자존(自存)하심을 잘 보여 준다.   출애굽기 3장 14절,15절 킹제임스 흠정역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은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 개역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카톨릭성경 :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7 00:52:01 | 노영기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는 구약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통과한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 이전에 있음직한 종교의 모습입니다. 종교의식을 중요시하고, 십계명을 강조하고, 십일조를 강요하고, 목사를 대제사장처럼 섬겨야 하고, 온갖 명절을 지켜야 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특히 성전 건축은 개신교회가 구약시대의 종교임을 확증해 줍니다. 대언자 학개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대다수 개신교 목사들은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칭찬 받았을 것입니다. 황폐해진 하나님의 집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깨워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독려한 사람이 대언자 학개입니다. 그렇더라도 한국에서 성전이 너무나 많습니다. 구약시대를 살고 있는 목사들과의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서 많은 영혼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십자가 이전 시대이기에 구원은 아예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돈을 모아서 성전을 건축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장 16절] 돈을 모아서 빌딩을 세우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빌딩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빌딩)이니라” [고린도전서 3장 9절] 돈을 모아서 집을 짓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디모데전서 3장 15절]돈을 모아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빌딩을 세우고,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 신앙생활의 핵심인 것처럼 가르친다면 BC 520년경을 사는 사람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서 그 시대로 간다면 피폐한 하나님의 집을 두고서 제 집만 꾸미면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던 학개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참으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물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계십니다. 지금 건축되고 있는 성전은 돈으로 짓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에베소서 2장 21절] 그런데 진리를 선포하다 보면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전과 관련된 내용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전과 관련되어 비난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월세 50만원을 지불하면서 건물을 임대해서 성도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장소는 교회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며 하나님의 건물이나 하나님의 집도 아닙니다. 그냥 월세 50만원 짜리 공간입니다. 교회도 성전도 하나님의 건물도 하나님의 집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성경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소통하기 위해서 월세로 임대한 그 장소를 ‘교회’나 ‘예배당’이라고는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신자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면서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이야기 중 하나가 소위‘집 교회’입니다. 돈을 가지고 건물을 얻어서 ‘성전’인 듯 치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어떠한 교리적 입장에 서 있는지는 관심 없고 오로지 어느 지역교회가 돈으로 공간을 임대하거나 건물을 지으면 성경에 어긋난 것처럼 판정한다면 그러한 태도와 교리적 입장이야 말로 비성경적입니다.  목회를 막 시작하는 형제들의 입에서도 가끔씩 들을 수 있는 ‘집 교회’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인사하라.” [로마서 16장 5절]“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자기 집에 있는 교회와 함께 주 안에서 너희에게 많이 문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6장 19절]“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 [골로새서 4장 15절]“우리와 함께 동료 군사 된 아깁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빌레몬서 2절]모두 하나님 말씀입니다.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경구절을 본문에서 꺼내서 바로 2010년에 적용하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성경교사의 태도가 아닙니다. 모든 성경구절은 문맥이 있고 정황이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눔바, 아깁보의 집에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뤘다는 기록은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구약시대가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를 통과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모습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가르치고 나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출현해서 교회에 대해서 선명하게 가르치기 전까지 사도들은 여전히 구약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사도행전 2장 46절]“이제 아홉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갈 때에”[사도행전 3장 1절]“그들이 날마다 성전에서와 모든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5장 42절]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경배할 장소가 예루살렘에 있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거의 1천년 동안을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생활을 해 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아도 일 년에 3번은 성전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조차 이러한 전통과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집에서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전을 찾지 않고 자기 집에서도 모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대부분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천년 이상을 지배하던 성전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는 경배하는 장소를 따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경배하는 장소를 따지는 사람들은 여전히 구약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참된 경배자는 영과 진리로 경배합니다. 장소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야외이건 실내이건 산이건 들이건 예루살렘이건 전주이건 월세집이건 전셋집이건 개인집이건 상가건물이건 사무실이건 지하실이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32평 아파트이건 70평 임대건물이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천년 이상 얽매어 지내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유롭게 되었는데, 개인집에서 모이건 상가건물에서 모이건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고린도에 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않고서 자기 집에서 성도들과 함께 만나서 하나님을 경배했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성전에 속박된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긍정적 주장이건 부정적 주장이건 장소를 따지고 장소에 매이는 신앙은 참된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알고 교리를 안 뒤에 다시 거지같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서 종노릇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돌려서 구약시대를 살지 맙시다.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6 21:51:18 | 김재근
나는 이제 믿은지 8년되는 그리스도인이다. 킹제임스성경은 고등학교에 복학후 선교사를 꿈꾸던 2학년때 알았다. 성당에 다니던 친구가 "저거 사이비야!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왔다니까!" 에 자극을 받아 로마카톨릭을 알아보던 중 나는, 피터럭크만에 글들을 어쩌다 읽게 되었고 그 글 안에서 킹제임스성경에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그 전까지 나는 성경이 개역 하나만 있는 줄로 알았다.) 럭크만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하게 하나님에 말씀이다." 라고 그 글에서 기술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경이 다 똑같은 것 아닌가? 이 성경만이 어째서 하나님에 말씀인가?" 하고 그땐 그냥 흘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 몇주 지났다. 개역성경을 읽다가 "없음"이란 구절을 보았다. 그리고 잘 돌아가지 않는 내 단순한 머리로 끙끙 한동안 고민했다. "왜 없을까?" 거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개역성경 자체 난외주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었다. "...어떤 고대사본에는 "00"이 있음" 나는 당연히 "음! 학식있는 목사님들이 추천한 성경이니 이것이 맞겠지 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 말씀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난... 혼란에 빠졌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단순한 부류에 속하는 지라... 정말 개역성경이 순수한 하나님에 말씀이라 생각했다.   "사본이 여러가지이니 어느것이 진짜인지 백성들은 모르잖아요? .. 정치는 높은 분들이 하는 것이니 백성들을 위해  제대로 하겠지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세대가 지나가기전에 이 모든일이 성취되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나는 그런 예수님에 말씀을 복음서를 몇번 읽었어도.. 그때 처음 발견했다..... "이런 말씀이 있었을 줄이야..."   그뒤로 나는 교회에 나갈때 마다(그것도 킹제임스성경을 들고 오지 말라는 장로교) 손에 킹제임스성경을 들고 나갔고 교역자가 진행하는 성경공부에 성경 암송도 모두 킹제임스성경으로 했다. 목사님은 "그 이상한 성경은 집에서만 읽고 교회에서는 교단이 인정한 개역을 들고 오라했다." 하나... 나는 듣지 않았다. 그러자 청년들은 하나 하나 나를 외면하고 따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육신에 그리움을 물리치고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를 찾아나섰다. 그때 쓰던 성경이 말보회에 "한글 킹제임스" 성경 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교회에 출석했다. 하나...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서울까지 가는 차비를 확보하는 것도 내겐 부담이었다. 그래서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차비를 대 주겠다던 그 교회에 형제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집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무지 쉬웠다. 개역성경을 읽을때는 몇번을 읽어도 "아! 이게 대체 뭔뜻이래?" 하던 시간이 많았지만.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읽으면 읽는대로 모두 머리에 쏙 쏙 들어왔다. 하나... 한글킹제임스엔 개역이 가지고 있는 (글쎄 뭐라고 해야하나?... 마음을 크게 뒤흔드는 떨림...) 그게 없었다. 문장은 매우 읽기에 쉽고 이해가 빨랐으나... (예전에 개역을 읽으며 마음이 짠해지는 영감에 물결...) 같은게 없었다.    그뒤로... 한글킹제임스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반쪽 킹제임스성경이란 것에 잠시 또 깊은 실망감을 갖게 되었다. 킹제임스성경 번역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 인해서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예수안에 리는 출판사가 출판한 흠정역 성경을 구입하게 되었고 나는.. 침례성도가 되었다. 하나... 그때가 2007년 1월이었다. 예배에 참석하던 중 내가 읽는 성경과 형제들에 성경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3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읽는 2판 성경은 말보회에 한글킹제임스와 흠정역3판에 비교해 많이 어려운것 같았고 주위에 형제님들과 목사님들도 예전엔 흠정역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땐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2007년 24살... 나는 보육원을 세우고 싶던 청년이었다. ... 원장선생님이 아니라.... 버려진 아이들에게 진짜아빠가 되어주고픈 청년... 몸이 둔해 갖은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일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런 나에 꿈은...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에 계략으로 인해 잠시 깨어지는 듯 했다. 삼촌에게 집을 빼앗기고 2008년 4월 시골로 먼저 아버지와 내려왔다. (할머님을 내가 모신다는 전제하에)+내가 구원받고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무슨일이 있어도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 흠정역 성경을 다른책들과 불태웠다. 2판이 어려워 새로 장만했던 3판 성경이었다. 가슴이 찢어졌고... 나는 더욱 기도했다. "주님.. 할머님에 혼을 구원해 주시고 제.. 육신에 아버지를 구원해 주세요.." 그리고 100원 200원 모아 기독교서점에서 전도자 성경을 사... 몰래 잠자리밑에다 숨겨놓고 보았다. 하지만 내겐 말씀을 제대로 읽을 시간들이 주어지지 않았고 밤낮 지겹게 아버지에 감시망에서 일만했다.   그리고 2년후.. 2010년 2월.. 모처럼에 김포방문으로(토요일) 나는 몰래 다음날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교회를 찾았다. 나는 흠정역을 사용하는 교회에 다니는 청년입니다. 예배후 성경을 한권 얻고자  비치대에 눈을 돌렸습니다. 빨간색에 3판을 장기간 빌려가거나 한권 주십쇼~ 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어 구판 (2001년 2판)성경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시골로 다시 돌아와 부지런히 잠언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시내에 나갈일이 있어 도서관에서 무척 쉽다는 이유로 한국교계에 대대적인 교체를 시행한 개역개정4판과 비교를 했는데.... 이런!! 그 어렵게 보이던 흠정역 2판이!! 개역개정4판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그 뜻이 명쾌했습니다!! 그리고 난.. 그 어려워 보이던 흠정역2판에 너무 애정이 가기 시작했고... 몇달이 되어 돈이 차도 새로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평생 바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 헐어 떨어지기 전엔...   공적성경번역추진이라는 글을 어느 홈페이지에서 일게 되었습니다. 그글에선 가능한 한 한번출간하면 개정판을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글은 어느 누구나 단체를 폄하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흠정역을 그분들도 계속 쓰셨으면 해서 하는 마음에...) 결국.. 또다른 개정판에 연장선상이 될지도 모르겠지요... 물론 어느것을 쓰느냐는 개인에 자유이지만..... 하나님 아버지 제게 3판보다 어려운 2판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 2판이 제겐 앞으로 나올 그 어떤 최신판보다 제게 더 쉬우리라 믿습니다. 제게 힘든 육체에 노동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게으름 피우지 않고 주님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어요 아멘 전 인력사무소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는데... 새벽3시에 일어나 4시에 출근해 벤치에 앉아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른때는 종종 일이 없어도.. 제가 말씀을 읽은 날에는 꼭! 일이 생겨 일을 나가게 됩니다. 주님.. 제 가난한 형편을 알아주셔서 고마워요... 또한 힘든 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젠 나와 늘 함께 걷고 계신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말씀을 읽을때 그것은 더욱 확실해 집니다. 쉬운것이 없을때... 어려운것 마저도 제게 쉽게 이해시켜 주시는 주 하나님 아버지 고마워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8: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12 11:46:37 | 신진성
안녕하세요?   몇 주 전부터 공지한 대로 8월 14일(토) 오후 5시부터 사랑침례교회에서 진리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는 청년들은 누구나 다 와서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7월 10일의 1차 모임에 이은 이번 모임은 교제 중심으로 모이며 그래서 특별 강연 같은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일정은 다음과 같이 간단합니다.   1. 모임 소개(10분) 2. 청년들 소개 및 게임(50분) 3. 식사 교제(1시간)   식사 교제 이후에는 원하는 대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또 탁구 등을 치면서 운동 교제를 해도 좋습니다.   이번에는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이 참석하는 모든 분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기대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가 회비는 없습니다.   청년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도 같이 와서 부모들끼리 교제하는 것도 환영합니다.   음식 준비 등을 위해 이 모임에 오실 분들은 먼저 참석 여부를 김용묵 형제님에게 e-mail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용묵: sebulsik@dreamwiz.com   혹은  이 글 밑에 댓글로 참석 여부를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청년들이 주 예수님 안에서 바르게 서서 주님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동수 드림
2010-08-11 16:02:49 | 관리자
먼저 거인 관련 성경 구절을 보시면 이해하기 좋을 것입니다. 거인 관련 글 주의 : 아래 자료들에서 언급된 연대는 진화론적 연대기로 세상의 뉴스가 말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6천년의 창조세계를 믿습니다. 그점에 유의하시면서 들여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공룡들은 6,500만년 전에 멸종하였다” 인본주의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질학, 지구과학에서 인간과 공룡사이에는 1억년에서 1억 3천년이 넘는 단절이 있었다고 진화론은 말합니다. 아래의 자료들은 진화론이 허구라는 것을 여실이 보여줍니다.)             ▲ 페루 이카의 석각 (사진: Dr. Don Patton 제공)    페루 이카(ICA) 조각 페루 나스카 평원 북부에 이카(ICA)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에 '돌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1 만여 덩이의 신비로운 돌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여러 모양의 도안이 새겨져 있다. 이 도안은 별자리, 상고시대 동물, 고대 대륙, 대재난 등 몇 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이 돌들이 발견된 동굴 부근에서 몇 백만 년 전의 생물화석과 석각이 발굴됐다. 석각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석각에는 사람과 공룡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이 도안에는 사람과 공룡 크기가 별 차이 없게 나타나서 공룡은 가축이었거나 혹은 당시 사람들이 길들여 기른 동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석각 중에는 장기 이식 수술, 수혈, 망원경, 의료기구, 공룡을 추격하는 사람 등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있었다. 학자들은 이 남겨진 유물들이 과학기술이 매우 발전한 사전 인류의 문명을 묘사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 페루 이카(ICA) 조각-공룡을 탄 전사 ⓒ Dr. Don Patton 제공         ▲ 페루 이카(ICA) 조각-공룡에 대해 묘사한 그림      거인들의 고고학적 증거                 ▲ 캔사스주에서 발견된 90cm에 달하는 거인 발자국 ⓒ Floyd M. Gurley     * 러시아의 저명한 고고학자 언스트 몰다스프는 각국 전설 중의 거인에 관한 기록을 종합한 후 지구상에 거인집단이 확실히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 동유럽, 북유럽,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북아시아 및 전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두 거인들의 흔적을 발견되었다. 이말은 그들의 활동범위가 아주 광범위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거인 증거들 * 1850년 미국 중서부에서 흙속에서 신장이 2 m 넘고 두 줄의 치열이 있는 유해를 대량 발견했다. 그 중에는 6개의 손가락 혹은 6개의 발가락이 있는 것도 있었다.     * 미국 캔사스주 한 광산에서는 90cm의 거인 발자국을 발견했고 거의 같은 크기의 완벽한 발자국을 버지니아주 파카스버그 근교에서 발견했다. * 1986년 멕시코시티 동부 지역에서 높이 50 cm, 너비 25 cm인 완벽한 거인 두개골 화석을 발견했다. 이 대형 두개골의 송곳니는 현대인보다 2.5배 크고 신장은 3.5 m에서 5 m 사이로 추정할 수 있었다.     * 1911년 미국 네바다주 러브락(Lovelock) 동굴에서 신장이 2.2 m인 붉은 머리카락 거인 미이라를 발견했다. 이 동굴은 인디언 전설 속에 나왔던 붉은 머리 거인의 거주지로 알려져 있었다. *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대학과 네바다 역사학회는 즉시 조사인원을 파견해 발굴된 골격을 측량해 이들이 생존 시 신장이 2 ~ 3 m에 달했으며 붉은 색 머리카락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 2005년에는 고고학자들이 페루의 북부 해안의 거대한 피라미드에서 대량의 신비한 유물들로 가득 찬 고분 3개를 발견했다. 고분 안에는 신장이 2.8 m 이상인 거인 골격 3구가 안치돼 있었다.           ▲ 버지니아주에서 거인 발자국 화석 ⓒ Henry Johnson 아시아에서의 거인증거 * 19세기 말 말레이시아에서 거인족이 출몰했다는 지역에서 현대인이 들 수 없는 정도의 길이 2.5 m에서 9 m에 달하는 나무 몽둥이를 발견했다. 1950년 터키 동남방 지역의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많은 거인들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 중 한 화석의 대퇴골은 1.2 m에 달해 추정해보면 이 거인의 신장은 5 m에 달한다. * 2004년 말 태국 피피섬에서 3.1 m에 달하는 원시시기 거인 유골 한 구를 발견했다. 동남아 해일로 인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유골이 밀려나온 것이라고 한다.       * 2005년 시리아에서 러시아 저명한 고고학자 언스트 몰다스프와 그의 고고팀은 전설 속의 고대거인의 묘지 두 곳을 발견했다. 한 곳은 산등성이에 위치했고 다른 하나는 정상에 있었다. 길이는 거의 10 m에 달했으며 현지인들은 이것을 신장이 7.5 m에 달하는 고대 거인의 무덤이라고 한다.   * 미국 오클라호마 주 토마스 시의 한 전기공장에서 쇠 가마솥을 우연히 석탄 속에서 발견하였다. 1912년 주변 탄광에서 캐온 석탄을 벽난로에 집어넣고 있었는데 한 석탄 덩이가 너무 커서  망치로 세게 두들겼더니 석탄이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작은 가마솥이 나와서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것을 내려놓은 후 갈라진 석탄 덩이를 맞추고 닦아보니 바로 가마솥의 주형이었다. 이것을 발견한 두 사람은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확인서에 서명하였다. 그 뒤 이 솥을 여러 전문가들이 검사하였는데 한결같이 설명하기를 주저하였다. 왜냐하면 가마솥을 발견한 석탄층은 3억 2천 5백만년 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 쇠 가마솥은 현재 텍사스 글렌 로즈에 있는 창조증거박물관 (Creation Evidences Museum)에 보관중이다. (출처-사전문명의 베일을 벗기다) 3억년 전 가마솥                   1912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발견한 3억년 전의 가마솥.(Creation Evidence Museum)   불가사이한 거인족 유골들                                  * 최근 이탈리아의 한 고고학자가 모로코에서 거인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3구를 발견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선 최근호가 보도했다. 유골을 분석한 모로코 과학협회의 한 대변인은 “이 유골은 길이가 2m지만 놀랍게도 어린 아이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유골의 주인공이 성인이 됐을 경우 키가 9m에 달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골은 정확한 DNA 검사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연구소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   * 미국 샌디에이고 출신의 고고학자 피터 데이비슨 박사도 모로코 과학협회의 분석결과에 동의했다.   그는 “유골을 분석한 결과 유골의 주인공은 기원전 3400년께의 인물일 것으로 보인다”며“이 시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발생한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 유럽의 일부 과학자들은 영국·프랑스·독일의 중세 문학작품을 근거로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거인족은 신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11세기께까지만 해도 존재하고 있었다”며 “이 시기에 쓰여진 소설 ‘잭과 콩나무’에 등장하는 식인거인도 사실은 실존인물”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A ,현대인간 1미터80 이상B ,1950년 터키에서 발견된 거인 대략 4미터57…C ,AD 235~238 로마의 시져도 거인이었다!!! 대략 2미터62…D ,골리앗이 발견된다면......대략 2미터74 보다 더 클 수있음E ,뭔지모름 암튼 발견안된것 대략 위의것과 비슷F ,1577년 스위스 혹은 프랑스에서 발견된 거인 대략 6미터30…G ,1456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거인 대략 7미터…H ,1613년 프랑스 Chaumont성에서 발굴된 거인 대략 7미터80…I , 이 괴물은 기원전 200~600년도에 살던것으로 추정됨, 전체몸은 발굴안되고 신체 일부 뼈가 발견, 괴물의 정체는 아프리카 고대국가인 카르타고인으로 추정됨 키는 대략 11미터               거인들이 지구에 살았던 흔적들| //       * 1950년대 후기, 터키의 계곡에서 거대한 뼈 화석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그 화석들은 인류의 골격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상할 정도로 크다.   그 중 한 대퇴골은 그 길이가 1.2m 정도나 되는데, 이에서 계산하면 이 사람은 신장이 5m 정도 되는 거인이다.           * 미국의 거인 미이라 위와 유사한 거인의 흔적이 미국에도 있다. 인디안들에게는 이런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머리털이 빨간 거인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몸집이 아주 크고 성격도 매우 사나웠다. 인디안 조상들은 그 거인들과 오랜 싸움 끝에 거인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 미국 네바다주의 한 광산에서 1911년에 광부들이 탐험하던 중 깊숙한 곳에서 커다란 미이라 한 구를 발견하였다. 그의 신장은 2.2 미터였고 머리털은 빨간색이었다. 그 이후에 학자들이 그곳을 더 자세히 조사했는데, 동굴은 광산채취 때문에 이미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대퇴골 하나를 발견하였고 그 외에 인디안 유물이 근처에 조금 있었다. (이 뼈들은 지금 네바다주에 있는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           * 중국 한서(漢書)에 거인과 관련된 기록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사학계의 유명한 반고(班固)가 있다.    그가 쓴 중국의 역사서 <한서> 중에서 거인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 <한서> 제29권 오행지(五行志)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시황26년(DC 220년), 키가 11척인 거인 12명이 북방 소수민족의 옷을 입고 감조에 나타났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이것을 좋은 징조로 여기고, 거인들의 모양을 한 12개 금속동상을 만들었다.   - <한서> 제99권 왕망전(王莽傳)에도 거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서기 14년 흉노족이 중국 변방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숙야(夙夜) 지방관 한박(韓博)이 왕망(王莽)에게 흉노족과 싸울 수 있는 거인을 추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박물관에 있는 거인 도끼               성경에 언급된 거인관련 구절 참조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Sm "주의"   본 사진은 합성사진으로 합성사진 콘테스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의 사진을 합성한 이는 캐나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그의 본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이언카이트 ironkite'라는 인터넷 닉네임을 가진 그는 2002년 거인 유골 발굴 사진을 합성해냈다. 실제 동물 유골 발굴 사진 등 3장을 정교하게 합성했다고 하며 '신동엽의 있다.없다.' 코너에서 방영된 문제의 사진이다.   이사진 1장과 TV방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인에 대한 실존을 싸잡아서 못믿게 되고 불신하게 되었다. 거인에 대한 언급을 할려면 이사건(신동엽의 있다,없다 코너에서 12M의 거인이 있다?없다? 답은 '없다')나온사진 도 함께 언급을 해야 나중에라도 더 큰 불신을 방어할수 있다. 창조세계에서는 거인은 존재합니다. 또한 많은 지질층, 유적들은 창조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08 00:51:29 | 노영기
예수님은 "지옥은 결코 불이 꺼지지 않는 무서운 곳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9장 43절 킹제임스 흠정역 :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카톨릭성경 :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KJV : And if thy hand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life maimed, than having two hands to go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NIV : If your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maimed than with two hands to go into hell, where the fire never goes out.   마가복음 9장 44절 킹제임스 흠정역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 없음 ) 카톨릭성경 : ( 없음 )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 없음 )   마가복음 9장 45절 킹제임스 흠정역 :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카톨릭성경 :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KJV : And if thy foot offend thee, cut it off: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halt into life, than having two feet to be cast into hell, into the fire that never shall be quenched:  NIV :  And if your foot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life crippled than to have two feet and be thrown into hell.   마가복음 9장 46절 킹제임스 흠정역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 없음 ) 카톨릭성경 : ( 없음 )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 없음 )   마가복음 9장 47절 킹제임스 흠정역 :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카톨릭성경 :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KJV : And if thine eye offend thee, pluck it out: it is better for thee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with one eye, than having two eyes to be cast into hell fire: NIV :  And if your eye causes you to sin, pluck it out. It is better for you to enter the kingdom of God with one eye than to have two eyes and be thrown into hell,   마가복음 9장 48절 킹제임스 흠정역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카톨릭성경 :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where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  너무나 중요한 진리이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44, 46, 48절에서 연거푸 이 사실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개역성경과 카톨릭 성경은 44, 46절은 생략했다. 예수님은 중요한 것을 강조하실 때는 늘 반복을 하셨다.     다윗왕도 자신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않으실 것임을 믿음으로 표현했다   시편 9장 17절 킹제임스 흠정역 : 사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든 민족들도 그리하되 개역 :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카톨릭성경 : 요드) 악인들은 저승으로 물러가라. 하느님을 잊은 민족들은 모두 물러가라.KJV : The wicked shall be turned into hell, [and] all the nations that forget God. NIV :  The wicked return to the grave, all the nations that forget God.    * 예)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스올 즉 지옥은 사악한 자들이 무덤으로 돌아간다가 아니가 좁은 의미의 고통의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편 16장 10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개역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카톨릭성경 : 당신께서는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는 구렁을 아니 보게 하십니다.KJV : For thou wilt not leave my soul in hell; neither wilt thou suffer thine Holy One to see corruption. NIV : because you will not abandon me to the grave, nor will you let your Holy One see decay.   grave : 무덤, 묘, 묘혈, 묘석, 죽음     솔로몬 왕이 잠언을 통해서 지옥을 말하며 20절에서는 지옥의 특징을 말하였다.   잠언 7장 27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녀의 집은 지옥에 이르는 길 곧 사망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이니라. 개역 :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카돌릭성경 : 그 집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 죽음의 안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KJV : Her house [is] the way to hell, going down to the chambers of death. NIV : Her house is a highway to the grave, leading down to the chambers of death.   잠언 27장 20절  킹제임스 흠정역 : 지옥과 멸망이 결코 가득 차지 아니하는 것 같이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하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카돌릭성경 : 저승과 멸망의 나라가 만족할 줄 모르듯 사람의 눈도 만족할 줄 모른다.  KJV :  Hell and destruction are never full; so the eyes of man are never satisfied. NIV : Death and Destruction are never satisfied, and neither are the eyes of man.     대언자 이사야가 지옥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사야 5장 14절 ( 지옥으로 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고 또한 그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지옥은 스스로를 키운다 )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므로 지옥이 자기를 확장하고 한량없이 자기 입을 벌렸은즉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큰 무리와 그들의 영화와 또 기뻐하는 자가 거기로 내려가리로다. 개역 :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카톨릭성경 : 그리하여 저승이 목구멍을 한껏 벌리고 그 입을 한없이 열어젖히면 그들의 영화와 법석거림이, 떠들썩하게 기뻐 뛰던 자들이 그곳으로 빠져 들리라.  KJV : Therefore hell hath enlarged herself, and opened her mouth without measure: and their glory, and their multitude, and their pomp, and he that rejoiceth, shall descend into it. NIV : Therefore the grave enlarges its appetite and opens its mouth without limit; into it will descend their nobles and masses with all their brawlers and revelers.   이사야  14장 9절 킹제임스 흠정역 : 밑에서 나온 지옥이 네가 오기 때문에 너를 맞이하려고 너로 인해 움직였으며 지옥이 너로 인해 죽은 자들 곧 땅의 모든 우두머리들을 일으켜 세우며 민족들의 모든 왕들을 그들의 왕좌에서부터 일어서게 하였으므로 개역 :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카톨릭성경 : 땅 밑 저승은 너를 위하여 너의 도착을 환영하려고 소란을 떨며 너를 위하여 세상의 수령이었던 그림자들을 모두 깨우고 민족들의 임금을 모두 그 왕좌에서 일으켜 세우는구나.  KJV : Hell from beneath is moved for thee to meet [thee] at thy coming: it stirreth up the dead for thee, [even] all the chief ones of the earth; it hath raised up from their thrones all the kings of the nations. NIV : The grave below is all astir to meet you at your coming; it rouses the spirits of the departed to greet you--all those who were leaders in the world; it makes them rise from their thrones--all those who were kings over the nations.     사도 누가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고통당하는 지옥을 말하고 있다.   *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전까지 낙원은 지옥안에 있었고 부자가 처한 지옥에서 구렁텅이 넘어로 낙원을 볼수 있는것으로 사실묘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보아야지 꾸며낸 이야기로 믿는것은 믿음이 아니다. 다만 자기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로 믿기로 작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 도표참조)   누가복음 16장 23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개역 :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카톨릭성경 :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KJV : And in hell he lift up his eyes, being in torments, and seeth Abraham afar off, and Lazarus in his bosom. NIV : In hell, where he was in torment, he looked up and saw Abraham far away, with Lazarus by his side.     사도 마태가 '바깥 어둠속'이라고 지옥의 상태를 기록하였다   마태복음 10장 28절 킹제임스 흠정역 :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개역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카톨릭성경 :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KJV : And fear not them which kill the body, but are not able to kill the soul: but rather fear him which is able to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NIV :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Rather, be afraid of the One who can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마태복음 8장 12절 킹제임스 흠정역 :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개역 :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카돌릭성경 :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KJV : But the children of the kingdom shall be cast out into outer darkness: there sha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NIV : But the subjects of the kingdom will be thrown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 여기 기록된 왕국의 자손은 초림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으로 대체하면 안된다.   마태복음 22장 13절 킹제임스 흠정역 : 이에 왕이 종들에게 이르되, 그의 손발을 묶고 그를 데려다가 바깥 어둠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개역 :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KJV : Then said the king to the servants, Bind him hand and foot, and take him away, and cast [him] into outer darkness; there sha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NIV : "Then the king told the attendants, Tie him hand and foot, and throw him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마태복음 25장 30절 킹제임스 흠정역 : 너희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둠 속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개역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카톨릭성경 :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KJV : And cast ye the unprofitable servant into outer darkness: there sha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NIV : And throw that worthless servant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사도 베드로도 지옥에 대해 기록하였다.   사도행전 2장 31절 킹제임스 흠정역 : (다윗이)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개역 :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카톨릭성경 :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KJV : He seeing this before spake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at his soul was not left in hell, neither his flesh did see corruption. NIV : Seeing what was ahead, he spoke of the resurrection of the Christ, that he was not abandoned to the grave, nor did his body see decay.     사도 베드로가 지옥과 '어둠의 사슬'이라는 지옥의 상태를 기록하였다   베드로 후서 2장 4절 킹제임스 흠정역 :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개역 :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카돌릭 성경 : 사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으시고, 어둠의 사슬로 지옥에 가두시어 심판을 받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   KJV : For if God spared not the angels that sinned, but cast [them] down to hell, and delivered [them] into chains of darkness, to be reserved unto judgment; NIV : For if God did not spare angels when they sinned, but sent them to hell, putting them into gloomy dungeons to be held for judgment;     사도 유다도 짧지만 권능 있게 지옥의 끔찍한 어둠에 대해 기록했다     유다서 1장 13절 킹제임스 흠정역 :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어내는 바다의 성난 물결이요, 떠돌아다니는 별들이니 그들을 위해 칠흑 같은 어둠이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느니라.개역 :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카톨릭 성경 : 자기들의 수치스러운 행실을 거품처럼 뿜어 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이고, 짙은 암흑에 영원히 갇힐 떠돌이 별입니다.  KJV : Raging waves of the sea, foaming out their own shame; wandering stars, to whom is reserved the blackness of darkness for ever. NIV : They are wild waves of the sea, foaming up their shame; wandering stars, for whom blackest darkness has been reserved forever.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통하여 바닥없는 구덩이, 지옥, 불호수, 둘째사망등 지옥의 본질을 계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1장 7절 ( 계시록에는 "지옥"이 밑바닥 없는 구덩이 즉 무저갱으로 7회 언급되었다 (계11:7, 17:8, 20:1, 3 등). 킹제임스 흠정역 : 그들이 자기들의 증언을 마칠 때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대적하며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이리니 개역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카톨릭성경 :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KJV : And when they shall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ascendeth out of the bottomless pit shall make war against them, and shall overcome them, and kill them. NIV : Now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comes up from the Abyss will attack them, and overpower and kill them.   요한계시록 17장 8절 킹제임스 흠정역 :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개역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카톨릭성경 :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그것이 또 지하에서 올라오겠지만 멸망을 향하여 나아갈 따름이다. 땅의 주민들 가운데 세상 창조 때부터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이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앞으로 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KJV : The beast that thou sawest was, and is not; and shall ascend out of the bottomless pit, and go into perdition: and they that dwell on the earth shall wonder,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when they behold the beast that was, and is not, and yet is. NIV : The beast, which you saw, once was, now is not, and will come up out of the Abyss and go to his destruction.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whose names have not been written in the book of life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 will be astonished when they see the beast, because he once was, now is not, and yet will come.   요한계시록 20장 1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개역 :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카톨릭성경 : 나는 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KJV : And I saw an angel come down from heaven, having the key of the bottomless pit and a great chain in his hand. NIV : And I saw an angel coming down out of heaven, having the key to the Abyss and holding in his hand a great chain.   요한계시록 20장 3절 킹제임스 흠정역 :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개역 :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카톨릭성경 : 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KJV : And cast him into the bottomless pit, and shut him up, and set a seal upon him, that he should deceive the nations no more, till the thousand years should be fulfilled: and after that he must be loosed a little season. NIV : He threw him into the Abyss, and locked and sealed it over him, to keep him from deceiving the nations anymore until the thousand years were ended. After that, he must be set free for a short time.   요한계시록 20장 10절 킹제임스 흠정역 :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개역 :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카톨릭성경 : 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KJV : And the devil that deceived them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and brimstone, where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are], and shall be tormented day and night for ever and ever. NIV : And the devil, who deceived them, was thrown into the lake of burning sulfur, where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had been thrown. They will be tormented day and night for ever and ever.   요한계시록 20장 13절 킹제임스 흠정역 :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개역 :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카톨릭성경 :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KJV : And the sea gave up the dead which were in it; and death and hell delivered up the dead which were in them: and they were judged every man according to their works. NIV : The sea gave up the dead that were in it, and death and Hades gave up the dead that were in them, and each person was judged according to what he had done.     지옥의 본질 지옥에는 희망이 없으며 지옥에 있는 자들은 산 채로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히 산 채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예수 믿지 않은 자들이 궁극적으로 영원토록 불 호수 즉, 불로 가득한 호수에 던져진다.   마태목음 25장 41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개역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카톨릭성경 :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KJV : Then shall he say also unto them on the left hand, Depart from me, ye cursed, into everlasting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NIV : "Then he will say to those on his left, Depart from me, you who are cursed, into the eternal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요한계시록 14장 11절 ( 지옥은 절망의 장소이다 )  킹제임스 흠정역 :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개역 :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카톨릭성경 :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는 자들, 그리고 짐승의 이름을 뜻하는 표를 받는 자는 누구나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KJV : And the smoke of their torment ascendeth up for ever and ever: and they have no rest day nor night, who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and whosoever receiveth the mark of his name. NIV : And the smoke of their torment rises for ever and ever. There is no rest day or night for those who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or for anyone who receives the mark of his name."     요한계시록 19장 20절 킹제임스 흠정역 : 짐승이 잡히고 또 그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대언자도 그와 함께 잡혔는데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기적들로 속이던 자더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으로 불타는 불 호수에 던져지고개역 :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카톨릭성경 : 그러다가 그 짐승이 붙잡혔습니다. 그 짐승 앞에서 표징들을 일으키던 거짓 예언자도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 거짓 예언자는 그 표징들을 가지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짐승의 상에 경배하는 자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 둘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습니다.   KJV : And the beast was taken, and with him the false prophet that wrought miracles before him, with which he deceived them that had received the mark of the beast, and them that worshipped his image. These both were cast alive into a lake of fire burning with brimstone.  NIV : But the beast was captured, and with him the false prophet who had performed the miraculous signs on his behalf. With these signs he had deluded those who had received the mark of the beast and worshiped his image. The two of them were thrown alive into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요한계시록 20장 14절 킹제임스 흠정역 :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개역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카톨릭성경 :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KJV : And death and hell were cast into the lake of fire. This is the second death. NIV :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e lake of fire is the second death.          *** 지옥이 최종적으로 불 호수( the lake of fire )에 던져진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 킹제임스 흠정역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개역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카톨릭성경 :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KJV : And whosoever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NIV : If anyones nam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부가적으로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음은 우리나라, 많은 교인들이 자주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들어 있다. 한영 성경이나 한영 찬송가의 표지 안에 들어 있는 영어 사도신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H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 삭제 )????   * 원래 사도신경에는 “그분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있으나 번역자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고의로 이 구절을 삭제하였다.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무어라 하는지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개역성경, KJV성경, NIV성경, 카톨릭성경을 함께 대조하여 보았고, 이러므로 성경들의 번역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음을 분명하게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인류와 창조물에 대한 모든 구원섭리는 성경에 기록되어진 모든 말씀의 성취들을 이루시면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습니다.   자연계시와 양심 그리고 특별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밀하게 자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순간에도 택하신 그리스도인들과 주를 더듬어 찾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66권의 성경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것의 기준이자 잣대이며 하나님의 뜻과 의도, 구원의 길과 믿는 자의 살아가는 길에 대해 조명해 주심을 믿습니다. 또한 거짓대언자, 거짓영, 짐승의 영을 분별해 내는 유일한 잣대이자 이길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모든단어에 자신의 뜻과 의도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계시하였습니다. 이순간 뿐만아니라 앞으로의 영원토록 주의 말씀은 완전하고 온전하게 지켜질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바르게 전달하고 있으며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최종 권위가 된다고 확신합니다. 한글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믿는 자에게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최종 권위라고 나는 믿는다.      * 아래의 참고 자료를 토대로 편집 및 지옥에 대한 성경 대조를 통한 비교분석을 하였습니다.       에스라 성경사전 363페이지 지옥에 대한 정의 참조    천국과 지옥 바로알기 - 출판사 :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알 레이시 지음 / 정동수 外 역   영존하는 지옥형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88   지옥인가, 음부인가?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87   지옥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264   지하세계(지옥) 도표참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onsult&write_id=70[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02 23:31:54 | 노영기
        지옥   히브리말  :  스올 그리스말  :  하데스 영어        :   Hell 한자        :   地獄 (지옥 = 땅의 감옥)    *지옥은 성경에 총 54회 나온다 ( 구약 - 31회 ,   신약 - 23회 )   * hell - ‘감추다’ 또는 ‘덮다’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1차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하 세계에서 악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곳’을 뜻한다. ( 참고 옥스퍼드영어사전  hell: The abode of the dead; the place of departed spirits; the infernal regions or lower world regarded as a place of existence after death)   * 지옥을 묘사하는 표현들 : 영원한 불(everlasting fire), 영원한 멸망(everlasting destruction), 바깥 어두운 곳(outer darkness), 불 호수(lake of fire), 바닥없는 구덩이(bottomless pit)    * 그리스어 ‘게헨나’를 번역한 지옥은 신약에서 언급된 23회의 "지옥" 중에서 열두 번(12번) 사용되었는데 이 중 열한 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중요한 의미는 게헨나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을 표현하는 기술적인 용어였으며 단 한 번도 무덤을 뜻한 적이 없다.   * 게헨나의 유래 -  ‘결코 끝이 없는 불, 사람이 끌 수 없는 불이 타는 곳’을 의미하며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힌놈’이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되었다.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도시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유대인들은 대대로 계속해서 불타는 이 골짜기에다 쓰레기, 죽은 짐승, 범죄자의 시체 등을 내다 버렸다.   * 지옥을 만드신 창조주는 지옥의 소름끼치는 본질을 강조하시면서 그곳을 어둠의 장소라고 말씀하셨다   * 지옥의 특성 중 하나는 그것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 지옥이 땅의 중심부에 있음을 성경이 말한다   * 지옥은 절망이며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 지옥의 특성중 또 하나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고통을 영원토록 느껴야 하며, 쉼이나 안식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 지옥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자, 곧 모든 믿지않는자는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성경은 말한다.           개역성경의 번역에 대한 고찰    우리말 성경들은 54회의 지옥 중 31회를 히브리어 ‘스올’로 음역해서 구약에서는 지옥을 완전히 제거하였으며 신약에서도 13회만 지옥으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번역했다. 음부는 저승과 같은 말로서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유명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교도 사상이 기존의 우리말 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기독교 교리와  기독교 신학에 참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왔다 (개역성경 잠15:11; 27:20 참조).   * 영,혼,몸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과 성경 비교분석 2부 참조!  http://keepbible.com/Study5/View/3Sr?page=8           "스올" 혹은 "음부"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말 큰 사전은 음부는 저승인데 저승은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유명’이라고 말한다. 즉 샤머니즘적인 불교 용어와 개념이다. 왜 개역성경 번역자들은 이같은 샤머니즘적인 불교용어와 개념을 도입하여 번역하였을까? 또한 개역개정판 성경은 이러한 비성경적인 지옥에 대한 정의나 개념을 성경적 지옥에 대한 정의와 개념으로 대폭 수정하거나 개정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이전에 죽은  자들은 그 당시 언어로 모두 다 '스올' 혹은 '지하 세계'에 갔다. 스올은 '지옥'(Hell)로 번역되며 '죽은자의 거처'(abode of the dead ) 를 의미하며 종종 '무덤'(grave)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지하세계에 있던 낙원이 하늘들로 옮겨졌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곧장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신약시대를 살다가 죽는 세대들에게 성경의 '스올'이라는 번역(음역)은 소위 번역상 틀리지 않으나 본질적인 지옥을 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이런 이교도적 사상과 개념으로 인해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지옥이 땅의 중심부에 있음을 성경이 말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이것을 믿지 않는다.       * 카톨릭 성경을 비교한것은 카돌릭 시스템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며 다만 그들이 사용하는 카톨릭성경과 개역성경과의 관계성을 살펴보고자 함께 대조하였다.         (참고로 카톨릭성경 2005년에 구약의 '가경'(외경)과 신약의 '위경'을 더하여 성경을 만들었다. 2010년인 현재 최종 73권을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외에도 교황의 교시와 유전, 즉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전통이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는 1546년 트렌트회의 에서 외경과 위경을 성경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며 73권의 성경책은 변질의 역사이다. )        * 여호와의 증인들은 항상 '스올'(Sheol) 즉 '하데스'(Hades)는 '무덤'(Grave) 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문자 그대로 불이 훨훨타는  지옥이란 개념을 거부한다.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죽어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과 지옥으로 갔으며(눅16:19-31) ,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낙원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 즉 천국으로 옮겨졌으나(엡4:8-10; 고후 5:8, 12:2-4; 히11:40) 지옥은 여전히 지옥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죽은 사람은 곧장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에스겔 31장 16절 킹제임스 흠정역 : 내가 그를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지옥에 내던질 때에 민족들로 하여금 그의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요동하게 하였은즉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최상급 가장 좋은 것 즉 물을 마시는 모든 것이 땅의 아랫부분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개역 :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였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카톨릭성경 : 그 나무를 구렁으로 내려가는 이들과 함께 저승으로 내던질 때, 나는 그 파멸의 소리로 민족들을 떨게 하였다. 그러자 에덴의 모든 나무, 빼어나고 좋은 레바논의 나무들, 곧 물을 흠뻑 먹으며 자란 모든 나무가 저 밑 세상에서 위로를 받았다. KJV : I made the nations to shake at the sound of his fall, when I cast him down 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and all the trees of Eden, the choice and best of Lebanon, all that drink water, shall be comforted in the nether parts of the earth. NIV : I made the nations tremble at the sound of its fall when I brought it down to the grave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n all the trees of Eden, the choicest and best of Lebanon, all the trees that were well-watered, were consoled in the earth below.     시편 55편 15절   킹제임스 흠정역 : 사망이 그들을 붙들어서 그들이 산 채로 지옥에 내려가게 할지니 사악함이 그들의 거처들에 있으며 그들 가운데 있도다.   개역 :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카톨릭성경 : 파멸이 그들 위로 내려라! 그들은 산 채로 저승으로 내려가리니 그들 곳간에, 그들 속에 악만 있기 때문이다.   KJV : Let death seize upon them, [and] let them go down quick into hell: for wickedness [is] in their dwellings, [and] among them.   NIV : Let death take my enemies by surprise; let them go down alive to the grave, for evil finds lodging among them.       이사야 14장 15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   개역 :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카톨릭성경 : 그런데 너는 저승으로, 구렁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졌구나.   KJV :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NIV : But you are brought down to the grave, to the depths of the pit.       요나 2장 6절 킹제임스 흠정역 :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자기 빗장들과 함께 영원히 내 곁에 있었사오나,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올리셨나이다. 개역: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KJV : I went down to the bottoms of the mountains; the earth with her bars [was] about me for ever: yet hast thou brought up my life from corruption, O LORD my God. NIV : To the roots of the mountains I sank down; the earth beneath barred me in forever. But you brought my life up from the pit, O LORD my God.   마태복음 12장 40절   흠정역: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개역 :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카톨릭성경 :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KJV: For as Jonas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whale's belly; so shall the Son of man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NIV : For as Jonah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belly of a huge fish, so the Son of Man will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  예수님의 혼은 땅의 중심부에 요나의 혼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기록되어있다 (밤낮으로 3일 동안) *  예수님의 몸은 돌 무덤에 있고 요나의 몸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다. (밤낮으로 3일 동안)            *  지옥에 대한 개념-  에스라 성경사전 뒤쪽 81번 "지하세계" 도표       에베소서 4장 8절~10절 킹제임스 흠정역 :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 :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카돌릭성경 :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KJV : Wherefore he saith, When he ascended up on high, he led captivity captive, and gave gifts unto men. / (Now that he ascended, what is it but that he also descended first into the lower parts of the earth? /  He that descended is the same also that ascended up far above all heavens, that he might fill all things.) NIV : This is why it says: "When he ascended on high, he led captives in his train and gave gifts to men." / (What does "he ascended" mean except that he also descended to the lower, earthly regions? / He who descended is the very one who ascended higher than all the heavens, in order to fill the whole universe.)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43:3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8-02 23:29:36 | 노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