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7009개
장로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진 칼빈은 무자비하게 자기의 반대자를 많이 죽인 사람입니다(적어도 80여 명을). 구약시대의 장로 체제와 신정 정치 체제를 제네바 시에 도입하여 신약 교회가 아니라 구약의 신정 정치 이스라엘 체제를 실현하려 한 사랍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의 교황과 같이 제네바의 치리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핍박하고 압제했습니다.    교회사 강좌 37, 38은 장로 교회의 시작과 당회의 시작, 폐해 등을 다룹니다. 어디서도 이런 역사는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분명한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분파의 창시자와 기원을 알면 모든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교회사 37 교회사 38 교회사 39 교회사 40   칼빈 사상의 핵심이 바로 신정정치체제의 구현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성전 휘장이 찢어져서 새로운 신약시대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처음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어진 '비뚫어진 신학체계'입니다. 교회가 다스리는 왕국을 천년왕국으로 이해하는 개념은 연옥의 창시자요, 배도자인 어거스틴이 기초를 마련해 주었고 천주교회가 완성을 했으며 여기서 나온 칼빈이 프로테스탄티즘을 통해 구현하려 했습니다.   이런 데서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합니다. 육적인 유대인과 중동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중요한 부분을 다 영해합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런 체제는 하나남이 원치 않는 체제이며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체제입니다. 16세기의 이런 체제를 지금 21세기에 구현하려는 칼빈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 도처에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고 칼빈의 말을 믿으려 합니다. 칼빈이라는 틀을 통해서만 성경을 보려 하므로 이들에게는 성경이 꽉 막힌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들이 역사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칼빈이 아니라 성경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인 바울을 따라갑시다. 그것이 신약 교회가 해야 할 입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에드워즈, 오웬 등을 목자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바울 신학이 모자라서 어거스틴, 오웬 신학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에드워즈처럼 살 수 없을까 한탄하지 말고 바울을 거울 삼기 바랍니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무엇이 부족하기에 이들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야 합니까?   특히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이 점에서 회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올바른 종말론과 교회론을 가르쳐야 합니다.   2010년 5월 14일에 이어서 적습니다.   교회사 39, 40과에서는 칼빈과 세르베투스 이야기 그리고 칼빈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어떻게 구약의 장로 제도를 도입하고 신민 정부의 힘으로 교회를 치리하려 하며 강압적인 예정론을 통해 선교의 필요를 막아 버린 칼빈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이제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이때에 을 성경을 읽고 거기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7 14:14:28 | 관리자
교회사 38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38회에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만행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습니다.
2010-05-07 13:55:23 | 관리자
교회사 37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2010-05-07 13:54:16 | 관리자
* 새 포도주와 바벨론 포도나무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400807* 기막힌 속임수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400815   위에 2권의 책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홍보와 구독을 바랍니다,   현시대의 기독교내에 사탄의 배도와 배교의 현상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귀한 책들입니다,   정식으로 기독교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수 있습니다,   오인용 목사  BAND OF PURITANS 출판사                   BAND OF PURITANS 네이버 카페
2010-05-06 21:10:39 | 오인용
요즘은 조금 인지도가 있는 기업이나 단체들은 전속 서체를 만드는 게 유행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06년 말부터 윈도우 비스타+오피스 2007+IE 7과 동시에 맑은 고딕을 뿌리기 시작했으며, 한겨레나 조선일보 같은 신문사들도 자기네 전속 서체를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그 후 네이버 역시 나눔명조/고딕 시리즈를 공개한 것으로 유명하고, 최근엔 한컴도 아래아한글 2010과 함께 함초롬 바탕/돋움 시리즈를 공개하여 그 뒤를 따랐다. 대기업인 삼성도 전용 서체가 있고, 코레일도 역명판에 사용하는 전속 서체가 있다. 인천 공항은 각종 표지판에 미공개 전속 서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하청을 받은 산돌이나 윤디자인 같은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엄청 고생했다.   개개의 서체를 만들어 파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서체 회사들은 확실한 과금 체계가 존재하는 포털 사이트(싸이)나 모바일 쪽으로 사업 대상을 바꾸거나, 저렇게 전속 서체 외주를 수행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웹브라우저나 MP3 플레이어 소프트웨어를 개인이 따로 돈 주고 쓰는 경우가 없듯이, 서체 역시 그 자체가 수익이 아니라 마케팅 수단처럼 되어 가는 게 현실이다.   전속 서체는 이미지가 중요한 사기업만 만드는 게 아니다. 가끔은 지방 정부 내지 국가가 세금을 투입하여 만들기도 한다. 월드컵 때엔 경기장 내부 표지판용으로 나라에서 각종 표지판용 전속 서체를 제작해서 썼는데 이 글꼴은 요즘 WOW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도 애용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최근엔 서울시에서 시 브랜드 재고를 위해 서울 남산체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고 이 서체는 지하철 인테리어에서 적극 쓰이는 중이다. (특히 9호선)   그런데.. 이렇게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이 중요하게 부각되기 전에, 무려 1990년대... 그때는 어지간한 PC 환경에서는 윤곽선 글꼴 자체를 구경할 수 없던 시절에, 지방 정부도 아니고 우리나라 중앙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국고를 투입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전속 서체 세트'를 개발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특정 단체나 브랜드를 위한 톡톡 튀는 서체가 아니라, 본문용 네모꼴 한글 서체의 디자인 표준을 제시하는 가장 원천적이고 교과서적인 서체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 작품은 바로 문화바탕체이다. 여기서 '문화'란, 당시 이 서체 개발하라고 연구비를 대 준 정부 부처인 '문화부'(훗날 문화관광, 문화체육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바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짜잔~ (맨 아래의 검은 글자)     명조체와 비슷하나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명조류가 아니다. 명조라고 보기에는 좀 붓글씨 내지 펜글씨 같기도 하지만 흘리거나 날린 흔적은 없다. 특히 명조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ㅈ이 명조가 아닌 고딕처럼 ㅡ+ㅅ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ㅠ에서 왼쪽 ㅣ가 왼쪽으로 삐쳐져 있다. 문화바탕 말고 ㅈ이 그렇게 그려져 있는 본문용 명조는 아마 신문명조 부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바탕은 1991년엔가 그때 개발되었으며, 1992년에 발매된 아래아한글 2.0 전문용이 지원하는 윤곽선 글꼴로 공개되어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문화돋움도 나왔으며, 아래아한글 3.0 시기인 1994~1995년에는 문화바탕제목, 문화돋움제목 같은 진한 제목용 서체와, 문화쓰기흘림, 문화쓰기정자, 문화쓰기필기 같은 진짜 펜글씨· 붓글씨 서체가 후속작으로 잇달아 개발되었다. 이 문화* 서체들은 아날로그 서체이다. 마치 만화 그리듯이 사람 손으로 원도를 그린 후, 그걸 스캔하여 윤곽선을 추출하고 따로 보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사실, 수많은 서체들이 그런 방식으로 새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부터 쓰여 온 서체들도 그런 방식으로 디지털화했다.   문화바탕의 원도를 그린 사람은 최정순 씨이나, 서체 컨셉은 개발 위원회 멤버들의 합의를 거친 것이지 전적으로 그 사람 개인 작품인 것은 아니다. 원도의 디지털화는 한글 타이포그래피과 출판 기술 쪽으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이며 왕년에 <컴퓨터는 깡통이다> 시리즈로 매스컴도 여럿 탄 유명한 이기성 교수가 작업했다. 세리프가 많은 아날로그 글꼴을 디지털화했다는 특성상 문화바탕은 덩치가 크고, 과거 도스 시절에도 래스터라이즈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글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화바탕은 나름대로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개발되었다. 앞으로 이런 문화바탕 특유의 냄새가 나는 서체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ㅈ이라든가 ㅠ의 모양 같은 것도 본문용 한글 서체라면 앞으로 이렇게 문화바탕처럼 만드는 게 맞다는 식으로 나름대로 원칙과 표준을 정한 것이다. 그리 캐주얼하거나 가벼운 느낌을 주는 서체는 아니기 때문에, 분위기의 특성상 교과서나 성경, 법전 같은 경전류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서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꼴이 만들어진 지 20년 뒤, 윤명조가 대세가 된 오늘날까지도 문화바탕의 가이드라인대로 만들어지는 본문 글꼴(특히 ㅠ 모양)이 거의 없다시피한 것이 현실이다. 그 대신 오늘날까지 문화바탕을 출판물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는가?   여호와의 증인-_-이다. 본인이 몇 달 전에 우연히 간행물 파수대를 봤을 때에도 본문이 문화바탕체인 걸 봤다. 그런데 그들 간행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정교한 유채화(oil painting) 스타일의 삽화와 더불어 문화바탕체는 내가 보기에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도 내면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본문은 딱 보면 문화바탕, 굵은 글씨는 문화바탕제목임을 알 수 있다. 이걸 알면 용자. 그리고 저 본문 내용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이단 교리라는 걸 아는 독자라면 더 용자. ㅋㅋ 여호와의 증인들이 쓰는 용어는 야훼 대신 여호와를 쓰는 것만 빼면 천주교 공동번역 스타일과 굉장히 비슷하다.)이러다가 문화바탕체가 여호와의 증인들 전속 서체처럼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본인이 21세기 이래로 문화바탕체를 본 곳은 이기성 교수가 관여한 출판물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 딱 두 곳뿐이다! ㅜㅜ   아울러, 문화* 글꼴들은 한글에 어울리는 영문/숫자 글꼴이 전혀 개발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연구비 삭감-_- 때문이라고 하며, 이 교수 역시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 점에 대해서는 몹시 아쉬워하는 것을 강연에서 들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5 23:53:36 | 김용묵
오랜만에 아름다운 홈스쿨에 글을 올린다. 최근들어 우리 가족에게 참 많은 일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우리가 3년간 섬기던 소주(중국)의 행복한 교회를 나오게 된일이다. 때로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이번 경우가 가장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인 것 같다. 아무런 인간적인 갈등이 없이 나온것으로 보아서도, 우리는 이것이 진정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는다.   최근 우리는 새로운 목자를 만나서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 새로운 목자를 만나게 된데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매일 인터넷을 통해서 keepbible.com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 방금전에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keepbible을 만나게 된것 같아!  말씀을 이토록 공부하게 되어서 무척 행복해."  아내가 행복하다니 나두 안심이 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의 실존의 문제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주변의 형제 자매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내가 남편으로 아버지로 형으로 .....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할려고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데, 이래도 되는건가? 왜 안될까?" 기타 등등.... 수많은 실존의 질문들 속에서 답답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이 사이트를 알게 되어 그 안에 있는 동영상강의를 거의 매일 듣고(가정예배대체로) 공부하면서, 희안하게도, 그 답답함들이 조금씩 풀리는, 성도로서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용중에서도 일부분들은 나의 이기적인 자아가 판단하기에 용납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옳다면, 비 본질적인 부분을 조금 다르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는 생각을 갖게 해 주셔서 지금은 아주 유익하게 듣고 있다. 약2개월간을 열심히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가슴이 뼝 뚤리는 듯한 느낌이고, 성령님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의지하는 자유의지를 강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말로 옮기기도 힘들다. 이 글을 읽는분 중에서 내가 왜 이런말을 쓰는지 궁금한 분이 있다면, keepbible.com에 들어가서 자료실에서 동영상 강의중에서 "구원"부분을 들어보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가 겪는 이런 실존의 문제를 진원이가 많이 겪으면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뭔가 성경의 말씀(한 문장으로 된 단편적이 이해가 아닌 성경 전체의 이해를 통한 성경의 말씀) 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여기서 많은 정보를 받아서, 열심히 아내가 전해 주고 있어서 안심이 된다. 뿐만아니라,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문화들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성경적인 기준을 또한 명쾌하게 내려 주어서 더욱 감사하다. 최소한 진원이 주원이가 보고 듣고 경험하게될 문화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주게 되어서 또한 기쁘다. 처음에는 나두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다가, 볼수록 깨닫게 된 것이라. 참 귀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들을 더 늦기전에 들어야 하는데.... 라는 소망이다. 그래서 이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주님께 기도한다. "내안의 성령님!!! 이거요!!!"   <아름다운홈스쿨 카페지기님 글 발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5 08:13:20 | 정재훈
음성 자료에 있는 성경목록가에 악보를 추가하였습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38[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01 13:03:57 | 관리자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런데 아직 신구약 성경 목록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어떻게 성경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어떻게든 찾아서 읽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성경이 무기라면 무기를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제작되는 성경은 대부분 반달 색인이 있습니다. 미국 성경에는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 출판사 성경도 90% 이상이 색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색인이 없으면 성경을 찾지 못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문제입니다(이것은 제 편견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참으로 큰 걱정입니다.   성경목록가를 올립니다. 부디 인쇄해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따라서 부르고 외웁시다. 며칠 내로 성경 읽기표도 올릴 것입니다.   성경목록가   1.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2.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3.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4.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5.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 디도서 빌레몬 히브리 야고보 베드로전후 요한일이삼6. 유다서 요한계시록 구약 삼십구 권에다 신약 이십칠 권으로 성경은 육십육 권이라.
2010-04-30 17:18:41 | 관리자
교회사 36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2010-04-30 15:05:59 | 관리자
교회사 35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5회부터는 칼빈과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2010-04-30 15:03:46 | 관리자
늘 형제/자매님들의 은혜로운 말씀만 읽다가 시간이 나서 두서없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24 : 27)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마다 예수님의 지상재림을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아는 권사님이 예수님이 오시면 CNN등에서 중계를 하여 모든 사람이 볼 수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강림하실때가 낮이라면 지구 반대쪽 사람들은 실컷 자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예수님이 오신것을 알게 될까요 바다속 100m 핵잠수함에 근무하는 수병들은 물위로 부상한 다음에야 알게 될까요 탄광 300m 지하에서 일하던 광부는 교대근무 시간이 되어서야 알게 될까요 앞을 못보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로 부터 예수님 오심을 전해듣고 알게 될까요?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이고 지구둘레는 4만 Km이므로 빛이 1초에 지구를 7바퀴반을 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는 약 0.13초 정도 걸리겠지요. 그야말로 눈깜빡하는 시간일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빛의 속도와 지구둘레를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고 위와 같은 표현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 지상재림 하시는 것은 지상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 아마 수십억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동시에 볼 것입니다.(너무도 당연한 것을 왜 쓰느냐고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너무 기뻐서요!)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가 사막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고, 보라. 그가 은밀한 방에 있다, 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마24:26)   저는 이 말씀이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나 또는 어떤 매체(TV, 인터넷 등등)를 통해 예수님이 미국에 서울에 아니 설사 예루살렘에 강림하셨다 해도 그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누구로 부터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우리 모두의 눈으로 동시에 보아야 하는 것이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주님의 지상재림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휴거되어 지상재림때 땅에서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내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목사님 설교시 우리 살아 생전에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은 후 예수님 오실때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은 "이미 따논 당상이니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혹 제 글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의지하시기 바라며,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의의 관"만큼은 따논 당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다시 오심을 너무너무 기다리고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꼭 오실 테니까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9 23:44:50 | 장인교
  믿음으로 .......... 저희 교회는 주일날 한번만 말씀을 전하고 수요일 모임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목사님들 말씀을 다같이 모여서 듣군 합니다. 오늘 수요일 모임 날이라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은 히12:1-3 에 말씀 주제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중에서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병이 다 낫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을 전하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으로 아멘이 되었고 또한 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메여있던 것이 확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제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주일날에 형제자매님들이 다 모인다 해야 9명이 모이고 수요일 모임에는 5명이 모입니다. 시골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어렵다 하기보다 사실 정신적으로 더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원인이 형제자매가 적다는 것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역이나 믿음으로 산 사람의 기준을 전도를 해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고 있느냐? 아니면 적게 모이느냐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질보다 양을 더 많이 봅니다. 그리고 시골 사역을 하다 보니 그간 많은 분들의 물질 지원을 받고 살았는데 돈을 믿음으로 지원해준다고 하면서도 꼭 돈만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간섭을 하려하고, 돈을 받는 사람을 많이 무시하군 합니다. 그것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이전에 미국에 어떤 목사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전혀 몰랐는데 한국에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그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그 목사님이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백불을 보내주었고 후에는 삼백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이렇게 저를 채워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의 모든 것을 간섭을 하였고, 늘 교인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주면서 돈을 어떻게 썼는지,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늘 보고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피곤할 정도로 간섭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가 형제자매님이 많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에게 물질을 보내던 것도 끊고 아예 교제도 끊어버렸습니다. 후에 제가 전도해서 현제 교제를 하고 있는 연길에 형제를 가로채서 그 형제를 물질로 사서 일을 하더니 결국 그 형제님이 전도를 잘 못한다고 그 형제도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기가 찼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나도 발전성이 있는 그런 곳에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사역을 하고 싶은 생각이 숨어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평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서 저도 잘 몰랐는데 무슨 일에 부딪히면 그런 마음이 순간 올라 오군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오랫동안 연결이 끊겼던 목사님하고 대화가 되면서 그 목사님이 어떤 큰 도시교회에 소개를 해주시면서 저보고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해줄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소개해주는 곳은 큰 도시일 뿐만 아니라 발전성이 있는 곳이고 또한 이미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모든 것이 잘 준비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정말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제 사역을 하고 있던 시골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이유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많이 생각해 냈고, 목사님들께도 그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서 꺼림직 한 것이 있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이 난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뜻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다가 내 욕망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것인데 지금 저는 말씀을 끌어다가 내게 결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시골교회를 버리고 그 큰 시내 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잘 못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정리를 했지만 그런데 자꾸 제 마음에서 왜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몇 명 안되는 시골에 있게 할까 하는 마음이 들군 했습니다. 오늘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라합은, 믿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서 삼손에 대해서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에서 아멘이 되었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제 마음속에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겼으며........]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이 감사가 되고 찬양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렵더라도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믿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에 메여있던 부분이 해방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이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겨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책에 믿음으로 살았다고 기록해 주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끝까지 단 한명  남을 때까지 형제자매님을 섬겼더라.]라고 생각이 되니깐 정말 마음에서 힘이 나고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날 실패한 사역자라 생각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날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은 날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교제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붙들어 주신 김재근 목사님, 정동수 목사님, 홍두엄 목사님, 김영균 목사님, 박참하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가 되었습니다. 김재근 목사님은 제가 시골을 떠나려고 할 적마다 저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가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8 19:53:38 | 홍승현
여러분! 행복하세요?   비도오고 날은 지궂은데 여러 형제 자매님들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최근 백수가 되어 열심히 집에서 방콕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는 왜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오늘은 문득 행복한 생각이 들어 몇자 적습니다.   제가 행복해 하는 이유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때문입니다   사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흠정역 성경을 이미 접하고 생활속에서 묵상하리라 생각됩니다.   최근들어 성경을 많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밥먹는 시간과 딸과 놀아주는 시간 빼고는 계속 흠정역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제야 흠정역 성경을 보게되었는지! 지금에라도 흠정역 성경을 대할 수 있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만나게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자를 긍율이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다니 주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감계무량할 따름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마치 묘수 풀이 해놓은 것처럼 희미하던 것들이, 무감각 했던 것들이 살아 춤을 추듯 다가 옮니다.   이러니, 아니 기쁠수가 있가 있으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데도 즐겁기만 합니다. ㅎㅎㅎ   주안에서 한 지체된 형제, 자매님들도 축축한 날이지만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8 17:29:33 | 노영기
오늘날 전 세계 일부 대도서관에서 가장 오래된 꾸란 사본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이 완전히 진본과 다르지 아니하고 완전히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에 의심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그는 발견된 가장 오래된 꾸란과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꾸란들을 비교하여 보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알제리아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아세아 극동에 위치한 한국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가장 오랜된 꾸란을 서로 비교하여 보아도 그것들은 우스만 시절에 만들어진 꾸란 사본들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구입한 꾸란을 가지고 꾸란을 암송한 하피즈가 암송하는 꾸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하여 보아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읽혀지고 있는 꾸란은 최초에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하여 세상에 전해진 바로 그것이다. 꾸란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되었는가에 대해 일혹의 의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오늘날의 꾸란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계시되었던 그 당시의 꾸란과 일점일획도 차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메디나 소재 파하드 국왕 성 꾸란 출판청에서 출간한 한국어 꾸란 서문에서]     * 이슬람이 꾸란 믿는 것보다는 성도가 킹제임스성경을 잘 믿어야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5: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7 22:00:57 | 김재근
노아당시 불순종하던 자들이 감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잘 이해가 안되서요. 이구절을 카토릭에서 로사리오기도나 다른 행위를 열심히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근거로 설명하던데요.   이 구절은 사도신경과 함께 설명하면 좋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2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천당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 - 예컨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 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2010-04-27 09:30:06 | 이정순
서울 구로에 있는 진리침례교회를 소개합니다. 김영균 목사님과 형제자매님들이 오랫 동안 킹제임스 성경과 영혼의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진리침례교회   2010년 5월 9일에는 김영균 목사님께서 사랑침례교회에 오셔서 오전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오후에는 믿음의 여정과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에 대해 2시간 동안 세미나를 해 주십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방문하셔서 교제를 나누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6 14:11:15 | 관리자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 저는 최근에 주일모임에서 마태복음을 차례대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마태복음 5장을 끝마치고 다음 주 나눌 말씀이 마태복음 6장이라 오늘 아침에 6장 말씀을 읽게 되었는데 마태복음 6장에는 외식에 관한 것을 주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예전에 다니던 그 교회들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일들이 믿음이 아니라 정말 외식된 것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 외식적인 교단을 떠나 이제 바른 교회들을 만나서 참된 신앙생활과 바른 성경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가 됩니다. 저는 89년도부터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고 노력하다가 계속해서 짖는 죄 때문에 갈등하다가 95년도 1월달에 어떤 교단 교회들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머리로만 알던 십자가 사건이 그때 마음으로 믿어졌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5월달부터 제 1기 선교학생으로 뽑혀서 저는 저의 아내를 데리고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선교학교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훈련을 시켜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우는 곳이라는 것만 들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다들 저를 부를 적에 [집사님]하고 불렀는데 오늘 선교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똥집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도 거듭나지 못했을 적에 집사는 하나님이 세운 집사가 아니기에 똥집사라는 것도 맞다 싶어서 그 말이 이해가 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선교학교 개학 첫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을 일전한푼 남기지 말고 다 바치라 해서 저는 일전도 남기지 않고 다 바쳤습니다. 이유는 이제부터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이제 태어 난지가 얼마 안되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의 주머니에 돈이 한 푼 없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는 하지만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믿음을 배우는 길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믿음생활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새벽 4시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새벽 5시부터는 새벽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시부터 5시반까지 약 반시간 가량 기도하고 성경 읽다가 5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6시반에 새벽 예배를 끝마칩니다. 그리고 형제님들은 부지런히 방을 치우고 세수를 하고 자매님들은 밥을 지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는 7시반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침 8시반부터 모여 각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가 8시반부터 오전 11시까지 목사님이 오셔서 아침 성경강의를 하십니다. 그리고 12시에 밥 먹고 오후 1시부터 각자 짝을 지어서 시내에 나가서 전도를 하러 갑니다. 각자 전도를 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무조건 학교에 들어와야 합니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가 있고 좀 쉬었다가 저녁 7시부터 저녁 모임이 시작됩니다. 약 반시간 가량 각자 기도를 하고 성경 읽다가 7시반부터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 보면 10시에 성경 공부가 끝납니다. 그리고 잠간 쉬었다가 선교학교 학생들이 둘러앉아 기도모임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기도모임 시간까지 다 끝마치면 밤 11시가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엎고 저희 부부가 자는 숙소에 돌아와서 빨래도 좀 하고 이런 저런 일을 좀 하다 보면 12시에 자기가 보통입니다. 정말 고단한 훈련이었습니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저의 아내 문제었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훈련을 시킨다고 밥을 배불리 주지 않습니다. 작은 공기로 살짝 한 공기 주는데 저희도 배가 부르지 않는데 아이이게 젖을 먹이는 저의 아내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더 먹으려 해도 더 먹을 밥이 없었습니다. 반찬도 조금 해놓기 때문에 조금만 늦게 밥을 씹는 사람은 나중에 먹을 반찬이 없었습니다. 저녁 모임을 끝마치고 숙소에 와 잠을 자려하면 아내가 너무 배가 고파 힘들어 합니다. 잘 먹지 못할지라도 배는 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배까지 곯다보니 아내가 젖까지 얼마 나오지 않아서 딸 아이가 자지 않고 웁니다. 아내는 밤새 나오지 않는 젖을 아이에게 물리면서 아이를 달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제 시간이 선교학교에 달려가야 합니다. 때론 아내가 아이 때문에 선교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습니다. 때론 일분 이분 차이로 늦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도 봐주지 않고 그날 아침 늦었다는 이유로 선교학교에서 아내에게 아침 금식을 시킵니다. 그것을 보는 저는 정말 눈물이 나왔고 목구멍이 밥이 안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믿음생활인가 싶어서, 또한 훈련과정이라 싶어서 참고 참았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모임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밥을 먹는 시간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시간을 일분이라도 어기면 그날 금식을 해야 합니다. 혹 누구라도 말 대구를 한다면 한끼 더, 또 한끼 더 ......이렇게 금식을 시킵니다. 그곳에서 사랑이란 조금치도 없습니다. 모두들 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지켰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남을 나누어 주려고 하기보다 자기 입에 들어가기 바빴습니다. 모임시간이 아이가 울면 때려서 다른 외딴방에 가두어 놓습니다. 젖먹는 어린 애기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는 중에서도 달마다 선교학교 생활비를 바쳐야 합니다. 손에 있는 돈을 다 털어버리고 선교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생활비를 벌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해서 바치라고 하는데 사실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전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얻어낼까 연구를 합니다. 자주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기도 합니다. 사실 선교학교에 돈이 있지만 전도를 나갈 적에는 한쪽 차표만 사주고 올 차비는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전전도 여행을 나가려면 두려움에 싸입니다. 무전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간증을 하는 것을 보면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목사님이 어느곳에 가려고 차표를 샀는데 표값이 90원이어서 자기가 백원짜리 인민페 한 장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판매원이 10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판매원이 자신에게 90원을 돌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기쁨으로 그 돈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 간증을 들으면서 제 속으로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주었느냐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목사님이 하는 간증이라 이해가 안 되지만 그냥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 교회들에서 늘 말씀을 하는 것이 우린 [종]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고 [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우린 정월초하루 설명 절이 되면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교학교에 모여서 정월초하루 아침에 금식을 합니다. 정월 초하루 아침에 밥을 먹으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날 육신을 쳐서 영에 복종하는 훈련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는 부모형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몇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말을 해주기 때문에 아니라 생각이 되면서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후에 이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말들이 맞아보였습니다. 늘 깨어져야 한다, 부서져야 한다고 가르쳤고 종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교회들에서 가르쳤던 것들이 너무나도 외식적인 것이었고 우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말씀을 바로 모르면 이런 엉터리 교리에도 반박할 말씀을 찾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박옥수 목사나 북한에 김정일이나 똑 같은 그 쪽에서는 만민의 태양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따르는 것만이 믿음생활이라 가르칩니다.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외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과 그쪽 교단들에서 있었던 끔직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워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바른 성경이 있어야 바른 교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얼마전에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정동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 킹제임스 성경 교회들에 와서 많은 목사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바른 믿음의 생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믿음은 누가 강박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 오늘 마태복음 6장을 읽다가 이전에 선교학교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좀 적어보았는데 성경적인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주안에서 복된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면서 ........... 안녕히 계십시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9: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6 12:00:28 | 홍승현
  큰 형님을 찾아갔다가... 저는 사남일녀 중 막내입니다. 위에 두 형님이 있고 위에 누님 한분이 있습니다. 저의 형제들 중 둘째 형님이나 누님이나 저는 다 고중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큰 형님만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만나서 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의 큰 형님은 많이 배운 덕에 우리 형제들 중 제일 똑똑한 사람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큰 형님이 저를 보았을 적에 늘 저는 막둥이 어리광이이고 늘 자기보다 못한 [자신에게 은혜 입을 자]인 것입니다. 저도 세상지식으로는 큰 형님과 비하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형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구원을 받고 그 다음 아버지 어머님, 그리고 둘째 형님과 누님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독 큰 형님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큰 형님이 보았을 적에 저희는 무식해서 하나님을 믿고 자신은 똑똑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고 난 후에 큰 형님을 보니 세상 적으로 똑똑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똑똑한 자가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바로 제일 똑똑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2000년도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 가시기전 저보고 녹음테이프로 아버지 말씀을 녹음하라고 해서 아버지가 큰 형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니 꼭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유언을 녹음을 해서 남겨놓았는데 그 녹음테이프를 큰 형님에게 들려드렸더니 큰 형님이 아버지 미쳤다고 콧방귀를 뀝니다. 우리 가족식구들은 늘 저의 큰 형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에 형님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신체검사에서 형님의 간에 암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암을 고치기 위해서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병원에 다니면서 수많은 의원을 만나 치료를 해보았지만 병은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중해갔습니다. 이제는 암 말기라 간에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전이가 되었고 심지어 뼈에 까지도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저는 형님을 보면서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열 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많은 의사에게 많은 일들로 고통을 받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니 조금도 좋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 심해지던 차에](막5:25-26) 형님은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고 많은 의원을 만나서 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병만 더 키웠고 있던 돈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 나오는 여자는 다행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큰 형님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주 형님집에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고 펄펄 뛰더니 이제는 병이 점점 중해지면서 마음이 점점 낮아지면서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데 그것도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조금 조금 받아들입니다. 어제는 이즈음이면 마음을 낮추고 복음을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데 자신이 죄가 많아서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복음을 듣겠지 해서 복음을 전해주려 했는데 도저히 지금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 여전히 교만에 꽉 차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어데 있습니까? 죄가 많아서 천국 못간 다고 하면서 복음을 듣지 않겠다고 하니 이것 또한 지극히 교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을 볼 적에 참 불쌍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큰 형님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세상적으로 많이 공부를 시키고 출세를 시키려 하기보다 많은 공부를 시키지 못하고 세상적인 출세를 시켜주지 못했지만 자녀들에게 진짜 가르쳐 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신앙을 배워주는 것이 진정 자녀를 복되게 하는 것이란 것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저는 큰 형님처럼 배운 것도 적고 아는 것도 적지만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저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똑똑한 자고 내가 정말 복된 자라는 것을 저는 형님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됩니다. 몇 일 있다 또 형님에게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려 합니다. 오늘 형님을 찾아갔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들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순서없이 적어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4 22:13:10 | 홍승현
교회사 34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34회에서는 쯔빙글리와 '재침례성도들' 간의 유아세례 문제가 나옵니다. 성경대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줍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니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4 16:54:37 | 관리자
교회사 33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 나오는 쯔빙글리와 재침례교도의 역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34번 강의는 중요합니다.   두고두고 반복해서 들으면 유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4 16:52:5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