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한 형제님께서 좋은 글을 주셔서 킹제임스 성경 입문서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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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는 킹제임스 흠정역을 약 3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름대로 흠정역 성경을 알리는 일에 힘쓰며 이 사역에 적게나마 합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이미 저와 같이 흠정역을 쓰시는 분들이겠지만, 흠정역이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오시게 되는 분들도 있는 줄 압니다. 이곳에는 흠정역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지만 개인 사용자 입장에서 느낀 점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다음 글은 처음 흠정역을 쓰고 나서 정리한 것으로, 홍보를 위해 개인 홈페이지에 실었던 것을 최근에 추가, 수정한 것입니다. 이 사이트에 있는 내용들과 덜 중복되는 내용 위주로 올립니다. 예전의 저처럼 흠정역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사용을 고려중인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가 명확한 성경
킹 제임스 영어성경을 번역한 한글판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국내에서는 두 세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미 많은 번역상의 실수를 드러낸 <한글 킹제임스>(말씀보존학회)는 공신력 면에서 믿을 수가 없고, 또 한 곳은 번역의 완성도 문제로 판매를 중지한 후 개정작업을 거치고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에서 발행한 <킹제임스 흠정역>만이 믿을 수 있는 번역을 하고 있다. 이렇게 누군가 바른 번역을 하고 있으면 합력해서 그것을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자기의 이름을 건 자기식의 번역을 위해 많은 비용과 힘을 낭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이 성경을 보면 반복되는 소유격이나 주어 등을 있는 그대로 나오는 횟수만큼 다 번역하고 복수와 단수를 명확히 하며, 의미전달상 어쩔 수 없이 추가된 단어까지 구분해 놓고 있다. 또한 권위 있는 표현이나 기존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지만 어려운 말은 모두 쉬운 말로 교체했다. 그러나 기존 성경에 익은 독자들의 혼돈을 우려하여 대부분의 고유명사와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적용했다. 우리가 쓰는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은 축약과 한자어가 많아 문장이 그리 길지는 않은데, 한글로 번역된 킹 제임스 흠정역은 축약된 부분을 복원시키고, 단어 대 단어로 모두 번역했기 때문에 개역개정판보다는 약간 길어진 듯한 느낌이다. 개역성경은 간결함의 장점 이전에 정확성을 먼저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오래전에 번역됐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간결함'이다. 그러나 어떤 장점도 명확함과 바꿀 수는 없다.
말을 줄이다 보니 한자가 등장하고. 많은 어려운 말들이 나온다. 어린 아이들은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외워 암송대회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외워 놓으면 다 도움이 되고 마음밭에 새겨지기도 하겠지만, 말씀은 그 외형을 아는 것보다 거기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선 아닐까.
개역성경과 현대역본들이 변개한 내용들
예수님이 마시지 않겠다던 것을 마셨다? :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이 포도나무에서 난 것(포도즙)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새롭게 마시는 그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복음서를 계속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에게 해융(스펀지 같은 것)에 적신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나온다. 어떤 해설성경에서는 이것을 신 포도주와 계란과 물을 섞은 로마병정의 음료라고도 했고,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값싼 포도주'로도 번역하고 있는데, NIV에서는 wine vinegar, 즉 '포도 식초'나 '신 포도주'로 번역할 수 있는 말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어기고 돌아가시기 전에 포도주를 마셨다는 말씀인가? 이들은 단어를 추가해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 KJV에 보면 이것을 그냥 '식초(vinegar)'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KJV 번역자들이 말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조율할 수도 없다. 변개되지 않는 본문에서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는 뜻이다. 오히려 왜곡을 위해 천주교 역본이 손질된 것이다.또 성경에는 예수님이 맛 보시고 거절하신 일종의 진통제인 '쓸개 탄 포도즙'도 나오는데, 이것도 '식초'로 같은 단어이다. 마가복음 15장 23절에서도 예수님은 몰약을 섞은 포도즙을 거절하신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제대로 된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도 포도주를 드신 것이 아니라 포도즙을 드신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님이 어디에도 '와인'을 드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니와, 당시의 언어로 '와인'은 포도주와 포도즙에 동시에 쓰인 단어이므로 문맥을 분간해서 번역해야 한다고 한다.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유월절에 누룩이 든 술을 마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의 흠없이 완전한 희생양이 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 : 개역성경의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원래는 '요한'이 아닌 '요나'의 아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유명사가 틀린 것이므로 치명적인 부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그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며 분노했던 것이다. 성경의 인물을 구분할 때 그의 아비를 자주 소개하는 것은 동명이인의 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보면 개역개정에서도 '바요나 시몬아'라고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바요나의 '바'란 '아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요나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다.
복음성가 중에 즐겨 부르곤 했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는 곡이 있는데 여태껏 잘못 불렀다니... 왜 이런 단순한 실수가 있는지 더더욱 개역성경을 신뢰하지 못하는 계기가 된다.
역자가 이해 못하는 단어의 변경 : 성경에는 우리의 이성이나 과학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나온다. 예컨대 유니콘이라든지 용(dragon, 공룡)에 대한 언급은, 유니콘이 전설의 동물이라는 잘못된 지식과 사람이 살던 시대에 공룡이 안 살았다는 진화론적 선입견을 바탕으로, 유니콘은 들소로, 용은 뱀이나 시랑 등으로 독자를 위해(?) 알아서 변경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더욱 모호하게 되고 진화론에 대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동물에게 영이 있다는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으로 바꾸는 등 많은 부분에서 변개를 통한 의미의 왜곡을 가져왔다.
종교성과 미신주의의 차이 :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아테네) 사람들에게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종교심)이 많도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NIV 등의 영어성경이 religious로 쓰고 있기 때문에 '종교성'이 된 것 같다. KJV에서는 superstitious, 즉 '미신적'이라는 말로 쓰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전체를 번역하고 있다. "내가 알고 보니 너희가 모든 것에서 지나치게 미신에 사로잡혀 있도다." 이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바울은 그들의 우상숭배 실태를 알고 영이 격동했다고 나온다. 또한 위의 미신적이라는 책망 뒤에 이어지는 바울의 이야기를 보면 우상숭배에 관한 이야기와 훈계가 계속 나오므로 더욱 확실한 증거라 하겠다. 그런데도 일부 목사들은 이 말씀을 들어서, 사람들을 훈계할 때는 우선 그들을 칭찬해야 한다면서 바울의 말을 그들에게 종교심이 많아서 하나님도 잘 섬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치켜 세우고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이래서 번역은 작은 실수 때문에 큰 개념이나 교리의 오해까지 불러올 수 있는 것 같다.
뜻이 모호하고 어려운 단어와 고유명사들이 개정된 예
개역성경
킹제임스 흠정역 (그리스도 예수안에 刊)
성경위치
구스
에티오피아
창세기 2:13
들소 (오역)
유니콘
민수기 23:22 등
시랑과 타조
용들과 올빼미들
이사야 23:20
발등상
발받침
이사야 66:1
기묘자
놀라우신 이
이사야 9:6
모사
계획자
이사야 9:6
묘성
플레이아데스 별무리
욥기 38:31
삼성
오리온 별자리
욥기 38:31
룻(나라 이름)
루디아(Lydia :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Luth임)
에스겔 27:10
복술자
점쟁이
사무엘상 6:2
방백
통치자
에스더 1:21
감람
올리브
마태복음 24:3
분봉왕
사분(四分)영주
마태복음 14:1
참람한 말
신성모독하는 말
마태복음 26:65
쓰스
주피터
사도행전 14:12
허메
머큐리
사도행전 14:12
자주 장사
자주색 옷감 장수
사도행전 16:14
에비구레오
에피쿠루스 학파
사도행전 17:18
스도이고
스토아 학파
사도행전 17:18
아덴
아테네
사도행전 17:16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히브리서 5:10
진설병
보여 주는 빵
히브리서 9:2
양심에 화인 맞은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디모데전서 4:2
구리장색
구리 세공업자
디모데후서 4:14
무저갱
바닥없는 구덩이
요한계시록 9:1
황충
메뚜기
요한계시록 9:2
국어 표현상의 문제점을 보완
성경을 읽으면서 뜻을 여러번 생각하다가 결국 그냥 넘어간다든지, 다른 뜻으로 오해한다든지, 사전이나 쉬운 성경을 찾아본다든지 하는 일이 있는데,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과 거기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나와는 관계가 먼 옛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고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내용이 더 많이 이해되기 때문.한 예로, 다음의 베드로 전서 2장 13~15절 말씀을 보자.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 문장들의 의미를 단번에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음은 같은 부분의 흠정역이다.
13... 너희는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14...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분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15... 그리함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좀 길긴 하지만 훨씬 쉽다. 아니, 이제야 말이 된다. 흠정역으로 읽으면 뜻이 이해가 되고 마음에 더 와닿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모호한 표현이 모호한 개념을 낳고 모호한 개념이 어중띤 신앙자세와 미신적 신념 등을 가져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잘못된 번역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져온다
읽기 어렵고 뜻이 변질된 성경을 고수할 것인가? 지금까지 그 성경을 보고도 성령님은 역사하셨고 한국교회는 부흥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들이 다 무효라는 말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헛일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개역성경은 오랜 세월 보존된 성경의 권위를 잘 표현했고 또 간결하면서 복음도 담겨 있어서 한국교회의 발전과 신앙인들의 영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지 우리는 완전치 못한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실수들이 세월이 지날수록 거대한 오류의 개념들과 신앙행태를 낳고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개역 한글판 성경은 애초부터 천주교에서 쓰는 (공인 본문이 아닌) 이집트 본문을 기초로 한 미국표준역에서 번역되었고, NIV 등의 일반적 현대역본들을 참고하여 수정되어 왔다.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마치 박정희 시대에 발표된 김민기의 음반에 '아침이슬' 같은 중요한 곡들이 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저항을 위한 노래로 만든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노래들이 빠진 김민기의 음반은 그 나름으로 역할이 있고 감동이 있다지만 그의 핵심사상은 빠져 있다. 평론가들은 그 음반이 난도질 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본이 들어있는 음반을 찾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말하려면 원래의 음반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은 본래 연극 대본이므로 독서용으로는 마땅치 않아 영국의 찰스 램 남매에 의해 소설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어떤 번역서는 아예 저자를 '램'이라고 명기한 세익스피어의 책들도 있을 정도로 완전히 재창조된 것이 셰익스피어의 소설이지만 원래는 모두 희곡들이다. 그러나 세익스피어를 연구하려면 그의 희곡을 읽어야지, 재구성된 소설만을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개 가수의 음반과 작가의 책도 이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원래의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마땅한 일 아닌가.
우리는 또한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며 흥분한다. 그런 교과서는 많은 부분이 변조됐지만 아마도 성경이 변개된 양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또한 동북공정의 음모가 담긴 중국의 역사책은 어떤가. 그런데 이런 책들은 아무리 폐기하고 또 새롭게 바꾸는 노력이 있어도 어딘가에서 읽히고 있다. 독도가 일본땅이며 동해가 일본해라는 표기는 아무리 오류라고 목청껏 외쳐도 어딘가에서 변질되어 계속 책으로 발행되며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다.
그런 것처럼 변질된 성경도 계속 어딘가에서 영향을 미치며 그야말로 그들만의 진화를 거듭하여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은 많은 중대 오류와 자잘한 실수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흠정역에서 뜻이 올바로 전달되는 예
삼위일체에 관한 명확한 번역 :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것을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신들의 교리를 지지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There is one God'을 잘못 번역한 것인데,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게 그 말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한 하나님'은 '(세 분이 모여) 하나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마치 세 명이 모인 '한 가족'이 한 사람이 아니듯이 말이다. one을 1로만 받아들이면 이런 결과를 낳는다.
'영'에 관한 무속적 표현의 정정 : '하나님의 신' 또는 '여호와의 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등에서 쓰인 신(神 : god)이라는 용어도 '신내림' 등으로 쓰이듯 무속적인 개념의 번역이므로 적절치 않다. Spirit of God은 '하나님의 영'으로 해야 한다.
정확한 성별 표기로 오해를 없앰 : 성경에는 성별을 명확히 번역해 놓아야 신학적, 교리적 오해가 싹트지 않는다. 성경의 천사는 모두 남자로 man이다. 이것을 '사람'으로 번역하면 천주교와 뉴 에이지에서 말하는 아기천사와 여자천사 등을 모두 인정하게 된다. 또한 디모데전서 3장 1절의 감독(목사)직의 요건에 대한 말씀에 나오는 man도 '사람'이 아닌 '남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 뒤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뉴 에이지 역본들이 한 '아들'을 주셨다는 말씀을 한 '아이'로 바꾸기도 하는데 작은 차이 같으나 큰 변질이다.
천사의 소속 : 개역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주의 천사'와 타락한 루시퍼의 명령을 따르는 '마귀의 천사'를 구분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나 흠정역은 원문 그대로 표기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를 없앴다.
형통하게 하는 뇌물이 아니라 '선물' : 개역개정의 잠언에도 엉뚱한 번역이 많다. 그 일례로 잠언 17장 8절을 보면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뇌물을 이용하라는 것인가? 아무리 봐도 이상한 가르침이다. 동류라고 할 수 있는 NIV를 보면 분명히 bribe(뇌물, 미끼, 유혹물)을 쓰고 있다. 그러나 킹제임스 흠정역을 보면 "선물은 그것을 가진 자의 눈에 보석 같은즉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로 나온다.
영어 킹제임스도 bribe가 아닌 gift를 쓰고 있다. 이것은 NIV 번역자들의 특성인 자의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습관에 따라, 누군가에게 주어 일을 성사시키는 선물이므로 뇌물로 본 것이다. 개역개정은 이런 성경들을 참고로 하기 때문에 같은 과오를 저지른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으로 준 선물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이는 반드시 대가성의 뇌물이 아닐 수 있다.
열두 '영'은 열두 '군단'이다 : 개역개정판에는 예수님이 순순히 잡히실 때 제자 중 하나가 분노하여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는 경솔한 행동을 하자 꾸짖으시며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태복음 26장 53절)고 하셨다고 되어 있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성경 지식이 없어서인지 해설을 보기 전에는 '열두 영'의 영(營)이 그냥 영(靈)인 줄만 알았지, 로마 병영(兵營)의 군단 편제를 뜻하는 것인 줄 몰랐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니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말은 KJV에서 legion인데, '열두 군단'으로 번역해야 한다. 만일 나처럼 오해한다면 '열두 군단'과 '열두 영(靈)'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논할 때 큰 차이이다.
사탄의 말 바꾸기 수법, 흠정역으로만 알 수 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말 바꾸기를 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만 마귀는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또 그것을 먹으면 눈이 열리고, ('하나님과 같이'가 아닌)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속였다.
그 열매를 먹고 싶은 인간 이브의 욕심은 사탄의 질문에 들은 대로 답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라고 했다고 말을 바꾸어 전한다. 왜곡과 변질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사탄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교묘히 성경을 이용했다. 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며 그는 시편 91편 11~12절을 써 먹는다. 개역개정으로 마태복음과 시편을 비교해 보자.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장 6절, 사탄이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한 부분. 개역개정)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 91:11~12, 개역개정) 배열만 좀 다를뿐 같은 내용이다. 이번엔 흠정역으로 두 곳을 비교해 본다.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마태복음 4장 6절, 사탄이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한 부분. 흠정역)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편 91편 11~12절, 흠정역)
어디가 다른지 언더라인이 보이는가? 시편 91편을 살펴보면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의 날개 아래를 네 거처로 삼으면 이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다가 만난 모든 길에서 피하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귀는 여기에 한 마디를 살짝 끼워 넣었다. 바로 시편에 없는 말 '언제라도(any time)'이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든지 말든지 모든 길에 천사가 '언제라도' 너를 보호한다고 교묘히 바꾼 것이다.
이 부분은 KJV에는 명확히 차이가 드러나 있지만 가장 많은 변개와 삭제를 한 NIV나 NASB 의 두 영어성경을 찾아 보면 이 차이가 없다. 시편의 말을 마귀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옮기고 있다. 성경을 그대로 인용하는 '대언자(?) 마귀'라니.....!!
인간의 논리 전개를 위해 다양한 역본을 참조?
현대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이 여러 가지의 변개된 성경을 인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여러 성경의 번역들을 예시하면서 자신들의 설득력을 더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개탄스럽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인데, 여기저기 다양하게 번역된 예를 들어 부연설명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미국의 유명한 사역자 T의 책을 예로 들어 보자. T가 자기 메시지의 신빙성을 주장하기 위해 여러 역본들을 인용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말씀은 한 가지이고 사실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목회자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 한 구절로도 한 편의 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정황을 상상해 내는데 이것은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다음은 T의 책에서 옮긴 내용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에피소드에 관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앰플리파이드 성경에서는 다윗이 돌을 도시락 주머니에 넣었다고 말씀한다! 다윗은 싸우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소풍을 가는 중이었다. 골리앗은 "내가 네 도시락을 먹겠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정작 그는 다윗의 도시락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몰랐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에 맡겼고, 기적이 일어났다(어떤 면에서, 다윗은 '록앤롤'의 선구자(?)였다. 그가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자 거인이 넘어져 굴렀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인정한 대로 '특이한' 소설이다. 다윗은 도시락이 아닌 양치기의 자루에 물맷돌을 가져갔고, 골리앗은 다윗의 도시락을 본인이 먹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너(다윗)의 살을 날짐승과 들짐승에게 주겠다!"고 했다. 또한 다윗은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간 것도, 소풍을 가는 마음 자세로 임한 것도 사실무근이다.
그는 왜 앰플리파이드 성경을 인용했을까? 이것은 의역성경이다. 말하자면, 벌써 노인이 됐을 다니엘이 사자굴에 빠진 이야기를 아이들용이라 해서 어이없이 꼬마 소년으로 삽화를 그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성경이야기'에 가깝다.
그가 조크로 덧붙인 '록앤롤'에 관한 이야기도 뜬금없다. '바위(물맷돌)'와 '구르다'라는 뜻의 Rock and roll을 말한 것인데, 20세기 중반에 디제이 알란 프리드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 말은 퇴폐적이고 강렬한 음악을 이르는 말로 남성의 성기와 차의 바퀴를 뜻하는 것으로, 카섹스를 의미하는 비속어라고 한다.
자신이 의도한 결론이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여러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그것들을 주장과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골라 쓰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는 양심없는 과학자들이 잘 쓰는 수법으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이에 합치되지 않는 결과들은 모두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을 말씀에 비추어, 그리고 다른 성경적 정황이나 예표 등을 통해 유추해 내는 통찰력과 다른 내용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는 소설적인 전개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T는 계속 써내려 간다. 예수님께서 배로 가다라(거라사) 지방에 내리셨을 때, 부정한 영 들린 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와 경배했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를 지배하고 있던 2천 마리의 마귀들은 그의 찬양(경배)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에 예수님을 본 적도 없었지만 '무언가가 그를 주님께로 끌어당겼고', '필사적으로 주님을 찾았으며', '필시 1마일은 달렸을 것'이라고 전혀 성경에 없는 말들을 써 놓았다. 이런 상상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책의 페이지를 늘이거나 1년 내내 해야 하는 설교 시간을 늘이기 위함일까?
그는 부정한 영 들린 광인(狂人)이 2천의 마귀들로 꽉 차 있었음에도 찬양할 수 있었고, 마귀들도 한 사람의 찬양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찬양의 힘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광인이 와서 '경배하고 부르짖으며' 예수님께 자기들을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대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 마귀들의 대화로 보이며 2천의 더러운 영들이 굴복한 것은 광인의 찬양 때문이라기 보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명령'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 귀신들이 돼지 떼로 옮겨간 것도 예수님의 허락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전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이었다. 그분의 권한과 능력을 간과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물론 T를 포함한 유명한 사역자들의 가르침에는 훌륭한 부분도 있고 위대한 통찰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말씀을 멋대로 부풀리거나 편리한 대로 추측하여 연결시키면 안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있지도 않은 수만 년 전(?)의 말 뼈다귀나 원시인의 진화 체계를 맞추기 위해 엉뚱한 시대의 것을 끼워 넣거나 원숭이뼈를 깎고 색칠까지 하는 일처럼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아무리 위대한 사역자라도 말씀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한다. 이 책에 국내의 인기있는 저명한 사역자들이 극찬의 추천사를 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밖에도 릭 워렌 등 많은 이들이 여러 역본을 인용하며 자기 논리를 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경 하나로 이단 교리부터 모든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을 다루는 일, 두려움으로 임해야
지금의 성경이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기존 교단의 사람들이다. 더구나 더욱 개악된 새 성경을 기존 성경의 저작권 만료시점이 오기 전에 억지로 배포하여 의무 사용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들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기득권층이었던 사제들처럼 이젠 교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바른 성경에 대한 자기 소신이 있다 해도 이제와서 바꿀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목사가 천국 가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이래서 나오는 것 같다. 교단 조직이란 곧 밥줄이며 하나님보다 무서운 것이 되었다.
바로 이런 때 바른 소리를 할 수 없다면 진리에서 떠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로도 어느 정도 역사를 알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사실도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침략이 근대화에 도움을 주고 문호개방에 순기능을 했다는 주장이 황당한 것 아닌가. 지금의 성경도 모든 부분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성경은, 읽으면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듣는 통로가 돼야 한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철저히 말씀을 보존하고 전해오셨는지, 왜 그토록 작은 부분의 차이를 명확히 하라고 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끝에는
"이 대언의 말씀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거기 기록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고, 빼면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 고 했다. 계시록뿐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지켜져야 하고 누구라도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사탄을 본받는 짓이다.
결론적으로 기존 성경의 문제점은 약간의 물을 섞으면서 전체적으로 흐려지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소량의 독을 타 넣음으로써 습관적으로 마시는 동안은 모르지만 그 독, 즉 함정적인 메시지에 면역이 된다는 것이다.
글이 좀 길었죠? ^^
감사합니다.
2009-12-23 15:35:13 | 관리자
원본을 가져오다 보니 좀 보기 어렵습니다.
<런던타임즈 제10강> 아홉 번 째 글자 ‘복(福)’ 자를 보겠습니다.
備 (비) 也 (야) 。
‘福’은 무슨 뜻일까요? 복(福)은 '비야(備也)'라고 했습니다. 복이라는 것은 '갖추었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바로 '오복(五福)을 갖춘 것'이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복' 자는 하나님이 나오고(示) 첫 번째(一) 만든 사람(口)이 나오고 에덴동산(田)이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허신은 '부(富)' 자마저도 ‘복야(福也)’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의 개념, 돈이 많은 줄 알았더니 돈이 많은 것이 참된 복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907년 전의 허신 선생은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해 참된 복은 부(富)요, 부(富)는 곧 복(福)이라 하였으니, 이 ‘부(富)’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뜻하는 글자[宀]에 즉 하나님께서 위에서 아래로 통[丨]하셔서 천지를 덮으시고[冖] 창조하신 후에 한[一] 사람[口]을 에덴동산[田]에 두었다는 글과 똑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참된 부자는 재물의 많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어쩌면 허신은 당시 기독교가 중국에 전파되지도 않았는데 창세기 내용을 이렇게 한문으로 풀이하고 있었을까요?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고 허신은 고대인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허신은 이렇게 한자 한 자 한 자에 대한 풀이를 해 나간 끝에 설문해자라는 보물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가 신화와 사실이 혼합된 상태라면 우리의 역사는 과연 그들의 것과 동일 내지는 유사한가 아니면 전혀 별개의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단연 ‘김(金)씨’입니다. 그러나 김씨가 왜 김씨인가를 생각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김씨의 김은 곧 금(金)을 뜻하는 것으로, 金을 자신들의 성(姓)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금을 숭배한 집단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금관이나 금동관이 출토되는 곳이 옛 신라 지역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금을 자신들의 성씨로 삼은 집단은 특이하게도 신라의 지배층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원뿌리를 찾으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만주 북부에 존재했던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으로, 이들이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중앙아시아와 옛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으로, 이들이 바로 신라를 건국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연의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祖王)을 주몽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다시 말해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라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알에서 나온 아이이며, 이 난생의 아이가 여섯 부족 족장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된다는 특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대된 왕의 성은 박(朴)씨 입니다. 이것은 진한 12개국 가운데 경주 평야에 자리 잡은 사로국(斯盧國)의 군장이 박혁거세이며, 그가 진한연맹의 맹주에 오른 사실을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사로국이 점차로 이웃의 여러 소국들을 정복하면서 신라라는 초기 국가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신라는 진한연맹의 맹주이므로 신라인이 누구인지 알려면 먼저 진한인이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위서 동이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한은 마한 동쪽에 있다. 그 나라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진(秦)나라의 괴로운 부역을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이 한(韓)나라로 오자 마한은 동쪽 국경 지역의 땅을 베어서 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서로 부르기를 동무처럼 불렀으며, 진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다." 진한 사람들은 진나라에서 왔으므로 마한 사람들과 언어가 달랐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신라인들은 고구려와 백제인들과는 다른 계통을 가진 사람들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호남과 영남 지역의 억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진은 중국 서북부의 황하 상류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로, 주변 환경이 농업에 부적합 하였기에 유목이 생업이었던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경주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이 지역에는 토착 농경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과 진나라 출신의 유목민들이 뒤섞여 살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옛 고조선의 유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중국의 임금을 소개할 때, 황(皇)과 제(帝), 왕(王)과 군(君)이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역사책에는 임금은 같은 임금일지라도 서로 다른 격을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왕과 군은 제후국의 수준이었고, 황과 제는 천하를 호령하는 거국적인 인물을 지칭했습니다. 제후 중에서도 영토가 제법 규모가 있고 문화를 잘 소유한 그런 제후는 왕이라고 칭하였고, 농토가 좁고 군사력이 약한 제후는 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시조인 단군을 군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방금 말씀드린 중국 임금 호칭의 격을 상기해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조상을 군(君)으로 격하시키지는 않았나 자문해볼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난 사학자 한분은 우리 스스로 단군이라고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단제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단군신화가 갖는 의미를 우리 2세들에게 전할 때 하나의 신화 정도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의 찬란한 고대 역사는 한낱 이야기 거리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기에서 서기로 바꿀 때 2333년을 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단군이 단 한사람이라면 어떻게 한사람이 2333년이나 살았다는 말이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세종대왕 훈민정음 서문에 옛 전자 모양을 모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즉,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훈민정음의 모양을 옛 고전(古篆)의 모양에서 본떴다 하는 대목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전자(篆字)모양이 한자의 서체 중에 진시황제의 명을 받은 이사가 통일한 바로 그 전서체였다기 보다는 『환단고기1)』에 실린 가림토의 생김새는 한글 특히 훈민정음 창제 대 판본체의 한글과 비슷하기 때문에 ‘고전을 모방하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훈민정음은 가림토를 본 떠 만든 것이라고 풀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림토 문자2)는 단군 중에서도 세 번째 단군이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단군을 단제로 승격함과 동시에 단제 개념이 황제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개념으로 재정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시황제가 있었고 2, 3세 황제가 있었듯이, 우리도 1대 단제가 있었고, 2, 3대 단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닌 엄연히 살아있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성경이 만든 한자와 우리의 건국신화를 결부 짓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민족은 조상 대대로 한 영토 속에서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동학(東學)이라고 하는 학문운동을 펼쳐 인내천 사상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내천이 무슨 뜻입니까. 사람 인(人)자, 이에 내(乃)자, 하늘 천(天)자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하는 사상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창세기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처럼 지어졌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중국 일련의 고대사를 비교해 볼 때 동양의 문화는 둘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서 동양의 문화는 꽃피워졌을 것이고, 한자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에도 그들은 둘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를 저는 ‘복 복(福)’ 자에서 다시 보거니와, ‘福’은 비(備)하다, 그리고 ‘현자지제야(賢者之祭也)’ 라고 하였습니다. 즉, ‘어진 사람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이 비(備)라고 하는 것은 ‘백순지명야(百順之名也)’라, 즉 ‘모든 순리대로 이루어진 것의 이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복 복(福)’ 자는 단순히 로또복권에서 이루어지는 재물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루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 는 말씀이 축약된 글자로 풀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示)께서 밭(田)을 주시되 한(一) 사람(口)을 창조하여 그에게 전권을 주셨다. 라는 복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시간에 ‘볼 시(示)’ 자는 ‘하나님 시(示’) 자요, ‘귀신 신(神)’ 자는 ‘하나님 신(神)’ 자로 바꿔 읽어야만 되는 까닭을 창세기의 말씀과 비교하면서 설명드렸습니다.
1) 환단고기(桓檀古記) 또는 한단고기는 1979년 출간된 한국의 고대역사서이며, 이른바 동이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위대함을 서술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진위 논란이 있으나, 남·북한 학계 모두 그 내용이 왜곡된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2)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는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기원전 22세기에 고조선에서 만들어졌다는 문자이다.《환단고기》 중 〈단군세기〉에 따르면 3세 단군인 가륵 단군 재위 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역사학계와 언어학계에서는 가림토가 다른 문헌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편리한 문자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를 통틀어 가림토가 쓰였던 기록이 없고, 가림토가 씌여지거나 새겨진 유적 또한 없으며, 진위 논란이 있는 《환단고기》에 처음 등장한다는 이유로 가림토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다. 1994년 12월 문화일보는 '잃어버린 고대문자' 가림토 문자 비석이 만주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높이 2m, 너비 32cm의 탁본 한 점을 공개했다. 이는 사회학자였던 이상백(서울대학교)이 학생 시절이었던 1930년대에 만주 지역에서 직접 탁본한 것인데 정도화(진주 경상대학교)가 보관하다가 발표한 것이다.
성경이 만든 한자 제11강 <있을 재(在)>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박재성
<런던타임즈 제11강> 열 번 째 글자 ‘재(在)’ 자를 보겠습니다.
存 (존) 也 (야) 。
여기에서 또 하나의 글자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 글자는 있을 재(在)자입니다. 이 있을 재(在)자의 전서체를 보면 와 같은데, 사람을 뜻하는 자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하여 하와를 만들었으니 사람 인(人)자가 되었다고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이 글자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땅 위에 두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에 대하여 허신은 ‘있을 재(在)’ 자는 ‘존야(存也)’라고 하였습니다. 있다는 뜻입니다. ‘있을 존(存)’ 자 역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남자(子)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정확합니다. 오죽하면 단옥재도 이 在와 存자의 본뜻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 나머지 이 부분을 다음의 해석을 곁들이고 있을까요? ‘금인(今人) 어재존자(於在存字) 개부득기본의(皆不得其本義)’라. 이것을 풀이해보면 ‘지금 사람이, 있을 재(在) 자와 있을 존(存) 자에 있어서 모두 그 본뜻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본뜻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래 있을 재(在) 자와 있을 존(存)자는 창세기 2장 7절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원래 ‘있을 재(在)’ 자는 ‘휼문야(恤問也)’ 라고 하였습니다. ‘恤’자는 불쌍한 사람을 찾아 구원하는 구휼할 휼(恤) 자이고, ‘問’ 자는 ‘물을 문(問)’ 자입니다. 또는 ‘찾을 문(問)’ 자입니다. 방문하다 할 때는 찾을 문(問) 자로 쓰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 숨어버린 아담과 하와를 너 어디 있느냐 하고 찾아 물었습니다. 허신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있을 재(在)’나 ‘있을 존(存)’은 ‘있다, 없다’의 개념이 아닙니다. 놀라운 창세기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청나라 중기의 고문학자인 단옥재도 허신으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이제야 그 원뜻을 찾아내어서 밝힌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재(在)와 존(存) 자에 있어서 모두 다 그 본뜻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어서 에덴동산에 있게 한 사실을 이 있을 재(在) 자가 정확히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잊은 채 한자를 전수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 잃어버린 한자를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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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13:23:45 | 허광무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교회의 강대상에서 “죄”와 “회개” 와 “고난” 과 “심판” 그리고 “자기부인” 과 ‘십자가의 삶’ 같은 주제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들이 ‘만사형통’, 질병치유, 신비한 체험 같은 것들입니다. 과학적 논리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현상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넘어갑니다.
물질주의, 실용주의, 역사 낙관주의, 성공주의, 소유 지향성, 맘모니즘에 젖은 현대인들은 만사형통의 당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연신 주옵소서를 외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담의 자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리인지를 깨닫고 하나인의 은혜의 장중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보겠다는 타락한 인간들의 수많은 시도들과 열매들이 참으로 부질없음을 이 역사 속에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 할 수 있도록 실수와 실패와 더러운 범죄도 때로 허락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절대 영원한 왕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질병도 허락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참 행복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옛 하늘과 옛 땅이라는 물질과 공간에 정나미가 떨어지게도 만드십니다.
그러한 사건과 상황과 정황들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부인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자기가 부인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자기를 왕처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다른 이들을 밟아왔던 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다 가신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의 삶을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자신의 손해로 남의 유익을 챙기는 삶이 과연 만사형통이요 일사천리로 나타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치성을 드려 강청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기독교라면 그 탐욕스런 기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삶을 달게 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날 수가 있을까요?
남가주 서머나교회 담임 김성수목사 책 뒷면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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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10:38:17 | 허광무
다른 종교와도 다른 점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이게 조용기 목사의 인터뷰 기사의 소제목입니다.
이런 사람이 목사라고 하며 사람을 우롱하는데 왜 모두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교회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종교와 대화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른 점을 인정하고 대화는 할 수 있어야지요. '기독교 아니니까 마귀'라고 해선 안 됩니다."
이게 과연 정신 있는 목사의 말일까요?
사도 바울이 타종교하고 대화하자고 했을까요?
성경은 이런 사람을 사탄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이제 여건이 무르 익으니까 마귀의 사자들이 슬슬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목사가 코미디언 노릇을 하면서 돈을 긁어 모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려고 장 아무개 목사처럼 코미디를 했을까요?
한국 교회를 망쳐 놓은 대표적인 목사들 가운데 하나가 김기동 목사입니다.
그의 샤머니즘으로 인해 적어도 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혼동 속에서 지내고 있고
그에게 베뢰아 교육을 받은 수많은 목사들이 양태론 같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며
그의 이단 사상을 파급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데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진리가 와도 마귀의 가르침이 가로막아 거절합니다.
경배와 찬양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용산의 하용조 목사도 문제 덩어리입니다.
교회는 음악이 무너지면서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록 음악과 댄스 부대가 동원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끝장이 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신약 교회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목사들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에게 혼을 빼앗깁니다.
정신 차리고 삽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20/2009122000700.html?srchCol=news&srchUrl=news3
조용기 목사 동국대 강연내용 전문 http://www.aspire7.net/reference/cho.ht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5:2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21 19:56:29 | 관리자
마27:44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을 욕하더라
눅23:40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때 강도 두 명도 함께 못박힌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저도 강도 하나는 구원받고 나머지 하나는 못받은것으로 알고있는데
마태복음 구절에는 '강도들'이 같은 말로 예수님을 욕했다고 나와있어서
언뜻 내용이 모순되게 보이는것 같아서요..;;
물론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만.. 제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되서;;
이곳에서 항상 많은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58: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21 19:20:51 | 정지현
교회사 22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2009-12-18 13:58:53 | 관리자
교회사 21 정수영 목사님 목사님이 저술한 새교회사 1과 2를 중심으로 신약 교회의 발전과 타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참된 신약 교회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2009-12-18 13:57:53 | 관리자
성경을 공부할 때 성경의 연대기를 머릿속에 넣고 공부하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성경은 실제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첨부하는 연대기를 인쇄해서 성경 안에 넣고 다니면 의문이 생기면 참조하기 바랍니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12-18 12:23:50 | 관리자
성경강해(요한계시록, 창세기) 동영상으로 잘 경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세기 강해 26과를 공부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 하고는 좀 상이해서 그런데요....
(창9:28-29)을 설명하면서 노아 사망후 2년 뒤에 아브라함이 출생했다고 하는데
제가 계산한바로는 40년간을 같이 생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노아할아버지께 영향을 많은 영향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3:0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17 16:26:17 | 황준호
일상생활에서 별(별을 달다)..이라는 말은 크게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 쓰인다.한국어보다는 영어로 통용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연예인· 유명인사가 돼서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그리고 군대에서 장군이 되는 것.이에 덧붙여 ‘별이 주렁주렁한 역전의 용사’ 이럴 때는, 감방 갔다 오는 것도 별에다 비유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군대 용어 문맥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어려운 일을 일컫는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군대에서 살인적으로 되기 어렵다는, 가장 높은 장성 계급의 아이콘도 별 모양이다.병장 할 때는 단순히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어른 長이지만, 소장, 중장 같은 단어는 한자가 다르다. 將이다.
한국군에 장성, 즉 장군 계급은 원스타 준장부터 시작해 포스타(사성) 대장까지 네 개가 존재한다. 오성인 원수 계급은 국군의 규모 문제도 있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 명예 원수 추대는 성사됐나 무산됐나 모르겠다 -_-) 우리나라의 은인이라는 맥아더 장군은 잘 알다시피 계급이 원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징병제 하에서 그렇게도 인원이 많다는 육군조차 5~6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니 백만대군이 되려고 해도 멀었다.
부사관이나 장교 같은 간부라고 해도 겨우 하사-중사, 소위-중위 제대는 병특이나 별 차이 없는 일시직에 가까우며, 상사(부사관)라든가 최소 대위(장교) 정도는 돼야 처자식까지 군인 월급으로 먹여 살리는 장기 복무 직업 군인에 가깝다.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겠지만 군대는 정말로 사람이 늘 끊임없이 흐르는 집단이다. 나이가 찰수록 점점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 진급을 해야만 하며, 지정된 기간 안에 진급을 못 하면 제대하고 나가야 한다.
다이아나 대나무꽃(흔히 무궁화라고 하는)이 하나씩 느는 것은 병사의 작대기가 느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병과 직책으로 쳤을 때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에 이어 연대장까지 가면 대령 계급인데, 여기까지만 해도 무수히 많은 탈락자들은 마치 나이 때문에 은퇴한 운동 선수들처럼 군대를 이미 떠난 상태이다. (코치가 되는 것도 정말 하늘의 별 따기만치 힘들다) 사실, 장군이 아닌 대령 예편만 해도 이미 연금도 나오고 사회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지위에 와 있다.
그리고 이 대령이 진급해서 장군인 준장이 된다. (맛대령이 진급해서 맛스타... 라는 삼류 쪼크가 생각나네 ㅜ.ㅜ)이런 사람들은 군 생활 경력은 이미 20여 년을 넘겨 있다. 몇 년 전의 어느 통계에 따르면, 준장 진급 경쟁률은 육사 출신의 경우 10몇 대 1, 그리고 여타 학군 출신의 경우 무려 50~60몇 대 1이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육해공을 통틀어서 장군 자체가 몇백 명--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 나지만 500은 절대 안 넘음--밖에 안 되니 얼마나 좁은 자리이겠는가? 이 정도로 희소하니 스타인 것이다.
준장으로 진급하는 사람에게는 대위-소령 내지 중령-대령 진급과는 비교가 안 되는 넘사벽 별세계가 펼쳐진다. “장군의 세계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으며, 고급 유니폼, 장군용 권총, 고급 승용차(에쿠스던가?)가 지급된다. 출근할 때는 승용차에다 번호판을 가리고 자기 계급을 나타내는 성판을 달 수 있다. 정말 뽀대 나지 않는가? 예비군 향방작계 훈련 때 안보 강연을 하던 사람이 육사 출신으로 준장 예편한 사람이었는데.. 대단하다. ^^;;
계룡시에 있는 육본처럼 별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는 준장이 하도 많아서 오히려 거기서 초소 근무나 하는 이등병이 더 희귀하고 ‘이등별’이라고 불린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장군들끼리는 군기가 이등병-병장처럼 존재하나 모르겠다.
소장인 투스타는 잘 알다시피 사단장 직책으로, 말 한마디만 하면 개인 권한으로 병사를 마음대로 휴가를 주거나 영창에 보낼 수도 있다. 이미 수천에서 만 명이 넘는 병사가 이 사람 한 명 관할이다. 박정희가 육군에서 이 계급이었으며, 그 권한은 그 당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삼성장군인 중장은 국군 전체를 통틀어 버스 한 대에 다 타는 인원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군단장 직책이 되는데, 군단장이 병사에게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오히려 사단장보다 못하다. 그런 곳까지 간섭하기에는 계급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사관학교 교장이 중장이며, 부대를 통솔하는 중장은 승용차도 잘 타지 않고 보통 헬기를 타고 날아다닌다고 한다. 일반 병사들은 군 복무 기간 내내 쓰리스타 이상급은 얼굴 볼 일도 사실상 없다.
사성장군은 딱 8명인가 9명 있다. 해· 공군에는 참모 총장이 각각 1명씩으로 유일하고 나머지는 육군의 지역별 무슨 사령관 내지 참모 총장이다.
스바르탄 화백의 <060 특수부대> 만화에서 구라-_- 내지 현실성이 없는 설정을 지적하자면 여자 사병을 비롯해 여럿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별에 대한 왜곡 내지 과장이 참 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쿠스 몰고 다니면 될 투스타 아저씨가 웬 시내버스에나 타서, 휴가 나온 사병의 경례를 받는단 말인가? 남편이 대위인데 아내가 준장인 것도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냥 순전히 재미로 웃자고 그리는 만화인 것이다. ^^
‘성경에 나오는 로마 군인 백부장은 중대장, 대위 뻘 되는 계급의 군인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사실 군인이라는 게 조국을 지키고 국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이다 보니 나라에서는 응당 군인에게 최고의 예우를 보장해 줘야 한다. 식민지를 거느리는 강대국의 군인이 된다는 건 권력을 등에 업은 출세 행로 중 하나였다. (과거 로마군, 20세기 일본군 등..-_-)
군수 산업만 해도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 망하는 철밥통이다. 그러나 의사나 법조인과 마찬가지로, 군인 역시 돈보다는 정말 명예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이든 군 복무는 애국심과 충성을 보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해당 국가의 시민권 따는 것에도 엄청난 특혜를 준다. 축구야 유능한 외국인 코치를 영입도 하지만, 군대가 민영화-_-한다거나 능력이 특출난 외국인 장군을 참모진에 영입한다는 얘기는 절대 없다. ㅋㅋ 차라리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졸병은 용병을 수입해서 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관학교를 등록금이 없어서 못 가는 나라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군인이 그런 힘과 특권을 남용해서 정치에 끼어들고, 나라 바깥을 지키는 게 아니라 자꾸 나라 안에서 간섭을 하려 들면 사정이 곤란해진다. 정치 기강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못한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다.
성경에서는 이스보셋과 아브넬 사이가 그러했고(삼하 3:11), 나중에 다윗 왕과 요압 장군 사이의 관계도 그러했다. 요압은 일면 유능한 군인으로서 다윗을 도운 부하였고 건국 공신이었다. 하지만 다윗의 명령을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아서 여러 번 항명도 하고, 왕이 죽이지 말라고 한 사람까지 여럿 죽였다. 나라 지키는 데 능력이 저만한 인물이 없으니 짜르지는 못하겠고... 다윗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기에, 결국 아들 솔로몬에게 요압을 축출하라는 지시를 유언으로 남길 정도였다.
(구약 성경에서 어정쩡한 아군 노선을 간 대표적인 인물로 예후와 요압이 본인의 기억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생생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가 저러했을진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우리나라의 정부 수립 초기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이승만의 부당한 명령에 군인의 양심을 걸고 항명했던 이종찬 참모총장이 괜히 존경 받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사욕을 이루기 위해 제멋대로 계엄을 선포하여 군대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반대로 군인들도 장군끼리 뭉쳐서 하극상으로 정권을 뒤집어엎는 게 그때는 가능했다. 군대 조직에 대해서 좀 알고 나니까 역사가 좀더 실감이 간다.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이자 완전 미국물 별종인 이승만을 제외하면, 직업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이 정권다운 정권을 잡은 것은 무려 김영삼이 처음이다. 아들 세대가 아닌 본인이 사병 복무만 마치고 대통령이 된 사례는 노무현이 최초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도 군대 내지 군인이 좋은 이미지로 남아 갔으면 좋겠다. 군을 천대하는 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애국심이 결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1:02:3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17 13:48:32 | 김용묵
요즘 성도들이 새로 오고 늘면서 우리의 믿음과 약속이라는 글을 올릴 필요가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사랑침례교회)는 자유로운 곳이지만 무질서한 곳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기술하였고 또 몇 가지를 서로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새로 오시는 분들과 기존의 회원들이 시간이 있을 때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책자로 된 것도 비치하겠습니다.
의문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12-17 12:24:00 | 관리자
요즘 천사와 UFO에 관한 책을 보던중 아래와 같은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펌 http://www.systemclub.co.kr/
(성경 연구를 통해 UFO는 마귀적 존재로서 마지막 때의 징조 및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야기)
오늘 올리는 영상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서학자중 한 사람인 척 미슬러의 인터뷰로서 UFO 및 외계인과 성경과의 관계, 네피림과 노아의 방주를 통한 인류 멸절 관계 등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용에 대해 성경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UFO 또는 외계인과 관련된 다양한 혼란을 정리해 주는 자료로서 새로운 시각의 정보에 대한 참고자료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4-X7usZs2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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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09:20:17 | 허광무
성경이 만든 한자 제 9강-신(神)
‘천신인출 만물자야(天神 引出萬物者也)’ -하늘의 신이란 만물을 이끌어 낸 자’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여덟 번 째 글자 ‘신(神)’ 자를 보겠습니다.앞서 말씀드렸듯이, 보일 시(示)가 ‘하나님 시(示)’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이번에 배우게 될 ‘神’자를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이제껏 ‘神’자를 ‘귀신 신(神)’ 자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과연 이 神이 귀신일까요?
그리고 왼쪽에 위치한 부수자 示가 ‘귀신을 섬긴다’는 뜻의 시(示) 자일까요?
허신은 ‘천신인출 만물자야(天神 引出萬物者也)’ 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신이란 만물을 이끌어 낸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하고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神) 자 역시 ‘귀신 신(神)’자로 가르쳐왔던 분들께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하나님 신(神)’ 자로 바꿔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출간된 한문본 성경책을 봤더니 창세기 1장 1절을 “기초신창조천지(起初神創造天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신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하나님의 자리에 신(神) 자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 신(神)이라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보일 시(示) 자야말로 바로 ‘하나님’을 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맨 처음 에덴동산에 한 사람을 만들어 축복하셨다는 축복 복(福)자의 변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양을 받친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라는 상(祥) 자의 변도 됩니다.
이와 같이 ‘神’과 ‘示’ 자는 귀신이나 보인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을 뜻하는 글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示’ 자를 풀이하면서 유독 아래의 小 자를 설문에서 ‘삼(三)’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까닭은 ‘해와 달과 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만물을 표현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상량문(上樑文)을 써서 올렸습니다.
그 상량문에는 龍 자와 龜 자를 서로 마주보게 썼습니다.
위에는 ‘용 용(龍)’ 자를 거꾸로 쓰고 아래에는 ‘거북 귀(龜)’ 자를 썼습니다. 이것은 용이나 거북은 물에서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집에 화제를 예방하자는 의미였습니다. 결코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조의 지혜로움을 이 상량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용 용(龍)자와 거북 귀(龜) 자 사이에 쓰인 문구가 창세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억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구는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즉 하늘의 해·달·별님은 감응하시어,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 즉 땅 위에 오복을 갖추어 내려주시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말한 ‘삼광(三光)’은 ‘해와 달과 별’을 의미합니다. 정확히 ‘하나님 시(示)’ 자와 들어맞습니다. 오복(五福)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의미합니다.
壽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랄 겁니다. 그래서 五福의 으뜸입니다. 그 다음엔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인들 마음이 불편하거나 사고가 끊임이 없다면 가난하더라도 편히 사는 게 낫다는 명심보감의 글귀처럼 편안하게 사는 것이 두 번 번째의 복입니다.
그 다음엔 강녕(康寧)입니다. ‘康’은 건강(健康)이란 단어에서 보듯 몸이 편안함이요, ‘寧’이란 안녕(安寧)이란 말처럼 마음이 편안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유호덕(攸好德)입니다. 오래 살고 부자로 살며 편안하게 살아간다 하여도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을 받는 집안이라면 결코 잘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덕을 갖추되 잠시가 아니고 오래도록 갖추라 함이 인간의 네 번째 복입니다. 마지막으로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임종(臨終)을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하거나 병사(病死)나 객사(客死)를 한다면 그 삶은 결코 잘 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오복(五福)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대로 마치는 것을 다섯 번째에 두었습니다.
이 오복 속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린 삼광(三光)에 땅위에 사는 인간의 오복(五福)이 갖추어진다는 것을 볼 때, 이 ‘하나님 시(示)’ 자가 대단히 창조적이고 과학적이며 성경과 부합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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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09:32:01 | 허광무
공지한 대로 우리는 지금 연말연시 도서 기 세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분이 연락을 해서 책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일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정상 가격으로 우리 성경을 3만원 이상 사는 경우"에만 나머지 책들이 할인됩니다.
그러므로 "정상 가격으로 우리 성경을 3만원 이상 사지 않고 책만 할인 받으려는 경우"는 책들을 할인해서 드리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9-12-14 16:57:40 | 관리자
경상북도 김천시에 살고있는 25살 남자입니다. 11월까지 직장을 다니다가 지금은 집에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저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초등학교 4학년때 옆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천주교 성당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는 교회 다니시는 고모의 소개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교회(장로교)로 옮겼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기독교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 교회를 떠났다가 군대에서 음모론 관련(그림자 정부 등)책을 보고 군제대후 교회를 띄엄띄엄 다니다가 몇달전부터 어느 기도원 집사님으로부터 교회를 소개받아 다니고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이 진리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을 따르자니 믿음생활이 헛된것이 되어버리고 성경의 창조론을 따르자니 과학적인 사실과 배치되는것 같아서 참 많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아야 진리를 따라서 살아갈텐데 창조론이 진리인지 진화론이 진리인지 도무지 확신할수가 없으니 참 많이도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교회를 조용히 떠났고요.
그렇게 교회를 떠난후 어떻게 살아야 세상사람들에게 저 사람 참 잘살았다고 칭찬받을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검사의 권력과 자원봉사의 명예도 좋지만 돈이 있으면 못하는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니까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이 기술력있는 회사를 차려서 거대 다국적기업으로 성장시키는게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는 일로 보였습니다. 세계적인 체제가 공산주의로 바뀌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알짜 기업을 많이 만들어서 국가에 세금도 많이 내고 수출도 많이해서 국가경제 국민경제가 부유해지는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특히 공대로 가서 대학원 석사박사 과정 밟아서 옛날 에디슨이나 테슬라 같은 사람이 그랬던것 같이 기술집약형의 회사를 만들어서 키우는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 이리유카바 최라는 사람이 쓴 '그림자 정부'라는 책 시리즈를 봤었는데 그 책을 보고 놀란것이,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놀란것은 미국의 금융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산하 연방준비은행이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축통화 달러의 발행량을 조절하고 세계금융의 룰을 만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인 헌법재판관이라고 할수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이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월스트리트와 런던금융가의 손아귀에 있다는것은 참 뭐랄까.. 제가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워왔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견고한 신뢰와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이 그렇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석유중심의 경제체제가 유지되는 이유, 미국이 전쟁을 계속 일으키는 이유, imf사태가 올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 역사 발전의 아름다운 결과물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소수 기득권층의 부귀영화를 위한 짜고치는 고스톱판의 추악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과거 줄기세포로 유명했던 황우석 박사의 경우에도 한국의 국부가 커지는것을 원치않는 이런 세력들(음모론에서는 프리메이슨이라고 합니다만)에게 당한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의 명예도, 권력도, 돈도 진리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진리인가.. 근데 그림자정부 책에도 공교롭게 성경과 유대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은 유대인이며 세상의 온갖 나쁜짓은 유대인의 조종을 받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이 하고있다는 그런 말들.. 그래서 성경과 유대인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가지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성경이 진리인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직 믿음에 100% 확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론 아니면 창조론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있는 이 세상을 규율하는 절대법칙은 하나밖에 없기때문에.. 저는 제가 나름대로 얻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해본 결과 성경이 진리일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성경을 열심히 묵상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로마서 말씀처럼..
1년 정도 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늦게나마 인사드립니다. 성경을 만화책처럼 곁에두고 읽기좋아하시는 신실하신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52: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13 14:02:34 | 정지현
본인은 어렸을 때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를 즐겨 봤었다. 얘네들은 특히 중간중간 뮤지컬처럼, 영화로 치면 Sound of Music처럼 극중에 노래까지 나오는지라 어렸을 때 정말 동심을 자극했으며 신기함을 선사했다.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처럼 너무 클래식한 거 말고, 90년대에 나온 장편 영화(feature film) 말이다.
가장 먼저 라이온 킹!
본인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4년은 눈과 귀를 사로잡는 명작 미디어가 유난히도 많이 등장했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납량특집 M>, 그리고 마로니에의 불멸의 명곡 <칵테일 사랑>. 중국의 액션 배우 이 연걸의 <정무문>, <보디가드>도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라이온 킹>도 94년 여름에 개봉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흥행 성적은? 더 말이 필요 없다.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고, 전세계에서 극장 수입에 캐릭터 로열티 등으로 제작비의 20몇 배를 벌었다. 디즈니의 이런 성공 사례는, 문화 컨텐츠 하나 잘 만들면 자동차, 반도체 만드는 것보다 소자본으로도 더 대박 낼 수 있다는 예화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이 라이온 킹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건 구성이 셰익스피어의 <햄릿>하고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건 <인어 공주>나 <알라딘> 같은 작품과는 달리, 원전이 따로 없이 디즈니가 완전히 새로운 아프리카라는 배경으로 사자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사자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그려내기 위해 직접 아프리카로 답사 여행까지 갔다고 한다.
stampede라고 불리는 들소 떼 돌진 씬은 극중에서 가장 무섭고, 드디어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가 죽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것도 당대로서는 꽤 최신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사람 손으로 그 수백, 수천 마리의 들소 떼를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사실, 그 전에 Be Prepared 씬에서 하이에나 떼들이 척척 행진하는 장면은 저것보다도 더 노골적인 반복 패턴이니, 이 역시 CG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본다.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에서, 놀랍게도 북한의 IT 업체로부터 일부 외주를 받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stampede 씬을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라이온 킹의 credit roll을 보면 한두 명 한국인 이름이 있었는데,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그게 헷갈릴 지경이다.
이런 비주얼뿐만이 아니라 라이온 킹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키는 것은 역시 음악!
OST라 할 수 있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뿐만이 아니라, 끝날 때 배경음악에 정말 홀딱 반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 이보다 더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를 선사하는 음악과 함께 끝나는 건 접하지 못했다. 어느 지점을 말하냐 하면, 삼촌 스카가 제거된 후, 심바가 Pride Rock을 오르고 구름 속에서 아버지 무파사가 “Remember!” 이렇게 말한다. 심바를 비롯한 사자들은 감격에 북받쳐오른 나머지 포효를 하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엔딩 음악 말이다. 정말 한국인의 정서에다 비유하자면.. 35년간의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되던 그런 느낌이다. 어떤 영감을 받아서 이런 음악을 작곡해 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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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얘기가 좀 길었고,
음악으로 치자면, 이듬해인 1995년에 발표된 <포카혼타스>도 훌륭했다.
이건 내가 킹 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후 역사적 의미가 200% 이상으로 뛰었다. 시간(1607년)과 공간(영국) 배경이 완전 그 제임스 1세 시절이기 때문이다! 왈츠 풍인 <금 캐러 가세>-_-;;; 그리고 <Savages>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If I Never Knew You도 무척 훌륭한 노래이다. 비록 Colors of the Wind에 밀려서 정식 OST로는 채택이 안 되고 극중에도 삽입이 못 됐지만 OST급 곡으로 손색이 없다.
<금 캐러 가세>의 노래 가사 중에는
My dear friend king Jimmy will probably build me shrine.. (노다지만 잔뜩 캐 가고 나면, 우린 떼부자가 되고 귀여운 우리 젬쑤 왕은 날 기리는 기념관도 만들어 줄 거야!)
이런 말이 있다. 번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왕을 아주 만만하고 애교· 익살스럽게 일컬은 뉘앙스이다.
그러니... 젬쑤 정도는 돼야 그 제임스 1세 폐하라는 걸 알 수가 있는데 저걸 자막이 다 ‘지미’라고 적어 놓으면, 그게 제임스 왕을 기리키는 걸 알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에는 애칭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실제로 어렸을 때 혼동하기도 했었고... 외국 동화를 번역하면서도 이런 초보적인 실수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이 외에 포카혼타스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 국인 존 스미스의 성우가 멜 깁슨이라는 것. 굵직하고 안정감을 주는 좋은 목소리이다. 이 사람은 We Were Soldiers에도 나오고, 나중에 2004년엔 사비까지 털어서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아주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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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미녀와 야수> 얘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앞의 포카혼타스와 <미.야.>는 둘 다 벽화로 시작해서 벽화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 Beast는 원래 짐승라는 아주 우악스러운 단어인데-_- 누가 어째 ‘야수’라고 무척 서정적인 용어를 잘 만들었다.
서양식 미의 기준에 세뇌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역대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의 여러 여자 주인공 중에서 역시 <미.야.>의 주인공인 벨이 제일 예쁘다. 포카혼타스, 인어 공주, 알라딘의 자스민, 뮬란 등하고는 상대도 안 된다. ㅋㅋ 괜히 Beauty가 아니다.
극중에 미녀와 야수가 무도회장에서 같이 춤출 때 궁궐 배경이 화려한 CG로 3차원으로 잠시 비춰진다. 그리고 얘도.. 엔딩 음악이 라이온 킹 만하지는 못해도 짱이다. 마법이 풀리면서 갑자기 음악 분위기가 확 바뀐다. “Belle, it's me!” ... “It is you!” (벨, 나예요, 나! .... 야수 씨군요! ㅜ.ㅜ)사이의 은은한 음악도...;; 음악이란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진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교리-_-적으로는...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크리스천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는 그 모습이 연상된다.
예쁜 주인공의 예쁜 목소리는 누가 맡았을까? 뮤지컬이 포함된 만화영화의 경우, 같은 주인공이라도 일반 목소리 성우와 노래 성우가 따로 있는 게 보통이다. Credit roll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미.야.>의 벨 목소리는 ‘페이그 오하라’라고 하는 1956년생의 여자 성우 겸 가수가 대사와 노래를 모두 담당했다. 사실 이게 제일 이상적인 경우일 것이다.
<미.야.> 정도 되면 참 동심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각색한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인어 공주, 알라딘, 미.야 등 여러 작품 제작에 공을 세우고 월트 디즈니 명예의 전당에 이름까지 오른 한 유명한 음악가는 제작 도중에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니 이 또한 참 역설적인 일이다. 이 사람의 명복을 빌며 우리는 그의 업적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추모 문구가 <미.야.> 다 끝나고 Credit roll까지 올라가고 나서 잠시 뜬다.
난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아무리 만화영화가 현란한 CG 비주얼로 승부해도, 내 기억에 지금까지 뼛속까지 남아 있는 건 역시 감동적인 음악이 남아 있는 것들이다. 그 근성과 광기가 나중에 주찬양 선교단으로 쏠렸고, 더 나중에는 철도(철도 음악-_-)로 폭발한 것이다.
음악은 성경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수단인 반면, 한편으로 사탄 마귀란 놈도 타락하기 전에 음악의 달인이었고 악기 기술자의 원조가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2차, 3차 산업을 최초로 만들어 낸 카인의 후예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게 정말 의미심장하다.
이런 안목이 조금만 있으면, 음악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게 된다. 가사와는 완전히 별개로 음악은 그 자체가 이미 언어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음악이 사람을 어떻게 뒤흔들고 바꿔 놓을 수 있는지 궁금하면 나를 벤치마킹하면 된다. ㅋㅋ 그러니 교회에서 찬양의 수단으로 수용하는 음악도 그 범위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알고 있다.
끝으로, 월트 디즈니.. 참 대단하다. 그 옛날에 만화만으로 애니메이션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장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고 실제로 이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 사람도 젊었을 적 인생은 엄청 힘들고 불우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후세에 잊히지 않을 이름을 남기고 간 셈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49:4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12 23:24:01 | 김용묵
[킹흠정 엡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그 일에 깨어 있고 Praying always with all prayer and supplication in the Spirit, and watching thereunto with all perseverance and supplication for all saints;
[킹흠정 유1:20]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 But ye, beloved, building up yourselves on your most holy faith, praying in the Holy Ghost,
[킹흠정 고전14:15]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What is it then? I will pray with the spirit, and I will pray with the understanding also: I will sing with the spirit, and I will sing with the understanding also.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책마다 나타내는 바가 각양각색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는 기도 등...
아니면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일까요?
그런데 '아! 바로 그거야' 하고 느낌이 오는 답은 잘 없었습니다. 항상 조금은 아쉬운 듯...
함께 나누어 주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49:4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11 19:43:24 | 박준화
http://youtu.be/uf-6MFYxxuM
(*) 정수영 목사님의 새 교회사 1, 2를 스캔해서 자료실의 문서자료에 올렸습니다. 다운받기 바랍니다. 귀중한 책을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009-12-11 19:27:26 | 관리자
http://youtu.be/baEnf-s1rJ4
(*) 정수영 목사님의 새 교회사 1, 2를 스캔해서 자료실의 문서자료에 올렸습니다. 다운받기 바랍니다. 귀중한 책을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009-12-11 19:26:49 | 관리자
어제 미국에 계신 한 자매님이 저와 제 아내를 위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보여 주는 소망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요즘 육신이 힘들고 목사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깊이 생각하느라 지쳐 있습니다.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찾아야 할 텐데....
이 자매님은 사실 남편이 중병에 걸려 본인 스스로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저를 위로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제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강의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무고하게 죽어간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
힘을 내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합시다.
샬롬.
(*) 강이 나오며 firefly가 있는 그림의 맨 끝은 its own light이 되어야 합니다.
(*) 누가 영어와 함께 번역해서 올려 주면 좋겠습니다.
Instructions
One day I asked God for instructionsOn how to live on this earth...
God brought His voice close to my ear and said…
Be like the sun.Arise early, and do not go to bed late.
Be like the moon. Shine in the darkness, but submit to the greater light.
Be like the birds. Eat, sing, drink, and fly.
Be like the flowers,Loving the sun, but faithful to your roots.
Be like the faithful dog,
but only to your Lord.
Be like the fruit.Beautiful on the outside,and healthy on the inside.
Be like the day,
which arrives and leaves
without boasting.
Be like the oasis. Give your water to the thirsty.
Be like the firefly,Although small, it casts its own light.
Be like the water,Good and transparent
Be like the river,always moving forward
And above all things,be like the heavens: A home for God.
Teach me to do your will, for you are my God.May your gracious Spirit lead me into the land of uprightness.(Psalm 143:10)
Lord, don't let me remain where I am. Help me reach where You want me to be.
Have a beautiful weekand may God keep you always.
가르침
어느 날 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하나님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음성을 내 귀에가까이 들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와 같이 되어라.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들지 말아라.
달과 같이 되어라.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되더 큰 빛에 복종하라.
새들과 같이 되어라.먹고, 노래하고, 마시고, 날아다녀라.
꽃들과 같이 되어라.해를 사랑하되, 네 뿌리에 충실하라.
충성스러운 개가 되라,오직 너의 주님께만.
과일같이 되어라.겉은 아름답게,속은 건강하게.
뽐내지 않고 도착하고 떠나가는낮과 같이 되어라.
오아시스처럼 되어라.네 물을 갈한 자들에게 나눠줘라.
반딧불이같이 되어라.비록 작지만,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한다.
물과 같이 되어라,맑고도 투명하도록.
강과 같이 되어라,항상 앞으로 나아가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국이 되어라,하나님을 위한 가정.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시편 143:10)
주님, 지금 제가 있는 곳에 머물게 마시고저를 도우사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게 하소서.
아름다운 한 주 보내시고,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2009-12-11 19:00:4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