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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항상 주님께 "오직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세요"  기도하던 중 미디어를  통해 목사님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은혜 가운데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동안 저희 부부에겐 내적, 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 믿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달력과 CD를 받고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희생으로 섬겨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성령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2013-12-27 00:51:20 | 장미숙
안녕하세요   이번주일에 교회에서 받아 집에 걸어놓았는데 큰 은혜에 주님께 감사드리고 만들고 나누어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오늘 배송받은 달력과 책자와 설교시디 등 등 작게나마 인증사진을 올려봤습니다..   이번 한 해 개인적으로 고된 시간이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되어 정말 정말 인도하시는 주님과 그 안에서 여러 일들을 하시는 많은 성도분들께 감사합니다   얼마남지 않은 2013년 한 해 인도하시는 말씀안에서 주님안에서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2013-12-26 18:32:04 | 강인한
안녕하세요?   저희가 2014년 달력을 담아서 오늘 아침(12월 23일)에 우체국에 가져다주었습니다. 내일이나 26일쯤에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달력이 꾸겨지지 않게 큰 봉지에 담아 배송했으므로 우체통에 들어가지 않아 폐기될 우려가 있으니 달력을 주문하신 분들은 앞으로 며칠 동안 우체통과 그 부근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필수 설교/강해 40선 CD는 내일 발송됩니다. 주문하신 분들은 역시 우체통에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택배로 보내면 우송료가 비싸서 어쩔 수 없이 우체국의 일반 우편으로 보내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3-12-23 10:52:43 | 관리자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입니다.^^   요즘 한국은 날씨도 많이 춥고 눈도 많이 와서 미끄러운 것 같습니다. 모두 조심하시고 낙상하는 일이 없으시길 그리고 안전운전 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KeepBible에서 올려주신 달력 이미지를 다운 받아서, 이곳 뉴질랜드 휴일에 맞게 달력을 제작했습니다.  김** 형제님께서 수고해 주셨음을 모두 잘 알고 계시죠?   저희 집 딸이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기에 나머지 필요한 부분은 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Bible Believers들이 필요한 수량만큼 주문받고, 나중에 함께 할 분들에게도 나눠 줄 것을 대비하여 15부 프린트 의뢰했습니다.  일단 샘플 사진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24일(월)에 받아 올 예정입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달력이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주시면 우편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휴대전화 : 027-779-8877(최문선)     몇 개월 동안 저희 뉴질랜드 모임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내년에도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뵙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12-19 18:48:14 | 최문선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율법이 주어진 이후에 이방인들은 목사님 설교에서도 두 사람만 구원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심판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또 신약에 와서도 한국에 복음이 들어 온지가 100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그 이전에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선민으로 택하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지 제가 성경말씀을이해를 잘못해서 올바로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데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늦었지만 한국 땅에도 다행이 사랑침례교회를 통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올바른 교리로 진리만을 전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잊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예수님에 교회가 되도록 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희 형제교회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통해서 올바른 진리를 깨닫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에 힘으로는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리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침례교회에 진리에 말씀을 통해서 한국에 모든 교회들이 변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진리만을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님과 형제 자매님들에 영혼에 자유를 누리는 것에 너무도 큰 감사가  됩니다.      저는 형제교회 '김서기'입니다.          
2013-12-17 14:37:33 | 김서기
안녕하세요?   2014년 2월에 독일에서 성경강연회를 개회하려고 합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은 많은 참여와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14년 2월 11일부터 20일까지 (세부일정은 광고지 참조)   장소 : 만하임, 프랑크푸르트, 도르트문트   강사 : 김재근 목사 (전주 소망침례교회)   문의 : 이메일 kjbbc1996@hotmail.com           카톡  jack1611 (한국), kleinstein (독일)           전화  010 7797 1611 (한국), 0176 3440 4462 (독일)    
2013-12-16 11:51:20 | 김호성
*1편 :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867   종교생활에 심취해 바른 신앙과 구원의 도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요? 때로 사람은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쉽게 변하거나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친구 중에 교통사고로 뇌에 위중한 부상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과 본인의 노력으로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직전까지 갔던 엄청난 사고와 오랜 회복기간을 거치고도 이 친구의 성격적인 단점은 거의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인정하는 그 독특한 아집과 단점들이 그런 큰 인생의 위기를 겪고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변하기 힘든 존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심지어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정확하게 증명해 줍니다.   이에 그가 이르되, 그러므로 아버지여, 간구하건대 아버지께서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소서. 내게 다섯 형제가 있사오니 그가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 또한 이 고통 받는 장소로 오지 않게 하소서, 하거늘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저들의 말을 들을 것이니라, 하매 그가 이르되, 아니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눅16:27~30)    본문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지하세계의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 아직 살아있는 있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참된 믿음에 대한 진리를 증언함으로써 그들이 회개하여 지옥의 자식 신세를 면하게 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종교 시스템의 노예로 살다가 지옥에 왔으면서도 여전히 종교의 핵심 요소인 눈에 보이는 것,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즐겨 반응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형제들의 종교성을 타파시키려는 이 부자의 내면에 증식하는 지독한 종교 바이러스는 지옥의 불꽃으로도 박멸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호흡이 그 육체에 붙어있는 동안 당대 가장 고급스러운 삶의 범주를 누리고 살다가 지옥의 불꽃 속에 절여지는 대반전을 경험하고도 생각의 중심축이 옮겨지지 않은 이 놀라운 현상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위에 이야기했듯이 지옥의 고통은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를 놀랍도록 한참이나 초월하는 영역에 있습니다. 이 부자는 지금 그 초월적 징벌의 세계를 온몸―엄밀한 의미에서 어떤 이들이 말하는 혼적인 몸(soulish body)―으로 경험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끝내 지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부패한 사고의 틀을 전혀 벗어버리지 못하는 놀라운 실상을 예수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보이는 것이 있어야 믿을 수 있고 기적적인 일 정도는 일어나야 사람이 변하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대언자들의 선포로는 절대 충분치 않다는 이 전혀 낯설지 않은 하나의 전형적인 신념은 21세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종교 시스템은 심지어 이 부자를 거슬러 올라가 가인에게까지 다다릅니다(유11). 또한, 이러한 굳건한 일종의 사고방식 즉, 사람의 눈과 감각기관으로 감지되는 현실 세계의 증거들을 통해서만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강력한 주장은 모든 현세적인 축복을 갈망하는 기복적 태도와 사실상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이를 정확하게 증명해주고 있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바로 종교 시스템에 안주하려는 인간의 역사를 타고 흐르는 이 뿌리 깊은 지독한 욕망의 덫이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렸던 한 사람을 지옥 자식 신세에서 면하지 못하게 붙잡아 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종교에 빠진 이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바른 믿음을 규정하고 정의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못하였느냐? 참으로 들었은즉, 그것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10:17~18).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것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1~3).   이와 함께 지옥의 불꽃이라는 초월적 형벌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부패한 사고체계를 허물지 못했던 부자를 향한 아브라함의 통렬한 선포가 위의 말씀들과 얼마나 정교하게 일맥상통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어떤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설득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눅16:31).   지금 이 순간까지도 천국과 지옥의 방문기를 설파하는 거짓 간증자들을 통해 저리도 명확한 성경 말씀은 여전히 모욕을 당하고 멸시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실존했던 인물인 유대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와 복음의 엄청난 간극에 대해서 명료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끝까지 고집하며 종교인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복음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종말이 어떠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것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명확한 계시의 말씀들이 기록된 성경책을 밤낮없이 들고 다니면서도 종교인으로 살다가 파멸해 간 선배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허다하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거대한 종교 시스템 속에 기생하는 거짓 대언자요, 거짓 선생들입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마7:15~18).   종교인, 특히 거짓 대언자의 처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의 말씀도 개역 성경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오히려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거짓 선생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7:21~23)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마7:23).”라는 말씀은 제아무리 기적적인 은사를 뽐내고 세상도 부러워할 만한 찬란한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예수님께서 결코 안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구원받은 적이 없는 거짓 대언자들은 나쁜 열매를 맺는 변질된 나무요,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까지 가로막는 종교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숙주일 뿐입니다.   이렇듯 파멸의 길로 이끄는 거짓 대언자들에게 사로잡힌 종교인들 중에 상당수는 대단한 지성인이며 매력이 넘치는 인기인이고 권세가이며 모략이 넘치는 전략가들입니다. 그들은 복잡한 수식을 척척 풀어내고 인간들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뚫고 들어가 유연한 처세로 세상에 우뚝 서고 화려한 논리가 탑재된 말솜씨로 청중을 장악하며 고매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둔하고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명료한 복음의 정수를 깨닫지 못해 수시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나 정작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딤후3:7).   종교인은 여전히 철학, 선행, 고행, 희생, 헌신, 자선과 심지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도, 헌금, 예배, 침례, 유아 세례, 각종 성사 등의 종교 행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도달하고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의 바람과 달리 사람의 모든 행위와 의는 누더기와 같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사64:6).   심지어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모 교단의 어떤 교회는 그 이름이 ‘종교’라고 한다니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묘한 것은 그 교회의 담임 목사가 특별히 지난 WCC 부산총회 준비에 열심을 보였다고 하니 교회의 이름과 무언가 통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WCC 부산총회 준비가 한창이던 때 그것을 지지하는 한 교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왜 WCC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악한 단체인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 교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기 일쑤였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며 제 말에 논리적으로 더 내세울 것이 없어지자 이 교인은 비로소 명언(?) 한 마디를 남깁니다. “당신이 뭘 그렇게 잘 알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장담합니까? 그렇게 당당하다면 WCC 총회를 추진하는 목사님들보다 더 유명해지고 권위가 생긴 다음에 와서 말을 하세요.” 이렇듯 종교인들의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세상이 부여한 권위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며 시대의 대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심연에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만족하게 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버려진 음식쓰레기로 연명하던 거지였던 나사로가 낙원의 거주자가 된 모습을 지독한 회한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부자처럼 종교인에게도 생전에 가슴 시린 추억이 있고 소박한 즐거움에 미소 짓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들도 뜨거운 피를 가졌고 연인과 함께 절절한 사랑을 나누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다시 오지 않는 흘러간 청춘을 추억하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합니다. 그들도 세월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지는 이런 모든 삶의 조각들의 소중함을 알기에 자기 나름대로 종교 시스템 속에서 영존하는 생명을 얻어 보려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마지막은 명백한 파멸입니다. 종교인이 감당해야 할 미래는 철저하게 닫힌 미래일 뿐이고 원상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종교 시스템에 발목이 붙잡혀있는 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자신의 발목에 채워진 거짓 선생의 덫을 벗기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십시오. 타락한 인간의 욕망을 만족하게 하는 그 자리에 안주하면 당신의 그 모든 소중한 삶의 조각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당신의 두 눈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함과 분노와 저주와 자포자기일 것입니다. 유대인 부자처럼 교회 안에서 일생을 복음을 모르고 종교생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절망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만드신 사람의 상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그야말로 완벽한 절망입니다. 부디 종교인이 감당해야 할 완벽한 절망, 그 혹독한 미래에서 속히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혔기 때문이로다. 또한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이제 사라졌나니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일 중에서 그들이 차지할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전 9:5~6)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막9:48~49)
2013-12-13 23:45:46 | 김대용
사람은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이 끊임없이 미래를 바라보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 친구들과 만났다가 헤어지거나 전화 통화를 하다가 끊을 때 대부분 “다음에 또 보자.” 혹은 “다음에 연락하자.”라고 말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것도 이런 성향이 반영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항상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것을 삶의 의미로 여깁니다. 장성해서 결혼하면 평안하고 안락한 중년과 노년의 삶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자녀들의 미래가 아름답게 펼쳐질 것을 소망하며 삶을 일구어 나아갑니다.   과연 미래가 열려있지 않다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동차가 주유를 가득하고 달려갈 준비를 모두 마쳐도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 놓여 있다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듯이 사람에게 미래가 열려있지 않고 닫혀 있다면 그는 삶의 추진력을 상실하고 모든 기능들이 일거에 해체될 것입니다.   성경은 미래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어떤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에게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미래는 소망을 담고 앞날에 대한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닫힌 미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치 극심한 근심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살아 있음에도 “요즘 난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야~!”라고 자조 섞인 고백을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하는 부자도 바로 이런 ‘닫힌 미래’를 맞이하며 살게 된 사람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람이 감당해야 할 닫힌 미래는 더 이상의 변화나 개선이 허용되지 않고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막9:44). 분명히 역사 속에서 실존했던 인물인 이 부자는 당시 인간에게 허락된 최고의 풍요와 환락을 누리며 살았던 특권층이었습니다. 그가 입었던 자주색 옷은 당시로서는 왕이나 최고의 권세를 누리는 귀족들이 즐겨 입었던 옷으로 그의 사회적 위치를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삿8:26, 에8:15). 또한, 그는 날마다 호화롭게 사치를 즐기고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듯 돈을 맘 놓고 써도 재산이 줄어들 줄 모르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눅16:19) 심지어 그의 집 대문 앞에는 거의 매일 벌이는 파티에서 남겨진 음식쓰레기로 연명하고자 하는 나사로를 비롯한 여러 거지들이 모여 있었을 것으로 짐작건대 실로 대단한 재력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자는 당시에 살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따르는 멋진 삶을 살던 사실상 당대의 스타였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던 부자는 삶을 마감한 후에 영원히 고정되어 변할 수 없는 어떤 독특한 종류의 현실 속에 처하게 됩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눅16:23~24)   언젠가 지금 광주·전남 지역에 킹제임스 성경을 알리고 바른 신약 교회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한재석 형제님의 설교 중 들었던 “여러분은 과연 지금 죽는다면 당장 하나님이 계시는 천상에 올라가 그분을 뵈올 텐데 그때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육신을 벗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하실지 생각하고 사시나요?”―물론 제 기억에서 추출한 것으로 설교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라는 대략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설교를 들으며 매우 참신하게 우리가 잊고 있는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것을 반대로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죽은 후에 눈을 떠 보니 지옥의 불꽃 가운데 놓여 있을 때 그 사람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요? 사실 상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솔직한 답입니다. 천상에 올라가 하나님을 뵈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지옥 불꽃 속에 절여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심정도 감히 인간의 평범한 정서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지옥은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사람이 지옥이라는 무자비한 진공청소기의 위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누리다 삶을 마감한 부자가 그야말로 대반전, 엄청난 뒤바뀜, 상상 이상의 엄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 과연 어떠한 심정이었을지는 짐작이 불가능하고 간접체험은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매우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옥은 대문을 활짝 열고 지금도 쉴 사이 없이 구원받지 못한 혼들을 빨아들이고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정작 이런 심각한 위기를 뼈가 저리게 느낄 수 없으니 정말이지 이보다 더한 인간에게 닥친 시급한 위기와 위협은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받은 구원의 감격만을 기뻐하기에는 주위에 파멸의 길로 행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복음이 널리 퍼져있다고 자부하는 한국 땅에서조차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미처 구원받지 못하고 심장의 박동과 호흡이 멈춰 버리는 비극이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단히 특이하고 충격적인 것은 파멸의 대륙으로 건너가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살아생전에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라고 자부했던 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가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주저함 없이 부르는 것을 볼 때 그는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이었고(24절) 생전에 모세 5경을 읽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구약 시대의 대언자들의 선포를 직접 들었던 사람일 것입니다(29절). 짐작건대 그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걸맞게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를 배우고 지키며 각종 헌물과 희생물을 부족함 없이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훌륭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지없이 그가 죽은 후 지옥의 불꽃 속에 절규하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16장 23절의 ‘고통 중에’라는 말의 원어는 고문 등의 극단적 자극으로 인해 발생하는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는 지금 견딜만한 고통 속에 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릴만한 상황이 절대로 아닙니다. 살아있다면 곧 기절해 버릴 수도 있는 극한의 고통을 쉴 사이 없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지옥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 여의도에 위치한 불신자들도 다 아는 한 대형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던 형제님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의 고백은 전에 그 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교리와 규범에 빠져 소나무 뿌리를 뽑아낼 기세로 기도에 열중하며 신비한 것을 추구하던 시절에도 무엇인가 은사주의 교회의 모든 모습이 내내 역겹고 불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불편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바른 교회를 찾고 또 찾아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와 지금의 교회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그 교회를 세계적인 초대형 교회로 일군 목사 일가의 범죄와 비리는 낱낱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해당 교회의 교인들은 잠잠하기만 합니다. 매 주일 기독교방송에 방영되는 예배 영상을 보아도 여전히 평안하게 주일예배에 참여하고 문제의 핵심에 위치한 원로 목사가 노구를 이끌고 더듬거리며 하는 그 설교에 아멘을 연발할 뿐입니다. 수십만 명의 교인들 중에 그런 비리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또는 더 이상 참지 못해 교회를 뛰쳐나가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단 1%도 안 되는 듯합니다.   하나님과 본인 자신만 알 수 있는 구원받았는지의 여부를 뉘라서 함부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런 명명백백한 비리와 타락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이 평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영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생전 모범적으로 멋지게 별처럼 살았다고 자부했던 유대인 부자는 실은 마귀의 자녀요 지옥의 자식이었습니다. 사실 그에게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세상 누구보다 구원받기에 가장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이었고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을 읽을 수 있었고 살아서 활동하던 구약 시대의 대언자들의 선포를 직접 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이 그의 영적 지각을 둔감하게 했지만, 그것이 그가 구원받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그의 몸에서 호흡이 멈추기 전까지 회개하고 돌이켜 참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너무도 명료하고 단순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채 많은 종교 행위만을 먼지 같은 유산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나 지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영적 문제에 있어 가장 심각한 것 중에 하나가 그 옛날 유대인 부자처럼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의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서도 구원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시급하고도 위중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여기서도 교묘한 기만전술을 펼칩니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이끌어 가려는 마귀의 집요함은 또 다른 이단의 무리를 통해 이 화급한 문제에 물타기를 시도하곤 합니다.   소위 매우 큰 믿음을 소유했다고 자부하는 어떤 목사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매우 참신한 화두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미 다 알 듯이 이 사람은 지독한 은사주의자요, 신사도주의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신 속죄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노력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능가하는 의를 가져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명백한 행위구원론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들에 대한 중대한 이슈를 이런 황당한 거짓 선생을 통해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 철저하게 매장해 버리려는 사탄의 간악한 술책에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도 끝끝내 구원받지 못한 것은 결국 자신의 책임이요, 자신의 선택이었으며 오늘날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종교생활에 빠져 끝내 구원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도 결코 사탄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실은 그들은 자신의 욕망, 고집, 불순종,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함, 굳어 버린 양심 등으로 인해 스스로 수렁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실로 엄청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2편 계속 :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868
2013-12-13 23:42:18 | 김대용
안녕하세요?   드디어 엊그제 달력이 나와서 오늘 가져다가 학교 사무실 문에 걸었습니다. 크기도 좋고 말씀 중심이라 좋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배송하려고 합니다.   달력을 원하시면 다음에 있는 대로 주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557   수량이 있는 대로 선착순으로 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3-12-12 18:07:1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입니다.^^       이제 12월이라 성탄절이라고 한국은 캐롤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으로 분위기가 들썩들썩 하겠네요.   이곳은 한여름인데 아직도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어색하고 적응이 안되네요.^^   한국은 요즘 스모그 현상으로 공기가 탁해서, 호흡기가 약하신 분들은 더욱 건강에 유의하셔야 되겠더군요. 우리 모두 건강관리를 잘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감당하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4차 모임도 은혜가운데 함께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번 모임은 12월 12일 목요일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주로 토요일에 모이는데, 맴버 들에게 사정이 생겨서 요일이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그 동안 킹제임스 성경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이지 못했던 분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상황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시길 기도 부탁 드립니다.    우리의 모임을 성장시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번 모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   래 >   일자와 시간 :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저녁 7시   장       소 : ****번지  Pah  Road.  Empsom.  Auckland.   내       용 : ‘요한계시록 바로 알기’(김** 형제님 저)   3. 공중강림과 휴거(216쪽~229쪽)   연  락  처 : 휴대폰 027-663-9777 (최문선)       아는 분 중에 뉴질랜드에 거하는 분이 있으면, 이 내용을 알려주시고 함께 연락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거주하는 곳 Auckland는 뉴질랜드 북섬입니다. 혹시 뉴질랜드 남섬에  거주하는 분이 계시면,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연락해서 격려하고 위로하길 소망합니다.    Keep Bible 회원들께서 이 모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샬롬!           A. Q & A로 알아보는 '성탄절'의 오해와 진실   http://woogy68.blog.me/140063736968?Redirect=Log&from=postView       B. 예전에 밥 피어스 선교사님께서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올려놓으신 글이 있어 링크 해놓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984       요한복음 1장 1절, 2절, 14절,    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2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3장 16절, 36절    16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2013-12-06 18:20:46 | 최문선
 킹 제임스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그 구절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다... 유대인성경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구약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유대인들이 최고의 권위자인 듯이 주장합니다. 매우 타당한 논리로 보입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에게 맡겨졌기 때문에 구약성경만큼은 유대인의 관점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정통 유대인들이 어떻게 종교의식을 행하는지 궁금해 하며 예루살렘과 그 주변을 관광하는 성지순례가 권위 있는 성경해석의 필수코스처럼 오해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 유대인들은 영적으로는 눈먼 상태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신약성경을 거부하고 있으며 구약성경은 읽어도 모릅니다. 유대인의 해석과 관습과 실행은 참조사항일 뿐 절대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 고린도후서 3장 14-16절 :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가려졌으니 이는 이날까지도 옛 상속 언약의 말씀(the old testament)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아니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라. 그 베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졌으나 이 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현 시대의 유대인들은 복음의 진리에 관해서 눈멀었고 귀가 막혔습니다. 믿지 아니함으로 꺾였고 넘어졌습니다. 현 시대의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읽어도 분명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심지어 모세오경을 읽더라도 마음은 어둡습니다. 유대인들은 과학, 언어, 예술, 수학, 정치, 금융, 처세에 있어서는 똑똑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를 알고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는 어두움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가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 각자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현 시대의 유대교는 불교, 이슬람교, 도교, 카톨릭교와 나란히 놓일 뿐입니다. 유대인이면서 구원받은 사람은 유대인의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한국인 신자, 중국인 신자, 미국인 신자, 독일인 신자.... 들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구원받은 신자이지 구원받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영적으로 특별한 위치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민족의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거처로 세워져가는 일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도 동일합니다.   유대인 종족 전체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가치를 되찾는 길은 오직 주님께 돌아설 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여야만 가능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 기록되었듯이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게 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   현 시대의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읽어도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를 더 잘 알고자 유대인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행하는지 살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참조사항일 뿐입니다.   모세오경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유대인을 인용하여 누군가 킹제임스성경을 헐뜯으려한다면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유대인의 주장은 절대 권위가 될 수 없음을 당당히 선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서 봤더니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던데 하면서 누군가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뒤흔들려고 한다면 현 시대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만큼만 인정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누군가 유대인이 보는 성경을 가지고 와서 킹제임스성경이 틀렸다고 지적하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구절이 있다면 틀린 것은 그들의 것이지 킹제임스성경이 아닙니다.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4장 2절]  
2013-12-04 18:48:05 | 김재근
어느덧 2013년 한해도 마지막 달력을 남기고 있습니다. 모든 형제님들께 주님의 평안이 함께 있길 바랍니다.   연말이 되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교회들마다 일명 “말씀 뽑기”를 해서 성경구절이 적힌 책갈피를 고르곤 합니다. 심지어 한 개로는 성에 차지 않아 몇 개씩 집어가서 그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이 적힌 것으로 정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그 말씀이 새해에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복된 말씀이라고 기대들을 합니다.   표현이 다소 불경할지는 모르나 이런 일들이 제게는 말씀을 점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네요. 하나님말씀이니 그냥 별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몇 번 해왔지만 요즘 들어 제 마음에 자꾸 불편함이 생깁니다. 더욱이 말씀을 뽑는 순간엔 복권을 맞출 때와 비슷한 긴장감(?)마저 드는 게 참 이상한 기분 이었습니다. 어릴 때 야시장에서 일명 “돈 놓고 돈 먹기”같은 도박을 경험 하는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 4:4).   물론, 그 말씀 뽑기 통 안에 있는 책갈피 중에 읽어서 듣기 싫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말씀이 다 유용한 말씀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말씀을 사모한다는 취지로 하는 것이라도 어린 자녀들과 배우는 청소년들을 생각 한다면 교회 내에서 오해와 그릇됨의 씨앗이 될 만한 잘못된 관행 같은 것은 과감히 배척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형제님들의 생각들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박천호 올림
2013-12-04 14:02:45 | 박천호
자주 들어와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일예배를 마치고 서원록 양식을 받아 왔습니다. 오래 전에는 서원록을 써서 교회에 제출을 했지만 몇년 전부터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제 아내와 어머니께서는 왜 작성을 하지 않느냐고 여러차례 얘기를 했지만 제 임의로 작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가톨릭에서 하고 있는 고해성사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하고 전 교인의 기도제목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목회자가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에 합당할까? 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서원록에 대한 합당한 구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013-12-01 21:30:03 | 함치선
 킹 제임스 영어 성경,   셰익스피어보다 더 막강한 힘으로 영어를 전파했으며, 17세기 청교도 혁명(제임스 왕의 아들인 찰스 1세가 이 때 처형됨)에서 정치적 논쟁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문장들은 미국에서 권리와 정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의 주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언젠가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은 킹 제임스 성경의 이사야 40:4-5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미국 최초의 로마 카톨릭 신자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조차도 취임 연설에서 “험한 땅은 평탄해질 것이고, 굽은 길은 곧게 펴질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 만물이 그 모습을 함께 보리라.”라고 이사야 58:6절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77년에 킹 제임스 성경의 우월성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새로 번역하게 해 주십시오. 폐하.” 청교도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존 레이놀즈의 한 마디는 성경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제임스 왕(제임스 1세)의 전임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시로 1568년에 비숍(Bishop: 주교, 감독) 성경이 이미 번역되어 있었지만, 청교도들은 이 성경을 신교황주의를 옹호하는 영국 왕실 감독파(성공회) 세력의 도구로 생각했고 제임스 왕 본인조차도 이 성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존 레이놀즈와 같은 청교도(요즘의 장로교인들)들은 1560년에 제네바의 칼뱅 치하에서 번역되었던 제네바 성경을 선호했습니다. 이 성경의 특징은 주석이 많았으며, 특히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폭군(tyrant)이라는 단어가 이 성경에는 400번도 넘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폭군은 누구를 얘기하는 것일까요?   제임스 왕은 ‘감히 영국 교회의 머리인 왕에게 멋(?)대로 덤비는’ 제네바 성경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비숍 성경을 바탕으로 번역하라고 왕이 요구했음에도 킹 제임스 성경 중에서 비숍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이 8%도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아도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은 왕에게 충성을 했다기보다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주는 일절 달지 말라. 제네바 성경에 실린 주해를 살펴보니 ... 몇몇 내용은 지극히 불공평하고 거짓되고 선동적이며, 위험스러운 반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그 외 제임스 왕의 지시사항은 충실히 지켜졌습니다.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번역자들 중 란셀롯 앤드루스는 왕실 감독파의 대표자였고, 존 레이놀즈는 제네바 성경을 선호하며 왕에 반항적인 청교도 무리들의 대표자였습니다. 또한 탁월하며 믿음이 충만한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파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요? 본인들의 정치적인 입장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믿습니다.   제네바 성경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무리들(장로교의 ‘노회’라는 말을 왕 앞에 써서 왕을 화나게 했던 사람들)은 그 땅에 정착하면서 호전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청교도의 특징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이들은 개척으로 영토가 커지고 힘이 강해지자 ‘국가’의 권력과 지원으로 성경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애덤 니콜슨에 의하면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이단, 주술, 신성모독, 우상 숭배, 안식일 파괴 같은 온갖 범죄를 처리하느라 민사 법원이 항상 북새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악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성경이 필요했고, 분리주의적 성격이 강한(감히 왕에게 덤비는) 제네바 성경은 내려오고 이 때부터 미국은 킹 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신대륙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언어로 거듭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왕 대신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통치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포하게 된 것이 역설적이게도 킹 제임스 성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자, 윌리엄 틴데일이 선보인 수많은 단어와 구절들이 오늘날의 영어에 녹아 있습니다. 정확한 번역은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Let there be light(빛이 있으라) 창 1:3 not my brother’s keeper(내 알 바 아니다) 창 4:9 filthy lucre(더러운 돈) 딤후 3:3,8 lu- : Lucifer(마귀, 사탄), luxury(화려함) - 탐욕,교만과 연관되어 있는 단어들입니다.   fight the good fight(싸우려면 의롭게 싸우라) 딤전 6:12, 딤후 4:7 flowing with milk and honey(젖과 꿀이 흐르는) 출 3:8,17 the apple of his eye(눈동자) 신 32:10, 시 17:8 a man after his own heart(죽이 맞는 사람) 삼상 13:14 the spirit is willing but flesh is weak(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안 따른다) 마 26:41 signs of the times(시대의 징후) 마 16:3 ye of little faith(믿음이 부족한 자) 마 6:30, 8:26, 16:8, 눅 12:28 eat, drink and be merry(먹고 마시고 즐겨라) 전 8:15, 눅 12:19 broken-hearted(상처받은 마음) 사 61:1, 눅 4:18(킹 제임스 성경에는 dash가 없습니다.)   사랑침례교회 사이트에 접속하실 때 창으로 뜨는 “영화 : 세상을 바꾼 책(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를 함께 보시면 감동이 더욱 넘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도서 :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멜번 브래그 저/이원경 역/랜덤하우스, 2007
2013-11-29 18:45:30 | 송호
흔히 청년 혹은 청춘을 아직 활짝 피어나지 않은 망울이 맺힌 꽃봉오리에 비유합니다. 저의 청년기는 20대를 고스란히 지내온 9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응답하라~!’ 라는 제목으로 90년대 청춘의 다양한 군상을 다룬 드라마가 추억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90년대도 이제 어엿하게 과거 대접을 받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청년기는 고등부, 청년부를 거쳤던 교회 생활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소위 경배와 찬양 문화가 전국적 열풍을 일으켰던 90년대 초반에는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찬양집회를 쫓아다니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려 애쓰기도 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캠퍼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유명한 선교단체에서 그들의 뜨거운 열정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려 하기도 했습니다. 군 전역 후에는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아는 대형교회에 출석하며 수천 명이 넘는 청년부와 미국에서 직수입한 첨단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교회 속에서 나를 변화시킬 무언가를 간절히 구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저는 제 나이에 걸맞지 않게도 아직 미혼이기에 청년부에 속하게 되는 호사(?)를 누리며 하나님 앞에 청년의 시기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보내야 하며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당시 다니던 교회 지하 기도실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집에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늦은 밤에 항상 한쪽에서 기도하시던 여자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고등부 같은 학년 친구의 어머니였습니다. 안 들으려 해도 한쪽에서 열성적으로 기도하시던 그분의 기도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 가족, 특히 자녀들을 위한 기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어머니 뜨거운 기도를 받고 자란 제 친구는 그 후 무난하게 결혼하고 자녀도 낳고 무난하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는 무난한 것 그 이상의 무엇을 찾아볼 수 없는 교인이 되었다는 것, 바른 성경이나 바른 교리 찾아 고민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그저 원만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 친구에 대한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과거 저도 가끔 경험했던 교회 간증집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흔히 ‘전도 왕 모 집사’라고 해서 열정적인 전도 혹은 교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유명한 여 집사가 초청되어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역설하는 전형적 모습이 연상되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런 간증에 흔히 등장하는 것이 자녀 자랑입니다. 대략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기도를 심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어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이렇게 잘 되었습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전문 직종에 진출해 엄마에게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하라고 용돈을 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었다는 자랑에 회중들은 이내 아멘을 합창하곤 했습니다. 과연 그 뜨거운 어머니의 믿음의 기도를 받아먹고 자란 자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간증집회에 자주 거론되던 그 많은 잘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리더로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원만한 기독교인이 되었을지 몰라도 비진리와 불법에 항거하고 진리를 위해 손해 볼 수 있는 크리스천이 되지 못한 이들이 간증에 등장하는 복 받은 자녀들 중 허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크리스천 부모들의 열망은 실상 다른 사람들 보기에 그럴싸한 눈에 보이는 복에 대한 갈망이었음을 과연 숨길 수 있을까요? 코스타(KOSTA)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웬만한 크리스천들은 다 아는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이 단체는 해외 여러 국가에 흩어져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앙 수련회를 진행하는 곳입니다. 아마도 애초에 이것을 시작한 목사님들의 생각은 해외 유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국내 들어오든 해외에서 자리를 잡든 후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리더들이 될 터이니 이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포부가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분들의 바람은 얼마나 실현되었습니까? 지금도 이 단체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핵심 운영진이라는 분들의 면면 보노라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복음을 혼탁하게 하는 이분들이 과연 젊은이들을 이끌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그 수련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아도 유학생들이 멀리 타국에서 공부하며 느끼는 고독과 어려움을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과연 이것이 복음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일까요?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필요들을 채우고 현실 속에 느끼는 여러 고민을 나누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과연 이것을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들이 청년들을 양육시켰던 패턴들이 거의 이와 같습니다. 저는 단언하건대, 이렇게 해서는 복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 손해 볼 수 있는 크리스천이 절대로 양육되지 못합니다. 한국 교회들은 그동안 청년들에게 무엇을 심어 주었습니까? 진로와 취업, 결혼 등 미래가 불안정하기만 한 청년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 과거 교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바로 비전(vision)입니다. 하나님의 비전 혹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비전 등을 모토로 내세워 뭔가 원대한 가치를 청년들에게 던져주고 그것을 좇아 쉼 없이 달려가면 그 끝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그야말로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전략이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사는 젊은 세대를 교회에 붙잡아두는 한국 교회의 방법론이었습니다. 주로 미국에서 검증된 최신 프로그램의 도입과 교회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유지하는 것에 효과만점인 각종 대외 선교활동, 은사주의의 부스러기들,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받은 감동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특성을 지닌 현란한 찬양 문화 등 정말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지 않고 철저하게 세상에 물든 청년들이 입맛만을 맞추는, 더 나아가 담백한 입맛을 가지고 있던 청년들조차 자극적인 영적 양식에 익숙하게 만들어 버리는 교육이 바로 한국교회가 청년들에게 행했던 교육입니다. 마땅히 진리의 보금자리로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가르쳐야 함에도 많은 청년들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만 있다면 MSG가 잔뜩 들어간 프로그램도 전혀 마다치 않고 도입했던 모습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배와 찬양 문화가 그야말로 한국의 크리스천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허리케인보다 더한 광풍으로 감싸 안았던 90년대 초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엄청난 행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경배와 찬양문화를 선도하던 모 선교단체에서 주최하는 ‘올네이션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행사였습니다. 그 시절 모임을 주최하던 목사가 “88 올림픽 이후 이곳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라는 감격스러운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당시 그 단체를 이끌던 하 모 선교사님이 그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선교사로 헌신할 청소년, 청년들은 일어나십시오, 거룩한 생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청소년, 청년들은 일어나십시오.”라는 외침에 회답해 눈물을 흘리며 일어났던 그 수많은 젊은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정말로 액면 그대로 당시 그런 거룩한 가치에 헌신한 청년들이 진정성이 있었고 그 후 잘 양육되었다면 지금 한국의 교회들이 영적 기상도가 이렇게 암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원만하게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갖고 교회 집사로서, 평범하고 성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30~40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와 함께 90년대 청년기를 거쳐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때로 2,000억 원 넘어 들여 지은 웅장한 교회 건물 안에서 안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그렇게 교회를 이끄는 리더들에게 항거해 마치 세상에 이 교회밖에는 갈 교회가 없는 양 분리되어 나올 생각도 못하고 끊임없이 아옹다옹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또한 전임자가 물러난 후 새로이 담임을 맡은 40~50대의 젊은 목사들이 이전보다 더욱 악하게 교회를 이끌어도 대형교회 교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꿋꿋하게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쉽고 자연스럽게 기성세대에 편입되어 진리로 인한 심각한 고민보다 현실에 순응하며 그 속에서 안식하는 요령을 터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너무도 바쁘게 땀 흘리며 살아가다가 주일 하루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을 유일한 낙이요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 바른 신약교회가 도대체 무엇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전혀 없는 그저 원만한 기독교인 일 뿐입니다. 저는 감히 확신하건대, 90년대 중·고·청년부를 거쳐 온 대부분 한국의 30~40대 크리스천들의 가장 대표적인 현재의 모습들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오 청년이여, 네 젊은 때를 기뻐하라, 네 젊은 시절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들로 걸으며 네 눈이 보는 대로 걸으라. 그러나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심판 자리로 데려가실 줄 너는 알라. 그러므로 슬픔을 네 마음에서 제거하며 악을 네 육체에서 치우라. 어릴 때와 젊을 때는 헛된 것이니라(전11:9~10). 아마도 청년에 대한 구절로 성경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구절 중 하나가 위 전도서 11장의 구절일 겁니다. 이 두 구절에는 청년들의 특징이 함축되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역동적으로 미래를 위해 도전하며 마음에 열망하는 것들을 소유하고자 달려가는 시기가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때로는 세상이 제공하는 향락에 몸을 내어 맡기는 것이 이 시기의 특권인 듯 행동하는 것이 우리 주위에 흔한 젊은이들의 모습이고 솔직히 상당수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90년대 청년들에게 통했던 교회들의 구호와 프로그램의 효력도 이제는 서서히 그 수명을 다해가는 듯합니다. 세상의 유혹은 더욱 강렬하게 조직화하며 자극적이 되어 가는데 교회들은 세상과 대항하고 그 흐름에 역행하기는커녕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호응해 따라가던 그 발걸음조차 이제는 힘겨워 보입니다. 그나마도 이곳저곳 심지어 지방에서 상경한 청년들까지 몰려들던 대형교회의 청년부마저도 아주 조금씩 위축되고 그 위상이 추락하여 갈 때쯤이면 정말 한국 기독교는 암울한 쇠락의 시대로 본격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독립침례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독립침례교회의 청년부도 당연히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람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향해 분리되어 온 귀한 지체들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여기도 사람의 속성은 변치 않고 그대로 나타나는 곳이며 역설적으로 독립침례교회 청년부를 경험하며 왜 이전 일반 교회의 청년부 담당 사역자들이 그런 현란한 프로그램과 세상의 시스템을 청년부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욕구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않고는 그들을 모을 수 없다는 일반적 원리를 청년부 사역자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20대 중반의 몇 년을 보냈던 서빙고의 한 대형교회는 청년들의 주일 예배장소 중 하나로 홍대의 유명 클럽을 선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청년 유흥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그곳에서 복음을 선포해서 세상 속으로 침투하는 사역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욕망의 카니발의 벌어지던 장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를 행한다는 것은 사실 치기 어린 의욕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참신함과 진취적인 것을 추구하는 한국 교회들의 청년부 문화의 극단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세상의 방법을 사용해 청년들을 모으고 그런 행위들이 효과를 발휘하고 그것을 또 다른 교회에서 벤치마킹을 하며 복음이 빠진 속된 부흥기법만 난무하는 청년부가 곳곳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하고 명료하며 담백한 복음만을 가지고는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듯 보입니다. 더불어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라 이유 없는 기독교 안티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복음은 이전보다 더욱 젊은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도서 11장 9~10절은 세상의 관념으로 보았을 때 청년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권면을 합니다. 노년에나 생각해야 할 인생의 마감과 그 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청년 시절부터 묵상하라는 선명한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들은 청년들에게 세상의 관념에서 보아도 거부감이 없는 교훈만을 주고 양육해 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도전, 진취적 기상, 열정적 헌신, 창의적인 활동, 심지어 세상에 나가 높은 고지를 정복하라는 ‘고지론’까지 모두 도전하고 쟁취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크리스천 청년들은 세상에 나아가 건실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면 매우 큰 문제입니다.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초월하는 영존하는 가치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전도서 11장의 교훈을 교회에서조차 청년들에게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진정 암울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청년들이 추구해야 할 불변의 가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도 보존되는 영존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고전3:12~15, 고후5:10) 더불어 몇십 년의 짧은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쇠락하는 인간의 청춘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허무할 뿐이라는 단적인 선언이 명료한 진리임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습니다.(전11:10) 효율성을 자랑하는 세상의 기법으로 부흥하는 교회들의 청년부가 그 위세를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성장하는 청년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허약하고 헐벗은 초라한 영적 상태에 처한 중년이 될 뿐임을 우리는 지난 세월의 교훈 속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담백하고 깨끗한 복음의 위력으로 청년들의 삶을 진리로 이끌 수 있다는 신념을 결코 양보하지 않을 때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진리의 횃불이 청년들의 내면에서 활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말씀을 수호하고 많은 교회들의 그릇된 행위들을 정확히 분별하며 바른 교리 안에 굳건하게 서서 좁은 길 가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청년들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세상은 점점 암울해져 가고 이전 시대에 없던 인면수심의 젊은이들마저 곳곳에서 출몰한다는 삭막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시대의 영적 상황이 암담할수록 더욱더 세상의 가치가 아닌 영존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진리로 인해 청춘의 꽃봉오리를 활짝 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청년들이 일어나는 참된 부흥이 이 땅 곳곳에 허락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내가 온 마음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오 내가 주의 명령들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숨겼나이다. 오 찬송을 받으실 주여, 주의 법규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입의 모든 판단들을 내 입술로 밝히 드러내었으며 모든 재물을 기뻐하는 것 같이 주의 증언들의 길을 기뻐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고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 자신이 주의 법규들을 기뻐하고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119:9~16).
2013-11-28 19:58:20 | 김대용
https://www.facebook.com/photo.php?v=547296392020717 보이는 것들, 세상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이 될 수 있는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영상을 올렸습니다.   은사주의, 기복신앙, 오순절운동, 성령충만, 기도응답, 관상기도, 경청기도, 영성훈련, 방언훈련, 성령체험, .... 수많은 모습들로 사람들은 표적과 증거를 찾아 다닙니다. 심지어 꿈을 꾸고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하거나, 기도중에 떠오른 생각들도 기도응답이라고 포장하여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매우 지혜롭고 알만큼 알고 있다고 자부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의 실체를 밝히 드러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여 주신 바른 성경 말씀(킹제임스 흠정역)이 캄캄한 암흑 한가운데 빛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내 눈에 아무 증거 보이이지 않아도 킹제임스 흠정역 말씀 가운데 기록된 신비한 약속들을 믿는 믿음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히11:1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013-11-25 13:58:45 | 최호준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입니다.   한국은 요즘 김장하시느라 분주하신 것 같아요.   이곳 뉴질랜드는 여름으로 치달아 가고 있답니다.  대학생들은 과제물 제출과 시험으로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있고, 초 중고생들은 다음 주면 모두 방학을 한답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 Bible Believers 모임을 시작한 것이 벌써 4차 모임을 하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진심 어린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매번 기쁘고 감사한 모임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는, 세 가정의 부부가 모여서  Keep Bible에 오광일 형제님께서 올려주신 ‘WCC 어떻게 볼 것인가?’와 마태복음강해 10강을 내용으로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성막강해 26강 ‘사도행전 바로 이해하기’를 갖고 이스라엘과 교회, 이방인들에 관하여 세밀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임의 세부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아    래  > 일자 및 시간 :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저녁 7시 장        소 : **번지 Awa Road. Kumeu. Auckland 연   락   처 : 휴대전화 027-663-9777 내        용 : 성막강해 26강. 사도행전 바로 이해하기    Keep Bible 이 있어서 바른 성경을 알게 되고 이런 모임도 할 수 있게 되어,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Keep Bible 운영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시는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된 모든 성도님들, 남은 2013년도 아름답게 마무리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뉴질랜드 Bible Believers 1차 모임 안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243   *뉴질랜드 Bible Believers 2차 모임 안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391   *뉴질랜드 Bible Believers 3차 모임 안내.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534#c_            
2013-11-24 13:47:37 | 최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