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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 중 하나를 꼽자면,특정 종교 계열에 속하는 사립 대학교에 자기가 제 발로 가 놓고는, 거기서 부과하는 채플이나 종교 의식이 ‘종교의 자유 침해’라면서 딴지 거는 애들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종교별로 다양한 건학 이념도 존재하며, 그 학교에 간 학생이라면 일단 그걸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는가? 자기가 거기에 신념상 동의는 안 하더라도 말이다! 그게 사회 생활의 기본 질서와 예의이지 않은가 말이다.   연세대: 대표적인 장로교 계통동국대: 불교서강대: 천주교원광대: 원불교 (우리나라 국군이 인정하는 4대 주류 종교이다)동의할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면, 그럼 그 학교엔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한다. 본인은 동국대나 서강대 같은 학교는 안 갔을 것이다. KJV 믿는 지역 교회가 주변에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오지에 있는 학교조차 꺼려지는 마당에, 하물며 건학 이념이 대놓고 타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학교엘 가겠는가?   오히려 기독교 학교라고 불리는 학교들조차도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완전히 세속화할 대로 세속화해서 진짜 성경대로 믿는 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심어 주고 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는 대표적인 기독교 사학이란 걸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연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교 성향이 더 노골적이다. 그런데 몇 년 전(한 2007년?)엔 여기에 어느 무슬림 학생이 갑툭튀(i) 유학 왔다. 물론, 입학 전에 한동대의 종교적 이념에 동의한다는 각서도 다 쓰고 말이다. 공부 잘하고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 한동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이슬람을 포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독들처럼 빨간 조끼와 붉은 십자가의 이슬람 버전으로? 아니, 천만의 말씀이다. 아주 정중하고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게, 교칙 전혀 안 어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무려 성경을 펴서 논리정연하게 이슬람을 전했다. (이슬람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명심하라) 그러면서 교내 기도실에서는 혼자 메카를 향해 알라 신에게 꼬박꼬박 기도를 했다.   포교는 “봐라,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는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 있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이지 삼위일체는 잘못됐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안티질을 한 것도 아니다. 아니 그랬는데, 룸메이트를 포함한 상당수의 주변 학생들이 그 포교에 넘어가서 신앙 정체성을 잃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교수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 그 골수 기독교 학교에 들어간 그 많은 학생들이 이슬람 학생 겨우 한 명을 신앙 논리로 못 이긴 것이다. (마 17:17 같은 주님의 탄식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 놓고 백 날 음주가무만 금지하고 종교 생활만 율법적으로 강요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금연 금주 금녀는 종교색이 전혀 없는 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규칙이다.   주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것처럼(눅 16:8), 저 이슬람 학생도 지옥 자식으로서는 임무를 정말 잘 수행했다. 작정하고 타 종교인을 계몽(?)할 목적으로 나와 종교가 다른 학교에 일부러 들어갔다면, 차라리 저 이슬람 학생처럼 행동해라! 합법적으로 노력해서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괜히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인권위 진정 내지 1인 시위, 소송 따위나 하지 말고 말이다.   또한 반대로, 허접한 한국 기독교회와 교인들도 반성해야 할 게 무진장 많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며 사용하시는 도구는 기독교 정부, 기독교 국가, 기독교 군대, 기독교 학교, 기독교 기업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라는 것도 곱씹을 점이다.   끝으로 한 마디. 전라남도에 있는 대불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 계열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계열이라고 한다. 가히 충공그깽(ii).   * * * * * * i) 갑자기 툭 튀어나와/튀어나온 ii) 충격과 공포다 그지깽깽이들아 (Shock and awe, losers!). 호머 심슨의 17시즌 8화 The Italian Bob에 나오는 대사인데, 이걸 누가 원문 의미를 초월하는 실감나는 단어로 번역해 준 덕분에 인터넷 유행어로 히트 치게 됐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8: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7-03 08:05:19 | 김용묵
행복한 사람. 어제 저희 교회 수요일 모임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사랑침례교회의 정동수 목사님이 잠3:1-14의 말씀으로 [행복의 비결]이란 제목으로 전한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에 다시 한 번 아멘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행복한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의 큰 형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남매 중 막내인데 사실 우리 형제들 중 제가 공부를 제일 못했고 저의 큰 형님이 저의 형제들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의 형제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고 출세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큰 형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도 매우 좋은 직장을 가졌습니다. 그는 월급도 높은데다가 하루 출근하고 이틀 노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의 형님이 볼 때 제가 무식하기 때문에 속아서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쨌든 간에 예수 믿고 돈이 생기고 밥을 먹고 사니깐 그래도 되었다고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의 형님이 2 년 전에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하다가 간에 암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의 형님은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습니다. 좋다는 약은 다 먹고 좋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병은 점점 과해졌습니다. 마치 성경에 열 두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처럼 말입니다. 저는 형님을 구원받게 하려고 자주 찾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형님이 화를 냈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저의 형님은 병이 점점 과해져서 자리에게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돈을 썼지만 병은 과해지고 몸도 제대로 운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형님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부터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번 6월 21일 월요일 날 오전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점심 11시 15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형님은 이제 53세입니다. 형님은 죽었습니다. 그의 지식도 죽었습니다. 그의 좋은 직장도 죽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구원받은 것 밖에 없습니다. 저의 형님에겐 가장 값진 것이 남았습니다. 만약 저의 형님이 구원을 받지 않고 돌아가셨다면 그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될 것입니다. 세상지식, 좋은 직장, 명예, 돈 ......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의 형님이 돌아가면서 다시 한 번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복된 것이고 무엇이 행복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보다 귀한 것이 건강이고 건강보다 귀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것을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8: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24 17:16:23 | 시님사람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월드컵에 열광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문득 토저 목사님의 "종교적 말장난을 경계하라"는 글이 생각나더군요.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기든 지든,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고, 피상적인 문제또한 해결되지 않지요. 직장에서의 문제가, 집안의 문제가,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설사 우승을 한다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지요....   물론 월드컵때문에 하나되어 가족들이 화합되어 화목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이 어느정도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잠시 문제가 해결되는듯 혹은 잠시 잊는등의 효과는 있을수 있겠지요.   그러나 절대로 영혼구원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월드컵에 열광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문제보다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사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냥 살아가기 급급한 사람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세상교회에서의 삶이,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참으로 고독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려봅니다. "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133:1   토저 목사님의 종교적 말장난을 경계하라에서 일부   경기 결과 때문에 더 좋아지는 사람도 없고 더 나빠지는 사람도 없다. 그가 어느편에 속해있든, 설사 막대기를 든 사람이 이긴다 해도, 그에게 더 좋아지는 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집으로 돌아갈뿐이다. 만약 그의 아내가 그를 싫어했다면 여전히 싫어할 것이고, 그가 빚을 지고 있다면 여전히 그 상태로 있게 된다. 만약 병에 걸렸다면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의 과거나 현재,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 더 나아진것이 전혀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경기에 졌다고 해서 더 나빠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게임이다.   중략   하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문제가 아니고 실제적인 문제이다. 만약 토론토 시 외곽에 총을 든 군인들이 도시를 포위한 채 공격해 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도시의 모든 시민들은 무기를 들게 되리라. 일부 생략. 왜 그럴까? 그들은 적이 쳐들어와 도시를 차지하게 되면 자신의 도시가 식민지가 되어 노예가 되고 속박을 당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개임이라면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전쟁상황이라면 누가 승리하느냐 하는 문제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올림픽이 열린다. 경쟁한다. 그러나 이것은 게임이다. 경기가 끝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더 좋게 되는 사람도 없고 더 나쁘게 되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풀도록 젊은 녀석들을 선수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 모든 사람이 빠지기 쉬운 유혹은 '종교'를 '게임'이나 '말장난'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야구공이나 풋볼을 사용하는 대신에 다른 작은 도구 즉 '말'을 던지며 장난한다. 책을 쓰기도 하고, 사기도 하며 , 교정도 보고, 붙잡고 씨름하기도 한다. 잡지를 편집하고 사기도 하며 정기구독을 하기도 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기도문을 적고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설교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듣기도 한다. (일부 생략) 단지 종교적 말장난에 불과하다. 종교적 말장난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일부 생략)   사탄은 결코 장난하지 않는다.   (일부 생략)   우리가 재창조 되고 새롭게 되고 다시 태어나고 하늘로부터 나고 거듭나게 될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종교가 더 이상 게임이나 장난이 아니고 심각한 현실로 다가올때 그는 전투를 치르게 된다. (일부 생략)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결여된 채 우리에게 다가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자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말씀이 능력으로 다가오면 완전히 변화시키고 새롭게 바꾸며 재생시키고 낡은 것을 새롭게 하여 우리가 세상의 본이 되게 한다. 어느쪽을 택하겠는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16 21:56:38 | 윤영원
     안녕하세요.^_^        아기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_^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13 13:49:50 | 이지선
얼마전 오빠의 편지 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두 주 전에는 성경으로 세상보기1.2권과 정동수목사님의 설교cd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cd를 보내 주었는데,   오빠는 받은 즉시 먼저 책을 읽어보고 오늘은 제게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두권의 책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오빠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구원받고 바른 믿음의 길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감사하기만 합니다.   한없이 작은 제가 보기에도 점점 깊어가는 오빠의 깨달음이 귀하고 감사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특해하실까? 를 생각해보게 됩니다.(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저는 오빠와 이렇게 믿음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노력하시는 형제자매님들께도 저와 같은 기쁜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편지 내용입니다.     미희야 차한박사의 성경으로 세상보기 잘 읽어보았다. 항공으로 배송해도 캐나다 내에서 배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략 2주정도 소요되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차한박사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야. 의사로서 바쁜 생활 중에도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하고 사회적인 현상을 고찰하여 성경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보통 노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지. 사회적인 사건들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풀어내는 차한박사의 놀라운 통찰력은 아마도 그분이 어릴 때부터 읽어온 성경에서 나온 지혜라고 생각해. 우리 아이들도 성경을 많이 읽어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 시키고 싶구나. 세상적인 지혜, 나의 이기적인 해석에 의한 지혜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지혜 이것을 배우고 싶다. 요즘은 성경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전에는 매 구절 의심부터 들었어. 항상 안 믿으려는 핑계와 꼬투리를 잡으려 했는데 그 것이 다 마귀의 속삭임인 것을 이제야 알 수 있구나. 마귀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려고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속에 의심을 불어 넣어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차한 박사의 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구나. 특히 제사는 마귀들의 잔칫상이라는 글을 보면서 왜 그동안 집에서 아버지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무언가 불쾌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도 함께 예수님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고 기독교식으로 조상님 은혜를 기리도록 바꿀 생각이야. 차한박사의 글이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차한박사의 글이 왜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지를 크게 깨우쳐 주었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고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인간들을 유혹해서 마귀들과 함께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참으로 이 세상은 혼탁하고 위험한 곳임을 더욱 가슴깊이 깨닫게 되는 구나. 특히 점점 전자산업이 발달해 감에 따라 마귀들의 유혹이 사람들을 광속으로 전염시켜 파멸로 이끄는 것이 가능해지니 더욱 정신 바짝 차려야겠지. 뉴에이지 운동이 그토록 교묘하게 영화나 요가, 명상 기타의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인간들의 잠재의식 속에 마귀의 입김을 불어 넣고 있는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해본 거였는데 차한박사가 깊은 통찰력으로 밝히고 있구나. 무엇보다도 차한박사가 지인들의 마지막 임종 순간에 해 주었던 그리고 2권 부록에 마무리로 적어 놓은 구원기도문이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얻을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해. 더불어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이 기도를 진심으로 하면 단 한 번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쾌한 구원에 대한 해석으로 이 책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                                                                           .                                                                           .                                                                           .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아. 주변을 돌아보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형제들이 함께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일이구나. 나도 너 따라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10 15:55:56 | 진미희
1. 주제: 공중도덕파란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갑자기 털이 북실북실 나면서 원숭이로 변한다. 그리고는 새치기, 운동 경기장에서 난동 등 갖가지 추한 행동을 다 한다.거의 1990년대 초반에... 엄청 옛날에 본 광고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엔 그러고 보니 전화기도 다이얼이요, TV도 채널 바꾸는 다이얼이 있었구나.사람 얼굴이 원숭이 얼굴로 바뀌는 CG가 하도 엽기적이고 흉악했던지라, 초등학교나 그 이전에 봤을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2. 주제: 환경어느 아날로그시계가 물속에 빠져서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시계 바늘은 째깍거리면서 점차 자정으로 다가가고, 물은 점점 흐려지고 더러워져서 시계를 볼 수가 없게 된다. 아마 시계도 고장 나서 작동을 멈췄지 싶다. 어린 나이에 보기에 은근히 무서운 인상을 받았다.   3. 주제: 환경남녀 어린이들이 하얀 세트장에서 놀고 있는데, 바닥 곳곳이 시꺼멓게 변하고, 그런 구역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도 갈수록 좁아진다. 애들은 겁에 질리고...이것도 보기 무서웠다.   4. 주제: 과소비새까만 세트를 배경으로 어느 중년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가면서 풍선을 분다. 부풀어 오르는 그 풍선에는 외제차, 고급 양주, 보석 등의 사진이 번갈아가며 오버랩된다. 그러다 나중에 풍선은 펑! 터지고 “과소비는 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듭니다”라는 무거운 멘트가 나간다.닥치고 근검 절약 국산품 애용하자고 한창 밀어붙이던 5공스러운 이념이 좀 담긴 공익 광고이긴 하나, 오늘날도 곱씹을 가치는 있는 내용이다.   “국민 소득 4천 $. 소비 수준은 2만 $.” 와.. 정말 언제적 멘트냐..;;옛날 <과학의 노래>에서 수출 100억 $, 국민 소득 1천 $.. 이랬지 싶은데.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는 아직 국민 소득 2만 $에는 도달 못 해 있다. 흠좀무.   5. 주제: 에너지 절약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나중에 석유 드럼통이 견디질 못하고 옆으로 쿵!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6. 주제: 음주 운전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차 옆에 운전자가 바깥까지 튕겨나간 채 죽어 있다. 그런데 카메라의 역방향 재생이 시작된다. 차가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오고 운전자가 다시 운전석으로 쓰윽 돌아온다. 차는 비틀거리면서 한없이 후진을 반복하는데... 재생이 끝나는 곳은, 바로 운전자가 술잔을 거하게 짠~ 부딪치는 지점.나름 참신하게 잘 만든 광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은 되돌릴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술 마시고 나서 '필름 끓겼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니 무척 잘 만든 광고 카피이다. 마치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갑니다”처럼 말이다.   요즘은 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운전 중 전화질'도 안전을 아주 위협하는 요소로 등극한지라, 외국에서는 Don't text and drive라고 교통사고 장면을 꽤 노골적으로 잔인하게 묘사한 공익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그나저나 음주 운전 단속은 꽤 엄격하게 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성 범죄는 여전히 왜 이리도 술에 관대한 걸까?   7. 주제: 언어 순화앵무새가 “저 녀석! 저 녀석!” 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학습한 말을 흉내 내는 게 나온다.평소에 앵무새 주인이 말을 험악하게 하다 보니, 말을 조심해야 할 곳에서 앵무새가 자기 주인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나름대로 시간 순으로 배열했다. (1 oldest, 7 latest)기억에 남는 공익 광고들을 나열해 보니까 은근히 많네... 혹시 이런 것들 기억하는 분은 없으신지?... 저기까지 쓰고 났는데,http://www.kobaco.co.kr/ 에서 위의 공익 광고 방송들을 다 열람해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대단하다. -_-;; 그래도 내 기억도 상당히 정확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1990 늑대인간 (원숭이가 아니었네. ^^)1989 생활하수1990 런칭1989 풍선1990 스위치1991 필름역회전1995 앵무새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옛날의 공익 광고들은 요즘 광고보다 정말 훨씬 더 무섭고 섬뜩한 게 많다는 것!! 이건 단순히 본인이 나이가 들고 감수성이 무뎌져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이 글은 처음엔 그냥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다가만 꿍쳐 놓으려고 했는데, 이 점 때문에 뭔가 영적으로 나눌 게 있음을 발견하고 이곳에다가도 올린다) 마약이나 환경 오염 내지 안보가 주제인 것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무섭다.. 반대로 요즘 광고들은 노골적인 공포감과 혐오감, 동정심 조장하는 장면은 싹 사라지고, 메시지가 더욱 implicit(간접· 암시적)해졌다.   가령, 옛날 광고에서는 무질서 난동 부리는 나쁜놈을 저렇게 원숭이로 묘사하여 노골적으로 깠다면, 요즘은 마치 서울 메트로 광고처럼 럭비 선수에다 비유해서 “님들은 럭비 선수가 아닙니다. 지하철 탑승을 그렇게 하는 건 반칙입니당*^^*”이라고... 재치를 동원하는 식.   환경을 소재로 한 광고만 해도, 옛날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게 주변 환경이 시꺼매지고 더러워지는 모습, 폐수 버리는 모습, 물고기들이 몰살 당해 물에 떠오른 사실적으로 묘사한 반면, 1996년도 광고를 보면 그냥 민속 그림을 CG로 애니메이션화해서 보여주면서 “그 (물이 깨끗하던) 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라고 표현의 수위가 한결 누그러져 있다. (1996년, 맑은 물이 그립습니다)   헌혈을 장려하는 공익 광고를 만든다면 어땠을까?198, 90년대에는.. 막 피 부족해서 죽어가는 애들 내지 병원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피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찍었을 것이다.그러나 2008년도 작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보면.. “헌혈을 위한 1초의 찡그림(주사 바늘 꽂히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입니다. 당신의 얼굴은 잠깐 찡그려지지만 누군가의 얼굴은 평생 활짝 피어납니다.”뭔가 진지하거나 심각한 뉘앙스를 찾을 수 없다. 딱 긍정적인 심상만 집어넣은 것이다.   유머와 위트, 재치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수십 년간 영상 문화가 인류의 문명 사회를 지배하면서, 그 패턴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그저 육신적으로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쪽으로만 치달아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은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 방영되는 안전 수칙 안내 동영상도 사람들이 따분해서 잘 안 보니까, 애니메이션, CG, 아역 배우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려고 난리라고 한다. 이런 영적 상태가.... 심판, 지옥, 죄, 사망, 복음 이런 것을 그것도 선포라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전하는 것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가 아예 무슨 북한 같은 기독교 박해 상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사람들은 기독교가 전혀 아닌 것을 기독교인 줄로 알고 그걸로 마음이 굳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 영적으로 암울한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광고 작가이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30초 동안 증거하는 영상물을 만들게 되었다면 어떻게 기획하겠는가? 혹은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어떤 교리를 권면, 계몽하는 영상 공익 광고를 만들다면 무슨 소재로 어떻게 만들겠는가? 잠시 생각을 해 보자. ^^;;   광고 카피로 들어갈 만한 멘트 내지 성구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육신으로는 결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이래도 은혜에서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당신의 진주를 개· 돼지에게 던지시겠습니까?”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각 멘트에 대응하는 영상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7 00:09:53 | 김용묵
  5월 30일날 저녁 기차를 타고 연변 지역에 가서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지내다 왔습니다. 주일 저녁 9시 15분에 기차를 탔는데 이틑날 아침 8시반에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번에 또 주님이 어떻게 일을 하실지 기대가 되었고 기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작년봄에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받은 백자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그 후로 연결이 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이번 연길 모임에 오셔서 참 기쁘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다는 모이지 않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저 외에 7명이 모였는데 정말 감사가 되었습니다. 31일날 모임에서 제가 마태복음 8:1-15 에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는데 말씀을 전하는 저에게도 더욱 은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재미가 있는 것은 연길에 형제자매님들이나 제가 다 불구자나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고 또한 킹제임스 성경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은혜었습니다. 조선화 자매님은 거의 소경인데 자신이 소경이 되지 않았다면 절대 구원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간증하면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니 또 감사가 되고 김순금 자매님은 젊은 나이지만 당뇨로 힘들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모습을 보니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김길동 형제님도 직장생활에 힘들게 살고 있지만 우정 시간을 내서 모임에 끝까지 참석하고 갔습니다. 저는 지금 고전1:26-29 말씀이 생각이 나는데 참으로 성경에 말씀처럼 [어리석은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이러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해 주셨다는 마음이 들면서 감사가 됩니다. 이번에 연길에 형제자매님들을 에게 식당에 데리고 가서 식사도 사드리고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국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열심히 선교헌금을 보내주시는 목사님들과 형제자매님들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여러부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에 연길에 가서 형제자매님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6 11:30:24 | 시님사람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칼빈에 의해 만들어진 칼빈주의 사상들은 세계 곳곳의 많은 교회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신정정치를 신약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신학 체계입니다.  칼빈주의의 해악 중 가장 큰 성경을 성경으로 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에 가면 영해를 할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말씀의 위로를 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저 중동 땅에 데려오신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입니다. 바로 그분이 환난 전에 우리를 하늘로 채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칼빈주의는 이런 것을 반대합니다.   칼빈주의는 어거스틴에게서 나옵니다. 어거스틴은 연옥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천주교의 모든 교리 체계를 확립한 사람입니다. 이런 뿌리에서 나왔기에 칼빈주의는 비성경적입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것을 바로 알고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010-06-04 12:40:22 | 관리자
주찬양 선교단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정말 뼛속까지 심취했던 앨범입니다. 저의 음악 세계를 휘어잡으면서 동시에 저의 신앙을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철도 덕후가 되기 전까지 제 음반 차트 1순위였고, 수 년간 수백, 수천 번 들었습니다.   세상에 성경을 배경으로 이런 노래와 연주를 만들어 내다니.. 1990년대에 한국 교회의 영적 실상은 어땠을까? 그때 이 앨범 제작과 녹음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독교 음악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 분조차 매우 안 좋은 흑역사를 남기고 간증 상실과 활동 중단으로 치달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시절 주찬양, 최덕신의 추억이 있는 분이라면내가 얼마나 주찬양 앨범을 심도 있게 소화하고 가사, 멜로디, 심지어 credits, 음악, 신학 배경 등 모든 분야를 철저히 마스터했는지 아래 퀴즈를 풀어 보세요.   1. 다음 중 최덕신이 번역한 찬양을 둘 고르면?(1) 능력의 이름 예수(2) 왕이신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3) 온유와 위엄(4) 살아 계신 주(5) 예수 사랑해요   2. 다음 주찬양 6집의 트랙 중, 후대 앨범(7~11집)에서 한 번도 재등장하지 않은 곡은 무엇인가?(1) 누가 아는가(2) 너는 내 것이라(3) 열어 주소서(4) 내 안에 있는 그 이름(5) 누구 때문에   3. 다음은 역대 주찬양 앨범에 솔로 또는 듀엣으로 등장한 적이 있는 가수들이다. 앨범에 먼저 등장한 순서대로 나열하시오.(1) 방승신 (2) 최유신 (3) 손혜원 (4) 강명식 (5) 김은희   4. 다음 중 최덕신이 작곡하지 않은 곡을 둘 고르면?(1) 7집 나를 받으옵소서(2) 8집 사랑하세(3) 9집 일어나라(4) 11집 광야를 지날 때(5) 11집 기뻐하라   5. 다음 트랙들을 러닝 타임이 긴 순서대로 나열하시오.(1) 11집 광야를 지날 때(2) 7집 예수 이름 높이세(3) 8집 천지창조/주찬양(4) 1집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5) 7집 Finale   6. 다음 중 주찬양 10주년 모음집(1991)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곡은?(1) 3집 오 기쁘도다(2) 4집 내 증인 되리라(3) 5집 주를 찬양(4) 6집 아름다운 그 이름(5)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7. 다음 중 최덕신의 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곡은?(1) 1집 너의 쓴 잔을(2) 11집 선포해(3) 9집 거룩 거룩 거룩(4) 6집 나는 당신께(5) 10집 이스라엘 내 백성   8. 다음 중 11집 <전신갑주를 취하라>의 뮤지컬 <Spot News>에서 다뤄지지 않은 주제를 둘 고르면?(1) 늘어 가는 낙태와 이혼(2) 성경 변개(3) 뉴에이지, 오컬트(신비주의)(4) 인본주의, 진화론(5) 에큐메니컬 종교 통합   9. 다음 중 4박자 계열인 곡을 둘 고르면?(1) 5집 그가 이루시네(2) 8집 용서하기 원해요(3) 11집 죽임 당하신 어린양(4) 9집 주님을 따르리(5) 6집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10. 다음 주찬양 앨범 중 fade out (음악은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데 점차 음량이 작아지면서 소멸)으로 끝나는 곡이 존재하는 것을 둘 고르면?(1) 1집 <그 이름>(2) 6집 <내 안에 있는 그 이름>(3)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4)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5) 11집 <전신갑주를 취하라>   11. 다음 중 음반에서 무반주 아카펠라로 끝나지 않는 곡은?(1) 9집 거룩 거룩 거룩(2) 5집 내 주는 강한 성이요(3) 7집 보혈 찬송 Medley(4) 8집 사랑하세(5) 10집 이제 그 자리서   12. 다음 주찬양 앨범 중 단조로 된 곡이 전혀 없는 것은?(1) 4집 <증인들의 고백>(2)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3)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4) 9집 <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여>(5) 10집 <회복>   13. 다음 중 노래 가사 부분이 조의 으뜸음(장조는 계이름 도, 단조는 계이름 라)으로 정확하게 끝나는 곡은?(1) 7집 예수 이름 높이세(2) 5집 나의 하나님(3) 10집 왕이 없었더니/예수 우리 왕이여(4) 11집 난 그분을 보았소(5) 1집 내 영혼에 파도가 일 때   * 여기서 인용된 성경 구절은 흠정역으로, 개역성경을 기준으로 작사된 주찬양 앨범 가사와는 표현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4. 다음 중 역대 주찬양 앨범 가사의 근거로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성경 구절은?(1)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숨을 너희 속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 37:5)(2)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아침의 태에서 나오는 거룩함의 아름다움들 속에서 자원하리니 주께는 주의 젊음의 이슬이 있나이다. (시 110:3)(3)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사 59:1)(4) 또 내가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더라.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라. (사 6:8)(5) 청년들과 처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 곧 그들은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분의 이름은 홀로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시 148:12-13)   15. 다음 중 역대 주찬양 앨범 가사의 근거로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성경 구절은?(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2)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간구하여 이르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 16:9)(3)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시 119:9)(4) 성문들을 지나가고 지나가라. 너희는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큰길을 쌓아 올리고 쌓아 올리라. 돌들을 모아 치우고 백성을 위하여 군기를 세우라. (사 62:10)(5)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2)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3: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2 00:14:36 | 김용묵
요즘 많은 교회들이 은사주의 금가루 쓰러트림 방언 병고침... 거기다 영서까지 또 영서를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또 성경적이지도 않게 생각되는 현상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들을 경험해야 뭔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가는 것 같아 많은 회의를 느끼고 거기에 따라갈 수 없는 내 자신을 보고 많이 괴로웠습니다.우연히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는데 바른성경을 보았다면 확실한 것을 <신령한 은사>라고 번역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좀 어렵게 설명한 감이 있어 추가로 흠정역성경을 추가시켜 보았습니다.여기 저기서 바른 성경관으로 주장을 펴고있는 많은 목회자를 볼 수 있는데 이런 분들의 주장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한번 은사주의로 흐른 교회는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든것 같습니다.어제도 어떤 형제들을 만나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은사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 하였더니 그걸 사모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간절히 사모해야 된다고... 그러면서 방언과 영서 이야기를 하는데... 도데체 영서는 뭔지... 뭐 이상한 것을 만드는 천제적인 소질은 어디서 오는건지...그래서 영서에 관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무슨 어린아이 낙서?  아니면 뭔지 모르는 꼬부랑 낙서를 쓰고 해석한다고 하는데...참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은사와 표적만을 강조하는 복술(卜術)의 목회자들 만능의 열쇠인 무적의 축복권(6)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복음사역을 통해 경험하였던 가장 놀라운 사건은 ‘오랜지 베일의 패밀리 크리스천 센터 목사 리치 올리버(Orangeval!!e, Family Christian Center, Pastor Rich Oliver)’를 선두로 한국의 일부 목사들도 이를 답습해 흉내를 내면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속임수로 행하고 있는 변화된 금이빨을 보거나 금가루가 날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罪人)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 의인(義人)들이 되는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롬 1:11) (롬 1:11, 개정)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킹흠정)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하지만 비단 다른 나라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부 은사주의 목사(기존 정통교회 목사들도 일부 포함)들까지도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성경적인 신령한 은사와 표적을 비성경적으로 왜곡, 변질시켜 성경적으로 무지한 교인들 앞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적 현상으로 각인시키면서 현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금이빨 만들기’나 ‘금가루 날리기’도 그 옛날 사도 바울도 로마 교인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신령한 은사 중, 한 가지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직접 가서 하나님의 능력인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지만, 자기의 소원대로 로마를 목적으로 한 전도 여행이 빨리 성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9~15)   (롬 1:9, 킹흠정) 내가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기도할 때에 언제나 너희에 관하여 끊임없이 말하며 10 어찌하든지 이제라도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탄한 여정을 얻어 너희에게 나아가게 되기를 간구하노라. 11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12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14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5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분량대로 나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인 로마서에는 그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신령한 은사 즉, 신기한 선물이 반드시 언급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로마서를 읽어 보면, 로마서 그 어디에도 오늘날의 신비한 기적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금이빨 만들기나, 금가루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언급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신기한 선물이란 바로 오늘날 복술적(卜術的)인 은사주의자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신기한 기적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일평생 동안 경험하였던 가장 놀라운 사건은 변화된 금이빨을 보거나 금가루가 날리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죄인들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했던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의인들이 되는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던 사도 바울까지도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죄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절망하며 탄식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러한 죄악으로 물들어 있는 자신의 몸에서 어떻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을 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평생동안 배워왔던 율법도 자기 자신에게 그 어떠한 해답도 주지를 못했으며, 그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밤잠을 설치며 외웠던 율법과 그토록 헌신했던 율법에의 삶은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스스로 자책하며 고발하여 왔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그는 이생의 절망 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뒤늦게나마 십자가의 의(義)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의를 통하여 생명의 하나님과 연합된 자기 자신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서는 연약한 자기 자신의 죄성을 극복하고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해 대해서는 다시 사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을 통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육신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의(義)의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1~2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 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롬 8:3, 킹흠정)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셨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4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죄악 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새 생명 가운데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롬 8:4) 삶의 비밀을 새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로서 그도 자기 자신이 연약하여 율법으로 할 수 없었던 위대한 ‘영화(榮華)로의 변화가 새 생명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 육신의 땅에 살고 있는 자신을 죄의 유혹으로부터 건져내어지며, 종국에는 자기 자신의 죽을 몸조차 살려 주실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당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로마 교인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주님의 말씀인 새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먹여 그들을 견고케 하고자 했던 신령한 은사, 즉 신기한 선물은 먹어도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돌로 만든 떡의 기적이 아니라, 영생의 복음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영생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새 생명의 성령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의 금은보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이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선물을 받아서 이미 죽어야 할 죄인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이라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선물을 받아서 죽을 죄인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새 생명 가운데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이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같은 모습을 닮아야 하는 미래의 모습이란, 세상적인 모습과 같은 삶을 꿈꾸어야 하는 미래의 자화상인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에디슨이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해서는 십일조만 철저히 해도 되고, 에디슨을 닮기 위해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창의적인 사고와 마인드를 갖추면 되겠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는 카네기나 록펠러의 십일조 정도가 아니라, 에디슨의 근면한 노력과 집중력 정도가 아니라, 부모와 처자 그리고 소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육신적인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7)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그러므로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한 신앙의 길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대부분 그런 길을 가기를 원하는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은 신앙의 길과, 온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카네기와 록펠러를 닮기 위한 신앙의 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평탄하고 넓은 길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한 온전한 신앙의 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좁고 협착한 길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복술적인 은사주의 목사들은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필생의 신앙의 경주(競走)를 소홀히 여기고 회피한 채, 하나님의 신기한 금이빨을 만드는 기적이나, 금가루를 흩날리는 눈속임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오도하여 수많은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체험이라는 명분의 거짓된 간증을 통하여 잘못된 신앙을 옹호케 하여 헛된 기적적 체험을 성도들에게 주입시킴으로서 자신들의 능력과 열정을 쏟아 붇는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4:27)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 하였도다.”(딤전 6:11~12)   - 윤요셉 / 벧엘교회 목사                               (뉴스앤조이에서 베스트 글에 뽑힌 내용입니다.)추가하였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1:57: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6-01 13:36:07 | 허광무
※ 이승만 - 프란체스카 도나   --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적은 비록 실책과 과오도 있고 한 가치관을 사수하기 위해 다른 가치관을 희생시키고 부작용을 남긴 것 등 비판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는 40여 년간 미국에서 미국 시민권 없이 지내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확고하게 믿었으며,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바친 독립 운동가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주세요.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골수 외교파이더니만 여자하고의 외교(사교?)도 귀재였던 모양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가 혈혈단신으로 고학으로 공부하고 독립 운동 하느라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대학원 시절엔 교수 인맥으로 예쁜 백인 처녀와 사귈 수도 있었으나 그럴 여건이 안 됐다. 그러다 그는 무려 환갑이 얼마 안 남은 나이가 돼서야, 자기보다 20살도 더 어린 거의 딸 같은 오스트리아 여자와 연애를 하고 미국에서 결혼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이 박사도 워낙 천재여서 ‘능력’(?)이 있었고, 프란체스카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부잣집 엄친딸에서 웬 듣보잡 나라의 가난한 독립 운동가의 반려자로 자기의 일생을 과감히 바쳤고, 결국은 남편이 초대 대통령이 되는 덕분에 영부인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인생 역전??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된 것은 1933년, 제네바에서 국제 연맹 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이승만은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고 일제의 학정과 침략 음모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다른 강대국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던 시절. 의기소침한 채로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프란체스카 모녀가 앉아 있던 4인용 식탁의 빈자리로 합석을 하게 된다.   어느 동양인 노신사가 떡 합석을 했는데, 이때 프란체스카가 “오~ 아저씨 혹시 조선인이세요? 거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 맞죠? 신문에서 조선 독립을 호소하는 어떤 사람 인터뷰와 논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시군요!” 이런 식으로 아는체를 했던 모양이다. 이게 이승만에게 나로 치면 “오빠~ 나도 철도 덕후예요. 한국은 새마을호라는 엄청 멋진 열차가 다니는 나라 맞죠?” 처럼 들렸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프란체스카는 처음에는 이 박사의 팬(?)으로 만났는데 그게 차츰 발전하여 연인 사이가 됐다. 집도 잘 살고 수학의 달인에다 영어 통역사 자격증까지 있던 서양 여자를 이승만이 정말 잘 낚았다. 여자 쪽은 가족의 반대, 남자 쪽은 교포 동지들의 반대가 극심하였으나 둘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뉴욕에서 한 목사의 주례를 받으며 1934년에 곧장 결혼해 버렸다. (그래도 애는 입양해서 키웠고, 혼혈아를 만들지는 않았다) 폐백이던가 결혼 비용은 프란체스카가 부모 몰래 자기가 거의 다 댔다는 후문. 둘 다 영어는 겁나게 잘 했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없었다.   참고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는 따지고 보면 둘 다 이혼 경력이 있다. 이승만은 당시 조선의 풍습이 그랬듯이 부모의 강요로 한국 여자와 한번 결혼했었지만, 그의 유학 시절에 그가 낳았던 아들도 병으로 죽고 여차여차 떨어져 살다 보니 첫 결혼 생활은 흑역사가 됐다. 여자도 옛날에 카레이서와 결혼한 적이 있었으나 자식 없이 3년만에 이혼. 그렇잖아도 카레이서와 산 적이 있었는데, 이승만 역시 미국에서 직접 운전할 때는 살인적인 난폭 운전으로 돌변해서 아내를 겁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치 모세가 이방인 여자와 결혼한 것 때문에 동족으로부터 비방거리가 되었듯이(민 12:1), 이승만의 이런 행보는 당시 교포 사회에서 곧장 트집거리가 되었다. “당신, 명색이 독립 운동가라면서 동족 중에 여자가 없어서 그 나이에 웬 외국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미친 거 아냐?” 식. 비아냥거리는 의미에서 사람들은 프란체스카를 호주댁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_-도 구분 못 한 교포들의 무지의 소치였다. 뭐야 이건...-_-;;   그녀는 이 박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데 두려운 게 무엇이냐?’란 말을 입버릇처럼 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 분이었으며, 성질 급한 이 박사의 돕는 배필 역할을 정말 신실하게 해냈다.   남편이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독립 운동하느라 피곤해 있을 때 운전도 도맡아 하고, 그가 훗날 <Japan Inside Out>이라는 책을 쓸 때에도 타이핑도 전부 해 줬다.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을 되찾은 날, 이 박사는 미국 신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로 하여금 오늘 이 날을 맞게 했다”고 아내의 공을 높게 치하했다.   그러고 보니 왕년에 태평양을 배와 비행기로 모두 건너 본 사람도 참 흔치 않은 것 같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고 서울 현충원에 이 승만과 나란히 묻혀 있다. 그녀의 유언은 남편이 생전에 독립 운동 하면서 사용하던 태극기를 관에다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 김학준 - 최용신   소설 <상록수>의 실제 인물이다. 이 승만 커플이 international이라면 이 커플은 철저하게 domestic.이들은 원래 함경남도 원산에서 집도 이웃 사이이고, 동네 교회에서 청년부의 남학생 대표와 여학생 대표를 각각 맡던 사이였다. 둘 다 브레인이었고 훗날 존경스러운 애국자로 성장했다. 이러던 차에 남자가 여자의 가치를 알아봤다. 최용신은 자기보다 연상이고 사진을 보면 별로 미녀형도 아닌 데다, 어렸을 때 마마를 한번 앓아서 곰보이기까지 해서 외모의 매력은 정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은 최에게 무려 10대 중반의 나이로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ㅎㄷㄷㄷ...그녀의 다부지고 야무진 인품, 육신의 나이를 훨씬 웃도는 정신 연령, 애국심과 기독교 신앙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최용신은 외모에 자신이 없을 뿐더러 자기는 앞으로 독신으로 살면서 농촌 계몽에만 헌신하려고 결단하고 있었던지라, 청혼 요청을 매번 거절했다. 하지만 김도 그냥 차 버리기에는 아까운 훌륭한 남자인 걸 알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그녀는 일단 약혼만 하고 결혼은, 각자 공부도 더 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뭔가 업적도 남기고 나서 무려 10년쯤 뒤에 하자고 합의를 봤다.   그녀는 이념을 초월하여 농촌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 분이었다.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화려한 도시 생활만 동경하며 일신의 영달만 도모한다면 저 버림 받은 농촌 아이들의 까막눈은 누가 뜨게 해 줄 것인가?”“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저 말고도 더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농촌을 위해 일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농사를 지으면 1년 먹을 수확을 얻지만, 사람을 가르치면 백 년치 수확을 얻습니다. 아는 게 힘입니다. 배워야 삽니다”   그 결혼 유예 기간 동안 남자친구는 도쿄로 유학을 떠나고, 그녀는 자기 신념대로 발 벗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거기가 지금의 안산 상록수 전철역 일대인 샘골이다. 그때 그녀가 지주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느라 겪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한 초인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 헌신에 대해서 이 글에서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나중엔 사람들이 집안 부부싸움의 중재까지 최용신에게 맡길 정도로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간증을 듬뿍 얻었다.   그렇게 몇 년을 있다가, 그녀는 자기도 중도에 그만뒀던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본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길에 나섰다. 아직 유학 중이던 남자친구도 그때 일본에서 만났다(이게 마지막 만남이 됨). 그러나 3개월도 안 돼 지병 때문에 유학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샘골 사람들은 “최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니.. 그냥 자리에 누워 있기만 하더라도 제발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결국 샘골로 돌아왔는데... 최용신이 거기서 가만히 요양만 했겠는가? 또 옛날 버릇이 살아나서 몸 버려 가며 일했다. 결국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창자가 꼬여서 음식물 대신 소화되고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다. 1935년 1월,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학교 운영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어린 제자들을 하나씩 부르면서 감을 수 없는 눈을 감고 말았다. 서른도 채 못 된 나이에, 결혼 유예 기간을 1년도 채 안 남기고 말이다.   마을은 울음바다가 됐다. 평소에 샘골 학원을 감시하고 인원 수 줄이라고 최용신에게 딴지만 걸던 일제 형사도 고인의 장례식에서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약혼남이던 김학준 역시 허겁지겁 달려왔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을 장면이었다. 애인의 죽음 때문에 그 후 그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정말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같이 죽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여친이 못 이룬 꿈을 내가 이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함흥 영생여고에서 교사가 되었다. 훗날 정태진 등과 더불어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은 김학준이 저 김학준이다! 그는 교회 인맥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여자와 결혼(재혼이 아님)하여 가정을 꾸렸다. 최용신에 대한 첫사랑 기억은 그렇게 가슴 속에만 묻어놓고 새 삶을 개척한 것이다. 그러다 1961년에 신상옥 감독의 영화 <상록수>가 개봉하던 당시 “내가 심훈의 소설에 나오는 박동혁의 실제 인물이오!”라고 대담한 커밍아웃을 하여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자기 아내조차도 그때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후엔 조선대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의 격변의 역사를 체험하다가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으면서 “나는 꼭 최용신의 무덤 곁에 묻어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망인인 부인은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 최용신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거기 일대에는 수인선 협궤 철도가 건설되었습니다(1937). 사실, 제가 소설 <상록수>를 다시 찾아보고 최용신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 것은, 지하철 역들을 막 암기하다가 안산선에 상록수라는 역이 있는 걸 발견하고부터였지요. 철도가 저의 정서에 얼마나 선한 간증과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더 중요한 것: 올여름 추진 계획 중인 청년부 연합 MT(가칭)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한국의 킹 제임스 교회 내부에도 저런 커플들 많이 나오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ㅎㅎㅎ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7 21:53:35 | 김용묵
안녕하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 가입 한 후 처음으로 글을 적어 봅니다. 저는 현재 토론토에 있는   교회(장로교)에 다니며 태어났을때 부터 어머니 품에 안겨,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여러교회(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를 다니다 20대 중반에서야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니 기쁜 마음에 열정이 생겨서 그때부터 교회일도 열심히 하고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 뜻은 무엇인가 헤아리고 그 뜻에 항상 순종하려 노력하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점도 많이 생겨서 나름대로 성경도 보고 여러 책도 보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하며 그 궁금증들을 많이 해소 합니다. 요즘은 흠정역성경과 이곳 웹싸이트를 통해서 많은것을   배우고 있답니다.   오래전부터 안식일 문제에 대해 궁금증이 있어서 이 곳 웹싸이트 어디엔가 안식일 문제에 대한 내용이   있을까 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없어서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성경에선 일요일을 안식일로 거룩히 지키라고 한적은 없지만   일곱째 날(토요일)을 안식하라고 하신건 확실한데 왜 일요일을 지키게 돼었는지?   개신교회에선 부활하신 우리 주 돼신 예수님을 기념하기위해   일요일을 지키는 거라고도 합니다.(그래서 주일이라고 부르는 거죠.)   하지만 카톨릭이 종교개혁이 있기 천여년 전에 예배드리는 날을   일요일("태양"신인 Horus를 "Sun"day에 기념하기 위해)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역시 카톨릭을 통해 움직이는 사탄의 장난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키네 일요일로 지키네 하는 문제로 하나님의 성도가 구원을 받고 안 받고 결정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성경에 기록됀 대로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 정말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돼는 이슈 아닐까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토요일날 예배드리자고 하자니 제칠일 안식교라며 이단이라고 정죄할 까봐,   그리고 오랜세월 일요일에 예배 드리던 습관 때문에 솔직히 전 "우린 토요일날 예배드려야 해!"라고 말하지   못 합니다. 제가 성경을 깊이 있게 읽지 못 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무지로 인해 저의 생각이 잘 못 돼었다면 부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저보다 나은 형제 자매님들을 통해   제 생각이 바로 잡혔으면 좋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25: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7 15:46:37 | 김대영
이전에 TV를 보다가 어느 드라마를 잠깐보게 되었는데요,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채널을 다른데로 돌린 적이 있습니다.오늘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이 드라마 관련 기사를 접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기사를 보니 제가 본 것이 그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쓴 것이며 이전의 드라마와 달리 동성애를 주변 이야기로 다룬 것이 아니고 비중있고 주요내용으로 다룬 드라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것이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으며  점점 더 많은 매체에서 이것을 긍정적으로 다룰 것같다는 느낌을 갖게되었습니다.   세상적 평가는 동성애라는 소재를 아주 감동적으로 인간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시청율이 20%정도 된다고 합니다.저는 시청율 20%라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이 정도 수치는 아시다시피 대단한 시청율이며 세상의 많은 사람이 거부감이 아닌 관심을 둔다는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동성애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이전과는 다른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미디어의 힘입니다.  즉, 이것은 남녀간의 사랑과 같이 크게 나쁜것이 아니구 그럴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지금은 익숙해지는 시대입니다.  좀 더 지나면 당연한 시대가 오겠지요.이런 것이 비성경적임을 지적하게 되면 "너는 왜 그리 융통성과 연민과 사랑이 없냐"라는 핀잔을 듣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런 것을 통해 거부감이 점점 약해지고 익숙해지면 마귀는 또 다른 미혹을 우리앞에 드러내어 받아들이라고 손짓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도 받아들였는데 이것도 괜찮은 거야" 하면서 말이지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에 대한 것을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여 그릇된 것을 아름답다고 느껴지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큰 죄입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주님 오실때가 가까워지는듯 합니다.   레위기 20:13또 남자가 여자와 함께 눕듯이 남자와 함께 누우면 둘 다 가증한 짓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그들을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keepbible에도 목사님이 동성애관련해서 올리신 글이 있어 참고로 링크를 걸어둡니다.  자세한 성경적 설명은 이 글을 참조하세요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163[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5 13:50:43 | 김학준
  blog.chosun.com/h2002 제 블로그에 있늘 글을 한번 가져왔 습니다.   거의 20년전에 심장 부정맥으로 고생했던 이야기입니다.   김포에서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인천에 근무할 때 일이다. 91년도 쯤 어느 날 어지러움 증이 시작 되었다. 그 증세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규칙 적으로 나타났다. 운동할 때와 가만히 있을 때와 상관없이 괜찮다가도 나타나고 안 그럴 때는 언제 그랬나는 듯이 괜찮았다. 그러나 그 불편이 만만치 않아 부평에 있는 대인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보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고(빈혈 검사 등) 뇌 단층촬영까지 해보았으나 별 이상은 찾지 못하고 의사는 신경성인 것 같다는 진단을 해 주었다. 신경 좀 들쓰시고 살라고 일도 바쁘기도 하였고 집안사도 그리 평안하지는 못하였지만 요즘 이정도 신경도 쓰지 않고 어떻게 사냐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계속 어지러움 증의 불편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가 서있는 몇 초 동안 어지러움 증이 오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눈은 감지 않았음)  머릿속에 하얀 점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든 후 (그때 순간적인 생각으로 컴퓨터 전원이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함)  뒷머리가 화끈한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 생각이 이러다 사람이 죽는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참으면서 지냈다 신경성이 거니 하면서……. 어느 날 교회에서 주일날 예배시간 중 어지러움 증이 반복적으로 생겨 혹시나 하는 느낌으로 손목의 맥을 잡아 보았다. 어지러움 증이 일어날 때는 손목의 맥이 잡히지 않았다. 별 이상한 일이다 생각하며 지내는 중 92~93년도 쯤 공무원 신체검사를 하게 되어 별 이상 없이 끝내던 중 의사 문진(면담)시간에 교회에서 있었던 어지러움 시 손목에 맥이 잡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옷을 올려 보라고 하더니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들어 보고는. 의사 왈 심장이 뛰는 것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바로 병원에가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는 것 이었다. 그날 이후 오진과 반복적인 검사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나의 검사 기록이 있는 대인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보았다. 진단은 부정맥이었다. 병원에서 맥시틸이라는 약을 처방해주어 한동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약의 내성이 생긴 후 증세는 예전보다 더 심해지는 듯 했다. 다시 대인 병원에 찾아가니 병원에서 증세가 심각하니 소견서를(소견서에는 심전도 그래프용지를 붙여줌)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서 다음날 길 병원에 찾아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심전도 검사를 하는데 심전도가 잘 나오지 않는지 여러 번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 후 검사 결과를 보러 다음에 오라고 하여 심전도 결과를 지금 볼 수 없냐 하였더니 간호사 에게 가져오라 하여 보더니 지금 상태가 아주 심각하여 지금 당장 병원에 입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입원할 수 없다고 하자 지금 당장 위험한 처지에 처할지 모르는데 무슨 소리냐 하며 입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작장에는 잠간이라도 다녀와야 한다고 하였더니 다녀오라고 한다. 2시간 정도 대충 인수인계를 하고 병원에 돌아오니 간호원이 왜 인제 오냐 돌아 가셨는줄 알았다고 한다. 웃음으로 넘기고 입원 절차를 받는데 상태가 심각하여 중환자실로 가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중환자실에 비어있는 병상이 없으니 우선 응급실에서 대기 하라고 한다. 응급실에서 링거수액 과 심장 모니터를 달고 누워있는데 심장모니터의 심전도 그래프가 계속 끊기다 뛰다 하고 있었다. 응급실을 다녀가는 의사선생님들은 내 얼굴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별 이상한 사람도 다 보겠다는 듯 보며 지나 같다. 나는 그렇게 심한 증세는 느끼지 않고 야간의 어지러움 증이 계속 되었다. 그때 우리 집사람이 와서 의사에게 애 아빠 어떠냐고 물었더니 의사 왈 오늘밤도 못 넘기겠습니다!  하더란다. 그 말을 들은 집사람은 웬일인지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더란다. 중환자 실로 저녁 늦게 들어갔다. 의사들이 분주하게 다녀가고 간호원은 내 앞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중환자실 특성상 거의 의식이 없는 사람이 태반이고 나처럼 것으로 멀쩡한 사람은 없었지만 의식이 없는 옆 교통사고환자 의 심전도는 정상인 반면 내 심전도는 뛰다 말다를 반복하니 간호원이 불안하여 내 앞에서 떠나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의사들이 와 자기네끼리 무슨 약을 처방해야 해야 하나 의논 하는 것 같아 전에 대인병원에서 맥시틸 캡슐을 처방해 먹었다고 하였더니 맥시틸 리도카인제제 아닌가? 하는 말에 리도카인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위생병으로 근무 경험이 있어 여러 가지 약을 다루어 보았고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로 군에서 은밀히 의무대에서 시행하고 있던 포경수술의 마취제로 쓰였던 약이었다. 치과에서도 발치 시 이약을 잇몸에 주사한다) 의사들은 내가 군 병원에서 보았던 리도카인 주사액을 가져오더니 내 체중에 적당한 약의 분량을 링거 병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그 후 바로 부정맥의 증세는 완화 되었다. 그때 생각 환자는 자기가 먹는 약의 이름도 알고 있어야 도움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그런 고역도 없었다. 의식이 없으면 모를까 소변도 침상에서 간호원 반대방향으로 변기에 다보고, 대변은 그 자리에서 볼 수가 없었다. 간호원에게 사정하여 대변 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더니 3일 인가 4일 만에 보호자(마누라) 입회하에 중환자신 구석에 커튼을 치고 볼 수 있었다. 7일 정도 중환자실에 있다 일반 병실로 옮겼다. 병의 원인도 찾지 못하여 입원 후 12일에 퇴원 하겠다고 하여 퇴원 하였다. 퇴원 때 의사가 하는 말이 다음 병원에 내원할 때는 다른 주치의를 찾아보라고 일러주어 다른 주치의를 찾았다. 그 의사는 차트를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다른 약을 처방에 주었다. (그때 그 의사는 그 병원에서 심장협심증 치료에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의사였다. 허벅지 대동맥을 통해 스탠스 그물망을 심장까지 넣어 심장 혈관을 널게 지지해주는 수술이다. 그 후 돌아가서 그 약을(약 이름은  배라파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먹자마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 하는데 감당이 되지를 않았다. 바로 병원으로가 이약을 먹으니 증세가 감당이 안 된다고 하자 다른 약(프로페라놀정)을 처방해 주었다. 그 약을 먹은 후 심장은 잠잠해지고 나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전에는 부정맥의 나타나는 양상이 불규칙 적이었는데 이약을 먹은 후로는 심하게 움직이면 가슴이 막 뛰는 것이 감당이 되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증세가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져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심장병인 아이들이 체육시간에 운동도 못하고 않아 있던 생각이나 내가 이약을 먹은 후로는 완전히 심장병환자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사를 찾아가 증세를 이야기 하고 이약의 처방을 바꾸어 달라 요청하였으나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다고 핀잔만 들어  그 이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이후 6개월 정도 약을 먹지 않고 어느 해 1월경 조선일보인가? 아무튼 우리나라 심장병에 관한 3대 명의가 심장병에 대해 특집 기사를 써놓은 것을 우연히 보고 내 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의사 이름과 그분들이 계신 병원을 메모해 놓았다. 그리고 증세가 없을 때 가 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증세가 확실히 나올 때 까지 기다렸다 증세가 나타나자 안세병원 이웅구 박사에게 같다. 그때는 직장에 컴퓨터가 있어 내 병력을 A4용지 2장 정도에 워드로 쳐 보여드렸더니 야 별 환자 다 봤네 하시면서 진찰을 하셨다. 심장병의 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면 6채널 심전도는 물론 24시간 심전도 모니터를 하면 확실한 진단이 나온다. 그날도 심전도 모니터를 가슴에 전극을 달았다. (카세트 같이 생긴 물건을 배 쪽에 매달아 카세트테이프에 24시간 동안의 심장 상태를 기록 하는 기계이다.) 그 후 심전도 검사 결과를 보로 병원에 가니 이웅구 박사님이 하시는 말이 당신의 병이 중하니 오늘 당장 입원 하라고 한다. 직장도 있고 입원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집과 직장에 전화를 걸라고 하며 전화를 주신다. 집과 직장에 전화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올라 같다. 심장모니터를 달고 조금 있으니 간호사가 뛰어 왔다 괜찮으시냐고(나중에 보니 간호사실에서 내 심장상태가 모니터 되고 있었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자 다시 의사에게 뛰어 같다 오는 것 같았다. 진짜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눈치였다. 병원에 입원 하면서 약을 코다론(아이오다론)이라는 약으로 바꾸어 먹었다. 증세는 바로 호전되고 일주일후 퇴원을 하였다.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으며 다니는데 이웅구 박사가 한사랑병원을 개원 하였다고 하여 그 병원으로 다시 옮겨 통원치료를 받는데 어느 날 이웅구 박사가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자세한 이야기가 없어 몇 번 통원치료 중 이웅구 박사가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세도 호전 되고 하여 가까운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G병원으로 가니 몇 년 전의 나의 병원기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웅구 박사가 나에게 준 심전도 체크 시트를 건네주었더니 그걸 내 차트에다 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내 것이니 돌려달라고 하자 간호사에게 복사를 시킨 후 원본은 도로 돌려주었다. 몇 번의 통원치료 후 의사가 하는 말이 언제까지 약을 먹을 거냐! 수술을 하자고 하여 수술하면 완치 확률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한 60% 정도라고 하여 수술은 포기하고 약으로 먹기로 하였는데 병원에 가봐야 같은 약을 반복적으로 일주일 치를 받아오는 것이 번거로워 인근 약국에 약이름을 대고 100정에 오만원 정도를 주고 그 약을 하루에 세알에서 1알까지 줄이다 끊었다. 약을 끊은 자가 거의 8~9년 정도 되는 것 같지만 큰 이상 없이 지내고 있다. 2000년도 말경 우연히 TV를 보다 이웅구 박사를 보았다 그때 뇌출혈로 쓰러진 후 여러 병원을 전전 하다 후배가 안산에 있는 자기 병원에서 모시고 있다고 한다. 내 병세를 호전시켜 주신 분이 저렇게 어려움을 겪는 다고 생각 하니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못하였다. 하여튼 의사들이 보면 곧 죽을 사람같이 보였던 내가 이제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고 나이 40에 딸까지 얻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과 집사람에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4 14:43:58 | 허광무
※ 초과 달성   1.“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마차보다 두 배나 빠른 교통수단이라니?” (잉글랜드 계간 리뷰, 1825년 3월호)   2.“에니악 컴퓨터가 19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하고 무게가 30톤인 걸로 봐서 미래의 컴퓨터는 1000개 정도의 진공관으로 구성되고 무게는 1.5톤 정도 나갈 것이다.” (Popular Mechanics, 1949년 3월호)   3.“공기보다 무거우면서 하늘을 나는 기계는 제작 불가능하다.”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켈빈, 1895. 절대 온도 단위 이름이 붙은 그 과학자임)-- 육군(army), 해군(navy)과는 달리, 가장 늦게 생긴 공군만이 자신만의 고유명사가 없이 영어로도 air force이다. 그리고 항공 여객업계의 용어 역시 상당수가 선박 용어를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cabin, boarding 등.   (위 1~3의 출처: http://ropas.snu.ac.kr/~kwang/memo/skeptics.html )   4.과거에는 SF(공상 과학 소설) 작가들이 둥그런 브라운관 모니터로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텔레비전 전화를 상상했으며 손목 텔레비전, 휴대용 전자 사전, 심지어 일종의 정보 검색 서비스 같은 것도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때 어느 누구도 전국민이 주머니에다 전화기를 넣어 갖고 다니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며 인터넷, 블로그, 유튜브, 스마트폰 같은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5.옛날 사람들은 진짜로 인간의 과학 기술 능력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기술과는 별개로 거대 자본과 정치력에 의한 기술의 대중화와 생활 패턴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밤에는 잠이나 잘 것이지 전깃불 같은 게 있어서 뭐 하게?”“컴퓨터 메모리는 640KB면 충분하고도 남는다”“텔레비전 같은 건 만들어도 상업적으로 아무 실용성이 없다”   같은 예측이 그때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게 다 하늘로부터 온 건전한 지혜에 의해서만 된 건 아니라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이 언제까지나 예상을 뛰어넘는 발전만 해 왔으며 세상을 뒤바꿔 놓은 과학자나 IT 거장들의 예측이 언제나 적중만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래의 예들을 잘 생각해 보자.   ※ 목표 미달   1.1970년대에 인류가 이미 달까지 갔다 오는 데 성공했으니, SF에서는 그로부터 2, 30년쯤 뒤엔 인간이 응당 달에 식민지도 만들고 달 여행 관광 상품 정도는 개발되어 있는 게 정상이라고 다들 상상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같은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그러나 2001년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우주 개발은 요원하며, 오히려 그 옛날에 인간이 정말로 달에 갔다 오긴 했는지가 역으로 의심을 받고 있을 정도이다.   2.우주 개발이 갓 시작되었던 시절에 과학자들은 금성은 지구 다음으로 생명이 살기 좋은 행성일 거라 예상해 왔다. 적도 지방은 태양과 가까워서 좀 더울지 몰라도, 특히 극지방 정도면 심지어 마이애미 해변 수준일 거라고 말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에서는 금성인과 화성인은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금성에 처음으로 도착한 탐사선이 착륙한 지 단 90초만에 고온 고압과 강산(acid) 세례를 못 버티고 짜부러지면서, 현실은 이상과 달라도 극단적으로 너무 다르다는 게 곧 밝혀졌다. 지구에서 샛별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금성은 사실 태양계에서 손꼽히는 지옥 행성이었던 것이다. (90분이 아니라 ‘초’다. 그 반면, 화성에 착륙한 탐사선은 수 개월~수 년간 활동하기도 했음)   3.천문· 우주 분야는 그렇다 치더라도 컴퓨터 쪽만 해도 그런 미신은 엄청 많다. 영화나 매스미디어가 컴퓨터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대중들에게 굉장히 많이 주입하기 때문이다.10년쯤 전에 Y2K 문제, 소위 말하는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었는지 기억하시는 분? 그러나 현실은 극소수 일부 컴퓨터에서의 사소한 오동작을 제외하면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지금은 2012년 종말설이 또 나돌고 있는 중이다. ^^;;   4.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도 이제 끝났다. 물론 컴퓨터 성능의 향상 자체가 멈춘 것은 아직 아니지만, 반도체의 집적도와 클럭 속도 경쟁은 한계에 도달하여 무의미해져 있다. 개인용 컴퓨터는 6~7년 전이나 지금이나 3~4GHz를 넘는 녀석을 찾기가 힘들다. 1990년대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 이제 과거에 386, 486처럼 컴퓨터가 급격하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   5.1990년대 말, 인텔 사에서 Itanium (IA64)이라는 64비트 아키텍처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을 때, 당시 IT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전세계의 컴퓨터계가 확 뒤집힐 거라고 온통 설레발을 쳤다. 과거에 PC 환경이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갈 때 워낙 변화가 컸기 때문이다. 윈도우 3.1에서 윈도우 95로 넘어갔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0년 후 지금은?? 여러분이 이 글을 보기 위해 사용 중인 웹브라우저조차 90% 이상은 여전히 32비트 x86 아키텍처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간 변화는 정말 급격했지만, 32비트에서 64비트로의 변화는 아주 원만하고 느리다.   아래 그래프는 IA64 아키텍처를 개발한 인텔이 이 CPU로 인해 예상되는 매출을 연도별로 예측한 것이다. 처음 1997년에는 IA64가 앞으로 21세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돈다발을 갈퀴로 긁어모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 예측은 기하급수이던 게 이내 산술급수로 격하되었으며, IA64의 실제 매출은... 무려 주황색 선에 그치고 말았다...!! 진짜다. 그리고 지금 저 아키텍처는 완전히 망했으며, 오늘날은 IA64 대신 x86-64라는 기존 32비트 x86과 완전히 호환되는 다른 64비트 아키텍처가 그나마 32비트와 64비트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   ...   ‘거짓되이 과학이라 불리는 것’을 크리스천이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 자체야 철저하게 가치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며, 그것과 관련된 공상만으로는 역시 나쁠 게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맹신하느라 그것이 진실을 가리고 영적 안목을 가릴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회적인 사건이었던 것처럼, 휴거와 예수님의 재림 역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단원이 될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컴퓨터, 인터넷, 우주 개발까지 다 겪고서야 세상이 그렇게 끝날 것이다. 그동안 종말이 온다면 몇 번이고 왔을 수도 있었으나 세상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존재하는 이 시대는 말세에 아주 잠깐 흥왕하다가 곧 사라질 보잘것없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신문과 성경을 균형 있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과학 기술이나 세상 정세에 너무 섣불리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귀가 얇아서 뭐 하나 과학 기술이 개발됐다거나, 뭐 교황 내지 미국 대통령이 바뀐 걸 보고서 “이제 종말이 왔네, 이게 짐승의 표 666이네” 식으로 쉽게 동요해서도 안 되겠지만, 세상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그대로 유지된다는 느슨한 믿음도 성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크리스천의 삶의 역설이란 게 이런 면모가 아닐까?   마지막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은 과거의 오류 사례들로부터 뭔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고 혼돈스럽기 그지없는 이 시대에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서, 선악은 정확하게 분별하되 성경이 언급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는 지나친 추측이나  확대 해석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과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서로 별 관련이 없다는 맑은 정신과 건전한 믿음을 주변에 일관되게 증거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2 16:23:29 | 김용묵
기독교계에는 여러 가지 교파들(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등)이 있습니다.   (*) 참고로 기독교(Christianity)와 기독교계(Christendom)는 다릅니다. 기독교계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모든 종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몰몬교 등도 기독교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닙니다.   독자께서는 이런 교파들의 기원과 창시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가장 성경적인 모임은 어떤 곳일까요?   상식을 위해서라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강좌는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사 41 교회사 42[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1 10:24:21 | 관리자
기독교계에는 여러 가지 교파들(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등)이 있습니다.   (*) 참고로 기독교(Christianity)와 기독교계(Christendom)는 다릅니다. 기독교계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모든 종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몰몬교 등도 기독교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닙니다.   독자께서는 이런 교파들의 기원과 창시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가장 성경적인 모임은 어떤 곳일까요?   상식을 위해서라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정수영 목사님의 교회사 강좌는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사 41 교회사 42 
2010-05-21 10:20:06 | 관리자
1. 어지간하면 이제 좀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자   ‘짜장면’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가 뭔지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자장’은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이고 우리말 맞춤법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 극히 일부 듣보잡 언어를 제외하면 된소리를 쓰지 않고 있는데, 된소리로 발음된다고 다 된소리를 써 버리면 버스도 뻐스로, 게임도 께임으로 바꿔야 되기 때문이다.(i) 그런데 짜장이 과연 버스나 게임 같은 급의 생소한 외래어일까? 짜장이 외래이어이면 빵, 가방, 담배, 구두 같은 단어도 몽땅 외래어이다. 물론 순우리말 ‘짜장’이라는 단어는 부사로, ‘참, 과연’.. 즉 영어로 치면 yea나 indeed 같은 뜻이 별도로 있긴 하다. 쉽게 말해서 창 3:1의 Yea, hath God said를 “하나님께서 짜장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처럼 옮겨도 된다!하지만 이제 그 짜장과 저 짜장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오히려 후자의 뜻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게다가 짬짜면 같은 응용(?)까지 있다.   이제 와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단어로 전락한 ‘자장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자장면에다가 외래어 표기법을 갖다 붙이는 건,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에 어긋난다거나 셈씨(數詞) 뒤에다가 님 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렸고 ‘하느님’이 맞다는 식의 비약인 것 같다. 고유명사를 만드는 건데 부르기 쉽고 최소한의 어원적 근거만 있으면 됐지, 그런 것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ii)   주)i. 거의 같은 형태의 외래어인 ‘버그’라든가 ‘게이’는 음절 첫소리가 절대로 된소리로 바뀌지 않는다! 께이라고 안 부른다. 그냥 의미상 동음이의어를 비껴 가려고 본능적으로 경화 여부가 결정된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   ii. 사실, 고유명사 중에 쌍용도 틀린 말이다. 청룡, 황룡 할 때처럼 쌍룡이 맞다. ^^ 하지만 고유명사인데 뭔들 어떠하겠는가. 오뚝이인들 어떻고 오뚜기인들 어떠하리? 2. ‘석/서/세’, ‘넉/너/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세’, ‘네’로 통일하자   ‘종이 세 장’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아는가? ‘석 장’이라고 해야 맞다.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구분이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한국어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너’(3 or 4) 같은 예외만 인정하고, 뒤에 단위(말, 개, 장 등등)에 따라 숫자의 표현이 바뀌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낫겠다.   3. ‘째’와 ‘번째’ 좀 구분해서 쓰자   ‘째’는 영어로 치면 정확하게 n-th(순위, 서열, 차수)에 대응하며 (첫째, 둘째, ..., 열한째, 열두째),‘번째’는 n-th time(반복되는 일의 횟수)에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 선수가 둘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 이 선수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바퀴째)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쓰임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둘 다 무조건 ‘번째’가 쓰이며, 순위인지 횟수인지는 그냥 문맥으로 대충 구분되는 중이다. ^^;;;; '째'는 명사형으로 "첫째(아이)를 낳았다" 정도에서나 쓰는 것 같다.   4. ‘기존’을 제발 오· 남용하지 말자   이 단어의 쓰임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본인이 보기에 IT 업계이다. 하도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꾸 옛날 것과 비교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존’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이란 뜻이다. ‘현존’이나 ‘실존’처럼 ‘하다’를 붙여 용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이 ‘이전’, ‘예전’ 같은 뜻으로 막 남발되고 있고, 오히려 ‘기존하다’라고 용언으로는 거의 안 쓴다. 기존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기존에 있던 것은 버리세요” 같은 문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5. ‘커녕’은 조사(토씨)이다   커녕은 ‘도’, ‘조차’와 동일한 조사이다.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해도 원래 맞다. 커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이 ‘는(은)커녕’이다.그런데 요즘 쓰이는 양상은?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커녕을 거의 부사처럼 습관적으로 띄어서 써 주고 있다. ^^;;   6.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발 구분해서 쓰자   “ ‘다르다’는 ‘틀리다’와는 의미와 쓰임이 다른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라고 쓰면 틀립니다(틀렸습니다).”   말 그대로 different와 wrong의 차이이다.‘틀리다’는 보통 ‘틀렸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현재형에다가 ‘다르다’라는 의미가 자꾸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7.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은 ‘더 이상’도 ‘덜 이하’가 잘못된 것만큼이나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김 모 화백의 만화 대사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이 표현은 ‘더는’이나 ‘더’라고 군더더기를 빼거나, 혹은 하다못해 ‘그 이상 (더)’라고 써야 맞다.   8.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빱’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김밥을 ‘김밥’이라고 그대로 발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곰국, 비빔밥은 다 국과 밥이 된소리로 변하는 반면 짜장밥, 보리밥, 볶음밥은 예사소리 그대로이다. 곰국이 곰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니듯이, 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단어는 된소리이고 단순 재료 합성일 때는 예사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비빔밥과 볶음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볶음밥은 단순히 둘째 음절이 '끔' 된소리여서 셋째 음절이 예사소리로 유지된 것일 뿐이다.   즉, 된소리로 바뀌는 건 거의 랜덤인 듯하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왜 굳이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발음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하나 덧붙이자면 햇님도 잘못된 말이고 해님이 맞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정말 울트라 캡숑 어려운 개념이며, 단어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쩜’과 ‘짜’   이미 국어에서 별도의 변별 요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짜’(특정 글자를 강조하는 접미사)와 ‘쩜’(소수점의 명칭)이 별도의 표기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자’는 단어의 끝에 등장하면 字보다는 者의 의미로 훨씬 더 강하게 쓰이며, ‘점’은 point보다는 score의 의미로 더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님짜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라기보다는 완전한 단어의 일부입니다.”“저희 어머니의 성함은 김 순짜 애짜입니다.”“저 선수의 점수는 이십오쩜 오점입니다.”   10. ‘여덟’   8을 뜻하는 ‘여덟’은 먼 미래엔 아예 ‘여덜’로 철자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열에 여덟은” 할 때 ‘여덜븐’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슷한 예로 ‘돐’이라는 단어가 맞춤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돌’로 퇴화가 확정된 적이 과거에 있었다. 북한에서 인명의 ‘희’를 아예 ‘히’로 바꿔 버렸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의’를 제외하면 ㅢ를 ㅡ+ㅣ로 발음하는 경우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 * * * * 본인의 그렇게 문학 소년이라든가 토박이말 순수주의자가 아니며, 일본식 한자어라든가 일본어· 영어 번역 말투를 무조건 배격하자 주의도 아니다.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용법이라 하더라도, 학문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피동형이나 수동태식 표현도 필요하고 이중 과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번역투 표현 안 쓰고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같은 표어를 짤막하게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말 순화 운동가들이 저런 현실적인 면모를 대체로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   단지, 번역투를 전혀 쓸 필요가 없는 문장이 번역투 때문에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우리말 어법이나 정서에 안 맞게 되는 걸 보면 못 참는 스타일이다. 부모도 가지고(have), 행사도 가진다고(have) 번역하는 건 잘못됐다. ‘-하기’, ‘-함’ 등 용언을 명사로 만드는 다른 방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법 책에 나오는 ‘-하는 것’(동명사^^)만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어색한 번역투이다.   어휘로 화제를 옮겨 보면,오랫동안 정착해 버린 외래어들을 무리하게 순화하는 것에 대해서 본인은 좀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미 있는 토박이말부터 좀 잘 활용해 쓰고, 그걸 ‘영한사전’이 제발 잘 반영해 줬으면 좋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요즘은 영어로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가 하도 많다 보니, 우리말에도 국어사전보다 영한사전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reliable을 너무 길게 ‘신뢰할 수 있는’ 대신에 ‘미더운’이라고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faithful에 대응하는 말로는 ‘미쁘다’가 있다. 이건 개역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우리 흠정역에서는 사라졌다.hurl을 ‘세게 내던지다’에 앞서 ‘내박치다’라고 풀이하면 훨씬 더 좋다. 본인이 보기에는 셈틀, 무른모, 누리꾼 같은 것보다 당장 사전에 올라 있는 저런 실용적이고 검증된 말들부터 살려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며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의 사회성에 너무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성경도 그런 걸 감안해 준다면?   본인은 작년쯤에 교회에서 내는 소책자를 하나 번역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간의 의의 한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목에서 ‘깜냥’(i)이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집어넣었었는데, 책이 출간된 후 깜냥이 뭐냐는 문의가 꽤 들어왔다.. ^^;;‘깜냥’은 비속어가 전혀 아니며 정상적인 순우리말이다. 본인 역시 10년쯤 전, 중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정도이다.   영어 원문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깜냥이라는 단어는 지금 생각해도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처럼 말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못 알아들으면 뭐...;;;     성경은 인간이 자기 깜냥으로 스스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 방법은 바이없다(ii)고 말한다.   끝으로,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틀렸지만, “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는 말이 되는 표현이다. ^^;;;   주)i. 스스로 일을 헤아려 해내는 얼마간의 힘.ii. 어찌할 도리나 방법이 전혀 없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20 00:40:51 | 김용묵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기사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내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7/2010051700080.html[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17 14:51:33 | 관리자
제게는 오빠가 한 명 있습니다. 오빠는 1년 전 쯤 야심찬 프로젝트 연구를 위해 1년 계획으로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 벤쿠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얼마 전에 그 프로젝트가 여러 사정으로 실패하게 되었고, 재정적 손실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빠가 많이 낙심해서 힘들어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오빠가 인생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 되어,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메일로 격려와함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오빠 주변 지인들로 부터도 격려와 함께 복음을 듣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이 사이트를 소개하게 되었고, 먼저 들어야 할 설교 말씀과 강의도 추전해 주면서 몇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계속 기도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김영균 목사님의 간증이 오빠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해 주게 되었고,   어제는  답신이 왔는데 그 내용을 읽고 저는 하나님께서 오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오빠의 편지를 이곳의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 싶어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족 구원을 위해 안타깝게 기도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위로와 격려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오빠의 편지 내용인데 그대로 올립니다.   미희야 모두들 잘 지내고 있단다. 구원강의와 김영균목사 간증 다 보았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지극히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해. 주변 지인들과 우리 가족 모두 사랑으로 감싸주고 격려해 주고 있으니 말이야. 특히 숙희와 네가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고맙단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지 이제 알겠어.   짧은 인생 무엇이 그리도 바빠,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방황하고 살았는지 후회 되는구나.   세미나 하시는 목사님들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정말로 존경할 만하더구나. 어렵지 않게 콕콕 찍어 설명해 주니 이해가 잘 되었어. 착하고 선한 사람이 구원받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어. 평소 세상적인 큰 죄를 짓고 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회개하고 주님을 통해 구원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 아버지처럼….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는 말에 동감해.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 따 창조된 완벽한 영적인 존재이지만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악마의 본성을 갖고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고, 죽은 후 심판을 받아 영원한 축복된 부활을 받을 자와 지옥불의 고통을 받을 자로 구분된다는 말이 정말로 두렵더구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유기물 덩어리에서 생명체가 되어 진화해 인간이 되었다는 주장은 엉터리 주장이라는 것에 동의해.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무에서 생겨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특히 생명은 도저히 무에서 나올 수 가 없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그 생명들 중에서도 인간만이 혼을 갖는 존재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창세기 말씀처럼 계획되고 설계된 것이라야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기독교가 이 모든 것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유일한 신앙이라는 것에도 전적으로 동의해. 왜 그렇게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하는지 이해도 되고.   좀 더 노력 정진하는 오빠가 될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5-14 12:44:23 | 진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