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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기독교 교리를 딱 함축적으로 요약해 놓음과 동시에, 요즘 같은 인본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거론하기가 정말 과격하고 거북하고 구호이다.또한 이것은 논리적으로 굉장히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명제이기도 하다.책임이라는 게, 굳이 크리스천이 세상을 상대로 꼭 좋은 행실을 보여야 하고 모범생, 일류, 능력자, 리더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선행이 아니다. 그보더 더 원론적으로... 예수쟁이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전에 자기네끼리부터라도 잘 지내야 한다!자기 깡으로 아무리 착하고 의롭게 살아도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자기 죄 가운데 죽고 지옥 간다고 경고했는데.. 그럼 역으로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서로 어떻게 지내야겠는가?좋은 간증 지키는 방법이 다른 먼 곳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가시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불신자 부부는 조금만 틀어지고 자기 이익이 침해받는다 싶으면 싸우고 이혼할지라도, 크리스천 부부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믿을 수 없으니 툭하면 법이나 시스템의 힘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해도 크리스천 내부의 문제는 가능한 한 더 선하고 훈훈한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그런데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교회엔 공통된 신앙 빼고는 지역색이 다르고 정치 성향이 다르고 취미와 성격과 성장 배경과 가치관이 다 도무지 같은 게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그래도 성도들간에는 교리 문제나 반역 문제가 아닌 이상은 이해와 사랑, 희생과 헌신, 섬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만치 거짓 교리, 악의적인 불순분자에 대한 분리와 에러 복구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구원 여부를 기계적인 방법으로 판별할 수 없는 이상, 이 능력은 교회 성도에게 필수이다.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신앙과 관계가 없는 세상적인 소재를 두고 끼리끼리 갈라지고 친목질에 심지어 팀킬을 벌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비슷한 논리를 다루는 바알세붑 팀킬 가설은 복음서에서 마 12:24-26, 막 3:22-26, 눅 11:14-19에 무려 3콤보로 기록되어 있다.그 대신 교회에서는 성도들 공통의 목표와 공통의 믿음을 대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건 거리 설교의 큰 유익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기독교 정부, 기독교 국가, 기독교 기업, 기독교 학교를 만드신 게 아니라 그냥 간단히 지역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미 변개되지 않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회복과 문자적인 환난 전 휴거+천년왕국을 가르칠 정도로 건전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복받은 처지에 있는 줄 알고 그 교회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도록 하자.성경은 그리 호락호락 만만한 책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치지만 그걸로 끝이 절대 로 아니며 그 뒤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아주 판타스틱한 일생 여정을 가르치고 있다.
2013-08-03 06:12:19 | 김용묵
내가 생각하는 3대 크리스천 바보   1. 유대인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2. 예수님은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싫어하는 사람3. 성경 맹신주의, 성경의 우상화.. 이런 말을 쓰는 사람 애초에 불신자야 저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종교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다음은 아이템별 간단한 해설이다. 내가 괜히 ‘바보’라는 말까지 쓰는 게 아니다. 1. 반유대주의   우리도 그들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죄인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아니 그럼 예수님이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안 죽으셨으면, 우리가 직접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됐을 것이다. 도대체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해야 할 명분이 어디 있는가?   성경의 기독교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절대로 반유대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고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문자적인 회복을 예언하며, 이 교리가 사실 화체설, 마리아, 연옥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 사이의 매우 큰 교리 차이이기도 하다.   (화체설, 마리아 무염시태, 연옥은 그나마 개신교에서도 부인하는 천주교 교리이지만,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에 나온 요한계시록 바로 보기 책에서도 잘 다루고 있다.)   물론 유대인들도 죄악에 빠졌을 때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여타 민족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벌하고 심판하셨다. 많은 불신자들이 간과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만큼, 계약 위반시 뱉어야 할 것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쟤들이 뭔가 죽이고 학살한 게 더 많았나, 아니면 반대로 자기들이 당한 게 더 많았던가?   그 ‘여타 민족’에 크리스천이 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사람들이 최후가 좋았던 적은 없다.2. 교회 무용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당신이 싫어하는 교회의 머리이기까지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싶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떳떳하게 회계 보고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주변에 도저히 마땅한 교회가 없다거나),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어차피 완벽한 교회란 없고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만 이뤄진 교회도 없다. 한 치의 허물도 없는 완벽한 교회가 있다면 당신이 거기에 가입하는 순간 그 무결성은 깨진다.대형 교회는 부패하고 돈만 밝힌다고 싫고, 작은 근본주의 교회는 교조주의적이고 ‘가오’가 안 난다고 싫다면 그건 뭐 무슨 상황이든 어차피 싫다는 변명일 뿐이다(마 11:18-19). 3. 성경(말씀) 무용론   이건 도대체 기독교의 믿음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극심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지위를 부여하시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이 들어가야 할 곳에 성경이 들어가는가 하면(요 7:38,42; 롬 9:17, 11:2; 갈 3:8,22 등) 시 138:2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크게 높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미 얼마나 높은 존재인지는 빌 2:9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 높은 성경을 안 믿으면 무엇을 믿겠으며, 아무리 굳건히 믿어도 시원찮을 성경이 어찌하여 ‘맹신과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크리스천, 육신적인 신자를 빌미로 성경을 폄하하고 특히 킹 제임스 성경 탓을 하는 주장을 매우 싫어하고 경계한다.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짚은 발상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증은 윤 성목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바보 크리스천 말고, 바보 불신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성경에서 시 14:1이나 눅 12:20에서 다루고 있다. 이 역시 누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다.
2013-08-03 06:08:30 | 김용묵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신 내지 절대자에 대해서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불만· 불평을 품고 있다.그 근거 중에는 어떻게 해 주든 어차피 트집잡으며 불평하는 비논리적이고 질 나쁜 불평이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마 11:18-19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다.그런 것들을 다 제끼고 나면 그래도 좀 합리적이고 한번쯤 생각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의문사항이 소수 존재한다. 신이 정말 있기나 한지 모를 세상의 온갖 죄악과 범죄와 비리와 불공평 말이다. 나쁜놈들은 잘 살면서 착한 사람만 손해 보는 사회 시스템 등.특히 사회 구조 매사에 불만이 많은 진보 성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공 우익 성향이 강한 분들도 이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무능하거나 나빠서 그 최악의 지상지옥 김씨 왕조 독재 체제를 몇십 년씩이나 아직까지 멀쩡히 놔 두고 계신 걸까? 진보를 해도 성경보다 더 앞서 가서는 안 되듯, 반공을 해도 하나님보다 더 심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악인의 번영에 대한 고찰은 성경에서도 하박국서나 시편 73편에 몇 차례 언급되어 있다.허나, 내가 보기엔 겨우 악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유를 따지는 건 그렇게 수준 높은(?) 불평이 아니다.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사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신에 대해서 이의 제기를 할 거면 최소한 이런 걸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을 왜 도무지 정량적으로 측정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는가? (그래서 인간 사회를 이런 헬게이트로 빠뜨렸나?)이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황금 만능주의의 폐단을 외쳐도 현실에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 맨날 인성 교육 윤리 교육을 외쳐도 공염불에 그치는 이유가 전부 저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돈밖에, 시험 점수밖에 제일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게 없으니까 말이다.더 나아가면, 구원의 길을 좀 확실하게 과학과 수학의 힘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에다 안 놔두고, 왜 두리뭉실 어정쩡한 믿음의 영역에다 놔 뒀는지, 왜 그런 경륜을 만들어 놨는지 그 자체가 신에 대한 트집거리가 될 수 있다.그런데 그걸 밀고 공략하려다 보면 결국 자가당착에 빠진다. 하나님은 다른 물질적인 여건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마다 제각각 놔뒀지만, 구원 같은 진짜 인간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아무 스펙 없이도 접근 가능하게, 정말 공평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돈의 힘으로 스펙 쳐바른 배우자와 결혼하고 열쇠 세 개는 장만할 수 있어도, 돈으로 이혼 없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구입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진짜 행복을 선사하는 진리는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고 감사할 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기독교 변증이라는 게 별 거 아니다. 없어졌으면 진작에 없어졌을 정도로 일면 황당하게 들리는 복음이 그렇게 호락호락 허술한 논리로 이뤄진 게 아니다. 괜히 소멸하지 않고 2천 년 가까이를 버틴 게 아니다.
2013-08-01 21:26:17 | 김용묵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품꾼 비유는 논조가 다소 이질적이며,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만큼이나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고, 마감 한 시간 전에 와서 1시간만 달랑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에다 이런 불공평한 이야기를 왜 써 놓으신 걸까?나도 하나님의 심정을 다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이나 인류 역사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짐작해 보건대, 하나님께서 그런 정책을 취하시는 것이 충분히 가능은 하다는 걸 느낀다.저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똑같은 예수님의 사도 중에서도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곧장 순교한 반면 베드로는 천사가 와서 몇 번이고 구해 줬다. 이것은 하나님이 근본 성품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쟁이 기분파여서라거나, 야고보가 베드로보다 영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꼭 실력 좋은 사람만 1등을 하는 게 아니라는 자조적인 차원(전 9:11)의 이야기도 아니다.욥은 현대인 같았으면 몇 번이고 멘붕을 거듭하다가 자살했을 정도의 최악의 고난과 시련을 경험했다. 이를 체험하고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바로,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분께서 자신에게 그 어떤 일을 허락하시든지 그분은 선하고 전지전능하신 면모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을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내버려 두시든,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 불에서 보호하지 않고 순교하게 내버려 두시든지 말이다(단 3:17-18).그 정도인데 그런 하나님이 하물며 비유에서처럼 일꾼을 고용하고 품삯을 주는 정책 하나조차 마음대로 결정을 못 하시겠는가?애초에 하루 일당을 1데나리온으로 계약했으니, 그 주인은 나중에 말을 바꾸지도, 임금을 떼먹지도 않고 품꾼에게 그 약속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다. 이게 바로 포인트다.나중에 다른 일꾼이 추가 투입될 수도 있고 그들은 일당을 얼마만치 받을지에 대해서는 애당초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건 주인 사정이고 추가 일꾼의 사정이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인 것이다.그런데 그런 걸 자꾸 부각시킴으로써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신뢰를 틀어지게 만들고, 자기 처지를 불평하게 만들고 남을 탐내고 원망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공산주의도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생겨났다.주인의 이런 반응에 삐쳐서 “흥, 그럼 다음부터는 나도 문 닫을 때 다 돼서 일하러 가야지” 같은 잔머리를 굴리는 건 별 의미나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솔로몬의 재판을 보고는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이 무슨 이런 허접한 재판이 다 있냐? 그럼 나도 아기를 납치한 다음엔 상대방에게 아이를 주라고 생색 내면 되겠네.” 이러는 것과 똑같다.성경을 읽고도 그 집필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숲을 보지 못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인간의 잔머리에 결코 조롱· 농락을 당하지 않는다는 힌트까지 알려 놓으셨다(갈 6:7).이런 비논리적인 하나님 무조건 킹왕짱 정신승리법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기본 원칙이며, 크리스천과 불신자의 사고방식의 큰 차이 중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고 엎드리고 바보 되는 것 말이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셨고 킹왕짱 사랑을 베푸셨으니까!요컨대 마태복음 20장의 품꾼 비유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1데나리온 일당을 지급한 눈에 띄는 정책 자체보다도,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주권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은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분야에는 정말 칼날같이 공평하며, 정말로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완전 철두철미한 논리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물론, 그냥 영적으로 적용해서 모태신앙으로 나태하게 산 사람보다 뒤늦게 구원받고도, 알찬 인생을 살고 주님으로부터 상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것이다”란 교훈이 뒤에 등장하니까 말이다.
2013-08-01 21:06:04 | 김용묵
  저희 대구지역에 드디어 이번 금요일부터( 8월2일) 바른 말씀을 사모하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각자 저녁 해결 후 모이기로 했습니다. 교재 :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말씀을 가르쳐주실분 : 최근 포항에서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신 김 문수 목사님 장소 : 수성구 황금동 근처 어학원  이번에 시작되는 이 작은 모임을 통해 바른 말씀에 기초한 바른 교리로 세워지는 교회들이 대구 지역 곳곳에 일어나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성경공부 모임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 바랍니다.   임정휘 010-4655-0980
2013-07-31 14:10:30 | 임정휘
샬롬~! 연일 계속되는 장마와 찜통 더위속에 모든 분들 건강히 잘 지내시죠? 오늘 저녁 7시에 김문수 목사님을 모시고 22명의 형제자매님들이 모인 가운데 "왜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은혜롭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성경번역의 변개된 과정과 오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스레 느끼는 시간이었으며 킹제임스 성경이 오랜 시간 동안 단 한번의 개정도 없이 얼마나 잘 보존되었는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바른 말씀에서 바른 교리가 뿌리가 내려진다는 것을 재차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창원에서, 양산에서 또한 포항까지 멀리서들 오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한동대에서 오신 교수님 부부께서도 열심히 경청하면서 바른진리의 말씀에 탄복하셨습니다. 다음 모임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07-26 00:06:14 | 조영근
믿음의 형제자매님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좀전에 1시간에 걸쳐서 글을 열심히 썼는데...등록은 안되고 전부 사라지고...ㅠㅠㅠ 일본이어서 그런가요?  로그인 할 때도 제대로 화면이 전환도 안되고...   어쨌든, 제가 여러분께 지혜를 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시 적습니다. 저는 현재 아내와 아들과 일본 동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오랜 시간동안 성경을 신앙서적을 읽으며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크리스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정동수목사님과 킵바이블을 알게 되어서 '킹제임스성경 흠정역 영한대역'성경도 구입해서 정동수목사님의 요한계시록강해를 듣고 저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종말신학이 체계가 잡히고 확신을 얻게 된 것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는 제 나름대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공부해서 여러 목회자님에게 저의 '전천년주의신앙'을 말하면 일개 집사가 책 몇권읽고 말한다는 식의 대답을 들어야 했고, 성경의 여러 구절을 근거로 대며 말하면 모두 '영적인 해석'이 중요한 것이라는 식의 대답과 종말론보다 '현재'를 말씀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대답뿐이었습니다...물론, 현재를 열심히 성실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종말에 대해서 계시해준 내용을 거의 모두 영해를 해서 결국은 계시의 내용이 뭐였는지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크리스찬은 하나님이 계시한 명확하고 굳건한 '종말신앙'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확신은 불분명해지고 현재에 대한 집착과 현세에 대한 구복적인 신앙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한국교회의 양적성장과 물질주의적타락상을 보면 알 수있겠지요...   요한계시록강해를 처음으로 마태복음강해와 창세기강해, 로마서강해, 조직신학강해를 들으면서 제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도 박사과정까지 공부한 사람이라서 여러 자료들을 비교분석하는 것은 기본이라, 현대어역본 중 이 구절은 이 성경이, 저 구절은 저 성경이 좋군!하면서 제가 성경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완전무오한 말씀이라고 믿으면서도 신약성경에13군데가 없다는 것도 알면서도 대단하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2천년의 역사적인 흐름속에서 자연히 소실되었다는 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성경이 2천년의 시간을 지나 나의 손에 어떻게 전달되어왔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고 교회에서 들은 적도 배운적도없었습니다...그래서 킵바이블의 자료를 통해서 성경전래의 역사를 공부하고는 선배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이토록 무지했던 제자신을 반성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의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느 한국인이 제일많고 일본인과 미국인 제3세계인등 국제적인 교회입니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가 기본적으로 사용되지만 한국인이 주류이고 목사님도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제가 킹제임스성경으로 공부한 내용을 친한 집사님과 나누었고, 그분도 그래서 열심히 정동수목사님의 말씀강해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이 집사님과 제가 서로 킹제임스성경내용을 교회에서 나누면 이런 저희들을 모습을 본 다른 집사님들이 이상하게 괴이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단 성경이라는 것을 왜 교회에서 나누지?'라는 표정을 알수 있습니다...그리고는 '한심한 사람들이군...'이라는 표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개역성경은 좋은 성경이지만 한국에 과도기적을 전해진 성경이고 문법적으로나 번역상에 여러 묹제가 있는 성경이고 무엇보다도 성경을 변개하려는 카톨릭의 사본을 사용한 성경이어서 이런 이런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제가 찬찬히 설명을 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난 성경에 13곳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어, 그럼 개역성경을 믿어온 사람들의 신앙이 다 부정되는 건가? 솔직히 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에 성경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어!' '난 성경이 구체적으로 뭐라고 하는 것보다도 우리 가족이 남편이 신앙을 갖는 것이 더 긴급하고 중요해!' '카톨릭 성경이 왜 나쁘다는 거지? 카톨릭이 왜 이단이지? 그럼 카톨릭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구원이 없다는 말인가?'등등...   이분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오직 '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필요성을 못느끼고, 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걸 최종권위로 인정을 못하겠어...> 이 분들은 넌크리스찬도 아니고, 교회의 제반사항 모두를 총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저희 교회에서 처음으로 추대되는 '장로 후보'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계시하려고 하신 완전한 성경'이 있든 없든 별로 상관없고, 또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에 부임한 담임목사님도 미국 남침례교단출신인데 제가 물어보니 '무천년주의'를 믿는다하고 자신도 킹제임스성경을 '참고'한다고 하며 완전한 하나님의 성경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나쁜 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참 좋고 인정도 많은 분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것은, 교회에서 조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조목조목 물어보면 저보다도 연배가 많은 분들인데도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교회 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한 완전한 성경이 2000년전처럼 지금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확신을 갖자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2013-07-18 18:45:45 | 김경호
내용은 산업 스파이에 관한 것인데 제 짧은 글로 내용을 설명하기에 엄청 복잡합니다. 영화 내용 중 여자 주인공은 비밀 요원을 통해 타 기업의 스파이로 들어 간 남자 주인공에게 전화번호를 암호로 남기는데 욥기 13:17의 각 단어 첫 글자라고 알려줍니다. 물론 영어 성경이지요. 남자 주인공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가서 급히 성경을 꺼내 해당 본문의 각 단어에서 첫 글자를 취해 해당하는 번호로 여자 주인공에게 연락을 취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성경을 펼쳐 욥기 13장 17절을 찾은 순간 저도 화면을 멈추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물론 제가 갖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같은 영어 단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Hear diligently my speech... ...." 18절에 이어지는 이탤릭체까지. 똑같더군요. ‘아! 킹제임스 버전이구나’ 흐뭇함, 잔잔한 감동... 감동적인 영화는 아닌데....   순간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 영화 대사에는 비밀 요원이 전달한 내용은 단지 욥기 13:17절이라고만 했지 어떤 버전의 성경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의 시대는 21세기이니 당연 수십 종의 영어 버전의 성경이 있을 텐데 말이지요. 주인공들도 성경은 킹제임스 버전을 보는 가 봅니다.   물론 영화 감독의 설정이지만 만약 주인공들끼리 보는 성경이 다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버전의 성경을 펼쳐 각 단어에서 번호를 취해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잘못된 전화번호로 받은 사람은 자신을 노리는 또 다른 산업 스파이였습니다.... ... 전혀 다른 줄거리의 영화가 만들어 졌을 텐데.     이렇게 하실 리야 없겠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성경의 무슨 책, 몇 장 몇 절의 그 단어를 찾아 보여 달라 하시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제각각의 열심으로 각자가 읽고 있는 버전의 성경 속에서 각자의 단어를 찾아 보여 드리겠지요. 그러나 명확하고 바른 단어를 찾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들의 견해가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성경은 절대 기준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자라게 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그 절대 기준이 되어야 하는 성경이 제각각이라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종 권위는 성경입니다. 그 최종 권위가 제각각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그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은 하나입니다.   영화를 보다 작은 깨달음,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2013-07-07 02:03:01 | 허충식
KJB...우수한, 잘 번역된 성경인듯 합니다. kjb있다는 걸 올 초에 알게됬고 한국킹제임스협회의 성경을 구입해 통독 중 입니다.  keepbible을 또 어찌 어찌 알게되 많은걸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과한 헌금을 설교하신 목사님, 기복신앙, 기득권에 편향된 성향...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난,조롱하는 건 그들의 불신앙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교회를 흔드는 사탄의 미혹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여기 어느 글에서(섹션은 못 찾겠지만) 기존의 성경을 보는걸 심지어 우상숭배로 폄하하는 글을 보며 이건 아니지 싶어서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 속에서 말씀 기도로 하나님을 알아가는게 구원인 줄 알았습니다. 북한이나 이슬람권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성경전서를 갖기가 어려워 낱권이나  몇장으로만  예배드리고 읽고 또 읽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그들에겐 순교를 작정한 그런 믿음인데  KJB의 온전한 말씀을 모른다 해서 그들의 믿음을 의심할 수 있을까요?   또  지금의 교회가 비난 조롱을 받지만 그들 중 많은 성도들의 신실한 믿음은 또 어찌할까요?
2013-07-04 21:34:23 | 김정욱
"~로서(자격)"가 "~같이/~처럼" 표현되면 다른 교리가 됩니다.   (롬 6:13, 킹흠정)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개정)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전 3:10, 킹흠정)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고전 3:10, 개정)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엡 5:1, 킹흠정) 『그러므로 너희는 사랑스러운 자녀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엡 5:1, 개정)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8, 킹흠정)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엡 5:8, 개정)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15, 킹흠정)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걸어』(엡 5:15, 개정)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엡 6:6, 킹흠정)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엡 6:6, 개정)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골 3:12, 킹흠정)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생각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입고』(골 3:12, 개정)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살후 3:15, 킹흠정) 『그러나 그를 원수로 여기지 말고 형제로서 권고하라.』(살후 3:15, 개정)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벧전 1:14, 킹흠정)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의 이전 정욕들에 따라 너희 자신을 꾸미지 말고』(벧전 1:14, 개정)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개정)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5, 킹흠정)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 2:5, 개정)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16, 킹흠정)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벧전 2:16, 개정)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벧전 4:10, 킹흠정)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벧전 2:16, 개정)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계 17:12, 킹흠정)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인데 그들이 아직 아무 왕국도 받지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으로서 권능을 받느니라.』(계 17:12, 개정)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2013-07-04 16:19:47 | 김규태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나 하나님과 직접 교통한다며 하나님의 내면적 음성을 앞세우는 신비주의자들과 같이 종교적 체험이나 감정을 우선시하는 자들은 흔히 기사나 표적이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주장하거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나 하나님의 음성을 체험했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이단 교주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들의 종교적 경험이나 감정은 참된 것일까요? 체험에 근거한 이들의 주장은 과연 바른 것일까요?   성경은 믿는 이들에게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를지니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라고 말씀합니다(요 12:26)(히 12:2).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서 그분을 섬길 수 있을까요? 주님이 계신 곳은 어디이며, 어떻게 그분을 만나며,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모든 성경 안에 계시된 영적인 일들의 실제(實際)와 실체(實體)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영적인 일들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을까요?   계시 -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말씀하심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진리를 알리시는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시대를 거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자연과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시 19:1)(롬 1:20)(행 14:17)(롬 2:15)(사 40:26).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섭리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심으로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인격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자연은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창 3:17,18)(롬 8:20-22), 사람의 마음은 죄로 인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엡 4:18)(롬 1:21-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신 4:31-35). 곧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거나(출 3:2),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시거나(창 18:1,2), 꿈이나 이상을 통해 말씀하시거나(민 12:6)(창 28:12,13)(단 8:1)(창 37:5-10),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은 대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거나(벧후 1:21), 또는 기사와 능력과 표적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신 4:34,35).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성취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신 계시의 정점은 바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정점 - 그리스도   ◎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2,14) ◎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시는 독생하신 아드님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 1:18)   요한 사도는 우리 주님을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한 <말씀>으로 증거합니다. 아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말씀>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with)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초로부터 영원하신 분으로서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신 그 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18절에서 ‘밝히 드러내셨느니라’(declared)라는 말의 어원에는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밖으로 이끌어 내어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신비 속에 감추어 있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밖으로 끌어내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이란 말의 높임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이란 무엇인가요? <말>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을 통하여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인격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이신 것은 곧 주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말씀>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완전히 설명해 주셨습니다(요 1:14).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곧 그분의 말씀되심으로 자신을 표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9).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표현되어졌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자신을 스스로 밝히 드러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 하나님의 말씀하심   ◎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히 1:1,2)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by his son)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 1:2).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친히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을 통해, 성육신을 통해, 이 땅에서의 고난의 삶을 통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통해 말씀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하루하루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이였습니다. 그분의 태어나심과 그분의 자라심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것과, 죄인들을 찾아다니시며 걸으신 발걸음 발걸음마다, 그분의 사랑의 눈길과 손길, 그분의 기쁨과 눈물과 슬픔, 배척당하심과 고난당하심, 죽으심과 부활하심, 하늘에 올라가심과 높아지심, 등 그분의 33 년의 모든 자취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인격과 사역의 모든 것을 통하여 그분의 뜻과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실로 영원 전에 <말씀>이셨던 주님은 육신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계시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 - 하나님의 규범적인 계시   ◎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 14:26) ◎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 (요 16:1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하여 그분의 계시를 완성하실 때, 그분의 계시를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언어를 인식하는 기능을 주시고, 이 기능을 통해 그분의 계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규범적(normative)인 계시이셨습니다.   계시와 영감과 보전과 정경   ◎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하였음이라.”(벧후 1:20,21)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전해주시고자 한 그분의 계시를 문자에 담으실 때, 영감으로 기록자들을 감동시키셔서 그분의 무오한 계시의 말씀을 문자의 일점 일획에까지 오류 없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단순히 사상이나 개념을 담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글자에, 모든 획, 모든 점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계시의 말씀을 담으셨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은 각종 인간들의 말이 뒤섞인 채로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성경 안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부분적으로 담겨져 있을 뿐,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담는 그릇이지만 성경의 기록에는 많은 오류와 불완전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이 인격적인 만남을 갖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인간이 실존적인 체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신 것은 말과 단어가 아니라 사상이나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대언자에게 사상이나 개념을 주셨고, 대언자가 그 사상이나 개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현대역본들의 번역 원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스스로 증거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분의 계시를 한 글자, 한 획, 한 점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에서 사람의 오류나 의도로 누락되거나 더해지지 않도록 정확하게 담으셔서, 완전하고 확실하며 정당하고 순결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시를 문자에 담을 때 하나님 외의 어떠한 불순물도 첨가되지 않도록 원본(原本) 안에 보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를 담은 본문을 보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시를 오류 없이 문자로 담아서 주셨기 때문에, 이제 보존된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인 성경(KJB)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나 주관적 체험에 권위를 넘겨주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그대로 가짐으로 우리에게 최고의 권위이자 최종 권위가 된 것입니다.   계시의 충족성   하나님의 계시는 끝났을까요? 아니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충분히 계시하셔서 더 이상의 계시가 필요 없다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설득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6:31). 이것은 구약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계시를 구약성경에 다 담으셨음을 증거합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히브리서 1:1에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계시를 최종적으로 완성하시고 성취하셨음을 증거합니다. 그러기에 요한사도는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계 22:18, 19).   성경 - 하나님의 현재적 계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시를 영감으로 오류 없이 원본에 기록하시고 그 본문을 보존하셔서 신약교회에 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과 신약교회에게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정하신 것들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정경으로 인정받고 수용된 66권의 성경기록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통로 외에 어떠한 통로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의 계시를 담은 유일한 저장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저장고 외에 어떠한 저장고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다른 책들과 같이 하나님께 대해 죽어있는 문자들의 기록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재적 계시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주의자나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기사나 표적이나 능력이나 개인적 체험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시거나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기록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재적 계시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이 담긴 말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 주님의 인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63). 주님의 말씀은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토스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작별 인사를 합니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케 된 모든 자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을 줄 것이라(행 20:32)”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에베소 교회를 맡겼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4:12,13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강력하며, 양날 가진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갈라내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들을 판별하는 분이심이라. 그분 앞에 드러나지 않는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나의 행위를 살펴보기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네가 믿은 그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그분께 간청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종이 마비 증세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을 받나이다, 하매 7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니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9 이는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들이 있으니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기 때문이니이다, 하매 10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사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 13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가 믿은 그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시니 바로 그 시각에 그의 종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5-10,13 절)   본 사건은 주님이 산에서 가르치심을 마친 후(마 5-7 장) 가버나움에 들어가실 때의 일입니다.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 허다한 무리가 우리 주님을 좇았습니다(마 8:1).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 안에는 권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마 7:28). 아마도 백부장은 이러한 주님을 신뢰하여 주님께 나아온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주님께 나아오는 것은 모든 축복의 근원입니다. 백부장에게는 참으로 이 불신과 배도의 날들을 사는 우리로 하여금 큰 깨달음을 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백부장의 집으로 가셔서 하인의 중풍병을 치료해주시고자 하실 때 백부장은 주님께 다음과 같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여,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오심을 제가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오직 말씀만(the word only) 하옵소서, 그러면 제 종이 낫겠삽나이다.” 여기 “오직 말씀만”이라는 백부장의 고백에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곧 주님의 오심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이 곧 주님의 오심이요, 주님의 임재하심이요, 주님의 만져주심이요, 주님의 온전케 하심인 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같은 사건을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또한 내 자신이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로 생각하였사온즉 오직 한 말씀만(a word) 하옵소서, 그러면 제 종이 낫겠삽나이다.”(눅 7:7) 바로 주님의 한 말씀은 곧 주님의 오심이요, 주님의 함께 하심이요, 주님의 역사하심인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러한 믿음을 보신 주님께서는 경탄하시고, 따르던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중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결코 발견치 못하였노라.” 그리고 곧 주님의 말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네가 믿었으니, 너에게 그대로 이루어질지어다(so be it done).” 본 사건은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취할 때, 이는 곧 살아계신 주님을 모시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경(正經)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취할 때, 그 말씀은 곧 시간과 공간을 넘는 하나님의 오심이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요, 하나님의 말씀하심이요, 하나님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생명이요(요 6:63),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달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약속의 말씀의 실체요 증거인 믿음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히브리서 11장의 1절은 11장 전체를 요약한 말씀입니다. 바라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11장 전체에서 바라는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약속의 말씀에 수반되는 영적인 사실들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담긴 영적 사실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담긴 것들은 모두 믿음으로 실제가 되고 실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기록된 그대로 성취되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믿음은 계시의 말씀이 실제가 되고, 실체가 되고, 증거가 되게 합니다.   말씀을 확증하는 삶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대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말씀들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요 20:30,31)(행 2:22)(히 2:4). 오늘 저희들의 손에 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믿음으로 취함으로 그 말씀이 성취되어 실체가 되고 증거가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의 일상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친히 오셔서 말씀하시고 영감으로 오류 없이 기록하시고 정경으로 보존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정경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계시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며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가 빛의 천사로, 의(義)의 사역자로 가장하여 온갖 배도와 미혹과 거짓과 영적 혼란으로 믿는 이들을 참 하나님으로부터 헛된 것들로 돌이키고자 광분하고 있는 이 마지막 날들의 위험한 때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순결한 말씀을 영감으로 오류 없이 기록하시고 보존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정경을 잣대(canon)로 삼아, 거짓과 어둠을 헤치고 빛과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인격이 담겨져 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주님께로 나아가,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주님에 대해 듣고, 눈으로 보았고, 주님을 주목하여, 손으로 만졌듯이(요일 1:1), 날마다 성경을 열고, 말씀 안에 계시며,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듣고, 보고, 주목하여 손으로 만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2013-07-04 12:36:30 | 임재영
제가 저번 방언 통변에 대해 윤석전 목사님을 들었는데 정성권님께서 그 분은 방언 통변에 대해 일반적인 예를 들만한 분이 아닌것 같다라는 것에 대해 늦게나마 드릴 말씀이 있어 이 글을 올립니다.   때 늦은 것이지만 그래도 알릴것은 알려야 될 것 같아서요. 제가 작년 여름 그 분의 주일 설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성령님을 설교하시면서 아버지의 영이라던지 주의 영이라던지 그런 말씀은 안 하시고 성령님이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정목사님이 그 분이 양태론이라고 설교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분의 양태론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이 아는 바가 없어서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방언 통변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전 그 분 만큼 주님께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주의 자녀들 중에 현 새대에서 누가 그 분만큼 주님께 충성한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가진적이 많습니다. 그건 제 생각 뿐만이 아니라 연세 중앙 교회 교인 포함해서 우리 나라 많은 목회자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 분이 주님께 향한 마음을 어느 정도 아실려면은 네이버에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치시고 윤석전 목사님을 찾아보면 나오는데 그 동영상을 보시면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늦게 답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시는 주의 종을 이상하게 생각들 하시는 것 같아서 그 점에 대해서는 바로 알리고자 이 글을 올린 것이니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3-07-01 01:26:50 | 김기덕
최근 마태복음 6장을 읽으면서 6장 33절의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를 읽었습니다.   분명 제가 이전에도 이 말씀을 개역한글로 암송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한 깨달음이 없음으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신약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는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보구요   저는 성도님들의 도움으로 위 말씀에 대한 명확한 이해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모습도 배웠으면 합니다.   친절한 설명과 자료 부탁합니다. ^^
2013-06-30 10:02:50 | 김명수
샬롬~~   드디어 부산의 첫모임을 7월 11일(목) 저녁 7시에 갖기로했습니다. 위치는 동래 식물원위에 금강국민호텔 정문앞에 있는 빌라입니다. 저녁식사는 알아서 각자 하시고 모임중 차와 다과는 준비됩니다. 킹제임스 흠정 성경을 꼭 지참하시고 기쁜얼굴로 만나기를 원합니다. 궁금하신 점이있으시면 저에게 연락주시기바랍니다. 조 영 근형제     010 2978 3477 감사합니다. ps : 빌라 주소는 별도로 당일날 문자로 알려드리겠습니다.
2013-06-27 22:14:56 | 조영근
정목사님 안녕하세요? 광주의 김희연 자매라고 합니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귀한 하나님 말씀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듣다 보니 구원01~29까지의 말씀이 성장01~29번 까지 말씀으로 중복되어 있습니다. 성장시리즈의 제목과 다르게 구원시리즈 말씀으로 중복되어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저같은 경우는  여러가지 여건으로 스마트폰으로 말씀도 보고 듣기 때문에 유튜브나 이런 좋은 앱이 나온것에 너무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 김희연 자매 드림 -
2013-06-19 10:45:43 | 김희연
안녕하세요, 저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청년입니다. 제가 교제하고 있는 전도사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추천해 주셔서 몇 해 전부터 킹 성경을 가지고 있다가, 요 근래에 탐독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저는 '그리스도 예수안에'라는 곳에서 출판된 한글 흠정역 성경(발행인 : 정동수)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 한글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1611)를 한글로 번역한 성경입니까, 아니면 안디옥계 다수본문(?) 원문을 한글로 번역한 성경입니까? 만약에 전자라면 한글 성경이 아니라 영어 성경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만... 좀 복잡하고, 혼란스럽네요. 겸손하게 질문드립니다.
2013-06-09 00:32:12 | 이용찬
안녕하세요 관리자님. 병점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일반 성도입니다. 정동수 목사님과 흠정역성경을 그리스도예수안에을 통해 알게 되었고 성경지킴이 사이트도 꾸준히 보고 있습니다. 물론 흠정역 성경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메일을 드린 이유는 바로 흠정역 성경의 확대 때문입니다. 흠정역 성경이 왜 좋은지 얼마나 좋은지를 잘 알고 있기에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과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C3TV 사이트 웹바이블로 제공되던 것도 중단되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흠정역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던 것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보다 더 좋은 기회들이 생기고 있구요. 이펍이나 안드로이드로 무료앱을 제공함으로 매우 유용할 것이라 판단됩니다. 저는 아이폰이라 아직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흠정역 확대를 위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앱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앱을 통해서 흠정역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youversion이라는 앱인데요. 세계적으로 5천만 앱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 앱입니다.  국내 사용자도 매우 많구요. 아이폰앱 카테고리에서도 참고 부문에서 거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애용하는 앱이고 성경앱으로는 유일하게 사용하는 앱입니다. 단순 성경읽기 제공 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사용자간의 공유가 매우 활성화된 앱입니다. 따라서 흠정역을 youversion에 제공한다고 하면 기존 유버전 사용자들이 흠정역을 많이 알게되고 읽다가 보면 그 진가를 반드시 알게될 것입니다.  유버전에 현재 개역한글과 새번역 그리고 현대인의성경이 제공중인데 이중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다운로드가 가능한 버전은 개역한글 뿐이므로 흠정역이 다운로드 가능한 오프라인모드를 지원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이용하게 될 줄 믿습니다.  부가적으로 많은 사용자를 가진 성경이 당연히 판매도 많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미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그래도 혹시라도 배포 결정에 도움이 하는 생각에 적어보았습니다. 긴 내용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3-06-03 10:19:03 | 이준석
저는  이홈페이지를  참  사랑하고  정동수 목사님  말씀을  경청하며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구석엔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우리  영혼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속하시기 위해 이땅에  보내주신  그의   외아들이신   진리가  되시는  예수그리도의  가르침외에  그어떤것을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이것이  원어니  저것이  원어니 이것이  이단이니 저것이  이단이니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것은 주님 은  무엇을  더  기뻐하실까  원어로 더  정확하게  올바르게  해석하는것을  더  기뻐하실까? 정말   잘못된  해석으로  주님이 말씀을  통해   의도하시는   뜻이  변개가  된다던가 성도들의  신앙삶에  치명적인  독소가  되서  잘못된길로  빠져버리게될  소지가  있는것외에는 바울선생이 말한것처럼 생각이  달라도  서로  용납하고.....삼일을  삼년이라  한들  삼년을  삼일이라한들 ....야고보서의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했으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살아움직이는  행동하는 믿음을  믿음이라하는구나하고  그의도  한바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나누면되는것을 그렇게  말씀  전하시는  목사를  비판하고 그런   모임을 이단과  같이  취급해서  싸잡아  비판하고  부패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바른말로  책망을  하시는 폴워셔  목사님  같은  귀한 분을  비판하는것은  그자체만으로도  진리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것이라 생각됩니다  창세기에는  아담이  범죄한  그죄가  어떤것인지 우리의삶속에 어떻게 적용되어져있는지 묵상해  볼필요가  있읍니다     창세기에는"보아라  사람이  우리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 우리는  자동적으로  우리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  판단하고  사고하는  인간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성경도   제각각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거리  해석하기  나름이고  니가  맞니  내가맞니 하고  논쟁을  하는것이지요  가장  정확한   해석은  주님만  아시고   주님은  정확한  해석보다   주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것이지요 이렇게  말함 사랑하라는  말만 가지고  무조건  분별하지  못하고 사랑하라고  한다고  말하면  안되는것이지요  분명히  주안에서입니다  거듭난  형제들끼리는  생각과  의견이  달라도  서로 용납해야  한다는것이지요 아무곳에다  니골라당이니  하는말을  붙여  말하는것이  아니라  니골라당은  어떤짓을했기에니골라당이라하는지을  빚대어  비교해  말해야  하는것이고  신천지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신천지와  같은  맥락에서  말해야  하는것이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니까   바알세불을  힘입어  병고친다고하는것이나 바울을  향해  이단  괴수라하는것은 성령이  하시는일을  인간이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않고   자 기  잣대로  판단해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듯이 오늘날 목회자들의   말  한마디는   성령의  사역을 마귀의  사역이라고 할수도  있고 성령의사람을  마귀의  앞잡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같은 오류를  범하게하는  그야말로 어떤것이  진짜성경이냐 보다  중요한  문제들을  놓치고  주님앞에가  책망  받을수있다는것을  명심 해야할것 같읍니다 사랑하는것보다  더  어려운것이  있다면   겸손해지는것이라  생각됩니다 겸손은 주님보다   앞서가지  않는것이고  주님은  어찌  생각하실까 돌다리  둘들겨보듯이   생각과  말을 주님을  의식하며 조심하는것입니다
2013-05-29 10:15:54 | 호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