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지혜롭게 분별하라
누구나 살다보면 정말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큰 건물의 경우에는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생활은 단순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 사소한 것들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짜증스러울 정도로 복잡한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지혜롭게 구별하지 않으면 인생의 실패자가 될 수 있다. 사소한 것들을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파멸을 자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소한 것들의 홍수’에 빠져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소한 것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들이 당신의 몸과 마음을 압사시키기 전에 빨리 빠져나오라.
복음을 위해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신자들도 자기가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것인지 사소한 것들에 집중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적 진리들을 굳게 붙들 것인지 아니면 언제나 분열을 일으키는 주변적 교리들에 매달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주변적 교리들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 하나님! 날마다 우리를 사소한 것들에서 구하소서.
우리가 1분 1초를 오직 중요한 것들에만 사용하도록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40:13 | 관리자
08. 주 안에서 큰일을 도모하라
심슨(Simpson)이 성공했다 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그가 실패했다 하면 그것 역시 대실패였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처럼 통이 큰 사람들은 흥해도 크게 흥하고 망해도 크게 망한다. 그들은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날기 때문에 도시용(都市用) 지도로는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비행 중에 그들은 “저게 무슨 거리냐?”라고 묻지 않고 “저게 무슨 대륙이냐?”라고 묻는다. 만일 잠깐이라도 항로를 이탈한다면 그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행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날기 때문이다. 자기 집의 정원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항로 이탈을 보며 “저것 봐라. 우리처럼 가만히 집에 있으면 저렇게 먼 거리를 헤맬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라. 이런 비판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아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보관하려고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역사는 자기의 관심을 끄는 사람들의 큰 성공과 큰 실패를 기록하기도 바쁘다.
오, 주여! 주님을 위해 큰일을 추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저에게 주소서.
제가 크게 성공할지 크게 실패할지 모르지만, 성공과 실패를 모두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9:30 | 관리자
07.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요구이다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개인의 거룩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함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거룩함을 단지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간주한다. 그들은 “거룩함에 대해 나도 알아보고 생각해 봤는데 고생하면서까지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해 준 신앙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우리가 거룩함을 가르치는 그들의 교훈을 무시할 수는 없다. “거룩하라”는 것은 사도들의 교훈이지 단지 교회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거룩한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요구이다. 바로 이것을 사도들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화(聖化)의 교리를 심하게 공격하여 파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순수하고 온유하고 인자한 영(靈)을 통해 “거룩하라”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갈망하는 자들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오, 주여! 오늘 저를 강하게 하시고, 저와 동행하소서.
제가 주님의 임재를 늘 의식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생각과 행동을 삼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8:47 | 관리자
06. 세상의 박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30년 이상 목회 현장에서 살아온 나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경건한 사람들이 반드시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순수하다면,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라면, 교회가 신앙적 가치에 따라 운영된다면,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장 인정받고 높임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교인들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거나 이미 죽은 사람들을 평가할 때에는 경건의 잣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을 평가할 때에는 경건이 판단의 잣대가 되지 못한다. 교인들은 최근에 회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바람둥이 기질이 농후한 플레이보이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느라 경건한 사람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종교인들의 인기 경쟁에서 소외된다 할지라고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누구를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인지를 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상관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는 조만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 그가 가게 될 곳에서는 사람들이 인기투표가 아닌 인격의 거룩함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오, 나의 하나님!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든 말든
저는 거룩한 인격을 만드는 데 집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7:58 | 관리자
05. 진정한 위대함은 능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격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의 핵심은 이것이다. 즉, 진정한 위대함은 능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격’ 이라는 것이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탁월한 능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믿고 있다. 사람들은 미술, 문학, 음악 또는 정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위대함의 증거라 믿는다.그리고 이런 능력의 소유자들을 환영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진정한 위대함이 이런 것들보다 더욱 깊은 것이라고 가르치셨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기독교 이전에 소수의 철학자들과 종교가들이 사람들의 위대함의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위대함의 본질을 정확히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 준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라고 당당히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주님! 주님의 ‘위대함’의 개념은
세상의 위대함의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이런 진정한 위대함을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을 저에게 불어넣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주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7:02 | 관리자
04. 명예와 칭찬을 따라 동분서주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아무 사심 없이 복음을 위해 일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그리스도인들끼리 경쟁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명예와 칭찬을 좇아 동분서주한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름을 날리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 자신의 탐욕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헌금을 더 많이 받아내려고 벌린 손에서는 진땀이 흐른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려고 날뛴다. 누군가 조금만 인기가 있다 싶으면 크게 과장하여 난세의 영웅으로 만들어 숭배하는 천박한 ‘인물 숭배’가 판을 치고 있다 신실한 복음 전도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비굴한 태도로 부자의 손에 입 맞춘다.
바로 이런 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런 어지러운 현상이 바로 성경이 ‘세상’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입으로 아무리 ‘영혼 사랑’을 외쳐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없다.
오, 하나님 높아지려는 유혹에서 저를 구하소서.
저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충성스럽게 봉사할 것입니다.
저의 일이 아무리 미천하게 보일지라고 저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6:08 | 관리자
03.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지 말라.
통속적 유대교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통속적 기독교는 종교개혁가들을 죽이고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종교에 관한 한 통속적 대중은 잘못된 편에 선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이고 나머지는 어둠에 쌓여 있다.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서 당대의 종교적 유행과 인기에 맞서는 것은 언제나 인기 없는 일이고 때로는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대중적 인기를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으로 쇠퇴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인(自認)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상의 힘센 자들의 발 앞에서 아첨할 때 성령님은 슬퍼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당혹감을 느낀다.
롯은 인기 있는 신자였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는 자기를 곤경에서 꺼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즉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가 아브라함을 어디에서 찾았는가? 아브라함은 유행을 좇는 대중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의 경사진 곳에 있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우리에게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세상의 유행을 좇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홀로 섬길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대중의 시끄러운 소리가 저의 귀에 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4:44 | 관리자
02. 영혼을 잘 조율하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힘든 것은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목적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은 보기 드문 재능과 은사와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들의 재능과 은사와 능력을 영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발전이 없다.
왜 사역자들이 해마다 실패를 고백해야 하는가? 그들은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보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그들이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능력이 있지만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 (Stradivarius, 이탈리아 사람 스트라디바리 또는 그 일가가 만든 명품 바이올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율을 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 아무리 좋은 바이올린을 갖고 있다 해도 시간을 내어 차분히 그것을 조율하지 않으면 멜로디도 화음도 낼 수 없다.
오, 주여! 오늘 제가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저를 훈련하도록 도우소서.
제가 잘 조율된 하나님의 악기가 되어 성실하게 봉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3:47 | 관리자
01. 대가 없이는 성공도 없다.
영적인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성공의 법칙이 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영적 성공의 법칙이다.
영적인 일들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헌신해야 한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거룩해지기를 원한다면 그 방법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약의 대언자(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거룩한 삶의 법칙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만일 피아니스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훈련을 게을리 하는 것만큼 그의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한다면 그의 콘서트는 엉망이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 소속의 야구 선수가 교회 직분자들처럼 빈둥거리면 1주일 만에 해고될 것이다. 평신도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방법에 무관심한 것처럼 과학자가 그의 전공에 무관심하다면 그는 아무런 연구 성과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나라의 군인들이 교회의 영적 군사들만큼 유약하고 미숙하다면 적국에게 하루아침에 점령당할 것이다.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사람은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다. 성공은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오, 주님! 주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그것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지(意志)를 저에게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3:00 | 관리자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서 결국 영적인 기형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
첫째, 우리는 담대해지려다가 지나쳐서 뻔뻔스럽게 될 수 있다용기와 온유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는 담대함이 지나쳐서 온유함을 잃고 대제사장에게 "회칠한 무덤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깨달았을 때 즉시 사과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적 성숙함을 나타냈다.
둘째, 우리는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지나쳐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는 균형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발견되었다.자신은 언제나 숨김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는 성격이라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 말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셋째, 깨어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의심하는 버릇에 빠질 수 있다.우리의 주변에는 적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적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 적을 찾아 내려는 습관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오류와 싸우다 보니 우리는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의를 품는 경향이 있다.
넷째, 진지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우울해질수 있다성도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침울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경건이 아니기 떄문이다.
다섯째, 양심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양심의 문제에서 지나치게 예민해질 수 있다.우선 사탄은 신자의 양심을 파괴하여 비 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고 시도한다.그러나 이런 시도에 실패할 때 그는 반대적인 전술을 써서 신자의 양심을 병들게 만든다 이것은 신자가 양심적으로 너무 예민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늘 고민과 스트레스속에서 살아간다.
2009-05-01 15:29:29 | 관리자
망치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만일 못이 감정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못은 다르게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못에게 망치는 자기를 복종시키려고 사정없이 치고 못이 보이지 않도록 박으며 강타하기 위해 사는 반대자요, 잔인하고 무자비한 원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망치에 대한 못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가지를 빼놓고는 정확한 생각이다.
못은 자기 뿐아니라 망치도 목수의 도구라는 것을 잊고 있다.
못이 목수의 손에 망치가 쥐어져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망치에 대한 원한은 사라질 것이다.
목수는 망치를 든 다음 어느 부분을 쳐야 할지와 그것을 치기 위해 어떤 망치를 고를 것인지 결정한다.
이것이 목수의 주관적 권리이다.
못이 목수의 뜻에 순종하여 못의 장래를 위한 자상한 계획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못은 아무 불평없이 망치에게 순종할 것이다.
토저의 '신앙의 기초를 세워라 '중에서
2009-05-01 15:28:01 | 관리자
하늘의 비전 (the heavenly vision, 행26:19)
(출처: 월간 고신 <생명나무> 2009년 4월호 중)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다 신문보급소에서 생활하며 야간대학을 나온 A를 처음 만난 것은 이십년 전이었다. 그는 어려움이 생길 때면 도와달라며 찾아오곤 했지만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수십억을 주무르고 나서부터는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자기 회사를 말아먹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해왔다. 십여 년 A를 위해 기도해왔던 터라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만져주심을 바라고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한때는 통일교에 몸담고 있었고 또 나름대로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며 터득한 잘못된 신앙관을 고수하고 있던 A가 차츰 진리의 말씀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A는 확실히 예수님을 자신의 인격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을 하였다. 아울러 평소 구박하였던 부인에게도 용서를 구하였고 이어 온 가족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삼십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B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며칠 후 B에게 전화가 왔다.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나가도 좋겠냐는 것이었다. 가정에 아픔이 있었고 건강에도 심각한 위기가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B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한때는 국선도의 사범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르쳐왔던 그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히 그 마음을 녹이기까지 일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마침내 지난겨울 교회 근처 중국집에서 B는 자신의 입술로 분명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셔 들이는 기도를 하였다. 이후 이제껏 결코 맛볼 수 없었던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는 B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옛날의 자기와 같은 뉴에이저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소망을 품으면서….
독실한 천주교인인 C가 목요성경공부 시간에 동료교수의 권유를 받고 참석하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성경공부라 그는 천주교적인 관점에서 여러 질문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며 그의 주장이 틀렸음을 확인해주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C는 안색이 변하면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 형제자매들이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신기하게도 성경공부에 지속적으로 출석하였다. 그리고 6개월 뒤 C는 자기 집에서 졸저 <똥 이야기> 부록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하였다. 이후 C는 성경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는 교회에 출석하여 구원간증을 하고 침례를 받았으며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D 전공의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밤에 찾아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병동 일을 빨리 마치고 9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필자의 연구실로 들어온 D는 마치 빌립보 간수처럼 질문을 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나요? 천국과 지옥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요?”
의대생 시절 필자가 소아청소년과 임상실습을 마친 학생들에게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를 선물하며 예수님을 전했던 것이 그에게는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필자는 새벽 1시 반까지 성경을 펴놓고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인생의 결국이 어떠한지 D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D는 머뭇거리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하였다. 비록 지금은 바쁜 전공의 신분이라 주일에 어느 교회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다 병원 안에서 마주칠 때 필자를 향해 미소 지으며 같은 천국 시민으로서 누리는 기쁨을 표시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특히 필자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월간 <건강과 생명>의 편집인을 맡아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해주셨다. 그러는 가운데 말씀을 연구하고 신앙칼럼을 쓸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셨다.
아울러 교회와 직장에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필자가 영적으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비록 아직도 실수와 부족함이 많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순간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09-05-01 15:26:5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