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존재
에스겔서 28장 11절~19절과 이사야 14장 12절~20절은 루시퍼의 존재와 그가 부패한 길을 걷게 된 사실이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언자를 통해서 기록되어졌습니다.
에스겔서 28장 11절~19절
11
¶ 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로다.
13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는데 모든 보석 곧 홍보석과 황옥과 다이아몬드와 녹주석과 줄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석류석과 금이 너를 덮었고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서 네 작은북과 네 피리의 작품이 예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며 다녔도다.
15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가 네 길들에서 완전하였는데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
16
네 상품이 많으므로 그들이 네 한가운데를 폭력으로 가득 채우매 네가 죄를 지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리라. 오 덮는 그룹아, 내가 너를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끊어 멸하리로다.
17
네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네 마음이 높아졌으며 네 광채로 인하여 네가 네 지혜를 부패시켰은즉 내가 너를 땅에 던지고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이 너를 바라보게 하리라.
18
네가 네 많은 불법 곧 네 무역의 불법으로 네 성소들을 더럽혔나니 그러므로 내가 네 한가운데서 불이 나오게 하여 너를 삼키게 하고 너를 바라보는 모든 자들의 눈앞에서 너를 데려다가 땅 위의 재가 되게 하리라.
19
만백성 가운데서 너를 아는 자들이 다 너로 인하여 놀라리니 네가 두려움이 되고 결코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라.
이사야 14장 12절~20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개역성경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KJV : 12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which didst weaken the nations!
NIV : 12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You have been cast down to the earth, you who once laid low the nations!
ASV : 12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day-sta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that didst lay low the nations!
RSV : 12 "How you are fallen from heaven, O Day Star, son of Dawn! How you are cut down to the ground, you who laid the nations low!
13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15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
16
너를 보는 자들이 너를 자세히 살펴보고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이르기를, 이 자는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흔들며
17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고 거기의 도시들을 멸망시키며 자기 죄수들의 집을 열지 아니한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18
민족들의 모든 왕들 곧 그 모든 왕들이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누워 있건마는
19
오직 너는 가증한 나뭇가지같이,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여 그 구덩이의 돌들로 내려가는 자들의 의복같이, 발밑에 밟히는 사체같이 네 무덤에서 쫓겨났도다.
20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묻히는 일에서 그들과 함께 합쳐지지 못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씨는 결코 명성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새벽별, Morning Star
예수님은 빛나는 새벽별, 모닝스타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개역성경 :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KJV : 16 I Jesus have sent mine angel to testify unto you these things in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and] the bright and morning star.
NIV :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give you this testimony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and the bright Morning Star."
성경에서 예수님과 루시퍼의 오역과 거짓사상을 구분하기
계명성은 다음과 같은 사전적 의미로 많은 신학자, 목사들이 보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전의 해석에서도 잘못된 시각으로 알리는 부분들이 있는 사전이다. 이사전대로 말하면 예수님이 계명성입니다.
[히] lleyhe(helel) ? oJ evwsfovro"[영] Day star원어의 뜻은 [반짝인다, 빛난다]. 새벽의 동쪽하늘에 가장 발게 보이는 금성을 의미하고, 자기를 지존자로까지 높이는 교만한 바벨론왕을 가리켜 씌어져 있다(사 4:12,[아침의 아들]은동의어). 3세기 이래 사 4:12의 설명이 눅 10:18이라고 하여, 이 원어를 사단(마왕 Lucifer)을가리키는 것으로 하는 견해가 특히 시인들 중에 있었는데, 물론 근거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금성은 지구의 바로 안쪽에서 태양의 주위를 도는 아홉 개의 유성중의 하나로, 유성중에서가장 찬란하게 비치는 별인데, 초저녁의 하늘에 비치면 장경성, 개밥바라기, 태백성, 혼중성(昏中星)이라 하고 새벽 하늘에 보이면 샛별, 명성, 계명성이라고 한다. →새벽별, →샛별
위의 루시퍼를 말하는 이사야서14장의 문맥중에서 12절과 예수님을 가리켜 새벽별, Morning Star이라고 하는 요한계시록 22장 16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명확하게 루시퍼와 예수님을 구분하여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언급된 모든 성경들은 예수님과 루시퍼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김** 형제님이 지적한 사탄 숭배자와 뉴에이저들이 타락한 것은 예수라고 하는 주장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성경은 진실을 말합니다. 아니라고...
사탄은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예수님의 신성을 무너트리고 약화시켜려 하는데 우리는 설마 하지요!!! 목사들도 설마 하지요! 그러다가 머리가 획가닥 돌아서 미치는 목사들도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번역이 잘못되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마귀는 성경을 변개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의 번역이 잘못되면 이런 황당함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과 요한계시록 22장 16절 대조)
킹제임스흠정역 성경 :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개역성경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표준새번역
12웬일이냐, 너, 아침의 아들, 새벽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아 맥도 못추게 하던 네가, 통나무처럼 찍혀서 땅바닥에 나뒹굴다니!
16 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교회들에 주는 이 모든 증언을 전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
현대인의 성경
12 웬일이냐, 너, 아침의 아들, 새벽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아 맥도 못추게 하던 네가, 통나무처럼 찍혀서 땅바닥에 나뒹굴다니!
16 나 예수는 온 교회에 이 모든 것을 증거하게 하려고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냈다. 나는 다윗의 자손이며 빛나는 샛별이다."
바른성경
12 새벽의 아들, 계명성아,어찌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느냐?민족들을 굴복시키던 네가어찌 이제는 찍혀져그 땅에 쓰러졌느냐?16 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에 관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 내가, 곧 다윗의 뿌리이고 자손이며 빛나는 새벽별이다.”
공동번역 성경
12 웬일이냐,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던 네가 찍혀서 땅에 넘어지다니!
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모든 교회에 이 모든 것을 증언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에서 돋은 그의 자손이며 빛나는 샛별이다."
KJV :
12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which didst weaken the nations!
16 I Jesus have sent mine angel to testify unto you these things in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and] the bright and morning star.
NIV
12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You have been cast down to the earth, you who once laid low the nations!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give you this testimony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and the bright Morning Star."
ASV
12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day-sta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that didst lay low the nations!
16 I Jesus have sent mine angel to testify unto you these things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the bright, the morning star.
NASB
12"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star of the morning, son of the dawn! You have been cut down to the earth, You who have weakened the nations!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testify to you these things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the bright morning star."
RSV
12 "How you are fallen from heaven, O Day Star, son of Dawn! How you are cut down to the ground, you who laid the nations low!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you with this testimony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the bright morning star."
2012-12-24 16:16:24 | 노영기
세상만 쫓아서 살다가도 문득 뉴스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때면
현실과 영화의 차이처럼 큰 생각의 차이를 느낄때가 간혹 생기네요.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란 바벨탑 앞에 죄를 인지하지 못하고 인간을 높이고,
평등, 존중이란 허울을 씌워 놓는군요.
11일 유엔본부에서 반기문총장이 커밍아웃 성적소수자들 옹호연설을 했다고합니다.
수많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인권이란 방패를 만들어 주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현실이니까 돈 먼저 생각하게되고
어쨋든 난 천국 갈거니까 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세상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저를 보고 뭐라고 하실까요.. 그래도 현실 세상속에서 살았으니까 용서해 주시겠죠?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와 누가복음 23장 39절~43절 을 보면서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열처녀 비유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신부된 자로써 저의 삶에 불안함을 주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옆의 죄인이 구원받는 장면을 보면 주님을 믿으면 구원이라는 약속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3장을 다시 읽어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결론, 열처녀비유와 일맥상통하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죄인은 예수님께 구원을 요구하기전에
예수님을 욕되게 한 1. 다른 십자가의 범죄자를 꾸짖고, 2. 자신의 죄를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알며(그의아들 예수님을 믿으며)
3. 우리는 죄인이거니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며 4. 마지막으로 구원자되신 예수님께 구원받기를 요청합니다.
예수님, 믿는자, 안믿는자가 동일하게 십자가에 메어있지만 그 십자가는 믿지 않는자를 구원해주지못했습니다.
저의 갈길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
제가 생활속에서 그러지 못함을 아시고, 저를 깨닫게 해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에게 민혁아! 아직 늦지않았다. 준비하라! 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2012-12-12 22:06:20 | 이민혁
2012-12-07 12:25:30 | 이충현
세상의 무신론자 중에서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세도 심판도 없다.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상대적인 잣대로 살아도 된다. 그걸 모르고 하나님이나 찾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무신론이 진리임을 알리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내 생명이라도 내어 놓겠다.”
이렇게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킹 제임스 성경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구원받은 크리스천 중에서
“내게는 개역성경/NIV가 최종 권위인 하나님 말씀이다. KJV야말로 6만 군데의 단어를 변개하고 13구절을 후대에 ‘추가’하여 하나님 말씀을 뜯어고친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정반대로 알고 있는 KJV 지지자들을 사랑으로 계몽하고, 진짜 절대무오한 다른 성경을 대안으로 내놓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두 진영은 서로 계산 결과만 다른 게 아니라 계산 과정과 초기의 변수, 생각하는 전제 조건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2012-11-17 15:14:04 | 김용묵
착한짜장면
금요모임이 끝난후 집에 와서 모 케이블 t.v 에서 하는 먹거리 x - file 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 식당들의 불편한진실(?) 들을 소개 그와 반대로 천연재료로 정성스럽게 순수하게 음식을
만드는 착한식당을 선정 소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우리가 흔히 먹는 국민음식 짜장면을 소재로 인공화학 조미료라 불리는 글루타민산 나트륨
MSG (Mono sodium glutamate) 가 들어가지 않은 짜장면집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 제보를 받아 취재진이 전국의 짜장면집을 찾아보았으나 거의 모든 중국음식점들이
MSG 를 사용하거나 직접 MSG 를 넣지 않더라도 춘장이나 다른 양념에서 MSG가 발견이 되어
취재에 실패 하였고 맨 마지막에 등장한 MSG를 넣지 않는 짜장면집을 발견
착한식당으로 선정이 되고 취재를 하였으나 취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점을
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착한 짜장면집이 망하게 되었을까?
직접 담근 단무지 와 반찬들 모든 육수를 천연재료만 사용하고 국내산 콩으로 만든 MSG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춘장으로 면도 톳을 넣어 건강하고 맛있게 만든 짜장면
몰래 암행탐방을 한 각 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에게 극찬을 받고 감동까지 선사한 그 집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수수께끼는 프로그램 속 주인의 인터뷰 안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떤 손님들은 이것도 음식이냐?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드느냐? 하며 신경질을 부리고 나가고
한 젓가락 먹어보고 그대로 음식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 등등
MSG에 길들여져 진짜 춘장으로 만든 맛있는 짜장면을 맛없다고 타박하고 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 결국엔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점 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저를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은 몇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중국집이 MSG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MSG 를 직접 넣지 않더라도 이미 사용하는 춘장 안에 검은색을 내기 위해
발암물질인 캬라멜색소 와 MSG가 첨가 되어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래 춘장색깔은 검은색이 아니라 된장과 비슷한 진한황토색이라는 사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면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착한짜장면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략 몇가지를 적어보면
대한민국 대다수의 교회는 개역성경&개역개정을 사용한다.
바른말씀을 고집하는 소수의 교회는 킹제임스 흠정역만을 사용한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중국집은 MSG 와 캬라멜색소를 넣은 춘장을 사용하여 짜장면을 만든다.
착한짜장면집은 국산콩으로 만든 MSG 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춘장을 사용하여 짜장면을 만든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교인들은 오류가 있고 국어문법에도 맞지 않고 “없음”이 있는
개역&개역개정 성경을 좋아하고
소수의 성도들은 오류가 없고 국어문법에도 맞고 “없음”이 없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좋아한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MSG 와 캬라멜색소를 넣은 짜장면을 좋아하고
어린아이들과 소수의 사람들은 MSG와 캬라멜색소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춘장을 사용한
짜장면을 좋아한다.
착한짜장면을 찾는 이들과 MSG와 캬라멜색소를 넣지 않는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적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찾는 이들과 킹제임스 흠정역을 사용하는 교회가 적다.
등등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착한식당이 대한민국에 많이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바른말씀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고 사용하는 교회들과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진짜 짜장면 맛을 알게 되면 맛을 알게 되면 더 이상 MSG 나 캬라멜색소가 들어간
짜장면을 안먹게 되듯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보존해 주신 바른 하나님 말씀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게 된다면 더이상 오류가 많고 많은 내용이 첨가첨삭이 된 "없음"이 있는 개역 및 개역성경을 안보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방송 마지막에 착한짜장면집 주인이 내년 봄에 제주도에 다시 식당을 오픈 할 것이라고 알려와
방송국에서 개업날짜를 광고하고 개업식 날 착한식당 선정기념패를 전달 할 것이라고 해
마음이 풀렸습니다. ^^;
오늘 금요모임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전국에 많은 사람들이 바른 말씀인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린다고 소식이 전해져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르게 보존해주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한글을 사용하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잘못된 신학과 교리에서 벗어나 바른 교리 바른 복음을 깨닫는 참된 바른 크리스쳔들이 이 땅에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샬롬!
2012-11-17 01:41:37 | 송재근
오늘 아침에 호주에 사시는 한 분으로부터 글이 와서 소개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좋은 목사들이 많이 나오도록 모두 주님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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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드니에 있는 한인침례교회총회에서
한국의 연세중앙교회 윤석전목사라는 사람을 모셔다가
연합집회를 하였는데 어떤 분의 요청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야 대강 이런 무리들의 목사들이 하고 다니는 행태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면 안 된다고 하였으나 집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설마 하기에
실상을 보여 주고 싶어 귀중한 저녁시간을 내어 가봤지요.
목사님! 뭐 보나 안보나 뻔한 쇼가 아닐 수없었지요.
멀쩡한 성도들을 죄인만들어 후려치기-그리스도의 복음은 간데 없고
창조 에덴동산을 왜곡 변질 된 마귀론으로 끌고 가고
지옥과 천당의 극단적인 공포와 공갈로 협박하면서- 율법적이지만 성경적이라면서
정작 본인은 초등학교4학년때에 예수기적을 했다, 예수믿으려 하다가
엄마가 쥐약 먹어도 살았고 목매달아 죽어도 믿음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다면서
예수의 피의 대가와 구원의 감사를 무엇으로 아는가- 물질 감사, 십일조, 교회 목회자 절대 섬기기 등등
세상 성공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믿어서 복 받아야 성공해야 한다는 등
잘 보면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약장사 원맨쇼를 보다 보니
너무 화가 나고 그리스도의 값진 복음이 이렇게까지 타락하여
일등 교회 제일 돈 많이 쓴 사람이 조00 그 다음이 윤석전이랍니다.
혹세무민 아니 혹세성도의 표본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멘 아멘만이 있을 뿐.
찢어지는 음악소리로 정신없게 만들고
아멘 아멘 굉음소리로 몰아가고
손들고 박수소리로 꼭두각시로 만든 다음에
성경을 인용합니다. 이곳 저곳 적당히 공갈 칠 구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언뜻 들으면 절대 예수 믿음을 앞세웁니다.
성경적이기에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천당을 최고의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고기를 몰아 그물에 담듯이
교회 목사 섬기기 그리고 돈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모두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단물은 다 교회로 와야 하고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천국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금방 아는데도
저 불쌍한 사이비에 중독된 청년/장년들이 조금도 의심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자기 교회 성도들을 대동하고 열심이지요.
몸 버리고 돈 버리고 영혼까지 버리게 되는 저 믿음이여
신학이 무엇이고 신앙이 무엇이며 신앙의 삶이 무어야 되는지
도무지 모르고 헤매는 길 잃은 양 들을 보며
너무 가슴이 미어지고 괴로와서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 이 아침에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을 통해 한줄기 소망을 갖고 힘을 얻는 사람
호주 시드니에서 ooo 드립니다.
2012-11-15 13:06:45 | 관리자
먼저, 스페인 세비야에서 주님의 한없이 큰 긍휼과 은혜를 입은 주님의 작은 종이 감사의 안부를 전합니다.
지난 10월 22일 한 형제님과 만남을 통해 받은 자료들과 CD를 통해, 지난 세기동안 사탄의 간교한 역사의 혼돈 한 복판에 내가 있었구나를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86년에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우여곡절 속에서, 간신히 91년 신학과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95년 베트남 하노이에 선교사로 가게되었고, 3개월만에 추방당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베트남 형제 자매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퇴학 당하고, 저만 쓸쓸히 눈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빚은 늘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언제가 다시 섬겨야 할 빚이 되었습니다.
이후 96년에 이탈리아 로마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천주교의 한 복판에서 혼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대하면서, 천주교의 실상을 알아야 함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늘~ 언제가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나폴리에 주님이 교회를 세우셔서, 잠시 섬기다가, 현지 형제들에 교회를 맡기고, 98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향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91년에 한국 지방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기에, 이후 선교사로 파송된 것도, 지방교회 안에서 였습니다)
많은 일과 훈련 후인 2년후에, 결국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 주셨고, 달콤한 교회생활을 1년 6개월하고 있는데, 다시 새로운 땅으로 가라는 명을 받게 되었고, 헝가리 성도들과 눈물의 이별과 기도의 보내주심을 받고, 기도중에 스페인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지방교회에서 나오게 되었고, 이제는 자비량으로 선교를 해야만 했습니다.
2001년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1년 있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여, 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면서~
결코 진리인 말씀이 아닌, 기독교 계와 타협할 수 없어서, 홀로 서게 되었고, 2005년 다시 스페인으로 떠나면서 자비량 선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하심에...처음에는 그리스도안의 자유에 너무나 감사드렸지만, 이때 부터, 방황과 외침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 하나님, 이제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합니까!!"
" 무슨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제가 모르겠습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광야의 40년의 세월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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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주님의 종과의 만남이 있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앞으로 하나님이 이끌기 시작했고,
몇 분의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님이 인도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늘, 헝가리 성도들과 이탈리아 성도들을 멀리서 바라 보면서, 참된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한다는 위임과 책임 때문에,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소서, 갈 길을 알려 주소서!
당신이 피로 사신 귀한 형제 자매들과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 지요!"
이러한, 기도에 응답으로
주신 킹제임스 성경과 형제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우리 온 가족은 눈물의 감사와 경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후, 지난 2주 동안, 밤 낮으로 킹제임스 한글 성경의 간증을 들으면서,
큰 격려와 힘과 천군 만만의 형제 자매들을 얻은 기쁨과 감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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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로셀로나의 2 자매와 한 가정에게
받은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마드리드에 몇 자매들이 있는데, 몇 일 후에 방문하는데,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자료를 전하기 원합니다.
끝으로,
이런 천금같은 만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사의 눈물의 기도를 드립니다.
"살아 계신 나의 하나님, 살아 숨쉬는 말씀을 주시니, 이 종이 살았나이다. 내가 주를 노래하리이다.
내발이 주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고침을 받아, 달려 가나이다.
주님, 이제 당신께로 달려 가나이이다. ""
모든 영광을 주 하나님께 돌려 드리며,
keepbible 사역에 함께 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과 교회들에 큰 감사드리며, 스페인과 이탈리아, 헝가리 땅을 위해,,,
유럽 땅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더 교재 드릴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스페인에서 박 성 운 드림.
parktimo@gmail.com
2012-11-10 21:01:02 | 박성운
성경과 세속 학문은 ‘창조 대 진화’로 대표되는 과학 분야와의 대립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역사라는 인문 분야와의 대립도 그에 만만찮은 수준입니다. 즉, 전자는 문헌 기록이 없는 까마득한 지질 역사와 선사시대를 다루다 보니 인문학적 연구 방법론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과학의 영역인 반면, 후자는 인간이 남긴 기록을 통해 연구가 이뤄지죠.
성경에 따르면 인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 때부터 불을 피울 줄 알았고 농사를 지을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육식과 사냥이라는 건 나중에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야만적인 구석기, 신석기 선사시대라는 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3장이야 공격받을 대로 공격받아 온지라, 이를 문자적으로 믿는 교계나 학계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공격의 대상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 듯합니다.
창조 과학 진영이라든가 일부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20세기 초에 실제로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료가 무신론 공산주의 소련 정부에 의해 조작되고 폐기되었다는 역사 기록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는, 노아의 홍수라든가 방주 기록은 죄다 허구이며, 인공위성이 전세계 표면을 샅샅이 뒤져서 Google Earth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만들어 내는 세상이 왔지만 해당 지역에 방주 같은 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두 주장이 모두 옳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고대 이집트의 역사에도 람세스 2세 정도 되는 시대의 기록을 아무리 뒤져 봐도, 모세라든가 히브리 노예 출애굽이라든가 대재앙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거덜났었다는 말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영화 <십계>를 보면, 이를 의식해서인지 모세가 왕궁에서 축출당할 때 모세와 관련된 역사 기록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흑역사화하고 말소한다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 더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6일 창조에서 문자적인 24시간짜리 하루가 억겁과 같은 긴 시간으로 왜곡되듯, 홍해가 갈대밭으로 둔갑하는 것쯤은 일도 아닌 거 같습니다. 왜곡의 근거로 알량한 원어 드립까지 등장하면 할 말이 없어지지요. 아예 성경 지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추정 경로부터가 해로가 전혀 아닌 육로로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가 아닌 평범한 갈대밭을 건넜을 뿐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인근 민족들에게 멘붕과 충공깽(충격과 공포)의 근거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수 2:10)? 시편에 수도 없이 나오는 홍해 사건 칭송과 고전 10:1-2, 히 11:29 같은 구절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겠다는 건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유대 왕국을 생각해 봅시다. 특히 열왕기상 10장을 펴서, 솔로몬의 시절을 생각해 봅시다.은이 너무 흔해서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었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다는데 그런 엄청난 유대 왕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너무 미미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흔히, 세계 고대 유적의 불가사의라고 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가 바빌론의 공중 정원 같은 게 거론됩니다. 왜 이스라엘 옛 성전이 전혀 논의되지 않는지가 의문스럽습니다. 고전적인 7대 불가사의 중에 현존하는 건 어차피 이집트 피라미드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봅시다.제아무리 불신자나 기독안티라고 해도,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갈리는 것은 그분의 부활 여부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사대성인 중 한 분으로만 소개하는 세속 인명 사전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냥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만으로 설명이 끝납니다. 그보다 좀 더 관대하게 설명한 세계사 만화나 윤리 서적은 “그런데 기독경에 따르면 그는 그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고 승천했다고 전해진다/여겨진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가 추가되는 정도입니다.
이건 성경에 기록된 다른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정말 기독교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이 직접적으로 달린 치명적인 이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자체적으로 여러 방어 논리를 두고 있으며, 과거에 사이먼 그린리프 같은 걸출한 법학자는 치밀한 연구 끝에 예수님의 부활이 법적으로도 인류 역사상 가장 명확하게 입증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각에서는 예수님이 죽은 게 아니라 잠시 기절해 있었다거나, 탈출해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세까지 남긴 뒤 늙어 죽었다거나 하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다빈치 코드, 도마 복음, 유다 복음처럼 아예 초대 교회 시절부터 애당초 조작과 위조로 판명되어 폐기된 위경, 위서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그보다 수백 배 이상 훨씬 더 검증되고 믿을 만한 성경 정경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일련의 예들을 접하니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우리는 성경이 단순히 복음 메시지만을 포함하는 부정확한 책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고 문자 그대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그분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성경 자체가 과학이나 역사 지식의 전달이 주목적은 아니지만, 일단 과학이나 역사 지식을 언급했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일 거라고 믿습니다. 6일 창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재앙과 홍해 기적, 유대 왕국의 부귀영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 중 어느 것도 문자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 학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집요하게 성경 기록을 ‘왕따’, ‘아싸(아웃사이더)’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저는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영향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그저 전설이나 설화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특히 성경의 이스라엘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그 이스라엘의 직계 전신이라는 설명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방주가 남아 있지 않다 한들, 그리고 이집트의 실록에 모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한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본질적으로 좌지우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역사 기록에도 영적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적인 조작이 가미된 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지 않습니까? 마치 로마 천주교가 중세에 자신들이 저지른 참혹한 학살극과 종교 재판 관련 기록을 조직적으로 말소해 왔듯이 말입니다!
기록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어떻게 그렇게 입 싹 씻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묻혀 버릴 수 있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그런 기적적인 사건들이 해당할 것이고, 나중에 비록 성경의 기록 범위를 벗어나 교회사의 영역이긴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피비린내 나는 순교의 발자취가 이런 식으로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중세 암흑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 싶습니다.
여기서 일화 하나.
우리나라에는 조세형이라고 197~80년대를 풍미한 희대의 도둑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소위 ‘높으신 분들’ 내지 졸부들 집을 털면서 현금, 외화, 심지어 물방울 다이아 등 숱한 검은 돈의 원천을 확보했습니다.
그랬는데, 결국은 잡혔지요. 그러니 일반적인 절도 사건이라면 그의 집에 있던 장물들은 다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야 정상일진대, 이 경우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세형이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이 집에서 이걸 훔쳤다고 직접 말까지 했는데도 당사자들은 자기는 집에 도둑맞은 게 없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런 현금과 귀금속의 소유권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간 출처에 대한 추궁, 그리고 무서운 세무조사가 뒤따르겠지요. 탐관오리 졸부라는 세간의 손가락질은 덤이고요. 이걸 감수하느니 차라리 도둑맞은 물건은 그냥 없는 걸로 치고 잊어버리는 게 그들에게 오히려 이익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조세형은 자신이 숫제 대도, 의적으로 취급 받으며 피해자들이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 없는 장물들은 아마 국고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좋군?)
인간의 역사에도 저런 장물 같은 사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적적인 사건들의 역사적 증거도 많을 겁니다. 단순히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 따라 왜곡되기 마련인 차원을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이 돌아가는 과정이 전부 지하의 음모 세력에 의해 조종된다고 불안해하거나, 이젠 꿈도 희망도 없다고 좌절하거나, 세속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식으로 과민 반응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억울한 피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고(창 4:10-11), 심지어 부당한 품삯의 부르짖음(약 5:4)조차도 의인화하여 들을 줄 아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성경의 역사성을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성경을 믿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필요가 있으며, 현실이 이러한데 그 현실의 배후에는 우리가 매우 경각심을 가져야 할 치열한 영적 전투가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역사라는 게 ‘그분의 이야기’(history)라는 기독교식 비유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좀 더 분명하게 와 닿을 것입니다.
2012-11-05 09:21:55 | 김용묵
흠정역 킹제임스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눅.16:8. 주인이그 불의한 청지기가 지헤롭게 행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세대에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니라. 이란 말씀에서 주인 입장에서 자기 재물을 빼돌린 불의한 청지기에 대해 지혜롭다고 칭찬하시면서 불의의 맘몬으로 너희를 위해 친구들을 사귀라 그리하면 너희가 숨이 멎을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존하시는 처소로 받아 들이리라. 하신 말씀을 이해 하기가 어렵네요. 형제, 자매님들의 깨닫고 받으신 은혜에 설명 부탁 드리겠습니다.
2012-11-01 21:08:46 | 김창수
궁금해서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위 그림은 원문을 아래아한글로 타이핑 한 것으로 캡쳐해 보았습니다.
원이 엄마 편지 옛글 원문
[외면]워니 아바님? 샹?
(주 : 편지 겉면의 제일 왼쪽 가장자리에 이렇게 쓰고는 종이를 뒤집어 본문을 써나갔다. 이렇게 하면,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끝에서부터 접었을 때, 이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편지를 펼쳐보지 않아도 누구에게 쓴 편지인지 알아볼 수가 있다)
[내면]자내 샹해 날?려 닐오?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 죽쟈 ?시더니 엇디? 야 나? 두고 자내 몬져 가시? 날?고 ?식?며 뉘 긔걸?야 엇디 ?야 살라 ?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고 자내 날 향? ??믈 엇디 가지며 나? 자내 향? ??믈 엇디 가지던고 ?양 자내?려 내닐오? ? ? 누어셔 이보소 ?도 우리 ?티 서? 에엿? 녀겨 ?랑?리 ?도 우리 ??가 ?야 자내?려 니?더니 엇디 그런 이? ?각디 아녀 나? ?리고 몬져 가시?고 자내 여?고 아?려 내 살 셰 업?니 수이 자내 ?? 가고져 ?니 날 ? 려 가소 자내 향? ??믈 ?? 니?∨줄리 업?니 아?려 셜운 ?디 ?이 업 ?니 이내 안? 어듸다가 두고 ?식 ?리고 자내? 그려 살려뇨 ?노이 다 이내 유무 보시고 내 ?메 ?셰∨와 니?소 내 ?메 이 보신 말 ?셰 듣고져 ?야 이리 서 년뇌 ?셰 보시고 날?려 니 ?소 자내 내 ? ?식 나거든 보고 사롤 일?고 그리 가시? ? ?식 나거든 누? 아바∨?라 ?시?고 아?려 ?들내 안 ??가 이런 텬디 ?온? 이리
(주 : 여기까지 쓰고는, 쓸 곳이 부족하기에 종이를 돌려 위쪽 여백에 이어서 썼다)
[내면 위쪽 여백]하? 아래 ? 이실가 자내? ?갓 그리 가 겨실 ?거니와 아?려 ?? 내 안 ?티 셜울가 그지그지 ?이 업서 다 몯 서 대강만 뎍뇌 이 유무 ?셰 보시고 내 ?메 ?셰 와 뵈고 ?셰 니?소 나? ?믈 자내 보려 믿고 인뇌이다 몰? 뵈쇼셔
(주 : 여기까지 쓰고는 다시 편지를 돌려, 편지의 첫줄 앞의 여백에 글자가 거꾸로 되게 써나갔다)
[내면 오른쪽 여백에 거꾸로]하 그지그지 업서 이만 뎍뇌이다.
(주 : 여기까지 쓰고는 다시 종이를 돌려 맨 우측에 편지를 쓴 날짜와 발신자를 적었다)
[내면 오른쪽 여백]병슐 뉴월 초??날 지븨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위글은 원문을 아래아 한글로 타이핑한 것은 일반 텍스트 글로 변형해 보았는데 유니코드엔 맞는 코드가 없어 글자가 변형 되어 따로 캡쳐한 화일을 위에 첨부 하였습니다.----------------------------------------------------------------------------------------------------------
원이 엄마 편지 원문 (지금 표기할 수 있는 글자로표기) 과 해석. 원이 아바님께 (원이 아버지에게)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말하기를)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나와 자식들 누구에게 의지하여 어찌 살라고)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다 던지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함께 누우면 언제나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하며 당신에게 말했지요)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가 없어요)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내 속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내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말할 것 있다 해놓고 그렇게 가시니)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겁니까?)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그지그지 가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내 꿈에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몰래 뵈쇼셔 (몰래와서 보여주세요)하지 그지 업고 이만 적소이다.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지만 이만 적습니다)
원이엄마 한글 편지 전문 (현대 말 해석)
원이 아버지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 올림
전문가의 해석 없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글이네요. 그야말로 암호문?
2012-11-01 13:39:25 | 허광무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는 1998년 안동에 있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 이응태(李應台1556~1586)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420년 전에 한 여성이 한글로 기록한 ‘러브레터’이다. 임신 중에 있는 젊은 여인이 31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종이 하나 가득 표현했다. 16세기 조선 여인의 가슴 뭉클한 이 사연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도 소개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한글 편지에는 종이 가득 420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한 여인의 애절한 감정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다. 그렇지만 21세기 한국인이 이 한글 편지 원문을 살펴보자면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충은 읽고 대충은 이해하겠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없다면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기껏해야 400년의 시차가 있을 뿐인데 원이 엄마에게는 일상의 글이고 말이었을 것이 우리에게는 사학과나 국문과 교수님이 다룰 수 있는 전문 지식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고문서를 해독하고 과거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분야의 권위자가 따로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언어이고 글이며 말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면서 ‘원이 엄마의 편지’를 읽고 이해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그리스어로, 라틴어로 몰려가며 그 언어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경을 알 수 있는 최고 권위자로 인정한다.
성경을 믿음이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모든 신자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400년 전에 한글 편지를 썼던 원이 엄마는 죽었다. 그러나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편지를 썼던 여성이 죽었기 때문에 그녀가 사용했던 단어와 표현과 정확한 의미를 알려면 400년 전 중세한글을 연구해야 한다. 그런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이 분야에서 권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다.
3천 년 전에 히브어로 말씀하시고 2천 년 전에 그리스어로 말씀하신 원저자가 여전히 살아 계신다. 따라서 3천 년 전 언어를 연구하거나 2천 년 전 언어를 공부해야만 그분이 사용한 단어와 표현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당신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셔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 옛날 성경에 써 있는 것과 동일한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다. 진짜 성경을 읽고 싶다면 고대 언어를 공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읽을 수 있는 성경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 성경인지를 분별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살아 있는 언어로 말씀하신다. 이것이 성경의 보존이다.
400년 전에는 규방의 여인도 자유롭고 생생하게 사용하던 단어와 말과 글이 지금의 전문가의 영역으로 넘어갔는데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인간을 대하신 적이 없다. (생명 없는 종교는 자기들이 섬기는 신의 계시를 특정 언어에다 가뒀다. 라틴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면 언제나 그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글과 말을 사용하셨다. 3천 년 전 히브리어는 이스라엘의 언어였다. 그들에게는 일상의 언어였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의 율법을 누군가 앞에서 읽기만 해도 남자든 여자든 다 알아 들었다. 메모를 했다가 나중에 단어를 찾아가면서 따로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히브리어에만 권위를 두는 사람들 중에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여성들도 어린아이들도 히브리어를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의 글과 말로 성경을 주셨다.
2천 년 전 그리스어는 보통 사람의 언어였다. 하나님께서는 저잣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글과 말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주셨다. 언어의 천재들만 그리스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대학 교수들만 그리스어를 이해한 것이 아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셨을 때 누구라도 그분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율법 박사들만 그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종교 지도자만 그분과 대화할 수 있던 것도 아니다. 어부도 세리도 장애인도 바리새인도 여인들도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아들과 대화했고 그분의 말을 알아들었다. 심지어 죄인과 창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고 이해했다. 평생을 ‘개’같이 살았던 한 강도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그 순간에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그분과 대화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시고 알리시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분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그분과 대화하는 일에서 전문가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저잣거리의 여인이나 뒷골목의 왈패들조차 알 수 있는 글과 말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나타내셨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서 믿고 순종해야 할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언어로만 말씀하셨다. (라틴어 속에만 갇혀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언어로 전달되기 시작한 사건이 종교개혁이다)
고대 언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있다면 “지금” 나에게 주신 성경은 아니다. 물론 그 성경에 기록된 언어를 자신의 일상의 글과 말로 소유했던 사람은 존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고대의 언어를 전공하고 중근동 언어를 연구해야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믿고 섬기기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신이 아닌가?
수천 년 전에 어린아이들과 여인들에게도 말씀하실 수 있던 하나님이라면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 옛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성도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면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 고대 언어 전문가들에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믿음 없이 학문의 대상으로만 성경을 관찰하게 되면 ‘고대 언어와 역본’ 얘기로만 가득 차게 된다.
킹 제임스 성경의 위대함은 살아 있는 언어라는 사실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히브리어를 들으면서 알았던 바로 그 말씀을,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어를 들으면서 알았던 바로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게 된다. 킹 제임스 성경의 어휘를 재정의 하거나 재번역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왕과 신실한 일꾼들을 통해서 그 일을 이미 400년 전에 끝마치셨다. 킹 제임스 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온갖 종류의 비난과 공격, 모함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방어해 왔으며 입증되어 왔다.
비슷한 시기의 두 문서가 있는데 하나는(원이 엄마의 편지) 읽기도 힘들지만, 하나는(킹 제임스 성경) 여전히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이것이 세속적 학문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차이다.
고대 언어를 해석하는 사전(원어로 된 성경이라고 주장하지만 대개는 사전이다)에서 찾아낸 단어 몇 개로 신비로운 계시를 깨달은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스타일로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여기저기서 찾아낸 단어 몇 개 공부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쭉쭉 읽으라고 성경을 주셨다. 지금 내가 아이들과 함께 쭉쭉 읽을 수 있는 성경, 그것이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 참고로 다음을 보기 바란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272
루시퍼 간단 정리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5
2012-10-31 23:45:23 | 김재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관되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원칙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성경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너무 재미없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할 정도로 “세상에 공짜란 없다. 심은 대로 거둔다. (사람에게) 자유 의지는 철저히 존중하고 보장되나,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은 져야 한다”라는 f(x) → y식의 인과응보 사고방식의 신봉자라는 것이다. 오로지 복음과 구원만이 공짜이다.
물론 인간이 만든 세상 제도는 합리적이지 못하며 부정부패와 비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이를 일시적으로 허락도 하시기 때문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언뜻 보기에 잠시 통용되지 않는 것 같은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전 9:11). 그러나 하나님의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인과응보가 성립하게 된다.
(1)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갈 6:7)
하나님께서 결코 조롱 당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아, 성경을 보니 A를 하지 말라고? 그럼 B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A 대신 B처럼 하면 되겠네?”라든가,“지금까지 나쁜짓을 좀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 보니,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 먹어도 되겠군? ㅋㅋ”
같은 패턴으로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게 하나님 앞에서 안 통할 거라는 말이다. 성경을 어떻게든 삐딱하게 해석하고 자기 식대로 갖다 붙이려 하는 불순분자의 심리와 의도를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으니 말이다.그리고 문장 뒷부분의 의미는 말 그대로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단순하면서도 굉장히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속담이다.
(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살후 3:10)
성경은 단호하다. 일을 해서 스스로 돈을 벌지 않을려거들랑 밥도 먹지 말라고 그런다. 성경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유야 어쨌든 다 큰 성인이 백수나 니트족으로 있다거나, 정상적인 근로 의욕마저 상실시킬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가는 퍼 주기식 '무상' 복지 포퓰리즘 같은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이삭 줍기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 성경이 말하는 복지는 복지 수혜자라 해도 최대한 일은 하고서 먹을 것을 얻는 구도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건전한 근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사람마다 사유 재산과 빈부 격차를 명백히 인정하는 논조이며, 통념과는 달리 심지어 돈으로 돈을 버는 것조차도 전면 금기시하지는 않는다(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게으른 종에게 왜 이자놀이라도 안 했냐고 책망을..). 탐욕을 그렇게도 정죄하고 싫어하는 성경이 한편으로 그런 자유주의 경제관도 지지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성경적인 사고방식과 공산주의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들더러 읽으라고 쓰여진 성경에 '불신자만도 못한 자'라는 표현이 있을까, 없을까? 성경에서 쓰이기에는 다소 강하고 자극적인 비하 표현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성경에 나온다. 출처는 바로 딤전 5:8. 성경이 규정한 책망 대상이란 바로 '자기 힘으로 일해서 돈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단,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성경의 모든 법칙에는 예외도 있다. 저건 다치거나 아파서 정말 타당한 이유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사람들까지 쫄쫄 굶으라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또한, 잘못된 사회 제도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성경은 공산주의가 생길 빌미를 제공한 악덕 자본가나 기업주, 지주, 탐관오리들을 야고보서 5장에서 신랄하게 디스해 주고 있다. 그러니 성경의 논조가 특정 이념 편향적이라는 오해는 없기 바란다.
(3)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 21:24; 레 24:20; 신 19:21)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하고 진지한 주제가 나온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조는 함무라비 법전이 아니라 성경(모세 율법)이다!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구약에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대해서 안타깝지만 오해가 엄청 많다.
하나님이 세우신 준엄한 원칙은, 뭔가 사고가 발생하고 안 좋은 결과가 야기되었다면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상황을 모조리 수습하고 원래대로 복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가끔은 위자료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이 배상을 n배로 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형법은 현대의 법보다 처벌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엄하다.
그리고, 뭔가 영구적인 손해를 입혀서 복구가 불가능하다면? 그러면 그 피해를 가해자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 사형 제도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성경적으로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법규이다! 고의성이 있었는지 같은 변수가 참작되긴 하지만, 대원칙은 이러하다. 이런 법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의 높은 공의만이 담겨 있을 뿐, 오늘날 같이 죄인의 무슨 교화 가능성이 어떻고, 가해자의 불우한 성장 배경 운운하는 배부른 변수 따윈 없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노릇인지 오늘날은 이게 완전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법칙으로 인식되어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지금도 이슬람권 국가에는 여자 얼굴에다 염산을 끼얹은 남자에게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라는 판결이 이따금씩 나는가 보다. 이슬람 국가들이 다른 데서는 좀 꼴통 같은 짓을 하지만, 저런 일부 윤리 규범은 성경의 사고방식을 이어받아서 아주 바람직하게 잘하고 있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자의 인생을 이것 말고 무슨 방법으로 아쉽게나마 보상하냐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인간에게 내재된 보복 심리에 비해서 성경의 원칙이 오히려 훨씬 더 자비롭다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당한 만큼만 갚으라고 명령하니까 말이다.
원래 인간이란 나쁜 일을 되로 받으면 말로 돌려주기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깽판 칠 때 공갈을 어떻게 하던가? “도발 시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겠다”고 절대로 안 그런다. “천 배, 만 배로 보복하겠다”고 그런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했다가는 지구는 헬게이트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국민을 대표해 보복이라는 걸 딱 당한 만큼만 집행해 주는 공권력을 제정하신 것이다.
아, 물론 성경에는 마 5:38-39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이(?) 보이는 명령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고,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돌려대라는 구절도 있다. 그런데 그건 구원받은 예수쟁이라 해도 정말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니면 지킬 엄두를 못 내는 엄청난 명령이다.
진짜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친아들을 흉악범에게 잃고 나서는 그 흉악범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을 자신 있겠는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이 세상에서 왼뺨 맞고 나서는 오른뺨 돌려대고, 강도가 웃옷을 요구하면 속옷까지 내어 줄 참인가? 그건 그저 적당한 연기, 가식, 위선 떠는 구실로 인용하라고 있는 말씀이 절대로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세상의 법이라는 건 그런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worst를 기준으로 삼고 만들어야 한다.
구약 율법이 뉴턴 고전 역학이라면, 천년왕국 헌법 내지 신약 계명은 상대성 이론 정도의 위치에 대응한다 하겠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차이가 생기고 질량이 그대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상대성 이론은, 고전 역학보다 더 고차원적인 자연 법칙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전 역학을 바탕으로 아주 극단적인 문맥에서 물리학의 영역을 확장한 것일 뿐, 기존 고전 역학의 영역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지간한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게임 물리 엔진 정도를 만드는 데 상대성 이론이 동원되지는 않는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4)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우리 속담 중에서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가 성경 말씀과 정확히 같은 문맥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심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준엄한 말씀이 정확히 적용되어 패가망신한 사람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았을까?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죄의 결실은 사망이니, 연역법에 따라 사람은 누구나 죽고 더 나아가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5)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 (마 12:36)
(6)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5)
위의 두 구절은 우리의 말과 관련하여 단 하나도 빠짐없이 “심은 대로 거둔다”를 설파하는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이 세상의 저명한 개독안티들이 남긴 신성모독 발언과 독설들.. 다 자기가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이 온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신자라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적인 동기로 남긴 실언이나 폭언,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이나 심지어 음담패설 같은 것은 결국 자기에게 올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혀를 상대로 심하게 디스를 거는 야고보서 3장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
만약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당장 기도로 '온라인'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과 미리 정산하는 게 좋다. 마치 경찰서 정모를 당하듯 훗날 하나님을 오프라인으로 대면하여 정산을 하게 되면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이다.
..
우리는 지금까지 신구약 성경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심은 대로 거둔다” 원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하는 원칙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은 좋아하지만, 참혹한 죄의 결과물을 거두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심상에 대한 대리 만족을 시켜 주는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고, 형벌도 가능하면 곧이곧대로 엄하게 집행하지 않고 어지간한 결과 수습은 그냥 세금으로 다 때우려 한다.
이렇게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방식의 폐단은 결국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세금으로 도저히 감당을 못 할 정도로 교도소 운영 비용이 증가하고 있으며(지금 미국처럼), 흉악 범죄는 갈수록 증가한다.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교도소나 가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까지 생긴다. 그 반면, 흉악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가해자에게 너무 가벼운 형벌이 부과되는 걸 보며 통곡하고 울부짖는다.
난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에 논쟁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사형 집행이 흉악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이 범죄율 증가와 무관하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식으로 “성경적으로 단순한 원론적인 인과응보” 사고방식을 좋아한다. 몇 가지 예를 열거하자면,
- 무단횡단을 하다가 누가 차에 치였다면, 지금 현행법보다 보행자의 과실을 훨씬 더 높게 잡아야 한다.- 정당방위도 지금보다 훨씬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젊은 여자가 만취 상태로 심야에 혼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로부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면, 물론 기사는 크게 처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자도 잘한 게 없으며 어느 정도 지탄받아야 한다.
이런 식.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저런 원칙을 곧이곧대로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법학자나 그쪽 계층에서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성경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주제만 더 다루고 글을 맺겠다.여러분은 노예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성경이 노예 제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가?
노예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보통은 어떤 사람이나 국가 백성이 평생 벌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지게 됐을 때, 죽지 않는 대신 신분을 박탈당하여 노동으로 빚을 갚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제도가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집안이 쫄딱 망했거나, 아니면 국가적으로는 국가가 전쟁에서 져서 패전국의 백성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나눠 갚아야 할 때 말이다.
노예를 상대로 발생하는 가혹한 인권 유린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몸으로라도 안 때우면 그 빚은 누가 상환하며, 전쟁 때문에 국가가 쑥대밭이 된 건 누가 복구하고 수습하는가? 노예 제도가 있기에 앞서 죄가 있었고 그로부터 파생된 전쟁 같은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역시 “심은 대로 거둔다”로 귀착될 뿐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구원받기 전까지는 어차피 영적으로 죄의 노예이기도 하고. 성경이 과거의 그런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딴지를 거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짓이다.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 율법은 노예를 영원무궁토록 부려먹지 말고(정확히는 노예도 아니고 그냥 종 servant이지만), 주기적으로 풀어 주라고 명시한다. 게다가 거의 반세기 간격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 신분을 아예 전부 reset시키는 아주 파격적인 제도를 통해, 부의 세습과 지나친 양극화를 막고 있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12-10-24 18:59:10 | 김용묵
안녕하세요,
저는 형제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오현민 형제라고 합니다.
자주 들르지만 처음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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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인 성경공부 하는 방법은 주로 관심있는 주제(단어)를 검색하는 방법입니다.
검색한 결과물을 문서로 만들어 살펴보고, 다시 검색어를 발견해서 또 검색합니다.
물론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신앙서적(에스라 성경사전 등)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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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곳에 제 개인 성경공부 결과물을 올려도 될런지요?
읽어보시고 이상한 점이 있으면 더 가르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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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파일은 제가 용서라는 주제로 성경공부할 때,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어서 정리한 것입니다.
제 개인 성경공부의 첫번째 결과물입니다.
처음 만든 이후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요즘도 가끔 수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저 안에 있는 모든 단어를 다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저는 나름대로 이걸 만들면서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주님 안에서 좋은 교제 부탁드립니다.
2012-10-22 23:29:17 | 오현민
며칠 전 처음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올라와 있는 글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저는 여러모로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 책들과 자료를 보며 조금 조금씩 진리를 탐구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왜 이리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우리는 역사적 진리로 알고 있는 사실 또는 상식이 깨어질 때를 경험합니다.
그때 받는 충격의 느낌은 누가 뒤에서 쇠망치로 저의 머리를 세게 내리꽂는듯 한 느낌입니다.
제가 그동안 역사적 진리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맞은 줄 알았는데,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하는데,
자세히 분석하고 알아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거기서 오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알고서 받았던 느낌도 그랬습니다. 개역성경이 문제가 있는 성경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수 십년을 살아왔는데..어느 누구하나 알려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내용적인 차이보다도...
그 내용 안의 발단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사탄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쭈욱 역사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사탄이 이를 두고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겠지요.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듯이...
마귀가 해도 해도 안되니까 성경변개 등 온갖 술수를 쓰며 많은 사람들을 통해 지금의 이 지경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카톨릭에 사탄이 역사함으로서 지금까지 고도의 전략과 술책을 쓰며 그리스도의 신성함에 먹칠을 하고
우리들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천주교의 실체를 알고서 그것이 계시록의 음녀(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실 기독교의 모태가 천주교이며, 그 안에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작년에 전 세계적으로 '뉴월드오더'를 주도하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세력들을 우연히 알 기회가 있었고
관련서적을 읽고 알아가던 중,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놀라웠지만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을 움직이는
주동세력이 로마카톨릭의 '예수회'라는 것을 알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의 칙출판사에서 나오는 만화책, 알베르토시리즈를 보면 그 실체에 대해서 명확히 나와 있는데
그때 천주교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종교집단인지를 재차 실감했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얼마전 유튜브에서 검색 중에, '크리스마스의 진실'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전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네. 그것은 제게 상당한 쇼크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로써 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등...성탄절이 다가오면 괜히 설레고 즐겁게 보낸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는 Christ(그리스도) + Mass(미사)로 풀어쓰면 '그리스도의 미사'를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천주교의 '미사'의 개념을 다들 아시겠지만, 성경적이지 못하며 교리상 부적합한 요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의 어원 자체가 천주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첫번째로,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2장8절을 보면,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말하는데, "바로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
거하며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라." 여기서 '양떼를 지키더라'가 포인트인데, 그 당시 이스라엘의 겨울은 매우
추웠다고 합니다. 한 겨울 밤에 들에서 양떼를 지킨다는 게 말이 안되지요, 3월 말~10월 말까지 양떼를 들에서 지키기
가능한 때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쯤, 로마 황제인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백성에게 자기 도시로 가서 조세등록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 무렵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이 조세 등록을 하게 하였는데 이 조세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처음 한 것이더라. 모든 사람이 조세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의 도시로 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과 혈통에 속하였으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시에서 나와 유대로 올라가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도시에
이르러 자기의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조세 등록을 하려 하였는데 그녀가 아이를 배어 배가 불렀더라. (누가 2:1-5)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이동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거리를 직선 최단거리로 잡을때 120km라고 하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지역을 피해 돌아서 이동하였으므로 그 거리는 대략적으로 150~180km정도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평균 30km를 이동한다는 가정하에 대략 만5~6일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산악지대의 지형특성과 만삭이 다 된 마리아를 봤을때 대략 10일정도는 걸렸을 거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정해보지요. 만약 12월의 매서운 추위와 비가 왔을때 예수님께서 출생하셨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10일이나
되는 장거리이동을 과연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아우구스투스가 하필이면 그 시기에 모든 백성에게
조세등록을 하라고 했을까요? 마태 24장 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러나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는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참조: 만삭이 다 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한 거리
http://blog.naver.com/keepfuture?Redirect=Log&logNo=163621437
세 번째로, 12월 25일은 고대 바빌론 시대 이교도들의 태양신 축제일인데 세미라미스의 아들
니므롯(바알, 타무즈, 오시리스라고도 불림)이 21일 해가 가장 짧은 날에 죽었다가 24일 길어져 부활했다고 하여
25일을 탄생일로 축제하였는데 이것이 로마 카톨릭에 의하여 기독교의 성탄절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로마시대 때에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는 축제로 불리웠으며 이때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즐겼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Tree) 또한 이교도들이 숭배하는 푸른나무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우상숭배사상으로 가득찬
이교도들의 사타니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기시하시는 푸른나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러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밑에서 희생물을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역대하 28:2~4)
“너희가 모든 푸른 나무 밑에서 우상들과 더불어 너희 자신을 불태우며 바위 낭떠러지 밑의 계곡에서 자녀들을
죽이는도다.”(이사야 57:5)
“옛적에 내가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매 네가 이르기를, 내가 범법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네가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돌아다니며 창녀 짓을 행하는도다.”(예레미야 2:20)
결국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은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그 탄생일을 기리라는 말씀 또한 없으며 AD.354년
로마카톨릭의 리베리우스 주교에 의해 크리스마스가 공식 제정되기 이전까지 그 날을 지켰던 기독교인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참고로 산타클로스는 4세기 미라(Myra)의 감독이었던 니콜라스(Nikolaas) 혹은 북극에 살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던 이집트의 신 베스(Bes)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빨간색 털옷을 입고 수염이 덥수룩하며 사슴이 끄는 눈썰매를 모는 지금의 산타이미지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코카콜라 매출이 저조해지자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코카콜라가 이미지마케팅을 한 결과물이구요.
전부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겁니다.
SANTA라는 알파벳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운데 N자를 제일 뒤에 위치시켜 보세요...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고대 바빌론 타무스(바알)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축제일인데, 사람들은 그 기원도 모른 채
성탄절 술에 취한 채 흥청망청 떠들어대고 있으며 동시에 사탄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참고: http://blog.daum.net/ssha-1/10680124
레이시박사의 "아이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2012-10-19 15:23:09 | 김재원
성경을 번역할 때에는 언제나 한 단어의 성경적 용례가 어떠한지 성경 전체를 찾아보고 번역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말씀보존학회의 이상한 번역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잠언 11장 30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우니라.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말씀보존학회 성경은 끝부분을 “혼들을 이겨 오는 자는 지혜로우니라.”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겨 온다’는 말은 우리말에 없는 말입니다.말 자체가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요?
영어를 보면 win이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중고등학교에서 win은 ‘이긴다’라고 배웠으므로 이것을 살리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말이 안 되게 만드는 번역은 성경을 오히려 망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구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빌립보서 3장 8절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이 구절의 끝부분에는 win Christ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씀보존학회 식으로 하면 ‘내가 그리스도를 이겨 오고’라고 해야지요?
벌써 웃기지 않습니까?
신약성경에서 win에 해당하는 말은 켈다이노(스트롱 번호 2770)입니다.누가복음 9장 25절에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버림을 받으면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느냐?For what is a man advantaged, if he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mself, or be cast away?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여기서 켈다이노를 gai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모체인 틴데일 성경은 이 단어를 win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win과 gain은 같은 말입니다.
KJB의 전체적인 용례를 살펴볼 때 대개 사물을 얻을 때는 gain으로, 사람(인격체)을 얻을 때는 win으로 썼습니다.
자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쓰는 21세기 영한사전으로 17세기의 영어를 해석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win에 대해 다음의 용례를 보여 줍니다.
6.6 To get, obtain, acquire; esp. to get as something profitable or desired; to gain, procure. a.6.a with concrete (material) obj. Obs. or arch. exc. in specific uses: see 7
또 이것은 고어로 쓰이는 용례라고 보여 줍니다.
즉 win은 얻다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win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얻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혼들을 이겨 온다’는 이상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을 망치는 사례입니다.
부디 우리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특히 좋은 목사가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샬롬
2012-10-18 13:03:25 | 관리자
*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참히 망가뜨리고 죽이는 흉악 범죄가 양지나 음지에서 무수히 저질러져 왔다. 그 중에도 죄질이 특히 나쁜 축에 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연약한 미성년자 내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을 납치· 감금하여 여럿이서 학대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고문까지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짓이다. 영어로는 torture murder이라는 비공식 용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엔 일본에서는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라 하여, 제목부터가 섬뜩한데 정말 인류 역사상 이 정도로 흉악하고 인간의 마귀적인 본성이 그대로 표출된 사건이 있었을까 싶은 torture murder가 벌어진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끼리 덕이 되는 내용은 아니니, 이 글에서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사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전인 1965년엔 미국에서도 실비아 라이컨스(Sylvia Likens)라는 소녀가 부모 사정으로 인해 타지에서 맡겨져 키워지던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와 주변 아이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학대와 왕따, 고문을 당한 끝에 겨우 1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채 경찰에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학대를 깊이 살펴보았노니,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라.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편에는 권세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전 4:1)
후자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법정 증언을 바탕으로 2007년엔 엘렌 페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An American Crime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 사건도 자국 내부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건 그냥 AV 배우를 동원해서 선정적인 고어물 성인물 영화로 돈이나 벌려는 의도에 가까웠다. 그 반면, 미국의 영화는 다른 나라도 아니고 꿈과 희망이 있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소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아메리카라는 나라에서까지, 옛날에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졌었다는 분노와 자성의 뉘앙스가 제목에 담긴 것 같다. 감독이 제목을 하필 왜 저렇게 뽑았겠는지를 생각해 보시라.
난 An American Crime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보다가 열받아서 차마 끝까지 못 본다고.. 모니터를 때려부수고 악역 배우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그런다. 아무 죄책감 없이 군중 심리로 피해자를 심심풀이 하듯 때리고 괴롭히고 굶기고 배에다가 불에 달군 바늘로 글씨를 새기고는... 나중에 법정에 가서는 “몰라요. 기억 안 나요. / 남들이 다 하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심한 잘못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이렇게 발뺌을 하는 뻔뻔한 인간 종자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짜증과 살인 충동이 하늘로 피어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 영화는 일본 영화와는 달리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실비아가 당한 가혹행위에 비해 영화의 묘사는 정말 정말 많이 희석되고 절제되고 수위가 완화된 것이다.
처참했던 실제 사건의 결말에 비해, 영화는 감독의 희망 사항 내지 관객의 해석이 필요한 여지를 결말에다 두리뭉실하게 남겼다. 실비아가 죽지 않고 거투르드 아줌마의 집을 탈출하여, 부모의 품에 안기는 설정이 들어간다. 그런데 다시 거투르드의 집으로 돌아가니 자기의 몸은 죽어 있고, 그와 함께 탈출한 줄 알았던 실비아도 싹 사라지고 다시 고향의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실제로 실비아는 극도의 영양실조에다 구타로 인해 발생한 뇌와 내장의 출혈이 도지면서, 목욕 도중에 사망했다.)
우울한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도 단조풍의 굉장히 구슬픈 여성 아카펠라 노래이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의 고통과 아픔, 슬픔으로부터 벗어난(상징적으로나마) 실비아가 혼자 회전목마에 탄 채, 다음과 같은 독백 대사를 읊는 것으로 쓸쓸하게 끝난다.
And me? I returned to the carnival. The only place I always felt save.Reverend Bill used to say, “For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뒤) 그리고 난.. 놀이동산으로 돌아왔어요. 내 마음의 유일한 고향으로요.빌 목사님은 전에 이렇게 얘기하셨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뜻하신 계획이 있으시다고.. 난 아직도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헤매는 중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본인이 보기에 이것은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실비아 같은 불쌍한 아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나?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긴 하나?”와 같은 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 메시지를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런 거야 세상의 불신자들이 역사상 한두 번 제기해 온 의문이 아니니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서 흥행하는 영화들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세워 주는 친기독교 성향의 결론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하나 있긴 하던가? 예수 믿는 사람은 십중팔구 무개념 광신자로 묘사되거나, 개나 소나 사랑이니 용서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위선자, 아니면 아니면 위급한 상황에서 쩔쩔매고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찌질이 루저로 나온다. 이 셋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용서를 못 하는 살인범을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냐?”(영화 <밀양>) 같은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거짓으로 왜곡하거나, 민감한 부분만 이상하게 배배 틀어 적용해서 오해를 사게 만들고, 뭔가 말이 안 되고 모순되고 몰상식한 것으로 전달한다.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런 왜곡에 불구하고 천주교 신부· 수녀에 대한 묘사는 교회 예배당이나 목사 쪽에 비해 월등히 더 낫다는 점도 특이한 점.
자, 대놓고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외하고, 여러분이 보았던 일반적인 세속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들 중에서 본인이 지금까지 열거한 특성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란다. 본인도 적극 고려하도록 하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본인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An American Crime에서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를 보아하니, 그 심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다음 찬양이 생각 나서였다.
바로, Ron Hamilton--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중년 남자 모습이 많이 뜨는데, 그분이다--의 Rejoice in the Lord 되겠다. 가사 첫 줄에 곧바로 “하나님은 섭리나 계획 없이는 결코 역사하지 않으신다”란 말이 나오니까.. 게다가 하나님은 실수도 결코 하지 않으신댄다!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When trying His servant and molding a man.Give thanks to the Lord though your testing seems long;In darkness He giveth a song.
O rejoice in the Lord. He makes no mistake.He knoweth the end of each path that I take.For when I am tried and purified,I shall come forth as gold.
이 곡은 클래식한 리듬과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최근인 1978년에 발표되었다.세상에는 성경의 욥이나 요셉이나 다윗처럼, 정말 억울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멘붕 상태에서도 우리 같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긴 인고의 시간을 잘 견딘 끝에 정말로 '황금처럼' 연단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물론 있다. (가령, 요셉은 누명이 벗겨지고 감옥에서 곧 풀려날 거라는 희망고문만 2년을 견뎌야 했다. 감옥에서 썩은 전체 기간이 2년이 아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다 그 사람들처럼 언젠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반드시 펴는 건 아니다.또한 실비아 라이컨스처럼 연단이 아니라 아예 폭력과 학대의 희생양이 된 채,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린 인생도 역사적으로 한둘이 아닐 것이다.찬양 가사는 세상의 참혹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저 비현실적인 망상에 불과한 것이며, 작사자는 그저 책임지지 못할 말을 쓴 것일까?
하나님의 뜻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고, 당장 보기 안 좋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 명목으로 잠시 '허락하시는 뜻'도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자에 속하는지에 대해서야 나라고 해서 뾰족한 해답을 알고 있을 리 없다.더구나 세상적으로 잘못되고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을 죄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욥의 친구들처럼), “예수 안 믿어서”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짓은 난 극도로 싫어하며, 그런 식의 논리 전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논증을 못 하면 마치 귀류법처럼 간접적으로, 역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어차피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신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더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던 죄인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십자가에서 못을 으랏차차 뽑아 내고 초자연적으로 내려와 버렸다고 해서 그들이 그분을 믿었겠는가?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믿길 진짜로 원하시는 그 성품과 면모를 믿고 따르겠는가!?) 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공개 석상에서 어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 신아, 네가 존재한다면 지금 3분을 줄 테니 이 공개 석상에서 날 죽여서 너의 영광을 드러내 보아라”라고 고래고래 독설을 날렸다. 성경에 기록된 그런 성품을 가진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진짜 그 무신론자를 죽여 버릴 리가 있겠냐 말이다.
솔로몬이 명판관으로 두고두고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가 과학 기술을 육성해서 최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로 진짜 애엄마를 논리적으로 가려내고,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아이 바꿔치기 범죄 따위는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통치자로 칭송받을지 모르나, 그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온갖 비극이 찾아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그걸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인간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고, 비록 불신자들이 당장 이해나 수긍을 못 할 방법을 쓰셨지만 죄 문제도 해결하고 구원의 길도 마련해 놓으셨다. 단지 그 방법에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창조주가 자기 피조물에게 학대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죽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반박당하거나 없어질 교리를 가진 체계가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참 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안 바라고 '믿음'이라는 것 하나만 원하신다. 히 11:6을 읽어 볼 것. 피조물이 있다면 창조자가 있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이건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바라는 것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지? (그러나 그게 소박한 요구가 아니라는 걸, 살아 보면 곧 알게 된다.. ^^) 어떤 사람은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등, 모든 물리적인 여건이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조건 같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요소는 정말로 공평하다.
설령 이 세상에서는 정말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다 요절하더라도, 현세와 내세를 모두 합하면 정말로 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고, 현세에서 못 받은 것은 죽어서 다 정산받게 된다.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도 못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죽거나 정신 지체 장애인 사람에게는 아예 특별전형까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경륜이 아직 여전히 100% 이해는 안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비난할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체계 하에서는 원칙과 질서가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반증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의 알량한 과학으로 정체가 덥석 파악 가능한 신이야말로 허접한 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물론, 창조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듯이 이 세상이 과학적으로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식의 증거들.. 아주 좋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조리와 비합리도 세상엔 응당 존재하며, 그 사실을 크리스천이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가령, 이 세상엔 아름다운 생명체도 있지만 파리· 모기나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생명체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이런 '아리까리'한 면모가 존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굴러가려는 영적 바퀴의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려 할 때 초기에는 정말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 다음에 이어질 내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아라. 그걸 극복하는 데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 논리 같은 다른 잘난 스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게 돼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가??
뭔가 그럴싸한 기독교 변증을 기대하고 있던 불신자라면 이런 무데뽀 정신승리법(?) 같은 본인의 결론에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엄연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신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선뜻 '믿음'을 선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증거도 먼저 남겨 주셨다. 이 갈림길로 인한 유신론 무신론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나, 그 믿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 사건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진지하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
2012-10-18 09:58:52 | 김용묵
3-4개월 전에 84세 되신 어르신께서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수염을 기르고 외모가 범상치 않은 분이신데 오자마자 저를 붙잡고 고린도전서 15장 23절 번역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펴고 같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15:23).
이 말씀을 읽더니 그분께서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흥분하셨습니다.
그분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3-4년 전에 교보 문고에 가서 고대 한국사 자료를 보며 연구하다가 누가 준 킹제임스 성경 팸플릿을 보고 곧바로 서대문의 생명의 말씀사로 달려가서 킹제임스 성경을 달라고 하니까 점원이 말씀보존학회의 우리말 킹제임스 성경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성경을 읽다가 고전15:23에 이르러 앞이 꽉 막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보존학회 성경이 ‘첫 열매’를 단수로 쓰지 않고 ‘첫 열매들’로 복수로 써서 그리스도를 복수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번역인가 하고 3년 동안 의아해 하다가 최근에 저희가 출간한 성경을 알고 곧바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실 킹제임스 성경을 망치는 사례입니다. 이 구절은 영어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But every man in his own order: Christ the firstfruits; afterward they that are Christ's at his coming.
영어로 보면 ‘Christ the firstfruits’로 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도가 복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번역자는 이런 것을 잘 이해하고 번역하여야 합니다. 여기의 ‘the firstfruits’는 형태는 복수이지만 사실 단수입니다.
원어 성경에 가서 firstfruits가 나오는 모든 구절을 살펴보면 firstfruits는 다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즉 영어로는 뒤에 s가 있어서 복수처럼 보이지만 집합체 형태의 단수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 명절이라고 해야지 첫 열매들의 명절이라고 하면 사실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firstfruits’는 성경에 모두 32회 나옵니다(구약25회, 신약 7회).
신약 성경의 그리스어(스트롱 번호 536, 아팔케)를 보면 이것이 명사며 분명하게 단수라는 것을 그리스어 성경(원어 분석)을 담은 소프트웨어 등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미션 소프트의 디럭스 바이블 등).
사실 영어로는 구분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서 16장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인사하라. 내가 매우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가야에서 그리스도께 첫 열매가 된 자니라.
Likewise [greet] the church that is in their house. Salute my wellbeloved Epaenetus, who is the firstfruits of Achaia unto Christ.
바울은 에배네도가 아가야에서 첫 열매라고 하면서 firstfruits라는 말을 씁니다. 이것이 복수처럼 보이지만 원어는 who, is, the firstfruits 모두 단수라고 말합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 그대로 ‘who is the firstfruits’라고 쓰면서 복수형의 ‘are’가 아니라 단수형의 ‘is’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어든 원어든 firstfruits는 복수형이지만 실제로는 단수입니다.
고전15:23 같이 중요한 데서 그리스도를 복수로 만들어 놓는 것은 성경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입니다(사실 있어서는 안 되는 오류입니다). 그러니 그 노인께서 흥분하시며 서울에서 인천까지 급하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식의 번역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씀보존학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거기 있든지 거기서 나오든지 대부분 똑 같이 ‘첫 열매들’이라고 말하고 씁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어도 믿지를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영어도 원어도 지지하지 않는 것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안다는 사실에 취하여 스스로 번역해 놓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벽함을 믿습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그렇기 때문에 원어가 필요 없다고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혹은 영어가 원어보다 향상된 계시를 담고 있다고 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원어를 가지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교정하려는 자들의 말은 더더욱 무시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라고 하면 머리를 긁고 더듬거립니다.이들에게는 최종 권위의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벤카임 구약 본문 등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애처롭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되어 기록된 그대로가 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번역된 그대로가 곧 원어의 뜻입니다.다른 번역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손에 들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며또 동시에 그것을 최대한 우리말로 일 대 일 대응시켜 바르게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단에서 서슴없이 외칩니다.
우리 손에 들린 이 완전한 성경에 해가 되는 발언이나 번역은 이제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이제는 좀 고치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존해 주신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좋은 리더들이 이 땅에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2012-10-16 17:32:19 | 관리자
'시님'은 킹제임스성경에서만 나오는데 '차이나'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49장.
추석연휴을 이용하여 열흘간 차이나서북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러지역에서 모인 **지도자들 수십명을 만나서 성경의 역사에 대해서 4일 반나절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그쪽은 모이면 하루종일 공부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일정의 절반은 이동시간이죠)
하루 공부하려고 24시간 이상을 기차타고 오신 분들도 있었죠.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동네서도 오셨습니다.
그분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을 합니다. 조선족, 한족, 장족(티벳). 회족(이슬람)... 언어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한국사람이 선교한다고 가봐야 언어 배우고, 음식 익히는데 시간 다 소모합니다.
- 성경의 진실을 알고는 모두다 충격! 하루로는 짧다. 다시 와라.
- 특히 130년 전 중국어 성경(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보여주자 뭔가 이제서야 알았다는 눈치들.
- 한국에는 이런 성경이 없는 것이 불행이죠.
우리교회와 동역자 한두명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시님으로 우리책이 다량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미처 수요를 대지못하고 있는 실정.
다량 운송이 좀 어려운 처지라서. 아무래도 관광단 한번 더 꾸려야 할 것 같습니다.
(3년 전에 백두산 관광단을 꾸려서 40명을 인솔한 적이 있습니다. 가방이 많아서 참 유용합니다) 사정상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사진으로 그쪽 분위기만 전합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기도요청합니다. 유대인만큼이나 많이 퍼져있습니다. 이슬람들도 그쪽분들에게는 거부감이 없다고 합니다. 차이나는 14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 오체투지 사진은 티벳불교신자가 칭하이호수 주변을 순례하는 장면입니다. 3개월 코스라고 합니다. 오체투지는 양무릎, 양팔꿈치, 이마 - 이렇게 다섯부분이 땅바닥에 닿아야만 유효 한판.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특별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보시는 사진은 해발3500-4000미터 지역. 심장약하거나 혈압있는 분은 힘듭니다. 저는 먹는 것에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차려놓은 것 다 먹습니다.
2012-10-16 11:00:51 | 김재근
일단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전 일단 사랑침례교회 성도는 아닙니다...^^
전남 목포에 거주하고 있으며, 1달전 쯤 목포내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한재석 형제님과
만나서 교제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경기 일산에 쭉 살다가 직장일 때문에 이곳에 내려온지 3년째 되어가네요..
약 4개월여 전부터 우연히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고...
난해하고 의문점이 드는 개역성경에 비해 킹제임스성경은 제게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맘속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들이 흩어진 퍼즐을 맞춰끼우듯 하나님의 말씀이
정리가 되었고...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매일마다 킵바이블과 사랑침례교회 홈피를
방문하여 정동수목사님의 설교말씀과 관련자료를 보고 있으며, 출근길과 퇴근길에도
CD로도 듣고, 자기전에 설교음성파일로 다운받아서 MP3로 틈날 때마다 듣는게 이젠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지
전 미처 몰랐습니다...집사람이 변화된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정동수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무지했고 그토록 세상적인 삶을
살아왔던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참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이미 크리스찬이었고 소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는 구원은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너무도 세상적으로 살아서 과연 죽어서 심판대 섰을때 천국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도무지 확신이 안섰습니다...
지금도 여러 성경적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찬이 무지하면 안될 것 같더라구요.
짧은 기간동안 많은 것들을 접하고 알다보니, 그동안 20년넘게 알아왔던 성경지식보다
최근 4-5개월동안 쌓아온 지식이 훨씬 더 많음을 느낍니다.
천주교가 극악무도할 정도의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으며...
이 세상의... 교회라고 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의 교회와 목사들이 그토록 부패하고
타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볼때 분명 지금의 이시대는 말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장로교인입니다...아니 지금도 어쩔수없이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집이 대전 정도였다면 매주 사랑침례교회 갔을 겁니다. ^^)
제가 아무리 봐도 확실히 세례가 아닌 침례가 맞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목사들은 무지한 건지, 무식한 건지...도무지 이해가 안가네요...
거의 대다수의 교회에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 천주교의 썩어빠진 전통이었음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의문입니다...
아마 안한다고 하면 이단취급 받을 정도이겠죠. 그만큼 젖어있다고 봅니다...
십일조와 새벽기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알았던 저는...목사님께서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여 일목요연하게 풀어주시는 그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그동안 무지했던 저 자신에게 매우 화가 났으며...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본인의 배를 살찌우는 궁리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패한 교회들, 성직자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습니다.
제가 저의 어머니께 킹제임스성경, 천주교등 관련 말씀을 드리니 잘 듣지 않으시려고
하시더군요...수십년동안 그 교단에서 맡은 바 직분도 있고 아시는 분들도 많아서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겠지만...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교제하는 것도 좋고 그동안 정들고 이미 젖어버린 탓에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보다 위에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설득이 먹히질 않더군요...
믿음이 없거나 약한 분들을 전도하는 것이 믿음이 있는 분들을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쉽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들 교리에 어긋난다 싶으면 바로 이단시해버리는게 지금의 시대이더군요...
씁쓸할 따름입니다...
글이 길어졌네요...원래 전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간증글 비슷하게 되어버리네요..ㅎㅎ
며칠전 유튜브에서 충격적인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잘 판단해주시리라 믿을께요...개인적으로 엄청난 쇼크였습니다.
늦었으니 이만 자고 내일 오후 다시 쓸꼐요~~
지금까지 저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2-10-16 01:51:00 | 김재원
나쁜 삶의 열매를 맺도록 만드는 음악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애시드 록(환각 록), 펑크 록 같은 록 음악들과 뉴 에이지 음악입니다. 록음악 등은 자살, 폭력, 잘못된 성행위, 마약남용, 신비주의, 사탄주의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게 만들며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도록 만듭니다.
록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헤비메탈도 증오를 본질로 한 음악으로 반기독교적인 대열에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소년들의 우상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억하십니까?
서태지기념사업회에서 출시한 컴퓨터용 CD-ROM 타이틀의 줄거리 내용을 보면 " 새 악령이 지배하는 이 세상, 세상엔 아무런 소리도 없고 인간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이 내린'아름다운 소리 태지'가 인간을 해방시키고, 세 악령들을 봉인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태지는 사라지고, 악령들은 부활하게 된다. 악령에게 집어삼키울 운명의 세상에 오직 서태지가 돌아와야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서태지의 사상을 엿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 마릴린 맨슨의 그나마 양호해 보이는 사진 한 컷입니다>
서태지 컴퍼니가 기획한 록페스티벌에는 사타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마릴린 맨슨과 일본의 록그룹 '드래곤 애쉬"등이 있습니다. 마릴린 맨슨은 1994년 악마숭배주의 교회에서 “성직자”칭호를 수여받은 바 있습니다. 이들 그룹은 악마적이고 음란한 행위의 퍼포먼스와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치 않습니다. 2005년에 서태지와 내한 공연을 가졌고 이때 약 2만여 명의 마니아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싸이 이야기를 하다가 왜! 락과 서태지 이야기를 하는가! 하시겠죠?
싸이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사의 설립자이자 대표 프로듀서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맴버였던 양현석입니다. 양현석은 힙합에 무개중심을 두고 활동하면서 서태지와는 별개의 노선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싸이6집 앨범을 들여다 보면 양현석이라는 사람도 결국 다곤 족속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소속사에서 키운 가수들이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이 있습니다.
싸이가 소속사에서 독립해서 별개의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려는 상황으로 갈 것 같지만 결과는 대중매체를 통한 사탄의 전략을 실행하는 하나의 채널이 더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일루미나티는 헐리우드의 메이져 연예계 관련회사를 다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전파해줄 매개체로 아티스트들을 이용하며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들이 원하는대로 타락한 삶을 찬양하는 노래( 프리 섹스, 마약, 권위에 대한 도전, 심지어 악마 숭배) 등을 노래하고 춤으로 추고 의상으로 보여줍니다. 올 여름에 방한한 레이디 가가를 기억하실 겁니다.
“강남스타일”을 통해 싸이와 관계된 외국의 많은 유명 연예인과 매스컴들이 거의 일루미나티의 맴버들이거나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조직들이라고 할 때 싸이를 통해서 아시아와 한국이 많은 부패와 타락, 죄가 죄로 안 느껴지는 그런 사회로 빠르게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또한 1994년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마카레나처럼 단순한 말춤의 유행이라고 보기보다는 도덕을 붕괴시키려는 사탄의 전술을 집행하는 자로 낙점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 가운데, 그리고 말씀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두고 본향을 향하여 나그네와 순례자와 같이 살아갑시다.
2012-10-08 04:44:04 | 노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