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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인가, 귀신인가? 개역성경의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소위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 귀신, 처녀 귀신인가? 개역: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10:20) 귀신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보면 무릎을 치지 않겠는가? 믿지 않은 사람들이 기일이 되면 상을 차려 놓고 조상귀신들을 불러오는 것이 참으로 이 구절과 잘 맞지 않는가! 과연 성경이 조상귀신을 가르친단 말인가? 흠정역: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들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리나니 개역성경이 ‘제사하는 것’이라 번역한 단어는 ‘sacrifice’인데 이 단어는 우리 조상들이 조상귀신을 부르는 제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용어로 ‘희생물을 드림’을 뜻한다. 그래서 구약의 소제, 화목제 등도 제사가 아니라 ‘음식 헌물’, ‘화평 헌물’을 드린다고 해야 맞으며 모든 영어 성경이 ‘번제 헌물’(burnt offering) 혹은 ‘번제 희생물’(burnt sacrifice)이라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조상들이 무지할 때에 조상신을 섬기려고 드린 제사는 성경에서의 희생 헌물을 드린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고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구천이니 음부니 하는 허구의 장소는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누가복음 9, 16장 참조). 즉 죽은 사람의 넋인 귀신은 성경에 없다는 말이다. 웹스터 영어사전은 ‘마귀’와 ‘귀신’이라는 두 단어를 예리하게 구별하고 있다. 귀신(demon): 고대 이교도들의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 존재. 고대 사람들은 악한 귀신과 착한 귀신이 있어서 이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고 그래서 귀신들을 숭배했으며 또한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이 귀신이 된다고 믿음(A spirit, or immaterial being, holding a middle place between men and the celestial deities of the Pagans. The ancients believed that there were good and evil demons, which had influence over the minds of men,…Hence demons became the objects of worship. It was supposed also that human spirits, after their departure from the body, became demons, and that the souls of virtuous men, if highly purified, were exalted from demons into gods). 마귀(devil): 1. 기독교 신학에서 악한 영 혹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키며 또 이런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킴(In Christian theology, an evil spirit or being; a fallen angel, expelled from heaven for rebellion against God; the chief of the apostate angels). 사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 어떤 영적 존재인 ‘귀신’(demon)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리스 사람들은 ‘귀신’이 ‘반신반인’이라고 생각했다. 성경적인 기독교와 유대교를 제외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는 성경이 ‘악한 영들’(evil spirits)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존경과 위로를 받기에 합당한 ‘반신반인’ 혹은 ‘귀신’이라고 믿는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들먹이는 사람들은 그리스어 ‘디아볼로스’(diabolos)와 ‘다이모니움’(daemonium)이 서로 다르며 전자는 사탄을 후자는 마귀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같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그리스어를 하나의 영어 단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원본주의자들은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이유는 NASB 같은 현대 역본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히브리어 ‘shed’(스트롱 번호 7700)와 ‘sair’(스트롱 번호 8163)를 다 ‘귀신’(demon)으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레17:7; 신32:17 등). 깨지기 쉬운 유리 집에 살고 있는 학자들은 “원어는 원래 이런 뜻이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원어의 돌을 집어던지는 행위를 삼가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원어를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학자인체 하며 이중 잣대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도대체 다음과 같은 표현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개역: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시106:37) 여기의 ‘사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너무 쉬운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으므로 개역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단순하고 정확한가? 흠정역: 참으로 그들이 자기 아들딸들을 마귀들에게 희생물로 바쳤으며 한편 개역성경은 시편 106편 37절에서 ‘사신’으로 번역된 동일한 히브리어(스트롱 번호 7700)를 신명기에서는 ‘마귀’라고 멋있게 번역하였다. 개역: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신32:17) 다만 아쉬운 것은 여기 나오는 마귀, 신 등이 모두 복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흠정역: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렸으니 곧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너희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신들, 새로이 일어난 새로운 신들에게 드렸도다. 많은 신(gods)이 있고 유일한 하나님(God)이 있으며 많은 아들(sons)이 있고 유일한 아들(the Son)이 있으며 많은 마귀(devils)가 있고 유일한 마귀(the devil)가 있다는 것이 바른 성경의 가르침이다.
2009-05-13 13:23:55 | 관리자
그리스도의 고난이 부족한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에 충분한가, 아니면 부족하므로 우리가 공을 들여 채워야 하는가? 개역: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도대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어느 면에서 부족하기에 그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워야 한단 말인가? NIV는 아예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부족한 것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흠정역: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 킹제임스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있은 뒤에 이제 성도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고난 받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주님께는 남은 고난이 하나도 없다.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창에 찔리고 육체가 완전히 부서져서 그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는데 도대체 무슨 고난이 더 남아 있단 말인가? 흠정역: 그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더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의 아들들보다 더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너를 보고 놀랐느니라(사52:14).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을 무시하는 개역성경은 다음의 구절에서도 중요한 단어를 삭제했다. 예수님의 몸이 우리를 위해 찢긴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역: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11:24) 흠정역: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broken)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2009-05-13 13:21:31 | 관리자
여자 감독과 집사 초대 교회부터 성경에는 이름 없이 주님을 섬긴 많은 여인들이 있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는 여자들의 활동이 아주 왕성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너무 보기에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창조의 질서가 지켜지길 원하신다. 흠정역: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2:11-12). 그래서 디모데전서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영감을 주사 교회의 두 직분인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셨다. 흠정역: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딤전3:2) 흠정역: 이와 같이 그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1-12). 여기서 말하는 감독은 교단의 감독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교단이 나오지 않으며 성경의 교회는 모두 독립/자치 교회이다. 여기서 감독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어로 ‘bishop’인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것을 주교로 부르고 있다. 현대 교단들의 감독 체제는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교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감독은 한 지역 교회의 감독을 말한다.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한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될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교회의 직분은 목사와 집사뿐이 없으며 이들은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즉 여자는 이런 직분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이 창조 질서를 위배하기 때문이다. 개역성경도 디모데전서 3장 2절과 12절은 잘 번역했으나 11절에서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개역: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3:11) 개역성경은 이곳을 ‘여자들도’라고 번역함으로써 마치 여자들도 집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번역했다. 그러나 심지어 NIV 같은 현대 번역본들도 킹제임스 성경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그들의 아내들도’ 즉 ‘집사들의 아내들도’라고 정확히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여자 집사를 인정하기 위해 이런 번역을 한 것으로 사료된다. 흠정역: 이와 같이 그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
2009-05-13 13:19:27 | 관리자
그리스도 안과 밖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논리적으로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다. 그런데 개역성경에서는 자꾸 오류가 발견된다. 개역: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갈6:15) 흠정역: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고 오직 새로운 창조물만 있느니라. 그리스도 밖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로마서 3장). 할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복은 무할례자들이 결코 뺏을 수 없는 복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교회 안에서는 이런 것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천주교 성향의 서기관들이 천주교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 즉 교회가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거짓말을 지지하기 위해 이것을 삭제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친 자손들이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자기들의 땅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여 천년왕국을 소유하려 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무조건적으로 허락하신 저 팔레스타인 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영원토록 유대인들의 땅이다(창세기 12, 15장).  
2009-05-13 13:17:31 | 관리자
  아라바의 동쪽 세일 산 근처에 있는 원추형의 산. 이것은 비정상적으로 잘려나간 원추형의 산으로 여기에는 아주 거친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민20:22-29). 대제사장 아론은 이 산에 올라가서 죽었다(민33:38).    
2009-05-12 16:30:04 | 관리자
  출3:1; 17:6; 33:6; 신1:2, 6, 19; 왕상8:9; 19:8; 대하5:10; 시106:19; 말4:4 등에 나오는 산. 어떤 이들은 이곳이 시내 산의 낮은 부분 혹은 봉우리라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은 시내 산이 위치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2009-05-12 16:29:38 | 관리자
  성경에서는 여러 용례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먼저는 같은 부모에게서 난 아들을 뜻했고(마1:2; 눅6:14; 요7:3; 행1:15) 사촌이나 가까운 친족(창13:8; 14:16), 같은 줄기나 지역에서 난 사람(마5:47; 행3:22; 히7:5), 동료나 같은 연배의 사람(마5:23; 7:3), 사랑하는 사람(삼하1:26),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인들(행9:30; 11:29)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되었다. 마12:46-50; 13:55-56; 막3:31-35에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언급되는데 그들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난 자녀들이었다.    
2009-05-12 16:29:10 | 관리자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본 뜬 것. 이런 차원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고후4:4; 골1:15; 히1:3) 이는 곧 그분께서 본질이나 특성에서 하나님과 같음을 뜻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창1:27) 영적, 지적, 도덕적인 면에서 그리고 의와 거룩함에서 그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음을 뜻한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후에 아담의 후손들은 타락한 상태의 아담의 형상대로 태어났다(창5:3). 모든 사람은 죄 많은 아담의 형상을 받고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형상으로 빚어져야만 한다(고전15:47-49; 고후3:18). 욥4:16에 나오는 형상은 꿈꾸는 자에게 마치 실체처럼 보였다. 형상이라는 말은 종종 진짜 물체를 뜻하기도 하며(시73:20; 히10:1) 종종 거짓 신을 나타내기도 한다(단3:1-30). 하나님은 모든 종교적 경배에서 어떤 종류의 형상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다(출20:4-5; 신16:22; 행17:16; 롬1:23). 처음으로 기독교에 형상들이 들어온 것은 4세기 후반이며 그때에도 반대가 많았다. 현재 천주교회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형상을 많이 만들고 그것들에게 경배하면서 십계명의 두 번째 명령을 어기고 있다(출20:4-5; 32:4-5; 신4:15; 사40:18-31; 요4:23-24; 계22:8-9). ‘형상을 둔 방’(겔8:7-12)에는 이집트 신전의 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각종 우상숭배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2009-05-12 16:28:46 | 관리자
  고대의 형벌은 민족과 시대에 따라 또 범죄에 따라 크게 달랐다. 살인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인류의 시작부터 영원토록 정착된 제도였으나 다만 가인의 경우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인해 사형이 면제 되었다(창4:14-15). 한편 홍수 이후에 사형 제도는 다시 확고히 세워졌고(창9:5-6) 광야에서도 확인되었으며(민35:9-34) 인류 사회 구석구석에서 널리 인정되었다. 히브리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사형 방법은 돌을 던져 죽이는 것이었으나(신13:9-10; 17:5; 요8:7)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목을 베는 방법(왕하10:6-8; 마14:8-12), 절벽의 바위에서 떨어뜨리는 방법(대하25:12; 눅4:29), 목을 매는 방법(수8:29; 에7:10), 불로 태우는 방법(단3:1-30), 몸을 찢어서 죽이는 방법(단2:5; 3:29; 히11:37), 바퀴가 달린 구조물에서 때려서 죽이는 방법(히11:35), 들짐승에게 내어주는 방법(단6:1-28; 고전15:32), 익사시키는 방법(마18:6), 십자가에서 죽이는 방법(요19:18) 등도 도입되었다. 가벼운 형벌에는 채찍질(레19:20; 고후11:24), 배상(출21:23-25; 신19:19), 투옥(대하16:10; 마4:12), 차꼬(행16:24), 유배(계1:9), 개인적인 고문(대하18:26; 사50:6; 마18:30; 히11:37) 등이 있다.    
2009-05-12 16:28:16 | 관리자
  혀는 문자적 의미뿐만 아니라 말이나 방언을 가리키고(신28:49; 행1:19) 공통 언어를 가진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사66:18; 계11:9). 상징적으로 혀는 칼처럼 혹은 뱀처럼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시64:3; 140:3). 활처럼 혀는 거짓을 쏠 수 있으며(렘9:3) 속임수로 가득하다(렘9:8). 혀는 공격용 무기로 쓰일 수 있으며(렘18:18) 날카로운 칼처럼 상처를 낼 수 있다(시57:4). 혀는 아첨하는 데 쓰이고(시5:9; 잠28:23) 비방(시15:3; 잠25:23), 속임(시50:19), 거짓(시109:2; 잠26:28), 논쟁(시31:20), 저주(호7:16)에도 쓰인다. 혀에는 재갈을 물려야 한다(약1:26). 혀는 사람의 영의 지표로서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마12:33-37; 15:18; 눅6:43-45).    
2009-05-12 16:27:21 | 관리자
  가나안의 아들인 헷의 후손들(창10:15). 그들은 아브라함 당시 헤브론 근처에 살던 가나안 족속이었으며(창15:20-21) 후에 이스라엘 자손에 의해 정복되었지만(출3:8; 수3:10) 완전히 멸절되지는 않았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는 헷 족속이었다(삼하11:3). 솔로몬은 그들에게 일을 시켰고(왕상10:29; 왕하7:6) 그들은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백성/민족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게 되었다(스9:1). 가나안 족속 참조.    
2009-05-12 16:26:44 | 관리자
  포도와 포도즙으로 유명한 시리아 혹은 레바논의 도시(겔27:18). 이곳의 포도즙은 다마스커스 주변에서 만들어져서 두로에 보내졌으며 품질의 우수성과 향기 면에서 레바논의 포도즙과 비슷했다(호14:7). 포도즙 참조.    
2009-05-12 16:24:58 | 관리자
  암몬 족속의 도시. 이곳은 요르단의 입구에서 동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수13:10; 13:17) 처음에 르우벤에게 배정되었으나 후에 갓에게 주어지고 또 다시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곳은 시혼이 모압 사람들로부터 빼앗아서 자기의 수도를 삼은 곳이며 모세가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을 차지했다(민21:25; 수21:39).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멸망을 다해 유프라테스 너머로 끌려간 뒤에 모압 사람들이 이곳을 회복했다(사15:4; 렘48:2, 34, 45).    
2009-05-12 16:23:54 | 관리자
  가나안의 고대 도시 중 하나. 이곳은 이집트의 주요 도시 소안이 지어지기 7년 전에 세워졌다(민13:22). 이곳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였고(아르바 참조) 마므레였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기 거주했고 여기에 묻혔다(창14:13-24; 23:2-19; 35:27).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통치를 받으며 가나안 족속과 아낙 족속들의 손에서 이곳을 빼앗아 레위 사람들의 도시로 배정하였다(수14:13-15; 15:13; 21:11-13; 삿1:10, 20). 다윗은 처음에 7년 동안 유다만을 다스릴 때에 이곳에서 통치하였고(삼하2:3; 5:5) 압살롬은 여기서 반역의 깃발을 들었다(삼하15:9-10). 이곳은 후에 르호보암에 의해 강화되었으며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도 언급되었으나 신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느11:25). 에스골, 마므레 참조.    
2009-05-12 16:23:26 | 관리자
  I. 유다 지파의 유명한 현인(왕상4:31). II. 고핫의 후손 레위 사람. 그는 성전 음악의 악장이었으며 시편 88편은 그의 작품이다(대상6:33; 16:41-42).    
2009-05-12 16:22:54 | 관리자
  팔레스타인의 북동부 경계의 산(신3:8-9; 4:48; 겔27:5). 이 산은 안티레바논 즉 동쪽 레바논 능선의 산맥의 일부이며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64킬로미터, 다마스커스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산은 요르단 동쪽의 이스라엘 영토의 북방 한계이고(신3:8; 4:48; 수11:3, 17; 12:1; 13:11; 대상5:23) 이 산의 남쪽 기슭에 가이사랴 빌립보가 있다(마16:13). 레바논 참조.    
2009-05-12 16:22:25 | 관리자
  헤롯 안디바의 추종 세력(마22:16; 막3:6). 헤롯은 로마 정권에 의존했으며 그래서 카이사르에게 세금 내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했다. 이것을 이해하면 마22:16의 뜻을 알 수 있다.    
2009-05-12 16:21:5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