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4405개
안녕하세요?   오늘은 매우 귀한 자료를 소개합니다.   켄트 호빈드(Kent Hovind)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창조론 학자입니다. 그분이 만든 비디오는 그 어느 것보다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대단히 유익합니다. 일단 창조론 강의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느 분이 자막을 넣어 주셨습니다.   1953년생인 호빈드는 철저한 킹제임스 성경 신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다가 7년 전쯤에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어쩌면 영원히 감옥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오늘 보니 7월 11일에 풀려났습니다. 그의 아들이 이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http://freekenthovind.com/   그리스도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이런 박해가 진행될 것을 보여 주는 예표입니다.   창조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토대입니다. 성경은 6일 창조, 6000년 역사를 말합니다. 여기서 벗어난 것은 성경말씀이 아닌 ‘사적 해석’입니다. 창조가 우리의 기초이므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하나 하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태어나 이런 귀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죽으면 큰 손해지요.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창조론 세미나 1. 지구의 나이. Age of the earth https://www.youtube.com/watch?v=lyX4TZLZ5p0&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2. 에덴동산. 홍수 전 지구의 상태. The Garden of Eden https://www.youtube.com/watch?v=7nqYA12D_2I&index=2&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3. 공룡과 성경. 공룡은 언제 살았나? Dinosaurs and the Bible https://www.youtube.com/watch?v=t8yhoAWzk4o&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3   창조론 세미나 4. 교과서 속의 거짓말들. Lies in the Textbooks https://www.youtube.com/watch?v=uKGREtA1LJc&index=4&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5. 진화론의 위험성. Dangers of evolution https://www.youtube.com/watch?v=5L6M-dfKHCs&index=5&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6. 호빈드 이론. 노아 홍수 발생의 시작, 과정, 결과. The Hovind theory https://www.youtube.com/watch?v=-EFAq_gZWdo&index=6&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7A 와 7B.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 Questions & Answers https://www.youtube.com/watch?v=VBlimALHA5Q&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7   창조론 세미나 7C.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 Questions & Answers https://www.youtube.com/watch?v=Kvf0VkkwS0M&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8   창조론 세미나 7D. 자주 물어보는 질문들. Questions & A https://www.youtube.com/watch?v=oefe_QdWdEw&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9   창조론 세미나 7E (1/19). '아담'이 무슨 뜻인가? 성경 속 이름들의 의미. https://www.youtube.com/watch?v=VycYY_cMt7U&index=10&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7E (2/19). 인종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한자 속의 창조 이야기. 인류의 공통 조상. https://www.youtube.com/watch?v=GOt9m_qGRJA&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11   창조론 세미나 7E (4/19). 하나님이 왜 독사를 만드셨을까? Why did God make poisonous snakes? https://www.youtube.com/watch?v=rmcAQWP3aXo&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index=13   창조론 세미나 7E (5/19). 언약궤는 어디 있는가? Where is The Ark of the Convenant? https://www.youtube.com/watch?v=yjhQridHWSA&index=14&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창조론 세미나 7E (6/19).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가? Is God's name in Jerusalem? https://www.youtube.com/watch?v=xZtOmyHLHEI&index=15&list=PLuo3JTnwVdmRsoDc02mjyvzfGWJcAV219
2015-07-13 13:45:0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나라가 점점 위태로운 지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정신 체계가 무너지면 나라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정신체계 붕괴의 일환으로 동성애가 도를 넘어 매우 위험한 수준에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허락으로 6월 9일, 28일 서울 시청 앞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리고 퀴어 퍼레이드가 열립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1022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이런 현실이 지금 우리와 우리 아이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가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실 때에 사람들이 행하는 합당하지 못한 일들 중에 으뜸가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26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27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로마서 1장 25-27절).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SNS를 통해서라도 동성애의 심각성과 문제를 알려야겠습니다.널리 전파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말세의 징조 동성연애https://www.youtube.com/watch?v=EbMGISCdMVw   동성애자의 양심고백 https://www.youtube.com/watch?v=alEO9648xQk   동성애 찜방(섹스방) 취재파일(KBS) https://www.youtube.com/watch?v=ccBrNzR8A0w
2015-06-01 10:39:41 | 관리자
샬롬~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을 올립니다.   예레미야서 27장 1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주로부터 이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유다 왕이 여호야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27장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왕은 시드기야네요....   다른 분께 문의를 한 적이 있는데... 여호야김이 아니라 그냥 시드기야로 보라는 답변을 들었는데요... 또 개역개정을 보니 아래에 시드기야라고 주석이 달려 있더라고요~ 27장을 쭉 읽어보면 정황상 시드기야가 맞다고 보여지는데..... 그렇게 봐도 무방한 것인가요???   조금이라도 바르게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질문을 올립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8:19:5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5-05-14 00:51:33 | 배정은
질문: 열왕기하 2장 24절   어린아이들이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라고 놀렸다고 그 아이들을 저주하여 마흔두 명이나 곰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놀렸다고 해서 그렇게 죽이는지...   답: 성경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돌이켜서 그들을 보고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매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 그 아이들 중의 마흔두 명을 찢었더라.   곰들이 42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혔습니다.   15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처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자신의 사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 16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더라.(대하36:15~16) 구약 시대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언자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곧 감히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시 온 이스라엘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식도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서 도시에서 나온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대언자 엘리사에게 심각한 모욕을 안깁니다. 당시 벧엘과 그 인근은 솔로몬 이후 심각한 우상숭배의 본거지요, 배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벧엘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1394 엘리사에게 대한 어린아이들의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이곳 사람들의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들에게 대한 반감과 멸시는 아마도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할 만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엘리사는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최고의 적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명히 엘리사는 자기 임의대로 저주하지 않고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습니다(24절). 이렇게 당시의 시대상과 앞뒤 문맥을 살필 때 열왕기하 2장 23절은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장난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고 왜 엘리사의 저주와 그로 인한 형벌이 이들에게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상단 구글 검색을 이용하시면 다른 관련 글도 검색이 되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4-28 19:28:35 | 권장일
창조의 시작부터   (1) “Creation” 단어의 뜻.    Creation(창조)은 창조하다(create)의 명사형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a)창조,창시,신설. (b) 발생 (c) 창작,창조물 (d) 세계,(집합적)만물   (2) 성경에서는 어디 어디에 쓰였나요? 총 6번 쓰였습니다.   (막 10: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막 10:6)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막 13:19) 그 날들에 고난이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세계가 시작된 때부터 이때까지 그런 고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막 13:19) 『For in those days shall be affliction, such as was no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which God created unto this time, neither shall be.』   (롬 1:20)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For the invisible things of him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 are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by the things that are made, even his eternal power and Godhead;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롬 8:22) 또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2) 『For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groaneth and travaileth in pain together until now.』   (벧후 3:4)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 (벧후 3:4) 『And saying, Where is the promise of his coming? for since the fathers fell asleep, all things continue as they were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계 3:14)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계 3:14) 『And unto the angel of the church of the Laodiceans write; These things saith the Amen, the faithful and true witness,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   6번의 용례를 보면, Creation은 -       “하나님의 창조세계” -       또는 “창조물” -       또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         (3) 하나님의 창조가 끝났나요? 아니요. 아직도 하나님의 창조는 진행 중이십니다.   (사 65:17) 『¶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 (렘 31:22) 『¶ 오 너 타락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떠돌아다니려느냐? {주}가 새 일을 땅에 창조하였으니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둘러싸리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4) 그러면,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는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또는 세계 또는 하나님의 창조행위 의 시작부터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래 막10:6절은 무슨 뜻입니까?   (막 10:6)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막10:6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진행하고 계신 창조행위의 시작시점에 또는 창조세상의 시작 시점에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시작 시점, 즉, 6천년 전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8:21:49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5-04-22 08:46:53 | 홍승대
안녕하세요?   어떤 분들은 흠정역 성경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창세기 1, 2장에 있는 ‘And’를 꼬박꼬박 번역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1장 1절 이후의 구절들이 의미하는 재창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   ‘And’가 시간상 다음 일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보여 주기 때문에 이어지는 ‘And’는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던(?) 큰 간극의 근거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창세기 1장 2절부터 31절까지 27절을 빼고는 모든 절이 ‘And’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저런 주장이 과연 그럴듯한 이야기일까요? 일단 사전으로 가서 ‘And’의 용례를 보겠습니다.   AND [ænd] n. ① 「나란히 어·구·절을 이음」 ┅와 _, ┅ 및 _, ┅이나 _; 그리고, ┅또(한).② a) 「동시성을 나타내어」 (┅와 동시에) 또, ┅하면서. b) 「앞뒤의 관계를 보여서」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③ [보통 ən]「하나로 된 것」 ┅와 -이(합하여 일체가 된 것).④ 「반복·중복」 ┅(한) 위에 또 -, ┅이고 (-이고), 더욱 더; 씩(짝을 지어).⑤ [강조] 더구나, 그뿐이랴.⑥ 「의외·비난」 더욱이, 더구나 ┅인데[┅한 터에], ┅한데.⑦ 「이유·결과」 그래서, 그러자.⑧ 「명령문 뒤에서」 그렇게 하면, 그러면.   그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아마도 위에서 ②번 용례만을 염두에 두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서술문에서 ‘And’는 ⑦번 용례 즉 결과의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니라’의 장엄한 권위체로 번역하면 역시 재창조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하니 오늘은 중고등학교 수준의 번역으로 1장을 바꾸어 읽으며 ‘And’를 살려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시간이 처음 도입되는 시점에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를 무에서 유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의 ‘heaven’이 하나님의 처소인 셋째 하늘일 리는 없으므로 이것은 대기권의 첫째 하늘과 천체들이 있는 둘째 하늘을 가리킵니다.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우주 전체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시간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땅 곧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이 구절은 창조 전체를 하나의 사실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평범하게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를 만드신 것으로 보아도 됩니다.   2 그러자(And)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그 결과 혹은 그러고 나자(And), 지구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습니다(상태를 나타내는 ‘was’가 사용됨). 1절의 행위 뒤에 지구가 형태가 없게 되고 비게 된 것이 아닙니다(즉 ‘became’이 아님). 1절의 행위가 있자 지구의 상태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원래의 지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타격을 입어 그렇게 되었다는 강박적 상상력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들이 채워질 것을 설명하기 위해 땅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으로 단순히 받아들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깊음의 표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욥기 등에 있는 대로 이 깊음을 셋째 하늘 초입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의 깊음으로 이해해도 되고 지구의 바다 속의 깊음으로 보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이 바다 속부터 셋째 하늘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 공간을 덮었다는 점입니다. 이 어둠은 심판의 어둠이 아닙니다. 5절에 있는 것처럼 첫째 날의 시작이 저녁이므로 당연히 이것은 밤의 어둠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께서는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는데 이 물들은 바로 뒤의 9절에 나오는 물들 즉 땅 덩어리를(land)을 덮고 있는 바다의 물들로 이해하면 됩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어둠이 온 우주를 덮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은 아침이 되매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그 빛을 좋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어둠을 부정적인 암시 즉 이전 세상의 반역을 뜻하기 때문에 빛만을 좋아하셨다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의 문맥은 그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단순히 첫째 날 밤의 어둠을 말합니다. 이 어둠은 빛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어둠이므로 여기 나오는 어둠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 어둠 다음에 아침에 빛이 생겼습니다.   5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다.   하나님은 어둠을 쫓아내려고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빛과 어둠을 낮과 밤이라 부르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어둠은 무슨 심판의 결과가 아닙니다. 아직 해와 달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전 우주적인 빛과 어둠을 사용해서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첫째 날을 만드셨을 뿐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모든 일이 첫째 날에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날에 하나님이 순서대로 하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우주 공간과 지구를 창조하셨다.b. 지구는 아직 있을 것들이 없으므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c. 아직 저녁(밤)이므로 어둠이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 공간을 채웠다.d.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므로 1, 2절은 첫째 날의 밤 12시간이었다.e. 아침이 있어야 하루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아침에 빛을 창조하셨다. f. 어둠 속에 빛이 생기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g. 그래서 첫째 날의 밤과 낮이 생겼다.h. 그런데 아직 우주 공간과 지구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31절을 통해 있어야 할 것들을 만드시고 지구와 우주를 채워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6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셨다.7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8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저녁과 아침은 둘째 날이었다.   드디어 하나님은 천체들을 심을 공간인 궁창(firmament) 즉 엄청나게 단단한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주과학자들이 ‘흑암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플랑크 스페이스(Planck space or plenum)라고도 불리며 밀도가 10의 93승(10을 93번 곱한 천문학적 숫자) 정도 되는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 안에서 지구나 태양은 전자 하나만도 못한 크기와 무게를 갖습니다.   http://www.geocentricity.com/geocentricity/ftsrc/ft4.html   하나님께서 이런 궁창은 지으셨지만 궁창에 들어갈 천체들은 아직 창조하지 않으셨으므로 이날은 ‘좋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없다고 해서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좋았다’고 말할 시점이 아직 아니기에 ‘좋았다’는 말이 없을 뿐입니다.   9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 아래의 물들은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육지는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0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른 육지를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바다들이라 부르셨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우주 공간에 궁창을 만드셨으니 이제는 지구를 조성하셔야 합니다. 첫날 지구를 창조하실 때 땅덩어리(land)는 물들 속에 잠겨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물들을 한 군데로 모으시고 육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잘 알다시피 땅 덩어리는 노아의 홍수 이후 벨렉의 때에 나뉘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형성하였습니다(창10:25).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8 그리고 11-12절에서 땅이 풀과 자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나무를 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들이 좋았습니다.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습니다.   14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또 그것들은 표적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年)들을 나타내라. 15 그리고 그것들은 하늘의 궁창에서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지구의 형태를 갖추신 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만드시기 위해 16-17절처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궁창 속에 박아 놓으셨습니다. 드디어 궁창에 있을 것들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 날은 넷째 날이었습니다. 이로써 우주 공간을 채워 형태를 갖추는 일은 다 끝났고 지구만 더 채우면 창조의 일이 다 끝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순서를 보면 하늘 땅 하늘 땅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0-3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대기권에 날짐승들을 만들고 바다의 창조물을 만들고 짐승과 가축과 기는 것 등을 만들고, 드디어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물론 매일 매일 모든 창조 작업이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31절에 있는 대로 여섯째 날이 끝났습니다. 이 여섯 날을 통해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셔서 그것들이 형태를 갖추게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시면 단숨에 우주와 지구를 완벽하게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류를 위한 다른 계획이 있어서 6일 동안 하나하나 만들어 채우셨습니다.   자, 이제 2장을 보겠습니다. 지금은 1장과 2장의 구분이 있지만 원래는 없었습니다.   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하나님은 우주 공간의 두 하늘 속의 천체들과 지구의 모든 것들을 이처럼 6일에 걸쳐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셨으며 그 결과 모든 일이 완성되었습니다(끝났습니다).   2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모든 것을 끝내셨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일을 떠나 쉬셨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다. 그 이유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 날을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완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이라는 숫자로 움직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안식일, 안식년, 희년, 칠칠절, 일곱 명절 등)을 보여 주시며, 동시에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함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막2:27-28).   이런 계획이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7로 움직이는 구약 성경의 많은 예표들과 지금의 주(week) 시스템 등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와 지구를 빈 채로 만드시고 바로 그날부터 6일에 걸쳐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창조해서 채워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2장 4절은 이때를 가리켜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든 때’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만들다’와 ‘창조하다’는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우주와 지구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실을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1, 2장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이며 바른 방법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And’를 살려서 설명하였습니다. ‘And’를 ‘그리고’ 혹은 ‘그리고 나서’, ‘그 결과’라고 매번 번역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쓰면 우리말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습니다. 또한 흠정역이나 개역처럼 권위체로 써도 결과는 동일합니다.   마음의 편견을 버리지 않는 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리 특정 교리를 세우고 그 교리의 안경을 통해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그 틀에 맞게 보이고, 조금만 애매해 보여도 그 안에 자기 교리의 상상력을 가미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다음의 원칙들을 지켜야 합니다.   1. 있는 그대로 보기2. 없는 것을 가감하지 않기3. 모르는 것은 그대로 두기(억지로 풀지 않음) 재창조냐 창조냐 하는 부분은 지엽적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매우 기초적이고 중대한 의미를 둘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개 교회의 가르침이나 사역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조 사역에 근거 없이 가감하는 것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질문하는 많은 분들에게 일일이 따로 설명하지 않고 답변을 이처럼 공개함으로써 믿음의 자유를 가지고 각자 판단할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말씀의 자유로운 행로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적, 상식적, 언어 문법적, 성경적 근거를 제시했지만 아직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재창조가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고도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 이미 다 있고, 모르는 부분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니 우리에게 주신 특별 계시 즉 성경과 일반 계시로 우리가 알아야 할 창조의 사실은 충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확실히 알 수 없는 것들을 반드시 규명해 내려고 끝가지 애쓰는 것은 믿음이 아니요 집착이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은 어떻게든 특정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분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고, 그런 주장들의 솔깃함에 빠져 혼동을 겪고 있거나 창세기 창조 기사를 쉽게 이해하려는 분들을 위해 쓴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일이 창조(재창조가 아니라)의 시작에 있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안 믿는데 누가 그들을 설득합니까?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이제 우리는 상식적으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정말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재창조의 다양한 서적들을 구해서 깊이 연구해보는 것도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구하면 할수록 엄청난 모순과 더욱 꼬이는 논리 앞에서 결국 이것이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각자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하더라도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교묘한 주장은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replenish’라는 단어가 그냥 ‘채우다’는 뜻으로 14세기에 처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4세기 이후 1611년 당시에 이미 ‘다시 채우다’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하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글을 올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바르게 알기 위한 선의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각자의 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얻고 진리로 드러나게 하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정진하는 성경 신자들이 다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샬롬.
2015-04-21 19:56:4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 주말에 힐송 교회의 내한 공연이 있다고 합니다. 이단 교리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한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힐송 교회가 무엇인가요?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h03&write_id=232   힐송 교회의 실상에 대해서는 김항수 형제님께서 자막 처리한 영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ZSIWsTZo8I   샬롬   패스터
2015-04-17 08:37:33 | 관리자
오늘은 성경 기록대로 입다의 딸에 관련된 사사기 11장을 읽어 볼까 합니다.   이미 킵바이블에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허락하신 대로 부족하지만 소박한 제 의견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 합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8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94    (삿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4) ¶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작은북을 잡고 춤추며 나아와 그를 맞이하였는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아이로 그녀 외에는 그에게 아들딸이 없었더라. (삿 11:37) 그녀가 또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게 이 일을 행하시되 곧 나를 두 달 동안 홀로 있게 하소서. 내가 내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매 (삿 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동안 보내니 그녀가 자기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자기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 애곡하고 (삿 11:39) 두 달이 지난 뒤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오니라. 그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삿 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하였더라.   위의 성경 기록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입다는 무엇이든지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2) 그런데, 그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3) 딸은 아버지에게 서원한 것을 자신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4) 그런데 이때 뜬금없이 입다의 딸은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지금 자신의 배를 가르고 각을 떠서 태워 죽이겠다고, 즉 번제 헌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는데 자신이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본인은 시집가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애곡합니다. 대단히 이상하죠? 저 같으면, 그동안 못 먹어 본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는다든가, 여행을 실컷 한다든가, 아니면 정말로 죽기 전에 가서 남자를 안다든가 등등을 하겠습니다.   자~! 성경 기록대로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한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virginity에 즉 ‘처녀로 지내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5) 그녀는 두 달 뒤에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아니 하였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삿 11:38) And he said, Go.              And he sent her away for two months:              and she went with her companions,              and bewailed her virginity upon the mountains. (삿 11:39)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wo months, that she returned unto her father, who did with her according to his vow which he had vowed:             and she knew no man.             And it was a custom in Israel, (삿 11:40) That the daughters of Israel went yearly to lament the daughter of Jephthah the Gileadite four days in a year.   누군가는(?) And는 시간 순서를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이 And에 맞추어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38절, 39절에 보면 모든 것이 일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고, 그 결과 그 딸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뒤에 입다의 딸이 애곡한 것처럼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서 풍습이 되어 이스라엘 딸들이 매년 나흘씩 애곡합니다.   일의 순서를 다시 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1절 첫째로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는 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34절 그의 딸이 입다를 맞이했습니다. 38절 그의 딸이 산에 올라가 자신의 virginity로 인하여 애곡했습니다. 39절 입다가 딸에게 자신의 서원을 실행했습니다. 39절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39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풍습이 되었습니다.   분명 입다는 자신의 서원(번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의 딸이 재가 된 것도 아니고, 죽었다는 기록도 성경에 나오지 않고, 단지 딸이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입다의 딸이 처녀였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처녀인 것은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의 상태를 나타내지만,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행위의 주체가 적극적으로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즉, 이 말은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음, 즉 남자와 동침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죽은 사람은 처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knew’를(즉 동침을) 할 수는 없습니다. ‘Knew’는 동사입니다. 상태의 ‘was’가 아닙니다.   만약에 입다의 딸이 처녀로서 죽었음을 표시하려면, “그녀는 처녀였다(she was virgin)” 또는 “그녀는 처녀였었다(she had been virgin.)”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체 문맥상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형보다 한 단계 앞선 과거완료형을 써서 죽기 전의 입다의 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면, 논란의 소지도 없이 입다가 자기 딸을 짐승처럼 불태워 죽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she knew no man)”고 말합니다.   바로 이 기록이 입다의 딸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명백히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위의 성경 기록이 우리의 상식과 모순됨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번제 헌물로 드리면, 당연히 죽여서 태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성경 기록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였음을 우리에게 더없이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을 바꾸든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든가 말입니다. 사람을 번제 헌물로(조금 더 정확하게는 ‘번제 헌물을 대신하여’, for burnt offering, ‘as burnt offering’이 아님), 바친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죽여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태워 오직 주님께 바치는 번제 헌물처럼 (2) 사람의 전 생애를 주님께 바치는 것이며 (3) 여자인 경우는 남자를 알지 않고 처녀로 주님이 정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사기 11장을 성경 기록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성경이 읽히나요? 앞 문장인 ‘번제 헌물로’에 너무 집착하시지 말고, 39절 뒤 문장도 같이 읽어 주세요. 37절에서 39절까지 전체문맥이 계속해서 viginity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난해 구절로 분류하는 성경 기록일수록 앞뒤 문맥을 넓게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지식과 지능이 없어도 편견 없이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 누구라도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능히 깨달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의 소박한 나눔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8:22:50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5-04-14 18:28:34 | 홍승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 킵바이블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모든 형제/자매님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세상은 재창조된 것이라고 믿는 분들의 글과 강의를 접하며 그동안 생각했던 몇 가지를 소박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재창조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세상’이 아니고 ‘세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된 것을 두고는 너무나도 단호히 이것들이 ‘멸망 당한 이전 세상’과 ‘재창조된 현 세상’을 가리킨다고 하며, 그 주장의 토대 위에서 계속해서 다른 성경 기록들까지도 자신들의 믿음에 짜 맞추다가 크게 실족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Through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worlds were framed by the word of God, so that things which are seen were not made of things which do appear.   히브리서 11장 3절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11장 1절과 2절에 나와 있으며, 3절을 포함하여 뒤따르는 11장의 나머지 구절들 전체가 이 두 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확증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것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히11:1-2)     이제 이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3. 믿음으로 장로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위의 내용 중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와 연관된 구절입니다.   3절을 읽어 보면, 두 개의 문장이 나란히 세 가지 내용을 대비하면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비된 부분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아래에 도표화해 보았습니다.         이 구절은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에 의해 지어지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깨닫는” 것임을 먼저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기억해야 할 원리, 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온 우주의 모든 것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hings which are seen’이라고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말하기 전에 쓴 바로 앞의 문장에서 등장한 ‘세상들이’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들이’에 ‘현 세상’ 외에 (재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옛 세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이미 멸망 당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보이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사도 바울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여기 나오는 ‘세상들’은 지금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며, 결국 재창조를 믿는 분들이 주장하는 허구의 공간인 ‘옛 세상’을 포함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3절에서 ‘세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뜻은 이미 히브리서 1장 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아들 하나님께서 친히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라고 번역된 영어 단어 ‘world’는 1차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세상 외에도 동물, 식물, 물고기, 곤충, 별들이 거하는 세상들도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려면 세상(world)을 세계(world)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수많은 세계들이 있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즉, 크게는 은하계, 태양계, 자연계, 해저 세계 등으로부터, 인간 세계, 동물 세계, 식물 세계, 광물계 등등 얼마든지 총칭적 용어인 ‘세계’를 세부적으로 나누어 구분해 표현하고 있지요.   그럼 왜 간단히 ‘세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세상들’이라고 했을까요? 재창조를 믿고 싶은 분들은 “단수를 썼더라면 재창조에 관한 추측이 없었을 텐데 복수를 쓴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또 다른 근거를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세상들’이라는 단어는 그 다음 문장에서 쓸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과 연계(대비)되어 사용된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단어가 총체적이고 개념적인데 반해 ‘세상들’은 구분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므로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의 의미를 보다 더 시각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하계’ 하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습니까? 따라서 ‘세상들’이라고 복수형 단어를 사용한 것이 그 문장이 의도한 의미에 더 적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세상들’이란 단어를 하나 보았다고 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 세상’ 외에도 ‘옛 세상’이 있었는데 멸망 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 말씀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자기 확신 가운데 주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주석가들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도 이런 곳에 나오는 ‘세상들’을 재창조와 연관시켜 ’옛 세상’, ‘현 세상’ 등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앞뒤 문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우주 공간의 모든 것들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고 그 일을 예수님이 직접 하셨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일을 안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성경기록자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성경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주석은 요한복음 1장: 2-3절에 있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우리 예수님은 재창조를 알지 못하십니다.   사람을 지은 일 자체가 창조가 시작될 때, 우주 공간과 땅이 만들어진 그때, 즉 창세기 1장 1절에서 6일째 되는 날에 이루어진 것이지 재창조 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여기도 시작(beginning)을 창세기처럼 처음으로 바꾸어서 이해하시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처음부터 즉 창조를 시작하시는 그 처음에 사람들을 만드셨습니다. 재창조 같은 것은 우리 주님의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72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87       (*) 다음은, 재창조가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이고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어 거기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기록된 대로 믿는 이들만 알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하는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관리자>   --------------------------  어떤 재창조론자의 주장 --------------------------   *현 세상이 전부인 줄로 아는 이들에게 주는 보너스   지금 있는 현 세상을 셋으로 나누면 노아의 홍수를 기준으로 옛 세상, 천년 왕국으로 기준으로 오는 세상(마12:32)이 된다. 천년 왕국을 기준으로 이 세상(천년 왕국 전)과 저 세상(천년 왕국)으로 구분한다(눅20:34,35). 옛 세상, 이 세상, 저 세상 이 셋이 현 세상이며 천년 왕국이 끝날 때 "현 세상"은 불로 멸망한다(벧후3:10-12).   -------------------  이에 대한 반박 -------------------   문맥이 이상해서 정확한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지만, 불의 멸망 이후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므로 땅은 영원하다. 노아의 홍수 이전 세상도 물로 멸하셨지만 일정 기간을 거쳐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여러 개로 나눈다 해서 완전 멸망과 재창조가 아니다. 그것은 재창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속임수다.   홍수 이전과 이후, 천년왕국 이전과 이후는 거주민이 다르고 환경이 다를 뿐 같은 세상이다. 노아에게 “모든 것이 죽으리라.” 하신 말씀도 정말 '모든 것'인가? ‘방주 속 생명들과 코로 숨 쉬지 않는 모든 것’을 제외한 심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세상을 멸하신 것이며(창6:13, 17), 노아가 맞은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명령을 다시 주신다(창9:1, 7). 그러므로 <물의 넘침으로 인한 멸망 = 노아의 홍수>의 공식이 성립된다. 천년왕국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고 주장되는 재창조 수준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1. 홍수 이전 세상 2. 지금 세상 3. 다가올 세상   굳이 세상을 나눌 필요도 없지만 재창조를 주장하는 모든 구절을 이렇게 보아도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자연스럽다. 근거 없이 지금의 세상은 하나의 세상이고 그때의 세상은 재창조 이전의 세상이라고 우길 아무 근거가 없다.   ━━━━━━━     부디 우리 모두가 편견과 왜곡 없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읽고 해석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성화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15 18:23:25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5-04-10 16:56:14 | 최상만
안녕하세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저는 계시록을 강해하며 계3:5의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것의 의미를 성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시절 강해한 내용을 되돌아보니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뒤 다시 글을 썼지만 역시 전체 성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999   이런 가운데 요즘 저희 교회에서 성경 Q & A를 오후에 진행하는데 성도들 중 이것을 궁금해하는 분이 다시 질문을 올려 주셨습니다. 이분의 질문의 핵심은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여기저기를 찾아보며 이 말씀에 관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팀 라헤이(Tim LaHaye) 목사님이 설명해 놓은 것이 성경 전체를 아우르며 조화를 이루는 바른 해석인 것 같아 소개합니다. 라헤이 목사님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며 환난 전 휴거를 설명하는 분입니다. 환난 전 휴거에 대한 그분의 소설 <Left Behind>는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http://www.gnfi.org/articles/teachings-pdf-downloads/103-the-book-of-life (다음 글은 라헤이 목사님이 지은 <Prophecy Study Bible>에 있는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런 글을 통해 성경을 통합적으로 보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   먼저 생명책(book of life)을 살펴봅시다. 구약에는 생명책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사악한 자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시69:28).   이 책은 하나님의 책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3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32:32-33).   이 책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책이며 여기에는 우리의 몸이 모태에서 형성되는 것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눈이 아직 불완전한 나의 실체를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된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되 그것들 중에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 기록되었나이다(시139:16).   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죄를 짓고 용서받지 못한 자(출32:33), 즉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얻지 못한 자 2. 이기지 못한 자(계3:5), 여기서 ‘이기는 자’는 행위를 많이 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 즉 모든 성도를 말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3. 성경 말씀을 고의로 변개한 자(계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대개 우리는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그것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누구든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가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 있는 한 신자든 불신자든 그의 이름은 여전히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죄 용서를 받지 못한 자 즉 불신자와 성경 변개자 같은 죄인들의 이름은 거기서 지워집니다.   한편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책이 등장합니다. 이 책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그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입니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여기의 어린양은 물론 세상 죄를 제거하는 예수님을 말합니다(요1:29).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그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일단 이름이 오르면, 즉 구원받으면 어린양께서 끝까지 그를 구원하실 수 있으므로 이름이 지워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히7:25).   그러므로 ‘생명책’과 ‘어린양의 생명책’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책으로 생각됩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경우 그 이름은 처음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 그의 이름은 살아있는 동안 기록되어 있던 ‘생명책’에서 제거됩니다.     --------- 결론 ---------     비록 구약 시대 이야기지만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히 이 땅에서 이름이 있었지만 죽은 뒤에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모르십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아브라함과 나사로는 이름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도 비슷한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 당하려 하느냐?   여기의 ‘너희’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을 때 하나님에게 알려집니다. 물론 하나님은 구원받기 전에도 그를 아시지만(생명책으로), 구원받아야 비로소 그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으로 아십니다. 갈4:9는 구원받지 않으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말합니다. 즉 ‘어린양의 생명책’의 이름으로는 모르신다는 것입니다.   럭크맨의 영향을 받아 재창조를 굳게 지지하는 리건(David Reagan) 목사도 이에 대해서는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learnthebible.org/blotting-out-of-names-the-book-of-life.html   그의 마지막 권고가 인상적입니다. 영어로 그대로 적습니다.   If all men are in the book of life, then there is hope for them as long as they live. We need to strive to make sure that more of them continue to live--even when they have left the land of the living. We need to take to them "all the words of this life" (Acts 5:20) about how to trust in "the Prince of life" (Acts 3:15) so that their names will not be blotted from the book of life.     참, 질문을 주신 분에게 답을 드립니다.   어린양의 피로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토록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삭제되지 않습니다.한편,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이름은 살아있는 동안 기록되어 있던  ‘생명책’에서 지워집니다.   제가 처음부터 조금 더 잘 연구해서 알려드렸으면 혼동이 조금 덜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세심하고 성실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 럭크맨이든 리건이든 라헤이든 그 누구든 극단적 세대주의 해석을 하지 않고 누가 봐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온전한 의견을 제시하면 언제라도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가진 우리는 다만 그들의 몇몇 극단적인 주장만 피하면 됩니다.  
2015-04-10 15:43:2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