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청 앞 광장에서 싸이가 공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자료에서 눈에 낮익은 것들이 보여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많이 투자 할 수 없어서 간략하게 정보만 같이 공유하고자 편집을 시도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또 많은 시간을 공들이게 되었습니다.
싸이가 요즘 '강남스타일'로 연일 빌보드 차트의 2위에 올랐다는 기사와 함께 꽤 많은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글은 싸이와 관련된 일부 자료를 통해서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자는 의도를 가지고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소스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갑작스런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케이티 페리, 월스트리트 저널, CNN, 엘렌쇼, 투디이 쇼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으며 11개국 아이툰스 음원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아이돌, 원더걸스, 빅뱅, 소년시대 등등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일반적으로 해외 현지 공연, 현지 음반 발매, 방송 출연 등 정해진 패턴가운데 해외시장에 뛰어 드는데 싸이의 경우에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기획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빅뱅, 소년시대, 동방신기, 2NE1이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인물에 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1994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스페인 팝 듀오 로스 텔리오의 '마카레나' 열풍과 비슷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시청 앞 광장에서 싸이의 무료 콘서트를 할 때 30,000개의 6집 앨범을 무료로 배포했다는 사실과 동영상에 비쳐진 심벌들을 보면서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연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서 싸이의 6집 앨범을 치면 2012년 7월 15일에 첫 발매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루미나티는 수비학을 중시여깁니다. 어떤 분이 먼저 자료를 정리해 놓은 것을 발견해서 그것을 소스자료로 올립니다.
2012년 7월 15일을 일루미나티 수비학으로 계산을 하면 2+0+1+2+7+1+5=18=(6+6+6)=666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냄새가 나는 대목입니다.
시청광장에서 공짜로 나누어준 싸이 6집 시디가 3만개 라고하니 하니 이것도 6 X 3 = 18 = 6+6+6 = 666이 도출이 됩니다.
싸이의 6집앨범의 자켓과 시디 디자인을 보면 일루미나티의 전시안을 연상케하는 호루스의 눈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것도 우연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그 눈안에 인어 모양을 하고 있는 싸이 심벌이 있으므로 호루스의 눈이 싸이를 지켜보고 있다. 또는 나는(싸이) 호루스의 눈 안에 있습니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되는 부분입니다.
다곤은 고대 이교도 국가인 앗시리아의 비문 등에 나타난 신들이나 천사들이 쓰고 있는 관과 그 모양이 동일하며 거짓 바빌론 종교의 “구원자”의 한 신비 형태입니다. 다곤은 물고기의 신을 의미합니다. 이런 바빌론 이교주의의 다곤 숭배는 특별히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유래 P 117~119쪽 참조)
사사기 16 : 23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희생물을 드리고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신이 우리의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들릴라로 인해 삼손은 머리털이 짤리고 두 눈이 뽑히고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립니다. 그들이 즐거울 때에 삼손을 불러내어 재주 부리는 것을 구경하고자 합니다. 삼손이 두 기둥 사이에 서게 되고 삼손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를 기억하옵소서... 삼손은 두 기둥을 밀어트려 그 집이 무너지게 합니다. 27절에 기록을 보면 그 집에는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희생물을 드리고 즐거워 하는 블레셋의 남자와 여자들이 가득하였다고 하며 지붕에도 삼천 명 가량의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습니까? 또한 이 건축물의 크기가 얼마나 컷겠습니까? 이 사건은 약 3116년 전의 실제 사건이며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이 다곤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상 5 :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취하여 그것을 다곤의 집으로 가져다가 다곤 옆에 두었더라.
사무엘상 5 : 3
¶ 아스돗 사람들이 다음 날 일찍 일어났는데, 보라, 다곤이 {주}의 궤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댄 채 쓰러졌으므로 그들이 다곤을 취해 다시 그것의 자리에 세워 두었더라.
사무엘상 5 : 4
그들이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보라,다곤이 {주}의 궤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댄 채 쓰러졌고 다곤의 머리와 두 손바닥은 끊어져서 문지방에 있고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사무엘상 5 :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집에 들어가는 자는 이 날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느니라.
사무엘상 5 : 7
아스돗 사람들이 그리된 것을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궤가 우리와 함께 거하지 못할지니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의 신 다곤 위에 심하게 임하는도다, 하니라.
*사무엘상 5장 2~7절은 사무엘이 살았던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이 있었고 에벤에셀에서 전쟁 중에 3만명의 이스라엘의 보병이 죽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이 크게 패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전쟁터에서 블레셋이 빼앗아서 아스돗이라는 지역의 다곤의 집(이방신 성전) 둡니다. 이때 일어난 일들의 기록입니다.
다곤은 일루미나티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싸이도 자신을 물고기, 인어로 그려놓았습니다. 이것은 바빌론 신비종교인 “물고기의 신” 다곤의 종이다. 또는 그들의 후예가 되었다. 라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싸이가 “낙원”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눠준 호루스의 눈이 그려진 앨범을 들어 보일 것을 요청하고 있는 영상장면입니다.
3만 개의 호루스의 눈을 들고 있는 관객들에게 “진짜 멋있습니다. 여기가 낙원이라 생각하시는 분 ‘소리질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싸이는 호루스의 눈이 다스리는 세상(New World Order)이 낙원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8만명이 서울광장에 운집했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3만개의 일루미나티의 대표적인 상징인 전시안(호루스의 눈)을 들어보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낙원이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겠습니까?
오른쪽 상단 MBC 로그 보이십니까? ! MBC가 이런 일에 앞장 서고 있으니 걱정됩니다.
2012-10-08 04:42:37 | 노영기
KJV,흠정역에는 없는 구절이 없이 모든 구절이 다 있는데 개역성경과 NIV는 부분 삭제된 구절 말고도 아예 없는 구절(없음)이 13구절이나 있습니다. 그중에 한 예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지면한계가 있어 중요내용만 표현하겠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에서 48절을 읽어보면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43절) :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킹제임스 흠정역(44절)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 없음 )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 없음 )
킹제임스 흠정역(45절) :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킹제임스 흠정역(46절)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 없음 )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 없음 )
킹제임스 흠정역(47절) :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개역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킹제임스 흠정역(48절)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KJV :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NIV : where "their worm does not die,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개역성경에서는 마가복음 9장 44절, 46절이 없습니다. 42절에서 50절까지의 요점은 형제나, 자매나 이웃을 실족시키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창조주이시자 삼위일체이신 아들 하나님,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이 직접 지체를 실족시키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경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3번을 강조하셨고 지옥의 참혹함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의 여러 곳을 살펴보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실 때 3번 언급하는 용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3번씩이나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개역성경으로 42절~50절을 읽어보세요 의미전달이 어떤가요? 지옥이 많이 가리워져 있고 없음 구절들로 인해 예수님이 그렇게 강조하시려는 마음이 엄중하게 다가옵니까?
이런 차이가 KJV,흠정역성경과 NIV,개역성경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3건 정도 나열을 한 것입니다. 개역성경은 우리나라의 복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경책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KJV가 번역된 성경으로 복음화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허나 어쩌겠습니다. 이것이 현실인 것을요. 또한 개역성경도 예수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담고 있기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구원받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최종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없음 구절이 없고 삭제되거나 변개되거나 단어들이 잘 못 쓰이거나 말씀이 와전된 구절이나 오류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수 천 년을 내려오면서 원본은 사라지고 사본들도 이곳저곳 찢기고 사라지고 없어졌으며 사본들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도 조금씩 다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신학자들에 의한 노력으로 무언가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있는 식으로 이해를 가집니다. 그런데 바이블 빌리버 즉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능히 이 시대에도 완전히 보전되고 오류가 없는 성경의 기록들을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백성들의 손에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고 믿는답니다. 그 성경이 킹제임스 성경(KJV)이며 한국사람에게는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최종권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두 성경을 대조해서 읽고 탐구하고 많은 것들은 알아 갈수록 혼자만 감추고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열정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과 바르게 알지 못하여 헤매이는 지체들과 잘못 가르치는 목사나 지체들을 보노라면 말씀을 잘못 나누는 부분을 지적하며 그리 가르치시면 아니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이 보급되면서 그 성경으로 인해 순식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들이 많아져서 큰 변화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치가 안더라구요. 결국 스스로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가면서 하나 둘씩 자유함을 찾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 개역성경을 가지고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던 분들로 부터 형제님과 같이 킹제임스 성경만 올바른 성경이고 개역성경은 잘못된 성경이냐, 개역성경은 개악된 성경이냐,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도 못 받냐? 개역성경은 가짜복음이냐 등등 감정에 치우친 말들을 듣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역성경도 예수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약 2년 동안 개역성경과 흠정역 성경을 대조해서 보는 가운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오류가 없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역성경이 번역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형제가 끝까지 개역성경으로 갈 길을 간다고 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형제님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사안이니까요. 다만 저로서도 먼저 보고 알게 된 것들은 거저 얻었으니 거저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역성경이 번역상 많은 오류가 있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 또한 양심에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2012-09-15 18:50:19 | 노영기
전에 한 형제로 부터 공개적인 답변을 요구 받은적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성경이슈들을 알았을때는 미숙해서 상대방이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도 모르고 나의 말만 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이제 칠순이 다 되셨는데 말씀을 탐구 할 여력도, 의지도 별로 없는 터라 전에 몇 번 들으시고는 마음의 문을 많이 닫으신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쌓아 오셨던 교회 생활로는 나의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좀더 지혜롭게 접근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이 일들을 경험으로 나는 상대방의 자유의지에 설득력 있게 말을 전달 하거나 증거 자료를 제시해 주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조심스러운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의중을 담고 글을 작성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고 혹 처음 성경의 이슈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실때 참고가 되거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킹제임스만 올바른 성경이고 개역성경은 잘못된 성경인지 카페 게시판에 정식으로 올려주십시오.
성경에 대한 이야기
킹제임스 버전(KJV) 성경은 영국의 제임스 왕의 명령으로 47명의 학자들이 6년 9개월의 번역기간을 거치면서 1611년 인쇄되었습니다. 한편 키텔에 의해 편찬된 비브리아 헤브라이카가 2, 3판을 거치며 2만~3만 군데 변개되었고, 1967년/1977년판 슈트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로 개정된 후 신국제역본 (NIV), 신 미국표준역본(NASB) 등 모든 역본이 BHS를 근거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킹제임스 성경(KJV)은 2012년 기준 401년이 된 개정된 적이 없는 성경이고 현대 역본중 하나인 신국제역본(NIV)는 이 땅에 선보인지 33년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역성경은 1961년 개역한글판이 나왔으며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은 1611년에 인쇄된 킹제임스 버전(KJV)를 2000년도에 우리말로 옮긴 성경입니다.
개역성경은 1881년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내 놓은 로마 카톨릭 천주교 사본에 근거한 영국개역성경(ERV)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그리스어 본문에 근거한 네스레의 25판과 미국표준역(ARS)을 본문으로 채택하였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연합성서공회가 1983년에 발행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3판과 슈투트가르트 비르리아 헤브라이카(BHS)를 원전으로 삼아 외국에서 공부한 국내 학자들로만 만든 성경입니다. 아주 간략한 성경의 기원은 이러합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개역성경은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다 같은 것 아니가! 그런데 왜 이런 차이들이 있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분을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그분을 놓아주려고 결심하였을 때에 그 앞에서 그분을 부인하였으니
개역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KJV : The God of Abraham, and of Isaac, and of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hath glorified his Son Jesus; whom ye delivered up, and denied him in the presence of Pilate, when he was determined to let [him] go.
NIV :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has glorified his servant Jesus. You handed him over to be killed, and you disowned him before Pilate, though he had decided to let him go.
킹제임스 흠정역 :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일으키시고 너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그분을 먼저 너희에게 보내사 너희 각 사람이 자기의 불법들에서 돌아서게 하셨느니라.
개역 :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KJV : Unto you first God, having raised up his Son Jesus, sent him to bless you, in turning away every one of you from his iniquities.
NIV : When God raised up his servant, he sent him first to you to bless you by turning each of you from your wicked ways.“
위 사도행전 3장 13절,26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표현하는 부분으로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KJV는 기록된 반면 개역과 NIV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크게 희석시켰습니다. 사도행전 3장 전체를 여러 번 읽어 보세요 낮은 자의 모습인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을 증언 하고 있는 것입니다.
킹제임스흠정역(6절) :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개역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개역개정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KJV : This is he that came by water and blood, [even] Jesus Christ; not by water only, but by water and blood. And it is the Spirit that beareth witness, because the Spirit is truth.
NIV : This is the one who came by water and blood--Jesus Christ. He did not come by water only, but by water and blood. And it is the Spirit who testifies, because the Spirit is the truth.
킹제임스 흠정역(7절) :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개역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개역개정 :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KJV :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NIV :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킹제임스 흠정역(8절) :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개역 :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개정 :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KJV : And there are three that bear witness i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 in one.
NIV :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위 구절들은 정말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 일서 5장 6절,7절,8절은 사실상 기독교의 정통교리인 삼위일체를 명확하게 드러낸 구절들입니다. 위에 자세히 보시면 KJV, NIV, 흠정역의 6절이 개역성경에서는 6절과 7절에 말씀을 나누어져 있고 실지로 7절 말씀에 해당하는 구절은 없어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개역성경을 개정할 때 흠정역의 7절처럼 명확하게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다 라고 개정되었으면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모든 이단들이 설자리를 잃어 버렸을 텐데 안타깝게도 6절은 원상태로 두고 이번에는 흠정역의 8절을 7절과 8절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내용을 보면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는데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고 증언하고 있고 이 세 분은 하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증언하는 셋이 있는데 영과 물과 피라고 하고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서의 크고도 놀라운 신비를 명확하게 창조세계에 말씀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개역성경과 NIV는 하늘과 땅의 구분도 없으며 삼위일체의 명확한 구절이 사라져 버려서 증언하는 이가 결국 성령과 물과 피만 나타내는 결과가 초래 되었습니다. 하늘과 땅가운데 나타나는 그 크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2012-09-15 18:45:40 | 노영기
참란된 일이고 슬픈 현실이지만(????) 이 시점을 통해서 한번더 생각해 보고자 올립니다. 고인의 명복은 빌어줄 수 없지만 300만명이넘는 불행한 슬픔속에 처해 있는 이들을(통일교인)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비난 글들을 삭제한다기에 객관적으로 언론에 공개된 사실들만 나열을 하였습니다. 각자가 판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문선명, 가칭 메시아의 죽음
문선명 (문용명) 종교인
출생-사망 (1920년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 - 2012년 9월 3일)
가족 : 배우자 한학자, 아들 문국진, 문형진, 문현진, 딸 문선진
경력
1997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1989 세계일보 창간1987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창립1981 국제기독학생연합협회 창립 2012년 9월 3일 새벽1시 54분에 폐렴합병증으로 92세의 나이로 죽음
막대한 돈을 소유하고 있는 문선명 일가의 재산문제 -
문선명이 안치 될 성지 천정궁 ( 이스라엘의 성지 예루살렘과 같은 통일교의 성지)
뉴스기사 - 통일교의 배후로 지목되는 단체는 일루미나티 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의 하는 많은 일들은 세계정부가 추진하는 중대한 일과 연관되어 있으며 세계정부의 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문선명 일가에게는 왕가의 자손처럼 살아가는 큰 특권이 주어진 샘이지요 그러기에 수많은 피해사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상아닙니까?
* 현재 완공된 북한의 류경호텔 *****모양이 어디서 많이 본 그림 같지 않습니까?*****피라밋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문선명 통일교 총재 별세에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냈다. 5일자 평양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1위원장은 조전에서 “세계평화연합 총재 문선명 선생이 병환으로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한학자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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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앙TV는 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민족대단결사상과 조국통일노선을 높이 받들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며 민족 공동의 번영을 위한 애국 위업에 적극 기여한 문선명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한다"고 전했다.이날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의식이 열렸으며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등이 참석했다. 조국통일상은 이날 북한을 방문한 문선명 총재의 7남이자 장례위원장인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에게 전달됐다.
통일교의 문선명 신이라면서요. 부활할까요?
tigerows 2012.09.06 01:34
o 문선명 선생님은 진짜 메시아입니다.
o 기독교에서는 '우주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고,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의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였으며, 그래서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o 뱀은 기어다니는 뱀일까요? 선악과는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일까요?
o 통일교에서는 '뱀'은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 천사장 누시엘'이며, '선악과'는 '이브의 생식기'이며,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불륜한 성관계를 하였다'는 것이며, '뱀의 유혹으로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천사장 누시엘과 이브와의 영적 타락'이며, '이브의 유혹으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아담과 이브의 육적 타락'이라고 해석합니다.
o 즉,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이 정하여 준 때에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결혼하여 성관계를 하고 자녀를 번식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이었습니다.
o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따 먹지 말라'고 했던 것은 영원히 따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철이 들어 결혼할 때까지는 순결을 지키라는 의미였습니다.
o 계시적인 우리 말은 '따먹었다'는 것이 '성교를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옆 집에 사는 순이를 따먹었다'는 것은 '순이와 성교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o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천사장 누시엘(타락 후에는 '사탄'이라고도 합니다)의 유혹으로 하나님이 '따먹으라'고 말씀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따먹고 맙니다. 즉, 아담과 이브는 사탄을 중심하고 성관계를 하여 자녀를 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육신을 쓰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타락한 세상인 것입니다.
o 간단히 말하여,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성범죄"라는 것이 통일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o 그래서 문선명 선생님은 절대순결(결혼하기 전에는 순결을 지켜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절대정절(결혼 후에는 오직 자기 남편과만 성교하며, 또는 오직 자기 아내와만 성교하는 것)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o 오늘날 성범죄가 만연한 것도 원죄는 성범죄이기 때문입니다.
o 이 타락한 세계를 타락 이전의 창조이상 세계로 만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오신 섭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섭리는 창조이상 세계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o 제1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사탄을 중심삼고 타락하여 타락한 자녀를 번식시켰으니, 하나님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선한 자녀를 번식하기 위하여 제2의 아담을 이 세상에 보냈으니 바로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o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를 메시아, 구세주로 찬양하는 이유는 예수가 바로 제2의 아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교인이나 비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메시아, 구세주로 믿지 않겠지요. 믿고 안믿고는 각자의 자유이니까요. 2,000년 전에 유대교인들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지요. 물론 현재의 유대인들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다.
o 제2의 아담인 예수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은 제3의 아담을 이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고 선한 자녀를 번식하려고 합니다.
o 통일교에서는 문선명 선생을 제3의 아담, 즉 재림 예수이며, 메시아, 구세주로 믿습니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인들로부터 이단이라는 말을 들어온 것입니다.
o 신앙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는 바, 2,000년 전에 예수를 메시아로 믿든지 믿지 않든지는 각자의 신앙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문선명 선생을 메시아로 믿든지 믿지 않든지 또한 각자의 신앙에 달렸겠지요.
o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조두순 사건, 나영이 사건, 최근의 전남 나주시 어린이 성범죄 사건 등등.... 성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o 성범죄로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새삼 문선명 선생님의 가르침인 "절대순결"과 "절대정절"이 더욱 가슴에 와닿습니다.
o 즉, 성범죄로 가득찬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상은 이 세상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문선명 선생님의 가르침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o '누굴 믿고 천당가자'는 등의 허황된 신앙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주변에서는 처참한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문선명 선생님은 진짜 메시아입니다.
통일교 원리강론
통일교의 축복결혼식
통일교는 그들의 기본이념중 하나인 인류한가족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국경을 넘어서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국제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사상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는 참사랑의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고 참된 가정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통일교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결혼은 인류가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하나의 실질적인 방안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또한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 총재님은 원수 국가끼리 참사랑으로 하나 되어 부부의 인연을 맺음으로써 민족, 국가, 인종 등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인류의 화해와 평등을 실천하고자 하는 취지로 이러한 국제 결혼을 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의 희망의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피해사례 1건을 예로 다음의 기사를 제시합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대표 황선조, 교주 문선명) 산하 참가정실천운동연합에서 진행하는 합동결혼식을 통해 결혼을 했던 나창근·오병정 씨가 9월 19일 통일교 탈퇴를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나 씨와 오 씨는 2002년 2월에 열렸던 통일교의 4억쌍 3차 합동결혼식에서 모두 일본인 여성을 만나 식을 올렸으나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정상적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폭로했다.나 씨는 "결혼식을 한 후 통일교측에서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가정 출발을 할 수 없다"며 "말만 결혼식이었지 신부의 손 한 번 잡아본 것이 고작이었다"고 성토했다. 또한 오 씨는 "결혼을 한 후 통일교 측에서는 계속 교회에 나올 것을 강요했고 교회출석과 각종헌금을 강요했다"며 "통일교측의 말을 안 따르면 결혼 상대자를 이간질해서 일본에 다시 보내는 등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박탈했다"고 비판했다.나 씨와 오 씨의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대표회장 최재우 목사)의 박준철 목사는 "합동결혼식 피해자들 중 평신도들이 나선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며 "이들이 몸담은 한 교구는 결혼한 20쌍 중 8쌍이 깨졌다"고 주장했다.
********* 메시아인 문선명 총재가 직접 집도한 결혼식의 결과이다. *********
2012-09-15 17:52:13 | 노영기
성경공부를 하면서 여러 주석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주석을 읽으면서 유익한 점도 많지만, 저자의 사상이 들어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책 저자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흠정역 성경이 아니거나 또는 번역자가 개역성경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에 책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발생함을 발견합니다.
미가서 1장 15절도 그 중의 하나인 경우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1 : 15,16
15 오 마레사의 거주민아, 그러할지라도 내가 상속자를 네게로 데려오리니 그가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에 이르리라.
16 너는 네 아름다운 자녀들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짧게 깎아 대머리가 되게 할지어다. 네 대머리를 독수리같이 크게 할지어다. 그들이 너를 떠나 포로가 되었느니라
영어킹제임스 1 : 15,16
15 Yet will I bring an heir unto thee, O inhabitant of Mareshah: he shall come unto Adullam the glory of Israel.
16 Make thee bald, and poll thee for thy delicate children; enlarge thy baldness as the eagle; for they are gone into captivity from thee
NIV 1 : 15,16
15 I will bring a conqueror against you who live in Mareshah. He who is the glory of Israel will come to Adullam.
16 Shave your heads in mourning for the children in whom you delight; make yourselves as bald as the vulture, for they will go from you into exile
개역 1 : 15,16
15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 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찌어다 네 머리로 크게 무여지게(?)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찌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니라
개역개정 1 : 15,16
15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 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미가서 1장은 전체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항상 앞뒤문맥을 살피고 내용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며 전달자가 누구에게 어떤 의도로 말씀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장은 성읍들을 열거하면서 하나님께서 각 성읍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데,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15절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에 이르리라고 번역한 반면에, 개역성경(NIV, 개역개정 포함)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둘 중 어느 번역이 맞을 까요?
마레사는 유다의 도시들 중 하나(여호수아 15:44)입니다.
역대하 11장 8절에 르호보암이 국경 방어를 위해 성벽을 두른 도시입니다. 상속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성읍은 하나님께서 다른 상속자(심판자)를 데려옴으로 그가 이스라엘의 영광인 아둘람(다윗이 사울을 피해 있던 곳, 삼상 22:1)에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16절에서 정복당한 그 성읍의 자녀들이 당할 극심한 수치심과 슬픔이 나옵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은 심판대신 영광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개역성경 번역대로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른다면, 영광이 임한 곳의 자식이 어떻게 대머리 같게 머리털을 깎고 사로잡혀 갈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이 남한을 공격 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남한의 영광인 서울까지 이르렀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남한의 영광이 서울까지 이르렀다”
어느 말이 맞나요?
겨우 “ㄴ”받침하나 있고 없고 차이인데, 뜻은 완전히 다르게 됩니다. 침략자가 영광을 가져다 준 자로 둔갑해 버립니다. 이런 경우는 개역 성경(개역 개정포함)에 너무도 많아 이제 새롭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형제와 성경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에 구원에 관해서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빌립보서 2장 12절, 베드로 전서 2장 2절 등 개역성경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하여 구원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었음을 지적하였는데, 개역 성경 번역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분이라 개역 성경은 번역이 잘못 되었으며, 바르게 번역 된 성경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제가 놀랐습니다. 그분 의견에 따르면 개역 성경 번역은 이러지만, 원래 이 뜻은 이러 이러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구요? 성경을 능가하는 믿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이 잘못된 성경 구절을 보고도 하나님의 의중을 파악해버리니 놀라운 믿음 아닙니까? 그에게는 성경 번역이 옳든지 그르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틀려도 자신의 믿음은 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저는 성경을 능가하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면 뭐하냐?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중요 부분만 맞으면 되지, 하고 말하곤 합니다. 말씀 한 구절도 절대 틀려서는 안 되지만, 중요한 구원문제, 교회문제, 삼위일체 문제에 대해 개역 성경 번역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고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말씀 보면서 개역성경과 비교해 가며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보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는 하나님은 대충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류가 있어도 대충, 번역이 잘 못 되도 대충, 이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성경에 그런 하나님은 안계십니다. 죄는 어떤 죄라도 하나님 앞에 있을 수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오류는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대충 성경을 보고 대충 믿을 수가 없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옳다는 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신자라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자가 아니고 믿어야 할 것을 믿는 자며, 읽고 싶은 것을 읽는 자가 아니고 읽어야 할 것을 읽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자가 아니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자가 아니고 들어야 할 것을 듣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신자라면 성경 밖에 예수님이 아닌 성경 안에 예수님을 믿는 자며, 성경을 초월한 믿음이 아닌 성경에 갇힌 믿음을 소유한 자라고 믿습니다. 저도 이렇게 믿고 살고 싶습니다. 그런 바램 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라면(성경에 관해서라면) 결코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2012-09-11 12:32:23 | 한재석
안녕하세요?
한 성도님이 다음의 글을 보고 염려가 되어 제게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거기서 개혁헌장zoomin이라는 분이 다음과 같이 비방의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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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독립침례교회인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최근 설교를 듣던 중 왜곡된 구원론과 비성경적 주장들이 난무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정동수목사는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므로 믿는자는 어떠한 죄악을 범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술을 마셔도, 흡연을 해도, 아비의 하체를 범해도, 자살을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 예로 구약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1세들과 사울왕 및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이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정동수 목사는 미국의 제임스 낙스 목사를 초청했는데 제임스 낙스는 그의 책 "영원한 구원보장"에서 한번 믿은 사람은 도중에 믿음을 포기해도, 심지어 사탄의 행위를 해도 한번 받은 구원은 변함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정동수목사는 킹제임스만 올바른 유일한 성경이라면서 개역성경이 수백군데가 변개된 잘못된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국교회가 부패하여 잘못된 길을 걷는 것도 성경이 부실해서 그렇다는데 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역성경으로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아 거듭난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봅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제외한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정동수목사는 창세기 6장을 근거로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여자와 결혼하여 천사의 후손, 즉 아낙네 자손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천사가 종종 성인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식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땅에 오셨으니까요. 따라서, 여자의 몸을 통해 나지 않은 천사가 여자와 결혼하여 생식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외에 정동수목사는 마태복음은 이스라엘한테만 적용되고 아직은 환란 때가 아니므로 베리칩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개역성경을 읽으면서 정동수목사의 주장이 크게 잘못되었고 자칫 많은 사람을 실족시킬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댓글 4
주의검을보내사 12.08.28. 12:29 정동수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 것임을 지혜 있는 자는 보고 알찌어다.
sungsan 12.08.28. 14:45 정말 큰일 날 주장을 하고 있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케노시스 08:50 신종이단 납시요~
믿음63 18:29 구원은 예수님께 있지 우리가 결정할 부분이 아닙니다. 다만 진심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구원 받는 자는 스스로 죄악을 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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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무지한 사람들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요.
저분들도 바른 복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2-08-29 19:04:47 | 관리자
예전에 글을 통해 몇 차례 내 자신에 대해 소개했듯이, 본인은 개인적인 취향 및 성향이 심각하게 마이너하다. 컴퓨터에서 쓰는 글자판부터 마이너하고, 프로그래머라지만 주 관심사와 주력 개발 소프트웨어도 엄청 마이너한 분야에 속해 있다. 종교관도 마이너하고, 취미는 가히 안드로메다 화성인 급이다.
청개구리마냥 일부러 속세와 담을 쌓기로 작정하고 이런 길을 간 건 절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난 태생적으로 남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저런 거 도대체 왜 하나” 싶어서 관심이 안 가고, 내가 양심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엔 지지자가 별로 없는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난 성격이 굉장히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이고 내 진심을 못 숨긴다. 그리고 뭔가 이념적인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잘 받고 잘 감화하는 편이었다. 쉽게 말해서 좀 순진해 빠진 구석이 있다.
나도 내 성격에 대해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남에게 천박해 비치지는 않으려나 우려하여 요즘은 이 성격을 자제하려 애써 보기도 하지만, 천성을 부정하고 가식을 부리는 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해야 할 말을 당장 내뱉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1990년대 말, 뭔가 감화를 받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세벌식 글자판을 쓰기 시작했다. 전국민의 1%도 채 쓰지 않는 걸로 추정되는 듣보잡 글자판을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옳다는” 강한 확신이 왔다. 한글은 두벌식으로만 쓰기엔 너무 아까운 문자인 게 와 닿았으며, 세벌식이 두벌식보다 얼마나 편리하고 활용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알아 버린 이상 여기에 완전 몰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무렵엔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희한한 성경을 밀기 시작했다. 안 믿을 거면 아예 완전히 때려치우고 안 믿고 말지, 성경을 믿는다면서 변개된 역본을 옹호하는 건 내가 보기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나는 이 분야에서도 여러 글들을 쓰고 이런 저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미 굉장한 요주의(?) 인물이 됐다.
어디 그뿐이겠는가?2004년, 철도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내 인생은 또 완전히 뒤바뀌었다. 철도로 인해 내 인생에 생긴 선한 변화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기쁘게 보고를 드릴 수 있을 수준이 됐다.
이런 마이너 분야들을 섭렵하면서 본인은 철도는 차치하고라도 세벌식이면 세벌식, KJV면 KJV처럼 자신이 속한 분야를 남에게 알리려 애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곤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들의 인지도는 정말 안습한 수준이다. 세벌식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한국의 많은 ‘교인’들이 아직도 KJV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거나, 혹은 ‘KJV = 말보회 = 이단’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렇듯, 명분상으로는 옳지만 심하게 마이너하고 당장 돈도 안 되는 밑 빠진 독 같은 분야에, 지지자를 많이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본인은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의 대학 후배이고 현재 본인과 같은 교회에 나오고 있는, 아라크넹(필명)이라는 친구가 세벌식 사용자로서 꽤 시원시원하고 단호한 어조로 세벌식 evangelism에 대한 비평을 자기 블로그에다 올렸다. 본인은 이를 재미있게 읽었다.
http://j.mearie.org/post/27713540987/what-is-wrong-with-sebulsik-evangelism
이 친구는 워낙 똑똑하고 아는 게 많으며, 세상을 보는 안목도 나보다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다 보니, 이념적인 면모 같은 건 일단 배제하고 그냥 두벌식보다 객관적으로 정말 빠르고 편하니까 세벌식을 의도적으로 익힌 케이스이다. 그에게 세벌식에 대한 지식은 자신의 여러 많고 많은 지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념적인 떡밥(글자판의 역사, 타자기 어쩌구저쩌구)에 대해 무지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며,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라크넹은 맹목적인 세벌식 우월주의에 들어있는 허상과 이것이 잠재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역효과에 대해서 잘 짚었다. 나 역시 당연히 공감한다.
그는 어떻게든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용자를 늘리려면, 주변에 최대한 조용하게 딱 이렇게만 말하라고 권한다.
“한국어로 타자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세벌식 최종이라는 글자판이 무척 좋을 텐데 관심 있으면 써 봐라. 표준 두벌식보다 손이 편하고, 더 빠르게도 칠 수 있다고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 운영체제에서나 설정만 바꾸면 바로 세벌식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없다.”
저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는 지금 당장 세벌식 글자판을 쓰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곁다리는 처음부터 절대 입 밖에 꺼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타자기 시절부터 시작된 한글 기계화 왜곡의 역사, 한글 창제 원리 드립, 두벌식 도깨비불 현상, 세벌식 모아치기, 기계식 타자기, 기계간의 글자판 통일, 무한 낱자 수정, 직결식 글꼴 등등등!
골수 세벌식 매니아라면 저런 주제에 대해서 입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겠지만, 진정 남을 배려하고 한 명이라도 세벌식 사용자를 더 늘리고 싶다면 일단 참으라고 말이다. 그건 일단 세벌식 개종자를 만들어 놓은 뒤, 그 친구가 차츰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설명해 줘도 늦지 않다. 그래, 그게 백 번 옳은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저건 내게는 개인적으로 좀 가혹하게 느껴지는 요구사항이다. 나는 아라크넹 형제와는 정반대이다. 세벌식이 그저 손이나 약간 편하고 영문 쿼티와 드보락 자판의 관계처럼 배열만 더 효율적으로 바꾼 수준이라면, 난 애초에 세벌식에 이 정도로 애착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글쇠배열 몇 개나 바꾸는 수준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 두벌식과 세벌식의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차이를 감지하고서 세벌식 매니아가 됐다. 한글 기계화의 역사와 공병우 박사의 삶에 대해서 완전 감화를 받아서 지금과 같은 길을 가게 됐다. 철저하게 이념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세벌식을 소개할 땐 내가 세벌식에 대해 가장 강점이라고 여기는 특징을 배제하라니? 그 친구도 세벌식의 진짜 강점이 뭔지를 몰라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러니 딜레마이다. 사실은 그런 원론적이고 이념적인 부분은 얘기해 봤자 사람들은 혼동만 할 뿐 당장 이해를 못 한다.;;
복음 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넘쳐나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 받나?”, “서양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조선 시대 사람들은 다 죽어서 무조건 지옥으로 갔나?”, “평생 착하게 산 사람도 예수 안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 가나?”
복음에 대해서 별 희한한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많다.
신앙 변증에 이미 다 통달해 있는 베테랑 복음 전도자가 그런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해서 쩔쩔맬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그런 불신자가 그 성경적인 답변의 문맥과 배경을 이해할 리도 없다. 그러니 그런 불신자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나도 화려한 성경 지식과 신학 논리로 맞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선한 의도로 시작했던 복음 전파가 어느 샌가 논쟁과 병림픽으로 바뀐다. 그럼 어떤 결과가 야기될지는 흠..
그 불신자는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기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며, 그 의문이 해결되면 선뜻 예수 믿겠다는 의향으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할 때는 FM대로 죄와 심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죽으심과 부활, 대속, 복음, 하늘과 지옥 같은 개념만 진심을 담아 전할 뿐, 쓸데없는 논쟁엔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복음 다음으로 성경 이슈 문제로 넘어가 보자.과거에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정보들에 너무 압도당한 나머지 전하는 자세가 서툴렀다. 오로지 ‘없음’ 처리되어 삭제된 13구절과 6만여 군데의 변개된 구절에만 열폭하기에 바빴다. 그래, 그건 크리스천에게 당연히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게 중요하지 않거나 그 자체가 글러먹었다고 반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성경이 잘못되면 왜 큰일나는지 관념 자체가 아직 없는 사람들에게 앞뒤 문맥 다 끊고서 개역성경은 사탄의 성경이고 NIV는 불쏘시개감이라고 욕하고, 비성경적인 이단들과 기존 개신교회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욕하고 비판밖에 할 줄 모르면, 일반 신자들은 당연히 마음을 꽝 닫게 되지 KJV로 전향을 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그런 중요하고 충격적인 성경 이슈에 대해서 절대로 KJV 진영에게 문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네 교회 목사에게 문의를 할 것이고, 그 목사는 당연히 하다못해 자기 기득권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KJV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변을 할 확률이 99.9%에 수렴할 것이다. 그럼 게임 끝이다.
겨우 이러려고 KJV를 믿고 성경 번역까지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은 흠정역의 경우 광고를 할 때 처음부터 자극적인 변개/삭제 내역부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냥 종교 개혁자들이 쓴 성경, 뿌리와 연륜이 있고 정통성이 있는 성경, 역사적으로 부흥을 가져다 준 성경, 정확한 문법으로 읽기 쉽게 번역된 성경이라고만 홍보한다. KJV는 이단은 절대 아니라고 기성 교회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10년이 넘게 KJV 연구만 한 KJV 골수 프로 전문가들이 오죽 하고 싶은 얘기가 없겠는가? 뉴에이지 사상이 들어간 구절, 성적 문란함을 부추기는 구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구절,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구절,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뚜껑 열리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들이다. 그래도 일단은 참는다. 왜? 역설적으로 KJV 개종자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이다.
어휴, 끝으로 이런 원리를 내 개인적으로는 철도에다가도 적용해야 할 것 같다.
나야 개인적으로는 Looking for you를 들으면서 신흥 종교 교주에 맞먹는 천지개벽을 경험하고 철도 때문에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는지 간증하자면 시간과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얘기만 늘어놓으면 오히려 난 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고, 특히 여자친구를 사귈 확률은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ㅠㅠㅠㅠㅠ
결정적으로 오늘날은 새마을호는 은퇴 직전이고 Looking for you 실황 연주는 없어진 지가 수 년째이다. 그러니 내 철도 간증은 남들에게는 덕이 되지도 못한다. 마치 타 언어가 타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고전 14:4, 9, 11)
그러니 남들에게 철도를 전하려면 “서울에서 부산 갈 때는 가능한 한 열차를 이용해 보세요. 철도는 정체가 없고 멀미도 없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는(전기 철도 한정) 저탄소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입니다.” 이런 말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전동차 구동음이 음악 소리 같다는 식의 오타쿠스러운 주제는 좀 나중에..;;
그래, 나야 철도가 그저 멀미 없고 안 막히는 저탄소 친환경 교통수단에 불과하다면 애초에 철덕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철덕 spirit을 전수해 주려면, 여타 마이너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부터 유추해 보더라도 일단은 철덕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면모부터 차근차근 순서대로 알려 주는 게 순서일 거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원리를 장터에서 약을 팔려는 약장수에다 비유하는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원숭이든 코브라든 꺼내서 재주를 부리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우글거리게 되면 그때야 약을 꺼낸다. 처음부터 심각한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모일 수 없다.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나는 그 심각한 본론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고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연구하면서 인생을 살아 왔다. 그것 말고 원숭이를 어떻게 키워서 재주를 부리게 해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다. 약을 빼면 할 얘기가 없다. 이 때문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다들 내가 완전 별종 괴짜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진지하고 심각하고 내 진심이 바로 드러나는 이야기를 우회 없이 온라인 공간에다 덥석 써 버리고, 정치관이나 종교관도 대놓고 자주 노출하는 편이다. 양심적으로 정말 해야겠다 싶은 말은 안 하고는 도저히 못 배기는 습성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 외람된 말씀 인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유하자면 렘 20:9 같은 기질이다.
이왕 이런 기질을 천성적으로 못 버린다면 그 기질이 목숨과 재산과 명예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정말로 진리를 위해서도 발휘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전시 상황이 아닌 평시에는 앞에서 여러 예를 들며 언급했듯이, 조금만 더 대중 친화적으로(?)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남에게 소개하는 기법을 익혀 나가야 할 것 같다.
2012-07-29 08:18:34 | 김용묵
성경의 구원
삼위일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시간이 생기기 전에 신격 안에서 교제를 나누신다. 성경은 시간이 생기기 전의 어떤 언약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용하시고, 온 인류를 위한 속죄물로 자기의 아들을 제공하시고, 복음을 믿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믿음에 따라 걷든지 혹은 육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을 성령님을 통해 성화시키기 위해 일하신다.
아들은 또한 창조자 하나님이시며 온 인류를 위해 대속물로 죽으시고, 구원의 선물을 주시며,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인 자신의 의(義)와 칭의(稱義)를 주신다.
성령님은 창조 세계와 양심과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이끄신다.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특별한 내적 준비 같은 것은 없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부활을 확증해 주신다. 성도들은 섬기기 위해 재능을 부여받았다.
죄인들 중에서 복음을 믿고, 마음속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만 자신의 믿음을 두려는 자들은 이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에 일치하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믿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 놓이며, 그분의 의로 옷 입고, 구속의 보증으로 성령님을 받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과 교제한다. 이 외에도 성도의 신분상의 다른 변화들이 나타난다.
믿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개의 본성을 갖는다. 첫째는 능력이 파괴된 옛 사람과 육신의 몸 안에 여전히 거하는 죄의 본성이다. 둘째는 이미 이루어진 새 사람인데 이것은 곧 성도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 선택하는 그리스도이다. 성도는 구원을 유지하면서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삶으로써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내지만, 육신을 나타내는 삶을 통해 어떤 때는 여전히 죄를 짓는다. 구원은 복음을 믿으며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십자가에서 그분이 이루신 일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거나 그분을 배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채 태어난다.
칼빈주의의 구원
삼위일체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신격 안에서 교제를 나누시고 구속(救贖)의 언약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창조를 작정하시고, 타락을 작정하시고, 어떤 자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시고 - 이를 통해 다른 자들은 정죄를 받도록 작정하신다 - 자신의 아들이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해 속죄를 이루도록 작정하시고,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적용하도록 작정하신다.
아들은 (1) 선택받는 자들을 위해 대속물로 죽으시고 (2) 그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땅에서 율법의 의를 획득하시면서 완벽한 삶을 사신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 모두가 구원에 필요하다).
성령님은 내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통해 (1) 그 속죄를 선택받은 자들에게 적용해서 그들이 믿기 전에 그들을 거듭나게(중생하게) 하시고 (2)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그들에게 가져와서 그들이 칭의(稱義)를 얻기 위해 - 중생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 복음에 반응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이끌림을 받은 ‘선택된 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1) 믿기도 전에 거듭나고(중생하고) (2) 은혜로 주어진 믿음을 받는데, 이 믿음은 선택된 자들이 예수님께서 땅에 사시면서 이룩한 의(義) 즉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의를 획득할 수 있도록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을 수 있게 해 준다. 이 의는 칭의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무조건적인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와 은혜로 주어진 믿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삶이 모두 필요하다.
선택받은 자는 단 하나의 새로운 본성만 갖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믿음의 선한 행위 속에서 견디면서 인내해야만 한다. 만일 행위가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도 겉으로는 성령님에 의해 창조 세계와 양심과 복음을 통해 이끄심을 받지만 그들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죽어 있고 또한 믿음을 살려서 능력을 발휘하게 해 주는 ‘그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없으므로 믿을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일이며 선택받은 사람들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선택받은 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를 통해 믿기도 전에 구원을 받았다.
성경의 구원과 칼빈주의 구원을 요약한 글을 올립니다.
PDF 파일은 우리말과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2012-07-26 17:33:18 | 관리자
사람의 인생에서 결혼이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성경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이미 다음과 같은 몇몇 URL에 이와 관련된 좋은 글이 많으나, 본인은 그 내용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다시 풀이해 보았다.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2604http://av1611.net/3166
사실, 이 글은 쓰기는 수 개월 이상 아주 오래 전에 해 놨다. 그러나 정작 결혼 생활을 한 적도 없는 주제에 이런 글을 연장자 어르신들까지 보는 공간에다 덥석 올리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심적 부담을 느꼈으며, 그래서 지금까지 공개된 장소에서의 게시를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결혼 생활을 실제로 한 분들이 이런 주제에 대해 자기 입으로 또 공공연히 말하는 건 좀 구태의연하고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아무튼, 기혼자든 미혼자든 이 글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 성경적으로 허용되는 이혼/재혼 사유
1. 배우자와 물리적으로 불가피하게 기약 없이/영영 단절되어 버렸을 때
사별, 실종, 집 나가서 떠난 뒤 일방적으로 잠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사별은 아예 결혼 주례사에 “죽음이 둘을 갈라 놓을 때까지”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도 할 정도이니 제일 확실하다.그런데 확실하게 사망이면 차라리 나은데, 우리나라 한정으로 부부가 남북으로 이산가족이 돼 버렸다거나 하면 어떡하면 좋을까?현실을 인정하여 그냥 재혼하는 것도 성경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으리라 본다.
2. 음행(신 24:1; 마 5:32)
이것은 인간의 질투심과 죄성을 감안하여 하나님께서 예외적으로 제한적으로 허락하신 필요악이다. 배우자가 상대편에게 끝까지 신실하지 못했을 때, 도저히 용서를 못 하겠고 부부간에 살인극이 벌어질 바에야 차라리 이혼으로 조용히 끝내는 걸 허락한다는 뉘앙스에 가깝다.
3. 불신자 배우자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을 때(고전 7:15)
예수 믿기 시작한 배우자가 맨날 집 내팽개치고 교회만 쫓아다녀서가 아니라, 진짜 성경적으로 똑바로 다른 배우자를 사랑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데도 불구하고 “난 정말 예수 믿는 꼴 못 봐 주겠다. 너랑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고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을 때 하나님도 그걸 말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이혼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하나님조차 그런 이혼은 예외적으로 막지 않으실 정도인데, 크리스천이 아예 대놓고 처음부터 불신자와 덥석 결혼을 하는 건 하나님의 관점에서 얼마나 안 어울리고 괴상망측하고 위태롭게 보일까?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느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위의 3은 처음엔 부부가 다 불신자였다가 나중에 한 명만 구원받았을 때에나 발생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독실한 신자끼리만 결혼해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성경의 방법대로 가정을 꾸리고 같이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평생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이 2인용 자전거를 한데 타서 같이 앞으로 페달을 밟아도 오르막은 오르기가 힘든데, 하물며 한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페달을 밟으면 이거 어쩐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 주는 내가 오빠 교회에 따라 가 줬으니까 다음 주 일요일엔 같이 등산(혹은 성당, 절, 계모임 등등..) 가는 거야?” 이런 타협안을 제시할 배우자와 결혼을 하여 남녀가 한 몸이 된다고? 이런 결혼은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결혼한 뒤에 나중에 전도하면 된다”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저건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결혼 전에 준비할 것과 결혼 후에 부부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잘못 생각한 결과이다. 결혼이 어떤 영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런 소리는 절대로 못 한다.
물론, 결혼한 뒤에 나중에 전도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안 해도 될 고생을 쓸데없이 하고 영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와 갈등과 다툼을 대가로 치른 뒤이겠는가?
이렇듯, 크리스천은 불신자와는 결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믿는 사람과만 결혼해야 한다)는 명제는 단순한 권고의 수준을 넘어서 사실 단호한 계명이고 교리이며, 배우자 선택 기준의 최후의 마지노 선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배타적이고 편협해서가 아니라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의 영적 건강을 정녕 배려하는 차원에서 존재하는 교리이며, 성경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와 증명도 가능하다.
성경에서는 고후 6:14-15의 응용 적용이 흔히 근거로 제시된다. 이것은 결혼뿐만이 아니라 같이 동업을 하는 것, 그리고 음지에서 활동하는 불신자들의 무슨 비밀 결사 단체에 불쑥 가입하는 것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다만, 불신자가 경영하는 일터에 단순히 고용된 일꾼으로 취업하는 정도라면, 나쁜짓만 아니라면 문제될 게 없으며 굳이 '멍에'에까지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적인 이혼/재혼의 원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음행을 몸서리치게 미워하시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혼도 싫어하고 절대 금지하신다. 성격 차이, 혼수· 예단 문제, 시댁과의 갈등 같은 건 세상의 통념과는 달리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전혀 가당치 않은 이혼 사유이다.
우리나라는 결혼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기가 불가능한 구조로 가고 있는 게 요즘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여섯 사람이 하는 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지 나같은 미경험자의 머리와 인생 경험으로는 답을 못 내리겠다.
2. 아울러, 성경의 하나님은 신앙을 빌미로 가정 파탄과 이혼 조장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오해가 없어야 한다. 이혼도 불신자 쪽에서 먼저 요구했을 때이지 우리가 먼저가 결코 아니다.
불신자 배우자가 끝끝내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에 갔다면, 지옥에서라도 그가 “아아, 그래도 예수 믿는다던 내 배우자와 같이 살던 시절이 제일 천국 같던 순간이었다.. 내 잘못이 컸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구원받은 배우자가 처신을 잘 해 줘야 한다!
3. 하나님은 그렇다고 홀로 남은 배우자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한편으로 가정이 유지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감안하신다.(우리는 천주교와 불교의 성직자 금혼 제도가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
4. 앞에서 소개된 사별, 음행 등의 사유는 다들 극단적이고 예외적이며 어지간한 사람들이 겪을 일은 잘 없을 상황이다. “앗싸, 난 저 조건 중 하나에 해당하니까 이혼할 수 있네” 하면서 팔자를 펴는 방법이 아니라,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적이고 불행한 상황에서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5. 하나님은 이런 신비로운 결혼 제도와 이혼/재혼 원칙에 대해서 인간들이 오해하거나 오· 남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신 듯하다.
불륜을 재혼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살인에 대해서 이미 성경에 언급하고 있다(다윗의 범죄). 그리고 현 세상에서 사별로 인한 재혼 때문에 생긴 여러 배우자들이, 내세에서 한데 만났을 때는 서로 어떻게 되느냐는 알쏭달쏭한 질문에 대한 답도 성경에 친절히 써 놓았다. (마 22:23-33) 흥미로운 사실이다.
2012-07-25 11:44:30 | 김용묵
안녕하세요 킵바이블 싸이트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웁니다.
또 성경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삼하24:13절에 칠년, 석달, 사흘 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상21:12절에는 삼년, 석달, 사흘 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이 칠년과 삼년의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다른 번역본에서도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알려주시면 저의 궁금증이 풀릴 것 같습니다.
답변:
삼하24:13,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왕의 땅에서 칠 년 동안 왕에게 기근이 임하리이까? 아니면 왕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추격을 받고 그들 앞에서 석 달 동안 도망하시려나이까? 아니면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역병이 있으리이까? 이제 나를 보내신 분에게 내가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살피고 알려 주소서, 하매
대상21:11,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택하라. 12 삼 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할 것인지 혹은 석 달 동안 네 원수들의 칼이 너를 따라잡아 네가 네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될 것인지 혹은 {주}의 칼 곧 역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있어 {주}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역을 두루 멸하게 할 것인지 택하라, 하시나니 그러므로 이제 나를 보내신 분에게 내가 무슨 말을 다시 전해야 할지 친히 알려 주소서, 하매
삼하24:13은 7년의 기근이하고 말하고 대상21:12는 3년의 기근이라고 말합니다.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이것이 질문의 핵심입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런 것을 대할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은 옳고 사람은 틀린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현대 성서 학자들이 신봉하는 소위 70인역이라는 이단 성경은 이런 문제가 나오면 즉시 숫자를 고칩니다.
그래서 70인역의 삼하24:13은 7년이 아니라 3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두 군데가 딱 맞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 알렉산드리아 철학자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또 훌륭한 성경학자들 중에는 “여기서는 서기관이 오류를 범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이런 것은 결코 믿음을 세우지 못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경 신자들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안 풀리면 하늘에서 풀릴 줄 믿고 본문을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두 부분의 성경 구절을 잘 살펴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삼하 24:13에는 ‘왕의 땅에서’라는 말이 들어 있고 대상21;12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삼상21:1을 보면 이 사건이 생기기 전에 다윗의 땅에 3년 동안 내리 기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21:1, 그때에 다윗 시대에 해를 이어 삼 년 동안 기근이 있어서 다윗이 {주}께 여쭈었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그것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으므로 그와 및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인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들로 인한 3년의 기근과 인구 조사를 위한 9달 20일의 기간(삼하24:8) 그리고 사울의 일곱 아들을 죽이고 매장하는 일(삼하21:2-14), 블레셋과의 전쟁(삼하21:15-22)을 다 합치면 1년이 됩니다. 3년의 기근 이후의 이 1년 동안에는 작물이 자라야 하므로 그의 땅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 땅에서 4년의 기근이 있은 뒤에 인구 조사로 인한 3년의 기근이 다윗에게 임하게 될 터이므로 그 땅에서는 총 7년의 기근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7년과 3년은 인구 조사 이전의 4년간의 기근을 더하느냐, 더하지 않느냐에 의한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완벽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7년과 3년으로 된 성경을 보셨습니다. 3년과 3년으로 된 성경은 가짜 성경입니다.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0:54:2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1:49:58 질문과 답변에서 이동 됨]
2012-07-23 18:15:27 | 강인숙
1991년 어느 봄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교정을 두리번 거리며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한 형이 다가와 " 형제는 구원을 받았습니까?"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 저요?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라고 대답을 하였는데, 그 형은 교회에 다니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르다며,함께 성경공부를 하자며 bible 모임에 초청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여 동안 "네비게이토"라는 선교회에서 매주 2~3차례 말씀교제를 가졌습니다.
1대1 양육 방식이라 교회는 다녔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던 저에게는 일시적 기쁨,강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서 믿는 자를 어떻게 보는지, 즉 영원한 신분을 확인하면서 드디어 믿은 이후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1:12절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인 이후로는 구원의 영원한 안전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구절을 비교해가며 말씀교제를 나누었는데요,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 전에 저를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한 구절이라 가장 자랑하는 말씀이 요1:12절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한 TV방송(나가수2)에서 여가수가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혼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 속에서, 단지 가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랫말 속의 주인공이
되어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노래의 속 뜻은 이별한 연인간의 사랑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동일하게 'I Will Always Love You'라고 부르고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히10: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2-07-06 09:47:40 | 양희석
내 친구가 몰랐던 점
이번 주 김문수 목사님의 “ 나를 기억하소서” 라는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회 중등부를 같이 다녔었던 친구인데 고등부로 올라가자 마자 교회를 안 나오는 것 이었습니다.
마침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 친구를 만나 “OO야 왜 교회 안 나오냐?”
나중에 지옥가면 어떡할라고 그래? (그 당시는 믿음이 없이 교회를 다니던 터라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에 가는 줄 알았지요 -_-;)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괜찮아 하나님께서는 내가 교회를 안 나가고 잘못을 많이 해도 죽기 전에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
그 이후로도 그 친구는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제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출석하던 교회의 주일 저녁예배에 참석을 하였는데
예배가 끝난 후 나온 광고가 그 친구가 사고를 당해 지금 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친구의 부모님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을 하셔서 광고가 나온 것이지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 영안실로 찾아가 보니 친구의 부모님과 남동생이
저를 맞아주시더군요
주변에 연락이 안되어 저만 빈소를 지키었고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 있는 상태라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고를 당했나 알아보니 그 친구는 공수부대 P.X 방위로 근무 하던 중 은행에 잔돈을 바꾸러 외출했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운구까지 하는데 찹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알고 있었던 점은
예수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의 공로를 의지하고 회개를 하면
주님께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몰랐던 점은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몰랐던 것이었죠
전 그 친구의 혼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죽기전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면 천국에서 다시 만나겠지요 그러기를 바랄 뿐 입니다.
저는 친한 거래처 사장님 두 분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분들께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상황이 너무 바빠 교회 갈 시간이 없다.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교회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한테 큰 상처를 입어 교회이야기 하면 엄청 싫어한다. 일요일도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빠지면 안 된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등등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안타깝지만 절대로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기도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 사람은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신 분이라면
지금 즉시 자신이 영원히 지옥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주 김문수 목사님의 설교 “나를 기억하소서” 를 꼭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잠언 27 : 1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4 : 14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요한복음 5 : 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로마서 13 : 11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
고린도후서 6 : 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2012-07-04 00:18:42 | 송재근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던 2006년,저의 20대 초반과 중반 사이이던 그 시절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특례 업체 근무를 위해 이제 막 서울 생활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진리 침례 교회에도 이제 막 출석을 시작한 초창기였죠.그때 저는 정신 세계가 성경과 철도를 중심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의 황금기라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 해 초부터 처음으로 교회의 거리 설교에 참여하여 난생 처음으로 프리칭을 시작했습니다.성경 변개 이슈에 대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글을 읽고 공부하다가 갑자기 본능적으로 소재가 떠올라서 몇 시간 만에 글을 하나 썼는데 그게 바로 <음란한 성경은 가라>입니다.또 성경에 나오는 drunk, drunken 표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을 쓰기도 했고, 교회 출판사에서 내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그와 동시에 철도에 대한 사랑과 애정, 집착도 날로 깊어졌습니다.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사실 두 종류의 차량이 존재한다는 것,서울 도시철도 공사 관할 지하철역의 승강장 역명판은 두 종류 모양이 존재한다는 것(▶와 >)등을 관찰을 통해 터득했고, 서울에서 본격적인 철도 동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유튜브에 등록되어 있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연주 장면은 다 제가 2006년에 촬영해서 2008년에 등록한 것들입니다.그래서 저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두 분야를 융합해서 둘을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까 골똘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하철 노선도에서 착안하여 성경 노선도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6년 전 그때의 작품입니다.
주황과 분홍 같은 붉은 계열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 지식이 되는 기초에 해당합니다. 구약에서는 모세오경, 신약에서는 복음서입니다.파란색은 역사서입니다. 구약에서는 역사서가 모세오경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죠.에스더기 구간이 저런 선형을 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적으로는 느헤미야보다 이전이기 때문입니다.신약에서는 역사서가 사도행전이 전부입니다. 사복음서 중 누가복음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게 지당한 결과라 하겠습니다.자주색은 소위 대언서입니다. 신약에서는 계시록이 유일합니다.위쪽은 major prophets이고 아래쪽 호세아부터는 minor prophets입니다.사무엘하~열왕기하, 그리고 역대기상~역대기하는 병렬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를 대언서가 수직으로 관통하는데요, 왼쪽은 다윗 이전이고, 오른쪽은 다윗 이후입니다.그리고 에스라와 그 오른쪽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시간대입니다.다음, 연두색은 문학서입니다. 욥기는 창세기 시대에서 파생되어 나오지요. 룻기는 역사적으로는 사사기 중간에 속하지만 결말이 다윗의 계보로 끝나는 점을 감안하여 그림과 같이 분류했습니다.문학서는 위쪽을 차지하면서 예레미야서와 교차하여 예레미야애가로 끝나게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신약을 보시면, 사도행전 중간부터 바울이 활동하기 시작하므로 바울 서신서의 노선은 그림과 같이 분기되어 나옵니다.시기적으로 사도행전 28장까지 다 끝난 뒤에(로마 감금 내지 그 이후 4차 전도 여행) 기록된 것은 사도행전보다 오른쪽에 놓입니다.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 서신들 중 상당히 초기에 기록된 서신입니다.히브리서는 바울 서신과 일반 서신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책이므로 응당 저렇게 배치됩니다.즉, 이 노선도는성경 각 책의 성격, 책이 다루는 연대나 기록된 연대, 그 책이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적당히 시각적으로 나타내면서 책의 66권 배열 순서도 크게 안 흐뜨리려 했습니다.사소한 고증 오류가 있을 수는 있으나, 취지는 충분히 설명되었으므로 그런 부분만 약간 고치면 성경에 대한 시청각 교육에 꽤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특별히 대한민국에 철도 같은 아름다운 교통수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저는 처음에 그냥 마우스로 대충 끄적인 노선도만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위와 같은 깔끔한 그림을 몇 년 전에 만들어 주신 분은 저희 교회의 다른 모 자매님입니다. 그분께도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2012-06-26 17:52:24 | 김용묵
1979년 어느 봄날 어머님 손잡고, 가슴에는 코수건을 달고 국민학교 입학하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운동회 때에 어머니께서 저를 업으시고 운동장을
달리시던, 다리에 힘이 있으셨던 건강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지금 제가 벌써 1979년 당시 어머님의 나이를 한 참이나 지나온 나이가 되었네요.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 봉양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데....
어릴적 부모님께서 제게 하셨던 것만큼 저도 하고 살아야 도리인데...
부모님 죄송합니다.
아래의 가져온 글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읽으면서 아내와 어머니가 생각나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는 성경교리를 가르치고, 한가지 길만을 고집하는 저의 모습에 많이
미안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온화함과 사랑으로 대하여야겠다고 반성합니다.
킵바이블 지체들께서도 아래 글을 읽으시고, 인간의 나약함과 하나님의 주권, 생명주신
예수님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합니다.
♥ 여보 사랑해.... 미안해.....♥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 출장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빔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에 올려 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올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몇 번을 버티다 마침내 베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 했는데...”
“어,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 봐.”
여러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는 미련하냐가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뿐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으 보이며 검사 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 만큼 이기적으로 부려 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테니까.”
큰 소리 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을거야. 나 명절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 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 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수가 없다고,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와 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 온 말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 가기 전에...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 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것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고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타면 울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를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 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 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하면서 했던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것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2012-06-21 16:42:19 | 양희석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write_id=313
2012. 5.27 광주의 한재석 형제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
예전부터 이해가 안되었던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개역한글 : 요한복음 16 :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킹제임스흠정역 : 요한복음 16 : 8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저는 예전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했지요.
성령님께서 오셔서 "죄"에 대해서 우리를 꾸짖으시는구나. 그런데 왜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꾸짖으실까?
솔직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왜 의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저는 틀렸었습니다. 즉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한재석형제님의 설교를 다 이해한것은 아니지만 일부를 발췌하면
죄에 대하여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것이 가장 큰 죄이고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다 용서받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것만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이다. 왜 믿지 아닌것이 죄이냐?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고후5장21절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내죄가 얼마나 처절했으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는지....먼저 나의 죄를 깨달아야 한다. 죄의 삯은 다 죽는다. 누구나 죄인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달리신것이다. 내죄가 이렇게 처절했구나 절망을 느껴봐야 한다. 절망을 느껴봐야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님안에서 죄에 대해 깊은 회개를 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
의는 무엇이냐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께 가셨다. 십자가의 모든 진노가 만족되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셔 받아주셨다. 이의 확증이 성령을 주신것이다. 로마4장25절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분리. 우리를 위해 치욕적인 죄덩어리가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문자 그대로 버림을 받으셨다. 그 순간 버림받으셨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예수님께서 담당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부활시켜주셨다.
이 세상 임금이 심판당했다.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마귀가 언제 심판받았냐? 이미 심판받았다.
골로새서 2장 14~15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십자가상에서 마귀의 계급장을 떼어버렸다. 능력을 떼어버린것이 아니다. 지금도 마귀는 능력있다.
예수님께서 죄의 모든것을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가지고 있는 죄와 사망의 모든 것을 끝장내버렸다.
봐라. 너희가 믿고 따랐던 세상의 통치자가 결박당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패배가 아닌 승리이다.
제가 새롭게 이해한바로는
죄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것이고
의라는 것은 우리의 칭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 가신것이고
심판이라는것은 사탄 즉 이 세상임금이 심판받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바로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개역성경으로는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입니다.
왜 꾸짖으시는것인가?....
인터넷을 찾아보고 여러곳을 찾아봐도 속 시원한 답을 구할순 없었습니다.
(어떤 곳은 심판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석에 서서 받는 심판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씀을 써놓으신 곳도 있더군요.)
한참 며칠동안 이해가 안 되서,혹시나 해서 영어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KJV에서는 "꾸짖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Reprove"였습니다.
Reprove 나무라다,꾸짖다 re(back;도로) + prove(입증하다) = reprove(꾸짖다)어떤 사전에서는 reprove implies an often kindly intent to correct a fault
( 잘못된것을 바로 잡기 위한 친절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제 해석이 크게 틀리지 않길 바랍니다.)
즉 "꾸짖다"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입증하심으로) 꾸짖으셔서 바로 잡으신다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입증하심으로 바로 잡으시려 )
세상을 꾸짖으신다"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일이 있어서 하루 휴가를 내서 시간이 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한재석 형제님 설교이후에 생각해 본 글을 다듬어서 올립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시기 바라옵고,
그리고 혹시 저와 비슷한 고민은 하셨던 분들이 있었다면 저의 노력(?) 혹은 고민한 흔적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6-13 09:29:21 | 김형욱
안녕하세요?
지난 3-4주 동안 설교와 성경 공부 동영상과 음성의 질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이사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생겼는데 이것들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배당이 최상층이다 보니 에어컨이 구동되거나 옥상에 사람이 올라가서 걸으면 화면이 위아래로
떠는 현상도 있습니다.
어제 다시 이 문제를 고쳤지만 미세하게 떠는 것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빼고는 이번 주부터 설교는 잡혔습니다.
카메라가 흰색 배경을 제대로 잡지 못하여 강대상 배경도 올리브 색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채로 방송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주 동안의 설교 등은 음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것들도 수정하여 다시 올리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6-11 10:48:51 | 관리자
동인천에서 사랑침례교회 가는 버스 노선 번호 좀 갈켜 주세여
송내에 있을 때는 전철로 가끔 예배 참석을 했는데 지금은 노선 버스 번호를
몰라서 가고 싶어도 못가네요. 부탁 드립니다. ^^
2012-06-08 20:07:09 | 최명희
안녕하세요 인터넷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셩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려고 하지만
때때로 음란과 죄악으로 넘어집니다. 분명 이전보다는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졌고 죄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기는 합니다
허나 아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분명 말씀하고 계신데
죄를 짓는 제 모습을 보면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다고 결론짓게 됩니다.
<요일5:18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함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신을 지키매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요일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혔는데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안에서 모두 평안하십시오!!!
2012-06-04 12:34:45 | 김춘섭
전체게시글을 통해 검색해 보았는데 자료가 없거나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계시록에 관한 말씁입니다.
바닥없는 구덩이(무저갱)의 열쇠를 누가 가졌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계시록 9장 1절
"별 하나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졌는데 그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를 받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장 11절에
"그것들을 다스리는 왕이 그것들에게 있었는데 그는 바닥없는 구덩이의 천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다 열쇠를 가진자가 사탄을 상징하는지 다른 부류를 의미하는지 궁금하고요
만약 사탄이라고 한다면
계시록 20장1~2절에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열쇠를 천사가 가져서 사탄을 천 년 동안 결박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도 바닥없는 구덩이 열쇠를 주었다는 것과 천사에게도 주었다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탄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천 년 동안 결박될 이유가 있는가요? 열쇠로 풀고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천사가 큰 사슬로 결박했겠지만 열쇠로 풀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이유는 9장과 20장의 열쇠를 가진자의 차이가 궁금해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9장은 열기 위해서 열쇠를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주셨고, 20장은 가두기 위해서 천사에게 열쇠를 주셨다고요.
이 부분에 대하여 설명좀 부탁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너무 궁금하더군요.
2012-06-01 11:12:10 | 강인숙
저는 사랑침례교회 회원이 아니므로 교회 홈 페이지보다는
이곳에 축하 글을 올리는 편이 더 낫지 싶어 이곳을 찾아 왔읍니다.
지난 주에 사랑교회 홈 페이지를 통해 발전상을 보고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좋은 교회당을 얻으심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정동수 목사님과 교회 회원님들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심을 새삼 느꼈읍니다.
비록 저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시각이긴 합니다만, 3년전 제가 했던 예상도 맞았구요.
혼자 생각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단시일에 이 교회를 키우시겠구나' 했더랬읍니다.
그리고, 흠정역 킹 제임스 바이블 400주년 기념 한영대역서 출간도 축하 드립니다.
지난 겨울에 신촌 생명의 말씀사를 들러 두 권을 사서 그 중 한 권을 아내에게
바쳤(?)읍지요. 2008년도 11월부터 읽고 또 읽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읍니다.
한글 개역 성경이 지닌, 번역상의 다소 아쉬운 부분들을 하나 하나 메꾸어 가며
한걸음 한걸음 더 정확한 번역에 다가서고 있음을 저 역시 느낍니다.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의 고뇌를 하나님께선 아시겠지요.
조금 더디긴 할지라도 한걸음씩 더 완벽에 다가서고자 하는 '킹 제임스 성경 국역팀'의
고충을 하루 속히 헤아리시어, 하나님께서 아껴 두신 조력자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적어도 우리 현 세대가 끝나기 전에,
여러분 사랑교회 번역팀이 킹 제임스 성경을 우리 한국문자로 번역함에 있어,
"한글 개역 성경에서와 같은 번역상의 오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우리가 실수많은 인간인 까닭에, 또한 하나님의 영감주심을 직접 받지 못하는
불리한 여건 아래에서, 단박에 마무리 지을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으로 손톱만큼의 교만까지도 다 버리고 전심 전력한다면,
하나님께선 우리가 범한 오류들을 스스로 능히 발견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랑 교회 번역팀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구요, 다음 교정본에서도
번역팀의 커다란 노고에 합당한 최상의 결과를 얻으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읍니다.
건투를 빏니다.
2012-05-28 13:48:52 | 강진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