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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씀은 님께서 성급하게 질문을 올렸다는 의미가 아니었고요.... 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함께 공부하고 나누면서 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면 말입니다. 물론 성경말씀에 어긋나는 것까지도 받아주고 포용해야 한다는 말씀은 절대 아니고요.
2011-11-23 13:29:55 | 이재연
윤재일님...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하셨네요^o^;;;; 먼저 배도/배교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살후 2:3). 그래서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요. 다만 이 구절과 또 이와 비슷한 말씀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결론이 달라집니다. 현재 킵바이블 진영에서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고요. 그런데 소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음주의권이라는 진영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서로 상이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 진영에서는 - 웨슬리적 아르미우스주의를 포함하여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계통 및 아르미우스주의적 침례교 등등 -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칼빈주의 진영에서는 - 정통 칼빈주의, 온건파 칼빈주의, 그리고 신칼빈주의를 포함하여 장로교 및 칼빈주의적 침례교 등등 - "구원을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코 쉽게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주장으로 결론이 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윤재일님께서 직접 조금씩이라도 접근해 보시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참고로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흥과개혁사에서 출판된 "한번 받은 구원 영원한가"라는 책입니다. 원제: Four Views on Eternal Security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운 책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안전성"에 대해서 4 명의 신학자들이 논하면서 서로 비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통 칼빈주의, 온건파 칼빈주의, 정통 아르미니우스주의, 웨슬리 아르미니주의, 이렇게 4 진영의 대표자(?)들이 나오는데, 각각 자기 진영의 주장을 요약 정리하며 성경적이라고 제시하면 나머지 3 명이 그 주장에 대해서 비평하는 내용입니다. 님께서 먼저 한번 읽어 보시고 그 다음에 또 얘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물론 윤영원님께서 링크해 주신 내용들도 살펴보시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
2011-11-22 11:04:03 | 이재연
빌리그래함, 로버트 슐러,빌 하이벨스, 조엘 오스틴, 스콧펙, 필립얀시, 헨리 나우엔, CS루이스, 베니 힌 등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제가 그동안 검증해 온 요주의 인물들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은 거짓말만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거짓말만 했다면 금방 구분할수 있을겁니다. 대부분의 그들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진실 사이 사이에 거짓을 말하면, 그 거짓이 거짓인지 모르고 그냥 맞는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요주의 인물들의 말과 글은 가능한 멀리 하는게 좋습니다.
2011-11-21 20:20:27 | 윤영원
마태복음 강해를 들으시면 알게될것입니다. 그리고 김문수형제님의 글을 보시면 이해가 될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7325&cate_name=&sfl=write_name%2C1&stx=%EA%B9%80%EB%AC%B8%EC%88%98&sop=and "은사주의자들이나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방패막이로 삼는 신성모독 죄는 신약 교회 성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 그리고 예수님 외에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성경을 믿으시던지 아니면 사람을 믿으시던지 그건 자유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며, 그에 따른 결과 또한 본인의 책임입니다. 부디 성경을 믿으시길.
2011-11-21 20:11:59 | 윤영원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배도 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빌리 그래엄 같은 사람들이 예전엔 엄청난 전도자로 알려줬지만   요즘에 보면 다른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종교통합을 비롯한)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악한 사귐을 통해서 배도를 할 수 있습니까??(부끄러운구원을 받나요??)   아니면 그는 처음부터 가라지 였는데 추수때 알게 되는것입니까????(가라지로 판명 영원한 불지옥입니까??)   그리고 성경에 보면 성령을 훼방하는것과 모욕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되있는데   이런엄청난 일에 해당하는일은 어떤것인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도 저버리는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두번밖는 모욕적인(?)일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그러면 구원이 취소되나요?   아니면 애초부터 거듭나지 못한사람인가요??   한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으며 지옥을 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세한 답변좀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21 20:07:47 | 윤재일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축도할 때 목사님들이 늘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후13:14).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개역성경에서는 끝부분을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흠정역 성경도 가능하면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4판까지는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ㄹ지어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ㄹ지어다‘이다’의 어간,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해라할 자리에 쓰여,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의 뜻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 어미. 장엄한 어감을 띤다.    즉 'ㄹ지어다'는 명령형 종결 어미입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목사들이 하나님에게 은혜를 내리라고 명령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즉 "있을지어다"를 쓰면 마치 목사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그러나 원어와 영어는 단순한 기원문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May God be with you! May God bless you! 이것을 짧게 하면 God bless you!입니다. 이런 구문은 기원문입니다. May의 용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후13:14도 앞에 기원문의 May가 생략된 것으로 보면 단순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지 명령해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이런 것을 오용/남용해서 마치 자신들의 축복 기도를 통해 무언가가 될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 5판(400주년 기념판)에서는 이런 기원문을 모두 '하기를 원하노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것은 대개 바울의 서신서의 첫부분과 끝부분에서 발견됩니다(고후1:2 등 참조).   "있을지어다'로 안 하면 성경을 변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 변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편 비슷한 축복 문이라도 구약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부분에서는 "있을지어다"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을지어다(창14:19).   이런 경우는 높은 자 - 예수님의 예표인 멜기세덱 - 가 낮은 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이고 blessed be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기를 원하노라"를 쓰면 오히려 문장을 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몇 부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말이 복잡하여 어미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순 현상이니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1-11-21 11:30:03 | 관리자
가나안 족속들의 경계는 시돔에서부터 네가 그랄에 이를 때에 만나는 가자까지며 또 네가 가면서 만나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까지 곧 라사까지였더라(창10:19_.   And the border of the Canaanites was from Sidon, as thou comest to Gerar, unto Gaza; as thou goest, unto Sodom, and Gomorrah, and Admah, and Zeboim, even unto Lasha.   이런 구절에는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은 이런 부분 전체를 빼거나 thou만을 빼서 매끄럽게 처리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as thou comest와 as thou goest 같은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 있으며 따라서 영어 성경은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의 thou(너)는 누구일까요? 여기의 thou는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당시에 창세기를 읽는 히브리 독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너도 알다시피 지금도 거기로 가면 그게 나오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말이나 영어나 심지어 히브리말에서도 이런 표현은 조금 어색합니다. 갑자기 너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있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기에 저희는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읽으시면서 이런 부분이 나오면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샬롬.  
2011-11-21 11:04:08 | 관리자
11월 20일에도 교회에서 오후에 3분의 간증이 있어서 강해를 못했습니다. 교회의 일정과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랫동안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11월 27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22장부터 해서 28장까지 모두 마쳐야지요. 샬롬.
2011-11-21 10:16:2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자유 게시판에 여러 종류의 글이 올라오는데 지금까지는 이런 글들을 분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유 게시판 글 가운데 성경공부 메뉴의 성경교리나 성경Q&A 등에 들어가야 할 글들은 거기로 옮기겠습니다. 분명한 카테고리에 넣어야 추후에 그런 카테고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김문수 형제님의 글은 많은 경우 성경교리나 성경Q&A 카테고리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글을 보실 때 자유 게시판보다는 최근 등록 자료를 보시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오늘도 이미 몇 개를 그렇게 분류해 놓았습니다. 글을 자유 게시판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자유 게시판에는 그 글이 없어지지만 최근 등록 자료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근 등록 자료를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사이트가 더 유익할 것으로 판단이 되어 이렇게 조치를 취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7 12:28:22 | 관리자
좋은 내용들입니다. 트리나 폴러스라는 작가의 자세한 면면은 모르지만 거듭남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전에 저도 이 내용을 활용해 전도지를 만든 적이 있는데, 문서자료 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7 11:29:49 | 김재욱
'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가 나와서 그와 관련된 전도지를 올려 봅니다. 전에 전도지로 만들었던 2종의 전도지 내용을 간략히 담은 것입니다. 이곳에는 성경지킴이 주소를 넣었습니다. 필요하시면 활용하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1-17 12:31: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1-17 11:27:40 | 김재욱
태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먹고 자라나다가 생각에 잠겼죠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것 보다 더 나은 생활이 있을거야"   다른 애벌레들을 만났으나   "그들도 삶에 대해선 나보다 더 아는게 없어" 라고 한숨을 쉬었죠   그러다 애벌레 기둥을 만났고,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채 오르기 시작했죠   그렇게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가나 노랑 애벌레를 만나서  기둥을 오르는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게 아님을 깨닫고 내려가죠.  다른 애벌레들과 싸우지 않아도 됨을 기뻐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끌어안는 일 조차 시들해졌죠. 서로를 털 한올까지도 속속들이 알게되었으니까요.   줄무늬애벌레는 다시 기둥에 오르기 시작했죠.   "내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랑애벌레는 한숨을 내쉬었죠. 그러다 다른 애벌레를 만나서 꼬치를 만들기 시작했죠.   줄무늬애벌레는 열심히 기둥을 올랐으나 애벌레 기둥 꼭대기에서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쉿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아래 있는 애벌레들이 듣겠어. 우리들은 그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곳에 와 있다구. 이곳이 바로 그 곳이지."라는 대화를 들었죠.     줄무늬 애벌레는 다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내려가면서 만나는 애벌레들에게 "나는 꼭대기까지 올라갔었어.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대부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알부는 "그건 여우의 신포도 같은 애기야. 장담하지만 그는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구." 어떤 애벌레는 고뇌에 찬 목소리로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그런말은 하지 말아. 우리도 별 도리가 없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수 있단 말야 줄무늬 애벌레는 꼭대기에 오르려는 본능을 얼마나 잘못 해석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선 기어 올라가는것이 아니라 날아야 하는것이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래는 내려와서 꼬치를 틀었고.....나비가 되었죠.   요약이 어설픕니다만, 이 책이 성경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스스로 새롭게 태어날수 있다는것을 암시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화를 통한 비유임으로 어느정도는 읽어볼만한 책인 듯 합니다.   예전에 XXX감리교회에 다닐 때 공부하라고 해서 읽었던 책중의 하나인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입니다.  오늘 아침 책상위에 있던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한번 적어봤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피를 마귀에게 대속물로 주고 우리를 구해왔다는 구속사적 설교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합디다. 성도들이 열심히 하면 예를 들면 ""홍길동전서"란 성경이 추가된다는 미친(?)소리까지도 하더군요. 저희가 떠날 것 같으니 성도들 앞에서 간증을 하라고 해서, 간증하라고 하는 주일날 다른 교회를 갔습니다. (지금 저희가정은 다시 교회를 옮기려 합니다. 감리교(예전)->장로교(현재)->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2012년 2월19일)로....)     오늘 아침 파스칼의 팡세 한구절을 음미해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     우리가 우리와 닮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안식하는것은 우스운 일이다.  우리처럼 비참하고 우리처럼 무력한 그들은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혼자 일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화로운 집을 짓겠는가. 그는 주저없이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진리의 추구보다 사람들의 존경을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낸다. 파스칼. 팡세.
2011-11-17 09:04:52 | 윤영원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가운데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솔로몬은 여기서 우리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남자들 가운데서는 1000명 가운데서 하나 정도가 나올 정도로 그런 사람은 희박하다고 이야기하며 여자들 가운데서는 심지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여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의 교육과 문화 등이 남자 중심이었으므로 남자들 가운데서도 찾기 어려운데 심지어 여자들 가운데서는 어떠하겠느냐는 뜻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1000명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아내와 첩의 수입니다(왕상11:3). 즉 그가 그렇게 많은 여인들을 상대해 봤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로 지혜로운 여인은 찾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것은 26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2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잔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비뚤어진 것들을 만들어 내어 이렇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알지만 좋은 것이라고 사람이 발명한 것들이 후에는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습니다.    이 구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주석들은 제가 말씀드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꼭 100% 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참조만 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6 16:47:21 | 관리자
창세기 6장에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이 나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안 믿고는 이호진님이 선택할 문제이지, 제가 이호진님을 설득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른 구절들로는 벧후2:4과 유1:6-7을 비교하며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에 대한 것은 이미 이전 게시물들에서 충분하게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해석에 대한 세 가지 입장과 그 각각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타당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바에 의하면,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자료들도 별 소용이 없더군요. 성경도 안 믿는 사람들이니 아무리 성경 말씀에 근거한 좋은 글이 있다고 해도 그런 글에 신뢰를 둘 리가 없지요.
2011-11-16 03:52:26 | 김문수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이 구절에서 보시다 시피 천사는 영으로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영으로 창조된 천사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람의 딸들과 육체적으로 교접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신다면 현재 이 패역한 세대에도 타락한 천사들이 아담의 후손들인 우리 인류에게 강간(?)을 하여 충분이 임신시킬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김문수 형제님께서 참조 글 두번째 글의 내용중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쓰여있지만 이것은 가정이나 추측에 가까운 것으로 더 성경적으로 풀려면 오히려 역으로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수 있음을 증명할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아서 증명해야 맞는 것 같습니다. 창 6:1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니 혹 아신다면 다른 구절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1-11-15 14:57:20 | 이호진
주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5066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82
2011-11-15 14:29:42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