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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4-8절과 10장 26-27절은 구원 취소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히6:4-8; 히10:26-27)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606     히브리서 배경   1. 요즘 구원이 취소된다는 교리를 가지고 성도들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많다. 이들이 이런 이단 교리를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절이 바로 히브리서 6장 4-8절과 10장 26-27절이다. 이런 악한 교리로 인해 고통당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기에 이 글에서는 성경을 통해 바른 교리를 정립하고자 한다.  2. 성경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의 수신자와 문맥이다. 이런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이 히브리서 구절들 역시 수신자와 문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는 초대 교회가 형성될 때 예수님을 믿게 된 유대인(히브리) 성도들이다. 이 당시에는 여전히 유대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유대인 교사들은 기독교로 회심한 이 형제들에게 손을 뻗어 그들을 다시 유대교로 복귀시키려고 노력하였다.   3. 이에 히브리서 기록자인 사도 바울은 유대인 교사들의 악한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의 천사와 모세와 여호수아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레위의 제사장 체계와 그 안의 모든 희생물보다 우월함을 증명한다. 이것을 확증하기 위해 사도는 율법의 의식 법들이 제정된 목적과 용례를 보여 주고 이제는 그것들이 그리스도라는 실체가 옴으로써 완전히 폐기되었음을 논리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사도는 극심한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참으라고 권면하면서 배도의 물결에 휘말리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러면서 사도는 구약시대 영웅들의 믿음 열전을 보여 주며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동일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우리의 참 소망이 하늘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4. 이 히브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때에 그분을 믿은 자들에 의해 주님께 인도된 자들이었다(히2:3). 이들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해 안으로는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밖으로는 로마 제국에 의해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히10:32-34; 12;4; 13:13-14) 믿음의 진보를 거의 이루지 못하고 성화의 삶을 포기한 채 영적으로 답보 상태에 있었다(히6:1). 이들은 또한 거짓 교리들에 유혹을 받았고(히13:9) 처음에 자기들에게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 준 사람들을 차츰 잊어버리는 상태에 빠져 있었으며(히13:7), 그중에는 심지어 예배에 나오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히10:25).   5. 이런 위험에 빠진 히브리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들이 이런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면 비록 구원은 잃지 않지만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히12:5-11; 고전3:11-17). 그러면서 사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누구인가?”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믿음을 평가한 뒤 늘어진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전진해 나가라고 권면한다(히12:12-13).  6. 이 점들을 기억하면서 히브리서 6장과 10장을 문맥에 따라 살펴보면, 이 난해 구절들이 사실 구원 취소가 아니라 보상의 취소와 징계를 가르치는 말씀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히브리서 6장 배경 설명   1. 사도는 5장에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과 신약시대의 유일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비교하며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이 구약시대 대제사장들과 달리 아론(레위)의 계열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대제사장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면서 5장 11절에서 사도는 과연 이 히브리 성도들이 영적으로 미숙하여 자기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그는 5장 12-14절에서 그들이 시간상으로 보아 마땅히 성숙한 성도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무를 이해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아직도 젖을 빠는 아기들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2. 이것을 지적한 뒤 사도는 6장 1-3절에서 이제는 그들이 이런 미숙한 상태를 벗어나 완전함(성숙함)에 이르러야 한다고 권면한다. 바로 이런 문맥의 흐름에서 저 유명한 4-8절 말씀이 연이어 나온다.     히브리서 6장 4-8절 설명  히브리서 6장을 전체적으로 문맥에 따라 살펴보면 이 구절들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음에 대해 말하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본문에서 발견되는 사도 바울의 진정한 의도는 침체 상태에 빠져 있는 이 히브리 성도들을 일깨우려고 충격 요법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히6:4-8과 히10:26-39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살펴보고 이 구절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6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 7 자기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을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채소를 내는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니와 8 가시와 찔레를 내는 것은 버려지고 저주함에 가까이 있어 마지막에는 그것이 불살라지리라.    1.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여기서 사도는 구원받은 자들이 믿다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완전히 배도하여 옛 생활로 돌아갔으므로 구원을 잃고 영원히 구원을 잃게 된다.”   a. 이것은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은사주의 순복음 교회 등과 같이 ‘알미니안 주의’를 견지하는 자들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짧게 ‘구원 취소 교리’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으로 서울 ‘큰 믿음 교회’의 변OO 목사, 연세중앙교회의 윤OO 목사, 서울 순복음교회의 조OO 목사 같은 유명(?) 목사들이 이런 교리를 주장한다. 이들 외에도 7년 환난 통과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대부분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카페와 거기서 소개하는 데이비드 O, 벤자민 O 등의 목사들 - 이 이 교리를 주장하면서 신부 단장 연습, 주님의 군대 가입 등을 통해 행위로 믿음을 유지할 것을 가르친다.  b.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 교리와 전적으로 배치된다. 히브리서 자체가 이를 증언한다. (1)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히5:9). (2)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다(히7:25). (3)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구속이다(히9:12). (4) 우리는 영원한 상속 유업을 받는다(히9:12).(5)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히13:5-6).   c. 또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구원이 취소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말한다.(1) 우리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요5:24). (2) 아무도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수 없다(요10:20). (3) 이 세상 어떤 창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낼 수 없다(롬8:28-39).   d. 아이러니하게 구원 취소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또한 구원을 잃은 뒤에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말하지만 6절은 그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 즉, 구원을 잃었다가 다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은 이 구절들을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이 히브리 성도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즉, 그들은 말로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다.  a. 이들은 ‘한 번’ 빛을 받은 자들이다(히6:4). 여기의 ‘한 번’은 사실 ‘영원한 한 번’을 말한다. 히브리서의 ‘한 번’의 용례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한 번’은 ‘영원한 한 번’이다(히7:27; 9:12, 26-28; 10:10 등).   b. 이들은 하늘의 선물을 맛보았다(6:4).   c.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보았다(6:5).  d. 이런 주장을 펴는 자들은, 이 히브리 성도들이 구원받지 않았음을 강변하기 위해 그들이  구원을 맛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맛보다’라는 말은 실제로 먹는 것을 뜻한다. 히2:9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고 기록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은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죽지는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죽음을 맛보고 죽으셨다. 그러므로 ‘맛보다’는 표현은 실제로 맛보고 먹었다는 뜻이다. 벧전2:2의 ‘맛보다’도 같은 뜻이다.   e. 이들은 성령님에게 참여한 자들이다(6:4). 히3:1은 이들을 가리켜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하면서 이들이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하며 히3:14는 이들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라고 한다.  f. 이런 것들로 보아 이들은 분명히 구원받은 자들이다.  g. 구원받지 않은 불신자들이 어떻게 주님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는가?(6절) 불신자들은 항상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항상 그분을 모욕하지 새로이 하지는 않는다.   3. 어떤 이들은 이런 죄가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예루살렘에 성전이 서 있을 때까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왜 사도는 지금 영적 성숙과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무를 연결하고 있는가? 히브리 성도들은 지금 영적으로 미숙해서 사도가 이야기하는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미숙한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지금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이런 권면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4.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7년 환난기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럭크맨(Peter Ruckman)을 추종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히12:23을 보면 이들은 교회에 속한 자들이므로 히브리서를 환난기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하려는 시도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5. 그러면 이 구절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6절의 ‘if’와 9절의 ‘But’과 ‘though’이다. 이것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핵심이다.   a. 사도 바울은 복지부동의 자세를 고집하는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충격을 가하기 위해 가정법을 사용해 구원받는 자는 구원이 아니라 보상을 잃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히6:9-10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은 잠시 후에 9-10절을 보여 주면서 설명할 것이다. 사실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이런 가정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롬9:3). 자기 육신의 친족인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 말의 본래 의도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애타게 바라는 바울의 심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결코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듯, 가정법은 화자(話者)의 간절한 의도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는 서법이다.   b. 히6:3까지 사도는 자기를 포함하여 ‘우리’(we, us)라는 표현을 쓰다가 4절부터는 갑자기 ‘우리’ 대신 ‘자들’(those)로 주체를 바꾼다(우리말 성경에서는 5절). 즉, 지금 그는 무언가를 가정하려 하고 있다. “For it is impossible for those who were once enlightened…”   c. 히브리서를 바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의 ‘우리’는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가리킨다(히1:2-3; 2:1; 3:1, 14; 4:14; 4:16…12:1-2, 28-29; 13:6, 15). 이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d. 구원 취소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애용하는 히10:26-27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쉽고 바르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19-25절을 살펴보자.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22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23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 24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e. 히10:19-25의 ‘우리’는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몸은 순수한 물로 씻긴 자들이다. 그래서 사도는 자기를 포함한 이 히브리 성도들이 즉 ‘우리’가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자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라 이 구절을 읽으면 ‘우리’는 바로 바울을 포함한 구원받은 자들임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구절 뒤에 유명한 26-27절이 나온다. “26 우리가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다시는 죄들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27 대적들을 삼킬 심판과 불 같은 격노에 대하여 두렵게 기다리는 어떤 일만 남아 있느니라.”    f. 그러면 히10:26의 ‘우리’ 즉 진리에 관한 지식을 받은 뒤에 고의로 죄를 지으면 다시는 죄들로 인한 희생물이 남아 있지 않고 불 같은 격노를 두렵게 기다려야만 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서도 사실 사도는 ‘if’를 사용하여 가정하고 있다.) 어쨌든지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여기의 ‘우리’가 바로 위에 있는 히10:19-25의 ‘우리’라는 점이다. 즉, 여기의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19-17절을 통합적으로 보아야지 26-27절만을 따로 떼어 문맥에 상관없이 해석하면 안 된다. 구원 취소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애용하는 히10:26-27의 ‘우리’는 히브리서 전체와 10장에서 보듯이 분명히 사도 바울을 포함한 구원받은 자들이다.   g.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고의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믿음의 고백을 굳게 붙들어야만 한다(23절). 그리하지 않으면 히10:28에 있듯이 구원은 받았어도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히10:28).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어린양의 피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다(고전10:1-5). 이집트 탈출은 성경에서 항상 구원을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도 고라와 그의 무리들(민16장) 또 나답과 아비후처럼(민3:4) 모세의 율법을 멸시하다가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는 히브리 성도들이 더 이상 믿음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 심지어 육체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육체의 죽음을 뜻하지 구원의 상실을 뜻하지 않는다.    h. 구원받은 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히브리서의 교훈은 히10:34-35에 있다. 즉 성도들이 확신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확신을 버리고 말씀을 저버리면 보상의 손실을 입고(고전3:12-17) 더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i. 그러므로 이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보상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j. 신약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도 (육체적)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요일5:16-17; 고전5:5; 딤전1:19-20; 딤후2:16-17; 요삼9-10).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니니야와 삽비라이다. 이들은 구원받았지만 성령님을 속이려 들다가 즉사하였다. 심지어 고린도 교회에서도 주의 만찬을 멸시하다가 죽은 자들이 있었다(고전11:28-30).  k. 결론적으로 히브리서는 - 특히 6장과 10장 - 결코 성도가 구원을 잃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l. 히브리서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성도들은 미숙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완전함으로/성숙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벧후3:18). 그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신다(히10:30; 12:5-11). 또한 성도가 극심한 죄를 지으면 신구약의 여러 사례에서처럼 곧바로 죽이기도 하신다.” 6. 히브리서 6장은 산 믿음과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열매)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에베소서 2장 8-10절이 가르치는 바이다. “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7. 사도는 4-6절에서 충격 요법인 가정법을 사용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7-8절은 4-6절과 동일한 맥락으로서 땅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태워짐을 말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 불로 태워져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불타 없어지는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등이지 땅 자체가 아니다. 땅은 남아 있다. 즉 비록 불살라지는 저주를 받을지언정 땅 자체는 남아 있다. 이것은 고전3:13-16절을 그대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8. 이제 끝으로 우리는 “히브리서 수신자인 이 히브리 성도들은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열매가 있는가? 없는가?”는 올바른 질문이다. 반면에 “이 히브리 성도들은 구원을 잃는가? 잃지 않는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9절과 10절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9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 관한 더 좋은 것들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자신의 이름을 위해 너희가 보여 준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온 것과 또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9. 먼저 9절이 ‘그러나’로 시작됨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는 앞에 있는 것과 완전히 반대를 가리키는 역접 접속사이다. 즉, 9절에서 사도는 앞의 4-8절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말하려고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구절을 시작한다. 또한 사도는 앞에서 가정법을 써서 그들에게 있지 않을 일을 이야기하였음을 보여 주기 위해 “비록 우리가 이렇게 말하지만”이라는 양보 구절을 사용한다. 즉, 내가 앞에서 그렇게 심하게 가정하여 말을 했지만 그게 너희와는 실제로 상관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을 확증하기 위해 그는 “너희에 관한 더 좋은 것들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이 히브리 성도들에게는 구원뿐만 아니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 즉 열매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의 열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는 10절에서 그들에게 구원 이후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가 있었음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이 히브리 성도들은 땅(구원)도 좋고 그 위에 열매 즉 믿음의 행위도 내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결코 구원을 잃을 수 없으며 보상도 받는다. 다만 지금 그들이 믿음의 답보 상태에 있으므로 이대로 가면 앞으로 더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기에 사도는 이들을 자극하여 완전함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10. 그래서 사도는 11-12절에서 열심을 내어 너희가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11 우리는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심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바라노니 12 이것은 너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즉, 사도는 그들이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 많은 보상을 받기 바랐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결코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미 구원은 끝났다.  12절에서도 사도는 그들이 확실하게 인내하여 구원이 아니라 ‘보상의 약속들’을 상속받으라고 주문하다.    11. 그리고 앞부분이 보상에 대한 내용임을 확증하기 위해 사도는 13-15절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14절 말씀 즉 “내가 반드시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창22:16-17에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은 무슨 약속인가? 구원에 대한 약속인가? 아니면 구원 이후의 상속에 대한 약속인가? 아브라함의 구원은 이미 창15:6에서 끝났다. 여기의 약속은 분명히 그의 씨가 번성하게 될 것에 대한 약속이다. 즉, 보상에 대한 것이다.   12.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견딘 뒤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자손들이 번성하는 복을 받았다. 그는 75세에 자손들의 복을 약속받았고(창12:1-5), 그 이후에 24년을 약속의 자식 없이 떠돌아다니다가(창17:1-6), 100세에 가서야 이삭을 유일한 아들로 받았다(창21:1-5). 실제로 그는 자기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음을 보지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리스도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고 그 날을 보고 즐거워하였다(요8:56). 즉, 그는 육체적 후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영적 후손들까지 다 보았다. 그가 이처럼 상속의 소망을 - 구원이 아니다 - 받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사도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인내하라고 말한다.   13.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 6장과 10장에서 구원이 아니라 보상의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어야 히브리서 6장 1-3절의 권면 즉 완전함으로, 성숙함으로 나아가라는 사도의 권면이 문맥상으로 딱 들어맞게 된다.     성경 문제   1. 위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6장과 10장이 구원 취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상의 손실과 징계를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6장에서 개역성경은 구원 취소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2. 먼저 4-6절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if를 사용한 가정법 문장이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가정법의 ‘if’(만일 …하면)를 없애고 6절에서 아예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개역 히6:6). 즉, 개역성경은 ‘if’를 없앰으로써 아예 히브리 성도들을 타락한 자들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배교의 결정판이라고 하는 NIV도 6절에서 ‘if’는 그대로 살려놓았다. NKJV, Amplified Bible 등도 다 6절에 ‘if’를 제대로 달아놓았다. 개역성경이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은 ASV(NASB의 모체)를 대본으로 사용하여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ASV와 NASB는 개역성경처럼 ‘if’가 없고 ‘타락한 자들의 경우에는’으로 되어 있다.   3. 그 뒤 개역성경은 9절에 치명적인 오류를 만들어 놓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개역 히6:9). 일단 9절 처음에 ‘그러나’가 나오면서 문장이 역전됨을 보여야 하는데 개역성경은 ‘그러나’를 없앴다. 참고로 NKJV, ASV, NASB, Amplified Bible 등도 다 ‘그러나’로 시작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은 ‘though’를 단순히 뒤에 ‘말하나’로 번역하여 뜻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개역성경은 “우리는 너희가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로 번역하였다. 그들이 구원에 가깝다면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면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받지 못한 자들의 행위와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단 말인가? 이것은 실로 말이 안 되는 번역이다. NKJV, ASV, NASB, NIV 역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그들에게 있다”라고 바르게 번역하였다. 다만 카톨릭 성경인 Amplified Bible만 ‘구원에 가까운’이라는 절을 삽입하여 놓았다. 즉, 이런 번역은 구원을 평생 과정으로 이해하는 로마 카톨릭 주의의 산물이다.  4.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가 바로 벧전2:2이다. 흠정역: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ASV, NASB, Amplified Bible 등):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5. 개역성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고 말하면서 구원이 평생 과정임을 보여 준다. 이런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았다가도 언제라도 잃을 수 있다는 구원 취소 교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무지한 성도들은 이런 성경과 그 안의 가르침으로 인해 평생토록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벌벌 떨면서 살게 된다. 이렇게 두려움의 불씨를 품고 사는 자들에게 개역성경의 빌립보서 2장 12절은 기름을 부으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6. 성경이 두렵고 떨면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꼼짝없이 교회와 교단과 목사의 말에 순종하면서 두려움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바른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7.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미 얻은 구원을 가지고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밖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여기서 영어는 ‘work out your own salvation’이라고 말한다. 요즘 우리는 ‘워크아웃’(work out) 기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잘 나가던 회사의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회사가 일하는 것을 감독하고 채찍질하는 것을 워크아웃이라고 한다. 즉, 기업의 경우든 성도의 경우든 워크아웃은 기업이나 구원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여 외부로 무언가를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을 뜻한다.   8. 이런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이 믿음 생활에 대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성경 때문에 잘못되면 이로 이한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성도들이 당해야 한다. 사실 구원 취소 같은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도 잘못된 성경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성도가 구원을 잃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   1.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한다(엡2:8-10; 딤2:14).2. 한 가지 죄를 지으면 모든 죄를 지은 것과 같다(약2:10). 그러므로 무슨 죄든 죄로 인해 구원을 잃는다면 구원을 유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즉 우리의 행위가 구원에 일조하지 못하듯이 우리의 행위는 또한 구원 유지에도 일조하지 못한다. 3. 예수님의 단번 속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속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4. 구원은 출생이므로 출생이 여러 번 있을 수 없다.5. 구원은 영원한 생명, 영존하는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인데(롬8:14-17; 31-39), 이런 영원한 생명과 영존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은 사람에게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하며 영존하기 때문이다.6.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님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엡5:30; 고전12:18). 이 세상의 어떤 창조물도 성령님을 이기고 그분의 봉인을 풀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다.7. 구원을 잃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요일5:10).   이 글과 함께 <구원의 기쁨과 확신> 소책자를 참조하면 구원의 기초가 확실히 놓일 줄 믿는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2-21 15:58:19 성경교리에서 복사 됨]
2014-02-20 14:33:54 | 관리자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요한복음 11장에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죽음으로 인해 고통당하면서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다가 마침내 우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3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녀가 우는 것과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고 34 이르시되, 너희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 하매 35 예수님께서 우시더라.   그런데 개역성경을 보는 분들 중에는 잘못 번역된 성경으로 인해 예수님이 우시는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사사로운 해석을 펴는 분들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으로 33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역성경 33절: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통분하다.’는 말의 사전적 뜻은 '원통하고 분하다.'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억울하고 분해서 화를 내셨다. 또한, '민망하다.'는 말의 뜻은 '답답하고 딱하다.'이므로 '예수님은 이들을 답답하게 여기고 안타까워하셨다.'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성경을 완전히 오역한 것입니다. 이런 오역을 가지고 성경을 무리하게 풀자면 할 수 없이 영해(靈解)를 해야만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화를 내고 답답히 여기셨을까?”(개역성경)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11-15절에 있는 말씀 즉 예수님이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께서 분을 내고 답답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오역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사로운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11~15절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고 말씀하셨지 마리아의 집에 온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에 온 유대인들은(19절) 사실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화를 내고 너무 답답한 나머지 우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억지 주장을 펴는 목사들과 그들의 말을 따르면서 올바로 된 해석 즉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죽음의 고통과 아픔으로 보시고 괴로워하시고는 우셨다는 해석을 오히려 사적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오셔서 인간의 모든 연약한 감정을 몸소 느끼신 분이라는 진리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우시는 모습이 기록된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이 천지 만물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라는, 하늘의 천사들도 심히 놀랄 만한 진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이런 심오한 의미가 담긴 말씀을 대단히 잘못된 해석으로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까지도 실족하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시되,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39)   올바른 해석을 오히려 영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실 유대인들이 믿지 않아서 예수님이 화를 내고 답답해했다는 해석이 바로 영해입니다. 이런 문제는 다 개역성경의 오역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오역이 영해를 생산해 냅니다.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바른 성경을 가지고 앞뒤 문맥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요11장에서 예수님이 우신 유일한 이유는 인간들이 죽음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괴로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앞뒤 문맥으로 볼 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부디 바른 성경을 맑고 깨끗한 정신과 마음으로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더욱 많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3-12-31 18:29:48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이 확실히 틀린 데가 있다고 누가 주장합니다.과거 수십 년 동안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확실하다고 믿었는데 원어와 대조해 보니 확실히 틀린 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제기하는 구절이 바로 레위기 23장 40절입니다.   흠정역: 첫째 날에는 너희가 좋은 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의 버들을 취하여 {주} 너희 하나님 앞에서 이레 동안 기뻐할지니라(레23:40).   개정 개역: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KJB: And ye shall take you on the first day the boughs of goodly trees, branches of palm trees, and the boughs of thick trees, and willows of the brook; and ye shall rejoice before the LORD your God seven days.   NIV: On the first day you are to take choice fruit from the trees, and palm fronds, leafy branches and poplars, and rejoice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seven days.   이 구절에서 개정 개역, NIV는 좋은 나무 혹은 아름다운 나무의 ‘실과’(fruit)를 취하라고 합니다.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은 좋은 나무의 ‘가지’(boughs)를 취하라고 합니다.   이분은 좋은 나무의 ‘가지’(bough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다른 데서는 대개 ‘열매’(실과)로 번역되었으므로 당연히 여기도 열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경을 교정하려 들다가 항상 이런 자충수에 직면합니다.   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가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스트롱 번호 6529를 가진 ‘페리’로서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트롱 번호 : 6529 발음 : {per-ee'} : 페리 어원(기원) : 6509에서 유래TWOT : 1809a품사 : 명사,남성형 파생어: 없음 뜻: '과일'(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큰 가지, (【첫】)열매 (【-열매가 많이 열리는】), 보상 periyda'.  페리다  6514를 보라 puriym. 푸림  6332를 보라1) 열매, 소출, 자식, 자녀, 자손, (행동의)결과   사전에서 보듯이 이 단어는 1차적으로 열매, 소출을 뜻합니다.그런데 이 단어의 원래 어원을 보면 이 단어는 스트롱 번호 6509를 가진 ‘파라‘에서 나옵니다. 다음은 ‘파라’의 뜻입니다.   스트롱 번호 : 6509 발음 : {paw-raw'} : 파라 어원(기원) : 기본어근TWOT : 1809품사 :  동사 파생어: 없음 뜻: '열매를 맺다'(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열매를 맺다, (열매)내다, 결실하다, (결실하게 되다), 결실이 풍부하다, 자라다, 증산하다1) 열매를 맺다, 열매가 많다, 갈라지다   이것을 비교해 보면 이 두 원어는 ‘자라서 갈라지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큰 가지(branch)에서 자라서 갈라지면 작은 가지(bough)가 되고 작은 가지에서 자라서 갈라지면 열매(fruit)가 됩니다.   따라서 이런 단어는 앞뒤 문맥을 보고 바르게 번역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이 단어가 있는 문맥은 무엇을 말합니까?   33-43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장막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3 ¶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일곱째 달의 십오일은 이레 동안 {주}를 위한 장막절이 되리라.…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booths)에 거해야 했습니다. 초막은 무엇으로 만들까요?굵은 가지와 잔가지로 만들지 않습니까?포도나 석류나 올리브로 초막을 만든 것 보았습니까?   장막절(초막절)에 대한 구약 성경의 전체 내용은 무엇입니까?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들로 엉성하게 초막을 만들어 거기 거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사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막(草幕):Shelter, Booth [히] &s(sok) (시27:5), hK;s(sukkah)(욥 27:18,욘 4:5) [그] skhnh(skene) [영] Shelter, Booth 나뭇가지나 풀로 엮어 만든 간소한 가옥, 혹은 초가. 초막절 때에 지었다(레 23:39, 43, 느8:14). 이밖에 일광을 피하기 위한 일시적인 오두막집(욘4:5)을 말하기도 한다.   초막은 가지들로 만들지 열매로 만들지 않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페리’와 ‘파라’를 고려하여 정확하게 이 단어를 가지로 번역했고 그 외의 다른 모든 역본들은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열매로 오역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항상 옳습니다.   우리는 알량한 원어 지식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이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자신의 단어들을 완벽하게 보존해 주셨고 흠정역은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원어를 들먹이며 성경에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영적 배후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013-10-23 16:49:31 | 관리자
Replenish 설명   replenish (ed) - (7x) – 간단히 말해서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처음 받은 수준대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의 시작 부분에 있는 ‘re’는 ‘re’라는 접두어를 가진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처럼 ‘다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단어의 뿌리는 중세 영어 ‘replenisshen’에서 나오고 이것은 중세 불어인 ‘repleniss’에서 나온다. 이 불어 단어는 ‘replenir’의 가지에서 나왔으며 단순히 “채우다; 사람이나 짐승으로 채우다; 저장하다”를 뜻한다. 이것은 어근 ‘re’와 ‘plenu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라틴어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서 replenish는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satiate’라는 단어와 평행 단어로 쓰였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반복 용례로서 ‘satiate’와 ‘replenish’가 같은 뜻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렘31:25).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한편 에스겔서 26장 2절에서는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 역시 두 단어의 대조를 보여 주는 히브리어의 용례이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겔26;2).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창세기 1장 28절은 자원들을 사용해서 - 정복하고 복종시켜서 - 처음에 받은 수준으로 땅을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부분이 그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물 중 어떤 것도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시19; 롬1). 1.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이의 출생을 통해서 스스로 번성해야만 하였다(하나님의 명령이었으니까). 그런데 땅의 경우 그들은 땅의 자원들을 사용하거나 복종시켜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땅을 가득 채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동물과 식물의 수를 임의대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시19:1-4; 롬1:20). 어떤 생물 종을 없애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하는 것을 -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증거를 - 없애는 것이다.   2.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노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종들을 지켜야 했다. 홍수 이후에는 많은 동물들이 이제 2마리만 남았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 쉽게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아는 어떤 종도 사라지지 않도록 채우고 지켜야 했다. 3. 이사야 2장 5-7절- 오 야곱의 집이여,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걷자.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곧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그들의 땅에는 또한 은과 금이 가득하여 그들의 보물은 끝이 없고 그들의 땅에는 또한 말이 가득하여 그들의 병거가 끝이 없으며   여기서 이사야는 야곱의 집을 불러 주의 빛 안에서 걸을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것들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공급하셨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했으나 그들은 낯선 자들의 자손들에 의해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낯선 자들로부터 난 것들을 가지고 이전처럼 동일한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4. 이사야 23장 2절- 섬의 거주민들아, 너희는 잠잠할지어다. 바다를 넘나드는 시돈의 상인들이 너를 가득히 채웠도다.   섬의 거주민들은 그들이 매일 필요로 한 것을 시돈 상인들로부터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생계를 매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다.  5. 예레미야 31장25절-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replenish는 ‘충분히 만족시키다’(satiate)와 평행을 이루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혼을 흡족하게 하여 한때 그 혼이 피곤하지 않았던 그 지점으로 완전히 되돌린다는 것(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시편23편...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restoreth) 6. 에스겔 26장 2절-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 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여기서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 완전히 텅 빈 상태 - 와 대조를 이룬다.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두로 지역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의 부의 손실이 이제 자신의 것이 될 것을 자랑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의 손실은 두로의 이득이 되어 두로가 원래의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에스겔 27장 25절-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히 채워져서 바다들의 한 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두로에 대한 대언을 한다. 두로는 다시스의 배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매일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고 선언한다.   결론 1) 사람은 스스로 수를 늘려 번성해야 했지만 땅의 식물과 동물들은 처음 받은 상태로 가득 채워야 했다. 이것은 신명기 22장 7절 말씀을 설명한다.    신22:7-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를 취할지니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 어미와 새끼를 모두 죽였다면 그 종들은 곧 멸종했을 것이다.   2) 켄달(이 글의 저자, Dr. Bob Kendall)의 식품 저장 방의 예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예가 있다. 나는 3개월 동안 출장 갈 예정이어서 당신에게 우리 집에 와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하면 아주 편하게 지낼 것을 요청한다. 내가 식품 저장 방을 열자 거기에는 땅콩버터가 담긴 5개의 병이 있기에 즉시 물어본다. “땅콩버터가 왜 이리 많아요? 혹시 세일했나요? 어째서 당신은 5병이나 가지고 있나요?” 나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건 그냥 켄달 가족의 것이에요. 모두 다 켄달의 것이지요. 내 남동생들(Mr. Kendalls), 내 어머니(Mrs. Kendall), 사촌들(Mr and Mrs. Kendalls)은 식품 저장 방에 5개의 땅콩버터 병을 보관하고 있어요. 그것은 우리 가족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심지어 땅콩버터를 다 먹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돌아왔을 때 5개의 땅콩버터 병이 있으면 좋겠어요. 식탁에 이전 수준으로 가득 채워서요. 그래야 내 식품 저장 방이 계속해서 켄달 네 집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또 다른 예시만약 내가 당신을 불러 내 냉장고를 replenish 하라고 부탁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할까요?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처음에 냉장고 안에 얼마만큼의 우유가 있었고 몇 개의 버터 조각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코 냉장고를 replenish 할 수 없습니다.           4) ‘replenish’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기 훨씬 이전에 원래 지구가 있었고 그 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이론 - ‘재창조 이론’ 혹은 ‘갭 이론’ - 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보여 줍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가정(재창조이론)이 사실이라 해도 아담과 이브가 이전의 지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땅을 다시 채울 수(re-fill)있겠습니까?   5) 간단히 말해서, ‘replenish’는 당신이 ‘어떤 것을 발견한 수준으로 그것을 충만히 채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과 영어 사전의 용례가 이것을 지지합니다.   (*) 17세기 초 KJB가 기록된 때에 ‘replenish’라는 단어는 현대 사전의 용례처럼 ‘다시 채우다’의 의미로 결코 쓰이지 않았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9-14 16:54: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9-12 15:14:31 | 오광일
안녕하세요?   창세기 1장 18절의 replenish를 '다시 채우다'로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어서 켄달 박사님이 영어로 설명해 준 글을 올립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replenish의 모든 구절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replenish (ed) - (7x) – simply defined this word means to keep something at the same level as it was received.  The “re” beginning this word does not mean “again” as in most words with the “re” prefix.  It’s root is from the Middle English replenisshen, [note the spelling] which is the same as the Middle French repleniss-, from the stem of replenir, which means to fill; to fill with persons or animals; to stock.  It is not from the Latin word which is a combination of the prefix “re” and “plenus.”  [note spelling]  In Jer 31:25 replenish is paralleled to “satiate” which means also to fill completely.  It is contrasted in Ezek 26:2 with “laid waste.”  Gen 1:28 means to use the resources (subdue) and then “fill it back up” to its previous level. Don’t allow any of God’s creation to become extinct as every part of creation reveals God Himself (Ps 19; Rom 1)   Genesis 1:28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th upon the earth.     Adam and Eve were to multiply through the birth of many children.  However, they were to use the resources of the earth (subdue) and then “fill it back up” to its previous level.  God did not create an arbitrary number of each animal and plant.  All of the creation is a reflection of God Himself (Ps 19:1-4, Rom 1:20).  To erase a species is to take away a visible representation of the invisible God.   Genesis 9:1 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Noah was to keep all of the species of animals and plants.  There were only 2 of many animals so it would have been very easy to eliminate a reflection of God’s glory.  Noah was to make sure no species was erased.   Isaiah 2:5 O house of Jacob, come ye, and let us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6 Therefore thou [God] hast forsaken thy people the house of Jacob, because they be replenished from the east, and are soothsayers like the Philistines, and they please themselves in the children of strangers. 7 Their land also is full of silver and gold, neither is there any end of their treasures; their land is also full of horses, neither is there any end of their chariots:  Isaiah calling the house of Jacob back to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God hast forsaken His people because they are receiving their restored sustenance, not from Him, but from the east; they please themselves in the children of strangers.  They are not pleasing themselves in the LORD.  God provided, the Hebrews consumed it, but were replenished by the children of strangers; they were kept at the same level of sustenance, not from God, but from strangers.   Isaiah 23:2 Be still, ye inhabitants of the isle; thou whom the merchants of Zidon, that pass over the sea, have replenished.  The inhabitants of the isle are keeping their sustenance at the same level daily by receiving what they daily need from the merchants of Zidon.   Jeremiah 31:25 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Here replenish is paralleled to “satiate” which means also to fill completely back to the point where the soul once was, not weary.  Cf Psalm 23 “…restoreth my soul…”   Ezekiel 26:2 Son of man, because that Tyrus hath said against Jerusalem, Aha, she is  broken that was the gates of the people: she is turned unto me: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Here replenish is contrasted in with “laid waste”, the complete state of emptiness.  Tyrus is boasting that the loss of Jerusalem’s wealth will now be hers through those fleeing from Jerusalem to her.  Jerusalem’s loss was Tyrus’ gain back to a full state.   Ezekiel 27:25 The ships of Tarshish did sing of thee in thy market: and thou wast  replenished, and made very glorious in the midst of the seas.  Ezekiel continues his prophecy against Tyrus by proclaiming that Tyrus also kept  here daily needs filled through the ships of Tarshish.   Conclusions   1) Man himself was to multiply, but he was to replenish the plants and animals.  This explains Deut 22:7.  Deuteronomy 22:7 But thou shalt in any wise let the dam go, and take the young  to thee;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and that thou mayest prolong thy days. If the Hebrews killed both the dam and the young, the species would soon be extinct. 2)  The illustration of the Kendall’s pantry   Here’s a silly made-up illustration.  I am going to be gone for 3 months and I ask you to live in my house and “make yourself at home” using all that is there for yourself.  When I open the pantry you cannot help but notice that we have 5 jars of peanut butter which prompts you to ask, “Was peanut butter on sale?  Is that why you have 5 jars?”  I reply, “No, it’s just a Kendall-thing.  All of the Kendall’s—my brothers, my mother, cousins—we all keep 5 jars of peanut butter in our pantries.  It’s a reflection of the Kendall’s.” So I tell you to eat everything you desire, even the peanut butter.  But when I return please have 5 jars of peanut butter; replenish the cupboard.  That way my pantry will continue to reflect the Kendall’s. 3) Another illustration  If I called you and asked you to replenish my refrigerator, what would you have to know?   What was in it in the first place.  You cannot replenish if you did not know how many gallons of milk, how many sticks of butter, etc first were in the refrigerator. 4)  This definition eliminates the false teaching that there was an early earth before Adam and Eve that had animals and plants upon it.  Even if this assumption is true, how could Adam and Eve re-fill the earth if they first did not know what occupied that previous earth? 5) Simply stated, replenish means to keep something at the level you found it.   이 외에 다음 글들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2013-09-06 14:58:11 | 관리자
지난 주 금요 모임이 끝난 뒤 한 젊은 형제가 잠깐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가족들 가운데 부산의 박O수 목사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말을 듣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물으니 박 목사는 조상들의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너무 불쌍한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목사가 인용하는 몇 가지 구절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가 인용하는 개역성경 벧전1:18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런 성경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살펴보니 그 형제가 말한 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흠정역: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개역성경: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개역개정: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KJB: Forasmuch as ye know that ye were not redeemed with corruptible things, [as] silver and gold, from your vain conversation [received] by tradition from your fathers;   NIV: For you know that it was not with perishable things such as silver or gold that you were redeemed from the empty way of life handed down to you from your forefathers,   개역성경, 개역개정, NIV를 보면 다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유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유전(遺傳)은 “1. 물려받아 내려옴. 또는 그렇게 전해짐. 2.<생물>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짐. 또는 그런 현상.”을 뜻합니다.   아니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으로 전해 내려온다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를 보니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중요한 단어가 현대역본들에서는 다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즉 ‘전통으로'라는 단어가 빠지면서 이상하게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된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단들이 사실 성경을 유심히 봅니다. 부산의 박 목사는 이 구절을 유심히 보고는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리를 만들어 신도들보고 그것들을 회개하라고 닦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박 목사가 좋아하는 구절들은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을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 벌하시겠다고 하신 구약의 몇 구절들입니다. 신약의 베드로전서 구절과 구약의 몇 구절을 가지고 박 목사는 이단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먼저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야 하므로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밑에 보시면 그 구절들이 다 나와 았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은 모두 구약에만 있습니다. 신약에는 한 구절도 없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로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국가의 헌법으로 주신 십계명에서 처음 나옵니다(출20:4-5). 단순히 출20:5만 보지 말고 5절이 나오는 이유가 설명된 4절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4-5절의 핵심 내용이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다른 구절들도 보면 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포로가 되어 잡혀가거나 가기 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신정 정치 하의 이스라엘에게는 명백한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가 곧 질투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그 하나님은 배타적으로 그들에게서 100%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 온 민족이 당하는 심판이었습니다. 밑에 있는 구절들을 문맥과 함께 보시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들을 문맥에 상관없이 떼 내어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로 인하여 아버지들을 죽이지 말며 아버지들로 인하여 자녀들을 죽이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신24:16).   보라, 모든 혼은 내 것이라. 아버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혼도 내 것이니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겔18:4).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거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교리였으면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반드시 언급하고 가르쳤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구원은 개인의 죄들의 용서에 달려 있지 티끌만큼도 조상들의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사주팔자도 더 이상 성도들 안에서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런 일들은 과거에 우리가 마귀의 자녀였을 때 일정 부분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딸로 신분이 바뀌었으므로 세상의 신에게 속한 어떤 악한 영들도 우리의 신분과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골2;13-15, 13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할례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시며 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15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다시는 이런 헛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구약의 신정 정치 하에서 민족적인 심판의 상황을 개인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또 개역성경 같은 허술한 성경을 의지하여 교리를 만들면 안 됩니다.   성경의 ‘몇 글자’가 이단을 만듭니다. 귀신들이 아니라 마귀들인데 성경이 귀신이라고 하니 베뢰아 귀신론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왕국의 신비들을 설명하시면서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유가 없이는’(without a parable)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13:34,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런데 이것을 개역성경처럼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비유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신천지의 비유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여기에 근거해서 성경이 다 비유이며 자기들의 교주만이 그것을 알려 줄 수 있다고 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성경 문제 대단히 중요합니다.신약과 구약을 잘 구분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과거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느라 평생을 속박 가운데 지내야 하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저들의 눈을 속히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944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46 ‘ 아버지들(조상들)의 불법’이 나오는 구절들   출20:4-5,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레26:39-42, 39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민14:18, {주}는 오래 참고 긍휼이 많아 불법과 범죄를 용서하나 결코 죄 있는 자들의 죄를 깨끗이 치우지 아니하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느니라, 하셨나이다.   신5:9-10,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사14:21, 그들의 조상들의 불법으로 인하여 그의 자손들을 살육할 준비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일어나거나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며 또 도시들로 세상의 표면을 채우지도 못하게 하라.   렘14:19-20, 주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셨나이까? 주의 혼이 시온을 심히 싫어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위해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랐으나 좋은 것이 없고 치료하시는 때를 바랐으나 고난을 보나이다! 20 오 {주}여,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의 사악함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을 우리가 인정하나이다.  렘32:18, 주께서는 인자하심을 수천의 사람들에게 베푸시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들 뒤에 오는 그들의 자손들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신 이, 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주}가 그분의 이름이로소이다.   ‘조상들(아버지들)의 불법들’이 나오는 구절들   레26:39-40,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느9:2, 이스라엘의 씨가 모든 타국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일어서서 자기 죄들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을 자백하니라.   사65:7, 너희 불법들과 너희 조상들의 불법들을 함께 보응하리니 그들이 산들 위에서 분향하고 작은 산들 위에서 나를 모독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이전 행위를 헤아리되 그들의 품속까지 헤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선조들의 불법들, 렘11:10그들이 내 말들 듣기를 거절한 자기 선조들의 불법들로 돌아가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들을 섬겼은즉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애5:7, 우리 조상들은 죄를 짓고 없어졌으며 우리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였나이다.   단9:16, 오 [주]여, 간청하옵나니 주의 모든 의를 따라 주의 분노와 주의 격노를 돌이키사 주의 도시 예루살렘 곧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들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들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우리의 사방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치욕거리가 되었나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7-10 15:37:37 성경교리에서 복사 됨]
2013-07-09 16:49:47 | 관리자
앞으로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로 되어 있고 총 7년의 기간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한 순간이 아니라 33년 반 동안에 이루어진 것처럼 재림도 7년의 기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자들이 휴거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이들은 7년 동안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혼인식을 거칩니다. 그 7년 동안 이 땅에는 창세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환난의 시간이 임합니다.   이때에 수많은 환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합니다. 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 7년 환난기의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자와 불신자가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근방의 올리브 산에 강림하셔서 왕좌에 앉아 친히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 민족을 나누어 심판하는 일입니다.   이들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예수님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을 환난기에 잘 대우해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이 내 형제들은 양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친 백성/형제들인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양/염소 민족의 심판 때에는 예수님 앞에 세 부류가 섭니다: 가운데에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 오른쪽에는 양 민족에 속한 자들, 왼쪽에는 염소 민족에 속한 자들         이런 심판을 통해 염소 민족에 속한 자들은 마25:41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한편 양 민족에 속한 자들은 34절의 복을 받습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창세로부터 예비된 왕국이 바로 천년왕국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채 7년 환난기를 끝까지 통과한 유대인들과 이방 민족(양)들이 육신을 입고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육신을 입었으므로 아기를 낳을 수 있고 또 낳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1000년 동안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어두시므로 마귀가 사람을 직접 유혹하지 못합니다.  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2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계20:1-3).   땅에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수명은 다시 노아의 홍수 이전처럼 1000살까지 늘어납니다. 이사야서 65장 19-25에 이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9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 20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 21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 22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 23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받으려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주}에게 복 받은 자의 씨요,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후손도 그와 같으리라. 24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으리라. 25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22절에 있듯이 사람들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이 길어집니다. 20절에 있듯이 백 세에 죽는 사람을 아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때에는 25절에 있듯이 처음의 에덴동산에서처럼 모든 짐승이 초식을 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는 상하게 하거나 해치는 일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10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3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5 의로 자기 허리의 띠를 삼고 신실함으로 자기 콩팥 주위의 띠를 삼으리라. 6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9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10 ¶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그것이 만백성의 기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   자, 그러면 이때에도 사람이 죽을까요? 20절에 보면 백 세에 죽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때에도 사람이 죽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처음 들어가거나 거기서 태어난 사람은 다 첫 사람 아담의 후손이므로 죽음을 면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1000년 동안 무저갱에 갇혀 있는데 이들이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처음에 거기 들어간 사람들은 100%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른 시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마귀의 직접적인 유혹이 없어도 그들은 첫 사람 아담의 후손이므로 모든 시대의 사람들처럼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죽습니다. 마귀의 유혹이 없어서 조직적인 저항이나 범죄는 없다 해도 구원은 마음의 문제이므로 이들이 회개하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지 않으면 비록 유토피아에 살아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65:20은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1000년이 흘러가는 동안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됩니다. 계20:7-10은 이들의 마지막 상황을 보여 줍니다. 마귀가 잠시 풀려나자 이 죄인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귀에게 붙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마귀와 함께 영원무궁토록 불 호수의 치욕을 당합니다.   7 그 천 년이 다 차매 사탄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고 8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며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땅의 넓은 곳으로 올라가 성도들의 진영과 그 사랑받는 도시를 에워싸매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 10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환경만 좋으면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사람의 문제가 환경이 아니라 타고난 죄성이라고 말합니다. 유토피아의 천년왕국에서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불 호수로 들어가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천년왕국에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양 민족)만 들어갑니다.이들은 아이를 낳습니다.이 아이들 중에는 죄인들이 많고 또 천년왕국의 시민들 중에는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 적어도 7년 전에 휴거 받거나 부활한 신약 성도들과 7년 환난기 끝에 부활할 구약 성도와 환난기 성도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고 - 아이는 낳지 못함 - 아마 이때에 왕국의 백성들과 함께 천년왕국(에덴동산)의 아름다움과 부요함을 누릴 것입니다.   샬롬   참고로 천년왕국에도 성전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있고 구약의 희생 예물을 드리며(겔40-48장, 말3:1-3) 또 장막절을 지킵니다(슥14:16-19). 이때의 희생 예물은 십자가 사건 이후의 신약시대 성도들이 지키는 주의 만찬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2013-06-15 15:38:54 | 관리자
사무엘기상 28장에 보면 사울이 위급한 상황에서 엔돌의 영매를 찾아가 죽어 있는 사무엘을 불러오라고 이야기하고 그 영매는 사무엘을 불러옵니다(7-20절).   많은 이들이 이때에 올라온 사무엘은 가짜라고 이야기합니다.영매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불러올릴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실로 모든 영매나 소위 ‘귀신 쫓는다는 목사’들이 불러올리는 처녀 귀신, 할아버지 귀신 등은 사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거짓 영인 마귀들입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진짜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목소리를 내니까 이들은 자기들이 진짜로 죽은 사람을 불러올린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또 그것을 보는 이들도 그렇게 착각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과 목소리도 같고 말하는 게 같기 때문에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다 마귀들의 장난에 속아 넘어갑니다. 김기동 목사 등의 베뢰아 귀신들도 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매일 귀신/사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마귀의 종들입니다. 다락방이라는 데도 늘 마귀 이야기하만 하지요. 이런 단체가 사실은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단체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매나 ‘마귀 들려 축사하는 목사’는 결코 죽어 있는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러 특별한 일을 허용하십니다.   사무엘기상 28장에서는 분명히 사무엘이 올라왔습니다. 영매는 자기가 사무엘을 불러올린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이 일은 사실 하나님의 허용에 의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매 자신도 놀라고 맙니다(12-13절). 사무엘기상 28장의 앞뒤 문맥 상 땅 속에서 올라온 이 존재가 사무엘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 존재는 분명히 땅속의 낙원에 있던 사무엘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였고 그대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싸움터에서 죽어서 사무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근거로 영매가 죽은 사람을 불러올릴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예외적인 기적입니다.   민수기 22장 22-35절에는 나귀가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일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개나 고양이에게 말을 시키려 하면 안 됩니다. 이 일 역시 보편적인 하나님의 일과는 거리가 먼 특별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이런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간구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어떤 단회적 사건을 가지고 보편적 해석을 하는 오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도 단회적 사건입니다. 지금 이 시간 또 다른 오순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하신 사건이지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매일 매일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보편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다마스쿠스(다메섹) 도상의 회심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대개 보편적인 방법으로 섭리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단회적 특수 상황을 가지고 보편적 교리를 만들려고 하면 여기서 이단 교리나 잘못된 가르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식과 이성과 논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의 틀 안에서 바르게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법을 늘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다음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7&page=   샬롬
2013-06-15 14:39:14 | 관리자
우리는 벧전3:19-20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의해 노아 시대에 죄를 지은 영들(천사들과 거인들)에게 가셔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패배를 선언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1214   그런데 곧바로 벧전4:6에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와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벧전4:6에는 ‘죽어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 천주교를 포함해서 - 이 두 부분을 이용하여 사람이 죽은 뒤에도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명백한 말씀 즉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히9:27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그러므로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벧전4장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나니 2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3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우리에게 족하도다. 4 이 점에서 그들이 너희가 자기들과 함께 달음질하여 그처럼 극한 방탕에 이르지 아니함을 이상히 여기며 너희를 비방하나 5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신 분에게 회계 보고를 하리라. 6 이런 까닭에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1-2절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정욕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3절은 과거의 우리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변하자 과거에 같이 지내던 불신 친구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봅니다. 그것이 4절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께 모든 것을 낱낱이 회계 보고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모든 것을 회계 보고해야 하므로 -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여기의 ‘죽어 있는 자들’은 베드로 당시에 이미 죽어 있는 자들로서, 복음 선포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살아 있을 때에는 5절이 이야기하듯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으로는 살아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명백한 해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벧전4:6은 벧전3:19-20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문맥이 그렇게 말합니다.   샬롬
2013-06-08 15:47:09 | 관리자
삿 14장 15절에 일곱째 날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동무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기간이 잔치 기간 이레인데 14절에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라. 라고 되어있고 15절에는 일곱째 날에 그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17절에 그들이 잔치할 때에 그의 아내가 이레 동안 이라 되어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사흘이 지나서 하면 4일 남았는데 17절에 이레 동안 이라하면 날짜가 안 맞는거 같은데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제가 이해가 부족하니 너그러운 아량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5-10 10:16: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5-09 16:22:00 | 김기덕
안녕하세요 질문드립니다. 역대기하는 유다 왕들에 대한 기록으로 여호사밧이 유다왕 인데 왜 역대기하 21장 2절에 ~이스라엘왕 여호사밧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요? 이상해서 개역성경을 보니 개역성경은 유다 왕 여호사밧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왕인데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나온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여호사밧 왕에 대한 이전 글들을 다시 여러 번 읽어 보았으나 그래도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6 12:20:0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5 08:34:26 | 이지호
다시 성경 관련 질문을 드립니다. 이 내용도 금일 성경을 읽으면서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9절 킹제임스 흠정역 경우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에 있는 자기들의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자기 아내 한나를 알매 {주}께서 그녀를 기억하시니라."   개역개정의 경우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동침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는 그냥 동침한다라고 표현을 하면 될텐데 굳이 "안다"라고 표현했어야 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시 부탁합니다. ^^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단어와 문맥을 킹제임스 흠정역으로 바꾼 이후로 짚어보게 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1 16:38: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1 12:45:45 | 김명수
오늘 사무엘상 1장을 읽으면서 "영"과 "혼"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성도님들께 문의합니다.   어떤 말씀이냐면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영, 혼, 육으로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한 문장에서 "영"과 "혼"이 나왔을 때에 솔직히 명확하게 의미가 구분이 되지가 않습니다. 문맥상으로는 그냥 혼용해서 써도 될 것같기도 하구요   성도님들의 도움 부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11 16:38: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11 12:37:48 | 김명수
'사울왕이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한 성실하신 답변에 감사 드리며,   사울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질문 드립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초조해진 사울왕은 영매를 찾아서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 28장)   이 부분에 대하여 여러가지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의문가는 부분이 무당이나 영매가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올 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실제 영을 불러왔다면, 지금도 무당들이 죽은 사람의 영( 지옥에 있거나 천국에 있는)을 불러 올 수 있고,   그들과 대화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상황이 됩니다.   영매가 불러냈다고 하나님이 금지하신 영매의 요청에 사무엘의 영이 이에 순응하여 나타났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무당이 천국이나 지옥에 있는 영을 불러내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요?   감사합니다.    * 추신 : 성경QA에서는 글쓰기 권한이 없어서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9 14:50:4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9 13:05:45 | 최병철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4&cate_name=%EC%B0%BD%EC%84%B8%EA%B8%B0   성경 Q/A에 있는 위의 글, 창1:2에 등장하는 어둠에 관련된 사항인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다 두가지 질문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바쁘시지만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도 이걸 많이 고민하다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어둠을 창조하셨다는 관련구절을 얼마전에 찾게 되었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사45:7)   위 구절을 근거로 볼때 하나님께서 1절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때 어둠도 같이 창조하셨다고 봐도 되는지요?   왜냐면 1절에서 물들을 창조하셨다는 언급은 없는데 2절에 보면 물들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어둠도 같은 케이스로 위의 사45:7절에 근거하여 1절에서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재창조설을 (간극이론 - Gap Theory) 반박하는 내용으로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and' 라는 접속사가 있으므로 계속적인 연속선상의 사건들이며 2절에서 'the earth' 라는 정관사가 붙은 땅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1절의 땅을 2절에서 언급할때 정관사의 용법 즉,   1절에 언급된 earth를 계속해서 동일하게 언급할때 그 다음부터는 the earth (그 땅)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1절과 2절의 땅은 동일한 것이다   제가 이런식으로 간극론자들과 대화할때 그 주장을 반박을 하는데요 제 주장이 맞는 건가요?  간극론자의 특징은 늘 그러하듯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부터 오역이라고 무시한뒤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할수 있는 몇가지 단어들을 원어로 이야기하면서 이상하게 파자하고 해석하고..뭐 이런식으로 합니다만,   위의 반박이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한번 검증 부탁드립니다 (제가 영어실력이 완전 바닥이여서요, 이렇게 봐도 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9 14:50:4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9 07:35:25 | 이성일
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어느 분이 여기에 나오는 어둠은 어둠이 언제 생겼는지 몰라서 너무 너무 고민이 된다고 하기에 간단하게 글을 씁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만 만든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하늘과 땅과 빛을 만드셨습니다(1-5절).   1절의 하늘은 2장 1절에서 보듯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망라하는 유대인들의 우주 공간을 나타내는 하늘입니다.하나님은 첫째 날에 우주 공간과 지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날 만들어진 우주 공간과 지구는 2절에 있듯이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고 어둠에 가득 덮여 있었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이 주장하듯이 원래의 창조 세상이 있었고 거기에 Pre-Adamic race(아담 이전의 어떤 종족)가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무슨 변고 - 대개 루시퍼의 반역이라고 함 - 가 일어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고 그 결과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의 어둠은 아직 3-4절에서 하나님이 빛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그때 생긴 것입니다. 즉 첫째 날의 첫 부분에는 땅과 온 우주 공간이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을 만들자 땅과 우주 공간에 빛과 어둠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절은 그 날에 저녁(어둠이 있는 시간의 시작)과 아침(빛이 있는 시간의 시작)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렇게 첫째 날이 끝난 뒤에 하나님은 나머지 5일을 사용하셔서 첫째 날에 이미 창조하신 땅과 온 우주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셨고 이로써 ‘형태가 없고 비어 있던’ 우주 공간과 지구를 원하시는 대로 단장하셨습니다. 이렇게 단장하는 일이 총 6일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 창조’라고 합니다.   이렇게 24시간의 하루를 6일 동안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단장한 지구는 불신자나 진화론자들이 보았을 때 수백억 년이 된 것처럼 보이는 지구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 주스로 만드신 것과 비슷합니다. 그분은 순식간에 포도 주스를 만들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그 주스가 적어도 1년의 성장 과정을 거쳐 포도즙 틀에서 나온 포도즙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일이 믿기지 않습니다. 바닷가의 이끼가 묻은 저 바위들, 그랜드캐니언의 계곡들을 보면서 이들은 수십억 년의 생성 과정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아담의 창조 이후로 6,000년, 노아의 홍수 이후로 단지 4,300년 정도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고전1:18-31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제안을 드립니다. 앞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대로 문자 그대로 문맥을 보면서 단순하게 읽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 년을 집어넣지 마세요. 또 그때의 하루는 수십억 년이라고 믿지 마세요. 그냥 단순하게 읽어보세요.   처음 성경을 접하는 사람이 국어 시간에 배운 방식으로 단순한 역사책을 읽을 때의 심정으로 읽으면 누구나 다 동일한 결론에 다다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간단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창세기 1장의 어둠은 첫째 날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자연히 존재한 것입니다.   아, 타이핑을 잘 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샬롬
2013-04-08 18:26:02 | 관리자
정동수 목사님의 구원론을 들었습니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구원받은 자의 자유와 죄에서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의문점은 '사울왕도 구원받았다'라는 부분입니다.   사울왕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방황하며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귀신들려서 많은 고생을 하였고, 다윗이 음악을 연주할 때 귀신이 물러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에 보면, 주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대신 악한 영이 그를 괴롭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악령에게 사로잡혀서 고통받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 갑니다. 구원받은 자가 끝까지   주님께 돌아오지 않고 자살을 택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생깁니다.   가롯 유다도 에수님의 제자로 택함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다가 악한 영이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결국에는   회개하지 않고 번민하며 괴로와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패턴이 사울과 너무 유사해서 사울왕의 구원에   의문이 들어갑니다.   이와 연관하여 추가질문 드리면,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음악으로 악령을 떠나게 하는 상황이 나오는데(삼상 16장 23   절), 이를 논리적으로 발전시키면 찬송으로도 악령을 떠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최병철 배상[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4-08 17:50:2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3-04-07 12:49:17 | 최병철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하여   요즘 저희 사이트를 찾는 분이 많습니다.교회를 방문하는 분도 많습니다.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우리의 가르침 중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지 물어보았습니다.그랬더니 여러 성도님들이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 문제로 도발성 이메일을 제게 보내오곤 합니다. 내용은 “목사님의 해석은 우리 교회의 믿음과 전통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비틀어서 해석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합하여 거인을 생산해 낼 수 있느냐?”   여러 사람들이 이로 인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오늘은 간단하게 답을 올리려고 합니다.   “천사와 UFO 바로 알기” 책에서 레이시 목사님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뒤져가며 이 문제에 대해 깨끗하게 정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 믿겠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이미 마음속에서 그렇게 믿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교단의 가르침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역 성경의 여러 부분이 애매하게 번역되어 참 뜻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6장은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1차 수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모세오경)에 관한 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물론 구약성경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지만 유대인 역사가들이나 성경 이외의 그들의 작품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때로 필요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중에서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 요세푸스일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누구라도 요세푸스에 대해 조금은 배울 것입니다.   위키 백과사전은 요세푸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플라위우스 요세푸스, 고대 그리스어: Φλάβιος Ιώσηπος 플라비오스 이오세포스, 기원후 37년 경 ~ 100년 경)는 1세기 제정(帝政)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유다이아 전쟁에서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이름은 새로 로마 시민이 된 이들에게 적용되는 관례에 따라 보호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을 이름을 따 '플라비우스'를 가문이름(nomen)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티투스의 막료로서 예루살렘 함락의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훗날 이 전말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으로 남겼다.   위키 백과:http://ko.wikipedia.org/wiki/%ED%94%8C%EB%9D%BC%EB%B9%84%EC%9A%B0%EC%8A%A4_%EC%9A%94%EC%84%B8%ED%91%B8%EC%8A%A4   요세푸스의 글은 구약 시대의 역사를 보여 주는 데 매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늘 참고하는 고전입니다. 유대인들의 문화 등에 대해서는 에더샤임이라는 랍비의 글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창조부터 시작해서 구약 시대의 중요 사건들이 다 언급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견해가 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담은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런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습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기사는 “유대고대사”의 1권 3장에 나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Antiquities of the JewsTranslated by William WhistonBOOK I-------------------------CHAPTER 3.CONCERNING THE FLOOD; AND AFTER WHAT MANNER NOAH WAS SAVED IN AN ARK, WITH HIS KINDRED, AND AFTERWARDS DWELT IN THE PLAIN OF SHINAR,1. NOW this posterity of Seth continued to esteem God as the Lord of the universe, and to have an entire regard to virtue, for seven generations; but in process of time they were perverted, and forsook the practices of their forefathers; and did neither pay those honors to God which were appointed them, nor had they any concern to do justice towards men. But for what degree of zeal they had formerly shown for virtue, they now showed by their actions a double degree of wickedness, whereby they made God to be their enemy. For many angels11 of God accompanied with women, and begat sons that proved unjust, and despisers of all that was good, on account of the confidence they had in their own strength; for the tradition is, that these men did what resembled the acts of those whom the Grecians call giants. But Noah was very uneasy at what they did; and being displeased at their conduct, persuaded them to change their dispositions and their acts for the better: but seeing they did not yield to him, but were slaves to their wicked pleasures, he was afraid they would kill him, together with his wife and children, and those they had married; so he departed out of that land.   밑줄 친 부분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천사들이 여자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아들들 곧 선한 것을 멸시하는 자들을 낳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르면 이 남자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거인이라고 부른 자들의 행위와 비슷한 일을 행하였다.”   각주 11. This notion, that the fallen angels were, in some sense, the fathers of the old giants, was the constant opinion of antiquity.   각주 11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어느 면에서 과거의 거인들이었다는 개념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내려온 의견이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이미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하였는데 내용이 방대하여 여러 권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을 보시면 창세기 6장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유대고대사 1).   요세푸스 1 유대고대사, 생명의 말씀사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740   책 소개: 이 책은 그리스도 탄생 전후 유대인 역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역사서로 예수님 탄생 이전 시대와 기독교 1세기 동안 일어났던 팔레스틴과 디아스포라를 설명해 주는 한편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이 실려있다. 1권은 유대 고대사(창세기부터 고레스 원년까지), 2권 유대 고대사(고레스부터 로마총독 플로루스까지의 기록), 3권 유대 전쟁사(예루살렘 함락사), 4권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으로 엮여 있다.   유대인들의 이런 증언들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확고히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과한 역사적 사실들은 Bryan Huie가 지은 다음의 글에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http://www.herealittletherealittle.net/index.cfm?page_name=Genesis-6-Sons-of-God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 당시의 역사였던 요세푸스가 정통파 유대인들이 거인 종족을 믿었음을 보여 준다.2. 역시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필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3. 에녹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4. ‘주빌리의 책’(Book of Jubilees)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5. 주후 2세기에 살았던 저스틴 마터(순교자 저스틴)도 Second Apology 5장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6. 주후 240년경에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주교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7. 베드로후서 2장 4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8.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 모든 구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창6; 신32:8; 욥1:6; 2:1; 38:4; 시29:1; 89:5). 9. 유명한 성경학자인 벌링거(Bullinger) 역시 그의 Companion Bible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0. 유다서 6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1. 야세르의 책의 4:18은 심지어 짐승들도 혼합되어 하이브리드 종류가 나온 것을 보여 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모두 물로 심판하셨다(창6:7).12.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 7절 역시 이를 지지한다.   이런 증언을 통해 우리는 구약시대 유대인들과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견해를 초지일관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언제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이에 대한 연구는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줍니다.   연구를 위해 구글에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라는 검색어로 문서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 The older view, held nearly unanimously by ancient writers prior to Augustine of Hippo, is that the Nephilim were a hybrid race between certain fallen angels, called the Benei Ha'Elohim ("Sons of God") or The Watchers in extra-Biblical traditions, and human women.   해석: 어거스틴 이전에 고대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하던 견해는 창세기 6장의 네피림(거인)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타락한 천사들 - 외경에서는 이들을 순찰자라고 부름 -과 사람들의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종족이라는 것이다.   (2) Early Christianity Conservative interpretations of the "sons of God" view them as descendants of Seth. Saint Augustine subscribed to this view, based on the orations of Julius Africanus, in his book City of God which refer to the "sons of God" as being descendants of Seth (or Sethites), the pure line of Adam. The "daughters of men" are viewed as the descendants of Cain (or Cainites).   해석: 초기 - 여기의 초기는 어거스틴 당시로 주후 350년 이후를 뜻함 -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았다. 어거스틴은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의 연설에 의거하여 자신의 책 ‘하나님의 도시’(신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셋의 후손들로, 사람들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으로 정의하였다.   역사는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에서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임을 보여 줍니다. 잘 알다시피 어거스틴은 성경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영혼의 자유를 지키려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며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약의 이스라엘(유대인)을 신약의 교회가 대체함으로써 천년왕국 같은 실제적인 왕국은 이 땅에 없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주의를 도입하고 확립한 인물입니다. 비록 그가 천주교회의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성 어거스틴’이라 불리지만 성경 신자들은 천주교회의 성인들이란 한결같이 ‘믿음+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므로 성경적으로는 ‘다른 복음, 저주받은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요.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에 힘입어 천주교회는 그 뒤로 무려 1000년 이상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유대인과 성경 신자 말살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이것을 역사는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유대인 자체를 말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도 말살하려 했고 바로 이런 시도 중의 하나가 자신들의 왕국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개념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 유대인과 성경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카톨릭 주의의 무지와 미신에 갇혀 살게 되었고 이에 역사는 이 시기를 중세 암흑시기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고 이에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비성경적 카톨릭 주의와 반셈족주의의 기반을 놓아 준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이러다가 1517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1535년경부터 프랑스 출신의 칼빈(칼뱅)이라는 또 다른 어거스틴 주의자가 일어나 스위스 제네바에 신정정치국가를 세우면서 장로교라는 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의 칼빈주의는 그 원천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으므로 엄밀하게는 어거스틴주의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로교회들은 불신자였던 어거스틴을 매우 신봉합니다. 따라서 장로교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 역시 유대인 말살과 성경 신자 배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칼빈도 어거스틴처럼 자기의 믿음을 반대하던 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숙청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은 당연히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이라는 가르침을 전파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세 청교도들과 경건한 주석을 지은 매튜 헨리, 반즈, 미국의 대각성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드 등의 구약성경 관련 글을 읽으면 내용이 한결같이 이스라엘 대체 혹은 배격 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제나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되고 맙니다. 이들의 근원은 어거스틴이므로 이들의 글은 언제나 거기서 멈추고 결코 성경 자체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실 천주교회와 동일하게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주장하며 무천년주의를 펴는 칼빈주의는 1948년 5월에 가나안 땅에 저 이스라엘이 세워짐으로써 이미 종말을 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장로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칼빈이나 어거스틴 같은 사람들의 전통과 가르침을 더 중히 여기는 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개혁 신학이라는 미명 하에 사람의 철학과 속임수로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철저한 칼빈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는 결국 ‘믿음 + 행위’ 구원(Lordship salvation)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감리교 등과 같이 천주교회에서 나온 다른 개신교(Protestants)들도 천주교회 교리들의 대부분을 그대로 안고 나왔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주교회처럼 유대인들의 귀환과 천년왕국의 확립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과 관련된 성경을 거의 다 영해(靈解)합니다. 그 결과 창세기 6장도 이런 차원에서 영해가 되어 타락한 천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견해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교회는 교회이지 이 둘이 혼합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영원토록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재림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의 재림의 때는 다니엘서 2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다니엘은 예수님의 재림 바로 전에 있을 넷째 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0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하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41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누일 것이로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42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 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43절에 보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읽으면 그들은 자연히 사람들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 자기를 사람들의 씨와 섞으려 했던 존재들이 누구일까요? 성경이 답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전혀 다른 번역으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개역성경 43절: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헨리 모리스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창조 과학을 확립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공학 박사입니다. 창조 문제에 관한 한, 창세기에 관한 한 이분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리스는 생전에 “창세기 기록”이라는 매우 두꺼운 창세기 주석을 썼습니다.거기에서 그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 기록In The Genesis Record, Henry Morris states:   The only obvious and natural meaning without such clarification is that these beings were sons of God, rather than of men, because they had been created, not born. Such a description, of course, would apply only to Adam (Luke 3:38) and to the angels, whom God had directly created (Psalm 148:2, 5; Psalm 104:4; Colossians 1:16). The actual phrase bene elohim is used three other times, all in the very ancient book of Job (1:6; 2:1; 38:7). There is no doubt at all that, in these passages, the meaning applies exclusively to the angels. A very similar form (bar elohim) is used in Daniel 3:25, and also refers either to an angel or to a theophany. The term sons of the mighty (bene elim) is used in Psalm 29:1 and also Psalm 89:6, and again refers to angels. Thus, there seems no reasonable doubt that, in so far as the language itself is concerned, the intent of the writer was to convey the thought of angels - fallen angels, no doubt, since they were acting in opposition to God's will.   해석: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에 의해(created) 존재한 자들이며 사람에게서 태어난(born) 자들이 아니다.  ‘강력한 자의 아들들’ 같은 표현도 역시 천사들을 가리킨다. 창세기 기자의 의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순리적으로 분명하게 보여 줘도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굳게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득 노력이 아무 효과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과 칼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장로교는 장자 교단이다!” 하고 콧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에 무슨 진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유혹되어 넘어가는 순진한 성도들만 불쌍하지요.   우리는 단호하게 이런 사람들의 헛된 전통과 교리를 부인합니다. 오직 우리는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이 우리 손에 있음과 그 성경을 성경으로 풀 때 하나님의 진리가 단순하게 우리에게 전달됨을 믿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성경으로 성경을 풀 때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반드시 타락한 천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성경 신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온전한 해석입니다.   샬롬    
2013-03-26 14:57:29 | 관리자
구원받으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얼마 전부터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한 자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다닌 교회에서는 사람이 구원 받으면 그 순간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나와 최근에 다른 교회에 갔더니 거기서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가르칩니다. 즉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다 생명이 있는 존재이므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가 죽을 때까지 믿지 않은 사람의 경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좋은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배경을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일단 ‘생명책’과 관계가 있는 구절을 다 살펴보겠습니다. (1)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2) 출애굽기 32:3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3) 시69:28,  그들(악한 자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 (4) 빌립보서 4:3, 또한 참된 멍에 동료인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5)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요한계시록 13: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7)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8)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9)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10) 요한계시록 21:27,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11) 요한계시록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제가 간단히 살펴본 바로는 ‘생명과 관계된 책’은 위의 11구절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자매님의 질문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구절들이 바로 (1), (2), (3), (5), (11)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한 사람이 구원받는 순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구원을 잃으면 이름이 지워지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상 이런 일은 생길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마귀의 자녀로 지내다가 구원받은 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되었다가 다시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또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일단 말이 안 되지요. 이것은 일단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명백한 구절은 이런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이 문제는 자매님이 새로이 제시한 관점에서 보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시편의 ‘산 자들의 책’은 ‘book of the living’입니다. 생명책은 ‘book of the life’입니다. life와 live는 같은 말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life가 있으면 live합니다. 즉 생명이 있으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산 자들의 책’ 즉 ‘하나님의 책’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이름은 그 책에서 지워집니다. 이름이 지워지는 시기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다만 (7)번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누구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져서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 확실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들을 통해 그 자매님이 지적하신 대로 믿는 것이 기존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경적으로 잘 맞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때에 그 사람의 이름이 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전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독자들께서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저는 이런 해석이 성경적으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과거에 계시록 강해에서도 그렇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1-25 13:39:14 | 관리자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레위기 16장)   출애굽기 28장에는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명시되어 있습니다.이 의복은 총 8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는 일 년 내내 이 의복을 입습니다. 4: 그들이 만들 의복들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수놓은 속옷과 관과 허리띠니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어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대제사장의 옷에는 금방울이 달려 있어서 소리를 냈습니다.   33 ¶ 너는 그 옷의 단 밑으로 단의 주위로 돌아가며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로 석류들을 만들고 또 그 단을 돌아가며 석류들 사이에 금방울을 달되 34 그 겉옷의 단 주위로 돌아가며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를 달지니라. 35 그것은 아론이 섬기기 위하여 입을지니라. 그가 {주} 앞의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에 그의 소리가 들리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가 입을 속옷에 대해서는 39-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9 ¶ 너는 고운 아마로 속옷을 수놓아 만들고 고운 아마로 관을 만들며 바느질로 허리띠를 만들지니라. 40 ¶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고 그들을 위하여 허리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모자를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41 너는 그것들을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며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 것이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아마로 반바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에까지 이르게 하여 그들의 벌거벗음을 덮게 할지니라.   한편 레위기 16장에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나와 있으며 이것은 4 종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절: 또 그는 거룩한 아마 속옷을 입고 살 위에 아마 반바지를 입으며 아마 허리띠를 띠고 아마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의복들이니라. 그러므로 그가 물로 자기 살을 씻고 그것들을 입을 것이며   두 가지 의복에 대해서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기만 하면 언제라도 구약시대 제사 의식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놓은 성전 연구소(Temple Institute)의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templeinstitute.org/beged/priestly_garments-4.htm   이제 성전만 지으면 그들은 하나님께 구약의 짐승 희생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구절들의 속옷은 대제사장의 화려한 겉옷 속에 입는다는 의미의 속옷으로 지금의 의사들의 가운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기록대로 믿으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흰 아마 옷을 입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옷과 속죄일의 옷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성경대로 이해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제사장이 혹시라도 지성소에서 죽을까 염려되어 그들은 그의 몸에 방울을 달고 또 죽을 경우를 대비해서 몸에 줄을 달아 그가 죽으면 그 줄로 그를 지성소에서 끄집어내려 하였다.”   저를 비롯해서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없으니 꾸며낸 말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 등에서는 위와 같은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줄은 로프(rope)로 불리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의 지지가 없습니다.다만 탈무드의 진술 등에 의해 이런 견해가 널리 퍼진 것은 사실입니다. http://www.neverthirsty.org/pp/corner/read2/r00806.html http://www.jewishanswers.org/ask-the-rabbi-category/the-land-of-israel/?p=2403 http://bibleq.net/answer/1724/ http://www.gotquestions.org/high-priest-rope.html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으므로 줄을 달았다고 해서 틀린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제사장이 홀로 죽으면 끄집어낼 방도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을 성경에 있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저도 과거에 성막 강해 등을 할 때에 위에 있는 인용문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살펴보니 그것은 탈무드 등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따라서 이 말은 성경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했느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정도로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샬롬 
2013-01-25 12:09:3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