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만든 한자 제 7강-장부야 종대일(丈夫也 從大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여섯 번 째 글자 ‘사내 부(夫)’자를 보겠습니다. ‘큰 대(大)’자에서 파생된 글자가 바로 ‘사내 부(夫)’자입니다. 사내란 누구일까요?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는 말씀이 보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여러분이 ‘부(夫)’ 자를 보시면 바로 연관이 지어지지 않습니까? ‘두 이(二)’에 ‘사람 인(人)’ 자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 두 사람을 책임지는 사람이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남자일 겁니다. 그래서 사내 부, 지아비 부 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설문에는 이 글자를 ‘장부야 종대일(丈夫也 從大一)’이라 하였습니다. 즉, 장부이다. 대(大)자를 따라서 일(一)자를 그었다.고 풀이됩니다. 그리고 단옥재(段玉栽)는 ‘종일대즉위천(從一大則爲天) 종대일즉위부(從大一則爲夫)’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이것은 一 자를 따라서 大 자를 쓰면 곧 天 자가 되고, 大 자를 따라서 一 자를 쓰면 夫자가 된다 하였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一 자 밑에 大 자를 쓰면 하늘 천(天) 자가 되지만 大 자 위에 一 자를 그으면 사내 부(夫)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앞 시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이 하늘 일(一) 자를 짧게 쓰느냐 길게 쓰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이렇게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이어서 단옥재는 “어차견인거천동야(於此見人與天同也)”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에 보건데 사람과 더불어 하늘은 동격이다’ 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람과 더불어 하늘은 동격이라고 감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성경 말씀을 따라서 夫 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 부(夫)가 갖는 의미는 보통의미의 남자가 아닌 두 사람을 책임져야 될, 하나님의 창조하신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익히는 것을 공부(工夫)라고 합니다. 왜 만들 공(工) 자에 지아비 부(夫) 자를 썼을까요? 하나님이 만드신 두 사람처럼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동양에서는 남성본위의 양의 사상이 지배하며, 서양에서는 음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를 나타낼 때에 동양에서는 남성 본위이기 때문에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몸에 들어가는 때부터를 기점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흔히 보통 나이라 하여 1살을 더하는 반면에 서양에서는 여성 본위 즉 여성이 출산한 때를 기점으로 하여 흔히 만 나이라 하여 세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지칭할 때에도, 동양에서는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고 남성을 먼저 말하지만, 서양에서는 ‘ladies and gentlemen’이라고 여성을 먼저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 세계를 이분법적 틀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흔히 지구상을 동양과 서양이라고 양분하여 말합니다. 이 때 동서양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서양과 동양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옥시덴트'와 '오리엔트'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구분은 서양이 인도,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존재를 알기전까지는 유럽문명과 중동아시아권 문명을 구분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아테네, 스파르타를 위시한 도시국가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문명충돌의 시작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페르시아지역을 '오리엔트'라 불렀습니다. 오리엔트는 해가 뜨는 방향, 즉 동쪽지방이란 뜻입니다.지금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오리엔트가 중동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을 아우르는 아시아 전체 지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서양-유럽문명권의 뿌리가 되었고, 페르시아는 유럽문명과는 구별되는 이슬람문명권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는 터키의 이스탄불 지역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탄불은 서양과 동양이 만나는 도시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서로마, 동로마 제국으로 갈라진 지점도 지금의 터키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이 두 문명은 지금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이후 지속적인 경쟁과 대립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후 중세를 거치고 15,16세기의 서양인에 의한 신대륙과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발견을 이끈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면서 동양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갑니다. 이때부터 인도, 중국, 동북아시아가 모두 동양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이는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게도 서양의 관점에서 기술한 세계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 동양이란 용어만 놓고 볼 때 서양이 인도, 중국을 알기 전까진 인도, 중국문명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 기술이나 세계사 기술을 할 때 이렇게 동, 서양 구분을 따르는 것이 이미 뿌리 깊게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이란 한자어가 처음 쓰여 진 것은 중국 송나라 때 부터라고 합니다. 그때는 중국대륙을 지역별로 나누기 위해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지금의 의미로 영어 '오리엔트'의 번역어로써 자리 잡게 된 것은 실제로 서양인의 아시아 진출 이후로 봐야 할 것입니다. 단옥재(段玉栽) : (1735~1815) 중국 청대(淸代) 중기의 학자.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 說文解字〉의 주석서인 〈설문해자 주(注)〉 30권을 저술하여, 자음(字音)·자의(字義)의 변화를 밝히고 실례를 들어 고전해석의 방법을 제시했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설문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헌이다
성경이 만든 한자 제8강 -보일 시(示)
신사야(神事也)-‘신을 섬김이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일곱 번 째 글자 ‘보일 시(示)’ 자를 보겠습니다. 흔히 이 ‘보일 시(示)’ 자는 어떤 한자를 이루는 왼편에 오기 때문에 보일 시(礻) 변이라고 일컫습니다. 실제 각 자전에 수록되어 있는 부수 일람표에는 ‘보일 시(示) 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자가 과연 ‘보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뜻밖에도 이 ‘보일 시’가 변으로 쓰일 때 축복을 뜻하는 ‘복 복(福)’자나 복을 뜻하는 ‘복 상(祥)’ 자가 되는데, 과연 무엇이 보여서 복을 받고 상서로운 것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잠시 또 허신 선생을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허신은 이 ‘보일 시(示)’자를 풀이하기를 ‘신사야(神事也)’라고 하였습니다. ‘신을 섬김이다.’ 그러므로 이 ‘보일 시(示)’ 자는 ‘신을 섬길 시(示)’라고 해야 마땅할 듯 싶습니다. 줄여서 ‘하나님 시(示)’ 자입니다. 왜냐하면 단옥재(段玉栽)는 이 ‘示’ 자를 풀이하기를 “고문(古文)에 위에 있는 ‘두 이(二)’자는 ‘윗 상(上)’자요, 밑에 세 개가 드리워 진 것은 ‘일월성야(日月星也)’ 라고 하였습니다.” 즉 위에 있는 두 이(二) 자는 윗 상(上) 자의 옛 고문자요, 밑에 있는 ‘작을 소(小)’ 자는 해와 달과 별을 뜻합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과 너무 정확히 들어맞아서 오히려 제가 미안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내용을 간과한 채 ‘보일 시(示)’ 라고 가르쳐 왔던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이 너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는 보일 시 자를 하나님 시 자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야지 한자를 정확히 파자(破字)하여 뜻을 풀이할 수 있습니다. 부수(部首)란 어떤 한자의 중요한 부분 글자라고 하였습니다. 부수 한자는 전체 한자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른 명칭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자의 왼쪽에 위치하는 부수를 ‘변(邊)’이라고 하고, 오른쪽에 위치하는 부수를 ‘방(傍)’이라고 하며, 위쪽에 위치하면 ‘머리’ 혹은 ‘두(頭)’ 라고 하고, 아래에 위치하면 ‘받침’ 또는 ‘발’이라고 합니다. 글자의 왼쪽에 위치한 부수를 ‘변’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인(人)자가 왼쪽에 위치한 글자, 예를 들어 ‘믿을 신(信)’ 자에서는 ‘사람 인(亻) 변’입니다. 오른 쪽에 부수가 위치해 있다면 ‘방’이라고 합니다. 이때 ‘방(傍)’자는 ‘곁 방(傍)’ 자입니다. 가령 부수(部首)라는 단어의 ‘부분 부(部)’ 자는 오른 쪽 위치해 있는 한자가 부수이기 때문에 ‘고을 읍(阝=邑)방’ 부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 부수가 위치할 때는 이것을 ‘머리’ 혹은 ‘두(頭)’ 라고 하는데 갓머리(宀:집 면)니, 민갓머리(冖:덮을 멱)니 했을 때 이 명칭을 사용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풀 초(草)자가 들어가는 글자를 우리는 ‘초(艹) 두’라고 합니다. 또 밑에 위치하는 부수 한자를 ‘받침’ 또는 ‘발’이라고 하는데 ‘민책받침(廴:길게 걸을 인)’이니 ‘책받침(辶:쉬엄쉬엄 갈 착)’이니 할 때 이 이름이 들어감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54: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2-01 17:34:48 | 허광무
나는 요즘 우리 교회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분들이 모일까?
어떻게 이분들이 헌금을 해서 재정을 감당할까?
어떻게 청소하고 밥해서 먹을까?
나는 계획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에 몰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책상도, 책장도 정리하지 않습니다. 집중해서 일만 합니다.
교회의 경우 겨우 설교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한 게 없습니다.
늦으면 저녁 집회에도 못 갈 때고 있고 늦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가 열심히 청소를 해서 감동이 되어 교인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성도들이 봐 주어서 교회 청소도 거의 안 합니다.
주일 아침이 나의 유일한 휴식 시간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자고 보통 목사들보다 늦게 교회에 갑니다.
그래도 교육 목사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멀리 사는 형제자매들이 미리 와서 자발적으로 다 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신기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운전하면서 작고하신 어느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다닙니다.
꿀송이입니다.
"설교가 이렇게 좋구나, 나도 저렇게 물흐르듯 성령님에게 사로잡혀 설교해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쉼을 갖고 듣고 다닙니다. 영어를 알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공학을 한 사람이라 감정이 없습니다.
사실과 논리만으로 전하니 성도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좋은 목사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할 텐데"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내가 말하는 좋은 목사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심정으로 열정을 가지고 진리를 감동적으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오 주여, 이런 설교자들이 우리 가운데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잠언 4장을 드립니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9 10:54:4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30 23:47:59 | 관리자
공룡 바로 알기 세미나의 동영상과 세미나 자료가 자료실의영상 자료(창조와 진화 난)에 있습니다.
PDF파일과 함께 보기 바랍니다.
PDF 자료를 보아야 하므로 음성 파일을 올리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00:0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30 15:57:45 | 관리자
성경이 만든 한자 <제3강>
으뜸 원(元)
始也 。易曰元者氣之始也 。二古文上字卽天也
처음이다. 역에 가로되 元이라는 것은 기운의 처음이라 하였다. 二는 고문에 上(윗 상)자이니 곧 하늘이다. 으뜸=가장 귀함
(창 1:26)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 1:27)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이번에는 ‘으뜸 원(元)’자를 공부하겠습니다. ‘元’ 이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도가 상도(常道)라면 그 常道의 으뜸은 원(元)이요 형(亨)이요 이(利)요 정(貞)이다, 즉 ‘원형이정(元亨利貞)’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계절에 비유하여 말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春夏秋冬)이며, 또 사람에 비유하여 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유(四維), 즉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고 하늘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존재하듯이 하늘의 도(道)요 떳떳한 도(道)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원형이정의 원리는 동양의 유교철학입니다. 어찌하여 그들은 ‘으뜸 원(元)’ 자를 亨보다도 앞에 두었을까요? 이 원(元) 자를 풀어보겠습니다. 욥기서 40장 19절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을 때 그 처음이 바로 하나님이 두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전서체로 이렇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元은 ‘시야(始也)’ 라고 풀이했습니다. 으뜸이란 위라는 뜻이 아니고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이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역에는 ‘元’ 자는 ‘기지시야(氣之始也)’라고 하였습니다. 이 元이라는 것은 기(氣)의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지(之)’자를 기억하시죠. 之의 용법이 네 가지였습니다. 대명사, 어조사, 동사, 그리고 주격입니다. 여기서는 어조사로서 ‘~의’라는 뜻으로 풀이하니 ‘기의 처음’이라고 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氣)’ 란 무엇일까요? 氣 란 땅에서 안개가 올라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에서 운무가 피어나더라 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공중에 떠도는 그 많은 것들 중에 인간 각각이 받는 기를 우리 선조들은 영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영혼의 시작이 으뜸 원(元)입니다. 허신의 설문해자는 또다시 놀랍게도 이렇게 풀이해주고 있습니다. 원(元)의 두 이(二)자는 둘 이라는 수 이름이 아니고 위에 있는 하늘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정황을 봤을 때 중국과 한국의 고대사는 우리가 국경선을 만들기 이전에는 어차피 천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하나였고, 그 하나가 동양과 서양 둘로 나눠졌으며 그 동양과 서양이 바벨탑 사건 이후로 각각의 여러 지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양이 만들어낸 한자는 중국인이니 한국인이니 하기 이전에 동양인으로서 같이 창조하였고 발전하였을 것이며 계승시켰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 발원했던 우리 원래의 조상들이 이곳 따뜻한 한반도를 찾아오면서 우리 나름대로 문화를 꽃피웠고 세계 방방곡곡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한자문화는 우연이 아니고 천지창조의 섭리가 들어있다고 확신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 수많은 국가 중에 이 조그마한 대한민국 나의 조국이 GDP기준 세계 14위이며, 세계 도처에 선교사로 나가서 활동하고 있으며, 건설의 역군으로 일하고 있기에, 우리는 분명 위대한 민족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사명이 주어졌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20여 년 동안 고문자학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규명해 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어깨춤을 추었습니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31:4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20 17:24:23 | 허광무
성경이 만든 한자 -제 1강 천지창조 한 일(一) ‘유초태극 도립어일(惟初太極 道立於一)’
‘오직 맨 처음에 태극의 도가 一에서 세워졌다’
영국에 계시는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지상강좌를 통하여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성경이 만든 한자]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설문해자를 통하여 한자가 만들어진 원리가 성경과 얼마나 일치하는 가를 예를 들어가며 한자의 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이 강의를 맡게 될 사단법인 한중문자교육협회 이사장 박재성입니다.
그럼 첫 시간으로 한자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는 숫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한 일(一)자부터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일(一)자가 있습니다.
허신은 한 일(一)자를 ‘유초태극 도립어일(惟初太極 道立於一)’이라 하였습니다. ‘오직 맨 처음에 태극의 도가 一에서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道란 무엇일가요? 우리는 흔히 길 도(道)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道는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 도(道)’자였습니다.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이란 뜻으로 길 도(道)의 의미도 후에 추가했던 것이지요.
한자를 만든 원리의 한 가지를 뜻하는데 이것을 전주(轉注)라고 합니다.
전주(轉注)란 원래 뜻에 다른 뜻도 추가적으로 집어넣어 사용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樂’이란 한자는 원래의 뜻과 음(音)은 ‘즐겁다’는 뜻으로 ‘즐거울 락’이였는데, 후에 ‘좋아한다’는 뜻을 추가하여 ‘좋아할 요’라고도 읽게 되었고, 또한 ‘풍류’라는 뜻으로도 의미를 확대시켜서 ‘풍류 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音樂’이라는 단어는 ‘음악’이라고 읽어야 하고, ‘苦樂’이라는 단어는 ‘고락’이라고 읽으며, ‘樂山樂水’라는 글은 ‘요산요수’라고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길 도(途)자도 있는데 뜻도 같고 음도 같은 글자를 왜 또 만들어 놓았을까요?
이유 없이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한번 살펴봅시다. 이 길 도(道)자는 우두머리 수(首)자가 들어가 있는 글자입니다. 우두머리가 다니는 길은 어떻습니까?
고관들이 다닌 길은 아주 잘 닦여진 길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道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잘 뚫린 고속도로입니다. 그런데 이 길 도(途)자에는 나 여(余)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백성인 내가 다니는 길이므로 울퉁불퉁한 보통 길을 뜻합니다.
하늘의 道란 항상 상(常)자를 붙여 상도(常道)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常이라 함은 항상 상(常)입니다.
그래서 道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道가 아닙니다. 항상 있어야 하며 떳떳한 도입니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천체 우주는 영원불멸하다는 뜻입니다.
이걸 상도라고 하였으니 이 도가 一에서 세워졌다고 하니 얼마나 정확하고도 놀라운 표현입니까?
그것도 부족해서 허신은 덧붙여 말하기를 ‘조분천지(造分天地)’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1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고 이어서 2장 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분(造分)은 만들었다는 것만 아니라 나누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나누었냐고요?
작은 것도 아니고 천지(天地)를 나누었다고 하였습니다. 허신이 우주의 비밀을 모르고 어찌 이런 기막힌 말을 하였겠습니까?
다름 아닌 한 일(一) 자를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부족해서 ‘화성만물(化成萬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천지를 만들고 나누었더니 만물이 변화하여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 만물을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족종교인 동학에서도 하늘님이라고 하였고 중국인들도 상제(上帝)라고 하였으며 모든 민족들이 부르는 명칭만 다를 뿐이지 그 분은 의미는 다 같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一이라고 하는 한자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부수의 첫 글자의 의미를 떠나서 모든 한자를 만드는 기본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을 이루는 첫 출발점이 되었듯이, 한자를 이루는 한 일(一) 자도 단순히 하나를 뜻하는 ‘한 일’자가 아니고 ‘하늘 일(一)’ 로 가르치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성경이 만든 한자 제 2편
二
: 地之數也 一은 하늘의 숫자고 二는 땅의 숫자이며 오직 태초에 도가 一에서 섰다. 두 번째 글자 ‘두 이(二)’자를 보겠습니다. ‘두 이(二)’ 자도 하늘 있고 땅 있기 때문에 ‘두 이(二)’ 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듯 부수란 어마어마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창세기가 풀어 주고 있습니다. 허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지수야(地之數也)’라고 했습니다.
땅 지(地), 어조사 지(之), 셈 수(數), 어조사 야(也)자입니다. ‘어조사 지(之)’ 자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 之 자의 쓰임만 정확히 알아도 한문 실력이 많이 향상될 것입니다.
먼저, 대명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물의 이름을 대신하여 쓰이기 때문에 ‘이것, 그것, 저것’으로 쓰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애지(父母愛之)”라는 문장에서 ‘부모님께서 그것을 사랑하시다’라고 풀이하여 대명사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조사로 쓰입니다. 어조사란 한문에만 있는 품사로서 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의”라는 뜻입니다. 사자성어에서 세 번째 있는 지(之) 자는 주로 “~의”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새옹지마(塞翁之馬)’ 하면 ‘변방에 사는 할아버지의 말[馬]’이라 하여 소유격 어조사로 쓰이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는 주격조사 ‘은, 는, 이, 가’로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왕지불왕(王之不王)’은 왕이 왕노릇 하지 못한다’라고 풀이합니다. 네 번째는 동사로 쓰입니다. 그래서 “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필곡지(出必告之)’를 ‘나아갈 때는 반드시 뵙고 청하고 가라’의 풀이하듯이 이때는 갈 지(之)라고 읽습니다.
이 네 가지 의미 중 ‘지지수야(地之數也)’에서는 어조사로서 ‘땅의 수이다’라는 뜻입니다. 즉 두 이(二)자는 하늘이 아니고 땅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남향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남쪽을 잘 바라볼 수 있는 북쪽에는 임금의 자리가 있게 되는데, 그곳에서 임금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왼쪽을 ‘동(東)’이라하고 오른 쪽을 ‘서(西)’라 합니다. 해가 뜨는 쪽이 남성, 즉 양수(陽數)인 ‘一’이 되고, 결혼을 할 때도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 쪽에 섭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쪽이라 하여 음수(陰數)인 ‘二’가 됩니다. 그래서 절을 할 때도 남자는 양이니 한 일(一), 한 번 하고, 여자는 음이니 두 이(二), 두 번 합니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음양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숫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단추 구멍도 남자는 왼쪽에 달려 오른쪽을 덮어 주게 되어 있고 여자는 반대로 되어 있는 이치 하나하나가 이미 창세기에는 정확히 예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허신은 놀라운 통찰로 한 일(一), 두 이(二) 등 가벼운 글자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설문해자를 통하여 하늘이 낸 비밀로 우리에게 전수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역에 말하길 ‘천일지이 유초태시 도립어일(天一地二 惟初太始 道立於一)’이라 하였습니다.
‘一은 하늘의 숫자고 二는 땅의 숫자이며 오직 태초에 도가 一에서 섰다’는 뜻입니다. 주역은 이어서 ‘유일이후유이 원기초분(有一而後有二 元?初分)’이라 하였습니다. 즉 ‘一이 있은 후에 二가 있었고, 원기가 처음 나눠졌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元’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1. 소학(小學)에 보이는 문장으로 ‘曾子曰 父母愛之 喜而弗忘 ~’에 보인다. 그 뜻은 ‘증자 말하였다. ‘부모님께서 그것을 사랑하시거든 기뻐하여서 잊어서는 아니 된다.~’이다.2. 맹자(孟子)의 양혜왕 장구(梁惠王章句)에 보이는 문장으로 ‘故 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에 보인다. 그 뜻은 ‘그러므로 왕이 왕노릇하지 못함은 하지 않는 것일지언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이다.3. 사자소학(四字小學)에 보이는 문장으로 ‘出必告之 返必拜謁’에 보인다. 그 뜻은 ‘나갈 때에는 반드시 뵙고 청하고 가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절하고 뵈어라.’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31:4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20 17:19:48 | 허광무
퍼온 글 입니다.
1900년전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창세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전 성균관 검정 국장 박재성 선생 런던타임즈 특별 연재 제 1 강의 런던타임즈 LONDONTIMES
夏川 박재성 선생의 지상강의가 매주 런던타임즈에서 연재될 예정이다.
성균관 검정국장(2003-2007)을 역임한 박재성 선생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그 명성이 높다 할 것이다.
중국 산동대학 객원교수를 맡고 있는 박재성 선생의 [성경이 만든 한자] DVD판은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선교활동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런던타임즈의 원고청탁을 흔쾌(欣快)히 허락한 박 이사장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박 이사장은 [성경이 만든 한자] DVD 2질을 보내 영국 동포뿐만 아니라 해외 선교를 하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였다.
매주 연재될 [성경이 만든 한자]를 통해 동양의 높은 학문 세계를 독자제위께서 공감하시기를 고대하는 바이다.
가능하다면 박 이사장을 영국으로 초청하여 한국 동포들 뿐만 아니라 영국 현지인들도 [한자와 성경]강의의 바다에 몰입하는 진리의 기쁨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런던타임즈 편집부- 지금부터 1900년 전에 동양인으로서 창세기의 내용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전화가 있지도 않았으며 인터넷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중국인이 서양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bible의 내용 중 창세기 내용을 증거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다들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그건 분명한 역사와 문헌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서기 100년 중국에 있었던 한나라의 허신(A.D 58년경~147년경)이란 인물이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됩니다. 바로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입니다.이 책은 9353자의 한자의 근원을 규명하였는데,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 책을 능가하는 한자 자원을 해석한 책이 없다는 데 대하여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한자의 근원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이 책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해석의 오류로 잘못 전달되고 있을 뿐입니다.이 책을 근거로 보면 수많은 한자가 분명히 창세기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19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당시의 환경과 문화와 교육 수준을 기초로 <설문해자>를 저술하였다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뜻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고고학 수준의 비밀을 풀어야 하는 어려움을 느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공을 초월해서 현대에도 한자를 교육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 책을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중국은 56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입니다. 그 중에서 인구 90%의 한족이 주축이 되어서 대부분의 역사를 계승하였습니다.중국 한족의 발생 기원은 대략 BC 2,500년경으로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는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이 있었던 때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물들의 족보를 통해 생존연대를 추적해 보면, 바벨탑 사건은 BC 2,218년에 일어났던 역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세상은 하나의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죄가 시작되었으며, 노아 시대의 대홍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방주에 들어갔던 노아의 여덟 식구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노아의 후손들 대부분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할 목적으로 하늘에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이 무렵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각지로 흩어져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권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 동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의 일부는 황하 유역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바벨탑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발생한 예술이나 학문, 그리고 통치 구조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바벨탑 황하 유역으로 이주해 온 한족의 조상들은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고대의 조상에게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하나님의 천지 창조 때부터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구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림 문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구전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최초의 인류의 역사에 대한 내용을 기초로 해서 문자의 근원을 정리한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허신의 『설문해자』라는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창세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夏川 박재성
어려서부터 송담 이백순 선생께 한학을 수학하고송곡 안규동 선생께는 서예를 사사받았으며 광주대학교 문헌정보학과와 국민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석사과정을 마쳤다.
1984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1988년에는 성경서예전을 개최했고 유교 경전인 13경을 통달하여 2003년부터 4년간 성균관 검정 국장으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누구나 쉽게 읽힐 수 있는 『게임한자』와『노래로 배우는 한자』를 개발했다.
중국 산동대학 객원 교수이며 (사)한중문자교육협회 이사장으로 홍익대국제연수원에서 한자를 가르치고 있으며 대전 극동방송에 출연해 『성경이 만든 한자』를 강의하고 있다.
성경이 한자의 형성과정에 미친 영향을 알리고 우리나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자문화권에 있는 나라들의 선교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성경이 만든 한자』(DVD)를 보급중이며,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성경이 만든 한자』가 도서로 출판되어 금년 5월경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저서로는 『서예인을 위한 한문정복요결』(국제문화사)『노래로 배우는 재미있는 한자공부』(예지원)『한자활용보감』(학일출판사)『제대로 할 수 있는 한자 지도』(이지한자)『금성푸르넷 게임한자』(금성출판사)『한자지도사 양성교재』(재단법인 성균관)『한자지도사 특강』(학일출판사)『간체자로 익히는 재미있는 한자』(하늘과 땅)『상용한자로 배우는 간체자 606』(현문미디어)『우리말로 찾는 한자사전』(도서출판 예지원)『성경이 만든 한자(DVD)』(주)번체와 간체『성경이 만든 한자(도서)』(주) 드림북스 등이 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31:4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20 17:16:28 | 허광무
흠정역-[이사야14: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
이 사이트의 루시퍼에 대한 내용도 다 읽어 보았습니다.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오직 진리에 대한 갈구함으로 합니다)
----------------------------------------------------------------------------------------------------------
1. 이사야 14장 11절까지는 바벨론 왕에 대한 경고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루시퍼에 대한 내용으로
바뀝니다. 문맥의 전개상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바벨론왕과 루시퍼의 상관성이 있습니까?
2. '루시퍼=사탄' 이라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요. 단지 전체 성경을 읽어보니 그렇게 밖에 해석이 되어질 수 밖에
없어서 그런지요.
3. 사탄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여러번 나오는데, 그 때 왜 '루시퍼'라는 이름을 직접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또 다른
사탄이 여럿 있다는 의미인가요?
저는 흠정역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흠정역이 더욱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증명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25: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1-12 19:01:53 | 박준화
오늘날 기독교의 마약같은 고질적인 문제의 큰 원인은그리스도인들이 체험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뜨거운 체험, 뭔가 보고 강렬한 느낌을 얻고 싶은 체험 .주님을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고환상과 예언, 입신, 방언등으로 체험해서 영적인 우월성도 얻고 스스로 체험으로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신앙의 타락과 교회의 타락을 가져온 것이다.
신사도운동, 이머징교회, 각종 신비주의,. 영성운동이 활개를 치면서 교회를 막장으로 몰고가는 것이체험의 우상을 섬긴 결과다
목사들은 어디서 이상한 은사를 배워와서 교회에서 선지자 노룻하고, 사도노룻하고, 예언자 행세해서 권위를 높히고 헌금을 더 많이 울겨내고,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해가며 목회를 해야 주변에서 대단한 목사로 추켜세워준다
모두가 체험의 우상에 빠진 것이다.....
신약성경의 서신서를 읽어보면 그많은 체험을 한 사도바울이나 베드로, 야고보 등 예수님의 직계제자들인 이들은 체험을 해볼만큼 해보았는데도자신의 체험에 대해 그렇게 언급하지 않고다루지도 않는다
오늘날 같은 목사들같으면 아마도 위성방송, 모든 언론매체 불러다 종합운동장에서자신이 체험한 내용으로 멋지게 쇼하고, 안수하고, 난리 부르스를 추었을텐데사도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독교는 명제적인 진리를 우선하고 그것으로 믿음을 관리하며 믿음을 세우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오늘날 처럼 체험을 우상으로 섬기는 시대가 과거 기독교역사에서 있었던가 !!!!!
로마천주교같은 우상숭배집단들이나 지금도 성유물숭배하면서 온갓 사이비. 사기치는 것을개신교가 그대로 흉내내면서 영적인 바벨론을 만들고 영적인 오물통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여기저기 세미나, 집회, 교회들이 하는 다양한 예배, 기도회가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며 그분의 뜻을 순종하는 것을 내버리고오직 온갓 사이비 체험을 통해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려는 것이바로 병들고, 타락하고, 비성경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정통 기독교는 철저하게 성경의 말씀/계시 의존적 신앙이다.
이것이 가장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을 만들고참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길이다.
그런데 20세기 초반부터 사이비 오순절 운동이 전세계 교회를 쓰나미처럼 휩쓸어오늘날 교회를 이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오순절은 사이비이며, 비성경적이고, 더러운 누룩이다교회를 오염시키고 타락하게 하며 로마천주교와 연합을 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오늘날 개신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려면 오순절 신앙/신학을 버리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것을 끝까지 끌어안고 가다가는 교회는 더더욱 영적인 타락의 수렁에서 벗어날수가 없다독사를 품에 안고 자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사실을 목사들과 신학생들이 먼저 깨달아 올바른 성경/교리를 가르치는 데 전념하라지금의 교회가 속히 성경의 자리에 다시 정착하는 것이교회개혁과 부흥의 첫걸음이다.
오인용목사 청교도개혁주의 도서보급선교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20: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0-22 08:53:18 | 김학준
오순절 은사 운동 바로 알기 책을 펴내면서 간단히 동영상을 올립니다.
오순절 은사 운동 바로 알기 동영상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77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1:54: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0-14 09:01:58 | 관리자
가톨릭의 신비적 영성에 중독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위험 김성건 논설위원/서원대 교수 지성사적으로 보아, 미국의 히피 그룹을 위시해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성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反)문화운동이 잇달아 격렬하게 전개된 것은 지난 196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대표한 거대 관료 조직으로서 가톨릭교회는 자연스럽게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의 보편적 교회를 표방하는 가톨릭교회로서는 그 같은 비판적인 저항의 시대 조류에 어쩔 수 없이 부응해 모종의 신학적 대타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가톨릭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무려 3년간에 걸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 타종교에 대한 종전의 권위주의적, 배타적 태도를 바꾸어 종교 간에 대화를 앞장서서 추구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초교파주의)의 선봉에 서는 등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쪽으로 일대 신학적 전환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교리)과 개신교회의 가르침 양자 사이에 종래 존재했던 뚜렷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흐려지게 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는 지난 18세기 말 조선에서 포교가 처음 시작된 이래 수많은 종교적 희생자 곧, 순교자를 내는 등 줄곧 강하게 이단시하고 금지했던 유교적 조상제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한 부분으로 돌연 인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보아, 지난 1세기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결과로 초대 교회가 출현한 이후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중 3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국교로 공인됐다. 그렇지만 그 당시 가톨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그 주위에 있었던 이방 종교들의 주술적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한 전통이 오늘까지도 면면히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1960년대의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을 배경으로 지난 1980년대에 출현한 ‘탈근대’, ‘다원주의’, ‘개인주의’, ‘감성’ 등으로 표상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흐름과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나타난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 아래 세계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 전반 특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약 10년 전부터 ‘제도 종교’와 구별되는 주관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크게 고조됐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특별히 끄는 측면은 바로 2006년 말 오늘에 이르러서는 본질적으로 다분히 주술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가톨릭 영성’이 16세기 말 당시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등 각종 주술 타파를 목표로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에 마저도 조금씩 미묘하게 침투해 이제는 사실상 거의 지배하게 된 새롭고도 자못 흥미 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복음주의 신앙은 마땅히 가톨릭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믿는 한 사람의 개신교 신자로서 최근에 한국 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이것의 위험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야말로 현재 침체 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의 이노베이션을 위해 여러모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스타일의 영성’ 혹은 달리 말해서 ‘종교개혁 이전의 영성’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영성은 많은 경우 이방 종교들로부터 차용된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의례적인 기도 혹은 지루한 되풀이 기도, 영창, 곧 시편 따위의 글귀를 단조롭게 읊는 일,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meditation), 집중기도(centering prayer), 곧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단순히 안식을 취하는 명상적 행위 등이다. 그래서 약 120년 전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이래 현재까지도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북미의 주요 신학교중 거의 가장 대표적 기관인 초교파적 풀러신학교의 ‘영성’ 코스 관련 주요 필독 도서 목록에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 신학교들의 각종 ‘영성’ 과목의 경우도 저자의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퍼스(Thomas A. Kempis) 등 로마 가톨릭 신자인 것을 새삼 주목할 수 있다. 한편, 금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해 연일 개최한 집회를 통해 국내의 수많은 성도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남가주 소재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 이 릭 워렌 목사 역시 명상, 집중기도 및 여타 가톨릭의 이교도적 영성 형태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로마 가톨릭 저자들의 주장을 자신의 저작이나 설교에서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 예로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워렌 목사는 존 메인(John Main)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인은 베네딕트 수도사로서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지도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같은 우리들 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워렌 목사는 북미 기독교계에서 현재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국내 기독교계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주목을 받은 바도 있는 <영적 훈련과 성장>과 <기도>의 저자인 퀘이커 출신의 신비주의자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강조하는 ‘명상’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시대의 영성신학자를 대표하는 목사로 이미 잘 알려진 포스터가 창시한 이른바 ‘레노바레’(Renovare) 운동은 오늘날 미국의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를 위시해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상의 각종 테크닉에 바탕을 둔 레노바레 운동은 본래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진보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교파주의(ecumenism)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운동이다. 주지하듯이 교파 간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은 기본적으로 교리(doctrine)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로써, 필자는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종교적(가톨릭) 신비주의’와 ‘성서적 영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는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 내의 ‘신비주의의 발전’과 ‘성령운동의 번성’ 양자 사이에 매우 흥미 있는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운동(Pentecostalism)과 카리스마 운동들은 놀랍게도 많은 측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속에서 발전한 신비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인 존 윔버(John Wimber) 같은 이가 그의 책 <파워 이반젤리즘(Power Evangelism)>에서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를 아무런 문제없이 추천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로마 가톨릭 진영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관점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카리스마적 부흥을 위한 예언자적 충동(자극)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 경험, 비전(환상), 내적 목소리, 황홀감과 엑스터시, 진위가 의심스러운 예언하기, 모종의 힘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각종 방언 따위 같은 카리스마 운동과 오순절 성령운동의 주요한 표현들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 신비주의와 일치한다.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오순절 성령운동 및 카리스마운동 추종자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톨릭신앙과 새로운 복음주의가 기묘하게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왜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될까? ‘교리’(doctrine, 신조)와 ‘헌신/신앙심’(devotion)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교리는 자연적으로 올바른 헌신/신앙심을 갖다 준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차제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감정주의’(religious emotionalism)를 ‘기독교 영성’과 잘못 동일시하는 오류를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유명한 간증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틱한 중생 체험과는 뚜렷이 모순 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일으킴으로써 기독교의 공신력이 크게 추락하는 일이 종종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구굿닷컴 이영주 기자의 2006년 12월 25일자 글 ‘드라마틱한 간증의 함정’ 참조). 이는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에 대한 강단의 가르침(설교)과 기독교계 언론의 수준 양자 모두가 아직 매우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잘 방증한다. 끝으로, 필자는 신비적 경험에 대한 우리 개신교 크리스천의 사고를 기본적으로 틀 지우는 데 중심이 될 수 있는 두 개의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신뢰가 나타나 있는 시편 131편과 천사숭배와 금욕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는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20:3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10-01 23:59:31 | 관리자
알파코스, G12 프로그램을 도입한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열린 예배를 하고 있다. 열린 예배의 기원은 미국이며 빈야드 운동을 하는 존 윔버의 교회와 릭 워렌의 새들백 교회, 하이블스의 윌로우크릭 교회, 조엘 오스틴의 리이크우드 교회 등 이머징 처치들로부터 시작하여 한국 교회들에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머징 처치 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열린 예배이다. 그러나 이 이머징 처치 운동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영향이라는 비판이 미국에서 일고 있다. 특별히 알파코스와 G12 비전을 하는 교회들은 기존의 전통 예배를 전부 열린 예배 체제로 바꾸고 있다. 그것은 알파코스와 G12 자체가 능력 예배, 능력 찬양, 능력 전도를 강조하면서 전통 예배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조차도 빈야드 교회의 예배로 바꾸라는 것이다.
G12는 특히 예배의 강렬성을 요구하는데 이 G12의 열린 예배에 참석하면서 본인이 느낀 몇 가지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열린 예배에서는 기존의 찬송가 대신 CCM을 주로 사용한다. 그 곡의 근원이 어디이든지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만 붙으면 찬양 곡의 자격이 된다. 심지어는 사탄숭배자들이 퍼뜨린 곡과 뉴에이지 음악에 예수와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만든 찬양도 있는데 이것도 묻지 않는다. CCM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하여 검증되지 않고 여과되지 않은 음악이다.
2. 열린 예배에서의 가장 주된 악기는 신디사이저와 드럼과 전자 기타이다. 전자화된 음이 예배자를 리드한다.
3. 열린 예배의 단상은 찬양 리더와 악기 연주자들에 의하여 점령된다.
4. 열린 예배에서는 악단 연주의 볼륨을 극단적으로 올려서 일차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청각적 감성적 질서를 마비시키고 소리로써 예배자를 제압한다.
5. 일단 제압된 예배자는 인도자의 감정을 흥기시키는 제스처와 열광하게 하는 멘트에 동화되며 감정의 최고조 상태에 빠진다. 인도자와 찬양 리더들은 예배자들이 동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하도록 유도한다.
6. 예배자는 예배자가 가지고 있는 지정의가 균형 있게 갖추어진 채 거룩한 마음으로 예배 드릴 여유도 없이 오로지 감정적 흥기 상태로만 이입되어 버리며 예배당은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7. 예배자들이 찬양을 통하여 감정적이 되며 클라이맥스 시점이 되면 설교자는 연극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예배 의장도 갖추지 않은 복장으로 단상에 등장하여 설교를 시작한다.
8. 감정이 흥기된 예배자는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별로 대수로운 말도 아닌데) 아멘 아멘하게 되어 있다.
9. 설교자는 대부분 예배자의 기분을 좋게 하는 성공주의, 기복주의, 행복추구주의 설교를 한다. 간혹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인의 희생적 삶에 대하여 설교하더라도 이 설교는 말로 그칠 뿐이며 전체적으로 보면 설교자는 예배자를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로 이끌어간다.
10. 설교자는 단상에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단상을 휘저으며 걸어 다니며 강한 제스처까지 보이며 설교를 한다.
11. 이러한 열린 예배를 통하여 목사의 카리스마는 자동적으로 높여진다.
12. 이러한 열린 예배의 분위기가 자연적으로 온 교회의 교인에게 젖어들게 되면 수양회나 저녁 예배 등을 통하여 은사주의 사역을 실시한다. 이때 방언을 하도록 격려하고, 쓰러뜨림과 각종 표적 보임, 축사 등을 시행한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목사의 카리스마는 더욱 고양되며 그읜 위상은 높아지고 능력과 병 고침을 행하는 목사로 소문이 나며 군중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게 된다.
참으로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받으실 것인가? 열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감정이 고양된 상황 또는 열광하는 상태를 성령의 충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배는 의식이다. 예배는 가장 선별되고 거룩한 것을 우리의 마음에 실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이에 대한 급부로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을 받는 자리이다.
예배에서는 찬양도 세속화되지 않은 것을 선별해야 하며 정숙한 마음과 몸가짐이 필요하고 또 감정과 이성의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너무 기뻐서 춤추고 싶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의식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날뛸 수 있단 말인가 ? 날뛰고 싶도록 기쁘지만 절제해야 한다. 통곡하며 마음을 쏟아 놓고 싶지만 절제해야 한다. 예배자가 내는 소리와 악기의 소리도 조심스럽고 경건하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술자리의 노래처럼 볼륨을 최고로 올려놓고 고성방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예배 처소는 하나님이 계신 자리이다.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자리이다. 그렇게 날뛰지 않아도 통곡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신다. 예배는 어떻게 하든지 정결하고 거룩한 것을 드리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외양적으로도 그렇게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열린 예배 처소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가 아니라 예배자가 도취되어 일방적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리로 변하여 버렸다. 요란한 신디사이저와 전자 기타와 드럼의 귀가 찢어질 정도의 엄청난 소리에 자극되고 조작된 감정만이 난무한다. 여기에 설교는 예배자의 비위를 맞추는 세속적 것으로 끝나버린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말인가?
이런 열린 예배를 하면 당장 성도들이 꼬이고 교회는 성장할 지 모른다. 겉으로는 교회의 분위기가 정열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연극의 연출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같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이도록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성도들은 복음의 정수를 맛보지 못한 채 늘 영적 갈증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고 더 강한 열광과 은사주의를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들은 지금 시급히, 너무도 시급히 이 열린 예배의 정체에 대하여 논하고 성도들을 오도하는 잘못된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
2009-09-30 21:02:21 | 관리자
가톨릭의 신비적 영성에 중독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위험 김성건 논설위원/서원대 교수 지성사적으로 보아, 미국의 히피 그룹을 위시해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성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反)문화운동이 잇달아 격렬하게 전개된 것은 지난 196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대표한 거대 관료 조직으로서 가톨릭교회는 자연스럽게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의 보편적 교회를 표방하는 가톨릭교회로서는 그 같은 비판적인 저항의 시대 조류에 어쩔 수 없이 부응해 모종의 신학적 대타협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가톨릭교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무려 3년간에 걸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 타종교에 대한 종전의 권위주의적, 배타적 태도를 바꾸어 종교 간에 대화를 앞장서서 추구하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초교파주의)의 선봉에 서는 등 이른바 종교다원주의 쪽으로 일대 신학적 전환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교리)과 개신교회의 가르침 양자 사이에 종래 존재했던 뚜렷한 간격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흐려지게 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는 지난 18세기 말 조선에서 포교가 처음 시작된 이래 수많은 종교적 희생자 곧, 순교자를 내는 등 줄곧 강하게 이단시하고 금지했던 유교적 조상제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한 부분으로 돌연 인정되는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보아, 지난 1세기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결과로 초대 교회가 출현한 이후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중 3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국교로 공인됐다. 그렇지만 그 당시 가톨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그 주위에 있었던 이방 종교들의 주술적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한 전통이 오늘까지도 면면히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1960년대의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을 배경으로 지난 1980년대에 출현한 ‘탈근대’, ‘다원주의’, ‘개인주의’, ‘감성’ 등으로 표상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흐름과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나타난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 아래 세계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 전반 특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약 10년 전부터 ‘제도 종교’와 구별되는 주관적 ‘경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크게 고조됐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특별히 끄는 측면은 바로 2006년 말 오늘에 이르러서는 본질적으로 다분히 주술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가톨릭 영성’이 16세기 말 당시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등 각종 주술 타파를 목표로 이루어진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에 마저도 조금씩 미묘하게 침투해 이제는 사실상 거의 지배하게 된 새롭고도 자못 흥미 있는 현상이다. 필자는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은 복음주의 신앙은 마땅히 가톨릭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믿는 한 사람의 개신교 신자로서 최근에 한국 교회에 침투한 ‘가톨릭 영성’의 문제와 이것의 위험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야말로 현재 침체 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의 이노베이션을 위해 여러모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스타일의 영성’ 혹은 달리 말해서 ‘종교개혁 이전의 영성’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영성은 많은 경우 이방 종교들로부터 차용된 것으로서, 예를 들자면 의례적인 기도 혹은 지루한 되풀이 기도, 영창, 곧 시편 따위의 글귀를 단조롭게 읊는 일,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meditation), 집중기도(centering prayer), 곧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단순히 안식을 취하는 명상적 행위 등이다. 그래서 약 120년 전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이래 현재까지도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북미의 주요 신학교중 거의 가장 대표적 기관인 초교파적 풀러신학교의 ‘영성’ 코스 관련 주요 필독 도서 목록에는 물론 한국의 대표적 신학교들의 각종 ‘영성’ 과목의 경우도 저자의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퍼스(Thomas A. Kempis) 등 로마 가톨릭 신자인 것을 새삼 주목할 수 있다. 한편, 금년 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해 연일 개최한 집회를 통해 국내의 수많은 성도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미국 남가주 소재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 이 릭 워렌 목사 역시 명상, 집중기도 및 여타 가톨릭의 이교도적 영성 형태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로마 가톨릭 저자들의 주장을 자신의 저작이나 설교에서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 예로서,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워렌 목사는 존 메인(John Main)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인은 베네딕트 수도사로서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의 지도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같은 우리들 속에 남아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워렌 목사는 북미 기독교계에서 현재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국내 기독교계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주목을 받은 바도 있는 <영적 훈련과 성장>과 <기도>의 저자인 퀘이커 출신의 신비주의자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강조하는 ‘명상’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시대의 영성신학자를 대표하는 목사로 이미 잘 알려진 포스터가 창시한 이른바 ‘레노바레’(Renovare) 운동은 오늘날 미국의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를 위시해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상의 각종 테크닉에 바탕을 둔 레노바레 운동은 본래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진보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교파주의(ecumenism)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운동이다. 주지하듯이 교파 간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은 기본적으로 교리(doctrine)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로써, 필자는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종교적(가톨릭) 신비주의’와 ‘성서적 영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는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교회 내의 ‘신비주의의 발전’과 ‘성령운동의 번성’ 양자 사이에 매우 흥미 있는 관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운동(Pentecostalism)과 카리스마 운동들은 놀랍게도 많은 측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속에서 발전한 신비주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인 존 윔버(John Wimber) 같은 이가 그의 책 <파워 이반젤리즘(Power Evangelism)>에서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를 아무런 문제없이 추천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로마 가톨릭 진영 속에서 수용되고 있는 관점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카리스마적 부흥을 위한 예언자적 충동(자극)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 경험, 비전(환상), 내적 목소리, 황홀감과 엑스터시, 진위가 의심스러운 예언하기, 모종의 힘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각종 방언 따위 같은 카리스마 운동과 오순절 성령운동의 주요한 표현들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 신비주의와 일치한다. 오늘날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오순절 성령운동 및 카리스마운동 추종자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톨릭신앙과 새로운 복음주의가 기묘하게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왜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게 될까? ‘교리’(doctrine, 신조)와 ‘헌신/신앙심’(devotion) 사이에는 종종 긴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교리는 자연적으로 올바른 헌신/신앙심을 갖다 준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차제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감정주의’(religious emotionalism)를 ‘기독교 영성’과 잘못 동일시하는 오류를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 교회 내에서 유명한 간증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틱한 중생 체험과는 뚜렷이 모순 되는 치명적인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 일으킴으로써 기독교의 공신력이 크게 추락하는 일이 종종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구굿닷컴 이영주 기자의 2006년 12월 25일자 글 ‘드라마틱한 간증의 함정’ 참조). 이는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에 대한 강단의 가르침(설교)과 기독교계 언론의 수준 양자 모두가 아직 매우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잘 방증한다. 끝으로, 필자는 신비적 경험에 대한 우리 개신교 크리스천의 사고를 기본적으로 틀 지우는 데 중심이 될 수 있는 두 개의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신뢰가 나타나 있는 시편 131편과 천사숭배와 금욕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는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이다.
2009-09-28 13:15:40 | 관리자
로마 카톨릭이 가르치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교리 62가지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이것을 보시면 카톨릭과 제대로된 교회간의 차이가 불분명하셨던 분들도 차이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있는 자료 이며 출처는 하단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목사님, 혹시 아래 내용중에 잘못된 내용을 발견하시면, 추가 설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구원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는 카톨릭의 잘못 된 교리 1~24 * 빨간색이 카톨릭 교리이며, 그 문장 끝에 기록된 숫자는 카톨릭 교리 문답의 번호이다.
1. 의롭게된다는 것은 영혼 속에 있는 원죄를 정결하게 하는 은총을 주입(注入:infuse) 함으로 써 된다(1987-1995). 성경의 가르침: 의롭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죄인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죄를 사하시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시는 것이다(롬3:21,4:8).
2. 처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온다(1262-1274). 성경의 가르침: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서만 이다(롬 3:28).
3. 성인은 의롭게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착한 일을 함으로써 준비하여야한다.(1247-1249). 성경의 가르침: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신다(롬 4:5). 믿는 자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구원받은 결과에서 오는 것이다(엡 2:8-10).
4. 의롭게된 신자는 그들 자신이 보기에 아름답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 (1992, 1999-2000, 2024). 성경의 가르침: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만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엡 1:1-14). 5. 의롭게된 신도들은 일곱 가지 성사와 선행을 통하여 이를 증진시킨다(1212, 1392, 2010. 성경의 가르침: 우리가 의롭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의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고후 5:21).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하게된다(골 1:28).
6. 이미 의롭게 된 신자들이 도덕적으로 죄를 범함으로 의롭게 된 것을 상실한다(1033, 1855, 1874). 성경의 가르침: 한번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그것을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정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다(롬 5:8-9).
7. 비도덕적인 작은 죄를 범했을 때 일곱 가지 성사를 통하여 다시 의롭게 된다(980, 1446). 성경의 가르침: 두 번째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그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8.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과정은 평생에 걸쳐 되는 일이다 (161-162, 1254-1255) 성경의 가르침: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게된 인간의 구원은 구원을 받는 순간에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보장하신다(롬 5:19).
9. 구원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행과, 일곱 가지 성사에 참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183, 1129, 1815, 2002). 성경의 가르침: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엡 2:8-9). 구원받은 자들의 선행은 구원을 받은 것의 결과이며, 구원의 원인이 아니다.(엡 2:10).
10. 믿음은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가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181-182, 1814). 성경의 가르침: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롬 10:8-17).
11. 씻음을 받은 은총은 우리 영혼의 고상한 질(質)을 말하며, 우리 영혼이 완전하게 되는 신비적인 과정이다(1999-2000). 성경의 가르침: 은혜는 우리가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엡 1:7-8).
12. 일곱 가지 성사는 은혜를 계속해서 받게되는 절대로 필요한 통로(channels)가 된다 (1127-1129).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는 계속하여 아버지께서 은혜를 내리시는 대상이 되어있다(롬 5:1-2).
13. 은혜는 착한 일을 함으로 써 더욱 더 많이 얻게된다(2010, 2027). 성경의 가르침: 은혜는 그저 얻는 선물이다(롬 11:6).
14. 작은 죄를 짓는 것으로는(비도덕적 죄)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는다(1855-1863). 성경의 가르침: 모든 죄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만든다(롬 6:23).
15. 심각한 죄는 신부(神父) 앞에 고백하여야한다(1456-1457). 성경의 가르침: 지은 죄는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여야한다(스 10:11).
16. 신부는 심판관의 역할을 하므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1442, 146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없다(막 2:7).
17.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지만, 그에 대한 형벌은 남아있다(1472-1473).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그것은 완전히 용서하시는 것이다(골 2:13, 사 43:25).
18. 고해성사를 시행함은 죄에 대한 임시적인 형벌을 만족시키는 것이 된다(1434, 1459, 1460).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께서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온전하게 하신다(요일 2:1-2).
19. 신도들의 신앙심을 얻게 하기 위하여 교회가 분배(分配)한 면죄부(免罪符)를 받은 것은, 죄인들이 임시적인 형벌을 면하게 하는 것이다(1471-1473).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께서 그의 흘리신 피로써 믿는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신다(계 1:5).
20. 지은 죄를 씻고 사함을 받기 위하여 연옥이 필요하다(1030-1031). 성경의 가르침: 연옥이란 성경에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신다(히 1:3).
21.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선행을 하거나, 미사를 드림으로 연옥에서 가난한 심령이 고통을 받는 것을 돕는다(1032, 1371, 1479).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안에서 자는 자들은 인간의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후 5:8).
22. 믿는 자들 중 아무도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1036,2005).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것을 알게된다(요일 5:13).
23. 영생은 선한 삶의 보상이다(1821, 2010).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이 얻는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롬 6:23).
24. 로마 카톨릭 교회는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데 필수적이다(846). 성경의 가르침: 구원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인간이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셨다.
미사(성체성사)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25~39
25. 예수님께서 베푸신 마지막 성찬은, 우리의 죄인을 위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의 피를 잔에 부어 넣으신 것이다(610-611,621, 1339).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은 유월절의 음식을 나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은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벧전 2:24).
26.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이 되고 그리스도의 피가 된다(1373-1377). 성경의 가르침: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상징이다(고전 11: 23-25).
27.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카톨릭 교회가 시행한 성체성사의 떡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전반적으로 또한 완전하게 나타난다(1374, 13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천국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히 10:12, 13).
28. 거룩하게 구별된 빵과 포도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이므로, 신자들이 영생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1392, 1405, 1419). 성경의 가르침: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다(눅 22:19).
29. 거룩하게 구별된 빵과 포도주는 거룩하므로, 그것에 예배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1378-138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어떠한 대상이 비록 그것이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더라도, 그것에다 예배하는 것을 금지하셨다(출 20:4-5, 사 42:8).
3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희생하심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신부(神父)들의 성직을 안수하셨다(1142, 1547, 15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기름 부어 안수하셨다. 그들은 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릴 것이며 그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벧전 2:5-10, 히 13:15, 롬 12:1).
31. 미사에서 경험하는 희생은 십자가의 희생이다(1085, 1365, 1367). 미사를 베푸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136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약 2000년 전에 예루살렘 성밖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다(막 15:21-41).
32. 십자가의 희생은 미사에서 경험할 희생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1323, 1382). 성경의 가르침: 십자가의 희생은 예수님께서 단번에 받으신 것이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요 19:30).
33. 희생과 죽음을 당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미사를 통하여 나타나신다(1353, 1362, 1364, 1367, 1409).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영원히 사셨다. 그리스도께서 희생과 죽음을 위하여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계 1:17,18, 롬 6:9-10).
34. 각 미사 때마다, 신부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대표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가는 것이다(1354, 135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자신을 희생 제물로 아버지께 단번에 드리셨으며, 역대에 살던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신 것이다(히 9:24-28).
35. 다시는 피를 흘리지 않는 희생으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1367, 1371, 1414) 성경의 가르침: 피 흘리는 일 없이는 죄 사하심이 없다(레 17:11, 히 9:22).
36. 성체성사의 행사마다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시킨다(1371, 1414). 성경의 가르침: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제사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진정 시킨다(히 10: 12-18).
37.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충분한 이득을 얻는다(1366, 140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신자로서의 모든 이득을 받는다(엡 1:3-14).
38.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속죄하시는 사역이 성체성사를 통하여 계속하여 이루어진다(1364, 1405, 1846).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의 희생으로 속죄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셨다(엡 1:7, 히 1:3).
39. 카톨릭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계속하며, 세계 구원을 위하여 계속할 것이다(1323, 1382, 1405, 1407). 성경의 가르침: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선포할 따름이다(고전 11:26).
마리아
마리아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40~49
40.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원죄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보전하셨다(490-492).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아담의 후손이며, 죄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시 51:5, 롬 5:12).
41.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며, 죄 없이 일생을 살았다(411,493).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죄인이었으며,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눅 18:19, 롬 3:23, 계 15:4).
42.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과 또 그 후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496-511).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까지 처녀이었다(마 1:25). 그 후 마리아는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마 13:55-56, 시 69:8).
43.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963, 971, 2677).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였다(요 2:1).
44.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다(963, 975).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교회의 한 회원이었다(행 1:14, 고전 12:13, 27).
45.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쓰라린 인간 속죄의 사역을 같이했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 속죄의 동역자이다(618, 964, 968, 970).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홀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음으로, 그리스도만이 홀로 우리의 대속자 이시다(벧전 1:18-19).
46. 마리아가 이 세상에서 일생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과 영혼을 천국에 가도록 했다(The doctrine of the Assumption)(966. 974).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죽음으로써 그 육체가 땅의 흙으로 돌아갔다(창 3:19).
47.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들의 중보자이며, 신자들이 염려와 탄원을 마리아에게 호소할 수 있다(968-970, 26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 걱정을 고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딤전2:5, 요14:13-14, 벧전5:7).
48. 카톨릭 신자는 자신을 마리아에게 의탁하며, 그들의 죽는 순간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맡긴다(2677).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만을 의지해야하며, 죽는 날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롬 10:13, 행 4:12).
49.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이 세상과 천국의 여왕으로 높이 찬양하셨다(966). 신자들은 특별한 기도로써 그를 찬양해야한다(971, 2675). 성경의 가르침: 주님만을 찬양해야한다. 주님만이 하늘과 땅에서 높임을 받으실 뿐이기 때문이다(시 148:13). 하나님께서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출 20:3).
권위
권위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50~62
50.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었다(552, 765, 880).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의 으뜸이었다(요 13:13).
51. 감독(bishops:추기경)들은 사도들의 임명을 계승한자들이다(861, 862,, 938). 성경의 가르침: 사도들의 계승자는 없다. 계승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도해야 하는 것밖에 없다(행 1:21, 22).
52. 교황은 로마의 감독으로서 베드로의 직분을 계승한 것이다(882, 936). 성경의 가르침: 베드로에게 계승자가 있다는 얘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53. 교황을 교주로 하며, 그는 추기경(감독)들을 통하여 전 세계적인 교회를 통치한다(883, 894-896).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께서 교회 공동체의 머리이시며, 전 세계적인 교회를 통치하신다(골 1:18).
54. 하나님께서 로마 카톨릭 교회 감독들에게 믿음의 도를 계시 하셨다(81, 86).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믿음의 도를 계시하신다(유 1:3).
55. 교도권(Magisterium)은 카톨릭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85-87). 성경의 가르침: 성령만이 교회에서 권위 있는 선생이다(요 14:26, 16:13, 요일 2:27). * 주: 교도권(Magisterium)은 교황과 바티칸공의회로 구성되며, 교도권이 정의한 어떠한 가르침과 교리는 구원을 받는데 유익한 믿음과 도덕을 가르침으로 성경과 차별 없이 무오한 진리가 된다.
56. 교도권은 성경 해석에 오류가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890-891, 2034-2035).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성경해석에 있어 오류가 없는 권위가 있는 책이다(행 17:11).
57. 교황의 권위는 가르침에 있어 오류가 없다(891).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만이 오류가 없으시다(민 23:19). 교황은 사람이다.
58. 교도권 자체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다(85, 100, 939). 성경의 가르침: 모든 믿는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을 통하여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받는다(행 17:11, 고전 2:12-16).
59. 성경은 교도권에서 건의한 대로 해석할 것이다(113, 119) 성경의 가르침: 성경은 성령께서 원하는 대로 해석되어야 된다(벧후 3:14-16).
60. 교도권은 계시록에 기록된 애매하고 뜻이 포함된 구절의 뜻을 정의할 권한이 있다(66, 88, 2035, 2051). 성경의 가르침: 세상에 아무도 성경에 기록된 이상의 것을 정의할 권한이 없다(고전 4:6, 잠 30:6).
61. 성경과 교회 전통이 합쳐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81, 85, 97, 182).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0:35, 딤후 3:16, 17,벧후 1:20-21). 교회전통은 사람의 말이다(마 7:1-13).
62. 성경과 교회전통이 결합되어 신자들 믿음의 법칙이 된다(80, 82). 성경의 가르침: 성경만이 교회 안에서 믿음의 법이 된다(막 7:7-13, 딤후 3:16,17). 출처 : http://www.headstone.pe.kr/12_bbs/view.php?id=a65&page=1&sn1=&divpage=1&category=18&sn=on&ss=on&sc=on&keyword=교황&select_arrange=hit&desc=asc&no=19[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7: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24 13:38:50 | 김학준
요즘 오순절주의의 배금주의의 기세가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알파 코스, G12에서 아말감 이빨이 황금 이빨이 되는 기적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일이 비정상으로 보일 것입니다.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더욱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와 바른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복이 되는지 ....
황금 이빨 사이트
2009-09-22 17:04:36 | 관리자
요즘 오순절주의의 배금주의의 기세가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알파 코스, G12에서 아말감 이빨이 황금 이빨이 되는 기적입니다.바른 성경 바른 교회 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생긴 안타까운 현상입니다.말로만 듣던 자료 실제로 보니 어이없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이 일이 소위 크리스쳔이라는 사람들속에서 생겨나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황금 이빨 사이트[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3:4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22 17:03:00 | 관리자
저는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말씀을 듣고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선교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아시는대로 답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7: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15 13:34:23 | 석혜숙
엊그제 또 20만원 어치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성도들과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자꾸 책을 삽니다.
재정이 어렵다는 집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교회 도서관의 책들은 많이 넣어 주고 싶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냥 내가 사서 넣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너무 좋은 책들을 샀습니다. 스윈돌의 성경 인물 강해는 참 좋습니다.
읽어야 삽니다.
부디 성경과 더불어 경건서적을 많이 읽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책으로 일하십니다. 마귀도 마찬가지고요.
다음은 이태준의 '책'이라는 수필입니다.
내 마음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책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계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아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가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책에 대하여는 전혀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빌려 나간 책은 영원히 노라가 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 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 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 권을 빌려 보고 구백 구십구 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 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 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 권에서 구백구십구 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다. 그러므로 빌리는 자나 빌려주는 자나 책에 있어서는 다 도적 됨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책은 역시 빌려야 한다. 진리와 예술을 감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책은 물질 이상이다. 영양令孃이나 귀부인을 초대한 듯 결코 땀이나 때가 묻은 손을 대어서는 실례다. 책은 세수는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 된다.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菱華紙처럼 부드러워 한손에 말아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 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2: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12 17:16:29 | 관리자
오늘날 사도행전에 대한 오해가 크게 생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바로 이해해야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첨부하는 PDF 파일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이해 비디오
2009-09-09 18:46:38 | 관리자
다음의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한국에서 WCC를 개최하려고 하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alphacourse/11297017[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2: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05 09:11:03 | 관리자
사람이 죽은 사람을 성인으로 만들고 그들과 마리아와 천사들에게 기도하여 연옥에서 죄를 경감받는 것이 천주교 구원의 핵심이다.
다음은 2009년 9월 4일 조선일보에 실린 성인들 기사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3/2009090302145.html?srchCol=news&srchUrl=news1
원본 자료의 사진을 보면 여의도에 설치된 천주교 제단 앙크 십자가로 된 것을 알 수 있디. 하얀 십자가만 보지 말고 그 하얀 십자가 주변의 큰 앙크 십자가를 보기 바란다. 앙크 십자가는 이집트 이교 종교의 심볼이고 뉴에이저들의 심볼이다. 천주교는 어떤 단체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한국에 도착한 일성(一聲)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가 당시 방한한 목적은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천주교 순교자 103(位)에 대한 시성식(諡聖式)을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시성식에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93명의 한국인 천주교 순교자와 한국에서 순교한 10명의 외국인이 천주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9월은 한국천주교회가 〈순교자 성월(聖月)〉로 기리는 달이다. 한국 천주교는 9월 한 달 동안 순교 성인 103위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앙 선배들의 자취를 기린다. 올해는 특히 최양업 신부와 순교자 124명 등 125위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심사를 교황청에 청원해 놓은 상태여서 순교자 현양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는 1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화해·나눔·증거의 축제〉를 연다. 가톨릭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의 문화행사와 함께 헌혈, 장기·골수 기증 등록운동을 벌이고 오후 3시부터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념 장엄미사〉가 정진석 추기경과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마련된다. 또 25년 전 시성식 당시 제단이 설치됐던 자리에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표석〉을 설치하고 축복식도 갖는다.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103위 성인 시성식’. 한국 천주교는 올해 순교자 시성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지방 교구별 현양행사도 다양하다. 대전교구는 지난 1일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110여명의 교구 사제, 2500여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충남 당진 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의 약 8㎞ 거리를 도보로 순례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전교구는 또 11일 오후 7시30분부터 해미성지에서 〈제등행렬 십자가의 길 기도 및 미사〉를 갖고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 생매장당했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린다. 부산교구는 12일 삼랑진 김범우 토마스 묘소에서 죽림굴~살티~언양성당~오륜대 순교자기념성당까지 123㎞에서 〈성지 이어달리기〉 행사를 갖는다.
서울 절두산성지에 있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도 전시실을 재정비하고 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재개관기념전을 개최한다. 성 김대건 신부가 그린 독도가 포함된 조선지도와 프랑스 신부들이 사용한 기도서·미사경본(經本) 등 미공개 소장품 79점이 전시된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는 9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최양업 신부 서품 16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연다. 포럼에는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을 주제로 기조강연한다. 또 가톨릭신문사는 12일 서울 새남터성지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청소년 백일장〉을 개최한다.
▲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사진 왼쪽)와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사진 오른쪽). 한국의 聖人과 聖地에 관한 새책
■103위 성인의 탄생이야기(윤민구 신부 지음)=103위 성인에 대한 시성(諡聖) 청원인으로 시성 수속을 담당했던 저자가 당시의 뒷이야기를 백서처럼 털어놓았다. 그의 고백을 들으면 한국의 103위 성인 시성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한국천주교는 시성 절차에 대한 지식과 자료준비 등이 부족했고, 교황청이 요구하는 기적에 대한 증거도 불충분했다. 그러나 새로 뽑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의와 김수환 추기경 등의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저자는 "한국의 103위 성인들의 시성은 가불(假拂)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라도 103위 성인과 현재 시복시성이 추진되는 125위에 대해서 신자들이 제대로 알고 공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푸른역사, 1만8000원.
■꽃이 되어 가신 님, 빛이 되어 오시네(이충우 지음)=국내 71곳의 천주교 성지를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한 핸드북. 일간신문에서 출발하여 평화방송 보도국장, 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원로 가톨릭 언론인인 저자는 《피어라 순교의 꽃》 《신앙유산 답사기》 등 저서를 통해 순교자들과 성지를 소개해왔다. 이번 저서에서는 〈해미-죽음보다 배교가 더 두려웠다〉 〈미리내-인가 불빛, 냇물과 어우러진 은하수〉〈배티-옹기조각에 숨은 사연〉 등 각 성지의 특징을 포착한 짧은 글로 성지순례에 나설 이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들숨날숨, 7000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8:12:2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09-09-04 15:00:1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