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왕의 궁정에서 일하던 청지기의 이름 혹은 호칭(단1:11-16).
2009-05-12 13:57:22 | 관리자
과거에 멜리데라는 이름은 두 개의 섬에게 적용되었다. 하나는 일루리곤 연안의 아드리아 바다에 있던 섬이고 다른 하나는 시실리와 아프리카 사이의 지중해에 있던 섬으로 현재는 몰타라 불린다. 사도 바울의 로마 이송 지도 참조(44). 사도 바울이 탄 배는 로마를 향해 가다가 파선되었고 그의 일행은 멜리데 즉 지금의 몰타 섬에 상륙하였다. 유로클루돈 참조. 그는 거기서 겨울을 나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타고 그 섬을 떠나 시라큐스에 내리고 레기움에 이르고 프테올리에 다다랐다. 몰타는 바위섬으로 시실리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 길이와 너비가 각각 17, 14킬로미터이다. 초기에 이 섬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이 살았고 후에는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사람들이 차례로 그곳을 정복하였다.
2009-05-12 13:56:57 | 관리자
의의 왕, 살렘 즉 평강의 왕,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그는 제사장 직무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창14:18-20). 성경은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그의 계보, 출생, 죽음 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으며 그는 선조나 후손 없이 하나님의 지명을 받고 홀로 서서 왕가의 제사장이 되었다. 이로써 그는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영원토록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왜냐하면 아론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들의 경우 그들의 기원과 삶과 죽음 등이 다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시110:4; 히7:1-28). 멜기세덱이 누구일까에 관하여는 여러 사람이 성령님, 에녹, 셈 등의 의견을 내었지만 가장 안전한 의견은 그가 그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의로운 왕이요 평강의 왕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그분께 경배하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친구였으며 그보다 지위가 높은 존재였다. 이런 의견이야말로 거룩한 성경 기록을 그대로 반영하며(창14:1-24; 히7:1-28) 무식한 논쟁자들의 발언을 잠재울 수 있다. 살렘 참조.
2009-05-12 13:56:31 | 관리자
아라비아 종족(대하26:7).
페트라의 동쪽에 거하던 그들은 아말렉 족속과 또 이스라엘의 다른 원수들과 함께 언급되었고 후에 웃시야 왕은 그들을 패주시켰다.
2009-05-12 13:56:00 | 관리자
동방의 메추라기는 비둘기 정도의 크기를 가진 새로서 사해와 요르단과 아라비아 사막 주변에 매우 많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진영 위에 임한 메추라기 떼는 거짓이 아니다. 주님은 바람을 사용해서 엄청난 수의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진영에 보내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출하셨다(출16:13; 민11:31; 시78:27).
2009-05-12 13:55:27 | 관리자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의 흐름에는 두 개의 계통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관련된 것으로 그분을 고난 받는 메시아로 묘사한다. 메시아 별 선도 참조(62).
1. 메시아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고난을 겪음(사53:3; 마26:36-39), 2. 메시아가 은 30개에 팔림(슥11:12; 마26:15), 3. 메시아가 가까운 친구에게 배반당함(시41:9; 마26:49-50), 4. 메시아가 거짓 증인들에 의해 고소를 당함(시35:11; 마26:59,60), 5.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힘(시22:16; 눅23:33), 6. 메시아가 범죄자들과 함께 계수되어 죽음(사53:12; 막15:27-28), 7. 메시아가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사53:9; 마27:57-60)
메시아 예언의 두 번째 계통은 그분의 재림과 관련된 것으로 그분을 영광스러운 왕으로 묘사한다.
1. 메시아는 한 의로운 가지가 됨(렘23:5-8), 2. 메시아는 왕국을 소유함(단2:44; 7:13-14), 3. 메시아는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림(삼상7:16; 사9:6-7); 4. 메시아는 철장으로 민족들을 다스림(시2:6-9), 5. 메시아는 예루살렘에서 영광스럽게 통치함(시72:1-20; 사2:1-4; 32:1-4, 15-20; 슥14:16-21)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지적했듯이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의 고난과 재림의 영광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벧전1:10-11). 다시 말해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의 십자가와 재림의 왕관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 - 지금의 교회 시대 - 이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지셔야 함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림 때 성취된 많은 예언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으며 그 나머지 예언의 말씀들을 그분의 재림에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초림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교리적으로 볼 때 이것만이 성경의 핵심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은 성경의 모든 교리를 포함하는 원의 중심이 아니라 타원의 두 개의 초점 중 하나이다. 물론 그 타원의 또 다른 초점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선도 참조(64).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지금의 교회 시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그것들은 스스로 완전하지 못하며 재림은 반드시 초림을 필요로 하고 초림은 재림을 필요로 한다. 이 두 사건은 구원이라는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들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은 우리의 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고 재림은 우리의 몸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는 몸의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초림과 재림 참조.
구약시대의 대언자들이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멀리 떨어져서 널리 펼쳐진 큰 산맥의 여러 개의 산봉우리를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언의 산봉우리 선도 참조(74). 즉 대언자들은 멀리서 예수님의 출생, 십자가 처형, 성령님의 강림, 적그리스도, 의의 태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천년 왕국 등을 모두 한 봉우리로 보았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봉우리 사이에 있는 신약 성도들은 십자가 전과 후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천년왕국의 설립 등을 모두 바르게 나누어서 볼 수 있다.
2009-05-12 13:54:35 | 관리자
기름 부음 받은 자.
이 호칭은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구출자를 높이기 위한 말이다. 유대인들은 왕에게 기름을 붓곤 하였으며 제사장들에게도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기 위하여 기름을 부었다. 그러므로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직책을 위해 부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페르시아 왕국을 설립한 고레스는 사45:1에서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 불리며 겔28:14에서는 사탄 마귀가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나온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메시아는 위에서 밝힌 대로 히브리 사람들이 기대하고 그들의 대언자들이 자기들에게 약속한 구원자 즉 구출자를 뜻하는 호칭이다. 메시아 별 선도 참조(62).
왕과 제사장과 대언자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과 다가올 메시아 역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메시아는 왕과 제사장과 대언자의 기능을 다 수행하는 인물이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존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그분은 그분을 마음에 모셔 들인 모든 사람에게 구원자요 구출자가 되신다. 그리스도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참된 메시아요, 야곱의 실로요, 욥의 구속자요, 언약의 천사라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 이분의 출현 시기는 이미 창49:10; 단9:20, 25; 학2:7; 말3:1에 예언되었으며 메시아의 탄생 장소(미5:2; 눅2:4), 메시아의 처녀 탄생(사7:14; 마1:18), 메시아가 성령님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것(사61:1; 요1:32-34) 등도 예언되었고 문자 그대로 그대로 성취되었다. 구약의 메시아 예언 중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그분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이제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분께서 갑자기 임하실 성전이 예루살렘에 완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출생, 성품, 고난, 죽음, 매장, 부활, 승천, 왕국 등에 관한 여러 대언의 말씀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성취되었고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들은 재림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요1:41; 4:25).
2009-05-12 13:47:58 | 관리자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을 가리키는 그리스말. 아람과 밧단아람 참조.
아브라함의 이동 지도 참조(13). 메소포타미아는 크게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타우르스 산에 이르는 전 지역이라 할 수 있지만 보통은 바빌로니아 위의 비옥한 지역을 가리킨다. 메소포타미아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제국의 영토를 포함하였다. 이 지역은 홍수 이전과 이후의 인류 역사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에덴동산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아라랏은 이곳의 북쪽에 있었으며 시날 땅은 남쪽에 있었다. 여기는 족장 아브라함의 조상인 데라, 헤벨, 벨렉의 거주지였고 여기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태어났으며 이삭과 야곱의 아내와 대부분의 야곱의 며느리들이 나왔다. 한편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에서 재판관 시대에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괴롭힌 학대자가 거한 곳으로 나타나며(삿3:8-10) 또 다윗의 전쟁 역사에도 나오고(삼하10:16) 여기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경배를 드리고 오순절 체험을 하였다(행2:9).
2009-05-12 13:47:23 | 관리자
야벳의 여섯째 아들(창10:2; 시120:5).
그는 소아시아의 북동부 귀퉁이에 있던 두발 근처에서 살았으며 그곳 사람들은 큰 도시 두로와 함께 물건을 교환하였다(겔27:13; 32:26; 38:2).
2009-05-12 13:46:49 | 관리자
아벳느고 참조.
2009-05-12 13:46:20 | 관리자
I. 욕단의 영토의 동방 경계에 있던 장소(창10:30).
II. 모압의 왕.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많은 조공을 바치다가 그가 죽자 곧 반역을 일으켰다(왕하1:1; 3:4-27). 아합의 아들 요람은 유다와 에돔의 도움을 받아 그와 전쟁을 하고 그의 수도에서 그를 포위하였다. 그러자 그는 포위하는 군대를 뚫고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성벽에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면서 자기 신들의 도움을 구하였고 이 잔인한 행위에 놀란 군대들은 자기들에게 저주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수하였다.
2009-05-12 13:45:50 | 관리자
‘메롬의 물’은 요르단 강이 물을 제공하는 세 개의 호수 중 가장 북단에 있는 호수를 가리킨다(수11:5). 이 호수는 가로 세로가 각각 7-8킬로미터 정도이다. 단 족속은 이 근처의 땅을 보고 “그 땅이 매우 좋으며 거기에는 땅에 있는 것 중 어떤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삿18:9-10). 이 호수 근방에서 여호수아는 북방 가나안 족속의 왕들을 격퇴시켰다(수11:1-8).
2009-05-12 13:45:12 | 관리자
갈릴리의 한 지역.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싸울 때에 그곳 사람들이 자기들과 연합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저주하였다(삿5:23).
2009-05-12 13:44:28 | 관리자
사울 왕의 큰 딸. 그녀는 처음에 골리앗을 이긴 대가로 다윗의 신부가 될 뻔했지만 므홀라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에게 시집가게 되었다(삼상14:49; 18:17, 19). 그녀는 그에게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후에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했다(삼하21:8-9). 아드리엘 참조.
2009-05-12 13:43:56 | 관리자
고대와 현대 동방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곤충.
성경에는 메뚜기를 가리키는 말이 열 가지나 되며 이것들은 같은 종류에 속한 여러 단계의 메뚜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은 메뚜기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으로 표현하며 종종 그것이 죄 지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용됨을 보여 준다(신28:38-42; 왕상8:37; 대하6:28). 이집트에서도 열 가지 재앙 중 하나로 메뚜기 떼가 날아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고 또 그것들은 우박이 남긴 땅의 모든 채소와 나무의 열매를 먹어 치웠다(출10:4-19). 그러나 메뚜기 떼의 공포는 욜2:3-10에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욜1:4에 나오는 털벌레, 메뚜기, 자벌레, 쐐기벌레 등은 히브리말에서 메뚜기가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되기까지의 여러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유대인들에게 메뚜기는 정결한 곤충이었으며(레11:22) 그래서 먹어도 되었다. 마3:4에는 침례자 요한의 음식 중 하나가 메뚜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계9:7-10에는 환난기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들 즉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풀려나와 전갈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주는 존재들이 메뚜기 같다고 표현되어 있다.
2009-05-12 13:43:22 | 관리자
르우벤 지파에게 속한 요르단 동쪽의 마을(수13:9, 16). 이 근처에서 다윗의 군대는 크게 승리하였으나(대상19:7) 시간이 지난 뒤에 그곳은 다시 그곳의 전 주인인 모압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민21:30; 사15:2).
2009-05-12 13:42:52 | 관리자
야벳의 아들인 마대의 후손들이 정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나라(창10:2). 히브리 사람들은 이 나라를 마대라 불렀으며 이곳은 카스피 해의 서쪽과 남쪽 지역에 있었고 페르시아 지역을 포함하였으며 아시아의 왕국들 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 메대는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독립 왕국 중 하나이다. 여러 세기 동안 메대 사람들은 아시리아의 통치를 받다가 주전 700년경 산헤립 시대에 반역을 일으켰고 그 뒤 강력한 국가를 형성해서 문명을 꽃피우고 부유하게 되었다(사13:17-18; 21:2-3). 이렇게 지내다가 이곳은 고레스 밑에서 페르시아와 하나가 되어 메대/페르시아 왕국을 형성하였고 그래서 ‘메대와 페르시아의 법’이라는 말과 ‘메대와 페르시아의 연대기’라는 말이 성경 기록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에1:19; 10:2; 단6:8, 12). 그 이후로 메대와 페르시아의 관습과 종교와 문화는 하나로 합쳐졌다. 페르시아 제국 지도 참조(36). 또한 고대의 기록은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의 조상이 같고 불의 신을 섬겼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기(Magi)라 불린 그들의 종교 제사장들은 과학을 개발하고 종교 의식을 수행하였다.
메대는 성경에서 처음에 언급될 때 아시리아의 일부로 나오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바로 이곳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처음에는 요르단 건너편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끌려갔으며(대상5:26) 후에는 이스라엘의 나머지가 살만에셀에 의해 끌려갔다(왕하17:6). 그 이후의 메대의 역사는 페르시아의 역사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나라는 주전 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을 당했다. 페르시아 참조.
2009-05-12 13:42:18 | 관리자
엘닷 참조.
2009-05-12 13:41:40 | 관리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갈대아말로서 바빌론 왕 벨사살이 경건치 않은 연회를 베풀 때에 손이 나타나 벽에 기록한 글이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세셔서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하므로 그것을 나누신다.”는 뜻이다(단5:1-31). 점성술사들은 이것을 읽고 해석하지 못했으며 결국 다니엘이 소환되어 이 글의 무서운 의미를 왕과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벨사살과 그의 무리들처럼 교만하여 경건하지 않게 행하지만 그들의 과거 역사를 기록한 손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의 운명을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09-05-12 13:41:02 | 관리자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간의 침묵기
구약성경이 끝난 뒤 곧 바로 신약성경이 시작되지 않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그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 기간에 대해 살펴보아야만 할 필요를 느낀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로부터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까지의 기간은 400년으로, 보통 이 기간은 '침묵기'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으며 세속 역사가들이 이런 사건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의 역사에 대한 가장 유명한 기록은 주후 37-100년 사이에 살았던 요세프스(Flavius Josephus)의 기록이다. 요세프스는 유다인 역사가로 주후 66-67년 사이에 로마제국에 대항하며 저항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타이투스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그는 로마로 끌려가 베스파시안, 타이투스, 도미티안 황제의 보호를 받았다. 그의 유명한 저술로는 마카비 시대부터 주후 73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일곱 권으로 기록된 「유다 전쟁사」(The Jewish War)와 유다인들의 기원으로부터 주후 66년의 전쟁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스무 권으로 기록된 「유다인들의 고대 역사」(Jewish Antiquities)가 있다.
I. 세계의 권력
A. 페르시아 왕국(주전 333년까지 지속됨)
1. 몇몇 외경이 기록됨.
2. 유다인들이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옴.
3. 성전이 예배의 중심이 됨.
4. 신정 정치, 제사장, 율법 체제.
B. 그리스 왕국(주전 333-167년)
1.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이김.
2. 알렉산더가 유다인들에게 자비를 베풂.
3. 유다인들이 흩어져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임.
4. 주전 323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의 왕국은 네 명의 장군에 의해 분할됨.
5. 네 왕국과 그 통치자들은 다음과 같음.
a. 이집트 - 프톨레미
b. 시리아 - 셀루시드
c. 마케도니아 - 리시마쿠스
d. 소아시아 - 카산데르
* 이집트와 시리아 왕국은 서로를 대적하며 전쟁을 함.
6. 이집트와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전쟁을 벌였으며, 유다인들은 이집트로 내려가 피난처를 찾기 시작함.
7. 소위 「70인역」이라 불리는 구약성경 역본의 전통에 따르면, 이집트의 프톨레미 2세 필라데프스가 명령을 내려 70명의 유다인들에게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했다고 한다.
주의 사항: 사실 이 같은 전통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신비의 「70인역」을 사용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현존하는 「70인역」 사본들은 한결같이 외경을 포함하고 있다.
8. 그 당시 가장 많이 쓰인 언어는 다음과 같다.
a. 그리스어
b. 아람어(히브리 방언)
C. 마카비 시대(주전 167-63년)
1.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주전 175-164년 사이에 시리아의 왕으로 통치함.
2. 그의 정책은 자신의 왕국 전체를 그리스화 시키는 것이었으며, 그의 정책에 반대한 유일한 그룹은 유다인들이었음.
3. 신실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의 형제인 야손은 안티오쿠스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유다인들을 그리스화 시키는 조건으로 자기를 대제사장에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함.
4. 안티오쿠스가 칙령을 내리자 야손이 이를 유다인들에게 가져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음.
a. 그의 왕국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같은 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함.
b. 유다인들의 축제, 안식일, 희생, 할례 등을 지키거나 행하는 것을 금함.
5. 이 같은 칙령의 위협으로 인해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리아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유다인들을 대적함.
6. 등록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중에는 요아립의 계통에서 나온 마타디아라는 이름의 나이 많은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와 및 그의 다섯 아들은 예루살렘 북쪽 산에 있는 자기 선조들의 영토로 들어갔음.
7. 안티오쿠스의 밀사들은 그를 찾아내어 이교도들의 제단에서 희생물을 바치라고 명령함.
a. 마타디아는 희생물을 바치려 한 배도한 제사장들을 즉각적으로 죽임.
b. 또 그는 왕의 사자들을 죽이고 가증한 제단을 무너뜨림.
8. 백성들은 마타디아의 지도를 받으며 대항하기 시작했고 반역의 세력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나이가 많은 마타디아는 이 일이 있은 뒤 일년이 지나 죽었고, 그의 아들들이 그의 일을 계속해서 수행함.
9. 그의 아들들은 마카비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장남의 이름이 유다 마카비였기 때문이었음.
10. 10,000여 명의 유다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두 번씩이나 안티오쿠스의 군대를 패주시킴; 한번은 50,000명, 또 한 번은 65,000명.
11. 유다 마카비는 주전 165년에 다시 성전에서의 예배를 시작함.
12. 마카비들은 78년 동안 권력을 행사함.
D. 로마제국(주전63∼?)
1. 폼페이 대제가 주전 63년에 팔레스타인을 정복함.
2. 주전 40년에 로마인들은 헤롯 대왕을 왕으로 세웠는데, 그는 주전 37년에 유대 지방의 유일한 왕이 됨.
a. 헤롯은 에돔 사람임.
주의 사항: 에돔 족속은 페트라에서 내쫓김을 당해 남부 유대 지방에 정착했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이두매아(에돔)라고 불렀다. 이 에돔 족속은 그 뒤 50년이 지나 히르카누스에 의해 정복을 당해 할례를 강요받았고, 유다인들의 집회의식을 지킬 것을 강요받았다(신 23:7).
b. 창세기 27장 40절의 에언이 헤롯 대왕을 통해 이루어짐.
3. 헤롯 대왕은 주전 4∼5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며, 그의 통치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
Ⅱ. 변화된 것과 새로 나온 것
신약 성경을 공부하게 되면서 곧바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집단 등을 접하게 되는데, 이들은 이 400년의 '침묵기'에 생긴 것이다.
A. 제사장
1. 복음서에는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12번 나옴.
2. 대제사장 혹은 수제사장이라는 단어가 84번 나옴.
3. 모세 당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장 직무의 기능은 종교적인 것이었음.
4.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뒤에 유다인들의 시민권리는 제사장들의 손으로 넘어감.
B. 레위인
1. 사복음서에서 단 2번만 나옴 - 눅 10:32, 요 1:19.
C. 서기관
1. 구약성경을 공부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
2. 준비된 서기관은 모세 오경을 외움.
3. 아주 전통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
4. 율법사라고도 일컬음을 받음.
D. 다스리는 자(치리자, 관원)
1. 여러 종류의 관리를 지칭함.
2. 용례 :
a. 연회장 - 요2:8,9
b. 산헤드린 공회 회원 - 요3:1
c. 주치리자 - 요12:42
d. 행정관 - 눅12:58
E. 바리새인
1. 이 명칭은 "분리된 자"라는 뜻임.
2. 기록된 율법을 옹호하며 지키는 사람들.
3. 보수적임.
4. 정통이었으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음.
F. 사두개인
1. 유다인들의 귀족으로 정치 집단임.
2. 종교적 측면에서 현대주의/자유주의자들임.
a. 영의 존재를 부인함.
b. 부활을 부인함.
c. 혼의 불멸을 부인함.
주의사항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마카비 시대에 생긴 그룹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음.
G. 헤롯당원
1. 정치집단
2. 이 이름은 로마정부의 권세를 위임받은 헤롯에게서 유래됨.
3. 정치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반대함.
H. 갈리리 사람들
1. 이 집단은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일어나 모든 외국 세력에 대항했음.
2. 정치적으로 광적인 사람들임.
I. 사마리아 사람들
1. 주전 722년에 아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다시 사람이 거하게 하도록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민족사이에 생긴 혼혈민족.
2. 아시리아의 에살하돈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제사장을 보내었으며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으나, 그들은 주 하나님도 두려워 하고 동시에 자기들의 신에게도 경배를 드림.
3. 주전 535년, 두 번째 성전을 지을 때에 이들은 자기들도 이 일을 돕겠다고 했으나 유다인들이 이 같은 제안을 거부함.
4.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 간에는 늘 적대심이 존재함.
J.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1.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3번 나옴 - 요7:35 ; 약1:1 ; 벧전1:1.
2. 이 단어는 밖으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포로 시절에는 그 규모가 매우 컸으며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서 돌아오지 않고 그 곳에서 남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그 규모가 작음.
K. 개종자
1. 원래는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을 뜻함.
L. 회당
1. 유다인들이 모이는 장소.
2. 이 기관의 유래는 바빌론 포로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감.
3. 성전 밖에서나 성전이 없는 경우에 유다인들은 작은 그룹으로 모였으며, 이런 방식을 통해 자기들의 종교적 삶을 온전하게 유지함.
M. 「70인역」
먼저 「70인역」에 대한 기존의 추측부터 정의해 보도록 하자.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공식적인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고자 한 계획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The Letter of Aristeas)라 불리는 한 고문서에 드러나 있는데, 이 편지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유다인들의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추측컨대 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인의 유다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이루어진 가상의 장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며, 번역의 추측 연대는 대략 주전 250년 경인데, 이 시기는 주전 397년 구약 성경의 마감 시기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인 주전 4-5년 경 사이에 있었던 약 400년간의 침묵기 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번역본은 「셉튜아진트」(Septuagint), 혹은 「70 장로들의 번역본」으로 알려져 왔으며, L=50, X=10, X=10, 합하면 70이라는 값을 지닌 로마(?) 숫자로 표시된다. 그런데 72명이 번역했다는 이 번역본을 왜 '칠십이인역'이라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소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이 서신이 이 불가사의한 번역본 즉 「70인역」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물인데, 그 이유는 주전 250년 혹은 그 전후로 구약 성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확실하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유다 역사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일을 고려했다거나 진행시켰다는 기록은 전무한다.
이런 전설적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조하라는 압력이 오자 학자들은 급히 주후 200년 경 오리겐의 「육단 성경」(헥사플라, Hexapla)을 그 증거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70인역」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때보다 거의 45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며, 신약 성경이 완성된 후 100년도 훨씬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두 번째 단은 오리겐 자신(결코 72인의 유다 학자의 번역이 아닌)이 그리스어로 구약을 번역한 것이며, 그밖에도 '벨과 용', '유디스서', '토비트서'와 같은 위조된 책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하는 다른 외경들조차 포함시키고 있다.
「70인역」의 허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리겐이 「헥사플라」의 제5단에다 직접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단지 「70인역」을 복사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려 들 것인데, 이런 주장이 정당하지 않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빈틈없는 유다 학자 72인이 외경들을 - 심지어 그것들이 쓰여지기도 전에 - 자기들의 작품 속에 첨가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필사본이 하나도 없습니까? 있긴 합니다. 하나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라일랜드의 파피루스 458번(the Ryland's Papyrus, #458)인데, B.C.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명기 23-28장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제 「70인역」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1.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인정한 적이 없다. 성경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2. 모든 유다인들은 성경기록을 취급하는 공식 책임자가 신명기 17:18; 31:24,25,26과 말라기 2:7에서 입증되듯이 레위 지파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나머지 11 지파의 어느 지파도 감히 그런 금지된 계획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다인들이 그들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유다인들은 할례, 안식일 성수, 깨끗케 하는 세세한 법조항들과 고유의 여러 가지 법들을 고유한 전통으로 삼아 왔다. 이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언어 계승의 열심에서도 이방 민족과 구별되고자 하는 동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녀들에게 히브리어 외에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이디오피아의 팔라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유다인들의 언어를 이어받았다는 증거로서 히브리어를 간직하고자 힘쓰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나라의 여타 부족들과 구별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즉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민족이 자기들의 유산인 히브리어를 버리면서까지 지극히 거룩한 재산인 성경을 이방인의 언어로 기꺼이 번역하려 했다는 학자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모순된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외경을 포함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적이 없다.
5.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자체에서 발견된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 편지가 아리스테아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아리스테아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첫 번째 난제는, 각 지파에서 대표적인 학자 6명씩을 선발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열 두 지파의 위치를 알아내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생활을 통해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 12 지파의 경계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끝으로 신학자들이 이같이 「70인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보고서도 이 거짓된 「70인역」을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슬프지만 아주 단순한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학문연구 수단으로 충분히 정통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은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따라서 만일 그리스어로 된 구약의 공식 번역본이 존재했다면, 성경 비평가들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되며, 단 번에 성경비평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런 얄팍한 근거를 토대로 거짓된 「70인역」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은 단지 교만과 탐욕에 기초를 둔 행위일 뿐이다.
N. 산헤드린
1. 공회라고도 불림.
2. 공회는 모세가 구성한 70명의 상담자들에게서 유래됨.
3. 구성원은 다음과 같음 ;
a. 수제사장이나 24개 제사장 계열의 수장들.
b. 서기관이나 율법사.
c. 일반사람을 대표하는 장로들.
d. 공회에는 70명이나 72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대제사장이 의장을 맡았고, 이들의 임기는 종신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됨.
2009-05-08 17:25:12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