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검색
  • 전체게시글 검색

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774개
안녕하세요... 질문 드릴게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 이후 영원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이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65:17절 이후를 읽어 보면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천년왕국으로 이해되어지는데 특히, 100세된 사람을 어린아이라고 하며 죽음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히 천년왕국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시작인 65장 17절을 보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시점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요?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 65:17, 킹흠정)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사 65:18, 킹흠정) 오직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이 되도록 창조하며 그녀의 백성을 기쁨이 되도록 창조하고(사 65:19, 킹흠정)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사 65:20, 킹흠정)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사 65:21, 킹흠정)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사 65:22, 킹흠정)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사 65:23, 킹흠정)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받으려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주에게 복 받은 자의 씨요,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후손도 그와 같으리라.(사 65:24, 킹흠정)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으리라.(사 65:25, 킹흠정)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2-28 10:31: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2-27 12:31:27 | 오창재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육체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를 그쳤다는 표현은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며, 육신을 입은 인간들이   죄를 그치는 것이 가능한지?   이것으로 어떤 이단부류의 사람들은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23 09:23:31 | 최병철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덧글을 통해 이미 간단하게 질문을 드렸듯이, 박참하 목사님의 글을 다운받아 여러 번 읽어보는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를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위 내용은 박목사님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과연 요엘서 2:31-32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게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에 근거구절이 되는 것 같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우선 본문(31-31절) 자체에는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엘서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요엘서 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할지니 이는 주의 날이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1절)   “....주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려우니 누가 그 날을 견디어 내리요?”(11절 하반절)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슬피 울고 애곡하며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나니”(12절)   요엘서 2장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2장의 요점은, 앞으로 올 주의 날에 대해 경고 하며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통과하며 겪는 고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31,32절로 돌아가서, 그 구절들을 2장 전체의 흐름의 문맥에 놓고 보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31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성경은 분명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어지는 32절의 내용은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31절과 32절은 2장 전체의 결론으로서, 2장 전체의 내용과 아주 잘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올 것을 경고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그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길 촉구하셨습니다. 또한 분명하게 31절과 32절을 통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돌아 올 것을 미리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2장 전체뿐 아니라 31절과 32절의 중심 내용은 이스라엘이 7년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두 구절에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중에 구원을 받는 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환란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앞으로 이 땅에 7년 대환란이 있을 때, 그 당시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요엘서 2장 31절과 32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한 근거 구절로 설명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왜냐면 본문자체가 그러한 설명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구절을 근거로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은 옳지만, 그에 앞서 그 구절 자체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1-02 12:28:57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0-29 23:44:45 | 김세배
딱정벌레 이야기   구약성경에서 ‘딱정벌레’라는 말은 레위기 11장 22절에 단 한번 나옵니다.   곧 그 중에서 이것들 즉 메뚜기 종류와 흰머리 메뚜기 종류와 딱정벌레 종류와 베짱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레11:22)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딱정벌레(히브리어 하르골, 스트롱 번호 2728)가 틀리고, 대신 ‘귀뚜라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물론 개역성경은 이들의 주장대로 귀뚜라미라고 번역함). 또한 이들은 몇몇 주석을 들먹이면서 유대인들은 딱정벌레를 먹지 않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안 먹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딱정벌레는 한자로 갑충(甲蟲)입니다. 즉 껍데기가 있는 벌레면 다 딱정벌레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가서 딱정벌레 항목을 보면 지구의 전체 곤충의 40%가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며 구체적으로는 약 35만-40만 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류의 80%가 벌레를 음식으로 먹으며 벌레 중에서 사람의 음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딱정벌레라고 나와 있고, 현재 344종이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장의 딱정벌레, 즉 beetle은 생물 분류법에서 장수풍뎅이 같은 한 종(種)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목(目)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목(目)에는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eetle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바르게 딱정벌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 단어는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다른 용례를 보고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190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석학인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 변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 보존에 관한 교리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2   1611년 이래로 온 세상에 Holy Bible로 자리 잡으며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준 성경은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성경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로마 카톨릭 소수사본에서 나왔습니다, 그 수많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딱정벌레라고 번역해 주셨고 이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역사를 통해 그 단어가 딱정벌레라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신다는 것은 1차적으로 그분의 입에서 나온 원어의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원어 하르골 자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아무도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 사전 자체도 어떤 사람이 기록했느냐에 따라 다른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단순하게 약 50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바르게 인도를 받아 그 히브리어를 딱정벌레로 바르게 번역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것은 다음의 유명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전도서 1장 14절, 2장 11, 17, 26절, 4장 4, 6절, 6장 9절(7회)에는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은 뒷부분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였고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이 세상의 다른 역본들은 (심지어 뉴킹제임스 역본까지) 다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6)와 ‘레우트’(스트롱 번호 7460)입니다. 잘 알다시피 루아흐는 영도 되고 바람도 되고 숨도 됩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으로 번역해도 되고 개역성경처럼 바람으로 번역해도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우트에 있습니다. 레우트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여기 전도서에만, 위에서 언급한 7구절에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용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믿든지 다른 성경들처럼 ‘바람을 잡는 것’으로 믿든지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를 믿음으로 신뢰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았고 다른 번역자들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철학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저자인 솔로몬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단어들을 썼을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헛된 수고는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가?” 아니면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바람을 잡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뜻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천주교 사본을 지지하는 현대 역본들과 번역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으므로 (물론 그들이 만든 사전들도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그분의 말씀대로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두 예를 통해 보셨겠지만 원어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위의 말씀은 주님께서 분명히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확증하신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주님의 보존 약속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원본의 단어들에까지만 미칠까요? 아니면 번역본의 단어들에까지 미칠까요?   저는 분명히 말씀 보존의 약속이 일차적으로 원어에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끝이 나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효하지 않습니다.원본의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바른 단어들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이 번역본에까지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런 약속에 따라 온 세상의 성경들을 살펴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역본들이 한결같이 천주교 사본을 사용하여 삭제와 첨가 등이 일치하고 교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 근거한, 전 세계 만인의 말인 영어로 기록된 킹제임스 성경이 이 시간까지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최종적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믿음입니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원본주의자들이 늘 인용하는 웨이트 박사님(Dr. D. A. Waite)도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이고도 유일한 권위가 됩니다. 사실 성도들에게는 삶 자체가 믿음과 여기서 나오는 실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과 온 우주 공간의 모든 문제에서 이 성경이 최종 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떻게 역본이 최종 권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최종 권위이고 킹제임스 성경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종 권위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100% 킹제임스 성경 안에 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 22절은 껍질이 있는 딱정벌레가 맞고 전도서의 일곱 구절은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린 번역입니다. 이 구절들에 관한 한 그런 성경은 보존되지 않은 성경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원어의 단어들의 보존을 믿습니다. 또한 그 원어의 단어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100% 보존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켰음을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 보존된 원어의 단어들을 만민이 알아듣게 최종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전달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다만 저는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 데이터들의 분석과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100% 보존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믿으며 누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면 서슴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가져갈 것입니다. 원어는 못 가져갑니다.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성경이 온 세상 모든 것의 최종 권위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 이 시간까지 최대한 우리말답게 일대 일로 대응이 되게 번역해 놓은 순전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확실한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참고: 웨이트 박사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14쪽, 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page=2   D. 영어로 이루어진 성경 보존과 킹제임스 성경과의 관계 1. 관계 개요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영어 안에서 성경 보존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성경 보존이 곧 영어 역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올바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라는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믿는 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a. 첫째, 킹제임스 성경 원어 본문의 우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우수성을 말한다.b. 둘째,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당대에나 오늘날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탁월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에 비하면 소인국 난쟁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c. 셋째, 킹제임스 성경 번역 기법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역본들과 차이가 있다. 다른 역본의 번역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을 쓰지 않았다.d. 넷째, 킹제임스 성경 신학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2012-10-22 17:52:1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은혜로운 설교와 자료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 말씀하시는 "마지막 나팔"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갑자기 마지막 나팔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떤 순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8-31 11:04: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8-22 10:28:26 | 윤택준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고린도전서 말씀으로 바울도 버림을 받지 않으려 했다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구원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버림이라는 단어로 검색하여 다른 구절들을 참고해봐도 명확하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린도전서와 디도서에 나오는 버림받는다는 구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 : 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3 : 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린도후서 13 : 7 또 너희가 아무 악도 행하지 아니하기를 내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그 목적은 우리가 인정받은 자로 나타나고자 함이 아니요, 우리는 버림받은 자같이 될지라도 너희만은 정직한 것을 행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1 : 16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그들은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대해 버림받은 자들이니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8-31 11:03:3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8-22 01:38:47 | 김춘섭
포도주와 포도즙   오래 전부터 한 분이 포도주와 포도즙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흠정역 성경이 wine을 잘못 번역했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말씀보존학회 사람들의 글을 통해 이것이야 말로 확실히 흠정역의 실수라고 확신하며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정을 보느라 바빴고 또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그분이 또 이 문제로 이메일을 보내와서 오늘은 간단히 글을 씁니다.   잘 아시다시피 영어의 wine은 동형이의어입니다. 그래서 문맥에 맞게 포도즙 혹은 포도주로 구분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개역성경이나 말씀보존학회 성경처럼 모두 포도주로 번역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   이분이 인용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신29:6과 신32:14를 근거로 합니다. 먼저 문맥을 살펴보기 위해 신명기 29장 1-9절을 보겠습니다.   1 {주}께서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으신 언약 외에 그분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들이 이러하니라.  2 ¶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집트 땅에서 너희 눈앞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큰 시험들과 표적들과 그 큰 기적들을 네 눈이 보았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이 날까지 {주}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내가 사십 년 간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였거니와 너희가 입은 옷이 낡지 아니하고 너희 발의 신이 낡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가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이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은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7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를 치려고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들의 땅을 취하여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너희가 형통하리라.   한편 신명기 32장 10-14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0 그분께서 그를 사막에서와 황폐함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찾아내시고 인도하시며 가르치시고 자신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12 {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분과 함께한 이방 신이 없었도다. 13 그분께서 그로 하여금 땅의 높은 곳들에서 타고 다니게 하사 밭의 소출을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꿀을 빨게 하시며 또 부싯돌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고 14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말씀보존학회의 주장   흠정역: 너희가 빵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즙이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은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신29:6).   흠정역: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신32:14).   여기서 흠정역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거나 아니면 포도의 순수한 피가 포도주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바로 몇 장 뒤에 있는 신명기 32장 14절을 보자.   흠정역: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신32:14).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이 포도의 순수한 피(즉 포도즙 혹은 주스)를 마셨다고 말씀하신다.그런데 흠정역은 신29:6에서 그들이 포도즙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든지 아니면 포도의 순수한 피가 포도즙이 아닌 포도주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흠정역은 오역이다.   따라서 신29:6은 말씀보존학회의 성경과 같이 포도주로 번역되어야 한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 너희가 빵도 먹지 않았으며 너희가 포도주나 독주도 마시지 않았으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    말씀보존학회의 이런 주장이 과연 맞을까요? 성경은 항상 문맥을 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29:5-6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이스라엘이 밀을 재배하지 못하고 포도원을 경작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주식인 빵과 포도즙을 먹지 못한 것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신29:6의 wine은 반드시 포도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포도주라고 하면 그들이 포도즙은 먹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9장의 문맥은 그들이 경작할 땅이 없어서 빵과 포도 주스를  먹지 못한 것을 기록합니다.   한편 32장으로 와서 13-14절을 문맥에 맞게 살펴봅시다.   13 그분께서 그로 하여금 땅의 높은 곳들에서 타고 다니게 하사 밭의 소출을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꿀을 빨게 하시며 또 부싯돌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고 14 암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품종의 숫양과 염소와 기름진 밀을 먹게 하셨으므로 또 네가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13절은 이스라엘이 암소의 버터와 바산 품종의 숫양과 기름진 밀을 먹었다고 합니다. 자, 이스라엘이 과연 광야에서 기름진 밀을 먹은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40년간의 유랑 생활 중 광야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기름진 밀을 먹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바산 품종의 숫양을 먹을 수 있습니까?   이 일은 광야에서의 유랑 생활이 거의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오른쪽의 바산과 헤스본 땅을 차지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위에 있는 신명기 29장 7-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 생활이 끝난 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바산과 헤스본에서 밭에서 자란 밀과 포도원에서 자란 포도의 순수한 피 즉 포도즙 혹은 포도 주스를 마셨습니다.   문맥에서 보듯이 신명기 29장과 32장은 전혀 다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wine을 용례에 맞게 번역한 흠정역을 두고 자꾸 오역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말씀을 보존하겠다고 했으면 제발 이름에 걸맞게 그리하면 좋겠습니다.쓸데없이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혼동 속으로 집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심지어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을 다루는 데서도 wine을 포도주라고 번역하여 주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은 구약 시대의 유월절을 바꾸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지키게 하신 규례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과 함께 나오며 그때에는 반드시 누룩을 치워야만 합니다. 누룩은 부패하게 하는 물질로서 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누룩이 들지 않은 포도 주스를 가지고 그분의 살과 피를 상징하게 하면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누룩이 들어가 부패된 포도주를 사용합니다. 개역성경 등이 wine을 포도주로 번역하였기에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보존하려는 단체는 제발 이런 것에서부터 바르게 하기 바랍니다, 많은 성도들이 무고하게 넘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wine을 구분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주식으로 빵과 함께 나올 때는 빵과 포도즙으로 보면 됩니다. 술을 주식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등에서 사람이 복을 많이 받은 경우 그의 집에는 방과 포도즙이 풍성하게 됩니다. 창14:18에서 멜기세덱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위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옵니다. 여기서 wine을 포도주로 하면 예수님을 가리키는 멜기세덱이 술을 퍼 주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앞뒤 문맥이 술 취하는 현상과 관계 있을 때에는 포도주로 보면됩니다.   포도를 짜는 틀인 포도즙 틀(wine press)과 함께 나올 때는 포도즙으로 보면 됩니다. 이런 경우 포도주 틀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땅에다 만든 틀에 사람들이 들어가 발로 포도를 밟으면 포도즙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포도즙 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해서는 신학적으로 그분께서 술을 만들어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분이 아니므로 포도즙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그분은 물을 최상의 포도즙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바른 성경입니다.   혹시 흠정역 성경이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이면 언제든지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주신 의견이 맞으면 모았다가 나중에 정정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2-07-14 22:37:52 | 관리자
사사기 3장 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흠정역: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출자를 일으키사 그들을 건져 내게 하셨으니 곧 갈렙의 동생이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더라.   KJV: And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ried un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to the children of Israel, who delivered them, [even]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개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그 구츨자는 갈렙의 동생이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입니다. 영어를 보시면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과 갈렙의 동생이 동격임을 금세 알 수 잇습니다.   그런데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본문대로 번역하지 않고 그 구출자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라고 하여 갈렙이 그나스의 형이고 옷니엘의 삼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 변화를 가져온 자들의 소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영어 성경 자체가 이런 번역이 오역임을 명백히 보여 줍니다. 분명하게 히브리어 마소라 성경은 갈렙과 옷니엘이 형제임을 보여 줍니다.    대부분의 영어 사전들도 바르게 보여 줍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계보를 보시면 역대상과 사사기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수15:17, 삿1:13, 삿3:11에서도 동일합니다. 특히 삿3:11은 분명하게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개역성경도 그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보존하겠다는 단체가 보존된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는 않고 오히려 바르게 번역된 부분을 틀렸다고 하여 많은 이들을 혼동  속에 넣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바른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져도 됩니다.   샬롬
2012-07-14 18:37:55 | 관리자
성경을 통합적으로 보고 이해하기: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는 자들 근래에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을 설명하다 보니 갈라디아서 5장, 고린도전서 6장 등의 말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이 있어서 오늘은 성경을 통합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간단히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이대로 믿으면 여기에 안 걸릴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는데 - 진노, 시기에 안 걸릴 사람이 있을까? - 그러면 이들은 다 구원을 잃어버립니까?”   이것이 질문의 요지입니다.   이런 구절을 대할 때 우리는 앞뒤 문맥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말씀에 기록된 것들은 육신의 행위들과 그 열매들이며, 본문 말씀은 육신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성경을 통합적으로 본다는 것은 우선 비슷한 구절이 또 있는가를 살피는 데서 출발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10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11 너희 중에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장 9절에서 말하는 바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음행, 우상숭배, 간음, 여성화된 남자, 동성애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착취하는 자 등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록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은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 중에도 옛 사람에 속한 그런 일들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11절). 이들은 구원을 받을까요?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얻은 구원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구원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이전에는 그런 죄악된 행실 가운데 살았으나, 이제는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삶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6장이 말씀하시는 바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자이므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6장 15절에서 20절까지 말씀을 읽어보면,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명심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성경을 통합적으로 보기 위해 역시 비슷한 것을 다루는 에베소서 5장 5-8절을 살펴봅시다.   5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받지 못하느니라.6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   에베소서 5장 5-6절 말씀에서도 음행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부정한 자,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상속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 너희도 한 때(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와 같은 어둠에 속한 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지금은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고 합니다. 즉, 에베소서 5:5-6 말씀은 어둠에 속한 불신자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제 신분이 바뀌었으니 그런 자들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들답게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고린도전서 6장, 에베소서 5장 말씀은 육신의 행위들과 그 열매들을 보여주며, 육신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며 좋은 열매를 맺으며 상급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롬8:1, 개역에는 "없나니"까지만 있고, 그 뒷부분이 삭제됨)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8:14) 위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을 따라 걷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입니다. 비록 아직 육신적인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아닙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밥도 먹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갓난아기도 사람입니다. 다만 아직 성장하지 못하고 제대로 교육이나 훈련을 못 받았을 뿐입니다. 영적으로 어리고 미숙한 그리스도인들도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과 같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입니다.   또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의 모든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전혀 기억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1-18절을 보십시다.   11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13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15 이것에 대하여는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증인이 되시나니 그분께서 앞서 이르시기를, 16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 17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8 이제 이것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는 다시는 죄로 인한 헌물이 없느니라.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드립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르치는 듯한 구절이 나오면 앞뒤 문맥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또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구절들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경을 통합적으로 보고 이해할 때 이단의 유혹에 혹은 자기 자신의 그릇된 판단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이런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까요, 못 들어갈까요? 들어가기는 하는데 상급을 못 받게 되는 건가요?”라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궁금증을 품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구원이 확실한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자로서 자기 자신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죄와 분리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절반 이상은 김문수 형제님이 쓰셨습니다.   샬롬
2012-07-13 18:31:16 | 관리자
성경을 읽고 살펴보다가 제가 평소에 알고 있는 사실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아시는 분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요 6:63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 할때 저는 "영" 이 부분의 의미를 성령님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영킹흠정을 보면서 소문자 임을 보고 성령님이 아닌 "영"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킹흠정 일러두기에 성령님 표기 문제를 보면서 영어로 spirit 로만 되어지면 성령님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지 궁금하네요   이 구 절 앞 뒤 부분을 살피고 질문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the spirit)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성경 전체에 "the Holy Ghost" 나 "the Spirit" 되어지면 "성령님"으로 봐야 하고 나머지 "the spirit" 나 "spirit" 그러면 "영"으로만 봐야 하나요?   그리고 성경 말씀이 영적 교훈을 의미할 때 "spirit"으로 말할 때 "성령"님을 의미 또는 교훈 그리고 가리키는 의미로도 봐야 하나요?   개역성경은 이런 것들이 정리가 안되어서 어떤 분들은 "영"그러면 거의 "성령"님으로 풀어버리더군요. 저도 킹흠정으로 돌아서고 이런 부분들이 많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2:05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2-06-27 18:41:33 | 강인숙
검색을 해보니 관련글이 없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사도행전 11장 20절에 나오는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the Grecians)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저 개인적으로는' 이방지역에서 출생하여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해가 맞는지 아니면 틀리다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7: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6-14 10:34:41 | 김세배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몰라 이렇게 게시판에 올립니다.   열왕기상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도움을 구합니다. 왕상 14:15과 14:23을 보면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중에 '작은 숲' (KJV원문에는 gorves)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왜 작은 숲을 만든것이 죄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개역한글판을 찾아보니 이 구절이 '아세라 목상' (NIV Asherah poles)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상을 만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구절을 그냥 작은 숲이라고 만 쓴다면 솔직히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분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작은 숲이 왜 죄가 되는지 도저히 이것 만 가지고는 풀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아세라 목상이라고 쓰여진 개역한글 혹은 NIV가 더 그 의미에 충실할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번역의 말꼬리를 잡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읽으며 부딪히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6 06:33:58 | 최도진
안녕하세요 진리침례교회 이우진 형제입니다.   이곳에 쓰는 첫 글이 답글이 되었네요. 글이 길어질거 같아 답글로 달지 않고 따로 글을 올리는 점 양해해 주세요. 부족한 지식이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해 보겠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7절의 “그것들(them)”은 6절의 “주의 말씀들”이 맞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뿐더러 유일한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보존하시는 것을 믿지 않는 학자들은 7절의 “그것들”이 5절의 “가난한 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5절에 나온 그 누구도 그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대로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NIV의 경우 7절의 “그것들(them)”을 “우리들(us)”라고 바꾸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는 것이 말씀들이 아니라 사람인 것처럼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히브리어 원문도 1인칭 복수대명사(us)로 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 “그것들(them)”이라고 3인칭 복수대명사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7절의 “그것들”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다윗의 세대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7절).   학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히브리 원문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방법 중 하나가 히브리어(혹은 그리스어) 문법을 들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법을 통한 설명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7절의 그것들이 남성복수이고 6절의 말씀들이 여성복수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말씀들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학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대부분 그렇게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 시편 12:6-7에서는 예외적으로 받았다고 보면 그만입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성이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욥기 31:11에서는 “이것은(for this)”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는 남성 단수입니다. 그러나 10절의 “아내”는 여성 단수입니다. 11절의 “이것은”은 9절과 10절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여성 단수인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며 10절에서도 여성 단수인 아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11절에서는 9절과 10절의 이야기를 남성 단수로 받고 있습니다. 즉, 욥기 31:11에서도 성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기본적으로 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경우에 따라서는 성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문법을 들먹이며 반드시 그렇다고 하는 말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마세요. 특히 킹제임스성경이 어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면 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맥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시편 12편은 말(word)에 대한 것입니다. 2절- 입술, 말하다 3절- 입술, 말하다, 혀 4절- 혀 6절- 말씀들   인간의 말은 악하고 헛된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주께서 보존하셨기 때문에)는 것이 시편 12편의 내용입니다. 문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학자들은 모든 정보를 다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말할 뿐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성경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신다고 하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설득할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킹제임스성경은 항상 옳습니다.   부족한 지식이지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3:3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16 00:59:40 | 이우진
안녕하세요 ...시편12편 7절에 대한것으로 큰 걸림돌에 직면했습니다.도움을 요청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저는 시편7절의 them의 선행사가 바로 앞 6절의 words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그런데요...   <문법적 논쟁에서 일단 진행된 내용입니다.> 첫째 -영어적 문법은 7절의 them이 가르키는 선행사가 6절의 words도 될수 있고 5절의 the poor이나 the needy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이건 뭐 논쟁으로 어찌해볼 만합니다.   문제는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7절의 them이 6절의 words를 받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단어마다 문법적인 성이 있다고 합니다...7절의 them은 남성복수이고 6절의 words는 여성복수라는 겁니다.  따라서 7절에 지키시는 것은 사람들이지 말씀들이 될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6절의 words의 히브리어 문법적인 성에 대해 설명해 주실수 있으신분 부탁드립니다... 또한 6절의 silver의 히브리어 문법적인 성도 알고 계신분은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KJV>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의 학대받는 것과 궁핍한 자의 탄식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제 내가 일어나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하시는도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개역>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3:3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15 14:14:30 | 전성실
1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사람의 아들아, 네 얼굴을 곡과 마곡 땅과 메섹과 두발의 최고 통치자를 향해 고정하고 그를 대적하여 대언하며 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메섹과 두발의 최고 통치자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왼편은 흠정역 오른편은 개역한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기 위하여 흠정역과 다른 버전의 성경들을 대조해서 보는데   겔 38장에 '로스'가 나오지 않습니다   원래 원문은 어떤지 정말 궁금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5:2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11 11:42:22 | 유다슬
계6:2절의 흰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 가요 여러 견해가 있는 데 예수님 으로 보는 견해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사역자로 보는 견해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 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0 18:45:33 | 김삼일
(신명기 14장 26절)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 등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네 집안이 먹고 기뻐할지니라.   전에는 술에 대해서 완전금주해야 하며 한 모금이라도 마셔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오래전에 신명기 14장 26절에서 독주를 먹어도 된다는 글을 보고는 조금 당혹스러웠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술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지만, 신명기 14장 26절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글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도 아닌 것 같아서 술을 주량만큼 마시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대한 적지 않은 글들을 봤을 때 위의 구절을 언급한 글은 본 적이 없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여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잘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6:04: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1-30 20:39:54 | 김양규
어느 분이 성경에 담배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있느냐고 물어 와서 간단히 답변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담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6장 12절은 술, 담배, 마약, 식욕 등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뒷부분을 보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 I will not be brought under the power of any.   여기서 권능이라는 말은 파워 즉 힘을 뜻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식욕, 심지어 성욕 등에는 사람을 미친 듯이 몰아가는 파워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런 파워 밑으로 끌려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적법하지만 그런 것들의 파워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담배나 술을 하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도 담배나 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우리가 그런 것들의 파워 밑으로 굴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 끊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 글은 결코 술 담배 하는 분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고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식욕 등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식욕의 파워도 이겨야 합니다. 너무 몸이 비대해서 남 보기에 민망할 정도가 되고 건강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고 거기에 굴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노력합시다.   샬롬. 
2011-12-10 11:23:2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KJV 흠정역을 읽는 학생입니다. 그동안 친척분으로부터 이 싸이트를 소개받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KeepBible과 싸이트에 들어오시는 분들을 계속해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천년설을 믿습니다. 그래서 무천년설을 믿는 선배와 가끔 충돌합니다다. 최근에도 함께 성경을 보며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해답을 찾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잘 몰라서 이곳에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살전5:9)에 wrath 와 salvation이 나오는데, (1) 이 wrath는 대환란을 의미하는가요? 아니면 지옥형벌을 의미하는가요? (2) 이 salvation은 어떤 구원을 말하는가요? 영의 구원인가요? 몸의 구원인가요?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0절에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도 두가지로 해석되더군요. A. 육신적인 상태(죽은 성도 or 살아있는 성도),  B. 성도의 영적인 상태(성숙한 성도, 성숙하지 않은 성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 혼란스러워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이전에 이미 다루어진 내용이면 어디를 찾아가야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1-12-10 11:32:4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10 08:02:32 | 임현빈
김문수님 설명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변 주신 말씀 중 마지막 구절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겠지만 조금만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출34:7절에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에게 벌한다" 라고 하셨는데 '바르게 읽는 성경' p54 중에 "아버지가 불법을 행했다고 해서 그 죄값을 아들이 담당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과 충돌하는 듯해서 이해가 잘 안됩니다. 별로 중요치 않은 내용으로 성가시게 해드리나 싶어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52:5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12-06 21:24:59 | 이한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