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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런 일은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집에 찾아오려는 사람에게 길을 설명하듯 생각하면 좋습니다. 나는 아는데 관객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는 영화감독이 얼마나 많고, 어려운 얘기를 더 어렵게 만들거나 쉬운 얘기도 어렵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범준 형제님의 지식과 적극성과 겸손과 배우려는 자세 모두 칭찬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조심히 다뤄야 하지만 미숙함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 과정 없이 성장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고, 발목이 젖을까 두려워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강물을 건너는 것이 중요한 일이거나 건너기 어려운 것일 때는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도전 정신은 좋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템포 조절하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고수님(?)들이 할 말이 많지만 침묵하시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늘 나보다 내용에 힘쓰고 하나님을 높이며 맑은 정신으로 바른 성경을 증거하면 그밖의 것들은 따라오게 됩니다. 형제님처럼 젊은 나이에 이런 열정과 지식이 있는 것도 축복이고, 위와 같은 선배 어르신(?)들로부터 좋은 말씀 듣는 것도 축복이며, 벌써 바른 성경을 찾아 알고 믿는 것도 축복이지요. 파이팅하세요~.
2011-07-01 14:22:40 | 김재욱
전도지의 내용이 거의 성경공부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분들은 알 수 있겠지만... 기독교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는 분에게 위 글을 보여주면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이네요. 특히 요즘같이 글읽기를 실어하는 세대에는 먹히기가 힘들 것 같네요. 특히 진화 사상을 기본 사상으로 같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11-07-01 11:46:04 | 허광무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용어가 아닌 말을 쓰게 되면, 교리적으로 오류가 납니다. (원죄, 자범죄) 은혜의 복음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롬 4:25, 10:9, 고전 15:17) 전도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는 이미 검증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좋죠.
2011-07-01 10:58:51 | 김재근
제가 이전에 썼던 복음 전도지가 논란거리가 되어서 다시 재정리해본 것입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성경책 뒤의 여백장에 적어내려가서 방금 막 끝냈는데 많이 힘들기도 하고, 부족한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주욱 살펴봐 주시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세요. 샬롬^^ =========================================================================== <복음 전도 예시>   1.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죽는다.(창3:19b; 전3:20; 히9:27a) 왜?   (1)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창1, 2:1-7; 사45:12, 18; 골1:16) (2)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셨다.(창2:7) (결코 진화의 산물이 아님. 정보도 제공하는 자가 없으면 생성되지 않으며, 빛도 광원이 있어야 발생함.)(롬3:4a) (3)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창2:16, 17; 신30:19-20; 마5:37) => 하나님을 원활히 섬길 수 있게 하심. (4) 그런데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이 이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함.(원죄)(창3:6) (5) 이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으며, 그 죄를 안고 태어나게 됨.(롬5:12) 따라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자는 단 한사람도 없음.(롬3:10, 23)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짓는 모든 죄(자범죄)는 다 이 원죄에서 기인함.)(사64:6) (6) 따라서 이 죄를 해결받지 못하면 죽음도, 그 이후의 일도 해결할 수 없음. (롬5:12; 히9:27; 롬6:23)   2.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인류 역사상 가장 궁금한 사안) => 종교 생성의 원인임.   (1) 사람이 죽으면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검정(심판)을 받음.(전12:14; 단5:27; 히9:27) (메이커(Maker)의 당연한 권리임. 제조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이 자신의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 시험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 (2)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양심의 가책 뿐만이 아니라(현세), 이 죽음 이후 심판에서도 통과하지 못함.(내세) ∵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의(義))를 충족시킬 수 없음. (사64:6; 롬3:10, 23) (3) 사후세계는 분명히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고후4:18; 5:7) (사5:14; 막9:44, 46, 48; 눅16:19-31; 23:43; 요14:2; 고후12:2, 4; 계2:7; 20:10, 15; 21:8) (4) 하나님의 심판에서 통과하지 못한 자(요3:18, 20, 36b)는 모두 지옥에 던져짐. (계20:15; 21:8) 하지만 통과한 자(요3:3, 5, 16, 36a; 5:24; 6:37)는 모두 자신의 행위와 상관 없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눅10:20; 요5:24) 하늘 왕국(일반적으로 말하는 '천국')에 입장.(눅23:43; 고후12:2, 4; 계2:7)(마3:11, 12)   3. 또한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서로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줄 수 없음(롬3:10; 행4:12) ∵ 이 세상 사람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외친 사람은 아무도 없음.(요14:6) => 고로 사람이 자신 혹은 타인을 죄에서 구원해 주려 하는 모든 행위(종교)는 헛된 것임.(사64:6)   4.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시고 자신이 직접 그 해결책을 예비하시고 제시해 주심.   (1)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죄를 대신할 희생물이 필요했음. 그것도 한 번 죄 지을 때마다 필요함.(히9:19, 26a) (2)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직접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려고 친히 육신을 입으심.(요1:14, 29) (3)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요3:16) 예수 그리스도이심.(요일1:1-2) (4) 그분은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으셔서(요1:14; 요이7) 시험을 당하셨지만 (막1:12-13; 히4:15a)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고후5:21) 죄가 없으심.(히4:15b)   5. 십자가는 신약시대 당시 최종, 최악의 형벌이었음. (성경에서도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음)   (1) 폭동, 살인, 강도 등 국가를 혼란하게 한 범죄가 이 형벌을 받음. (눅23:19; 39-43) (2) 십자가는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저주, 멸시, 조롱의 대상.   6. 그런데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죄도 없으신데 우리의 모든 죄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에 못박혀 죽으심.(사53:5, 12; 행2:23; 롬5:8; 고전15:3; 갈3:13) (사도신경에 있는 대로 빌라도 때문이 아님.)   7.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사53:12)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화해 헌물이 되사(요일2:2) 자신의 흠 없는 물과 피를 쏟으심.(요19:34; 엡1:7; 골1:14)   (1) 이전까지는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1년에 한 번 들어가서 하나님을 뵐 수 있었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희생물로서 자신을 단 한 번 하나님께 드림.(히9:25-28) (2) 예수님의 이 죽음으로 인해 성소의 휘장이 둘로 나뉨.(마27:51) (3) 따라서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자는 신분과 지위의 고하나 그 어떤 행위와 관계 없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됨.(벧전2:9)   8. 또한 주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친히 이기시고, 모든 잠든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려고 부활하심. (요11:25-26; 행2:24; 고전15:4)   (1) 주님은 성경 기록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심.(사53:10; 호6:2; 욘1:17; 고전15:4) (2) 누군가가 시체를 옮긴 것이 절대 아님. 그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많은 증인들이 있었음.(고전15:5-8) (3) 실제로 주님께서 부활하심은 앞으로 많은 잠든 자들(죽은 자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된 것임.(고전15:20-22)   9. 우리는 이 사실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음. (요3:16; 롬10:9, 10)   (1) 영생은 그대에게 생의 단 한 번 주시는 선물임.(롬6:23)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 (2) 지금 받지 않고 물려 두면 언제 다시 이 기회가 올지 모름. ∴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잠27:1; 약4:14) (3) 당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이 주 예수님과 그분께서 하신 일들(고전15:3-4)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요16:9) (4) 교회 출석이나, 자신의 행위와는 상관 없이 이것을 지금 소유하길 바람.(갈2:16; 엡2:9) (5) 지금 믿고 감사함으로 받는다면 바로 당신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요5:24)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눅10:20)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5:29: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1-06-30 13:40:23 | 소범준
왜 오직 킹제임스 성경(KJV-AV1611)인가?   지구상의 어떤 성경 원본보다 월등한 킹제임스 성경! “영어 킹제임스성경(KJV)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에서 번역된 성경이기 때문에 영어 킹제임스성경(KJV)보다 원어인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어 성경이 더 낫고,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알아야만 성경을 바르게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한편 옳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작은 누룩 하나가 온 덩어리를 뜨게 합니다. 킹제임스성경(KJV)은 현재 있는 어떤 그리스어 사본이나, 발견되지도 않은 최초의 원본(original autographs)보다 뛰어나고 월등하게 낫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위 이름이 알려진 성경학자, 또는 박사라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무시당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누리는 지위와 이익이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men of low degree)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men of high degree)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시62:9) * low degree와 high degree는 석사 학위 또는 박사 학위를 말함.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학위도 없고 가난한 어부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유명하고 명성이 있고 학벌, 재력, 권력을 가진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을 버려두고 왜? 어째서? 뱃사람 중에서도 가장 하층 계급인 가난하고 학위도, 재력도, 권력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높은 학위와 재력과 권력이 있어야 성경 기록을 알고 믿을 수 있고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높은 학위와 재력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word)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기 자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성경 기록을 기록된 그대로 어린 아이처럼 믿는 사람들이 더 올바르고 지혜롭고 인정을 받습니다.(마18:4, 19:14. 마10:14-15. 눅18:16-17) 그러나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착취합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유명하고 명성 있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였음을 잊지 마십시오.(창6:4과 민16:2을 확인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학위도, 재력도, 권력도 없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유명하고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재력이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역사는 반복됩니다! (History repeats itself.)   1. 존재하는 최초의 원본들은 없다! 최초의 원본들에 관해서 현존하는 어떤 사람도 원본을 보거나 작은 원본조각도 찾은 적이 없습니다! 찾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최초의 원본이 지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킹제임스성경(KJV)보다 월등하고 낫다면 어떤 면에서 또 어떻게 해서 월등하고 낫다는 것입니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학자와 박사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들이 킹제임스성경(KJV)의 본문보다 더 월등하고 낫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단어들(words)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입니다.   주의 말씀들(words)은 순수한 말씀들(words)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12:6-7)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words)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단어들(words)을 보존하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성경학자, 박사라는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최초의 원본과 원어”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보거나 만지지도 못한 “최초의 원본” 운운하는 것이 옳습니까? 자신의 단어(word)를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현재 보존하여 우리에게 주신 주어진 킹제임스성경(KJV)을 보고 확인하는 것이 옳습니까?   2. 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성경보다 훨씬 읽기 쉽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들은 정확하고 읽기 쉬운가? 모든 필사본 분석가들에 의하면, "사본들"은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 없이 대문자로 되어 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으며, 단어와 단어들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표기도 없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BUTTHEMENOFSODOMWEREWICKEDANDSINERSBEFORETHELORDEXCEEDINGLY",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영어 킹제임스 성경본문에는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이 있고, 괄호와 문장 부호도 있고, 단어와 단어들이 구분되고, 단수, 복수와 시제와 인칭까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읽기 쉽고 확실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 CEB, NEB등 새로 출간되는 성경들은 자신들의 성경이 "월등"한 성경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근거로 “우리(NIV, CEB, NEB의 번역자들)는 원본과 같은 원어에서 번역했다”고 외칩니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도 없이 대문자로 되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고, 단어들을 구분을 지을 만한 어떤 표기도 없는 성경에서 어떻게 월등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쉽고 확실하게 표기된 것이 없는 “소위 원어와 원본들”이 읽기 쉽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단어와 단어의 구분, 대문자와 소문자, 단수와 복수, 시제, 인칭까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표기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본문보다 “월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대에 있는 모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들이 영어 킹제임스성경보다 정확하고 읽기 쉽다고 입증할 수 있는 학자나 박사는 전혀 없습니다!   3.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성경에는 장과 절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필사본 분석가들에 의하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에는 장과 절의 구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장과 절의 구분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구절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또 성경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어떤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올바른 것을 찾아 제시하고 바로 잡는 일도 매우 어렵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바른 것을 제시하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므로 잘못된 주장이 활개를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처럼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으면 잘못된 주장을 즉시 성경 기록으로 찾아 보여 줄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에는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은 장과 절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본들이 더 우월하고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4. 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로 보존된 말씀(Word)를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성경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특징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라고 할지라도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문맥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습니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생활 언어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경의 단어들을 문맥에 따라서 바른 의미의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보존하신 하나님의 단어들을 정확한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서 킹제임스성경에 옮겨 기록해 둘 수 있었습니다. 처음 기록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에서 영어 단어로 옮기는 과정이야 말로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인류역사상 왕의 명령에 의해서 번역된 유일무이한 성경입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고 하셨는데, 명령을 내린 왕도 유대인 이름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James는 야고보라는 유대인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성경을 기록하셨을 때부터 영어로 옮기시는 과정은 물론 지금 현재까지 졸지 않으시고 자신의 단어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이후에 그 어떤 사람도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문맥에 따라 올바른 의미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에서 자기 생각에 따라 선택한 의미로 번역할 뿐입니다. 만약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려 한다면 ASV, RSV, NIV, NEB, CEB..를 틀린 성경이라고 판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전에는 배교한 성경들이 선택한 단어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의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유일한 성경입니다!   5.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께서 옮기신 성경이다! 사람들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은 번역본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천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보다는 열등하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매우 합리적인 주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길로, 하나님의 섭리로 옮기셨다면 얼마든지 원천 언어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번역 성경이라서 열등한 성경인지 아니면 번역 성경이라서 오히려 원천 언어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이 되는지, 성경 기록 스스로의 판결을 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은 모두 번역 성경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이 번역 성경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번역 성경이기에 열등하다는 주장은 이미 불합리한 주장이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도 요셉은 형들과 대화를 할 때 이집트어를 사용했으나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기록되었습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번역(translate)이라는 단어에 대한 성경 기록의 정의입니다. 성경에서 translate, 즉 번역, 또는 옮김이라는 단어는 사무엘하3:10, 골로새서1:13, 히브리서11:5의 세 구절에서 다섯 번 언급됩니다.   첫 번째는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다윗의 보좌로 옮기셨습니다(translate).(삼하3:10)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옮기고(translate)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 하매 (삼하3:10).   사울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울의 외모를 보고 왕으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선택된 사울의 왕국은 사울 한 명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왕이며, 다윗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국을 영원한 다윗의 왕국으로 옮기셨습니다(translate). 사울의 왕국과 영원한 다윗의 왕국을 비교하는 것은 하늘나라와 지옥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셔서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translated) 것입니다.(골1:13)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translated) (골1:13)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들을 어둠의 권 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신(translated) 것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경스러움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김(translated)을 받은 것입니다.(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translated)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translated)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translation)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 (히11:5).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옮겨진(translated) 후 5000년이 지나도록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역(translate)"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신다(translate)면 옮기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온 우주와 모든 창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1611년에 유대인 이름을 가진 왕의 명령에 의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보존하신 자신의 단어를 영어 단어로 섭리 가운데 옮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길로 섭리 가운데 옮기신 영어 단어들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누구든지 읽을 수 있고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어 단어로 자신의 단어를 옮겨 보존하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6. "마지막 때"의 전 세계적인 언어는 영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즉 마지막 때, 즉 두 번째 오심, 재림(the Second Advent)에 대해서는 두 배 이상 더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창 3, 14, 24, 46, 49장, 출 15장, 신 21, 28-32장, 수 1-7장, 판 5장, 삼상 17-18장, 삼하 22장, 왕상 1-9장, 사 2장, 11:1-12, 9장, 65-66장 etc)  만일 하나님께서 앞으로 다가올 대환란 때에 유대인 복음전도자들(계 7장, 바울, 요나, 예레미야는 그 모형입니다!)을 사용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초림보다 마지막 때에 대해서 두 배 이상을 다루었듯이 마지막 때에 사용할 언어는 마지막 시대의 세계 중심 언어인 영어가 두 배 이상 더 중요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모국어를 제외하고 두 번째 언어를 선택한다면 킹제임스성경에 보존된 "영어"를 선택할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확실합니다.   성경 기록의 언어가 그 시대의 중심 언어였듯이 마지막 시대의 세계 중심 언어가 영어가 될 것을 모르셨고, 자신의 단어를 영어로 옮겨 보존하시고 사용하실 수 없다고 믿어야 옳을까요?   7.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운율이 있는 성경이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시적이지도 않고, 리듬을 가진 언어도 아닙니다. 독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태리어나 프랑스어가 리듬을 지닌 언어이긴 하지만 지금껏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시적이고 리듬을 지닌 성경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시적인 킹제임스성경은 "성경을 암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노래 가사를 리듬이 없는 "무운시"(無韻詩)보다 더 잘 암기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암기하는 것에서도 리듬이 없는 그리스어 본문을 훨씬 초월합니다. 또 킹제임스성경이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것은 전문 문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 전문 문법학자들의 글들과 게일 리플링거(Gail Riplinger)의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the Language of the King James Bible, AV 출판사, 1998)라는 책을 읽어 보십시오. 왕의 영어와 그 완벽함, 또 시적 운율이 문장과 절들뿐만 아니라, 단어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성경입니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시적이지도 않고, 리듬을 가진 언어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사본들이 어떤 점에서 더 월등하다는 것일까요?   8. 킹제임스성경에는 역사의 배열순서가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책은 역대기하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주신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순서는 그들에게 적절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의 구약성경 배열순서는 히브리어 성경과 다르게 역대기하가 중간에 배열되어 있고 말라기서가 마지막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왜 히브리어 성경과 배열순서가 다를까요?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역대기하에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A.D. 70년 타이투스(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 다음 책인 에스라서에서는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회복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A.D. 1917년 발포어 선언과 일치합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주후 1948년과 일치함)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책인 에스더서에서는 이방인 신부를 버리고 그녀 대신 유대인 신부를 맞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교회 시대에서 대환란으로의 전환 과정과 일치합니다. 그 다음 책인 욥기는 대환란은 예고합니다. 욥기는 42장이며 한 장이 1개월을 예표합니다.(계 11-13장). 그 다음 책인 시편 2편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보좌에 앉으신 메시야와 그분과 함께 도래한 천년왕국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히브리어 성경 순서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무엇인가를 놓쳤으나 킹제임스성경의 배열 순서에서는 역사의 배열 순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들이 모두 기록된 후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자(행 7장),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순서(배열)를 바꾸셨고, 히브리어 성경의 순서를 마지막 시대를 장식할 킹제임스성경의 배열 순서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그 외에의 것들은 요약 정리합니다.   1. 킹제임스성경은 판권이 없는 유일한 성경입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은 모두 판권이 있습니다.   2. 킹제임스성경은 400년 동안 좋은 열매를 맺어왔고 맺고 있고 앞으로도 맺을 것입니다.   3.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던 유일한 교회인 필라델피아교회 시대에 번역되었습니다. 새로운 현대 역본들은 사람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라오디케아교회 시대가 시작되면서 등장했습니다.   4.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그들의 작업에 있어 정직했습니다. 번역상의 이유 때문에 어떤 단어들을 덧붙여야하였을 때, 번역자들은 덧붙여진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표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그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새로운 번역본들은 아무 표기 없이 덧붙이고 삭제하였습니다.   5. 모든 새로운 번역본들은 자신의 성경들을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만 비교하고 있습니다. 결코 새로운 번역본과 새로운 역본과는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직 킹제임스성경이라는 한 권의 책에 대항해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마12:26).   6.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임스 왕에게 바치는 글과 NASV서문을 비교해 보라.]   7. 5,300개가 넘는 사본 증거들 중에서 95%가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본들은 나머지 5%의 사본들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 사본들은 대부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단지 두 개의 계열이 있을 뿐입니다. 알렉산드리아 계열과 안디옥 계열입니다.)   8. 아무도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9. 이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새로운 번역본도 KJV 만큼 그리스도를 높이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잘못된 번역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주님의 피로 인한 속죄, 부활,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주님의 재림 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결론  사람의 생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못 박아 두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고, 다만 “자신의 단어(word)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도 없고 대문자로 되었고, 괄호나 문장부호도 없고, 단어들을 구분을 지을 만한 어떤 표기도 없는 “소위 원어와 원본들”이 읽기 쉽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거짓말입니다.   당신 손에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고, 단어와 단어의 구분, 단수와 복수, 시제, 인칭까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표기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혼란을 조장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를 이 시대 공용어인 영어 단어로 정의를 내려놓은 유일한 성경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신다(translate)면 옮기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보존하시던 자신의 단어를 영어 단어로 옮겨 보존하신 무오하고 유일한 성경입니다.   초림에 대한 언급보다 재림에 대한 언급이 두 배나 더 많듯이 킹제임스성경은 원천언어인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성경보다 두 배 이상 더 확실하고 쉽습니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성경은 시적 운율이 없지만, 영어로 된 킹제임스성경은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유일한 성경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배열순서는 역사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 만큼 많고 좋은 열매를 맺은 성경은 지구상에 없고 아무도 킹제임스성경에서 단 하나의 오류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킹제임스성경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성경은 전혀 없습니다.   A.D.1611년 왕의 명령에 의해서 킹제임스성경으로 옮기시기 전까지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단어로 성경 기록들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 언어는 죽은 언어입니다! 성경에서 이 세 가지 언어가 함께 등장하는 곳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입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명패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눅23:38, 요19:20)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한 이 세 가지 언어가 죽은 언어가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요? 우연한 것일 뿐이라고 믿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요?   존재하지도 않고 상상 속에나 있는 "최초의 원본들"을 가지고 거룩한 성경을 고치려고 시도하고 속이고 지배하고 착취하려고 하는 성경학자들과 박사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하셨던 성경 기록들을 A.D.1611년 영어로 옮겨 보존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입니다!   오류가 없는 완벽한 킹제임스성경!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하신 유일한 킹제임스성경! 누구든지 쉽게 읽고 확인할 수 있는 무오한 성경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오류 없고 완전한 KJV-AV1611을 주신 하나님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  Keep Bible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운로드를 받으셔서 마음대로 배포하시고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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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21:42:53 | 홍성율
혹 형제자매님들께서 다툼으로 오해하실 염려가 되기에 "KJV에서 번역된 한글성경에 대해서"에 달아둔 댓글을 이곳에도 달아 둡니다. 김문수 형제님께서 저의 글이 정제된 표현-(곱고 순한 표현?)이 아니어서 감정적으로 보셨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KJV-AV1611의 최종권위에 해를 입힐 만한 글을 공개적인 곳에 썼다면 그 사람이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을지라도 역시 더 강하게 질책했을 겁니다. 만약 제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제가 KJV의 최종권위에 해를 입힐 만한 글을 썼다고 해서 누군가가 제게 더한 질책을 했다면 원인을 제공한 저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일깨워 준 지체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감사하겠습니다. KJV는 제게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이고 그분의 최종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도 저도 흠정역 교정위원으로 바른 번역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KJV가 번역 성경임으로 모든 번역 성경들도 완전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글을 올리신 것은 흠정역 교정위원으로서 의도하시지 않으셨을지라도 KJV의 최종권위를 희석하시는 것입니다. 마침 김재근형제님이 흠정역 교정위원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 진술”을 올려두셨네요. 오직 KJV만이 완벽한 유일한 기준이라고 형제님도 저도 확실하게 서명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통해서 모든 번역 성경이 KJV와 동일한 권위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은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영원을 함께 할 형제님을 미워할 이유도 없고, 미워할 권한도 없고, 또 적으로 대해야 할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형제님도 저도 KJV를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로 믿으시기에 KJV에 대한 사랑이 원인이었음으로 여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까지 좋은 글로 많은 사람들을 세워 주신 수고를 주님께서 잊지 않으실 겁니다. 앞으로 더 유익하고 더 좋은 글로 널리 도움을 베푸시는 형제님이 되십시오. 저는 인터넷 접속을 거의 하지 않기에 온라인에서 뵙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1-06-29 20:29:00 | 홍성율
아멘..나는 우리말과 번역자들의 한계로 인해 우리말로 완벽한 성경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가 우리말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가장 완벽한 정의라고 봅니다.그 어떤 책도 완벽한 번역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2011-06-29 12:44:04 | 지미 곽
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기준이 되는 성경으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허락하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훌륭하신 두 분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려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근본이 되는 의도와 취지를 이해했다면 약간의 견해 차이는 인정하고 포용을 했으면 합니다. 요즘 제가 교회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막가파로 가는 교회들도 있는데 이는 차치하고, 나름 하나님을 진실되게 따르고자 하는 교회의 경우 교리적으로는 올바르지만 관계에서 부적절한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교리적으로는 불충분하지만 관계나 자세에 있어서 탁월한 교회가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든 사람이기에 퍼팩트한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교리적으로도 올바르고 관계나 자세에서도 탁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성침 계열 교회 출신 성도로 이런 경우로 많은 분열과 퇴보를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일단 내가 만든 것, 나의 견해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한 반응을 갖고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안해 버리는 독립적 성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앞서 진짜 민감해야 할 부분은 죄와 세상은 말 할 것도 없고, 은사주의 , 형통 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분별력을 상실한 교회의 교인들입니다. 교회안의 누룩과 가라지는 그냥 놔뒀으면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약간의 누룩과 약간의 가라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정화되는 과정이 각자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삶에서 완전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대부분이 부족한 사람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어느 특정 한부분에 부족하였다가 다시 채워지는 그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주님께서 부족한 나를 많이 빚어 주셨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교리와 성경을 갖고 있다면 관계와 자세에 있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따라가고 있는 양들을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오랜 수고와 노력 끝에 지금의 흠정역 성경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영어를 잘 모르기에 영어까지 잘 아시는 분이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 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해서 설명을 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준다면 그 얼마나 감사한지요. 킵 바이블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놓칠 뻔 했습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 나가면서 서로의 장점을 격려 하면서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1-06-29 11:20:29 | 조양교
목사님이시군요. 제 생각에는 이글의 제목 역시 좀 훈계조로 읽힙니다. 이왕이면 킵바이블에 기대합니다 라든가... 목사님은 얼마만큼 이사이트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얼마만큼 이런 일을 위하여 서로 세워 주고 있는지요? 그것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2011-06-29 11:09:42 | 남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