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형제님의 글을 통해서 - 저는 KJV에 대한 강한확신과 흠정역 한글 번역의 우수성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여러 유익한 말씀과 자료들을 통해, 그리고 여기있는 목사님의 설교와 강해들을 통해
(아직 다 섭렵해보지는 못했지만-)서 -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읽고 바르게 나누어
읽는법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종이로 된 흠정역 성경을 꼼꼼히 살펴보고 천천히 그 뜻을 따져보고 생각해봐야 그 의미가 간신히 와닿았는데 -
이제는 능히 오디오성경CD로만 들어도 그 의미를 곧바로 어느정도 이해하는 분량까지 온것같습니다.
(물론 진짜 많이 부족합니다. 아직 전 갖난애기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있는 훌륭한글들과 내가 이를 능히 깨달을수있을까 하는 빼어난글들을 통해 많은 유익과 그리고 겸손도 또한 배워갑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
과거에는 감히 생각치도 못했던 일들을 가능케 해주신
아버지와 주님 그리고 성령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항상 말씀을 먹기좋게 요리해주시는 목사님과 유익한 경건의 말씀들로 힘을 주시는 여러 형제님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아침에, 문득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들어와 글을 남기고 갑니다.
항상 주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2011-03-21 09:19:07 | 최홍진
바르게 읽는 성경 잘 읽고 있습니다. (종이책은 사놓고, 정작 전자책으로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흠정역 성경이 영어KJV를 바르게 번역하였다는 사실 및 KJV의 완전함에 대해 숱한 열정을 쏟으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얼마전에는 남태평양 섬나라를 방문하는 TV 프로를 본적이 있는데, 아직 원시 부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 사람들에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위해 피 흘리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도들에게 타언어가 필요했듯이 말이죠.)
밑에 댓글을 다신 분께서 악의로 그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게시판을 통해서 대화통로를 갖다 보니, 오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밑에 그 분이 쓰신 글을 보니...
영자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 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제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알파벳으로도 역사하시지만, 한글로도 물론 당연히 역사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평안하십시요.
2011-03-21 07:56:15 | 곽연우
우리는 불완전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게시판에 들어와서 게시물들을 읽다가 아래 "느부갓네살/느부갓레살"이라는 게시물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달면서 제가 오래 전에 쓴 글을 인용하면서 제가 말한 바와는 전혀 다르게 왜곡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글을 올린 지가 벌써 10개월이 지났는데 그 분은 그 동안 줄곧 저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오셨나 봅니다. 1990년대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시절부터 이런 일을 당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기에 이제는 거의 면역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해명은 해야겠기에 부득이 글을 적습니다. 저는 그분을 한번도 뵌 적이 없고, 서로 마찰을 일으킨 기억도 없기 때문에, 이것은 특별히 제게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 글을 자세히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를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그분이 26년째 미국 생활을 해 오셨기 때문에 한국어를 정상적으로 읽고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으신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어드리기 위해 그분이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는 한편, 성경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합니다.그 분이 문제 삼으신 제 글은 아래 부분입니다. 이 글은 "원어성경의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올린 바 있으며, 그 분이 언급한 see you later 라는 문장을 예화로 든 사람은 바로 접니다. 참고로 다른 글에서 제 신분을 밝혔지만 저는 언어학 전공자가 아님도 덧붙여 알려 드립니다.아래 글은 제가 올린 부분입니다.----------------------------------------------------------------"사전 그대로 옮기자면" 아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 There is nothing to eat, but help yourself.뜨끈뜨끈한 국물이 참 시원하네요. => This hot soup is very cool.두고 보자. => See you later. 우스개 이야기같지만, "문맥과 상황과 문화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전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이처럼 무모한 일입니다. ----------------------------------------------------------------다음 글은 제가 쓴 위 글에 대한 그분의 독자적 해석입니다.---------------------------------------------------------------------------------홈페이지에 자주 게시글을 올리는 어느 분께서 "See you later"란 문장을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명문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셨고 대학에서 교수로 계신다는데, "See you later"를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면 "See you later"란 문장이 나쁜 감정이 썩인 표현으로 "두고 보자"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잘못된 해석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해서 주의깊게 읽어야 할 부분을 따옴표로 표시해 드렸습니다. 제가 위 글에서 see you later 를 번역하면 "두고 보자"가 된다고 했나요? 저는 저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그분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것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언급하셨는데, 이번 기회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그 번역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글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훌륭히 한글로 번역된 책입니다. 저의 뜻은 훌륭히 번역된 책이지, 한글로만 온전히 성경적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는 책이란 뜻입니다."만약 이 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글로 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기에 불완전한 성경이 됩니다. 즉 우리는 불완전한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한글 흠정역 성경으로는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온전히 알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지금부터 한글 흠정역 성경은 접어두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가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말합니다)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일부 극단적 부류의 사람들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성경 논쟁이 한창 뜨겁게 달아오를 때, "English" KJV Only 를 외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만이 진리이며,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면 온전하지 못한 말씀이 되기 때문에 English King James Version만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타언어로 번역하면 안되고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King James Version is the accurate interpretation of the preserved word.위 문장은 이번 학기에 배우는 과목 중 "텍스트 보존의 교리와 역사"에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성경 말씀은 최초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영감은 최초의 자필 원본(autograph)에만 적용됩니다. 그 원본으로부터 필사한 많은 사본들(apograph)이 나왔습니다. 원본으로부터 그대로 필사한 사본들은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보존된 문서입니다. 이 사본들은 최초의 자필 원본 그 자체가 아닙니다(not identical). 그러나 그것은 원본과 같습니다(same). 그것은 원본과 동일한 가치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워드 프로세서로 글을 한 편 써서 그것을 모니터로 보거나, 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보거나, 프린터 출력물을 복사기로 복사해서 사본을 읽어보거나, 손으로 베껴써서 읽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자동차 열쇠는 2개가 있습니다. 아내는 공장에서 출고할 당시에 차와 함께 제공된 열쇠를 가지고 있고, 저는 복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사본은 원본 열쇠 자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는 복사본 열쇠는 원본 열쇠의 구조와 속성과 기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복사된 열쇠로도 자동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조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원본과 같은(same) 열쇠입니다. 성경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그분께서는 성경 말씀을 사용하셨고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마태복음 4장 4절은 "It is written" 이라고 합니다. it was written 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의 말씀은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도 기록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회당에서 보관하고 있던 신명기의 말씀은 모세가 직접 기록한 자필 원본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을 거쳐서 전해져 내려온 복사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복사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그 기록된 말씀을 사용하신 것입니다.최초의 성경 기록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최초의 자필 원본을 서기관들이 필사하여 만든 사본은 성경이 아닙니까? 사본은 불완전한 성경입니까? 사본에는 하나님의 권위가 없습니까?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성경 번역의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된 사본들을 영어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흠없이 보존해주신 히브리어 구약 텍스트(Jacob ben Chayyim Masoretic text)와 그리스어 신약 텍스트(Textus Receptus)를 영어로 번역하면 불완전한 성경이 됩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영감으로 기록된 문서는 아닙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텍스트로부터 번역된 번역본입니다. 원어가 아닌 영어 번역본이니 가치가 덜하거나 온전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공부를 시작해야합니까?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보존(providential preservation)"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사용하여 구약 성경 텍스트를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보존해 주셨습니다(롬3:1-2). 또한 신약 성경 텍스트는 그 시대에 널리 통용되던 언어인 그리스어로 보존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가 아닌 영어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모든 세대에 보존해주시겠다는 약속대로 그것들을 영어의 형태로 보존하셔서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 시대에 주신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말씀이 흠없이 보존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 이르리로다(시33:11).주께서는 선하시도다. 그분의 긍휼은 영존하며 그분의 진리는 모든 세대에 지속되는도다(시100:5).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주의 신실하심은 모든 세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굳게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나이다(시119:89-90).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시며, 그분의 진리를 모든 세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실 때, 그 말씀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위 동굴 속이나 박물관에 보존하셨습니까? 그분께서는 그 말씀을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서 보존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대대로 회당에서 그분의 말씀을 읽고 연구했으며, 신약 성도들 역시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교회에서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전파해왔습니다.영어가 아닌 다른 번역은 어떨까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스페인어 성경이나 프랑스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긴 한데 온전하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번역하면 불완전한 성경이 됩니까? 한글로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의 근거는 어느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까?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이 일 곧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26:13).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그 여자의 행한 일을 말하여 기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라는 표현에는 영어권 국가는 물론 중국어 사용 지역, 러시아어 사용 지역, 프랑스어 사용 지역, 스페인어 사용 지역, 한국어 사용 지역 등 전세계 모든 곳이 다 포함됩니다. 어떻게 그 다양한 언어권에 속한 사람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사도들이나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까?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복음 전도를 위하여 사람들에게 외국어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일부 극단적 "영어"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들 중에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 자체가 영감받았으며(이중 영감설), 그것은 하나님의 진보적 계시이기 때문에, 그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여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특히 인종적 편견 및 영어 우월주의에 빠져서 심지어 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못마땅하게 여기고, 전세계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다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것이 과연 그분의 말씀인 성경인지, 영어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언어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영어를 한국어로 100% 완벽하게 옮기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최대한 그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부터 번역된 다른 모든 성경은 온전하지 못한 성경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모든 세대"에게 그분의 진리를 보존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헛된 것이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도 모든 세대에게 진리의 말씀을 보존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언어적 차이 때문에 이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영어를 잘 모르는 한국인들에게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씀하실까요?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모든 세대에게 보존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면 당연히 그 약속은 전 인류 역사를 통해서 계속 성취되어왔어야 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진리의 말씀이 흠없이 보존된 형태로 제 손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흠없이 보존해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제게도 이행하셨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제가 가지고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저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혹시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만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거기에서 번역된 한글 성경, 중국어 성경, 스페인어 성경은 온전하지 못한 말씀이라고 믿고 싶으신 분은 그렇게 믿으시고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건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 각자의 믿음이니 제가 특별히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단순히 남들에게 영어 우월주의에 빠져서 "나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는다면 그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영어식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추가로 말씀드리는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읽을 때에는 영어식 사고로 읽고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단어나 문장 구조는 영어식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의 내용은 영어식 사고가 아니라 성경적 사고로 읽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정혼(betrothal)"은 영어권 사람들이 생각하는 약혼의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개(dog)"를 말할 때, 영어식 사고로 애완견이나 유기견을 생각하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형사취수제(levirate marriage)를 영어식 사고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신약 성경에 나오는 훈육 선생(schoolmaster)은 그리스식 사고로 이해를 해야지 영어식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의 문법(용법)과 성경의 문맥(관습, 역사, 문화 등)과 성경 기록자와 수신자의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저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최초의 자필 원본을 발굴하기 위해 삽질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또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서 "영어로 된"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온전치 못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께서 흠없이 보존해 주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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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05:47:24 | 김문수
참 좋은 질문을 하셨네요. 느부갓네살은 영어로는 "Nebuchadnezzar"인데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구약에서만 총 57 단어가 사용되었네요. "Nebuchadnezzar"은 인칭 명사로서 바빌론 왕의 이름인데 그 뜻의 의미는 독자 스스로 히브리어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공부해야겠지요. 하지만 "Nebuchadnezzar"은 영어로 쓰인 인명이기에 번역이 아닌 음역을 하여 한글로 소리를 내어야 하는데 '느부갓네살'도 정확한 영어단어의 소리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와서 26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의 한국 이름이 "최 우탁"인데 한국여권에 영어로 표기 하면서 "Choi, Woo Tack"이라고 하여 지금도 미국 사람들은 저의 성인 "최"를 "초이"라고 소리냅니다. 저에게 20살된 딸이 한 명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 딸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어(Language)를 할줄 몰랐습니다. 이유는 한국어(tounge)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말을 아주 잘합니다. 하지만 저의 딸은 미국적 사고를 지니고 있지 한국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그만큼 언어의 표현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글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훌륭히 한글로 번역된 책입니다. 저의 뜻은 훌륭히 번역된 책이지, 한글로만 온전히 성경적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는 책이란 뜻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히 하나님 말씀이 보존된 책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영어의 원 뜻, 즉 영어적 사고로 번역되어야지 한국적 사고에 맟출려고 번역하면 오류가 있을 수있습니다. 예를 들어 keepbible의 홈페이지에 자주 게시글을 올리는 어느 분께서 "See you later"란 문장을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명문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셨고 대학에서 교수로 계신다는데, "See you later"를 "두고 보자"라고 해석하면 "See you later"란 문장이 나쁜 감정이 썩인 표현으로 "두고 보자"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잘못된 해석입니다. 즉 한국적 사고로 해석한 것입니다. 영미인들은 "See you later"를 "잘 가!, 나중에 또 봐!"란 의미로만 사용하지 나쁜 감정의 표현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자"를 영어로 옮긴다면 "Just wait and see!"라고 표현합니다.
2011-03-21 01:54:03 | 최우탁
감사합니다.
2011-03-21 00:07:02 | 소범준
감사합니다. 더욱 더 믿음 안에 굳게 서 갈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세요.
2011-03-21 00:06:38 | 소범준
다양한 방법으로 주님의 말씀에 다가설 수 있게 해주시는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자주 읽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2011-03-20 23:14:58 | 김지훈
은혜로운 찬송 고맙습니다!
2011-03-20 22:22:11 | 주수경
그리고 안 그래도 이미 교보문고와 갓피플, 생명의 말씀사에 좋은 평을 냈습니다.
계속 알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1-03-19 21:31:14 | 소범준
명쾌한 분석이군요. 이래서 흠정역 성경을 안 읽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3-19 19:27:13 | 소범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으로 인간은 모든 재앙 앞에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경계의 글이었습니다.
2011-03-19 19:10:56 | 소범준
이 책의 저자와 책제목을 알수있나요?
2011-03-19 15:15:21 | 유현준
창조과학 홈에서 퍼온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데 왜 지진과 쓰나미가 있는가?
김홍석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 받는 분들에게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통 중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고, 도와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는 왜 지진과 쓰나미가 있는가? 이러한 끊임없는 현상들이 오늘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고 있는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마 10:29), 많은 참새보다 귀한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0:30-31)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대량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이 과정을 통하여 나는 어떤 의미를 발견해 내야하는 걸까?
2000년대에 들어서서만 해도 나의 기억 속에는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쓰나미가 23만여 명의 희생자를 냈고, 2005년 파키스탄의 지진, 2008년 중국의 스촨성 지진에서도 각각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2011.3.11, 일본의 쓰나미 참사를 실시간(real time)방송으로 보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파괴적 현상들은 지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만이 아니었으며, 아주 근래에만 있었던 일도 아니었으며, 지진만이 대재앙도 아니었다. 주후 79년경에도 폼페이의 화산폭발로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1340년대 몰아친 흑사병으로 인해 1억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유럽인구의 반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1918년에 시작된 스페인독감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003년에는 사스(SARS)가, 그리고 조금 전까지 조류독감과 신종플루가 우리를 위협했고, 지금도 구제역이 우리의 가축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세상에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망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망가진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노아홍수라는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면서 남긴 해령과 지판의 격변적 이동의 여력이 아직도 증거로 남아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키면서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해준다. 무지개와 함께, 지층과 화석들과 함께 그 날을 기억하게 해준다. 우리가 누리는 평안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나게 해준다. 지구의 평안이 그저 있는 것이 아니며, 만유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통치 아래 있음을 생각나게 하며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우리 자신의 약함을 자각하게 한다. 우리의 분수를 각성하게 된다. 일순간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생각나게 한다.
더욱 근원적으로, 만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나게 한다. 우주 공간에 지구가 떠 있고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우주의 온도는 영하 270도씨 정도, 수 없이 많은 혜성들이나 거대한 운석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어디로부터 언제 지구를 향해 날아올지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지각 아래에는 바위가 녹아서 끓고 있다. 우리는 그 위에 떠있는 지각 판에 살고 있다. 지각판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에 인류는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한 예측하고 피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인류의 현실은 불안하기가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는 자기장이 장치되어 있어서 태양풍을 비롯한 우주의 유해한 영향들을 막아주고 차가운 우주의 온도와 뜨거운 지각 아래의 온도와 태양으로부터의 적당한 거리와 빛으로 오늘도 우리는 적절한 온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낳았지만 그들의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누구이신가? 우리는 만유와 그 현상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제공되는 장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류의 문제와 답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것에나 또는 스스로를 의지하며 추구하고 높아지려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사건(”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노아홍수의 심판(”하나님의 아들들과의 결혼”), 바벨탑사건(”하늘에 닿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모두 사람이 분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그릇된 욕망으로부터 초래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늘 기억하면서 사람과 만유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임을 끊임없이 명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되도록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하여 욥기를 통해 들려주시는 위로와 지혜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욥은 왜 의인에게 혹독한 고통이 있게 되었는지를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께 항변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이상하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신다(욥 38:4). 때가 되면 아침이 오는 것도(욥 38:12), 흙덩이에 점성이 있어서 서로 붙는 것도(욥 38:38), 산 염소가 새끼 낳는 때를 아는 것도(욥 39:1)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욥은 더 이상하다. 대답 같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욥은 답을 얻고 크게 깨달았으며 앞으로 다시는 하나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욥이 무엇을 깨닫고 답을 얻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완전하신 분이심을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분의 피조세계 가운데 피조물로 살아가며 완전하신 하나님의 경륜(economy)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불만스럽게 느낄 뿐, 사실은 모든 것은 완전하고 공의롭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욥 40:8)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러한 현상들은 마지막 날의 징조인가? 우리에게 이런 일들은 어떻게 의미 있는가? 마태복음 24장, 25장은 마지막 날에 이르는 재난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다(마 24:3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다(마 24:36).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7). 그리고 거듭 진실로(반드시, surely)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20). 그리고 또 사도바울을 통하여 아울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롬 2:40)과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롬 9:22)을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며(마 24:37),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마 24:42),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한다(마 25:13).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바는 주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일이다.
성경의 연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1,656년이 지난 후에 노아홍수 심판이 있었고 그로부터 약 200년 후에 바벨탑사건이 있었으며(바벨탑사건이 일어났을 때 벨렉이 50세였다면 노아홍수 후 겨우 152년이 지난 후였다), 그로부터 2,300여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약 33년 후에 십자가에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반드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제 2,000여년이 흘렀다.
마지막 때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우려할 바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창조주로 믿으며, 예수님을 유일하신 그리스도로 믿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 우리에게 그날은 소망의 날이다. 세상이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게 되었으며(벧후 2:5),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로 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벧후 2:7).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보게 되면 선악과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게 되면 노아홍수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울러 지판이 아직도 움직이면서 섭입(subduction)이 일어나고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노아의 때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가 지각판이 밀리고 충돌하면서 밀려올라와 다시 뭍이 드러나고 거대한 산맥들이 형성되고 물이 물러가면서 만들어낸 계곡들과 산줄기를 바라볼 때 노아의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퇴적지층과 그 속에 땅과 함께 멸하여진 화석생물들을 바라볼 때도 우리는 노아의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어 공부가 힘들다고 느낄 때면 바벨탑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는 ”상속받을 너희”에 속한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긴장하며, 깨어 기다리자. 내일 당장 종말이 오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깨어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마 24:33, 36 ; 계 22:7, 2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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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흠)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 3:18, 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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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9 11:08:46 | 허광무
김문수 형제님의 좋은 댓글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1-03-19 10:00:54 | 관리자
네..???? 제가 적은 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만.....
제 말의 의미가 잘못 전달 됐네요...
말씀하신대로,
믿는 자의 믿음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상태를
구원의 완성이라는 '표현'을 써서 나타냈다고 생각한다는 글이었습니다.....
믿음 + 행위 = 구원 완성 이라는 말씀을 드린게 아니구...
믿음 + 행위
2011-03-19 00:25:52 | 홍석찬
자매님^^
사랑침례교회 자매입니다.
오랜만의 소식에 너무 반갑네요.
비록 3명이지만 바른 진리안에서의 믿음으로
지진의 위협을 느끼며 현장에서도 굳굳하신 용사들의 소식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군요.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
2011-03-18 17:59:57 | 김상희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바는 믿음에다가 행위를 더하여 의로움을 완성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가 정말로 믿는 자라면 그 믿음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 + 행위 = 완전한 구원"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행위 구원이며, 변질된 복음입니다.
2011-03-18 10:55:38 | 김문수
놀라움과 기쁨과 충격과 분노와 감사의 대열에 동참하셨군요.^^
널리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1-03-18 10:41:28 | 김재욱
네네...사실 개역개정만 읽었을 때는 성경 번역을 의심한 적은 없었지요..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을 접하면서... 다른 성경에 대해 경계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킹제임스 한글 번역에도 신뢰가 필요했었습니다ㅜㅜ
아, 어제 확인해본 바 헬라어로 된 성경들을 봤는데,
거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성취하다, 완성하다' 라는 뜻의 단어가 사용되어 있더라구요.
하지만 이것은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의 표현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지만 행위가 합쳐짐으로(나타냄으로)
완전히 의롭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의로움의 완성)
야고보서에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행위로)보이라고 강조하죠.
빌립보서 2:12의 '이루다'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그에 합당한 행위가 따를 때야만
구원받았음이 완전하게 입증되는 것이겠죠.
이게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구원을 완성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와 비교해봤을 때)
결론은 빌립보서의 구원을 이룬다는 뜻은 구원 받은자가 그에 맞는 행위를 함으로
구원 받았음이 나타내어 지는(행위로 입증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걸 고려해 봤을 때
킹제임스 한글 번역이 여러 정황을 잘 따져서
이해하기 쉽게 번역이 잘 되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개역개정처럼 '구원을 이루라' 라고 표현 되어 있으면 그 구절만 봤을 때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생기니까요..
2011-03-18 09:13:42 | 홍석찬
답변 감사 드립니다.
참 놀라운 의미에 맞게 영어와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었네요.
핸슨 교수(James N. Hanson)가 느부갓네살은 ‘고귀한 보호자’를,
느부갓레살은 ‘고귀한 종’을 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느부갓레살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일 때 사용되었고
느부갓네갈은 단순히 그의 역사적 행보를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2011-03-18 06:28:18 | 황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