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 ‘창조인가, 재창조인가?’라는 글을 올리며 재창조를 온 세상에 파급시킨 성경이 바로 스코필드 성경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스코필드 성경은 전 세계의 근본주의 성도들이 가장 많이 읽고 사랑한 성경이고 저 역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위키 백과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이 성경은 1909년에 스코필드가 킹제임스 성경에 주석을 단 스터디 성경이고 근본주의와 세대주의를 파급시킨 유명한 성경입니다. 그 뒤 1917년 판이 나오면서 어셔의 성경 연대를 성경 안에 집어넣었고 이것이 보통 구 스코필드 성경(Old Scofield Reference Bible)으로 불리며 가장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cofield_Reference_Bible
이 성경을 1967년에 옥스퍼드 출판사가 킹제임스 성경 본문을 조금 현대화하고 몇 가지 주석을 바꾸어 New 스코필드 성경(New Scofield Reference Bible)이라는 이름으로 수정판을 출간하였는데 1917년의 구 스코필드 성경만큼 반응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옥스퍼드 출판사는 2003년에 다시 스코필드 성경 III(Scofield Reference Bible III)을 출간하면서 원래의 킹제임스 성경 본문으로 성경 본문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창세기 1장 주석은 1967년도의 뉴 스코필드 성경 내용을 거의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 1장 2절 주석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창조 과학 입장을 먼저 소개하고 뒤에 간극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 올려놓은 2003년도 판 창세기 1장을 캡처한 사진의 주석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창조 과학 입장은 ‘Original Chaos interpretation’으로서 그 핵심은 하나님이 창조의 첫 날 지구와 우주 공간을 만드셨는데 그때에는 아직 지구와 우주에 있어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에 간극 이론은 ‘Divine judgement interpretation’으로서 원래 구 스코필드 성경이 주장하던 바로 1절과 2절 사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고 수백 억년의 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기억하는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간극 이론인데 왜 지금은 그 이론을 창조 과학에 의한 주석 뒤로 밀어 놓았을까요? 이것은 결국 간극 이론이 아니라 창조 과학이 맞는다는 것을 스코필드 성경 편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간극 이론과 창세기 6장의 천사에 관한 해석만 빼면 스코필드 성경만큼 좋은 스터디 성경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스터디 성경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지지하는데 간극 이론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그 부분을 뺄 수는 없고 창조 과학에 따른 주석 뒤에 남겨 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현시대의 많은 증거들이 창조 과학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에 간극 이론이 나올 때는 진화론에 대항할 무기가 크리스천들에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순순한 의도로 간극 이론을 가지고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미 창조 과학의 많은 증거들 자체가 지구의 생성 연대가 얼마 되지 않음을(Young earth) 확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지질/화석 체계도 단 하나의 퇴적층을 보여 줍니다. 간극 이론대로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물에 잠기고 멸절하였다면 현재 지구의 화석/퇴적층은 최소한 2개로 확연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간극이론이 역사의 진실이라면 창조 이전의 퇴적층과 또 다른 하나인 노아의 홍수 때의 퇴적층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질학의 증거는 단 하나의 퇴적층만을 보여 줍니다.
다음은 미국에 계시는 이황로 목사님의 편지 내용입니다.
---------
현재는 결국 세 판의 스코필드 성경이 모두 판매되고 있고,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목사/성도들은 내용상 대부분 2003년도의 3판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창조가 틀림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독립침례교회 계통 신학교들의 거의 대부분과 복음주의 크리스천대학교들은 모두 현재 ‘창조 과학’을 믿고 신학생들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학교의 교사로 지원하는 학생들은 필수과목으로 ‘창조 과학’을 이수해야 합니다. 피터 러크맨 계열과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직도 간극 이론을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구 스코필드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워낙 많이 팔렸습니다. 그래서 1950년 이전에는 근본주의 진영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간극 이론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
이런 이슈로 인해서 킹제임스 성경 진영이 나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 성경의 창1;28 등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기에 사실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오늘도 간단히 적었습니다.
부디 이러한 상황과 저의 마음을 너그럽고 지혜롭게 잘 헤아려 주시길 부탁합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keepbible.com/BQNA01/View/4O2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keepbible.com/Study5/View/3Zr
샬롬
패스터
2015-03-26 10:51:47 | 관리자
'킹제임스흠정역'은 '없음'이 없는 성경이자 하나님의 최종 권위의 성경임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 분들이 이제와서 왜? '없음'이 있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없음'이 없기에 밋밋해서 내용을 추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간극이론을 지지하게 되면, 창세기 1절과 2절 사이에 원래 있어야 하는 것을 뺀 것으로 보던지 아니면 원래 없는 것에 무엇을 더하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지식이나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가 않습니다.
성경이 더 이상의 것을 말씀하지 않으면 인간은 거기에서 멈춰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인간의 어쭙잖은 지식으로 인류의 6000년의 기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상상력을 더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라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종의 선악과일 것입니다.
이론은 가설일뿐입니다. 명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세운다는 그 자체가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그 중심이 문제인듯 싶습니다. 말씀을 다룰 때는 아래의 말씀을 참고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주장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KJV흠정역] 요한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2015-03-25 21:37:18 | 김상진
저는 물론 성경대로의 창조를 단순하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많은 분이 이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믿음의 기초로 삼기를 바랍니다.그러나 김** 형제님의 댓글처럼 재창조를 믿는 형제/자매님이라고 해도바른 성경을 알리고 바른 교리를 전파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고영적 갓난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을 일깨워야 한다는논쟁의 여지 없는 시대의 대의(大義)를 위해 동료로서 마땅히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분명한 것은 흠정역 성경이 한국말을 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전파되고 확고하게 뿌리내려야만이 시대의 대의가 실현되어 갈 수 있다는 겁니다.과연 지금 소수의 성경 신자가 이렇듯 대의를 이루어가는 일에 다른 대안이 존재합니까?저는 현재로써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흠정역 성경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분별해 내야 합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이 어떤 가치와 신념이건 흠정역 성경을 알리는 사역이 손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 신자이며 침례성도로서 양심의 자유를 믿음 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양심의 자유로 인해 반드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 보고 해야 함을 잊지 말고 무엇이 진리이고 더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 대의인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맑은 정신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5-03-25 20:45:44 | 김대용
안녕하세요?
요즘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독자들 가운데 창세기 1장 28절의 ‘replenish’를 ‘채우다’로 번역한 것에 대해 오역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심지어 어떤 분들은 대단히 우려스럽게도 책을 쓰면서 이 단어를 흠정역 성경이 잘못 번역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은 누구라도 사전에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상태로 성경을 평이하게 보았을 때 재창조라는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간단히 보여 드리려 합니다.
앞서 밝힌 대로 흠정역 성경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에 대한 우려와 고심이 있었지만 흠정역 성경 자체가 오역이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재창조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창1:1과 2절 사이에 수백억 년도 될 수 있는 엄청나게 긴 기간이 들어 있어서 진화론자들의 주장과 성경의 연대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재창조를 주장하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분명히 간극(Gap)이 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자, 이제 마음을 열고 다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2. 창1:31-2:2,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출31:17,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
4. 창1:26-27,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5. 마19:4,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at the beginning)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6. 막10:6, 창조의 시작부터(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는 하나님의 7일 특별 창조를 보여 줍니다. 이 특별 창조는 창세기 1장 3절부터가 아니라 1절부터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이 창세기 1장의 모든 일을 요약하고 2절은 그 뒤의 일곱째 날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창1:1의 '하늘과 땅'은 2:1의 '하늘들과 땅'과 동일합니다. 즉 창1:1의 하늘은 셋째 하늘을 제외한 우주 공간을 이야기하며 여기에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있기에 2:1은 그 우주 공간을 구체적으로 하늘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창2:1은 창1:1 이하의 창조 기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기록한 모세는 출20:11, 31:17에서 다시 한 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의 7일 창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7일 안에 수백 억년이라는 간극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의 하루는 지금의 24시간의 하루입니다.
더욱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복음서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위에 있는 막10:6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이 [재창조의 시작이 아니라] 창조의 시작부터 즉 창조가 시작되며 여섯째 날에 지어졌다고 하십니다. 마19:4도 동일합니다.
재창조 논란에 대해 고심하는 분들은 과연 재창조가 역사의 사실이라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창조의 시작을 말씀하시면서 재창조에 대해 일절 거론하시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를 솔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명백한 성경 기록을 두고도 계속해서 재창조를 주장하면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명백한 창조 진실을 두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분으로 비쳐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창세기 1장 1절 이하의 모든 창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백억 년이든 수천 년이든 혹은 심지어 단 하루라도 간극(Gap)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창세기 1, 2장을 편견을 갖거나 세뇌되지 않은 채 읽으면 누구라도 간극이 있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가져다주고 이 창조가 며칠 동안에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금세 답이 나옵니다.
한편 재창조론자들은 렘4:23과 사34:11을 재창조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렘4:23은 창조나 재창조와 무관합니다.문맥을 보십시오.
이것은 유다 민족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23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24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25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26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27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온 땅(the whole land)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도다.
비록 23절의 땅이 영어로 earth로서 창1:2와 같지만 그 earth는 지구가 아닙니다. 27절이 그 땅을 ‘그 온 땅’(the whole land)이라고 설명하면서 유다의 온 땅이 심판을 받아 초토화될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런 데서 왜 창조. 재창조가 나옵니까? 여기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서 34장 11절 역시 창1:2에서 사용된 동일한 히브리어가 쓰였다 해도 그 구절은 결코 창조나 재창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구절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에돔 땅이 영원히 폐허가 되어 짐승들의 거처가 될 것을 말합니다.
11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것을 차지하며 또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것 안에 거하리니 그분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실 터인즉 12 그들이 그것의 고귀한 자들을 왕국으로 부르되 거기에 아무도 없겠고 그녀의 모든 통치자들도 없으리라.
편견 없이 이 구절들을 문맥 안에서 있는 그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베드로후서 3장 5-6절을 가지고 재창조를 입증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5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6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베드로는 전서와 후서에서 지금 있는 세상과 옛 세상(벧후2:5)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5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
벧후3:7의 지금 세상은 6절의 홍수 이후의 세상이고 벧후2:5의 옛 세상은 홍수 이전의 세상입니다.
베드로는 재창조를 주장하는 이들의 ‘창조 이전의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을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심지어 예수님도 그런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지난 80-90년 동안 온 세상에 재창조를 가장 널리 파급시킨 성경은 스코필드 관주 성경입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 성경은 대단히 좋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스코필드 성경은 창세기 1장의 재창조를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은 지구(Young earth)에 대해 증언하는 창조의 증거들이 넘쳐나서 이제는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인 재창조를 가지고 진화론을 대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많은 성도들이 선한 의도로 재창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양심의 자유로 선택한 이러한 일에 대해 무어라 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창조 가설 때문에 흠정역 성경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가르침을 지속해서 여러 사람에게 퍼트리는 일만큼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재창조는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문맥에 맞게 읽고 해석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이론입니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인한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 주장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성경 기록을 조합하고 줄을 세워야만 논증이 가능한 가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출한 지혜와 통찰력을 통해 다른 사람이 모르던 성경의 숨은 보화를 캐내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일이라 해도 인위적으로 또는 인간의 욕심으로 성경 해석에 있어 도가 지나친 상상력과 추리를 가미하면 오히려 단순하고도 명백한 성경의 진리가 가려지고 왜곡됩니다. 재창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성경 신자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지 무조건 새롭고 기발한 가르침과 남이 모르는 지식에 열광하며 남보다 우월하다는 지적 자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발 줄과 줄 사이 혹은 구절과 구절 사이의 빈 공간을 읽지 말고 그저 모세가 기록한 대로 창세기 1장부터 2장 2절까지를 편견 없이 단순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직한 분이라면 재창조가 불가능함을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계기가 되면 추후에 이런 증거들을 모아 창조와 진화와 관련된 책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 링크(재창조 반박 글 모음) --------------
럭크맨의 극단적 세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http://new.keepbible.com/Cmn2/View/4CU 창조인가요, 재창조인가요?(간극 이론, 갭 이론)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Nz 재창조 간극 이론 사실인가, 허구인가?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2 스코필드 성경의 창세기 재해석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0 히11:3에서 말하는 '세상들'이란?http://www.keepbible.com/Cmn1/View/42t 재창조론에 관한 7가지 의문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1 And’를 살려 창세기 1장 읽기 http://www.keepbible.com/BQNA01/View/4OH 왜 둘째날에는 '좋았더라'가 없을까?http://www.keepbible.com/Cmn1/View/42u 누가 화석더미를 말했는가?http://keepbible.com/Cmn1/View/43L#c_14090 제가 알아본 replenish의 뜻http://www.keepbible.com/Cmn1/View/43G 작금의 논쟁 배경 설명
http://www.keepbible.com/Cmn2/View/4CW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을 동시에 들으면서
http://www.keepbible.com/Study5/View/3Zr
'replenish’의 진실과 성경의 창조 정리(재창조 반박 글 모음)
http://keepbible.com/Cmn2/View/4CX?page=2
샬롬
패스터
2015-03-25 16:07:57 | 관리자
창25:18의 ‘네가’는 오역인가요?
어떤 분이 흠정역 성경은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라는 구절에서 ‘네가’를 첨가했으니 오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흠정역: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수르에까지 거하였는데 수르는 네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 죽었더라.
개역: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KJV: And they dwelt from Havilah unto Shur, that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and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KJV: They dwelt from Havilah as far as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yria.) He died in the presence of all his brethren.
NASB: They settled from Havilah to Shur which is east of Egypt as one goes toward Assyria; he settled in defiance of all his 5relatives. (NASB는 you를 one으로 쓰고는 각주에 원래는 ‘you’라고 기술함)
NIV: His descendants settled in the area from Havilah to Shur, near the border of Egypt, as you go toward Asshur. And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c all their brothers.
히브리어 원본에는 ‘네가’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모든 역본이 다 ‘네가’를 뜻하는 ‘thou’ 혹은 ‘you’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말대로 ‘네가’를 포함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하지 않은 개역성경 등이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가 들어가면 우리말 어법상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가’를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자기보다 500년쯤에 전에 살던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수르라는 도시가 그때에도 있었고 모세 당시에도 독자가 아시리아로 갈 때에 이집트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500년 전이나 지금 모세 당시 독자의 시대나 동일함을 보여 주려고 즉 생동감을 주려고 모세는 독자를 지칭하는 ‘네가’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살던 구체적인 독자(수신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글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도 일차적으로 당시 모세와 함께 살고 있던 구체적인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인 성경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네가'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독자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으면 '네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성경 본문에서 바로 찾을 수 없기에 오역 혹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번역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구절은 창10:9, 10:30, 삼상27:8 등에도 있으며 흠정역은 이것을 다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에서 단편적인 생각으로 우리말 어법에 맞추겠다고 임의대로 ‘네가’를 삭제한 성경이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5 15:10:00 | 관리자
주님은 과연 인신(人身) 제사 혹은 인신(人身) 제물을 원하시나요?
어떤 분이 레위기 27장 28-29절을 읽고는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자들은 인신 제물로 드려야 하는지를 묻기에 답을 드립니다.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봉헌한 것 즉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 중에서 {주}께 전적으로 봉헌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의 소유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리니 전적으로 봉헌한 것은 다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29 전적으로 봉헌된 자 곧 사람들 중에서 전적으로 봉헌될 자는 결코 무르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레27:28-29).
성경을 읽다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나오면 먼저 성경 전체 내용, 즉 구체적으로 성경 66권 전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이해한 상태에서 난해한 구절을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분명하게 아이든 어른이든 죽여서 희생 예물로 드리는 것을 가증한 것으로 여기십니다(신12:30-31; 시106:37-38; 렘7:31; 겔16:20-21). 그것은 고대 가나안 족속들의 마귀 숭배 종교의 예식이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바로 그런 악한 일을 하였기에 주님은 그들을 진멸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전적으로 봉헌되었다’는 히브리말은 전적으로 멸하기 위해 주님께 바쳐져서 무르거나 팔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남녀를 죽이라고 말씀하신 사례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수6:18, 21).
또한 민21:2-3의 가나안 족속 멸절, 삼상15:21의 아말렉 족속 멸절 등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사례의 대상들은 하나님의 존엄하신 법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영원토록 그분의 저주 아래 있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바로 ‘전적으로 봉헌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봉헌이라는 말이 주로 주님께 선한 의도도 무언가를 바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조금 혼동이 될 수 있고 사실 영어의 devote도 그런 뉘앙스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의 devote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그냥 전적으로 드려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한 짐승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사사기 11장의 입다의 딸의 예를 들며 입다가 자기 서원을 지키기 위해 자기 딸을 죽여 인신 제물로 드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입다의 딸은 인신 제물로 바쳐진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자를 알지 아니한 채 처녀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http://keepbible.com/Study5/View/3Zh
성경을 읽다가 어려움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성경 66권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뒤 책들을 읽고 조금 깊게 생각하면 바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20 16:37:58 | 관리자
열왕기하 8장 21, 23, 24절의 요람은 여호람이 아닌지요?
아닙니다. 그대로 요람으로 두어야 합니다.
왕하8:21은 다음과 같습니다.
흠정역: 이에 요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가서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족속과 병거의 대장들을 치니 백성이 도망하여 자기들의 장막으로 들어갔더라.
개역: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
KJV: So Joram went over to Zair, and all the chariots with him: and he rose by night, and smote the Edomites which compassed him about, and the captains of the chariots: and the people fled into their tents.
NKJV: Joram
NASB: Joram
NIV: Jehoram(각주에 원래 히브리말은 Joram임)
이런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듯이 21, 23, 24절은 분명히 히브리말로 Joram입니다.
그런데 앞뒤 문맥상 그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입니다(16절 참조). 16-24절을 읽어보면 금세 요람은 여호람이 되기도 하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16절에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이 나오므로 이로 인해 조금 혼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개역성경이나 NIV처럼 성경을 바꾸어서 Joram을 여호람이라 번역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두고 요람(Joram)과 여호람(Jehoram)이 같은 사람의 이름임을 이해하면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은 변형이 많습니다. 요람과 여호람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개역이나 NIV처럼 독자의 이해를 위해 성경 단어를 바꾸면서까지 번역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대로 두고 요람은 여호람으로 불렸다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 신자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패스터
2015-03-19 08:56: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 오후에 어떤 분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기사를 보내주셨습니다.참으로 세상이 악을 해야 치닫고 있습니다.우리가 깨어서 진리를 추구해야겠습니다.
샬롬
정동수
----------
목사=신부들=승려 (종교 다원주의)
여러분은 석가와 예수님이, 같은 구세주라고 보시나요? 여기 MBC 뉴스를 보시면 기절초풍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고 해도 알지 못하는 미혹된 백성과 주의 종들이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영적인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속히 임할 것 같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은 피의 심판이며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이 도래할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앞장 선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목사들과 교회와 교단이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는 심히 참혹할 정도로 엄청난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로 6.25인 한국전쟁을 통해서 한국을 반으로 가르셨고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10월 30일~11월 7일까지 부산 WCC(세계 교회 협의회)총회 를 통해 우상숭배를 했으며,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세월호'라는 전무한 참사가 발생해서 대한민국을 침몰시켰습니다.
지금은 영적 미혹이 너무나 강한 시대입니다.
신천지, 여호와의증인 등 드러난 이단 사이비들은 물론, WCC (NCCK) 가입 교단 목사들과 비성경(불법)적인 빈야드ㆍ신사도운동 사역자 및 여자 목사들까지 정통보수교단의 간판(광명한 천사)으로 위장하여 파죽지세로 천지사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영들을 성경에 의해 분별하고 올바른 주님의 교회(목사)를 만나, 성경으로 돌아가고 참 믿음을 회복하며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성경말씀과 기도로써 중무장하여 마귀와 더불어 싸워 승리하는 생활(전도)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깝습니다!
더이상 거짓 대언자에게 미혹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부처는 결코 같은 구세주가 아닙니다!
* MBC 종교의 통합 (목사와 신부와 승려) http://youtu.be/sWXixRBkq3g
2015-02-13 14:24:10 | 관리자
감사합니다. 여태 왜 죄의 용서를 받았는데 왜 자꾸 죄를 짓고 날마다 회개해야하고 그것 때문에 아파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고민하고 일반 교회의 설교에서는 그 어떠한 답도 찾지 못하고 주위에 믿음이 좋은 형제도 답을 못해주더라구요.
그저 로마서 7장만 여러번 보다 보면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소리만 그래서 킾 바이블 사이트 자유게시판에 의문 사항을 올려도 그 어느 한분도 제 물음에 시원하게 답을 못해주더라구요.
그런데 여기 이 글을 보고서 많은 부분 제 의문점들이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2015-01-28 05:25:38 | 김기덕
원자는 화학 원소로서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달할 수 있는 물질의 기본적인 최소 입자를 말하는데 각각의 원자는 전기적으로 완전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양 전하를 띤 양성자의 숫자와 음 전하를 띤 전자의 숫자가 같기 때문이다.
원자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핵에서 발견되는 핵력이라는 응집력이다. 원자의 핵에서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창조의 기적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초 물리에서 배우듯이 같은 전하를 띤 입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낸다. 그런데 원자의 핵에서 창조주께서는 전혀 다른 법으로 이 같은 현상을 억제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 같은 전하를 가진 양성자들이 핵에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알 수 없는 신비의 엄청난 응집력에 의해 굳게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원자에 대한 가장 신비한 사실 중 하나로서 ‘우주의 근본적인 신비’라 불린다. 만일 이런 현상이 없다면 온 세상 만물은 다 해체될 수밖에 없다.
온 우주를 지탱하는 시멘트 같은 힘은 중력이다. 원자를 함께 모으는 것은 전자기적인 견인력이다. 그러나 원자의 핵을 다 같이 모으는 힘은 현존하는 물질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무시하는 신비의 힘이다. 이 힘은 지금까지 사람이 이해한 다른 모든 힘과 다르므로 제대로 그것을 묘사할 방법이 없다(Robert E. Marshak, "PIONS", American Scientific Magazine).
창조주의 큰 손에 의해 마치 큰 스프링처럼 둘둘 말려 압축되어 있는 이 엄청난 에너지는 보통 핵 에너지라 불리며 이 에너지는 위력이 대단해서 원자 폭탄 하나가 수천 톤의 TNT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겨우 관찰할 수 있는 이 작은 원자에 이 같은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겼다는 진화론의 우화를 믿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원자의 핵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안에 엄청난 지적 설계가 들어 있고 창조주의 놀라운 힘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처음에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분이시다(창1:1).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들고 있기에(히1:3) 원소들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주님의 날이 임하면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타서 만물이 해체될 것이다(벧후3:10-11). 우리 주님은 자신의 재림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 창조주의 참으심의 끝이 이르기 전에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2015-01-15 10:38:50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문제로 실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001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749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274
미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성경 교사 중 하나인 미슬러의 동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는 점에서는 확실합니다.
노아의 날들: 네피림들의 귀환 1 (Chuck Missler)
http://www.youtube.com/watch?v=XNFwqB_SgyE
노아의 날들: 네피림들의 귀환 2 (Chuck Missler)
http://www.youtube.com/watch?v=ilgrkoqDScg
샬롬
패스터
2015-01-10 15:34:06 | 관리자
목사 후보생 혹은 바른 목회를 꿈꾸는 목사에게
다음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717
2015-01-10 15:08:18 | 관리자
드보라와 여자 목사
신약성경은 논쟁의 여지 없이 한 지역 교회의 목사와 집사는 남자만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딤전3:2, 12).
그 이유는 딤전 2장에 있듯이 창조 질서와 여자의 범법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2:12).
이 성경 기록은 결코 여자들이 말을 해서는 안 됨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남자들 위에 군림하여 권위를 행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절대로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는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존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가르침을 지켜 행하고 교회를 운영할 때 모두가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며 교회 안의 질서가 견고하게 유지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지식이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바른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에도 불구하고 여자 목사/집사/장로를 세워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인물이 바로 드보라입니다.
드보라는 사사기 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여대언자이자 재판관(사사)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끔 하나님의 말씀(직통 계시)을 전달하는 여자 대언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리암(출15:20), 드보라(삿4:4), 훌다(왕하22:14), 안나(눅2:36) 등이 이에 속합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도 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기 전에는 대언자들이 있었고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된 여자들로는 복음 전도자 빌립의 두 딸이 대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행21:8-9). 같은 맥락에서 고린도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자매들이 있었습니다(고전11:5).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들은 신구약 성경 전체가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대신 전한 대언자들이며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런 대언자가 남자든 여자든 없습니다.
또한, 여자 대언자들이 여럿 있었고 드보라도 그중의 하나이므로 드보라만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드보라가 주목을 받는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여자 재판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재판관) 시대에 재판관은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과거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은 남자들 중심의 사회였고 그래서 여자와 아이들은 심지어 사람의 수에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여인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는 것은 실로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사 시대 이후 왕정 시대가 열렸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왕이 통치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아달랴가 잠시 유다를 통치하였으나 그것은 왕권을 찬탈한 것이었으며 아무도 그녀를 왕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녀는 곧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문화를 이해할 때 드보라라는 여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드보라 당시(전반적으로 사사들의 시대 전체에 걸쳐)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심히 타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배분한 이후 세월이 흘러 그의 세대 사람들이 생을 마치고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음행의 길로 갔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삿2:7).
사사기 4장에 보면 가나안의 왕 야빈과 그의 군대 대장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고 바로 이때에 드보라가 재판관으로 등장합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하기 바로 전의 유다의 상태도 이때와 비슷하였습니다. 이렇게 극심하게 타락한 시대에 마땅히 들고 일어나 부패한 사회를 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흘리개 아이처럼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꾸짖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이들과 여인들을 사용하십니다.
이사야서 3장을 봅시다.
1 보라, [주] 곧 만군의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의지하는 것과 의뢰하는 것 즉 모든 의지하는 빵과 모든 의지하는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대언자와 분별 있는 자와 원로와 3 오십인 대장과 존귀한 자와 조언자와 솜씨 좋은 장인과 달변의 연설가를 제거하시느니라. 4 내가 아이들을 주어 그들의 통치자가 되게 하며 아기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리니 12 ¶ 내 백성으로 말하건대 아이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여자들이 그들을 다스리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자들이 너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며 네 행로들의 길을 무너뜨리느니라.
1-3절은 이런 악한 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제거하심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4절과 12절에 있듯이 아이들과 여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남자들을 조롱합니다.
바로 이런 일이 드보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사사기 4장 6-9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남자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6 그녀(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게데스납달리에서 불러 그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말씀하시기를, 가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중에서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다가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대장 시스라와 그의 병거와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녀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매 9 그녀가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여정이 네게 명예가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그 당시 바락이라는 남자가 가장 강하였음에도 그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드보라의 치마폭에서 움직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에 여자 재판관이 등장하여 나라를 구하며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영국 같은 나라에 여왕이 있고 우리나라는 지금 여자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드보라 이야기는 신정 정치하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뜻대로 재판관을 세우셨습니다. 영국 등은 왕위가 계승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 독일 등은 백성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므로 드보라의 경우를 확대해서 이방인 세상 정부에 적용하고는 그 나라의 영적 상태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드보라의 사례를 들어 여자 목사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 역시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교회의 두 직무 수행자인 목사나 집사는 반드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딤전3: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딤전3:12).
여기의 감독은 지역 교회를 감독하는 목사를 말합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침례 성도들은 결코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미국의 침례교회들이 실행하고 있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고 창조 질서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여인이 목사가 되기를 원해 실제로 목사가 되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다루거나 참견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의 모든 행적을 일일이 회계 보고할 때가 있고 그때에 우리 모두가 답변해야 합니다. 여자로서 목사의 직무를 담당했던 본인이나 그런 여자 목사가 목회하는 지역교회에 출석했던 성도들이나 모두 각자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개별적으로 회계 보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11 기록된바,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굴복하고 모든 혀가 [하나님]에게 자백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1-12).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자가 지역교회를 이끄는 목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상과 지식이 넘쳐나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잘 지킬 때 교회가 평안하고 질서정연하게 운영되며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지키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마땅히 그에 대한 회계 보고를 해야 함과 더불어 이 땅에서도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바른 교리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때 어떠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신 분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자 목사를 만나더라도 한 사람으로서 그를 존중하며 은혜롭게 대하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굳이 묻지도 않는데 이런 문제를 꺼내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다만 누가 물으면 은혜롭게 부드러운 태도로 바른 교리를 알려 주십시오.
샬롬
패스터
2015-01-07 11:13:0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이 기사를 보기 바랍니다.
다음 기사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774
샬롬
2014-12-20 10:16:54 | 관리자
성경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꿰어 맞추는 무리한 추측을 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라는 말씀만이 우리의 푯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수년 전 모세의 홍해 기적도 강풍 때문이라는 주장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물 위를 걷는 성경의 기사가 물위를 걸은 것이 아니라 얼음 위를 걸은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본 적도 있습니다.
참고
모세 :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00923153006
물위 :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604/200604050086.html
과학은 인간이 학습하고 연구해온 불완전한 도구일 뿐 성경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대치 시켜 설명하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 됩니다.
2014-12-01 09:48:07 | 허광무
목사님~귀한 글 고맙습니다!
2014-11-30 23:03:21 | 위정복
가장 먼저, '과학(Science)'에 대한 정의 부터 집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과학은 사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를 여러번의 실험적인 관찰이나 조사, 그러한 현상을 규명하는 논리적인 방법들이나 행위,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의 통해 얻어진 지식등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학의 정의를 먼저 확인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라보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꽃씨를 심으면 꽃이 되는 것을 관찰과 소위'과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고 주장을 하는게 바로 '과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초자연적인 것들 모두를 우리의 스케일의 '과학'으로 모든 것들을 짜맞추려한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또 다른 진화론과 같은 믿음의 '종교'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11-30 08:50:39 | 조민수
우리 Bible Believer들은 올바른 말씀 King James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 말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의 끝 말씀 “아멘”까지를 믿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과 믿음에 약한 자들이 억지로 견강부회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4:16~17)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며, 우주만물을 잡고 계시기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으니 이상한 이론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잡고 계신 것을 놓으시면 우주만물은 해체되어 흩어져버리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합니다.
귀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11-30 07:51:28 | 홍성인
저도 이 동영상을 보고 나름대로 성경과 비교해가며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주님의 탄생과 합치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기에 충분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맞지 않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① 교부 터툴리안과 클레멘토의 진술에 의지해서, 주님의 탄생시점을 BC 6년 5월14일로 보고 있었읍니다. --> 이 진술 자체의 신빙성도 의문이지만, 눅3:1과 눅3:23을 보면 티베리우스 황제 제15년(AD28년)에 주님이 30세 즈음이라고 기록한 성경기록과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년도입니다.
② 마2:2의 ‘주님의 별’을 목성으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히려 금성으로 본다면 계22:16을 참고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우스(쥬피트-목성)를 주님과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③ 마2:9은 별의 인도 기록임에도, 천문학적인 현상에 무리하게 맞추다 보니, 성경기록의 문자적 의미와 너무 동떨어진 해석을 한다는 점입니다.
창조과학회와 김명현 교수님의 많은 연구와 활동은 성경을 구체적인 사실로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내용이 많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호의와 존경을 갖고서 계속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만 이 동영상과 같이 비판의 여지를 많이 포함하는 것들은 오히려 창조과학회의 다른 유익한 내용들까지 의문을 갖게 하는 빌미가 될까 우려됩니다.
2014-11-30 07:40:56 | 임원섭
두 가지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1. 구성원 중에서 열심은 있으나 능력이 부족한 자가 자신의 능력과 주어진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 그 집단은 매우 힘든 경우에 직면하게 될 것 입니다.
2. 같은 편인 거 같지만 내부의 누룩일 수 있다고 봅니다.
2014-11-30 07:06:06 | 차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