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하여
요즘 저희 사이트를 찾는 분이 많습니다.교회를 방문하는 분도 많습니다.그래서 이런 분들에게 우리의 가르침 중에서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지 물어보았습니다.그랬더니 여러 성도님들이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 문제로 도발성 이메일을 제게 보내오곤 합니다. 내용은 “목사님의 해석은 우리 교회의 믿음과 전통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비틀어서 해석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합하여 거인을 생산해 낼 수 있느냐?”
여러 사람들이 이로 인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오늘은 간단하게 답을 올리려고 합니다.
“천사와 UFO 바로 알기” 책에서 레이시 목사님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뒤져가며 이 문제에 대해 깨끗하게 정리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 믿겠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이미 마음속에서 그렇게 믿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교단의 가르침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역 성경의 여러 부분이 애매하게 번역되어 참 뜻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6장은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1차 수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모세오경)에 관한 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물론 구약성경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지만 유대인 역사가들이나 성경 이외의 그들의 작품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때로 필요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중에서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 요세푸스일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누구라도 요세푸스에 대해 조금은 배울 것입니다.
위키 백과사전은 요세푸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플라위우스 요세푸스, 고대 그리스어: Φλάβιος Ιώσηπος 플라비오스 이오세포스, 기원후 37년 경 ~ 100년 경)는 1세기 제정(帝政)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유다이아 전쟁에서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이름은 새로 로마 시민이 된 이들에게 적용되는 관례에 따라 보호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을 이름을 따 '플라비우스'를 가문이름(nomen)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티투스의 막료로서 예루살렘 함락의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훗날 이 전말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으로 남겼다.
위키 백과:http://ko.wikipedia.org/wiki/%ED%94%8C%EB%9D%BC%EB%B9%84%EC%9A%B0%EC%8A%A4_%EC%9A%94%EC%84%B8%ED%91%B8%EC%8A%A4
요세푸스의 글은 구약 시대의 역사를 보여 주는 데 매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늘 참고하는 고전입니다. 유대인들의 문화 등에 대해서는 에더샤임이라는 랍비의 글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창조부터 시작해서 구약 시대의 중요 사건들이 다 언급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견해가 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담은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런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습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기사는 “유대고대사”의 1권 3장에 나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Antiquities of the JewsTranslated by William WhistonBOOK I-------------------------CHAPTER 3.CONCERNING THE FLOOD; AND AFTER WHAT MANNER NOAH WAS SAVED IN AN ARK, WITH HIS KINDRED, AND AFTERWARDS DWELT IN THE PLAIN OF SHINAR,1. NOW this posterity of Seth continued to esteem God as the Lord of the universe, and to have an entire regard to virtue, for seven generations; but in process of time they were perverted, and forsook the practices of their forefathers; and did neither pay those honors to God which were appointed them, nor had they any concern to do justice towards men. But for what degree of zeal they had formerly shown for virtue, they now showed by their actions a double degree of wickedness, whereby they made God to be their enemy. For many angels11 of God accompanied with women, and begat sons that proved unjust, and despisers of all that was good, on account of the confidence they had in their own strength; for the tradition is, that these men did what resembled the acts of those whom the Grecians call giants. But Noah was very uneasy at what they did; and being displeased at their conduct, persuaded them to change their dispositions and their acts for the better: but seeing they did not yield to him, but were slaves to their wicked pleasures, he was afraid they would kill him, together with his wife and children, and those they had married; so he departed out of that land.
밑줄 친 부분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천사들이 여자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아들들 곧 선한 것을 멸시하는 자들을 낳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르면 이 남자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거인이라고 부른 자들의 행위와 비슷한 일을 행하였다.”
각주 11. This notion, that the fallen angels were, in some sense, the fathers of the old giants, was the constant opinion of antiquity.
각주 11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어느 면에서 과거의 거인들이었다는 개념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내려온 의견이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이미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하였는데 내용이 방대하여 여러 권으로 나왔습니다. 다음을 보시면 창세기 6장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유대고대사 1).
요세푸스 1 유대고대사, 생명의 말씀사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740
책 소개: 이 책은 그리스도 탄생 전후 유대인 역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역사서로 예수님 탄생 이전 시대와 기독교 1세기 동안 일어났던 팔레스틴과 디아스포라를 설명해 주는 한편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이 실려있다. 1권은 유대 고대사(창세기부터 고레스 원년까지), 2권 유대 고대사(고레스부터 로마총독 플로루스까지의 기록), 3권 유대 전쟁사(예루살렘 함락사), 4권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아피온 반박문으로 엮여 있다.
유대인들의 이런 증언들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확고히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과한 역사적 사실들은 Bryan Huie가 지은 다음의 글에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http://www.herealittletherealittle.net/index.cfm?page_name=Genesis-6-Sons-of-God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 당시의 역사였던 요세푸스가 정통파 유대인들이 거인 종족을 믿었음을 보여 준다.2. 역시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필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3. 에녹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4. ‘주빌리의 책’(Book of Jubilees)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5. 주후 2세기에 살았던 저스틴 마터(순교자 저스틴)도 Second Apology 5장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6. 주후 240년경에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주교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7. 베드로후서 2장 4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8.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 모든 구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창6; 신32:8; 욥1:6; 2:1; 38:4; 시29:1; 89:5). 9. 유명한 성경학자인 벌링거(Bullinger) 역시 그의 Companion Bible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0. 유다서 6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11. 야세르의 책의 4:18은 심지어 짐승들도 혼합되어 하이브리드 종류가 나온 것을 보여 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모두 물로 심판하셨다(창6:7).12.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 7절 역시 이를 지지한다.
이런 증언을 통해 우리는 구약시대 유대인들과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견해를 초지일관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언제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이에 대한 연구는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줍니다.
연구를 위해 구글에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라는 검색어로 문서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 The older view, held nearly unanimously by ancient writers prior to Augustine of Hippo, is that the Nephilim were a hybrid race between certain fallen angels, called the Benei Ha'Elohim ("Sons of God") or The Watchers in extra-Biblical traditions, and human women.
해석: 어거스틴 이전에 고대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하던 견해는 창세기 6장의 네피림(거인)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타락한 천사들 - 외경에서는 이들을 순찰자라고 부름 -과 사람들의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종족이라는 것이다.
(2) Early Christianity Conservative interpretations of the "sons of God" view them as descendants of Seth. Saint Augustine subscribed to this view, based on the orations of Julius Africanus, in his book City of God which refer to the "sons of God" as being descendants of Seth (or Sethites), the pure line of Adam. The "daughters of men" are viewed as the descendants of Cain (or Cainites).
해석: 초기 - 여기의 초기는 어거스틴 당시로 주후 350년 이후를 뜻함 -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았다. 어거스틴은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의 연설에 의거하여 자신의 책 ‘하나님의 도시’(신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셋의 후손들로, 사람들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으로 정의하였다.
역사는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에서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임을 보여 줍니다. 잘 알다시피 어거스틴은 성경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영혼의 자유를 지키려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며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약의 이스라엘(유대인)을 신약의 교회가 대체함으로써 천년왕국 같은 실제적인 왕국은 이 땅에 없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주의를 도입하고 확립한 인물입니다. 비록 그가 천주교회의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성 어거스틴’이라 불리지만 성경 신자들은 천주교회의 성인들이란 한결같이 ‘믿음+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므로 성경적으로는 ‘다른 복음, 저주받은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요.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에 힘입어 천주교회는 그 뒤로 무려 1000년 이상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유대인과 성경 신자 말살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이것을 역사는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유대인 자체를 말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도 말살하려 했고 바로 이런 시도 중의 하나가 자신들의 왕국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개념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 유대인과 성경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카톨릭 주의의 무지와 미신에 갇혀 살게 되었고 이에 역사는 이 시기를 중세 암흑시기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고 이에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비성경적 카톨릭 주의와 반셈족주의의 기반을 놓아 준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이러다가 1517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1535년경부터 프랑스 출신의 칼빈(칼뱅)이라는 또 다른 어거스틴 주의자가 일어나 스위스 제네바에 신정정치국가를 세우면서 장로교라는 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의 칼빈주의는 그 원천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으므로 엄밀하게는 어거스틴주의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로교회들은 불신자였던 어거스틴을 매우 신봉합니다. 따라서 장로교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 역시 유대인 말살과 성경 신자 배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칼빈도 어거스틴처럼 자기의 믿음을 반대하던 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숙청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은 당연히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이라는 가르침을 전파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세 청교도들과 경건한 주석을 지은 매튜 헨리, 반즈, 미국의 대각성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드 등의 구약성경 관련 글을 읽으면 내용이 한결같이 이스라엘 대체 혹은 배격 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제나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되고 맙니다. 이들의 근원은 어거스틴이므로 이들의 글은 언제나 거기서 멈추고 결코 성경 자체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실 천주교회와 동일하게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주장하며 무천년주의를 펴는 칼빈주의는 1948년 5월에 가나안 땅에 저 이스라엘이 세워짐으로써 이미 종말을 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장로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칼빈이나 어거스틴 같은 사람들의 전통과 가르침을 더 중히 여기는 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개혁 신학이라는 미명 하에 사람의 철학과 속임수로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철저한 칼빈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는 결국 ‘믿음 + 행위’ 구원(Lordship salvation)을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감리교 등과 같이 천주교회에서 나온 다른 개신교(Protestants)들도 천주교회 교리들의 대부분을 그대로 안고 나왔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주교회처럼 유대인들의 귀환과 천년왕국의 확립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과 관련된 성경을 거의 다 영해(靈解)합니다. 그 결과 창세기 6장도 이런 차원에서 영해가 되어 타락한 천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견해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교회는 교회이지 이 둘이 혼합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영원토록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재림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의 재림의 때는 다니엘서 2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다니엘은 예수님의 재림 바로 전에 있을 넷째 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0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하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나이다. 이 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41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누일 것이로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42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 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터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43절에 보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읽으면 그들은 자연히 사람들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 자기를 사람들의 씨와 섞으려 했던 존재들이 누구일까요? 성경이 답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전혀 다른 번역으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개역성경 43절: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헨리 모리스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창조 과학을 확립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공학 박사입니다. 창조 문제에 관한 한, 창세기에 관한 한 이분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리스는 생전에 “창세기 기록”이라는 매우 두꺼운 창세기 주석을 썼습니다.거기에서 그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 기록In The Genesis Record, Henry Morris states:
The only obvious and natural meaning without such clarification is that these beings were sons of God, rather than of men, because they had been created, not born. Such a description, of course, would apply only to Adam (Luke 3:38) and to the angels, whom God had directly created (Psalm 148:2, 5; Psalm 104:4; Colossians 1:16). The actual phrase bene elohim is used three other times, all in the very ancient book of Job (1:6; 2:1; 38:7). There is no doubt at all that, in these passages, the meaning applies exclusively to the angels. A very similar form (bar elohim) is used in Daniel 3:25, and also refers either to an angel or to a theophany. The term sons of the mighty (bene elim) is used in Psalm 29:1 and also Psalm 89:6, and again refers to angels. Thus, there seems no reasonable doubt that, in so far as the language itself is concerned, the intent of the writer was to convey the thought of angels - fallen angels, no doubt, since they were acting in opposition to God's will.
해석: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에 의해(created) 존재한 자들이며 사람에게서 태어난(born) 자들이 아니다. ‘강력한 자의 아들들’ 같은 표현도 역시 천사들을 가리킨다. 창세기 기자의 의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순리적으로 분명하게 보여 줘도 이미 믿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굳게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득 노력이 아무 효과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과 칼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장로교는 장자 교단이다!” 하고 콧노래를 부르는데 여기에 무슨 진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유혹되어 넘어가는 순진한 성도들만 불쌍하지요.
우리는 단호하게 이런 사람들의 헛된 전통과 교리를 부인합니다.
오직 우리는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이 우리 손에 있음과 그 성경을 성경으로 풀 때 하나님의 진리가 단순하게 우리에게 전달됨을 믿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성경으로 성경을 풀 때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반드시 타락한 천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성경 신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온전한 해석입니다.
샬롬
2013-03-26 14:57:29 | 관리자
다음은 뉴질랜드에서 한 자매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동성애가 전 세계적에서 큰 이슈로 부각되는 가운데
뉴질랜드에서도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글을 읽어두면 도움이 돌 것 같아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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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현재대로 유지시켜야 하는 21개의 멋진 이유들
결혼은 기본적인 것이다.역사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모든 인간 사회에서 결혼은 항상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합이었다. 결혼은 어떤 조직화된 교회나 국가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다. 국가는 자연적인 인간의 제도를 재설계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생물학의 문제이며, 고집의 문제가 아닙니다.결혼은 자연에 의해 정의된 남자와 여자의 서로 보완적인 특성을 결합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만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은 배타적이며, 또한 차별적이다. 이렇게 독특한 현상은 그 독특한 방식대로 다루어 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다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지지하는 것입니다.이 토론은 동성애자들이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과 존경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자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 역시 동성 결혼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동성애 혐오자들도 아니며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자들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결혼의 정의를 새롭게 고칠 권리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결혼의 정의를 새롭게 고칠 권리는 없습니다.)
정의의 문제이지, 차별의 문제가 아닙니다.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지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결혼을 지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가능합니다. 법률을 바꾸어서 결혼에 동성의 결합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은 결혼의 의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문제는 결혼의 정의에 관한 것이지 차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결혼의 정의에 관한 것이지 차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 아닙니다.평등은 똑 같은 것이 아니며, 다르다는 것은 불평등이 아닙니다. 인기 있는 NZ Herald의 짐 홉킨스가 쓴 것처럼 “(차별은) 항상 생깁니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의회의 목표였다면, 음주가능 최소 연령 제도도 없을 것이며 중혼이나 특정 약물에 관한 금지는 물론이고,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을 것이며, 마오리 의석제도도 없을 것입니다.”
결혼할 권리라고요?결혼은 당연히 차별을 합니다. 14살짜리가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세 명 또는 네 명의 사람이 서로 결혼을 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 결혼한 상태에 있는 사람도 결혼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성인이 된 자신의 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성인이 된 자신의 아들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 조차도 어떤 제약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결혼이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인 권리도 아니며, 모든 종류의 낭만적인 관계를 위한 권리도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특별한 권리라고요?2004년에 정부는 동성 결합을 도입하면서 뉴질랜드에서의 동성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150개가 넘는 법 조항을 고쳤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차별은 없습니다. 이제 와서 왜 특별한 권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권리는 어떡하지요?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단순한 법적 동의 나 사회적 계약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적, 문화적, 또는 종교적 의미나 가치 때문에 의도적으로 결혼을 선택할 사람들의 권리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결혼의 의미를 바꿈으로써, 우리는 그런 가치관과 이상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뉴질랜드 국민의 권리를 짓밟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이상의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법안은 단순히 현재의 법조문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제도를 완벽하게 재정의 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정의는 중요합니다어떤 것의 정의를 바꾼다는 것은 그 사회와 미래의 세대들이 그 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것이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정의에 엄마를 포함시키는 변화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을 은폐하게 될 것입니다. 정의를 내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엄마, 아빠의 문제남자와 여자 간의 결혼은 자신을 만든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며 키워줄 것이라고 자녀에게 말합니다. 죽음이나 이혼 때문에 이런 일이 방해를 받을 수는 있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엄마와 아빠가 결혼했을 때에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또는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진짜로 중요한 것입니다.
성(젠더)은 중요합니다.결혼을 재정의한 결과의 하나는 동성 부부가 서로 관계가 없는 아이들과 어린이들을 입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명의 남자는 각각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지만, 둘 중의 그 누구도 엄마가 될 수는 없습니다. 두 명의 여자는 각각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만, 둘 중의 그 누구도 아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동정심이 많은 사회가 항상 엄마 없는 가정이나. 아빠 없는 가정을 돕기 위해 나서지만, 현명하고 사랑이 많은 사회라면 의도적으로 엄마가 없거나 아빠가 없는 가정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를 계획적으로 아이에게서 없애는 것은 아이를 가장 잘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 부모의 양육권에 대해 배심원은 아직 숙고 중입니다.지난 40년간 이루어진 대규모의 탄탄한 과학적 연구들은 다른 어떤 가족 구조에서 보다 결혼한 생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자녀들에게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명한 아일랜드의 동성애 정치 평론가인 Richard Waghorn이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다른 구조의 가족들을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도로서의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자녀가 다른 가족 형태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잘 생활한다고 알려진 연구들은 연구 방법적으로 허점을 갖고 있어서 과학적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런 연구 결과들이 결혼의 정의나 입양에 관한 법률을 도매금으로 바꾸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된 이데올로기입니다결혼의 정의가 새로이 정립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 새로운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법에 저촉이 됩니다. 이것은 목사들과 종교관련 단체와 학교, 결혼 집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동성 결혼이 기본적인 인권으로 여겨지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어떤 단체가 이 기본적인 인권을 인정하고 아니할지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이 법안의 입법자인 노동당의 Loisa Wall의원은 결혼 집례자의 믿음이나 교회의 종교적 해석에 맞지 않는다면 어떤 개인이나 교회에게도 결혼 집례가 요구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확답은 NZ법 학회와 빅토리아 대학교의 법과대 교수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매우 의문시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Family Firs는 100,000개의 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72,000명이 서명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이 청원서에 서명하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온라인 서명이 더 선호되므로, www.protectmarriage.org.nz에 접속하십시오. 서면 제출을 원하시면 저희 홈페이지에서 청원서를 다운로드받으실 수 있습니다)
해외의 유사한 사례에서 얻은 경고들
1. 결혼을 재정의하려 시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경종을 울리는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호주의 위대한 테니스 스타인 Margaret Court는 2012년 초에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의견을 발표하자 많은 공격을 받게 되었다. 동성 결혼 찬성자들에게서 “악의적인 발언”으로 “고집불통자들을 선동한다”고 비난을 받았다.
2. 2011년 존경 받는 캐나다의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전통적인 결혼의 정의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해고를 당했다.
3. 2011년 미국에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장으로 선정되었던 올림픽 금메달 2관왕 Peter Vidmar가 사임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가 프로포지션 8이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주의 법률을 지지한 것이었는데, 이 법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4. 캐나다의 새스캐츄언의 최고 법정은 공직에 있는 결혼식 주례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신념에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주례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렸다.
5. 미국의 메인주는 국민투표에 의해 동성 결혼을 허용했는데, 어떤 공증인도 어떤 이유에서건 동성 “결혼”을 집례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인권 위반으로 벌금을 물게 된다.
6.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 치안판사 법원은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 결혼식에 장소를 제공하기를 거부한 결혼식장 주인에게 동성 커플에게 25000불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명했다.
7. 영국에서는 주택 신탁 회사의 직원이 관리직에서 해고를 당하고, 봉급의 40%가 삭감되고, 서면 경고를 받았는데, 자신의 사적인 페이스북에 교회에서 동성결혼을 집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평등”이라는 글을 올린 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8. 영국에서는 동성 결합이 법률이 되면 동성 결혼을 권장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사들이 해고를 당할 수 있다. 한 교육부 장관은 교사들, 심지어 종교계 사립학교의 교사라할지라도 양심의 이유로 이를 반대할 때, 훈계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를 거부했다. 노동당의 Louisa Wall의원은 최근에 뉴질랜드 정부의 보조를 받는 종교계통의 학교들에서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권장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
엄마’, ‘아빠’, ‘남편’, ‘아내’라는 말의 사용 금지미국의 워싱턴주의 보건국에서는 동성 최근 국민투표에서 동성 결혼이 인정된 후 혼인, 또는 이혼 증명서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말을 삭제하려고 하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결혼이 재정의 된다면 공식 문서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 삭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재정의할 계획에 따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거될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출생 증명서에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 대신 “생물학적 선조 A”와 “생물학적 선조 B”로 바뀌었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길까요?일단 결혼의 의미가 재정의되면, 이것을 다시 바꾸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사랑과 헌신에 의거하여 동성 결혼이 허락된다면, 일부다처나 다애주의 (집단결혼), 근친간의 결혼 에 대한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성인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이 어째서 괜찮은 것일까요? 지금은 이것들이 불법이지만 동성 결혼이 불법이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과 같다고요?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종간 결혼 금지는 불공정한 것이었고 인종을 서로 분리시키려고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결혼은 서로 다른 성이 함께 한다는 것을 근간으로 합니다. 타인종간의 결혼 금지를 타파한 것은 결혼의 정의를 재정의한 것이 아니고 결혼의 정의를 확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부부가 자녀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물론 그렇습니다. 모든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있습니다. 자녀를 갖는 것이 결혼의 전제조건은 아닙니다. 이것은 결혼의 자연스러운 산물인 것입니다. 결혼은 출산에 이르는 독특한 결합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가 결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예외적인 사항 때문에 어떤 부부가 결혼할 자격을 박탈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이 결혼하는 것 역시 예외적인 일이며, 평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혼하는 모든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이 생산하거나 또는 입양한 자녀에게 엄마와 아빠를 줄 능력이 있습니다.
동성 결혼이 결혼제도를 강화할 수 있다고요?“더 많은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기치 아래에서 결혼이 번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필수적인 결혼 문화는 우리가 세월을 견뎌온 결혼의 정의에 성실하고 존중하며 결혼의 중요한 목적을 이해할 때에 성장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정의를 넓혀서 일부다처나 집단 결혼을 포함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다고 해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강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정치인들에게 동의합니다.동성결합 토론 때에 동성애자를 포함한 뉴질랜드의 정치가들은 동성 결합 법이 수용할만한 대안이며, 결혼은 이성애자들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 이후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Helen Clark (노동당): “결혼은 이성애자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결혼 법을 (밑줄로 강조합니다) 바꾸지 않습니다. 결혼은 오직 이성 커플만을 위한 선택으로 남을 것입니다” - 2004. 6. 21일자 NZ Herald
Tim Barnett (노동당): “동성결합법안이 수용 가능한 선택입니다.: 결혼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동성 결합법 제 1차 의결회의
Metiria Turei (녹색당): “우리 사회가 이해하고 있는 결혼이란, 우리 법에도 형식화되어 있다시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특정한 제도입니다. 이 법은 결혼 법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 법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어떠한 구조나 타당성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동성 결합법 제 1차 의결회의
John Key (National): “결혼은 교회의 제도입니다. 나는 모든 인간 관계에 그 호칭을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2006 “나는 현재의 법안을 바꾸거나 새로운 법을 채택할 진정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8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여러분이 이 문서의 내용이나 위급함에 동의 한다면 잠시 시간을 내셔서 당신의 국회의원에게 연락을 하십시오. 전화를 하거나 선거구 사무실에서 만나보도록 약속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또는 이메일을 보내십시오. 당신의 선거구 국회의원와 그들의 이메일 주소는 저희 홈페이지 www.haveyoursay.org.nz 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이 결혼을 찬성하는 투표를 할 수 있는지는 이 팜플렛의 별지에 있습니다.“나는 결혼 평등이라는 제안을 거부한다. 결혼 평등이란 것은 슬로건이었으며; 선거운동이었다.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즉 결혼이란 오랫동안 잘 수용되어 온 제도입니다. 결혼의 정의는 오랜 연륜을 통해 관습과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무게 있게 싣고 있는 것입니다.” – 동성애자 호주 상원의원 Dean Smith (2012년 9월 호주의 결혼 법 토론에서)
결혼 법 개정안: 이 법안을 부결시키는데 필요한 21명의 국회의원은 누구일까요?
배경2004년, 동성 결합법 국회 투표에 부쳐져 통과됨2005년, 결혼 (성 명시화) 수정 법 (Marriage one man one woman 법)이 부결됨. 이 법안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합으로 명시화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국회의원들은 이 법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부결 투표를 하였을 수 있는데, 실상은 이 법 후에 어떤 것이 올 것인지를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2012년, 결혼 (결혼 정의) 수정 법 (동성결혼 법이라고 불림)을 의결에 부침 (1st Reading)
National 당의 투표 패턴8명의 의원 동성결합 반대, 이 8명중 6명이 성명시화법에 찬성, 그러나 모두 다 동성 결혼 법에 찬성함. 동성 결합법 논의가 있은 후에 국회의원이 된 10명이 성명시화법에 찬성했으나, 동성 결혼 법에 찬성함. National 당의 18명 국회의원 중 일관성 없이 투표를 한 12명은 장관들임. 우리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처음 입장대로 일관성 있게 투표하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음.
2013-03-18 11:53:29 | 관리자
어제 어떤 분을 통해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책(정이철 목사)을 소개받았습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3055
이 책의 저자인 정이철 목사는 미국의 미시간 주에서 목회하는 분입니다.
이 책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 운동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http://lake123172.tistory.com/3343
여기에는 하용조 목사를 통해 이 땅에 신사도 운동의 은사주의가 들어온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또한 주중 대사를 지낸 김하중 씨가 지은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에 대한 논평과 김하중 씨의 무속적 신앙이 자세히 분석되어 있었습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752
즉 김하중 씨 역시 신사도 운동의 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온누리 교회의 장로인 손기철 씨는 모 대학의 교수요 대학원장을 지낸 사람입니다.온누리 교회의 장로인 김하중 씨는 대한민국의 주중 대사를 지낸 지성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뿜는 것은 사람이 마시면 안 되는 독가스입니다.여기에 현혹되어 넘어가는 신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교회가 바로 온누리 교회입니다.
한편 정이철 목사는 온누리 교회 장로인 송만복 씨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 역시 신사도 운동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칼빈의 개혁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정이철 목사에게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는 세대주의가 독가시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송만복 씨가 하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운동이 오순절 은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기에 목표는 좋은데 내용이 부실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이철 목사의 극단적 칼빈주의가 오히려 이 점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성경에 없다고 주장하는 정이철 목사의 글을 보고는 칼빈에 눈이 멀면 성경을 보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 이야기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11장 25-27절에서 말세에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명백히 기록해 놓았는데 이런 명확한 기록이 목사의 눈에 안 보인다니 정말로 칼빈의 힘은 대단합니다.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26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기록된바, 시온에서 구출자가 나와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돌이키리니 27 내가 그들의 죄들을 제거할 때에 이것이 그들을 향한 내 언약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칼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외치는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들의 눈이 열려 바르게 성경을 가르치는 기적이 우리 시대에 한번 생기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 가지를 살펴보며 좋은 것들만을 추구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2-12 12:41:36 | 관리자
말세가 가까이 오면서 드디어 마귀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12년 부활절 미사에서 교황은 예수님을 루시퍼 - 사탄 마귀 - 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그를 칭송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루시퍼는 킹제임스 성경 이사야서 14장 12절에 단 한 번 나오는 말인데 개역 성경 같은 현대 역본들은 이것을 변개하여 루시퍼의 정체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 영상의 3분 30초 이후에 우리말과 라틴어 자막이 들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s://youtu.be/nqTtFWeVeCI
이것은 성철 승려가 부처는 사탄이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187#c_
이런 가짜들이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WCC입니다.
주님께서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거짓을 구분하고 거기서 뛰쳐나오는 용기를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샬롬
2013-02-05 13:57:01 | 관리자
구원받으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얼마 전부터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한 자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다닌 교회에서는 사람이 구원 받으면 그 순간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나와 최근에 다른 교회에 갔더니 거기서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가르칩니다. 즉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다 생명이 있는 존재이므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가 죽을 때까지 믿지 않은 사람의 경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좋은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배경을 살펴보면 재미있습니다.
일단 ‘생명책’과 관계가 있는 구절을 다 살펴보겠습니다. (1)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2) 출애굽기 32:3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3) 시69:28, 그들(악한 자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
(4) 빌립보서 4:3, 또한 참된 멍에 동료인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5)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요한계시록 13:8,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7)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8)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9)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10) 요한계시록 21:27,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11) 요한계시록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제가 간단히 살펴본 바로는 ‘생명과 관계된 책’은 위의 11구절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자매님의 질문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구절들이 바로 (1), (2), (3), (5), (11)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한 사람이 구원받는 순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구원을 잃으면 이름이 지워지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상 이런 일은 생길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마귀의 자녀로 지내다가 구원받은 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되었다가 다시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또 심각한 죄를 지으면 다시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일단 말이 안 되지요. 이것은 일단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명백한 구절은 이런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이 문제는 자매님이 새로이 제시한 관점에서 보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시편의 ‘산 자들의 책’은 ‘book of the living’입니다. 생명책은 ‘book of the life’입니다. life와 live는 같은 말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life가 있으면 live합니다. 즉 생명이 있으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산 자들의 책’ 즉 ‘하나님의 책’ 곧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이름은 그 책에서 지워집니다. 이름이 지워지는 시기는 하나님이 아십니다. 다만 (7)번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누구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져서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 확실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들을 통해 그 자매님이 지적하신 대로 믿는 것이 기존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경적으로 잘 맞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때에 그 사람의 이름이 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전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독자들께서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저는 이런 해석이 성경적으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과거에 계시록 강해에서도 그렇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3-01-25 13:39:14 | 관리자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레위기 16장)
출애굽기 28장에는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명시되어 있습니다.이 의복은 총 8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는 일 년 내내 이 의복을 입습니다. 4: 그들이 만들 의복들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수놓은 속옷과 관과 허리띠니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어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대제사장의 옷에는 금방울이 달려 있어서 소리를 냈습니다.
33 ¶ 너는 그 옷의 단 밑으로 단의 주위로 돌아가며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로 석류들을 만들고 또 그 단을 돌아가며 석류들 사이에 금방울을 달되 34 그 겉옷의 단 주위로 돌아가며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를 달지니라. 35 그것은 아론이 섬기기 위하여 입을지니라. 그가 {주} 앞의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에 그의 소리가 들리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가 입을 속옷에 대해서는 39-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9 ¶ 너는 고운 아마로 속옷을 수놓아 만들고 고운 아마로 관을 만들며 바느질로 허리띠를 만들지니라. 40 ¶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고 그들을 위하여 허리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모자를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41 너는 그것들을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며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고 거룩히 구별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 것이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아마로 반바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에까지 이르게 하여 그들의 벌거벗음을 덮게 할지니라.
한편 레위기 16장에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의복이 나와 있으며 이것은 4 종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절: 또 그는 거룩한 아마 속옷을 입고 살 위에 아마 반바지를 입으며 아마 허리띠를 띠고 아마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의복들이니라. 그러므로 그가 물로 자기 살을 씻고 그것들을 입을 것이며
두 가지 의복에 대해서는 현재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기만 하면 언제라도 구약시대 제사 의식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놓은 성전 연구소(Temple Institute)의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templeinstitute.org/beged/priestly_garments-4.htm
이제 성전만 지으면 그들은 하나님께 구약의 짐승 희생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구절들의 속옷은 대제사장의 화려한 겉옷 속에 입는다는 의미의 속옷으로 지금의 의사들의 가운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기록대로 믿으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흰 아마 옷을 입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옷과 속죄일의 옷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성경대로 이해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제사장이 혹시라도 지성소에서 죽을까 염려되어 그들은 그의 몸에 방울을 달고 또 죽을 경우를 대비해서 몸에 줄을 달아 그가 죽으면 그 줄로 그를 지성소에서 끄집어내려 하였다.”
저를 비롯해서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없으니 꾸며낸 말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 등에서는 위와 같은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줄은 로프(rope)로 불리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의 지지가 없습니다.다만 탈무드의 진술 등에 의해 이런 견해가 널리 퍼진 것은 사실입니다. http://www.neverthirsty.org/pp/corner/read2/r00806.html
http://www.jewishanswers.org/ask-the-rabbi-category/the-land-of-israel/?p=2403
http://bibleq.net/answer/1724/
http://www.gotquestions.org/high-priest-rope.html 성경에 모든 것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으므로 줄을 달았다고 해서 틀린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제사장이 홀로 죽으면 끄집어낼 방도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을 성경에 있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저도 과거에 성막 강해 등을 할 때에 위에 있는 인용문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살펴보니 그것은 탈무드 등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따라서 이 말은 성경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했느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정도로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샬롬
2013-01-25 12:09:33 | 관리자
먼저 시편 27편을 읽어보세요.
다윗의 시)
1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는 내 생명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사악한 자들 곧 나의 원수, 나의 대적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걸려서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 내가 이것을 확신하리로다. 4 내가 {주}께 바라던 한 가지 일 바로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평생토록 {주}의 집에 거하여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이라. 5 그분께서 고난의 때에 자신의 천막 속에 나를 숨기시고 자신의 장막의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반석 위에 세우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들 위로 들리리니 그런즉 내가 그분의 장막에서 기쁨의 희생물을 드리며 노래하되 참으로 노래로 {주}를 찬양하리로다. 7 오 {주}여, 내 목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내게 응답하소서. 8 주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을 때에 내 마음이 주께 아뢰기를, {주}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멀리 숨기지 마시고 분노하사 주의 종을 버리지 마소서. 주께서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오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나를 떠나지 마시고 나를 버리지 마소서. 10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 때에 {주}께서는 나를 들어 올리시리이다. 11 오 {주}여,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들로 인하여 나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12 나를 내 원수들의 뜻에 넘겨주지 마소서. 거짓 증인들과 잔인함을 토해 내는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하나이다. 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주}의 선하심을 볼 줄을 믿지 아니하였으면 기진하였으리이다. 14 {주}를 바라며 크게 용기를 낼지어다.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 내가 말하노니 {주}를 바랄지어다.
그리고 이제부터 윌커슨 목사님의 동영상을 보세요.
0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WlX894qN-pE
0 비통함을 구하는 선포http://www.youtube.com/watch?v=5rH76FqAl0E&feature=player_detailpage
0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영접 기도의 폐해 http://www.youtube.com/watch?v=D_wbngc9Uk4&feature=player_detailpage
0 지옥http://www.youtube.com/watch?v=fdMf3BtfTWQ&feature=player_detailpage
0 강력한 경고http://www.youtube.com/watch?v=7icMoYWW8I8&feature=player_detailpage
0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라.http://www.youtube.com/watch?v=l_RfnNUiD00&feature=player_detailpage
0 말세 교회의 배교http://www.youtube.com/watch?v=i7wBPyobcI8&feature=player_detailpage
감사합니다.
샬롬
2012-12-28 10:09:2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질문 드릴게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왕국 이후 영원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이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65:17절 이후를 읽어 보면 묘사하고 있는 내용은 천년왕국으로 이해되어지는데
특히, 100세된 사람을 어린아이라고 하며 죽음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실히 천년왕국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시작인 65장 17절을 보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시점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요?
제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 65:17, 킹흠정)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노라. 이전 것은 기억나지 아니하며 생각나지 아니하리라.(사 65:18, 킹흠정) 오직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이 되도록 창조하며 그녀의 백성을 기쁨이 되도록 창조하고(사 65:19, 킹흠정)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사 65:20, 킹흠정)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사 65:21, 킹흠정)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사 65:22, 킹흠정)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사 65:23, 킹흠정)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받으려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주에게 복 받은 자의 씨요,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후손도 그와 같으리라.(사 65:24, 킹흠정)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으리라.(사 65:25, 킹흠정)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되리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것들이 해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2-28 10:31: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12-27 12:31:27 | 오창재
안녕하세요?
요즘 예레미야를 강해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일로 눈물이 많이 납니다.
아마 제 어머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는 너무 귀한 책을 읽으면서 또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책 제목은 자기 목소리로 설교하라(바이런 얀, 전의우 역, 성서 유니온 출간)입니다.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89489&detail=yes
목사가 된 지 10년이 넘었고
목사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안 지는 이제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설교에 대한 책은 꾸준히 사서 읽습니다.
마음껏 읽도록 재정을 지원해 주시는 교회에 감사합니다.ㅎㅎ
그런데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수준이 올라가야 목사와 교회가 발전합니다.
그래서 이런 책은 성도들도 모두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208쪽인데 앞의 70쪽만 읽어도 핵심은 다 파악한 것입니다.
왜 내 설교가 이럴까 하면서 근 20년 동안 고민하던 목회자가 찾은 명쾌한 답이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와 함께 같이 읽어가며 동감하였습니다.
목사 사모가 설교 코칭을 안 하면 목사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저야 대부분 아시다시피 제 아내의 지도편달(?)로 설교가 그나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기쁘지 아니하냐?
제대로 잠을 못자도 좋은 책이 있으니 그냥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2012-12-21 15:13: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도서출판 킹제임스에서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결혼과 가정'이라는 좋은 책을 냈습니다.
또 무료로 볼 수 있도록 PDF 파일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결혼과 가정 PDF
제1장 가정의 기원 _10제2장 가정의 목적 _27제3장 가정의 머리 _42제4장 가정의 합당한 조력자 _58제5장 그리스도인의 연합 _71제6장 남편의 의무 _88제7장 아내의 의무 _101제8장 아내가 빠지는 함정 _122제9장 남편이 빠지는 함정 _141제10장 자녀 양육 _156제11장 자녀 징계 _174제12장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 _192제13장 열정과 애정 _209제14장 실망스런 일을 다루는 방법 _225제15장 혀 _241제16장 더러운 세상 속에서 정숙함 _253제17장 세 겹 줄 _270
2012-12-04 14:06:51 | 관리자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육체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를 그쳤다는 표현은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며, 육신을 입은 인간들이
죄를 그치는 것이 가능한지?
이것으로 어떤 이단부류의 사람들은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여러분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23 09:23:31 | 최병철
하나님의 교회로 알려진 안상홍 증인회는 한국에서만 가능한 신흥종파 이단입니다.
하나님 어머니를 믿는다니 이게 무슨 기독교입니까?
그래도 기존 교회에서 데인 사람들이, 거기 사람들이 친절하고 아기도 잘 봐 준다고 해서
(특히 부인들이) 많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의 글은 이들의 정체를 보여주는 단초가 될 것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fuckpseudo/30137640679
샬롬
2012-11-14 09:35:5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제가 정용섭 목사님의 설교 비평 책들과 존 맥아더 목사님의 최고의 설교라는 제목의 설교집을 몇부씩 사서 교회에 비치해 놓았습니다.
속빈 설교 꽉찬 설교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61722&detail=yes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62370&detail=yes
설교의 절망과 희망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68082&detail=yes
설교란 무엇인가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81128&detail=yes
최고의 설교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89082&detail=yes
설교 비평 책들과 설교 책은 목사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매우 필요합니다.
설교에는 기본적인 신학이 있습니다.
이런 비평 책들을 통해, 좋은 설교 모음집을 통해 바른 설교는 어떤 것인지 보게 됩니다.
설교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런 책들을 읽고 또 읽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설교를 한 날 밤에 많은 경우 그렇게 하면 안 되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볼 때 조심해야 합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용섭 목사님은 자유주의 목사로 구원관, 천국관이 투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문학이 강하고 바르게 비평하는 글 자체는 뛰어납니다.
이분의 책들에는 한국의 유명하다는 목사들의 설교가 대부분 비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책 속에서 구원관, 천국관 등은 보자마자 뛰어넘기 바랍니다.
존 맥아더는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목사님 중 하나입니다.
이분은 다 좋은데 주 되심 구원(주재권 구원, Lordship Salvation)을 주장하여
슬며시 은혜와 믿음을 혼합시킵니다.
폴 워셔 등의 칼빈주의자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런 부분이 나오면 넘어가야 합니다.
어제 밤에 읽은 그분의 설교 중 '구원의 역설'과 '죽음, 테러, 중동 지역을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이라는
설교는 정말 압권입니다. 이런 것을 설교할 수 있는 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책들을 읽고 같이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2012-11-08 13:46:11 | 관리자
한 형제님이 천주교와 관련해서 알베르토 시리즈 만화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천주교와 은사주의 관련 글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655
혹시 위의 사이트에 연결이 안 되면 다음 주소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yuxuria.blog.me/50154003307
저는 개인적으로 알베르토 시리즈가 다 진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 안에는 역사의 비밀이 많이 들어 있고
유용한 정보가 매우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매우 많이 읽히는 자료입니다.
http://www.chick.com/catalog/comiclist.asp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으므로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폰이나 아이폰 태블릿이 있으면 i-Tunes에서 영어 코믹북을 살 수 있습니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2-11-07 13:20:57 | 관리자
왜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이단에 빠져들까요?
기존의 교회들이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번역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흥종교로 떠오르고 있는 신천지의 실상을 잠시 시간을 내서 살펴보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Y6bAp5xc8ME&feature=player_detailpage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모두 회개하고 바른 복음, 바른 예수님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왜 이 민족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샬롬
2012-10-31 12:25:28 | 관리자
어느 자매님의 간증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기독교와 회심은 가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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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없는 구원의 위험이 글을 꼭 쓰고 싶었는데,,거처하는 곳에 PC가 없어 핸드폰으로만 보다가 남의 집에 와서 몇 자 적습니다.
저는 현재 주거지가 외국입니다.
박옥수 목사의 기쁜소식선교회(기소선)의 비리나 썩어빠진 교리 등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나의 연약함만 탓하다가
'기쁜소식선교회를 나온 사람들'이라는 네이버 카페와 쉼터의 자료실을 통해 상당한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그 후 정말 믿기지 않는 이런 비리들의 원인이 뭘까 많이 생각했고올라오는 말씀을 보며킹제임스 성경이란 생소한 성경을 알게 되었고,그 성경을 10여 년에 걸쳐 번역하고 흠정역으로 펴내신 목사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그분의 성경 지식과 교사로서의 간결함그리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 우리에게 오로지 성경만을 가르쳐주는 그 말씀들을 들으며내 마음에 말씀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는 믿음으로 바뀌며기소선에서 연약함으로 치부되었던 나의 믿음이이제 말씀 안에서 회개와 믿음 그리고 진정한 구원의 의미그리고 그 구원이 주는 성화의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이 카페에서 기소선의 비리를 보며 내 구원을 의심했습니다..뿌리가 저러 할진대 그 열매인 나는 어떠한가 하고요.
수리공식적인 구원의 방법, 즉 "예수님 죽음 +죄 없다 = 의인"이것은 깨달았지만성경 말씀을 통해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 그 회개에서 나오는 믿음, 그 믿음의 결과는 구원그 구원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 가며,, 구원을 일로(행위로) 드러내는 성화의 과정이 나에게는 없었고그냥 “죄 없다” “의인이다”라는 주문 같은 구원만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자 기소선의 비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구원 바로 알기" 시리즈 말씀을 일주일을 넘게 반복해서 들으며내 상태를 점검했고그 목사님 말씀처럼 178도, 179도가 아니라세상에서 180도 돌이키는 회개내 마음에 찌꺼기가 남지 않는 회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끄집어내려도내 마음에 세상 것에 대한 아까움이 없고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셔서나를 인도하고, 지키고, 나를 변화시키시며절제를 주시고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기소선은 박옥수 목사가 어느 날 새벽에 스스로 깨달아 얻은 "깨달음의 구원" "죄 없다 구원"만 존재할 뿐 하나님 앞에 근본적인 회개가 빠진 구원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회개와 믿음" 책을 발간할 때 한동안 유행처럼 "회개"를 외쳤지만전후로도 이미 "죄 없다 구원"은 "회개와 믿음"을 이겨 버리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어설픈 구원을 지키기 위해내 죄가 없어졌다는 그 하나의 사실만을 가지고온갖 명세표를 가진 "복음을 위하여"의 세금을 걷어 들이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구원은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깨달아 알게 된 구원은, 처음엔 기쁠지 몰라도 부작용이 많습니다.혼의 자유가 없이 구원이란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그 구원을 깨닫게 해 준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그리고 그 단체의 노예가 되고 자유의지가 사라지고 그리고 좀비가 됩니다.
그들은 살짝 변질된 말씀을 가지고 구원을 설계했고(안수복음)한번 잘못된 설계도는 아직도 수정되지 않았습니다.그 구원은 성령을 상실했고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사치스럽고 육신적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할 수 없으니 생각을 버리고, 생각을 꺾자”로 성령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갈라디아서를 통해 "육신의 행위들은(5장 18~21)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였고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 온유, 절제인데 이 열매를 대적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5장 22~23절).
구원받은 자에게 한번 들어온 성령님은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항상 나를 지키고 내 양심을 선하게 하고그래서 나를 세상을 향해 절제시키고 통제하셔서온유한 맘을 품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자기감정, 형편을 간증하는 그 찌질한 간증하고는 차원이 다른오로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러한 것이 성화의 과정이고 (성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골1:6, 10)
그런데 기소선의 현실은 절대로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모두 "박옥수 열매"가 주렁주렁 합니다.
그들의 삶에 "성령의 절제"는 없습니다. “박옥수의 통제"만 있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은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절제하게 만듭니다.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삶은 육신의 절제와 함께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그 고요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게 하고오로지 교회와 함께 행사를 하며 몸으로 처참하게 체험하는 미련한 신앙은 곧 바알을 섬기는 것과 흡사하며
그들이 말하는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흐르는 종(목사)의 말은 위에서 아래로까지 역병과 같이 죄와 사악함과 욕설과, 난폭함과 매정함을 통해성령을 훼방하고 영혼을 죽게 합니다.
차라리 비리만 있다면 좋겠습니다,그 안에서 구원도 아닌 구원을 움켜쥐고 고생 끝에 지옥가면 어쩌겠습니까?정말 무서운 현실입니다.
그 선자자 같은 종의 흐름의 결과가 또별(기소선에서 암, 에이즈 치료제로 선전하는)인 것 같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
제가 지금 잠깐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기소선 교회 자매가 간암 초기였는데 4개월 전 또별 먹고 다 나았다고 간증했습니다.근데 4개월 후인 지금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이제는 듣는 것도 희미해져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간암 초기에 수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어보니 또별 먹으면 나을 거란 믿음으로,,
믿음으로 낫겠다는 욕망, 또별을 믿는 마음, 이미 이 마음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 같습니다.
어느 말씀인가분별없이 악을 같이 따라가는 자에게도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자와 똑같이 벌하신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 교회에 또별로 인해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죽어 감을 보여 줘도그들의 악함은 도를 넘어오히려 죽는 자의 믿음을 탓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이런 악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우리들그리고 이제 탈출하여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우리들,,그곳에서 아직도 옳고 그른 것을 구별 못하며 오로지 "종"을 위하는 마음이 믿음이라고 믿고 있는 불쌍한 성도들우리는 그들을 위해바른 말씀을 올리고 사실들을 부지런히 전하여그들의 눈을 뜨게 할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기소선 나오신 분들도 킹제임스 성경을 보시면서 말씀을 듣고고요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성화의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외국에 거하는 한 자매
2012-10-31 11:49:48 | 관리자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덧글을 통해 이미 간단하게 질문을 드렸듯이, 박참하 목사님의 글을 다운받아 여러 번 읽어보는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를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위 내용은 박목사님의 글의 일부분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과연 요엘서 2:31-32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게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에 근거구절이 되는 것 같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우선 본문(31-31절) 자체에는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엘서 2장 전체를 읽어봐도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요엘서 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이 땅의 모든 거주민들로 하여금 떨게 할지니 이는 주의 날이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1절)
“....주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려우니 누가 그 날을 견디어 내리요?”(11절 하반절)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슬피 울고 애곡하며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시나니”(12절)
요엘서 2장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2장의 요점은, 앞으로 올 주의 날에 대해 경고 하며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결코 이스라엘이 대환란을 통과하며 겪는 고통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31,32절로 돌아가서, 그 구절들을 2장 전체의 흐름의 문맥에 놓고 보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31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성경은 분명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의 시작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어지는 32절의 내용은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31절과 32절은 2장 전체의 결론으로서, 2장 전체의 내용과 아주 잘 부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올 것을 경고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그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길 촉구하셨습니다. 또한 분명하게 31절과 32절을 통해,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돌아 올 것을 미리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
2장 전체뿐 아니라 31절과 32절의 중심 내용은 이스라엘이 7년 대환란을 겪는다는 직접적인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두 구절에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중에 구원을 받는 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환란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앞으로 이 땅에 7년 대환란이 있을 때, 그 당시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요엘서 2장 31절과 32절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한 근거 구절로 설명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왜냐면 본문자체가 그러한 설명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구절을 근거로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은 옳지만, 그에 앞서 그 구절 자체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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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23:44:45 | 김세배
딱정벌레 이야기
구약성경에서 ‘딱정벌레’라는 말은 레위기 11장 22절에 단 한번 나옵니다.
곧 그 중에서 이것들 즉 메뚜기 종류와 흰머리 메뚜기 종류와 딱정벌레 종류와 베짱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레11:22)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이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딱정벌레(히브리어 하르골, 스트롱 번호 2728)가 틀리고, 대신 ‘귀뚜라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물론 개역성경은 이들의 주장대로 귀뚜라미라고 번역함). 또한 이들은 몇몇 주석을 들먹이면서 유대인들은 딱정벌레를 먹지 않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안 먹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딱정벌레는 한자로 갑충(甲蟲)입니다. 즉 껍데기가 있는 벌레면 다 딱정벌레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가서 딱정벌레 항목을 보면 지구의 전체 곤충의 40%가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며 구체적으로는 약 35만-40만 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류의 80%가 벌레를 음식으로 먹으며 벌레 중에서 사람의 음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딱정벌레라고 나와 있고, 현재 344종이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장의 딱정벌레, 즉 beetle은 생물 분류법에서 장수풍뎅이 같은 한 종(種)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목(目)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목(目)에는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eetle
킹제임스 성경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바르게 딱정벌레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이 단어는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다른 용례를 보고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190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석학인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 변호>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 보존에 관한 교리를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3&page=2
1611년 이래로 온 세상에 Holy Bible로 자리 잡으며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준 성경은 유일하게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성경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로마 카톨릭 소수사본에서 나왔습니다, 그 수많은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히브리어 하르골을 딱정벌레라고 번역해 주셨고 이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역사를 통해 그 단어가 딱정벌레라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신다는 것은 1차적으로 그분의 입에서 나온 원어의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원어 하르골 자체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에 단 한번 나오므로 아무도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 사전 자체도 어떤 사람이 기록했느냐에 따라 다른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단순하게 약 50명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바르게 인도를 받아 그 히브리어를 딱정벌레로 바르게 번역했다고 믿습니다.
이런 것은 다음의 유명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전도서 1장 14절, 2장 11, 17, 26절, 4장 4, 6절, 6장 9절(7회)에는 다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I have seen all the works that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vexation of spirit.
여기서 킹제임스 성경은 뒷부분을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였고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이 세상의 다른 역본들은 (심지어 뉴킹제임스 역본까지) 다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스트롱 번호 7306)와 ‘레우트’(스트롱 번호 7460)입니다. 잘 알다시피 루아흐는 영도 되고 바람도 되고 숨도 됩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으로 번역해도 되고 개역성경처럼 바람으로 번역해도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우트에 있습니다. 레우트라는 말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여기 전도서에만, 위에서 언급한 7구절에만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용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처럼 ‘영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믿든지 다른 성경들처럼 ‘바람을 잡는 것’으로 믿든지 둘 중 하나를 믿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보존 역사를 믿음으로 신뢰하고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이것을 영적인 문제로 보았고 다른 번역자들은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철학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저자인 솔로몬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단어들을 썼을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헛된 수고는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인가?” 아니면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바람을 잡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뜻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 사역에 복을 주신 것을 기억하며 천주교 사본을 지지하는 현대 역본들과 번역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으므로 (물론 그들이 만든 사전들도 신뢰할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그분의 말씀대로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믿습니다.
이 두 예를 통해 보셨겠지만 원어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위의 말씀은 주님께서 분명히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해 주실 것을 확증하신 말씀입니다. 자, 그러면 주님의 보존 약속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원본의 단어들에까지만 미칠까요? 아니면 번역본의 단어들에까지 미칠까요?
저는 분명히 말씀 보존의 약속이 일차적으로 원어에 있음을 믿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끝이 나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유효하지 않습니다.원본의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바른 단어들로 전달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이 번역본에까지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런 약속에 따라 온 세상의 성경들을 살펴보니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역본들이 한결같이 천주교 사본을 사용하여 삭제와 첨가 등이 일치하고 교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하나님께서 보편적으로 보존해 주신 사본들에 근거한, 전 세계 만인의 말인 영어로 기록된 킹제임스 성경이 이 시간까지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최종적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믿음입니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원본주의자들이 늘 인용하는 웨이트 박사님(Dr. D. A. Waite)도 자신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적이고도 유일한 권위가 됩니다. 사실 성도들에게는 삶 자체가 믿음과 여기서 나오는 실행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과 온 우주 공간의 모든 문제에서 이 성경이 최종 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떻게 역본이 최종 권위가 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최종 권위이고 킹제임스 성경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종 권위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100% 킹제임스 성경 안에 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1장 22절은 껍질이 있는 딱정벌레가 맞고 전도서의 일곱 구절은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린 번역입니다. 이 구절들에 관한 한 그런 성경은 보존되지 않은 성경이요, 따라서 최종 권위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원어의 단어들의 보존을 믿습니다. 또한 그 원어의 단어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100% 보존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향상시켰음을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 보존된 원어의 단어들을 만민이 알아듣게 최종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전달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믿어도 됩니다. 다만 저는 말씀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 데이터들의 분석과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에게 100% 보존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믿으며 누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면 서슴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가져갈 것입니다. 원어는 못 가져갑니다.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성경이 온 세상 모든 것의 최종 권위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 이 시간까지 최대한 우리말답게 일대 일로 대응이 되게 번역해 놓은 순전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확실한 성경입니다.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참고: 웨이트 박사의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14쪽, 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page=2
D. 영어로 이루어진 성경 보존과 킹제임스 성경과의 관계
1. 관계 개요나는 하나님께서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영어 안에서 성경 보존을 이루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성경 보존이 곧 영어 역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올바른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라는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여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영어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믿는 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a. 첫째, 킹제임스 성경 원어 본문의 우수성 때문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우수성을 말한다.b. 둘째,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당대에나 오늘날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탁월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에 비하면 소인국 난쟁이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c. 셋째, 킹제임스 성경 번역 기법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역본들과 차이가 있다. 다른 역본의 번역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을 쓰지 않았다.d. 넷째, 킹제임스 성경 신학의 우수성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2012-10-22 17:52:16 | 관리자
어제 오늘은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을 다시 읽으면서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 어떤 것인지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기 전에 좋은 기사가 있어서 읽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1/2012092101518.html?news_top
김성근 야구 감독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
다만 자나 깨나 야구만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댓글 난에 보니 그분이 젊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좋은 목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은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 특히 목사가 많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야구에도 미치는데 우리의 구원자에게 미치는 것은 얼마나 복될까요?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그리스도에게 미치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그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니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고후5:13-14)
샬롬
2012-09-22 15:42:31 | 관리자
안녕하세요?
아침에 '가스총과 용역 직원까지 등장한 개신교 최대 교단 총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될까요?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지금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입기 원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9/2012091902950.html
2012-09-20 16:07:4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