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장 20절의 450년에 대하여
어떤 분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는 자기 신분이 노출될까 봐 은밀하게 다른 사람을 통해 킹제임스 성경에도 오류가 있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구절이 있다는 쪽지를 교회 사무원에게 전달하게 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킹제임스 성경만이 올바른 성경이라고 일방적으로 우기지 말라고 경고 메시지까지 끝에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지적한 킹제임스 성경의 명백한 오류란 다름 아닌 사도행전 13장 20절입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쟁이 되어 왔지만 뚜렷한 단일 해결책을 찾지 못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3~41절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선교 여행을 가서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유대인 조상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출현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문제가 되는 20절 부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6 이에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이르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그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로 거할 때에 그들을 높이시며 거기서 그들을 높으신 팔로 데리고 나오시고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 동안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며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사 그들의 땅을 제비뽑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20 그 뒤에 대언자 사무엘 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 동안 그들에게 재판관들을 주셨느니라.
16~2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 조상들을 택한 때부터 사무엘까지의 여러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은 20절의 450년 즉 바울이 재판관들이 다스린 때라고 한 기간이 실제로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열왕기상 6장 1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집트 탈출부터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 즉 그의 통치 제4년까지의 기간이 480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 되는 해 곧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지 사 년이 되는 해 시브 월 즉 둘째 달에 그가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더라(왕상6:1).
간단하게 재판관들 이후의 연대를 계산해 보면, 사울 왕의 통치 40년과 다윗 왕의 통치 40년,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3년을 포함하여 약 83년입니다(나중에 언급할 중첩 기간은 일단 무시한 것임). 여기에다 이집트 탈출 이후부터 재판관들의 통치 시작까지 약 47년의 기간이 있습니다(광야 생활 40년과 가나안 땅 정복 기간 7년). 이 두 기간을 합하면 130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 반대자들은 행13:20에 기록된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인 450년에 130년을 더하면 580년이 되어야 하는데 왕상6:1은 480년이라고 하므로 바로 이것이 킹제임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왕상6:1의 기간인 480년이 확실히 맞으므로 킹제임스 성경이 행13:20에서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 450년이라고 한 것은 명백하게 틀렸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정도의 연대 계산은 구약성경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고전적 문제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성경 신자와 불신자가 갈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행13:20의 450년에 대하여
자, 그러면 먼저 성경은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에 대해 무어라 말할까요?이것을 조직적으로 해결하려면 먼저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열된 대로 햇수를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 표는 사사기와 사무엘기상에 기록된 기간을 보여 줍니다.
성경 구절
내용
기간
(년)
이교도 통치
(년)
삿3:8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리사다임을 팔년 동안 섬김
8
8
삿3:11
옷니엘 때에 그 땅에 사십 년 동안 안식이 있음
40
삿3:14
이스라엘 자손이 에글론을 십팔 년 동안 섬김
18
18
삿3:30
그 땅에 팔십 년 동안 안식이 있음
80
삿4:3
야빈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함
20
20
삿5:31
그 땅에 사십 년 동안 안식이 있음
40
삿6:1
{주}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심
7
7
삿8:28
기드온 시대에 사십 년 동안 그 지역이 평온함
40
삿9:22
아비멜렉이 삼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함
3
삿10:2
돌라가 이십삼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23
삿10:3
야일이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22
삿10:8
블레셋과 암몬이 십팔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함
18
18
삿12:7
입다가 육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6
삿12:9
입산이 칠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7
삿12:11
엘론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10
삿12:14
압돈이 팔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8
삿13:1
{주}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심
40
40
삿15:20
삼손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20
삼상4:18
엘리가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함
40
총 햇수
450년
111년
이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구약성경 사사기와 사무엘기상에 기록된 재판관 시대의 햇수를 정리하여 합산하면 묘하게도 ‘정확히 450년’이 나옵니다(만일 사무엘도 재판관에 넣는다면 물론 그 기간이 더 길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단 행13:20의 450년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450년이 계산되므로 논쟁을 그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왕상6:1의 480년과 여기의 450년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논증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제 이 둘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불신자들이 하는 방법: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방법
자, 먼저 450년이라는 기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킹제임스 성경만 행13:20의 기간을 450년이라고 하지 않고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성경들도 450년이라고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450년이라는 기간 자체는 그리스어 원어 성경에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성경들은 이런저런 형태로 19절이나 20절에 450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450년이라는 기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근거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 - 개역성경과 그것의 모체가 된 ASV, ASV의 현대판인 NASB, 그리고 카톨릭 성경인 Amplified Bible, NIV 등 - 은 공인본문과 킹제임스 성경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원래 20절 중간에 있던 450년을 19절의 맨 끝이나 20절의 맨 앞으로 마음대로 옮겨서 다음과 같이 읽히도록 하였습니다.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사 그들의 땅을 제비뽑아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이 모든 것은 450년이 걸렸고20 그 뒤에 대언자 사무엘 때까지 그들에게 재판관들을 주셨느니라.
“19 And when he had destroyed seven nations in the land of Canaan, he distributed their land as an inheritance- ALL OF WHICH TOOK ABOUT 450 YEARS: 20 and after these things he gave them judges until Samuel the prophet.”(NIV 개역성경 등)
즉 이들은 킹제임스 성경처럼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 450년이 아니라,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유대인 조상들을 택한 때부터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한 때까지의 기간이 450년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은 이렇게 해야만 행13:19~20과 왕상6:1에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본인들에게도 난제인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입니다. 먼저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원문에는 없는 ‘이 모든 것은’(all of which)이라는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택한 시점이 아브라함 때부터가 아니라 이삭 때부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야만 BC 1896년경의 이삭 출생부터 BC 1444년경의 가나안 땅 분배까지 약 450년이 되기 때문입니다(어셔의 연대기 기준).
하지만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 조상들을 택하신 때부터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이야기하므로 아브라함부터가 아니라 이삭부터 그들의 조상들을 언급하는 것은 문맥에서 맞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부터 하자면 적어도 여기에 몇 십 년을 더해야 하고 그러면 자기들의 주장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이런 주장을 펴는 학자들은 반드시 이삭부터 연대를 세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지 이처럼 성경 자체를 마음대로 변경하고 또 기간을 세는 기점이 될 인물까지 바꾸면서 모순처럼 보이는 성경의 연대들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것은 일단 옳지 않습니다.
2. 성경 신자들의 방법: 성경을 그대로 두고 450년과 480년을 조화시키는 방법
사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A) 480년을 실제 햇수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의 햇수(years of redemption)로 보는 방법
위의 표에서 보듯이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 450년에는 111년 동안 이교도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이 있습니다. 또한 사울의 통치 40년 가운데 얼마는 재판관 시대(사무엘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사무엘의 재판관 통치 기간과 사울의 왕정 통치 기간이 중첩된 때가 있었으며 그 기간이 약 11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탈출부터 솔로몬의 통치 제4년까지의 기간은 원래 580년인데, 여기서 재판관들의 전체 통치 기간 안에 포함되어 있는 이교도들의 통치 기간 111년을 빼고 사무엘과 사울의 통치 기간 중 중첩되는 12년을 더하면 481년이 됩니다. 이를 근거로 왕상6:1의 480년이 계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록 480년과 481년 사이에 1년의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햇수 계산에서 반올림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바울이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 ‘약 450년’이라고 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분들 가운데는 중첩 기간을 25년으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이 경우 494년이 나오며 이때 480년과의 차이인 14년 역시 ‘약 450년’이라는 구절의 ‘약’(about)이라는 말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왕상6:1의 480년을 실제 햇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구속의 햇수(redemption years)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는 대부분의 성경 신자들이 알고 있듯이 490년입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상관하시는 때입니다. 그런데 첫 69이레 즉 483년과 마지막 한 이레 7년 사이에는 교회 시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과 상관 있는 기간을 일반적인 기간과 달리 정하실 수 있습니다.
한편 이렇게 되면 아담까지의 연대기를 계산할 때 왕상6:1의 480년을 580년(혹은 어떤 분은 611년)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통상적으로 알려진 어셔의 연대기 등에서 이집트 탈출 이전의 역사는 약 100~131년씩 위로 밀려나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사실 이 방법은 아주 깔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성경을 뜯어고치지 않고 성경대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어 많은 성경 신자들이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B) 모세와 여호수아를 재판관으로 보고 행13:20의 450년을 모세로부터 사무엘까지의 통치 기간으로 보는 방법
이것도 성경을 뜯어고치지 않고 행13:20의 450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입니다.성경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명확히 재판관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 두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정 전에 재판관으로 민족을 통치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경우 모세의 이집트 탈출부터 솔로몬의 통치 제4년까지의 480년에서 사무엘과 사울의 중첩 기간과 다윗의 통치 기간 40년, 솔로몬의 3년 등을 빼면 425년이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고 이 정도면 ‘약 450년’이라는 표현에 맞는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이 경우는 위의 표와 달리 사무엘의 죽음까지를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사무엘 때까지라는 것은 확실치 않은 표현입니다. 사무엘을 포함해야 할지 포함하지 말아야 할지, 포함한다면 사무엘의 어느 때까지를 포함해야 하는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 450년’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C) 450년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숫자들을 단순히 나열해서 더한 숫자이지 실제 햇수는 아니라고 보는 방법
매튜 헨리 등의 성경 주석가들은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이 성경에 기록된 햇수를 더해서 450년이라고 말했을 뿐이며 이 햇수는 실제로 450년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은 흔히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재판관들이 다스린 기간을 450년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에게 정확한 연도와 기간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본래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그대로 제시하면서 이들의 불순종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즉 문맥의 흐름을 보았을 때 바울의 의도는 정확히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사사기와 사무엘기상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들의 불순종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확히 450년이라고 하지 않고 ‘약 450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사무엘도 포함해야 할지 제외해야 할지 막연합니다. 다시 말하면 왕상6:1은 분명히 연대기를 염두에 두고 정확한 햇수를 말한 것이고, 반면에 행13:20은 정확한 연대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재판관들의 연대가 ‘약 450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유대인들의 불순종을 상기시키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대략적인 수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날에도 화자(話者)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그가 말하는 구체적인 숫자는 정확하게 인용되는 경우도 있고 대략의 수치로 인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왕상6:1과 행13:20을 서로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면에서 신빙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와 사무엘기상을 근거로 만든 위의 표에는 사실 재판관들 사이에 중첩되는 기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삿13:1에서 블레셋의 통치 기간은 40년입니다. 삿15:20에서 삼손의 통치 기간은 20년입니다. 그런데 이 40년과 20년은 서로 상관없는 기간이 아니라 블레셋의 40년 통치 기간 안에 삼손의 통치 기간 20년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재판관들의 시대가 중첩되었음을 보여 주는 분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사사기 11장 26절에서 입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것의 고을들과 아로엘과 그것의 고을들과 아르논 지경에 있는 모든 도시에 거한 지 삼백 년이 되었거늘 그런즉 너희가 어찌하여 그것들을 그 기간에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삿11:26)
즉 모세가 40년 광야 생활을 끝내면서 헤스본을 정복한 이후로 입다까지 300년이 있었습니다. 이 300년은 왕상6:1의 480년이 실제 기간이라야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재판관들의 중첩 기간과 입다의 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행13:20의 ‘약 450년’에 해당하는 실제 햇수는 330~340년이 됩니다.
그래서 어셔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대기 학자들은 왕상6:1에 근거하여 이집트 탈출은 BC 1491년에 이루어졌고,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BC 1012년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프레임 안에서 보면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은 BC 1400년경부터 마지막 재판관인 사무엘이 죽은 BC 1060년경까지 약 341년이 됩니다.
위의 세 가지 방법 외에도 문헌을 찾아보면 킹제임스 성경을 뜯어고치지 않고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더 있습니다.
이 문제를 보면서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13:20의 재판관들의 통치 기간이 450년이라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성경 신자들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난제를 만났을 때 반드시 성경을 그대로 두고 해당 구절들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말씀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처럼 자기 생각과 성경의 햇수가 다른 경우 본문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중대한 범법 행위입니다.
이런 범법 행위는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면 다음은 유명한 예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64
앞서 살펴본 대로 킹제임스 성경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성경이 사도행전 13장 20절의 기간을 450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약 450년’이라는 기록은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을 들어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에 흠집을 내 보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마치 이솝 우화에 나오는 ‘꼬리 잘린 여우’의 심리와 같습니다. 이것은 사냥꾼의 덫에 꼬리가 걸려 잘린 여우가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가리기 위해 동료 여우들에게 꼬리가 없으므로 편리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꼬리를 잘라 스스로 장애를 입도록 꾀었다는 우화입니다. 이처럼 이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에 있는 오류가 킹제임스 성경에도 있으니 킹제임스 성경 역시 인간에 의해 개정될 수 있는 불완전한 번역본에 불과하고 완전한 성경은 있지도 않으며 필요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 안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탁월함에 대한 무수한 증거나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 성경 등 변개된 성경들에서 수없이 드러나는 심각한 오류와 신학적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교회들의 타락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의 완전성을 작은 허점에 근거해 붕괴시키고자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그런 허점은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어떻게 보실지 깊이 생각하고 오직 바른 성경을 통한 믿음 안에서 바르게 행하는, 지혜와 분별력이 충만한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2014-03-26 17:28:18 | 관리자
어느 분이 사랑침례교회에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자살소식을 듣고...마음이 복잡합니다.>라는 글을 올려주셨는데
내용이 크리스천의 자살 문제라 중요하므로 함께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861
샬롬
패스터
2014-03-24 15:20:51 | 관리자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55
2014-03-24 14:37:44 | 관리자
십계명은 열 가지 명령(출 20:3~17)으로, 데칼로그스(Decalogues)라고 하는데, 이 말은 10을 뜻하는 그리스말(헬라어) '데카'와 말을 뜻하는 '로고스'에서 나온 말로서 유대인들은 이것을 '열 가지 말씀'으로 부릅니다.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으로 은혜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십계명의 모든 조항은 첫 사람 아담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양심에 새겨진 도덕 법규'입니다. 넷째 명령인 안식일의 경우, 신약 성도들이 유대인들과는 달리 토요일을 강제적인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지만 한 주에 하루를 거룩히 구분하고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되새긴다는 원리로 지금과 동일한 것입니다. -에스라 성경사전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초대교회 당시의 유대인들이 구분한 열 가지로 되어 있으나 천주교에서는 다르게 변형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십계명
천주교 십계명
1. 다른 신을 두지 말라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우상을 섬기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지키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5. 부모에게 순종하라
4. 부모에게 효도하라
6. 살인하지 말라
5. 사람을 죽이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6.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7. 도둑질을 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8.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천주교는 성인 숭배, 유품 숭배를 비롯해 갖가지 우상숭배의 전통들을 가지고 있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등을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입장이라 둘째 명령을 없애고 대신 열째 명령을 둘로 나누어 아홉째와 열째 계명으로 조작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명백히 잘못된 종교입니다.
2014-03-24 09:43:14 | 관리자
아담의 기초 위에서 거듭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느냐? 하는 문제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필라델피아교회는 지난 주에 이 주제로 설교를 했는데 이미 비슷한 설교가 있었군요. 미리 봤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2014-03-16 21:24:54 | 류인선
저도 구원파에 있다가 독립침례교에서 성경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독립침례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아는 구원파 사람들에게 만약 들으려고 하면 같이 성경공부도 권합니다.
하박국과 욥기를 공부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구원파안에서 구원받는 역사를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먼저 올바른 교리를 알고 배운 성도가 열심히 생활을 안하면 돌들에게도 복음전하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나쁜 적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지금 현재 독립침례교에 생기는 문제도 이와 같고 저 자신에게 생기는 문제도 이와 같은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2014-03-11 04:01:58 | 백정훈
다음에는 또한 환난 전 휴거에 대한 좋은 글이 많이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www.soundchristian.com/prophecy/
2014-03-10 14:23:38 | 관리자
환난 전 휴거라는 책을 지은 Allen Beechick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드셨습니다.
http://www.amazon.com/The-Pre-Tribulation-Rapture-Allen-Beechick/dp/0896360407/ref=sr_1_11?ie=UTF8&qid=1394428848&sr=8-11&keywords=pretribulation+rapture
이분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알려드리니 참조하세요.
http://www.rapturesolution.com/
다음은 kindle용 책입니다.
http://www.amazon.com/Rapture-Solution-Allen-Beechick-ebook/dp/B001T4YUZW/ref=la_B001KMCPCI_1_2?s=books&ie=UTF8&qid=1394428872&sr=1-2
참조하세요.
샬롬
2014-03-10 14:22:58 | 관리자
여기에는 또한 환난 전 휴거에 대한 좋은 글이 많이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http://www.soundchristian.com/prophecy/
2014-03-10 14:13:47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미국에는 성경 예언에 대한 분석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예언을 이용해서 돈만 벌기도 하고
헛된 예측을 해서 성도들을 우습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성경 해석 면에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론을 펴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예측가들을 분석한 자료가 있으니
여기서 +로 평가된 분들의 책이나 글만 읽는 것이 좋습니다.
http://www.soundchristian.com/prophecy/who/
감사합니다.
샬롬
2014-03-10 14:10:37 | 관리자
요즘 서울 강남에 있는 사랑의 교회에 대한 나쁜 소식이 여기저기서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십일조와 헌금을 제대로 안 하면 교회 생활하기도 어려워질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는 십일조라는 뇌관이 터지면서 크게 위축될지도 모릅니다.
부디 바라기는 대형 교회 목사들이 목회의 본질을 잘 깨닫고 양들을 섬기는 자세로 목회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http://m.shinmoongo.net/a.html?uid=53124
2014-03-10 14:00:01 | 관리자
네 기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3-08 18:03:52 | 관리자
저자 인용이 잘못되었습니다. 신성종이 아니라 신성남입니다. 신성종 목사는 천국과 지옥 체험하고 와서 책까지 쓴 충현교회 전 목사죠.
2014-03-08 15:56:36 | 김재근
이런 제목의 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기독교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2014-03-07 22:11:16 | 김상진
윗글에 나오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기사들이 있어 참조하시라고
링크 주소를 올립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2/2013050203064.html
http://www.cchannel.com/news/news_cch_view.asp?seq=0000007468&curpage=1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123804&cp=nv
2014-03-07 20:38:31 | 김대용
네~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3-07 19:22:08 | 관리자
상단에 '목사님'을 '모사님'이라고 오타가 난 것 같습니다.
2014-03-07 19:12:50 | 김건
요즘 대형 교회 특히 사랑의 교회 관련 글들이 매체에 종종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마도 그나마 개신교계를 인원수와 물량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대형 교회들이 내부의 부패로 인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계는
급격하게 위축되며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부디 이런 일들을 통해 교회를 비즈니스로 알고 사장 행세하는 목사들이 회개하고
또 무지한 성도들이 계몽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 글은 2014년 3월 7일 자 글이고
저자는 신성남으로 되어 있습니다(목사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음).
모든 교회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3000억 호화 예배당과 중세 삽질의 부활
건물 성장은 교회 성장이 아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77
글쓴이: 신성남
“이 ‘돈’에 환장한 목사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가난한 목수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느냐. 이 ‘복’에 환장한 교인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를 먹던 세례 요한을 존경한다고 말하느냐. 그리고 이 ‘건물’에 환장한 교회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가정에서 모이던 초대 교회의 그 순수한 신앙을 따른다고 자랑하느냐.”
돈과 세속적 복과 그리고 교회당 건물은 이제 한국교회가 애지중지하는 애완용 우상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존경할 만한 목회자와 바른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의 글은 필자의 진심입니다.
하여튼 바벨탑처럼 높은 아방궁을 하나 세워 놓고 떼로 몰려가서 ‘솔로몬의 성전’이니 뭐니 하며 수선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서, 냄새나는 잔칫상에 부끄러운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갖은 교언영색으로 두꺼운 얼굴에 서로 금칠하는 일부 거룩하신 목사님들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한마디를 안 할 수가 없군요.
서울에 교회당이 모자라나
몇 해 전 사랑의교회는 장소가 너무 비좁아서 신축한다고 공표했습니다. 그 심정은 필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처럼 초호화판 아방궁을 세운 것은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처음엔 2,100억 원이라고 하던 건축비가 사전에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려 3,000억 원으로 슬그머니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최종 건축비가 얼마가 될는지는 정말 며느리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요란한 잔치가 대충 끝이 났다면, 이제라도 취기를 좀 몰아내고 옆 동네 미자립 교회들을 한번 가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고작 몇십 평도 안 되는 셋방살이 작은 예배당마저 자리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교회들이 지금 아주 널렸습니다. 즉 현재 서울에는 교회 수에 비해 교인이 부족한 것이지, 결코 교회당 건물이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1960-70년 사이 전체 개신교 교인 수는 412%나 증가했고, 1970-85년 사이에도 103%나 증가했지만, 1985-95년 사이에는 그 증가율이 35%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5-2005년 사이에는 14만 4천 명이 줄어들어 급기야 -1.6%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 가톨릭 신도는 무려 220만 명이나 늘어나서 74.4%의 초고속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인 수는 줄고, 자리가 빈 교회들이 매년 늘어나고, 또한 은행 빚을 못 갚아 경매로 넘어가는 교회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의교회는 초대형 신축을 용감하게 단행했습니다. 극심한 건축 반대 여론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자신들만이 바른 교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 유명한 제자훈련은 도대체 왜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까. 수십 년 동안 훈련을 했으면 이젠 장성한 제자들을 이웃 미자립 교회들에 조직적으로 파송해야 옳지 않으냐는 말입니다. 아니면 실전 배치는 평생 미루고 허구한 날 비대한 몸집만 키우며 끝까지 훈련만 받다가 그냥 편안히 돌아가시겠다는 말인지요.
‘아방궁’은 중국 시황제가 위수의 남쪽에 세웠던 호화롭고 거대한 궁전입니다. 후궁들의 처소였던 이 왕궁은 수많은 미희들로 가득했으나 그 진나라는 고작 15년만에 멸망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최초로 초호화 성전을 지었지만 도리어 나중에 후궁들에 둘러싸여 음란한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금으로 성전을 치장하고 그 화려함을 자랑했으나 왕과 백성들은 오히려 메마른 광야에서 천막 생활할 때보다 더욱 극심하게 타락했습니다. 어리석고 부패한 인생들이 하는 일이란 늘 이 모양입니다.
결국, 그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오직 여자와 사치와 향락밖에 없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 교회 담임목회자들 또한 간통과 호사와 공금 횡령으로 온 동네 망신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완공된 서초예배당을 보며 ‘일단 짓고 나면 땡이다’ 하며 혹시 기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대단한 착각입니다. 무리한 건축으로 인한 엄청난 은행 빚의 상환 등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9천 명이 모이던 제자교회가 담임목사의 부정행위가 들통난 후에는 2천 명 이하로 급감했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선 당장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는 ‘마당기도회’에 대한 치졸한 방해와 압력을 즉시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런 난관은 더욱 구체화될 것입니다.
몇 해 전 ‘거룩한 땅 밟기’ 운운하며 새 예배당 부지에 빨간 리본들을 잔뜩 깔아 놓고 서낭당처럼 신성시 하던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기존 강남예배당의 마당을 쓰레기장 취급하며 별로 거룩하지 못 한 행동을 하시는 것인지요. 이젠 그 ‘거룩한 땅’마저 토사구팽을 하시나요. 이는 너무 모순적인 처사가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출입문을 용접하고 높은 담을 올리며 갖은 수단 다 동원해도 결국 양들의 의로운 분노를 막기는 힘들 것입니다.
삽질로 망한 중세 교회
사전을 찾아 보니, ‘삽질’이란 말은 ‘쓸모 없는 일을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관용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교회의 예배당 대형화를 통한 건축 경쟁 행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단어는 드물 듯 합니다.
같은 소리음이라도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잘못 사용하면 듣기 싫은 소음이나 잡음이 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와 용도가 적절한 건축은 예술이지만, 실속 없는 허장성세용 건축은 삽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루터의 종교개혁은 사기성 면죄부까지 팔며 무리하게 추진한 초대형 건물 ‘성베드로성당’의 공사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공교회가 저지른 무분별한 건물 삽질의 아주 원조 격인 셈이지요. 당시 교회의 내부는 썩고 또 썩어 있었는데 오히려 외형만 키우고 겉치장에 열을 올린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루터의 그 묵직한 쇠망치가 다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대형 교회들 현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또 못질해야 정신을 차릴까요.
어두웠던 중세 천 년 동안 그 시대 교회들이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고작 삽질 사역의 유산인 대형 건물들뿐입니다. 이스탄불의 그 거대한 성소피아성당도 이젠 관광용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한 때 융성했던 유럽의 개신교도 형편은 비슷합니다. 큰 건물들만 딸랑 남겨 놓고 지금은 거의 다 망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모텔, 식당, 상가, 그리고 술집 등 다른 용도로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 속의 수많은 교회들은 교인들의 귀한 헌금을 허비하며 이렇게 허망하게 변해 버릴 건물에 열심히 삽질하다가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아무리 크고 많아도 교회가 그 본질을 상실하면 언제나 망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사가 보여 주는 냉엄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가난한 신도들 장바구니 돈까지 짜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 빚까지 돌려 막으며 대형 건축을 하는 행위가 그보다 무엇이 더 나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 한쪽에서는 계속 문을 닫고 있는데 말입니다.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의 푼돈을 걷어 허름한 초막이라도 하나 지은 적이 있으셨던가요.
과연 서초동의 그 무슨 쇼핑몰같이 생긴 사치스런 벽돌 덩어리 속에서 종의 형체로 낮게 오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정신과 가난한 목수의 마음을 진정으로 잘 전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과거 거대한 헤롯성전 안의 상인들처럼 본격적으로 좌판이라도 한번 멋있게 펼쳐 보려는 것인가요.
그러나 그처럼 크고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던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절대로 잊지 마십시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고상한 아방궁에서 철 따라 냉난방 틀어 놓고 품위있는 예배를 즐기는 동안, 같은 시각 다른 한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천 길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힘든 삶을 버티고 있는 줄 진정 알기나 하시는지요.
반면에 사도행전의 성도들은 풍족지 않은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에 먼저 힘을 쏟았습니다. 전도나 선교를 위한다는 허구적인 명분으로 자신들을 위한 대형 예배당 건축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정작 배우고 닮아야 할 것은 초대 교회의 검소한 사역이건만, 많은 대형 교회들은 하필이면 삽질하다 망한 중세 교회를 닮아 가는 짓만 골라서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 경향교회, 제자교회, 왕성교회, 경서교회, 광성교회, 그리고 사랑의교회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십시요.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교회가 ‘물 반, 고기 반’으로 아주 차고 넘칩니다. 이를 보면 배도적인 목사 귀족화, 신도 우민화, 건물 대형화, 복음 기복화, 그리고 교회 사유화에서 자유로운 대형 교회가 요즘 과연 몇이나 되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중세 삽질의 부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려면 ‘왕궁’으로 가야 하고, 선지자를 만나려면 ‘광야’로 가야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눅7:24-26).”
예수님과 제자들은 광야로 가셨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틈만 나면 아방궁 같은 건물을 세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바른 교회라면, 신도들이 그 광야에서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들이 아니라 ‘선지자’를 만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요즘 왜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급증하고 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어떤 교회에는 부드러운 긴 옷 입은 자들만이 설치고, 정녕 선지자는 보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줍지 않은 박사모를 쓴 자들은 넘치는데, 예수님 고난의 가시관은 잘 보여 주지 않습니다. 물질적 축복은 넘치게 노래하는데, 십자가의 도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한 반복성 건물 삽질과 기만적 가르침에 염증이 나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 개신교의 진정한 악성 안티는 일부 무신론적 논객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귀족 교회의 ‘거짓된 목사’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지만, 이 종교 상인들은 반대로 신도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은 신축된 사랑의교회 서초예배당이야말로 성베드로성당에서 종지부를 찍었던 그 ‘중세적 원조 삽질’의 화려한 부활이 아닌가 그리 의심하고 있습니다.
건물 성장은 교회 성장이 아니다
만왕의 왕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고작 나귀 새끼를 타셨는데, 초대형 건축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은행 빚을 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기사가 딸린 최고급차를 굴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대형 콘도를 분양받아 골프치며, 비싼 특급 호텔에 가서 운동한다면 이게 정말 종의 모습일까요. 게다가 거액의 두 자녀 유학비까지 모두 교회 돈을 가져다 채웠다고 하는데 정말 듣고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난 것입니까. 모두 순진한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께 바치라고 뜨겁게 설교하고 그 주머니를 열심히 흔들어서 나온 것 아닙니까. 신도들이 무슨 돈 내는 기계인가요. 입만 열면 ‘하나님께 바치라’며 설레발 치던 소중한 헌금을 엉뚱하게 목사가 사치를 떠는 데에 허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담임목사는 한 부목사가 나이 드신 성도들에게 모리배처럼 함부로 반말을 지껄이며 폭력적 언사를 하는 행위도 마냥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부목사는 한 여성도가 집단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도 제지하지 않았다지요. 이처럼 담임목사에게 애완견처럼 충성하는 부목사들 중 상당수가 군목 출신이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군견’도 저런 짓은 안 할 것입니다. 물론 군 사역에 성실히 수고하시는 다른 군목님들께는 너무 민망한 일입니다.
그리고 귀족 목사들 중에는 ‘의전’을 핑계로 최고급차를 굴리는 분들이 제법 많다고 하던데, 이게 종이 할 처신인가요. 하여간에 하늘 아래에 의전이 필요한 종놈이 있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참된 경건은 눈물 연기와 잔재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진정 자숙하기를 원한다면, 만날 성도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지 말고 목사들부터 손수 그 비싼 차들을 팔아서 실용적인 차로 바꾸고 남은 은행빚이나 조금이라도 더 갚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30년간 영국 교회는 무려 5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약 30% 이상의 교인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건물 삽질에 비해 신도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가 건물 확장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인의 바른 성장입니다. 큰 건물들만 잔뜩 세워 놓고 무너지고 있는 유럽 개신교를 보십시요. 건물 성장은 결코 교회 성장이 아닙니다. 따라서 일부 목회자들은 목사 말 잘 듣고 헌금 잘하는 맹신도를 키워 교회 외형만 확장할 궁리를 행여라도 하지 말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바른 성도를 키우는 데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성전 건축’이라는 기만적 명분을 빙자한 경쟁적 건축을 이제 즉시 멈추기 바랍니다. 건물이나 재력 또는 교세를 자랑하는 교회는 이미 십자가 정신을 상실한 타락한 교회일 뿐입니다.
서초동의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그 아무리 잘난 건물이라도 감히 성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만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삽질로 목회하던 목사님들은 더 이상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요. 목회자로서 그런 거짓말은 면죄부 판매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바르게 성장해야 비로소 진정한 교회 성장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2014-03-07 18:55:42 | 관리자
오늘 또 이런 글이 들어와서 소개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소위 목사 찬양가를 만들었다가 폐기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곳곳에서 생기는데
이런 배경엔 성도들의 무지가 큰 몫을 합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바른 성경을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며 진리 안에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사랑의교회 '목사님 찬가' 만들어....권사들 반대로 폐기 (국민일보 김지방기자)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175967414&qb=7IKs656R7J2YIOq1kO2ajCDrqqnsgqzri5gg7LCs6rC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xEgJU5Y7twsstzAv3lssssssso-507515&sid=UxmT7XJvLBwAABziCW4
“뜨거운 찬양, 거대한 비전, 따듯한 사랑…” 사랑의교회 ‘목사님 찬가’ 논란
[쿠키 사회]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담임 오정현 목사를 위한 ‘찬가’를 만들었던 사실이 공개됐다.
인터넷 카페 ‘사랑의교회 소통과 회복을 위한 사랑넷’에 최근 한편의 노래 악보가 올라왔다. 제목은 ‘주님께서 세우신 목사님’이었다.
‘찬양 충만 우리 목사님 하이 프레이즈(Hi Praise) 깊은 기도로 모든 성도 하나되어 주께 영광 찬양드리네. 비전메이커(Vision Maker) 우리 목사님, 창조 은사 아이디어맨, 예배 속에 생기 불어 2007년 부흥 기대해.’
여기까지가 1절 노랫말. 후렴구는 이랬다.
‘목사님 뜨거운 찬양, 목사님 거대한 비전, 목사님 순수한 열정, 목사님 따듯한 사랑, 주님께 감사해 주님께 감사해 주님께 감사드리세.’
모두 3절까지 있는 이 노래에는 ‘2006년 스승의 날 축복송’이라고 표시돼 있다. 이 노래는 2006년 스승의 날 때 사랑의교회 성경공부 모임을 이끄는 ‘순장’들의 모임에서 악보가 배포돼 실제 연습까지 했으나, 일부 명예권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가 항의하는 바람에 실제 교회 공식 순서에서 불리진 않았다고 한다. 이 악보를 공개한 이는 순장 모임의 임원들이 나서서 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사랑의교회 당회는 지난달 30일 오 목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대학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문제를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했다. 최근 노스웨스트대가 ‘오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학위 수여는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식 의견을 전해온 바 있다. 오 목사는 표절 문제에 책임을 지고 지난 3월부터 6개월 간 주일 설교를 중단한 상태다.
사랑의교회 부교역자들은 “불과 90 여일 앞으로 다가온 서초예배당 입당과 교회의 질서와 화평의 회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당회장권이 원활히 수행되어야 할 때”라며 사실상 오 목사의 조기 복귀를 바라는 청원서를 29일 당회에 제출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는 9일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신축 공사의 공공도로 지하 점유 문제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출처:국민일보 쿠키뉴스 (2013년 7월 2일)
2014-03-07 18:46:09 | 관리자
사실 온누리교회는 서빙고예배당만 있던 시절인 90년대 중·후반, 군대를 전역하고 꿈 많고 생각도 많던 20대 청년 시절에 제가 3년 정도를 다녔던 교회입니다.
지금 위에 인용된 기사에서 지적하는 교회 확장과 비전교회 건립(사실상의 지교회) 등이 바로 그 시기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온누리교회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의 현란한 예배문화를 자랑하며 폭발적인 양적 부흥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위 기사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이미 대형교회였던 온누리교회 서빙고예배당으로 한 주에만 백 명 내외의 새 신자들이 밀려들어 와 그 인원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일단 대방동(제 기억으로는) 쪽에 큰 땅을 사고 전교인들이 기도하며 건축에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 인허가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온누리교회와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는 분이 소유주로 있던 양재 횃불선교센터를 인수하게 된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설교 영상을 접할 수 있는 고 하용조 목사님은 설교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온화한 모습과는 어찌 보면 반대로 교회에서 일을 수행하고 조력자들과 사역을 함에서는 말 그대로 불도저 같았다고 합니다. 당시 제가 속해있던 온누리교회 청년부의 한 부서에 형이 두란노서원의 팀장이었는데 하 목사님의 일 처리 스타일은 조금의 빈틈이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불곰 같은 리더쉽이라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진을 쏙 빼놓았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추진력과 진취적인 성향이 이런 큰 덩치의 교회를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밤 10시 정도면 수면에 들어 새벽 3시에 기상하는 생활을 수십 년 해 오고 오로지 일밖에 생각 안 하는 사람, 신학생 시절부터 연예인들이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될 것을 직감하고 방송실 식당으로 출근도장을 찍으며 연예인들을 전도해서 연예인 교회를 세우고 그것을 기반으로 파퓰러한 예배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초대형교회를 일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하다 결국 쓰러져간 사람이 바로 하 목사님입니다.
위 기사는 작심하고 온누리교회 리더쉽의 핵심 중의 하나인 확장주의를 비판한 내용으로 아마 온누리교회 교인들이나 옹호자들은 너무 편파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가 가장 눈부시게 확장하고 양적 성장을 이룩하던 시기를 직접 목격했던 한사람으로서 분명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종교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목회에 있어 천부적 재능이 있던 한 인간의 모든 진액이 쏟아부어 졌고 수많은 교인들의 봉사와 헌신으로 일구어진 저 초대형교회는 결국 사탄의 지렛대질 한 번으로 그 모든 찬란한 수고와 사연들이 사악한 마귀의 사역을 돕는 연료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의 안타까운 면면은 이미 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조금만 손품을 팔면 인터넷을 통해 그런 부분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명백한 사실을 모함이요, 시기와 질투의 산물이요, 사실 왜곡이라고 부질없는 합리화와 자기방어만 할 것입니까? 부디 한사람이라도 더 바르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나니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닫으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닫으사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9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지식도 없고 명철도 없으므로 이르기를, 내가 그것의 일부를 불로 태우고 또 그것의 숯 위에서 참으로 빵을 굽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가증한 것을 만들리요?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리요? 하는 자가 없나니 20 그는 재를 먹으며 속아 넘어간 마음으로 인해 옆으로 벗어났으므로 자기 혼을 건져 내지도 못하고 또 이르기를, 내 오른손에 거짓된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사44:18~20)
2014-03-07 13:14:58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