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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쪽)과 왼손(쪽)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른쪽과 왼쪽 중에서 하나님은 오른쪽을 좋아하십니다.그래서 전도서 10장 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10:2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오른손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그의 왼손에 있느니라.A wise man's heart [is] at his right hand; but a fool's heart at his left.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오른손잡이만 사랑하고 왼손잡이는 미워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오른손과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출15:6 오 {주}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오 {주}여, 주의 오른손이 그 원수를 산산조각 내었나이다.Thy right hand, O LORD, is become glorious in power: thy right hand, O LORD, hath dashed in pieces the enemy.   시33:2 그가 이르되,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오시며 바란 산에서부터 빛을 내시고 수만 성도와 함께 오셨는데 그분의 오른손에서 그들을 위하여 불 같은 율법이 나왔도다.And he said, The LORD came from Sinai, and rose up from Seir unto them; he shined forth from mount Paran, and he came with ten thousands of saints: from his right hand went a fiery law for them.   시16:8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moved.   시20:6 {주}께서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하늘로부터 자신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능력으로 그의 말을 들으시리로다.Now know I that the LORD saveth his anointed; he will hear him from his holy heaven with the saving strength of his right hand.   시98:1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 그분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분을 위해 승리를 얻었도다.A Psalm. O sing unto the LORD a new song; for he hath done marvellous things: his right hand, and his holy arm, hath gotten him the victory.   시110:1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시118:15 의로운 자들의 장막에는 기쁨의 소리와 구원의 소리가 있나니 {주}의 오른손이 용맹스럽게 행하시는도다.The voice of rejoicing and salvation is in the tabernacles of the righteous: the right hand of the LORD doeth valiantly.   시118;16 {주}의 오른손이 높여지셨고 {주}의 오른손이 용맹스럽게 행하시는도다.The right hand of the LORD is exalted: the right hand of the LORD doeth valiantly.   사41:13 나 {주} 네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리라.For I the LORD thy God will hold thy right hand, saying unto thee, Fear not; I will help thee.   사45:1 {주}가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민족들을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또 왕들의 허리를 풀어 문짝이 두 개인 성문들을 그 앞에 열게 하고 그 성문들을 닫지 못하게 하리라.Thus saith the LORD to his anointed, to Cyrus, whose right hand I have holden, to subdue nations before him; and I will loose the loins of kings, to open before him the two leaved gates; and the gates shall not be shut;   사62:8 {주}께서 자신의 오른손과 자신의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참으로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즙을 타국인의 아들들이 마시지 못하게 하리라.The LORD hath sworn by his right hand, and by the arm of his strength, Surely I will no more give thy corn to be meat for thine enemies; and the sons of the stranger shall not drink thy wine, for the which thou hast laboured:   렘22:24 {주}가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비록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내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빼내어As I live, saith the LORD, though Coniah the son of Jehoiakim king of Judah were the signet upon my right hand, yet would I pluck thee thence;   합2:16 네가 영광대신 수치로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포피를 드러낼지어다. {주}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요, 수치스럽게 토한 것이 네 영광 위에 임하리니Thou art filled with shame for glory: drink thou also, and let thy foreskin be uncovered: the cup of the LORD'S right hand shall be turned unto thee, and shameful spewing shall be on thy glory.   오른손은 하나님의 편이요, 권능과 공의를 집행하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도 지금 하나님의 왕좌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막14:62,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그분의 사람들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마25:31-33,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편에 두되 염소들은 왼편에 두리라.   심지어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도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눅1:11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의 오른쪽에 서매   왜 제가 이런 것을 일일이 나열할까요?   사실 영이신 하나님께는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차이가 없습니다.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꾸 오른쪽을 강조하시는 것은 왼쪽이 마귀의 방향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익(right wing)이 있고 좌익(left wing)이 있습니다.영어에서도 우리말에서도 오른쪽(손)과 왼쪽(손)은 나타내는 사상이 있습니다. 성경 식으로 말하면 창조는 오른쪽이요, 진화는 왼쪽입니다.이 세상 정치 형태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는 오른쪽이요, 사회공산주의는 왼쪽입니다.동서양에서 자연스럽게 그리 칭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은 오른쪽이요, 맞지 않는 것은 왼쪽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종북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설교하자 한 형제가 다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목사님, 조심하셔야 해요. 진보 세력들은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오른쪽을 가리키고 오른쪽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이 두려워서 할 말을 못하면 안 되지요, 하나님의 모든 대언자들은 오른쪽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라는 신정국가는 오른쪽 국가였습니다. 부정도 많고 부패도 많습니다. 부자도 많고 가난한 자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기본 방향은 오른쪽입니다. 블레셋과 이집트는 왼쪽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하에 초장부터 오른쪽으로 들어섰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방향이 제대로 섰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특히 박정희라는 걸출한 정치 지도자를 통해 4,000년의 가난을 떨쳐버렸습니다. 로마서 13장에 따라 그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입니다. 자살을 선택한 비참한 대통령도 있는데 그분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같은 이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결국 다 자기 손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구나 하는 것을 시청각 교육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어떻겠습니까?   반면에 북한은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체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슬픈 일입니다.저는 북한 주민의 2세대입니다. 아버지가 거제도 수용소의 반공 포로였습니다. 그분은 마귀에게 속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과 음모와 학대를 눈으로 본 산 증인입니다. 왼쪽이 싫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른쪽을 택한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정해야 합니다.그것이 하나님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삐딱한 눈으로 세상을(부자를) 보지 말고 “죄 때문에 오른쪽으로 갈 세상이 부패하였구나”라고 생각하며 세상에 회개를 촉구하여야 합니다.   왼쪽 길은 사람의 힘으로 공평하게 나누어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길입니다.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마귀에게서 나온 길입니다. 대개 이 길로 들어서면 사람을 하나님보다 앞에 둡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보다 위에 둡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진보라고 부릅니다.   바라기는 진보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서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진보를 해야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다면 최소한 오른쪽으로 걷는 인생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즉 인생을 대하는 기본 사상이 올발라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하나님의 진리와 평안이 그 사람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오른쪽을 선호하시는 인격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은 이제 곧 부끄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오른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뜨겁게 사랑합시다. 그것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사상을 정리하고 삶의 방향을 점검하여 오른쪽의 하나님을 따르도록 합시다. 수백만 명이 희생된 6.25를 기억하며 성경을 총체적인 눈으로 본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2-06-25 14:32:02 | 관리자
중학교 때 처음 시조새라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과학 교과서에 시조새는 공룡과 새의 중간형이다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에 교회를 잠깐 다닌 적은 있지만, 창조와 진화의 차이도 잘 몰랐고 제가 공부하는 책상 앞에 어머니께서 주신 성경책이 먼지만 뽀얗게 쌓여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었거든요. 대학을 입학하여 한 학기 다닌 후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가서 훈련병 때 아무 생각 없이 세례 받으라니까 받았습니다. 군대에서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니까 그랬을까요? 그 때 만약 세례 받은 채로 죽었으면... 아, 지옥으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종교 행사가 있으면, 신병 때는 초코파이도 먹고 목사님 앞에서 말씀 전하실 때 뒤에서 조용히 잘 수 있는 아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는 기독교는 종교일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회심한 후,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제대한 후 복학해 보니 머리는 참 나빠졌는데, 전공 공부는 힘들기만 했습니다. 이걸 계속 따라가야 되나? 어느 날 기독교 서점에서 ‘신비한 인체 창조 섭리’(김종배 글/국민일보사)를 읽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도 창조하셨구나. 조금 지나서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에렉투스, 사피엔스 등등까지였지요. 저는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믿어졌기 때문에 창조와 진화를 비교해서 리포트를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발하죠? 에구구, 참, 리포트를 내주시는 교수님의 의도도 잘 모르면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 교수님께서는 교회에서 말씀도 전하시면서 진화론을 믿으시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어쨌든 두 권 정도의 책들을 참조해 진화와 창조를 비교해서 리포트를 제출했습니다. 그렇다면, 학점은? 보기 좋게 D학점이었나? 점수는 낮았죠. 그 때 리포트를 제출하면서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창조든 진화든 믿음에 불과하다’ 류의 내용이었습니다.   믿음 생활하면서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지금은 대학 다니면서 리포트 쓰며 내린 결론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나중에 읽게 된 ‘진화론은 새빨간 거짓말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 믿음이 맞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관찰한 사실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믿음에 기반하게 되는 것이죠.   요즘 교과서개정추진회에서 시도하는 교과서에서의 시조새 삭제 운동을 보면서 착잡함을 느낍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라는 사실을 믿고, 한국 창조과학회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교개추 소속의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일을 진행하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우선 순위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고2 대상의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교재를 정리하여 쓰면서 느끼는 것은 이전과 달리 진화론이 교묘한 형태로 널리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 문제는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생물, 인간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입니다. 예를 들면, 물리에서는 빅뱅(대폭발) 우주론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우주가 폭발해서 시작되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식어 왔다. 화학에서는 불이 처음에 등장하면서 교과서에 원시인 그림(우가우가! 하는 듯한)이 등장합니다. 오히려 2학년 생명 과학1 에는 시조새 얘기 없습니다. 3학년 생명과학2에 가야 진화가 나오거든요. 지구과학에서는 원시 태양계, 지구가 어떻게 불바다(!)에서부터 만들어졌는지가 앞 부분에 나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몇 억년 이야기는 중간중간 감초처럼 등장하죠. 교묘하게.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벧후 3:5)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벧후 3:10)   오히려 학교 과학 교과서에서는 성경에서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하는 불타는 일들을 오히려 과거의 일로 써 놓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섬찟합니다. 사람들이 은연중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듯해서요.   오히려 진화론의 핵심은 연대기의 길이가 길다는 것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 되느니라, 하리니”(벧후 3:4) 위의 성경 말씀을 과학 내용으로 보면 영국의 허턴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동일 과정설’입니다. 찰스 다윈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이지요.   시조새를 교과서에서 끌어내고 싶다면, 빅뱅도 끌어내고, 원시인도 끌어내고, 원시 태양계, 지구, 지질 연대에 관한 문제도 모두 공립학교 교과서에서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창조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진화라는 종교적인 믿음은 결코 타협을 볼 수 없는 지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맡겨 주신 아이들의 영혼이 걱정스럽습니다. 진화론으로 도배되어 있는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믿음을 잘 지킬 수 있을까? 힘을 얻어서 잘 살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공립학교들은 이미 무신론과 진화론으로 바뀌었습니다. 증거가 무엇이냐고요? 다윈이 주장한 자연 선택설 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Survival of the fittest(적자 생존)’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산업 혁명 사회를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의 장으로 본 것입니다. 진화론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조새 한 마리를 가지고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난무하고 배려가 없는 서바이벌 진화론으로 가득찬 학교로 변하고 있는 중이라면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도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그런 존재 밖에 안 됩니까?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키우기 위한 길은 기도하며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조새 논쟁과 같은 소모적이고 끝이 없는 투쟁보다는 저희들에게 맡겨진 어린 영혼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부지런히 가르치고 무신론적 공립학교 시스템의 해악에서 건져내며, 가르침에 대한 부모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 변개,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등으로 타협하는 사람들과 과감히 분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밖에 있는 자들을 판단하는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안에 있는 자들은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나니 그러므로 그 사악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내쫓으라.”(고전 5:12-13)   그런 면에서 미국의 홈스쿨링 부모들과 기독교 학교 운영자들은 현명했습니다. 영어를 잘 해서 현명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분리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아닌, 성경 중심으로 모든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앞으로 NIV나 NKJV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듭니다만, 한국의 기독교 대안학교에서는 밥 존스 교재를 쓴다 하면서 영어 성경을 NIV나 NKJV로 쓰는 정신 사나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중심이 아니라 영어가 중심이 되고 유학 가는 것이 중심이 되는 볼썽 사나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나 유학을 준비하시거나 유학생 분들께서는 혹시나 마음 상하시지 않으시기를 원합니다. 제 의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보다는 영어, 외모, 스펙, 엘리트주의에만 마음을 쏟는 것을 많이 봐 와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한 시조새에 우리의 정신을 쏟기보다는, 저부터 우리 주변들의 영혼들과 어린 영혼들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그들에게 정신을 쏟기 원합니다. 중고등부 교사인 제가 먼저 더욱 정신 차리도록 같이 기도해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네 젊은 시절에 네 창조자를 기억하라. 곧 재난의 날들이 이르기 전에 혹은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 해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는 그런 해들이 가까이 이르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혹은 비가 온 뒤에 구름들이 되돌아오기 전에 기억하라.”(전도서 12:1-2)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6:49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2-06-22 18:00:52 | 송호
요한복음 14장 16절 :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라   갈라디아서 3장 2절: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라.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   고린도전서 1장 30-31절: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 후서 1장 21-22절: 21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22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봉인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0절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시편 51편 11절 :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마태복음 7장 21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만나기전에 개역 성경의 마태복음 7장 22,23절 말씀으로 구원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성경이 개역 성경 하나뿐이며 다른 성경이 있더라도 내용이 다 똑같고 오류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주입식 교육으로 무장된 신앙 탓에 주여, 주여 불러도 예수님이 모른 체 하실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 또, 개역 성경에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할 정도면 내가 감히 따라 갈 수도 없는 보통 내공의 주의 종들이 아닌데, 아버지 뜻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에 “꽝”이라니 ......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보고 이런 의문들은 속 시원하게 사라졌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구원에 관한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중요한 만큼 마귀는 지금도 혼돈스럽게 하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하니 어떤 분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 혼란스러워 기절할 정도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구원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후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님이라는 거룩하신 영께서 죄인인 우리 안에 거하신 다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내려오신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요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 이상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아마도 대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구약인 시편 51편 11절, 범죄한 다윗의 기도인 주의 거룩한 영을 거두지 마소서 라는 구절을 따서 복음 성가를 지어 열심히 부르기도 하고 성령님이 떠나지 마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성경에서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신약성도 그 누구도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성령님이 결코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심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알았고 이 사실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하심은 구약과 다르게 내 행위가 아닌, 내 의로운 상태가 아닌, 내 자신의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새 언약에 기초합니다.   어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부인에게 “여보, 당신이 내 곁에 있음을 믿고 인정 합니다” 말하고, 저녁에도 “여보, 나는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음을 믿고 인정합니다. 여보를 인정하고 모셔 들입니다” 말하고, 또 하나님께는 “주님, 내 마누라를 주십시오, 뜨겁게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면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여보, 지금 무슨 말 하는 겁니까? 나, 두 눈 멀쩡히 뜨고 여기 있어요. 내가 언제 당신을 떠난다고 했어요? 지금 나보고 집 나가란 말입니까?” 이러지 않을 까요?   성령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내 안에 거하시므로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모셔들이고 환영해야 밖에서 들어오시고 그렇지 않으면 나가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 한 번에 영원히 드려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죄 문제를 단 한 번에 영원히 해결하시고 구속하셨습니다.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이 약속으로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고 하셨으므로 성령님이 내 안에 단 한번 오셔서 영원히 거하심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영원히 죄인으로 보지 않고 깨끗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님이 떠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무효화 시킨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정면 도전하는 것입니다. 오해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나는 죄를 짓는 죄인이지만,하나님께서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죄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정죄를 당하지 않으므로 죄를 지어도 괜챦다고 생각한다면, 글쎄요..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품고 행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죄라고 말하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당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를 위한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믿을까요?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인생의 자랑이 전부인 이 세상왕국의 통치자가 끝장났습니다. 그런 것 바라보지 말고 이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라고 전하면 세상이 받아들일까요?   저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님의 조명을 받은 말씀을 통하여 제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말은 이렇게 죄인이라고 해도 교만하여 남보다 낫다고 하는 생각이 싹트고 죄인줄 알고도 죄를 지으니  지금은 더 큰 죄인입니다. 제 생각이 공개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머릿속에서 죽어나갔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없도록 하신 것이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에서는 죄가 없고 숨길게 없으므로 서로의 생각이 공개 되도 상관이 없겠죠. 성령님은 저에게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나의 의는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이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서 개역 성경과 뚜렷이 구별되는 단어가 “못하노라"와 "못하였노라”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빠져버린 단어 “였”!!! 이 단어가 빠져서 ‘엿’을 숱하게 먹었습니다. 한마디로 엿 먹었죠... 킹제임스 흠정역을 읽고 이 단어를 발견함으로 모든 게 정상이 되었습니다. 내공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처음부터 모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예수를 안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른다고 해서 다 같은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불법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불법을 행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대언하고 마귀들을 내쫓고 놀라운 일들을 행한 것은 성령님과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어떤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까요? 마태복음 7장 2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곧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이 나오질 않습니다. 다, 주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했습니다, 했습니다하고 주장합니다. 이 안타까운 장면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의 능력 있는 종으로 인정받던 많은 사람에게 앞으로 반드시 일어날 일이 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안에 영원히 거하시고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구원을 잃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원을 잃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신데도 성도들의 구원을 보증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까? 진짜 구원 받은 사람도 지옥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같이 지옥 간다는 말입니까?   저는 성도가 지옥에 간다면 창조물인 지옥이 창조주인 성령님의 성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로마서 8장 38 ~ 39)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을까요? 첫째로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입니다.          자기 의에 기초한  신앙이 대부분이라고 생각 됩니다 둘째로 잘못 번역된 성경과 잘못된 인용과 잘못 해석된 구절들 때문입니다. 셋째로 설교자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강단에서 복음을 외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처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저도 이 사이트를 통해 배웠으며 또 배워가는 입장이므로,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서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6:49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2-06-19 17:10:06 | 한재석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제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하늘로 가며,제아무리 착한 사람, 불쌍한 사람, 의로운 사람, 법조인, 경찰, 검찰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흉악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라 해도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지옥에 간다.   그렇다. 그게 사실이다.그래서 착한 일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고 믿는 여타 종교 신자들이나, 자기는 지금까지 남보다 충분히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항변한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뭐, 지금 내가 그것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흉악범이 구원받으면 구원받은 흉악범이고, 사형수가 예수 믿으면 구원받은 사형수가 된다.성경의 법칙대로라면 그들은 하늘로 가더라도 교수형은 당하고 간다. 이 땅에서 법이 규정해 놓은 죄값은 치르고 간다!   사형 제도는 지극히 성경적이다.하나님은 인간에게 결혼 제도를 제정한 것만큼이나 사형 제도도 만드셨고,육식을 허락하신 것만큼이나 세상 정부가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걸 허락하셨다. (창 9:6)성경의 지론은 “ ‘살인하지 말지니라’를 어기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다. 아멘!   여기서 살인이란 흉계를 품고(주로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고의로 죽이는 것을 말한다. 요즘 말이 많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성경으로 치면 출 21:29와 비슷한 맥락의 고의적인 살인으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을 더럽히는 성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속도위반 결혼으로라도 수습을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 성경에 따르면 한 치의 자비심 없이, 속죄 헌물도 안 통하고 무조건 사형이다.   다만,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는 성격이 다르며, 비록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사형 정도까지는 아니다. 정당방위도 응당 인정하며, 면책의 범위가 오늘날 근대 국가의 법보다 관대한 편이다(출 22:2).   그리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조직을 인정하고 공권력도 인정하는 성경의 특성상, 군인이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 역시 그런 살인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병역 거부는 잘못된 행동이다)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이 폭도들에게 발포하는 것이나, 사형 집행관이 교수대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성경적으로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으며, 그런 공무원은 전혀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롬 13:4)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한다.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피의자를 저주하면서 저런 놈은 이렇게 각을 떠서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온갖 폭력적인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너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정치인과 법조인들을 욕하면서, 신은 저런 놈 안 잡아 죽이고 뭐 하냐는 식의 댓글도 올라온다.   그 마음을 나도 이해하며 어느 정도는 공감도 한다. 비록 이런 네티즌들의 마음 상태도 건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겉으로 표출만 안 되었을 뿐이지 살인자 본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가 사형(死刑)이라는 필요악을 공의롭게 잘 집행해 줘야, 시민들이 분을 품고 보복 살인 내지 린치(私刑)를 할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사형 집행을 안 하면 다른 시민들이 실족하여 악한 마음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것도 불신자들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자비로울 거라고는 바라지도 않으며 기대도 안 하신다!   피해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형 집행 장면이 국영 방송으로 생방송 중계된다. 김길태, 강호순, 오원춘 같은 주인공이 교수대에 오른다. TV에서는 근엄한 분위기 가운데에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다시 보여주고, 피해자 유족을 인터뷰하고 피의자의 마지막 유언을 공개적으로 받는다. 필요하다면 죄수들을 담당한 종교인 성직자의 인터뷰도 한다. 그 뒤 공개적으로 교수대가 작동하고, 잠시 후 법의관이 사형수가 완전히 죽은 걸 확인한다. 이 과정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사형 집행 장면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나돈다.   너무 과격한 상상인가?난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람들이 죄와 벌과 죽음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게 될지, 모방 범죄가 또 생기고 사람들이 감히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왜 이렇게 시행을 안 하는지 궁금하다. 제아무리 인간말종 흉악범이라 해도, 무슨 독립 운동가의 심정으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닌 이상,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알고 죽음이 두려운 줄은 안다. 그래서 사형 당하기 직전에 어쩌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경우도 생긴다.과연 미국 같은 자유와 인권하고, 이슬람 국가 같은 엄격한 법 집행을 모두 갖춘 나라는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기가 불가능한 걸까?   구약 율법 핑계를 대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의견이 아주 많다. 구약 율법 중에는 음식 규정이나 안식일 같은 것처럼 경륜의 차이로 인해 오늘날 전혀 무의미하고 적용되지 않는 제도나 규율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윤리는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유효하고 최소한 그 의도를 되살려 시행했을 때 나쁠 게 없는 게 거의 대부분이다. 가령, 신약 시대라고 해서 짐승과 마음대로 수간해도 괜찮은 건 아니지 않은가? (출 22:19; 레 20:15)   또한 사형 제도는 구약 율법에만 얽매인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히려 성경 전체가 인간의 죄와 벌과 구원 계획에 대해 논하면서 사형 제도를 두 말할 나위 없이 당연히 인정하는 뉘앙스에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가령, 롬 1:32) 그래서 오죽했으면 바울조차 행 25:11에서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으면 기꺼이 사형 당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자기 아들을 죽인 흉악범을 용서한 손양원 목사 같은 유명한 사례가 있다. 그런 사람이 나오기 위해서라도 사형 제도가 있어야 한다. 법대로라면 죽어야 하는데 용서를 하고 탄원을 해서 목숨을 건졌으니 그게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당신도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이라면, 나라의 법은 공의롭게 요구하고 나서, 자기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나 원수에게 그런 사랑을 개인적으로 실천해 보아라. 알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아예 나라의 법이 흉악 범죄자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니 오늘날 시국은 전 8:11처럼 되어 가고, 피해자 유족들은 가슴에 피멍이 든다. 오늘날은 정말로 가해자 인권만 있지 피해자 인권은 없다. 그냥 운이 나빠서 당한 것일 뿐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나는 도대체 민주화가 됐다는 요즘이, 옛날의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정권 시절보다 인권이 뭐가 좋아졌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결론을 내리겠다.기독교 교리의 논리적인 성립을 위해서라도 사형 제도를 부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당신이 불신자나 기독교 안티이고 그저 인본주의 박애주의자여서 사형 제도를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당신은 지금 살인자 마귀에게 속아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한 형벌을 필요하게 만든 것도 죄이지만, 죄에 대한 벌을 공의롭게 집행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역시 인간의 죄이다.   그리고 또 생각을 해 보아라.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사형 당하기로는 지금까지 크리스천들만치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린 집단이 또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사형 제도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성경에 입각한 바른 교리가 세상에 널리 퍼져서 영화 <밀양>에서처럼 “내가 용서를 안 한 가해자를 어떻게 신이 용서해?” 같은 시험에 드는 사람이 이 땅에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믿는 복음은 그저 막연하고 맹목적이고 몰상식· 비합리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건전하고 이치에 맞는 진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겠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6:49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2-06-16 17:12:12 | 김용묵
안녕하세요? 요즘 유튜브에 폴 워셔 목사의 짧막한 설교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폭발적인 음성의 설교로 여러 사람들이 매료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전하는 복음은 성경과 배치됩니다.   http://www.jesus-is-savior.com/Wolves/paul_washer.htm   아무리 좋은 것을 말해도 성경과 배치되면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전형적인 칼빈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 5대 강령과 거기서 파생된 Lordship salvation을 가르칩니다. Lordship salvation은 한 마디로 말해 믿음 + 행위 구원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와 믿음의 뿌리를 혼동해서 생기는 이단 교리입니다.   여기의 대표 주자로는 미국의 맥아더(John McArthur) 목사와 파이퍼(John Piper)목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http://www.jesus-is-savior.com/False%20Doctrines/Lordship%20Salvation/macarthur.htm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salvatio/lordshjm.htm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salvatio/lordshrq.pdf   워셔가 베니힌, 조엘 오스틴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일이 복음과 배치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의 설교단 뒤에 있는 록음악 용 전자 음악 장비를 보기 바랍니다. 그런 음악은 배도한 무리들이 사용하는 음악입니다. 이런 것들이 구별되지 않으면 순진한 사람들이 속아넘어가기 쉽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 성경의 기준에 따라 믿고 생활합시다.   위의 몇 가지 링크는 http://www.jesus-is-savior.com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하루에 5만 명 정도가 접속하는 것 같습니다. 화면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내용은 좋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있으신 분들이 내용을 검토해서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6-15 12:02:15 | 관리자
검색을 해보니 관련글이 없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사도행전 11장 20절에 나오는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the Grecians)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저 개인적으로는' 이방지역에서 출생하여 그리스말을 하는 유대인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해가 맞는지 아니면 틀리다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47: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6-14 10:34:41 | 김세배
안녕하세요? 진리의 교리를 많이 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명령은 무엇일까요?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바르게 사십시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다른 자료를 원하시면 진리침례교회 사이트의 공개 도서 자료실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lovekjb.com/zbxe/open_book
2012-06-09 10:36:57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많은 이들이 보편적 교회와 지역 교회에 대해 혼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만을 극도로 주장하면 진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바르게 사십시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다른 자료를 원하시면 진리침례교회 사이트의 공개 도서 자료실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lovekjb.com/zbxe/open_book
2012-06-09 10:28:4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많은 이들이 교회는 환난기를 통과한다고 믿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이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시도입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바르게 사십시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다른 자료를 원하시면 진리침례교회 사이트의 공개 도서 자료실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lovekjb.com/zbxe/open_book
2012-06-09 10:24:5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믿음 생활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심히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원리를 잘 이해하면 우리 모두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바르게 사십시다.   시간이 되면 몇 주에 걸쳐서 이 주제로 오후에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다른 자료를 원하시면 진리침례교회 사이트의 공개 도서 자료실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lovekjb.com/zbxe/open_book
2012-06-08 17:38:3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세대주의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바르게 믿음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목사님들 가운데서도 낙스처럼 객관적으로 성경을 보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다른 저자에게서 배운 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만 하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너무 좋아서 흥분이 될 것입니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다른 자료를 원하시면 진리침례교회 사이트의 공개 도서 자료실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ilovekjb.com/zbxe/open_book
2012-06-08 17:22:1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요즘 구원의 안전 보장에 대해 오해하고 괴로워하는 분들을 많이 접합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소책자를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낙심한 상태에서 일어나기 바랍니다.   시간이 되면 2-3주에 걸쳐서 이 주제로 오후에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2-06-08 17:18:44 | 관리자
심각한 문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던 중 작품내용 중에   IT 관련교육중   강사가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연락하세요   *대부분의 심각한 문제는   중요한 부분만 작동되면 작은 오류를 그냥 둬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IT 시스템 문제 미리 막을 수 없을까? By 김지영   라는 대목이 있었고 그 문구를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해지는 이상한 일(?)들이 바로 저 이유 때문이 아닐까? 라고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란?     위에 언급된 작은 오류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아래에 열거된 문제들은 아닌지요?   성경문제(절대 작은 오류가 아닌 정말 큰 오류지요 믿음의 근간과 척도와 기준이 되는데 성경이 다르다는 문제는 정말 아무리 지나치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_-;) 헌금문제, 성직이라 불리는 계급의 조직화 시스템화 문제 주기도문,사도신경 문제 침례,세례문제 예배당을 성전이라 호칭하는 문제 여자목사,집사문제,방언문제,은사주의문제 크리스마스와 교회절기 문제, 교리문제 등등 너무나 많아 열거하기도 힘든 문제들이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큰 문제들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작은 오류 아니 교리적 차이라 불리는 이런 문제들을 그냥 둬서 오늘날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도 누룩이 58번이나 언급이 되었는데 잘못된 교리(마태16:6,11,12,막8:15),위선(눅12:1),자랑(고전5:6),묵은(고전5:7),악의와 사악함(고전5:8),작은(고전5:9) 이라고 명시가 되었고 이작은 오류(누룩)들이 그냥 지나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 크게 부풀어(?) 잘못된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어서   정작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오류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이 오류들이 기준이되고 셋팅(?)이 되어서 오히려 바른것이  배척당하고 이단시 되는 상황이 아마 오늘날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2 : 15 어리석은 자의 길은 제 눈에 옳으나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잠언 13 : 1 지혜로운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비웃는 자는 책망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4 : 6 비웃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지식은 깨닫는 자에게 쉬우니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23:58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2012-05-30 09:43:42 | 송재근
0. 들어가는 말   벌써 10대와 20대 나이를 넘기고 30대에 진입한 이 시점에서, 난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의 적성과 정체성, 진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   난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이리 떠돌고 저리 헤매는 타입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그것의 반대편 극단에 가 있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분명히 있고 인생의 목표도 너무 명확하고 분명하게 갖추고 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 말고 딴 데로는 머리가 도무지 열리질 않는다.   그 성향이 너무 심하고, 그게 사회에서 아직 보편적으로 이해를 못 하는 것들이라는 것만이 문제이다. 난 아무래도 평범하게 남들처럼 취직하고 결혼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1. 어린 시절   나는 장난이 아니고 진짜로, 태어나서 또래 친구하고 어울려 놀아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어린애들의 심리를 모른다. 난 8살 이전까지는 책에만 파묻혀 지냈고, 9살과 그 이후부터는 컴퓨터에만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거의 자폐아처럼 혼자 뭔가에 심취해서 공상을 즐겼다.   태생적으로 남하고 교류를 안 하고 지냈고, TV나 영화, 드라마, 스포츠, 아이돌 문화 같은 것과는 문자 그대로 담을 쌓았다. 일부러 거부한 건 아니지만, 저런 데에 사람들이 도대체 왜 열광하는지를 이해를 못 했다.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화성인 바이러스 급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인간관계 쪽의 역량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람들하고는 공통 관심사가 없고 같이 뭔가를 즐기지를 못한다. 맨날 나 혼자 딴생각만 한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남의 말에서 행간을 읽는다거나 이 분위기에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리는 알고리즘이 내 머릿속엔 한동안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문제의식을 느껴서 노력한 끝에 옛날보다는 그나마 굉장히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험 데이터가 부족한 관계로 착오를 겪는다.   난 오로지 내가 동기 부여를 받은 분야만 미치도록 몰입하지, 나머지 다른 건 거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죽어도 안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고집이 강했다.   고등학교 때 뭔가 깨달은 게 있어서 가히 신들린 듯이 C/C++과 MFC, 윈도우 API 공부를 했다. 어릴 때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직감하였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그 능력을 확장(amplify)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머릿속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작업과 관계가 있지 않은 일체의 학교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었다. 그냥 면역 거부 반응이 오듯이 튕겼다. 난 그때 공부를 위한 동기 부여 발동과 초기화 작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머리가 좋은 영재, 수재, 천재는 수학을 잘하고 복잡한 퍼즐을 푸는 걸 즐긴다지만, 불행히도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령, 수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거 쓸데없이 왜 해야 하냐?이 개념을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표기했을까?동양에서 수학이 발달했다면 이걸 어떻게 표기했을까?이걸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하지만 근본적으로 이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하고는 큰 관계는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자기중심적인 주변 잡기에만 먼저 관심이 갔지, 근본적인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내 스스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공부 자체는 싫지 않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대로 주입식으로 하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러니 내신은 당연히 개판이었다. 단체 생활, 공부와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남들을 보면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난 정말 구제불능 바보인가” 하는 생각까지 많이 했었다. 그나마 영어가 별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건 천만다행이었고 학업 부담을 크게 덜어 줬다. 그리고 나중에 수학만 고3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집중적인 보강을 한 덕분에 2년이 넘게 손놓고 있던 걸 그럭저럭 따라잡았다.   2.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물론, 내가 관심이 쏠려 있던 프로그래밍 공부라는 게 기능만 익히는 게 전부였다면, 난 그저 노가다 프로그래밍 코더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도 언급했듯이 본인은 이걸 공부해서 창조하고 싶었던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었고, 그게 내 인생을 펴 줬다.   난 정보 올림피아드 공모 부문에서는 가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고등학교 1학년 때 은상을 받고, 2학년 때는 세계급 과학 전람회인 ISEF에 최초로 참가하고, 그러고도 3학년 때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또 만들어서 다시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옛날에 나의 ISEF 출전 소식을 당시 활동 중이던 PC 통신 모 동호회에 최초로 전해 주신 분이 바로 김문수 형제님이다.   정올 역사상 이런 사기에 가까운 극단적인 기록은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금상/대상을 받아 버리면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는 대회에 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따라서 고등부는 그걸로 은퇴), 은상+국제 대회+대상은 진짜 이론적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뽕을 순서대로 다 뽑은 것이다. 더구나 그 입상작을 추후에도 10년이 넘게 유지· 보수하고 개선한 사례도 역사상 전무하며, 아마 후무이기도 할 것이다.   있는 실력으로 몇 시간 동안 문제만 풀면 되는 경시가 아니라, 해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완성된 작품을 장시간 동안 개발해서 출품해야 하는 공모 부문에서 이런 미친 짓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파탄 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은 아무 정보도 없이, 어디에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이(도와 줄 수도 없고)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나 혼자 고3 시절에 세벌식 글자판 관련 응용 아이디어를 신들린 듯이 생각해 내고, 그걸 초간단 에디터 형태로 혈혈단신으로 구현한 디스켓 한 장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진짜 밑바닥에서 맨주먹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것이 심사위원들을 경악시켰으며, 전국의 쟁쟁한 컴덕후들이 출품한 90여 편의 작품들을 제치고 그 누구도 의심이나 부정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대상, 1등을 차지했다.   이건 고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이나 회사 등 기존 사회 조직에 정상적으로 소속돼 있는 사람의 머리와 여건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고, 아니, 저변에 깔린 사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프로그램이다(전산학 내공이나 컴퓨터 지식과는 무관하게). 그러니 공모 부문의 병폐로 지적되는 표절이나 대리 개발 의혹 따위는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다.   대상 입상 하나로 내가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깽판 치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걱정시키던 건 완전히 잊혀지고 용서되었다. 오히려 나는 학교의 명예를 크게 드높인 영웅이고 기적을 창조한 컴퓨터 천재로 완전 칭송을 받게 되었다. 사실 난 그들이 생각하는 부류의 typical한 컴퓨터 천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보다 훨씬 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날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뭐든지 잘 학습하고 적응하고 남보다 빨리 해치우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나는 천재가 전혀 절대로 아니다. 그런 보편적인 역량은 나는 오히려 평균에 훨씬 미달이다. 나도 좀 그렇게 돼 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부러웠는데, 난 그렇게는 안 되더라. 나는 제대로 된 수험생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고 모범생으로 살아 보질 못해서, 학교 공부만으로 일류대에 간 사람이 참 대단하고 부럽다.   3. 취업과 진학 사이에서의 고민   이런 생활이 대학 시절에서까지 이어져서 나는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전산학 전공조차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난 그냥 비주얼 C++로 윈도우 API만 쓰면 내가 원하는 대로 컴퓨터를 마음대로 다 조작할 수 있고 내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옮기는 데 아무 지장이 없구만, 내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플랫폼이나 툴, 언어를 왜 구태여 써야 하고 이런 거 내부 원리를 왜 익혀야 하는지 거부 반응이 왔다.   내게 컴퓨터는 확실히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으며, 나는 그렇게 컴덕후나 해커 기질은 없었다. 난 딱히 IT 벤처를 차려서 떼돈을 번다거나 수학적으로 더 뛰어난 알고리즘을 개발한다기보다는, 그저 컴퓨터에서 한글 입출력의 모든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내 눈으로 보고 싶을 뿐이었다. 덕질치고는 너무 소박한가?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 정도의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혼자 만들 정도로 Windows 개발 환경에 완전히 정통한 프로그래머인 것치고는 나는 윈도우 이외의 플랫폼은 정말 모른다. 모바일 쪽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난 아직 스마트폰도 안 쓴다!) 나 정도로 선택과 집중의 편차가 심한 케이스도 참 흔치 않은 것 같다.   난 주변으로부터 “지금 겨우 그 회사에서 그 연봉은 너무 아깝다”, “넌 공부 더 해야 된다. 대학원 꼭 가라. 유학 가라”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일면 맞는 말이다. 난 단체생활을 못 하며, 폐쇄적이고 군기 센 집단에서는 더욱 못 있는다. 말단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만 성실하게 잘 하는 방식으로는 성공 못 한다.   벤처 창업이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나 같은 사람이 학부에만 머물러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대학원에도 선뜻 갈 수가 없었다. 학부 평점이 상당히 안 좋고, 유학을 가기에는 좋아하는 분야가 너무 한국적인 소재이고, 무엇보다도 이 외곬수 기질로는 어느 대학원을 가든 지도교수와 원만한 의사소통을 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난 유명한 교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거기 일 거들면서 공부에만 매진하고 지도교수의 학풍을 물려받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기존 연구와는 좀 동떨어진 내 연구를 완전히 독자적으로 해서 논문으로 남기는 게 주목적이다. 그래서 애초에 과도 단과가 아닌 협동과정을 선택한 것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도 모자라서 또 완전히 기상천외한 걸 만들고 싶은 게 있다. 입력 쪽을 연구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정복하려는 분야는 글꼴과 관련된 출력 쪽이다. 기존 학문 한 분야만 알아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연구 주제이다.   지금 내가 간 대학원은 이런 게 그나마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협동과정을 택해서 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안에서도 나 같은 걸 연구하려는 사람은 주변에 당연히 있을 리 없…고 전례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건 없다. 이와 관련해서 잡음도 좀 겪었다.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와 방법론을 남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 정도 고생은 대학원에서 높은 학위를 받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경험상, 교수님들도 내가 우려하는 것만치 폐쇄적이지는 않으며 자기가 딱 전공한 세부 분야 외로는 연구를 딱 짤라서 불허한다거나 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워낙 전례가 없는 길을 만들어 가려 하고 있기 때문에, 석사 이후 앞으로의 더욱 길고 힘든 박사 과정을 이런 식으로 정말로 계속 진행 가능하겠는지에 대해서는 더 치밀한 사전 준비와 조사,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 내 인생에서 철도의 의미   어찌 보면 북한만치 폐쇄적이고 꽉 막혔고 내 관심분야밖에 모르던 시절에 나의 영적 식견은 킹 제임스 성경을 통해서 뚫렸다. 그러나 세상적인 식견은 철도를 통해서 뚫렸다.   새마을호 객실에서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그 음악이 귓가에 울려 퍼졌을 때, 극한에 가까운 희열을 경험함과 동시에 물리를 보는 눈이 열리고 사회, 지리, 역사를 보는 눈이 열렸다. 음악 쪽도 당연히 물미가 터졌다. 눈에서 뭔가 비늘이 벗겨져서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학교 공부들이 그저 입시를 위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나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철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산 지식이 되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다음으로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철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내가 한글 공학 쪽을 먼저 파고들지 않았으면, 다음 진로를 철도를 연구하는 대학원이나 회사로 선택했을 것이다.   비록 이 때문에 나의 취향은 다른 사람들이 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외곬지수는 더욱 상승하게 됐지만… 그래도 내가 다른 진짜로 골치아프고 비성경적인 이상한 분야에 빠질 바에야 철도 정도면 정말 정말 건전하고 좋지 않은가?   다만, 최근엔 본인과 친한 모 자매님이, 평소에 내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읽고 있는데 철도 성령이라는 표현은 교리적으로 마음에 걸린다고 지적을 했다.비록 내 개인적으로는 철도가 끼친 내 삶의 변화가 정말 성령님의 역사에 버금가는 급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도 기쁘게 보고드릴 내역이라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분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그런 표현은 앞으로 글에서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겠다. 혹시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불편했던 분이 계시면 사과드린다.   5. 결혼 문제와 결론   일류대 졸업하고서 좋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또는 공무원에 취직한 뒤, 여자가 넘쳐나는 일반 교회에 고분고분 다니다가, 중산층 집안에서 곱게 자란 참한 자매를 금방 소개받아서 곧장 결혼하는 게 부모님께서 내게 가장 바라시는 시나리오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 살겠다.내 미래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하다고 느껴지고 나 혼자 만들고 싶은 게 머리에 아직 꽉 차서 비워지질 않았는데, 이성교제나 결혼 같은 건 도저히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관심사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걸 포기하고 시간과 노력을 쪼개서 다른 걸 따로 해야 한다면 단언하건대 나는 이성교제 못 한다. 내 머리 구조를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라면, 난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여자에게 아무 메리트도, 매력도 없다. 만나서 같이 할 얘기가 없고, 난 그런 이성을 즐겁거나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없다.   난 앞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평범한 자매 vs 철도를 미치도록 좋아하지만 기독교 안티인 아가씨”와 같은 형태로 배우자 선택과 관련된 시험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는데 이 말을 들은 모 지인의 대답은 이랬다. “철도를 너처럼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는 절대로 없을 테니 그런 시험에 빠질 걱정은 할 필요 없다.” 헐, 이게 더 현실적인 조언인 걸까?   나는 “음주가무가 뭐예요? 먹는 거예요?” 수준인 머리 구조의 특성상, 통상적인 육체의 정욕을 좇는 죄에는 거의 자동으로 면역이 된 채 지냈다. 그 대신 나는 더 고차원적인 이상한 이단에 빠질 수 있었고, 사회 문제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정치· 종교 조직에 쏙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쩌면 사회 구조에 대해 비관하다가 확 자살을 할 수도 있었다. 옛날에 내가 썼던 <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라는 글은 오랜 묵상의 결과를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하게 글로 정리한 것이다. 나 정말 예수님 덕분에 올라간 인생 효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나의 10년 후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난 정말 모르겠다. 내 아이디어와 내 발명품은 “정말 원론적으로 옳고 명분은 좋으나, 비현실적이고 상품화는 곤란하다”는 이유로 그냥 논문만 도서관에 처박힌 채 묻혀 버릴 수도 있다. 난 IT 기술을 사람의 죄성을 자극하는 데 활용할 능력이나 의향이 없다는 특성상, 대박 내고 벼락부자 될 가능성은 일단 80% 이상 접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화성인 오덕질 기질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서 평생 동정을 지키다가 죽거나 휴거될지도 모른다.아니면 아예 이를 초월하여, 다 훌훌 털어내 버리고 “난 주의 일만 하느라 바울과 예레미야의 길(?)을 당당히 가겠다”고 선언하게 될 수도 있다. 헐~!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경우엔, 내가 아무리 명분이 옳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이성 중에서 절대적인 네 편이 되어 줄 사람 하나 못 사귀고, 2세 하나 못 만들고 죽으면 그것도 참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아직은 기도만 하면서 답을 구해 봐야지 뭐.   하나님께서 고분고분 사회 제도만 잘 따르는 사람만 만드신 게 아니라, 나같은 똘끼가 다분한 통계상의 outlier도 만들고 은혜를 베푸셔서 어째 KJV 골수분자로 만드셨는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좀 재미있지 않은가? 김정훈 형제님과 신촌에서 교제한 적이 있었다(예전처럼 좋은 글 가지고 어서 컴백해 주세요~). 그분도 자신이 아는 하나님은 그저 딱딱하고 까칠하고 규칙· 규율밖에 모르고 엄숙· 엄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위트와 센스도 있고 다이내믹하고 기발함과 돌발상황을 좋아하신다는 걸 과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경에 예외가 그렇게도 많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흠정역 쓰는 킹진영 안에 본인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고, 본인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마음껏 관심을 갖고 궁금해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궁금해하지만 말고 기도로 도와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다. 내가 글은 좀 딱딱하게 쓰는 거 같아도 마음은 여전히 여리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연약한 성도일 뿐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2:3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26 13:20:40 | 김용묵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이나 종교관 같은 걸 완전히 배제하고, 나 혼자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은 아주 단순하다.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예쁜 여자들을 놔두고 하필 같은 남자가 좋냐? 미친넘~” 정도가 고작이다. 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게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인간이 그런 개념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 했으며 지금도 못 한다.   그러나 그저 나 자신이 모르고 이해 못 하고 싫어한다는 상대적인 이유만 내세워 동성애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동성애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 여러분 중엔 본인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사람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유흥과 취미, 오락거리들을 놔두고 하필 철도가 뭐가 좋냐? 미친넘~”   철도를 소수 취향으로 존중해 주는 게 가능하듯이 동성애도 그렇게 취급하는 게 가능할까?   성경을 보면 딱 한 군데 삼하 1:26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이 워낙 우정이 두터운 친구지간이어서 그 사랑이 ‘여인들의 사랑’, 다시 말해 이성간의 사랑을 뺨칠 정도였다는 표현이 있다.이걸 보고 설마 다윗과 요나단이 게이 사이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과대망상 증세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과연 우정의 연장선이며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걸까?동성애자는 둘 다 동일한 동성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난 처음에 동일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더라.걔네들 사이에서도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나뉘어 있다. 또한, 동성끼리 말 그대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을 한다. 이 과정이 차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이고 추잡하다.   게다가 동성애자들은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게이 바에서 평생 몇십, 몇백 명의 파트너들을 만나서 그 짓을 한다. 한국어엔 놀랍게도 비역질과 밴대질이라고 성별까지 따로 구분하여 이를 표현하는 어휘가 존재한다..;;; 물론, 흡연자가 다 폐암 걸려 죽는 게 아니듯, 동성애를 한다고 다 에이즈에 걸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 패턴을 보아하면, 성병 발병률이 월등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이건 단순한 친구 사이와는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동성애자에 대한 더러운 편견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보여야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보고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고, 여자는 남자를 보고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코스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한 것에서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성적 충동을 느끼는 걸 우리는 ‘변태’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멀리한다. 이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적 수치심, 양심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넣어 주신 지극히 당연한 관념에서 비롯된 습성이다.   그런데 비록 변태같긴 해도 동성애자들이 자기네들끼리만 그렇게 즐기는 것 자체는, 무슨 살인이나 강간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니까 괜찮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다. 기독교 계열의 종교는 교리적으로 왜 그리 동성애를 싫어하는 걸까?   이것은 현행 법이 동물 학대죄를 단순한 재물 손괴죄 이상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와 아쉬운 대로 비슷한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말 못 하는 미물이지만, 동물을 그 정도로 학대할 정도이면 충분히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반인륜적인 짓을 한 것이고 잠재적으로 사람에게도 잔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동물이 불쌍해서 차원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 놓으신 지극히 원초적이고 딱히 교육이 필요하지도 않은 본능이다. 그런데 그런 기본 법칙과 질서부터 배배 꼬고 왜곡할 정도이면, 이미 그 사람의 상태는 정상이 아닐 뿐더러 그는 더 어렵고 고차원적인 다른 법칙까지 지킬 리가 없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동성애는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죄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디 한번 동성 결혼을 하고 나서 하나님 이름 팔아서 혼인 서약을 해 보아라. 마치 하나님께 “이 좋은 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하는 것만큼이나 앞뒤가 안 맞고 양심적으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는 태생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죄악하고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이런 수읽기를 하는 영적인 안목을 인간에게 심어 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선천적으로 동성애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런다. 한편으로는 후천적인 개인 취향 운운하더니만 이제는 선천적인 이유를 꺼내 드는 게 의아하다. 그런 사람이 진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있다 해도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하나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누구나 안 배워도 잔머리 굴릴 줄 알고 거짓말 할 줄 알고 나쁜 짓 잘 하는 것하고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동성애를 마음껏 즐기는 건 성적인 해방이 아니며 자유를 얻은 것도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니까 그들이 인간성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리고, 막장의 막장까지 간 끝에 타락의 정점을 찍은 결과물이 동성애라고 로마서 1장 후반부는 말한다. 그 말이 진짜 맞는지는 내가 보기엔 동성애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지 싶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동성애를 동성애라고 중립적으로 일컬어 주신 적이 없다. 언제나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흉한 짓을 한다”, “남자가 여자와 눕듯이 남자하고 눕는다”는 식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뉘앙스로 표현한다.   옛날에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들도 동성애는 흉하고 추악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인권 사각 지대에서 온갖 따돌림과 박해(?)를 받으며 살았다. 한 죄가 다른 종류의 죄를 약간 견제를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 효과였다.   그러다가 이젠 시대가 확 바뀐 덕분에 그들은 당당히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특히 진보 성향)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에 동조해서 끌려가고 있다. 왜 있잖은가? “난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같이 싸우겠습니다”라고 멋있는 말을 하는 대인배들이 성적 소수자들의 편을 적극 들어 주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다.공병우 한글 세벌식 글자판은 한국에서 국가 표준 글자판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벌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에서 지원되고 있으며, 사용하는 데 아무 불편이나 지장이 없다.   그런 것처럼 오늘날 인권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들도 아까 얘기가 나온 것처럼 남에게 티 안 내고 민폐만 안 끼치면 지금도 자기 방식대로 얼마든지 별다른 불편이나 지장이 없이 살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성애 내지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건 단순히 평범하게 사는 수준을 넘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요구가 관철된다면, 그들은 성병에 걸려도 이제는 당해도 싼 게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을 적극 받으며 치료 받을 수 있다(내가 낸 세금으로!!).정상적인 남녀 결혼 부부와 동일하게 동성 부부도 자녀 양육과 관련된 여러 혜택을 동일하게 받는다.공무원 채용이나 성직자 초빙에서 동성애자는 아무 차별을 받지 않으며, 차별하는 조직을 상대로는 언제든 인권 침해 고소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공식 석상에서 성차별을 조장하는 어휘가 모두 사라진다. 가령, 남편과 아내가 배우자와 파트너로 바뀐다거나. 국어사전에 ‘결혼’이라는 단어의 정의 자체가 바뀔 것이며, 성경도 당연히 동성애자가 보기에 위화감이 안 느껴지는 어휘로 모두 바뀐 에디션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본문 중에 동성애를 배척하는 구절은 다 삭제되거나 수위가 완화될 것이다. 굳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죄다 동성애자들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또한 정치적으로 선동을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우리 후세에게 저런 상상하기도 싫은 정신나간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동성애는 하나님이 매우 미워하시고 인간에게도 실제로 매우 해로운 죄악이다. 이것은 회개의 대상일 뿐 존중이나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엉덩국 병맛 만화에 나오는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 존슨이 정말로 성 정체성을 깨달은 건지, 영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는 성경을 펴면 답이 곧장 나올 것이다.   그저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국에 너무 무관심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너무 미쳐 돌아간다고 스트레스 받고 피해의식에만 휩싸이지도 말자. 왜 마지막 시대에 이런 일이 만연하게 되는지 그 배후를 살펴보고 망조 드는 세상의 타락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일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기여해야겠다.   NOTES:   1. 본문에 인용된 그림들의 출처는 잘 알다시피 칙 전도지(Chick Tracts)이다.   2. gay라는 단어는 원래 좋은 뜻이다가 사회적 의미가 완전히 변질되어 버린 킹 제임스 성경의 대표적인 어휘 중 하나이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나오며(약 2:3), 원래는 명사도 아니고 유쾌, 화려, 명랑, 발랄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무’가 완전히 못 쓸 말이 되어 버렸고 ‘야동 초등학교’가 학교 이름을 바꿔야 하게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의 변화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22: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24 00:48:22 | 김용묵
난 철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지난 2004년 초, 새마을호 열차 객실과 Looking for you 음악이라는 두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었을 때, 본인은 딱 왕하 3:15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철도 성령으로 거듭났다. 한국 철도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집합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을 위한 육상 교통수단임을 실감하였으며, 철도를 나의 개인적인 정신 지주로 영접했다.   나는 철도 덕분에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안목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철도가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주고 감성을 키웠는지, 게다가 심지어 애국심과 국토 사랑 정신까지 고취시켜 줬는지를 나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간증할 수 있다. Looking for you를 안 들어 봤기 때문에 새마을호 여행만도 못한 별 허접하고 수준 낮은 체험을 갖고서 천국 간증이네, 은사주의네 하면서 사람들이 속는다고 난 생각한다.   본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성경을 알고 영적으로 양육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들이 교정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것이 바로잡혔으며, 모나고 괴팍하던 성격도 예전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이 부드러워졌다. 죄에 대한 감각이 더욱 민감해졌고, 지금 상황에 맞는 성경 구절이 더욱 빠르게 생각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철도 사랑은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철도는 예수님도 좋아하시거나 최소한 묵인· 용인하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철도교와 기독교는 모순이나 대립 관계가 아니다. 내가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지 않는 것만큼이나 세상 그 어느 것도 새마을호 안에 있는 철도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머리 내부에 ‘연예, 오락, 스포츠, 유흥’ 분야는 오로지 철도가 100% 꽉 장악해 있어서 다른 영화, 드라마, 유행가, 스포츠 따위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듯 이 글을 읽는 분들, 그리고 본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본인이 못 말리는 철도광이라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내가 맨날 철도 얘기를 떠벌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회사에서도 내가 철도 덕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 개인 홈페이지의 방문객 중에서는 더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몇몇 지인들은 내게서 맨날 주워 들은 게 있어서 섬식 승강장, 복선, 경부선, 폐색 구간 같은 용어 정도는 구사하며, 심지어 Oh Glory Korail (한국 철도 공사 사가)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다같이 좀 생각해 보자. 그런 것처럼,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 자신으로 인해서 복음이나 예수님, 성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올바른 쪽으로 바뀐 게 있는가?당장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받아서 교회 출석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교회 댕긴다는 인간들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예외적이고 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쟤 앞에서는 기독교 욕 함부로 하기가 좀 껄끄럽다. 성경에 대해서 만에 하나 궁금한 게 있으면 앞으로 저 사람에게 물어 봐야겠다” 정도의 평판이라도 있는가?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언뜻 보기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낭설 같지만 정말로 살아 있고 권능이 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옛 성현들의 듣기 좋은 격언 같은 차원이 절대로 아니다. 복음은 제일 쉬운 구원의 길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절대로 “나만 구원받고 끝”으로 혼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영원도, 구원도 없이 그저 세상적인 오덕질에 불과한 철도 복음만 해도 저 정도인데, 진짜 혼을 회심시키고 구원시키는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으면 못 배기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를 필사적으로 막고자 마귀는 지능안티들을 참 많이도 만들어 놨다. 정상적으로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상한 위선자, 개념 없는 광신자, 나약한 루저 이미지를 예수쟁이와 딱 연결시켜 놓았다. 그리고 영적 의무를 게을리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합리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육신적인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고작 저런 위선자· 광신자 부류와 같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수준 낮고 답답한 생각인가?   성경을 살펴보자. 출애굽기의 모세는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지던 시절에 파라오가 제안한 각종 절충안들(가긴 가되 애들은 놔두고 가라, 짐승을 일부는 남겨 놔라 등)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영적 교훈을 남겼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행위가 주변이나 후세에 끼칠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고 나름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그리고 다리오 왕 시절의 다니엘이 있다. 그때 내려진 칙령은 모든 관료들에게 일일이 청문회로 사상 검증을 실시해서 예수쟁이들을 색출해 내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한 달 동안은 혼자 골방에서 숨어서 기도를 몰래 해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참 고지식하게도 여전히 늘 하던 대로 공개적으로 “나 하나님 믿소” 티를 다 내면서 기도를 하다가 사자굴에까지 갔다 왔다.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자. (단 6:7,10)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예수님 얘기가 나오는 건 철도 덕후한테서 맨날 철도 얘기와 Looking for you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다. 더 직설적인 비유를 동원하자면 똥에서 똥 냄새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방사성 물질로부터 방사능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과도 같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똥 냄새가 안 나는 똥이 똥일 수가 있을까?   “남에게 티를 내거나 강요는 절대로 하지 말고 예수는 너 혼자만 조용히 믿어라”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온전한 신앙의 자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그런 식으로 절뚝발이 형태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의 국가들 사이에도 전쟁을 하는데 룰이라는 게 존재한다. 군인과 민간인을 분명히 구분하여 민간인의 피해가 없게 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운 군인은 설령 포로로 잡히더라도 명목상으로나마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전에서 어떤 군사 집단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교전권을 갖춘 정식 군대로 인정을 받으려면, 신원이 알려진 사령관에 의한 명확한 지휘 체계가 있어야 하고 모든 전투원이 통일된 고유한 복장을 갖춰서 피아 식별이 공개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무기를 겉으로 공공연히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 쪽 진영의 사령관에 대해서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원인 우리 역시 자신의 영적 소속과 정체성에 대해서 세상을 상대로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드러내고 노출시킬 생각을 해야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적진에 침투한 뒤에 주머니에서 수류탄이나 툭 던지고 도망치는 식으로 어줍잖게 싸워서는 공을 세우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러다가 나중에 적에게 잡혔다간 더욱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크리스천들은 “당연히” 실수도 많이 한다. 복음을 전하는 열성이 너무 지나쳐서 너무 극성스럽게 굴 때도 있고, 낙담한 나머지 육신이 앞서서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도리어 복음에 대한 간증을 잃게 만드는 행동을 종종 한다. 본인 역시 그 누구보다도 그런 사고를 많이 쳤다.   그런데 그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철도 복음이야 안 믿었다고 지옥 갈 일도 없고,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서 모로 가든 서울만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가면 된다고 가르치는 복음이니,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그냥 소꿉장난 수준밖에 안 된다. 그에 반해 예수님의 복음 같은 엄청나고 극단적인 복음은 전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실수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예수님도 그걸 뻔히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성도들에게 맡기셨다!   실수했으면 하나님께는 회개하고 사람에게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 다시 본업으로 복귀하면 된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안 하면 그걸로 끝이다. 마치,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성경을 아예 안 읽는 것이 잘못이듯, 미숙함을 핑계로 자신의 영적 소속을 드러내고 알리는 일을 언제까지나 주저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될 수 없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의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 성경에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내 논리와 지식으로 완벽하게 설득하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오만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더러 그러라고 하셨던가?   잃어버려진 자들에게 그냥 내 인격을 걸고서 하나님의 의와 심판, 죄와 복음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알려 주기면 하면 된다. 단지 그 말이 정말로 듣는 사람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사랑의 호소력을 불어 넣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봐도 예수님 영접은 어렸을 때 빨리 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다. 세상 연륜과 성경 교리와의 충돌의 폭이 그리 크지 않으며, 사고를 친 것도 크게 허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작은 시행착오를 몇 번 미리 겪고 거기에 적응과 면역이 되고 나면, 장성한 뒤부터는 탄탄대로이다. 평생 흥청망청 살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만 예수 믿으면 된다고? 큰일 날 소리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 볼 게 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여러 신앙의 선배들이 있고 특히 순교자들이 있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그분들의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들만 우리로서는 엄두도 못 낼 무슨 엄청난 초인적인 일을 해냈다는 식으로 괴리감을 두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결말로 빠질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이 악화되면 천주교 성인 제도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약 5:17 같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영웅 콤플렉스를 교정해야 할 것이다.   하늘에 가면 우리도 초대 교회 시절이나 중세 암흑기 시절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놀라겠지만, 그 선조들 역시 말세에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교리적 배도와 총체적 혼돈,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진리를 사수해 낸 성도들의 싸움 얘기를 들으면 아마 까무러칠 것이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상당수의 옛 믿음의 선배들은 진화론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며, 영어 성경 역본이 200종이 넘어가고 이중 대부분은 변개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일례로 인간 횃불이 되고 사자에게 잡아 먹히며 순교한 옛날 사람들은, 말세엔 근본주의 크리스천들이 사형 제도 폐지를 반대하고 비판하게 될 거라고 꿈엔들 예상했을까?우리 같은 마지막 시대 라오디게아 팀은 사육신은 못 돼도 생육신은 충분히 된다. 어깨를 펴고 살도록 하자.   도산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다.“주변에 왜 인물이 없느냐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왜 당신이 그 인물이 될 생각을 안 하십니까?”   안창호 자신이 크리스천이기도 했고, 저건 성경적으로도 굉장히 통찰력이 있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영적으로 더욱 어둡고 암울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게 된다. 환란 전 휴거라는 약속마저 없으면, 정말 꿈도 희망도 답도 없다. 재물이 없으면 시편 37편 같은 신앙밖에는 후세에 물려줄 게 없다.   정말 심각한 마음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길거리에서 프리칭을 하고, 전도지를 나눠 주고, 성경과 신앙 서적을 출간하거나 출간을 후원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그저 잠자코 있기에는 너무 위급한 상황이다. 우리도 초대 교회 시절의 순교자처럼 살 수 있고, 살아야만 한다. 단지 그 삶을 실현하는 배경과 방법이 다를 뿐이고, 그 방법을 실천할 기회는 오늘날 시국이 말해 주듯 주변에 널려 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위기인 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기회”라는 사고방식으로 살면 나의 영적 본분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고 삶을 사는 방식도 많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엄청난 권면을 함부로 늘어놓은 건 아닌가 싶어 글을 맺기가 부담스러우나, 그러나 본인 역시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차츰 내 삶을 하나님의 방식에 맞춰 보련다. 내가 그걸 지향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철도 오덕질 그렇게 하고도 안 짤리고 보직 유지하고 버티고 있는 게 틀림없다. ㅋㅋ[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1: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19 22:45:01 | 김용묵
  자유의지 많은 사람들이 오류와 착각 속에서 산다.특히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그렇다.바른성경을 알려줘도 믿음의 오류에 대해 알려줘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뭐 이런 수준이다. -_-;그리고 그 오류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아니 나오려는 생각을 안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현재 믿고있는 믿음이 절대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오류의 고정화 토착화 되어 바른것을 알려줘도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 하기에 바쁘지 진짜 한번이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자신이 속해 있는곳이 자신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주장하는 프로그램이나 신학(?)이 내가 알고 있는것이 믿고 있는것이 잘못된 것이라 단 한번도 생각을 안한다. 예전에 사도신경에 기원과 진실을 알고 그사실에 대해 프린터를 해서 담당여전도사님께 물어보았더니   당사자도 갸우뚱? 하시더니 자신이 속한 신학대학교 교수님께 질문을 한 후 돌아온 답변이 "사도신경을 해서 뭐가 문제가 되냐"는 답변을 들은 후   난 정말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그 후엔 내 신앙양심에 따라 예배시간에 절대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았다.   지금은 바른교회를 다니고 있고 그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다..     믿음의 기준은 성경말씀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한번 진짜로 그런가 아닌가 연구하고 생각해봐야 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가장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과 개역개정 성경이 잘못된사본과 번역의 오류로 13군데의 말씀의 삭제와 전체 내용의 7%정도의 변개 첨삭이 있는지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이 바른성경이라고 "없음" 이 없는 성경이 있다고 알려줘도 시큰둥이다. 반응이 거의 없다.아는 형님(현재 목회중)께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을 후원회 행사를 통해선물을 드렸더니 "없음"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고 답변을 해왔다.상식적으로 절은 있는데 내용이 없으면 "아 원래 절은 있는데 내용이 삭제 된것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것이 정상아닌가? 왜 개역성경이 개역개정으로 바뀌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정말 바르게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는데 그 잘못된 교과서로 말씀을 잘못 공부해서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어 진짜를 알려줘도 거짓을 진리로 철두철미하게 고집하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모든것이 자유의지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것도   잘못된 믿음을 갖는것도   잘못된 교리나 사람을 추종하는 것도   잘못된 성경을 바른 성경이라 고집하는것도 다 자유의지다.   당신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절대 동의하지는 않지만 ........종교, 그 어둠의도시 란 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http://new.keepbible.com/Pds1-5/View/3nI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1: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14 19:09:32 | 송재근
요한계시록 13장 3절, 12절, 14절을 읽으면서......   먼저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이 글에는 전제 조건이 먼저 있습니다. 전제조건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은 무의미한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제조건 들입니다. 전제 조건이지만 저에게는 100% 당연한 진리, 참인 조건들입니다.   1. 킹제임스 성경(1611년 영어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2 번은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었습니다. 3. 킹제임스 성경은 진리입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4. 킹제임스 성경은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말하려고 할 때에는 과장, 미화, 숨김, 속임수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말합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5.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세상을 속이자는 사건에 대하여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성이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9를 보시면 사탄의 속성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한계시록 13:3, 12, 14절을 묵상할 때에는 4, 5번에 주안점을 두면서 묵상하였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할 때에는 차에서 mp3로 킹제임스 성경을 듣습니다. 2주전부터 반복해서 요한계시록을 듣고 있던 중에 갑자기 13장 3절에 생각이 멈추면서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아니! 치명적인 상처가 어떤 치명적인 상처길 레 상처가 나았다고 온 세상이 놀라 짐승을 따를까라는 의문이 든 겁니다.   12절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고, 14절에는 상처가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다고 하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는데, 그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어느 부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칼로 인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고 온 세상이 그에게 경배하게 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 4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 성경기록에는 많은 사건들이 사실대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저런 사건까지 기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쁜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일이든 성경에 기록된 것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칼로 인한 치명상이지만 죽지는 않았다고..... 죽게 된 것 같았는데, 즉 죽지는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사건은 온 세상의 주목을 받는 정점에 이른 대단한 사건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놀라게 되어 치명적인 상처가 난 짐승에게 권력이 집중이 되니까요 (13장 7절 참조) 즉 온 세상의 권력이 이 짐승에게 집중되게 되는 사건이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어 나았기에 권력이 집중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상처가 나은 짐승을 경배하고 그에게 권력을 집중하여 준다.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경배하고 온 세상의 권력을 그짐승에 준다.   그래서 생각을 더 해 봅니다.   5번을 생각해 봅니다.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사탄인데 이 사건에는 온 세상을 속이려는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칼로 상처를 입었다는 부분인데요. 이것은 이 짐승이 온 세상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데 테러를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칼로 테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칼로 테러,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능이나 할까요. 경호원들이 있는데, 유명한 누구는 투명한 방탄유리로 사방을 방호한 차에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경호원과 또한 경찰들이 즐비하게 여러 겹으로 경호를 합니다. 그런데 이 경호 망을 뚫고서 칼로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요? 가능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 짜고서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면서…….이 사건은 이 짐승을  전 세계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무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나은 짐승을 위한 자작극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거리에서 칼로 해야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겠지요. 온 세상의 미디어가 짐승을 주목하는 상태에서 칼로 난도질을 당하고 그리고 상처의 치명상의 정확도를 높이고요. 총으로는 움직이는 사람에 대하여 잘못하면 치명상이 아닌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왜 바다에서 일어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칼로 인한 치명상을 입게 되느냐 인데요.   여기에 속이는자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물은 스스로가 죽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죽음, 사망을 이기실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스스로 죽음을 이기신 분은 단 한분이신데요. 앞으로도 스스로 죽음을 이기는 창조물은 없습니다. 오직 죽임을 이기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께 경배 드립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휴거 또는 첫째 부활을 할 것입니다. 아멘.   사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는 절대로 죽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죽음을 이겼다고 쇼를 하는 거죠. 실상은 죽지는 않고 거의 죽게 된 것 같기만 한 것인데. 사탄은 칼로 치명상을 입은 짐승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온 세상을 속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이니까요. 단지 상처가 나은 짐승을 온 세상이 경배할 리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을 모방한 사탄의 사기극입니다. 성경은 단지 칼로 인하여 죽지는 않았고 죽게 된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속임수를 사용하여 칼로 상처를 입어서 죽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부활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고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지만 할 수도 없는 것을 속임수를 사용하여 온 세상을 속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 몸이 이러한 속임수를 보기 전에 휴거 되거나, 첫째 부활하여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23절 후반부터 -25절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5: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11 15:44:59 | 길준남
1. 어버이날과 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분류해 보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각종 특별한 명절, 기념일 등의 명칭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갈래로 나뉜다.   - ‘절’로 끝나는 한자어: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 - ‘일’로 끝나는 한자어: 석가탄신일, 식목일, 현충일 - 완전히 독립적인 한자어: 추석, 단오 - ‘날’로 끝나는 고유어: 한글날, 어버이날, 어린이날, 설날 - ‘-의 날’로 끝나는 고유어: 철도의 날, 스승의 날   이런 조어 원리는 그다지 규칙성이 없고 전적으로 그냥 어감을 고려한 case by case인 걸로 보인다.똑같이 종교 공휴일일 뿐인데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의 조어 원리가 서로 다른 이유라든가, 어린이날이 ‘아동의 날’이 되지 않고 굳이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딱 떨어지는 규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 5월 5일 어린이날 다음으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이야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이 제정한 굉장히 한국적인 근거를 지닌 날인 반면, 어버이날은 명목상의 근거는 미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외국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는 곳도 많고, 또 한국의 어버이날이 어린이날보다 나중인 것이 윤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은 철없는 막장 부모도 많아서 참 문제이긴 하다만, 그래도 ‘일반적인’ 경우로 볼 때, 인생의 참으로 막대한 부분을 희생하여 우리를 이 정도까지 키운 부모님의 은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성경도 예외가 아님. 십계명에서 종교적인 규범에 속하는 1~4를 제끼고 곧바로 등장하는 인륜 규범 1타는 “부모를 공경하라(honour)”이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 명령에 무조건 ‘까라면 까’라는 식의 발상이라기보다는, 그보다도 일단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기쁘게 하고 남들 보는 데서 부모님 품위를 존중하고 명예를 높여 주라는 뜻이다.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체로 부모가 너님들 먹여 살릴 여건을 만들고 체통 세우느라 사고방식이 최대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향만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거다. 부모 세대라고 해서 쿨하고 개방적인 걸 몰라서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산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동의는 못 하더라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라 해도, 너님을 낳아서 키울 필요가 없었다면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신세 못 펴고 그 모양 그 꼴로 살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물론, 부모가 예수 믿지 말고 네 신앙을 부인하라고 한다거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교리 노선을 추구하는 교회에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그런 데에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품위와 명예를 존중해 주면서 불순종할 수는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지는 먼저 구원받고 먼저 바른 신앙을 물려받은 자녀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방법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윤리와 기강을 갖춘 문명 사회에서는 효도를 강조하고 패륜은 엄벌로 다스렸다. 구약 율법은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리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명기에는 고집 세고 식탐이 심하고 부모의 교정만으로 씨가 안 먹히는 싹수 노란 자식은 아예 마을 차원에서 린치를 가해서 죽여 버리라는 섬뜩한 추가 지시까지 있다(신 21:18-21). 하나님은 그 정도로 패륜을 싫어하신다. 특히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집/곳에서 태어나게 됐어” 부류의 패드립 말이다(사 29:16, 45:9).   이 명령이 특히 무시무시한 이유는, 부모의 말이 사실인지 이웃 주민이나 자식 당사자로부터 최후 변론을 듣는 절차도 전혀 없이 완전 비민주 인민재판 즉결처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배도 행위가 발견되었을 때는 ‘부지런히’ 진상 파악부터 하라고 돼 하지만(신 13:12-16, 17:2-7) 저건 그렇지 않다. 사실, 자식 새끼를 제발 좀 어찌해 달라고 친부모가 제 발로 찾아올 정도면 자식이 얼마나 막장인지 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이 명령이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 가정과 성에 대해서   5월이고 하니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다시 해 보게 된다.   성경에서 창세기 1~2장은 전반적으로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천지 창조에 대한 과정을 묘사하는 내용인데, 끝부분에 유일하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아예 독자에게 코멘트를 남긴 구절이 있다. 바로 창 2:24로, 그게 그 이름도 유명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라는 결혼 제도 구절이다. 기독교식 결혼식의 목사 주례에서 단골로 듣는 구절이다.   오늘날 이 정도라도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간 데엔 가정의 공이 절대적이었을 것이고, 특히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지금 같은 여성 인권 단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좀 힘들다고 덥석 집 나가고 이혼을 해 버렸다면, 파탄 나는 집안과 인생 망치고 자살이나 범죄로 빠지는 애들이 넘쳐나게 됐을 것이다.   옛날에 가혹한 여성 인권 유린이라 불릴 정도로 엄한 성 억압(?) 관습이 왜 있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민망하니,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진 않겠다) 마치 고문처럼 그것도 물론 나쁜 관습이고 부조리이다. 언제까지나 여성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역시 본인은 안다. 단지 옛날에 죄의 결과 때문에 그런 게 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뜻이다.   성이라는 건 정말로 생판 모르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시키는 근간으로만 ‘은밀하게’ 쓰여야 하는 선물이요 비밀 병기이다. 부부 사생활은 하나님도 전혀 간섭 안 하고, 서로 같이 뭘 하며 즐기든 존중해 주는 절대적인 영역이다(히 13:4. honour과 동일한 어근인 honourable).   그러나 반대로 성이라는 게 다른 용도로 오· 남용되는 것을 하나님은 구역질을 할 정도로 가증스럽게 여기며 미워하고 정죄한다. 결혼한 부부가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성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미혼 청소년이나 청년에겐 피임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잠언 6장이나 딤후 2:22를 숙지시켜야 한다. 이걸 몰라서 인생 망친 안타까운 예가 허다하다. 옛날에 서부희 씨도 그랬고.   도대체 성을 왜 남의 것하고 비교를 하는가? 그게 공공연한 개방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금전 거래의 대상이 되고 개나 소나 다른 용도로 문란하게 쓰이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절규처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헬게이트가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위의 화면은 2003년 12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장면이다.사업 실패로 인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던 어느 40대 남성이 아내를 칼로 찌르고 10층 베란다에 매달려 자살 소동을 벌였다. 집 윗층에서 어느 기자는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고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때 횡설수설하던 중에 저런 희대의 명대사가 나온 덕분에 인터넷 상으로 무수한 인용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진짜로 떨어졌지만, 구조 대원이 매트를 밑에 이미 깔아 둬서 별다른 부상 없이 생존했다.비슷한 시기에 개독안티들에게 복음이 무수히 비방당할 빌미를 제공한(삼하 12:14) '에어장' 목사의 추락 장면이라고 소개된 사진은 사실은 저 아저씨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3.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사고방식은 결혼과 출산에 아주 옹호적이다. 성경에는 “다산하고 번성하라”라는 명령만 있을 뿐 맬서스 같은 사고방식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소위 가족 계획이란 건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도 간섭 안 하는 영역을 공권력이 나서서 자기 편한 대로 제어하겠다고 하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이다.   흔히 중국 하면 자녀를 한 명씩밖에 못 낳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마오 쩌둥은 한때 굉장한 산아 장려책을 폈으며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6억 남짓이던 중국 인구를 10억이 넘게 불려 놓았다. 중국이 처음부터 지금만치 인구가 많은 게 아니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마 주석은 쪽수가 국력이라고 여겼으며 어느 문헌에 따르면, “아이는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폭탄과 같다”고 교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라? 무신론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답지 않게 저 말의 표현 자체는 묘하게 성경적이다. (시 127:3-5) 무기에다 비유한 게 일치한다. 비록 그러다 얼마 못 가서 중국은 다시 산아 제한으로 돌아섰지만 말이다.   단, 성경이 말하는 다자녀 예찬은 자녀들을 성경대로 잘 양육했을 때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안 그러면 뼈 빠지게 자식 키워 봤자 미래에 부모는 휴거되는데 자녀는 못 되고 땅에 남아서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온갖 재앙을 당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군대에 징집되어 계 19:18-21의 악역에 동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종말이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간에 발생한다면 말이다.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 절대적으로 각 가정의 부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에도 아주 옹호적이다. 잠언에 애들 때리면서 키우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나도 부모님에게 맞으면서 컸지만, 그거 정말 공감한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실감을 못 했을 것이다.   사랑의 체벌은 가정 폭력 및 아동 학대하고는 가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인생에서 정말 미묘한 점이고, 어찌 보면 세상이 참으로 공평한 면모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없이 돈만 쏟아 붓는다고 절대로 저절로 바르게 크지는 않으니 말이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한번 실제로 저렇게 해 봐라.   부모가 세상적으로 잘났기 때문에 애를 때리고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다. 비록 부모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안 하면 애가 정말로 바르게 클 수가 없으며 자녀에게 그 정도까지의 악역을 눈물을 머금고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오늘날 사회는 부모의 권위가 실종되고, 애들을 부모로부터 점점 떼어 놓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매우 큰 심각한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바른 크리스천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건 올바른 가정 교육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런 현상까지 있는 듯하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om&write_id=1715#c_1744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원을 안 받으면 손해라고 여기고 한창 부모와 상호작용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http://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4546  능력 있는 국민들까지 공짜로 내모는 정부 때문에 엄마 정신이 병들고 애기도 파괴됩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이런..결혼은커녕 여친 사귄 적도 전혀 없는 주제에 나 벌써부터 너무 애늙은이 같은 글을 써 버렸다. =_= 하지만 이 글은 어버이날 기념 특집이니 양해 바란다.마지막으로 애늙은이 같지 않은 젊음과 패기가 느껴지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바로...   4.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계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하여 가장 감화를 받았던 때는 2007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병특 복무 중이었고, 그러고 보니 훈련소에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경부선 새마을호 특실을 탔다. 그때 본인은 새마을호 특실의 음악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샘플을 채널별로 15분씩 녹음해 놓으려고 컴퓨터와 양방향 잭을 챙긴 상태였다. 특실에는 마치 비행기 객실처럼 다음과 같은 6개의 채널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음)   (1) 자연의 소리 (이지리스닝 instrumental) (2) 한국 가요 (3) 가곡 (4) 재즈 (5) 클래식 (6) 객실에서 방영되는 TV 방송    일반실은 이어폰을 꽂으면 6번만 들을 수 있다.   철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저 으리으리한 좌석을 보라!“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새마을호의 날이로다.”“KTX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새마을호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아니하니라.”새마을호는 몇 년 뒤면 퇴역하여 더 볼 수 없게 된다. 지금 많이 타 두시기 바란다.   그랬는데 1번과 2번 채널 다음으로 3번 가곡 채널을 듣고 있으니 얼마 후 <어머니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양주동 박사가 작사한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그 곡 말이다.   그 곡은 가사가 잘 알다시피 정말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지어져 있다. 국문학 박사가 쓴 가사답게 예스러운 표현도 제법 들어가서 품위 있어 보인다. 100을 의미하는 ‘온’, 그리고 일부러 음운을 탈락시킨 ‘따(땅) 위에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그지없다’ 등. 3절 가사를 보시라. 눈물 없이는 못 듣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3절이 흘러나올 때,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계시가 내려왔다. 아아,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신 덕분에 내가 지금 이런 지상천국 열차를 타면서 한없는 행복에 젖을 수 있구나!   그 깨달음으로 인해 행복과 감격과 감사와 감동이 교차하면서 콧등이 찡해졌고, 나는 옆자리 승객이 보건 말건 엉엉 흐느껴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은 군대에 가서 유격 훈련 때 PT 체조 8번을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스승의 은혜>로 바뀌는 체험을 한다지만 나는 그걸 열차 안에서 체험했다.   세상에 지구상의 어느 교통수단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알면 퇴치되지만, 사실 철도만으로도 충분히 퇴치 가능하다. 정말 이 정도 간증이 있으니 철도'교'라는 말까지 쓰는 것이다. 난 말을 장난으로 하지 않는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얼마나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음침하고 어둡던 나의 가치관을 건전하게 바꿨으며, 심지어 신앙에도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이 자리에서 다 간증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이 땅에 성경과 복음과 더불어 이런 철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며, 우리나라에 철도 덕후들이 많이 많이 배출되면 좋겠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8 05:24:29 | 김용묵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몰라 이렇게 게시판에 올립니다.   열왕기상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도움을 구합니다. 왕상 14:15과 14:23을 보면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중에 '작은 숲' (KJV원문에는 gorves)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왜 작은 숲을 만든것이 죄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개역한글판을 찾아보니 이 구절이 '아세라 목상' (NIV Asherah poles)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상을 만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구절을 그냥 작은 숲이라고 만 쓴다면 솔직히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분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작은 숲이 왜 죄가 되는지 도저히 이것 만 가지고는 풀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아세라 목상이라고 쓰여진 개역한글 혹은 NIV가 더 그 의미에 충실할 것은 아닌가 싶어서요. 번역의 말꼬리를 잡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읽으며 부딪히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6 06:33:58 | 최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