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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진리침례교회 이우진 형제님께서 보내 주신 '가장 큰 명령'이라는 소책자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에게 어떤 징표가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이었습니다. 특히 진리를 많이 안다고 하는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여러 차례 읽고 머리 속에 넣은 뒤 실행에 옮겨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진리는 어려운 데 있지 않음을 요즘 뼈저리게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할 때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 모두 이 글을 읽고 이렇게 해 보자고 결심하면 어떨까요?   너무 글이 좋아 조만간 내용을 종합하여 설교로 남기려고 합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참고로 아직 진리를 못 파신 분들은 일단 열심히 파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헛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파신 분들은 이제 이 글을 통해 균형을 잡기 바랍니다.
2012-05-05 13:54: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 이 자료는 인천 말씀 침례 교회의 박참하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주제 설교 시리즈를 소책자 형태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입니다.   * 저는 박 목사님으로부터 이 자료를 킵바이블에 게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원고를 자체적으로 간단히 교열을 본 후 올립니다.   * 분량이 많습니다. 전체 내용은 첨부하는 hwp 파일에 들어있으며, 이곳 본문에는 머리말과 간단한 요약만 올립니다.   환란 전 휴거라는 진리를 너무나 쉽고 분명하게 풀어서 강해해 주신 박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머리말 >>   이 주제는 교리적인 문제로 아주 심각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을 말하며 계시록에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말썽 많고 주장이 다양하기로 으뜸인 책이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아예 덮어 놓은 책 또한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교계의 흐름으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반드시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환란 중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대비책을 세우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계시록을 강해하는 세미나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독교계의 각종 신문에 가장 많은 세미나의 광고가 바로 요한계시록 세미나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회비를 받으며 순회 세미나로 1년 내내 계속합니다. 여기에 많은 목사들이 돈을 싸 들고 모여듭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이 땅에 대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들림(휴거) 받는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보다는 인기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계시록은 절대 어렵거나 두렵거나 비밀에 싸인 책으로 아무나 보아서는 안 될 성경이 아니라, 다른 65권의 성경과 같이 완전히 공개되고 아주 쉬운 계시인데도 문자적으로 보는 것을 외면하고 무언가 두렵고 박진감 있는 쪽을 택합니다.   오늘날 또 다시 세상이나 교계가 종말에 대해서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세상적인 예언이나 지진이나 기상변화에 민감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이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이 가깝다고 야단법석입니다. 물론 근래의 이상 기온으로 빙하가 녹거나 곳곳의 대형 지진은 충분히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아직도 이 지구는 대환란을 통하여 격변을 겪게 되고 심판을 통하여 변화를 받은 후에 적어도 천 년은 더 사용하고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지상 천년 통치가 있을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가을에 아주 쉬운 계시록 세미나를 곤지암 기도원에서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3박 4일 동안 총 27강의로 계시록 1장에서부터 22장까지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2012년 지구의 종말을 가상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잉카인들의 달력이 2012년까지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소문들이 돌아 저희 교회에서 금년 봄철 특별 세미나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주제로 몇 강의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최고의 학수고대(鶴首苦待)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심의 공중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문자적으로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기에 앞서 대환란이란 지옥과도 같은 너무도 두려운 재앙을 맞이해야 하므로 주님의 오심이 결코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봄철 특별 세미나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여러분은 각자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속히 자신의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신랑을 맞이할 신부인 교회로서 그분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여러분의 사랑받는 주의 작은 종  박참하 목사   << 차례 >>   머리말.........................크고 주목할 만한 날..........................주의 날은 복된 소망인가 두려움인가....................누가 짐승의 표를 받는가?.......................구원의 날과 진노의 날...........................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부록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아겔다마(피밭).......................................   << 본문 중에 나오는 중요한 대목을 짜깁기한 abstract -- 영화로 치면 예고편 >>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환란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그 환란을 ‘대환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넘어서 무지(無知)입니다. 이는 God와 gods가 단어가 비슷하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있고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Spirit(성령)이 있고 spirits(영들)이 있습니다. Lord가 있고 lords가 있습니다. 한 처녀(a virgin)가 있고 처녀들(virgins)이 있습니다. 발음이나 글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는 단어이지만 이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노아의 대홍수와 지역이나 나라들에 있는 홍수들이 같은 홍수가 아니듯이 “야곱의 대환란과 환란들”은 조금도 같지 않습니다. 소위 성경을 믿고 연구한다는 분들이 성경의 어휘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혼잡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받는 환란들은 대환란과 조금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환란들, 고난들,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것들을 대환란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크리스천이 받는 환란, 믿는 성도들에게 닥치는 환란, 아벨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박해가 있었지만 이것을 대환란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대환란이 아닙니다.   믿음의 단련이나 육체의 시험이나 징계와 고난은 지역적으로 언제나 있지만 그것이 성경에 말씀하는 대환란은 아니며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대환란은 말 그대로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환란입니다. 야곱의 대환란은 그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지상의 이스라엘입니다.   대환란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 (욜 2:31)대환란을 겪지 않고 관전만 할 신약 성도들에게는: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 (행 2:20)주인은 결혼식을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에서 돌아”옵니다. (눅 12:36)   주님이 곧 오신다는 건 복된 소망으로, 성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제 곧 대환란이 시작되니 우리는 대환란을 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불안과 걱정과 초조와 공포를 조성하는 거짓 교사와 거짓 형제들이 기독교계에 유난히 많습니다.   대환란은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대환란은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표적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관심사는 언제나 땅의 표적들입니다. (짐승의 표, 베리칩, 각국의 화폐 통합, 종교 통합)   짐승의 표는 오늘날 신분증이나 신용카드나 의료보험용 카드 대신에 받는 칩이 아닙니다. 그런 용도로 받은 것을 앞으로 용도 변경하여 짐승의 표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라는 고백이나 증거가 있어야 받는 증명서입니다.   대환란이 주의 오심보다 먼저라면, 즉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나 들림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지금은 복음을 전할 때이지 대환란을 전할 때가 아닙니다.   현 시대에 진짜로 구원받은 자녀들은 모두 다 그 이름이 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대환란 중에 땅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분명히 대환란은 그분의 진노의 날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확실히 다른 날입니다.계시록 5장의 스물네 장로들은 지상의 대환란 때 저 하늘의 주님의 보좌 둘레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내용이 더 궁금하신 분은 첨부 파일을 열어 보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4 22:56:49 | 김용묵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구주요 그를 통해서만이 내가 완전히 씻어질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처음과 끝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간혹 도처에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의 행위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1) 자신의 믿음이 머리로만 하는 믿음인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이며 2) 계속해서 죄의 행위를 짓는다는 것은 자신 안에 성령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이 이르지 않았다   는 식으로 설명하는 글을 보게 됩니다.   나의 행위는 구원의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나 (물론 이것은 아직도 낯선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위의 언명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이를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라는 구절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할 것인지, 내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주를 영접했다 하더라도 죄성이 완전히 죽지 않았기에 죄의 행위를 완전히 죽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 저의 기존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덧, 1.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라 생각합니다만 저에게는 제법 심각한지라 직접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2.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과 같이 구절을 명확하게 들어가며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3. "크리스천이라는 이 중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는 극소수다"라는 주장에 대한 궁금증이 본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임을 밝혀드립니다.   모두 평안하시길...[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4: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3 20:39:26 | 문석휘
어제 마태복음 강의를 듣고 정리를 한번 해 보았습니다. 지옥 낙원 그리고 천국  (눅 23:4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후 죽으신 그날 한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는데다음의 (요 20:1)를 보면 하늘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요 20:17,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 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 간다, 하라, 하시니   이 때까지는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천국에 아직 가지 않으셨다.그러고 보면 이 때까지는 낙원이 다음의 (눅 16:2)절과 같이 지하의 어느 곳에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이 구절을 보면 낙원과 구렁텅이 그리고 지옥이 지하의 어느 곳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눅 16:22, 킹흠정)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23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26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벧후 2:4, 킹흠정)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자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 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유 1:6, 킹흠정)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 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사 14:12, 킹흠정)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지옥은 마귀의 대장인 루시퍼와 그 졸개들을 가두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공간 이다. 그리고...     (행 1:11, 킹흠정)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위 (행 1:11)절과 같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올라 가실때에 지하 낙원(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성도를 이끌고 올라가신 것 이다.다음의 (엡 4:8)절과 (행 2:31)절이 그 이야기 로 보인다.     (엡 4:8, 킹흠정)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 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 (이제 그분께서 올라 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 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 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행 2:31, 킹흠정)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 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부활 승천이후엔 사도 바울이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가게 된다.   (고후 12:4, 킹흠정)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   위 내용으로 보면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전과 이후의 낙원의 위치가 변동된 것을 알 수 있다.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의 승리 이후에는 구원 받은 성도는 하늘에 있는 천국으로 바로 가게 되고 휴거될 때에는 죽 은 몸도 영화롭게 변화되어 다음 절에서와 같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 다.     (고전 15:54, 킹흠정)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고전 15:55, 킹흠정)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 15:57, 킹흠정)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로 인하여 우리는 날로 성화되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고후 2:14, 킹흠정)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 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풍겨야 할 것이다.   (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 하게 하려 함이라.』 (롬 10:17, 킹흠정)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4: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30 14:52:09 | 허광무
요한계시록 1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짐승의 표’가 사용되는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킵바이블 사이트의 독자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아래와 같이 여러 성경 별로 비교를 한 번 해봄으로, 킹제임스 성경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더 실감나게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리에 소개한다.   ********************************************************************************************************** * 참고로 아래의 성경 비교 자료는 인터넷 모 사이트에서 ‘예수아사랑’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시는 어느 분의 자료를 요약 발췌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King James Bible (1611) And he causeth all, both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bond, to receive a mark in their right hand, or in their foreheads:   American Standard Version And he caus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 that there be given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Amplified Bible Also he compels all [alike], both small and great, both the rich and the poor, both free and slave, to be marked with an inscription [stamp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Catholic Public Domain Version And she will cause everyone, small and great, wealthy and poor, free and servant, to have a character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s   Common English Bible It forces everyone—the small and great, the rich and poor, the free and slaves—to have a mark put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US Version) All people were forced to put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forehead. Whether they were powerful or weak, rich or poor, free people or slaves,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UK/British edition) All people were forced to put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forehead. Whether they were powerful or weak, rich or poor, free people or slaves,   Darby Bible Translation And it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men, that they should give them a mark up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English Good News Translation The beast forced all the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slave and free, to have a mark plac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English Revised Version And he caus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 that there be given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English Standard Version Also it causes all, both small and great, both rich and poor, both free and slave,t to be marked on the right hand or the forehead,   GOD'S WORD Translation The second beast forces all people—important and unimportant people, rich and poor people, free people and slaves—to be brand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Good News Translation The beast forced all the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slave and free, to have a mark plac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And he requires everyone-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to be given a mark on his right hand or on his forehead,   Lexham English Bible And he causes all people,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slave, that they give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1995) And he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men and the slaves, to be given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NIV He also forced everyon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receive a mark on his right hand or on his forehead,   New Living Translation He required everyone—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to be given a mark on the right hand or on the forehead.   The Books of the Bible NT It also forced all people, great and small,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receive a mark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The Message It forced all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have a mark on the right hand or forehead.   World English Bible He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slave, to be given marks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Young's Literal Translation And it mak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men, and the servants, that it may give to them a mark up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s,   **********************************************************************************************************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수많은 성경 번역본들 가운데, 오직 킹제임스만이 전치사 ‘in’을 사용하여 정확하게 그 위치를 알려 주고 있다. 전치사 ‘in’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사용되어질 짐승의 표가 말 그대로 몸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표가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실재’를 가리킨다고 믿는다면, 현재 혹은 앞으로 어떤 기술적 완성을 통하여 눈앞에 등장하게 될 어떤 형태의 ‘표’ 일지라도 그것이 짐승의 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드시 몸 ‘안’에 들어가는 형태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변개됨 없이 보존되어 온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진실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6)”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5: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9 21:32:28 | 김정훈
성경적인 교회, 지금도 가능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저는 기독교 자체는 싫어하지 않아요. 예수님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목사는 싫어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들이 교회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경건해야 할 목사들이 합당치 않은 세습과 부정부패를 행하며 또 이단이나 사교들의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저도 한때 교회에 다녀 봤지만 염증을 느끼고 지금은 마음속으로만 믿습니다.”   기독교는 온 우주 만물을 6일 만에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습니다. 온 우주 공간의 모든 것들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사람들이 자신을 믿도록 기독교(교회)를 창시하셨을 때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아들을 수 있게, 그 길을 쉽게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현 시대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성경에서 떠나 심히 뒤틀려 있습니다. 심지어 교과서인 성경마저도 샤머니즘과 이교 사상으로 심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교과서를 손에 쥐면 지금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일단 다음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치면 성경적 기독교(교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1.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배당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면서 과도하게 건축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되면 목사는 자연히 제사장이 됩니다. 이런 것은 구약 시대의 일입니다. 교회를 ‘성전’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일입니다(마16:18; 고전6:19; 고후6:16-18; 딤전3:15).   2. 신약 시대의 목사는 결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목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도들 가운데 한 형제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바른 데로 이끄는 일을 하며 목사와 성도들은 직무가 다를 뿐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엡4:11; 딤전3:1-7; 히2:11-13; 벧전2:9-10).   3. 목사는 성경을 읽고 말씀 자체를 강해해야 합니다. 록펠러, 제이 씨 페니, 링컨, 콜게이트, 마더 테레사, 성 프란시스 등의 이야기나 판에 박힌 예화 혹은 위인전으로 설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악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말씀 선포에 있지 프로그램에 있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등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날개, 알파 코스 등의 인위적 성공/성취 프로그램은 성도들을 영적 기근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입니다(롬10:17; 고전1:18-25).   4. 주일 성수, 특별새벽기도, 십일조, 일천 번제 헌금, 큰 액수의 헌금을 통해 만사형통을 이루려는 것은 하나님과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허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어려움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종착지는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므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지냅니다(마19:24; 고전10:13; 고후12:7-10; 딤후4:20; 약5:14; 히11:13).   5. 신약 시대의 헌금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강제성을 띤 십일조, 맥추 감사 헌금 등은 구약 시대에 신정 정치 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율법으로 부과된 세금과 같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교회에 헌금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를 밝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불신행위로서 연약한 성도들을 짓누르는 악한 일입니다. 교회에는 자발적인 헌금과 일시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헌금 외에 다른 헌금은 없습니다(롬10:2-4; 고전16:1-2; 고후9:6-7).   6.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분은 단지 말씀만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되 단 6일 만에 - 여기의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하루를 뜻함 -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무한한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서 구원과 부활과 재림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를 믿지 않고 많은 신학교들이 세상과 타협하여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습니다(창1; 출20:11; 31:17).   7. 교회의 음악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귀를 찢는 듯한 록 음악, 댄스 음악, 힙합 음악 등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저질의 세상 음악입니다. 이런 음악에 심취하면 사람의 영과 혼이 마귀에게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천 유행가에 해당하는 CCM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CCM이 가사만 기독교의 틀을 유지할 뿐 실제 음악 자체는 세상의 유행가와 같습니다(삼상16:14-23; 고전14:33; 엡5:19).   8. 교회는 무엇보다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그들이 앞으로 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흉악하고 영적으로 혼란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음악을 통해 주님의 교육과 훈계로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신6:3-9; 엡6:4).   9. 천주교회, 몰몬 교회, 안식교회 등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복음을 무력화하고 성도들을 기만하는 ‘불경건한 연합체’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옴에 따라 이제는 전혀 다른 종교들과 연합하는 배교 행위도 교계에서 버젓이 심심찮게 벌어지며 그 내용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요14:6; 행4:12; 롬16:17-18; 엡5:11-12; 살후2:9-12).   10. 앞으로 이 땅에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이전에 적그리스도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는 7년 환난기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도들은 이 7년 환난기 전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휴거를 받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환난기를 통과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환난 통과설’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행위를 더하려는 시도에 다름없습니다(살전4:13-18; 5:9; 살후2:1-12; 계3:10).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고 자신의 뜻에 따라 성도를 고쳐 주실 수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신유(병 고침)의 은사가 있어서 그 사람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의 은사들 - 병 고침, 방언, 방언 통역 등 - 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신약 성경 기록이 완성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 시기가 지나자 사라졌습니다(고전13:8-10; 히4:15-16; 요일5:14).   12. 이빨이 금니로 변하고 금가루가 날리며 무질서한 가운데 사람들이 뒤로 쓰러지는 현상은 성령 체험이나 영적인 은사가 아닙니다. 마귀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예수님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이상한 육적인 현상으로 연약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오순절 은사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믿을 때 한 번 임하셔서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이후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충만을 통해 성령님의 열매를 추구하며 인격적 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고전14:23-33; 갈5:22-23; 엡5:18).   13.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하는 개역(개정)성경과 NIV, NASB 등은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1% 소수 사본 본문)에서 나온 천주교 계열 성경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해서 종교개혁자들과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전 세계에 편만하게 보존해 주신 공인(共認) 본문(99% 다수 사본 본문)에 근거한 성경만을 썼습니다. 이 성경들 중에서 1611년도에 출간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이 온 세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번역되고 읽혀온 순수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는 개역(개정)성경에서 ‘없음’으로 표기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마17:21; 18:11; 23:14; 막9:44, 46; 11:26; 15:28; 눅17:36; 23:17; 행8:37; 15:34; 28:29; 롬16:24).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성경 지킴이’ 그리스도 예수안에032-872-1184, www.KeepBible.com ‘진리를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032-664-1611, www.cbck.org
2012-04-28 15:19:12 | 관리자
크리슬람 (Chrislam)이란 영어로 Christian과 Islam을 합친 말로서, 말 그대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혼합종교를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코란도 믿고 성경도 믿고, 알라도 믿고 하나님도 믿자는 것이다.   198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크리슬람 혼합종교 운동은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미국 전역에만도 잘 알려진 몇 몇 대형교회를 비롯하여 약 100여개의 교회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슬람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하나의 충격적인 실체로 보다 가깝게 다가오게 된 계기는 아마도 2009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행했던 릭 워렌 목사의 기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아, 이사, 헤수스, 그리고 지저스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기도를 마쳤는데, 이 중 예수아는 히브리어, 헤수스는 스페인어, 지저스는 영어로 각기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사 (Isa)가 아랍어로 또한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당시 미국은 아랍권에 대하여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뜻밖의 말이었기에 상당한 논란이 일었었다.   오바마는 물론이고, 릭 워렌 또한 사실은 그동안 모두 이슬람교에 대하여 친밀한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행보를 해왔기 때문에, 그 날의 이벤트는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비근한 예로 오바마는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911 사태가 일어났던 뉴욕 맨하탄 그라운드-제로(Ground-Zero) 지점 바로 옆에다가, 2,000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슬람교 기도실이 포함된 ‘이슬람 공동체 센터 (Islamic Community Center)’를 짓도록 허락 해줌으로 자신의 친 이슬람 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릭워렌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크리슬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소위 예일대학이 주최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대화의 자리를 주동이 되어 이끈 것일 것이다.   2007년 10월경,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공개편지가 <A Common Word Between Us and You>라는 제목 하에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세계의 유수 언론에 대대적으로 광고가 나간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총 138명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서명을 한 이 편지는 기독교와 이슬람은 결국 커다란 부분에 있어서 같은 관점을 지향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 평화를 위하여 손잡고 하나가 되자는 내용이 요지였다. 이에 부응하여 상당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 다음 해에 예일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대화를 모색하는 컨퍼런스에 모이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그들의 뜻을 모아 환영 일색으로 이슬람과 ‘하나’가 되는데 동조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과 여기에 서명을 한 사람들의 명단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직접 읽어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릭워렌을 비롯하여 로버트 슐러, 브라이언 맥라렌,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름도 들어 있다.   http://www.yale.edu/faith/acw/acw.htm   무엇이 잘못 되어 가고 있는가? 세계 곳곳에 이슬람의 자본을 앞세운 포교가 활발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님을 뉴스를 통하여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크리슬람, 굳이 아래의 성경 말씀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왠지 ‘키메라’ 같은 기이한 이름으로 느껴짐은 내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함일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 14:6)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5: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6 20:16:32 | 김정훈
지디넷코리아 기사에 나온건데요 한번 보세요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0426101452&type=xml   이기사 보면 베리칩 정도는 비교 조차도 안되는 그냥 지나가는 기술 수준인듯해요   적어도 기사에 나온 정도 이상의 수준은 뛰어 넘어선   기술들이 이미 계획되거나 진행되는 거 같네요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들이겠지만   세상일들이 진행되는 사건을 볼때마다 더욱 주님 오실 날을 소망으로 삼게됩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주안에 평안하시길 바라며...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5: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6 11:51:21 | 변경진
오늘 모처럼 전철을 타고 영업과 거래처 방문을 하였습니다.   전철 안에서 읽었던 책은 옥성호 형제의 "마켓팅에 물든 기독교" 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식을 가지고 조금만 생각해 봐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을   알 수 있을텐데....    왜 그걸 모를까??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걸까?  알아도 건의를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그냥 체념하거나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는 걸까?   하지만 책을 읽는 가운데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것 입니다. (정말 놀랍지요?)   유명한 무신론자인 버트란트 러셀은 기독교인을 비난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진짜 현대인이 얼마나 생각하고 사는가에 대한 조사(기존에 반하는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때)를 하였더니   50% 사람들이 즉각 새로 받아들였고   30%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거부를 한다고 합니다.   15% 사람들은 즉각적인 판단을 유보한체 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수용 또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는데 추가적인 조사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5%의 사람들만이 기존의 사실과 비교해서 새로운 사실의 정당성 여부등에 추가적인 조사를 한 후에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80%의 사람은 전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15% 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결국 생각을 하지않는 점에서는 80%와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옥성호 형제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엔터테이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마켓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한국에서 수십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크게 한국 교회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위 내용과 비슷하게 대비해 보면   진리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을  100%라 보면   진짜는 약 5% 정도이고 가짜는 약 95%라고 합니다(추정치니 근거를 찾거나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시면 아니아니 아니되옵니다 ^^;).   문제는 가짜인 95%가 자신들을 진짜라고 착각하고 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인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가짜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정말 무섭고도 소름끼치지만 사실입니다.   오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제 글과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있습니다. 원래는 소설로 먼저 나왔고 김** 형제님의 글 (하나님은 빠지세요?)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c.s.i 뉴욕의 반장역으로 나오는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임포스터(impostor) 라는 영화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머리는 노랗게 염색을 하거나 장식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신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5:3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5 23:44:58 | 송재근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장기 근속자 표창을 주었습니다. 저도 1992년 3월 1일에 학교에 부임하여 만 20년이 지났기에 오늘 참석하였고 이 기회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1982년에 유학을 갔으니 그 시기부터 따지면 제가 홀로 독립하여 산 시간이 만 3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유학을 갈 때의 제 모습과 그 당시 꿈꾸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 - 성경 번역 및 목회 - 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행적을 읽으면서 그분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시는 것을 통해 성경 전체와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10년 전의 목회 실패와 그 이후의 방황기 속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이전보다 조금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독립 개체로 산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과 특히 국내에 복귀하여 성경의 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여러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성경 읽기를 통해 종합적으로 몇 가지 교훈을 알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마귀와 아담과 이브의 죄악이 모두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남보다 더 가진 사람, 더 배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겸손히 행할 것을 주문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특히 교회의 리더들은 이 점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교만에는 드러난 교만과 숨겨진 교만이 있는데 숨겨진 교만이 실로 무섭더군요. 남의 잘못을 잘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투명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급진적이고 과격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만을 펴고 막무가내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나 결국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하나님의 일이든 사람의 일이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열매를 거둡니다.하나님과 게으름 그리고 무기력은 극과 극입니다.   4.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보았습니다.   저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예절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정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마음대로 내버려두면 훗날 부모의 통곡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하는 아이는 점수를 따고 들어갑니다.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함을 보았습니다.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나중에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들은 이 점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5. 목사는 많이 책을 읽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명연설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위스턴 처어칠의 자서전을 이번 주에 읽고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설교도 잘 하게 됨을 보았습니다. 마음껏 책을 사서 보게 해 준 교회에 감사합니다.   6.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만 함을 보았습니다.   목사를 비판할 사람은 많은 경우 목사의 아내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말버릇, 손놀림, 앉는 자세 하나까지도 지적하고 교정해 줄 때 듣기 싫어도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발전하지 못함을 보았습니다.   또한 목사가 자기의 실수와 연약함과 부족함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도움을 구할 때 교회가 흥함을 보았습니다. 완벽한 목사 앞에서는 성도들이 주눅들어 할 말을 못하게 되고 교제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강하심이 일한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7. 좋은(선한) 사람들이 모여야 교회가 잘 됨을 보았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보았습니다. 심성이 좋은 사람이 좋은 가정을 꾸리고 좋은 교회를 하며 좋은 시민이 됩니다. 아직 시집장가가지 않은 분들은 이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불쌍한 이들을 돕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에서는 저는 행복한 목사입니다. 8. 교회가 흥하려면 자매님들이 활발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자매들을 억누르면 교회가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단정하면서도 활발하게,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사귀는 자매님들이 있어야 교회의 부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9.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결국 나의 친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흔들리는 사람과 사귀면 끝이 좋지 못하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10. 성경을 많이 알고도 죄를 짓는 이 죄인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또 긍휼히 여기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을 찾지 의인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성도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꾸 불쌍히 여기는 것이 목사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과는 이것도 잘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교만이 가장 크고 무서운 원수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1. 성경 출판과 교회 이전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희생하고 돈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복 주심을 보았습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하고 절실히 느끼고 반성을 한 적이 많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돈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성도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부자임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12. 한국 교회에 진리가 없어서 애통하는 사람이 너무 많음을 보았습니다.   "무지와 헛된 열심 속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바르게 인도할까?" 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리스트를 더 적어 보겠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몇 자 적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 경험에서 얻은 단편적인 교훈들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주의 사항: 이것들은 어쩌면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일지 모르므로 잘 판단해서 흡수하기 바랍니다. (**) 또한 댓글(덧글)은 사양합니다.  샬롬   정동수[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5 18:0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뭐 그다지 이슈가 될것도 아닌데...궁금한게 있습니다.   예전 교회에서는 기도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로 끝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기도드렸습니다"라고 했다가 "기도드립니다"가 맞다보다 생각했지요.   사소한것이긴 한데, 습관이라는게 무섭더군요. 정말 별것 아니지만 궁금합니다. 그래서 여쭈어봅니다.    "기도드립니다" 와 "기도드렸습니다" 둘 중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기도를 마치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오늘은 참 힘든 하루였습니다. 월요일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뭔가 개선(변경)하는것이 있어 설명회를 개최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뭔가 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참 오래 참으시는구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에 대해 즉시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참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 지금도 "저"에 대해서 참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쯤이나 저는 하나님께 기쁨이 될런지......[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3 17:54:03 | 김형욱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크게 작용한 요인들   - 세상 그 어느 종교도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교주가 부활했다고 가르치지 않고, 또 이 정도로 역사적으로 방대한 증거와 증인들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 인간이 자기 노력과 근성으로 신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신이 먼저 인간을 찾아주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었다고 가르치므로   - 없어졌으면 애시당초 진작에 씨가 말라 버렸을 정도로 황당하고 믿어지지 않는 교리를 갖고 있는데, 아직까지 당당히 존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무시할 수는 없고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 이 정도로 무수히 많은 이단들이 압도적으로 집착할 정도이면, 웬지 이 바닥에 분명 진리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 성경은 그 논조와 내용을 볼 때 인간이 쓸 만한 책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가령, 정치적으로 치우침이 없음. 인간 자신에게 절대 이롭지 않은 내용이 지나치게 장황하게-_- 많이 들어있음)   - 그래도 몇몇 증명 불가능하고 이해가 안 되는 사항들만 일단 믿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각종 교리와 윤리관은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간에게 건전하다는 게 너무 분명하게 확 느껴져서   - 죄 문제라는 인간에 대한 상태 진단과, 그 해결책에 너무나 공감이 가서. 최소한 줘도 못 먹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인 의의 기준이 온갖 상대주의· 다원주의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고 깔끔하고 건전하고 뒤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사회 구조 탓이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등등)   그래서 믿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예전 글 <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 참고.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2281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조금 작용한 요인들   - 개독안티들의 무례하고 표독스러운 말투에, 사실 여부를 떠나 괜히 반발심과 환멸을 느껴서 (다른 건 몰라도 저놈들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겠다는 식)   -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과오라고 알려진 것들이 상당수가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실은 크리스천들도 오히려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어서   -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수준의 간단한 변증론. 가령,“지금 예수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없는 게, 지금 안 믿었는데 진짜로 지옥이 있어서 낭패 보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리스크가 적다.”“신이 없다고 단정짓기엔 인간의 지식은 너무 좁고 빈약하다” 같은 식.   - 내세와 심판이 있을 거라는 양심의 자극.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성경이 과학적으로도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몇몇 자료들   - 이 정도 교리면, 정말 만에 하나 성경의 내용이 다 거짓이고 허구이고 설령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되어   ※ 내 신앙관에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은 것들   - 좋든  싫든, 주변 교회 사람들의 행동과 평판   -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해당 종교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언행 (그 사람들이랑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나는 베르테르 효과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냄)   - 세상 불신자들로부터의 평판, 매스미디어에 묘사된 이미지   - 육신을 들뜨게 하거나 흥분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종교심. 나는 그런 부류의 종교심은 이미 철도교로 다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종교에다 내 영원을 걸지는 않는다.   - 기복신앙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런 것들을 보고 교회를 나가거나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다. ㅜㅜ   ※ 지금은 발현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깊은 시험에 들고 신앙 면역 체계가 무너졌을 때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암적 요소들   - 성경에서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고 해결이 안 된 의문이나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 몇 군데. 목사님에게 여쭈거나 주석서를 봐도 알 수 없는 것들   - 성경이 밥 먹여 주냐... 같은 부류의 유치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성도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험. 현실의 염려 (눅 8:14)   -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으로 변질돼 가는 것   -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안 하면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치는 것[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3 09:49:51 | 김용묵
Am I A True Believer? 나는 참된 믿는 자인가?   In this brief study we want to consider the important, soul-searching question: Am I a true believer? To help you answer this question, consider the following questions. Think about each one in an honest, personal way. Take time to look up the Bible verses that are given along with each question. Ask yourself: Who am I really trusting for my eternal salvation?   Do I see myself as a guilty, lost sinner who stands condemned before a holy and righteous God (Romans 3:10-19,23)? 나는 나 자신을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은 상태의 죄가있는(유죄의), 잃어버린 바 된 죄인으로 보는가(로마서 3:10-19,23)?   Do I recognize that my own heart is deceitful and wicked and incurably sick (Jeremiah 17:9; Mark 7:21-23)?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이 거짓되고 악하며 고칠 수 없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예레미야 17:9; 마가복음 7:21-23)?   Do I see myself as deserving of death and hell (Romans 6:23)? 나는 나 자신이 죽음과 지옥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가(로마서 6:23)?   Do I realize that if God were to give me what I deserve and repay me for the way I have lived, then I would be totally destroyed (Psalm 130:3; compare Psalm 103:10)? 나는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받을만한 것과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서 내게 돌려 주실 것을 나에게 주신다면, 그것은 내가 전적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시편 130:3; 시편 103:10과 비교하라)?   Do I recognize that there is absolutely nothing I can do to save myself (Titus 3:5)? 나는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가(디도서 3:5)? Do I understand that trying my best to perform good works will never gain me or earn me an entrance into heaven (Ephesians 2:8-9)? 나는 선한 행위들을 행하기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를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은 혹은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가(에베소서 2:8-9)?   Do I realize that my church or my religious system cannot save my soul (Jeremiah 17:5)? 나는 나의 교회 혹은 나의 종교적인 체계가 나의 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가(예레미야 17:5)?   Am I convinced that my own righteousness and my own goodness falls far short of the righteousness that God requires and demands (Romans 3:10-12; 1 Corinthians 6:9-10)? 나는 나 자신의 의와 나 자신의 선함이 하나님께서 바라고 요구하시는 의로움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확신하는가(로마서 3:10-12; 고린도전서 6:9-10)?   Do I, in and of myself, have any personal credentials that are acceptable before God (Isaiah 64:6)? 나는 나 자신 안에 그리고 나 자신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질만한 어떤 개인적인 자격을 가졌는가(이사야 64:6)?   Do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God’s only Solution to my sin problem (Acts 4:12)?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해결책인 것을 믿는가(사도행전 4:12)?   Do I recognize Him as the only way to God (John 14:6), the only Door to salvation (John 10:9), the only Saviour for sinners (Matthew 1:21) and the only One who can give me eternal life (John 10:28; 17:3)? 나는 그분(예수님)을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로서(요한복음 14:6),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문(요한복음 10:9)으로서, 죄인들을 위한 유일한 구원자(마태복음 1:21)로서, 그리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요한복음 10:28; 17:3)으로 인정하는가?   Do I understand that Jesus Christ is the eternal God (John 1:1-3) who came into this world and became a man to save me (John 1:14; 1 Timothy 1:15; John 3:17)?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영원한 하나님(요한복음 1:1-3)이시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요한복음 1:14; 디모데전서 1:15; 요한복음 3:17)을 이해하는가?   Am I convinced that He loved me even when I was a great sinner (Romans 5:8; John 3:16) and that He died and rose again to save my soul (Romans 4:25)? 나는 그분께서 내가 큰 죄인이었을 때(로마서 5:8) 조차도 나를 사랑하셨으며 나의 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신하는가(로마서 4:24)?   Am I persuaded that the Lord Jesus died on the cross for my sins and that He died in my place as my perfect Substitute, dying in my stead and paying completely the full penalty for my sins (Isaiah 53:6; 1 Peter 3:18; 2 Corinthians 5:21)? 나는 주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나의 완전한 대속물로서 나를 대신하여 돌아가셨고, 나의 죄들에 대하여 완전하게 온전한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나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을 확신하는가(이사야 53:6; 베드로전서 3:18; 고린도후서 5:21)?   Am I trusting in Him and in Him alone to save me (Acts 16:31)? 나는 그분께서, 그분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고 있는가(사도행전 16:31)?   Have I come to Him in simple, child-like faith (John 6:35,37; Matthew 11:28)? 나는 단순히, 어린아이같은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가(요한복음 6:35,37; 마태복음 11:28)?   Have I, by faith, personally received the Lord Jesus Christ as my Saviour (John 1:12)? 나는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서 개인적으로 영접하였는가(요한복음 1:12)?   Am I resting my entire self on who He is (John 8:24), on what He has done (1 Cor. 15:3-4) and on what He has said (John 6:47)? 나는 나의 전체 자아를 그분이신 것과(요한복음 8:24), 그분께서 하신일과(고린도전서 15:3-4),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요한복음 6:47)에 의지하여 안식하고 있는가?   Do I believe that He is able to completely save all those who come unto God through Him, including me (Hebrews 7:25)? 나는 그분께서 나를 포함하여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 모두를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히브리서 7:25)?   Do I believe the statement of Christ found in John 5:24? 나는 요한복음 5:24에서 발견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가?   Is John 3:16 true of me? 요한복음 3:16말씀은 나에게 해당되는가?   Have I ever shared with others that Jesus Christ is my Saviour (Romans 10:9-10; Matthew 10:32)? 나는 다른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이심을 이야기해 본적이 있는가(로마서 10:9-10; 마태복음 10:32)?   Am I able to say from my heart: “My hope is built on nothing less than Jesus’ blood and righteousness. I dare not trust the sweetest frame but wholly lean on Jesus’ Name. On Christ the solid Rock I stand—all other ground is sinking sand, all other ground is sinking sand!” [Edward Mote] 나는 나의 마음으로부터 말할 수 있는가: "나의 소망은 바로 예수님의 피와 의로우심에 의지한 것이다. 나는 다른 가장 좋은 어떤 것(사람,환경,감정 등)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나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서있다 --- 모든 다른 땅은 무너지는 모래이다, 모든 다른 땅은 무너지는 모래이다!"(마태복음 7:24-27)   Another helpful question that I can ask myself is this: If I were to die today and stand before God and He should ask me, “Why should I allow you to enter My holy heaven?” what would my answer be? If my answer in any way points to MYSELF (my own credentials, my own works, my own religious deeds, etc.) then I am not standing on solid ground. Here are some examples of people putting their trust in SELF: 내가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또다른 도움이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는데 그분께서 나에게 "왜 내가 너를 나의 거룩한 하늘나라로 들어오도록 허락해야만 하는가?"라고 물으신다면 나의 대답은 무엇이 될까?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대답이 나자신(나 자신의 자격, 나 자신의 행위, 나 자신의 종교적인 실행 등)을 가리킨다면 나는 반석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자기 자신에게 신뢰를 둔 사람들의 몇 가지 예들이 있다:   • “God should let me into His holy heaven because in my life I have done more good than bad.” •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생애 동안 나쁜 짓보다는 선한 일들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나를 그분의 거룩한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하셔야만 한다.   • “God should let me into His holy heaven because I try to keep the ten commandments.” • 하나님께서는 내가 십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나를 그분의 거룩한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하셔야만 한다.   • “God should let me into His holy heaven because I’m a member of a certain church” etc. All such answers point to ME, but salvation is not of ME; salvation is of the LORD! •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교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나를 그분의 거룩한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하셔야만 한다 등등. 이러한 모든 대답은 나를 강조한다, 그러나 구원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There is only one reason why I can enter God’s holy heaven. The appropriate response is this: “I will enter God’s holy heaven for one reason and one reason only. It is only because of Jesus Christ my Saviour. Apart from His work on the cross I could never be saved. Apart from His life which He has given to me as a free gift, I could never enter His holy heaven. He is my only hope. He is the only righteousness I have and He is all the righteousness I need. Thank You Lord for saving my soul and making me whole.” Notice how this answer points away from SELF and clearly points to the Saviour and to Him alone!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적합한 대답은 이것이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로만 거룩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그분께서 행하신 일이 아니고는 나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분께서 나에게 값없이 주신 그분의 생명이 아니고는 나는 결코 그분의 거룩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분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분은 내가 가지고있는 유일한 의로움이며 그분은 내가 필요로하는 모든 의로움이다. 주님 나의 혼을 구원하여 주시고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 대답은 자신을 강조하지않고 명백하게 구원자 그분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나를 100%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런 값없이 구원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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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1 23:07:36 | 신혜경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만약 2천년전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   처음엔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과연 그때 그 시절에 있었다고 해도, 예수님을 과연 믿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예수안에" 사이트가 있었기에 제가 올바른 지식을 접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지식을 접하곤 합니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춘 분의 블로그를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지동설을 말씀하시길래, 천동설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지동설이 맞다고 하더군요.   분별력이 뛰어나신 분이라도 (내가 보기엔) 틀린것을 믿을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렇든 우리는 우리가 믿어왔던 것이 공격받을때 즉각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저항합니다. 내가 믿던것이 틀렸다는 것이 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믿어왔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것이 정말 쉽지 않지요. 지동설을 믿던, 천동설을 믿던 본인의 자유의지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의지에 달린것 같습니다. (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이 믿는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미신자(未信者 : 아직 믿지 않는자)들은 예수님 믿는것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는듯 합니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춘 분 또한 본인이 지동설을 믿겠다고 작정하신것이지요.   그분의 블로그에 이런 댓글을 남겨드렸습니다. ------------------------------------------------------------------------------------------------ 가끔 성도들끼리도 의견충돌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지체들끼리... 오죽하면 사도들도 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용한 성경구절을 다시 보니 엄밀하게 사도들끼리의 분쟁은 아니었네요)   사도행전 15장.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 형제들을 가르치며 이르되, 너희가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 사람들 사이에 작지 않은 분쟁과 논쟁이 일어나니라. 이에 그들이 이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자기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니라.   지동설을 믿건, 천동설을 믿건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천동설을 믿는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 논리, 믿음보다 성경이 맞다는 믿음이 우선합니다.어느 성도가 말했듯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우리의 생각이 성경과 충돌할때, 무엇을 선택할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긴 하나, 성도라면 성경을 우선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40년을 넘게 당연히 지동설이 맞는것이지라고 살다가, 성경말씀과 지동설이 충돌한다는것을 알게 되었을 때,커다란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토끼가 되새김질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본인들의 지식이 우선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과 같이 되시지 말길 바라옵니다.-------------------------------------------------------------------------------------------------     의견 차이.... 어찌보면 의견차이가 없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이렇든 우리는 다 제각각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믿음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신비이자 기적인듯 합니다.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으니 말씀대로 이뤄질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 28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7:13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18 12:49:12 | 김형욱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오랫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던 수잔 콜린스(Suzanne Collins)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헝거게임(Hunger Game)>이다.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는 평을 듣는 소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소설과는 또 다른 장르이니만치 평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 소설은 읽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영화만으로 보았을 때는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야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 ‘팬암’이라는 제국이 지배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팬암의 수도인 ‘캐피톨’은 12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전체 영토를 지배하며 관할하고 있다. 각 구역의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지만, 정부의 체제에 순응하며 별다른 저항을 할 엄두도 못 내며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캐피톨’의 사람들이 누리는 부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매년 한 번씩 개최하는 소위 <헝거게임>이라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방식의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각 구역마다 매년 2명의 10대 남녀를 자원 또는 강제로 선발하여 이렇게 모인 총 24명의 소년 소녀들을 일정한 공간 (산도 있고 강도 있는 매우 넓은 공간 임) 안에 집어넣고, 그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경쟁 게임을 시킨다. 더군다나 이 경기를 TV로 생중계하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캐피톨’의 시민들은 누가 이길지 내기까지 걸면서 열광적으로 즐기는 이 나라 최고의 축제 이벤트가 바로 말 그대로 ‘배고픈 자들의 게임’ 즉, <헝거게임>이다.   여러 구역 중에서도 최고로 가난한 구역인 12구역에서, 어느 날 추첨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헝거게임에 나가야만 하는 동생을 살리기 위하여, 16살 여주인공 ‘캣니스’는 이 경기에 자원하게 된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이제 그녀가 펼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담과 로맨스로 관객 몰입도를 한층 높여 주며, 뒷이야기 들을 끌어간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영화의 호불호는 갈려지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눈이 적어도 아마추어 수준은 조금 벗어났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필자의 눈으로 볼 때도 이 영화.. 꽤 괜챦은 편이다. 나머지 이야기의 결과와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더 이상 이 자리에서 필자가 논의할 주제는 아니어서 생략하기로 하고,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본 영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하자.   팬암제국은 크게 3개의 작은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12구역으로 나눠진 보통 사람들의 세계다. 둘째는 캐피톨로 불리는 소위 엘리트 시민들의 세계.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엘리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공간인 세 번째 세계, 즉 헝거게임이 있다. 엘리트 시민들은 보통 사람들을 구역 안에 가두고 통제한다. 여기에 순응하고 살아가면 비록 가난하고 질은 떨어지지만 생명은 보장된다. 그래도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이들의 반란을 제어하기 위해서 엘리트 그룹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게임의 룰을 제시하며, 보통 사람들을 헝거게임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다. 여기서 살아남는 자는 보통 사람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며 반란의 기운은 사그러든다. 왜냐하면 엘리트들이 누구라도 원하면 헝거게임을 통해 정당한 (?) 방법으로 엘리트 사회로 진출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 놨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 나타난 팬암제국의 모습은 매우 단순화된 구도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근본 구조가 많이 닮아 있다. 영화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있고, 대다수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다. 엘리트 그룹은 독점하다시피 세상의 부를 거머쥐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삶의 질고에서 힘들어 하며 꿈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엘리트 그룹은 여러 가지 룰을 바꿔 가며 헝거게임 같은 구도를 만들어 준다. 가령 여러 가지 정치적 이념으로 판을 짜 주기도 하고, 다양한 철학이론과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며, 때로는 경제 활동의 방식을 여러 형태로 바꿔주기도 해 가며 그 룰에 따라 게임을 하라고 한다. 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리하여 엘리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하여 문자 그대로 피 흘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뛰며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게임의 룰 속에서 더러는 성공을 거머쥐며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의 얼굴이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이란 것이 본래 그렇듯이 누군가는 반드시 탈락자 혹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무한경쟁의 치달음 속에서 비록 승자로 살아남을지라도 그 성공에 상응하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지금 어떤 게임의 룰을 따라 헝거게임이 진행이 되고 있는가? 성장위주의 자본주의 이념 속에서 적자생존적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유물론적 인본주의 진화론의 룰인가?  아니면 좌파니 우파니 아직도 방향을 못 잡고 한물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벌여야 하는 정치 논리의 룰인가? 서바이벌 게임 속을 바삐 뛰어 다니는 동안 우리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누군가가 어느새 한명씩 숨죽어져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고는 있는가? 우리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이 게임을 하게 되었는지는 과연 제대로 알면서 뛰어 다니고 있기는 하는 것인가?   본래 3부작으로 쓰여진 소설에 맞추되, 영화는 그 표현과 시간적 제약의 한계를 감안하여 총 4부작으로 계획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주인공의 운명과 팬암제국의 결말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 소설을 읽어 보지 못한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현실 세계의 결말은 어찌될지를 알고 있다. 팬암의 세계에는 없으나, 현실세계에는 존재하는 바로 그 '책'이 한 권 우리 손에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영화 속에 보면, 헝거게임에 출전하는 소년 소녀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각자의 오른팔에 칩을 심는 장면이 나온다. 헐리우드 영화가 잘 쓰는 서브리미널(subliminal) 기법이라는 것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7:3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11 00:38:31 | 김정훈
누군가 미명으로 작성한 글인데 인테넷 메일로 저한테 보내 왔습니다. 바른성경으로 바른예배들 드리고 바르게 교회를 하고 있는 우리도 읽어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올립니다. 참고 하세요   "기독교 자폐증" ----- Forwarded Message -----   교회는 하루아침에 부와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소망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가난한 자, 굶주린 자, 핍박 받는 자의 종교에서 부자의 종교, 배부른 자, 핍박하는 자의 종교로 변질 되었다.   주기 위해 믿었던 종교에서 가지기 위해 믿는 종교가 되었다. 평화를 위한 종교에서 전쟁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한 종교에서 내가 살기 위한 종교로, 사랑하기 위해 믿는 종교에서 사랑 받기 위해 믿는 종교가 되었다.   예수는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지만, 예수의 교회는 하늘 보다 높은 종탑을 쌓았고, 황금으로 치장 된 제단을 세웠다. 제사를 위해 바쳐졌던 제물은 제물을 위한 제사가 되었고, 오늘도 교회는 헌금 봉투에 적힌 이름을 줄줄이 읽어대며 헌금 액수를 주보에 떡 하니 적어놓고 있다.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걸어 놓은 교회는 넘쳐나는 재물로 치장 되어졌고, 교회 안에서 예수는 아직도 벌거벗겨진 채 피를 흘리고 있지만, 피 흘리는 예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두꺼운 비단 옷을 걸친 채, 주체하지 못하는 비만의 기름을 흘리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교회의 성벽은 높아만 간다. 그럼에도 예수 믿고 천당만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교회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분명 한국 교회가 처한 심각한 자폐증 증상이다.   한국 교회의 자폐증은 치료 되어야만 한다. 치료법은 오직 한 가지이다.   버려야 한다. 돈을 버려야 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7:3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10 13:35:31 | 정구만
일루미나티가 당당히 자신을 나타내는 이유... 예전엔 프리메이슨 자체가 미스테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가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려면 상당히 어려웠으나 이제는 과거(5년전)보다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책이나 글은 가능한 멀리 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와 반진리가 섞여 있을 때 어떤 것이 반진리인지 분별하기에 상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진리를 말하다가, 아주 간혹 예를 들어 연옥에 대한 교리를 아주 애매하게 섞어 놓으면, 그냥 따라가게 되더군요.   니므롯의 후예들 세미나를 통해서 알게 된 일루미나티 카드.  저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상당히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물론 이 세상이 사탄에게 속하여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간혹 까먹어서 탈이지요) ( 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5-19)   이 세상이 사탄에 속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사탄이 의도한 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볼 때, 왜 하나님께서는 잠잠히 계시는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과연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하게 된 글입니다. 일루미나티(루시퍼)의 예언 사역 http://blog.naver.com/esedae/90138077833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이 실현되는 때 일 겁니다.   루시퍼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흉내내었듯이, 루시퍼가 예언하고, 그 예언을 이뤄나가는 것처럼 보여 줌으로 세상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고, 대중(일부러 분별하려 하지 않는)들에게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사탄의 음모(계획)가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 소위 말하는 신세계질서(NWO New World Order)를 수용하도록 세뇌 혹은 주입시키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탐하여 왔듯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예언의 실현을 따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불과 몇년 전)에는 숨어서 은밀하게 진행하던 일들을 이제는 버젓이 드러내놓고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중매체가 이미 오염되어 사탄의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eminem0814/10135690756   아마도 이젠 어느 정도 힘이 있다고 그리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신호"라는 책은 아마도 하나님의 교회에게 각성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의도일수도 있습니다. http://truthnlove.tistory.com/1229 http://blog.naver.com/yoochinw/130095097472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사탄에게 속하여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님의 권능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는 고아처럼 내버려두신 것은 아닙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벧전5-7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8-31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떠받쳐 주리라. 이사야 41-10   너희는 마지막 때에 드러내려고 예비된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벧전1-5   요약하면, 일루미나티가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이유는 이제 자신들의 때가 왔고, 그리고 힘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동안 거짓 대언자 (빌 하이벨스, 릭 워렌,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등등), 교회 내의 거짓된 활동 (알파코스, 예수전도단(관상기도)등) 대중매체, 도서 등을 통해 세뇌를 시켜왔고 현혹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일 겁니다.   더욱 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때 입니다.   We are in this world, but not of this world.     (P.S. 제가 링크를 한 블로그의 내용을 전부 지지하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의견들이 있음으로 분별에 도움이 되고자 함 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쓸까 말까 한참(3일)을 고민했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7: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10 08:02:40 | 김형욱
예전에 간증에서도 썼듯이, 본인은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그리고 기존 개신교회로부터는 별다른 실족이나 분쟁· 충돌이 없이 자연스럽게 분리가 이뤄졌으며(타지에서 학교 다님), 자습을 통해 KJV 진영에 입문했다. 기존 신앙 노선에다 KJV가 그대로 추가, 보충, 보강되는 형태로 신앙관이 발전한 사례이다.   그래서 그 영향을 받아서 본인은 이단들에 대해서는 과격하게 비판하고 공격한 전적(?)이 있으나 우리나라 현대사나 교회사는 심지어 정치적인 관점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정신세계의 고향이니까. 예를 들면,   - 우리나라 정부가 잘못한 것보다는 북한이 저지른 만행을 훨씬 더 규탄한다. - 과거의 독재 정권은, 민주화 인사나 용공분자들을 탄압하긴 했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괴롭힌 적은 없는데,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보다 그들이 더 카리스마 있게 훌륭한 큰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 옛날에 좀 무고한 사람들이 정치 정적으로 몰려 죽은 것보다는, 오늘날 국가가 흉악범에게 사형 집행을 안 하고 있는 게 훨~씬 더 열불나는 일이고 그거야말로 인권 침해이다. - 한국 교단이 과거에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보다는(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몇몇 순교자들, 그리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이라든가 제헌 국회가 기도로 시작한 것 등에 더 애착이 간다.   이런 식이다. 내가 자유가 있고 이만한 기독교 인프라가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KJV에 대한 믿음도 쉽게 추가될 수 있었다는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다. ... (1) 비록 모교회는 여전히 KJV를 잘 모르고 심지어 이단시하고는 있지만, 그건 걔네들 사정이고.   또한 나는 우리나라 사회와 국가 제도에 대해 피해의식이 없다.그 열악하던 여건에서 그나마 이 정도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것이 다행이고, 옛날에 저질러진 부조리는 피아식별도 안 되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필요했던 게 많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정부가 교회처럼 행동하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우리나라 현대사에 피해의식이 많은 진영의 사람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시나리오가, 내가 보기엔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겨지지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과 같은 사고방식은 대체로 우파 내지 보수라고 불리는 듯했다.   나는 그 반대편 성향의 진영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했다.현대사에 대해 편협한 정보로 자꾸 쓸데없는 피해의식과 반체제 의식을 조장하는 것이 아주 거북스러웠고, 또 그런 진영이 대체로 반기독교 성향도 강하며 반성경적인 사회 운동도 대개 그쪽 주관이니까 말이다. 체벌 반대, 동성애와 낙태 합법화, 사형 폐지 운동 같은 것들.   글쎄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내가 미국 산골짜기에서 자랐으면 전형적인 redneck 같은 꼴통 부류가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개인적인 성향은 그렇다.난 오만하게도 킹 제임스 성경을 믿고 세상 정세를 성경으로 판단하는 크리스천일 정도이면, 사회· 정치관도 당연히 그런 쪽으로 기우는 게 마땅하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비록 내가 국가 교회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이지 않은가?기독당 같은 것이야 정말 멍청한 짓이지만, 까놓고 말해 학생 인권 조례 반대 서명 같은 건 공감할 만하지 않냐 말이다.   그랬는데 KJV 진영 내부에도, 교리적으로 알 거 다 알 만한 분들 중에도, 진보 성향이 강한(명백하게 성경과 어긋나는 교리는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성향이) 크리스천들이 적지 않다는 걸 훗날 알게 됐을 때 나는 굉장한 culture shock을 경험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지 연구와 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얻은 해답은 이렇다. 이런 분들은 기존 개신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본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썩어빠진 기성 교계의 '대안'으로 기독교 안티 대신 KJV 진영을 선택한 관점이다. ... (2) 기존 개신교회에서 정말 산전수전 다 겪고 힘들게 KJV 진영으로 오신 분들, 메이저급 교회에서 벌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교리적 배도와 부정부패, 몰상식한 짓들을 직접 본 분들은 기성교회들의 치부가 눈에 훨씬 더 빨리 들어오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공격하는 수준은 정말 어지간한 기독교 안티들을 능가한다. 심지어는 한국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도 안 좋은 부분을 더욱 부각시켜 보는 듯하다.   가령, 난 주기철 목사 같은 분을 존경할 줄만 알았지, 신사 참배에 굴복한 친일 기독교가 해방 후에도 그대로 한국의 주류 기독교계로 이어졌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을 안 해 본 관점이었다. 한 마디로 놀랐다.   요컨대 KJV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경로로 이쪽으로 유입되었으며, 신앙 배경도 의외로 다양하다. 이것이 정치 견해라든가 기성 기독교계에 대한 호불호 차이로도 나타나는 듯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1)과 (2)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물론, 성경이야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정치 중립적이다.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데엔 수구 기득권층과 외세뿐만이 아니라 민중들도 똑같이 기여했다.한편으로는 부자들, 통치자들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도 똑같이 악했다고 분명히 기록한다.그런 성경으로부터 한 논조만 뽑아서 자기 프로파간다의 정당화에 써먹는 것은 잘못이다.사실은, 세상에 왜 이런 지저분한 이념 대립이 생기는지조차도 성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성장 배경과 취향의 특성상, 특정 논조에 대해 사람이 저마다 bias와 preference를 갖는 것 자체는 개인 자유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크리스천도 국가 시민이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허나 반역을 저지르는 것만 아니라면 이것으로 사람 인격을 판단하고 불필요하게 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좌빨이든 수꼴이든 똑같이 죄인이고, 예수 믿어 거듭나면 각각 구원받은 좌빨과 구원받은 수꼴이 될 뿐이다. ^^;;   아, 물론 상대방 편을 보고 네놈들이 하는 짓이 반역과 똑같다고 싸우는 경우도 있긴 하다. ㅜㅜㅜ 답이 없네 그럼.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판단하시길 원한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7:5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09 11:56:56 | 김용묵
  진화론은 도대체 성경과 조화가 될 수 있는 이론인가?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또한 동시에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어쩌면 진화론 사상의 정착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윈은 한때 신학도로서 본래 목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연선택이론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믿게 되면서 그는 점차 신앙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은 그 후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게 하였는데, 유명한 진화론자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나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같은 사람은 모두 진화론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버리고 자기 자신이 진화론자가 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결국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떠나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과 진화론을 같이 혼합하여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먼저 앞장서서 지켜야 마땅할 신학교에서 조차도 진화론과 타협한 신학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으나 진화론적인 방법으로 창조를 하셨다는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든지, 이를 조금 변형하여 하나님께서 진화과정의 중간 중간에 필요에 따라 개입하여 창조를 하셨다는 ‘점진적인 창조론’, 그리고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지질학적 연대로 해석하는 소위 ‘날-시대 이론’ 등이 모두 진화론과 타협하여 나온 이론들이다.   성경은 곳곳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조 사실의 기록에 대하여 매우 엄격히 말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진화론과는 혼합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에 진화론의 본질은 반-성경적이다.   우선 먼저 진화론이 성경과 조화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각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열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창조 후에 안식을 취하심으로 (창 2:2-3; 히 4:3, 10) 지질학적 연대와 생물의 점진적인 진화의 가능성을 배제하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창조물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선언하심으로, 수억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진화의 가능성을 부정케 하셨다. 넷째, 예수님 자신께서 직접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역사적인 사실로 취급하셨다 (마 19:4-6; 막 10:6).   그럼 이제 진화론이 왜 반-성경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진화론에 의하면, 사람의 조상이 지구상에 처음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약 200 만 년 전으로서,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생물들이 지구상에 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람이 나타나기 까지 수 없이 많은 죽음과 생존을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진화를 계속해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을 지으셨다면,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벌써 수많은 죽음의 행렬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모순이 된다. 성경은 잘 아는 바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과 사람을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는데 (창세기 1장), 이 말은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죽음이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진화론적 개념과는 같이 어울려 생각하기 매우 어려운 말이다.   오히려 성경은 창조가 있은 후에,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에 죽음이 들어 왔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내용은 신약성경에서 더 분명하게 명시되어 나타나는데, 바울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롬 5:12) 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 한사람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전 15:22). 뿐만 아니라, 성경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창조물들도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고 있다고 기록 (롬 8:22) 함으로써, 결국 생물계에 나타나는 죽음이 사람의 존재 이후에 생겨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 혹은 이것의 변형인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에 빠지는 일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기원과 부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부활은 한마디로 죽음을 이긴 사건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 이 땅에 생겨난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부활이란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죄 없는 예수님이 죽음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음으로 부활을 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요 (고전 15:12-19), 그래서 그것이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진화론적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의 죄악이 있기 훨씬 이전에 이미 죽음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죽음은 우리의 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 가셨다가 부활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고 만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동시에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되어 결국은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바로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예수님의 부활과 진화론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관계를 띠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진화론이 갖고 있는 바로 이와 같은 반-성경적인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매우 열심이면서도 정작 그 복음의 기초를 두고 있는 부활의 사실성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는 많은 교회가 무관심하거나 혹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진화니 창조니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고도 부활의 사실만을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교회 활동에 열심을 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창세기의 역사적 사실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 (엡 4:13) 성경을 오직 부분적으로만 믿는 것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경험해본 이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 옆에 같이 있던 한 범죄자는 그냥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 낙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 할 수 있었겠지만 (눅 23:40-43),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아직 이 땅에 살면서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엡 4:13), 믿음 안에 거하되 터를 다지고 정착해서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않아야 (골 1:23) 할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겠는가? 이는 오직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기록된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의 신학자들이 성경과 진화론을 혼합한 이론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의 이론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다윈의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이론들이 그 당시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어 졌었다. 즉,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창조를 하셨으며, 따라서 창세기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지구 진화의 역사에 걸맞게 재해석 되어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에 대한 이와 같은 신학적 접근 방식의 모순을 아주 예리하게 웅변적으로 잘 지적했던 사람이 바로 그 당시의 대표적인 인본주의자로 소문이 나있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이었다. 그는 아주 열렬한 진화론의 신봉자로서 ‘다윈의 불독’ 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다윈 자신보다도 더 진화론을 전파하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진화론을 가지고 성경 기록의 진실을 파괴하길 원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이 더 이상 성경을 믿지 않으려 할 때 이를 즐거워하였다. 반면에 진화론을 성경과 혼합하여 받아들임으로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랄한 공격을 통하여 그들이 취하는 자세의 부당성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여러 성경 구절을 직접 펼쳐 보이면서, ‘성경의 창조 기록에 진화론을 합치는 일은 결국은 믿음을 죽이는 일이 될 것이며, 결국 창세기를 진화론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신약의 교리를 진리로 붙들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어리석은 일이 될 뿐이다’ 고 조롱하고 다녔다. 물론, 그의 말의 요점은, 결국 더 이상 그와 같이 어리석은 타협을 그만두고 진화론을 제대로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성경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진화론은 잘못된 사상이다. 진화론은 우리의 신앙을 노략질하는 철학이요 헛된 속임수이다 (골 2:8). 그러나 헉슬리의 지적은 옳았다. 비록 그 자신은 성경을 불신하였었지만, 무엇이 성경 전체의 기초가 되는 책인 줄을 잘 알고 그것을 정확히 공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는데 공헌 할 수가 있었다. 진화론자였던 헉슬리가 오히려 더 잘 파악하고 있던 것처럼, 기독교의 교리는 절대로 진화론과는 양립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우리는 양자택일을 하여 오직 한 가지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가 죽은 지 백년이 더 지난 지금은 어떤가? 도대체 언제까지, 교회는 그야말로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며, 교회가 지켜내야 할 성도들을 다 잃어버리고 있을 참인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08 18:36:20 | 김정훈
기독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들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5:14, 17).   또한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성경이 기록한 인간의 기원과 타락,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속하심의 역사, 이 모든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어지면서 이야기의 정점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고 묻는 것은, 바로 기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고 묻는 것과 동일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본주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부활의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심들을 제기해 왔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다만 기절하고 있다가 깨어난 것이라는 주장과, 둘째, 예수님께서 죽기는 하셨으나 실제로 부활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예수님께서 정말로 죽으셨다는 사실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을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정말로 숨을 거두셨는지에 대하여 잠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우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받으신 고통은 어느 정도쯤 이었을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동안, 로마 병정들로부터 수 없이 많은 채찍질을 받으셨다. 이 채찍은 플래그럼(flagrum)이라고 불렸는데, 가죽 끝에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뼈와 납 조각을 붙여 만들어, 한번 내리칠 때마다 살점을 뜯어냄으로, 여러 번 내리치게 되면 피부 밑에 근육까지 뜯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피와 살점이 엉겨 붙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피부 조직을 망가뜨리면서, 극심한 고통과 함께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의 무게는 대략 50kg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그 무게로 인하여 고통은 가중되고, 마침내 언덕에 다다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의 육신은 이미 죽음의 문턱에 가 있었을 것이다. 의사인 트루만 데이비스(Truman Davis)는 그의 저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인간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관해 잘 기술하고 있다. 먼저 온 몸을 지탱하고 있던 양 팔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면서, 점차 가슴의 근육이 마비되고, 결국은 숨을 못 쉬게 됨으로, 십자가상에서 질식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부리고 있던 다리를 위로 밀어 올려 주면 막힌 숨을 내뿜어 잠시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때 십자가에 매달린 자의 다리를 꺾어 주게 되면, 그들의 죽음을 재촉할 수가 있는데, 성경 (요 19:31-34)에 보면, 바로 이와 같이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 곁에 같이 매달렸던 강도의 다리를 꺾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리는 그가 이미 죽은 관계로 꺾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그의 죽음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 19:33-34). 상처가 난 곳에서 많은 물과 피가 흘러내리는 경우는 십자가상에서 심장파열로 죽은 경우에 나타난다고, 조쉬 맥도웰(Josh McDowell)은 그의 책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증언(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에서, 더블린 대학의 생리학 교수인 사무엘 호우톤(Samuel Houghton)의 말을 인용하여 적고 있다. 만약, 예수님께서 조금이라도 살아 계셨다면 피만 나왔을 것이나, 피와 물이 같이 나온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신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로마 병사는 그의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셨다고 4 복음서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마 27:50; 막 15:37; 눅 23:46; 요 19:30). 또한,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까지 하였으므로 (막 15: 44-46),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더 이상의 의심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자,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은 갖추어 졌다. 하지만, 부활이 문자 그대로 부활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과연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무엇인가?   조쉬 맥도웰은 그의 저서 <부활의 요인(The Resurrection factor)>에서, 우리가 고려해야만 될 일곱 가지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의 돌무덤의 봉인 (마 27:66)이 끊어진 사실이다. 이 일로 붙잡히게 되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야 되는 두려운 일을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모두 자기 몸이 잡힐까 두려워서 겁을 잔뜩 먹고 몸을 피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예수님의 빈 무덤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척에 둔 예루살렘에서 부활을 증거 하였는데, 만약에 빈 무덤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의 주장은 누군가에 의해 금방 탄로가 났을 것이다.   셋째, 당시에 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큰 돌의 무게는 대략 1,400~1,800 kg 이라고 한다.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다고 가정했을 때,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로마 병정들의 눈과 귀를 막지 않고서는, 이렇게 큰 돌을 그들에게 전혀 들킴 없이 옮기는 일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넷째, 로마 병정들이 도망 쳤다는 사실이다. 만약, 빈 무덤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이 도망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섯째, 제자들이 무덤에 가보았을 때, 예수님의 몸은 온데간데없고, 세마포만 그대로 놓여 있었으며, 머리를 쌓던 수건 또한 딴 곳에 개켜 있었는데,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 해갔다면, 그렇게 옷을 벗기고 또한 가지런히 정돈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여섯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이 너무나도 많고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고전 15:1-8). 단순히 눈으로만 목격된 것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상처까지 확인되고 (요 20:24-29), 같이 식사도 하였으며 (눅 24:13-35; 요 21:1-14), 다양한 시각에 여러 계층의 사람에게 나타났는데, 그를 따랐던 자들뿐만 아니라, 그를 박해하는 자에게 까지 나타나셨다 (행 9:1-9). 그러므로 예수님을 열렬히 따르던 자들에게서 있을 법한 무슨 집단 환각 증세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증거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일곱째,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자들이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의 풍습에 따르면, 여자들의 증언은 법정에서도 인정이 되지 않을 만큼 무시 되었다. 따라서 만일 부활의 사건이 날조되어진 것이라면, 여자들의 목격은 의도적으로 성경의 기록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이상 위에서 열거한 일곱 가지 사실 이외에도,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죽음 이후 180도 달라진 제자들의 변화된 삶이 예수님의 부활을 또한 무엇보다 잘 증거하고 있다. 만약에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바쳐 이를 증거 하려고 하였겠는가?   증거의 신빙성을 다루는데 있어 최고의 전문가로서, 하버드 대학의 법학 교수를 지냈으며, 이 분야의 불후의 명저로 손꼽히는 <증거의 법칙에 관한 논문>을 남긴 바 있는 싸이먼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을 조사해 본 끝에,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상의 그 어느 사건보다도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 확실한 증거들 앞에 더 이상 어찌 부활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모두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게 외치자.   할렐루야, 우리 주님 부활 하셨으니,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다 같이 소리 높여 부활하신 우리 주를 찬양 할 찌어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8:2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07 17:26:31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