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귀한 간증 입니다.감사합니다. 홍승연 목사님께 하나님의 아버지의 위로와 그리스도안에 평안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
2010-04-28 20:43:17 | 송재근
믿음으로 ..........
저희 교회는 주일날 한번만 말씀을 전하고 수요일 모임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목사님들 말씀을 다같이 모여서 듣군 합니다.
오늘 수요일 모임 날이라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은 히12:1-3 에 말씀 주제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는 중에서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병이 다 낫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을 전하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으로 아멘이 되었고 또한 그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메여있던 것이 확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제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주일날에 형제자매님들이 다 모인다 해야 9명이 모이고 수요일 모임에는 5명이 모입니다.
시골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어렵다 하기보다 사실 정신적으로 더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원인이 형제자매가 적다는 것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역이나 믿음으로 산 사람의 기준을 전도를 해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고 있느냐? 아니면 적게 모이느냐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질보다 양을 더 많이 봅니다.
그리고 시골 사역을 하다 보니 그간 많은 분들의 물질 지원을 받고 살았는데 돈을 믿음으로 지원해준다고 하면서도 꼭 돈만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간섭을 하려하고, 돈을 받는 사람을 많이 무시하군 합니다.
그것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이전에 미국에 어떤 목사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전혀 몰랐는데 한국에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그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그 목사님이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백불을 보내주었고 후에는 삼백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이렇게 저를 채워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의 모든 것을 간섭을 하였고, 늘 교인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주면서 돈을 어떻게 썼는지,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늘 보고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피곤할 정도로 간섭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가 형제자매님이 많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에게 물질을 보내던 것도 끊고 아예 교제도 끊어버렸습니다.
후에 제가 전도해서 현제 교제를 하고 있는 연길에 형제를 가로채서 그 형제를 물질로 사서 일을 하더니 결국 그 형제님이 전도를 잘 못한다고 그 형제도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기가 찼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나도 발전성이 있는 그런 곳에서,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사역을 하고 싶은 생각이 숨어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평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서 저도 잘 몰랐는데 무슨 일에 부딪히면 그런 마음이 순간 올라 오군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오랫동안 연결이 끊겼던 목사님하고 대화가 되면서 그 목사님이 어떤 큰 도시교회에 소개를 해주시면서 저보고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해줄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소개해주는 곳은 큰 도시일 뿐만 아니라 발전성이 있는 곳이고 또한 이미 형제자매님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모든 것이 잘 준비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알게 되면서 저는 정말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제 사역을 하고 있던 시골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이유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많이 생각해 냈고, 목사님들께도 그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서 꺼림직 한 것이 있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이 난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뜻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다가 내 욕망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것인데 지금 저는 말씀을 끌어다가 내게 결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시골교회를 버리고 그 큰 시내 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잘 못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정리를 했지만 그런데 자꾸 제 마음에서 왜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몇 명 안되는 시골에 있게 할까 하는 마음이 들군 했습니다.
오늘 정동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라합은, 믿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서 삼손에 대해서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에서 아멘이 되었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제 마음속에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겼으며........]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이 감사가 되고 찬양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렵더라도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믿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에 메여있던 부분이 해방이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이 시골에서 끝까지 할머님들을 섬겨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책에 믿음으로 살았다고 기록해 주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으로 홍승현이는 시골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끝까지 단 한명 남을 때까지 형제자매님을 섬겼더라.]라고 생각이 되니깐 정말 마음에서 힘이 나고 기뻤습니다.
사람들은 날 실패한 사역자라 생각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날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은 날 기억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교제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붙들어 주신 김재근 목사님, 정동수 목사님, 홍두엄 목사님, 김영균 목사님, 박참하 목사님 .....등 여러 목사님들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가 되었습니다.
김재근 목사님은 제가 시골을 떠나려고 할 적마다 저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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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8 19:53:38 | 홍승현
여러분! 행복하세요?
비도오고 날은 지궂은데 여러 형제 자매님들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최근 백수가 되어 열심히 집에서 방콕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저는 왜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오늘은 문득 행복한 생각이 들어 몇자 적습니다.
제가 행복해 하는 이유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때문입니다
사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흠정역 성경을 이미 접하고 생활속에서 묵상하리라 생각됩니다.
최근들어 성경을 많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밥먹는 시간과 딸과 놀아주는 시간 빼고는 계속 흠정역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어쩌다 제가 이제야 흠정역 성경을 보게되었는지! 지금에라도 흠정역 성경을 대할 수 있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만나게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자를 긍율이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다니 주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감계무량할 따름입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마치 묘수 풀이 해놓은 것처럼 희미하던 것들이, 무감각 했던 것들이 살아 춤을 추듯 다가 옮니다.
이러니, 아니 기쁠수가 있가 있으며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데도 즐겁기만 합니다. ㅎㅎㅎ
주안에서 한 지체된 형제, 자매님들도 축축한 날이지만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07:54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04-28 17:29:33 | 노영기
이전에 외국출장갈 때에 공항에서 바닥에 옷감을 깔고 절하는 이슬람 종교인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종교를 떠나서 참 지극 정성이다라는 느낌을 갖게하더군요. 그들의 종교관이 너무 투철해서 외국여성/남성과 결혼하게되면 배우자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확률이 상당히 크다고 하지요, 요새 우리나라도 이슬람을 믿는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한국여성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이 염려스러운 부분입니다.요즘 유럽도 많이 이슬람화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 인구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본적도 있습니다.김** 형제님 말처럼, 이슬람은 가짜니까 마귀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가 봅니다.하지만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경계해야할 위험한 대상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종교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
2010-04-28 12:49:20 | 김학준
세상엔 자세와 정신 면에서는 그리스도인을 부끄럽게 하는 불신자들도 엄청 많습니다. 비록 그 자세와 정신 '만'으로는 구원은 못 받지만 말입니다.
2010-04-28 11:11:20 | 김용묵
이슬람교도들도 자기들의 경전을 그렇게 오랜 기간 정확하게 보존할 수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자신의 말씀을 정확하게 보존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지 못하시겠습니까?
이슬람교도들은 진리가 아닌 경전을 붙잡고서도 철저히 그것이 신의 계시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완전히 보존된 진리의 말씀을 주셨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할 능력이 있을까, 이 성경이 100% 진리일까?"라고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2010-04-28 10:42:14 | 김문수
오늘날 전 세계 일부 대도서관에서 가장 오래된 꾸란 사본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이 완전히 진본과 다르지 아니하고 완전히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에 의심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그는 발견된 가장 오래된 꾸란과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꾸란들을 비교하여 보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알제리아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아세아 극동에 위치한 한국 서점에서 구입한 꾸란과 가장 오랜된 꾸란을 서로 비교하여 보아도 그것들은 우스만 시절에 만들어진 꾸란 사본들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도 의심이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구입한 꾸란을 가지고 꾸란을 암송한 하피즈가 암송하는 꾸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하여 보아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읽혀지고 있는 꾸란은 최초에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하여 세상에 전해진 바로 그것이다. 꾸란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되었는가에 대해 일혹의 의심을 가질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오늘날의 꾸란이 무함마드를 통하여 계시되었던 그 당시의 꾸란과 일점일획도 차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메디나 소재 파하드 국왕 성 꾸란 출판청에서 출간한 한국어 꾸란 서문에서]
* 이슬람이 꾸란 믿는 것보다는 성도가 킹제임스성경을 잘 믿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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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22:00:57 | 김재근
영과 혼에 대한 개념적 이해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벧전 3:19절의 "영"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사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대상입니다. 여기서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있어 죽음 후에는 심판밖에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 자체가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서의 영을 사람으로 해석해서 죽은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그럼, 예수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불순종한 타락한 천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나중에 불호수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은 아닐 것이고, "주님의 승리"를 타락한 천사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7 18:42:14 | 김학준
지난 해 기독교계 화제거리 중 하나였던 장로교 모 교단과 이모 목사님의
분쟁의 중심에도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이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모 목사님과 분쟁하였던 장로교 모 교단은 이권다툼 속에 부패한 자신들의 모습을
만천하에 홍보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는데 중요한 건 한국기독교계에서 강해설교의 권위자요
얼마 안 남은 신실한 목사로서 여러 성도와 신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이모 목사님의 성경관이
바른 성경교리에서 많이 비뚤어 진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논란이 되었던 이모 목사님의 저서 (성숙○○)의 사도신경 해설부분을 보면 벧전3장19절을 인용하면서
'지옥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위에 지적하신대로
'복음전파'와 '선포'를 구분하지 못하고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이런 저명한 목사님이 함으로
그를 따르던 교인과 신학생들의 교리가 흐려지고 잘못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조금만 정신을 차려 보면 세상은 온통 원수 사탄이 만들어 놓은 지뢰밭 입니다. 가장 신실하고 순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변질되어 교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지금 변질되지 않은 말씀과 교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여러분들의
사역이 얼마나 중대하며 소중한지요 그 수혜를 입은 저 자신 다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수고에 대한 상급은 오직 하나님의 왕국에서 받을 것을 믿습니다.(단12:3)
모두 힘내십시오! 감사합니다.
2010-04-27 17:36:15 | 김대용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벧전3:19에는 영들(spirits)이라고 했지, 혼들(souls)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2010-04-27 10:30:47 | 김문수
창세기 6장 전반부, 베드로후서 2장을 찬찬히 읽어보시고, 지옥 선도 찾아서
보시면 벧전3:19절의 "영"에 대한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2010-04-27 10:23:25 | 김학준
카톨릭 교리가 잘못된 것이고 성경이 옳습니다.
개역: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
흠정역: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복음을 전한 것(유앙겔리조)이 아니라 선포(케륏소)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다시 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2010-04-27 10:18:00 | 김문수
노아당시 불순종하던 자들이 감옥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잘 이해가 안되서요.
이구절을 카토릭에서 로사리오기도나 다른 행위를 열심히 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근거로 설명하던데요.
이 구절은 사도신경과 함께 설명하면 좋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2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천당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 - 예컨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 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2010-04-27 09:30:06 | 이정순
음악적으로만 보아도 너무 놀라운 역작인 '메시아'의 오라토리오 대본이 킹제임스성경이라니 더욱 애정이 가네요.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전자음에 너무 쉽게 의존하는 여타 CCM과 달리
클래식한 기본틀을 유지하는 것도 배울 점입니다. 잘 듣겠습니다.^^
2010-04-27 02:12:29 | 김대용
샬롬^^ 동감입니다... 주안에서~ 힘내세요. 홧팅!!!
2010-04-26 16:56:21 | 하두환
자유를 악용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많은 교회나 단체가 처음부터 과도한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유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에 억압의 요소가 있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 특히 한국 사람들이 - 억압받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주러 오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자유를 방종의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2010-04-26 16:55:48 | 관리자
구원받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로 인해 저도 늘 마음이 무거운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꿈에서까지 그들이 보이고, 그들로 인해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곳곳에서 재난소식이 들려올때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확신할때마다
마음은 더 무겁고 조바심이 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입도 뻥긋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전화로라도 믿음의 말을 하려하면, 대번에 화제를 바꾸어버리니까요.
주변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바른성경을 말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파고 들 필요가 있느냐며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가슴에는 안타까움만 가득한 채로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2010-04-26 16:37:49 | 이은희
솔직하게 쓰신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래 전 청년부 수련회에서 한 자매가 서로의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힘쓰자며 권면해 주었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요.
홍승현 형제님(목사님 이신듯^^)을 비롯한 이 게시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분들의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적어도 직계가족만이라도)이 꼭! 꼭! 모두 구원받아
함께 천국에서 만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2010-04-26 15:51:50 | 김대용
서울 구로에 있는 진리침례교회를 소개합니다.
김영균 목사님과 형제자매님들이 오랫 동안 킹제임스 성경과 영혼의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진리침례교회
2010년 5월 9일에는 김영균 목사님께서 사랑침례교회에 오셔서 오전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오후에는 믿음의 여정과 킹제임스 성경의 최종 권위에 대해 2시간 동안 세미나를 해 주십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방문하셔서 교제를 나누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04-26 14:11:15 | 관리자
저 역시 선교단체에 있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리더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이 안 되면 복종이라도 해라. 휴일이나 방학에도 집에 가지 말고 선교단체에 남아서 함께 교제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인간적인 정을 끊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요,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라고 가르쳤으니까요. 그런 강한 훈련을 받으면서 뭔가 뿌듯한 마음을 느꼈지만 그것 역시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요, 내가 뭔가 했다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의 종을 섬기는 곳이다."라고 합니다. 종이라면 성도들을 섬겨야지 왜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의 종에게 순종하고 주의 종을 섬겨야 복 받는다"고 생각하니 문제지요. 우리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따르며,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2010-04-26 13:34:15 |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