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잡지 건강과 생명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대 글•이건오_선린의료원장. 서울시민교회
한국교회에 대한 걱정이 도를 넘었다. 한국교회사상 지금과 같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반기독교 단체들이 교회 말살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교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고 일간 신문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도 탄식하고 있고, 어느 장로님의 여고생 딸은 학교에서 교회 이야기를 했다가 아직도 교회 다니느냐고 왕따를 당해서 학교에서 교회 다닌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반기독교 동아리들의 댓글을 위하여 고용되었던 크리스천 요원들이 끝없이 올라오는 교회비리들 때문에 댓글 달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어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곳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교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교회에 대한 걱정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고 각자 근신하며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 같더니 차기 회장을 놓고 또 갈라져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의 교단들이 탈퇴를 선언했고 일부에서는 한기총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에 처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경건하다고 하는 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 최악의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보면서 이것은 하나의 불가사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질책도 많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정을 들여 대형 예배당을 만들 이유도 필요도 있겠지만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지 않아 주변의 작은 교회들이 고통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중 대형 교회들의 목사들이 저지르는 재정 비리와 성적 비리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일간지에 오르는 형편이고 이로 인하여 기존 성도들이 낙심하여 믿음에서 떠나기도 하고 불신자들은 전 교회가 다 그러한 줄로 생각하여 교회 기피현상이 일어나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2. 한국교회 속에 잠식해 있는 영적 요인들 1) 도를 넘은 기복신앙신앙에는 기복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하는 객관적 관점에서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형태의 것은 도를 넘었다. 따라서 자기가 목표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이 아니고 하나님도 없다. 2) 인본주의의 확산교회 안에 존재하는 사람 중심의 예배와 조직 그리고 운영 등은 이미 교회 속에 파당을 무수히 일으키고 있다. 특히 당회장 제도의 역기능은 우리 속에 스며 있는 유교적 조직형태와 맞물려 많은 피해를 낳고 있다. 물론 사람이 교회를 인도할 것이지만 성령충만한 사람이 인도해야 한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사람이 열심을 내는 것이 교회의 가장 문젯거리이다. 3) 세속주의의 지배교회 안에 침투해 있는 세속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회의 타락의 근본 원인이 바로 세속화이다. 교회에서 하고 있는 것이나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것이 차이가 없다.
그 첫째는 물질주의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하나님은 안 계셔도 돈은 있어야 무엇을 한다. 돈이 있는 교회가 어디서나 큰소리치고 큰일의 주역을 맡는다. 이것이 이단들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고 있다.
둘째는 이기주의이다. 교회 집단 이기주의는 극에 달했다. 자기 교회나 자기 교회 당회장 이름이 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구제를 하여도 자기의 이름으로 한다.
셋째는 쾌락주의이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쾌락위주이다. 세속의 모양을 본 따와서 교회 안에서 행해도 재미만 있으면 용납된다. 설교도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되어 죄를 책망하지도 않는다.
넷째는 권위주의이다. 세속에서와 똑같이 높아지려고 한다. 그것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의 조직도 봉사의 직분으로 보지 않고 계급으로 보기 때문에 수많은 돈 선거가 치러진다. 3. 시편 50편이 지적하는 현대교회의 문제점 형식적인 예배를 책망하는 본 시편은 현대교회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의미 없이 드려지는 번제물, 하나님과 거래하는 헌금 또는 헌물, 행위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 하나님의 교훈을 가볍게 여기고 싫어함,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겨서 등 뒤로 던짐, 도적과 연합함, 간음자의 동류가 됨, 악한 말과 형제를 비방하는 언어 폭행 등이 그것이다.
이는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도 조금도 무섭지가 않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무신론이 나타난다. 사람 있고, 조직 있고, 프로그램 있고, 돈 있으면 하나님은 없어도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조직신학적 교육이 없어지니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믿는다.
4. 건강한 교회의 회복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잊은 것은 하나님과 그 본질적 믿음을 잊은 것이다. 하나님이 잠잠히 계시니 하나님이 나와 같은 줄로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처음 믿었을 때, 우리 한국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앞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들부들 떨었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생생한 삶의 체험이었지만 현대교회는 모방하는 교회이다. 초대교회의 성령님이 지금도 그때와 같이 역사하신다.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님 말씀 앞에 서자. 이 지경이 된 교회를 보면서도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아, 눈물의 광장으로 다시 함께 모이자. 우리 스스로에게 분노의 불을 쏟아내자. 그리하면 지금은 병들었어도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날, 곧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2012-03-05 16:34:58 | 관리자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정의
고린도전서 15:3-5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로마서 3: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5:12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6:23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4:25
그분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여기서 잠깐 구속(救贖) 대해 살펴보면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갈라디아서 4:5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계시록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디도서 2: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시편103:3-4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멸망에서 구속하시고 인자하심과 친절한 긍휼로 네게 관을 씌우시며
시편34:22
{주}께서 자기 종들의 혼을 구속하시나니 그분을 신뢰하는 자는 아무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의 혼의구속은 이미 완료 되었슴.
로마서 8:23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3-17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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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4 14:57:23 | 이도형
킹제임스 성경사전에선 한때덮는그룹, 사탄, 옛뱀을 하나로 보지만
에스겔 28장, 창세기3장,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사탄 = 옛뱀인건 알겠지만
에스겔28에나오는 에덴동산을 둘러 지킨 덮는 그룹이 사탄이됐단건 이해가안갑니다.
옛 뱀은 아담,하와와 같이 쫓겨난걸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에덴동산을 지켰죠?
그리고 루시퍼 = 사탄 이란건 어디에 나오는지 궁금합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7: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3-02 19:03:02 | 장인철
지난 3월 1일 (한국시간)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는 팝가수 ‘레이디 가가’를 보기 위하여 약 1,000 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로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히트곡 “Born this way"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는 행사가 그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는 작가 ‘디팩 초프라’와 유명 토크쇼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등이 같이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은 모두 잘 알려진 뉴에이지 신앙의 전도자들이다. ‘레이디 가가’가 약 13억 원의 거금을 출자하고 그의 어머니가 관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재단에서는 앞으로 학교나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청소년들이 없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한다.
얼핏 보면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사업으로 모두가 환영해야 할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앞으로 그 재단이 나아갈 방향과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대하여 성경적 입장에서 볼 때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레이디 가가’는 팝뮤직 계에서도 도발적인 안무와 파격적인 의상, 그리고 선정적인 노랫말 등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는 가수이다. 2011년 그래미상 시상식 퍼포먼스에서는 자신이 알에서 부화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때로는 우주인 같은 분위기로 때로는 이교도의 여신 같은 분위기로 매 공연 때마다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최신 히트곡 중에 하나인 <Born this way>의 노랫말 가운데는 인종의 다양함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슬쩍 동성애도 또한 본래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나아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참고로 레이디 가가 본인 자신은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으며,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 주례를 서기도 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동성애자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제 자신의 노래 제목을 딴 재단을 설립하여 무엇을 청소년들에게 전파하고 돕자고 하는 것인지 앞으로 계속 지켜 볼 필요가 있겠지만, 평소 그녀의 행보를 통해 볼 때 어느 정도 가는 길이 예측이 된다. 겉으로는 평화와 관용과 다양성의 포용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 ‘스스로 신이 되자’고 속이는 뉴에이지의 그 달콤한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 그녀가 이제 곧 4월 27일이면 공연을 위하여 한국에 온다. 기도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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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2 17:31:07 | 김정훈
안녕하세요.복잡하고 세상적인 제맘을 여기에 올립니다. 저희가게에 여호와 증인분들이 너무 자주 들락 거려서 흠정역 성경 공부를 하고있다 설명들였는데 제문자나 가게에 오셔서 더 집요하게 질문하시구 흠정역을 배우는이유며 성경 말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절 대하시구 예수님과 지옥과천국에대해서두..머리가 아파죽을지경이네요...거기다 전에 다니던 목사님께선 목사말에 순종하지두 않는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겠냐며 제동네분들 심지어는 읍면에 가게들에 다니며 은근히 흉을 보시구 거기다가 가까운곳에 저희성도(그만둔교회) 님 그분이 분식점 하신다구 가게 공사하시는데 기도루 응답받았다고 제가 하는업종 메뉴를 끼어노으시구 후 전 상관없어요 하지만 너무 우울해지네요 제가 가는길이 너무 비극적인길같구...너무들 절 .......미워하는듯해서요 오늘은 좀 울었네요 술두좀 마시구요...목사님이 절 정말 저주하시고 절 이지역사회에서 미친존재루 내미는게 슬프구 차라리 제가 믿음 생활을접구 편하게 살고싶은맘까지드네요...하지만 전 구원받고싶어요... 부족한 제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그냥 푸념하고싶었어요...답은없지만 오늘 너무 우울하지만 내주위엔 세상적인 친구뿐이지만....구원받고싶어요......그리고 한가지 소망이 지금이순간 이루어진다면 이젠 그만 제가 다녔던 목사님께 하나님에 응답이끈기길기도합니다..정말 이제그만 그목사님께 전예성목사님꼐 응답해주시지안길 이세상적인 사람이 기도드립니다...하나님 제가 잘못됐다면 용서해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1 16:01:2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29 02:51:32 | 정현정
3일전에 지구 곳곳에서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동물들이 떼죽음을 하고 있다고 <자유게시판, #1500>에 적어 올렸는데, 한 가지 사실을 더 추가로 올리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일본 시마네현 오키의 해안에서 심해어의 일종인 "큐우리에소" 수백만 마리가 죽은채로 해안선을 따라 5 km에 걸쳐 널려져 있음이 발견되었다. 이와 함께 다른 심해어의 일종인 "산갈치"와 고래의 일종인 "자트우크지라"도 죽은 채로 떠 밀려 와 있음이 최근에 잇따라 발견 되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해 3월에 일어났던 일본 대지진 발생 1주일전쯤에도 동경 근처 이바라키현 카시마시 해안에서 50마리가 넘는 돌고래가 떠올랐던 일이 있어 다시 한번 대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일고 있다.
토카이대학 해양학부에서 어류학을 전공하는 후쿠이 아츠시 교수는 “이번처럼 심해어가 떼를 지어 올라온 것에 대해 뚜렷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해저환경의 변화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물고기의 죽음이 지진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 을 내비쳤다고 한다.
시마네현의 오키는 지도에서 보듯이 (노란색으로 표시한 도고섬과 도젠섬 일대를 오키라고 함) 우리나라의 독도와는 불과 160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이다 (참고로 서울에서 대전 까지의 거리가 약 150 km 이다). 만일 이곳에서 염려하는 것과 같이 대지진이 일어 날 경우에는 우리나라에도 쓰나미가 영향을 줄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이다 !!
.... 이 글을 읽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생각은 여러분 각자의 자유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7: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28 23:41:10 | 김정훈
근래에 여기저기서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2012년 들어서만해도 근 두 달 동안에 알려진 내용만 해도 벌써 아래와 같이 줄줄이 열거될 정도로 많다.
1. 2012.01.01:
미국 아칸소 주에서 약 5,000 마리의 찌르레기가 죽은 채로 하늘에서 떨어져 주민들이 지나가다 떨어지는 새에 머리를 맞기도 함.
2. 2012.01.03:
노르웨이 해안에서 약 20t에 달하는 청어 떼가 죽은 채로 몰려옴.
3. 2012.01.05: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붉은어깨찌르레기과에 속하는 새 약 500마리가 죽은 상태로 도로에서 발견 됨.
4. 2012.01.05:
스웨덴 남서부에 위치한 한 도시에서 약 100마리에 이르는 갈까마귀 떼가 눈 덮인 거리에서 죽은 채 발견 됨.
5. 2012.01.08: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101번 고속도로 변에서 약 100여 마리에 달하는 새들-갈색 및 검정색 깃털의 작은 새들이라고만 알려짐-이 죽은 채로 발견 됨.
6. 2012.01.10: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파엔차라는 도시에서는 약 700마리의 멧비둘기가 죽은 채 발견 됨.
7. 2012.01.11:
미국 시카고 인근 미시간호수 주변에 수천 마리의 죽은 물고기가 떠오름.
8. 2012.01.13:
미국 앨라바마 주에 있는 한 고속도로 변에서 약 300여 마리에 달하는 찌르레기(grackle)가 죽은 채로 발견 됨.
9. 2012.02.06:
뉴질랜드에서 도미 수 백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사례가 보고 됨. 비슷한 시기에 영국 켄트 해안에서도 약 4만 마리의 꽃게들이 죽은 채로 발견 됨.
10. 2012.02.10:
돌고래가 좀체 나타나지 않는 페루 북부 해변에서 약 260여 마리의 돌고래 사체들이 무더기로 발견 됨. 현지의 한 어부는 "좀 더 깊은 바다로 가면 돌고래를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선 볼 수 없다. 돌고래는 해변에 살지 않는다. 희한한 일"이라고 전함.
그밖에도 정확한 날짜는 안 알려졌지만, 지난 두 달여 사이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에서 찌르레기와 울새 수백 마리가 죽는 일이 있었고, 켄터키주에서도 적어도 3종류 이상의 새 수백 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으며, 텍사스 주에서도 200여 마리의 새떼가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는 물고기 수천 마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아칸소 주와 메릴랜드 주에서도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알려졌다.또한 브라질의 항구도시인 파라나구아 해안에서는 최소 100t 가량의 정어리와 작은 흑조기, 메기 등이 떼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동물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떼죽음을 당한채로 발견되는지 관계자들은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설들이 무성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일관된 설명을 주지는 못하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지구 곳곳에서 결코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공중의 날짐승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고 하셨다 (마 6:26). 그것들이 곳곳에서 이렇게 자주 떼죽음을 당하는 데는 분명 어떤 자연과학적 원인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아 알게 하시고자 허락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자 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너희가 능히 하늘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시대의 표적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마 16:3)”하고 꾸짖으셨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알만한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지만, 예수님의 표현대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던 그들은 눈과 귀가 어두워 여전히 새로운 표적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지만 (마 24:36), 여러 가지 징조를 허락하심으로 "깨어 있는 자가 되어 그 경점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마 24: 42-44).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마치 노아의 날 들과 같다고 하신 것인데,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기 전까지 홍수 이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하셨다 (마 24:37-39).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들이 살면서 늘 하게 되는 일상이 아닌가? 매일 먹고 마셔야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면 또 아이를 낳고 키우고 또 다시 결혼을 준비 시켜야 하고.. 결국 우리들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 불현듯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어도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깨어서‘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고 있다면 그 속에서도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의 경점을 알고 준비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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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5 19:20:20 | 김정훈
바느질개미는 아프리카와 호주 아시아 등지에 퍼져 있는 개미의 한 종류인데, 나무 잎사귀를 엮어서 둥지를 만들고 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인접한 나뭇잎을 서로 가까이 닿도록 끌어 오거나 이것들을 구부리거나 해야 한다. 보통 8~10 mm의 길이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이기에 혼자서 하기에는 잎과 잎 사이가 너무 멀 수가 있다. 이럴 경우 수십 마리가 서로의 허리를 붙잡고 일렬종대로 매달려 인접한 나뭇잎을 끌어당기곤 한다.
두 개의 잎사귀가 인접해지면, 다시 수많은 개미들이 이번에는 일렬횡대로 매달려 잎사귀 측면을 곧추 세우고 옆에 있는 잎사귀 측면과 짝을 맞춘다. 이제 다른 개미가 다 자란 유충을 입으로 물고 와서는 더듬이로 유충의 머리를 톡톡쳐 신호를 보내면 이제 유충의 입에서 실을 뿜어내고 이 실로 두 나무 잎사귀를 서로 접합하여 단단한 나뭇잎 둥지를 완성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일련의 모든 과정이.. 유충의 실을 이용하여 나뭇잎을 접합시킬 줄을 누가 알았으랴? 누가 이러한 지혜를 알려 주었는가?
이제 서로가 협력하여 아늑한 자신들만의 둥지가 만들어졌다. 이런 멋진 둥지라면 그 속에서 먹이도 저장해두고 여왕개미가 새끼도 맘 놓고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것들을 혹시라도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침입자들로 부터 잘 지켜내는 일이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바로 몇 일 전에 발표된 아주 따끈따끈한 새로운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바느질개미들은 외부 침입자가 나타날 경우 흥미롭게도 “집단적 기억”의 공유를 통하여 대응하는 능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호주의 과학자들이 바느질개미(학술명: Oecophylla smaragdina)를 가지고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가령 자신들의 둥지 곁에 침입자가 나타날 경우 이와 먼저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 개미는 이 침입자의 냄새를 자신의 집단 전체에 퍼뜨리고, 그 결과 이 침입자를 직접 만나지도 않은 다른 모든 개미들 또한 이를 기억했다가, 만일 나중에 동일한 침입자가 다시 나타날 경우 보다 공격적으로 이 침입자에 맞서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는 마치 “모두 붉은 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A라는 집단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것을 본 B라는 집단의 한 사람이 이것을 직접 보지 못한 자기 편 사람들에게 가서, 붉은 색의 스카프를 두른 사람을 보거든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국 한 사람의 기억을 모두가 자신의 것처럼 공동으로 기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바느질개미의 생존을 위하여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된 일종의 “집단적 지혜”라고도 볼 수 있다.
개미들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페로몬을 통하여 신호를 주고받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침입자의 정체를 기억하였다가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기억을 갖게 하는지 그 신경과학적 기전은 아직 불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를 집단 내에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까지도 더불어 같이 공유한다는 사실은 그 현상 자체만으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곤충의 세계에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된 의사소통 수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바느질개미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고, 나아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이를테면 하나의 신앙공동체이다. 우리들의 이런 믿음에 대하여 어떤 믿음의 침입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우리 중에 누군가가 먼저 경험한 그 지식을 공동체 모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동시에 그 귀중한 정보를 동일한 믿음 안에 있는 킵바이블 공동체 모두가 비록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경험자로부터 얻은 간접적 경험과 지식을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 내지는 “집단적 지혜”로 공유한다면 우리들 또한 바느질개미들처럼 보다 효과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켜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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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00:17:44 | 김정훈
세상은 정말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어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의 종교’를 향해 치닫고 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 또한 ‘하나의 종교’를 향해 가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이해의 사원 (The Temple of Understanding)"을 아는가? United Nation (UN)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조직으로 세계 종교 간의 화합을 유도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만들기 위하여 설립된 단체이다. 카톨릭 교황과 달라이 라마를 비롯하여 유수한 세계의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매년 정기적으로 수많은 강의와 위크숍 등을 개최하며 그들이 꿈꾸는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13년에 제10차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될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이라든지 영국의 전 총리였던
Tony Blair 가 2008년에 설립한 Tony Blair Faith Foundation 같은 단체는 모두 “이해의 사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단체 또한 동일한 목적, 즉 ‘하나의 종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Faith Foundation을 이끄는 여러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한국에 잘 알려진 Rick Warren 목사 또한 당당히 기독교를 대표하는 자문위원으로 있고, 따라서 그의 베스트셀러 책 ‘목적이 이끄는 삶’이 어떤 목적으로 많은 기독교인을 이끌고자 했었는지는 쉽게 짐작이 될 줄로 안다.
뉴욕에 가면 St. John The Divine Cathedral 이라고 불리는 성당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이해의 사원”의 본부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집회와 의식을 통해서 뉴에이지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이교주의 (Neo-Paganism)를 전파하고 있으며, 가령 Gaia 사상으로 유명한 James Lovelock 이나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Al Gore 등이 이곳에서 ‘지구가 신 (Earth is God)’이라는 이교주의적 강의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St. John The Divine Cathedral 건물의 내외부에는 곳곳에서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이 발견된다. 실제로 이 건물은 프리메이슨 회원인 JP Morgan의 자본으로 지어졌으며, 이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이 발행하는 잡지인
"Masonic World"는 이 성당을 표지로 장식할 만큼 크게 칭송하며 환영하였었다. 그러고 보니 UN의 “이해의 사원” 회의실 도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무엇인가 하나로 연결되어짐이 보이지 않는가?
WCC와 Faith Foundation도 모자라 지난 2011년 10월에는 사우디의 왕 압둘라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International Center for Interreligious and Intercultural Dialogue"를 짓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연구센터에서는 앞으로 기독교 및 무슬림, 불교, 힌두교 등의 각 종교를 대표하는 자들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세계종교통합을 위한 일들을 수행해 나갈 예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구센터의 자금을 지원하는 사우디 왕이 2007년 바티칸에서 카톨릭 교황을 만나고 나서 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아, 하나 더 있다! UN 산하에서 세계종교통합운동을 위해 크게 쓰임 받고 있는 "Universal Peace Federation" 이라는 또 하나의 NGO 조직이 있는데, 바로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만든 조직이고 현재 그의 아들인 문현진씨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조금만 눈을 열어 세상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너무나도 조직적으로 세상은 한 곳을 향해 힘을 모아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종교’로 종교를 통합하고자 함이다. 참고로 "남겨진 자들"이란 책으로 유명한 Tim Lahaye 목사님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세의 징조' 가운데 아주 중요한 세 가지로 '단일 정부', '단일 통화', 그리고 '단일 종교'의 출현을 지목한 바 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한다. 오직 예수님 이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할 다른 이름은 전혀 없다고!!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 건축자들이 업신여긴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 하셨느니라." (행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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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0:39:37 | 김정훈
오늘도 좋은 사설을 읽어서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거의 TV를 보지 않습니다.
피곤하면 누워서 가끔씩 EBS 프로그램을 보곤 합니다.
이것은 결코 TV를 보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서가 있는 사람이기에 좋은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보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이런 문명의 이기가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물론 자기 절제가 있어야겠지요.
며칠 전 발렌타인 데이에는 작은 딸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빠 오늘은 엄마를 위해 초콜렛을 사 가지고 가거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요."
워낙 사랑을 말로 행동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지금까지 결혼 후 28년 동안 발레타인 데이 같은 날 - 심지어 아내의 생일에도 - 무슨 특별한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내도 나는 그런 사람이가 보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사랑하기에 더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딸의 문자를 보고는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히 찾아보니 스필버그의 "워 호스"(War Horse)가 있었습니다.
12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고 하고 평점이 좋아서 급히 표를 사고 저녁에 같이 관람했습니다.
서정적인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 이 휴먼 드라마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깨끗하고 정서를 풍성하게 해 주는 영화였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인터넷 등에서 나가수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사실 그 내용이 무언지 몰랐습니다.
이번에 큰딸네 방문했다가 나가수가 재미있다고 막내 딸이 엄마 아빠랑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30분 정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가수들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인생에 열정이 없는 것은 저는 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불꽃을 피우는 것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열정이나 실력보다는 외모를 가장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의 사설은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http://cn.moneta.co.kr/Service/paxnet/ShellView.asp?ArticleID=2012021717495604474
우리 사회가 특히 교회가 실력 있는 사람들을 배출해야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하나님도 외모가 아니라 속중심과 열정을 보십니다.
실력 있고 뜨거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샬롬
정동수[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9:0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8 11:21:39 | 관리자
오늘 아침에 읽은 사설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을 단지 정치/사회 기사로 보지 말고 내 자신과 교회에 적용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고 나는 나가수인가? 나꼼수인가?
우직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찾고 전하는가?
프로그램으로, 재미로, 록, 랩 음악으로 사람들의 욕구만을 만족시키고 있는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6/2012021602094.html?news_Head1
예의 바르고 열심히 일하고 섬기며 정정당당한 성도와 교회가 되기 위해 애를 씁시다.
샬롬[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9:0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7 10:32:35 | 관리자
“졸업은 또 다른 시작”
윤석희목사(천성교회, 부총회장)
졸업시즌이다. 학교마다 졸업식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식장에 밀가루를 덮어씌우고, 까나리 액젓과 마요네즈, 계란과 간장, 심지어 식초와 케첩까지 등장했다. 교복을 찢고, 바지와 셔츠를 찢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다.
아마도 철학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전문가의 말대로 가상세계와 현실계를 혼동해서 생긴
일인지는 모르지만 보는 이들의 입맛이 씁쓸하다. 더군다나 좋은 일과 나쁜 일,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일과 의식하지 않는 일, 선과 악의 구분점이 없어졌다는 생각까지 든다.
졸업은 졸업일뿐이다.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마친 것에 불과하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 졸업이기에, 자기 눈앞에 또 다른 출발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될 때 무모하고 난폭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신학교 졸업은 사회와 사뭇 다르다.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불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졸업과 함께 3년 혹은 7년 동안 연마한 실력을 가지고 목회 현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 주관이 있겠지만 돈벌이가 많은 곳으로 가는 형편이고 보면 사명감과 소명 의식은 옛말처럼 느껴진다.
‘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성한 생각이 구시대 사람들에겐 있었다. ‘밥 먹고 살 곳은 오직 교회뿐이라’고 생각했던 미련한 시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직업관이 일찍 목회 쪽으로 굳어져 버린 시대도 있었다. 그것이 소명감인지, 사명감인지는 하나님만이 평가하실 일이지만 나는 그런 시대에 목사님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사람이다.
부름 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 자기 집과 교회의 거리를 따져보거나 다른 직장과 교회의 대우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면 학원이든, 과외든, 아니면 아내가 벌든 그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굉장히 실리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짐을 덜어주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를 그런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목회는 돈 좀 벌어 놓고 하거나 이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것저것 해보다가 다 안 되면 목회하지 뭐?’라는 말도 들어 보았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흉내라도 내는 모양이다. 자기도 ‘슈퍼 목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목사 중 99%는 슈퍼 목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 있게 섬길 수 있는 단체의 일이 아니다. 자기는 그렇게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교회는 수용하지 않는다.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는 사람들이 신학교를 지원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모으지 못해도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졸업해야 한다. 신학교 지망생들이 점점 줄어드는 일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서글픈 일만은 아니다. 참 사명자와 소명자가 들어오면 되는 것이다.
올해도 신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을 축하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선배가 잘하는 것도 배우고, 못하는 실패의 원인도 배우라. 졸업은 졸업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정암은 ‘죽기까지 공부하라’고 했다.
어디 책보는 것만 공부겠는가? 하나님과 인간, 세상과 교회를 열심히 공부하라. 죽기까지 배우면 실패가 적을 것이다. 아니 승리만 있을 것이다. 졸업은 졸업이 아니라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09:01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6 16:35:10 | 관리자
다윈 시대에 진화론 전파에 누구 보다 앞장서며 활약했던 "다윈의 불독" 토마스 헉슬리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1.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해는 1859년이고 그때 다윈의 나이는 이미 50세에 다다렀지만, 다윈은 이미 오래전 약관 29살의 나이에 진화의 개념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다만 그 증거를 모으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하기까지 무려 20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과 친분을 맺고 있던 Charles Lyell, Joseph Hooker 등의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나누곤 하였었는데, 헉슬리도 다윈보다 16살이나 어린 나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비범함을 인정받아 그 모임에 초청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였을 때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설명 방법에 대하여, 헉슬리가 "이것을 (진작에) 생각해내지 못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How extremely stupid not to have thought of that!)"라고 외치며 감탄해 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평소 비판적인 태도로 곧잘 다윈의 입장을 난처하게도 하곤 하던 그였지만, <종의 기원> 이후 비로소 그는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그는 진화론의 열렬한 전파자가 됩니다.
2. 하지만 헉슬리가 비록 진화론 자체는 사실로 받아들였더라도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여전히 "자연선택"을 통한 점진적 진화의 방법에 대하여 100% 확신하는 대신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헉슬리는 비교해부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매우 경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고,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윈이 주장하는 점진적 이론에 대하여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이를테면 가축의 교배를 통하여 후대에 새로운 종이 나오게 되는지 같은 것) 자신의 확고한 결론을 유보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화론과 윤리학> 같은 그의 저서를 통하여 사람의 정신적 특징들마저도 생물의 육체적 속성들과 마찬 가지로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인간의 도덕 및 종교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결국 토마스 헉슬리야 말로 어쩌면 단지 생물학에만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르는 진화론을 소위 “다윈주의”로 끌어 올려 후대에 까지 널리 퍼지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3. 참고로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할 당시의 생물학 수준은 아직 제대로 "돌연변이"에 대한 개념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었고, 잘 아는 것처럼 멘델의 유전법칙이 나온 것이 1865년인데 그나마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1900년에 들어서서야 재발견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진화론에 제대로 된 돌연변이 이론이 반영된 것은 1940년을 전후로 등장한 “현대종합이론”이 나오면서 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오늘날 소위 "신-다윈주의 (Neo-Darwinism)"는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라는 두 바퀴의 축 위에서 굴러 가는 모습을 갖게 되고, 그 중에서도 "돌연변이'이야말로 진화의 기전을 논하는데 있어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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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02:48:57 | 김정훈
계6:2절의 흰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 가요
여러 견해가 있는 데
예수님 으로 보는 견해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사역자로 보는 견해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 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2:0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10 18:45:33 | 김삼일
미국이 변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최신 뉴스를 소개합니다. 2월 9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의회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날 표결에서 워싱턴주 하원은 찬성 55 대 반대 43으로 동성 커플 간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가결했는데, 이제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만 하면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뉴욕,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버몬트, 뉴햄프셔, 아이오와에 이어 미국에서는 7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주(州)가 됩니다.
한편, 하루 전에는 캘리포니아주가 제정한 동성 결혼 금지법에 대하여 미국 연방법원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일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12월 동성 연애를 범죄 취급하고 있는 국가에 대하여 차별정책을 철폐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독려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해외 지원금도 중단하는 방법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국무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 기관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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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0 10:43:11 | 김정훈
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66번 글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같이 읽고 참조 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이 그 후대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똑 같이 적용이 되는 것일까요?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담이 아닐진대 이거 좀 억울한 것 아닐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창세기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가 먼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우선 아담의 범죄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지요. 그것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은 것 즉, ‘불순종’입니다. 선악과가 필요한 이유 또한 바로 선악과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인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자유게시판 #1461 글 참조). 이제 하나님은 아담에게 처음 말씀하신 약속대로 죽음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창 2:17).
2.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처음 창조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명령이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고,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것” 입니다 (창 1:28). 그런데 이제 아담이 죽어야 합니다. 아담이 다산하고 번성하여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게도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러 죽을 자를 정하시되 바로 자신의 독생자로 정하시고, 대신 아담은 계속 살리어 이 땅 위에 번성하게 하심으로 본래 계획하신 바를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3. 그러나 그 분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하심의 시간표에 따라 많은 세대가 지나가며 ‘때’가 차야만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분이 마침내 이 땅에 오시어 그 분의 ‘의’를 이루시기 까지는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인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4. 성경은 말하기를,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one blood)에서 만드셨다" (행 17:26)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음을 의미 합니다. 아담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죄인’이란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도 이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사람도 없으며 (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5:12)”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모두 원칙적으로 본인이 죄를 많이 짓든지 적게 짓든지 혹은 (그러기는 거의 불가능 하지만) 아예 안 짓든지에 상관없이 모두 죄인이며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 율법은 죄를 죄로 인정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율법이 없던 때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지만 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롬 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롬 5:14)” 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아직 율법이 없어 정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군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자칫 오해 하듯이 우리가 살면서 짓는 죄, 즉 율법이 정죄하는 그 수많은 죄를 지어야만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심지어 사람 이외의 다른 창조물조차도 썩음의 속박 가운데 놓여 있으며 (롬 8:21),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면서 (롬 8:22), 하나님의 아들들 즉, 구속함 받아 양자되는 우리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롬 8;19, 23). 창조물과 창조 세계가 우리처럼 율법이 정죄하는 죄를 질리가 만무한데 그들도 썩음의 속박과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이 땅에 들어 온 ‘사망’의 권세 아래 모두가 같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5. 이와 같이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이 ‘사망’의 법 아래에 놓여 있었으나, 이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이 사망의 법을 ‘믿음의 법’으로 바꾸기로 하십니다. ‘믿음의 법’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는 법이요, 차별이 없으며, 그 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롬 3:21-28). 그러므로 이제 아담에게 내렸던 ‘사망’의 저주는 ‘영생’으로, ‘정죄’는 ‘의’로, 그리고 마침내 아담의 ‘불순종’은 ‘순종’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누구를 통해 들어왔었습니까? 한 사람 아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역전 드라마는 또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롬 5:17). 이것이 바로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롬 5:14)”라고 말씀하신 뜻입니다.
6. 그러면 아담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믿음의 법’을 따를 수 있을 까요? 가령 아브라함은 역시 아담의 자손으로 예외 없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롬 4:1-3). 그런가 하면 다윗은 “자기 불법들을 용서 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시편에서 노래한 바 있음을 바울이 알려 줍니다 (롬 4:6-8). 이 말씀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법’이 완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법’ 아래 놓여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믿음의 법’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행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는 성경이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다시 아담으로 돌아가 봅시다. 아담의 죄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면서 (창 3:21), 이브의 씨가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예언 하셨습니다 (창 3:14-15).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이고, 이 소망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 여기시려는 새로운 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은 이 소망을 후대에 열심히 전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비록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는 모든 창조물까지도 이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종노릇하게 되었음에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소망의 믿음을 갖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믿음의 조상들로 세워 나가신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에서 아담이 불순종하였지만,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선악과 대신 이 메시야 소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여전히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갖게 된 것이 됨으로 여전히 선악과가 주고자 했던 의미는 지속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완성된 ‘믿음의 법’ 아래서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물으심으로 아담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법’을 순종하여 의에 이를지, 아니면 아담이 선악과 앞에서 그랬듯이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믿음의 법’에 또 다시 불순종하여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를지 (롬 6:16),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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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21:16:55 | 김정훈
이런 질문을 하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인지...의문이 들면서
그래도, 많은 분들의 감사한 댓글로 많은 깨달음을 얻기에 질문을 드려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의 죄를 모든 인류의 죄가 되도록 하셨나요?"
범죄한 것은 아담이었는데,, 아담의 잘못이 수천년을 지난 우리 아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한 죄의 몫이 지워졌는데....
왜 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만 죄의 댓가를 물으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아담이 죄를 지었으니까요.)
왜 궂이 아담의 죄를,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다고 하여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몫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나요?
내 부모가 범죄를 저지른 강도라고 해서 자식까지 죄인이지는 않지 않나요...?
과연,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는건가요? 아니면, 죄라른 것은 원래 유전이 될 수 밖에 없게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으신 것일까요? 아니면, 죄의 속성이 그런 것인가요?
좋은 답변 부탁드려 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3: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9 11:23:41 | 나창주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필요하시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와 같이 일 하기를 원하신다 (고전 3:9).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그 분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어 우리에게 면류관과 상까지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빌 3:14; 고전 9:24-27; 히 10:35).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앞에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며 (히 12:1), 다만 이 모든 명령 받은 일을 행한 후에 그저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겸손히 고백할 뿐이다 (눅 17:10).
이러한 하나님의 같이 일하심과 맡김의 원리는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잘 나와 있다 (마 25:14-30).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종에게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김에 대하여 칭찬을 하시되, 1 달란트를 받고 그저 땅에 묻어둔 종은 크게 나무라셨다. 그때 1 달란트 받은 종이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데서 거두고 흩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말하였는데 (마 25:24), 가만히 음미해 보면 이 말은 자신의 주인 즉, 하나님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만 믿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하지 않은 종이 되었기에 주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막연히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한다는 다소 충성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칫 놓치기도 한다. 하나님은 분명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맘먹을 때 하면 되지 하는듯한 방관된 자세로 그저 멀리서 팔짱끼고 계신 그런 분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사 9:7).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완수하게 격려 하시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뤄낸 성과들로 인하여 같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상까지 주시며 세워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달란트에 맞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탁월함을 들어내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해야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될 것이다. 다니엘을 보라. 다윗을, 모세를, 바울을 보라. 그들은 모두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 이었지만, 동시에 세상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들어낼 수 있는 분야에서도 모두 탁월함을 일군 사람들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성공을 이룬 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어버리거나 세상 유혹만을 쫒아간다면 세상에서의 그 성공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한갓 이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에 다름없게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게을리 하거나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간절히 간구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분 앞에서 어떤 존재로 서있는지 관심이 있을 수 있다. 흔히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나 또는 그 일로 이뤄낸 어떤 성과 따위는 하나님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계시며 단지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재를 따지기로 말 한다면, 우리의 구원 조차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이며 (롬 5:8), 성화를 위해 싸워 가는 과정에서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여전히 버거워 하는 존재일 뿐이다 (롬 7:13-25). 그런 ‘존재’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같이 일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죄의 법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도 하시며, 그 크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성과를 낸’ 우리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 작은 일을 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상을 주시며 칭찬하시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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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21:58:03 | 김정훈
저번주말에 누나의 생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12세등급 실사영화도 욕이 난무하고, 정말 애들보기 민망한 장면도 너무 많아서
초등학생인 조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애니메이션 해피피트2를 보았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며, 정동수목사님의 UFO실체와 아귀가 딱 딱 맞아감을 두려움속에서 느꼈습니다.
어찌 이런 어린애들이 보는 것에 이런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다 들어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가족영화로 애와 어른이 다 볼수있고, 이런 내용을 어릴적부터 본 아이들이 나중에 중장년층이 되면
평화의 세계단일화에 박수갈채를 보낼 교육을 받고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교리 게시판에 있는 UFO실체 글을 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그것을 꼭 읽고 세상을 보는것이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화 내용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이 영화는 눈 요기거리와 노래로 사람을 감성적으로 이끕니다.
해피피트2는 펭귄을 의인화한 영화입니다.(저는 이런영화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 잘 살던 펭귄(인간)들이 자연의 힘(재해)에 고립되어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잠시 나와있던 에릭과 친구들 아빠는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다른 지역(나라)의 펭귄(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곳의 펭귄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펭귄이 아닌 다른 종)은 펭귄이면서 하늘을 날수 있습니다.
(펭귄들은 같은 종족인줄 알고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가 됩니다.)
스벤이 이끌고 온 다른 펭귄(인간)들은 열심히 도움을 주는데
이전에 스벤과 그의 심복 A(이름을 잊었습니다.)가 만났었던 인간(외계인)에게 말이통하지 않지만
바디랭귀지로 도움을 요청하여 그들의 기술(고도의 기술)로 고립 되었던 펭귄(인간)들을
금새 구출(혹은 구원)하려 합니다.(공교롭게도 영화내에서 인간들을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자연의 힘에 인간(외계인)들은 구출작전을 중단하고, 그곳을 빠져 나가 버립니다.
(UFO실체에서 언급된 외계인이 우리와 기술을 나누다가 전쟁하여, 이젠 그 기술을 얻을수 없는 내용과 일치)
다시 죽음의 기로에 선 펭귄(인간)들은 다른 종인 바다코끼리(다른 나라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도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영화는 중간 중간에 진화론을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된다! 된다고 믿으면(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노력하면) 불가능한 무엇이든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며 시청하는 애와 어른들에게 주입시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인 수많은 새우 종들이 함께 힘을 합하게 됩니다.
각 지역의 펭귄들과 그들의 우상인 마이티 스벤(위대한 스벤, 다른 종) 그리고 바다코끼리, 수많은 새우들이
자신들의 힘으론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자신들의 의와 행동으로 다른 종족(세계 각 나라)과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세계단일화,종교단일화) 열심을 내어 일을하니
인간이 인간을 죽음 앞에서 구원해 버립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들의 우상이었던 위대한 스벤은 원래 펭귄(인간)이 아님을 실토하며, 펭귄 암컷(인간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당연히 교미를 하여 아이를 낳겠지요. 버림받은 천사들, 유전자조작.. 거인들 다른 외계종)
이것을 보고 마음이 요동하여, 어머니(교회 권사)께 이런 저런 말씀을 했더니 "너 정말 왜그러니","도끼눈을 뜨며 저를 피하십니다."
더구나 누나와 조카는 그걸 보고 두번이나 감동하여 울었다고 합니다.
정말 미칠노릇입니다. (교회 다니지요..)
어찌 이런것을 보고 우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감동하여 울거나 울뻔한 세상사람들이 많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제 누나는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 것을 좋아하며, 즐기지만 삶이 고통스럽던 차에 최근에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분별력이 없고 또한 그것을 분별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이 것을 말하는 것은 왠만큼 믿음생활했다는 교인들에게 꼭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 KJV, 킹흠정을 알게 되었을때는 수개월동안 이것이 붙잡아도 될것인지 확인을 거듭했습니다.
다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하나님 말씀"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확신을하며 한글화 된 KJV 번역본 중에서는 가장 좋은 흠정역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KJV1611이 최종권위=변개되지 않은 하나뿐인 성경책임을 믿습니다.
정동수목사님 계열이 극도로 세대주의적이고 한킹계열과 좀 다를뿐이지 인정하지 않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자신이 정말 확인하며, 시험을 거듭하여 증명해본 것입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남들이 하는말 또는 어디서 보거나 줏어들은 말을 읊을뿐이지 직접 확인하지 않음이 우리 눈에는 얼마나 미련해 보이는지 아십니까??"
그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요? 아니면 두개의 가면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십니까??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리는 당신들이 세상속의 교인들과 뭐가 다릅니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발 담그면 더 따뜻할까요? 이도 저도 아닌게 될 뿐입니다.
[계 3: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각종 헐리웃영화를 보며 항상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내용들을 매번 빠짐없이 접합니다.
주님오실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어릴적보다 더욱 가깝게 느끼며 바른말씀을 붙잡아야 함을 알게됩니다.
벧전 4:7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
저는 정말 부족하고 못난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련한 저에겐 "바른" 하나님 말씀이 꼭 필요 합니다.
무조건 적인 신뢰와 믿음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바칩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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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08:18:36 | 이민혁
이 글은 아래 자유게시판 1458번의 댓글로 달았던 글을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독립글로 다시 올리는 것임을 밝혀 둡니다.
선악과는 과연 왜 있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선악과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적어도 한번쯤은 고민해 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선악과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음을 보여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하나님 또한 그 분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그 분을 의지적으로 순종함으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소위 '짝사랑'의 존재로 지으시기 보다는 우리도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은 바된 존재 답게 그 분을 우리의 의지로 '사랑'하길 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2. 선악과가 있는데 그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가 지켰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성육신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하셨던 그 말씀 그대로 그 자체가 이미 천국입니다. 천지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력하여 만드신 것처럼 에덴동산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거했을 것입니다. 3. 선악과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먹었다면, 그 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이 되고 그것은 곧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우리의 영원한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죄인된 모습으로 성육신 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그 방법에 참여하는 자에게 이제는 양아들 자격을 주시어 (엡 1:5)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구요. 안타깝게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4.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악과의 존재 자체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사랑의 표현이며, 이것에 대하여 '순종'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함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없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거닐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2번의 경우에 해당). 따라서 이번 글의 서두에서 질문한 "선악과 사건이 있어야지만 예수를 믿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입니다. 선악과 사건 이전에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우리의 믿음에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5. 마찬가지로 또 다른 질문으로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될수 있게끔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라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선악과 사건이 저질러진 이상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를 잘 따져 보시면, 선악과 사건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양아들이 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 그 방법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지 선악과 사건 그 자체가 우리를 양자 삼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여 지지요. 6.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선악과 사건을 계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었고 그것의 결과로 인하여 비로소 구속을 계획하심이 맞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5:15: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2-05 02:42:43 |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