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천동설과 지동설에 관한 아주 좋은 설명이 있으니 참조하세요.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580
샬롬
DSJ
2013-11-14 11:50:1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살펴보니 성도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는 영혼육, 천국, 지옥 등입니다.
여기에 대해 조직신학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노트와 함께(40-47과) 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는 PDF 파일로 올렸습니다.
샬롬
DSJ
영혼육 01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7
영혼육 02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398
운명: 최종 목적지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42
지옥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43
천국 01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51
천국 02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52
2013-10-22 17:59:28 | 관리자
오늘 아침에는 전병국 형제님이 쓰신 글을 올립니다.
교리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바른 성경, 바른 구원, 바른 교리, 바른 교회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에는 핵심 요약 성경 해석법 책자를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Pds1-4/View/3oe
샬롬
패스터
교리 공부가 필요한 7가지 이유
우리는 교리(敎理; doctrine)를 소홀히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리 공부를 목회자나 신학자들의 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교리를 공부하면 머리만 커지고 영혼이 메마른다며 교리 공부 자체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교리 때문이라면서 교리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신자는 어떤 것에 대해 입장을 정리할 때 사도 바울이 던졌던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What saith the script-xure?” (로마서 4:3)
자신의 기분이나 경험, 지도자의 가르침, 모임의 분위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교리 공부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1. 교리를 알아야 부흥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 2장의 끝 부분과 같은 부흥을 꿈꾼다.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사도행전 2:46-47)
이렇게 사랑 넘치는 교회, 기쁨 가득한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개 이런 결과적인 모습을 흠모할 뿐 그들을 진정한 부흥으로 이끌었던 개혁의 모습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 교회로 모인 사람들에게 부흥을 앞두고 나타났던 모습들이 있었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입은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한 교회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모여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찬양? 봉사? 기도? 아니다.
“그들이 흔들림 없이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사도행전 2:42)
그들은 함께 모여 4가지 실천했다. 사도들의 교리(가르침)를 배우고 교제하고 빵을 떼며 기도했다. 그들은 제일 앞에 사도들의 교리를 두었다. 교제와 만찬과 기도는 그 다음이었다. 사도들의 교리란 오늘날 성경의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교리, 성경의 가르침은 신앙생활이라는 기차의 기관실과 같다. 제일 앞에서 끌어주고 방향을 잡아준다. 교제 앞에, 만찬 앞에, 기도 앞에 교리가 있고 성경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이 4가지 일들을 “흔들림 없이, 변함없이(steadfastly)” 계속했다. 다시 말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재미있을 때나 지루할 때나, 사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교리를 배우고 교제하고 만찬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많은 이적과 표적, 재산의 나눔, 매일의 모임, 교회의 성장 등은 그 뒤에 찾아온 일들이었다. 부흥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부분이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몫이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성경의 교리를 배우는 것이다.
2. 교리를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의 복음은 감상적인 외침이나 피상적인 말로 꾸민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체계적인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교리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이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17-18)
사도 바울은 “죄의 종이…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생길 수 있는가? 로마의 성도들이 어떻게 했길래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들이 “교리의 그 틀(that form of doctrine)”에 반응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을 하나의 교리체계로 말하고 있다. 물론 조직신학이나 구원론같이 좀 더 학문적이고 복잡한 지식과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복음은 분명히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죄인 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에 대한 믿음이 차례로 이어진다(고전 15:1-5). 바울은 우리가 이 복음을, 이 교리의 틀을 지성으로(“전달된”), 감정으로(“마음으로부터”), 의지로(“순종하고”) 믿고 받아들이면 죄로부터 해방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자가 되는 것과 교리를 아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다. 신자가 되는 것 자체가 이미 교리 공부의 시작이다.
3. 교리를 알아야 하나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너희를 간절히 보고 싶다”(롬 1:11)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이유를 말한다.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은 내가 너희에게 어떤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너희를 굳게 세우고자 함이니 이것은 곧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와 함께 위로를 받고자 함이라.” (로마서 1:12-13)
간절한 그리움의 첫 번째 이유는 로마 성도들에게 영적 선물을 나누어 주어 그들을 굳게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서로에게 위로받기 위함이었다. 사도 바울과 로마 성도들은 로마서를 썼을 당시 아직까지 서로 만나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비밀은 “너희와 나 사이의 공통된 믿음(the mutual faith)”에 있었다.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 만났든 적도 없던 사람들이 만났으나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공통된 믿음이라는 것은 공통된 대상, 공통된 내용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기본적인 교리의 일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대상, 다른 내용에 대한 믿음이라면 서로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오히려 서로를 나누어 놓을 것이다.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공통의 교리는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4. 교리를 알아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다.
흔히 쓰는 단어는 뜻이 왜곡되기 쉽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년의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한 어떤 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분이 신앙을 갖기 전에 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나오는 표현 중 하나가 “은혜 받았다”였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 “은혜(grace)”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천국행 티켓이나 면죄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은혜는 그 이상이다. 은혜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딛 2:11-14; 고전 15:10). 그런데 이런 것이 단지 지식이나 이해의 정도 차이가 아니라 생사(生死)의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6-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피상적인 단어에 머무르지 말라고 경고한다. ‘복음’이란 단어를 쓴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된 복음과 다른 복음, 거짓 복음, 저주받을 가짜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단어가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쓰는 단어가 대충 비슷하면 서둘러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 칭의, 은혜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개념들을 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종교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언뜻 관용과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들리지만 성경과는 크게 어긋난 모습이다. 참 사랑은 결코 진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사랑은 진리를 기뻐한다(고전 13:6) 이 모습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가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지만 아무하고나 무작정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이(요 17:6), “아버지의 진리로…거룩히 구별된” 사람들이(요 17:17)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며 기도하셨다.
5. 교리를 알아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그 비결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들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며 서로 참아주고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신”대로 교회를 잘 섬겨야 한다(엡 4:7). 또한 교회 안에 가르치는 사람들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주님의 뜻이다(엡 4:12).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건강한 교회를 이루게 된다.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에베소서 4:13-14)
건강한 교회는 앎에서 하나가 된 교회요, 점점 자라 그리스도께 이르는 교회다. 그리고 속이는 자들이 “교리의 모든 바람(every wind of doctrine)”을 부채질해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다. 진짜를 아는 사람은 가짜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한국 교회에 신천지 같은 이단이 판을 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 안에 바른 교사와 바른 교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성장은 개인적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장이다. 혼자서 열심히 책을 본다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함께 자란다. 신앙은 교회를 이룰 때 자란다. 교리를 알아가며 자란다.
6. 교리를 알아야 싸울 수 있다.
교리는 우리끼리만 알면 그만인 지식이 아니다. 참된 교리는 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어떤 때는 노골적인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슬그머니 기어 들어온 자들에 의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염되어 갈 수도 있다. 이런 공격은 한 교회가 아니라 한 시대의 교회들을 향할 수도 있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님의 신성이나 삼위일체 교리가 공격 당한 때가 있었다. 지난 100여 년간은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에 대한 공격이 특별히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우리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유 3-4)
원래 유다는 “공통의 구원(the common salvation)”에 대해서 편지를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단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싸움을 독려하는 전투적인 편지를 쓰게 되었다. “단 한 번 전달된 믿음(the faith which was once delivered)”이 공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 속의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예비된 것은 캄캄한 어둠뿐이다(유 13). 참된 믿음은 참된 경건을 낳는 법이다.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려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공격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 6:17)
7. 교리를 알아야 전할 수 있다.
“너희가 선한 것을 따르는 자들이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니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베드로전서 3:13-14)
세상은 고난을 불행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행복이라 말한다. “의로 인하여 핍박 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마 5:10). 무서워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마 10:30-31)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베드로전서 3:14-15)
신자가 할 일은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반응하는 우리를 보면 사람들은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그들이 찾아와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에게는 구원, 예수님의 재림, 영생의 소망이 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한 대답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어느 날 찾아올 영혼구령의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자. 준비된 사람은 좀 더 온유할 수 있다. 자신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은 교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기에 애타는 사람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온유함과 두려움 가운데 교리를 알고 있어야 상대를 인도할 수 있다.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고린도전서 8:1)
교리 공부 좀 했다고 우쭐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교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교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지식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닦지 않은 것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이다(마 7:24-29; 약 1:22-25). 하나님은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아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경의 교리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 성경을 통해 교리를 배우고 책망에 귀를 열고 방향을 바로잡으며 의의 가르침을 따르면 점점 더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약속이다. 교리 공부에 주어진 찬란한 축복이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2013-10-21 10:00:48 | 관리자
한국 교회의 목사 숭배 사상이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돈 횡령과 부자 세습 등이 뻔뻔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은 사실 목사와 성도의 무지에서 나온 합작품입니다.
다음은 조용기 목사에 대한 기사입니다.
배도가 심한 이 세상에서 바르게 알아야 것을 알아야 하기에 올립니다.
참조하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섬겼으나 배임·탈세 혐의 조용기 목사 2차 공판…전 총무국장 "주식 매매 조 목사 지시 따른 것"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327
2013-10-16 16:11:18 | 관리자
어제 생명의 말씀사에 일을 보러 갔다가 이상한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목회, 위험한 소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78155
안의 내용이 흥미로울 것 같아서 가지고 왔는데 역시 기가 막히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목사가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목사라고 생각하며 목사 의식을 가지고 살 때 공인으로서의 목사와
남편과 가장으로서 사적인 목사의 삶에 큰 괴리가 생김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공적인 목사이기 전에 예수님의 은혜를 늘 갈구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성도로 자기를 바라보지 않으면
위선적인 목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저와 제 아내가 추구하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위선적인 목사 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는 좋은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같은 한 죄인이,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의 죄를 보여 주고
주님의 위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목사라 당신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이 목사와 사모의 마음에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끝없는 추락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허사임이 분명합니다.
저자는 자기의 경험을 들어가며 현 시대 목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줍니다.
이렇게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씩 보면 좋을 것 같아 강추합니다.
샬롬
DSJ
---------------책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목회자이기 전에 매일 은혜를 필요로 하고,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도움을 구하면서 성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목회자로만 생각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목회자의 직분이 교회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목회자’, 바로 그 직분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했다. 이제 분명한 사실로 드러났듯이,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다. ---「1장」중에서
대중 앞에 비친 내 모습과 개인적인 삶에서의 내 모습이 분리되어 서로 상충되는 현상이 심해질수록 자신의 실상이 겉으로 드러날까 두려워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의 사생활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내게 어떤 태도를 보일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자리를 잃을까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나를 염려하며 자꾸 의문을 갖는 것을 보면,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동료 사역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나의 문제와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혹시 나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만 고민하기에 이른다. ---「2장」중에서
어느 날 저녁, 로마서의 한 대목을 주석하는데 무엇인가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복음을 가장 훌륭하고 포괄적으로 설명한 로마서를 수개월 동안 매일 몇 시간씩 연구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 메시지에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복음의 메시지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문법과 구문, 신학적 개념과 논리적 논증이 전부였다. 거창한 지적 활동이었을 뿐, 영적 능력은 거의 전무했다. 글자가 빼곡히 적힌 페이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처럼,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멀고 흐릿하게 느껴졌다. 환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내가 직접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 나의 실생활, 결혼생활, 죄와의 투쟁, 나의 과거와 미래, 나의 가장 깊은 희망과 꿈과 두려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공책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단지 학점이나 과제나 학위를 위한 것이라면,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장」중에서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시라면, 그 나머지는 모두 그분의 지체에 해당한다. 목회자나 사역의 지도자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하나의 지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도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행하는 중요한 사역과 그 상호 관계망에 관한 규칙 가운데서 오직 목회자만 예외라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없다. 겉으로 보기에 덜 중요하게 보이는 지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목회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목회자가 홀로 동떨어져 고립된 채 살아가는 문화는 영적으로 건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성경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5장」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늘 거룩한 것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 그게 왜 위험한 것일까? 하나님의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경외심을 잃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성경을 대하다 보면 광대한 지혜가 깃들어 있는 위대한 구원 이야기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오랫동안 속죄를 설명하다 보면 십자가 밑에 서 있어도 기쁨도 없고, 눈물도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다 보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놀랍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일이 되다 보니 더 이상 마음의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8장」중에서
우리는 공인으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 서로 충돌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에 익숙해질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목회자의 마음속에서는 늘 온갖 우상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아 일종의 예배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치열한 영적 전쟁에 지친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중적인 삶과 사역의 우상들에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오직 은혜만이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출 수 있다. ---「14장」중에서
2013-09-19 10:57:5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3주에 걸쳐 성경 신자들이 믿는 교리를 요약/정리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78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2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80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3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81
샬롬
2013-09-17 14:22: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게시판을 통해 질문하시는 분께 먼저 성경지킴이 상단의 구글 검색 등을 이용해 직접 찾아보실 것을 권면하는 이유는 결코 답변하는 것이 번거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직접 자료를 찾고 킹제임스 성경의 구절과 대조하며 성경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키우시는 것이 모든 분께 훨씬 유익하기 때문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벧전3:19절에 대한 의문은 답변으로 제시해 주신 글들을 정독하시면 충분히 풀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구절 등으로 해괴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실례로 유명한 기독출판사 홍성사를 경영하는 모 목사도 있습니다. 이분은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 옆에 문화원을 개설하고 천주교의 사제와 수녀, 불교의 승려 등을 초청해 교인들 앞에서 강의하게 하는 등 각종 배교적 일들을 행하는 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교계의 유명한 지도자라 해서 그 주장을 따르거나 그것에 영향을 받아 마음이 흔들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때문에 자신에게 닥치는 영적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은 타인(특히, 유명 목사와 신학자)의 권위에 무조건 종속되어 버리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교계 지도자들의 주장이 항상 옳을 수 없고 더구나 요즘같이 배교가 일반화된 시대에는 많은 목사와 신학자들이 성경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기에 성도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바른 교리를 체계화 하는 것만이 올바른 믿음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제아무리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을 지어놓고 각양 다양한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교회라도 새벽기도회나 은사주의 집회, 두날개, 관상기도, 알파코스 등을 행하는 교회들은 목회자에게 교인들을 종속시키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원천차단하는 바르지 못한 교회입니다.
목사가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솔직히 내보이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스스로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회, 지역 교회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성경을 기준으로 능히 분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교회가 바른 교회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실상 당대 최고 지성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진리를 만난 후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던 세상의 권위와 명성을 쓸모없는 배설물로 여긴 사도 바울의 담대한 믿음의 고백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 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8~9)" 창조,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구원, 성경, 교회, 재림 등 기독교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 교리들의 본질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확한 내용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간혹 자신을 성경 신자라고 분명하게 얘기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후에 스스로 고백한 믿음을 저버리고 성경 보존의 진리를 부인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주로 뭘 좀 안다는 식자층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바르지 못한 교리와 주장을 주입 당했기 때문이지요. 그 누군가는 대부분 교계의 권위 있는 목회자나 신학자일 것입니다.
성경 보존의 진리를 비웃고 짓밟는 신학자들의 해묵은 주장은 무엇입니까? '개역이나 개정개역판 성경은 매우 훌륭한 성경이고 그것만으로도 바른 신앙생활 하는 것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악한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의 주장에서 참고할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지킴이에 있는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으로서의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증거들 대부분은 차근차근 공부하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한 내용입니다. 바른 믿음의 근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하고 쉽고 단순한 것이지 복잡다단한 많은 설명과 현란한 신학적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믿음을 기뻐하다가 신학자들과 원어전문가들의 현란한 요설에 넘어가 고귀한 믿음을 져버린 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벧전3:19절이나 다른 성경의 교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교계의 지도자가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무기로 해괴한 주장을 펼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말고 내가 평소에 배우고 믿었던 바르고 명확한 성경의 교리를 확고하게 붙잡고 그런 잘못된 주장들을 분별하고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바른 신학적 관점에서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내용과 연결하여 평소에 생각하던 몇 가지를 덧붙여 보았습니다.
한 가지 질문의 답을 얻는 것도 유익이지만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고 점검하는 것은 더 큰 유익이라 생각합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조그만 유익이라도 전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그 틀을 굳게 붙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겨진 그 선한 것을 지키라.(딤후1:13~14)"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2013-08-23 17:24:22 | 관리자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이교도들, 과거 우리 조상들의 구원 문제
복음이 제시되 때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복음을 회피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이교도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구원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또 믿는다고 하는 분들 중에서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음 글은 한국 장로교의 지성을 대표하는 송인규 교수의 글입니다. 이 글은 부흥과 개혁사에서 나온 <우리의 신앙이 분별력과 만나기까지>라는 좋은 책에 있습니다. 그 글 자체가 개역성경을 인용하였으므로 그대로 인용합니다.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58193
참고로 이것은 다음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으며 저는 그 블로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http://www.cyworld.com/cissero2/2848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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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이전 사람들의 구원 문제 -송인규 교수-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적잖은 이들이 구원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조상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우리의 조상 가운데는 청렴하고 의롭게 산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구원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며 논지를 펼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막상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면 머뭇거리며 별 신통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정반대 입장 ―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지옥에 간다 ― 으로 기웁니다. 즉, 그들은 죄 가운데 태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살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두가 지옥행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
물론 이런 가혹한 견해에 대해 즉각적인 반격이 들어옵니다. 성경은 오히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이 구절에는 적어도 세 가지 사항이 나타납니다.
(i)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 세계에 하나님을 알만한 확실한 증거를 두셨다.(ii) 그 증거는 하나님의 영원하심, 능력, 신적 속성에 대한 것이다.(iii) 모든 인간은 만물 가운데 나타난 분명한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있다.
이렇게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신 일을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사실 일반 계시의 항목 가운데에는 롬2:14~15에서 알 수 잇듯이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도 포함지만, 논의를 간략히 진행하기 위해서 그 항목은 무시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에 대한 것으로 좁혀집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일반 계시만으로도(그가 옳게 반응하는 것을 전제할 때) 충분히 구원에 이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의 차이가 세 가지 입장을 만들어 냅니다.
|--------------------|---------------------|A 개방파 B 신중파 C 강경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표의 오른쪽 입장 C부터 설명하겠습니다.
C 강경파: 이 입장에 의하면 일반 계시는 전혀 구원적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이유인즉, 비록 하나님이 자연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 지성이 죄의 영향[전문 용어로는 ‘지성에 대한 죄의 영향’(noetic effect of sin)이라고 함]을 받아 일반 계시에 의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국은 우상 숭배로 끝나버린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 21~23)는 말씀을 기초하여 주장을 피력합니다.
A 개방파: 상기의 내용에 맞서 정반대의 주장이 개방파의 입장입니다. 일반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이나 후나 상관없이 늘 상당한 정도의 구원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전능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몹시도 열망하는 분(딤전2: 4)이기 때문에, 일반 계시를 통해서라도 얼마든지 구원 사역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둘째, 롬1: 21~23절에 대한 C 강경파의 주장에 반기를 듭니다. 즉, 일반 계시를 접한 모든 인간이 다 롬1: 21~23절처럼 우상 숭배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알고 있었던 그 당시 로마인들이나 이집트인들의 경우는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상을 모든 인류에 확대 해석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의 근거로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만일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의 빛을 좇아 경건히 살았다면, 그는 얼마든지 구원의 반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 신중파: 이 입장은 A와 C 사이의 중도파로서, 구원과 관련하여 일반 계시의 상대적 가치를 주장합니다. 즉, 특별 계시(구약의 율법, 그리스도, 성경 등)가 활약하는 경우에는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를 내세울 필요가 없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반 계시가 작게나마 구원적 가치를 발휘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전체의 판도를 보면 A 개방파는 일부 급진적인 복음주의자들, 로마 가톨릭(RC), 다수의 신학적 자유주의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B 신중파는 상당히 많은 복음주의자들(특히 아르미니우스 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입장입니다. C 강경파는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도 주로 칼빈주의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은 구원을 받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전까지 설명했듯 일반 계시에 구원적 가치를 어느 정도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역시 세 가지 입장을 거론하고자 합니다.
|-------------------|---------------------| D 낙관설 E 일부설 F 정죄설
D 낙관설은 그리스도 이전 사람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구원을 받으리라 보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분명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를 크게 평가하는 A 개방파의 입장과 일치합니다. 또 B 신중파의 입장과도 함께 주장될 수 있습니다.
F 정죄설은 그리스도 이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았으나 죄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 아는 지식을 우상 숭배와 맞바꾸었기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죄 받아 결국에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C 강경파의 단골 메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 일부설의 입장은 그리스도 이전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예외적으로나마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구원 받게 되는 근거에 따라, 다시 두 갈래로 나뉩니다. 즉, B 신중파의 입장에 따라 ―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를 인정하여 ― 일부설을 주장할 수도 있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예외적으로 특별 계시가 허락되어 일부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 ― 특별 계시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것 ― 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기 전 사람들 가운데 특별 계시의 혜택을 받은 이들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이 특별 계시를 받은 주류(主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계열과 무관한 다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별도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특별 계시의 은택을 입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멜기세덱(창14: 18~20),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18: 9~12), 욥(욥1: 1, 5) 세 사람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나타난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과 교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이들 뿐만 아니라 기타 예외적인 소수에게도 특별 계시의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영위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조상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필자는 이에 대해 확정적으로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D 낙관설은 일반 계시의 구원적 가치를 과장하여 주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므로 필자로서는 지지하기가 힘듭니다. 또 F 정죄설 역시 성경의 증거 ― 성경에 적어도 멜기세덱, 이드로, 욥 세 사람만큼은 이스라엘과 무관하게 구원을 받는 인물로 묘사되었으니 ― 에 어긋나기 때문에 배척하는 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F 정죄설을 가장 성경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E 일부설 뿐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 성경의 증거만을 기초로 한다면 ― ‘삼인 예외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세 사람만큼은 구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외에 10명이 더 있을지, 50명이 더 있을지,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 조상이 끼어 있을지, 아니면 우리 조상은 하나도 없고 다른 이방 민족 가운데 어떤 이가 될 지……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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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분석가이신 송인규 교수의 E 일부설(삼인 예외설)은 다음을 보시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78
<우리의 신앙이 분별력과 만나기까지>는 좋은 책이니 읽고 지성을 훈련시키기 바랍니다.
샬롬
2013-08-23 09:44:59 | 관리자
이교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순신 장군은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그래도 지옥에 가나요? 세종대왕은요? 아마존 밀림에 사는 미개인들은요?”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간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이 불공평 혹은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레이시 목사님의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의 지옥 편 가운데 제5장, 지옥의 등급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라는 사실은 그분께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에게 내리실 형벌 선고가 의로울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어느 누구도 지옥에서 불공정하게 형벌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교도 불신자들은 어떻게 됩니까?”라고 누군가 필연적으로 물을 것입니다. “이교도 불신자들은 복음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지옥에 던져질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공정하다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에게 답변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이런 심판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롬2:11-16).
하나님은 이교도들에게 양심이 있으며 그 양심이 그들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심으셨습니다. 그래서 양심은 이교도들이 유죄임을 증언하면서 그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율법이 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없이 죄를 범한 많은 사람들은 또한 복음 없이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빛을 받지 못한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실까요?”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빛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이것은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요1:4-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롬1:18-20).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진리 곧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분이 의로우시고 사람들은 불의하다는 진리를 충분히 알 만한 빛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롬1:18).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불의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 안에 분명히 나타났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성경은 그것이 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비록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를 봄으로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을 분명히 압니다. 또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능력이 있으시며 삼위일체라는 것을 압니다. 성경이 없이도 누구나 이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부인하는 모든 이방 종교 역시 영원한 능력을 지닌 절대자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기독교를 부인하는 종교들 중 대부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과 비슷한 신을 숭배해 왔습니다. 단지 여호와의 증인들과 몰몬 교도들과 현대주의자들과 같은 아주 저속한 이교도들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단호히 부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빛을 주셨고 만일 사람이 그 빛을 따르면 그에게 좀 더 많은 빛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만일 사람이 자기가 받은 그 빛을 따른다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더 많은 빛을 주실 것입니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렘29:13).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정글이나 외딴 섬이나 멀리 떨어진 산에 살던 사람들에게 지옥 형벌을 선고하시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과 예레미야서 29장 13절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랍니다. 만일 외딴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진심으로 좇았다면,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는 복음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이 변명할 수 없다.”(롬1:20)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2013-08-22 16:19:48 | 관리자
이제 종교통합 배도의 물결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종교 간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0/2013082000202.html?news_Head1
2013년 종교 올림픽 WCC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명성 교회 김삼환 목사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바른 성도들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샬롬
2013-08-20 10:45:39 | 관리자
이제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중지한다고 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십일조 안 내는 교인은 자격 정지 추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2/2013081202499.html?news_Head3
날이 가면서 교인 수가 줄어들어 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코앞에 닥치다 보니
이런 고육지책으로 교회를 유지해 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목사들이 생깁니다.
과연 법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요?
세상의 일반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올 정도로 교회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교인 감소 현상은 이미 미국에서 겪었던 일이고 누구나 예상했던 일입니다.
건물을 유지하려 하지 말고 성도들을 바른 예배자로 성장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책을 읽고 목회자가 변해야 교회가 삽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186
우리 주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큰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 원합니다.
샬롬
2013-08-13 12:36:51 | 관리자
죄와 죄들의 차이
참고로 이 글의 앞부분은 워치만 니의 글입니다. 니의 글은 많은 경우 분명한데 어떤 경우에는 나누지 않아도 될 것까지 심하게 나누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 글은 괜찮아서 올립니다. 워치만 니 말고 지방 교회의 위트니스 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영해의 대가로서 매우 이상한 해석을 취하므로 그의 글은 아예 처음부터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두 사람의 책들이 다 지방 교회가 운영하는 복음 서원에서 나오므로 조심하고 경계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죄와 죄들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죄는 단수이고 죄들은 복수이다. 우리는 죄와 죄들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죄와 죄들을 구분할 줄 모른다면, 당신은 구원에 대하여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죄와 죄들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자기의 구원 여부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무엇이고 또 죄들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정의를 내리겠다. 죄는 당신 안에서 당신에게 죄들을 범하게 하는 능력이고, 죄들은 밖으로 범한 낱낱의 죄들을 가리킨다.
죄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죄의 뿌리, 죄의 근원 혹은 본죄, 원죄 등의 명사는 쓰지 않겠다. 이 명사들은 다 신학자들이 지어낸 것이므로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겠다. 단순한 것이 좋다. 여기서 우리는 체험에서 이것을 보기로 하자. 우리 속에서 우리를 사욕과 정욕의 길로 향하게 하고 그런 자연스런 경향을 갖도록 우리를 지배하고 강요하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죄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우리를 강요하고 재촉하는 죄뿐 아니라 밖으로 행한 낱낱의 죄들도 있다. 성경에서 죄들은 행위에 속하고 죄는 생명에 속한다. 죄들은 우리의 손과 발과 마음 곧 우리 온 몸으로 행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몸으로 행한 일들이다. 그러나 죄는 어떠한가? 죄는 우리의 육체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일종의 율이다. 항상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가 죄와 죄들을 잘 구분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완전히 보여 준다. 이 여덟 장의 성경 말씀에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1장부터 5장 11절까지는 죄(sin)보다는 주로 죄들(sins)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2절부터 8장까지는 주로 죄들이 아닌 죄를 보여 준다.
즉 로마서 1장부터 5장 11절까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로마서 5장 12절 이후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어떠함 곧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죄는 우리에게 우리의 생명이 어떠한가를 말해 준다.
로마서 5장 11절 이전의 말씀은 죽은 것을 살아나게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서의 문제는 살아나게 하는 필요보다는 범한 낱낱의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5장 12절 이후의 말씀, 둘째 단락에서 우리는 몸의 지체들 안에 있는 법, 즉 우리 속에 있는 강하고 힘센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임을 알게 된다. 이 죄가 우리를 끌어당겨 죄를 짓게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경은 죄들이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들을 범하도록 억압하고 강요하는 것이므로, 이 죄에 대해서는 해방될 필요가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한번은 어느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가 대화 중에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는 말을 사용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서 성경의 어느 곳에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는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많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한 군데만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은 없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전체에서 ‘죄 용서(the forgiveness of sin)’라고 말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죄들의 용서(the forgiveness of sins)’라고 말합니다. 용서받는 것은 죄들이지 죄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신뢰하지 않고 성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내게 “니 선생님, 정말 그렇군요. 성경에서 죄들이 용서받는 것을 말할 때마다 복수를 표시하는 ‘s’를 붙였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용서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죄들임을 볼 수 있다.
죄들은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신 안에 있는 어떤 것, 강하고 힘세며 당신에게 죄를 범하도록 재촉하는 그것은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지 않고 그것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당신이 그것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갖지 않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죄들은 용서받을 때 해결된다. 그러나 죄는 그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해결된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고 낱낱이 행한 것이기 때문에 용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죄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번도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한 적이 없고 항상 죄들을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죄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나는 성경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음을 장담할 수 있다. 성경에는 죄에서 해방된다는 말은 있어도 죄들에서 해방된다는 말은 없다. 왜 그런가? 당신 속에서 당신을 억압하고 죄들을 범하게 하는 그것에 대하여 당신은 다만 거기에서 벗어나고 해방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비교하여 제시해 보겠다.
성경에서 죄는 육체 안에 있고, 죄들은 행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죄는 우리 몸에서 원칙(생명의 원칙)이고, 죄들은 우리 몸에서 사실(생명의 사실)이다.죄는 지체 안에 있는 법이고, 죄들은 사실적인 범죄요, 실제로 행한 것이다.죄는 우리의 어떠함과 관계있고, 죄들은 우리의 행함과 관계있다.죄는 우리의 어떠함에 속하고, 죄들은 우리의 행함에 속한다. 죄의 범위는 생명의 범위이고, 죄들의 범위는 양심의 범위이다. (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능력이고 죄들은 양심의 능력이다. 사람은 생명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고, 밖으로 사람이 많은 죄들을 범할 때 양심 안에 참소와 불안이 있게 된다.)죄는 총체적인 것이고, 죄들은 낱낱의 것이다.죄는 해방 받을 필요가 있고, 죄들은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죄는 성화와 관련되고(롬5:12-8장), 죄들은 칭의와 관련된다(롬1장-5:11).죄는 사람의 본성 안에 있고, 죄들은 사람의 길에 있다.
비유로 말하자면, 죄는 나무와 같고, 죄들은 나무의 열매와 같다.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죄인을 빚진 사람에 비유한다. 우리는 빚을 지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빚을 진 사람에게 있어서 빚을 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의 속에 빚을 지는 성향이 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빚을 지다 보면 남의 돈을 빌려 쓰고서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빚진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남에게 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누구에게서 이삼백 원 또는 이삼천 원을 빌렸는데 나중에 갚을 능력이 없어서 친척이나 형제 또는 친구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빚을 갚아 주었다 하자. 그런데도 삼사 일 후에 당신이 또 남에게 빌리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당신은 돈을 빌리는 것과 빌리고자 하는 마음은 별개임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빌린 빚은 성경에서 말한 죄들과 같다. 걸핏하면 돈을 빌리려고 하는 습관과 성향은 죄와 같다. 그러한 사람은 누가 빚을 갚아 주었다고 해서 돈을 빌리는 일을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빚을 갚아 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더욱 돈을 빌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들을 처리하실 뿐 아니라 동시에 죄로 향하는 우리의 속마음도 처리하신다. 우리가 죄들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죄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함을 보아야 한다. 반드시 우리가 이 두 방면을 보아야지만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워치만 니) 제1권 제1장에서 발췌함
박옥수 구원파의 문제
죄와 죄들의 단복수 구분이 안 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박옥수 구원파에서는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광고를 버스에 붙이고 대형 체육관에서 집회를 갖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죄와 죄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으므로 이들은 ‘죄 사함’이 죄들뿐만 아니라 죄(죄성)의 용서(사함)을 뜻한다고 믿고는 한번 구원받으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죄들이 매일 반복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주 목사는 “죄 없다!”만 외치므로 오래 거기 다니다 보면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서는 성화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화 이야기를 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전혀 성화를 모르는 신도를 만들어 놓습니다. 요일1:8-9에는 죄와 죄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8절 만일 우리에게 죄(단수)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9절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복수)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8-9).
물론 개역성경은 9절 역시 죄들 대신 죄라고 단수로 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 되고 맙니다. 8절은 우리(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죄 즉 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죄들이 있으므로 고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9절은 말합니다.
또한 구원파 교주는 사람에게 두 개의 본성이 있음을 가르쳐주지 않고 죄(죄성)이 전혀 없는 새 본성만 있다고 가르치므로 추종자들은 심각하게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면 “죄 없다”는 소리에 취해서 양심이 무뎌지므로 악한 일을 하고도 찔림이 생기지 않는 나병 현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모 단체에서는 아담의 죄(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육신적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지옥 불 속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은 죄인 각 사람의 죄들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사람이 다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죄들’에 대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용서입니다(요일1:7). 아무리 많이 울어도 참회해도 선행을 해도 죄들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죄들을 용서합니다(마.
‘죄’에 대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구출입니다. 로마서 5장은, 죄인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인이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롬5:19를 보기 바랍니다. 즉 사과 나무가 죄이고 사과들은 그 나무에서 나오는 죄들입니다.
죄 문제의 해결책은 부모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생에 의해 아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담에게서 나오려면 죽어야 하며 롬6:3-4는 어떻게 우리가 아담에 대해 죽었는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으로,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와의 이 연합 안에서 우리는 아담 안에서 또 죄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치라는 측면에서는 사실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상태는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아직 옛 본성 즉 육신(죄)이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성화 과정을 통해 죄를 십자가에서 죽여 처리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해 한 번 죽으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매일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역시 2000년 전에 죄에 대해 한 번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롬6:11). 롬6:14의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의 단수 죄는 성화와 연관이 있는 죄성을 뜻합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롬6:1-2)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여기에서 의미한 바는 우리가 판결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은 우리가 새 본성을 받아 죄의 법에 대해 죽었으므로 더 이상 죄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사도는 우리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6:11).
이 말은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고 또 옛 생활 습성에 대해서도 죽은 자로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라고 말하며 또한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라”(롬6:12)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될 때 다음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롬6:14).
위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믿는 자의 위치는 하나님 앞에서 확고히 정착되어 안전하나 그의 상태는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본성이 그를 지배하느냐 새 본성이 그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그는 죄로 가득하기도 하며 죄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채 로마서 강해 노트를 보면 강해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참고로 영어를 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자료를 보기 바랍니다.
http://www3.telus.net/trbrooks/SinSins.htm(*) 역시 워치만 니 자료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구약은 죄와 죄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신약은 죄와 죄들이 놀랍도록 명확히 구분됩니다.
죄(단수): “Sin” in singular number: Matt.12.31; John 1.29; 8.34 (twice), 46; 9.41 (twice); 15.22 (twice), 24; 16.8,9; 19.11; Acts 7.60; Rom. 3.9,20; 4.8; 5.12 (twice), 13 (twice), 20,21; 6.1,2,6 (twice), 7,10,11,12,13,14,16,17,18,20,22,23; 7.7 (twice), 8 (twice), 9,11,13 (thrice), 14,17,20,23,25; 8.2,3 (mg., thrice), 10; 14.23; 1 Cor. 15.56 (twice); 2 Cor. 5.21 (twice); 11.7; Gal. 2.17; 3.22; 2 Thess. 2.3; Heb. 3.13; 4.15; 9.26,28 (the second “sin”); 10.6,8,18; 11.25; 12.1,4; 13.11; James 1.15 (twice); 2.9; 4.17; 1 Peter 2.22; 4.1; 2 Peter 2.14; 1 John 1.7,8; 3.4 (twice), 5 (the second “sin”), 8,9; 5.16 (twice), 17 (twice).
죄(복수)“Sins” in plural number: Matt. 1.21; 3.6; 9.2,5,6; 26.28; Mark 1.4,5; 2.5,7,9,10; Luke 1.77; 3.3; 5.20,21,23,24; 7.47,48,49; 11.4; 24.47; John 8.21, 24 (twice); 9.34; 20.23; Acts 2.38; 3.19; 5.31; 10.43; 13.38; 22.16; 26.18; Rom. 4.7; 7.5; 11.27; 1 Cor. 15.3,17; Gal. 1.4; Eph. 2.1; Col. 1.14; 1 Thess. 2.16; 1 Tim. 5.22,24; 2 Tim. 3.6; Heb. 1.3; 2.17; 5.1,3; 7.27; 8.12; 9.28 (the first “sins”); 10.2,3,4,11,12,17,26; James 5.15,20; 1 Peter 2.24 (twice); 3.18; 4.8; 2 Peter 1.9; 1 John 1.9 (twice); 2.2,12; 3.5 (the first “sins”); 4.10; Rev. 1.5; 18.4,5.
이것을 정리하면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2013-07-24 17:28:25 | 관리자
동방의 독수리와 14만 4천
19세기 중반 전 세계가 격변하는 시기에 미국에서는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등의 이단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 같은 경우는 노골적으로 자기들만이 계시록의 14만 4천을 구성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1,000년간의 여호와의 왕국이 이루어지면 자기들만이 구원에 참여하여 왕이 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윌리엄 밀러에 의해 시작된 안식교는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거하여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을 2,300년으로 잘못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1차 재림이 1844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다가 주님의 재림이 없자 크게 실망한 뒤 지금은 그분이 조사 심판 중이며 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폅니다.
몰몬교는 종말론과 미국인 선민의식에 빠진 조셉 스미스가 도를 닦다가 UFO의 인도를 받고 특별 계시를 받아 추종자를 거느리게 된 미국인들의 토속 샤머니즘 종교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계룡산에서 도를 터득하여 혹세무민하는 이단의 한 종류로 보면 됩니다. 그 안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미국인들에 대한 강한 선민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외국계 이단들의 특징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내부의 신도들에게 신비적 종말론을 주입하여 교회와 교주에게 충성봉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14만 4천에만 들어가면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신도들을 부추겨 재산을 탈취하고 맑은 정신을 빼앗아가는 것이 이런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어느 이단이나 거의 비슷하지만 일단 이런 데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어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본인들만이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강한 확신에 잠겨 바른 것을 말해 주는 모든 사람을 배척하고 자기들이 당하는 고난을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박태선의 전도관을 필두로 해서 역시 선택받은 14만 4천을 미끼로 내걸며 동시에 한국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자생된 사이비 종파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미국의 이단들처럼 신도들에게 종말론을 강하게 주입하고 재림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도록 강요하며 특히 한국이 동방의 독수리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고양시킵니다.
2013년 3월 4일 자 <한겨례 21>은 한국 내 사이비 교회들의 문제가 심각함을 인식하고는 민중들을 선도하고 계몽하기 위하여 ‘하나님 20명, 재림예수 50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다음은 그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국제종교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는 개신교 계통 소종파를 크게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 3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은 신비주의 계열이다. 신비주의 계열은 다시 △베뢰아아카데미(귀신론) 분파 △신비주의 기도원 분파 △직통 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뉘는데, 최근 개신교계가 대대적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은 장막성전 분파에 속한다.
장막성전은 1960년대 경기도 과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서울대공원이 들어선 막계동 일대가 이들의 ‘성지’다. 신천지 교회의 본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장막성전은 1966년 한국 소종파 운동 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유재열(당시 17살)이 세워 화제를 뿌렸다. 장막성전이란 이름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재열은 1960년대 초부터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 기도원을 다니며 신비주의 신앙에 몰입했다. 그는 1965년에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듬해 ‘종말 심판의 피난처’라는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전성기에는 청계산 저수지가 있는 막계동 일대에 신도 2천 명이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투서 때문에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뒤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떠난 뒤 장막성전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무지개증거장막 등 여러 갈래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재열은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며 14만4천 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그의 성서 해석과 교리의 기본 골격은 핵심 추종자이던 이만희(현 신천지 총회장)를 통해 지금의 신천지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신천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소종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와 함께 신비주의와 종말론적 흐름이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은 “예언서·계시록의 종말론과 민족주의적 선민사상이 결합해 재림예수가 한국에 온(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소종파에서 보이는 보편적 흐름”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등장한 소종파들은 처음엔 기독교의 카테고리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의 배척이 시작되면 점차 그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그들의 교주들은 선지자나 성령, 재림예수를 자처하다 말년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박태선(천부교)· 안상홍(하나님의 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국내 소종파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경우가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밖에 하나님의 부인이나 보혜사 성령, 혹은 성서 속 인물인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소종파 집단 안에서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를 절대화하다 보니, 공교회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횡령이나 폭력, 추행 같은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고 결국 사법 권력의 개입을 부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기사에서 보듯이 한국의 소종파 사이비들의 특징은 일단 한국 민족을 특별히 선택받은 동방의 독수리로 보며 그중에서도 자기들에게 속한 자들만 계시록의 14만 4천으로 규정하여 성도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통일교에서는 이미 재림주가 재림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계시록 7장 2절에 따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곳이 ‘해 돋는 데’ 즉 동방의 나라인 한국이라고 해석합니다(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해 돋는 데’라고 하지 않고 ‘동쪽’이라고 말함). 따라서 통일교 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주인 문선명(文鮮明)이 바로 그 재림주라고 주장합니다.
전도관에서는 감람나무가 나타나면 말세가 된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교주인 박태선(朴太善)이 곧 감람나무이며 그가 왔으므로 지금이 말세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악조건에서는 14만4천 명만이 천년 성에 들어가고 호조건에서는 14만4천 명 외에도 수많은 무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전도관의 신앙촌 입주자의 수에 따른 변화를 예상하고 내놓은 주장입니다.
요즘 교회들에 큰 문제를 안기고 있는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약속의 목자’, ‘이긴 자’, ‘대언자’,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신천지의 핵심 교리는 성경이 온통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비유를 바로 풀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친절한 기장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는 목사냐고 묻고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친절한 분으로 알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의 성경 해석 방법이 기묘했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마태복음 13장 34-35절을 인용하였는데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분은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비유이며 심지어 창세기 이후의 모든 것이 다 비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비유를 바르게 깨달은 사람에게 성경을 배워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분은 신천지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의 주장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쓰는 개역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그분의 말씀은 모두 비유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정상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룡산 도사들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바른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흠정역: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without a parable)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되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요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쉬운 비유를 들어 핵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어로는 ‘without a parable’인데 이것이 개역성경처럼 ‘비유가 아니면’으로 잘못 번역되면 수십만의 사람들을 무지와 저주 속에 빠뜨립니다. 이런 오역으로 인해 신천지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신천지는 성경 전체를 이와 같은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로 풀고는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신천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4만 4천명이 구원받는 자로 신천지에 입교하면 신천지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과천의 청계산 부근에 임하게 되며 그들은 육체로 영생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면서 신천지가 들고 나오는 것이 한국 민족의 우수성과 최근에 이루어지는 한류 열풍입니다. 14만 4천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들 가운데서 나오며 이런 일을 위해 싸이 등의 한류 열풍이 -비록 저급하지만 - 온 세상에 파급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 교주가 있는 한국은 성지 중의 성지이며 14만 4천에 속할 한국 사람들은 선민 중의 선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천지 역시 과거에 토속 종파들이 사용하던 방법대로 비유 해석(영해)의 계시록 설교와 ‘동방의 독수리’ 타령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는 좋든 나쁘든 한류 붐을 일으킨 것은 싸이를 비롯한 출중한 한민족 가수들 - 신천지의 한민족 선민사상에 따르면 - 인데 신천지는 이들이 일으킨 한류 열풍은 선민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대대 선전하면서도 이런 연예인들의 한류는 저급 한류라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신천지의 영적 한류가 새로운 차원의 한류라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새로운 한류 신천지 한류’라는 제목으로 신천지뉴스에 난 기사입니다.
‘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톱스타가 된 싸이는 이제 세계 각국을 누비며 노래한다. ‘강남 스타일’의 B급 정서는 전 세계인에게 통했고, 덕분에 싸이는 좋게든 나쁘게든 국가 홍보에 공을 세웠다. 최근 후속곡 ‘젠틀맨’의 관심과 인기도 상당하다. 그러나 이번 ‘젠틀맨’의 가사는 물론 뮤비의 선정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위 선양이니 창조 문화니 하며 싸이를 온통 찬양하고 있지만, 과연 그 내용과 질이 어떠한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한류란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서가 세계에 전파되어 널리 관심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한류란 비단 대중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정신적인 것, 종교적인 것까지 아우를 수 있는 통섭(막힘이 없이 여러 분야에 통함)의 흐름이어야 한다. 이에 최근 세계의 종교인들을 눈뜨게 한 새로운 한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4월 중순, 인천공항에 다수의 외국인 목사들이 내한했다. 미국, 영국, 독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세계 각국의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 나라들은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신천지 예수교의 총회장의 4차에 걸친 계시록 순회강연을 접한 국가들이다. 총회장은 수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와 방송 출현을 통해 뚜렷한 계시복음을 전했고, 각국 정상과의 대담과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회에 참석하여 새로운 평화의 재료로서 ‘하늘 문화’를 제시했다.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전에 들어 보지 못했던 미래에 관한 새로운 해법은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했다. 이미 20년이 넘는 목회 연륜과 수만의 성도수를 가르치고 있는 목자들이 대한민국으로 종교 유학을 오게 된 것이다. 이들은 신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직접 확인하며, 비유풀이부터 계시록의 실상까지 보름부터 길게는 석 달까지의 일정으로 성경 전반을 공부하고 있다.
5월 잠실 올림픽 홀에서 ‘신천지 말씀 대성회’가 열렸다. 이들은 행사에 참석하여 자진해서 단상에 올라 뜨거운 간증을 토했다.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주셨고, 성경 육천년의 역사를 깨닫게 해 준 약속의 목자께 너무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또한 지금껏 무지의 시대를 살던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그리고 성경을 깨닫는 것임을 본국의 성도들에게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많게는 천만이 넘는 성도를 거느린 목자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과 말씀 앞에서의 순종은 과연, 이 역사가 확실한 증거와 비전을 가졌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흐름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신천지 한류, 오늘도 신천지는 하늘의 문화와 평화의 정신을 통하여 혼돈한 지구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류가 대세인 오늘날, 구습을 뛰어 넘어 신한류를 개척한 신천지... 이제는 말세론이 아닌 창조론을 논할 때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신천지는 신패러다임의 주자로 우뚝 섰다.
사이비들이 선민의식 고취와 함께 혹세무민하는 양상은 전 세계 대부분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천지가 폄하한 싸이가 바로 장막성전의 창시자인 유재열의 사위라는 점입니다(“해 아래 새 것 없다” 신천지의 계보, 교회와 신앙).
싸이를 비롯해서 한류 열풍을 주도하는 K 팝 가수들이 온 세상에 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호루스의 눈, 루시퍼, 단일세계정부, 천주교 마리아 찬양 등 뉴에이지 사상입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한류 열풍과 하나님의 선민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등의 공작을 통해 한국인들이 마귀의 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게 올바른 분석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찬양하는 한류 열풍에 대해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바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이제 계시록 영해로 역시 우매한 사람들을 사로잡는 안상홍 증인회의 동방의 독수리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동방의 독수리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안상홍님)”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마지막 때 동방의 구원자로 등장하신 안상홍님을 믿고 있습니다.동방의 구원자이신 안상홍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성경 66권 예언에 따라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영적 고레스이신 안상홍님을 담대히 전하는 전도자들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동방에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46:11)
동방의 독수리는 구원자께서 동방 나라에 사람으로 등장하시어 하나님의 모략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러나 훼방자들은 사체를 먹는 독수리를 하나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성경의 예언을 부인하고 있습니다.성경을 살펴보면 다양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성정을 알려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성경의 비유는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특징을 인용한 것입니다.그러므로 비유된 동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찾으려는 의도는 억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자로 비유하기도 하고(계5:5)때로는 어린양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요1:29).또한 포도나무와 (요15장) 성전으로도 표현합니다(계21:22).
하나님을 사자, 어린양, 포도나무, 성전으로 표현하신 데는 각각 뜻이 있습니다.
사체를 먹는 동물에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포도나무나 성전을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도 불가합니다. 사체를 먹는 독수리에 하나님을 비유하면 안 된다는 훼방자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독수리로 비유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마치 독수리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신32:11)
동방의 독수리로 임하신 하나님은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이십니다.안상홍님께서는 두 번째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모략인 구원을 이루시고 계십니다.안상홍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곳은 절기 지키는 시온, 하나님의 교회입니다.안상홍님의 신성을 깨달아 안상홍님께서 이루시고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축복 받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을 통해 우리는 안상홍 증인회 역시 한민족의 우수성을 고취시키면서 동방의 독수리가 곧 한국에 임한 구세주 안상홍이라고 주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지어 계시록의 밧모 섬과 예루살렘 그리고 대한민국이 수평으로 같은 위도에 있다고 세계 지도에 수평으로 금을 그어 놓고는 한국이 곧 계시록이 말하는 ‘해 돋는 데’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지도를 펴서 수평으로 금을 거 보면 이것이 거짓말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호와’에 ‘o'이 세 개 있듯이 ’안상홍‘에도 ‘o'이 세 개 있어서 안상홍이 여호와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추론은 모두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 때문에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시 기존 교회들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은 부산제일교회 박무수 목사의 동방의 독수리 설교인 ‘동방의 독수리의 비밀’(사46:11)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속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물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마음 속 제일 깊은 곳에 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깊이 숨겨진 죄까지 드러내놓고 회개할 때 눈이 밝아져서 내 앞에 예비 된 복이 보입니다.
1. 동방의 독수리는 모략을 이룰 사람입니다.만일 여러분이 거짓 설교를 듣는 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노략질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들을 분별하여 아무 설교나 들으면 안 됩니다(요일4:1, 잠13:20). 교회에 가면 흔히 구약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4단계 회개 그리스도로 수건을 벗기지 않으면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고후3:14).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모르니 ‘동방의 독수리’를 바르게 깨달아 설교하는 분이 없습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입니다(사46:11).
2. 동방의 독수리는 참 목사입니다.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모략입니다. 모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명철한 자에게 모략을 주시며 명철한 자가 모략을 얻게 됩니다(잠1:5). 명철한 자는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 목사입니다(렘3:15). 모략을 얻은 참 목사가 여러분을 지혜와 명철로 양육하여 넉넉히 천국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참 목사를 지칭하는 ‘동방의 독수리’를 ‘악한 날짐승’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략을 얻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을 ‘악한 날짐승’으로 바꾸어 놓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시107:10-11).
3. 모략은 사람의 깊은 것까지 들여다봅니다.여러분이 독수리의 특성을 알면 왜 참 목자를 독수리에 비유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명철한 참 목사가 말씀을 힘 있고 강하게 전하며 모략을 얻은 자로서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밝은 눈이 있습니다(잠24:5, 잠20:5). 참 목자는 모략으로 성도의 깊은 속에 들어있는 죄를 보고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살려 주는 것입니다(눅23:34). 우리도 명철한 자에게서 나오는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책망과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잠21:16). 이것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특정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명철한 자가 동방의 독수리이며, 이 뜻을 동방에서 이루신다 하셨으니 우리는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참 목사의 설교를 듣지 않은 것을 회개하고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참 목사의 설교를 사모하며 명철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박무수 목사는 동방의 독수리가 참 목자 - 물론 자기 자신 - 를 가리킨다고 영해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는 영해의 대가입니다. 그의 4단계 회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입었던 옷을 로마 병사들이 4조각으로 나눈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4조각으로 나뉘었으니 무조건 4단계 회개가 필요하다고 영해를 합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체계를 영해 체계라 합니다. 이런 해석 체계에서는 교주가 원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그것이 곧 그 말씀의 확고부동한 해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국내 자생 사이비 교주들은 성도들의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동방’이 나오는 구절을 찾고는 문맥에 상관이 없이 그것을 한국이라고 주장하고 자기가 만든 집단이 바로 동방의 독수리가 임하는 곳이요, 거기에 속한 신자들이 14만 4천의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워낙 유명해져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김대호라는 작가가 <동방의 독수리>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이것은 안철수를 연상케 하는 18대 대통령 한철주를 주제로 한 미래소설입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한민족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하나인 단 지파의 후예로서 미래에 동방의 독수리로 세상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반도는 성지 중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신앙의 목적에 대한 계시를 받고 지중해 서편에서 동방으로 이동해 온 위대한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는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문자 그대로 풀어야 합니다. 이사야서 40장 이후에서 동쪽을 뜻하는 east라는 단어는 세 군데(사41:2; 43:5; 46:11)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사43:5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씨를 동쪽에서 데려오신다는 말이므로 이 주제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나머지 두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누가 동쪽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을 일으키고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 앞에 민족들을 주어 그로 하여금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분께서 왕들을 먼지같이 그의 칼에, 쫓겨 가는 지푸라기같이 그의 활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들의 뒤를 쫓아가되 심지어 자기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따라 안전하게 지나갔나니(사41:2-3)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 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사46:11).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잡혀간 이후에 그들을 해방시킬 사람을 동쪽의 메대/페르시아에서 세우려 하시면서 예언의 말씀으로 사41:2~3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44:28-45:3에서 고레스가 바로 그 사람 즉 하나님께서 동쪽에서 일으키실 자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46:11에서 다시 한번 고레스를 가리키며 동쪽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메대/페르시아는 이스라엘에서 보면 동쪽에 있고 또 살짝 북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41:25에서 동일하게 고레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북쪽으로부터 한 사람을 일으켰은즉 그가 오리라. 그가 해 뜨는 곳에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회반죽 위에 임하듯,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 같이 통치자들 위에 임하리라(사41:25).
그러므로 사이비 이단들이 자기들의 교주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이사야서 말씀은 한국의 이단 교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동북쪽에 위치한 메대/페르시아 왕국의 고레스 대왕입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해석은 사적인 해석이요, 비유 해석이며 영해의 더러운 산물입니다.
더욱이 이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동방의 독수리는 바르게 된 성경에서는 ‘동쪽에서 오는 굶주린 새’로 되어 있습니다. 굶주린 새는 까마귀도 될 수 있고 육식을 하는 새는 다 될 수 있습니다. 이 새가 꼭 독수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명백히 개역성경은 이것을 오역하였습니다.
영어 KJB와 ASV는 이 단어를 ‘a ravenous bird’(굶주린 새)로 번역하였고, NKJV, NASB, NIV와 RSV는 ‘a bird of prey’(희생물을 먹는 새)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떤 역본도 개역성경이 독수리라고 번역한 이 히브리 단어를 독수리 즉 eagle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안상홍 증인회에서 하나님을 독수리라고 하면서 언급한 출19:4와 신32:11은 하나님을 독수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처럼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국어를 제대로 보지 않고 무지하게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비유로, 은유로 풀어야 할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한 번도 독수리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독수리처럼 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직시한 대한성서공회는 개역개정판을 내면서 독수리를 '사나운 날짐승‘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동방의 독수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던 이단들에게는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개역성경만 고집하고 성경을 바꾼 성서공회를 향해 불평을 제기합니다. 그토록 좋아 하던 독수리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킹제임스 성경 같이 바르게 번역된 역본으로는 자기들의 영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독수리뿐만 아니라 14만 4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계시록 7장 4-8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5 유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갓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라. 4절이 말하듯이 14만 4천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들’입니다. 얼마나 명백합니까?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환난기에 왕국의 복음을 선포할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에서 이방인을 가리켜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까요? 개신교 내에 천주교에서 전수받은 이스라엘 대체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나오면 이들은 곧바로 영해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신천지, 안상홍 증인회 등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의 14만 4천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괴되면서도 육체를 입고 영생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에는 미국, 영국, 한국 등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한때 영국이 온 세상을 지배할 때에는 앵글로 색슨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2지파’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이런 사상이 넘어간 뒤에는 이방인(미국인)이면서도 유대인 행세를 하며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이런 부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는 한민족이 혹은 한민족의 어떤 종교 지도자가 동방의 독수리로 둔갑하고 그런 단체에 속한 자들이 14만 4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 중 극단적인 이들은 심지어 구원받으려면 구약의 유월절을 지키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다 비유 해석 즉 영해(靈解)의 추잡한 쓰레기이며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경 신자들은 이런 데 일고의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해의 근원이 바로 천주교의 교리를 확립해 준 어거스틴과 그의 교리를 그대로 차용한 칼빈이므로 우리는 어거스틴 주의와 칼빈주의를 경계합니다. 둘 다 교회의 세상 정치를 위해 성경을 왜곡한 사람들의 틀린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단 종파들이 비성경적인 종말론을 가르치는 것은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종파만이 마지막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주장에 미혹되지 말고 항상 경계하며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마25:13).
이단 종파들의 교주들은 거의 다 기독교회의 성직자 혹은 광적인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비성경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경전으로 삼아 기성 교인과 불신자들을 미혹하여 자기들만의 집단을 형성하고 반사회적이며 비윤리적인 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근신하여 깨어 있음으로써 이들의 미혹에 대항하며 현혹되지 말고 미혹된 자들을 악에서 건져내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런 사이비 이단 종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 무천년주의를 타파하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교회가 도둑질하기 위해 영해/비유 해석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이 잔혹한 마귀의 한민족 선민사상과 결합되어 한국에서만 가능한 종말론 사이비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보존해 주신 바른 성경을 가지고 바른 해석으로 바르게 진리 위에 서서 ‘환난 전 휴거’의 복된 소망을 기다리며 맡은 바 책무를 다 감당하는 좋은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한겨레: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4012.html신천지: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534싸이: https://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29안상홍: http://cafe.naver.com/festival1004/1183박무수: http://www.church.or.kr/board/board_view_01.asp?brdid=20&idx=1069
2013-07-23 11:39:59 | 관리자
지난 주 금요 모임이 끝난 뒤 한 젊은 형제가 잠깐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가족들 가운데 부산의 박O수 목사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말을 듣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물으니 박 목사는 조상들의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너무 불쌍한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목사가 인용하는 몇 가지 구절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가 인용하는 개역성경 벧전1:18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런 성경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살펴보니 그 형제가 말한 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흠정역: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개역성경: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개역개정: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KJB: Forasmuch as ye know that ye were not redeemed with corruptible things, [as] silver and gold, from your vain conversation [received] by tradition from your fathers;
NIV: For you know that it was not with perishable things such as silver or gold that you were redeemed from the empty way of life handed down to you from your forefathers,
개역성경, 개역개정, NIV를 보면 다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유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유전(遺傳)은 “1. 물려받아 내려옴. 또는 그렇게 전해짐. 2.<생물>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짐. 또는 그런 현상.”을 뜻합니다.
아니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으로 전해 내려온다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를 보니 킹제임스 성경에 있는 중요한 단어가 현대역본들에서는 다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즉 ‘전통으로'라는 단어가 빠지면서 이상하게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이 피를 타고 유전된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단들이 사실 성경을 유심히 봅니다. 부산의 박 목사는 이 구절을 유심히 보고는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교리를 만들어 신도들보고 그것들을 회개하라고 닦달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박 목사가 좋아하는 구절들은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을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 벌하시겠다고 하신 구약의 몇 구절들입니다. 신약의 베드로전서 구절과 구약의 몇 구절을 가지고 박 목사는 이단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먼저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야 하므로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다 찾아보았습니다. 밑에 보시면 그 구절들이 다 나와 았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구절은 모두 구약에만 있습니다. 신약에는 한 구절도 없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로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국가의 헌법으로 주신 십계명에서 처음 나옵니다(출20:4-5). 단순히 출20:5만 보지 말고 5절이 나오는 이유가 설명된 4절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4-5절의 핵심 내용이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들(혹은 조상들)의 불법(혹은 불법들)’을 담고 있는 다른 구절들도 보면 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포로가 되어 잡혀가거나 가기 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신정 정치 하의 이스라엘에게는 명백한 우상숭배나 이교도들과의 혼합 문제가 곧 질투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그 하나님은 배타적으로 그들에게서 100%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 온 민족이 당하는 심판이었습니다. 밑에 있는 구절들을 문맥과 함께 보시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들을 문맥에 상관없이 떼 내어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로 인하여 아버지들을 죽이지 말며 아버지들로 인하여 자녀들을 죽이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신24:16).
보라, 모든 혼은 내 것이라. 아버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혼도 내 것이니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겔18:4).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거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교리였으면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반드시 언급하고 가르쳤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구원은 개인의 죄들의 용서에 달려 있지 티끌만큼도 조상들의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사주팔자도 더 이상 성도들 안에서 작용하지 못합니다. 그런 일들은 과거에 우리가 마귀의 자녀였을 때 일정 부분 우리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딸로 신분이 바뀌었으므로 세상의 신에게 속한 어떤 악한 영들도 우리의 신분과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골2;13-15, 13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할례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시며 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15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다시는 이런 헛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구약의 신정 정치 하에서 민족적인 심판의 상황을 개인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또 개역성경 같은 허술한 성경을 의지하여 교리를 만들면 안 됩니다.
성경의 ‘몇 글자’가 이단을 만듭니다.
귀신들이 아니라 마귀들인데 성경이 귀신이라고 하니 베뢰아 귀신론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왕국의 신비들을 설명하시면서 듣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유가 없이는’(without a parable)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13:34,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런데 이것을 개역성경처럼 ‘비유가 아니면’으로 번역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비유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신천지의 비유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여기에 근거해서 성경이 다 비유이며 자기들의 교주만이 그것을 알려 줄 수 있다고 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성경 문제 대단히 중요합니다.신약과 구약을 잘 구분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과거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느라 평생을 속박 가운데 지내야 하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귀에게 속아 넘어간 저들의 눈을 속히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2944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46
‘
아버지들(조상들)의 불법’이 나오는 구절들
출20:4-5,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레26:39-42, 39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민14:18, {주}는 오래 참고 긍휼이 많아 불법과 범죄를 용서하나 결코 죄 있는 자들의 죄를 깨끗이 치우지 아니하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느니라, 하셨나이다.
신5:9-10,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사14:21, 그들의 조상들의 불법으로 인하여 그의 자손들을 살육할 준비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일어나거나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며 또 도시들로 세상의 표면을 채우지도 못하게 하라.
렘14:19-20, 주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셨나이까? 주의 혼이 시온을 심히 싫어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위해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랐으나 좋은 것이 없고 치료하시는 때를 바랐으나 고난을 보나이다! 20 오 {주}여,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의 사악함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을 우리가 인정하나이다.
렘32:18, 주께서는 인자하심을 수천의 사람들에게 베푸시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들 뒤에 오는 그들의 자손들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신 이, 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주}가 그분의 이름이로소이다.
‘조상들(아버지들)의 불법들’이 나오는 구절들
레26:39-40, 또 너희의 남은 자들이 너희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불법 가운데서 쇠약해지며 또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 가운데서 그 조상들과 함께 쇠약해지리라. 40 그들이 만일 자기들의 불법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과 자기들이 나를 대적하며 범한 그 범법을 자백하고 또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걸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적하여 걸었으며 또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자백하고 자기들의 할례 받지 않은 마음을 낮추어 자기들의 불법으로 인한 형벌을 수용하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또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며 그 땅을 기억하리라.
느9:2, 이스라엘의 씨가 모든 타국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일어서서 자기 죄들과 자기 조상들의 불법들을 자백하니라.
사65:7, 너희 불법들과 너희 조상들의 불법들을 함께 보응하리니 그들이 산들 위에서 분향하고 작은 산들 위에서 나를 모독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이전 행위를 헤아리되 그들의 품속까지 헤아리리라. {주}가 말하노라.
선조들의 불법들, 렘11:10그들이 내 말들 듣기를 거절한 자기 선조들의 불법들로 돌아가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들을 섬겼은즉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애5:7, 우리 조상들은 죄를 짓고 없어졌으며 우리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였나이다.
단9:16, 오 [주]여, 간청하옵나니 주의 모든 의를 따라 주의 분노와 주의 격노를 돌이키사 주의 도시 예루살렘 곧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들과 우리 조상들의 불법들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우리의 사방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치욕거리가 되었나이다.
2013-07-09 16:49:47 | 관리자
배도와 분리
현대 교회들이 많이 배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배도라는 말은 구원에 대한 교리와 대부분의 교리들이 올바른데 시간이 지나면서 구원 이외의 다른 교리들이 심각하게 타락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나 불교가 배도했다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또 신천지나 안상홍 파가 배도했다는 말도 의미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데에는 배도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것으로 알았던 교회나 교단이나 학교가 타락하는 것을 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는 한 마디로 배도와 분리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는 보수적인 개혁 교회 목사들을 배출하기 위해 1812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배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여기서 나온 메이첸, 밴틸 박사 등이 1929년에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도 자유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밥 존스 대학의 설립자인 밥 존스는 감리교도(침례를 주는 감리교도)였습니다. 과거에 미국 감리교는 매우 근본적인 믿음을 소유하였지만 1900년대를 거치면서 1920년대의 자유주의 파동을 겪으면서 인본주의로 흘러서 지금은 미국 장로교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인본적인 교단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에 밥 존스는 감리교에서 분리하여 1926년에 근본주의 초교파 학교인 밥 존스 대학을 세웠고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가장 강력하게 근본주의와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학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손자 대에 이르러서는 킹제임스 성경을 버리고 천주교 세력과도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밥 존스 출신으로 호튼 박사는 1950년대에 펜사콜라에 내려가 펜사콜라 바이블 칼리지(www.pcci.edu)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현재 학생 수가 5000명이 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독립침례교회 대학입니다. 대규모 대학으로는 공공연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학교입니다. (참고로 이 학교는 럭크맨의 펜사콜라 바이블 인스티튜트(펜사콜라 성경 학교)와 같은 도시에 있지만 다릅니다. 참고로 럭크맨도 밥 존스 대학 출신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도 언제 타락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또 거기서 다른 이들이 분리해서 진리를 수호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배도와 분리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분리(separation)를 통해 진리를 순수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나 사람은 변합니다. 만약 그 변화가 진리를 배격하는 것이면 가차 없이 분리해서 진리를 순순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분리하려면 말씀에 대한 지식과 확신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 분리를 알고 실천하는 형제/자매들이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의 말처럼 하나님은 큰 그릇, 금 그릇, 은그릇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어도 깨끗한 그릇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명백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샬롬
레위기 10장 8-11
8 ¶ {주}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너나 혹은 너와 함께한 네 아들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니 그것은 너희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아니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사이에 구별을 두고 11 이로써 {주}가 모세의 손으로 말한 모든 법규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에스겔 22 : 26 그녀의 제사장들이 내 율법을 범하고 내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전혀 구분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차이를 보이지 아니하며 자기 눈을 가려 내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혀졌느니라.
에스겔 44 : 23 또 그들은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를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하게 할지니라.
고린도후서 6장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느냐?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느냐?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2013-07-06 15:40:48 | 관리자
다음은 <하나님의 뜻>에서 발췌한 것입니다.교회와 목사의 역할에 대해 잘 보여 주며이단 교회의 문제를 잘 보여 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175 선택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을 때 바른 시각 유지하기 교회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조심하는 마음도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가장 신실한 신자라도 동기가 얽혀있어 엉뚱한 조언을 줄 수 있다.
둘째,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권한 남용에 능한 자들이 있다.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터무니없는 권위를 주장하며 사실상 독재자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있다. 보수성이 강한 진영에서 특히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교인들에게 결혼 대상과 취직할 직장과 돈 쓰는 방식과 시간 사용 방식을 정해 줄 권리가 있는 사람인 줄로 착각한다. 기독교 교회는 어느 종교 집단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이단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자가 있거든 반드시 신중하게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선한 지도자는 양들을 지배하지 않고 섬긴다.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이단에 들어가는 이유를 연구했다. 이단의 영향에 가장 쉽게 넘어가는 자들은 권위적 기독교를 경험하며 안전을 얻기 원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약속된 것 - 사랑, 봉사, 높은 기준, 진지한 헌신 - 을 실현하는 듯 보이는 단체에 들어간다. 그러나 머지않아 덫에 걸린다. 이미 심각한 피해를 당한 후에야 그 집단의 정체가 밝혀진다.
몇 년 전 어느 장례식에서 만난 한 여자가 나한테 말했다. “내 가까운 친구들이 다 죽었어요.” 깜짝 놀라 사연을 묻자 그녀가 들려준 내막은 이랬다. 캘리포니아 주에 살 때 그녀는 자기 말로 ‘지상 천국 같은’ 단체를 발견했다. 그래서 들어갔다. 몇 년 후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그 단체를 나왔다. 지도자는 갈수록 철권을 휘둘렀고 단체는 점점 고립되었다. 마침내 사면초가의 심정에 빠진 그들은 남아메리카에 땅을 사 그곳으로 이주했다. 몇 년 후 900명이 넘는 멤버들이 가이아나 존스타운에서 집단 자살했다. 지상 천국 같던 곳이 지상 지옥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권위적인 교회는 여전히 위험하다. 하나님의 뜻을 내세워 타인의 일을 대신 결정해 줄 만큼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도를 넘어선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공금을 횡령하거나 간음하거나 자녀를 홀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교회가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직업의 종류 - 교사가 아니라 의사 - 나 결혼 대상 - 철수가 아니라 길동이 - 에 있어 타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우리가 그분을 구하며 사는 한 우리가 이 땅에서 내리는 많은 결정들에 대해 하나님이 크게 개의치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2013-06-26 16:26:49 | 관리자
이슬람이 몰려온다!
앞으로 천주교와 함께 이슬람이 온 세상을 장악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의 영상과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zdNg8Dotovc
https://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11&cate_name=%EC%9D%B4%EB%8B%A8+%EA%B5%90%EB%A6%AC
샬롬
2013-06-22 10:07:24 | 관리자
요즘 저희 교회 자매님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몸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하여 간단히 답을 드립니다.
먼저 영/혼/몸에 대해서는 노영기 형제님이 잘 정리해 놓으셨으니 그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315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부터 영/혼/몸을 동시에 가진 3중적인 존재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이 땅에 있든, 지옥에 있든, 천국에 있든, 부활하기 전이든, 부활한 후든 언제나 3중적인 존재라는 말입니다. 즉 언제 어디서든 몸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그리고 아브라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다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나사로와 아브라함은 지옥(지하세계)의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낙원에 있었습니다. 부자는 지옥(지하세계)의 불타는 뜨거운 부분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한 부류는 천국에, 한 부류는 지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다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입, 눈, 손, 발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몸은 지상에서 그들이 쓰던 몸이 아닙니다. 그 몸들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2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썩어서 없어졌거나, 부자나 나사로처럼 그 당시 무덤 속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다 부활할 때까지 어떤 형태의 중간 단계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몸을 혼적인 몸(soulish body)라고 말합니다.
계시록 6장 9-11절을 보면 죽임당한 혼들이 나오는데 그 혼들 역시 말도 하고 옷도 입습니다. 몸이 없다면 이런 것들이 다 불가능합니다.
사무엘기상 2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를 통해 단 한 번 낙원에 있던 사무엘을 불러올리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 사무엘도 정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으로 나옵니다. 물론 그의 몸은 그 당시 그의 무덤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두에게 잠정적인 중간 단계의 몸을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실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죄로 인해 이 땅에 들어오게 된 사망을 예수님 스스로 이기시고 또 모든 성도들도 그분의 피로 사망을 이겼음을 입증하시고자 함입니다. 중간 단계의 몸으로는 성도들이 사망 권세를 이긴 것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은 곡식의 알갱이입니다. 이 알갱이를 뿌린 뒤 이것이 죽어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죽음을 이기고 되살아나서 하나님이 주기를 원하시는 고유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고전15:35-39).
이 영화로운 몸을 가져야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먹기도 하고 마음대로 제약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과 우주)에 영원히 살게 될 사람들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땅에서 제약 없이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아마 중간 단계의 몸은 이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주 예수님처럼 순식간에 영화로운 몸을 입을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큰 평강을 기원합니다.
샬롬
2013-06-14 18:47:39 | 관리자
요즘 저희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 가운데 안수 복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제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50세가 넘도록 교회를 다녔어도 안수 복음이라는 말은 처음 듣기에 그게 무어냐고 물으니 네이버 등에서 찾아보면 된다고 해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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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선교회(기소선) 박옥수 목사의 안수 복음의 정의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개역성경)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수 복음은 곧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세례 요한의 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원래 글에 세례라고 되어 있기에 일단 세례라고 썼지만 세례라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박옥수 목사의 책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1, 영원한 속죄 편)에서 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 세례를 베풀 때 머리에 안수를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이 안수가 전 인류의 죄를 세례 요한이 대표해서 예수님께 넘기는 그 과정입니다.알겠습니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지요?"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왜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하고 세례식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니까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건너갔습니까, 안 건너갔습니까?」(1권 218쪽).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에게 안수했을 때,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넘겨졌고, 예수님이 그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양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이었고요.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
세례 요한은 인간 중에서 가장 큰 자였습니다. 가장 큰 자란,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어른이며 대표자란 의미입니다((기쁜소식지 2001년 8월지. 김성훈)
여러분 모두 여자가 낳았지요. 여자도 여자가 낳았고, 남자도 여자가 낳았어요. 온 세상은 여자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인류의 대표자로 세워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인간 중에 제일 큰 자이고,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온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례 요한을 온 인류의 대표자로 세운 이유는 예수님에게 온 인류의 죄를 넘겨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일과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은 마태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 이 두 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보면, 하나님을 만나고 복 받는 거는 너무 쉬운 것입니다. 이 두 분이 잘 돼야 저나 여러분이 잘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갈릴리 요단강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를 받고 있는데, 예수님이 뚜벅뚜벅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세례를 베풀고 있었던 요한이 궁금해 하는데 예수님이 요단강에 세례를 베푸는 요한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아, 내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왔다.” 하고 이야기를 하시니까 세례 요한이 깨달았습니다. “아, 이분이 죄 사함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된 그 예수님이시구나. 구원자시구나.” 그것을 세례 요한이 깨달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한테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라는 말은 안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이 “야, 세례 요한아, 너 나한테 안수해.” 하니까 세례 요한이 깜짝 놀랐습니다.“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안수를 합니까? 내가 받아야지.” 근데 예수님이 이야기를 해주니까 세례 요한이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짜 교만한 사람이구나.”“네가 내게 안수해야 모든 의가 이루어진다.”는 말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봅시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이틀 전에 예수님에게 넘겨준 죄는 세상 죄입니다. 즉 이틀 전에 세례 요한의 안수를 통해 세상 죄가 예수님에게 넘어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온 인류의 대표자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안수할 때 세례 요한의 죄만 넘어갔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가 다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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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례자 요한이 인류의 대표라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2. 침례자 요한이 대제사장으로 예수님에게 안수를 주었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3. 그 안수에 의해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넘어갔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4. 더욱이 예수님은 머리에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온 몬이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안수했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5. 침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에게 - 이방인들이 아니라 -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회개의 침례를 선포한 구약의 마지막 대언자입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야 하므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노라, 하니라(요1:31).
6. 세상의 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는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예수님에게 전가되어 심지어 그분 자신이 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7. 침례자 요한의 안수가 없었으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기소선의 안수 복음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창조물인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개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사람의 혼을 구원하는 데 악한 영향을 미칩니다.
8. 침례자 요한이 안수함으로 모든 의를 이루었다는 것 역시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회개의 침례를 승인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복음으로 즉 다른 복음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다른 복음을 가져오는 자가 있고 그런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강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6, 8-9).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고후11:4).
이런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그런 구원이 과연 성경적인지 궁금합니다.
기소선을 세운 대표 목사의 성경 해석이 이 정도면 나머지는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한 사람이 성경 해석의 오류를 범하기 시작하면 한 가지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의 신학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골병들어 고칠 수 없게 됨을 보여 줍니다. 즉, 오류는 오류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오류를 생산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은 실로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죄악입니다.
사람의 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님이 홀로 하신 일입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만의 하나라도 사람의 행위가 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 같은 사람을 높이는 안수 복음은 영원히 하나님께 저주받을 ‘다른 복음’입니다.
아, 이런 것을 복음으로 알고 그것으로 인해 구원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픕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탐구해야 이런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요5:39).
2013-06-07 14:41:30 | 관리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남자와 결혼할까, 다른 사람과 할까?
이 직장으로 할까, 더 기다릴까?
무언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를 주실 줄로 생각하고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뜻을 알려주실까요?
"하나님이 이번에 인도하셨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겠어요. 그분의 뜻을 알아보려고요.'
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그라미 안에 찍혀 있는 자그마한 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가 가능한 거대한 강과도 같습니다.
그 가능성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백 혹은 수천 가지의 대안적 선택들이
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빨간 색 글은 피터 블룸필드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http://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A553518626&frm3=V2
성도님들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필독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악순환에 들어가면
정상적인 믿음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믿음으로 하기 바랍니다.
이 책은 너무 좋은 내용을 좋은 예와 함께 잘 가르쳐 줍니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맹목적 신앙이 문제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새로운 계시를 주신다고 주장할 때 일어나는 주된 문제는 주관주의의 문제다. 사람의 지각과 주관적 경험들은 증명할 수 가 없다. 우리 자신의 내적인 경험을 우리는 입증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것을 반증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그냥 경험일 뿐이다. ‘내가 계시를 받았다’는 말이나 ‘내가 꿈을 꾸었다’는 말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두 가지 모두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누군가가 주장할 때 거기에는 신빙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왜 그 말을 믿어야 하는가? 객관적인 사실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맹목적 신앙일 뿐이다.
참 선지자들의 경우, 하나님은 그들을 입증해 주기 위해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심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한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 선지자들의 신분증이었다. 하나님이 그 위에다 인증 도장을 찍으셔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음을 분명히 하셨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하셨다. 모세의 기적, 사도들의 기적,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은 그들이 전한 메시지를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표적들이 이제는 멈추었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위대한 일들을 하시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의미의 ‘표적’이 아니다.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계시 전달자임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흔히 오용되는 현상에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맹목적 신앙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잭과 질이라고 하는 두 교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번 상상해 보자.
잭 : 지난밤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어.
질 : 아니야, 그렇지 않아 잭. 계시는 성경이 완성되면서 멈추었어.
잭 : 내가 직접 들은 말도 모르겠어? 네가 지금 나한테 말한 것처럼 확실하게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니까.
질 : 잭, 네가 무언가를 경험하기는 한 것 같은데, 그건 잘못 해석한 거야.
잭 : 어떻게 네가 감히 나더러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어! 내가 안다니까! 나한테 일어난 일이라고! 어쩜 너는 그렇게 독단적일 수가 있니? 무슨 근거에서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데?
질 : 올바른 성경적 가르침과 정통 기독교 신학에 근거해서야.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 적이 있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완전하게 다 말씀하셨다고 했어. 역사적인 증거도 보았고, 성경적인 증거, 그리고 신학적인 증거도 다 보았어. 참교회는 언제나 지속되는 계시를 부인해 왔대. 지속되는 계시는 영지주의자나, 몬타누스파나, 신비가들이나 퀘이커들 같은 분파나 이교들이 하는 전형적인 주장이야.
잭 : 그것 참 안 됐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내게 말씀하셨고, 나는 무슨 이교를 믿는 게 아니거든!
질 : 좋아, 그렇다면 개신교 신조들이 어떤 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 나한테 설명해 봐! 그리고 목사님이 어느 부분에서 성경을 잘못 해석했는지도 보여줘 봐. 왜냐하면 핵심적인 본문들을 예로 들어서 나를 납득시키셨거든. 목사님의 강해를 하나하나 짚어볼 테니까 어디에서 틀렸는지를 말해 봐.
잭 : 그게 바로 너의 문제야, 질. 너는 너무 지적이야. 너는 너무 논리적인 게 탈이라니까. 기독교는 원래 그렇게 교리적으로 정확한 게 아니야. 너는 성경이 마치 모든 행동과 견해의 최종적 판단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을 대해. 마치 칼처럼 그것을 휘두른 다구! 긴장을 좀 풀고 그 책에만 머리를 박고 있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마음을 열어봐.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시게 해! 하나님이 네게 새로운 계시를 말씀하시게 해드려! 성경과 정통 신학의 역사로 나를 판단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 모든 위대한 신조들과 신학자들이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상관 안 해. 그건 그 사람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니까.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거야.
질 : 그러니까, 잭, 네 말은 너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틀렸다는 거니? 그거 좀 걱정되니 않니?
잭 : 내가 걱정되는 건, 질 네가 너무 객관적이어서 하나님의 영을 거절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거야. 너는 객관적이고 문법적인 성경적 사실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열려’ 있지가 않아. 네게는 신앙이 파고들 여지가 없어.
질 : 나는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고 거기에서 제대로 추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믿어. 참된 신앙은 합리적이지 너처럼 맹목적이지가 않아. 잭, 너는 너의 감정과 경험이 네 신앙을 지배하게 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네가 지속되는 계시 같은 걸 믿는 거야. 잭, 내가 보기에 너는 신비주의자 같아. 네가 이미 논리적 추론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기 때문에 나는 너를 설득 할 수가 없어. 가장 유능한 사상가와 저자들이 네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 교회사에서 가장 학식 있는 종교 회의와 위원회가 네 견해가 틀렸다 해도 너는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를 않아. 너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들여서 그들이 성경의 어느 부분을 잘못 해석했는지를 보여 주려고도 하지 않아. 너는 하나님이 너한테 개인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하는 확신 때문에 교만해져서 경건을 가장하는 거만한 태도로 식견 있는 교회를 깔보고 있어. 그들이 네 입장이라면, 하나님이 너한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말씀하셨다면 이해할 거라는 생각으로 너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어. 너는 속으로 그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겠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짐작하다시피 대화는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된다. 하지만 모든 논쟁을 아주 빨리 끝내 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질에게는 있다.
잭 : 지난밤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어.
질 : 나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는데, 네가 그 말을 할 거라고 하셨어. 하지만 네 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어. 그런 적이 없다고.
불에는 불로 맞서라! 주관적인 허튼 소리는 더한 허튼 소리로 맞서라.
이제 잭은 자신이 촉발시킨 것과 비슷한 종류의 신비주의적 주장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질의 주장을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다. 질은 잭이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과 똑같은 ‘맹목적 신앙’의 반응을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에 잭이 질이 받은 ‘계시’를 믿지 않겠다고 한다면, 잭은 질에게도 그가 받은 ‘계시’를 부인 할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2013-06-05 17:53:5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