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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우리 고마우신 목사님 좋은 사이트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 하지만 말입니다. 요즘들어 진짜 가진것은 믿음뿐인 많이 세상적으로도 볼적에 부족하고 또한 교회에서도 부족한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면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래서 용기없어 자살도 못하고요, 로마서에 보면 질그릇을 만든 이에게 불평원망을 할수 없다고는 로마서에도 나왔지만, 하지만 욥기서는 온통 하나님을 원망 뿐인 애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조그마한 희망은 있어서 더 믿어볼려는데요, 이런 저에게도 저처럼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교회를 옮겨 다녀야 하나요 어찌 하오리까 알려주옵소서   아멘 할렐루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2: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2-06 20:56:52 | 김대형
혹시 노아홍수때 터지고 남은 깊음의샘? 욥기를 보다 (욥 38:30, 킹흠정) 물들은 돌로 숨긴 것 같이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느니라. 라는 구절을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아래와 같은 2가지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성경의 정확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압력에서는 고온의 얼음이 형성될 수 있고, 지구의 깊은 곳에는 많은 물이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성경은 (욥 38:30, 개정)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욥 38:30, 개역)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욥 38:30, 새번역) 물을 돌같이 굳게 얼리는 이, 바다의 수면도 얼게 하는 이가 누구냐? 되어 아래 기사에 적용 시킬 수가 없네요.   동아시아 밑,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 지진학자 마이클 와이세션 교수 등은 7일자 보도 자료를 통해 지구 내부에 거대한 지하 저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60만장의 진동도(震動圖)에 나타난 8만개의 전단파를 근거로 제작된 3D 컴퓨터 모델에서 그 모습이 확인된 ‘지구 속 바다’의 크기는 적어도 북극해와 비슷할 것이며, 깊은 맨틀 속에 물이 존재한다는 추정이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태평양의 바닥 즉 대양저(sea floor)의 일부가 지구 중심 쪽으로 가라앉으면서 암석 속으로 물을 공급하고, 그 암석들이 다시 가라앉으면서 가열되어 약해지고 불안정해질 때 물이 배출된다. 배출된 물은 상승하면서 쌓여 막대한 양의 ‘지구 속 바다’를 형성하게 된다. 이 저수지는 동아시아 아래, 지구 표면으로부터 620마일 아래(하부 맨틀의 상층)에 있다. 관련 논문은 미국 지구 물리학 연합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릴 예정이다. 한편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것은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을 연상시키기 때문. 19세기에 출간된 소설에서 한 과학자가 비밀문서에 기록된 터널을 통해 지구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고대 생물 종으로 가득한 바다와 대륙이 있었다. (사진 : 동사이아 아래 하부 맨틀의 상층에 존재하는 ‘바다’의 모습. 왼쪽 사진은 지구 단면도로 맨틀 내부에 존재하는 바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쪽 위 사진은 단면의 위치를 나타낸다. 두 그림 속에서 붉은 색은 부드럽고 약한 암석, 푸른색은 단단한 암석이다. 노란색과 하연색은 평균의 강도를 갖는다. 워싱턴대학교의 보도 자료 중에서.)     끓는 물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이 있다   요즘 며칠동안의 날씨를 돌아보면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인지 기온이 예년에 비해서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침과 한낮의 기온차(일교차)가 커져서 주위에 감기 환자들도 많이 보이고 마치 늦은 봄 같다는 착각을 할때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이런 식으로 2~3주만 시간이 지나가면 금방 여름이 왔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이 더위를 느끼게 되면서 시원한 음료수나 빙과류,아이스크림등을 찾게 되겠지요... 그리고 더운 여름철에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를 먹다보면 으례히 느끼고 경험하는 일들이지만 아이스크림이 너무 빨리 녹아내리곤 합니다. 또한 커피나 콜라같은 음료를 차갑게 마시려고 얼음을 넣기도 하는데 이 얼음도 기온이 올라갈수록 더 빨리 녹아버립니다.   그런데 여름철에 우리가 종종 먹게 되는 빙과류나 얼음과는 달리 팔팔 끓는 섭씨 100도의 물속에서도 녹지 않는 특이한 얼음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시나요...       녹지 않는 얼음 아이스-7(ICE-VII)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통상 얼음은 섭씨 0도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퍼시 브리지먼 박사는 "아이스-7"(ICE-VII)이라는 특이한 얼음이 있음을 일련의 실험으로 밝혀냈는데 이것은 끓는 물(섭씨 100도)속에서도 녹지 않습니다.   우선 아래의 얼음 분자구조를 비교해서 보아주십시오...                                                           기존의 얼음 분자 구조                                                아이스-7(ICE-VII) 아이스-7(ICE-VII)의 분자 구조. 보통의 얼음구조와는 달리 수소결합의 고리가 육각형 구조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형상이다. ⓒ구글 학술검색     퍼시 브리지먼 박사는 여러 화학물질에 고압을 가한 후 일어나는 현상들을 면밀히 관찰하던 고압 실험물리학자였는데 얼음에 초고압을 가해보니 얼음속의 분자나 원자간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고 얼음이 가지는 소위 6각형 격자구조가 더욱 촘촘해지면서 어떤 외부적인 힘에도 (열에너지!)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되는 원리를 이용해 아이스-7(ICE-VII)이라는 얼음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밝혀냈던 것입니다. (퍼시 브리지먼 박사는 고압 물리학계의 선구자적인 인물로써 우리 모두가 흔히 알고 있고 지금도 산업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인조 다이아몬드의 제조원리를 최초로 정립했으며 194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퍼시 브리지먼 박사의 보다 자세한 업적과 내력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퍼시 브리지먼 ☜여기를 클릭하세요! )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이스-7(ICE-VII)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렇게 이름을 정한 이유는 7이 무슨 행운의 숫자여서가 아니라 압력과 온도에 따라서 얼음이 여러가지(이를테면 아이스-4 ,아이스-6같은 식의 일련번호로 이름이 붙게 된다!) 형태로써 존재하기에 얼음의 명칭과 숫자를 그런 식으로 부여한 것입니다. 다시 아래 그림을 보세요...   아이스-7(ICE-VII)의 구조ⓒ구글 학술검색       아이스-10(ICE-X)의 구조ⓒ구글 학술검색 위에 그림을 보시면 얼음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질수록 분자구조가 더욱 촘촘해지고 얼음의 일련번호가 올라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음의 기본적인 분자 구조, 성격과 아이스-7(ICE-VII)과의 차이점 여러분도 잘알다시피 물은 액체상태일때는 활발하게 분자운동을 하다가 온도가 내려가면 분자활동이 둔화되고 수소결합의 구조가 소위 육각형 모양으로 변하면서 얼음이 됩니다.    물 분자의 운동상태를 표현한 그림 ⓒ구글 학술검색     그런데 액체상태일때는 분자간 운동이 활발하다보니 빈 공간이 별로 없지만 얼음이 되면 육각형 구조가 되면서 액체상태일때보다는 상대적으로 빈 공간이 훨씬 많아지는데 아이스-7(ICE-VII)은 초고압에 의해서 그 빈 공간 주변에 띄엄띄엄 존재하던 수소결합 분자구조가 관통하면서 공간이 줄어들거나 더욱 응집되고 촘촘해지는 것입니다.     Liquid Water and Hydrogen Bonding Concept Simulation - reenacts hydrogen bonding between molecules of liquid water.
2010-12-06 20:26:45 | 허광무
오늘날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 역시 뭔가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적은 역사상 없었지 싶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그런 트렌드 자체도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 있던 나그네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자기들의 시간을 달리 쓰지 아니하였더라. (행 17:21)   성경 66권 각 책들이 모두 개성이 넘치는 책이긴 하지만, 본인은 사도행전이 문체와 표현이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IT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얼리어답터라는 집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맨날 뭔가 새로운 트렌드, 조금이라도 더 창의적인 개똥철학에 탐닉하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것과 관련된 언어 현상을 먼저 좀 살펴보기로 하자.new에 대응하는 한국어는 원래 ‘새롭다’라는 형용사인데, 신기하게도 ‘새’만 써도 관형사로서 ‘새롭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유명한 컴퓨터 개그가 있다.   “교수님, 새에 대해서 논문이라도 쓰시나 보죠?” (레 11:13-19 같은?)“아니. 파일을 ‘새 이름으로’ 저장해야 한다는데, 이젠 더 생각나는 새 이름이 도저히 없어서 고민일세.”   영어권의 “Press any key...” / “any라는 키가 도대체 어디 있지?” 개그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식 컴퓨터 개그가 아닐 수 없다. 썰렁했다면 죄송. ㄲㄲㄲㄲㄲㄲㄲㄲㄲ사실, GUI 환경에서는 각종 메시지 박스는 반드시 ‘확인’(OK) 버튼을 클릭해야 하고, 이 버튼은 Space나 엔터로만 인식이 되니까 Press any key 같은 메시지를 볼 일은 없어졌다. 명령창(command prompt; console) 환경에서나 볼 수 있다.요즘 소프트웨어들은 새 이름 같은 악명 높은 오해(?)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새’ 대신 ‘다른 이름으로 저장’이라는 표현을 써 주고 있다는 것도 알아 두자. ^^;;   하나 더, 본인은 한국어에서 ‘기존’이라는 표현이 오· 남용되고 있는 게 개인적으로 굉장히 거슬린다. ‘예전’, ‘종전’이라는 표현이 싹 다 저걸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이란, 현존(현재 존재)· 실존(실제로 존재)만큼이나 ‘이미 존재’라는 뜻일 뿐이다. “기존하는 아이템”처럼 활용도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에 있는 것은 지우세요”는 도대체 뭐란 말이냐. 역전앞, 프린터기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기존’이라는 말을 제일 널리 퍼뜨리고, 또 잘못 퍼뜨리기도 한 곳이 IT계가 아닐까 하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맨날 업그레이드, 업데이트를 밥 먹듯이 하는 분야이다 보니 늘 예전 것과 비교를 하고 뭔가 새롭다는 걸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굳이 IT계가 아니어도 자동차계도 차 이름 앞에다 new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뉴 엑셀, 뉴 소나타, 뉴 프린스, 뉴 그랜저... 그러고 보니 포니는 ‘뉴 포니’가 아니고 ‘포니 2’였는데, 나중엔 네이밍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new가 붙고 화려하게 세상에 드러난 그 이름들이 세월이 흐르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야별로 살펴보면 재미있다. 1991년에 출시된 MS-DOS 5.0의 미국 현지 CF의 한 장면이다. “It's new!!” 출처는 유튜브. (화질이 안 좋은 것에 양해를 구한다)1985년에 스티브 발머가 온갖 오버액션으로 윈도우 1.0 광고 개그를 펼치던 동영상만큼이나 웃기다.   1. NE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윈도우 운영체제는 90%가 넘는 점유율로 PC 환경을 완전히 평정했다.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5~20년 가까이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윈도우 1.0부터 3.x까지의 16비트 시절에 쓰이던 자체 실행 파일의 이름은.. New Executable이었다! 32 내지 64비트 시대가 된 오늘날에 이 실행 파일 포맷이 새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Portable Executable이라는 다른 포맷이 쓰임)   2. NDC 위의 사진은 1984년에 도입되어 20년 남짓 국내에서 운행된 무궁화호 디젤 동차(기관차 견인형이 아니고)인데, 업계 종사자 내지 철도 동호인들이 부른 명칭은 NDC. 신형 디젤 동차(New Diesel Car)였다. 1984년에 철도청이 저런 CF를 찍던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차량이었으나, 지금은?   2006년부터 폐차가 진행되어 지금 N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못미 NDC.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영어로 치면 RIP -- rest in peace와 비슷한 인터넷 이니셜.)출처: 류기윤(현직 코레일 기관사 겸 철도 동호인) 님의 블로그   3. NIV, NASV, NRSV, NKJV 등등..;;드디어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이름들이 나왔다.new라는 이름이 유난히도 자주 눈에 띄는 분야는 다름 아닌 성경 역본이다.물론 이들의 실체는 변개된 old lie일 뿐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과거 통근열차(CDC)를 무궁화호로 개조하여 2008년부터 NDC의 후속 차량으로 뛰고 있는 열차는 RDC라고 불리고 있는데, KJV 신자들이 싫어하는 RV, RSV의 R과 같은 의미의 이니셜이다. Revised와 New는 여러 분야에서 통용되는 단어임이 틀림없다. ^^;;   이런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 있다.지금 당장은 새롭다고, 참신하다고 new라고 상업적으로 막 떠벌려진 것들도.. 세월이 흐르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게 태반이며, 결국 인간은 동일한 패턴의 쳇바퀴를 돌고 있을 뿐이라는 것. 성경의 그 유명한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 (전 1:9)   자칭 이종 예술가로 활동 중인 김형태 씨의 칼럼을 읽어보면 글쓴이가 저런 면에서 상당한 통찰력이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다. 기타 다른 주제의 글에서 느껴지는 인본주의· 자유주의적인 견해가 성경의 사고방식에서 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옛날과 오늘날이라든가 옛 것과 새 것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아주 잘 간파했다.   ... 과거에 비해서 현재가 여러가지 의미로 더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문화, 예술, 철학은 오늘도 옛것을 계속 리메이크하면서 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저에게 반문했죠? 정말 이 시대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만 지식이 있으면 당연한 소리입니다. 아무 분야나 하나 잡아서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20년,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이 더 좋은 시절이냐고. 음악, 패션, 건축, 디자인, 가구, 자동차, 경제구조, 세계 평화, 문학, 미술, 레크리에이션, 철학, 스포츠 등등 알고 보면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따끔하지만 유익한 고언, 충고, 조언이 많으니 칼럼을 진지하게 읽어보기 바란다.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 (렘 6:16)   굳이 이 구절과 비슷한 사상이 담긴 사자성어를 찾자면 온고지신인데...이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무조건 배척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수구꼴통이 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극단으로 치우치면, 문명의 이기를 다 거부하고 생체 이식 칩과 신용카드가 666이라는 논리로 빠지게 된다.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언뜻 보기에 구시대적이고 수구꼴통(?) 같지만 결국 인간 세상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그 검증되고 안정화된 성경적인 길을 일단 존중하고 따라 걸으라는 뜻이다. 그런 것들이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중에 진짜로 새로운 건 극히 드물다. 인생의 법칙은 불변이며, 결국은 하나 좋은 걸 만들었다면 이를 위해 다른 하나를 반드시 희생했다는 식으로 대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분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상업적인 광고는 그런 이면의 그림자를 소비자에게 절대로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행간의 의미를 읽는 게 인생의 지혜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능력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여기에 대해서도 분야별로 여러 case study를 제시할 수 있으나, 시간과 분량 관계상 거기까지는 생략하겠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NEW란,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받은 후 바뀐 행적이고, 훗날 이 땅에 세워지는 새로운 왕국이며, 나중에 창조될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만 new가 아니라 저게 진짜로 객관적으로 new이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분이라면 역설적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옛 길을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2: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2-04 12:25:26 | 김용묵
실행치 아니하는 자인가? 확인하지 아니하는 자인가? (신27:26)     제가 출석하고 있는 사랑침례교회는 금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읽습니다.   지난 금요일은 신명기를 읽었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따분한 율법책 인줄 알았던   신명기가 읽으면서 너무나도 새롭고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그날의 주제는 “판단하라 판단하지 말라” 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마태복음 7:1~2절의 구절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말씀은 많은 부분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전2;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53)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마치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을 그렇게   행한 자에 관하여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6:2)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너희가 지극히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    (눅12:57) 참으로 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그 외에도 (고전5:12, 7:25, 10:15, 14:24, 14;29) (요7:24)(빌1:9)   심지어는 예수님께서도 질문을 던지시고 바르게 대답한 시몬에게 잘 판단하였다고   칭잔까지 하십니다. (눅7:41~43)   요한복음 7장2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아예 대놓고 판단하라고 가르치기까지 하십니다.     신명기를 죽 읽던중  목사님께서 신명기 27장26절이 개역성경과 다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자 그럼 신명기 26장 27절을 킹제임스흠정역 성경과 다른 역본들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개역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Niv "Cursed is the man who does not uphold the words of this law by carrying them out." Then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킹제임스 흠정역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확인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Kjv   Cursed [be] he that confirmeth not [all] the words of this law to do them.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자 여러분들은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셨나요?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한글에서 아 와 어는 확실히 다른 말입니다.   오죽하면 속담까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 와 “모든 말씀들을 행하기 위하여 확인하지 아니하는 자” 는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niv 성경 역시 실행하지 않으면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95% 이상의 성경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개역성경과 niv 는     왜?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 라고 번역을 했을까요?   분명히 개역성경 및 niv  vs 킹제임스 성경중 하나는 엄연히 있는 말을 삭제하였거나 없는 말을 첨가한 겁니다.   말씀을 확인한다는 표현을 삭제하면 실행치 아니하다가 맞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확인하고 바른 것들을 판단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답은 여러분 스스로가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시119:128)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에 관한 주의 모든 훈계들을 바르게 여기며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3: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30 13:28:00 | 송재근
할렐루야!   몇일전 셉투아진트에 대해서 멍청한 질문을 올린 사람입니다. 이제는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확신을 가집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성경 관련 이슈에 대해서 구글과 유튜브 열심히 헤매다 보니 어쩌다가 KENT HOVIND박사의 동영상을 보았는데,(전 헨리 모리스박사밖에 몰랐습니다.)   과학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태동하여 그리스에서 강화된 마귀의 학문으로만 알았고 과학으로는 진화교에 절대로 이길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소신있게 하나님의 소명을 다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진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을 공부하라고 번역한 성경은 킹제임스 계열밖에 없네요. 이것만 봐도 마귀는 어떤 성경을 좋아하는지 알만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딤후2:15 Korean 공동번역 디모데후서2: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Korean 현대인의 성경 디모데후서2: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시오. Korean 한글개역 디모데후서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Korean 표준새번역 디모데후서2: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Korean 표준새번역개정판 디모데후서2: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Korean 한글개역개정 디모데후서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Korean 현대어성경 디모데후서2:15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잘하였다'고 칭찬하실 수 있게 열심으로 일하시오. 하나님께서 그대의 일을 심사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훌륭한 일꾼이 되시오. 진리의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배우시오. Korean 쉬운성경 디모데후서2:15 그대 스스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선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Korean 바른성경 디모데후서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힘써라. (표준 새번역. 정말 웃기네요.)   창조과학 사역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으로(사재를 털어가며) 미국에선 수많은 비신자 안티들을 만들고 계시더군요.진화교를 확실히 증명하는 사람에게 25만달러 현상금도 걸어놓았습니다. http://www.drdino.com/category/type/video/creation-seminars (안티가 많다는것은 그만큼 마귀가 무서워할 정도의 파워를 지닌 분이라 생각됩니다.) 킹제임스 성경 지지자이시며 갭이론을 반대하십니다. 정동수 목사님은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기독교내에서도 이 분 좋아하시는 성도들이 꽤 되는줄 알고 있습니다. 주소지가 펜사콜라던데..김문수 형제님이 공부하시는 곳이 아닌가요? (저는 말보회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이송오 목사님을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이분 초청하셔서 창조과학 강의도 하고 흠정역 성경도 광고하시면 어떨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h5eM7nou1oI&NR=1   http://www.kenthovindblog.com/?p=468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벧전 3:15)     미국에선 어려운 고어체라고 무시당하는 KJV인데 한국은 최신의 한국어로 번역된 흠정역이 있으니 한국인들은 더 행복한줄 알고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샬롬! (건방진 글이라도 용서해주십시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2: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29 06:38:58 | 김경한
교회는 음악과 함께 서고 음악과 함께 무너집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록/랩 음악 같은 이교도 음악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너무나 한심한 일들이 자칭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11월 21일) 오후 2시부터 사랑침례교회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준희 자매님을 초청해서 1-2시간 내내 찬송가만 듣고 부르는 시간을 갖습니다. 찬송가에 파묻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 아이들을 두신 분들은 함께 오셔서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전 인격적인 성장의 한 부분은 좋은 노래를 부르고 듣는 것입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프로그램============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P. P. Knapp 곡 / 김준희 편곡    내게 있는 향유 옥합                                                                   박정관 곡 / 김준희 편곡   저 장미꽃 위의  이슬                                                            C. A. Miles 곡 / 김준희 편곡   연탄곡 with 김예선     * “Jesus, Joy Of  Man's Desiring”from Cantata BWV 147           J.S Bach 곡 / Leonard Duck 편곡     * 예수 사랑 하심은                                                               W. B. Bradbury 곡 / 김준희 편곡   A story of the Eden (에덴동산 이야기)                                                                 김준희 곡     “묘한 세상 주시고”의 주제에 의한 즉흥변주                                  C. Kocher 곡 / 김준희 편곡     어느 구경꾼의 회심(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김준희 곡   내영혼아 찬양하라                                                                                         김준희 편곡   다 함께 찬양 with 바이올린 김예후    * 찬470장 : 내 평생에 가는 길    * 찬102장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찬341장 :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 찬182장 :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네     * 찬  40장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프로필=======피아니스트 김준희  예원학교 졸업/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4년 전액 장학생 입학, 졸업  B.M.)  미국 Syracuse University (M.Mus. in Piano Performance, 최우수 졸업) 피바디 대학원 석사후 과정 수료 (Post-graduate Study with Prof. Ellen Mack) Irene Crooker Award for Outstanding Piano Performance (1991) 외 다수 수상 뉴욕,볼티모어,달라스,서울 등지에서 다수의 독주,협연 및 음반 제작 활동 The Metropolitan School of the Arts (NY) 피아노 교수 역임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역임 <음악 저널> 피아노 콩쿨 심사위원 역임 <미주 한국 일보>, <음악 세계>,<음악 저널>  컬럼니스트 역임 온누리 교회 피아니스트, 영락 교회 오르가니스트, 할렐루야 교회 오르가니스트 역임 현재) 백석예술대학 조교수        서울대 음악대학 서양음악연구소 공개강좌 교수        독일 Kleve 뮤직 캠프 초빙 교수        할렐루야 교회 피아니스트        한국 반주자 연합회 부회장 저서) <대화로 배우는 교회 음악 반주> 작은 우리 출판        <반주자를 위한 찬송가 즉흥 연주> 예솔 출판[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2: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18 10:19:46 | 관리자
글을 제대로 잘 못쓰지만 마음을 나누고 싶어 작게나마 올립니다   사랑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린후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답니다   교회의 문턱이 정말 없구나...... 말로는 표현할수 없었지만 너무나 편안한 분들과 형식과 절차로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자유로우면서도 예배를 사모하며 어린아이들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같이 모여 한마음 으로 드리는 그 모습이 남편의 표현에 의하자면 마치 미국교회에서 예배드리는것 같다고 하더군요~   11시부터 5시까지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르는줄 몰랐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님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여러가지를 나누면서 그저 같은 마음, 같은 처지 동일한 안타까움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참 대단하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왜 천안에서 부천까지 달려나오실까 라는 의문이 사라지더군요.... 저희도 한번 가고나서 사모함이 더 커졌으니까요   목사님과 사모님의 따뜻함과 배려~ 예배중에 임하는 은혜. 특강속에서 더 확실히 밀려오는 메세지들...   목사님의 전도 시디를 매일매일 들으면서 제 마음이 눈녹듯 다 녹아지고 이제는 평안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촉촉히 젖어듭니다. 말씀 한구절 한구절이 어찌나 소중히 다뤄지는지...   몇개월동안 저에게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강팍함 가운데 삶의 팍팍함으로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느껴지고 깨달아져 갑니다. 내가 얼마나 썩고 부패한 인간인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나 혼자서는 일분일초도 제대로 서있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지를....내 의가 얼마나 크며 행함에 치우쳐 종교생활을 했었는지....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틀속에 갖혀 사람들의 말과 눈에 얼마나 치우쳤었는지...   아직도 제겐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이제는 버려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저와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바른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 도피도시가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맴돕니다~ 도피도시로 가고 싶습니다. 평안함을 찾고 싶습니다. 다시 저의 삶의 모든것 되신 하나님께 저의 모든 포커스를 맞춰 그분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제가 할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주저않아 펑펑 울고 싶었는데 이젠 울어도 될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감당할수 없는 큰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와 다시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듯 다시 돌아갈 품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앞으로도 더 좋은 교제 바라겠습니다~ 주님안에서 사랑합니다~   p.s 12월중순부터 함께 예배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주위 상황들을 지혜롭게 잘 정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2:1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17 23:04:51 | 주경선
어제 정동수 목사님의 마태복음 특강 19~20 강을 을 들으며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인용하며 예수님을   속이려 했었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교묘히 속인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4:6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개역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niv   you are the Son of God," he said, "throw yourself down. For it is written: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and they will lift you up in their hands, so that you will not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킹제임스 흠정역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기록된바,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   를 주시리니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하매   kjv   And saith unto him, If thou be the Son of God, cast thyself down: for it is written, He shall give his angels charge concerning thee: and in [their] hands they shall bear thee up, lest at any time thou dash thy foot against a stone.     여러분은 윗글에서 어떤 차이점을 발견하셨습니까?   마귀는  시편 91:11~12 절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이상한점이 눈에 띕니다.  개역과 niv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이 다른점이 있습니다.   개역과 niv 는 킹제임스 성경의 언제라도의 뜻인  any time  글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 그럼 마귀가 인용한 시편 91:11~12 원본글을 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niv   For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to guard you in all your ways   they will lift you up in their hands, so that you will not strike your foot against a stone.     킹제임스 흠정역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대한 책무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kjv   For he shall give his angels charge over thee, to keep thee in all thy ways   They shall bear thee up in [their] hands, lest thou dash thy foot against a stone.     자 그럼 마귀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장난을 쳤는지 아시겠습니까?   시편 91:11~12 절은 개역이나 niv 나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이나 모두 공통적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4;6절에 기록된 말씀은 개역이나 niv 는 "네 모든 길에" 라는 말만 삭제 되었고     "언제라도" 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네 모든 길에서" 라는 말이 삭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라는 말이 첨가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만약 개역성경이나 niv 가 옳다고 가정하면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번역자들이     마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성경말씀에 첨가 하여  하나님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엄청난  죄(계22 :18~19)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역성경이나 niv 번역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삭제한 역시 엄청난 죄(계22 :18~19) 를 짓게 됩니다.   자 여러분은 어떤 성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제 갈등의 기로에 서시게 된것 입니다.   분명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그외 성경들중에    바르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삭제     (마17:21 ,마18:11,마23:14,막9:44,막9:46,막1126,막15;28,눅 17:36,눅23:17 ,행8:37,행15:34,행28:29,롬16:24)된 성경이 있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보십시요      엄연히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보존하신 기록을 제멋대로 "없음" 이라고 삭제     하고 나서는   뻔뻔스럽게도 아주 조그만 글씨로 " 어떤사본에는.... " 이라고 기록한 잘못된(?) 성경을   하나님 말씀은 무오하고 틀림없다고 확신하다가 왜 다시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개역개정을 내놓은 배경을 아십니까?   개역성경과 개역개정 및 niv 성경이 옳다고 붙들고 계시는 여러분 성경도 사본이 다른것을 아십니까?   새로운 사본이 발견될적마다 하나님 말씀이 바뀌어집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지도 못하시는 분이십니까?   여러사본을 두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고 이성경도 맞고 저성경도 맞다고 하시는 분이십니까?   어떤성경이 바른성경이고 옳은성경인지 직접 확인하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부터   마귀가 하지도 않은 말인 "언제라도" 를  감히(?) 첨가한   킹제임스흠정역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분명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가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자신이     분명히 변개하고 추가한 말인 "언제라도" 를 삭제 한 개역성경이나 niv 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마귀의 전략 을 모르면 당하게 됩니다.   마귀의 성경 인용작전은   1. 첨가:  언제라도 , 천주교의 방법   2. 삭제: 네모든길에서   3. 문맥 밖에서의 왜곡된 해석, 이단들의 방법    을 통해 행해 집니다.       다음이시간에는 마태복음 4:8~10 절을 가지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이 세가지 말씀을   다시한번 선물로 드립니다.     1.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시12:6-7).     2.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신4:2)       위 내용은 정동수 목사님의 마태복음 강해 19~20과에   나오는 내용을 제 방법대로 다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8 23:25:30 | 송재근
오늘 오랫만에 우리 집에서 물만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왕이면 교회에 할머님들을 모셔 다 같이 만들어 먹자고 아내와 토론이 되어서 할머님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같이 만들어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비록 그냥 물만두에다가 차려놓은 반찬은 김치 두 가지이지만 할머님들이 그렇게 맛있게 잡수시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김경선 모친님 남편되시는 분도 오라고 해서 같이 먹었습니다. 비록 그분이 교회에는 아직 나오지 않지만 교회에 대해 마음을 많이 열고 있습니다.   비록 할머님들이지만 참으로 주안에서 귀한 분들입니다. 할머님들과 같이 만두를 만들어 함께 먹으니 오늘 정말 주님께 감사가 되었고 함께 먹는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할머님들은 저희들보다 마음이 많이 순수합니다. 만두를 빚으면서 찬송도 하고 또 이런 저런 말도 나누고 ...... 이 할머님들이 오래 살아계셔서 늘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5 12:13:35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5 16:25:23 | 시님사람
청년에게 드리는 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지은 잠언과 전도서는 주로 젊은이를 훈계하기 위함이 그 1차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의 첫머리에"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잠언 1 : 4)"라고 했으며 전도서의 말미에도 역시 청년을 염두에 두고 권면하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특히 자기의 아들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서론과 결론이 청년을 향한 것이라면 본론도 청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이렇게 청년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시기가 바로 인생의 황금기이기 때문입니다. 체력과 지력이 가장 왕성하고 혈기 역시 넘치는 때가 청년기입니다. 이 시기의 넘치는 에너지는 방향을 바로잡아 흘러가게 하지 못하면 에너지가 낭비될 뿐더러 때로는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름철 호우기에 제 길을 벗어난 물줄기가 얼마나 심각한 재난을 불러오는지 자주 보아 왔습니다. 올바른 길로만 흐르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라면 마땅히 저장할 곳을 준비해야 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욕구와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떤 때는 흘러넘치고 정작 필요할 때는 고갈되어서 쓰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절제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도약을 위한 웅크림일 뿐입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절제가 따라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야벳을 크게 만드심은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조건하에서 주어진 복입니다. 그들이 찬란한 문명을 이루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멀어지면 영광이 아니라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청년의 힘과 열정도 자제하지 못하고 교만하거나 제 길을 벗어나면 현재 패망을 향해 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처럼 자신의 운명을 패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청년은 지혜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 24장30절에서 34절에, 게으른 자의 밭을 구경한 솔로몬의 소감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1차적으로는 물론 가난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매우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했습니다.(32절) 게으르면 가난해 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앞에 두고 달리 깊이 생각할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마음의 밭을 생각함이 아니겠습니까?   땅과 같이 마음도 부지런히 갈고, 닦지 않으면 원수가 뿌리고 간 씨만 무성하게 자라 황폐해질 것을 말합니다. 내 영혼아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다가 어느 날 궁핍한 영혼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자신의 영혼을 돌아봅시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곡식이 자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베어서 불 속에나 던질 가시덤불만 무성합니까?   내 영혼이니까 아무 때나 하려고만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가시가 너무 많아지면 내 밭이라도 원할 때 농사지을 수 없습니다. 그 가시를 걷어 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여 농사를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밭은 뉘 것입니까? 이름만 내 것이지 씨 뿌린 자(마귀)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원수는 지금 있는 것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얻을 것을 미리 도둑질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무 죄도 짓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귀를 적극적으로 돕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잡초가 무성하게, 가시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부지런히 갈고 심으세요. 아침저녁으로 살피고 물 주어야 합니다.   자다가 깰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는 사이 마귀는 잡초와 가시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신 아브라함의 복 받은 일을 생각해 봅시다.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 18)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청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2 15:37:08 | 류인선
저는 아들만 셋둔 32살의 주부랍니다. 신앙생활은 모태신앙(못된신앙??)이고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했지요~ 작년까지요~(셋째 임신상태)   헌데 울 신랑(당시 신학생)이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그동안의 모든 신비주의며 은사주의 잘못된 신앙관들을 다시금 집어보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곳 사이트를 통해 여러 설교와 글들을 통해 잘못된 것들은 단호히 버렸답니다.   많은 우여곡절속에 울 신랑이 흠정역 성경을 읽어보라고 사주었는데.......갈등이 시작되었네요.......   제 마음속에........갈등..........신앙생활 전부.....작은것부터 제가 옳다고 여겼던것까지....뭐가 정답이고 진리인지... 가슴에 뭔가 답답함이 있고...바로 알아야 할것만 같고...헌데 지금까지 해왔던것들이 그냥 버려지지도 않네요 교회의 전통들을 일일이 토를 달아 비판할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될것 같고..(죄 짖는것 같아서...) 그렇다고 잘못된 것들을 알고난후 무작정 받아들여지지도 따르고 싶지도 않구요. 주위에 전도할 아줌마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교회로 그냥 다 데려 가면 되는건지...........도대체 신앙생활이 뭔지........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네요.....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치고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노라 했던 옛 나의 모습을 보면 신비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고.....그냥 말씀없이 진짜 진리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로 끝나버릴것만 같고 다른 신앙의 동역자분들(목사님, 사모님)도 옛 제 모습과 똑같거나 오히려 비이성적인 조언으로 믿음생활할 의지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신랑은 지금 흠정역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차근차근 뭔가를 쌓아가고 방향을 잡은 것 같은데.... 전 그것에 함께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에 머무를수도 없는 붕~ 떠있는 상태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으로 바르게 가르치기 원했던 저였건만 지금 제 상태가 이렇기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제 불안감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져만 가니...........어찌해야할지..... 그냥 답답해서요...........아이들 키우면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 그거보다 더 힘든건 영적으로 목말라 방황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더 힘드네요.......   아....예수님의 목마르지 않는 그 생수.........마시고 싶은데.......그냥 기도하면서 말씀 읽으면 해결 되는걸까요? 매일 하루하루가 갈등이 아닌 진리와 구원의 기쁨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p.s 속 터놓고 얘기 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남겼는데.....괜찮나 모르겠네요....도움 받고 싶어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3:58:1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1-01 00:24:48 | 주경선
이 글은 제가 구원을 받은지 20년 쯤 되었을 때에, 믿음을 정리하고 날로 혼탁해져가는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서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싶은 마음에 약 1년 동안 작성했던 산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   우리가 성경을 믿는 이유   세상에는 성경 말씀만큼 단호하고도 부드럽고 마음을 찢으면서 치유하는 말씀은 없다.   보편적 진리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위로가 되는 진리 : 그분은 환란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압도하는 책임 :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시간의 지도地圖 : 창조에서 구원의 길까지. 이정표 : 새 하늘과 새 땅.(영원한 안식) 그리고 그토록 황송한 선물 :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선물을 받은 결과 : 회개와 죄 사함과 거듭남. 그토록 장엄한 사실 :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그토록 담대한 기준 : 네가 거룩하게 되리라. 그토록 과감한 명령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경은 인류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다른 어떤 책도 그토록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며 존중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비참함과 희망에 대하여 그보다 고결하게 부르는 노래가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필요를 성경보다 예리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범죄한 영혼을 자극하는 말씀과 멸망할 자들을 끌어올리는 약속이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기도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적절한 언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역사 속에서 나타났지만 역사의 상황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은밀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그것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환경, 모든 시대에 살고 있는 만인의 이야기다. 그것은 세계다. 그것은 모든 개인과 나라들에도 길을 보여준다. 성경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되울리며 인간의 오만 방자함이라는 갑옷을 찢어버린다. 위대한 시인이 등장할 때, 그는 자기가 시인임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스스로 말한다.  천재는 스스로 입증된다. 성경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독자성을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거나 '교리'라는 깔때기로 인간의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빛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성경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보다 뛰어난가? 어째서 성경과 비교할 만한 인간의 생산품은 없는가? 어째서 성경과 바꿔치기 할만한 것이 어디에도 없으며 성경이 빚어낸 역사에 상대할 것이 없는가? 어째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는 성경을 열어야 하는가? 인간의 천재들이 지어낸 위대한 책들을 성경 옆에 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는지 보라. 성경은 형식, 미사여구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갈피마다 장엄함이 배어있다. 성경의 구절들은 저마다 너무나 늠름하고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평가를 내려야 될 지를 가늠 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학문의 다림줄로 그 깊이를 잴 수 없으며 비판적 분석으로 그 핵심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격찬할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의 통찰은 우리의 기준을 넘어선다.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과거는 물론 미래도 무의미하고 어두우며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될 그런 책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책들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성경을 평가 하려다가는 우스꽝스럽게 되기가 십상이다. 어떤 정신력도 성경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성경의 가치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인간의 지성은 어디 있는가?   성경은 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정신의 한계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과 연결된 유일한 것이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책! 이 세상에서, 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 성경은 영靈을 담고 있는 영구적인 그릇이다. 이 납득될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언제나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전능한 힘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깨끗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일그러지고 잘못 이용되는 수가 간혹 있다. 그러나 아주 못된 공격을 물리치는 성경의 능력은 무한하다. 2천년이 넘도록 계속된 논쟁과 교리의 동록(銅綠)에 묻혀서도 성경의 생명력과 진실성은 여전하다. 신학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용과 남용으로 붕괴되지도 않는다.   성경은 끝없는 영(靈)의 운동이요, 그 파도가 인간의 단점의 가파른 벼랑을 때리는 대해(大海)며, 절망과 싸우는 인간의 막다른 골목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메아리이다. 성경에 대한 무감각보다 더 큰 인간의 우둔함은 있을 수 없다. 그 무엇에 설득 당하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고 세월과 함께 낡아지지도 않으면서 성경은 이 땅의 모든 언어로, 모든 시대에 말한다.   3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경은 하루도 나이 먹지 않았다. 그것은 죽지 못하는 책이다. 망각은 성경을 피해 도망간다. 2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읽고 조사했지만 인류는 그 완전한 의미를 밝히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도 여전히 성경은 우리에게 낯설고 여전히 다 파악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읽기를 시작조차 못한 듯이....   성경은 어느 한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 언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가운데 몇 줄을 읽어 그 구절의 뜻에 우리의 영이 맞아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소리가 이르되, 외치라, 하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 : 6-8 )     이런 표현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누가 이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의 지혜, 가르침, 권고 등은 인류가 도달한 학식과 결코 상치(相値)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훨씬 앞지른다. 예컨대 인간의 평등이라는 관념은 우리의 입술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어 버렸지만 과연 그것은 거역할 수 없고 근절할 수 없는 확신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성경은 시대에 뒤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을 오히려 앞지른다.   성경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었고 인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은 인간이 이룬 가장 훌륭한 도덕의 원천이다. 고귀하고 정의로운 것의 대부분이 성경에서 나왔다.   성경의 목적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기록하는 것이다. 성경이 주는 지혜,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며 그것을 얻게 하는 그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구역질나는 것임을 선포한다. 또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이며,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문제임을 선포한다.   성경은 말로 나타난 성스러움이다. 이 시대의 사람에게 언어만큼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것은 없다. 그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값싸고 가장 잘 남용되며 가장 덜 존중된다. 언어는 끊임없이 저속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언어 속에서 살며 언어로 느끼며 생각하지만 언어의 독립된 존엄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며 그 힘과 무게를 존중할 줄 모른다. 언어는 이제 입안에 가득한 먼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빛이 언어라는 틀로서 인간에게 주어졌는가? 도대체 자음과 모음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그릇에 신성이 담겨져 있음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지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언어만은 소멸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뜻을 전달하는데 인간의 언어 말고 누구의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 언어에 당신의 힘을 불어넣으시어 그 언어가 그분의 영으로 충전되어 있는 전깃줄과 같다.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줄은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다.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데 어떤 다른 것을 이용할 수가 있었겠는가? 달의 표면에 있는 얼룩? 거대한 바위들?   인간의 언어가 성경을 이루는 데는 아무 잘못된 점이 없다. 이 세상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듯이, 성경 없이는 그분의 관심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성경은 그분의 음성이다. 다른 그 어느 것도 그분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김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 글자수 제한으로 전문을 다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전문을 다 보시고자 하는 분은 첨부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2010-10-29 13:13:35 | 류인선
샬롬! 이 세상 어디에서나,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빌며 제가 구원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간증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이 다른 경로를 통하여 하나님께 다가가게 됩니다.   제가 먼발치에서나마 하나님을 향한 길에 들어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무렵 호기심 충족과 취미생활을 겸하여 한국UFO(미확인비행물체)연구회에 가입하였고 나이에 비해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가진 식견을 인정받아 고2때 학술연구부장이 되었습니다. UFO와 하나님이 무슨 관계냐고 생뚱맞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조금만 더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감투를 쓰자 연구 아닌 연구에 더 매진하게 되었는데 약 1년 만에 “UFO는 사기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당시에 사기의 증거를 잡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학문이나 관심분야에 더 이상 찾아볼 것이 없을 정도로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했는데 알면 알수록 윤곽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그 학문이나 현상이 사이비과학 또는 조작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예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알기 어려운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전자제품을 하나 샀는데 고장이 나서 서비스를 받으려고 제조회사를 찾으니 찾을 수가 없으면 그 회사는 망했거나 유령회사일 것입니다.   UFO는 아무리 공부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 현상을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둥 이용하는 세력(오컬트 단체 등)도 있고, 어설픈 지식으로 사탄이니 어쩌니 하는 주장도 있는데(일부 기독교계에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헛다리를 짚는 경우입니다), 그 조작세력에 관하여는 수년 후에 감을 잡게 됩니다.    어쨌건 이건 누군가 조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관심분야를 ‘바꿉니다.  인간이 온 곳은 어디냐? 나는 어디서부터 온 존재인가?’를 알아보자고 방향을 설정하고 역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세계사를 섭렵하고, 고대사, 상고사를 더듬어 올라가니 신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 199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 옆자리에 누워있는 방통대 역사학과에 다니던 환자의 졸업을 도와주기위해 하룻밤 동안에 레포트를 대필해 준 일이 있습니다. [중국상고사 연구에 관한 고찰]이란 제목으로 기억됩니다. 나중에 들으니 방통대 역사학과 사상 3번째의 A+ 였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공부가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신화를 공부하자니 종교에 대하여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3대종교를 간단하게 개론 수준에서 공부를 하고 전 세계의 소수민족 종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하여 100개를 채웠습니다. 대부분의 신들이 잔인하거나, 이기적이고 성격이상자 수준이더군요. 토템부터 시작해서 섭렵한 그 수많은 종교들이지금은 다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래도 묘한 결론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 많고 다양한 종교들에 유일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세상의 모든 신화와 종교가 기독교와 대립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성경과 대립한다는 것이 맞다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제는 성경을 공부해야 할 필성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변에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몇 번 가 보았던 교회들은 미덥지가 못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친구 부탁으로 동방박사 그림을 그려주러 간 교회나 몇 교회들에서 설교를 들어봤는데, 내용은 잘 몰라도 교회 목사님 음성만 들어도 사기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습니다. 이유인즉, 제가 성경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프로파일을 조금 볼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관상학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중3 때부터 프로이트로 시작해서 심리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영화를 좋아해서 명배우들이 출연한 명작들을 많이 보며 나름대로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고, 촬영과 감독술에 대한 책들을 조금 보다 보니 제 주제에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사람이 말할 때의 음성과 표정이나 손의 움직임, 자세 등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을 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과장이나 거짓말 하는 사람은 잘 알아봅니다.^^   각설하고, 성경박사를 수소문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고(대학은 40세가 되어서 갔습니다), 군대를 먼저 갔다 오려고 비디오 촬영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중에 제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모가 소개한, “성경 잘 아는 사람”이 한다는 모 교회의 전도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됩니다. 성경 전반에 대한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복음이 아니라 고대문명과 신화 등과 성경의 관련성이었기 때문에 복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약간 겁이 났습니다. 성경은 사실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마는, 저를 위해 전도하시는 고모님 속이 타고 계신 것은 모르고 6개월간 그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3번이나 참석하는 동안에도 저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참석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틀 후, 정확히 1981년 8월 28일 오전 9시경 고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맛있는 것 많이 해놨으니 놀러 와라”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놀러오라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꼬치꼬치 물어보시려고 부르는 것이구나, 이걸 어쩌나’ 하고 난감하던 차에, 어린 마음에 기특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른이 1주일간 매일 택시 태워주며 , 3번이나 데리고 다니셨는데 뭔가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니 답답해서 부르시는데, 찾아가서 이러저러한 것을 잘 배웠노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랫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곧 의관을 단정히 하고 도보로 약 20분 거리인 고모님 댁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가면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머리속에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10분쯤 경과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고, 참으로 의로운 재판장이시라는 사실, 나는 죄인이며 이대로는 하나님 앞에 결코 나설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럽고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지됨과 동시에 그 맑던 하늘과 앞길이 깜깜해졌습니다. 참 답답하더군요. 그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는 등 뒤로 던지셨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중에 그 구절들을 찾아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였습니다. 제 입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어둡던 하늘이 마치영화의 한 장면처럼 밝아졌습니다(실제 하늘이 아니라 모두 제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고, 제 마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가 충만했습니다. 일종의 득도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충만함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의 아니었으며, 특이한 것은 제 안에 있던 물욕(物慾)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글은 길게 썼지만 이 사건 1981년 8월 28일 오전 10시 10~20분 사이 불과 몇 10초 만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의 구원의 기쁨은 약 3개월 정도 지속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이 구원인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나는 이제 모든 죄를 용서 받았고 예수님 덕분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되시겠지요? 저보다 더 기뻐하신 분이 누구였는지. 간증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를 인도하시고 구원의 은혜에 이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ps. 제가 살고, 신앙생활을 하는 곳은 충북 청주시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27 21:59:27 | 류인선
어제는 교회의 한 형제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늦게 집에 들어 왔다. 아내와 딸 그리고 3개월 된 은탁이가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바로 잠자리에 들어갔다.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하여 회사로 출근했다. 1호선 전철을 탄다. 동묘역을 지나면 다음 정거장이 신설동역이다. 동묘역을 막 출발하는 전철 안에서 다음에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문득 생각에 잠겨 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전철이 신설동역에서 정차해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도 생각에 젖어서 결국 내리지 못하고 닫힌 문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뿔싸!!!!   황당함!!!!   제기동역에서 다시 계단을 오르고 또 내리고 해서 전철로  한 정거장을 되돌아 왔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내는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고 나는 열심히 들었다.   딸, 현빈이 이야기다.   우리 집은 방이 3개 인데 하나는 딸, 현빈이의 공부방이고 하나는 컴퓨터가 있는 나의 서재이고 하나는 딸과 엄마가 주로 잠을 자는 침실 방이다. 나는 거실에서 3개월 된 은탁이와 같이 자기도 하고 서재에서 이불을 펴고 자기도 한다.   잠 잘 시간이 되어 먼저 3개월 된 은탁이를 재우고 아내가 딸아이를 재우려 하는데 아이가 잠시 일어나더니 서재에 가기에 잠시 후에 뭐하나 하고 서재를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들여다보니 서재 방바닥에 7살 딸아이가  인어공주의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처럼 비스듬히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맞잡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문득 문득 7살 딸아이의 기도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더니 순간순간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 북 받쳐 올라왔다.   ....,   나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딸아이의 기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22 22:56:16 | 노영기
그들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에 빠지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까?    민수기 11:4     예전 금요기도회 시간에 민수기 11장 12장을 읽었습니다. 읽었던 내용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후  모세에게 늘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불만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6장  물,음식,고기 등등 -_-;   조금만 삶이 불편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이 됩니다. -_-;     민수기 11장에는 조금더 자세히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위에 구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출애굽 할 때는 순수 이스라엘 민족들만 나온것이 아니라     섞인 무리와  양 떼와 소 떼와 심히 많은 가축도 그들과 함께 나왔더라.  출애굽기 12:38     라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초반에 언급된 섞인무리들이     주동 이 되서 문제   를 일으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나 우리홈페이지 안에도 이 섞인무리들을 조심해야 할것이며   혹시 긴가민가 하시는 분들이나   우리홈페이지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혹시 내가 섞인무리가 아닌가?     자문하는 시간을 가짐도 좋을듯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느낀점을 짤막하게 나눠 봤습니다. 샬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19 16:32:24 | 송재근
안녕하세요! 평소 킵바이블과 흠정역을 통해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성도입니다. 귀한 글과 자료들을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기회가 있을 때마다 킵바이블 사이트와 흠정역을 전하고 있습니다. 해외라서 관련된 신앙서적을 쉽게 구해 읽을 수가 없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ㅠㅠ (흠정역도 한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줘서 편하게 읽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이렇게 직접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사건인 만큼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자주 묵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완전한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인 제가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의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3일 동안 예수님의 혼이 어디에 계셨는가하는 점입니다.   혼..이 맞는지 영과 혼이 함께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배운대로 생각하면, 사람이 죽으면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육은 지상에, 혼이 천국에 가든가 지옥에 가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영과 혼이 함께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인간을 대신해서 돌아가셨으니 인간이 가야할 지옥을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3일 동안 가셨나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킵바이블을 검색하니 3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낙원에 계셨다고 하는데 성경 어디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지만 직접 고통을 당하시진 않으시고 지옥에 있는 혼들을 위로하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지옥이 낙원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구요... 그런데 그 순간에만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부활하기 까지 3일 동안 끊어진 것입니까?   이것이 궁금한 이유는 삼위일체가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을 때를 삼위일체라고 하는지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의 존재 자체 자체가 삼위일체를 성립(?)하는지 잘 몰라서 입니다.. 만약 연결된 관계가 삼위일체라면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는 삼위일체가 아니라 이위일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왜 이런 게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을 떨칠 수가 없네요.   그 동안 십자가의 육체적인 고통에만 포커스를 맞추다가 최근에야 십자가의 정신적, 영적 고통이 어떨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인류의 죄를 짊어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이 고통이 어떤지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십자가 사건에 대해 더 깊이있는 묵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더 깊은 감사와 함께...        마지막은 위의 질문들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왜 따로 성령님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셋째 하늘에 계시고 이 세상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인지요...? 예수님은 여전히 인간의 몸으로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아 참 삼위일체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신비입니다...ㅠㅠ   킵바이블에 오기 전에는 양태론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더 알 수가 없었지만...         어떤 말씀이든 귀하게 듣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4:00:0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18 12:05:20 | 송혜민
한건산 저 "성경 바로알기" 80페이지에 보면 헬라어 신약성경의 사본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눅23:43절에서 쉼표(,)가 잘못 삽입하므로(추정) 그 뜻이 오해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류) I say to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정확) I say to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잘못된 번역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날 낙원에 들어 가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며, 게다가 그 날 강도도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는 지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신후 3일간 죽음(하나님과 관계의 단절) 속에 계시다 부활하신 후 40일동안 땅에 계시다 승천하셨으며(행1:3), 요20:17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 하였노라"는 말씀 등을 근거로 저자께서 주장하십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흉악한 사람이라도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 천국에 가고 천국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는 진리와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전도하는 자에게 "골치 아프게 뭐 벌써 믿어요? 즉기 직전에 예수 믿고 천당갈꺼요"라고 빈정거리기도 합니다(본문 중에서)   흠정역에도 쉼표가 오늘 앞에 찍혀 있네요. 성경해석이란 성령님께 의지하여 보아야 하는데 정말 조심스럽네요. 문맥과 성경 전체의 흐름상으로 볼 때 한건산 자비량 전도자님의 설명이 상당히 설득력을 갖네요.[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8:29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17 23:46:27 | 양희석
선지자 이사야의 글인가? 대언자들의 글인가? (막 1:2~3)     어제 정동수 목사님의 마태복음 특강을 듣다가 개역성경및 개역개정성경의 오류를 발견한것을 가지고 김문수 형제님 스타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개역개정   2.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1:2~3)   킹제임스 흠정역   2.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3.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라, 한 것 같이   NIV   2.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 3."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   KJV   2.As it is written in the prophets,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thy face, which shall prepare thy way before thee.3.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make his paths straight     위구절을 읽어보시면 많은 차이를 느끼실수 있습니다. 일단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 및 NIV 까지도 대언자 이사야 라고 단수 지칭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대언자들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은 여기서 두역본의 차이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대언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했고 개역성경이나 NIV 는 이사야 대언자 한사람만을 지칭했을까요? 과연 어느 역본이 맞을까요?   정말 흥미 진진합니다.   3절말씀은  이사야 40:3절의 말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해 큰길을 곧게 만들라. -라는 구절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사야 대언자의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앞전에 나왔었던 문제의 구절 2절입니다. 자 그럼 2절을 살펴볼까요?   개역개정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흠정역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이말은 이사야 대언자가 한 말이 아니고 말라기 대언자가 한 말입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임하리로다. (말3:1)   그런데 개역성경이나 NIV 는 이것을 이사야 대언자 한사람이 말했다고 기록을 해놓았고 흠정역은 말라기 대언자와 이사야 대언자 2사람을 지칭하여 대언자들이라고 복수로 정확히 기술한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위 사례는 그동안 김문수 형제님게서 밝혀주셨었던 개역성경의 많은 오류중 하나 입니다.   자 이래도 개역성경이 옳다고 우기시겠습니까?       다음에 개역개정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질문코너에   왜 사람들이 흠정역성경이 개역개정성경보다 더 잘 보존된 성경이라고 하나요?   라는 질문을 어떤분이 해 놓았고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은   저도 흠정역을 참고로 하기 위해여 가지고 있지만 지금 은 개정개역을 보편적으로 보기 때문에 개정개역이 가장 좋은 번역성경이라 생각합니다. 원문들을 다 살펴서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잘못된 무리가 없는한 그래도 보편적인것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어떡하나요?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은 잘못된 무리가 너무나 많은것을요 -_-;   우문우답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봤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수준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사례라 씁쓸함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아직도 바른성경이 무엇인지 알려주어도 믿으려 하지않고 잘못된 것을 고집하는  교회다니는 분들에게   하나님 말씀 한구절을 선물해 드립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딤후2:15[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6:59:55 성경교리에서 이동 됨]
2010-10-11 23:21:27 | 송재근
故 제임스 맥콜리 James D. McCawley (1938~1999)는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였다.흔히 언어학자 하면 노암 촘스키가 본좌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맥콜리는 그 촘스키의 제자이며 스승 만만찮은 천재 언어학자였다. 박사 학위를 주고받은 촘스키와 맥콜리의 나이 차는 겨우 10살에 불과했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에 여러 학년을 월반한 끝에 만 16세의 나이로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시카고 대학은 과거에 석유왕 록펠러-_-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 사업 차원에서 설립한 학교로, 설립 취지야 어떻든지간에, 미국에서 인문· 사회 계열이 강세인 상당한 명문 사학이다. 맥콜리는 어릴 적부터 수학, 논리학, 언어학 이런 쪽으로 완전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으며, 덕분에 나중에 대학원은 촘스키가 있는 MIT로 가게 된다.   그 후 그는 1964년,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교인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의 확립에 큰 업적을 남겼다.그런데 이 천재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그 좋은 머리로 바로 실감이 갔던 모양이다. 대충 영어를 해석하자면, “한글은 킹왕짱이고 세계의 문자들 중에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교한 음소문자가 1440년대에 발명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언어학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정도.   그래서 그는 한글 덕후가 됐다.동영상에서 1분 10초 이후부터가 유명한 대사이다. “전세계 언어학계는 이 한글의 창제일을 마땅히 경축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해 10월 9일엔 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집에 초청하여 한글날 잔치를 벌여 왔다.” (정작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는데 말이다! ㄲㄲㄲㄲ)   참고로 저 인터뷰는 1995~1996년에 행해졌다. 그러니 저분의 한글날 잔치도 대략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지난 1996년, 국어 정보학회에서는 한일 은행(지금 우리 은행의 전신)의 후원으로 한글 반포 550주년을 기념하여(since 1446) <세계로 한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한글 관련 논술 공모를 했다. 인터뷰 동영상은 거기에 나오는 영상의 일부이다.   그 당시 국어 정보학회 회장이던 한양대 국문과 서정수 교수가 직접 미국까지 날아가서 맥콜리 교수와 저렇게 인터뷰를 했다. 서 교수님 모습은 저기 화면에도 잠깐 나온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맥콜리 교수 관련 한글날 루머(?)는 루머가 아니라 사실이며, 그 정확한 출처가 바로 저 영상물임을 기억하기 바란다.아, 그리고 본인은 그 당시 저 한글 논술에서 중등부 격려상을 받았다. 그때 이미 세벌식이 어떻고 조합형이 어떻고 하는 허접 논설문을 써서... ㅋㅋㅋ 지금 본인은 그 당시 저 다큐멘터리의 연출 감독을 맡은 분하고도 잘 아는 사이이다.   맥콜리 교수와 덩달아 거론되는 대표적인 한글 예찬론자 외국 석학으로 영국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있다. 한글이 ‘자질문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맥콜리 교수는 그 후 1999년 4월,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돌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스승인 촘스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아울러 서정수 교수도 이미 2007년에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국문학과 교수이고 한양대 인문대 학장을 역임한 이분도 실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충격적인 이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 후 대학원을 연세대 국문과로 가셨으니 어? 지금 본인의 진로와 비슷하나?? ㄲㄲ   한글이 지금과 같은 형태 그대로 무슨 IPA를 대체할 만한 음성 부호라거나, 로마자를 대체 가능한 만능 도깨비 방망이 문자라는 말은 아니다.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네 하는 식의 부정확하고 안일하고 막연한 찬사도 피해야 한다.한글이 무슨 쇼비니즘의 표상이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글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문자인지 모른다. 우리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품을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도 머리가 어지간히 좋지 않아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을 못 할 것이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20 12:55:3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0-10-09 01:19:31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