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영혼을 잘 조율하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힘든 것은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목적 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은 보기 드문 재능과 은사와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들의 재능과 은사와 능력을 영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발전이 없다.
왜 사역자들이 해마다 실패를 고백해야 하는가? 그들은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보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그들이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능력이 있지만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 (Stradivarius, 이탈리아 사람 스트라디바리 또는 그 일가가 만든 명품 바이올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율을 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 아무리 좋은 바이올린을 갖고 있다 해도 시간을 내어 차분히 그것을 조율하지 않으면 멜로디도 화음도 낼 수 없다.
오, 주여! 오늘 제가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저를 훈련하도록 도우소서.
제가 잘 조율된 하나님의 악기가 되어 성실하게 봉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3:47 | 관리자
01. 대가 없이는 성공도 없다.
영적인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성공의 법칙이 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영적 성공의 법칙이다.
영적인 일들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헌신해야 한다.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거룩해지기를 원한다면 그 방법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약의 대언자(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거룩한 삶의 법칙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만일 피아니스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훈련을 게을리 하는 것만큼 그의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한다면 그의 콘서트는 엉망이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 소속의 야구 선수가 교회 직분자들처럼 빈둥거리면 1주일 만에 해고될 것이다. 평신도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방법에 무관심한 것처럼 과학자가 그의 전공에 무관심하다면 그는 아무런 연구 성과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나라의 군인들이 교회의 영적 군사들만큼 유약하고 미숙하다면 적국에게 하루아침에 점령당할 것이다.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있는 사람은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다. 성공은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오, 주님! 주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그것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지(意志)를 저에게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규장 출판사)에서
2009-05-01 15:33:00 | 관리자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서 결국 영적인 기형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
첫째, 우리는 담대해지려다가 지나쳐서 뻔뻔스럽게 될 수 있다용기와 온유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바울은 어떤 경우에는 담대함이 지나쳐서 온유함을 잃고 대제사장에게 "회칠한 무덤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말했다.그러나 자신이 한 일을 깨달았을 때 즉시 사과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적 성숙함을 나타냈다.
둘째, 우리는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지나쳐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는 균형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발견되었다.자신은 언제나 숨김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는 성격이라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 말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셋째, 깨어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의심하는 버릇에 빠질 수 있다.우리의 주변에는 적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적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 적을 찾아 내려는 습관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오류와 싸우다 보니 우리는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의를 품는 경향이 있다.
넷째, 진지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쳐 우울해질수 있다성도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침울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경건이 아니기 떄문이다.
다섯째, 양심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양심의 문제에서 지나치게 예민해질 수 있다.우선 사탄은 신자의 양심을 파괴하여 비 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고 시도한다.그러나 이런 시도에 실패할 때 그는 반대적인 전술을 써서 신자의 양심을 병들게 만든다 이것은 신자가 양심적으로 너무 예민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늘 고민과 스트레스속에서 살아간다.
2009-05-01 15:29:29 | 관리자
망치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만일 못이 감정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못은 다르게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못에게 망치는 자기를 복종시키려고 사정없이 치고 못이 보이지 않도록 박으며 강타하기 위해 사는 반대자요, 잔인하고 무자비한 원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망치에 대한 못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가지를 빼놓고는 정확한 생각이다.
못은 자기 뿐아니라 망치도 목수의 도구라는 것을 잊고 있다.
못이 목수의 손에 망치가 쥐어져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망치에 대한 원한은 사라질 것이다.
목수는 망치를 든 다음 어느 부분을 쳐야 할지와 그것을 치기 위해 어떤 망치를 고를 것인지 결정한다.
이것이 목수의 주관적 권리이다.
못이 목수의 뜻에 순종하여 못의 장래를 위한 자상한 계획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못은 아무 불평없이 망치에게 순종할 것이다.
토저의 '신앙의 기초를 세워라 '중에서
2009-05-01 15:28:01 | 관리자
하늘의 비전 (the heavenly vision, 행26:19)
(출처: 월간 고신 <생명나무> 2009년 4월호 중)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다 신문보급소에서 생활하며 야간대학을 나온 A를 처음 만난 것은 이십년 전이었다. 그는 어려움이 생길 때면 도와달라며 찾아오곤 했지만 벤처기업을 창업하여 수십억을 주무르고 나서부터는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자기 회사를 말아먹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해왔다. 십여 년 A를 위해 기도해왔던 터라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만져주심을 바라고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한때는 통일교에 몸담고 있었고 또 나름대로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며 터득한 잘못된 신앙관을 고수하고 있던 A가 차츰 진리의 말씀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A는 확실히 예수님을 자신의 인격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을 하였다. 아울러 평소 구박하였던 부인에게도 용서를 구하였고 이어 온 가족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약 삼십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B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며칠 후 B에게 전화가 왔다. 필자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나가도 좋겠냐는 것이었다. 가정에 아픔이 있었고 건강에도 심각한 위기가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B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한때는 국선도의 사범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진리를 가르쳐왔던 그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히 그 마음을 녹이기까지 일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마침내 지난겨울 교회 근처 중국집에서 B는 자신의 입술로 분명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셔 들이는 기도를 하였다. 이후 이제껏 결코 맛볼 수 없었던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는 B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옛날의 자기와 같은 뉴에이저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소망을 품으면서….
독실한 천주교인인 C가 목요성경공부 시간에 동료교수의 권유를 받고 참석하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성경공부라 그는 천주교적인 관점에서 여러 질문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며 그의 주장이 틀렸음을 확인해주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C는 안색이 변하면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러 형제자매들이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신기하게도 성경공부에 지속적으로 출석하였다. 그리고 6개월 뒤 C는 자기 집에서 졸저 <똥 이야기> 부록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하였다. 이후 C는 성경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는 교회에 출석하여 구원간증을 하고 침례를 받았으며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D 전공의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밤에 찾아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병동 일을 빨리 마치고 9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필자의 연구실로 들어온 D는 마치 빌립보 간수처럼 질문을 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나요? 천국과 지옥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요?”
의대생 시절 필자가 소아청소년과 임상실습을 마친 학생들에게 졸저 <성경으로 세상보기>를 선물하며 예수님을 전했던 것이 그에게는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필자는 새벽 1시 반까지 성경을 펴놓고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인생의 결국이 어떠한지 D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D는 머뭇거리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하였다. 비록 지금은 바쁜 전공의 신분이라 주일에 어느 교회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다 병원 안에서 마주칠 때 필자를 향해 미소 지으며 같은 천국 시민으로서 누리는 기쁨을 표시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특히 필자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월간 <건강과 생명>의 편집인을 맡아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해주셨다. 그러는 가운데 말씀을 연구하고 신앙칼럼을 쓸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셨다.
아울러 교회와 직장에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필자가 영적으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비록 아직도 실수와 부족함이 많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순간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09-05-01 15:26:59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