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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길을 가시는 분들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죽기만큼 미워도... 그들을 증오해선 안 되겠지요...                  제가 킹제임스성경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가 생각납니다. 당시 저는 선교사를 꿈꾸는 2년 휴학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출석하던 장로교회의 목사님은 XX교단 총회의 사무장을 맡고 있던... 너무도 높으신... 자리에 있던 목사님이셨습니다.   킹제임스 성경 이슈를 알고 저는 몹시도 슬픈 얼굴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정확 무오한 성경이지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한 번 픽 웃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 "정확하고 무오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없지! 오직 최초의 원본만이 정확하고 무오하지!" 나 : "그렇지만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 우리가 지금보는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잖아요!" 목사님 : "우리가 성경이 정확 무오하다고 말하는 건 최초의 원본을 두고 하는 말이야! 너 최초의 원본 찾을 수 있어!? 없잖아!?"   그후로... 저는 예배시간마다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출석했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도 성경 구절을 읽을 때면 킹제임스 성경 구절만 읽었어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어느 날 조용히 저를 불러 이야기하시더군요.. 목사님 : "너! 어디서 이상한 성경을 들고 와서 그러는 거야!?" "그 성경은 너 혼자 집에서만 보고! 교회올 땐! 교단에서 인정한 성경을 들고 와!"   당시 목사님 아들이 전도사님이었는데... 제가 시편 12편 7절과 요한일서 5:7을 읽어주니까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제가 킹제임스성경을 보여주기 이전까지는 흠정역 성경에 꽤 아는 체를 하더니.. 그건 그냥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고.. 실제로는 킹제임스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것 같았어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정동수 목사님.. 제가 비록 가진 게 없어.. 성경 사업에 후원은 못하지만... 늘 기도로서 함께 합니다. 힘내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2016-09-08 12:46:55 | 신진성
안녕하세요 ^^ 환난 전 휴거를 연구 중 제가 알게 된 진리를 나누고자 글 올립니다. 모쪼록 형제/자매님들께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거의 대부분 개신교에서는 교회 시대가 끝이 나며 심판이 두 번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대부분 흰왕좌(백보좌) 심판 한 가지만 알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카톨릭 소수사본에 근거한 개역성경에는 "그리스도" 단어가 여러군데서 "하나님" 혹은 "주" 로 잘못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주(LORD/Lord) 이시며 아들도 주(LORD/Lord)이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는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독립적인 인격체 이시지만 두분이 하나이시라는(요 10:30, 요일 5:7) 삼위일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심판이 두 번 이라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철장권세를 (계 19:15)가지고 성경 기록대로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통치를 하시는데요.천 년이 다 차면 구원 못 받은 불신자들은 부활하여 둘째 사망 (마귀와 함께 영존하는 불 호수)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천년왕국 끝에 흰 왕좌 심판(백보좌) 에서는 예수님께서 앉으신 자리는 " a great white throne" 입니다.말 그대로 왕이 좌정하시는 자리인 "왕좌"입니다.   (계 20:11, 킹흠정)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계 20:11, KJV)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하지만 신약 교회 서신서들 다른 곳에서 심판석을 말씀하실 때는 "왕좌" (throne) 라는 단어가 아닌 "자리" (seat)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후 5:10, 킹흠정)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고후 5:10절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 은 "judgement seat of Christ"입니다.계 20:11절은 "흰 왕좌" a great white throne입니다.   왜 고후 5:10절에서는 "왕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물론 원문 성경도 왕좌(뜨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로마서를 보시겠습니다.   (롬 14:10, 킹흠정)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여기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인데요.개역 성경은 "그리스도" 단어가 "하나님" 로 바뀌어 있습니다.   (롬 14:10, 개역)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그리스도 와 하나님이 같은가요? 삼위일체의 개념을 이해하신다면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시지만 서로 다른 분이라는 건 아실 것입니다.   신약 교회 서신서에서 "우리"는 구원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롬 14:10 절과 고후 15:10절에서는 "왕좌"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자리"(seat)라는 단어입니다.분명 심판석인데 왜 왕좌(throne)가 아닌 자리(seat)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을까요?   교회는 한 처녀이며 신부이며 (고후 11:2) 예수님은 신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는 신부를 맞으러 오시기 때문에 "왕" 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신랑으로 신부를 맞이하며 구원받은 후에 행위대로 상급을 주시기 위한 심판 입으로 "judgement seat of Christ"입니다.   하지만 천년왕국 끝에 심판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자리가 아닌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그리고 심판주로서 "왕좌"에 앉아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두 번 입니다.   "judgement seat of Christ" "a great white throne judgement"   seat 과 throne, 이 두 가지 단어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개역성경엔 환난 전 휴거를 모르게끔 다른 곳에도  "그리스도" 단어를 여러 군데 "하나님" 혹은 "주" 로 잘못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후 2:2, 킹흠정)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살후 2:2, 개역)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구약에서 "주의 날" 과 신약에서 "주의 날" 은 같은 날입니다.(문맥에 따라 하루도 되고 천 년도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날"은 다릅니다.   (벧후 3:8, 킹흠정)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또한 개역성경엔 벧후 3:8절에서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는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며, 아들 예수님(신랑)께서는 (신부) 교회 하고만 상관이 있으십니다.   (Geneva 살후 2:2)  That ye be not suddenly mooued from your minde, nor troubled neither by spirit, nor by worde, nor by letter, as it were from vs, as though the day of Christ were at hand. (KJV-1611 살후 2:2 )  That yee bee not soone shaken in minde, or bee troubled, neither by spirit, nor by word, nor by letter, as from vs, as that the day of Christ is at hand,   칼뱅주의 모체가 되는 제네바 성경도 KJV와 거의 일치 합니다.오늘날 대부분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개역본은 제네바 성경하고도 충돌하는곳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좌(throne)에 앉으실 때와 예수님께서 자리(seat)에 앉으실 때는 분명 심판의 성격이 다른것입니다.   심판은 두 번이며 교회는 예수님께서 왕좌에 앉으셔서 하시는 흰 왕좌 심판 (great white throne judgement) 하고는 무관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16-08-31 21:09:23 | 김종설
안녕하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이 모든 성도 분들 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하나를 읽어서 이를 나누고자 합니다...   (설거지로 섬겨도 주님과 성도들을 생각하며 다 헹군 그릇의 물 한 방울까지 수건으로 닦는 분들이 계십니다. CD와 책자들을 포장해도 주님과 성도들을 생각하며 꼼꼼하게 마무리 짓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기의 모든 영광 중에 있던 솔로몬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백합 한 송이를 현미경으로 감상하면, 이것이 얼마나 섬세하게 창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하고 배려 있는 섬김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아래의 글을 읽다가 사랑침례교회의 미디어선교 사역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목사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기쁨 중의 하나였다. 그 사랑스런 영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일에 쏟고 있다. 당신은 그녀의 책들과 서실(書室), 소포를 부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2주에 한 번씩 책을 가득 싣고 가는 마차들을 보아야만 한다. 어떤 때는 책 기금이 우리 집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인다. 그녀는 매일 머리와 마음을 그곳에만 쏟는다. 책을 받아보는 독자는 그 책을 선사하는 일에 관련된 책의 관리 업무에 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해야겠다. ㅡ그 사랑스런 관리자는 자신의 목록에 2,000명 이상의 이름을 갖고 있으며 첫날부터 지금까지 각 사람이 받은 모든 책들을 알고 있다. 이 작업은 대충 뒤섞여있는 것이 아니고 시계처럼 정확하게 짜여있으며, 모든 수령자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불필요한 요구로서 그들을 괴롭히지 않고자 하는 따뜻한 열정으로 수행되고 있다."                                                                                                                                                스펄전, 1892                                                                          (신앙인물 찰스 스펄전, 아놀드 A. 델리모어 저, 김동진 역, 두란노) 
2016-07-28 11:06:55 | 장윤석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킹제임스 흠정역에 대한 좋은 글을 발견하여 올려 봄니다. 질문. 성경 요한1서5장7절에 보면"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분은 하나이니라  " 라는 구절이 있는데 어떤 성경은 이 구절이 있고어떤 성경은 이 구절이 없는데 왜 그렇지요 ? 답. 작성자 비공개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총회 신학을 하고 교회 개척과 신대원 준비를 하고 있는 전도사 입니다.교단과 신학 교파를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므로 거두 절미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아주 정확하고 날카롭게 질문을 잘 해 주셨습니다. [안그래도 질문하신 그 성경 구절이 오랬동안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하여 혼란을 야기 시키려는 마귀의 계략이기 때문 입니다.]   신학을 공부 하면서... 때로는 성경의 권위를 믿지 않거나, 마귀가 변개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알 수 없게 만든 성경들이 있다고 해도 고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학공부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의 주장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있었겠지, 진짜 원본이 언젠가는 발견이 될꺼야. 지금도 그것들을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찾고 있어."...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 입니다.   요즘 차량에 거의 기본으로 장착하고 다니는 '네비게이션'이 믿을 수 없는 회사의 제품 이라면... 어떻게 그 것을 믿고 낫선 길을 찾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손에 들려진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져 거룩한 사람들을 통하여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 보다는 '내가 믿고싶은데로 믿는 믿음'이 되어 버리는 것 입니다.   조금 길지만 아래의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이(숨이) 들어갔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을(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 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 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이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성경은 그리스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히 처음에 원본 성경 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 차례 자필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단어가) 보존되지 않은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 기록 필사본, 성경 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 대 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 까 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 대 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해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 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 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언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반드시 다음의 글을 읽고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https://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312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본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 대 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 대 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영감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행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그 일들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7-11).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변개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의 변개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최초에 출생 신고를 하면 구청이나 기타 관공소 등에 가서 신고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직원이 서류에 기록한 내용들은 세월이 흘러 계속 수많은 기록들이 쌓이면서 보존과 보관에 한계점이 옵니다.[관공서의 이전등] 그러면 예전에는 그것들을 일일이 사진으 찍어서 필름에 담았습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했고, 그 다음에는 스캔을 하여 하드 디스크에 저장을 합니다. 그렇다고 기록한 내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초에 기록한 원본이 아닌 내용은 그대로인 '사본' 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 합니다.]   질문자님께서는 남들이 쉽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부분을 소흘이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잘 지적해 주셨네요. 이런일을 게기로 네이버 지식인이 더욱더 올바르고 풍요로운 지식의 장 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지적하신 성경 구절을 개역개정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비교 해 보겠습니다.   [개역개정]요일 5: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킹제임스 흠정역]요일 5:6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개역개정]요일 5: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킹제임스 흠정역]요일 5:7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아래의 말씀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말씀들을 영원토록 지키시겠다고 확증하시는 구절들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시 12:6{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시 12:7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 119:89(라메드)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마 24:35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딤후 3:16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질문자님의 삶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태그리스트• #바른성경• #영감과• #보존 바른 성경과 신학적 근거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1&docId=227497859&sp=1&sort=0&sid=nFYgxp1di8fO6j2CxSCq4w%3D%3D&rank=2&pid=SGeu7wpySDGssb%2FzRS0sssssssC-337301&search_sort=0&qb=a2VlcGJpYmxl&spq=0&section=kin&enc=utf8    
2016-07-12 10:48:05 | 허광무
마태 8장 28정의 게르게스, 막 5장 1절의 가다라, 개역 성경의 거라사, 이곳이 동일한 지역인가요?, 다른 지역 인가요? 만약 동일한 지역이라면 지명이 왜 다른건지요?
2016-07-08 10:10:40 | 양경수
여러분은 찬송가 ‘There's Dear and Precious Book’을 기억하시나요? 1893년 보스턴에서 열린 집회가 계기가 되어 윌리엄스(M.B. Willims) 목사가 가사를 쓰고 틸만(C.D. Tillman) 목사가 곡을 붙인 찬송가 ‘There's Dear and Precious Book’의 우리말 제목이 바로 통일찬송가 234장에 수록된 ‘나의 사랑하는 책’입니다. 묘하게도 한국적인 정서가 진하게 느껴지는 이 정겨운 찬송가의 1절 가사를 옮겨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속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가사를 쓴 윌리엄스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간직한 소천하신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성경책을 모티브로 이 찬송가를 작시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믿음의 유산에 대한 향수가 담긴 이 사연을 접하고 어떤 분은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내가 네 속에 있는 꾸밈없는 믿음을 회상하노니 그것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딤후1:5) 제가 이 찬송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철없이 교회 행사를 쫓아다녔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입니다. 어느 무더운 날 여름성경학교 조회 시간에 다 함께 이 찬송가를 불렀는데 어린 마음에도 이 찬송가의 곡조와 가사가 어찌나 애잔하고도 정겨웠던지 그때 받은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저는 윌리엄스 목사님이 유품으로 간직한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지금 저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주저함 없이 곧바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윌리엄스 목사님의 사연처럼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성경책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나의 사랑하는 책’은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저는 그것은 솔직하게 ‘개역성경’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불신자의 집안인 저의 집에서 유일하게 장로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역성경 안에 들어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중학교 때 제 전 인생을 걸고 복음을 받아들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영접하고 구원받았습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라면 개역성경이 저의 어린 시절 믿음의 추억이 담긴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출석하고 있는 사랑침례교회 성도 전체의 90%가 넘는 분들도 ‘개역성경’을 통해 구원받았고 그분들의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는 ‘개역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나요?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3&write_id=749 그러므로 사랑침례교회의 성도들 또한 윌리엄스 목사님이 간직했던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과 같이 추억이 담긴 정겨운 성경책을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분이 ‘개역성경’을 꼽게 될 겁니다. 이렇듯 킹제임스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구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 한국 교회 안에서 구원받고 성장한 사람들이며 일반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의 믿음의 동료요 친구입니다. 사랑침례교회의 경우만 봐도 대다수가 기존 교계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다가 오신 분들입니다. 사랑침례교회 성도들은 결코 전략적 계산으로 혹은 현실적인 이득을 챙기고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고 보기 위해 일단 자세를 낮추고 ‘개역성경’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미 입증했듯 거의 다수가 개역성경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성경을 부인하면 저희는 일순간에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부인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겠습니까. 단언하건대 저희는 진심으로 개역성경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한국 교회의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믿음의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개역성경에만 안주하지 않고 더 탁월하며 오류가 없고 완전하다고 확신하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우리 믿음의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존중하며 이 탁월한 킹제임스 성경을 지금처럼 앞으로도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전파해 갈 것입니다.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오가는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작금에 저희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대해 매우 신랄하고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공격과 비판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완전한 성경에 대한 우리의 확고부동한 믿음은 앞으로 털끝만큼의 양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어려움을 계기로 저희는 우리가 믿는 믿음과 진리를 전하는 자세와 언행에 잘못된 부분은 없었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온라인상에 올려진 자료 중 과도하고 부적절한 부분을 교정하는 일을 시행하였고 이미 상당 부분 마무리 지었습니다.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지금이 마지막 때요, 말세의 지말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복음이 흥왕했다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조차 이제는 갈수록 기독교인의 사회적 입지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영적 태풍이 세차게 휘몰아칩니다.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수록 방파제를 더 두껍게 쌓고 더욱 견고하고 강하게 지어진 집으로 피신해야 살 수 있습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집 중에 늑대의 공격에 맨 마지막까지 견디며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 준 집은 막내의 벽돌집이었습니다. 왜 하필 이 마지막 때 성경 이슈가 세상의 주목받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시길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이때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줄 오류가 없는 완전한 성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리의 혼돈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요즘 완전한 성경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평온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전개될 마지막 때를 온전히 대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점점 흉포하게 변해가고 교회들은 점점 더 세속화의 수렁 속에 잠겨 갑니다. 이렇듯 영적 전장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이럴 때 한 사람의 아군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정말이지 요즘은 수많은 적군 사이에서 섞여 있는 소중한 아군을 잘 분별하는 피아(彼我)의 올바른 식별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은 눈에 띄게 그 수효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로마 카톨릭, 동성애, 이슬람교 등 기독교의 믿음과 교리를 위협하는 세력은 그 크기를 점점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위급한 때 적군과 아군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자중지란의 늪에 빠져서야 어떻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더불어 우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분들이 사용한 ‘사기’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은 ‘사기’라는 단어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기(詐欺) : 나쁜 꾀로 남을 속임. 풀어 말하면 일부로 지어낸 생각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의도적으로 남을 속이는 일을 가리켜 ‘사기(詐欺)’라고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자유이며 그 양심의 자유는 당연히 침해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을 순수하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믿지 않으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교묘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조차 양심의 자유로 존중받을 수는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을 믿는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몸과 마음을 바쳐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저희의 이 믿음에 동의 못 하실 수도 있고 때로 우려의 시선을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이 개역성경에 담긴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약 어떤 분의 주장대로 킹제임스 성경의 유일성에 대한 우리의 굳건한 믿음이 기독교가 아닌 신흥 종교라면 우리들의 구원의 근간이었던 개역성경도 신흥 종교의 교도를 구원한 성경이 됩니다. 따라서 개역성경을 옹호하려는 그분도 신흥 종교에 구원을 안긴 성경을 옹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그분은 개역성경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도 킹제임스 성경 신자가 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듯 한 가지만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면 심각한 오류의 함정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도 혹 그러한 불찰은 없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마 그동안 성경 이슈의 심각성으로 인한 조급함으로 오늘까지 달려오면서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의 몇몇 언행에서 다소 오해를 불러온 부분도 있었을 줄로 압니다. 반성할 점이 있다면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교계의 바른 충언은 얼마든지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오해가 짙어진 만큼 더욱 한국 교회에서 타의 모범이 되고 긍정적인 사역을 풍성하게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겁니다. 분명한 점은 일반적인 한국 교회와 저희의 믿음에는 차이가 있으며 아직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개역성경이든 킹제임스 성경이든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속한 지체요, 영원히 맺어진 영적 가족입니다. 부디 이 마지막 때 보수적이고 근본적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과 작년 여름 사랑침례교회 채리티 콰이어가 부른 찬송가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함께 가세!’를 외치며 영적 전장의 전우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관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송-우리 모두 함께 가세 (Charity Choir)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cm&write_id=1090 감사합니다. 9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 11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게시느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생각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그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17 또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9~17)
2016-06-16 10:54:59 | 김대용
벌써 삼월이 되고도 며칠이 지났다. 이제 제법 바람 끝에 봄 향기가 난다. 자동차 계기판 옆에 박힌 시계를 보니 6시 48분. 8시 정각까지 일산의 장례식장을 가야 하니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K는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아본다. 이내 힘을 받은 K의 은색 자동차가 큰 입을 넙죽 벌린 사패터널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이 터널은 길이만 약 4Km고 편도 4차로의 쌍굴 터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길이를 자랑한다. 길이도 길고 편도 4차로나 되니 자유로에 이어 수입차 폭주족들이 롤링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의정부 호원동에만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K는 기억한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이 터널을 공사할 당시 불교계와 국립공원 관련 시민단체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반대했던가. 만약 그때 그들의 논리에 정부가 굴복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마도 K는 큰 불편을 감수하고 돌아 돌아서 인천까지 출퇴근했을 거다. 당시 정부의 수장은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정말 그 길밖엔 없었나?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자신도 모르게 K의 입에서 나지막이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무료한 마음에 라디오를 켰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전달된다. 매번 주인공과 무대는 달라도 사람들 사는 스토리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때 갑자기 공중파 방송이 멈추고 이상한 안내방송이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터널 내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터널 내에 운전자들은 신속히 터널 밖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라. 이거 뭐야!” K는 황급히 라디오 주파수를 바꿔본다. 역시 똑같은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때 갑자기 듬성듬성 켜져 있던 터널 천정의 형광등이 모조리 불을 밝힌다. “아이, 참~ 불났나 보네. 직진밖에 못 하는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도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거야.” 퇴근길 앞을 다투던 차들이 갑자기 차례차례 속도를 줄이며 벌을 서듯 줄지어 선다. 모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지만 피할 길이 없다. 어떤 상황이 기다릴지 모르는 앞으로, 불바다가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앞으로 무작정 전진할 방법밖에 없다. “터널 내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터널 내에 운전자들은 신속히 터널 밖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일어난 것을 인지하는 것밖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심한 안내방송. 이런 기계적인 안내방송이 지금 무슨 도움이 될까. 절박하다면 절박한 순간 문득 K의 머릿속에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세월호 영상이 떠오른다. 참사로 숨진 중학생들이 마지막 순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미공개 동영상들이다. “내가 왜 수학여행에 와서! 난 살고 싶은데! 내가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아~나 진짜 무서워요. 지금” “나에겐 꿈이 있는데!” 곧 닥칠 죽음을 직감한 중학생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절규가 마치 설익은 풋밤 같다. 그래서 채 여물지 못하고 떨어진 풋밤처럼 그 절규가 더 서글프고 처절했다. 영상에서는 그런 상황에 곧이어 20대 중후반 정도 되는 느낌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여교사거나 선박 회사의 직원이 아닌가 싶었다. “침착하세요! 얘들아 조용해!” 그리고 또다시 “침착해~!” 바닷물은 이미 아이들의 목구멍 부근까지 기어오르는데 침착하란다.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인가? 언젠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사람에 관한 목격담을 들었다. 사고 현장에서 일어나 자신의 벗겨진 신발을 주우러 가다가 그만 혼절하더라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끝내 절명했다면 곧 죽음이 닥칠 것도 모르고 벗겨진 신발을 주우러 간 셈이다. 대단한 아이러니 아닌가. 죽음 앞에선 어린 중학생들에게 어른은 침착하라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이러한 도덕 강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저히 신속히 이동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신속히 이동하라는 비상 안내방송도 K에겐 이처럼 무정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윽고 K의 자동차는 계속되는 안내방송과 함께 점점 사고 현장에 근접한다. 저만치 한 사람이 서 있다. 사고 차량 운전자로 보인다. 차들이 피해갈 수 있도록 수신호를 하고 있다. 저러다 전방 주시를 못 한 차량에 치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하긴 지금 남 걱정할 때인가. 그 사나이의 몇십 미터 전방을 보니 마침내 활활 불타는 차량이 보인다. 맙소사, 탱크로리다! 혹시 유조차인가. 저 커다란 탱크로리 안에 기름이 가득 들어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혹시 K의 차가 그 앞을 지나칠 때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써 자동차 폭발은 멋지겠지만, 현실에서는 참혹한 비극이다. “제발, 제발 하나님” 활활 불타오르는 탱크로리를 지나치면서 K는 연신 ‘제발 하나님’을 외쳤다. 다행히 K의 자동차가 지나칠 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로 현실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마치 영화와 같다. 꼭 꿈같다. 그러니 정말 꿈만 같다는 말이 생긴 거다. 초등학교 2학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도 꼭 거짓이요 꿈만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동네 친구의 말을 듣고도 거짓말 말라며 그 날 숙제를 끝까지 했다. 사람은 늘 그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절대 익숙할 수 없는 삶의 결정적 순간과 마주한다. 그게 인생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불타는 탱크로리를 지나치니 이번엔 칠흑 같은 연기가 온 터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헤드라이트를 켜도 바로 1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앞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는 또 다른 맛의 공포가 K를 반긴다. 상향등을 켜고 안개등도 켜고 비상등도 켜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하긴 빨리 가려고 해도 앞차들 덕분에 갈 수도 없다. 자동차 창문을 완전히 닫고 운전을 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걸어간다면 끔찍하다. 아마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질식해서 쓰러질 거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의 심정이 깨알만큼은 이해가 간다. 마지막 순간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그들의 마음이 오죽이나 절박했을까. 드디어 저 앞에 터널의 출구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이 지긋지긋한 답답함과 이별이다. 채 몇 분이 안 되는 시간이 K에겐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차 간 거리가 벌어지고 점점 속도가 난다. 그렇게 터널 출구에 다다르니 확연하게 뚜렷한 시야가 확보된다. K는 저도 모르게 발톱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숨을 내쉰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바로 앞 양주톨게이트에 도착한다. 통행료 3천원을 집어 드는 손이 오늘따라 느슨하다. 통행료를 건네며 K는 요금수납원 아주머니에게 괜한 말을 건넨다. “휴~ 정말 오늘이 끝인 줄 알았어요.” “네 고객님?” 요금수납원은 아직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K는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고 연이어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터널에서 큰불이 났고 연기 냄새가 여기까지 퍼졌다는 수신호인데 못 알아들었으면 어떠하리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K의 자동차가 풀 악셀의 동력으로 채찍 맞은 팽이처럼 쏜살같이 미끄러진다. 될 수 있는 한 화재 현장에서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멀어지고 싶다. 어쩌면 K에겐 지금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잠시 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유조차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어도 탱크로리가 폭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1분 1초라도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날,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그날이 오기 전에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을 마치 단 하나의 날처럼 살 수는 없을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K는 다짐한다. 마치 꿈결 같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기 전 오늘의 하루를 마지막 하루처럼 값지게 살자. 가끔 무리한 다음 날 부정맥 때문에 뻐근해진 심장을 느끼며 일어날 때면 늘 자신을 일깨운다. 허무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헛된 욕심에 자신의 귀한 하루를 소모하지 말자.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워주고 바르게 이끌어주는 소중한 일들에 천금 같은 시간을 사용하자.  “그래 하루하루가 내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단 하나의 날이야!”   4 주여, 나로 하여금 내 종말과 내 날들의 한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사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하소서. 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한 뼘만큼 되게 하셨사오니 내 시대가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며 참으로 모든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전적으로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6 분명히 모든 사람은 헛된 모습 속에서 걷나니 분명히 그들은 헛되이 소동하나이다. 그가 재물을 쌓으나 누가 그것을 거둘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였도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의 모든 범법에서 나를 건지시며 나로 하여금 어리석은 자의 모욕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시39:4~8)   --------------   이 글은 올해 3월 5일 제가 직접 겪은 아래의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터널 지나던 탱크로리 불...1시간 넘게 퇴근길 정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790770 감사합니다.
2016-06-04 23:50:29 | 김대용
안녕하세요?   킵바이블 형제, 자매님들께 광주 은혜침례교회 예배당 이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킵바이블 형제, 자매님을 비롯한 성도님들의 기도와 관심으로  1년동안 성도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   새예배당으로 옮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전에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발견하고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새예배당은 식당, 교제실, 유아실, 회의실등을 갖춘 약 120평 건물로서 교회 건물 용도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약 20여명이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를 드릴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알고 찾아 오시는 형제, 자매님들과 바른 말씀을 갈급해 찾아 오시는   성도분들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 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시고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우리 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새예배당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금로 155번지,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802-3 번지   금호지구 청해진 횟집 4층 입니다   연락처 : 한재석 목사 (010-8978-8275)
2016-05-26 23:31:56 | 한재석
안녕하세요. 최근에 한글 성경번역의 선구자 이수정이 번역한 "주기도문"이 발견되었는데 KJV 성경과 동일한 본문을 사용한것으로 보이기에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아서 신문기사와 자료들을 올립니다.   <기독신문>   “1884년 독자 번역 추정 존 로스보다 더 완성적”         성경번역가 이수정(1842~1887)이 한국인 최초로 주기도문을 번역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총신대신대원 박용규 교수가 1885년 5월에 미국성서공회가 간행한 <The Bible Society Record>에 이수정의 한글주기도문이 수록됐다는 것을 소개하므로 밝혀지게 됐다.   박용규 교수는 잡지의 제작 시기와 관례를 고려할 때 이수정의 주기도문 번역은 1884년경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인에 의한 주기도문이 언제 처음 번역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번 이수정의 주기도문 번역 존재 확인은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한글 주기도문은 1832년 칼 귀츨라프가 번역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존재는 확인되지 못했다.   이수정의 주기도문 번역은 한국인 최초일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이수정이 홀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존 로스의 성경에 나오는 주기도문 본문보다 더 완성된 형태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수정의 주기도문은 존 로스역보다 더 자세히 번역되어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까지 수록했다.   박 교수는 이수정의 주기도문은 1885년 미국성서공회 권서인의 손을 거쳐 쪽복음과 함께 한국인에게 건네져 한국인들에게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수정은 1882년 임오군란 후 고종 황제의 특별 배려로 박영효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1885년 <마가복음>을 번역했으며 이 <마가복음>을 들고 같은해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또 이수정은 탁월한 신앙고백을 남겨 초기 신앙인들의 신앙관을 알게 해주고 있으며 일본 주재 미국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를 촉구하고 일본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 세례를 받게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한국 선교의 중요한 초석역할을 했다.   이수정에 대한 연구 결과 그의 신앙고백, 편지, 성경번역, 한시, 관련 사진은 전해졌으나 주기도문 번역이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이수정의 주기도문이 실린 <The Bible Soceity Record>는 미국성서공회가 1818년부터 간행한 저널로 현재까지 미국서 계속 발행되는 잡지로 두 번째로 오래됐다.   박용규 교수는 “올해는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을 맞는 해”라면서 “이 뜻깊은 해에 한국인 최초의 주기도문인 이수정의 주기도문이 발굴된 것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수정의 편지가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의 젊은이들을 깨웠던 것처럼 이수정의 주기도문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   NIV 성경이나 카톨릭 계열 헬라어 본문(text)의 주기도문 6:13절은 KJV에 비해 짧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과 아멘!도 생략되어 있는데요   (마 6:13, 킹흠정)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마 6:13, 가톨릭)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뒷부분 없음)(마 6:13, 개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뒷부분 원래 없는것처럼 괄호 처리 (마 6:13, **증인 신세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출해 주십시오.  (뒷부분 없음) (마 6:13, KJV)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마 6:13, NIV)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뒷부분 없음)   이수정의 주기도문에는 "13절 뒷부분과 아멘" 까지 포함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전통 T.R. 본문 (KJV 본문) 을 사용한것으로 보임니다.   개역은 마 6:13절 주기도문 마지막 부분을 원래 없는것처럼 (괄호)처리 하였읍니다. *** 거짓 증인들(신세계) 성경과 NIV 와 카톨릭 성경엔 마 6:13절의 뒷부분이 없습니다. 카톨릭 계열 본문(text) 를 사용한 연합성서공회 헬라어 성경에도 중요한 뒷부분이 없습니다.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세상 신 사탄은 문자적인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임하는것을 두려워 할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물리적인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철장권세로 왕국을 통치 하시며 사탄은 결박되었다가 정확히 천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지나면 사탄은 불호수(lake of fire) 속으로 던져 지기 때문입니다.   Nestle GNT 1904 (UBS 연합성서공회)καὶ μὴ εἰσενέγκῃς ἡμᾶς εἰς πειρασμόν, ἀλλὰ ῥῦσαι ἡμᾶς ἀπὸ τοῦ πονηροῦ. (뒷부분 없음) Westcott and Hort 1881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본문)καὶ μὴ εἰσενέγκῃς ἡμᾶς εἰς πειρασμόν, ἀλλὰ ῥῦσαι ἡμᾶς ἀπὸ τοῦ πονηροῦ.(뒷부분 없음)   Scrivener's Textus Receptus 1894 (공인 본문, KJV 역번역)καὶ μὴ εἰσενέγκῃς ἡμᾶς εἰς πειρασμόν, ἀλλὰ ῥῦσαι ἡμᾶς ἀπὸ τοῦ πονηροῦ. ὅτι σοῦ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καὶ ἡ δύναμις καὶ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ἀμήν.   Stephanus Textus Receptus 1550 (공인 본문)καὶ μὴ εἰσενέγκῃς ἡμᾶς εἰς πειρασμόν, ἀλλὰ ῥῦσαι ἡμᾶς ἀπὸ τοῦ πονηροῦ ὅτι σοῦ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καὶ ἡ δύναμις καὶ ἡ δόξα εἰς τοῦς αἰῶνας ἀμήν   이수정의 주기도문은 "완성도가 높다" 그리고  "온전한 형태" 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수정이 번역에 사용한 성경 본문이 "온전한 형태" 임으로 킹제임스 성경과도 일치하는것으로 보입니다   유트브 동영상 : 이수정 주기도문 원본 공개 @ CGN 투데이 (2016.04.21)
2016-05-02 00:22:20 | 김종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And God Said”) Don Landis   뱀이 하와에게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라고 말했던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은 의심받고, 공격당해왔다. 뱀의 말은 성경의 정확성(Bible’s accuracy)과 성경의 권위(Bible’s authority)라는 두 가지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성경의 정확성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은 사람에 의해 쓰여졌고, 따라서 오류(errors)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한 수 세기 동안의 필사들을 통해 사람들이 많은 오류들을 도입했다고 말한다.   성경을 방어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확하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가 갖기를 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성경이 과거에 정확하게 필사되었다는 한 가지 증거는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의 발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47년 한 목동에 의해서 발견된 이 두루마리 성경은 BC 250-15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발견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성경 본문을 약 1,000년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본의 내용이 그 이후의 필사본들과 비교되었을 때, 어떠한 중요한 차이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필사가들이 거의 1,000년 동안 매우 정밀하게 필사작업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이 놀라운 발견은 우리를 성경 원본에 1,000년을 더 가까이 데려다주었다.   또한, 하등비평, 문법, 문맥상의 증거들에 근거하여 성경의 신뢰성에 대한 건전한 주장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필사가들이 성경 본문을 필사할 때, 매우 신중하였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고, 수많은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성경의 특성과, 성경 본문의 역사적 정확성을 증거로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성과 속성에 근거하여,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또 하나의 성경 안에서의 논거가 있다. 그리고 이 논거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숨을 불어넣었으며(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여, 벧후 1:2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신뢰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분은 무한한 지혜를 갖으셨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신뢰할만하고, 정확하고, 무오하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분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성경의 정확성은 보증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의 기록을 보존키 위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이신 그의 친아들을 구속의 목적을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취하여 보내셨다.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시고 하나님이 지불하신 비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분의 아들의 목숨이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오심, 우리의 죗값을 그분이 갚으심, 그리고 그분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진리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여기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고,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값을 치렀고, 모든 미래의 세대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하셨다면, 하나님은 성경의 본문에 오류가 생겨 훼손되고, 메시지가 망쳐지도록 놓아두었겠는가?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하나님이 성경의 본문이 분실되고 메시지가 혼란스럽게 되도록 허용하셨다면, 그 분은 자신의 목적과 그 분의 독생자와 십자가상에서의 희생에 대한 목적에 불성실하다 할 것이다.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사역에 대한 완전한 기록을 인간들에게 잃어버려지도록 허용하시지도, 허용하실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분은 오는 세대들에게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속을 무효화시킨 것이 된다. 하나님의 본성, 특성, 그리고 속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 그 분의 뜻과 약속과 계획에 대한 신실한 증인일 것을 요구한다.   성경의 권위   하나님은 모든 권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성경은 권위를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경의 원저자이시기 때문에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 성경은 권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근거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메시지의 전달을 보증하셨고, 자신의 권위로 이 메시지를 강화하셨음으로, 인간은 오직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사실은 성경이 정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우리가 정확한 성경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확신할 수가 있다. 성경은 진리이며, 그의 아들 안에서 믿음에 대한 그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자들에게 용서와 영생을 주시겠다는 그분의 제안과 약속을 신실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출처 : Answers Magazine, October 30, 2007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biblical-authority-god-said번역자 : 한국창조과학회 IT 사역위원회   본문의 성경구절은 모두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으로 대치하였습니다.
2016-04-29 12:54:03 | 허광무
안녕하세요 평택진리침례교회 김경완 형제목사입니다. 지금까지 킵바이블과 정동수 목사님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아 과거의 일들을 정리하고 독립침례교회로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평택지역에도 많은 혼들이 완전한 성경을 붙들고 소망가운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침례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교회 홈페이지 : http://www.kingjamesbible.kr   아래 링크된 환영인사말로 안내글을 대신합니다.   http://www.kingjamesbible.kr/html/chu02.html
2016-04-27 13:24:06 | 김경완
(4) 7절을 말씀 보존의 약속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의 오류에 대해   6-7절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위의 7절에 있는 두 개의 'them'이 원어인 히브리어의 문법에 따르면 6절의 'The words of the LORD({주}의 말씀들)'이 아니라 5절의 'the poor (가난한 자)'와 'the needy(궁핍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7절이 말하는 보존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신다는 약속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보존하신다는 약속이라고 하고, 그러므로 'them'을 '그것들을'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니 '그들을'로 고쳐야 한다고 부조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조리한 이유는   첫째,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시편 12편을 쓴 다윗의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영원히'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보존하신다고 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둘째, 'them'이 6절을 건너 뛰어 그 앞의 5절에 있는 'the poor (가난한 자)'와 'the needy(궁핍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6절이 5절과 7절 사이에 끼어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절은 개 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맙니다.   셋째, 그들이 제기하는 히브리어 문법상의 문제란 7절의 대명사 'them'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남성복수형이므로 그것이 가리키는 명사는 그와 일치하게 남성복수형이라야 하는데 'The words of LORD'의 'words'는 여성복수형이므로 'them'이 가리키는 명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만, 그것은 그들이 히브리어의 성경적 특별 문법과 그 사용 용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기하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 말씀(word)이나 이와 동류의 단어들(율법/law, 증언/testimony, 명령/commandment,, 법규/statute 등)은 여성 명사이므로 이것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여성형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이런 통상적인 문법적 틀에 매이지 아니하고 남성형으로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word)이나 동류의 단어들에 남성적 특성 또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여하고자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들은 시 12:6-7 외에도 수 1:7, 시 78:5, 시 119:111, 시 119:129, 시 119:152, 시 119:167, 레 22:31, 레 26:3, 민 15:39, 왕상 6:12, 레 20:8, 레 26:3, 겔 5:6, 겔 18:19, 겔 37:24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지극히 정상적이고 성경적 현상(the Biblical phenomenon)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어떤 말의 틀에 매이지 않으시고 임의로 필요하신 대로 말을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은 복수형이지만 문법적으로는 단수형으로 취급해서 사용하시는 것이 그 한 가지 예입니다. 통상적으로 여성형 대명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남성적 특성 또는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남성형 대명사를 쓰신 것도 하나님의 권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넷째, 대칭으로 교차배열된 시의 구성에 비추어 보면, 하늘색으로 표시한 2~3절과 6~7절은 교차배열된 것인데, 앞서 '(2) 시의 구성'에서 언급하였다시피 2절과 6절은 사람들의 말들과 {주}의 말씀들이 '성격적인 면'에서 교차대비되고 있고, 3절과 7절은 사람들의 말들과 {주}의 말씀들이 '시간적인 면'에서 교차대비되고 있으며 그것이 시의 구성으로 볼 때 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7절의 '그것들'이 '{주}의 말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고 '그들'로 고쳐 번역한다면 교차대비되는 내용이 '사람들의 말들과 가난한자와 궁핍한 자'로 되어 말들과 사람들이 대비되는 형식으로 바뀌어 시편 12편의 전체 구성에 어긋나며, 시 전체가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니라 '그것들'이 옳은 번역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성품에 따른 교리가 바른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전능하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으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보존하셔서 우리가 그것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심을 믿는 것이 바른 교리입니다.   (눅 4:4)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That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of God.)   (5) 난외주를 잘못 해석하는 오류에 대해   1611 킹제임스 성경에는 시 12:7 preserve 다음의 'them'에 난외주가 있습니다. (시 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them에 대한 난외주) Hebr. him. i. every one of them.   하나님의 말씀 보존을 부정하려는 자들은 위의 난외주를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봐라. 'them'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s of the LORD)'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일부러 난외주에 히브리어로는 'him'이라고 알려 주고 있지 않느냐. '말씀'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고는 'him'은 곧 'every one of them(그들 모두)'란 뜻이라고까지 밝혀주고 있다고 추가합니다.   여기서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영어는 성별 구분을 남성, 여성, 중성으로 하므로 him, her, it과 같이 대명사를 사용하지만, 히브리어에는 중성 대명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난외주에 히브리어로는 him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써 'them'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사용하면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기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난외주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알려 주려고 한 것은 무엇알까요?   그것은 'them'이라고 번역한 단어의 히브리어는 'him'이라는 3인칭 남성 단수 대명사로서 앞에 나온 남성 단수 명사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앞에 나온 '남성적 의미'의 복수형 명사(the words of the LORD)의 모두를 하나하나 개별적으로(every one) 가리키는 것이라고 난외주는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3인칭 단수 대명사 'it'로 번역하지 않고 'them'으로 번역했을까요? 'every one'은 문법적으로 단수 취급하는데…   그것은 everyone이라는 단어가 문법적으로는 단수이지만 의미상으로는 복수이므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 I love everyone.  I love them. (복수 개념) * Everyone is here. (단수 취급)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은 'every one of the words of the LORD'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로서 'it'가 아니라 'them'을 사용함으로써 'every one'에 포함된 (전체+개별)적 개념을 명시하려 하였고, 이처럼 번역한 이유를 알리기 위해 난외주를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흡한 성경 히브리어 문법 지식과 엉터리 난외주 해석으로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부정하려고 하는 자들의 사기 술책에 조금도 동요되지 말고 단호히 대응하여 마귀와 함께하는 그들의 계략을 분쇄하여야 하겠습니다.   (6) 말씀 보존은 상식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시 12:6,7이 말씀 보존을 확증하는 내용임을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복잡하게 또 자세하게 살펴볼 것도 없습니다.     (눅 4:4)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으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려면 보존해 주시는 것도 당연지사!   (마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진실로 말씀하셨습니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 우리에게 선포된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된다고 하셨습니다.   (신 4:2)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계 22:19, 20)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 말씀을 보존하시려고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더하거나 빼서 보존되지 않게 되어 버린다면 무능한 하나님이시죠. 그런 하나님을 당신은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 이상의 글은 여러 성도님들의 글을 참고하거나 인용하였습니다.   음영진 목사님: 위에서 예시한 성경적 현상(the Biblical phenomenon)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구절들의 개별적인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firstbaptist.or.kr/default/product/01.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15&top=3&sub=0&&com_board_search_code=&com_board_search_value1=&com_board_search_value2=&com_board_page 김문수 목사님: https://youtu.be/GGkTsQwKKH4 고정인 자매님: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manus&write_id=1    
2016-04-25 20:22:45 | 최상만
시편 12편의 말씀 보존 약속   (1) 본문   1 (스미닛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주}여, 도우소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끊어지고 신실한 자들이 사람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없어지나이다.                   Help, LORD; for the godly man ceaseth; for the faithful fail from among the children of men. 2 그들이 저마다 자기 이웃과 더불어 헛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                              They speak vanity every one with his neighbour: with flattering lips and with a double heart do they speak. 3 {주}께서 아첨하는 모든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The LORD shall cut off all flattering lips, and the tongue that speaketh proud things: 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혀로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리요? 하였도다.             Who have said, With our tongue will we prevail; our lips are our own: who is lord over us? --------------------------------                                         5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의       학대받는 것과 궁핍한 자의 탄식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제 내가 일어나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하시는도다.                      For the oppression of the poor, for the sighing of the needy, now will I arise, saith the LORD; I will set him in safety from him that puffeth at him. 6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7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8 가장 비열한 자들이 높여질 때에는 사악한  자들이 사방에서 활보하는도다.             The wicked walk on every side, when the vilest men are exalted.     (2) 시의 구성   시편 12편 성경 본문은 대칭으로 교차배열된 구조의 시로서, 처음에는 연두색, 하늘색, 노란색 순으로 세 가지 주제를 펼쳐 보이고 나서, 그것을 거꾸로 되짚어 가면서 노란색, 하늘색, 연두색 순으로 다시금 각 주제를 언급하되 처음과는 교차대비되는 내용을 기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 연두색) 1절과 8절이 서로 대칭이 되는 위치에서 교차대비되고 있으며, (나: 하늘색) 2~3절과 6~7절이 서로 대칭이 되는 위치에서 교차대비되고 있고, (다: 노란색) 4절과 5절이 또한 서로 대칭이 되는 위치에서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연두색) 1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신실한 자들이 없어집니다. 8절: 비열한 자들, 사악한 자들이 활보합니다.   ※ 1절과 8절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과 비열한 자들이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또, 없어지는 것과 활보하는 것도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나: 하늘색)   2절: 사람들이 헛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6절: {주}께서는 순수한 말씀들을 말씀하십니다.   ※ 사람들의 말들과 {주}의 말씀들이 성격적인 면에서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3절: 아첨하는 입술과 교만한 말 하는 혀를 끊으실 것입니다. 7절: {주}의 말씀들을 지키시며 영원히 보존하실 것입니다.   ※ 사람들의 말들과 {주}의 말씀들이 시간적인 면에서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다: 노란색)   4절: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혀로 이기리라. 우리 마음대로 말하리라." 5절: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혀로 학대받고 탄식하는 자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 대한 태도들(사람들의 태도와 하나님의 태도)이 교차대비되고 있습니다.   (3) 내용 파악   시의 구성을 감안하여 전체 내용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가장 비열한 자들이 높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악한 자들이 사방에서 활보하고 있습니다. (8절)   그들은 자기 이웃과 더불어 헛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말을 하며,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2절)   그러면서 그들은 마음대로 내뱉는 자기들의 언사(言事, words)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억눌러 이기는 무기로 남용하는 것을 그치려 하지 않습니다. (4절)   사람들의 자녀들이 이처럼 행하므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끊어지고 신실한 자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주}여, 도와 주소서. (1절)   내 기도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학대받고 궁핍한 자가 탄식하니 이제 내가 일어나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5절)   사람들의 자녀들의 말들과는 달리,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입니다. 마치 흙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이 순수합니다. (6절)   주께서 {주}의 말씀들을 지키시며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실 것입니다. (7절)   {주}께서 아첨하는 모든 입술과 교만한 것들을 말하는 혀를 끊으실 것입니다. (3절)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의 말들은 끊으실 것이니 우리는 개념치 말고, 오히려 영원히 보존해 주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마음에 담고 또 간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질 것입니다.)        
2016-04-25 20:09:26 | 최상만
존경하는 정동수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님의 계시록 강해를 듣다 kjv를 알게 되어 만 3년동안 목사님의 여러가지 강해와 설교를 들으면서 공부할 수록 참 기쁨과 놀라움속에서  부끄럽지 않은 성도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나라에 목사님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저만 이라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kjv를 공부해서 본 교회에서 친 형님같이 지내는 장로 내외, 안수집사 내외와 교제를 통해  kjv를 보면서 함께해주고 있습니다.  kjv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확신 들고 가슴이 뜨거워져 장로님이 당회(당회원 목사포함5명)에서 의제를 내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려 하는데 그 시기는 아직 모르겠지만 기도하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치 믿음의 선조들이 바른 말씀을 먼저 알아 우리들에게 모든 고난을 통해서 알려 주었 듯이  저희들도 기존의 틀에서 가슴 떨리고  어렵고 힘든일이 되겠지만 믿음의 선조들의 뒤를 따라 가려 하고 그 총대를 장로님이 메려하며 저 또한 끝까지 함께  할것입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목사님의 강해를 듣던중 바른성경과 바른사본을 찾아서 (이황로 목사 번역)의  정성구 박사님 추천서 애기가 나와서 그 자료가 참 유용하겠다 싶어서 책을 구입하려 했으나 구입 할수가 없어서요.   바른성경과 바른사본을 찾아서 (이황로 목사 번역)의  정성구 박사님이  쓰신 추천서를 제 메일 yesk1107@hanmail.net로 보내 주시면 잘 사용하겠습니다.   저희 교회(합동에서 독립교단으로 변경)를 공개적으로 자세하게 말씀드리지 못한점을 양해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논의의 방법 시기등  앞으로도 많은 도움과 관심 배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6-04-23 16:28:17 | 김동현
삼위일체 우주 (The Tri-Universe)   Henry Morris    이전의 ‘창세기로 돌아가자(Back to Genesis)’ 컬럼 란의 '삼위일체의 놀라운 진리(The Wonderful Truth of the Trinity, Acts & Facts, November 2005)”라는 제목의 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Trinity)에 대한 성경적 교리와 그것에 대한 성경의 핵심 구절들을 함께 간략히 기술했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한다는 것은 3 페이지의 글로는 분명히 불가능하다(이 주제에 관한 한 권의 책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본질적 진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한 하나님(one God)으로서, 성부(Father), 성자(Son), 성령(Holy Spirit)의 세 위격(three Persons)을 가지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로서, 확실히 가장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세 명의 하나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한 하나님이시다. 성경 속에 사용된 '하나님(God)”이란 단어는 가장 일반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성자와 성령 역시 하나님으로서 인식된다.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 분의 분명한 개체가 아니라, 한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실 수 있는 세 가지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틀린 발상이다. 예를 들자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서로 대화하시는 기록이 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우리들의 생각으로 완전히 이해되기는 어렵다(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심장으로부터 그것을 믿어야 한다. 회의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비웃을 수 있다. 왜냐하면 1+1+1은 1이 아니라 3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은 삼위일체(세 위격의 한 하나님) 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순전하게 잘 믿고 있는가?   셋이 하나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자체가 삼위일체인 거대한 우주(universe)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우주는 놀랍게도 각각이 또한 많은 삼위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설명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을 우리 인간들이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하나의 모델로서(또는 유형이나, 유사하게) 우주를 창조하셨던 것은 아닐까?   숙고해 보라. 창조된 우주는 공간(Space), 물질(Matter), 시간(Time)이 서로 조화되면서 전체를 나타내고 있는 삼위일체 우주로 되어있다. 우주는 부분적으로 공간만으로, 부분적으로 물질만으로, 부분적으로 시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삼위일체는 3인조 또는 3화음이 아니라, 삼위가 하나를 의미하며, 각 부분이 전체를 구성한다. 그래서 3개 모두가 전체를 만드는 데에 요구된다. 그래서 우주는 공간 모두, 시간 모두, 그리고 물질(물질의 한 형태인 에너지를 포함하여) 모두로서 이루어진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를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로서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세 구성 요소의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삼위일체 우주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은 우주 모든 곳의 배경으로서 어느 곳에나 편재한다. 그러나 물질(그리고 에너지)은 우주의 실체로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공간, 물질, 시간 대신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대체해서 집어넣고 위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라. 정확히 그 뜻이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은 삼차원으로 되어있고 각 차원은 모든 우주에 충만하기 때문에 공간은 그 자체가 삼위일체이다. 공간의 어떤 부분의 크기는 삼차원(가로, 세로, 높이)을 함께 곱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다. (삼위일체 수학은 1+1+1=1 이 아니라, 1×1×1=1 이다). 더 나아가, 공간은 일차원에서 확인되며, 이차원에서 보여지고, 삼차원에서 체험된다. 같은 문장에서 일차원, 이차원, 삼차원 대신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대체해 보라.   마찬가지로, 시간은 미래, 현재,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는 시간의 보이지 않는 근원이며, 현재는 순간순간 명확히 볼 수 있고, 과거는 이해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미래, 현재, 과거의 단어들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대체해서 읽어 보라.   마지막으로, 물질은 보이지 않으나 모든 곳에 편재하는 에너지이며, 여러 형태의 측정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관측되며, 관련 현상들을 통해 체험된다. 예를 들어, 빛 에너지는 빛의 파동을 만들어내며 빛을 봄으로서 체험된다. 소리 에너지는 음파를 발생시키며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음으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우주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관계를 모델화하여 각 요소들의 내부적 관계들을 맺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trinity of trinities)’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다”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앞에서 주의를 준 것처럼).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사실이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분 자신을 반향하여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일부분이라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앞에서의 몇 개 단락은 ‘방어자의 스터디 성경(The Defender's study Bible, 헨리 모리스 저)’에서 로마서 1:20절을 지지하는 각주로부터 주로 인용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이 놀라운 유사성은 고든 대학(Gordon College)의 전 총장이었던 나단 우드(Nathan H. Wood) 박사가 쓴 책 ‘우주의 비밀(Secret of the Universe)’에서 처음 확인되어진다. 그 책은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영국의 성경주석가 중 한 명인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 박사가 매우 칭송하는 서문을 썼던 책이다. 또한 그 책은 1978년 크레겔(Kregel)에 의해서 ‘우주의 삼위일체(The Trinity of the Universe)’라는 제목으로 재인쇄 되었다.   그러므로 물리적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우주인 생명체는 어떠한가? 많은 주석가들이 사람은 몸(body), 혼(soul), 영(spirit)의 삼위일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들 각 실체들은 실재하며 구분된다. 그러나 각각이 완전한 사람 안에 포함된다. 기도의 사람 바울은 최초에 쓴 서신서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 ”평강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그것을 행하시리라.” (살전 5:23-24)   ‘혼(soul)’은 사람의 한 부분으로 몸을 활동하도록 하는 실제적 생명(life)이다. 그리고 ‘몸(body)’은 물질들의 구성체로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이 둘과 관련된 구약성경의 구절은 레위기 17:11절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the life of the flesh is in the blood)”. 이 구절에서 ‘생명(life)’이라는 단어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혼’과 같은 단어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몸을 통한 피의 순환이 몸에 생명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편 몸의 영(spirit)은 몸의 ‘호흡(breath, 생기)’ 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호흡’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헬라어의 신약에서 ‘영’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끔 혼과 영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혼과 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4:12절에서 확인되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히 4:12).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breath of life)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 2:7).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던 것이다(창 1:27). 하나님의 호흡(생명의 숨) 때문에 흙으로 된 사람의 몸과 살아있는 혼에 하나님의 형상이 불어 넣어진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이러한 유사성은 꽤 명백해 보인다. 혼은 몸의 생명이 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 없으나, 사람의 존재와 행동들에 기초가 된다. 이에 반해 몸은 혼의 보여지는 만져질 수 있는 현시(manifestation)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의 영은 (혼처럼)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도 없지만, 도덕적 및 심미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하나님과 이성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동물들도 또한 혼(즉 생명)과 몸과 영(단지 호흡의 의미에서)을 소유한다. 동물들도 본능의 수준을 넘어서서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다른 동물들과 심지어 사람들과도 교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고 있는 한, 동물들은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태초에 동물 삼위일체가 사람 삼위일체와 비록 관련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죄와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죽음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서 발생하고,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짐승의 영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고, 인생의 혼(영, spirit)은 위로 올라가서.... 신(영, 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전도서 3:20-21, 12:7).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울의 기록과 일치된다.   어쨌든 우리는 사람 생명체와 동물 생명체가 사실상 삼위일체(논리적으로 삼위일체의 순서를 가진 3개의 구성요소가 각각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로 구성되어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될 것이나, 동물(몸, 생명, 영)은 그렇지 않다. 오직 남자와 여자만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우주에서 삼위일체의 모습들은 현저하게 퍼져있고, 창조된 생물체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물론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다. 어떠한 삼위일체 모델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만큼 완벽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주는 실제로 각각의 삼위일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각 단위는 각기 자신의 기능을 가지고 구별된다. 그러면서 이들 세 개의 요소들은 모두 전체의 구성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각각은 전체에 퍼져 있다.     피조물들에 나타나 있는 이들 삼위일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완벽하게 반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멋진 그리고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놀라운 사실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됨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나의 설득력 있는 설명은 우주 만물이 삼위일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신중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ICR, BTG 204, 2005. 12. 1. URL : http://www.icr.org/article/2590/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본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62&category=B00&orderby_1=editdate%20desc&page=11   ~~~~~~~~~~~~~~~~~~~~~~~~~~~~~~~~~~~~~~~~~~~~~~~~~~~~~~~~~~~~~~~~~~~~~~~위 본문의 성경 구절은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으로 대체하였다.개역성경에서의 영과 혼은 거의 구분이 어렵고 혼용된채 사용되고 있다.위 본문에서의 설명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킹제임스성경이 필요함을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대 개역성경 비교구절   (창 2:7, 킹흠정)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 2: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KJV)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전 3:20, 킹흠정)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니와(전 3:21, 킹흠정)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전 3:20, 개역)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전 3:21, 개역)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 3:20, KJV) All go unto one place; all are of the dust, and all turn to dust again.(전 3:21, KJV)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
2016-04-18 15:55:25 | 허광무
안녕하세요. 요일 5:7절은 일명 "요한의 콤마" 로 알려졌으며. 거의 대부분 현대 역본에는 없습니다.   KJV 성경과 T.R. 본문을 비방하는 프린스턴대 비평 신학 박사 "메츠거"(Metzger)와 비평신학자들은 요일 5:7이 성경에 없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평신학 박사 "메츠거"는 누구인가?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칼빈은 칼빈의 주석서에서 T.R. 공인 본문을 지지하며 요한 일서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칼빈이 이렇게 믿었다고 우리도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들은 한결같이 KJV 성경과 공인분문을 전수한 성경들을 사용했고 삼위일체의 강력한 말씀인 요일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것입니다. ""But as even the Greek copies do not agree, I dare not assert any thing on the subject. Since, however, the passage flows better when this clause is added, and as I see that it is found in the best and most approved copies, I am inclined to receive it as the true reading. ""   (그리스어 필사본들도 어떤것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지만 이 구절이 성경에 있어야 하는지 없어야 하는지나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요일 5;7절이 성경에 있어야 문맥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공인된 최고의 우수한 사본들(the best and most approved copies) 이 이 구절을 담고 있다.  나는 이 구절이 있어야 참 하나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고 믿는다.)   http://biblehub.com/commentaries/calvin/1_john/5.htm(칼빈 영어 주석)   요일 5:7절이 왜 성경에 있어야 하는가? 이황로 목사님의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 을 인용해 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하늘에서 왔다.   (고전 15:47, 킹흠정)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고전 15:47, 개정)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가톨릭)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고전 15:47, 신세계 ***증인)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며 흙으로 만들어졌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현대 역본들은 "주님"(Lord) 생략) 누가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신가?”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다. KJV의 이문은 다음과 같은 필사본의 증거들의 지지를 받아서 “주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대문자 필사본(Uncials): 코덱스 알렉산드리아 (주후 400년경), K, P. (역주: 사본 이름들). 소문자 필사본(Minuscules): 81, 104, 181, 326, 330, 436, 451, 614, 629, 1241, 1739, 1877, 1881, 1962, 1984, 1985, 2127, 2492, 2495. 모든 성구집: 모두 고전 15:47을 포함하고 있다. 고대역본들: 시리아 페쉬타(주후 170), 시리아 팔레스타인역 (주후 420), 고딕역(주후 341), 시리아 할크 렌시스역 (주후 616), 아르메니안역(주후 400). 초기 저자들: 오리겐, 바실, 크리소스톰, 맥시머스, 세릴, 유탈리우스, 데오도레트, 코스마스, 다마스커스 의 요한.   또한, 교리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도 하늘로부터 온 자가 없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딤전 6:16), 모든 사람은 땅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성조 차도 땅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은 하늘로부터 왔다.   (요 3:13, 킹흠정)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 3:13, 개정)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가톨릭)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요 3:13, 신세계 ***증인)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습니다.     질문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동시에 하늘에 계실 수가 있다 는 말인가?   (현대 역본들은 "하늘에 있는" 이 부분을 생략)   답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동시에 두 곳에 계실 수 있고, 따라서 요한 3:13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 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부패한 바티칸사본과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에 나온 NIV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증명구절을 삭제하고 있다.         (요일 5:7, 킹흠정)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8, 킹흠정)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요일 5:7,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8, 개역)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본엔 "하늘에", "땅에" 이런 단어들도 생략되어 있으므로 하늘과 <-- > 땅에서의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함을  감추고 있다.(저의 주해입니다.)   (계속해서 바른 성경과 바른 사본을 찾아서를 인용) 요한일서 5:7, 8절은 모든 현대역본들에서 삭제되어 있다. 이것은 “유명한 삼위일체 증명원문”이라고 불리운다. 현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이 성경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그리스어 필사본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7세기 이전의 오직 6개 그리스어 필사본에서 7, 8절을 삭제하고 있다. (9세기 이전에는 14 필사본).   배경: 에라스무스는 1516에 출판된 그리스어 신약성경 제 1 판에서 이것을 삭제했는데, 당시 라틴 벌게이트에는 나오지만 그리스어 필사본에서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나오는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 만일 이 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 필사본이 하나만 발견되더라도 복구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리스어 필사본인 코덱스 61과 629가 제시되자 그는 1522년에 그의 성경에 포함시켰다. 이 필사본들이 15세기와 16세기라는 후대의 것이라 사람들은 이 이문들이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라 답하는가?   i) 초기 교회의 저술가들:   -사이프리안, 주후 200-258년. “주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또 아버지와 아드님과 성령님에 대하여 기록되기를, ‘이 셋은 하나이니라,’고 되어 있다.” 만일 사이프리안이 요한일서 5:7을 자신의 성경에서 주후 200-258년에 인용하고 있다면 이것은 합당한 이문(역주: 異問 혹은 독본讀本이라고도 하며 비평학에서 사로 상이점을 보이는 해당 문구를 말함: reading)구절이다. 그의 성경은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는 더 오래된 성경에서 필사된 것이다. 사이프리안은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지 100년 뒤에 살았다. 사이프리안은 점검해보려고 원본필사본에 접근했었을 수도 있다.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 주후 350년. 스페인 감독은 요일 5:7을 인용하고 있다. -이다시우스 클라루스(Idacius Clarus), 주후 360년, 프리스킬리안을 반박하며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 다. -바리마둠(Varimadum), 주후 380년.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 주후 485년 -카시안(Cassian), 주후 435년. -빅터 비타(Victor Vita), 주후 489년. -제롬(Jerome), 주후 450년. -풀젠티우스(Fulgentius), 주후 533년. -Ps. 비질리우스(Vigilius), 주후 484년. -안스버트(Ansbert), 주후 660년.   ii) 초기 성경번역본들: 구 시리아역, 주후 170 구 라틴역, 주후 200,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이탈리아역, 4, 5세기. 이탈리아역, 7세기의 모나센시스. 이탈리아역, 9세기의 스페쿠룸. 라틴 불게이트역, 4, 5세기. iii) 그리스어 소문자 필사본들: UBS(연합성서공회) 그리스어 신약성경, p. 824; 요한일서 5:7, 8에 관한 논쟁의 역사, p. 268. (역주: 아래 번호들은 소문자필사본의 고유번호임) -221, 10세기. (이문異文). -636, 15세기. (여백란). -88, 12세기. (여백란). -61, 16세기. (코덱스 몬트포티아누스) -629, 14세기. (오토바니아누스). -918, 16세기. (에스코리알 필사본). -429, 14세기. (여백란). -2318, (부카레스트 필사본).   iv) 초기 자료들: 리버 아폴로제티쿠스, 주후 350년. 카르타지 회의, 주후 415년. v) 그리스어 문법이 이 구절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NIV는 7, 8절에서 문법성을 불일치시켰다.   질문 1: NIV가 요한의 콤마를 삭제하는 것이 옳다면, 7절에서 나오는 그리스어 남성 정관사 hoi [marturountes (ο. μαρτυρο.ντε. 남성복수 분사)=하늘에 증언하는 ....]가 왜 8절에 나오는 세 개의 그리스어의 중성(성 령, 물, 피)과 불일치하고 있는가? (역주: 즉, 두 단어들이 성[性: gender]이 서로 일치가 되어야 하는데 맞고 있지 않다는 뜻). (성)령, 물, 피는 그리스어에서 모두 중성명사로 중성 정관사를 취하는데, 그렇다면, 7절에 나오는 정관사는 당연히 중성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까, 아예 7절 자체가 없다면). 하지만 7, 8절에 모두 정관사가 모두 (복수) 남성으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질문 2: 7절과 8절에서 각각 남성 정관사 hoi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 그것은 요한의 콤마에서 나오는데 아버지와 말씀이 두 남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명사와 연관되어 정관사의 성이 강력하게 지배하므로 뒤에 나오는 정관사들이 남성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요한의 콤마가 그리스 성경원문에 포함되어야 하기에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NIV나 NWT는 요한의 콤마를 삭제함으로 그리스어 문법상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본 대로 7절의 남성 정관사가 뒤에 나오는 8절의 세 개의 중성명사들(성령, 물, 피)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 3: 그렇다면 어찌하여 요한의 콤마가 어떤 그리스 필사본에는 없는데, 라틴 필사본에는 있게 되었는가? 첫째로, 7절과 8절의 비슷한 어구들로 끝나니, 필사자가 7절에서 정신산만해 있다가, 8절을 필사하면서 그만 요한의 콤마를 우연히 누락시켰을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필사오류는 계속해서 필사하며 일어날 수 있다.   둘째로, 주후 220-270경에 그때는 그리스 크리스챤들 중에 아직 아리안 이단교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벨리아니즘(사벨리안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여기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도 죽으셨다고 가르쳤다. 요한의 콤마에서 “이 세 분 은 하나이시니라”는 말씀이 사벨리안의 이단교리,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동일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쟁 중에 위에 언급한 대로 요한의 콤마가 누락 된 그리스 필사본이 우연히 발견되었을 때, 오히려 소위 정통파 사람들이 7절이 훼손된 것이 참 된 필사본이라고 쉽게 간주했을 수 있다. 그리스어를 구사했던 동방에서는 사벨리안주의 논쟁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으므로, 요한의 콤마는 만장일치로 거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스페인 같은 곳의 라틴 필사본들은 사벨리안주의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므로 요한의 콤마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이 라틴 필사본에서 요한의 콤마가 강하게 제시되어 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유다.    자료: “KJV Defended,” E. F. Hills, p. 204-208. (역주: 이 책은 keepbible.com에서 번역하여 출간되었음)      
2016-04-17 10:36:11 | 김종설
그분의 아들의 이름   (His Son's Name) Henry M. Morris   "하늘에 오르신 분이 누구냐 혹은 내려가신 분이 누구냐? 바람을 자기 주먹 안에 모으신 분이 누구냐? 물을 옷에 싸신 분이 누구냐? 땅의 모든 끝을 굳게 세우신 분이 누구냐?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분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네가 말할 수 있느냐?" (잠언 30:4).   어떤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독생자의 이름을 짓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 흥미진진한 이름짓기 가운데서도 선지자 아굴(Agur)(잠언 30:1)이 특별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하던 이름은 물과 바람과 그리고 땅의 모든 끝을 정하신 바로 그 우주창조의 주재자의 아들의 이름이었다.   실제로는 그도 어쩌면 하나님이 아들을 가졌다는 것을 처음 알고 상당히 놀랬을는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그로서는 모세의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물론, 신명기 6:4에 담긴 위대한 단정의 말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를 여러 번 인용하였을 것이기에 하는 추측이다. 어떻게 창조의 하나님이 아들을 가진다는 말씀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아굴을 시켜 솔로몬 왕의 잠언 중 매혹적으로 독특한 제 30장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말고는 그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지혜로운 사람인 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아마 솔로몬이 잘 알고 신임하였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다윗과도 아는 사이였었던 것 같다. 최소한 다윗의 시편(詩片)들에 친숙하였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다윗이 노래한 시편 2장에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언급이 있다. '…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내가 이교도들을 네게 상속물로 주고 땅의 맨 끝 지역들을 네게 소유로 주리라.' (시편 2:7, 8).   아굴도 다윗의 미래의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서 아마 다윗이나 솔로몬한테서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 ' (사무엘하 7:13, 14; 또한 역대상 17:13). 이 수수께끼 같은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 같으나, 그 영원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솔로몬을 넘어 다윗의 보다 더 위대한 후손으로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분을 지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상 신약(히브리서 1:5)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고 우리는 이제야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굴이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물었던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또한 그는 모세의 책에서 이미 하나님을 일컫는 여러 이름들에 - 특히 '하나님 (Elohim)'과 '주님(여호와)' 그리고 '주님(Adonai)' - 틀림없이 친숙하였으면서도 새삼 창조주의 이름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의 또 다른 이름이 있어야만 했다. '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아굴은 물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The Name of the Father)   비록 아굴의 특정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구약성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새 이름은 '아버지'보다 더 아래격인 호칭은 있을 수 없다. 비록 '아버지' 라는 단어 (히브리어로 아브(ab))가 구약성경에 500번이 넘게 보이지만, 저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브 (또는 아바(abba), 아브와 동일한 뜻의 아람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때때로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예컨대, 예레미아 3:19에서 미래의 왕국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하시면서) 하셨다. 언젠가 한 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시고 노예로부터 건지셨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아브가 되신다는 것을 환기시킨 적이 있다 (신명기 32:6). 그러나 구약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가 있다면 -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언급을 제외하고 (사무엘하 7:14; 역대상 17:13) - 이것이 아마도 아굴이 자기 생전에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예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아들은 드디어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상황은 온전히 변하고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그는 당신의 재판과 십자가형이 집행되기 바로 전날 밤에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 드러내었고 또 드러내리니 … '(요한복음 17:1, 6, 11, 25, 26) 하셨다. 그 이름은 명백히 '우리 아버지'였다.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실 때, 특별히 기도 서두를 '우리 아버지'로 시작할 것을 일러 주셨다. (마태복음 6:9).   '아버지' (희랍어로는 pater)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에서는 약 500번 보이는데, 인간의 아버지들은 물론 하나님을 지칭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 모두가 빈번히 사용하였다. 한 번은 긴급한 상황에서 주 예수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릴 때, '아바 아버지여(Abba, Father)' (마가복음 14:36)하고 불렀다. 이 기도는 그의 체포가 있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다. 비록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에게 '아바' 라고 불렀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스도는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삼위일체 神格의 제일 깊숙한 자리에 앉아 계실 당신의 아버지를 부르는데 더없이 친밀한 호칭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나님의 권속으로 받아들여진 우리들까지도 - 상황이 허락할 때면 - 우리들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똑같이 그 경이로운 호칭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아마 이것으로서 세상 끝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새 이름에 관한 아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이제는 아굴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합니까?'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라 불려지게 될 것이다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사 9:7, 킹흠정)   하나님은 또 한 사람의 선지자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서 보내셨던 때가 솔로몬과 아굴이 세상을 떠나고 근근 300년이 지난 후였다. 그 때에 하나님이 놀라운 선지자 이사야를 시켜 저 두 가지 위대한 예언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 예언이라면 우리 크리스천들이 성탄절 때마다 두고두고 낭송하는 말씀이다. 즉,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임마누엘'은 물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기에 그것은 곧 태어날 처녀의 아들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 육화하신 하나님 자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다음 얼마 후에 하나님은 이 아들의 이름에 관해서 놀라운 예언을 보내주셨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기억하라]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사야 9:6).   얼마나 경이로운 이름인가! 하지만 이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임마누엘!'이라고 불리는 이름을 가진 분에게 이 이름들처럼 합당한 이름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이 분이야말로 약속되기를 유다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사람이면서도 또한 하나님, 인간의 몸으로 육화하신 하나님, 우리를 닮은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실 하나님이시다! 이 어찌 경이롭다 하지 않으리오.   그의 이름을 '놀라우신 이(기묘자) (the Wonderful)' 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리 없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기적적'이라는 뜻이 있다. 기적적인 개념과 처녀 몸에서의 탄생을 빼고서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결코 육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인간의 죄의 본성을 물려받았을 것이기에 유일하게 거룩한 하나님이 될 수 없었으리라. 그의 이름은 진정 '놀라우신 이'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또한 인류의 위대한 모사로서 타락한 인간성을 되찾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완벽하게 전해줄 수 있는 분임이 틀림없다. 인간-하나님이신 그가 마침내 이 땅에 오셨을 때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지만 무한히 지혜로운 뜻을 담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심지어 하나님의 적들까지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도 이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 7:46)하고 탄복하였던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그 예언의 뜻은 실질적으로 그 두 단어 - '놀라우신 이(기묘자) (Wonderful)'와 '조언자(모사) (Councillor)' - 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해석도 또한 맞는다. 그는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모든 주제들에 대한 '놀라우신(기적적인) 조언자' 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기에, 어떤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해도 그는 결코 외면하든가 얼버무리지 않았다. 그분이야말로 하늘이 보내주신 가장 놀라우신 참 상담자였기에, 모든 주제에 대해 완벽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이 '강하신 하나님' 임을 또한 주목하여야 한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그가 神格 중에서 (삼위일체 가운데서) 두 번째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육화 이전의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였다' (빌립보서 2:6). 심지어 그는 스스로 해(害) 받음을 허락하신 다음에도 그는 죽음 그 자체를 정복하였기에 '…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마태복음 28:18) 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또한 '영존하는 아버지' - 또는 수많은 권위자들이 번역한 바를 따르면 '영원의 하나님' 이기도 하다. 그는 공간과 물질은 물론 시간의 창조자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골로새서 1:16), 그리고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한복음 1:3). 그리고 비록 그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지만, 그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 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만 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평화의 통치자 (The Prince of Peace)'의 자격이다.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또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성공적인 참 중재자(중보)가 될 수 있다 (디모데전서 2:5).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고린도후서 5:19) 세계에 참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는 '…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골로새서 1:20). 그러므로 '그는 위대한 화평케 하는 자' 이시다 (마태복음 5:9).   이 다중차원의 이름들이 어찌도 영광스러운지요!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인간이신 바로 이 분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예레미아 선지자는 '…그의 이름 곧 그를 일컬을 이름은 이것이니 곧 주 우리의 의라' (예레미아 23:6) 라고 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이름을 예수라 하라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예언의 내용이 이루어질 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리아라는 천사 같은 유다의 처녀와 약혼 중에 있던 어느 소박한 목수한테 가브리엘 (Gabriel)천사를 보내셨다. 이 두 약혼자들은 천년 전에 살았던 다윗 왕의 후손들이었다.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비록 임신 중이지만 여전히 청순한 처녀이고, 이사야의 위대한 예언의 말씀을 이룰 사명을 부여받았노라고 알렸다.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이 때보다도 먼저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보내져서 비슷한 말씀을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누가복음 1:31) 라고 전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누가복음 1:35) 라고 놀라운 진술을 부언하였다.   '예수 (Jesus)' 라는 이름은 이사야와 예레미아가 예언하였던 고매한 이름보다는 훨씬 단순한 이름 같이 보인다. 유대인들 중에서 이미 그 이름 - 여호수아, 이사야, 호세아, 예수아 (Joshua, Isaiah, Hosea, Jeshua) - 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이름들은 모두 다 바로 그 이름의 변형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 모든 이름들을 포용한다는 것을 안다면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이름이 단순히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리라' 또는 '우리의 구주 여호와' 라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하늘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부여한 인간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타락한 세상과 죄에 빠져 용서와 화평과 영생을 소망하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의 총체적 전도사역을 내포한다.   아직도 남은 이름들이 더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의 이름이 신약의 최초의 장에 언급되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 (마태복음 1:16). 이를 보면 그는 예수라고 불렸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라고도 불렸다.   즉, 그는 바로 그 '그리스도 (the Christ)'로서 이스라엘이 장구한 세월 기다리던 '메시아(Messiah)' 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이름은 실질적인 직함으로서, 희랍어와 히브리어로서는 각각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육신을 입은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당신의 영원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의 영원하신 선지자이신 그는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 (요한복음 1:1, 14) 이 되어 우리들에게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세세무궁토록 선언하신다' (요한복음 1:18).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되신 그는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7:25). 마침내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9:16). 그리고 그가 우리의 영원하신 왕으로서 돌아오실 때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요한계시록 11:15).   이와 같이 하여 그의 인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데 아직은 또 다른 이름이 하나 있다 - 말하자면, 세례명이라 할까 - 그 이름은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일 뿐만 아니라, 주님 (Lord)이시다. 그의 부활이 있은 후, 베드로 사도는 유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2:36) 하였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그의 온전한 이름은 언필칭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도 그에게 봉사하고 그를 존경하려면 앞에 언급된 여러 가지 경이로운 이름들을 다 사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그런데 그가 다시 오시는 날, 그를 명예롭게 받들어야 하는 이름이 또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창조하시고, 또 당신의 보혈로 되찾은 이 세상으로 언젠가는 권세와 영광 속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개선하시는 모습을 예언적인 환상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 받았었다. 그 때 그는 주님이 앞으로 오실 세상에서 불릴 경이로운 이름 세 가지를 들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요한계시록 19:11). 그는 지금도 우리들의 '충성된 대제사장'(히브리서 2:17) 되시고, '미쁘신 조물주' (베드로전서 4:19)가 되시며, 그리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요한계시록 3;14) 이다. 그의 영원한 이름 중의 하나는 충성되고 참되신 이 이시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포함되었다. 즉,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요한계시록 22:6), 그것은 그 말을 하시는 분이 영원히 신실하시고 참되신 이이시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19:13)의 말씀을 알고 있다. 그는 '태초의 창조하시는 이름' (요한복음 1:1-3)이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14)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원수를 이기고 우리 지구에 개선하실 때 다 이루심을 나타내는 장엄한 승리의 말씀이다.   그러고도 마지막 남은 이름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왕들의 왕, 주들의 주'(요한계시록 19:16)가 되심이다. 그 위대한 날에 전 우주는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이름들 위에 있는 이름을 주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9-11).   아굴이여, 여기 그대에게 줄 대답이 있소. '그의 아들의 이름 (His Son's name)'은 믿을 수 없을 만치 위대하여, 그 이름을 다 일컫는 데는 필설이 부족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Wonderful)' 말고도 우리가 그의 말씀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이름들이며, 또한 틀림없이 영원의 시간 중에서 더 많은 이름들을 가지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 일러준 그의 인간의 이름을 특별히 사랑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Lord Jesus Christ)' 이시다. 그리고 그 많은 그의 이름들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하나님의 책을 마치는 데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아들이 하신 이 아름다운 말씀으로 마감하는 것이 적절하였으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22:20, 21).   Henry M. Morris You may use the print links at the top and bottom of this page to print out copies of this tract for personal use or evangelical purposes. They may not be resold. If you would like to purchase paperback booklets of this tract, use our online store. Other Booklets of Interest : The Amazing Prophetic Claims of the Lord Jesus Christ - by Henry M. Morris, Ph.D. The Bible Is a Textbook of Science - by Henry M. Morris, Ph.D. Christ Our Life - by Henry M. Morris, Ph.D. Creation & Composition: The Apollo Mission - by Duane T. Gish, Ph.D. Creation and Its Critics - by Henry M. Morris, Ph.D. A Creationist's Defense of the King James Bible - by Henry M. Morris, Ph.D. His Son's Name - by Henry M. Morris, Ph.D. The Gifts of God - by Henry M. Morris, Ph.D. God's Only Begotten Son - by Henry M. Morris, Ph.D. Impact of the Empty Tomb - by Henry M. Morris, Ph.D. The Resurrection Of Christ - by Henry M. Morris, Ph.D.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by Henry M. Morris, Ph.D. Smile ... The Future's On Its Way - by C. J. Horn When They Saw the Star - by Henry M. Morris, Ph.D. 출처 : ICR URL : http://www.icr.org/bible/tracts/hissonsname.html번역자 : IT사역위원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0   킹제임스흠정역 교정본 입니다.
2016-04-15 17:41:31 | 허광무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창조과학회에 올라온글.   성경 구절은 개역성경으로 기재된 부분을 킹제임스흠정역으로 대체하였습니다.원본의 영문 Henry M. Morris 박사님은 킹제임스성경을 보시는 분 입니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The Bible and Jesus Christ)   Henry M. Morris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들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고 그를 구주로, 그리고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위임한 위대한 사역에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19, 20).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이 명령(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가 가르쳐 주신대로 모든 족속들에게 가르쳐야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권위자이신 까닭은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6).   그분이 가르쳐주신 모든 진리 중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교의(doctrines)가 있어서, 나머지 모든 교의들이 이에 의존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의 말씀이 갖는 글자 그대로의 무오성 (verbal inerrancy of Scripture) 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이루신 특별한 창조(special creation)입니다.   문제는 이 무오설의 진리를 믿는 많은 크리스천들도 그 창조 교의의 뜻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 창조 교의의 뜻에 대한 그 권위를 수용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그런 다음 창조에 관해서는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분이 이 땅(지구)에 계시는 동안, 그에게는 구약성경만 있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그분이 성경의 말씀들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오류 없는 말씀으로서 수용하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주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또 참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씀들이 참이고, 또 권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컨대, 결혼과 이혼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최초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셨습니다.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태복음 19:4-6).   여기서 주님은 창세기 1:27과 2:24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설명으로서, 주님은 그 설명들을 진리로 그리고 서로 양립하는 것으로 수용하시고, 모든 미래의 결혼에 대한 신성한 모범으로 설정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실 때, 그분은 성경 말씀들 가운데서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시는 것만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 4: 4,7,10, 사탄의 질문에 각각 신명기 8:3, 6:16; 10:20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는 ”기록되었으되…” 하고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사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에 의한 말씀으로 글자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냥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그분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자칭한다고 하여 그분을 돌로 치려고 하였을 때, 그분은 시편 82장 6절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변호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 하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그분께서 신들이라 하셨으며 또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인 내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그에게, 네가 신성모독한다, 하느냐?” (요한복음 10:34-36).   그분의 주장은 전적으로 시편 82:6에 있는 한 단어, 즉 '신들'(gods) 이라는 단어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5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라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일점(one jot)' 이란 것은 히브리어 알파벳 중에서 가장 작은 글자이고, '일획(one tittle)' 이란 것은 두 개의 유사한 모양을 한 글자들 사이를 변별하는데 흔히 사용되었던 작은 표시였습니다. 구약성경 안에 있는 성령 감동의 말씀들 가운데서도 이보다 더 강렬한 표현방법을 쓴 진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진술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진실한 크리스천들은 그의 본을 따라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안목을 견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 관한 한, 그분은 당신의 말씀들이 정확하게 보전될 것임을 우리들에게 확실히 하였습니다.   ”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13:31).   사실상 신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요한복음 16:13).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 19).   그냥 관념만이 아니고 '이 책의 말씀'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어느 누가 이 경고의 말씀이 그리스도한테서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까 저어함인지, 그 다음 절이 이렇게 밝혀줍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절대무오의 말씀이란 것을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치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또 좇기를 소망하는 우리는 마땅히 그분이 행하시던 바와 같이 성경의 절대무오성을 믿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던 그분의 선지자들은 물론 그분의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inspiration)으로 쓰였다는 점과 성경의 무오성(infallibility)과 권위(authority)를 믿어야 하는 데는, 이것 말고도 물론 다른 이유들이 많습니다. 성경의 저자들 (모세, 이사야, 바울 등등)은 모두 한결 같이 그런 권위를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성경 안에는 이루어진 예언의 말씀들이라면 수백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과학적 통찰도 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의 역사기록들은 알려진 세속사의 모든 사실들과 일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에 담긴 독특하고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는 최소한 1500 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하여 40 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모든 부분이 빠짐없이 일치되고 일관된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넓고 넓은 온 세계에서 이와 같은 책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증거보다도 더 위대한 증거는 그리스도(삼위일체 신격에서 두 번째 인격)께서 성경 속의 모든 말씀에 담긴 오류 없는 권위를 인정하고 그렇게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특히 창조를 설명하면서 가르치셨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9:3-8 참조). 예수님은 또한 의인 아벨의 살해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마태복음 23:35)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 노아 시대의 세계적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성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7:26, 27).   이 사건이 어떤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을는지 모른다는 관념을 그는 이 사건을 그의 재림과 비교하는 것으로써 부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9). 그리스도께서 전 지구적 대홍수(global flood)로 믿으셨던 것이 사실인 이상, 오늘날의 '점진적 창조주의자들(progressive creationists)'도 자신들이 옹호하는 '국지적 홍수(local flood)' 개념을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생존시에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적 대재앙의 역사성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17:29).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권속들에게 기적같이 내리신 만나 (요한복음 6:32), 불타는 수풀 속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사건(누가복음 20:37),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사건 (요한복음 3:14), 독특한 솔로몬의 지혜 (마태복음 12:42),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경험 (마태복음 12:40), 다니엘의 놀라운 예언들 (마태복음 24:15), 그리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그 모든 말씀들을 낱낱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수백만 년 전이 아니고) 최근에 이루어진 창조 때부터 있었던 사실도 가르쳤습니다!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 (마가복음 10:6).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그곳에 계셨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로부터 46 억년 후에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때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들에게 억지로 이 오래된 연대를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최근 창조의 진실성을 이렇게 암시하셨습니다.   ”이로써 창세로부터 흘린 모든 대언자들의 피를 이 세대에게 요구하리니” (누가복음 11:50).   즉,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창세 그 순간부터 유혈의 수난을 받고 있다는 말씀은, 창세 이후 46 억년이 지난 후로부터 그랬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다가오는 ”..그 날들에 고난이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創初) 세계가 시작된 때부터 이때까지 그런 고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마가복음 13:19) 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창조 이래로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권속들 위에 자질구레한 환난이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중에서 단 한 자라도 그 진실성에 의문을 품는 크리스천들에게,  또는 몇몇 현행 과학적 주장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성경을 억지로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3:16) 크리스천들에게, 또한 성경의 어느 부분이라도 사사로이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1:20) 크리스천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즉, 그들은 과연 주님 앞에서 그러는 이유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로마서 14:12)   라고 하신 로마서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그리스도가 믿고 가르치셨던 것을 믿고 가르쳤다고 회계보고(직고)할 수 있는 입장이 최선이 아닐까요? 창세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에 관한 문제라면 우리는 그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종교지도자들을 반박할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들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5:47).   그분은 ”성경 기록은 깨뜨리지 못할진대” (요한복음 10: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성경을 폐하려 애쓸 것입니다. 새시대주의자들 (New Ager)과 신비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들는지 모릅니다. 세속주의자들이나 쾌락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할 것입니다. 온갖 형태의 회의론자들과 심지어 타협적인 크리스천들까지도 성경을 폐하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폐할 수 없습니다!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   * Dr. Morris 는 ICR의 창시자이며 명예회장입니다.   출처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6&series_id=A0004&orderby_1=editdate%20desc&page=1   원본 : www.icr.org/i/pdf/btg/btg-125.pdf
2016-04-15 12:13:00 | 허광무
안녕하세요?   (Aland)알란드 헬라어 신약 본문과(text) 연합성서공회 UBS 헬라어 신약 본문(text)은 거의 쌍둥이입니다. 모두 모체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 비평 본문(critical text)이기 때문입니다.       (United Bible Societies)연합성서공회 헬라어 신약본문 주 편집자에는 개신교의 Bruce M. Metzger (메쯔거) 와 같은 비평신학자들뿐만 아니라 교황이 될 뻔 했던 예수회 출신 카톨릭 추기경 Carlo M. Martini(마르티니) 가 주 편집자로 활동했습니다   예수회 출신 추기경 Carlo M. martini (마르티니) 는 누구인가?                 교황이 될뻔했던 말티니는 카톨릭 교황청 신학자이며 UBS 연합성서공회의 편집자들과 함께 Aland (알란드) 신약 헬라 성경 본문과 UBS 신약 헬라어 성경 본문 등의 주 편집자 (editor)로 일했습니다.   Martini(말티니는) 진화론을 믿었으며 동성애를 옹호하였고 카톨릭 이단 교리들과 종교다원주의 이단 교리들을 현대역본들에 편입시키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회 추기경 마르티니(Martini) 와 함께 UBS 헬라어성경 편집에 참여했던 메쯔거 혹은 메츠거 (Metzger)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대 교수를 지냈으며 20세기 가장 유명한 비평신학자라고하는데요. 메쯔거 (Metzger) 역시 카톨릭 교황의 하수인이며 카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일치를 위해 에큐메니컬 사상을 성경에 편입하고 말씀을 훼손하는 인물입니다.   이 사진은 메쯔거 (Metzger)가 카톨릭 교황을 만나 자신이 번역한 에큐메니컬 영어 성경(NRSV) 을 전달하는 장면이며 메쯔거 (Metzger) 는 본인의 저서 " Reminiscences of an Octogenarian " 에는 교황을 만난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T.R. 공인 본문 신약성경과 KJV 를 공격하는 비평신학 자료들은 사진 보시는것처럼 카톨릭 교황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작품들 입니다.   Nesle- Aland 신약 헬라어 주 편집자 Aland (알란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황청은 1960년 6월  "종교일치 사무국" 을 설치하고 공식적인 종교 일치 운동을 시작하였는데요. 교황청 종교일치 위원회는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PCPCU) 1968년도에 카톨릭과 개신교 두 종파가 "종교일치" 하기 위해서 카톨릭과 연합성서공회(UBS)가 "1968년도 성경 번역 원칙" 에 서로 동의하는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The Secretariat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and the United Bible Societies are pleased to present to all concerned a revised version of the 1968 “Guiding Principles for Interconfessional Cooperation in Translating the Bible”   JOHANNES Cardinal WILLEBRANDSPresident,Secretariat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Lord DONALD COGGANHonorary President,United Bibles SocietiesPIERRE DUPREYSecretaryULRICH FICKGeneral Secretary   자료 출처 :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general-docs/rc_pc_chrstuni_doc_19871116_guidelines-bible_en.html   위에 링크를 들어가 보시면 로마 카톨릭의 종교통합 사무국에서 "종교일치" 를 하기 위해서 연합성서공회(UBS) 와 결의한 것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의 성경 본문 (critical text) 를 등급 "A" 로 정하고 초대교회와 마틴루터와 제네바 성경, 킹제임스 성경 등등 초대교화와 종교개혁의 "공인본문" (T.R) 을 하등급 "C" 로 등급을 정하였습니다.   ""(1) The Greek New Testament text employs the rating A for those texts in which the reading printed in the Greek text is quite secure. B indicates there is some minor doubt and C indicates that there is considerable doubt. For further explanation of this rating see the Introduction to The Greek New Testament. ""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번역 기준은 "A 등급 카톨릭 본문"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일치 하기 위해서 연합성서공회(UBS) 와 로마 카톨릭이 공식으로 인정하고 결의하였다는 <사실> 입니다.   연합성서공회(UBS) 와 카톨릭 교황 프란치스코의 만남 https://youtu.be/NXcJ6_l45_c     연합성서공회(UBS) 에 투입된 카톨릭 추기경들     사진 자료 출처 : UBS(연합성서공회)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unitedbiblesocieties.org/united-bible-societies-greatly-encouraged-by-popes-commitment-to-family-issues/     위 사진을 보시다시피 개신교의 유명한 비평신학자로 알려진 Aland(알란드), Metzger(메쯔거) 등은 카톨릭과 함께 종교일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오직 유일한 구원자이시다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 에큐메니컬 운동에 기꺼이 동참한 인물들입니다.   최근 부산에서 열렸던 WCC 총회에도 카톨릭 신학자들이 참석하였고 교황청 종교일치 사무국 자료에 의하면 카톨릭 신학자들 12명이 WCC 에서 "faith and order" (믿음의 진술문) 을 작성하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At the same time, the Pontifical Council also aims to develop dialogue and collaboration with the other Churches and World Communions. Since its creation, it has also established a cordial cooperation with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whose headquarters are in Geneva. From 1968, twelve Catholic theologians have been members of the "Faith and Order" Commission, the theological department of the WCC."" 자료 출처 :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documents/rc_pc_chrstuni_pro_20051996_chrstuni_pro_en.html   T.R. 공인본문과 KJV 를 비평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이런 종교일치 운동하는 에큐메니컬 신학자들이 만든 것들이며 카톨릭 교황청의 "1968 성경 번역 원칙"에 의한 것들이며 신빈성이 전혀 없는 것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우리에게 보존된 성경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불완전한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성경의 보존을 완벽하게 가능케 하십니다.     (렘 32:17, 킹흠정)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렘 32:27, 킹흠정)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하나님께는 너무 어려운일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감사합니다.    ** Bruce M. Metzger(메쯔거) 비평신학자에 대해서는 여기 객관적인 평가 자료들을 참고 하세요 메쯔거는 성경 불신자요, 로마 카톨릭과 긴밀하게 교제하며 에큐메니즘(종교다원주의) 사상을 퍼트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던 인물 입니다.   http://www.biblefortoday.org/articles/metzger.htm http://prophets-see-all.tripod.com/46648.htm  
2016-04-14 07:08:03 | 김종설
요즘 정동수 목사와 흠정역 사역과 보급에 대하여 교계 언론에 비방의 글을 올린 것을 오늘 보았습니다.글을 보니 여러 오해도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런 글을 실어 놓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요즘 이슬람에 관련된 사역을 하면서 이시기에 흠정역을 한국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현재 전국에 이슬람 성원이 15개 있고 기도 처소는 3,000개로 파악됩니다.성원은 군대로 말하면 사단이고 기도 처소는 소대입니다. 제가 사는 인천 도화동에도 인천 이슬람 성원이 들어와 있습니다.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슬람 성원이 있는 그 앞을 걸어 다녔고 지금은 우리 막내가 학교를 갈 때 그곳을 지나갑니다. 최근에 <이슬람 바로알기>를 발간해주셔셔 무척 감사드립니다.제가 볼 때 흠정역을 사용해서 이슬람을 대처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질 것입니다.대학가에는 많은 이슬람 유학생이 들어와 있습니다.이들은 이슬람 선교사로 들어와 있습니다.한국에서 기독교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정치계에 진출해서 최종적으로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지역교회 목사가 있다면 무척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우리의 딸들이 어느 날 이슬람과 결혼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대학생이 안 되는 것이 좋았다고 후회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졸업한 대학에 한 번 가 보십시요.캠퍼스에 많은 유학생이 있을 것입니다.이슬람 기도 처소도 있습니다.캠퍼스에서 사역하는 선교단체 사역자들에게 흠정역 성경을 전달해 주십시오.흠정역을 사용하는 모든 분은 이슬람을 향한 애정을 갖고 그들을 선교해야 합니다. 신학대학에도 이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혹시 여러분 집근처에도 기도 처소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여러분 친척 중 이슬람 국가에서 온 며느리나 사위는 없나요?여러분 고향은요.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마지막 때 흠정역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2016-04-13 00:26:05 | 김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