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 지음
그간 국민적 관심을 끌며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이 되었던 '도올의 논어이야기'가 도올 자신에 의해 갑자기 중단되었다. 이 시대 최고의 인기 스타 도올 김용옥은 왜 인기의 절정에서 일방적으로 방송중단이라는 수를 두게 된 것일까? 그 배경을 놓고 많은 얘기들이 나돌고 있지만 도올은 '국민 여러분께 아룁니다'란 제하의 사퇴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나의 지식의 한계나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무한하며, 또 그 지식의 재미도 무한하며, 또 그 재미의 공감방식도 무한합니다. 나는 그러한 무한성과 다양성을 공자의 '仁', 그리고 공자의 '째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강의 방식이나 그 분위기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에게 주어지는 하등의 압박감이나 부자연스러움이 부재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 여러분께서 매주 이어지는 저의 강의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를 못 견디게 만들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저 자신이 제 강의로 인하여 권력화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권력구조 속에서 도올 김용옥이라는 인간이 소외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은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권력을 거부합니다. 저 자신의 실존 속에 온축되어가고 있는 권력을 부정하는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엄숙한 양심의 명령 앞에 나는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이러한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옳은 이야기다. 정말 우리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그의 강의는 중단이 되어야 마땅하다. 아니 아예 강의가 시도되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죽지 않고 살아날 영혼들이 많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동안 도올의 강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지 못하고 대신 영원한 죽음과 멸망의 길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최근 한 네티즌이 인터넷상에 올린 다음과 같은 '도올의 출사표' 내용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지금이요! 천하 13 종교 가운데 기독교는 이미 3대를 거쳐 국민종교로 자리매김 하였소! 지금 이를 치지 못하면 우리 유교는 자멸하고 말 것이요! 나는 이걸 치기 위해서는 유교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82년 귀국이래 고전번역 작업에 몰두하였소! 이는 내 필생의 과업이며 내가 동양철학에 들어갈 때부터의 계획이었소! 이 사태를 바꾸지 못하면 내가 태어난 보람은 없는 것이오!"
물론 이 말이 도올의 직접화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강의시 보여준 여러 면면들을 볼 때 수긍이 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도올은 복음을 훼손하며 뭇 심령들을 오도하였는데 이번에 그가 저지른 방송사퇴는 어찌 보면 소기의 목적을 다 이룬 후 즉 복음의 변질을 극대화시킨 후 결행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논어 이야기' 중 가장 완벽한 '다른 복음' 곧 '공자의 인간관과 그리스도의 인간관'이 이미 방영되고 난 후 사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복음에 대해 결정적 카운터블로(counterblow)인 '공자의 인간관과 그리스도의 인간관'을 현장 중계하여 보자.
오래 전 장성 천주교 성당에서 로마노 신부와 2시간 토론하였던 얘기를 화두로 도올은 천주교와 유학을 아우르며 십분여의 시그날을 담당한다. 이어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모셨다며 김수한 추기경을 청중들에게 소개한다. 그러자 화면 하단에는 사제 50년째, 우리나라의 정신적 구심점이며 뭇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는 자막이 비춰진다.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등장하는 김 추기경. 도올을 이기라며 개신교 신자로부터 '한자가 창세기에서 나왔다는' 책을 선물 받았다는 얘기와 재미 유교신자가 도올을 야단쳐 달라고 편지한 사실을 공개하며 아울러 정신적 양식을 준다며 도올의 강좌를 칭찬한다. 이어 본격적인 공자의 인간론이 추기경에 의해 설파된다.
공자는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의미있다고 하였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상태가 인간이 추구해야 될 최고의 상태이다. 인간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로서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죄지을수록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여러 철학과 학문을 통해 인간탐구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과 원자에 대한 연구도 끝나지 않았다. 즉 미시적 세계(microcosmos)와 거시적 세계(macrocosmos)는 끝이 없다. 인간 그 자체가 신비이다. 고로 인간은 존엄하다(Man is divine).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과학적으로 증명 못한다. 신앙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추기경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의 주장을 반박하는 듯 생명이 참으로 우연히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 자막에는 추기경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한 방편으로 진화론을 생각한다는 친절한 보충설명이 두 번씩이나 제시된다. (필자 주: 이것이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인데 이에 대해서는 '건강과 생명' 1992년 1, 2월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추기경은 아인슈타인과 정다산 등의 믿음도 언급한 후 결국 공자의 인간관과 그리스도의 인간관은 같다고 한다. 인간의 목표는 '하느님'과 같이 영원히 살고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끝까지 지켜야 될 가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도 사랑하며 서로도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인(仁)'이다. 곧 '仁'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다.
추기경의 강론이 끝나자 도올의 고백과 질문이 이어진다. 신학대학 나올 때 어느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는 신앙인으로 남아 있겠다고 하였다. 문제는 기독교인 중 배타적 복음주의, 전도주의이다. 천당, 지옥 등은 잡스런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었는가? 추기경은 어떻게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추기경은 답한다.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
잠시 후 청중의 뜨거운 갈채 속에 도올과 추기경은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천주교의 구원관과 기독교의 구원관이 같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이들 중 진정 거듭 난 신앙인(real, born again Christian)이라면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 참되게 살기만 하면 다 구원받는다.'는 추기경의 발언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가 김 추기경 개인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천주교의 공식적 구원관이라는 사실이다. 로마 카톨릭의 마지막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이미 공식적으로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구원론을 선포한 바가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정통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로마 카톨릭이 종교다원주의라는 누룩을 품으면서 그 어떤 종교나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보다도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하늘의 왕국은 마치 어떤 여자가 가져다가 굵은 가루 서 말 속에 숨겨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 흠정역: Another parable spake he unto them;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unto leaven, which a woman took, and hid in three measures of meal, till the whole was leavened.)
그러면 어떻게 로마 카톨릭에 이러한 누룩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노아의 홍수 바로 직후 사람들은 동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창11:2) 바로 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땅에 사람들이 바벨론 도성을 세웠고 야수로부터 그들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참조: 출23:29,30) 힘있는 자 니므롯(Nimrod)을 지도자로 삼게 되었다(창10:8,9). 니므롯은 경건하지 않은 통치자로서 역사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왕국 곧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 인본주의 왕국인 바벨론 왕국을 세웠다(창10:10; 11:4). 그리고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에 따르면 니므롯이 죽었을 때 그의 몸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태워졌고 또 다양한 지역으로 보내졌다(참조: 삿19:29; 삼상11:7). 그러나 니므롯은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에 의해 태양신으로 추앙받게 되었고 아들 담무스(Tammuz)는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즉 본격적으로 바벨론 백성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며 신비스러운 예배들을 거행하는 바벨론 종교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이 바벨론 종교는 사람들이 땅의 온 지면으로 흩어지면서 함께 세계 여러 나라들로 확산되었다(창11:9). 따라서 도올이 표현한 대로 천하 13개 종교 중 유대교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같은 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 내에 파고 들어온 이러한 바벨론 이교주의에 직면하게 되었다(살후2:3,7; 딤전4:2). 순수한 신앙을 가진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벨론의 관습과 종교다원주의를 거부하여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가교회로 전락하면서 이교주의와 많은 타협들이 이루어져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하여지기보다는 이 세상 제도의 한 부분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교주의가 교묘한 방법으로 기독교와 혼합했기 때문에 바벨론의 영향은 '바벨론 신비종교'로 숨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적과 아군을 분간하지 못하고, 다 똑같은 양인 줄 알고 이리와 함께 한 울타리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마7:15).
지난 2,000년 간 자신의 백성을 바벨론의 속박으로부터 부르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흠정역)
우리는 두 뿌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인가 아니면 오직 예수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道)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2009-05-08 13:24:32 | 관리자
4.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 오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났더니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치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이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마1:18-20).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代言者)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마1:22-23).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보고도 어떤 이가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음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람들이 성경 기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이 처녀 탄생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처녀였던 유대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었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는 어떤 육적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생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성경이 이 점을 너무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말씀을 주의 깊이 그리고 신중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결코 이 문제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Jesus Sinless)
그 외에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죄 없는 인간이셨음을 가르친다. 아담으로부터 오늘날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따라서 저주와 영원한 죽음에 무릎 꿇어야만 하지만 참 사람 예수님(The Man Jesus)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그 자신 위에 돌리시고 그들의 죽음을 대신하시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분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족속을 한 피에서 만드셨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께서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부터 육신을 받았다 해도 죄성을 띤 피가 그분의 몸에 있지 않는 한 그분께서는 여전히 죄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죄성을 띤 인간의 피를 갖지 않은 채 육신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준비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다.
피의 기원( Origin of the Blood)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동맥과 정맥에 흐르는 피는 산모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태아의 몸에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피의 형성은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서 태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후에 이루어진다. 이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예로서 달걀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정되지 않은 달걀은 인간의 난자를 크게 만들어 놓은 것과 똑같다. 당신이 수정되지 않은 달걀을 부화시키려 한다면 곧 실패할 것이다. 부화시키기 위해 그것을 따뜻한 곳에 두면 그것은 완전히 말라붙어 결코 병아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달걀을 수컷의 정자로 수정시켜 보자. 그 후에 따뜻한 곳에서 부화시키면 태아 속에 있는 생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몇 시간 후에는 그 생명이 눈에 띄게 성장한다. 또 조금 후에는 ‘피’가 있음을 보여 주는 빨간 줄무늬가 생긴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모세가 성경에서 말한 대로 생명이 피에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는 그 생명을 위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종류의 육체의 피도 먹지 말라.”(레 17:14)
산모의 피는 태아의 피와 상관없음(Mother's Blood Separate)
산모의 자궁에서 자라나고 있는 태아는 산모로부터 단 한 방울의 피도 받을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도 분명히 그렇다고 말한다. 산모는 자기의 자궁 내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는 태아가 몸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태아에게 있는 모든 피는 태아 자신에게서 생성된 것이다. 수태될 때부터 태아의 출생 때까지 단 한 방울의 피도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후산물로 더 잘 알려진 임시의 조직 덩어리인 태반은 산모와 태아 사이를 서로 연결해 준다. 그것은 모든 수용성의 영양분들 - 단백질, 지방분, 탄수화물, 염류, 무기질, 항체조차도 - 이 산모에게서 태아로 자유롭게 전달되고 태아의 신진 대사 작용으로 생긴 노폐물이 산모의 혈액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정상적인 경우에 실제로 단 한 방울의 피도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태아가 가진 모든 피는 태아 자체에서 생성된 것이다. 산모는 그 피에 전혀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과학의 증거(Testimony of Science)
위의 설명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하여 나는 몇 가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려 한다. 호웰(Howell)의 『생리학 교과서』 제2판 885 페이지와 886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태반의 전반적인 기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반이 본래 산모의 탈락막에 있는 큰 혈액의 공간에 잠겨 있는 태아의 혈관성 융모돌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는 실제로 접촉되지 않는다. 그들은 태아의 혈관벽과 융모돌기의 상피 세포층에 의하여 서로 분리되어 있다.”
윌리암스(Williams)의『산과학의 실제』제3판, 133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융모돌기의 혈관 안에 있는 태아의 피는 융모상피의 이중으로 된 세포층에 의하여 산모의 피와 분리됨으로써 융모 사이의 공간에 있는 산모의 피와 한 번도 접촉할 수 없다.”
다시 같은 책의 136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태아의 피와 산모의 피가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간호사들에게 잘 알려진 책에서 인용하여 보겠다. 즉 간호사 자브리스키(Louise Zabriskie)가 지은 『간호사를 위한 산과학』제5판, 75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의 혈액 순환이 시작되면 그것은 산모의 혈액 순환과는 분리되며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 산모와 태아 사이에 서로 교환되는 모든 영양분과 노폐물은 혈관 벽을 통하여 모체의 혈액 순환에서 태아의 혈액 순환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위의 책의 82페이지를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아는 태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산모의 피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태아의 심장은 탯줄의 동맥을 통하여 태반의 혈관으로 피를 내 보낸다. 이 태반의 혈관은 자궁 조직의 안과 밖을 감싸고 있고 자궁의 혈관과 매우 밀접하게 놓여 있어서 그 혈관 벽을 통하여 태아로부터 산모에게로는 노폐물이, 산모로부터 태아에게로는 영양분과 산소가 확산되도록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이런 상호 교환 작용은 삼투 현상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혈액간의 직접적인 혼합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산모의 피는 태아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아의 피도 산모에게로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준비(God's Wonderful Provisio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처녀 탄생을 위해 얼마나 놀랍게 준비하셨던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피가 여자로부터 여자의 후손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셨다.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죄 없는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나왔지만 피는 다른 근원에서 나오는 방법을 준비하셨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자에게서 태어났는데 죄가 없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특히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마리아가 죄 없는 처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셨다는 질문의 해답이 아니다. 마리아도 그녀의 아버지가 죄인이므로 분명히 죄를 입고 태어난 죄인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기는 하셨지만 아담의 피는 공유하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말한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자녀 즉 인간의 자녀들은 육과 피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며, 예수님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우리와 같은 것의 일부 즉 몸을 취하셨음을 주목하라. 그러나 그리스도께 적용된 ‘took part’라는 말은 자녀들에게 적용된 ‘partakers’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took part’로 번역된 말은 자기 자신의 본성을 벗어나서 어떤 일에 참여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Partakers’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코이노네호’(koynoneho)이며 이 단어는 ‘완전히 함께 공유하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완전하게 공유한다.
“예수님께서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다”는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메테코’(metecho)인데 이 단어는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 참여하다’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자녀들은 아담의 혈육을 모두 가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한 부분, 즉 육신만을 공유할 뿐이다. 그분의 피는 초자연적인 수태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완전하신 인간이셨다. 육신적으로는 그분께서 다윗의 씨였지만 그분의 피는 거룩하게 만들어졌다. 인간이 창조될 때 아담의 육신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 넣으셨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그 일 후에 아담의 몸에서 피가 생겨났다. 그러나 첫 아담의 피는 죄로 인해 부패되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셨으므로 모든 인류에게는 죄가 있다. 마지막 아담 속에서 새롭고 거룩하며 죄 없는 피가 생성되었고 결국 거룩한 피가 나왔다.
하나님의 피(Divine Blood)
처녀 탄생이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님에 의한 수태뿐이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영양분을 주었고 그래서 그분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죄 없는 피요, 거룩한 피며 고귀한 피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피는 지금까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무죄한 피(Innocent Blood)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지었도다.” 가룟 유다는 마태복음 27장 4절에서 이처럼 고백했다. 진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무죄하셨다. 주님께서는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분께서 인간인 아버지에 의해서 수태되지 않고 ‘거룩하신 아버지’에 의해 수태되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이 되셨다. 그 결과 생물학적으로 주님께서는 거룩한 피, 즉 죄 없는 피를 갖고 계셨다. 또 그 피에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결코 썩을 수가 없다.
썩지 않는 피(Incorruptible Blood)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피는 썩게 되었다. 사람은 죽자마자 곧 썩기 시작하며 부패는 먼저 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고기에서 피를 모두 짜내는 이유이다. 또 그것이 부식 방지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방부제 약을 피 속에 넣는 이유이다. 다윗은 “예수님의 몸이 썩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했다. 비록 주님께서 사흘 밤낮 동안 죽은 상태로 있었지만 그분의 몸은 썩지 않았다. 주님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분을 영원히 죽도록 할 수가 없었고 그분께서는 다시 생명을 취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버리셨다. 사망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권세를 휘둘렀지만 주님께 대해서는 그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 부활하셨다. 모든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하셨을 때 -
사망은 자기의 먹이를 붙들 수 없었네
예수님, 나의 구원자여
주님께서 지옥의 장벽을 부수셨네
예수님, 나의 주여;
무덤에서 솟아올라 부활하사
권능으로 원수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셨도다.
죄인이여, 당신은 이처럼 능력 있는 구원자를 영접하여 그분의 고귀하신 피로써 씻겨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도 죽음이라는 저주와 무서운 선고 아래 있다. 오늘 그분을 영접하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롬5:8-9).
피의 거룩함(The Sanctity of Blood)
“그러나 너희는 고기를 그것의 생명과 함께 곧 그거의 피와 함께 먹지 말지니라”(창9:4).
이 말씀은 노아의 대홍수라는 무서운 심판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의 일부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사람들의 악이 점점 증가되어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완전히 부패되어 멸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큰 홍수를 보내어 단 한 가정만 남겨 두고 모든 사람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때 유일하게 남게 된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당시의 세대들 가운데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홍수 이후 깨끗하고 청결하게 된 이 땅 위에서 주님께서는 이 새로운 가정을 통해 인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심판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들이 취해야 할 행동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지시를 내리셨다. 그 명령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아가 새로운 땅 위에 맨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말씀이 바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명령은 대 홍수가 일어나게 된 부분적인 요인이 인간들이 ‘피의 신성함’을 무시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홍수 전에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범해진 최초의 죄는 가인이 아벨의 무죄한 피를 흘린 것이다. 그 피는 땅에서 복수를 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 무죄한 피의 호소에 대한 부르짖음이 노아의 홍수를 초래케 했다면 하물며 말세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의인들의 피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는가? 오늘날 팽배하고 있는 악과 폭력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사실이 조금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눅17:26).
그렇다. 이렇게 악이 만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지상에서 횡행하고 있는 무서운 통치에 끝을 내고 말 것이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 예표로 보여진 대환난의 심판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다시 새롭게 되고 정결하게 된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 즉 천년 왕국을 문자 그대로 이룩하실 것이다.
피는 신성하다(Blood Is Sacred)
하나님의 피조물의 생명이 육체에 있지 않고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먹되 오직 피 없이 먹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음식과 규정과 규례들을 줄 때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 4절의 금지 사항을 다시 반복해서 명령하고 계신다.
“또한 너희는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날짐승의 피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지니라. 어떤 혼이든지 무슨 피라도 먹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레7:26-27).
그와 동일한 명령이 레위기 17장에서 보다 더 많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은 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죄는 너무도 심각해서 그 죄를 범한 자는 자기의 백성들에게서 끊어짐을 당할 것(즉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피를 철저하게 빼지 않은 고기는 음식으로 적당하지 않으며 목매어 죽인 것도 무엇이든지 먹기에 적당치 않다. 오늘날 적어도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금지 사항을 기억하고 오직 코셔(kosher) 고기만 먹는다. 그것은 율법에 있는 대로 죽여서 피를 완전히 빼낸 고기를 뜻한다. 따라서 모든 코셔 고기나 다른 코셔 음식들은 피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We Are Under Grace)
이제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며 그 명령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반대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 있지 않았던 노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노아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보다 더욱 의미가 있는 사실은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은혜의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법칙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도 “피를 먹지 말라” 하는 명령은 유효하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첫 번째 공회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안디옥 교회 내에서는 상당히 골치를 앓게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초대 교회의 유대인들이 그곳에 와서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보다 심각한 쟁점으로 일어나게 되자, 급기야는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소집되었고 거기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기로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내려 왔다. 그리고 많은 논쟁과 토의를 벌인 끝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달문을 가지고 이들은 다시 안디옥의 이방인 교회로 돌아갔다.
“우리가 들은즉 우리에게서 나간 어떤 자들이 말로 너희를 혼란에 빠뜨리고 너희 혼을 뒤엎으며 이르되, 너희가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명령을 준 적이 없으므로”(행15:24).
여기서 사도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사도들은 교회가 율법 아래 있다거나 이방인 신자들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 이후 19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아직도 우리들을 유대인들로 만들려는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말하기를 “아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율법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 사도들이 한 말을 더 읽어 보자.
“성령님과 우리는 이 필요한 것들 외에 다른 큰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을 좋게 여겼나니 곧 우상들에게 바친 음식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너희가 멀리할지니라. 너희가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하리로다. 평안할지어다, 하였더라.”(행15:28-29).
비록 우리 크리스천들이 율법 아래 있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제를 받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율법 아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육체의 생명인 피가 신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있기 1000년 전에 즉 은혜 시대에 벌써 노아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 원리는 율법 시대에도 효과를 발생했고 율법의 시대가 지난 지금의 은혜 시대에도 계속해서 준행되고 있다.
지금은 왜 피를 금하는가?(Why No Blood Now?)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로 임의적인 것이 아니며 언제나 시대를 초월해서 정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이다.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우리는 건강과 위생상의 이유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외에도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생명이 피에 있으며 생명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며 그분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결과로 생긴 것이다. 모세는 창세기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이제부터 성경이 주장하는 논리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없으면 모든 육체는 생명이 없다. 처음에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이 존재했다. 그 아담은 한낱 흙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코에다 숨결을 불어 넣으시자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이 되었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 몸에다 부여해 주신 것은 다름 아닌 피이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피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피와 함께 그 육체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고귀한 피(The Precious Blood)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제시해 보겠다. 피는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대가였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무엇인가 좋지 않은 것이 피 안에 생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피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고 죽음이 없는 피로 존재하지 못했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게 되었으며 결국 아담은 죽음에 의해 굴복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죽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이 다시 그 속에 심겨져야만 했다. 즉 사망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이 바로 피 안에 있다. 그래서 반드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 없고 절대로 부패하지 않은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열의 인종 가운데서는 아무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첫 아담 안에서 그의 모든 후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도 그 피를 공급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순전히 영적 존재들이어서 육체도 없고 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를 공급해 주실 유일한 한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바로 처녀에게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 오셨으나 전혀 죄가 없는 초자연적인 피를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그분은 바로 성령님으로 잉태된 분이신 것이다. 윗부분에서 우리는 태아의 몸속의 피는 어머니의 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스스로 그 안에서 형성되며 어머니의 난자로부터 그 작은 태아의 몸이 시작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몸은 마리아에게서 왔고 그분의 피는 성령님으로부터 왔다. 이처럼 죄 없고 초자연적인 피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속을 위해 용인하실 수 있는 대가가 될 수 있었다. 죽음은 오직 생명에 의해서만 사라질 수 있으며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수혈이 필요하다.
수혈(Blood Transfusions)
오늘날 우리는 수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수혈에 의해 목숨을 구해 왔다. 수혈이란 출혈이나 갖가지 피와 관련된 질환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얻은 피를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에게 넣어 줌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모든 수혈 중에 가장 위대한 수혈은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 그분의 피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질 때 행해진다. 여기에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바로 대속의 피를 그 사람이 믿는 것이다.
혈액 은행(Blood Bank)
요즈음 우리는 혈액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혈액 은행은 부상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미래에 사용될 목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취해진 피를 저장하는 창고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채취한 피에는 어떤 보존제들이 첨가되어지고 그렇게 처리된 피는 무균 용기 안에서 미래에 사용되기 위해 보존될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보존제는 피의 모든 기능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므로 그 피는 어느 때든지 사용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이러한 피를 기증하기 위하여 병원이나 보건소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거기에서 피가 채취되고 처리된 뒤 저장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응급 환자의 경우에도 수혈에 필요한 피가 항상 충분히 있게 된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발견들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오늘 당신은 한 달 후에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낯선 이의 생명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당신의 피를 기증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혈액 은행(God's Blood Bank)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20세기 전에 행하신 그 일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못한다. 그때에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는 자신의 죄 없는 피 전부를 남김없이 쏟아 주신 분이 계셨다. 바로 그곳에서 혈액 은행이 개설되었고, 주 예수님의 피가 그 은행을 채웠다. 그 피는 A형이든 B형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유효하며 성령님에 의한 그 피의 수혈을 받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거저 주어진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그것을 얻기 위한 신청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피를 보존하기 위해 혈액 은행에 있는 피에다 반드시 보존제들을 첨가하여야만 하고 그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피는 결국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질된다. 그러나 그분의 피에는 어떤 보존제도 첨가되어질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 피가 썩을 수 없으며 죄 없는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 중 단 한 방울도 손실되었거나 소모된 적이 없다. 그 피는 썩을 수 없는 피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 피로 인해 우리 주님께 찬양을 드리자!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이 피가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신선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피는 결코 소멸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가사의 찬송가가 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피가 쏟아졌고
그것은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는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것은 어떤 사고로 인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사고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 놓으셨고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자신의 귀중한 피를 흘려 주셨다.
오 죄인이여, 당신은 바로 지금 그 귀중한 피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죄의 능력과 정죄됨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늘 그 피를 받아 곧 구원을 받으라. 자기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성도들이여, 다음을 기억하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바로 지금 그분을 신뢰하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피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009-05-08 13:22:28 | 관리자
3.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니나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4-26).
이 구절 가운데는 우리가 특히 관심을 기울일 말씀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를 서로 서로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우리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피다. 인류는 한 피에서 나왔고 그 피는 첫 인간이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피였다.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고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죄는 아담의 피에 영향을 끼쳐서 궁극적으로 그에게 죽음을 가져왔다고 기록한다. 모든 인류의 피가 아담의 피를 공유하기 때문에 오직 죄가 없는 피만이 그것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피는 바로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피이다.
첫 아담의 죄가 전 인류의 피를 부패시켰으므로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죄가 없는 피만이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들의 사면이 없다. 영혼의 속죄를 이루는 것이 바로 피이다.” 비록 이브가 아담보다 먼저 죄를 지었지만 이브의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한 것은 바로 ‘아담의 죄’이다.
성경에서는 오직 예수님만을 여자의 씨(The Seed of the Woman, 창3:15)라 부르는데 이는 그분만이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그분의 피’에는 아담의 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역자 주:마태복음 1장을 펴고 2절부터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성경은 모두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으로 기록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이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남자가 남자를 낳는 것에는 ‘beg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것’(was born)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그분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직 예수님만이 여인에게서 나온 사람이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도서출판 예향의 『말씀의 비밀을 찾아서』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비록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어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으므로 당신이나 나 같은 죄인이 아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단 한 가지 해결책은 ‘죄 없는 피’뿐이며 오직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에게 그 피를 줄 수 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우리는 이 속죄하는 피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 예로, 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피 흘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죽임 당한 양과 염소의 피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어린양께서 오시기 훨씬 전에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여러 가지 예표들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피가 없이는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피가 드려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은 죄인에 대해 공의와 죽음을 요구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의 두 돌판을 주셨을 때 - 긍휼이 아니고 공의를 요구하는 율법, ‘그것을 범한 혼은 죽으리라’고 말한 율법 - 그 율법은 ‘완전함’ 이 아니면 죽음을 요구했다.
그분께서는 또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의 형태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피 위에 지어진 것이며 그 안에서의 모든 의식 역시 피 속에서 거행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여 반드시 죽을 것을 아셨으므로 은혜 가운데 율법에 의해 정죄된 범죄자가 안식을 주는 피를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성막과 희생단과 피를 주셨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양(God's Perfect Lamb)
송아지와 염소와 양의 피는 죄인을 완전하게 속죄할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자신을 직접 희생하심으로써 구약 시대의 끝에 죄를 없애려고 오신 그분을 가리킬 뿐이다. 마침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셨고, 마지막에 그분께서는 자기의 고귀하고 영원한 피를 온 세상을 위해 ‘단 한 번’ 영원히 흘리셨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어떤 희생 제사도 필요 없게 되었다. 구약 시대에 희생된 짐승의 피는 부패하기 쉽고 썩어서 빨리 없어지지만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흘리신 피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피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부패할 수 없는 것으로 불린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주 예수님의 피는 죄 없는 피요, 죄가 없으므로 그 피는 썩을 수가 없다. 죄는 부패를 초래하지만 죄가 없는 곳에는 부패가 있을 수 없다.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는 예수님의 몸에 흘렀던 피가 왜 죄 없는가를 지적할 것이다. 예수님의 몸속을 흘렀던 핏방울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마치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상처받은 이마와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흘러 나왔던 그 피처럼 여전히 신선하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찢어지지 않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던 피, 채찍질하는 자가 그분을 채찍질했을 때 무거운 가죽 끈이 그분의 몸을 찢어 놓았을 때 그분의 등으로 흘러내렸던 피, 가시관 밑에서 스며 나와 그분의 손, 머리, 발로 흘러내렸던 피는 썩지 않는 피였으므로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다윗이 시편 16장에서 주님을 가리켜 말했던 것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나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행2:27).
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죽음 속에서 세 밤과 세 낮 동안 무덤 속에 있었으나 썩지 않는 피를 지녔기 때문에 그 몸은 부패되지 않았다. 나사로의 누이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악취가 난다고 말하였지만 그분의 육신에는 부패의 유일한 원인인 ‘죄성을 띤 피’가 없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썩음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피의 한 방울까지도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옛날의 대제사장처럼 하늘에 있는 긍휼의 자리 위에 피를 뿌리기 위해 지성소 안으로 즉 하나님의 존전으로 가셨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눈에 보이는 긍휼의 자리와 언약궤는 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하여야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3-26).
속죄를 이루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사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에 피를 드리기 위해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 피는 오늘도 그곳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호소하며 우리를 위해 승리를 주고 있다. 구약 시대의 성막에 있던 제사장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다만 피를 드렸을 뿐이며 그때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2000년 전이나 똑같이 지금도 순결하고 능력 있고 신선한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하늘나라에 있는 금잔 속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었던 성막의 제사장은 반복해서 피를 뿌려야 했다. 성막의 모든 가구들 중에 의자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성막 내에 있었던 희생 제단, 분향 제단, 등잔대, 주님의 언약궤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성막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스라엘의 성막에는 의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희생 동물의 피를 뿌렸던 이 땅에 속한 제사장의 일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앉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코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고귀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2-14).
썩지 않고 영원하며 신성하고 죄 없으며 모든 것을 이긴 고귀한 피는 이미 흘러내렸다. 그 피는 그 당시에도 유용했으며 지금도 유용하며 세세 무궁토록 그 능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형용사로써 그리스도의 피를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 피가 고귀하다고 했으며 다윗은 썩지 않는다고 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마귀)를 이겼다.”고 말하며 그것이 ‘모든 것을 이기는 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피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피의 권능을 없애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피 없이는 결코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오늘날에도 율법은 그 성격을 바꾸지 않았고 피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은 여전히 죽음을 집행하고 있다(고후3:7).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정의는 아직도 진리이다. 율법의 행위로부터 난 사람들은 저주 아래 있다. 율법 자구는 사람을 살리지 않고 죽이기 때문이다(고후3:6).
오직 피만이(Only the Blood)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내가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너의 선행, 도덕 행위, 열렬한 종교심, 십계명 혹은 도덕의 황금률을 진정으로 지키려고 하는 점을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고 하셨다. 당신은 내가 피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다고 생각하는가? 즉 피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하였다고 생각하는가? 들어보라,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은 적어도 칠백 번이나 피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묘사된 하늘에 있는 구속된 무리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선행이나 율법을 지키는 데 충실했음을 노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노래함을 보게 된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계1:5).
2009-05-08 13:21:37 | 관리자
2. 우리의 공급원 그리스도(Christ Our Supply)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히9:13-14).
인류 구속의 전체 계획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 안에 존재한다. 우리는 위에서 피가 몸 안에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조직임을 살펴보았다. 근육, 뼈, 신경, 지방 조직과 피부 등 대부분의 다른 조직들은 고정되어 있다. 오직 피만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조직으로서 전신을 돌며 살아 있는 모든 세포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의 몸 안에는 침이나 위액, 눈물, 담즙 등의 여러 가지 액체가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조직이 아니며 분비물이고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신체로부터 생성되는 물질들일 뿐이다. 오직 피만이 몸 안의 모든 세포에 도달할 수 있는 액체 조직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지체들을 머리와 그 외 다른 지체들과 연결시켜 줄 수 있다.
신비한 구조(Mysterious Structure)
현미경의 발명과 혈액 화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사람들은 피에 대하여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신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피의 물리적 구조에 대하여 상당히 많이 이해하고 있다. 약 5리터 정도의 피를 갖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피의 순환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육체의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피는 혈장(Plasma)이라 하는 무색의 액체와 그 액체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세포 성분들과 수없이 많은 화학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피의 고형 성분은 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 종류의 세포들로 이루어진다. 1 세제곱 밀리미터 당 약 500만 개 정도의 밀도를 갖고 있는 적혈구들은 복합 산소의 형태로 조직들에게 연료를 공급해 주며 피를 빨갛게 만드는 세포들이다. 백혈구라 불리는 세포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것들은 주로 세균 감염을 물리치기 위한 몸의 방어와 관계가 있다. 혈소판은 매우 얇고 투명한 세포로서 부족하게 되면 출혈이 생기게 된다. 이 외에 피 안에는 피를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인자들과 질병을 예방해 주는 항체 등의 여러 성분이 존재한다.
적혈구(The Erythrocytes)
적혈구와 백혈구는 쉽게 연구할 수 있으므로 이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바가 많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 불리는 신비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미세한 원반형의 세포인데 헤모글로빈은 철분 복합체로서 신체의 연료가 되는 산소에 대한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 폐를 통해 이 적혈구들은 우리가 들여 마시는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게 되고 산화 헤모글로빈을 형성하기 위해 산소와 느슨하게 결합한다. 이런 형태로 적혈구들은 세포들 사이를 움직여 가면서 그 속에 담긴 아주 작은 운반물을 각 세포에게 내주게 되어 연소와 열을 위한 필수적인 산소가 몸속의 각 세포에 공급된다. 그러면서 피는 우리가 ‘세포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의 노폐 물질, 이산화탄소 그리고 조직의 신진 대사에서 나온 찌꺼기를 취해서 이것들을 콩팥, 피부, 내장, 폐등을 통해 내버리면서 동시에 귀중한 산소를 채우고는 다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피가 한 번 순환되는 데는 약 23초가 소요된다. 이처럼 피에 의해서 자양분이 조직에 공급되고 동일한 운반체 안에서 ‘쓰레기’가 수거되는데 위대하신 창조주께서는 그런 과정 속에 절대로 오염이 생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우리를 창조하셨다.
오늘날 도시의 청과상들이 매일 우리에게 줄 음식을 포장도 하지 않은 채로 날라 오고는 바로 그 트럭에 쓰레기들을 운반해 간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피의 이 같은 성질은 우리의 청소 담당 보건소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공급원 그리스도(Christ Our Supply)
우리의 몸에 피가 필수적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수적이다. 그 피 역시 액체이기 때문에 비록 그 몸의 지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 몸의 모든 지체에게 도달할 수 있다. 피가 양분과 생명의 유지를 위해 영양 요소들을 공급해 주며 노폐물들과 세포의 신진대사에 의한 독소들을 날라 가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유일하신 생명의 근원이시요, 생명을 지지해 주며 유지시키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씻기시므로 우리의 생명은 참으로 영구히 지속될 수 있다.
당신은 깨끗케 하시는 능력을 위해 예수님께로 가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양의 피로 씻겨졌는가?
당신의 옷은 흠이 없는가?
그리고 그것은 눈처럼 흰가?
당신은 그 양의 피로 씻겨졌는가?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화학의 놀라움이 있다! 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 어린양(예수님)의 피로 자신들의 옷을 깨끗케 했음을 읽게 된다. 피로 씻어 희게 된다는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당신의 옷을 사람의 피로 씻게 될 때 그것이 어떤 색으로 변하게 될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사람의 붉은 피로 옷을 하얗게 빠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에 관한 화학 실험실에는 모든 더러움과 얼룩들을 완전히 빨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그 방법은 몰랍게도 바로 그 어린양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이다. 오직 그분의 죄 없으시고 초자연적인 그 피만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다.
백혈구(The Leucocytes)
우리는 위에서 적혈구 외에 백혈구라고 불리는 세포들이 혈장 안에 있음을 언급했다. 이것들이 ‘백혈구’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것들이 적혈구와는 달리 외형적으로 볼 때 아주 엷은 색 혹은 흰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백혈구들은 적혈구보다 조금 크지만 개수로는 적혈구보다 훨씬 적다. 적혈구들이 대개 1 세제곱 밀리미터당 400-500만개 정도 있는데 비해 백혈구들은 고작해야 4,000개에서 7,000개 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백혈구의 수는 위급한 경우에 매우 신속하게 증가될 수 있다. 평상시 1세제곱 밀리미터당 7,000개라는 숫자는 혈액 속의 정규적인 ‘상비군’에 해당된다. 그러나 적군인 ‘세균 군대’의 공격을 받아 몸의 어느 곳에 감염이 생기면 이 소식은 즉각적으로 백혈구를 생산하는 ‘군인 부대’로 들어가며 그 부대는 신속하게 많은 수의 백혈구들을 만들어 감염이 생긴 곳으로 급파한다.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위급한 때에 동원되는 ‘하얀 군대의 모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백혈구들이 몸을 지키는 ‘군인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백혈구의 숫자는 두 배 혹은 세 배로 증가한다. 그것들은 병원체를 죽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당신의 손가락 끝이 벌레에 쏘이거나 가시에 찔려 거기에 감염이 생길 때에 당신은 곧 그 상처 부위가 부어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조그만 ‘군인들’인 백혈구 세포들을 급히 실어 나르기 위해 피가 급파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백혈구들은 그 감염 장소를 완전히 감싸며 감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포위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죽게 되고 한 군데로 모이게 되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우리가 보통 ‘고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자, 이제 전쟁은 역전되기 시작하며 처음에는 붉은 색을 띠고 매우 아프며 부어올랐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며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 상처는 성공적으로 포위되고 마침내 그 중심 부위가 터지면서 고름이 나오게 된다. 고름은 혈청과 몸을 위한 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백혈구 군인들의 시체’와 백혈구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분해된 병원균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름의 형태로 ‘죽은’ 것들이 배출되고 모든 것이 아물어 결국 상처 딱지만 남게 될 때까지 피와 다른 백혈구들이 모여들어 ‘전쟁터’를 깨끗이 치우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게 된다. 전쟁 기간에 백혈구 ‘군인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이제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다시 평화 시기의 정상 숫자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의사들이 당신의 몸 어느 곳엔가 감염이 생긴 것 같다고 판단할 때 백혈구의 수를 세어 보기 위해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피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이유인 것이다.
맹장염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경우에도 한 방울의 피를 채취하여 그것을 검사한다. 만일 백혈구들이 굉장히 증가되었고 이 작고 ‘흰 군인들’의 증가로 인해 ‘군대’가 모병 작업을 시작했음이 확인될 때 의사는 신체의 어느 곳에선가 감염에 의한 공격이 진행 중임을 거의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도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시139:14).
피에 의해 승리함(Overcoming by the Blood)
우리 몸의 피가 각종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과 똑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도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일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요한계시록 12장을 인용하려 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구원과 힘과 우리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권능이 임하였도다.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는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자가 쫓겨났도다.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계 12:10-11).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사탄을 이겼다. 위의 말씀은 교리적으로 볼 때 말세의 7년 환난기 중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되기는 하지만 영적으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역시 적용된다. 사탄은 형제들을 참소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 대해 많은 참소를 한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참소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을 때 거기에는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 계시며 그분께서 하셔야 할 일은 단지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사탄의 비방을 이겨내기에 충분하다.
때때로 사탄은 우리를 참소하며 우리의 범죄와 실패를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신의 죄와 단점을 본다. 그때 사탄은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구원받았는가? 아무래도 그리스도인 같지가 않은데?”라고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종종 쓰러지기도 하며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죄를 보게 될 때 패배 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의심하기도 하며 우리의 구속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마귀에 의한 감염에 대항할 것인가? 거기에는 오직 한 가지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사탄을 이겼다.”
나는 내 안에 아무런 선(善이) 없음을 안다. 나는 내 안에 아무런 소망도 없으며 육신 안에 어떤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없음을 안다. 바로 그럴 때에 나는 피에 호소한다. 내가 갈보리를 보고,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주신 주님을 보면 주님의 빛이 내게 나타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선이나 너무나 많은 범죄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피에 달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피는 나를 위해 싸운다. 적을 도망가게 만드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 안에 있는 ‘백혈구 군대’이다. 나는 나의 죄를 인정하며 부인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에 나는 다음의 약속을 내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9).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1:7).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로 그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계12:11).
죄에 대한 면역(Immunity to Sin)
우리는 이제 피에 있는 몇 개의 다른 성분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려 한다. 피 속에는 위에서 언급된 세포들과 응고 인자들뿐만 아니라 ‘항체’ 혹은 ‘항독소’라는 성분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감염을 방지하는 성분들’이다. 백혈구는 염증이 생길 때 염증과 싸우지만 ‘항체’는 처음부터 감염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 작용은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이같이 질병을 방지하는 요소가 없다면 인간은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항체들이 감염에 대한 반응으로 생성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즉, 질병을 막는 이 항체가 피 속에 없다 하더라도 ‘일단 사람이 어떤 질병에 걸리게 되면’ 항체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같은 질병에 다시 걸리지 않게 된다. 천연두, 성홍열 등으로 인해 생긴 항체들은 평생 동안 있게 된다.
그 외의 다른 항체들은 짧은 기간에만 면역을 지니고 있어서 일시적인 효과를 보이므로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 번 질병에 걸린 몸은 면역을 형성하므로 다시 그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면역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우리가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의 피에 적용시키면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된다. 거듭난 후에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자주 유혹의 희생물이 된 채 굴복되기도 한다. 실수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의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찾으며 그 후 그리스도의 피에 호소하고 한 때 그를 넘어지게 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같은 죄로 넘어지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경험으로 인하여 그 범죄에 대한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도와 죄인의 차이점은 성도는 자기 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호소하지만 죄인은 자기 죄를 사랑하고 죄 속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성도는 마치 양과 같다. 양은 진흙 구덩이 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가 건져 올려 줄 때까지 울고 있다. 그 후 양은 많은 징계를 통해 진흙 구덩이를 피하게 된다. 반면에 죄인은 돼지와 같다. 돼지는 더러운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찾으면 기쁨의 환호를 지르며 어느새 빠져 들어가 당신이 거기에서 그를 끌어내려고 하면 맹렬한 반대를 하면서 항의한다. 설사 끌어낸다 해도 돼지는 다시 더러운 곳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성도도 죄 가운데 떨어지지만 그는 결코 거기에 그냥 남아 있지 않으며 죄 안에 거하게 될 때 늘 불안해한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실수했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당신을 위해 죽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리의 고귀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실패할 것도 알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은혜와는 원수가 되는 이 옛 세상에서 성도들이 깨끗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인생길의 구덩이들과 육체의 속임수를 아셨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돌아 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당신을 깨끗케 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8-9).
나의 친구여, 당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죄를 부인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당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 있는 ‘백혈구 군대’를 보내실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죄로부터 당신을 보호하시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 보혈 속에는 싸워서 정결케 하는 ‘백혈구’ 외에도 후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항체’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 당신이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생각해 보며 절망하지 말고, 당신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며 돌보시기 위해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주님께로 피신하라.
2009-05-08 13:20:32 | 관리자
제 1 장
피의 화학적 성질
(The Chemistry of the Blood)
1.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또한 너희는 너희의 모든 거처에서 날짐승의 피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지니라. 어떤 혼이든지 무슨 피라도 먹으면 그 혼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 하시니라”(레7:26-27).
성경은 피에 관한 책이며 피로 젖어 있는 책이다. 우리가 피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때 우리는 그러한 비난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님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사실만이 우리의 가르침에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을 부여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야말로 복음의 생명이며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살아 있는 책’ 즉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 있는 책이라고 스스로 선포하고 있다. 성경은 또한 마음을 다하여 그것이 가르치는 바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다. 히브리서 4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히4:12).
이 성경 구절에서‘살아 있고’(quick)로 번역된 단어는 ‘살아 있는’(living) 혹은 ‘생생하여 활동하는’(alive)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모든 다른 책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 책이 구절마다, 각 장마다 순환되고 있는 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의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해 주는 피가 흐름을 본다. 만일 피가 없다면 성경도 다른 책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이 생명은 피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범하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기본 원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본 원리는 레위기 17장에 주어졌으며 다음과 같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레17:11)
이처럼 영감을 받은 원리는 1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는 그 생명을 위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종류의 육체의 피도 먹지 말라.”(레 17:14)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결코 정의를 내리거나 파헤쳐 볼 수 없었던 그 신비한 것, 즉 생명(life)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바로 육체의 피 속에 있다. 그러므로 피 없는 생명이란 있을 수가 없다. 비록 이것이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진리이긴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주로 사람의 피와 특히 사람이셨던 그리스도 예수님(The Man Christ Jesus)의 피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피 속에는 우리가 흔히 육신적인 의미로 생각할 때의 생명뿐만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피의 생리학(The Physiology of Blood)
인간의 몸속에는 여러 가지 조직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근육, 신경, 지방, 내분비선, 뼈 결합 조직 등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같은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들은 고정되어 있는 세포들로서 매우 미세하며 어떤 특정하고도 제한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고정된 조직들과는 달리 피는 유동성이 있어 몸 안을 돌아다니는 조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몸의 한 부분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몸 전체를 돌아다니며 고정된 세포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며고 세포의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재와 쓰레기들’을 갖고 간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신진 대사(Metabolism)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사람의 몸에는 약 5리터 가량의 피가 있고 이 피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23초마다 전신을 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체의 모든 세포들은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받고 노폐물을 제거 받으며 그와 동시에 신체 안의 다른 세포들과 꾸준하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피는 모든 조직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으로서, 수많은 원소들과 복합체들과 아직까지도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특별한 화학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됐든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이라는 신비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피가 신체의 다른 부위에 있는 세포들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생명체든지 곧장 죽게 된다. 즉 피의 순환이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데 그 이유는 생명이 바로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Christ)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육적인 몸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훨씬 더 크고 깊은 영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 불리며 우리는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며 우리끼리도 서로서로 지체들이다. 이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리가 되시며 모든 믿는 사람들은 지체들이 된다. 이 지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진다. 각 지체의 생명은 그분의 피로 인함이며 생명뿐 아니라 영양분과 정화와 성장을 위해 오로지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거듭난 모든 신자들은 그 몸의 지체이며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공동의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이들을 연합시켜 주며 ‘형제와 친척’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다.
이 지체들은 몸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을 수도 있으며 기능이나 구조면에서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한 몸의 지체들이며 한 가지 조직에 의해 연합되는데 그 조직은 바로 모든 부위에 있는 각 지체들에게 다다르는 피다. 이것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인 참된 교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체들은 피부색이 서로 다를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혹은 황색 인종일 수도 있다.
에스키모인으로부터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사는 곳은 서로 많이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거듭난 은사주의자일 수도 있고 근본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몸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끝내 놓으신 일’(The finished work)을 신뢰하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왕이든 농부든 또는 교파가 무엇이든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모두 피에 의한 형제들이며 한 가족이며 같은 몸의 일원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가 되었다.
피에 의해 모두 하나 됨(All One by the Blood)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구분이나 집단 등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으신다. 또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소한 것을 따지기 좋아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이라든가 조직들에 전혀 관심을 두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임을 우리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교파를 세우고 사람들을 어떤 믿음으로부터 다른 믿음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라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씻겨지지 않는 한 어떤 교회에 출석하든지 간에 멸망 받고 만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의 교인 수를 늘리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그분 안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그 피의 ‘하나 되게 하며 정결케 하는 능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어떤 형식이나 의식 혹은 예배의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님을 높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통해서 우리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교리들과 교파주의적 견해를 변호하며 자기 교회의 교인 수를 늘리기에 너무 바빠서 실제로 한 영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피로 인해 관계를 맺음(All Related by Blood)
모든 사람들은 죄성으로 가득 차 있고 오염되어 있으며 범죄와 죄들로 인해 죽은 아담의 피에 의해 상호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또 그분(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작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6).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공통된’ 기원을 갖는다. 사람들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교도든 문명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아담의 피에 의한 친척들이다. 그들의 피는 지금까지도 아담의 죄로 인한 사형 선고를 전하고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기들까지도) 단 하나의 예외 없이 공통적인 죽음을 당하게 된다. 생명이 피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피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그것을 먹음으로 인해 ‘피의 중독 현상’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그때 생긴 독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그 일 이후 약 6,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연적 출산에 의해 아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인가 핏속에 담겨져 내려오는 이 죄의 독에 의해 굴복 당하고 결국 죽고 있다. 아담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그 진리가 더욱 더 명확해 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부터 사람을 형성하셨다고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담은 생명이 없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다. 원료로 볼 때에 그는 단지 흙에 지나지 않았으며 사람의 모습으로 빚어졌을 뿐 아직까지 그 안에 생명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인형에 불과했다. 그 뒤 성경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2:7).
하나님의 숨은 그를 살아서 움직이게 만든 그 무엇인가를 그 안에 넣어 주었다. 그때 그에게 들어갔던 것이 바로 피였다.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그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육체의 생명은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이 하나님의 숨에 의해 아담에게 주어졌을 때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진흙 덩어리에게 피를 더해 주셨으며 그래서 사람은 ‘살아 있는 혼’(a living soul)이 되었다(*역자주 - 개역성경은 이것을 ‘산 영’(a living spirit)이라고 크게 오역했다. 그러나 전 세계모든 성경은 이것을 ‘살아 있는 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의 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또 다른 선물이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생명(Life)이시며 모든 생명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Sin and Death)
처음에 창조된 뒤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는 죄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 죽게 되었다. 먼저 영적으로 죽었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육체적으로 죽게 되었다. 생명이 피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그 피 안에 일어났다. 죄는 간접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피에 영향을 미쳤지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에 의해서 영양분 등이 몸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단순히 ‘죄성을 띤 육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의 몸이 죄성을 띤 피에 의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채워지며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한 피로 모든 민족을 만드셨기 때문에 죄는 아담의 자손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경 기록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다.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죄가 사람의 피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죄가 없는 사람이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본질적으로 죄성을 갖고 있지 않은 아담의 육체는 취하실 수 있었지만 완전히 죄성을 띤 아담의 피는 취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해 남자로부터가 아니라 여자로부터 나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실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분께서는 혈관 안에 단 한 방울의 아담의 피도 갖고 계시지 않았으므로 아담의 죄를 나누어 갖지 않으셨다. 우리는 이 책의 뒤에서 처녀 탄생 문제를 다룰 것이며 여기에서는 인간의 피가 죄로 가득 차 있으며 따라서 인류 구속에 대한 전체적 계획이 이 피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처녀 탄생의 문제를 잠깐 언급하고 있다.
2009-05-08 13:19:40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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