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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킵바이블 형제/자매님들   이전에 공지드린 "대전 흠정역 성경모임"의 장소와 일정이 여러 형제님들의 도움을 통해 다음과 확정되어 알려드리니 참고하셔서, 관심있으신 분들은 연락을 주시거나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장소 : 서대전역 매화실  (대전역에서 서대전역으로 바뀌었습니다)2. 일시 : 2월 15일 토요일 오후 3시 (3시에서 5시까지 논의 예정)3. 기타    1) 현재까지 참석 의사를 전달해주신 대전 및 청주지역 형제/자매님들은 총 17명입니다.   2) 회의실이 15인용이라 추가 참석하실 분은 미리 연락을 주세요.  공간은 충분하니, 여분의 의자를 추가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 : 010-2415-7069,  hjkim1611@gmail.com   감사합니다.
2014-02-08 13:27:08 | 김학준
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에 이런 협조 요청글을 올려서 죄송하지만, 관련된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니, 여러 형제/자매님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미 공지사항에 공지된 내용이지만, 몇몇 형제분들이 이번 대전 모임을 제안했으며 대전 및 청주 지역에서 관심있는 분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같이 논의를 해보자고 해서 이번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참여의사를 말씀해주신 형제님들을 어제 저녁, 대전에서 만나 모임을 가졌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형제님들입니다.   본 모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 공지 사항에 있으므로 이것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구요.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578   2월 15일 대전 모임은 1차로 대전역 근처의 회의실을 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인원 규모에 따라 가격차이가 있어 대략적으로 나마 참여 인원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본 게시글을 올립니다. 인원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적정 크기의 회의실을 예약할 계획입니다. 모임 이후에 같이 저녁 식사도 할 예정이니 이런 준비를 위해서, 본 모임에 참석 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아래 메일이나 전화 문자로 가능한 한 빨리 알려주시면 예약을 진행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연락처: 010-2415-7069, hjkim1611@gmail.com   감사합니다.   샬롬.
2014-01-25 09:13:38 | 김학준
위험한 목사들   오늘 아침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연세대 이석영 교수가 설명하는 빅뱅 우주론을 세 편 보았는데 그분은 그것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지만 저는 창조의 과점에서 이해하니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KBS 인문학당 강의).   그러다가 우연히 장경동 목사의 설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제목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인가?>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tdWQbTeNc&feature=youtube_gdata_player   요즘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목사들이 하도 많기에 도대체 무어라 가르치는지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들어보았습니다.   그분은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을 설명하는 듯하다가는 결국 엉뚱한 곁길로 빠지더니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결론을 내기에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더불어 논리가 매우 부실한 설교를 무조건 아멘 하는 청중들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유명 목사의 교리 이해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 교회의 영적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는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매우 위험한 가르침입니다.   또 갑자기 고 김성수 목사의 7분 설교 <성경이 말하는 십일조의 의미>가 뜨기에 흥미가 있어서 들어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9N0KwQqcBc&feature=youtube_gdata_player   이분은 원어를 가지고 비유 해석을 충실하게 하여 십일조를 영해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들은 분들은 이분의 원어 실력과 비유 해석에 신선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분은 소천한 이후에도 여전히 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설교 역시 성경을 설교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원어를 가지고 그럴듯하게 펼친 것입니다. 장경동 목사처럼 코미디언 흉내를 안 내기에 이런 분에게 매료되어 푹 빠지는 사람들 - 특히 지식층의 사람들- 이 더 많을 뿐입니다. 이 경우 그분의 해석은 이단 교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문맥에 따라 그대로 설교하는 것이 설교자의 의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신학이 필요한데 장경동 목사는 그게 없고, 고 김성수 목사는 신학교에서 배운 원어 지식에 의지하여 바른 성경해석을 뒤엎는 위험한 일을 합니다. 물론 무지한 성도들은 이들의 말장난에 빠져 이런 목사들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이런 목사들을 따르고 그 가르침을 수용하는 성도들이 감당해야 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른 성경에 입각하여 바른 것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을 우리에게 더욱 풍성히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1-24 01:26:24 | 관리자
할렐루야~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사도행전에 특히 이런 표현이 많은 것 같아요...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위에 기록된 것처럼 KJB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되어있는데, 개역성경은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되어있는데..어떤 것이 바른 해석인가요? 못하는 영어이지만, KJB는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NIV는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로 되어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성령님의 선물 같긷도 하구요... 아니며, 성령님의 선물 = 성령님....인지 궁금합니다.. 정동수목사님의 선포된 말씀으로 영혼의 자유함과 참진리를 깨닫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2014-01-21 15:48:06 | 이종철
구원은 디지털이다.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다.다시 태어나는 것, 구원은 확실한 실체이지 애매모호함이 아니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태어나지 않은 것은 0 이고, 태어난 것은 1이다.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확실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0과 1만을 사용하여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체의 유전자 DNA도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 이라는 4가지의 염기를 사용한 디지털 정보체계 이다.이것들은 다시 A-T와 D-C와 만 결합되게 되어 있어 확실한 디지털 정보 체계로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컴퓨터와 생명체의 정보 전달 체계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 체계라면 아마도 혼돈 그 자체 일 것이다.제대로 된 통계가 생성될 수 없고, 생명체의 재 생성도 불가능 할 것이다.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요 3:3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다.우리는 육적으로 어머니의 양수인 물속에서 첫 번째로 태어났고 영은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우리의 죽어있는 영은 성령에게서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우리를 혼란하게 하였던 다음(벧전 2:2, 개정)의 성경 구절로 인하여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혼미해져 어디까지 자라나야 구원에 이르는 것 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성경 구절을 바른 성경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벧전 2:2, 개정)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시인하고 다시 태어난 것은 영의 상태가 0에서 1로 바뀌는 단 1회의 사건으로 영이 다시 태어난 획기적인 사건이다.구원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사건이 아니고 죽었던 영이 산영이 된 사건이다.다음(벧전 2:2, 킹흠정)의 성경말씀 처럼 새로 태어난 아기 이다.그리고 말씀의 젖으로(성경말씀으로) 성장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축복된 신생아 이다.(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구주의 보혈로, 영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하나님 나라의 신생아!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른 복 받은 신생아 이다.(고후 7:10, 킹흠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함을 설명하셨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 3:7, )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영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영원히 죽을 인생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하나님은 애매모호한 것을 실어하시고 확실한 것을 좋아 하신다.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애매모호한 혼돈 속에서 살지 말고 확실한 말씀을 붙들어야 구원받은 자의 영이 행복하다.(약 5:12, 킹흠정)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2014-01-21 11:32:22 | 허광무
  늑대 무리는 새끼 양육을 매우 중시합니다. 무리 중에서 새끼를 생산할 수 있는 늑대는 오직 수컷 알파와 암컷 알파만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우수한 종자의 생산과 효율적인 관리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암컷 알파늑대는 적게는 3마리에서 많게는 9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게 됩니다. 암컷알파는 새끼를 낳으면 10주 동안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며 보살피다가 그 이후에는 무리에게 새끼 양육을 맡깁니다.(무리가 있을 경우) 이때 ‘베이비시터’의 역할은 주로 조직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늑대이거나 늙은 늑대가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리들이 꼭 그들에게만 새끼 양육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파 늑대를 비롯하여 모든 늑대가 새끼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생후 6개월 까지 공동으로 보호하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수해주는 등 그들을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다면 왜, 늑대 무리는 새끼양육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음 세대가 잘 성장해야 조직이 건재해지고 조직이 건재해져야 다른 늑대 무리나 동물들로부터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늙어도 무리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보험용도라고나 할까요? 이처럼 늑대들은 우리 사람들처럼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무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가꿉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다름 아닌 바로 새끼늑대 즉, ‘다음 세대’ 입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이 땅에 무죄한 피를 흘려가며 신앙을 모범으로 전수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매를 맞아야 했고, 칼에 자신들의 목을 내놓아야 했으며, 심지어는 거꾸로 박혀진 못 위를 걸어가면서까지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신앙의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주님을 향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등 따습고 배가 부르니, 오히려 세상을 능가하는 흉내를 내며 기복주의와 권위주의를 도구삼아 ‘샤머니즘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사들은 스스로가 샤만(무당)이 되어, 예수님은 단지 천국티켓을 자비로 베풀어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성령님은 복 빌어주고 귀신 쫓고 병이나 고쳐주면 되는 그런 싸구려 신(神)정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눈 팔고 있는 사이 우리 기독교의 ‘구원’ 설교는 구원파에게, ‘재림’ 설교는 다미선이나 제칠일안식교 등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죄’는 도덕설교로, ‘의’는 윤리 설교로 대체시키고 있으며, ‘심판’은 신천지를 비롯한 각종 극단 종말주의자들의 전유물로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한 성령님의 가르침을 이단이나 사이비들에게 다 빼앗겨 버린 채 교회들은 교리가 아닌 비전이라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상 속에서 허망하고 어두워진 마음으로<롬 1:21> 교회를 세우기에 급급하며, 혹시 이단으로 오해나 받지 않을까? 그리고 자기 성도들을 다른 교회에 빼앗기지나 않으까? 하면서 잔뜩 주눅이 든 전당포가게 쯤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동성애’ 뿐만 아니라, ‘종교일치운동’까지도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며, 자신들의 능력 과시를 위해서는 성도들의 형편은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을 미혹하여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교회(바벨탑) 건축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요 16:8-11>     이처럼 지금의 기독교는 탐욕이라는 우상을 숭배<골 3:5>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말씀보다 전통을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어 그 전통이 말씀보다 위에 있게 함으로써 전통이 마치 진정한 신앙의 유산인양 두 눈에 힘을 주며 전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들은 전통이 진리인줄로 착각하며 더 이상 온전한 하나님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다음 세대들은 더 이상 무엇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두려워 할 턱이 없습니다. 오직 이 화려한 세상에서 그들에게는 물질주의가 제공해주는 쾌락만이 유일한 삶의 낙(樂)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며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단지나 잔을 씻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며 또 그와 같은 다른 많은 일들을 행하느니라.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잘 저버리는도다.<막 7:7-9>     며칠 전에 아내로부터 자녀 교육에 열정이 남다른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의 푸념에 관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지극정성으로 아이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외출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믿기지 않는 장면이 눈앞에 벌어져 숨이 턱하니 막혔다고 합니다. 전교 1등을 한다는 자신의 아이가 여자애를 집으로 데려와서 학생신분으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 아이를 보내고 나서 아들에게 너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야단을 쳤는데, 아이의 변명이 더 숨이 막힐 일입니다. “엄마, 저 전교 1등이에요. 저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서 말하는 우등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공부만 잘 하면 우등생일까요? 정말로 암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갈수록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2년 4월에 전국 16개 시․도에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면서, 학생들이 임신ㆍ출산ㆍ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5조), 복장ㆍ두발 등 용모에 있어 개성을 실현할 권리(12조) 등이 시행됨에 따라 중고등학생들이 임신을 해도, 건전치 못한 옷을 입어도 처벌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 강요 금지(16조) 조항도 마련되어 있어서 부모들이 교회를 가자고 강조해서도 안 될 형편이 되었습니다.     학문은 철학(philosophy, 哲學) 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문의 목표는 ‘의(義), 정(正), 지(知)’ 즉, 신(神)에 대한 의로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바르게 사는 도(道)에 대하여, 인간(人)의 본질에 대한 지식(知識)을 가르치는 철학 교육이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도 그러한 철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교육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생산자(경제), 군인(국방), 철인(정치)를 만들기 위해 ‘플라톤주의’에서 기인한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나라에 노동자 생산을 위한 교육제도를 이식시켰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교육은 ‘의(義), 정(正), 지(知)’라는 이념 대신에, 인간의 세 가지 심적 요소인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를 나타내는 ‘지정의(知情意)’에 대한 교육철학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특히, 여기에서 정(情)은 주체로서의 자기(自己)를 강조하는 개념으로써 즉, 인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1910년에 지정의(知情意)론에 의해 비판 받았던 ‘지덕체(智德體)’ 이론이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의 교육 이념으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의 세대들은 ‘정의(正義)’가 무엇인지조차 배울 수도 없고 강조되지 않은 비본질적인 교육 즉, 지식만을 위한 교육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식우월주의’가 우리 사회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되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신에 대한 두려움도, 바르게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질서도,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실체 없는 교육의 늪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생각하는 사고력의 단절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듯함). 그래서 앞에서 전술한 학생(전교 1등 한다는 고등학생)처럼 ‘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없는 세대들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범죄율이 전체 범죄의 6.8%를 넘어선 적이 없었으나 2012년에 이르러 8.3%를 넘어섰고 그 중에서 강력 범죄 발생 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더욱 악해져 가는 사회 환경)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떠한 기준으로 다음세대(자녀)들을 양육해야 할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적만 좋은 우등생 자녀로 만들든지 아니면, 비록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말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룩한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도록 돕든지 말입니다. 물론, 학교 성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우등생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또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출발선상에서 만큼은 이 둘 중 어느 한 가지에 분명한 목표(우선순위)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부모들의 몫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된 성도들이라면, 선택이라는 자율성을 뛰어 넘어 의무감으로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인 속성이 ‘거룩’이시기 때문입니다<수 24:19, 삼상 2:2, 6:20, 욥 6:10, 시 71:22, 잠 9:10, 30:3, 사 5:16, 5:24, 10,20, 호 11:12, 요 17:11, 딤후 1:9, 요일 2:20, 계 4:8, 6: 10, 15: 4 ..,>.    늑대들은 더 나은 늑대가 되기 위해서 교육을 시킵니다. 그들의 교육 목표는, 더 사회적이고, 더 조직에 충성하고, 더 무리들을 아끼고, 더 질서를 존중하고, 더 사냥을 잘 하는 등.., 한 마디로 ‘더 늑대다운 늑대’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요. 모든 동물이 그렇듯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늑대들은 사냥만 잘 한다고 해서 우등생으로 인정해주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늑대는 사회를 구성하며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장 중시합니다. 그 핵심은 ‘헌신’이고, ‘배려’입니다.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늑대는 절대로 높은 서열에 이르지 못하며 오래지 않아 무리에서 퇴출을 당하고 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늑대는 아주 철저하고 냉정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교육도,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더 나아가 하나님을 통해서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히 6:1>. 그 첫 걸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성품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의 구별됨. 즉, 거룩함을 겸비한 사람의 예배를 받으실 뿐만 아니라<요 4:24>, 그러한 사람을 다윗처럼 마음에 맞는 자<행 13:22>라고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많은 늑대들이 살았지만, 인간들의 왜곡된 지식으로 모두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도 왜곡된 교리와 전통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전수된다면 다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들과 같이 올바른 크리스천을 찾아볼 수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나마 이 땅에 신앙의 양심에 따라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들과 선조들의 피.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왔다던 이 인천 땅에 다시금 바른 성경 『1611 킹제임스흠정역』을 허락해주셨고, 이를 통해서 이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교리를 전수해줄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으로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값진 일입니까? 그러나 더 이상 감격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닙니다. 우리 손에 들린 올바른 성경을 통해 올바른 교리를 할머니/할아버지가 그리고 부모들이 듣고, 읽고, 깨달아 삶과 가정에서 다음 세대(자녀, 손자)들에게 바르게 전수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의무이자 사명이므로 하루 이틀 미뤄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오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그 일을 하고자 할 때, 이 마지막 때에 믿음의 선조들처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칠천 명이 우리 가운데서 불 일듯 일어날 것 이라고 확신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시간은 바로 ‘오늘’ 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바른 교리의 복음이 가정에서 삶에서 다시 되살아나 ‘다음 세대가 이 세대보다 주님을 더 잘 믿는 세대’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니라, 하시니라.” <열왕기상 19:18>
2014-01-18 23:48:09 | 김상진
처음 인사드려요. 이곳에 이런 글을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동영상 설교와 자료들을 도움만 받다가 용기내어 글을 올립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며칠전 사랑침례교회로 전화를 걸어 무작정 정동수목사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어요. 누군가가 전화를 받으셨는데 그분께 말씀만 전달드리고 끊었습니다. 후에라도 정동수목사님과 꼭꼭꼭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결교단의 한 교회에 남편이 부목사로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모이자 유초등부전도사, 그리고 영어성경학교 강사입니다.   제가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천주교와 기독교는 다르다'(?제목이 맞나요) 소책자를 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제 글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서 참 조심스럽네요.   오늘도 평안하시고 답글 기다리겠습니다~~^^
2014-01-18 01:53:35 | 전소영
주머니에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성경책이 너덜너덜해져서) 400주년 기념판을 구입했습니다. 이번에 고린도전서부터 다시 읽으면 흠정역으로 3독째네요! 3독! 아- 너무 기뻐요- 종종 일에 지치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답니다. "아- 말씀이 먹고 싶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에 완전한 말씀은, 인생의 사막길을 걷는 모든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또 항상, 킵바이블에 오면 좋은 글들이 많아 프린트해서 집에 가서 읽곤 한답니다. 전, 지금 동성애 반대소설을- 4년간에 걸쳐 쓰고 있는데요- 킵바이블에 있는 글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흠정역은- 제 글 실력을, 많이 높여주었고요- 소설 쓸 때- 흠정역에서 문장을 가져와 응용하여 쓰거든요- 아- 저는 정말 하나님 말씀 없인- 못 사는 사람이에요- 육신의 고픔보다 영에 고픔을, 채우는 것이 어느새 제겐 더 큰 기쁨이 되었으니까요- 
2014-01-16 15:04:50 | 신진성
안녕하세요. 몇일 전에도 질문을 했었는데, 게시판에 질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또 질문을 하게 됩니다. 서신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적그리스도에 대해 명확히 나오는데,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예수님께로 함께 모이는 것(개역개정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대해 쉽게 미혹되지 말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 그 날(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이르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는 대환난 후 3년 반 시작 때 본색을 드러내는데, 그렇다면 3절에 그 날(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예수님께로 함께 모이는 것)은 언제를 말씀하는 것인가요? 핍박 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해 참 소망의 메세지를 주는데요, 그 날이 모두가 볼 수있게 오시는 예수님의 오심인가요? 아니면 휴거를 말하는 것인가요? 휴거는 7년 환난 전에 일어난다고 공부했는데... 제가 많이 부족하여 형제님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지혜롭게 봐야 하는지 형제님들의 답변을 부탁드려요.      1 형제들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2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3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4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 5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2014-01-16 12:59:59 | 조형래
한국 교회의 내노라 하시는 분이 천주교 교황의 방한때 큰 집 형님이 오시는데 마중을 나가야지 했다고 하기에 우리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가지쳐 나온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내막을 알고보니 이건 아니다싶어 천주교에 나가는 처제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 하루속히 악마의 소굴에서 뻐져 나오게 하고싶어 자료를 찾던중 '교황 대신 예수님을 택한 49인의 신부들'이라는 책을 구할려고 이터넷 서점에서 찾아보니 절판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 책의 구입처를 아시는 분이나 소장하고 계신분의 연락을 바랍니다. 천주교의 유래, 천주교의 사상 평가, 천주교 기독교와 어떻게 다른가?외에 천주교인 전도요용으로 좋은 자료를 아시는 분은 연락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14-01-13 16:19:41 | 박수복
샬롬.평소 강해나 자료를 통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은혜받고 있습니다.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을 하려구요.밑에 링크는 킵바이블의 지도선도에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그림인데요,표적과 은사들에 대해 변천기 40년안에만 있었던 사건으로 보는 것은 어떤 말씀을근거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역사적인 근거가 있나요?평소 정동수 목사님 메세지도 많이 듣는데 은사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근데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질문을 합니다.형제님들의 좋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지도선도 - 유대교와 기독교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consult&write_id=103&cate_name=%EA%B2%BD%EB%A5%9C%EC%A3%BC%EC%9D%98
2014-01-13 11:04:44 | 조형래
      안녕하세요?    뉴질랜드 최문선 자매입니다.^^    이제 2014년인가 했는데 벌써 1월 하고도 12일 입니다.    요즘 미국과 캐나다는 이상 저온과 폭설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곳 뉴질랜드는 한여름이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네요.    아마도 지구 전체가 기온이 낮아진 것 같습니다.        2013년을 은혜가운데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2014년을 또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뉴질랜드 Bible Believers 모임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올바른 말씀과 바른 교리로 주변을 세워나가는 한 해가 되길 기도 드립니다.    저희 모임을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 6차 모임을 <아 래> 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이 안내를 보시고 함께 참여하는 분들이 더해지길 바랍니다.                      <   아      래   >   1.일자와 시간: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저녁 7시   2.장   소 : **번지 Smales Rd. East Tamaki, Auckland(East Auckland)   3.내   용 : ‘요한계시록 바로 알기’(김** 형제님 저)   3. 공중강림과 휴거(216쪽~229쪽)   지난번 5차 모임에서 다 하지 못하고 남은 부분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4.연 락 처: 휴대폰 027-779-8877 (최문선)       뉴질랜드를 비롯해서 한국과 또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바른 성경 신자 모임이 날로 흥왕하길 기도 드립니다.       샬롬.  
2014-01-12 17:35:26 | 최문선
안녕하세요?   우리의 구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구원만큼은 확실해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   구원 방정식   문장으로 길게 쓰인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 문장을 잘 읽고 분석하여 여러 변수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한 뒤 방정식을 세워서 풀면, 어렵고 복잡해 보이던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을 경험 적이 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복잡해 보이는 인간의 구원 문제도 몇 개의 변수로 나누어 요약/정리하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그것들을 만든 존재 즉 메이커가 있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펜, 의자, 자동차, 책 등이 모두 메이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메이커는 자기가 만든 물건이 설계대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한 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물건은 따로 분리하여 폐기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메이커가 있습니다. 물건도 메이커가 있는데 하물며 물건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고등 존재인 사람이 무(無)에서 그냥 생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만든 메이커 역시 자기가 만든 사람이 자신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를 반드시 판단합니다(행17:31; 히9:27). 이 같은 심판에서 부적격자로 드러난 사람은 메이커가 폐기합니다. 성경은 이 같은 메이커를 ‘창조자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심판 받은 뒤 폐기되는 것을 ‘영원토록 지옥 불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계20:11-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폐기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만든 메이커가 있는가,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구원의 방해물 사람과 물건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곧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자신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부적격자로 판정하시는 근거가 죄라고 말하는데 성경적 의미의 죄란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사람을 만드시며 사람이 자신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고의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분의 목적에서 벗어나 그분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를 지었습니다(롬3:23). 첫 사람 아담에게서 시작된 이 죄의 독은 사람의 핏줄을 타고 전 인류에게 퍼졌습니다(창5:3; 롬3:10). 그 결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아담과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에게 육체적 사망이 임했고(롬6:23) 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서 지옥 불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셔서 티끌만큼의 죄도 차마 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합1:13). 그러므로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과연 나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구원 계획 그러면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공장에서 갓 만들어진 펜이 하나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이 펜은 쓰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설사 이 펜이 자기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해도 그것이 자기를 고치거나 혹은 그 옆의 펜이 그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같은 범주에 속한 것들이 서로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다 해도 고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앓고 있는 죄라는 병 역시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 즉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마더 테레사, 교황, 교주, 목사, 사제 등이 절대 고칠 수 없습니다. 펜을 설계한 메이커만이 펜을 고칠 수 있듯이, 사람과 차원이 다른 외부의 고등 설계자 즉, 사람의 설계자인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의 독을 제거함으로써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행4:12).   4. 구원 방법 사람의 죄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처녀 탄생을 통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죄 없는 삶을 사시고 온 인류를 대신하는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단번에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마1:23; 고후5:21; 히9:26).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죄가 되셔서 하나님의 뜨거운 지옥 불 심판을 다 감당한 뒤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몸으로 부활하셔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기나 햇빛같이 사람에게 필수불가결 한 모든 것을 거저 주십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 역시 오직 하나님께서 선물로, 은혜로 거저 주십니다(롬5: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속죄 사역을 믿기만 하면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로, 선물로 공짜로 구원받습니다(엡2:8-9).   5. 구원의 확신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말을 믿습니까? 그 사람의 신실함에 근거해서 믿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 곧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분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말기 바랍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창조자 하나님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기에 우리는 그것이 진리임을 믿습니다(요14:6).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롬6:23).   6. 구원 초청 인생은 마치 기차역을 향해 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단 몇 시간을 아끼려고 열차 시간에 늦지 않게 부지런히 역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이라는 무궁한 시간을 아끼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은 언제 당신에게 닥칠지 모릅니다(히3:13). 나이와 직업과 성별과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오늘 그 시간이 당신에게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방법을 그대로 믿고 수용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태어나는 기적이 당신에게 일어납니다(벧전1:23). 오직 그분의 말씀만을 신뢰하십시오. 그분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값없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미루지 말고 오늘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7. 구원 방정식의 요소들 설명 1.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온 세상 만물은 다 만들어졌습니다. 즉, 창조자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가장 고등한 생명체 역시 그냥 우연히 생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메바 같은 단순한 생명체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꾸며낸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크기를 제대로 측량하기조차 어려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지구가 그냥 생기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든 창조자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첫머리에서 그 창조자를 ‘하나님’(God)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연히 우주보다 더 크고 권능이 월등하게 넘치는 분이어야 합니다. 또한 온 세상 만물보다 훨씬 더 고등한 존재여야 합니다. 또한,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창조자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스스로 계신 이(I AM)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출3:14).   이 말씀이 보여 주듯이,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자시요,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분이십니다. 이 온 우주 공간에 “나는 I AM이다.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영원 전에도 I AM이시요, 지금 이 순간도 I AM이시요, 영원한 미래 속에서도 I AM이신 분 즉, 변함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 바로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권능과 위대함과 전능함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무한대의 지혜와 능력과 위엄과 영광과 공의와 사랑과 진노를 지닌, 측량할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가 영원토록 무한하듯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와 심판 역시 영원토록 무한합니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   이렇듯 무한한 권능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구는 먼지보다도 작고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은 먼지의 100만 분의 일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거룩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창조자 하나님은 창조물과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요, 창조자이시고 사람을 포함한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다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자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2. 사람 (1) 사람의 창조와 타락 사탄 마귀는 원래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셋째 하늘에서 주님을 섬기던 존재였습니다. 사실 그는 매우 특별한 창조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는 천상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겔28:14).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마음속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는 불법이 생겨나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반역을 일으켰다가 결국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마귀는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마침내 이브에게 접근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였고 또 이브는 그것을 아담에게 먹게 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심연(深淵)의 간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에서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금지 항목을 두셨는데 그것은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인 자유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치였습니다. 이 제약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선하게 사용하여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를 따르게 되었고 그 결과 죄가 그에게 들어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였습니다(창1:26-27).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형상 중 일부만을 유지한 채 본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뒤 아담의 후손들은 다 아담의 형상에 따라 죄 가운데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창5:3).   죄로 인해 사람은 다 결국 늙고 병들어 육신적으로 죽게 되었고(창5:5) 또 죽는 날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사람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 곁을 떠나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 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 사람의 상태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엡2:1-3)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 즉, 죄 가운데 태어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이제 막 새로 구매했지만 아직 개통되지 않은 스마트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에 가입되지 않아도 이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전화기로서의 본연의 역할 즉 의사소통은 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개통되지 않은 스마트폰처럼 거의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인간 본연의 존재 목적 즉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은 할 수 없습니다. 통신사에 가입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사람도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가입해야 그분과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구원받아 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최신 스마트폰이라 할지라도 통화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전화기라 할 수 없습니다. 구형 전화기라도 깨끗한 음질로 통화가 가능하다면 전화기로서의 자격을 충족시킵니다. 전화기의 생명이 통신사와의 연결에 달린 것처럼,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과의 연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명예와 권세와 학식이 높다 해도 통화가 안 되는 전화기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성경대로 그는 마귀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입니다(요일3:10; 엡2:3). 또한, 아무리 선행을 열심히 하여 하나님께 도달하려 한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의 선행과 의로운 행위는 다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합니다(사64:6).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과 같이 달리고 그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 그분과 같이 부활하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구원받은 사람은 즉시 천국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앉아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이란 이처럼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복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엡2:4-7).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토록 놀라운 ‘인간 구원 드라마’를 천사들과 하늘의 영적 존재들에게까지 드러내 보이시고자 하십니다(엡3:10). 이로써 하나님의 친절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다가오는 영원한 시대 속에서 무궁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 안에는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구원에서 사람의 행위가 이바지하는 것은 0%이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는 100%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행위는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으로 자신을 갈고닦아 시간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뒤에는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가 드러나야 합니다.   (3) 사람의 구속(救贖) 성경에서 ‘죄’란 근본적으로 ‘설계자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창조물이 창조자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 곧 죄이며 이 죄의 뿌리에서 나오는 열매가 바로 우상숭배, 살인, 간음, 동성연애, 시기, 질투 등의 ‘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에 이르도록 즉 자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는 성경 기록대로 죄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 마치 설계대로 나오지 않은 불량제품이 폐기되듯 지옥 불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의 창건 이전에 한 방법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가 무한하시고 사랑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이 두 성품 중 어느 하나를 양보하거나 완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한 공의와 무한한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시며 사람을 구원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온 우주 공간 어디에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충족시킬 완전한 희생 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죄가 되어 죽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완전한 공의의 심판을 그분에게 쏟아 부으셨고 이로써 자신의 거룩함과 공의를 완전히 충족시키셨습니다(고후5:21). 또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의 희생물로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자신의 완전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시면서 사람의 모든 죄를 깨끗이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세상의 창건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6).   3. 믿음: 구원의 핵심 요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아 구원받으려는 사람에게 단 하나만을 요구하시는데 그것은 곧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사람의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이런 종교들은 악행을 극복하기 위해 선행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주인에게 귀여운 강아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강아지가 길에서 놀다가 갈비뼈다귀를 발견하였습니다. 강아지는 그것이 먹고 싶었지만 자기를 아끼고 보호해 주는 주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그것을 먹지 않고 물어다가 주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뼈다귀를 보자마자 즉시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오히려 강아지를 나무라며 더러워진 강아지의 몸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마. 네가 가져온 이 뼈다귀가 오히려 집안을 더럽게 하지 않니? 너는 그저 나만 바라보고 나를 믿고 기뻐하며 내 품 안에서 마음껏 뛰놀면 돼.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다야.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바로 이 쓸모없는 갈비뼈다귀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선행, 위대한 업적, 찬란한 지식, 고매한 철학, 각종 종교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뼈다귀 즉,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더러운 뼈다귀에 불과합니다.   믿음이란 마치 강아지가 제 주인을 알아보고 그의 보호를 확실히 믿으며 그의 품에서 기뻐 뛰어놀 듯이, 사람이 자신을 만든 창조자 하나님을 알아보고 믿으며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의 품 안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것입니다. 즉, 창조자 하나님 외에 나를 보호하고 나를 온전하게 해 주실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기뻐하는 단순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입니다.   4.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선한 행위나 재물, 노력, 학식, 지혜 등이 구원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요? 아니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일까요?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해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요소인 공기나 햇빛 등은 사람의 공로나 행위와 상관없이 거저 주어집니다. 이것들은 그 가치가 너무 커서 감히 어느 누구도 그 값을 지불하고 누릴 수 없습니다.   70-80년의 인생에서 누리는 모든 자연환경도 사람이 그 값을 지불할 수 없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사는 삶을 과연 사람이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공짜로 즉,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100%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엡2:8-9).   5.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거대한 개미집이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이 지나가다 그것을 발견했는데 공교롭게도 저 멀리 홍수가 나서 잠시 후에는 사나운 물길이 개미집을 온통 집어삼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량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개미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수많은 개미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이 개미가 되어 개미들 가운데로 들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 즉, 지금 빨리 개미집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으면 잠시 후 홍수로 몰살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성자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직접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행17:30-31).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누구에게나 회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증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장차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날에 심판자로 이 세상에 임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친히 구원의 길을 여시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렇듯 오직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으므로 기독교는 타종교와 달리 절대적으로 배타적입니다. 그러므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와 WCC 종교통합운동 등은 모두 하나님과 상관없는, 진리를 떠난 사람들의 어리석은 종교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온 백성은 이것을 알라, 곧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곧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이 온전하게 여기 너희 앞에 서 있느니라. 이분은 너희 건축자들이 업신여긴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행4:10-12).   6. 선한 행위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의 구원에는 사람의 그 어떤 행위도 일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에 따라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훈련하며 나날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선한 행위를 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로 거저 주시는 구원에는 어떤 차등도 두지 않지만, 본래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구원 이후에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달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선수가 상을 바라보고 결승점까지 전력을 다해 달리듯이, 생을 마감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섬기며 복음을 알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선한 믿음의 행위를 신실하게 행해야 합니다(히11:6).   7. 불신자에 대한 최후의 심판   보상에만 하나님의 공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형벌에도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가 적용됩니다. 생전에 심히 악한 죄를 저지르고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며 하나님께 대항한 사람들, 복음을 증언하는 크리스천들의 경고를 수없이 받고도 이를 무시하고 경멸한 사람들은 유황으로 타는 불 호수에서 더욱 뜨거운 형벌의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엄중한 공의를 영원토록 쉼 없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계20:11-12).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서 죽은 자들이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다 불려 나와 크고 흰 왕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 뒤에 불신자들은 사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지옥 불 속에 들어가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8. 구원 초청 아침 출근 시간에 밖으로 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그야말로 분주하게 단 몇 초를 아끼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지나가는 시간은 양초가 불꽃을 내며 연소하여 없어지듯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입니다.   흐르는 물과 같은 시간 속에 사는 사람에게 절실하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장성해서 결혼하면 자녀를 낳고 행복한 삶을 위해 땀을 흘리며 일합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누구나 안정되고 행복한 노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정작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기도 힘든 세상이기만 그런 노년은 고작해야 20년에서 길면 30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에 펼쳐지는 끝없는 시공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처럼 각종 보험이 넘쳐나는 때에도 죽은 후에 삶을 보호해 줄 보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험이 제공하는 안전장치라고는 고작해야 죽은 후에 유가족들에게 지급되는 사망보험금 정도뿐입니다. 이것 외에는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이 언젠가는 꼭 죽어야 하는 사람이 맞이할 냉정한 현실입니다.   당신은 죽은 뒤의 삶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창조자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시간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언제 당신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이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셨다면 그 문제를 더는 뒤로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이 시간에 당장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중의 아무도 죄의 속임수를 통해 강퍅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히3:13).   기회는 항상 당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특히 구원의 기회를 놓쳤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한대의 영역에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무궁토록 바로 당신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맹렬한 속도로 날카롭게 돌아가는 원형의 칼날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칼날이 닿기 직전까지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칼날과 당신이 아직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당신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그 날카로운 칼날에 당신은 결국 파멸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당신 앞에 놓인 날카로운 칼날을 저 멀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누구든지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값없이, 거저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놀라운 특권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온 세상 우주 만물을 공동으로 상속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무지와 교만과 고집을 내려놓고 지금 바로 당신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끝끝내 진리를 거부하고 마지막 기회마저 소진하며 이 세상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십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지금 당장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벧후3:9-10).
2014-01-10 11:35:42 | 관리자
  동물 가운데 늑대만큼 억울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이전의 글 ‘왜, 늑대인가?’에서 잠시 다루었듯이, 늑대는 인간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동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사람들로부터 학살을 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끊임없이 테러(terror: 공포, 그리스어 ‘terrior’에서 파생된 됨. ‘terrorism’은 공포의 확산의 뜻을 지님.)를 당해온 셈입니다. 그런 피해자인 늑대를 두고, 우리 사회는 단독테러를 자행하는 범행을 일컬어 일명, ‘론 울프테러(lone wolfe terror)’라고까지 명명합니다. 늑대가 들으면 억울해서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죄(crime)와 테러리즘(terrorism)이라는 용어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팁(tip)을 드리자면, 그것은 범법동기에 의해서 구분됩니다. 범죄는, 가해자 자신(들)의 이익이 동기가 되어 자행하는 범법행위이지만, 테러리즘이란 정치․종교․이념 간의 갈등이 동기가 되어 자행되는 범법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테러(terror)의 개념이 바라보는 각도(입장)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 일제치하로부터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던진 ‘윤봉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의로운 순국열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를 정치적인 테러분자로 여기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한 편에서는 영웅, 다른 편에서는 잔인한 킬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도가 인간과 늑대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15c 이후 인류는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땅을 개간하면서 늑대들의 구역을 찬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자신들의 영역과 무리(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목숨을 내놓고 다투는 그들만의 습성이 있는데, 그러한 늑대의 습성을 알리 만무했던 우리 인간과의 갈등은 그때부터 불가피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영토를 찬탈당한 늑대들은 전처럼 사냥감을 찾기가 어려워져 새끼들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개간한 농가의 양, 염소, 말들을 습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늑대는 인간을 습격하는 ‘잔인한 킬러’라는 오명이 생겼고, 그 이후로 사람들은 늑대를 총, 덪 등으로 사냥하기 시작 했으며 심지어는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마구잡이로 죽여 댔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결과로 사람들은 늑대의 방해가 없이 땅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늑대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기는 시국을 맞게 되었습니다.(참고로 늑대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간 포식자의 위치를 담당합니다.)     이처럼 ‘오해와 편견’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늑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 셈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봤을 때, ‘오해와 편견’이 만들어지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요소가 필연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는 정확한 지식이나 정보가 결여된 ‘선입견’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익관계에 따른 타협(탐욕)’입니다.     심리학에서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불리 우는 용어가 있습니다, 초두효과란, ‘초기의 정보 즉, 첫인상이 나중의 정보보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형성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선입견은 이러한 초두효과로 인해서 생겨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입견의 문제점은 한 번 뇌리에 고착되면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좋지 않은 선입견은 자기방어 기재로 작용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믿고 싶어 하는 타협성이 강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한비자(韓非子)는 "사람들은 뱀을 보면 놀라고, 뽕나무 벌레를 보면 소름끼쳐 하지만 어부들은 손으로 뱀장어를 잡고 부녀자들은 누에를 친다." 라며 이익이 있는 일 앞에서는 누구나 용사처럼 용감해진다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선입견과 이익관계가 하나로 결합하게 되면 선입견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더 없이 좋은 구실이 되어줍니다. 설령 선입견이 이익관계에 결부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또 다른 구실을 만들어 내고 자신을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마치 이브가 뱀의 말에 꼬임당해 선악과를 탐하기 위한 구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듯이 말입니다.<창 3:3> 다시 말해서, 이익을 넘어 탐욕이 되어버리면 기존의 좋은 선입견도 더 이상 귀찮은 것이라고 치부하게 되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명확한 기준이 되는 법(法)도 무시하게 되어 탐욕을 위한 타협에 우정을 싹티우며 손잡을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그런 유의 사람에게는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 예로, 자살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의 극단주의자들이 이러한 유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한 가지 예를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테러집단은 이슬람교의 부흥을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12살 전후의 어린 소년 병사들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먼저 주입시키는 내용은, 이슬람 외에는 구원이 없으며 이슬람 교리를 핍박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강하게 응징해야 한다<꾸란 8:39, 9:123, 47:4>는 거짓 교리 입니다. 더 나아가 특히, 기독교인들과 싸울 때는 가차 없이 벌하라<꾸란 8:57>고 합니다(그 방법으로는 목을 베는 것인데, 김선일 사건이 그와 같은 사례입니다). 그 같은 교육을 받은 소년병들에게는, 이슬람을 반대하는 모든 종교는 응징의 대상이 되는데 그들에게 특히 기독교는 가장 나쁜 종교이면서 그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닌 오히려 알라의 뜻이라는 정당성이 선입견으로 뇌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면 행동적인 것을 요구하게 되는데, 행동적인 실천을 요구하기 위해서 그들은 구원관과 관련하여 내세에 주어지는 인본주의적 상급(이익)을 가르칩니다. 그 내용은, ‘모두가 죽으면 연옥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다가 죄의 정도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으로 심판 때에 갈라지게 되는데, 단지 직통으로 천국에 가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알라를 위해서 순교(테러행위)를 당하는 것이다<꾸란, 4:74, 9:89>. 그리고 그 순교자(테러분자)는 포상으로 천국 가는 첫날 72명의 미인들과 성관계를 즐길 수 있는 정력이 부여된다.’ 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어이없는 비상식적인 교리입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에 목숨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몸을 폭탄과 함께 내던지는 어리석은 일을 자행합니다. 이처럼 ‘선입견’과 ‘이익관계의 조화’는 상식을 뛰어넘는 ‘사탄의 절묘한 계략’으로 활용 됩니다. 그런데, 사탄의 이러한 계략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인가? 답은 아닙니다. 현재 기독교에도 사탄의 탐욕스러운 인본주의 교리가 우리의 신앙 가운데 ‘오해와 편견’이라는 열매로 탐스럽게 무르익고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짜 신도들도 넘쳐 납니다. 참된 성도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가짜 성도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가짜 성도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이 되어주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해하고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웃을 향한 지독한 사랑까지도 흉내 내는 일도 가능하며, 심지어는 인류애도 품어냅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에게는 자신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가짜 성도처럼 장기적으로 흉내 내기란 불가능합니다. 물론 가끔은 위선적인 행동으로 남들에게 좋게 보이려하는 그릇된 일도 하지만 그 때마다 성령님의 자극으로 자신들이 곧바로 알게 됩니다. 가짜 성도들이 믿는 하나님은 결국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기독교는 소위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폄하할 때 표현하는 개독교가 되어 버렸다고 사람들이 종종 표현하는데,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 참으로 씁쓸할 뿐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탐욕으로 마귀와 손을 잡은 이 땅의 기독교는 온통 ‘오해와 편견’으로 조장된 가짜 하나님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가짜의 정체는, 인본주의적 산물인 복(福) 사상의 주체가 되는 맘몬입니다. 맘몬을 섬기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인양 믿고 있는 가짜 성도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바른 교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바른말을 하는 그들을 교세라는 뒷배를 이용하여 이단으로 매도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그 가짜 하나님(실상은 맘몬)이 뭔가 더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맘몬이 하나님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맘몬의 능력으로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소위 성령님의 열매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만의 확증이라고까지 너스레를 떱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들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대가를 주님 오신 날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슬피 우며 이를 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자신들이 주님을 오해했다고 변명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마태복음 7:21~23> 우리 손 안에 쥐어져 있는 진정한 말씀(KJB)만이 그들의 심판자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작금의 기독교의 행태에 대하여 알파늑대(우두머리)에게 소감을 묻는다면, 알파늑대는 이렇게 말을 할을 할 것 입니다. "우리에게도 신은 있어. 우리 신의 이름은 대자연(大自然)이지. 자연은 여태까지 우리 늑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허락하고 제공해 주었어. 우리가 뭘 잘해서 그렇게 허락해 준 것이 아니라, 자연은 원래 그런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을 대상으로 너희들처럼 감히 거래를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 우리에게 자연은 오직 경배의 대상일 뿐이지. 자연은 우리가 있기 이전에 스스로 존재<출 3:14>하고 있었어. 그래서 자연 앞에서는 우리 늑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굴복할 수밖에 없지. 우리는 자존심이 강해서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대자연 앞에서 만큼은 굴복할 뿐만 아니라 자연이 정해놓은 규칙(순리)대로 순종하고 무엇보다 두려워하며 살지. 우리는 그것이 우리 늑대가 오랫동안 멸종당하지 않고 살아온 지혜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어<잠 1:7>. 우리는 너희들이 믿는 신(神)을 잘 몰라. 하지만, 우리도 우리에게 부여해준 모든 대자연을 보면서 자연이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는 신성을 모른 척 변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롬 1:20>.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자연은 잔인하고 사악한 너희 인간을 존중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그것도 많은 권위를 부여해주면서 말이야. 너희가 잔인하다는 소문은 조상 때부터 전해져 내려왔는데 듣자하니, 너희들은 너희들이 믿고 싶은 대로 '오해와 편견'을 만들어 내는데 능숙하다지?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 조상(늑대)들을 죽여 왔을 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진정으로 믿는 신(神)까지도 너희 손으로 잡아 죽였다며? 그런데도 너희 신(神)은 너희를 용서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 우리는 단지 자연이 너희들에게 부여해준 권위 때문에 너희들에게 복수를 하지 못했지만, 너희 신(神)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너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하여 기꺼히 목숨을 내놓으셨다고 하던데? 아니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게 구원을 위한 계획이었다? 이런 스토리는 소설에서도 듣도 보지도 못한 믿겨지지 않는 일인데 말이야! 만일 그 이야기가 정말로 사실이라면 너희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존재임에 틀림이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너희들을 부러워하지 않아, 왜냐고? 우리는 너희처럼 잘못된 선입견과 탐욕에 가득 찬 추악한 냄새를 풍기면서까지 안락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 우리가 너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냄새 때문이야.“     인류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한 번도 이성적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수 많은 오해와 편견속에서 인류는 지금까지 흘러왔고, 여전히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해답을 늑대로부터 찾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늑대가 제시해준 비결이라고는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침묵’이라는 단어 였습니다. 늑대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결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라는 듯 권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 찬 한 세상. 그리고 이 새대. 이제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수 많은 오해와 편견으로 시험이 찾아 오지만, 어쩔 수 없는 죄 많은 인간이라서 용서를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희생물을 찾지 않고도 죄 없는 늑대처럼 상대를 용서할 수 있음이 가능해 졌기 때문입니다.   <요 13:34>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2014-01-09 01:40:07 | 김상진
안녕하세요? 2014년에는 여러 가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의 최문선 자매님께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365일 동안 매일 낭독해서 유튜브에 올리기로 하셨습니다.앞으로 최 자매님의 성경 읽기 스케줄에 따라 성경을 읽거나 들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링침례교회 사이트에서 상단의 녹색 메뉴 중 설교와말씀 메뉴에서 시리즈말씀 안에 성경낭독 메뉴를 추가하였습니다.앞으로 사이트 담당자가 링크를 걸어놓을 것입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3&cate_name=성경낭독 하나님의 말씀이 큰 영광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흠정역 연대기 성경 낭독.1월 1일(창세기 1장-3장)http://www.youtube.com/watch?v=KNKyrvo-kEo **킹제임스 흠정역 연대기 성경 낭독.1월 2일(창세기 4장-7장)http://www.youtube.com/watch?v=8ccSMwDxkVA
2014-01-08 14:42:37 | 관리자
위선(僞善)은 참으로 집요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집요함이 마치 그림자와 같습니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달음질을 해도 전혀 거리가 벌어지지 않고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아옵니다. 잠시 마음의 긴장을 풀면 어느덧 위선은 사람의 내면 깊숙이 둥지를 틀고 곧바로 증식을 위한 세포분열을 시작합니다. 위선과 관련된 성경 구절은 신구약을 통틀어 모두 42번 등장합니다. 위선, 위선자들에 해당하는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는 hypocrite, hypocrites, hypocritical, hypocrisy, hypocrisies, dissemblers, dissembled, dissimulation 등이며 특히, 신약성경에 27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위선(僞善) 관련 구절들 중에 마태복음 7장 1~5절과 누가복음 6장 41~42절에 기록된 동일한 예수님의 교훈을 중심으로 성경이 위선과 위선자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위선이 사람의 내면에 파놓은 은밀한 함정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위선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기 중에도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중화기에 속합니다. 매우 선한 사람조차도 한순간에 위선의 늪에 빠질 수 있고 복음 사역에 매진하던 교회나 단체가 위선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심지어 와해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마치 누룩과 바이러스처럼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기에(눅12:1) 삽시간에 대중들을 선동해 위선적 사고와 행동 아래로 헤쳐 모이게 만들어 한 시대를 타락하게 하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합니다. 먼저 위선의 독특한 기능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심리적 좌절을 경험하게 될 때 또는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될 때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과 단체 그리고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찾게 합니다. 그런 후에 외부로부터 포착한 문제를 자신의 내면에서 확대 재생산하고 왜곡시켜 집착하게 만듭니다. 41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또 너 스스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찌 네 형제에게 이르기를, 형제여,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주겠노라, 할 수 있겠느냐? 너 위선자여,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 뒤에야 네가 분명하게 보고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리라. (눅6:41~42)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가 빠져버린 함정의 특징이 타인의 잘못과 부정적인 면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정확하게 잡아내지만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 모순의 극치임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서 위선자가 집중하는 타인은 우선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가까이에 있는 동역하는 형제/자매일 경우가 많다는 것도 중요한 점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아주 작은 먼지로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고 사실 시간이 지나면 눈물 등에 의해 저절로 제거되어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사안입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을 적용해도 무방할 정도의 것으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지만 크게 걱정하거나 공론화할 정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위선자의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어떤가요? 물론 물리적으로 눈 속에 기둥만큼이나 큰 나무인 들보가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비유이기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들보는 눈의 모든 기능을 영구히 상실시키고도 남을 치명적이고 위급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선자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 감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부산물과 같은 형제의 눈 속에 작은 티에 대해서는 맹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사실 이 정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온유하게 문제에 대한 권면의 말을 건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이라는 함정에 빠진 사람은 절체절명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형제를 몰아붙이고 공격하며 급기야 공동체 전체를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할 일은 형제의 눈 속에 미세한 티끌을 놓치지 않는 극도의 예민함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내면은 이미 파국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데 아직은 그냥 두어도 괜찮은 형제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이 어리석음은 결국 심각한 위기로부터 방치된 자기 자신과 무모한 위선자의 비판의 칼날을 감내해야 하는 형제/자매와 공동체 모두를 영적으로 황폐하게 만들고 맙니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없고 눈 속에 거대한 들보로 막혀 있는 자가 어찌 티끌이 들어간 사람의 눈 속에 바람을 집어넣어 그 부스러기를 제거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누가복음 6장의 위선자는 그런 명백한 자신의 모순과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내겠다고 소리를 칩니다. 내 의견과 관점이 정확하니 내 말을 듣고 내가 제시한 해결책을 따르라고 호언장담하는 위선자는 교회 안의 지체들과 공동체에 커다란 짐이 될 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위선자가 발견한 형제의 눈 속에 티는 당장은 그냥 두어도 되지만 제거해 버린다면 좋을 것이고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커다란 들보를 눈 속에 간직한 위선자가 그 티를 제거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눈 속에 있는 들보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코가 눈인지 입이 눈인지 분간조차 못하는 위선자의 손은 치료하고 해결하는 손이 아니라 흉기로 돌변할 것이 뻔합니다. 문제를 발견한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위선자의 좌충우돌하는 일련의 행동은 사사건건 지체들과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아주 작은 위선이라도 사람의 내면에서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내버려두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에게 진리의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해결책을 꺼내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치명적 문제인 들보에 대해 집중하고 깊이 생각하라는 교훈입니다(마7:3). 자기 내면의 어떤 굽어진 요소들이 거대한 들보라는 문제를 키웠나를 차분하게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이 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입니다. 위선자의 눈 속에 들보를 빼내는 첫 시작은 자신의 눈 속에 들보를 정확하게 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눅6:42) 눈 속의 티가 점점 커져 시야를 가리는 들보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또한,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들보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부지런히 자신을 말씀의 거울로 비춰보고 자신의 내밀한 마음을 속속들이 성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성급한 행동보다 먼저 깊이 자신의 속 중심까지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 위선의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치료제입니다.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6장에 나타난 위선자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참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 유대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위선자 그룹이었으며 종교 시스템의 전도사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도 자신의 참모습을 정확히 보지 못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그것은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마23:27)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곤경에 빠트릴 함정을 파는 행위가 정당하고 선한 것이라 여겼기에 자신들의 악행을 절대로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자! 오늘날 교회 안에 널리 퍼지고 있는 배교의 물결을 보십시오. 이 가증한 물결의 최전방에 서 있는 타락한 기독교계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이런 악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렇게 행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밤 베개를 베고 누워 잠들기 전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 짧은 몇 분의 시간조차 두려워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져 항구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스스로 장애를 입힌 사람들입니다. 1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 2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딤전4:1~2) 이 시대가 더욱 빠르게 극악한 배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것은 소수의 기독교 지도자들만이 위선의 독주에 취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이런 심각한 배교현상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하기만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성경에 선명하게 기록되어있는 '위선의 역사'가 주는 뼈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지 않았기에 발생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적어도 현시대의 기독교는 예수님 초림 당시 유대교보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 선하며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보다 오늘의 목사와 신학자들은 월등하고 바르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이 무모한 믿음은 성경의 교훈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 (전1:9)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대언자들이 있었던 것 같이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니 그들은 정죄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자기들 위에 신속한 파멸을 가져오리라. (벧후2:1) 은사주의로 교인들을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자들로 전락시키고 WCC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도 자신을 복음주의자라 외치며 만담가와 개그맨처럼 우스갯소리로 설교시간을 장식하는 타락한 목사들도 강단에서만큼은 다들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럼 그 위기는 도대체 누가 불러온 것일까요? 각자 다 선한 선생이 되어 한국교회의 위기와 해법을 논하는데 과연 그 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누구란 말입니까? 독주에 진탕 취하고 싶은 알콜중독자도 처음엔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딱 한 잔 만!!'이라는 위선의 구호를 외칩니다. 이처럼 한국교회를 어지럽게 만든 배교의 장본인들이 하나같이 강단에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를 걱정하고 위기라고 떠드는 것은 자신의 배교행위에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한 일종의 위선입니다. 가증함으로 가득한 이런 위선적 설교에 취해 교인들은 '그래 아직 우리 교회는 괜찮은 교회야.' '아직 우리 교회는 살아있어.' '그래도 우리 목사님은 이 시대의 모순과 문제를 분별하는 제대로 된 분이군.'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깊은 늪 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위선으로 가득 찬 거짓 대언자, 거짓 선생을 구별하는 간단명료한 기준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번지르르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구체적인 행동들입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진리의 길을 택한 행동들이 그의 세월의 앨범 속에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15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16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변질된 남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마7:15~18) 위선자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자신의 치명적인 문제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더불어 위선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모순은 자신의 치명적 문제는 제쳐 두고 타인의 작은 잘못과 문제를 교정해보려 달려드는 무모함입니다. 정리하면, 위선이라는 모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마7:3)”와 “또 너 스스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눅7:42)”의 말씀처럼 먼저 자신의 문제를 감지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실체를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영적 장애를 겪게 하는 자신의 치명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야 형제/자매의 영적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교회와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 원리입니다. 성경은 많이 선생이 되길 권장하지 않고(야3:1)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밝혀내는 논박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마7:1~2, 눅6:37). 물론 한편으로 성도는 시대를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성경을 기준으로 바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고전6:2).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반드시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허물은 없는가, 나에게 부족함은 없는가, 내 생각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가를 항상 먼저 살피는 사람이 지혜롭게 위선의 은밀한 함정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논쟁과 논박에서 승리한 사람보다 한참이나 성숙한 주님 보시기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도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 저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엄격하고 빈틈없이 자신을 살피고 온유하게 지체를 섬길 수 있는 지혜와 명철함이 임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갈6:1)
2014-01-08 14:36:13 | 김대용
킵바이블 형제,자매님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소식을 전해야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 훌쩍 한 해가 지나가버렸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시고, 광주 은혜 침례교회에 관심을 갖고 계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바른 말씀으로 바른 신앙을 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2013년 5월 부터 김규태 형제님 댁에서 저희 부부와 김선희 자매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김형제님 부부의 섬김으로 맛있는 음식이 늘 넘치고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2013년 7월 경 부터 나상규 형제님의 요청으로 나형제님 사무실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드디어 7월 28일 사랑 침례 교회에서 저를 비롯한 약 12명의 광주 거주 성도분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8월 14일, 15일은 정동수 목사님을 모시고 킹제임스 성경과 바른 교리를 광주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성경 사경회를 열었습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른 말씀을 알고자 갈급해서 산전수전(?) 겪은 성도님들이 한 두분 씩 오셔서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2월 25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탄성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넘치는 하루였습니다!!!                                                                                                                                                    다시금, 김규태 형제님 댁에서 모여서 이지아 자매님의 음식 솜씨와 함께 나상규 형제님이 준비한 삼겹살과 싱싱한 굴을  형제님들이 정성스럽게 구었습니다 너무도 맛있어서 계속 먹다가 배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모두들, 교회를 이루어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모이는 수가 거의 30명이 되어서 모임 장소를 위해 건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같은 생각으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대한 같은 확신을 갖고, 바른 교리에 대한 같은 믿음으로 광주 은혜 침례교회가 출발하였습니다 율법주의,은사주의,거짓 교리등에 빠져 헤매이다가 이제야 진정으로 말씀에 기초한 바른 신앙을 하겠다는 한가지 결심으로 모였습니다. 동일한 고민 가운데 있다가  찾아 오시는 분들을 위해 언제든지 환영하는 마음과 섬기는 마음을 갖도록 다짐하고 있습니다. 광주 은혜 침례교회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연락 바랍니다 한재석 형제 : 010-8978-8275 ( 낮 12시 30분 ~ 1시 30분, 오후 6시 이후 )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우리 주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형제,자매님들의 관심과 기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4-01-07 22:18:15 | 한재석
풀리지 않는 말씀으로 고민중입니다. 첫 번째 아론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후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됩니다. (출 32:01-06) 그후 그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인해 즉사했습니다. (레 10:01-02) 성경이 잘못되었을리는 없고, 저는 아론을 먼저 죽였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명한 답변을 기다립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장막절에 형제에게 먼저 올라가라 하시고, 나는 내때가 아니므로 올라가지 않겠다 하신후 은밀하게 올라가신 이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요? (요07:08-10) 속된말로 “거짓말“을 하실꺼 까지야 없었을 건데요... 아님 당신의 때가 갑자기 임했을까요? 용서하옵시고, 말씀을 밝히 열어 깨닫게 하소서..
2014-01-07 16:01:10 | 오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