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의 속담이 지난 토요일에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 이 글의 전체의 내용에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비꼬는 말도 아니며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경험담을 글로 올립니다.
토요일에 아는 목사님을 통해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맛 있게 식사를 하고 다른 목사님의 교회 서재에 가서 티 타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초대 했던 목사님께서 평소에 즐겨 드시던 중국 차, 일명 보이차를 드시는데 다른 목사님이 교회 성도님을 통해서 보이차를 구입하여 드시고 있다고 하여서 테스트를 해 볼테니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보이차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에 드시고 있던 보이차에 대해서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무응답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제가 추궁을 하였습니다. 대답하시기를 100%가짜 였다는 것입니다. 그 100%가짜인 보이차를 근처 교회 목사님이 아는 선교사님을 통해서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교회 성도님들한테 몸에 엄청 좋으니 많이 드시라고 선물까지 했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보이차가 80만원 어치가량 남아 있어서 처리 하는 것도 골치아파서 모르는 척 하고 구입한 근처 교회 목사님께 처분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난감했습니다.
100%가짜인 보이차는 아는 전문가를 통해서 들었다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발효를 시키기 위해 카바이트를 넣어 섞음으로 진짜처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우리 나라에 있는 보이차가 거의 가짜입니다.) 그럼 2~3년동안 그 보이차를 먹었는데 그 카바이트는 간에 엄청 안좋다고 하더군요. = 점심 초대했던 목사님의 이야기
그러던중 다른 목사님과 제가 대화를 했습니다.
다른 목사님 : 이를 어쩌나 교회 성도님이 사오셔서 지금까지 먹고있었는데 내 간이 망가졌겠네 남아 있는 이 보이차는 어떻게 하지? 걱정이되네 교인이 사준것인데
Me :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가짜인데 더이상 볼 필요 없잖아요
다른 목사님 : 그래도 성도가 사줬는데
Me : 가짜인데 더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간이 썩어 가고 있습니다. 더 몸이 망가져야 하겠습니까?
다른 목사님 : 아 아깝다. 버리기도 그렇네
Me : (속으로 답답해서 서재를 둘러 보았습니다.) 아 목사님. 목사님도 카리스 주석이 있네요. 그런데 그 주석을 BHS사본으로 주석을 써서 문제가 있는데요.
다른 목사님 : (충고하며) 이것으로도 충분해. 교인들은 알려줘도 몰라. 그것으로 설교해도 충분하니간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제가 그동안 킹제임스흠정역성경에 대해서 여러번 말을 건내었던 터라 그 말이 듣기가 싫었나 봅니다. 주변분들에게 틈만나면 흠정역 성경을 일부러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더 듣기가 싫었나봐요)
Me : (속으로 혼자 생각하며) 보이차를 드시고 간이 썩어가고, 교인들한테도 보이차를 먹으라고 할 수가 없어서 있는 보이차도 처분하려고 하면서도 왜 보이차의 문제를 보면서 완전한 성경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을까?(더욱 답답했습니다.)
점심 초대 목사님 : (중국 보이차 진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대익7572 라는 보이차의 기본이 되는 이 제품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보이차를 실험하는데 실험할때 이 대익7572와 비슷한 냄새가 나면 좋다고 합니다.
(들으면서 흠정역이 기준인데....)
시간이 되어 교회로 돌아오면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분들의 눈을 열어주세요! 저분들도 완전한 흠정역 성경으로 돌아오기를 소원합니다. 보이차를 보면서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가짜를 성도들에게 더 먹으라고 하지 못하고있습니다. 하나님 저분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더이상 헤매이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눅 12:54~57 ¶ 또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즉시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는도다, 하나니 참으로 그러하고 너희가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더우리라, 하나니 그렇게 되느니라.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과 땅의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어찌 이때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참으로 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평택 김경완목사
2013-10-15 19:05:51 | 김경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일(10월 20일)에 김문수 목사님께서 부산의 제일성서침례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구하는 분들이 오셔서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확신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일정 :
10:45-12:20경 예배 (방주로 들어오라 창6:9-18)
-1:00 식사
1:00-2:00 특강 (구원의 확신)
3:00-5:00 성경공부1 (부활)
성경공부2 (요한복음 3장)
장소 : 제일성서침례교회(부산시 금정구 장전3동 636-8)
찾아오시는 방법:
부산대 후문 밑 금정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일방통행로로 50m 정도 내려오면 우측에 위치
. 지하철 1호선 타고 온천장역이나 부산대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0분 거리 . 금정초등학교 하차하는 시내버스 이용 (77,80, 100-1, 121, 16, 16-1, 51, 100, 131, 144, 183, 1008, 130, 8)
문의) 011-866-1805(전경환 형제)
샬롬
2013-10-14 12:27:40 | 전경환
도대체 왜 극도로 행위 구원에 관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들 때문에 몇날 몇일을 고민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도대체 너란 인간은 믿음이 있긴 있는거냐 묻기도 합니다.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이후의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행함없는 믿음은 죽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전까지 믿음은 생기지않는것인가? 누구나 믿지않는 사람들에게도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 하신다란걸 알려 주셧다고 하셧는데요.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 마음으로 믿는것은 행위인지 아니면 믿음 자체 그러니까 행위의 반대 개념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지 궁금합니다...? (구원 받기전의 믿음과 구원 받은 이후의 믿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 믿음과 / 구원과 /행위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집어내질 못하겠습니다.
목사님
예레미야 강해 설교를 세번, 네번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또 들었습니다. 로마서 강해도요.
같은 강해인데도 매번 다른 말씀들이 귀에 들리는지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것도 모두다 하나님 은혜안에 거하는 것 이겠지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은혜아닐런지요.
감사드리고요.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같은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 됩니다만
하나님을 알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있어 이렇게 질문드리오니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수원에서 이승철 올림
2013-10-11 17:10:25 | 이승철
안녕하세요?
오늘은 미션소프트에서 나오는 딜럭스(디럭스)바이블 인터내셔널 버전 특가 판매에 대해 공지하려고 합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신학생들과 목사님들이 미션소프트에서 만드는 디럭스 바이블이라는 성경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격도 비싸서 35만원입니다(단 1개 사면 3대까지 설치 가능).
저는 주로 미국 소프트웨어(PC Study Bible)를 사용하는데 어떤 부분은 미국 것보다 훨씬 더 잘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 것은 600달러나 합니다(물론 영어로 되어 있지요).
정말로 디럭스 바이블은 한국 분들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소프트웨어입니다.
www.misoft.co.krwww.missioncom.co.kr 지금부터 6년 전에 저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거기에 넣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 보존 학회가 이단으로 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해에 거기 대표 목사님께서 제게 연락을 해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자기네 소프트웨어에 넣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한성서공회의 성경들(6종) 바로 다음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넣어 주면 파일을 주겠다고 했더니
대표님께서 흔쾌히 허락해서 지금은 미션 바이블을 소지한 모든 사람들에게 흠정역 성경이 배포됩니다.
적어도 수만 카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디럭스 바이블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모든 내용이 자동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아주 좋은 특징 중 하나입니다.
또한 에스라 성경 사전도 컬러 지도와 선도와 함께 탑재될 것입니다.
이제 흠정역 성경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흠정역 성경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 앞에 좋은 길들이 열릴 것입니다.
현재 미션 딜럭스(디럭스)바이블 인터내셔널 버전은 35만원입니다.
http://missioncom.co.kr/goods_detail.php?goodsIdx=325
그런데 저희가 이번 가을에 15% 할인하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특가 판매로 29만원에 한정량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심각하게 목회를 생각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려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꼭 필요한 자료가 될 줄 압니다.
구매를 원하면 성함, 주소, 핸드폰번호를 webmaster@KeepBible.com으로 보내시고 29만원을
256-031553-12-009(우리은행) 계좌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DSJ
2013-10-11 10:21:07 | 관리자
안녕하세요
호주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요즘 성경에서의 권위란 무엇인가 고민을 하다가 질문 글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킵바이블에서 검색에서 찾다보니 가르치는 자의 권위라는 말이 있던데
물론 성경을 올바로 가르친다는 가정이지만, 가르치는 자의 권위라는 말이 성경 말씀 어디에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여러 권위가 있는데
모두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데에 비롯된 권위가 아니라
남을 통솔하는 권위나 지배하는 권위 등도 나와있어서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라는 게 어떤 건지 아직 글이나 말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권위를 속시원히 정리,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경에서의 권한이나 권세는 권위와는 다르게 봐야할까요?
2013-10-10 19:43:07 | 전광명
안녕하세요?
2013년 10월 6일부터 히브리서 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47
다른 강해처럼 1장부터 13장까지 모든 절을 강해하려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매주 사랑침례교회 사이트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DSJ
2013-10-07 17:03:04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1년 동안 사랑침례교회에서 강해하고 설교한
로마서, 예레미야, 조직신학 1부를 MP3 CD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제작에 들어갔으므로 10월 12일경에 나올 것입니다.
이것 역시 사랑침례교회 미디어 선교 사역의 일환으로 제작하였으므로 무료로 드립니다.
혹시 국내에 거주하시는 분들 가운데 이 CD를 원하는 분들은
간단한 용도 설명, 매수, 성함,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서
minister@cbck.org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주문만 받습니다.
며칠 전에 올린 성경해석법 소책자와 함께 주문하셔도 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56
감사합니다.
DSJ
샬롬
2013-10-02 11:44: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2년 9월부터 시작한 예레미야 강해 설교가 어제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40번에 걸쳐 오전 예배에 귀한 말씀을 대언하게 되어 기쁘고 또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강해 노트 전체를 하나의 파일로 엮어서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01 우리는 대언자로 부름을 받았다02 하나님의 이혼소송03 내게로 돌아오라04 의인이 하나도 없다05 선한 길로 걷자06 성전의 허상을 깨자07 하나님을 자랑하라08 거짓 신들과 참 하나님09 말씀에 순종하라10 교만과 습관이 문제다11 인생에 기근이 올 때12 인생에 낙심이 올 때13 마음이 문제다14 영혼의 어두운 밤15 내 영혼의 어두운 밤16 말씀의 사람17 거짓 목사들을 피하라18 두 종류의 무화과19 좋은 무화과의 복20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21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22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으라23 시대의 표적 이스라엘24 시대의 표적 이슬람25 회개와 영광의 날26 새 언약의 행복27 믿음의 투자와 기도28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29 3.3.3 기도 약속30 약속 이행자31 말씀을 보존하시는 하나님32 두 아버지의 아들들33 주여 대언자와 조력자를 주소서34 심판의 날이 확실히 임한다35 남은 자와 쓴 뿌리36 치명적인 실수37 끝까지 신실하기38 인간 본성의 끝은 어디인가?39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축복40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조만간 예레미야 강해설교 CD를 출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DSJ
2013-10-01 15:59:56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에 사랑침례교회 신학원에서 진행되는 <설교와 설교자> 과목의 노트를 정리해서 올리니 강의와 함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노트는 매주 업데이트해서 1번 강의의 파일에 올릴 것입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ermon2&write_id=400
제게 무슨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 이 과목을 강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필요가 있어서 제가 요약/정리하고 있으니 그렇게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DSJ
2013-09-30 10:39:30 | 관리자
저의 지난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저의 생각을 적어 올릴려고 했으나 올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무례히 글을 올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
이 곳은 토론의 장은 아니오나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열린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지 사항에 나온 것처럼 여러 자료들을 보고 나서 그래도 여쭐 일이 있으면 올려야 되는것을 알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여쭐 수도 있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배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자유게시판에 썻던 글 들을 보니 제 생각만 너무 주장했던것 같습니다.
정목사님을 포함 많은 형제 자매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불편했던 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광일 형제님의 글을 보니 진심어린 도움을 줄려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곳은 세상이 아닌 교회이기 때문에 제가 조금 모르는 것이 있거나 교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고 마음 넓은 아량으로 오광일 형제님처럼 대해 주셨으면 하는데 김대용 형제님은 지난 번에도 그랬었고 이번 글에도 그렇지 못했던거 같습니다.
좀 더 많은 온유와 사랑으로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그 댓글을 보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 만큼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 하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교리적으로나 말씀을 몰라서 여쭌게 아닙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정하신 울타리 안에서만 활동할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쭌 질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을 때 죄 짓지 않도록 만드실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서 죄와 싸우기를 원하셨는지가 더 큰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사람도 지옥가지 않기를 바라시는데 그렇게 거듭나고 죄 짓지 않고 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 믿고 거듭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안 하셨는지가 그 큰 질문의 요지입니다.
오광일 형제님의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2013-09-30 05:44:39 | 김기덕
궁금했던 것을 신학적으로 어떠한 정확한 답을 얻고자 질문을 올려봅니다.
제 주의에 믿음이 좋다는 형제님들에게 질의 문답에서도 제 의문점을 신원하게 해 주지 못해서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로 인하여 그 사람의 원 죄 과거 죄 현재 죄 미래에 지을 죄등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를 뺀 모든 죄를 사함 받았는데요.
히 10장 10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라고 되어있고
롬 8장 1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되어있습니다.
롬 6장 7절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라고 되어있는데요
예수님과 연합된 자는 죄로부터 완전이 해방되었음을 압니다
요 13장 10절에 이미 씻긴 자는 모든 곳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치적으로는 우리가 살면서 몸이 더러우면 안 씻으면 안 되듯이 저희가 살면서 날마다 짓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만 영적으로 안 더러워지고 믿음에서 떨어져서 지옥가지 않는 걸 알겠는데요.
롬 7장 17절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히 12장 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아니하였노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육신이 연약하기에 더욱 더 죄와 싸워야 함을 아는데요.
영적인 것이기에 수학 공식처럼 1+1=2 야 이렇게 나오는게 아닌 줄은 알지만요.
예수님을 믿을 때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로 인하여 우리 안에 죄에서 해방되어서 우리 안에 죄가 없어야 되는데 왜 우리 안에 죄가 있어서 자꾸 죄를 짓는건가요?
제 생각에는 여기에 대한 것으로는 롬 7장이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여러번 읽어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가 없어서요.
정확이 아시는 분만 답글해 주셧으면 합니다.감사합니다
2013-09-29 03:36:01 | 김기덕
안녕하세요? 자주 들르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글은 처음 쓰네요..
전 호주에 살고 있으며, 킹제임스 흠정역을 한 달 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개역개정 성경 읽독을 한다고 마음 먹으면서도, 내용도 어렵고 읽다가 포기한 적이 무수히 많았는데 흠정역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구입한 지 한달만에 50%를 읽었습니다.
당초 목표한 9월부터 12월 31일까지 일독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게 될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또한 출퇴근 시간에는 흠정역 배송시 포함 된 정동수 목사님 CD를 들으며 구원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다름이 아니고, 제가 올해 일독을 마치면 앞으로 일년 3독을 목표로 성경을 읽으려 하는데요.
전 아직 젖먹이 신앙인이라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이 있는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지금은 신약 읽고, 구약 창세기부터 연대기 순으로 읽고 있는데, 하루 3시간 정도 읽고 있습니다...
성경 읽기에 관해 부디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항상 은혜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꾸벅!
2013-09-27 21:12:49 | 성정훈
뱀의 형상을 해온 그들이 나쁜가요
진짜 뱀자체도 나쁜가요?
2013-09-25 20:23:37 | 김옥순
안녕하세요?
조금 일찍 다가와 약간 더운 날씨였는데 추석은 행복하게 잘 지내셨는지요?
이곳은 추석이 휴일이 아니라서,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몇몇 가정이 준비해 온 추석음식을 나눠먹고,
윷놀이와 공기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유학생들에게는 특별한 명절이었지요.
지난 번에 1차 모임 안내를 해드렸는데,
이번 2차 모임은 West Auckland에 있는 Kumeu에서
9월 28일 토요일 저녁 6시 30분에 있습니다.
당분간은 매 달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모이고 있습니다.
지난 1차 모임에서는,
'조직신학 1'의 2과 '1. 성경에 관한 교리(Doctrine of the Bible)'를 갖고 함께
나눴습니다.
이번 2차 모임에서는,
'요한계시록 바로알기' 뒷부분에 있는
참고자료 중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방법(김문수 목사님)'을 가지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휴대폰:027-663-9777
바른 말씀으로 바른 교회를 그리고 올바른 신앙을 바라는 분들의 기도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이곳의 모임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뉴질랜드 Bible Believers 1차 모임 안내문.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2243
2013-09-22 07:04:24 | 최문선
어제 생명의 말씀사에 일을 보러 갔다가 이상한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목회, 위험한 소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78155
안의 내용이 흥미로울 것 같아서 가지고 왔는데 역시 기가 막히게 좋은 책이었습니다.
목사가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목사라고 생각하며 목사 의식을 가지고 살 때 공인으로서의 목사와
남편과 가장으로서 사적인 목사의 삶에 큰 괴리가 생김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공적인 목사이기 전에 예수님의 은혜를 늘 갈구하는 한 사람의 죄인으로, 성도로 자기를 바라보지 않으면
위선적인 목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저와 제 아내가 추구하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위선적인 목사 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는 좋은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같은 한 죄인이,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의 죄를 보여 주고
주님의 위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목사라 당신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이 목사와 사모의 마음에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끝없는 추락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허사임이 분명합니다.
저자는 자기의 경험을 들어가며 현 시대 목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줍니다.
이렇게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씩 보면 좋을 것 같아 강추합니다.
샬롬
DSJ
---------------책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목회자이기 전에 매일 은혜를 필요로 하고,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도움을 구하면서 성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목회자로만 생각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목회자의 직분이 교회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목회자’, 바로 그 직분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했다. 이제 분명한 사실로 드러났듯이,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다. ---「1장」중에서
대중 앞에 비친 내 모습과 개인적인 삶에서의 내 모습이 분리되어 서로 상충되는 현상이 심해질수록 자신의 실상이 겉으로 드러날까 두려워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의 사생활을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내게 어떤 태도를 보일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자리를 잃을까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나를 염려하며 자꾸 의문을 갖는 것을 보면,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동료 사역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나의 문제와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혹시 나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만 고민하기에 이른다. ---「2장」중에서
어느 날 저녁, 로마서의 한 대목을 주석하는데 무엇인가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복음을 가장 훌륭하고 포괄적으로 설명한 로마서를 수개월 동안 매일 몇 시간씩 연구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 메시지에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복음의 메시지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문법과 구문, 신학적 개념과 논리적 논증이 전부였다. 거창한 지적 활동이었을 뿐, 영적 능력은 거의 전무했다. 글자가 빼곡히 적힌 페이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처럼,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멀고 흐릿하게 느껴졌다. 환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내가 직접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 나의 실생활, 결혼생활, 죄와의 투쟁, 나의 과거와 미래, 나의 가장 깊은 희망과 꿈과 두려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공책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단지 학점이나 과제나 학위를 위한 것이라면,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장」중에서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시라면, 그 나머지는 모두 그분의 지체에 해당한다. 목회자나 사역의 지도자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하나의 지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도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행하는 중요한 사역과 그 상호 관계망에 관한 규칙 가운데서 오직 목회자만 예외라고 말하는 성경 구절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없다. 겉으로 보기에 덜 중요하게 보이는 지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목회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목회자가 홀로 동떨어져 고립된 채 살아가는 문화는 영적으로 건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성경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5장」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늘 거룩한 것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데 있다. 그게 왜 위험한 것일까? 하나님의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경외심을 잃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성경을 대하다 보면 광대한 지혜가 깃들어 있는 위대한 구원 이야기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오랫동안 속죄를 설명하다 보면 십자가 밑에 서 있어도 기쁨도 없고, 눈물도 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제자훈련을 시키다 보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놀랍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일이 되다 보니 더 이상 마음의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8장」중에서
우리는 공인으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이 서로 충돌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에 익숙해질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목회자의 마음속에서는 늘 온갖 우상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아 일종의 예배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치열한 영적 전쟁에 지친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중적인 삶과 사역의 우상들에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오직 은혜만이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출 수 있다. ---「14장」중에서
2013-09-19 10:57:5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금 교회 사이트, KeepBible 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설교와 강해 동영상 및 음성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속도가 느리므로 교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보고나 듣기가 어려워서
sermonaudio.com이라는 사이트에 음성 설교/강해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큰 설교 모음 사이트입니다(물론 거의 다 영어 설교라 대부분의 국내 성도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스마트폰의 마켓에서 sermonaudio라고 치면 앱이 나옵니다.
거기서 cbck 혹은 Dongsoo Jung이라고 치면 저희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2012년 3월부터 지난 1년 반 동안 이 사이트에서 설교를 듣거나 다운로드한 통계를 올립니다.
총 3,132명이 다녀갔고 약 4만 8천 번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약 3만 번 mp3 설교를 다운로드했고
이중 스마트폰으로 다운 받은 것이 2만 번 정도 됩니다.
앞으로 이런 매체들을 통해 전 세계에 주님의 말씀이 편만하게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DSJ
2013-09-17 14:51: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3주에 걸쳐 성경 신자들이 믿는 교리를 요약/정리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78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2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80
성경 신자들의 교리 문답 03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481
샬롬
2013-09-17 14:22:35 | 관리자
찬송가 261장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1.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나라 여명이 왔다 ~어~ 계명성 이건 개역성경의 잘못된 단어 선택 루시퍼를 말하는 것 인데?개역성경 대로라면 계명성(루시퍼)가 동쪽에서와 이 나라의 여명이 왔다?잘못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성경의 계보를 따른 개역성경 및 현대 역본은 한결같이 루시퍼(마귀의 원래 명칭)를 제거하고 거기에 계명성을 대치 시켜 놓았다.개역성경에는 유일하게 나오는 단어 사탄의 명칭이 계명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걸 인지하고 부르지는 않았어도 이걸 부르는 사람은 사탄을 찬양하는 꼴이 되는거 아닌가?참 심각한 일이 아닐 수 가 없다.이 찬송가의 작사자는 김재준(1901 ~ 1987)목사라는 분인데 찬송가에 보면 "자유주의 신학의 기수"이며 "행동하는 신앙인" 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이분은 일제 시대때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가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분 이라고 한다.이분의 주장의 일부를 적어 보면.내가 성서 문자무오설을 배격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정당한 기초 위에 수립하려는 것인 까닭이다. 성경 자체의 사실이 문자적 무오를 입증해 주지 않는데 불구하고 구차스럽게 그 학설을 고집한다는 것은 ‘경건한 기만’이다. 그러므로 스티언스박사(Dr. Stearns)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경이 절대 무오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심히 선하고 경건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시킨 것으로써 선한 것도 없으며 경건한 것도 없는 것이다.’ 또는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또는 문장적 오류가 다소 있다고 말한 데서 무슨 큰일이나 난 것 같이 야단 법석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성경의 절대 무오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경건한 기만”이라고? 아니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역본은 이사야 14:12절의 루시퍼를 계명성 또는 아침의 아들, 샛별, 새벽별, 여명의 아들 등으로 바꾸어 놓았다.그런데 새벽별 은 예수님을 지칭한다.(o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벧후1:16-21)o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o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22:16))
역설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인 김재준씨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찬송시를 섰는지 모르겠으나......하나님은 1611년도에 제임스왕의 명령으로 제정된 완전한 성경 KJV성경을 보존해 주셨다.
성경 역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마귀를 찬양하는 꼴이 되고, 개역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마귀를 혼돈 할 수 박에 없는 실정이다.바른 성경으로 돌아가자! 개역성경으로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경의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에 어려움이 있다.참고 :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63루시퍼인가, 계명성인가?http://blog.daum.net/7gnak/157166213.2 1930년대 이후 성경관 대립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472루시퍼의 존재
2013-09-16 16:11:27 | 허광무
영감과 보존: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
오늘은 영감과 보존과 번역, 그리고 원본, 사본, 역본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영감이란 무엇인가?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성경대로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성경의 영감을 믿을 것입니다. 영감이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을 문자들을 써서 단어들로 기록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말로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불어 내어 쉬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내어 쉬셨음’을 뜻합니다.
영어 ‘inspiration’에서 중간에 있는 ‘spir’는 영을 뜻하는 ‘spirit’에서 나왔습니다. 또 앞의 ‘in’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은 ‘하나님의 영(숨)이 들어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에 숨(혹은 영)을 불어 넣으셨을까요? 그분은 ‘모든 성경기록’에 그리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한 성경기록의 모든 단어에 자신의 숨을 불어 내심으로써 그 단어들이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히4:12-13).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단어)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영감은 몇 차례 있었나?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과정이 과거에 몇 차례 있었느냐, 또 지금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영감이 과거에 한 차례만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있었을까요?
즉, 원본의 단어들만 단 한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아니면 사본의 단어들도 여러 차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혹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어떤가요? 그것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을까요?
이 영감 과정이 과거에만 있었을까요, 아니면 현재에도 있을까요?
바로 이것이 여러 사람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서 잘못 나가면 럭크만주의의 킹제임스 성경 이중 영감설이 나옵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딤후3:16에 나오는 영감이 자필 원본의 단어들을 기록할 때에 사용된 영감이라는 점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히브리말(약간의 아람어)로, 신약 성경은 그리스말로 나왔습니다. 그 단어들을 인간 기록자들이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에 의해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분명히 처음에 원본 성경기록들이 주어질 때 영어나 우리말로 단어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기록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해 자신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그 성경은 사본이든 역본이든 자필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염감)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않거나 잘 표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입에서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와서 인간 기록자가 완벽하게 기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필 원본: I am a boy.
자,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가 담긴 자필 원본이 해어져서 어쩔 수 없이 사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이것을 정확하게 다른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본: I am a boy(필사자와 필체는 다르지만 네 단어는 정확하게 같음).
비유로 말하자면 자필 원본의 ‘I am a boy.’는 딤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자필 원본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그대로 옮겨놓은 사본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보존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므로 원본과 사본은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하나님의 숨(영감)이 동일하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과거의 유대인들은 피땀흘려가며 구약의 히브리 성경을 처음의 원본과 동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 밀러(H. S. Miller)가 지은 「일반 성경 입문」(General Biblical Introduction)에는 유대인들이 구약시대 회당에 있던 두루마리들을 복사하면서 지킨 여덟 가지 준수 사항이 있습니다.
(1) 양피지는 정결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되 오직 유대인만이 만들 수 있으며 정결한 짐승으로부터 만든 끈으로 묶어야만 한다.
(2) 두루마리의 각 난에는 48줄에서 60줄이 들어가야만 한다.
(3) 잉크는 반드시 검은 색이어야만 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해야만 한다.
(4) 어떤 단어나 글자도 머리로 외워 적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반드시 자기 앞에 정통 복사본을 놓고 기록하기 전에 먼저 각 단어를 큰소리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펜을 닦아야만 하며 여호와(Jehovah)라는 이름을 적기 전에는 그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온 몸을 씻어야만 한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주(主) 즉 전체가 대문자로 된 ‘LORD’로 번역되었는데 따라서 그는 필사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이 몸을 씻어야만 했다.
(6) 글자의 형태,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 펜을 사용하는 방법, 양피지 색깔 등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규례들이 있었다.
(7) 두루마리를 수정하려면 그것이 완성된 후 30일이 지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루마리는 무효가 된다. 또한 한 장에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으면 그 장은 버려야만 했으며 전체 필사본에서 세 개의 실수가 발견되면 전체를 버려야만 했다. 다시 말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다 기록했는데 그중에 단 세 개의 실수가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창세기부터 필사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에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필사하는 말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들임을 믿었으며 따라서 이런 철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들을 완전하게 보존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본문에서 빼거나 본문에다 첨가하거나 본문을 바꾸거나 하는 NIV, NASB, NKJV 등의 현대 역본 기록관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해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당에서 친히 읽으신 말씀이 자필 원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럼없이 성경이라고 부르셨다.
(8) 그들은 글자와 단어 수를 세었으며, 만일 글자가 삭제 혹은 첨가되었거나 다른 글자와 붙어 있으면 필사한 사본 전체를 버렸다.
이 같은 규칙들을 소개한 뒤 밀러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이런 규칙들이 좀 부조리하거나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거룩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성경, 즉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을 지금 이 시간에 우리 손 안에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읽은 성경 말씀이 비록 자필 원본의 말씀이 아니고 필사본의 말씀이었지만 그것을 100%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록된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우리 주님은 사본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에 있는 필사본 두루마리가 곧 원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분명히 위 구절 안에 있는 구약 성경 말씀은 주전 1500년경에 모세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록된 바’(it is written)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의 자필 원본이 아니고 모세로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약 1500년 동안 필사되어 보존된 성경(사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원본만 옳았다면 ‘it was written’으로 과거 시제로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의 현재형은 예수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또한 ‘모든 말씀’(every word)이란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말씀이(단어가) 보존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 있는 필사본 성경이 자필 원본과 똑같음을 증명해 주셨으며 그 필사본에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이 외에도 다른 구절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마5:17-18; 눅24:27; 눅24:44 등).
번역본의 영감 문제
자, 그러면 번역본은 어떨까요? 자필 원본을 그대로 동일하게 베껴 쓴 사본의 ‘I am a bo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번역본: 나는 소년입니다(참고로 우리말은 존칭이 있으므로 ‘나는 소년이다’, ‘저는 소년입니다’도 다 맞는 번역임).
하나님의 입에서는 분명히 처음에 ‘I am a boy.’가 나왔고 인간 기록자는 그것을 원본에 기록하였으며 이 네 단어는 사본에 그대로 정확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이 보존된 사본에서 정확하게 ‘나는 소년입니다.’라는 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역본도 최초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원본과 동일한 효력을 지닐까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번역된 역본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100%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보존되어 있음). 그래서 이 역본의 단어들 역시 사람을 살리며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 성경이 완성된 뒤로 실제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한 것은 다 역본이었습니다. 즉 AD 100년 이후에는 원본이나 사본의 시대가 아니라 역본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역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손에 들린 성경(역본)에 하나님의 숨(염감)이 없다면 그것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역 성경의 단어들이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감은 단 한 차례, 자필 원본이 기록될 때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자필 원본의 단어들만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원본이 정확하게 필사되었고 그 필사본에서 지금의 역본이 정확하게 나왔으면, 지금의 역본에도 하나님의 모든 단어가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봅시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보존한 사본의 원어들에서 나왔습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이러한 사본에는 성경기록 필사본, 성경기록을 담고 있는 성구집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사본의 모든 단어를 가능하면 1 대 1 대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원어의 문장의 구조까지도 영어로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언어의 차이로 인해 무언가를 첨가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다시 딤후3:16을 보도록 합시다.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is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자들이 번역을 위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is가 없어도 말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is가 없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역자들이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자들은 정직하게 이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것은 원래 원본에 없었으나 번역을 위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두 개의 is를 제외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사본)을 있는 그대로 영어의 구조 안에서 가능한 한 1 대 1 대응이 되게 정확하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식적 일치’ 번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번역되었기에 우리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온전히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해서 이 성경을 들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라고 외칩니다.
세상에 수많은 성경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거의 완벽한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611년 이래로 이 성경에 복을 주셔서 이 세상 모든 교회와 신학교의 교리, 신앙신조 등을 정리하며 5대양 6대주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온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수백 개 나라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표준 잣대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럭크만주의자들 - 무조건 피터 럭크만을 따르는 자즐 - 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을 너무 과장한 나머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원본에서 향상된 계시’ 혹은 ‘원본보다 더 좋은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본보다 더 좋은 역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가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형식적 일치를 통해 정확하게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존된 성경’입니다.
1647년에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조 성경 편’의 8항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1. 하나님께서 원어 성경기록들을 영감으로 주시고, 2. 사상 유례없는 보호와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하셨음을 믿으며 3.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해 정확하게 원어 성경기록들을 번역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 모든 성경 신자들은 이런 고백에 따라 영감과 보존, 그리고 정확한 번역을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온전하게 보존된 사본들에서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된 완벽한 영어 성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원본이 아니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라고 부를까요? 다음의 예를 보겠습니다.
‘
향상된 계시’의 한 예로 행12:4를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군사가 넷씩인 네 소대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이스터가 지난 뒤에 그를 백성에게로 끌어내려 함이더라(행12:4).
And when he had apprehended him,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quaternions of soldiers to keep him; intending after East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은 여기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번역하였습니다. 루터 성경같이 바른 본문에서 나온 성경들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성경 중에 유일하게 영어 킹제임스 성경만 이것을 ‘이스터’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므로 이 성경은 원본을 뛰어넘으며 그래서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거나 영어 성경의 단어들도 딤후3:16의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이중 영감설’을 펴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사람이 피터 럭크맨(Peter Ruckman)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거나 이중 영감을 받으려면, 원본에 없던 무언인가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이스터’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이 원어에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데 영어 성경이 그것을 번역해서 집어넣었다면 그것은 첨가이고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터’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파스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말 파스카는 명절의 경우 크게 둘을 뜻합니다.
하나는 유월절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터’(이교도들의 부활절 축제)입니다. 파스카는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도 정확하게 이 두 개의 명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파스카는 이 둘 중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행12장의 때가 이미 무교절 기간이라 유월절은 지났으므로 무교절 다음에 오는 이교도들의 부활절인 ‘이스터’로 바르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원어 없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나 딤후3:16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100% 보존된 바른 사본의 단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입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처음에 원본이 주어졌을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영감이 그대로 살아 있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 중 원어들을 담은 사본에서 나오지 않은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결코 향상된 계시나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전도서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선포자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흠정역: 내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전1:14).
킹제임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것이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한다.”(vexation of spirit)고 전도서에서 무려 10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성경, NIV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은 이것을 전적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영을 괴롭게 하는 것’과 ‘바람을 잡는 것’(grasping of the wind)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 혹은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이 경우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대본이 된 원어 성경의 원어가 동일하므로 이 같은 차이가 생긴 데 대해 원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자가 같은 단어를 문맥에 따라 어떻게 번역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전도서의 문맥상 어느 번역이 맞을까요? 우리는 전도서 기자가 말하려는 요점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한 대로,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어 우리의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국 전도서 기자는 마무리를 하면서 12장 13절에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즉, 이 모든 것이 영의 문제지 결코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바람을 붙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번역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는 번역이라고 믿으며 이런 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임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이 원어를 정확하게 번역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결코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원본보다 낫다는 주장을 펴서는 안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보존해 주신 사본들의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해서 하나님의 이 단어들을 이방인들의 공통 언어인 영어로 보존한 성경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런 진술을 수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무식하다고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원어가 최종 권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간에 우리가 원본의 모든 단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바르게 번역되지 않으면 최종 권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루아흐’, ‘하데스’ 등의 원어들은 다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도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원어들만으로는 최종적인 표준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providence)라는 돌보심을 통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을 인도하셔서 각각의 원어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본의 모든 단어들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번역되어야만 맞는다고 믿습니다.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를 택하셔서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원본의 원어들의 뜻을 이 세상 문학가나 철학자의 글을 통해 전달하려고 합니다. 원어 사전들의 저자들 가운데는 불신자가 많으며, 심지어 쎄이어(J. H. Thayer) 같은 유니테리안 이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금의 번역본 시대에 하나님의 원어 단어들을 100% 정확하게 영어로 옮긴 보존된 성경입니다.
그러면 우리말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말 흠정역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1 대 1 대응이 되게 형식적 일치를 유지하면서 정직하게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모든 교리와 특징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당연히 주장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딤후3:17의 진리가 흠정역 성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7).
우리말 번역의 문제
한편 ‘I am a boy.’를 ‘나는 소년입니다.’로 하지 않고 ‘나는 아이입니다.’로 하면 반만 맞습니다. 아이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 대 1 대응을 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는 한 소년입니다.’로 하면 우스운 번역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이런 말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earth’(창1:1)라는 말씀을 ‘그 시작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는 이 외의 다른 번역은 다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만용입니다.
‘In the beginning’은 관용구로서 ‘처음에’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그 처음(시작) 안에서’로 번역하는 것은 영어와 우리말을 망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머릿속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향상된 계시’이므로 그 안에 있는 정관사, 부정관사, 하이픈, 세미콜론, 콜론, 콤마를 번역할 때 수용 언어(한국어)의 용례를 무시하고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향상된 계시’가 아니며, 이중 영감을 받은 성경이 아닙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형식적 일치를 취하면서 정확하게 번역하여 그대로 보존한 성경, 이것이 바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처음에 원본이 주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100% 그대로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결코 100%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원본과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11절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해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에 빌립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비록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인격체이지만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행동,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100%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지 않은 아버지 하나님은 다 거짓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우리는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원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혹은 원본이 우월하다고 하거나 그런 주장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을 통해 보거나 아는 아버지만이 참 하나님이듯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보는 원어의 뜻만이 옳은 뜻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데서 옳은 뜻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요10:30에서 아들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온전히 전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원본의 원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한 ‘완전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본문으로 해서 지난 400년간 수백 개의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바른 교리를 깨달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배도의 때에 마귀가 세상 무대에 등장해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뜻이나 단어가 변경된 성경의 등장이 필수 요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귀라 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 무언가 변경을 가져오는 일일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이집트에서부터 이 사악한 일을 주도하였고 주후 200년을 넘기면서 그 일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역본들은 한결같이 카톨릭 교회의 사본들만을 번역의 대본으로 쓰고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감과 보존, 원본과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바른 개념을 정립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비방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바른 성경을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성경 신자들을 많이 불러주시고 이들로 하여금 바른 교회를 세우게 하셔서 많은 혼들을 수확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3-09-14 14:05:35 | 관리자
Replenish 설명
replenish (ed) - (7x) – 간단히 말해서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처음 받은 수준대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의 시작 부분에 있는 ‘re’는 ‘re’라는 접두어를 가진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처럼 ‘다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단어의 뿌리는 중세 영어 ‘replenisshen’에서 나오고 이것은 중세 불어인 ‘repleniss’에서 나온다. 이 불어 단어는 ‘replenir’의 가지에서 나왔으며 단순히 “채우다; 사람이나 짐승으로 채우다; 저장하다”를 뜻한다. 이것은 어근 ‘re’와 ‘plenus’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라틴어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예레미야 31장 25절에서 replenish는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satiate’라는 단어와 평행 단어로 쓰였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반복 용례로서 ‘satiate’와 ‘replenish’가 같은 뜻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렘31:25).For I have satiated the weary soul, and I have replenished every sorrowful soul.
한편 에스겔서 26장 2절에서는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 역시 두 단어의 대조를 보여 주는 히브리어의 용례이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겔26;2). I shall be replenished, [now] she is laid waste:
창세기 1장 28절은 자원들을 사용해서 - 정복하고 복종시켜서 - 처음에 받은 수준으로 땅을 가득 채우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부분이 그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물 중 어떤 것도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시19; 롬1). 1.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이의 출생을 통해서 스스로 번성해야만 하였다(하나님의 명령이었으니까). 그런데 땅의 경우 그들은 땅의 자원들을 사용하거나 복종시켜 처음에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땅을 가득 채워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동물과 식물의 수를 임의대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시19:1-4; 롬1:20). 어떤 생물 종을 없애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하는 것을 -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증거를 - 없애는 것이다.
2.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노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종들을 지켜야 했다. 홍수 이후에는 많은 동물들이 이제 2마리만 남았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 쉽게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아는 어떤 종도 사라지지 않도록 채우고 지켜야 했다. 3. 이사야 2장 5-7절- 오 야곱의 집이여,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걷자.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곧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그들의 땅에는 또한 은과 금이 가득하여 그들의 보물은 끝이 없고 그들의 땅에는 또한 말이 가득하여 그들의 병거가 끝이 없으며
여기서 이사야는 야곱의 집을 불러 주의 빛 안에서 걸을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것들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받아들였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공급하셨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했으나 그들은 낯선 자들의 자손들에 의해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가 난 것이 아니라 낯선 자들로부터 난 것들을 가지고 이전처럼 동일한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4. 이사야 23장 2절- 섬의 거주민들아, 너희는 잠잠할지어다. 바다를 넘나드는 시돈의 상인들이 너를 가득히 채웠도다.
섬의 거주민들은 그들이 매일 필요로 한 것을 시돈 상인들로부터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생계를 매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다. 5. 예레미야 31장25절- 내가 피곤한 혼을 흡족하게 하며 모든 슬퍼하는 혼을 채워 주었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replenish는 ‘충분히 만족시키다’(satiate)와 평행을 이루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혼을 흡족하게 하여 한때 그 혼이 피곤하지 않았던 그 지점으로 완전히 되돌린다는 것(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시편23편...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restoreth) 6. 에스겔 26장 2절-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 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여기서 ‘replenish’는 ‘피폐하게 되었다’(laid waste) - 완전히 텅 빈 상태 - 와 대조를 이룬다. 두로는 예루살렘에서 두로 지역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통해 예루살렘의 부의 손실이 이제 자신의 것이 될 것을 자랑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의 손실은 두로의 이득이 되어 두로가 원래의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에스겔 27장 25절- 다시스의 배들이 네 시장에서 너에 대하여 노래하였으며 너는 충만히 채워져서 바다들의 한 가운데서 심히 영화롭게 되었도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두로에 대한 대언을 한다. 두로는 다시스의 배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매일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다고 선언한다.
결론 1) 사람은 스스로 수를 늘려 번성해야 했지만 땅의 식물과 동물들은 처음 받은 상태로 가득 채워야 했다. 이것은 신명기 22장 7절 말씀을 설명한다. 신22:7-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고 새끼를 취할지니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 어미와 새끼를 모두 죽였다면 그 종들은 곧 멸종했을 것이다.
2) 켄달(이 글의 저자, Dr. Bob Kendall)의 식품 저장 방의 예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만든 예가 있다. 나는 3개월 동안 출장 갈 예정이어서 당신에게 우리 집에 와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사용하면 아주 편하게 지낼 것을 요청한다. 내가 식품 저장 방을 열자 거기에는 땅콩버터가 담긴 5개의 병이 있기에 즉시 물어본다. “땅콩버터가 왜 이리 많아요? 혹시 세일했나요? 어째서 당신은 5병이나 가지고 있나요?”
나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건 그냥 켄달 가족의 것이에요. 모두 다 켄달의 것이지요. 내 남동생들(Mr. Kendalls), 내 어머니(Mrs. Kendall), 사촌들(Mr and Mrs. Kendalls)은 식품 저장 방에 5개의 땅콩버터 병을 보관하고 있어요. 그것은 우리 가족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심지어 땅콩버터를 다 먹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돌아왔을 때 5개의 땅콩버터 병이 있으면 좋겠어요. 식탁에 이전 수준으로 가득 채워서요. 그래야 내 식품 저장 방이 계속해서 켄달 네 집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또 다른 예시만약 내가 당신을 불러 내 냉장고를 replenish 하라고 부탁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할까요?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처음에 냉장고 안에 얼마만큼의 우유가 있었고 몇 개의 버터 조각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코 냉장고를 replenish 할 수 없습니다. 4) ‘replenish’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기 훨씬 이전에 원래 지구가 있었고 그 안에 동물과 식물이 살았다고 주장하는 이론 - ‘재창조 이론’ 혹은 ‘갭 이론’ - 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보여 줍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가정(재창조이론)이 사실이라 해도 아담과 이브가 이전의 지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땅을 다시 채울 수(re-fill)있겠습니까?
5) 간단히 말해서, ‘replenish’는 당신이 ‘어떤 것을 발견한 수준으로 그것을 충만히 채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과 영어 사전의 용례가 이것을 지지합니다.
(*) 17세기 초 KJB가 기록된 때에 ‘replenish’라는 단어는 현대 사전의 용례처럼 ‘다시 채우다’의 의미로 결코 쓰이지 않았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31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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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5:14:31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