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어떤 분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을 해 달라고 해서 간단히 글을 올립니다.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기법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기법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명한 성경 사본 학자인 웨이트 박사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으므로 일단 그 글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이 상세해서 조금 길므로 오늘은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 뒤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성경 번역 기법 결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구체적 증거 자료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78-90쪽).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 인용 시작 ---------
B. 번역 기법의 우수성
1.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문자적 일치’(Verbal equivalence) 곧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 번역 기법을 채택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이 우수한 까닭은 번역자들이 소위 ‘문자적 일치’ 혹은 ‘형식적 일치’라 불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대 역본들의 이른바 ‘동적 일치’(Dynamic equivalence) 방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의 그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그것으로 자라가길’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와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필요하다. 나는 부록 A에 이 ‘하나님의 말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몇 구절들을 실었다.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을 번역할 때도 사람의 말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이 필요하다.
설교자나 교사가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가 첫째로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것이다. 베드로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고 말한다(벧후3:18). 영적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알고 붙들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고 양식으로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로써 우리는 자라나고 성장하며 증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이제 킹제임스 역본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들(NIV, NASB, NKJV 등)의 문제점 특히 번역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번역 기법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은 번역에 있어 동적 일치 방법을 도용하였다. ‘동적’(Dynamic)이란 단어는 ‘변하다’ ‘움직이다’는 뜻을 내포한다.
현대 역본 번역자들은 일종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여 히브리어를 영어로 번역했다. 관용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의 단어들을 영어로 일대일로 대응하는 방식(의미가 잘 통하는 경우에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본래 있는 내용에 더하거나 본래 있는 내용을 바꾸거나 빼버리는 방식으로 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의역’(Paraphrase)이라고도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리빙 바이블’은 의역에 관한 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2.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동적 일치 번역 방식을 거부하였다.
나는 동적 일치 기법이 본질적으로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채택한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 방법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단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문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는 동사가 있고 형용사, 전치사, 분사 등이 있다. 히브리어 문장을 구조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어로 옮길 수 있다면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그렇게 했다. 가령 동사가 있으면 그것을 명사나 다른 품사로 바꾸지 않고 동사로 옮겼다.
영어에는 ‘변형 생성 문법’(Transformational Grammar)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바뀌는 문법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위 동적 일치라 불리는 기법이 나왔다. 동적 일치가 적용되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래 단어의 모습을 잃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기법의 우수성은 역자들이 이런 동적 일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단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문자적 혹은 형식적 일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a. 동적 일치는 마귀의 것이다.
동적 일치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우리가 동적 일치를 마귀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기로 그것의 근원이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믿게 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every word) 중요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우리는 그 말씀들 즉 그 단어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이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A를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 주는 구절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b. 동적 일치의 연대기
사탄이 시작한 동적 일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동적 일치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한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뱀을 통해 이브와 아담을 차례로 넘어뜨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면서 소위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의역해서 이브와 아담에게 제시한 것이다.
(b.1) 마귀의 삭제 법칙
동적 일치의 첫째 법칙은 삭제 법칙이다. 즉, 하나님을 말씀에서 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절 :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뱀을 통해 사탄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곧 “너희가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부분을 빼버렸다.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자, 여기까진 좋다. 사탄은 이 부분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17절의 말씀이 이어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16절과 17절을 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탄은 3장 1절에서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 “자, 너희가 모든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뭔가를 빼버렸다. 즉, 17절을 삭제하고 말한 것이다. 동적 일치가 마귀적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삭제하고 없애버리는 마귀의 방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록 B에 지난 1992년까지 612년 동안 존재했던 영어 성경전서들과 신약성경전서들의 목록을 실었다. 거기에는 영어 성경전서 135권과 영어 신약성경전서 293권이 올라와 있다. 합치면 총 428권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의 영어 성경전서 혹은 영어 신약성경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428권이면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현재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보는 역본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진행하되 다른 역본들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NASB, NIV, 그리고 NKJV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역본들은 모두 의역본들이다. 나는 여러 가지 실례를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해 보이겠다. 우리에게는 NKJV와 원문(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을 컴퓨터로 비교 분석하여 출력한 자료가 있다. 거기에 보면 편집자들이 의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빼고 변개한 곳만 2,000군데가 넘는다[B.F.T. #1442]. NASB도 똑같이 분석해 보았는데 이것에는 4,000군데가 넘었다.
NIV는 어떨까? NIV에는 이것들 중 가장 많은 6,653군데의 첨가, 삭제, 변개가 이루어졌다[B.F.T. #1749‐P]. 이 방법은 사탄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것을 마귀의 것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자신의 말씀을 함부로 바꾸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첨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권한을 주신 일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따라야 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b.2) 마귀의 변개 법칙
둘째 법칙은 변개 법칙 곧 하나님을 말씀을 바꾸는 것이다. 삭제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변개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삭제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들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3장 4절에는 이런 변개의 사례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경우 변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것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 4절을 읽어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변개된 내용이 보이는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불순종의 형벌은 죽음 곧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다. 첫 사람을 죽인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절에서 마귀는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2:17).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동적 일치이다. 동적 일치는 말씀을 뺄 뿐 아니라 말씀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바꾼다. 이것은 마귀의 것이다.
(b.3) 마귀의 첨가 법칙
마지막으로 우리가 동적 일치 방법을 마귀의 것이라고 하는 셋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은 이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자, 이것이 첨가의 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열릴 것에 관한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창세기 3장 2‐3절을 보자.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자, 이젠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했다.]
위에서 언급된 삭제, 변개, 첨가는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의 핵심이다. 그것의 본질은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역에 불과하다.
c. 동적 일치의 역사
동적 일치의 현대사는 니다(Eugene Nida)와 함께 시작되었다. 니다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 미국 성서 공회, 연합 성서 공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동적 일치 방법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니다가 동적 일치라는 독약을 소개한 이후로 이 방법을 채택한 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변개된 역본이 되었다. 그는 성경 변개의 전문가이다. 여기서 변개는 동적 일치를 말한다. 나라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마귀의 일이다.
심지어 성경을 믿는다는 근본주의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번역하지 않고 대신 이 동적 일치를 수용했다. 다음은 니다와 또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책들이다.
(1) 1947년, 「성경 번역」(Bible Translation), 니다 저, 런던의 연합성서공회출간
(2) 1950년, 니다는 ‘번역 또는 의역’이라는 글을 ‘성경 역자’(The Bible Translator)지에 실음
(3) 1952년,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A New Methodology in Biblical Exegesi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4) 1955년, 「성경 번역 문제」(Problems in Translating the Scripture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5) 1959년, 「성경 번역의 예를 통해 본 번역의 원칙」(Principles of Translating As Exemplified by Bible Translating),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6) 1960년, 「메시지와 미션」(Message and Mission), 니다 저, Harper Brothers 출간
(7) 1961년, 「번역자들을 위한 새로운 도움」(New Help for Translator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간. 이 책은 도움은커녕 훼방과 치욕을 가져오는 책이다.
(8) 1964년, 「번역을 위한 과학」(Toward a Science for Translating), 니다 저, 네덜란드에 있는 E. J. Brill사 출간
(9) 1966년, 「성경 번역자들의 수용 언어 본문 사용」(The Bible Translator's Use of Receptor Language Texts), 니다 저, 연합성서공회 출간
(10) 1969년, 「번역의 이론과 실행」(Theory and Practice of Translation), 니다 저, 네덜란드에서 출간
(11) 1966년, 「현대인을 위한 복음」(Good News for Modern Man) 출판 (또는 「Today's English Version – 의역 성서 중 하나). 이것은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적용한 대표적 변개 역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을 위한 복음」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 - 그리스어로는 ‘haima’ - 를 전체 103번 중 36번 빼버렸는데 그중 16번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그들은 동적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대신 ‘죽음’ 혹은 ‘희생’ 등의 단어를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haima’는 분명히 ‘피를 뜻한다.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보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Today's English Version」은 이것을 그저 ‘값비싼 희생’(Costly sacrifice)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피’를 빼고 ‘희생’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늘날 유명한 모 성경 해설가[존 맥아더]도 같은 것을 주장한다. 즉, 피는 단지 죽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구원 받고 깨끗하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존 맥아더의 이단 교리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는 B.F.T Brochure #5에 나와 있으며 현재 여기의 리스트에는 150개가 넘는 책자들이 있다.]
(12) 1975년, 나이로비에 있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역시 동적 일치 방법을 채택했다. WCC는 배도한 단체로 공산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지금도 그들은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에서 살인, 약탈, 고문을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이런 WCC가 동적 일치를 번역의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WCC는 사탄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니다와 연합성서공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계보를 이었다.
(13) 1978년, 신국제역(NIV)이 출시되었는데 이것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이 역본은 마귀의 동적 일치 방법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14) 1983년, 세계 복음주의 침례교 연합[ABWE]이 「말씀으로」(By the Word)를 출판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교사들 중 몇몇은 이 위원회 소속일 것이다. 출간 당시 ABWE 본부는 뉴저지 주, 체리힐 근처에 위치해 우리와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 년 내에 펜실베이니아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씀으로」는 실버네일(Lynn Silvernale)이 쓴 책이며 다른 말로 「성경 번역의 우선순위와 방법」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니다를 수없이 언급했다. 그런데 니다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배도자이다. 그녀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나는 번역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읽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번역 양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분류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비크맨(John Beekman)의 분류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번역 특히 성경 번역에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문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용적 접근이었다. 이것은 다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양식으로 세분된다: 엄격한 문자적 번역, 한정적 문자적 번역, 관용적 번역, 그리고 자유 번역. [실버네일의 책, 13쪽]
실버네일의 문제는 번역 기법론에 관한 책들을 잘못 선택한 데 있다. 비크맨과 캘로우(John Callow)는 「하나님의 말씀 번역」(Translating the Word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에 동적 일치 번역 기법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 근본주의 진영의 성경을 믿는 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보급할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마귀적인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실버네일과 ABWE는 공히 관용적 번역 기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동적 일치 방법을 선호하며 사용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실버네일은 이 일을 33쪽에 언급해 놓았다.
번역 일을 시작한 지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있으면서 벵골 성경을 번역했다]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안에는 상당한 거리낌이 있었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조정하면서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조정’은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고 바꾸는 일을 말한다.] 마음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을 너무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벌이고 있는 일로 인해 양심이 움직인 것이다.] 내 동료는 특별히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경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실버네일의 책, 33‐34쪽]
성경에는 동적 일치 접근법에 대한 저주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다. 이어서 실버네일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벵골 성경의 충실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조정 [즉, 첨가, 삭제, 변경] 양식을 선택한 뒤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괄호의 말은 저자의 것임] [실버네일의 책, 34쪽]
이처럼 늘 내용을 조정하는데 어찌 충실한 번역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나님을 말씀을 변경한다면 충실한 번역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조정 양식들을 담은 31개의 원칙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 원칙들은 우리 지역 협회 전체의 인가를 받았고 이로써 공중 앞에 널리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실버네일의 책]
그래서 그들은 방글라데시 현장의 모든 ABWE 선교사들로부터 이 모든 조정 사항들을 인정받았고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의 고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 수십억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고 바꿀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죄(罪)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녀는 죄(罪)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이다.
d. 동적 일치의 역사 요약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시작했고 니다(Eugene Nida)가 계승했던 이 동적 일치 ‘바이러스’는 급기야 1983년 급물살을 타게 된다. 배도한 WCC 내에서 얼마간 활동하던 이 바이러스가 소위 [거룩함의] 분리를 외치는 근본주의 진영에도 침투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우리는 ‘Bible International’에서 나온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이 동적 일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Bible International’은 오하이오 주 소재 근본주의 선교 기관 중 하나인 침례교 중간 선교회(Baptist Mid-Missions)의 지부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의 전직 회장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하이오 주 베레아에서 있었던 나의 목사 임직식 때 심의위원회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BIBLE FOR TODAY의 뉴스 보고서에서 ‘Bible International’에서 사용하는 동적 일치의 문제를 담은 두 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변개에 대한 여러 통의 질의서가 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교 중간 선교회는 내게 이 두 가지 보고서를 주문해 왔다. 나는 내 뉴스 보고서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읽어 보도록 했다. 결국 침례교 중간 선교회가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수령해 갔다. 나는 부디 그들이 내용을 읽고 동적 일치로 인해 생긴 잘못들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현재 기독교 진영은 동적 일치가 만연한 상태이다. 이미 그것은 두 곳의 침례교 근본주의 선교회에 침투해 들어갔다.
동적 일치는 더 이상 배도한 진영(신복음주의, 현대주의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본주의, 분리주의 진영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곳에서 더 위험하고 마귀적이며 치명적이다. 다를 것이 없다. 진실은 진실이고 오류는 오류다. 마땅히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마귀의 방법으로 소위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d.1) 동적 일치대로 한다면 어떤 본문을 쓰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동적 일치와 본문의 관계를 알아보자. 앞서 밝혔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정확하고 바른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과 신약성경 그리스어 본문을 사용한다. 가장 좋은 본문이라도 원문의 단어나 형식이 고스란히 영어로 옮겨질 때 의미가 있다. 즉 문자적 일치, 형식적 일치의 형태로 번역될 때 좋은 본문이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 일치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동적 일치에서는 본문상의 단어나 본문 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지 원할 때 바꿀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입맛에 맞게 더할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으며 바꿀 수도 있다. 그러할진대 본문의 종류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본문이 정확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번역자가 누구면 어떠하겠으며 그의 자질을 따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하고 빼고 바꾸는 데 무슨 학위나 교육이 필요하겠는가? 사탄이 그렇게 했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동적 일치 방법으로 번역하는데 누가 올바른 본문에 신경 쓰겠으며 올바른 번역자를 구하겠는가? 그저 마음대로 바꾸는 일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역본들의 현실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마소라 본문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리아 역본이나 ‘70인역’, 라틴 벌게이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정과 추측만 있으면 된다. 본문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입맛에 맞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자, 보시다시피 동적 일치 문제는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본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는 이유는 킹제임스 성경이 우수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역자들이 동적 일치 방법을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d.2) 여러 역본에 대한 4년간의 검증
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사용되는 여러 역본들을 4년 이상 검토하고 비교해 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이 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 및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얼마나 다른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d.2-1) 1611년 KJB 분석
첫 해는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 성경 - 넬슨 출판사가 재출간한 초판 킹제임스 성경 - 을 가지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킹제임스 역본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25쪽 분량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B.F.T. #1294]. 이 보고서에는 초판과 현재 판 사이에는 종종 철자나 구두법의 차이가 있지만 바뀐 곳은 오직 421군데뿐이며 그것도 모두 소리(귀로 듣는 차이)와 관련된 차이뿐임이 명시되어 있다. 바뀐 곳은 모두가 사소한 내용들이다. 원한다면 이 내용을 요약한 소책자를 구할 수 있다[B.F.T. #1495].
(d.2-2) NKJV 분석
다음은 NKJV와 KJV를 카세트로 들으며 비교해 보았다. 테이프에 녹음된 성경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자료이다[B.F.T. #777/1‐43]. 일단 차이점이 발견되면 해당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본문을 찾아보고 어느 번역이 더 본문에 가까운지 확인해 보았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전보다 더 킹제임스 성경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는 95페이지(큰 페이지)의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42]. 이 보고서에는 2,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올라와 있다. 이 보고서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 형태로 나와 있다[B.F.T. #1465]. 또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9개)도 있다[B.F.T. #1367/1‐9].
(d.2-3) NASB 분석
이듬해 나는 NASB를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한 다음 KJB의 근간인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도 비교해 보았다. NASB도 앞서 NKJV에 대해 한 것처럼 그렇게 진행했다. 이번에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을 확인한 결과 본문과 동떨어진 쪽은 NASB였다. 연구 결과는 187쪽짜리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494‐P]. 이 보고서에는 4,000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의 요약판 역시 소책자로 구할 수 있으며[B.F.T. #1518]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1개)도 있다[B.F.T. #1494/1‐11].
(d.2-4) NIV 분석
이후 2년 8개월 동안 같은 식으로 NIV를 분석했다.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 후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대조해 보았다. 이 보고서 역시 컴퓨터 출력물로 남아 있다[B.F.T. #1749‐P]. NIV는 온통 의역과 동적 일치 방법으로 가득했고 그 분량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 찾아보자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6,653군데가 넘는 동적 일치의 사례들(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이루어진 첨가, 삭제, 변경)이 소개되어 있다. 차이점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했을 때에도 역시 킹제임스 성경이 항상 정확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본문의 변개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카세트 녹음본(2시간짜리 16개)이 있는데 여기에는 4,600개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B.F.T. #1749/1‐16]. 이것의 제목은 ‘NIV의 결함들’이다[B.F.T. #2054].
(d.3) 일반 사람들은 새 역본들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성경 역본들을 원문과 직접 비교해 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어느 역본이 바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NIV가 말하는 게 다르고, KJV가 말하는 게 다르다. 히브리어도 모르고 그리스어도 모르는데(대부분 그렇다) 아는 언어 즉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킹제임스 성경을 표준으로 삼으라.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문이 이 역본에 고스란히 번역되어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라. 아니면 영국의 ‘트리니테리언 성경공회’가 간행한 소책자를 참고해도 좋다[B.F.T. #1060]. 이 소책자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618개의 단어가 간략한 의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물론 좋은 사전 한 권을 가지고도 이 단어들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가령 ‘Habergon’은 방패 혹은 쇠사슬 갑옷을 뜻하며 ‘Ouches’는 주머니 또는 행낭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영어 단어들이 정확한 히브리어,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점이다.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우리는 1611년 이후로 의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는 단어들의 정의를 담은 킹제임스 성경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BIBLE FOR TODAY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제목은 「The Defined King James Bible」이다. 이것은 12포인트의 큰 활자로 인쇄되었다. 싱가포르의 토우(S. H. Tow) 박사는 이 성경 4,000권을 구입해서 세계 여러 곳에 배포했다. 원하는 사람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다.
(d.4) 앞으로 연합성서공회는 오로지 동적 일치 기반의 의역 성경만을 출간할 것이다.
연합성서공회(United Bibel Society, UBS)는 더 이상 성경전서(창세기‐계시록)를 출간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역본 및 관용 번역본만을 출간할 것이며 그것도 성경전서가 아닌 쪽 성경만을 내놓을 것이다. 1962년 연합성서공회는 성경 선집(쪽 성경) 또는 소책자 3.5권당 성경 한 권을 출판했고, 1969년에는 18.5권당 성경 한 권을, 1974년에는 쪽 성경 33권당 한 권의 성경전서를 출간했다. 선집이나 쪽 성경에 비해 성경전서 발행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성경전서를 출판하는 경우는 성경 출판 자금이 어디서 들어왔을 때뿐이다.
성경공회는 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있는 자금은 성경 선집을 출판할 때나 쓰인다. 이 내용은 BIBLE FOR TODAY에서 출간된 「성경의 미래」(The Future of the Bible)’에서 확인할 수 있다[B.F.T. #1246]. 성경의 미래는 어떤가? 연합성서공회가 연루되어 있는 한 성경의 미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는 이유이며 킹제임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d.5) ‘동적 일치’에 대한 간략한 정의
동적 일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동적 일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b. Of or pertaining to dynamics; active; opposed to static; Pertaining to change or process(1b. 역학적인; 동적인; 정적의 반대; 변화하는) [웹스터 사전,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49년, 257쪽]
다시 말해 ‘동적’이란 말은 ‘움직이는’을 뜻한다. 동적 일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이와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 즉, 운동(movement), 변화(change), 역동(dynamics)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꾸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기 원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거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변화를 가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나는 부록 A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였다.
‘동적’(dynamic)이라는 단어에서 ‘역학’(dynamics)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역학’의 정의를 웹스터 사전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That branch of mechanics treating of MOTION of bodies(kinematics) and the action of forces in producing or CHANGING their motion(kinetics). 2. The MOVING MORAL, as well as physical, forces, or any kind, of the laws relating to them
1. 물체의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을 일어나게 하거나 바꾸게 하는 힘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2. 움직이는 어떤 것 ‐ 물리적인 힘, 윤리, 법
모든 동적인 과정은 변하는 과정이고 진화하는 과정이며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만들어 낸 과정이다. 힘이든 물이든 무엇이든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 강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하염없는 은혜, 흐르는 강물같이 넘치네!”라고 찬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흐른다’, ‘움직인다’, ‘유동적이다’라는 식의 개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정된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로써 우리는 그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바위’(a Rock) 곧 거대한 바위산과 같으시다. 산은 움직이지도 흔들리지도 요동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신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1).
이제 관련 단어인 ‘일치’ 혹은 ‘동등함’(equivalence)에 대해 웹스터 사전을 살펴보자
State of being equivalent, equality of worth, meaning, or force: 가치나 의미나 힘에 있어 같은 혹은 동등한 상태
여기서 ‘equivalent’(같은, 동등한, 일치하는)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obs. Equal in force or authority. 2. Alike in significance. 3. Equal in value, esp. for exchange. 4. Virtually or in effect identical; tantamount; as, his remark was equivalent to an insult
1. 사어(死語). 힘이나 권위에 있어 같은 2. 의미나 비중이 같은 3. 가치 특히 교환 가치가 같은 4.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
어떤 면에서 ‘equivalent’는 좋은 용어이다. 하지만 위의 정의 중 ‘내용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같은’이란 부분은 어떤 범위를 한정짓기 어려운 의미이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동등’(equivalent)이란 개념을 선호할 수 없다. 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한다. 왜 동등한 것 혹은 일치하는 것이 필요한가? 독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이제는 영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떤 동등한 것, 일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바로 그 진짜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른 본문, 우수한 번역자, 우수한 팀 작업, 우수한 번역 기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단어들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idiom’(숙어, 관용어법) 혹은 ‘idiomatic’(관용적인, 관용어법을 사용한)이란 용어이다. 이 용어들은 번역이나 역본에 대해 말할 때 동적 일치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로 쓰인다.
‘관용적인 번역’(idiomatic translation)에서 ‘관용어’(idiom)란 이런 뜻을 지닌다(웹스터 사전).
1. The language peculiar to a people(a tongue)’, or to a district, community, or class(a dialect). 2. The Structural form peculiar to any language. 3. An expression in the usage of a language, that is peculiar to itself either in grammatical construction or in having a meaning which cannot be derived as a whole from the conjoined meanings of its elements(as, the more the merrier)
1. 특정 민족 혹은 지역이나 단체 및 계급 고유의 언어 2. 특정 언어 고유의 구조 3. 일반적인 문법 구성이나 각 단어의 단순한 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뜻을 가진 독특한 언어 표현, 가령 다다익선 같은 표현]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바로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리스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곧 관용어이다. 원어를 알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말씀의 정확도에 훼손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이 ‘관용어들’은 결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런 관용적이고 동적인 일치가 아닌 ‘문자적, 형식적 일치’를 기반으로 번역되어 우리 손에 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 인용 끝 ---------
결 론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킹제임스 성경은 형식적 일치(Formal equivalence)를 이룬 성경입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단어 대 단어 번역’(Word for word 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어 쓰자면 킹제임스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본과 주어, 목적어, 단수, 복수, 수동태, 능동태, 시제, 심지어 문장의 도치 등이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 사본 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변증 학자 중의 한 사람인 로데스 박사님(Dr. Ron Rhodes)의 글입니다.
http://www1.cbn.com/churchandministry/the-story-behind-the-king-james-version
여기서 그분은 글의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11년에 처음 발간된 킹제임스 역본은 단어 대 단어(형식적 일치) 번역본이다.
The King James Version (KJV) is a word-for-word (formal equivalence) translation that was first published in A.D. 1611.
여기서 이분이 '단어 대 단어'(word for word) 번역을 '형식적 일치'라고 한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로데스 박사님은 공적으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만 공인으로서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였습니다.
로데스 박사님이 얼마나 유명한가 알아보려면 아마존에서 그분의 이름(Ron Rhodes)을 쳐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이 지은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책들이 나올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Ron-Rhodes/e/B001HCZ24O/ref=sr_ntt_srch_lnk_1?qid=1459489113&sr=8-1
이래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위키 백과를 소개합니다. 위키 백과에는 아예 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항목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and_formal_equivalence
여기로 들어가면
1)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2)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3) 동적 일치로 의역된 성경들
4) 완전 의역 성경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먼저 형식적 일치를 보이는 성경들 리스트에는 킹제임스 성경이 있습니다. 둘째로 형식적 일치와 동적 일치를 같이 사용한 성경들 리스트에는 NASB와 NIV가 있습니다. 셋째로 의역 성경들 리스트에는 귯뉴스 바이블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전 의역 성경들 즉 저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쓴 성경들(?)의 리스트에는 리빙 바이블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Message)가 있습니다. 사실 메시지는 성경이 아니라 MSG입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5
형식적 일치의 중요성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qna&write_id=224
구체적으로 성경 사본학과 학식의 깊이에 대해 알기 원하면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83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4-19 14:54:55 KJB 문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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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15:07:0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킹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과 개역성경, NIV 등의 근간인 천주교 소수 본문(수정 본문 혹은 비평 본문)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고 해서 글을 씁니다.
아마도 이분은 흠정역 성경 부록이나 팸플릿에 들어 있는 표 데이터를 보고 ‘정말 이 정도일까’ 하고 의아히 여겨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먼저 데이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웨이트 박사님의 책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그리스도예수안에 발행) 책에서 발췌했습니다(37-40쪽).
-------- 인용 시작 ---------
7.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수용 본문(TR)의 5,600군데 이상을 바꾸었다.
나(웨이트 박사)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1984년 8월 2일까지 앞서 말했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가지고 내가 직접 세어 본 결과 수용 본문과 웨스트코트/호르트의 비평 본문 사이에 5,604군데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5,604개의 변화 중 1,952개는 빠진 것(35%)이고 467개는 더해진 것(8%)이며 3,185개는 바뀐 것(57%)이었다. 여기에는 이렇게 변개와 관련된 5,604군데 말고도 4,366개의 단어가 더 포함되어 있어 총 9,970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이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이 숫자를 647쪽의 스크리브너의 그리스어 본문을 기준으로 나누어 본다면 페이지 당 평균 15.4개의 단어가 수용 본문에서 변경된 셈이다.
무어맨(Dr. Jack Moorman) 박사는 수용 본문의 단어들을 세어서 총 140,521개라고 보고했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변화들은 전체 단어의 7%이며 이것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그리스어 신약성경 45.9쪽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표의 제목을 두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터’로 했다.
[신약 성경 그리스어 본문 전쟁터: <그리스어 「공인본문」과 「수정본문」 비교> ]
-------- 인용 끝 ---------
위의 작업은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질문하신 분에게 답하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과 일치하는 스크리브너의 공인본문과 소수 본문의 대표인 네슬레-알란드(Nestle-Aland, 독일 식으로 네스틀레-알란트, 한국에서는 네슬 알란트 혹은 네슬 알랑으로 부름)의 26, 27판을 비교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몇 년 전에 28판이 나왔으나 내용은 대동소이함). 네슬레-알란드 판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 본문의 뒤를 이어 1898년부터 110년 이상 판을 무려 28번이나 바꾸며 나온 소수 본문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판이 나올 겁니다. 이들은 이렇게 인간의 학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복원 혹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을 보시면 국내에도 사정이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6
이 두 본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2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38
영국 런던에서 사역하시는 무어맨 박사님은 수용 본문(TR)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모든 단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비교하고 다 세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알란드 본문의 단어가 수용 본문보다 무려 2,886개나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웨스트코트‐호르트 본문이 삭제한 단어보다 934개가 더 많음을 뜻합니다. 삭제된 2,886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을 영어 단어로 환산하면 베드로전후서와 맞먹는 분량이 됩니다.
무어맨 박사님의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 2002년에 <8,000개의 차이>(8,000 Differences)라는 제목의 책(524쪽)으로 출판되었습니다.
http://www.amazon.com/Differences-Between-Greek-Modern-Versions/dp/1568480547/ref=sr_1_1?s=books&ie=UTF8&qid=1459413487&sr=1-1&keywords=8000+differences
무어맨 박사님의 치열한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드리기 위해 마태복음이 시작되는 1쪽과 계시록 마지막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본학을 거론하며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객관적인 데이터는 제시해야 합니다. 혹은 기존에 발표된 이런 위대한 학자의 자료보다 더 많거나 신빙성 있는 데이터를 들고나와야 무언가 다른 주장을 해 볼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 몇 개를 수집하여 사이트에 올리거나 책을 내는 일로는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경 사본 학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는 보통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해 무어맨 박사님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두 본문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엄청난 수고를 마다치 않았으며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어맨 박사님은 성경 사본학과 직접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쓴 저명한 학자입니다. 아마존에서 Jack Moorman을 검색하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http://www.amazon.com/s/ref=nb_sb_noss_2?url=search-alias%3Daps&field-keywords=jack+moorman
저희가 출간한 <박사성경>은 이 8,000개 차이의 많은 부분을 킹제임스 흠정역 신약 성경 본문에 표기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1
잠언 30장 5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Every word of God [is] pure:)
우리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God.
여기의 ‘말씀’(word)은 말 그대로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순수한 모든 단어가 없다면 성경의 말씀들은 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글쎄요, 이러나저러나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요? 뭐 교리가 바뀐 것도 아닌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어들이 바뀌면 교리가 바뀝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다음을 참조하기 바랍니다(맨 밑에 있는 PDF 자료를 내려받아 보기 바람).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79
자, 여기 공인 본문(TR)을 가지고 만든 영어 성경이 있고 네슬레-알란드 26-28판을 가지고 만든 성경이 있습니다. 두 성경이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학에는 이런 정리가 있습니다.
"어떤 한 개와 비교해서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따라서 서로 다른 본문에서 나온 두 개의 역본은 서로 같을 수 없습니다.
네슬레-알란드 본문을 아무리 잘 번역한다 하더라도 – 그것이 무슨 성경이든 – 그것과 무려 5,600군데 이상 (그리스어 단어로는 무려 10,000개 이상) - 차이가 나는 공인 본문에서 나온 킹제임스 성경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웨이트 박사님의 말대로 NIV나 NASB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어 본문이 진리를 떠나 모든 면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들은 기초가 잘못되었습니다(웨이트의 같은 책에서).
참고로 ‘Bible For Today’의 웨이트 박사님은 명문 미시간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였고 댈러스 신학교에서 신약 그리스 문학으로 석사를, 성경 강해학으로 신학 박사를, 명문인 퍼듀 대학에서 스피치로 철학박사(Ph.D.)를 받았으며, 수십 년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이 정도의 학력이면 원어에 얼마나 능통할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단을 초월해 한국의 신학자들도 종종 논문과 기고문 등에서 이분의 의견을 인용할 정도로 저명한 분입니다. 현재 85세가 넘는 고령이지만 지금도 독립침례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biblefortoday.org/
이분은 원어 학자이므로 늘 원어를 언급하지만 영어로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이 신뢰할 수 있는 성경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저서 <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은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을 보여 줍니다. http://www.amazon.com/Defending-King-James-Bible-Waite/dp/1568480121
이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누구나 PDF 파일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6_02&write_id=12 저는 웨이트 박사님과 그분의 교회에서 독립침례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수 받을 때 믿음을 고백한 대로 신실하게 킹제임스 성경만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가르치는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위의 책 부록에 실린 웨이트 박사님의 간증입니다(198-200쪽).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용 시작 ---------
질문: ‘번역’과 관련된 이런 종류의 사역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언제인가?
답변: 먼저 말해 둘 것은 번역 관련 사역이 내 사역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사역의 일부이다. 우리, 즉 BIBLE FOR TODAY는 본문 논쟁,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 성경 보존 및 영감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900개 이상의 책자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매년 추가로 많은 타이틀이 더해지고 있음). 이것은 총 2,300개의 자료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신념은 확고하다. 나는 1971년 6월 「킹제임스 성경 옹호」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해당 주제에 대한 내 연구의 첫째 산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언 35년이 되었다.
누군가 이 사역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필요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변호하는 일에 나서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현실에서 그냥 이대로 앉아 전투에 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간 수많은 잘못이 저질러졌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 전까지 나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으로 교육받았고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BIBLE FOR TODAY라 명명된 사역을 시작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나의 배경과 BIBLE FOR TODAY의 배경을 다룬 소책자가 있다[B.F.T. #168]. 내가 매사추세츠 주, 뉴튼의 믿음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때 라디오 방송 하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BIBLE FOR TODAY였다. 이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가지고(1965년, 성경은 물론 킹제임스 성경이다) 오늘날의 여러 이슈 – 낙태, 학교에 있는 여러 성경들, 공산주의, 구원 등 – 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BFT의 상징을 보면 왼쪽에는 어둠, 오른쪽에는 빛을 바탕으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방패(믿음의 방패), 방패 위에 검(성령님의 검)이 놓여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있다. 이것이 초기 사역의 모습이었다. 참고로 BIBLE FOR TODAY News Report는 1971년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1960년 NASB가 나왔을 때 의문은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성경일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성경일까?” 그래서 우리는 NASB를 검토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NASB는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 즉 ‘The Bible for today’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9년 뒤, 1969년에 NIV라는 또 다른 역본이 탄생했다. 이때도 질문은 동일했다. “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인가?” 물론 그즈음에 다른 여러 역본들 – 현대인을 위한 복음, ‘리빙 바이블’ 등 ‐ 이 쏟아져 나왔다. 부록 B에 이런 성경 출판의 역사가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다가 1979년에 NKJV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성경이 나왔다. 과연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처럼 ‘성경’(Bibles)의 홍수 속에 살면서 증거와 사실을 확인하고 규명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성경이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왜 중요한가?”이다. 대답은 이렇다. 오늘날 교회에 발생하는 여러 교리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학, 즉 성경과 교리의 연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성경에 대한 믿음도 좋고 성경의 계시나 권위, 영감, 무오성에 대한 토론도 좋다. 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그 성경이 어디 있는가?”이다. 그 성경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당신이 말한 것이 죄인의 마음을 파고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발견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겠는가? 현재 자기 손에 있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 혹은 저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라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확신하건대, 20, 21세기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공격이다. 이 공격은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냐?”라고 물으며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4장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시험으로 이어졌다. 이때 사탄은 성경 기록을 거짓으로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으나 주님은 성경 기록으로 즉 “기록된바…”, “기록된바…”로 이것을 물리치셨다. 이것은 사탄의 공격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성경 전쟁이 낳은 하나의 부작용일지 몰라도 오늘날 일부 크리스천들과 젊은이들,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성경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 내 주위에 있는 수많은 성경 중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없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이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 곧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고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바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킹제임스 성경을 쓰레기통에 내던져서는 안 된다. 킹제임스 성경은 잘못되지도,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 같은 역본은 이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일단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당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사용했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들은 현재 우리 손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본문들이 전 세계 어떤 번역자에 의해서든 앞으로 다시 사용될 일은 없다.
내 말이 좀 막연히 들릴지 모르니 한 번 자세히 말해 보겠다. 현재 킹제임스 성경 번역에 사용되었던 본문을 번역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직 계급 체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 즉, 대학, 신학교, 그리고 성경으로 돈벌이를 하는 출판사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배교자들과 현대주의자들, 그리고 로마 카톨릭 주의의 추기경들이 후원하는 본문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킹제임스 성경 역자와 같은 번역자를 다시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이 거인들이라면 현대 번역자들은 소인국의 난쟁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성경의 번역 기법 곧 문자적, 형식적 방법은 이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이 방법으로 번역했다. 오늘날에는 동적 일치 방법이 일반적인 번역 기법이다. 누누이 말했지만 동적 일치 방법은 넣고 빼고 바꿔서 만든 의역이다. 자, 어떤가? 킹제임스 성경 같은 성경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는가? 내가 계속하여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세인트 매리에 있는 1,000와트짜리 출력을 가진 - 그래도 주당 30분에 $13.5달러면 내가 들은 것 중 제일 싸다 -조그만 방송국인 WVVW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나 맡고 있다. 굳이 거기서 한 이유는 그곳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국 담당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 방송국에선 의사의 자유가 보장됩니까?”였다. 그는 대답했다. “예, 얼마든지요. 다만 방송국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항상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렇게 성경 번역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30분짜리 주간 프로그램과 5분짜리 일간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15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청취 가능하며 곧 위성을 통해 영국과 유럽, 캐나다, 그리고 남미까지 전송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로, 글로 많은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 두 프로그램의 주제는 모두 ‘전통 성경 본문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뜨겁고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켄터키, 사우스캐롤라이나, 와이오밍, 그리고 메릴랜드 주에 있는 라디오 청취자들을 위해서만 이 일을 한 건 아니다. 나는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일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 시간은 꼭 방송 테이프 녹음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를 우리 BIBLE FOR TODAY 독자들 - 현재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2,300명 정도 되며 우리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되어 BIBLE FOR TODAY News Report를 구독하는 사람들 - 에게 배포했다. 그 결과 녹음테이프를 통해 독자들은 나의 방송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상 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 성경을 주제로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한 달에 네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여기 논의된 내용을 따로 녹음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여러 번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일 외에도 나에게는 다른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손자들도 원한다면 방송 강연 테이프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테이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 줄 것이다.
-------- 인용 끝 ---------
독자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에 들린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대로 이 성경이 그분의 모든 단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마치며 「1611년 킹제임스 성경, 초기 개정 신화」(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The Myth of Early Revisions)라는 책자를 저술하여 「킹제임스 성경」의 초기 수정판에 얽힌 신화 즉 꾸며 낸 이야기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한 리건 박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0
-------- 인용 시작 ---------
여러분은 이제 확신을 가져도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손에 있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결코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정화된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이 우리를 위해 ‘영어로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킹제임스 성경」 본문의 정확성에 대한 권위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의 초판 인쇄본에 있지도 않고 제임스 1세의 인품에 놓여 있지도 않으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학의 뛰어난 업적에 있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스어 「공인본문」에 있지도 않다. 영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KJV)이라는 절대 무오한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그분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시간에 그분의 말씀이 있다.
-------- 인용 끝 ---------
존귀하신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위로자 성령님의 큰 평안이 임할 줄로 확신합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but my words shall not pass away.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2016-04-01 11:04:08 | 관리자
킹제임스 성경으로 창조 과학의 진수를 보여 주신 모리스 박사님의 귀한 글 감사합니다.
미국 창조 과학회를 창시한 헨리 모리스 박사님은 킹제임스 성경 옹호자였습니다. 그분이 지은 역시 킹제임스 성경을 씁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창조론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창조만 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http://www.amazon.com/Henry-Morris-Study-Bible-The/dp/089051657X
샬롬
패스터
2016-03-31 16:24:03 | 관리자
세상의 과학과 문명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다 보니
인간 지혜와 지식의 교만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극치를 향해 달려 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어리석은 자를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2016-03-31 09:34:23 | 김영익
짧은 글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이 헛되고 헛됨을 다시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6-03-31 09:26:06 | 장용철
하나님앞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다시한번 경각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3-31 00:06:30 | 하원범
한글 흠정역 성경구절로 설명하니 더욱 이해가 잘되네요.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거부하는 닫힌 마음을 조금만 열어도 현대과학시대에 이 세상 모든것이 창조 되었음을 바로 깨달아 알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2016-03-30 21:00:59 | 홍성호
인간 지혜의 어리석음 (The Foolishness Of Human Wisdom)
Henry M. Morris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로마서 1:22). 마태복음 5:22절에서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행동도 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형제에 대해 어리석은자라고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고 예수님도 특별한 경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시편 14:1).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무수한 증거들을 외면하고 애써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라. ” (마태복음 7:26). 특히 자신의 물질적 부요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20).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위선을 꾸짖으시면서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3:17,19)
그러나 아마도 가장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모든 인본주의적 세상 지혜에 대해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음이니...”(고린도전서 3:19).
그러한 세상 지혜는 고대에 이교적 사상들을 낳았고, 오늘날에는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만연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로마서 1:21,22,25) 그러한 인본주의적 철학은 흔히 ‘과학(science)’으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고린도전서 1:19).
창조과학 홈페이지에서 본 글인데 번역전 참조 성경구절 원문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으로 되어 있어 킹제임스흠정역 한글성경으로 바꾸어 편집해 보았습니다.
The Foolishness Of Human Wisdom
by Henry M. Morris, Ph.D.
Evidence for Creation › Evidence for God › Design and Purpose › God Caused Wisdom
“Professing themselves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Romans 1:22).
The Lord Jesus, in Matthew 5:22, warned His disciples against calling anyone, “Thou fool,” since we can only judge by outward acts. Yet the Scriptures, in general, and Christ, in particular (who could discern the inward character), do not hesitate to describe certain types of people as fools.
For example: “The fool hath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Psalm 14:1). Anyone who tries to explain away all the innumerable evidences of God is a fool, the Bible says. So is anyone who rejects the teachings of Christ: “And every one that heareth these sayings of mine, and doeth them not, shall be likened unto a foolish man, which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hew 7:26). In particular, one who lays up riches for himself is in this category. “But God said unto him, Thou fool, this night thy soul shall be required of thee: then whose shall those things be” (Luke 12:20). Christ rebuked the Pharisees as “fools and blind” (Matthew 23:17,19) because of their hypocrisy.
But perhaps the most foolish of all are those who proclaim themselves to be wise and then seek to rationalize their rejection of the Word of God. The Apostle Paul gravely warns against all such man-centered wisdom: “For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with God” (I Corinthians 3:19).
Such “wisdom” led to ancient paganism, and is now centered in evolutionary humanism. They “became vain in their imaginations, and their foolish heart was darkened. Professing themselves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And . . . worshipped and served the creature more than the Creator” (Romans 1:21,22,25, as in the context of Romans 1:18–32). Such humanistic philosophy commonly masquerades as “science,” but God has warned: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I Corinthians 1:19). HMM
출처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355 http://www.icr.org/article/1577/237
2016-03-30 11:14:17 | 허광무
안녕하세요?
저희는 2016년 3월 초에 <죽음의 공포 극복하기>를 출간하고 무료 배포하였습니다.
http://new.keepbible.com/Cmn2/View/4Cz
이 책은 현재 생명의 말씀사 등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374202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그래서 모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이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줍니다.
무료로 <죽음의 공포 극복하기> PDF 책을 올리니 마음대로 복사해서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6-03-28 14:51:49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희는 2016년 3월 초에 <이슬람교 바로 알기>를 출간하고 무료 배포하였습니다.
http://new.keepbible.com/Cmn2/View/4Cy
이 책은 현재 생명의 말씀사 등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102356
지난주에는 유럽의 벨기에에서 30여 명이 죽은 대규모 이슬람 테러가 있었습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483205&plink=ORI&cooper=NAVER
이번 주에는 파키스탄에서 65명이 죽는 대규모의 탈레반 이슬람 자폭 테러가 있었습니다.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32805335314649
왜 이런 악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까요?
도대체 이슬람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이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줍니다.
무료로 <이슬람교 바로 알기> PDF 책을 올리니 마음대로 복사해서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6-03-28 14:45:13 | 관리자
'유일주의'라는 말에 담긴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란 무엇인가요?
http://woogy68.blog.me/220663991230
2016-03-24 21:36: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도움이 되었다니 감사합니다.
미디어 선교 자료 배송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1903
샬롬
패스터
2016-03-16 17:30:52 | 관리자
하루에 한 번씩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키워나가는 성도입니다.
어제 미디어 선교 책자들을 잘 받았습니다.
귀한 책들이 제 손에 들려지기까지 수고해 주시고 헌금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영적인 복들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과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께 임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6-03-16 14:57:16 | 이혜숙
안녕하세요!
이렇게 용기를 내어 성경지킴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1번과 3번 항목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과 설교 영상을 참조해 주십시오.
*사랑침례교회가 어떤 독립교회인지 궁금합니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4491
*침례(Baptism)- 설교 영상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183
*침례교회와 침례성도 – 설교 영상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184
*침례 01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spe&write_id=228
간결하게 답변드리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방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성경을 알게 된 분이라면 피드백이 제한적인 이곳에서 답변을 구하시기보다
032-664-1611로 낮 시간에 전화를 하셔서 글에 밝힌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신실한 형제님의 대단히 자세하고 진솔하며 자상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03-10 23:49:43 | 김대용
안녕하세요. 유투브를 통해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고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 평택시 청북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어느 교회를 찾아가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 독립 침례교와 일반 침례교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 인터넷 검색 시 침례교회는 찾아볼 수 있는데 독립 침례교회는 보이지 않아서 질문 드립니다.)
2. 주변에 침례교가 없다면 킵 바이블 사이트안에서 성경공부만 해도 되는 것인지요?
먼 거리라도 꼭 교회출석을 해야 하는것인지요?
3. 침례를 받고싶을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p.s. 인천에 사시는 분들이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2016-03-10 17:04:41 | 양처럼
역시 고정인 자매님이 번역한 다음 글도 같이 보기 바랍니다.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가?
http://www.keepbible.com/KJB2/View/2WE
2016-03-09 18:3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한마음 미션의 고정인 자매님께서 시간을 들여 귀중한 글을 번역해 주셔서 함께 나누기 위해 올립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jvtoday.com/home/language-of-the-kjv
http://www.kjvtoday.com에서는 영미권의 양식 있는 크리스천 지성인들이 언어적, 과학적, 역사적, 상식적 데이터를 가지고 차분하게 킹제임스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샬롬
패스터
킹제임스 성경의 언어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구어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언어를 단지 구식 언어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킹제임스 성경의 독특한 스타일은 대부분 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d's Secretaries>의 저자 Adam Nicolson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을 맡았던] 학자들은 성경의 언어를 자기들이 알고 있고, 집에서 사용하던 영어로 끌어내지 않았다. 킹제임스 성경의 단어들은 외국어가 영어로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외국어의 상태에 맞게 밀고 나아가는 형태이다”(211) 라고 말한다. 영어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상태에 맞춰서 번역하는 형태는 원본의 의미와 스타일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글은 킹제임스 성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한 고어가 아닌 단어들과 문법구조
2인칭 대명사 구별
많은 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이 고어를 사용한다고 여기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thee’와 ‘thou’ 때문일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이 이러한 대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2인칭 단수 (thou, thee, thy, thine)와 2인칭 복수 (ye, you, your, yours)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이러한 구분을 한다.
성경을 자세하게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6장 1절,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에 사용된 대명사를 세심히 살펴보면, 잘못에 빠진 사람을 회복 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ye" which are spiritual(영적인 ‘너희’))의 의무이지만,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성(considering "thyself"(‘네 자신’을 살펴보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명사의 구별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이 구절에서 주는 공동의 의무와 개인의 의무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다. 대명사의 인칭 구별이 중요한 구절에는 다음이 있다: 출애굽기 4:15, 출애굽기 29:42, 사무엘하 7:23, 마태복음 26:64, 누가복음 22:31-32, 요한복음 3:7, 고린도전서 8:9-12, 디모데후서 4:22, 디도서 3:15, 빌레몬서 1:21-25 등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같은 많은 현대 언어들 역시 단수 2인칭 대명사와 복수 2인칭 대명사의 구별을 유지한다. 게다가, “thou”와 “ye”가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대명사들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찬송(심지어 현대 찬양에서도)을 드리거나 교회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여전히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Be thou my vision”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송의 제목에서,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찬양의 가사인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서 “thou” 와 “ye”를 사용하여 찬양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하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들의 국가인 “오 캐나다”를 부르는데 그 곡의 1절에서 “thy”가 한 번, “thee”가 네 번이나 나온다. 이 곡은 1980년 7월 1일에 캐나다의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캐나다 어린이들이 “thy”와 “thee”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thou”와 “ye”가 일상적 대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노래와, 산문, 또는 성경에서 훌륭한 문법적, 운율적, 문체적 이유와 함께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이 구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용부호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은 인용부호(" ")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킹제임스 성경의 고어적 기능으로 여겨지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는 성경에서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왜 유익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어가 있는 명령문
명령문은 명령을 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주를 찬양하라”라는 문장은 명령문이다. 요즘에는 명령문에서 주어가 종종 사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너, 주를 찬양하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만약 킹제임스 성경이 위와 같이 표현을 한다면, "Praise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양하라) 또는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와 같은 문장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현대 독자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현대 문법 책들에서는 명령문의 주어가 항상 “you(너)”이기 때문에 주어를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 “you(너)”에는 단수인 “너”를 나타내는 “thou”와 복수인 “너희”를 나타내는 “ye”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별은 중요할 수 있다.
시편 104편 35절의 “너는 주를 찬송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자기의 혼)에게 “Bless thou the LORD”(너는 주를 찬송하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thou”가 사용되었으므로 화자의 명령인 “찬송하라”는 화자 자신의 혼에게만 주는 명령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 화자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는 명령인 “Praise ye the LORD”(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이어 말한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명령문이 대상을 가리키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ESV에는 “Bless the LORD, O my soul! Praise the LORD!”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마치 화자가 자신의 혼에게 주를 찬양하라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역개정도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라고 번역하였다(이해를 돕기 위해 개역개정 구절을 임의로 추가하였음). 킹제임스 성경의 화자는 명백하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마무리 짓는 반면, ESV의 화자는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며 시편을 결론짓는 듯 하다. 그러므로, 명령문에서의 인칭대명사 사용은 문법적, 그리고 의미론적인 목적을 행한다.
호격(사람 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명사・대명사・형용사의 형태)의 사용
호격은 2인칭 대명사인 “you”를 사용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을 식별하는 명사를 사용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6장 9절 말씀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 좋은 예이다. 요즘 사람들은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이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Our Father, who IS in heaven”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킹제임스 성경의 이러한 특이성은 호격의 충실한 번역에 근거한다. 이것은 고어가 아니라 호격을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충실히 번역한 결과이다. 즉 킹제임스 성경은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동의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되는 고어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 현대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현대식 번역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나오는 "bewray”(비밀을 누설하다)라는 단어는 고어처럼 느껴진다. 전체 구절은 "And after a while came unto him they that stood by, and said to Peter, Surely thou also art one of them; for thy speech bewrayeth thee.”(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이다. 현대 역본 ESV에는 이 구절이 "After a little while the bystanders came up and said to Peter, "Certainly you too are one of them, for your accent betrays you."라고 번역되어 있다. "Bewray"라는 단어는 “betray”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Bewray"는 "divulge”(비밀을 알려주다)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조금 더 미묘한 단어이다(메리암 웹스터 사전). 그러므로 "bewray"의 전체적 의미는 “누설함으로써 배신하다”이다. 마태복음 26장 73절은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했던 말이 그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냈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을 “배신한” (연루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26장 73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킹제임스 성경과 ESV가 모두 “evident”(분명한)라고 번역한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나오는 단어, δηλον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뜻을 명확하게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오래된” 단어를 접했을 때, 그 단어를 단순한 고어로 무시해 버리기 전에 그 고어가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법률용어의 사용
성경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증언) 혹은 “계약”이다.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법률문서이다. 성경 안의 몇몇 책들이 문자 그대로 법률문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법률문서”라는 말은 “러브레터”와 같이 따뜻하고 가벼운 느낌(몇몇 사람들이 성경을 묘사하듯)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더 의미 있는 법적 계약의 관계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결혼은 법적 계약이다. 가족의 재산 상속도 유언과 신탁을 통해 부여된다. 가벼운 사람은 언제든지 “러브레터”를 쓸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 증명서나 자신의 자산을 수여하는 유언장을 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저 “러브레터”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체결된 그분의 언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thereof, thereby, therein, hereby, herein, whereof, whereby, wherein, wherefore(그것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안에, 이것에 의하여, 여기에, ~하는, 그 점에서, 그러므로)와 같은 법적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성경이 참으로 두 가지 ”증거”의 집합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정확한 법률 용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영미권의 거의 모든 법적 서류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결코 고어가 아니다.
영국식 단어와 숙어
일부 단어들과 숙어는 북미인들에게 고어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국인들이나 영연방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북미 이외의 국가에도 그러한 영국의 단어들과 숙어를 이해하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3장 3절에 나오는 “plaiting”(땋은 것 혹은 엮은 것)이라는 단어는 북미인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영국인들에게는 친숙하다. 게다가, 일부 영국 단어들은 인기 있는 영국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북미인들에게도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25절에 나오는 “schoolmaster”(훈육 선생)를 예로 들어보면, 그 단어는 북미보다는 영국에서 훨씬 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해리포터 소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기는 하지만)의 성공과 함께 “schoolmaster”는 북미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현대 역본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언어는 항상 유동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래된” 단어들도 인기 있는 소설이나 영화 한 편에서 사용됨으로써 다시 표준어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를 구식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어의 모호함 보존
킹제임스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which”(어떤)를 사용한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용례를 문제로 간주한다. 하지만, 문맥에서 사물이 언급되는 것인지, 사람이 언급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경우에는 “who(누구)” 대신에 “which”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베드로전서 1:23절,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에서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부분은 “the word”(말씀)이나 “God”(하나님) 둘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리스어 자체에 이러한 모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도 그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전문용어로 보존된, 고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
고어로 간주되는 일부 단어들은 실제로 특정 사람들에 의해 여전히 전문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로마서 1장 13절에 나오는 “let”(막혔도다)이 킹제임스 성경(여기에서 사용된 “let”은 “방해를 받은”이라는 뜻임)에 나와있는 고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권 노트에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국경수비대, 변호사,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같이 이민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without let or hindrance”(사고 없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은 “let”이 고어이기 보다는 “전문용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테니스를 할 줄 알거나 경기를 보는 사람은 테니스 공이 네트에 닿거나 스침으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을 때 “let”이 선언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let”과 같은 단어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쓸모가 없는 단어가 결코 아니다.
시적 특징
구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일부 문장구조는 사실 시적 효과를 위해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사무엘상 30장 31절의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wont to haunt”(또 다윗 자신과 그의 사람들이 자주 가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구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wont to haunt"는 운이 맞기 때문에 NASB의 “accustomed to go” 구문보다 더 시적이다. 또한, 유다서 1장 8절, "despise dominion”(통치권을 멸시하며)도 “최신식”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구문이다. ESV에는 "reject authority"라고 나와있지만, "despise dominion”은 두운법을 사용한 구문이다. 사실상 1장 8절의 전체 구절, "...these filthy dreamers defile the flesh, despise dominion, and speak evil of dignities”(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는 초성 알파벳 D가 5번 반복되는 두운법을 사용한 구절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시적 표현이다. 알파벳 D는 입 안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았다가 터뜨려 소리를 내는 자음인 파열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비난의 말을 기관총처럼 내뱉는 유다서 1장 8절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자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운율과 두운이 성경에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시적 표현은 말씀을 암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고어인 것들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
킹제임스 성경에는 “spake”와 “shew”같이 고어적 스펠링과 형태를 가진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현대에 사용되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문맥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친숙한 고어들
일부 단어들은 고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단어들이다. 그러한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thou”는 고어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뜻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킹제임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고 나면, 이 고어가 다른 현대 단어들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thou” (단수 2인칭 대명사)와 “ye” (복수 2인칭 대명사)와 같은 단어들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밀감을 준다. 기독교인이 현대 역본 대신에 킹제임스 성경을 읽으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고서도 단수와 복수의 2인칭 대명사의 문법적 구분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생소하지만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는 고어들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고어들은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있다. 사사기 3장 21절에서 22절이 좋은 예이다.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에훗이 자기의 왼손을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서 그의 배를 찌르매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므로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지 못하였으며…) 이 구절에서 “haft”는 고어이다. 하지만, 문맥을 통해 그 단어가 칼날의 반대편에 있는 검의 한 부분임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고어들은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들에 자주 등장한다.
문맥에 의해 식별될 수 없는 생소한 고어들
이제 문맥에 의해서 식별될 수 없는 고어들만 남아있다. 그러한 고어들은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킹제임스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 쓰인 낯선 고어들은 “listeth”(마음대로)(요3:8)과 “wist”(알지)(요5:13)이다. “Lust”와 연관된 “to list”는 “to desire”(열망하다)라는 뜻이며, “wise”와 연관된 “to wist”는 “to know”(알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이 두 단어들보다 더 많은 고어들을 담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문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심지어 생소한 고어들도 다시 친숙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돼지 독감이 발발하기 전에는 북미의 많은 어린이들이 “swine”(돼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NIV와 ESV는 “swine” 대신에 “pigs”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돼지 독감에 대한 과대 광고들로 인해 “swine”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낯선 고어들도 다른 단어들로 대체하기 보다는 뜻을 학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2016-03-09 18:33: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렇게 성경지킴이 사이트를 통해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문의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한 글들을 천천히 읽어 보시고
도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왜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읽는가?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77
2.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45
3. 번역이 원본만큼 좋다고 할 수 있습니까?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90
4. 킹제임스 성경의 영광(PDF 파일)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281
이상의 글과 책(무료 PDF 파일)을 정독하시면 의문을 푸는데 큰 도움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성경지킴이 사이트 오른쪽 상단 구글 검색을 이용하시면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궁금한 점에 대한 답을 얻으실 수 있으니 참조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6-03-09 15:19:02 | 김대용
요즈음 정동수목사님의 말씀에 푹 빠져있는 성도입니다. 킹제임스를 어플로 다운도 받았습니다. (무료로 해주셔서 감사 ^^)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서 문의합니다.
킹제임스의 장점은 직역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원본에서 번역된 것일텐데요.... 킹제임스가 이전의 영어성경의 오류를 제대로 바로 잡았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헬라어나 그런 원본 성경을 직접 영어로 옮긴 성경이어서 정확하다 평을 받는 건지요..... 친절한 답변 기대합니다.
2016-03-09 14:03:46 | 이철
안녕하세요?
기쁨침례교회는 수원 영통 지구에 위치한 킹제임스 성경을 쓰는 독립 교회입니다.
사랑침례교회에서 4년 동안 함께 하신 조양교 목사님께서 인도자로 수고하십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719
복음의 진리 안에 거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환영하니 방문해 주십시오.
그리고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기쁨침례교회의 지체로 건강한 교회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주소: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949-1, 대교빌딩 6층
www.joybc.co.kr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6-03-08 12:18:5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