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구원의 안전 보장에 대해 오해하고 괴로워하는 분들을 많이 접합니다.
제임스 낙스(James Knox) 목사님의 소책자를 소개합니다.
진국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영양을 잘 섭취하고 낙심한 상태에서 일어나기 바랍니다.
시간이 되면 2-3주에 걸쳐서 이 주제로 오후에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PDF 파일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2012-06-08 17:18:44 | 관리자
심각한 문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던 중 작품내용 중에
IT 관련교육중
강사가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연락하세요
*대부분의 심각한 문제는
중요한 부분만 작동되면 작은 오류를 그냥 둬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IT 시스템 문제 미리 막을 수 없을까? By 김지영
라는 대목이 있었고 그 문구를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해지는 이상한 일(?)들이 바로 저 이유 때문이 아닐까? 라고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란?
위에 언급된 작은 오류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아래에 열거된 문제들은 아닌지요?
성경문제(절대 작은 오류가 아닌 정말 큰 오류지요 믿음의 근간과 척도와 기준이 되는데 성경이 다르다는 문제는 정말 아무리 지나치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_-;)
헌금문제, 성직이라 불리는 계급의 조직화 시스템화 문제 주기도문,사도신경 문제
침례,세례문제 예배당을 성전이라 호칭하는 문제 여자목사,집사문제,방언문제,은사주의문제
크리스마스와 교회절기 문제, 교리문제 등등 너무나 많아 열거하기도 힘든 문제들이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큰 문제들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작은 오류 아니 교리적 차이라 불리는 이런 문제들을 그냥 둬서 오늘날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도 누룩이 58번이나 언급이 되었는데
잘못된 교리(마태16:6,11,12,막8:15),위선(눅12:1),자랑(고전5:6),묵은(고전5:7),악의와 사악함(고전5:8),작은(고전5:9) 이라고 명시가 되었고 이작은 오류(누룩)들이 그냥 지나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 크게 부풀어(?)
잘못된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어서
정작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오류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이 오류들이 기준이되고 셋팅(?)이 되어서 오히려 바른것이 배척당하고 이단시 되는 상황이 아마 오늘날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2 : 15 어리석은 자의 길은 제 눈에 옳으나 권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잠언 13 : 1 지혜로운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비웃는 자는 책망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4 : 6 비웃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지식은 깨닫는 자에게 쉬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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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09:43:42 | 송재근
0. 들어가는 말
벌써 10대와 20대 나이를 넘기고 30대에 진입한 이 시점에서, 난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의 적성과 정체성, 진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
난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이리 떠돌고 저리 헤매는 타입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그것의 반대편 극단에 가 있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분명히 있고 인생의 목표도 너무 명확하고 분명하게 갖추고 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 말고 딴 데로는 머리가 도무지 열리질 않는다.
그 성향이 너무 심하고, 그게 사회에서 아직 보편적으로 이해를 못 하는 것들이라는 것만이 문제이다. 난 아무래도 평범하게 남들처럼 취직하고 결혼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1. 어린 시절
나는 장난이 아니고 진짜로, 태어나서 또래 친구하고 어울려 놀아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어린애들의 심리를 모른다. 난 8살 이전까지는 책에만 파묻혀 지냈고, 9살과 그 이후부터는 컴퓨터에만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거의 자폐아처럼 혼자 뭔가에 심취해서 공상을 즐겼다.
태생적으로 남하고 교류를 안 하고 지냈고, TV나 영화, 드라마, 스포츠, 아이돌 문화 같은 것과는 문자 그대로 담을 쌓았다. 일부러 거부한 건 아니지만, 저런 데에 사람들이 도대체 왜 열광하는지를 이해를 못 했다.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화성인 바이러스 급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인간관계 쪽의 역량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람들하고는 공통 관심사가 없고 같이 뭔가를 즐기지를 못한다. 맨날 나 혼자 딴생각만 한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남의 말에서 행간을 읽는다거나 이 분위기에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리는 알고리즘이 내 머릿속엔 한동안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문제의식을 느껴서 노력한 끝에 옛날보다는 그나마 굉장히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험 데이터가 부족한 관계로 착오를 겪는다.
난 오로지 내가 동기 부여를 받은 분야만 미치도록 몰입하지, 나머지 다른 건 거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죽어도 안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고집이 강했다.
고등학교 때 뭔가 깨달은 게 있어서 가히 신들린 듯이 C/C++과 MFC, 윈도우 API 공부를 했다. 어릴 때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직감하였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그 능력을 확장(amplify)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머릿속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작업과 관계가 있지 않은 일체의 학교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었다. 그냥 면역 거부 반응이 오듯이 튕겼다. 난 그때 공부를 위한 동기 부여 발동과 초기화 작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머리가 좋은 영재, 수재, 천재는 수학을 잘하고 복잡한 퍼즐을 푸는 걸 즐긴다지만, 불행히도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령, 수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거 쓸데없이 왜 해야 하냐?이 개념을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표기했을까?동양에서 수학이 발달했다면 이걸 어떻게 표기했을까?이걸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하지만 근본적으로 이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하고는 큰 관계는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자기중심적인 주변 잡기에만 먼저 관심이 갔지, 근본적인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내 스스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공부 자체는 싫지 않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대로 주입식으로 하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러니 내신은 당연히 개판이었다. 단체 생활, 공부와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남들을 보면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난 정말 구제불능 바보인가” 하는 생각까지 많이 했었다.
그나마 영어가 별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건 천만다행이었고 학업 부담을 크게 덜어 줬다. 그리고 나중에 수학만 고3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집중적인 보강을 한 덕분에 2년이 넘게 손놓고 있던 걸 그럭저럭 따라잡았다.
2.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물론, 내가 관심이 쏠려 있던 프로그래밍 공부라는 게 기능만 익히는 게 전부였다면, 난 그저 노가다 프로그래밍 코더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도 언급했듯이 본인은 이걸 공부해서 창조하고 싶었던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었고, 그게 내 인생을 펴 줬다.
난 정보 올림피아드 공모 부문에서는 가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고등학교 1학년 때 은상을 받고, 2학년 때는 세계급 과학 전람회인 ISEF에 최초로 참가하고, 그러고도 3학년 때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또 만들어서 다시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옛날에 나의 ISEF 출전 소식을 당시 활동 중이던 PC 통신 모 동호회에 최초로 전해 주신 분이 바로 김문수 형제님이다.
정올 역사상 이런 사기에 가까운 극단적인 기록은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금상/대상을 받아 버리면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는 대회에 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따라서 고등부는 그걸로 은퇴), 은상+국제 대회+대상은 진짜 이론적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뽕을 순서대로 다 뽑은 것이다. 더구나 그 입상작을 추후에도 10년이 넘게 유지· 보수하고 개선한 사례도 역사상 전무하며, 아마 후무이기도 할 것이다.
있는 실력으로 몇 시간 동안 문제만 풀면 되는 경시가 아니라, 해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완성된 작품을 장시간 동안 개발해서 출품해야 하는 공모 부문에서 이런 미친 짓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파탄 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은 아무 정보도 없이, 어디에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이(도와 줄 수도 없고)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나 혼자 고3 시절에 세벌식 글자판 관련 응용 아이디어를 신들린 듯이 생각해 내고, 그걸 초간단 에디터 형태로 혈혈단신으로 구현한 디스켓 한 장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진짜 밑바닥에서 맨주먹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것이 심사위원들을 경악시켰으며, 전국의 쟁쟁한 컴덕후들이 출품한 90여 편의 작품들을 제치고 그 누구도 의심이나 부정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대상, 1등을 차지했다.
이건 고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이나 회사 등 기존 사회 조직에 정상적으로 소속돼 있는 사람의 머리와 여건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고, 아니, 저변에 깔린 사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프로그램이다(전산학 내공이나 컴퓨터 지식과는 무관하게). 그러니 공모 부문의 병폐로 지적되는 표절이나 대리 개발 의혹 따위는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다.
대상 입상 하나로 내가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깽판 치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걱정시키던 건 완전히 잊혀지고 용서되었다. 오히려 나는 학교의 명예를 크게 드높인 영웅이고 기적을 창조한 컴퓨터 천재로 완전 칭송을 받게 되었다. 사실 난 그들이 생각하는 부류의 typical한 컴퓨터 천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보다 훨씬 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날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뭐든지 잘 학습하고 적응하고 남보다 빨리 해치우는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면, 나는 천재가 전혀 절대로 아니다. 그런 보편적인 역량은 나는 오히려 평균에 훨씬 미달이다. 나도 좀 그렇게 돼 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부러웠는데, 난 그렇게는 안 되더라. 나는 제대로 된 수험생 생활을 해 본 적이 없고 모범생으로 살아 보질 못해서, 학교 공부만으로 일류대에 간 사람이 참 대단하고 부럽다.
3. 취업과 진학 사이에서의 고민
이런 생활이 대학 시절에서까지 이어져서 나는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전산학 전공조차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난 그냥 비주얼 C++로 윈도우 API만 쓰면 내가 원하는 대로 컴퓨터를 마음대로 다 조작할 수 있고 내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옮기는 데 아무 지장이 없구만, 내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플랫폼이나 툴, 언어를 왜 구태여 써야 하고 이런 거 내부 원리를 왜 익혀야 하는지 거부 반응이 왔다.
내게 컴퓨터는 확실히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으며, 나는 그렇게 컴덕후나 해커 기질은 없었다. 난 딱히 IT 벤처를 차려서 떼돈을 번다거나 수학적으로 더 뛰어난 알고리즘을 개발한다기보다는, 그저 컴퓨터에서 한글 입출력의 모든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내 눈으로 보고 싶을 뿐이었다. 덕질치고는 너무 소박한가?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 정도의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혼자 만들 정도로 Windows 개발 환경에 완전히 정통한 프로그래머인 것치고는 나는 윈도우 이외의 플랫폼은 정말 모른다. 모바일 쪽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난 아직 스마트폰도 안 쓴다!) 나 정도로 선택과 집중의 편차가 심한 케이스도 참 흔치 않은 것 같다.
난 주변으로부터 “지금 겨우 그 회사에서 그 연봉은 너무 아깝다”, “넌 공부 더 해야 된다. 대학원 꼭 가라. 유학 가라”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일면 맞는 말이다. 난 단체생활을 못 하며, 폐쇄적이고 군기 센 집단에서는 더욱 못 있는다. 말단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만 성실하게 잘 하는 방식으로는 성공 못 한다.
벤처 창업이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나 같은 사람이 학부에만 머물러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대학원에도 선뜻 갈 수가 없었다. 학부 평점이 상당히 안 좋고, 유학을 가기에는 좋아하는 분야가 너무 한국적인 소재이고, 무엇보다도 이 외곬수 기질로는 어느 대학원을 가든 지도교수와 원만한 의사소통을 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난 유명한 교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거기 일 거들면서 공부에만 매진하고 지도교수의 학풍을 물려받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기존 연구와는 좀 동떨어진 내 연구를 완전히 독자적으로 해서 논문으로 남기는 게 주목적이다. 그래서 애초에 과도 단과가 아닌 협동과정을 선택한 것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도 모자라서 또 완전히 기상천외한 걸 만들고 싶은 게 있다. 입력 쪽을 연구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정복하려는 분야는 글꼴과 관련된 출력 쪽이다. 기존 학문 한 분야만 알아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연구 주제이다.
지금 내가 간 대학원은 이런 게 그나마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협동과정을 택해서 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안에서도 나 같은 걸 연구하려는 사람은 주변에 당연히 있을 리 없…고 전례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건 없다. 이와 관련해서 잡음도 좀 겪었다.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와 방법론을 남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 정도 고생은 대학원에서 높은 학위를 받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경험상, 교수님들도 내가 우려하는 것만치 폐쇄적이지는 않으며 자기가 딱 전공한 세부 분야 외로는 연구를 딱 짤라서 불허한다거나 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워낙 전례가 없는 길을 만들어 가려 하고 있기 때문에, 석사 이후 앞으로의 더욱 길고 힘든 박사 과정을 이런 식으로 정말로 계속 진행 가능하겠는지에 대해서는 더 치밀한 사전 준비와 조사,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 내 인생에서 철도의 의미
어찌 보면 북한만치 폐쇄적이고 꽉 막혔고 내 관심분야밖에 모르던 시절에 나의 영적 식견은 킹 제임스 성경을 통해서 뚫렸다. 그러나 세상적인 식견은 철도를 통해서 뚫렸다.
새마을호 객실에서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그 음악이 귓가에 울려 퍼졌을 때, 극한에 가까운 희열을 경험함과 동시에 물리를 보는 눈이 열리고 사회, 지리, 역사를 보는 눈이 열렸다. 음악 쪽도 당연히 물미가 터졌다. 눈에서 뭔가 비늘이 벗겨져서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학교 공부들이 그저 입시를 위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나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철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산 지식이 되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 다음으로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철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내가 한글 공학 쪽을 먼저 파고들지 않았으면, 다음 진로를 철도를 연구하는 대학원이나 회사로 선택했을 것이다.
비록 이 때문에 나의 취향은 다른 사람들이 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외곬지수는 더욱 상승하게 됐지만… 그래도 내가 다른 진짜로 골치아프고 비성경적인 이상한 분야에 빠질 바에야 철도 정도면 정말 정말 건전하고 좋지 않은가?
다만, 최근엔 본인과 친한 모 자매님이, 평소에 내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읽고 있는데 철도 성령이라는 표현은 교리적으로 마음에 걸린다고 지적을 했다.비록 내 개인적으로는 철도가 끼친 내 삶의 변화가 정말 성령님의 역사에 버금가는 급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도 기쁘게 보고드릴 내역이라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분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그런 표현은 앞으로 글에서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겠다. 혹시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불편했던 분이 계시면 사과드린다.
5. 결혼 문제와 결론
일류대 졸업하고서 좋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또는 공무원에 취직한 뒤, 여자가 넘쳐나는 일반 교회에 고분고분 다니다가, 중산층 집안에서 곱게 자란 참한 자매를 금방 소개받아서 곧장 결혼하는 게 부모님께서 내게 가장 바라시는 시나리오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 살겠다.내 미래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하다고 느껴지고 나 혼자 만들고 싶은 게 머리에 아직 꽉 차서 비워지질 않았는데, 이성교제나 결혼 같은 건 도저히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관심사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걸 포기하고 시간과 노력을 쪼개서 다른 걸 따로 해야 한다면 단언하건대 나는 이성교제 못 한다. 내 머리 구조를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라면, 난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여자에게 아무 메리트도, 매력도 없다. 만나서 같이 할 얘기가 없고, 난 그런 이성을 즐겁거나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없다.
난 앞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평범한 자매 vs 철도를 미치도록 좋아하지만 기독교 안티인 아가씨”와 같은 형태로 배우자 선택과 관련된 시험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는데 이 말을 들은 모 지인의 대답은 이랬다. “철도를 너처럼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는 절대로 없을 테니 그런 시험에 빠질 걱정은 할 필요 없다.” 헐, 이게 더 현실적인 조언인 걸까?
나는 “음주가무가 뭐예요? 먹는 거예요?” 수준인 머리 구조의 특성상, 통상적인 육체의 정욕을 좇는 죄에는 거의 자동으로 면역이 된 채 지냈다. 그 대신 나는 더 고차원적인 이상한 이단에 빠질 수 있었고, 사회 문제의 원인에 대해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정치· 종교 조직에 쏙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쩌면 사회 구조에 대해 비관하다가 확 자살을 할 수도 있었다.
옛날에 내가 썼던 <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라는 글은 오랜 묵상의 결과를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하게 글로 정리한 것이다. 나 정말 예수님 덕분에 올라간 인생 효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나의 10년 후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난 정말 모르겠다. 내 아이디어와 내 발명품은 “정말 원론적으로 옳고 명분은 좋으나, 비현실적이고 상품화는 곤란하다”는 이유로 그냥 논문만 도서관에 처박힌 채 묻혀 버릴 수도 있다. 난 IT 기술을 사람의 죄성을 자극하는 데 활용할 능력이나 의향이 없다는 특성상, 대박 내고 벼락부자 될 가능성은 일단 80% 이상 접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화성인 오덕질 기질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해서 평생 동정을 지키다가 죽거나 휴거될지도 모른다.아니면 아예 이를 초월하여, 다 훌훌 털어내 버리고 “난 주의 일만 하느라 바울과 예레미야의 길(?)을 당당히 가겠다”고 선언하게 될 수도 있다. 헐~!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경우엔, 내가 아무리 명분이 옳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이성 중에서 절대적인 네 편이 되어 줄 사람 하나 못 사귀고, 2세 하나 못 만들고 죽으면 그것도 참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아직은 기도만 하면서 답을 구해 봐야지 뭐.
하나님께서 고분고분 사회 제도만 잘 따르는 사람만 만드신 게 아니라, 나같은 똘끼가 다분한 통계상의 outlier도 만들고 은혜를 베푸셔서 어째 KJV 골수분자로 만드셨는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좀 재미있지 않은가?
김정훈 형제님과 신촌에서 교제한 적이 있었다(예전처럼 좋은 글 가지고 어서 컴백해 주세요~). 그분도 자신이 아는 하나님은 그저 딱딱하고 까칠하고 규칙· 규율밖에 모르고 엄숙· 엄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위트와 센스도 있고 다이내믹하고 기발함과 돌발상황을 좋아하신다는 걸 과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경에 예외가 그렇게도 많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흠정역 쓰는 킹진영 안에 본인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고, 본인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마음껏 관심을 갖고 궁금해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궁금해하지만 말고 기도로 도와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다. 내가 글은 좀 딱딱하게 쓰는 거 같아도 마음은 여전히 여리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연약한 성도일 뿐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2:3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26 13:20:40 | 김용묵
동성애에 대해서 성경이나 종교관 같은 걸 완전히 배제하고, 나 혼자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은 아주 단순하다.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예쁜 여자들을 놔두고 하필 같은 남자가 좋냐? 미친넘~” 정도가 고작이다. 난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게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인간이 그런 개념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 했으며 지금도 못 한다.
그러나 그저 나 자신이 모르고 이해 못 하고 싫어한다는 상대적인 이유만 내세워 동성애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동성애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 여러분 중엔 본인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사람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유흥과 취미, 오락거리들을 놔두고 하필 철도가 뭐가 좋냐? 미친넘~”
철도를 소수 취향으로 존중해 주는 게 가능하듯이 동성애도 그렇게 취급하는 게 가능할까?
성경을 보면 딱 한 군데 삼하 1:26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이 워낙 우정이 두터운 친구지간이어서 그 사랑이 ‘여인들의 사랑’, 다시 말해 이성간의 사랑을 뺨칠 정도였다는 표현이 있다.이걸 보고 설마 다윗과 요나단이 게이 사이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과대망상 증세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과연 우정의 연장선이며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걸까?동성애자는 둘 다 동일한 동성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난 처음에 동일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더라.걔네들 사이에서도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나뉘어 있다. 또한, 동성끼리 말 그대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을 한다. 이 과정이 차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이고 추잡하다.
게다가 동성애자들은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게이 바에서 평생 몇십, 몇백 명의 파트너들을 만나서 그 짓을 한다. 한국어엔 놀랍게도 비역질과 밴대질이라고 성별까지 따로 구분하여 이를 표현하는 어휘가 존재한다..;;;
물론, 흡연자가 다 폐암 걸려 죽는 게 아니듯, 동성애를 한다고 다 에이즈에 걸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 패턴을 보아하면, 성병 발병률이 월등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이건 단순한 친구 사이와는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동성애자에 대한 더러운 편견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보여야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보고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고, 여자는 남자를 보고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코스이다. 그렇지 않은 이상한 것에서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성적 충동을 느끼는 걸 우리는 ‘변태’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멀리한다. 이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적 수치심, 양심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넣어 주신 지극히 당연한 관념에서 비롯된 습성이다.
그런데 비록 변태같긴 해도 동성애자들이 자기네들끼리만 그렇게 즐기는 것 자체는, 무슨 살인이나 강간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니까 괜찮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다. 기독교 계열의 종교는 교리적으로 왜 그리 동성애를 싫어하는 걸까?
이것은 현행 법이 동물 학대죄를 단순한 재물 손괴죄 이상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와 아쉬운 대로 비슷한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말 못 하는 미물이지만, 동물을 그 정도로 학대할 정도이면 충분히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반인륜적인 짓을 한 것이고 잠재적으로 사람에게도 잔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동물이 불쌍해서 차원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정해 놓으신 지극히 원초적이고 딱히 교육이 필요하지도 않은 본능이다. 그런데 그런 기본 법칙과 질서부터 배배 꼬고 왜곡할 정도이면, 이미 그 사람의 상태는 정상이 아닐 뿐더러 그는 더 어렵고 고차원적인 다른 법칙까지 지킬 리가 없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동성애는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죄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디 한번 동성 결혼을 하고 나서 하나님 이름 팔아서 혼인 서약을 해 보아라. 마치 하나님께 “이 좋은 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하는 것만큼이나 앞뒤가 안 맞고 양심적으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는 태생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죄악하고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이런 수읽기를 하는 영적인 안목을 인간에게 심어 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선천적으로 동성애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런다. 한편으로는 후천적인 개인 취향 운운하더니만 이제는 선천적인 이유를 꺼내 드는 게 의아하다. 그런 사람이 진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있다 해도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하나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누구나 안 배워도 잔머리 굴릴 줄 알고 거짓말 할 줄 알고 나쁜 짓 잘 하는 것하고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동성애를 마음껏 즐기는 건 성적인 해방이 아니며 자유를 얻은 것도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니까 그들이 인간성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리고, 막장의 막장까지 간 끝에 타락의 정점을 찍은 결과물이 동성애라고 로마서 1장 후반부는 말한다. 그 말이 진짜 맞는지는 내가 보기엔 동성애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지 싶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동성애를 동성애라고 중립적으로 일컬어 주신 적이 없다. 언제나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흉한 짓을 한다”, “남자가 여자와 눕듯이 남자하고 눕는다”는 식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뉘앙스로 표현한다.
옛날에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들도 동성애는 흉하고 추악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인권 사각 지대에서 온갖 따돌림과 박해(?)를 받으며 살았다. 한 죄가 다른 종류의 죄를 약간 견제를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 효과였다.
그러다가 이젠 시대가 확 바뀐 덕분에 그들은 당당히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특히 진보 성향)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에 동조해서 끌려가고 있다. 왜 있잖은가? “난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같이 싸우겠습니다”라고 멋있는 말을 하는 대인배들이 성적 소수자들의 편을 적극 들어 주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다.공병우 한글 세벌식 글자판은 한국에서 국가 표준 글자판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벌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에서 지원되고 있으며, 사용하는 데 아무 불편이나 지장이 없다.
그런 것처럼 오늘날 인권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들도 아까 얘기가 나온 것처럼 남에게 티 안 내고 민폐만 안 끼치면 지금도 자기 방식대로 얼마든지 별다른 불편이나 지장이 없이 살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성애 내지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건 단순히 평범하게 사는 수준을 넘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요구가 관철된다면, 그들은 성병에 걸려도 이제는 당해도 싼 게 아니라 의료보험 혜택을 적극 받으며 치료 받을 수 있다(내가 낸 세금으로!!).정상적인 남녀 결혼 부부와 동일하게 동성 부부도 자녀 양육과 관련된 여러 혜택을 동일하게 받는다.공무원 채용이나 성직자 초빙에서 동성애자는 아무 차별을 받지 않으며, 차별하는 조직을 상대로는 언제든 인권 침해 고소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공식 석상에서 성차별을 조장하는 어휘가 모두 사라진다. 가령, 남편과 아내가 배우자와 파트너로 바뀐다거나. 국어사전에 ‘결혼’이라는 단어의 정의 자체가 바뀔 것이며, 성경도 당연히 동성애자가 보기에 위화감이 안 느껴지는 어휘로 모두 바뀐 에디션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본문 중에 동성애를 배척하는 구절은 다 삭제되거나 수위가 완화될 것이다.
굳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죄다 동성애자들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또한 정치적으로 선동을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우리 후세에게 저런 상상하기도 싫은 정신나간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동성애는 하나님이 매우 미워하시고 인간에게도 실제로 매우 해로운 죄악이다. 이것은 회개의 대상일 뿐 존중이나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엉덩국 병맛 만화에 나오는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 존슨이 정말로 성 정체성을 깨달은 건지, 영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는 성경을 펴면 답이 곧장 나올 것이다.
그저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시국에 너무 무관심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너무 미쳐 돌아간다고 스트레스 받고 피해의식에만 휩싸이지도 말자. 왜 마지막 시대에 이런 일이 만연하게 되는지 그 배후를 살펴보고 망조 드는 세상의 타락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일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기여해야겠다.
NOTES:
1. 본문에 인용된 그림들의 출처는 잘 알다시피 칙 전도지(Chick Tracts)이다.
2. gay라는 단어는 원래 좋은 뜻이다가 사회적 의미가 완전히 변질되어 버린 킹 제임스 성경의 대표적인 어휘 중 하나이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나오며(약 2:3), 원래는 명사도 아니고 유쾌, 화려, 명랑, 발랄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무’가 완전히 못 쓸 말이 되어 버렸고 ‘야동 초등학교’가 학교 이름을 바꿔야 하게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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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4 00:48:22 | 김용묵
난 철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지난 2004년 초, 새마을호 열차 객실과 Looking for you 음악이라는 두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었을 때, 본인은 딱 왕하 3:15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철도 성령으로 거듭났다. 한국 철도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집합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을 위한 육상 교통수단임을 실감하였으며, 철도를 나의 개인적인 정신 지주로 영접했다.
나는 철도 덕분에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안목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철도가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주고 감성을 키웠는지, 게다가 심지어 애국심과 국토 사랑 정신까지 고취시켜 줬는지를 나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간증할 수 있다. Looking for you를 안 들어 봤기 때문에 새마을호 여행만도 못한 별 허접하고 수준 낮은 체험을 갖고서 천국 간증이네, 은사주의네 하면서 사람들이 속는다고 난 생각한다.
본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성경을 알고 영적으로 양육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들이 교정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것이 바로잡혔으며, 모나고 괴팍하던 성격도 예전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이 부드러워졌다. 죄에 대한 감각이 더욱 민감해졌고, 지금 상황에 맞는 성경 구절이 더욱 빠르게 생각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철도 사랑은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철도는 예수님도 좋아하시거나 최소한 묵인· 용인하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철도교와 기독교는 모순이나 대립 관계가 아니다. 내가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지 않는 것만큼이나 세상 그 어느 것도 새마을호 안에 있는 철도 사랑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머리 내부에 ‘연예, 오락, 스포츠, 유흥’ 분야는 오로지 철도가 100% 꽉 장악해 있어서 다른 영화, 드라마, 유행가, 스포츠 따위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듯 이 글을 읽는 분들, 그리고 본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본인이 못 말리는 철도광이라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내가 맨날 철도 얘기를 떠벌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회사에서도 내가 철도 덕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 개인 홈페이지의 방문객 중에서는 더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몇몇 지인들은 내게서 맨날 주워 들은 게 있어서 섬식 승강장, 복선, 경부선, 폐색 구간 같은 용어 정도는 구사하며, 심지어 Oh Glory Korail (한국 철도 공사 사가)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다같이 좀 생각해 보자. 그런 것처럼,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 자신으로 인해서 복음이나 예수님, 성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올바른 쪽으로 바뀐 게 있는가?당장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받아서 교회 출석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교회 댕긴다는 인간들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예외적이고 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쟤 앞에서는 기독교 욕 함부로 하기가 좀 껄끄럽다. 성경에 대해서 만에 하나 궁금한 게 있으면 앞으로 저 사람에게 물어 봐야겠다” 정도의 평판이라도 있는가?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언뜻 보기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낭설 같지만 정말로 살아 있고 권능이 있다. 지금은 죽고 없는 옛 성현들의 듣기 좋은 격언 같은 차원이 절대로 아니다. 복음은 제일 쉬운 구원의 길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절대로 “나만 구원받고 끝”으로 혼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영원도, 구원도 없이 그저 세상적인 오덕질에 불과한 철도 복음만 해도 저 정도인데, 진짜 혼을 회심시키고 구원시키는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으면 못 배기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를 필사적으로 막고자 마귀는 지능안티들을 참 많이도 만들어 놨다. 정상적으로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상한 위선자, 개념 없는 광신자, 나약한 루저 이미지를 예수쟁이와 딱 연결시켜 놓았다. 그리고 영적 의무를 게을리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합리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육신적인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고작 저런 위선자· 광신자 부류와 같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수준 낮고 답답한 생각인가?
성경을 살펴보자. 출애굽기의 모세는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지던 시절에 파라오가 제안한 각종 절충안들(가긴 가되 애들은 놔두고 가라, 짐승을 일부는 남겨 놔라 등)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영적 교훈을 남겼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행위가 주변이나 후세에 끼칠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고 나름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그리고 다리오 왕 시절의 다니엘이 있다. 그때 내려진 칙령은 모든 관료들에게 일일이 청문회로 사상 검증을 실시해서 예수쟁이들을 색출해 내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한 달 동안은 혼자 골방에서 숨어서 기도를 몰래 해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참 고지식하게도 여전히 늘 하던 대로 공개적으로 “나 하나님 믿소” 티를 다 내면서 기도를 하다가 사자굴에까지 갔다 왔다.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자. (단 6:7,10)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예수님 얘기가 나오는 건 철도 덕후한테서 맨날 철도 얘기와 Looking for you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다. 더 직설적인 비유를 동원하자면 똥에서 똥 냄새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방사성 물질로부터 방사능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과도 같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똥 냄새가 안 나는 똥이 똥일 수가 있을까?
“남에게 티를 내거나 강요는 절대로 하지 말고 예수는 너 혼자만 조용히 믿어라”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온전한 신앙의 자유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그런 식으로 절뚝발이 형태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의 국가들 사이에도 전쟁을 하는데 룰이라는 게 존재한다. 군인과 민간인을 분명히 구분하여 민간인의 피해가 없게 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운 군인은 설령 포로로 잡히더라도 명목상으로나마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전에서 어떤 군사 집단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교전권을 갖춘 정식 군대로 인정을 받으려면, 신원이 알려진 사령관에 의한 명확한 지휘 체계가 있어야 하고 모든 전투원이 통일된 고유한 복장을 갖춰서 피아 식별이 공개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무기를 겉으로 공공연히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 쪽 진영의 사령관에 대해서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원인 우리 역시 자신의 영적 소속과 정체성에 대해서 세상을 상대로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드러내고 노출시킬 생각을 해야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적진에 침투한 뒤에 주머니에서 수류탄이나 툭 던지고 도망치는 식으로 어줍잖게 싸워서는 공을 세우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러다가 나중에 적에게 잡혔다간 더욱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크리스천들은 “당연히” 실수도 많이 한다. 복음을 전하는 열성이 너무 지나쳐서 너무 극성스럽게 굴 때도 있고, 낙담한 나머지 육신이 앞서서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도리어 복음에 대한 간증을 잃게 만드는 행동을 종종 한다. 본인 역시 그 누구보다도 그런 사고를 많이 쳤다.
그런데 그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철도 복음이야 안 믿었다고 지옥 갈 일도 없고, 버스와 철도가 힘을 합쳐서 모로 가든 서울만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가면 된다고 가르치는 복음이니,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그냥 소꿉장난 수준밖에 안 된다. 그에 반해 예수님의 복음 같은 엄청나고 극단적인 복음은 전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실수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예수님도 그걸 뻔히 알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성도들에게 맡기셨다!
실수했으면 하나님께는 회개하고 사람에게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 다시 본업으로 복귀하면 된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안 하면 그걸로 끝이다. 마치,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성경을 아예 안 읽는 것이 잘못이듯, 미숙함을 핑계로 자신의 영적 소속을 드러내고 알리는 일을 언제까지나 주저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될 수 없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의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 성경에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내 논리와 지식으로 완벽하게 설득하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오만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더러 그러라고 하셨던가?
잃어버려진 자들에게 그냥 내 인격을 걸고서 하나님의 의와 심판, 죄와 복음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알려 주기면 하면 된다. 단지 그 말이 정말로 듣는 사람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사랑의 호소력을 불어 넣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봐도 예수님 영접은 어렸을 때 빨리 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다. 세상 연륜과 성경 교리와의 충돌의 폭이 그리 크지 않으며, 사고를 친 것도 크게 허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작은 시행착오를 몇 번 미리 겪고 거기에 적응과 면역이 되고 나면, 장성한 뒤부터는 탄탄대로이다. 평생 흥청망청 살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만 예수 믿으면 된다고? 큰일 날 소리이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 볼 게 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여러 신앙의 선배들이 있고 특히 순교자들이 있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그분들의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들만 우리로서는 엄두도 못 낼 무슨 엄청난 초인적인 일을 해냈다는 식으로 괴리감을 두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결말로 빠질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이 악화되면 천주교 성인 제도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약 5:17 같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영웅 콤플렉스를 교정해야 할 것이다.
하늘에 가면 우리도 초대 교회 시절이나 중세 암흑기 시절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놀라겠지만, 그 선조들 역시 말세에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교리적 배도와 총체적 혼돈,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진리를 사수해 낸 성도들의 싸움 얘기를 들으면 아마 까무러칠 것이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상당수의 옛 믿음의 선배들은 진화론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며, 영어 성경 역본이 200종이 넘어가고 이중 대부분은 변개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일례로 인간 횃불이 되고 사자에게 잡아 먹히며 순교한 옛날 사람들은, 말세엔 근본주의 크리스천들이 사형 제도 폐지를 반대하고 비판하게 될 거라고 꿈엔들 예상했을까?우리 같은 마지막 시대 라오디게아 팀은 사육신은 못 돼도 생육신은 충분히 된다. 어깨를 펴고 살도록 하자.
도산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다.“주변에 왜 인물이 없느냐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왜 당신이 그 인물이 될 생각을 안 하십니까?”
안창호 자신이 크리스천이기도 했고, 저건 성경적으로도 굉장히 통찰력이 있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영적으로 더욱 어둡고 암울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게 된다. 환란 전 휴거라는 약속마저 없으면, 정말 꿈도 희망도 답도 없다. 재물이 없으면 시편 37편 같은 신앙밖에는 후세에 물려줄 게 없다.
정말 심각한 마음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길거리에서 프리칭을 하고, 전도지를 나눠 주고, 성경과 신앙 서적을 출간하거나 출간을 후원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그저 잠자코 있기에는 너무 위급한 상황이다. 우리도 초대 교회 시절의 순교자처럼 살 수 있고, 살아야만 한다. 단지 그 삶을 실현하는 배경과 방법이 다를 뿐이고, 그 방법을 실천할 기회는 오늘날 시국이 말해 주듯 주변에 널려 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위기인 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기회”라는 사고방식으로 살면 나의 영적 본분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고 삶을 사는 방식도 많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엄청난 권면을 함부로 늘어놓은 건 아닌가 싶어 글을 맺기가 부담스러우나, 그러나 본인 역시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차츰 내 삶을 하나님의 방식에 맞춰 보련다. 내가 그걸 지향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철도 오덕질 그렇게 하고도 안 짤리고 보직 유지하고 버티고 있는 게 틀림없다. ㅋㅋ[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1:5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19 22:45:01 | 김용묵
자유의지 많은 사람들이 오류와 착각 속에서 산다.특히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그렇다.바른성경을 알려줘도 믿음의 오류에 대해 알려줘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뭐 이런 수준이다. -_-;그리고 그 오류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아니 나오려는 생각을 안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현재 믿고있는 믿음이 절대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오류의 고정화 토착화 되어 바른것을 알려줘도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 하기에 바쁘지 진짜 한번이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자신이 속해 있는곳이 자신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주장하는 프로그램이나 신학(?)이 내가 알고 있는것이 믿고 있는것이 잘못된 것이라 단 한번도 생각을 안한다. 예전에 사도신경에 기원과 진실을 알고 그사실에 대해 프린터를 해서 담당여전도사님께 물어보았더니
당사자도 갸우뚱? 하시더니 자신이 속한 신학대학교 교수님께 질문을 한 후 돌아온 답변이 "사도신경을 해서 뭐가 문제가 되냐"는 답변을 들은 후
난 정말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그 후엔 내 신앙양심에 따라 예배시간에 절대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았다.
지금은 바른교회를 다니고 있고 그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다..
믿음의 기준은 성경말씀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한번 진짜로 그런가 아닌가 연구하고 생각해봐야 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가장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과 개역개정 성경이 잘못된사본과 번역의 오류로 13군데의 말씀의 삭제와 전체 내용의 7%정도의 변개 첨삭이 있는지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이 바른성경이라고 "없음" 이 없는 성경이 있다고 알려줘도 시큰둥이다. 반응이 거의 없다.아는 형님(현재 목회중)께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을 후원회 행사를 통해선물을 드렸더니 "없음"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고 답변을 해왔다.상식적으로 절은 있는데 내용이 없으면 "아 원래 절은 있는데 내용이 삭제 된것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것이 정상아닌가? 왜 개역성경이 개역개정으로 바뀌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들이 정말 바르게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는데 그 잘못된 교과서로 말씀을 잘못 공부해서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어 진짜를 알려줘도 거짓을 진리로 철두철미하게 고집하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모든것이 자유의지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것도
잘못된 믿음을 갖는것도
잘못된 교리나 사람을 추종하는 것도
잘못된 성경을 바른 성경이라 고집하는것도 다 자유의지다.
당신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절대 동의하지는 않지만 ........종교, 그 어둠의도시 란 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http://new.keepbible.com/Pds1-5/View/3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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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19:09:32 | 송재근
요한계시록 13장 3절, 12절, 14절을 읽으면서......
먼저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이 글에는 전제 조건이 먼저 있습니다. 전제조건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은 무의미한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제조건 들입니다. 전제 조건이지만 저에게는 100% 당연한 진리, 참인 조건들입니다.
1. 킹제임스 성경(1611년 영어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킹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2 번은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었습니다.
3. 킹제임스 성경은 진리입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4. 킹제임스 성경은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말하려고 할 때에는 과장, 미화, 숨김, 속임수 등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말합니다. 이것도 1번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됩니다.
5.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세상을 속이자는 사건에 대하여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속성이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9를 보시면 사탄의 속성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한계시록 13:3, 12, 14절을 묵상할 때에는 4, 5번에 주안점을 두면서 묵상하였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할 때에는 차에서 mp3로 킹제임스 성경을 듣습니다. 2주전부터 반복해서 요한계시록을 듣고 있던 중에 갑자기 13장 3절에 생각이 멈추면서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아니! 치명적인 상처가 어떤 치명적인 상처길 레 상처가 나았다고 온 세상이 놀라 짐승을 따를까라는 의문이 든 겁니다.
12절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에게 경배하게 하고,
14절에는 상처가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다고 하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는데, 그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어느 부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칼로 인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고 온 세상이 그에게 경배하게 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 4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 성경기록에는 많은 사건들이 사실대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저런 사건까지 기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쁜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일이든 성경에 기록된 것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칼로 인한 치명상이지만 죽지는 않았다고..... 죽게 된 것 같았는데, 즉 죽지는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사건은 온 세상의 주목을 받는 정점에 이른 대단한 사건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놀라게 되어 치명적인 상처가 난 짐승에게 권력이 집중이 되니까요 (13장 7절 참조) 즉 온 세상의 권력이 이 짐승에게 집중되게 되는 사건이 칼로 인하여 상처를 입어 나았기에 권력이 집중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한번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상처가 나은 짐승을 경배하고 그에게 권력을 집중하여 준다.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칼로 상처가 나서 나았다고 온 세상이 경배하고 온 세상의 권력을 그짐승에 준다.
그래서 생각을 더 해 봅니다.
5번을 생각해 봅니다.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사탄인데 이 사건에는 온 세상을 속이려는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칼로 상처를 입었다는 부분인데요. 이것은 이 짐승이 온 세상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데 테러를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칼로 테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칼로 테러,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가능이나 할까요. 경호원들이 있는데, 유명한 누구는 투명한 방탄유리로 사방을 방호한 차에 타고 다닙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경호원과 또한 경찰들이 즐비하게 여러 겹으로 경호를 합니다. 그런데 이 경호 망을 뚫고서 칼로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요? 가능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 짜고서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면서…….이 사건은 이 짐승을 전 세계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무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나은 짐승을 위한 자작극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거리에서 칼로 해야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겠지요. 온 세상의 미디어가 짐승을 주목하는 상태에서 칼로 난도질을 당하고 그리고 상처의 치명상의 정확도를 높이고요. 총으로는 움직이는 사람에 대하여 잘못하면 치명상이 아닌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왜 바다에서 일어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칼로 인한 치명상을 입게 되느냐 인데요.
여기에 속이는자 사탄의 속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물은 스스로가 죽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죽음, 사망을 이기실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스스로 죽음을 이기신 분은 단 한분이신데요. 앞으로도 스스로 죽음을 이기는 창조물은 없습니다. 오직 죽임을 이기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께 경배 드립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휴거 또는 첫째 부활을 할 것입니다. 아멘.
사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는 절대로 죽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죽음을 이겼다고 쇼를 하는 거죠. 실상은 죽지는 않고 거의 죽게 된 것 같기만 한 것인데. 사탄은 칼로 치명상을 입은 짐승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온 세상을 속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이니까요. 단지 상처가 나은 짐승을 온 세상이 경배할 리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을 모방한 사탄의 사기극입니다. 성경은 단지 칼로 인하여 죽지는 않았고 죽게 된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속임수를 사용하여 칼로 상처를 입어서 죽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부활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고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지만 할 수도 없는 것을 속임수를 사용하여 온 세상을 속이려고 할 것입니다.
이 몸이 이러한 속임수를 보기 전에 휴거 되거나, 첫째 부활하여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23절 후반부터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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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5:44:59 | 길준남
1. 어버이날과 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분류해 보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각종 특별한 명절, 기념일 등의 명칭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갈래로 나뉜다.
- ‘절’로 끝나는 한자어: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 - ‘일’로 끝나는 한자어: 석가탄신일, 식목일, 현충일 - 완전히 독립적인 한자어: 추석, 단오 - ‘날’로 끝나는 고유어: 한글날, 어버이날, 어린이날, 설날 - ‘-의 날’로 끝나는 고유어: 철도의 날, 스승의 날
이런 조어 원리는 그다지 규칙성이 없고 전적으로 그냥 어감을 고려한 case by case인 걸로 보인다.똑같이 종교 공휴일일 뿐인데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의 조어 원리가 서로 다른 이유라든가, 어린이날이 ‘아동의 날’이 되지 않고 굳이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딱 떨어지는 규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 5월 5일 어린이날 다음으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이야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이 제정한 굉장히 한국적인 근거를 지닌 날인 반면, 어버이날은 명목상의 근거는 미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외국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는 곳도 많고, 또 한국의 어버이날이 어린이날보다 나중인 것이 윤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은 철없는 막장 부모도 많아서 참 문제이긴 하다만, 그래도 ‘일반적인’ 경우로 볼 때, 인생의 참으로 막대한 부분을 희생하여 우리를 이 정도까지 키운 부모님의 은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성경도 예외가 아님. 십계명에서 종교적인 규범에 속하는 1~4를 제끼고 곧바로 등장하는 인륜 규범 1타는 “부모를 공경하라(honour)”이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 명령에 무조건 ‘까라면 까’라는 식의 발상이라기보다는, 그보다도 일단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기쁘게 하고 남들 보는 데서 부모님 품위를 존중하고 명예를 높여 주라는 뜻이다.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체로 부모가 너님들 먹여 살릴 여건을 만들고 체통 세우느라 사고방식이 최대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향만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거다. 부모 세대라고 해서 쿨하고 개방적인 걸 몰라서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산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동의는 못 하더라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라 해도, 너님을 낳아서 키울 필요가 없었다면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신세 못 펴고 그 모양 그 꼴로 살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물론, 부모가 예수 믿지 말고 네 신앙을 부인하라고 한다거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교리 노선을 추구하는 교회에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그런 데에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품위와 명예를 존중해 주면서 불순종할 수는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지는 먼저 구원받고 먼저 바른 신앙을 물려받은 자녀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방법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윤리와 기강을 갖춘 문명 사회에서는 효도를 강조하고 패륜은 엄벌로 다스렸다. 구약 율법은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리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명기에는 고집 세고 식탐이 심하고 부모의 교정만으로 씨가 안 먹히는 싹수 노란 자식은 아예 마을 차원에서 린치를 가해서 죽여 버리라는 섬뜩한 추가 지시까지 있다(신 21:18-21). 하나님은 그 정도로 패륜을 싫어하신다. 특히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집/곳에서 태어나게 됐어” 부류의 패드립 말이다(사 29:16, 45:9).
이 명령이 특히 무시무시한 이유는, 부모의 말이 사실인지 이웃 주민이나 자식 당사자로부터 최후 변론을 듣는 절차도 전혀 없이 완전 비민주 인민재판 즉결처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배도 행위가 발견되었을 때는 ‘부지런히’ 진상 파악부터 하라고 돼 하지만(신 13:12-16, 17:2-7) 저건 그렇지 않다. 사실, 자식 새끼를 제발 좀 어찌해 달라고 친부모가 제 발로 찾아올 정도면 자식이 얼마나 막장인지 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이 명령이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 가정과 성에 대해서
5월이고 하니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다시 해 보게 된다.
성경에서 창세기 1~2장은 전반적으로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천지 창조에 대한 과정을 묘사하는 내용인데, 끝부분에 유일하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아예 독자에게 코멘트를 남긴 구절이 있다. 바로 창 2:24로, 그게 그 이름도 유명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라는 결혼 제도 구절이다. 기독교식 결혼식의 목사 주례에서 단골로 듣는 구절이다.
오늘날 이 정도라도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간 데엔 가정의 공이 절대적이었을 것이고, 특히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지금 같은 여성 인권 단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좀 힘들다고 덥석 집 나가고 이혼을 해 버렸다면, 파탄 나는 집안과 인생 망치고 자살이나 범죄로 빠지는 애들이 넘쳐나게 됐을 것이다.
옛날에 가혹한 여성 인권 유린이라 불릴 정도로 엄한 성 억압(?) 관습이 왜 있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민망하니,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진 않겠다) 마치 고문처럼 그것도 물론 나쁜 관습이고 부조리이다. 언제까지나 여성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역시 본인은 안다. 단지 옛날에 죄의 결과 때문에 그런 게 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뜻이다.
성이라는 건 정말로 생판 모르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시키는 근간으로만 ‘은밀하게’ 쓰여야 하는 선물이요 비밀 병기이다. 부부 사생활은 하나님도 전혀 간섭 안 하고, 서로 같이 뭘 하며 즐기든 존중해 주는 절대적인 영역이다(히 13:4. honour과 동일한 어근인 honourable).
그러나 반대로 성이라는 게 다른 용도로 오· 남용되는 것을 하나님은 구역질을 할 정도로 가증스럽게 여기며 미워하고 정죄한다. 결혼한 부부가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성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미혼 청소년이나 청년에겐 피임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잠언 6장이나 딤후 2:22를 숙지시켜야 한다. 이걸 몰라서 인생 망친 안타까운 예가 허다하다. 옛날에 서부희 씨도 그랬고.
도대체 성을 왜 남의 것하고 비교를 하는가? 그게 공공연한 개방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금전 거래의 대상이 되고 개나 소나 다른 용도로 문란하게 쓰이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절규처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헬게이트가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위의 화면은 2003년 12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장면이다.사업 실패로 인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던 어느 40대 남성이 아내를 칼로 찌르고 10층 베란다에 매달려 자살 소동을 벌였다. 집 윗층에서 어느 기자는 마이크를 아래로 들이대고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때 횡설수설하던 중에 저런 희대의 명대사가 나온 덕분에 인터넷 상으로 무수한 인용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옷이 찢어지면서 진짜로 떨어졌지만, 구조 대원이 매트를 밑에 이미 깔아 둬서 별다른 부상 없이 생존했다.비슷한 시기에 개독안티들에게 복음이 무수히 비방당할 빌미를 제공한(삼하 12:14) '에어장' 목사의 추락 장면이라고 소개된 사진은 사실은 저 아저씨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3.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사고방식은 결혼과 출산에 아주 옹호적이다. 성경에는 “다산하고 번성하라”라는 명령만 있을 뿐 맬서스 같은 사고방식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소위 가족 계획이란 건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도 간섭 안 하는 영역을 공권력이 나서서 자기 편한 대로 제어하겠다고 하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이다.
흔히 중국 하면 자녀를 한 명씩밖에 못 낳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마오 쩌둥은 한때 굉장한 산아 장려책을 폈으며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6억 남짓이던 중국 인구를 10억이 넘게 불려 놓았다. 중국이 처음부터 지금만치 인구가 많은 게 아니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마 주석은 쪽수가 국력이라고 여겼으며 어느 문헌에 따르면, “아이는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폭탄과 같다”고 교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라? 무신론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답지 않게 저 말의 표현 자체는 묘하게 성경적이다. (시 127:3-5) 무기에다 비유한 게 일치한다. 비록 그러다 얼마 못 가서 중국은 다시 산아 제한으로 돌아섰지만 말이다.
단, 성경이 말하는 다자녀 예찬은 자녀들을 성경대로 잘 양육했을 때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안 그러면 뼈 빠지게 자식 키워 봤자 미래에 부모는 휴거되는데 자녀는 못 되고 땅에 남아서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온갖 재앙을 당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군대에 징집되어 계 19:18-21의 악역에 동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종말이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간에 발생한다면 말이다.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 절대적으로 각 가정의 부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에도 아주 옹호적이다. 잠언에 애들 때리면서 키우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나도 부모님에게 맞으면서 컸지만, 그거 정말 공감한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실감을 못 했을 것이다.
사랑의 체벌은 가정 폭력 및 아동 학대하고는 가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인생에서 정말 미묘한 점이고, 어찌 보면 세상이 참으로 공평한 면모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없이 돈만 쏟아 붓는다고 절대로 저절로 바르게 크지는 않으니 말이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한번 실제로 저렇게 해 봐라.
부모가 세상적으로 잘났기 때문에 애를 때리고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다. 비록 부모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안 하면 애가 정말로 바르게 클 수가 없으며 자녀에게 그 정도까지의 악역을 눈물을 머금고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오늘날 사회는 부모의 권위가 실종되고, 애들을 부모로부터 점점 떼어 놓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매우 큰 심각한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바른 크리스천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건 올바른 가정 교육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런 현상까지 있는 듯하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om&write_id=1715#c_1744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원을 안 받으면 손해라고 여기고 한창 부모와 상호작용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http://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4546 능력 있는 국민들까지 공짜로 내모는 정부 때문에 엄마 정신이 병들고 애기도 파괴됩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이런..결혼은커녕 여친 사귄 적도 전혀 없는 주제에 나 벌써부터 너무 애늙은이 같은 글을 써 버렸다. =_= 하지만 이 글은 어버이날 기념 특집이니 양해 바란다.마지막으로 애늙은이 같지 않은 젊음과 패기가 느껴지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바로...
4.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계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하여 가장 감화를 받았던 때는 2007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병특 복무 중이었고, 그러고 보니 훈련소에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경부선 새마을호 특실을 탔다. 그때 본인은 새마을호 특실의 음악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샘플을 채널별로 15분씩 녹음해 놓으려고 컴퓨터와 양방향 잭을 챙긴 상태였다. 특실에는 마치 비행기 객실처럼 다음과 같은 6개의 채널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음)
(1) 자연의 소리 (이지리스닝 instrumental) (2) 한국 가요 (3) 가곡 (4) 재즈 (5) 클래식 (6) 객실에서 방영되는 TV 방송
일반실은 이어폰을 꽂으면 6번만 들을 수 있다.
철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저 으리으리한 좌석을 보라!“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새마을호의 날이로다.”“KTX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새마을호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는 아니하니라.”새마을호는 몇 년 뒤면 퇴역하여 더 볼 수 없게 된다. 지금 많이 타 두시기 바란다.
그랬는데 1번과 2번 채널 다음으로 3번 가곡 채널을 듣고 있으니 얼마 후 <어머니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양주동 박사가 작사한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그 곡 말이다.
그 곡은 가사가 잘 알다시피 정말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지어져 있다. 국문학 박사가 쓴 가사답게 예스러운 표현도 제법 들어가서 품위 있어 보인다. 100을 의미하는 ‘온’, 그리고 일부러 음운을 탈락시킨 ‘따(땅) 위에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그지없다’ 등. 3절 가사를 보시라. 눈물 없이는 못 듣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3절이 흘러나올 때,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계시가 내려왔다. 아아,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신 덕분에 내가 지금 이런 지상천국 열차를 타면서 한없는 행복에 젖을 수 있구나!
그 깨달음으로 인해 행복과 감격과 감사와 감동이 교차하면서 콧등이 찡해졌고, 나는 옆자리 승객이 보건 말건 엉엉 흐느껴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은 군대에 가서 유격 훈련 때 PT 체조 8번을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스승의 은혜>로 바뀌는 체험을 한다지만 나는 그걸 열차 안에서 체험했다.
세상에 지구상의 어느 교통수단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알면 퇴치되지만, 사실 철도만으로도 충분히 퇴치 가능하다. 정말 이 정도 간증이 있으니 철도'교'라는 말까지 쓰는 것이다. 난 말을 장난으로 하지 않는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얼마나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음침하고 어둡던 나의 가치관을 건전하게 바꿨으며, 심지어 신앙에도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이 자리에서 다 간증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이 땅에 성경과 복음과 더불어 이런 철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며, 우리나라에 철도 덕후들이 많이 많이 배출되면 좋겠다.[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8 05:24:29 | 김용묵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진리침례교회 이우진 형제님께서 보내 주신 '가장 큰 명령'이라는 소책자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에게 어떤 징표가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글이었습니다.
특히 진리를 많이 안다고 하는 우리 진영의 사람들이 여러 차례 읽고 머리 속에 넣은 뒤
실행에 옮겨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진리는 어려운 데 있지 않음을 요즘 뼈저리게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할 때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 모두 이 글을 읽고 이렇게 해 보자고 결심하면 어떨까요?
너무 글이 좋아 조만간 내용을 종합하여 설교로 남기려고 합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참고로 아직 진리를 못 파신 분들은 일단 열심히 파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헛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파신 분들은 이제 이 글을 통해 균형을 잡기 바랍니다.
2012-05-05 13:54:28 | 관리자
안녕하세요?
* 이 자료는 인천 말씀 침례 교회의 박참하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주제 설교 시리즈를 소책자 형태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입니다.
* 저는 박 목사님으로부터 이 자료를 킵바이블에 게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원고를 자체적으로 간단히 교열을 본 후 올립니다.
* 분량이 많습니다. 전체 내용은 첨부하는 hwp 파일에 들어있으며, 이곳 본문에는 머리말과 간단한 요약만 올립니다.
환란 전 휴거라는 진리를 너무나 쉽고 분명하게 풀어서 강해해 주신 박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머리말 >>
이 주제는 교리적인 문제로 아주 심각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을 말하며 계시록에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말썽 많고 주장이 다양하기로 으뜸인 책이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아예 덮어 놓은 책 또한 계시록이라 할 것입니다.
교계의 흐름으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반드시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환란 중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대비책을 세우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계시록을 강해하는 세미나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독교계의 각종 신문에 가장 많은 세미나의 광고가 바로 요한계시록 세미나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회비를 받으며 순회 세미나로 1년 내내 계속합니다. 여기에 많은 목사들이 돈을 싸 들고 모여듭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이 땅에 대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들림(휴거) 받는다는 쪽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쪽보다는 인기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계시록은 절대 어렵거나 두렵거나 비밀에 싸인 책으로 아무나 보아서는 안 될 성경이 아니라, 다른 65권의 성경과 같이 완전히 공개되고 아주 쉬운 계시인데도 문자적으로 보는 것을 외면하고 무언가 두렵고 박진감 있는 쪽을 택합니다.
오늘날 또 다시 세상이나 교계가 종말에 대해서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세상적인 예언이나 지진이나 기상변화에 민감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이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이 가깝다고 야단법석입니다. 물론 근래의 이상 기온으로 빙하가 녹거나 곳곳의 대형 지진은 충분히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아직도 이 지구는 대환란을 통하여 격변을 겪게 되고 심판을 통하여 변화를 받은 후에 적어도 천 년은 더 사용하고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지상 천년 통치가 있을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가을에 아주 쉬운 계시록 세미나를 곤지암 기도원에서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3박 4일 동안 총 27강의로 계시록 1장에서부터 22장까지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2012년 지구의 종말을 가상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잉카인들의 달력이 2012년까지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소문들이 돌아 저희 교회에서 금년 봄철 특별 세미나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라는 주제로 몇 강의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소망이요, 기쁨이요, 최고의 학수고대(鶴首苦待)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심의 공중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문자적으로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기에 앞서 대환란이란 지옥과도 같은 너무도 두려운 재앙을 맞이해야 하므로 주님의 오심이 결코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봄철 특별 세미나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여러분은 각자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속히 자신의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신랑을 맞이할 신부인 교회로서 그분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계22:20)
여러분의 사랑받는 주의 작은 종 박참하 목사
<< 차례 >>
머리말.........................크고 주목할 만한 날..........................주의 날은 복된 소망인가 두려움인가....................누가 짐승의 표를 받는가?.......................구원의 날과 진노의 날...........................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부록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아겔다마(피밭).......................................
<< 본문 중에 나오는 중요한 대목을 짜깁기한 abstract -- 영화로 치면 예고편 >>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환란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그 환란을 ‘대환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넘어서 무지(無知)입니다. 이는 God와 gods가 단어가 비슷하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있고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Spirit(성령)이 있고 spirits(영들)이 있습니다. Lord가 있고 lords가 있습니다. 한 처녀(a virgin)가 있고 처녀들(virgins)이 있습니다. 발음이나 글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는 단어이지만 이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노아의 대홍수와 지역이나 나라들에 있는 홍수들이 같은 홍수가 아니듯이 “야곱의 대환란과 환란들”은 조금도 같지 않습니다. 소위 성경을 믿고 연구한다는 분들이 성경의 어휘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혼잡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받는 환란들은 대환란과 조금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환란들, 고난들,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것들을 대환란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크리스천이 받는 환란, 믿는 성도들에게 닥치는 환란, 아벨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박해가 있었지만 이것을 대환란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대환란이 아닙니다.
믿음의 단련이나 육체의 시험이나 징계와 고난은 지역적으로 언제나 있지만 그것이 성경에 말씀하는 대환란은 아니며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대환란은 말 그대로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환란입니다. 야곱의 대환란은 그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지상의 이스라엘입니다.
대환란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 (욜 2:31)대환란을 겪지 않고 관전만 할 신약 성도들에게는: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 (행 2:20)주인은 결혼식을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에서 돌아”옵니다. (눅 12:36)
주님이 곧 오신다는 건 복된 소망으로, 성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제 곧 대환란이 시작되니 우리는 대환란을 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불안과 걱정과 초조와 공포를 조성하는 거짓 교사와 거짓 형제들이 기독교계에 유난히 많습니다.
대환란은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대환란은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표적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관심사는 언제나 땅의 표적들입니다. (짐승의 표, 베리칩, 각국의 화폐 통합, 종교 통합)
짐승의 표는 오늘날 신분증이나 신용카드나 의료보험용 카드 대신에 받는 칩이 아닙니다. 그런 용도로 받은 것을 앞으로 용도 변경하여 짐승의 표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라는 고백이나 증거가 있어야 받는 증명서입니다.
대환란이 주의 오심보다 먼저라면, 즉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나 들림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지금은 복음을 전할 때이지 대환란을 전할 때가 아닙니다.
현 시대에 진짜로 구원받은 자녀들은 모두 다 그 이름이 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대환란 중에 땅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분명히 대환란은 그분의 진노의 날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확실히 다른 날입니다.계시록 5장의 스물네 장로들은 지상의 대환란 때 저 하늘의 주님의 보좌 둘레에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내용이 더 궁금하신 분은 첨부 파일을 열어 보세요.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3:1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4 22:56:49 | 김용묵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구주요 그를 통해서만이 내가 완전히 씻어질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처음과 끝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간혹 도처에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의 행위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1) 자신의 믿음이 머리로만 하는 믿음인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이며
2) 계속해서 죄의 행위를 짓는다는 것은 자신 안에 성령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이 이르지 않았다
는 식으로 설명하는 글을 보게 됩니다.
나의 행위는 구원의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나 (물론 이것은 아직도 낯선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위의 언명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이를 믿음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라는 구절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할 것인지,
내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주를 영접했다 하더라도 죄성이 완전히 죽지 않았기에 죄의 행위를 완전히 죽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 저의 기존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덧,
1.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라 생각합니다만 저에게는 제법 심각한지라 직접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2.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과 같이 구절을 명확하게 들어가며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3. "크리스천이라는 이 중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는 극소수다"라는 주장에 대한 궁금증이 본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임을 밝혀드립니다.
모두 평안하시길...[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4: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5-03 20:39:26 | 문석휘
어제 마태복음 강의를 듣고 정리를 한번 해 보았습니다.
지옥 낙원 그리고 천국
(눅 23:4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후 죽으신 그날 한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는데다음의 (요 20:1)를 보면 하늘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요 20:17,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
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
간다, 하라, 하시니
이 때까지는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천국에 아직 가지 않으셨다.그러고 보면 이 때까지는 낙원이 다음의 (눅 16:2)절과 같이 지하의 어느 곳에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이 구절을 보면 낙원과 구렁텅이 그리고 지옥이 지하의 어느 곳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눅 16:22, 킹흠정)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23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26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벧후 2:4, 킹흠정)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자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
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유 1:6, 킹흠정)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
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사 14:12, 킹흠정)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지옥은 마귀의 대장인 루시퍼와 그 졸개들을 가두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공간 이다.
그리고...
(행 1:11, 킹흠정)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위 (행 1:11)절과 같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올라 가실때에 지하 낙원(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성도를 이끌고 올라가신 것
이다.다음의 (엡 4:8)절과 (행 2:31)절이 그 이야기 로 보인다.
(엡 4:8, 킹흠정)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
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 (이제 그분께서 올라 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
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
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행 2:31, 킹흠정)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
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부활 승천이후엔 사도 바울이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가게 된다.
(고후 12:4, 킹흠정)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
위 내용으로 보면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전과 이후의 낙원의 위치가 변동된 것을 알 수 있다.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의 승리 이후에는 구원 받은 성도는 하늘에 있는 천국으로 바로 가게 되고 휴거될 때에는 죽
은 몸도 영화롭게 변화되어 다음 절에서와 같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
다.
(고전 15:54, 킹흠정)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고전 15:55, 킹흠정)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 15:57, 킹흠정)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로 인하여 우리는 날로 성화되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고후 2:14, 킹흠정)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
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풍겨야 할 것이다.
(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
하게 하려 함이라.』
(롬 10:17, 킹흠정)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4:50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30 14:52:09 | 허광무
요한계시록 1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짐승의 표’가 사용되는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킵바이블 사이트의 독자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아래와 같이 여러 성경 별로 비교를 한 번 해봄으로, 킹제임스 성경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더 실감나게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리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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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아래의 성경 비교 자료는 인터넷 모 사이트에서 ‘예수아사랑’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시는 어느 분의 자료를 요약 발췌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King James Bible (1611)
And he causeth all, both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bond, to receive a mark in their right hand, or in their foreheads:
American Standard Version
And he caus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 that there be given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Amplified Bible
Also he compels all [alike], both small and great, both the rich and the poor, both free and slave, to be marked with an inscription [stamp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Catholic Public Domain Version
And she will cause everyone, small and great, wealthy and poor, free and servant, to have a character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s
Common English Bible
It forces everyone—the small and great, the rich and poor, the free and slaves—to have a mark put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US Version)
All people were forced to put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forehead. Whether they were powerful or weak, rich or poor, free people or slaves,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UK/British edition)
All people were forced to put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forehead. Whether they were powerful or weak, rich or poor, free people or slaves,
Darby Bible Translation
And it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men, that they should give them a mark up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English Good News Translation
The beast forced all the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slave and free, to have a mark plac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English Revised Version
And he caus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bond, that there be given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
English Standard Version
Also it causes all, both small and great, both rich and poor, both free and slave,t to be marked on the right hand or the forehead,
GOD'S WORD Translation
The second beast forces all people—important and unimportant people, rich and poor people, free people and slaves—to be brand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Good News Translation
The beast forced all the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slave and free, to have a mark placed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And he requires everyone-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to be given a mark on his right hand or on his forehead,
Lexham English Bible
And he causes all people,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slave, that they give them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1995)
And he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men and the slaves, to be given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
NIV
He also forced everyon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receive a mark on his right hand or on his forehead,
New Living Translation
He required everyone—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to be given a mark on the right hand or on the forehead.
The Books of the Bible NT
It also forced all people, great and small,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receive a mark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The Message
It forced all people,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have a mark on the right hand or forehead.
World English Bible
He causes all,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 and the slave, to be given marks on their right hands, or on their foreheads;
Young's Literal Translation
And it maketh all,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freemen, and the servants, that it may give to them a mark upon their right hand or upon their foreh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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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수많은 성경 번역본들 가운데, 오직 킹제임스만이 전치사 ‘in’을 사용하여 정확하게 그 위치를 알려 주고 있다. 전치사 ‘in’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사용되어질 짐승의 표가 말 그대로 몸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표가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실재’를 가리킨다고 믿는다면, 현재 혹은 앞으로 어떤 기술적 완성을 통하여 눈앞에 등장하게 될 어떤 형태의 ‘표’ 일지라도 그것이 짐승의 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드시 몸 ‘안’에 들어가는 형태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변개됨 없이 보존되어 온 킹제임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진실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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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21:32:28 | 김정훈
성경적인 교회,
지금도 가능한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저는 기독교 자체는 싫어하지 않아요. 예수님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목사는 싫어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들이 교회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경건해야 할 목사들이 합당치 않은 세습과 부정부패를 행하며 또 이단이나 사교들의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저도 한때 교회에 다녀 봤지만 염증을 느끼고 지금은 마음속으로만 믿습니다.”
기독교는 온 우주 만물을 6일 만에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습니다. 온 우주 공간의 모든 것들은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사람들이 자신을 믿도록 기독교(교회)를 창시하셨을 때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아들을 수 있게, 그 길을 쉽게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현 시대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성경에서 떠나 심히 뒤틀려 있습니다. 심지어 교과서인 성경마저도 샤머니즘과 이교 사상으로 심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교과서를 손에 쥐면 지금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일단 다음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치면 성경적 기독교(교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1.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배당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면서 과도하게 건축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성전이 되면 목사는 자연히 제사장이 됩니다. 이런 것은 구약 시대의 일입니다. 교회를 ‘성전’으로 부르는 일은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일입니다(마16:18; 고전6:19; 고후6:16-18; 딤전3:15).
2. 신약 시대의 목사는 결코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목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도들 가운데 한 형제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바른 데로 이끄는 일을 하며 목사와 성도들은 직무가 다를 뿐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엡4:11; 딤전3:1-7; 히2:11-13; 벧전2:9-10).
3. 목사는 성경을 읽고 말씀 자체를 강해해야 합니다. 록펠러, 제이 씨 페니, 링컨, 콜게이트, 마더 테레사, 성 프란시스 등의 이야기나 판에 박힌 예화 혹은 위인전으로 설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악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말씀 선포에 있지 프로그램에 있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등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날개, 알파 코스 등의 인위적 성공/성취 프로그램은 성도들을 영적 기근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입니다(롬10:17; 고전1:18-25).
4. 주일 성수, 특별새벽기도, 십일조, 일천 번제 헌금, 큰 액수의 헌금을 통해 만사형통을 이루려는 것은 하나님과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허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어려움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종착지는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므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지냅니다(마19:24; 고전10:13; 고후12:7-10; 딤후4:20; 약5:14; 히11:13).
5. 신약 시대의 헌금은 자발적으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강제성을 띤 십일조, 맥추 감사 헌금 등은 구약 시대에 신정 정치 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율법으로 부과된 세금과 같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교회에 헌금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액수를 밝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불신행위로서 연약한 성도들을 짓누르는 악한 일입니다. 교회에는 자발적인 헌금과 일시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헌금 외에 다른 헌금은 없습니다(롬10:2-4; 고전16:1-2; 고후9:6-7).
6.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그분은 단지 말씀만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되 단 6일 만에 - 여기의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하루를 뜻함 -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무한한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서 구원과 부활과 재림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를 믿지 않고 많은 신학교들이 세상과 타협하여 인본주의적인 진화론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습니다(창1; 출20:11; 31:17).
7. 교회의 음악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집니다. 귀를 찢는 듯한 록 음악, 댄스 음악, 힙합 음악 등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저질의 세상 음악입니다. 이런 음악에 심취하면 사람의 영과 혼이 마귀에게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천 유행가에 해당하는 CCM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CCM이 가사만 기독교의 틀을 유지할 뿐 실제 음악 자체는 세상의 유행가와 같습니다(삼상16:14-23; 고전14:33; 엡5:19).
8. 교회는 무엇보다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그들이 앞으로 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흉악하고 영적으로 혼란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음악을 통해 주님의 교육과 훈계로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신6:3-9; 엡6:4).
9. 천주교회, 몰몬 교회, 안식교회 등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복음을 무력화하고 성도들을 기만하는 ‘불경건한 연합체’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옴에 따라 이제는 전혀 다른 종교들과 연합하는 배교 행위도 교계에서 버젓이 심심찮게 벌어지며 그 내용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요14:6; 행4:12; 롬16:17-18; 엡5:11-12; 살후2:9-12).
10. 앞으로 이 땅에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이전에 적그리스도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는 7년 환난기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도들은 이 7년 환난기 전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몸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 휴거를 받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환난기를 통과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환난 통과설’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의 행위를 더하려는 시도에 다름없습니다(살전4:13-18; 5:9; 살후2:1-12; 계3:10).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고 자신의 뜻에 따라 성도를 고쳐 주실 수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신유(병 고침)의 은사가 있어서 그 사람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의 은사들 - 병 고침, 방언, 방언 통역 등 - 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신약 성경 기록이 완성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 시기가 지나자 사라졌습니다(고전13:8-10; 히4:15-16; 요일5:14).
12. 이빨이 금니로 변하고 금가루가 날리며 무질서한 가운데 사람들이 뒤로 쓰러지는 현상은 성령 체험이나 영적인 은사가 아닙니다. 마귀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예수님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이상한 육적인 현상으로 연약한 성도들을 미혹하는 오순절 은사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믿을 때 한 번 임하셔서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이후로 성도들은 성령님의 충만을 통해 성령님의 열매를 추구하며 인격적 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고전14:23-33; 갈5:22-23; 엡5:18).
13.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하는 개역(개정)성경과 NIV, NASB 등은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1% 소수 사본 본문)에서 나온 천주교 계열 성경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해서 종교개혁자들과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전 세계에 편만하게 보존해 주신 공인(共認) 본문(99% 다수 사본 본문)에 근거한 성경만을 썼습니다. 이 성경들 중에서 1611년도에 출간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지난 400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이 온 세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번역되고 읽혀온 순수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는 개역(개정)성경에서 ‘없음’으로 표기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마17:21; 18:11; 23:14; 막9:44, 46; 11:26; 15:28; 눅17:36; 23:17; 행8:37; 15:34; 28:29; 롬16:24).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성경 지킴이’ 그리스도 예수안에032-872-1184, www.KeepBible.com
‘진리를 선포하는’ 사랑침례교회032-664-1611, www.cbck.org
2012-04-28 15:19:12 | 관리자
크리슬람 (Chrislam)이란 영어로 Christian과 Islam을 합친 말로서, 말 그대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혼합종교를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코란도 믿고 성경도 믿고, 알라도 믿고 하나님도 믿자는 것이다.
198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크리슬람 혼합종교 운동은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미국 전역에만도 잘 알려진 몇 몇 대형교회를 비롯하여 약 100여개의 교회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슬람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하나의 충격적인 실체로 보다 가깝게 다가오게 된 계기는 아마도 2009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행했던 릭 워렌 목사의 기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아, 이사, 헤수스, 그리고 지저스의 이름으로 아멘”하고 기도를 마쳤는데, 이 중 예수아는 히브리어, 헤수스는 스페인어, 지저스는 영어로 각기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사 (Isa)가 아랍어로 또한 예수님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당시 미국은 아랍권에 대하여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뜻밖의 말이었기에 상당한 논란이 일었었다.
오바마는 물론이고, 릭 워렌 또한 사실은 그동안 모두 이슬람교에 대하여 친밀한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행보를 해왔기 때문에, 그 날의 이벤트는 어쩌면 놀랄 일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비근한 예로 오바마는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911 사태가 일어났던 뉴욕 맨하탄 그라운드-제로(Ground-Zero) 지점 바로 옆에다가, 2,000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슬람교 기도실이 포함된 ‘이슬람 공동체 센터 (Islamic Community Center)’를 짓도록 허락 해줌으로 자신의 친 이슬람 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릭워렌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크리슬람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소위 예일대학이 주최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대화의 자리를 주동이 되어 이끈 것일 것이다.
2007년 10월경,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공개편지가 <A Common Word Between Us and You>라는 제목 하에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세계의 유수 언론에 대대적으로 광고가 나간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총 138명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서명을 한 이 편지는 기독교와 이슬람은 결국 커다란 부분에 있어서 같은 관점을 지향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 평화를 위하여 손잡고 하나가 되자는 내용이 요지였다. 이에 부응하여 상당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 다음 해에 예일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대화를 모색하는 컨퍼런스에 모이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그들의 뜻을 모아 환영 일색으로 이슬람과 ‘하나’가 되는데 동조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과 여기에 서명을 한 사람들의 명단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직접 읽어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릭워렌을 비롯하여 로버트 슐러, 브라이언 맥라렌,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름도 들어 있다.
http://www.yale.edu/faith/acw/acw.htm
무엇이 잘못 되어 가고 있는가? 세계 곳곳에 이슬람의 자본을 앞세운 포교가 활발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님을 뉴스를 통하여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크리슬람, 굳이 아래의 성경 말씀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왠지 ‘키메라’ 같은 기이한 이름으로 느껴짐은 내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함일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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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20:16:32 | 김정훈
지디넷코리아 기사에 나온건데요 한번 보세요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20426101452&type=xml
이기사 보면 베리칩 정도는 비교 조차도 안되는 그냥 지나가는 기술 수준인듯해요
적어도 기사에 나온 정도 이상의 수준은 뛰어 넘어선
기술들이 이미 계획되거나 진행되는 거 같네요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들이겠지만
세상일들이 진행되는 사건을 볼때마다 더욱 주님 오실 날을 소망으로 삼게됩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주안에 평안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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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11:51:21 | 변경진
오늘 모처럼 전철을 타고 영업과 거래처 방문을 하였습니다.
전철 안에서 읽었던 책은 옥성호 형제의 "마켓팅에 물든 기독교" 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식을 가지고 조금만 생각해 봐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을
알 수 있을텐데.... 왜 그걸 모를까??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걸까? 알아도 건의를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그냥 체념하거나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는 걸까?
하지만 책을 읽는 가운데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것 입니다. (정말 놀랍지요?)
유명한 무신론자인 버트란트 러셀은 기독교인을 비난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진짜 현대인이 얼마나 생각하고 사는가에 대한 조사(기존에 반하는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때)를 하였더니
50% 사람들이 즉각 새로 받아들였고
30%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거부를 한다고 합니다.
15% 사람들은 즉각적인 판단을 유보한체 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수용 또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는데
추가적인 조사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5%의 사람들만이 기존의 사실과 비교해서 새로운 사실의 정당성 여부등에 추가적인 조사를 한 후에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80%의 사람은 전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15% 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결국 생각을 하지않는 점에서는 80%와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옥성호 형제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엔터테이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마켓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한국에서 수십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크게 한국 교회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위 내용과 비슷하게 대비해 보면
진리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을 100%라 보면
진짜는 약 5% 정도이고 가짜는 약 95%라고 합니다(추정치니 근거를 찾거나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시면 아니아니 아니되옵니다 ^^;).
문제는 가짜인 95%가 자신들을 진짜라고 착각하고 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인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가짜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정말 무섭고도 소름끼치지만 사실입니다.
오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제 글과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있습니다. 원래는 소설로 먼저 나왔고 김** 형제님의 글 (하나님은 빠지세요?)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 c.s.i 뉴욕의 반장역으로 나오는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임포스터(impostor) 라는 영화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머리는 노랗게 염색을 하거나 장식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신 어느 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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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23:44:58 | 송재근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장기 근속자 표창을 주었습니다.
저도 1992년 3월 1일에 학교에 부임하여 만 20년이 지났기에 오늘 참석하였고 이 기회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갑니다.
1982년에 유학을 갔으니 그 시기부터 따지면 제가 홀로 독립하여 산 시간이 만 3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유학을 갈 때의 제 모습과 그 당시 꿈꾸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 - 성경 번역 및 목회 - 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행적을 읽으면서 그분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시는 것을 통해 성경 전체와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10년 전의 목회 실패와 그 이후의 방황기 속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이전보다 조금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독립 개체로 산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과
특히 국내에 복귀하여 성경의 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여러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성경 읽기를 통해 종합적으로 몇 가지 교훈을 알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마귀와 아담과 이브의 죄악이 모두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남보다 더 가진 사람, 더 배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겸손히 행할 것을 주문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특히 교회의 리더들은 이 점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교만에는 드러난 교만과 숨겨진 교만이 있는데 숨겨진 교만이 실로 무섭더군요.
남의 잘못을 잘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투명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급진적이고 과격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만을 펴고 막무가내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나 결국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하나님의 일이든 사람의 일이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열매를 거둡니다.하나님과 게으름 그리고 무기력은 극과 극입니다.
4.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보았습니다.
저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예절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정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마음대로 내버려두면 훗날 부모의 통곡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하는 아이는 점수를 따고 들어갑니다.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함을 보았습니다.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나중에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들은 이 점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5. 목사는 많이 책을 읽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명연설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위스턴 처어칠의 자서전을 이번 주에 읽고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설교도 잘 하게 됨을 보았습니다.
마음껏 책을 사서 보게 해 준 교회에 감사합니다.
6.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만 함을 보았습니다.
목사를 비판할 사람은 많은 경우 목사의 아내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말버릇, 손놀림, 앉는 자세 하나까지도 지적하고 교정해 줄 때
듣기 싫어도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발전하지 못함을 보았습니다.
또한 목사가 자기의 실수와 연약함과 부족함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도움을 구할 때 교회가 흥함을 보았습니다.
완벽한 목사 앞에서는 성도들이 주눅들어 할 말을 못하게 되고 교제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강하심이 일한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7. 좋은(선한) 사람들이 모여야 교회가 잘 됨을 보았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보았습니다.
심성이 좋은 사람이 좋은 가정을 꾸리고 좋은 교회를 하며 좋은 시민이 됩니다.
아직 시집장가가지 않은 분들은 이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불쌍한 이들을 돕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에서는 저는 행복한 목사입니다.
8. 교회가 흥하려면 자매님들이 활발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자매들을 억누르면 교회가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단정하면서도 활발하게,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사귀는 자매님들이 있어야 교회의 부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9.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결국 나의 친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흔들리는 사람과 사귀면 끝이 좋지 못하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10. 성경을 많이 알고도 죄를 짓는 이 죄인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또 긍휼히 여기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을 찾지 의인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성도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꾸 불쌍히 여기는 것이 목사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과는 이것도 잘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교만이 가장 크고 무서운 원수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1. 성경 출판과 교회 이전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희생하고 돈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복 주심을 보았습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하고 절실히 느끼고 반성을 한 적이 많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돈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성도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부자임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12. 한국 교회에 진리가 없어서 애통하는 사람이 너무 많음을 보았습니다.
"무지와 헛된 열심 속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바르게 인도할까?" 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리스트를 더 적어 보겠습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몇 자 적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 경험에서 얻은 단편적인 교훈들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주의 사항: 이것들은 어쩌면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일지 모르므로 잘 판단해서 흡수하기 바랍니다.
(**) 또한 댓글(덧글)은 사양합니다.
샬롬
정동수[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5 18:09: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뭐 그다지 이슈가 될것도 아닌데...궁금한게 있습니다.
예전 교회에서는 기도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로 끝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기도드렸습니다"라고 했다가 "기도드립니다"가 맞다보다 생각했지요.
사소한것이긴 한데, 습관이라는게 무섭더군요.
정말 별것 아니지만 궁금합니다. 그래서 여쭈어봅니다.
"기도드립니다" 와 "기도드렸습니다" 둘 중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기도를 마치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오늘은 참 힘든 하루였습니다.
월요일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뭔가 개선(변경)하는것이 있어 설명회를 개최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뭔가 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참 오래 참으시는구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에 대해 즉시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참으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 지금도 "저"에 대해서 참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쯤이나 저는 하나님께 기쁨이 될런지......[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3 17:54:03 | 김형욱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크게 작용한 요인들
- 세상 그 어느 종교도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교주가 부활했다고 가르치지 않고, 또 이 정도로 역사적으로 방대한 증거와 증인들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 인간이 자기 노력과 근성으로 신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신이 먼저 인간을 찾아주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었다고 가르치므로
- 없어졌으면 애시당초 진작에 씨가 말라 버렸을 정도로 황당하고 믿어지지 않는 교리를 갖고 있는데, 아직까지 당당히 존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무시할 수는 없고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 이 정도로 무수히 많은 이단들이 압도적으로 집착할 정도이면, 웬지 이 바닥에 분명 진리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 성경은 그 논조와 내용을 볼 때 인간이 쓸 만한 책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가령, 정치적으로 치우침이 없음. 인간 자신에게 절대 이롭지 않은 내용이 지나치게 장황하게-_- 많이 들어있음)
- 그래도 몇몇 증명 불가능하고 이해가 안 되는 사항들만 일단 믿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각종 교리와 윤리관은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간에게 건전하다는 게 너무 분명하게 확 느껴져서
- 죄 문제라는 인간에 대한 상태 진단과, 그 해결책에 너무나 공감이 가서. 최소한 줘도 못 먹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인 의의 기준이 온갖 상대주의· 다원주의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고 깔끔하고 건전하고 뒤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사회 구조 탓이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등등)
그래서 믿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예전 글 <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 참고.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2281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조금 작용한 요인들
- 개독안티들의 무례하고 표독스러운 말투에, 사실 여부를 떠나 괜히 반발심과 환멸을 느껴서 (다른 건 몰라도 저놈들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겠다는 식)
-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과오라고 알려진 것들이 상당수가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실은 크리스천들도 오히려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어서
-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수준의 간단한 변증론. 가령,“지금 예수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없는 게, 지금 안 믿었는데 진짜로 지옥이 있어서 낭패 보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리스크가 적다.”“신이 없다고 단정짓기엔 인간의 지식은 너무 좁고 빈약하다” 같은 식.
- 내세와 심판이 있을 거라는 양심의 자극.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성경이 과학적으로도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몇몇 자료들
- 이 정도 교리면, 정말 만에 하나 성경의 내용이 다 거짓이고 허구이고 설령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되어
※ 내 신앙관에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은 것들
- 좋든 싫든, 주변 교회 사람들의 행동과 평판
-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해당 종교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언행 (그 사람들이랑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나는 베르테르 효과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냄)
- 세상 불신자들로부터의 평판, 매스미디어에 묘사된 이미지
- 육신을 들뜨게 하거나 흥분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종교심. 나는 그런 부류의 종교심은 이미 철도교로 다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종교에다 내 영원을 걸지는 않는다.
- 기복신앙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런 것들을 보고 교회를 나가거나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다. ㅜㅜ
※ 지금은 발현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깊은 시험에 들고 신앙 면역 체계가 무너졌을 때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암적 요소들
- 성경에서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고 해결이 안 된 의문이나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 몇 군데. 목사님에게 여쭈거나 주석서를 봐도 알 수 없는 것들
- 성경이 밥 먹여 주냐... 같은 부류의 유치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성도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험. 현실의 염려 (눅 8:14)
-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으로 변질돼 가는 것
-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안 하면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치는 것[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7-18 14:56:48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2012-04-23 09:49:51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