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하는가?(사도신경)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며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혹은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Apostles creed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사도신경은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 주일마다 암송하는 신앙고백문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암송하는 것으로 공공연히 알려져 있습니다.
(1) 주일 낮 예배를 드릴 때 (2) 교회 학교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 (3) 새벽 기도회를 시작할 때(반드시 그런 것은 아님) (4) 특별한 성격의 예배를 드릴 때(예: 총회나 노회 등의 개회 예배) (5) 기타 예배 시 그 필요성이 인정될 때 (6) 또한 예배 인도자의 재량이나 예배의 성격에 따라서는 그 외의 예배 순서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 예배를 마칠 때 주로 암송하는 주기도문과는 달리 사도신경은 예배 순서의 앞부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의 근본주의 침례교회 같은 자유교회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 주로 천주교 산물이라는 이유로 -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물론 미국의 주류 교회인 침례교회들도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전혀 암송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사도신경을 예배에서 암송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이단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이상한 전통이 있으므로 이것은 조금 신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사도신경은 주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고, 성령님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수태되어 탄생하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수난, 부활, 심판 교리가 담겨 있으므로 이것 자체가 무슨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암송하는 사람도 주를 위해서 하고 암송하지 않는 사람도 주를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이단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것 자체가 사실 큰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사도신경의 적합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하여 사도신경의 정체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려 합니다.
사도신경의 정체
● 사도신경은 천주교회의 작품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주후 55년에 12 사도가 기독교의 요점을 요약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때에 성령님의 감동에 의해 베드로가 사도신경의 처음 한 구절을 기록하자 나머지 사도들이 차례차례 한 구절씩 더하여 오늘의 사도신경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의 신앙이 요약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사도신경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사도신경은 주후 3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신약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약 교회가 생긴 이래로 주후 100년경까지는 사도들이 살아 있었으므로 사도신경 같은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과 주님을 눈으로 목격한 이들이 다 떠나고 사도들의 제자인 속사도 또는 교부들의 시대가 이르자 침례 문답 때 간단한 문답서 같은 안내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주후 100-125년경에 간단한 교리 문답서로 <신앙의 규율>(Rules of Faith)이란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록 어떤 이들은 주후 170-180년경에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사도신경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며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주후 325년의 니케아 신조,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결의, 431년의 에베소 결의, 451년의 칼케돈 신조 등은 역사적으로 교회 회의에서 사도신경을 제정했다거나 합의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음을 보여 줍니다.
정직한 역사가의 증언에 의하면, 주후 400년경에 활약한 암브로스 등이 사도신경은 사도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뒤 주후 650년경에 사도신경에 ‘거룩한 카톨릭 교회’란 말이 삽입되었고 또 650년 이후에 ‘성도가 교통하는 것’이란 말이 다시 삽입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날의 사도신경이 주후 750년경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완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어떤 이들이 주후 381년경에 사도신경이 완성됐다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 교회의 회의 자료는 사도신경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결코 사도들의 작품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많은 세월 동안 조금씩 발전시키고 보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도신경의 교리적 문제
자유교회에서는 이런 신조를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예배 시간에 암송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도신경에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숨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우선 이것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다음 페이지의 표는 카톨릭 사도신경과 개신교회의 사도신경을 비교한 것입니다.
<천주교 사도신경과 개신교 사도신경 비교>
카톨릭교회의 사도신경
개신교회의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저승(고성소)에 가시어(내리시어) 사흘 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심을 믿나이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으며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거룩한 공회(혹은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의 사함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1. 동정녀에 대하여
영어 사도신경을 보면 동정녀가 ‘Virgin’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신성을 나타내는 명사 즉 ‘하나님’(God), ‘그리스도’(Christ), ‘성령님’(Holy Ghost) 등은 단어의 첫 글자가 대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마리아는 ‘한 처녀’(a virgin)이지 결코 ‘그 동정녀’(The Virgin)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치켜세워 신성화시킨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심각한 오류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천주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뒤에 평생을 동정녀로 살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남녀 동생들은 그분의 사촌들이라고 주장합니다(마13:55-56; 막6:3; 요7:3; 갈1:19). 그리해야만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 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친절한 중보자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의 동정녀 또한 천주교회의 이런 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a virgin’을 ‘동정녀’가 아니라 ‘처녀’로 바르게 번역해서 읽고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명백하게 천주교회의 잘못된 믿음에서 나왔으므로 암송하더라도 뜻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2. ‘그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삭제됨
영어와 원어 그리고 카톨릭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이 있지만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어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분께서 저승에 갔다고 버젓이 신성모독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다녀오셨다.”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카톨릭주의에서 주장하는 연옥 - 카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연옥이 정죄계(淨罪界, 깨끗함과 죄 사이의 경계)나 정화소(淨化所, 깨끗해지는 장소)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화의 방법으로는 ‘정화하는 불(purgatorius ignis)’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는 ‘심판의 날에 내려질 불’에 근거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 과 림보 - 카톨릭 교회가 말하는 지옥의 변방: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백치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가리킨다(네이버 영어 사전). - 등의 개념과 연관되기 때문에 아마도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교회의 교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와 같이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중심부)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하며 “주께서 내 혼을 [예수님의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 - 엄밀하게는 그분의 혼 - 이 지옥에 갔다가 부활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우리말 성경은 이런 부분의 지옥을 모두 불교 용어인 ‘음부’라고 번역해서 바른 뜻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하신 대로 낙원에 즉 지하세계의 지옥 부분에 내려갔다가 올라오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8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9(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을 천주교회에서 굳이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천주교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관례가 있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실과 벧전3:18-20을 묶고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
18…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20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과연 사람이 죽은 뒤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성경은 명백하게 사람이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고 다시는 구원의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벧전3:19는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감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영들은 분명히 노아 시대에 불순종하던 자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 불순종한 세 부류의 존재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된 천사들입니다. 벧후2:4와 유6은 이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버리고 죄를 지어 지옥에서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속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노아 당시에 죄를 지어 대홍수로 멸망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천사들과 사람들 사이에 태어난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입니다(창6:4). 물론 이들도 대홍수에 휩쓸려 다 멸절되었습니다. 이 세 부류가 벧전3:19에 있는 ‘감옥에 있는 영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영이라 불린 적이 없으므로 여기의 영들은 천사들과 그들이 낳은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선포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선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복음을 선포하다는 의미의 ‘유앙겔리조’가 아니라 선언하셨다는 의미의 ‘케륏소’입니다. 그러므로 벧전3:19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힘입어 그들에게 가셔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승리’와 ‘그들의 정죄’를 선언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에 심판 외에 다른 것이 없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할 기회는 결코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또 다시 선포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교도들의 비성경적인 믿음입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개신교회 안에서도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보면서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3. 거룩한 공회
영어 사도신경에는 분명히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고 되어 있으나 천주교나 개신교 신경에서는 ‘거룩하고 공번된 - 혹은 보편된 - 교회’나 ‘거룩한 공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회는 ‘공적인 일을 위한 모임’이나 종교 회의를 뜻하므로 ‘교회’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해석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교포 2세 아이들 즉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더 치명적입니다. 부모를 따라 장로교회에 가는데 주일마다 예배 때에 “나는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해야 하니 이 아이들의 영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그래서 똑똑한 아이들은 부모나 교회에게 왜 우리가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5세기의 <로마 교회 구 신조>에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8세기의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카톨릭’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습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이 ‘소문자’(catholic)로 쓰인 경우 원래의 사전적 의미는 ‘보편적인’ 혹은 ‘전 우주적인’(Universal)이므로 ‘카톨릭 교회’라는 말 자체가 반드시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가리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 사도신경에서처럼 ‘카톨릭’이라는 말이 ‘대문자’(Catholic)로 쓰이면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가리키므로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은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를 예수님의 몸인 ‘거룩한 교회’로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교회가 거룩할까요? 지상의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고 말 그대로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이 과연 거룩할까요? 물론 재림 이후에 주님 앞에 설 때에는 거룩하겠지만 신조를 암송하는 당사자는 현재 자신이 속한 교회가 거룩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므로 이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새로 나온 사도신경에는 ‘카톨릭’을 반영하여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사실 천주교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합니다.
4.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성인들의 통공)
개신교의 사도신경의 표현인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을 ‘성도’(聖徒) 즉 ‘세인트’(saints)라고 합니다(고전1:2 등).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saints)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엡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saints)과 또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1:1)
성경의 정의와는 달리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미 죽은 카톨릭 교회의 특정 인물을 신앙적 영웅인 ‘성인’(saint)으로 만들었고 이로써 성경적 의미의 참 세인트 즉 ‘성도’(saint)를 배격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떤 신자들을 시성함으로써 즉 그 신자들이 영웅적으로 덕행의 길을 닦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히 살았음을 장엄하게 선언함으로써 교회 안에 강력히 작용하는 성령의 힘을 인정하고 그 신자들을 다른 신자들에게 모범과 전구자로 세워 줌으로써 그들의 희망을 북돋아 준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교회헌장 40;48-51항, 제1편 p.322 #828]
사탄이 로마 종교를 이용하여 성취한 가장 악독한 일 중 하나는 기독교의 성도 말살입니다. 종교는 금욕주의, 고행 등을 통해 도를 닦음으로써 자기 구속을 시도합니다. 로마 종교의 성자들의 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성자 개념이란 결국 모두가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한 인간 중심 주의와 남이 엄두도 못 낼 일들을 해 낸 인간 자랑입니다. 사탄은 로마 종교를 통해 수많은 인간 성자(?)들을 양산해 놓고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흐리게 해 왔습니다.
사탄은 모조품 로마 종교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고 인류를 속이기 위해 벨기에의 ‘제수이트들’ ― 예수회 사제들 ― 인 볼란디스트 파를 동원하여 17-20세기에 이르는 약 3백 년 동안 로마 카톨릭 교회 성자들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악타 쌍토룸>(Acta Sanctourum)을 편찬하였습니다. 전 유럽에서 일어난 제수이트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업은 벨기에의 앤트워프, 브뤼셀 등지에서 계속되었고 오늘날 이 책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순교사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사실 현 시대 기독교 목사들이 강대상에서 인용하는 로마 카톨릭 종교 성자들 - 어거스틴, 프란시스 등 - 의 전기란 거의 모두가 이 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교통’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성인 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교회헌장 50항).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intercession, 중보)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 제1편 p.364 #958]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인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후에야 특별 심의를 거쳐서 서품 되는 비성경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와 교통하는 일은 사탄의 속임수로서 성경은 이것을 엄격히 금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런 성인들이 공덕을 넘치도록 쌓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믿는 ‘성인들의 통공’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절과 위의 ‘거룩한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 진영이 동상이몽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5. 저리로서
사도신경을 매주 외우면서도 ‘저리로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그곳’을 가리키는 ‘저리’에다 ‘으로부터’를 뜻하는 조사 ‘로서’가 붙어서 이루어진 옛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올라가신 그 하늘 바로 거기로부터 다시 땅에 오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6. 사도신경은 충분하지 못하다
사도신경은 위에 있는 것처럼 교리적인 문제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 교리들을 누락하기도 합니다. 사도신경에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회론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또 성령님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가 어떻게 성장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이 강조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약되어 있으나 성령님의 능력과 사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사도신경은 성도들로 하여금 구약시대 율법에 틀에 갇혀 있는 전통적 카톨릭 교회 유산에 얌전히 순복할 것을 요구할 뿐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함께 암송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와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가 마치 다 동일한 성도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사도신경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수없이 많이 암송한다 할지라도 정확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님에 의해 다시 태어나 삶 속에 성령님의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이런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걸레와 같습니다. 외적인 신조의 암송은 결코 한 사람을 하나님의 성도의 반열에 넣을 수 없습니다.
7. 종교연합의 매개체
최근 들어 카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WCC 등을 통해 교회 연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에 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쓰기 위한 공동 번역 성경이 나왔고 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공동으로 만들기 위한 일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천주교회의 차동엽 신부는 사도신경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인하여 가히 수천만이 피를 흘렸고 그 덕에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며, 내가 살도록 해 주는 힘이며, 내게 설렘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희망이다. 나는 그것을 외울 줄 알았지만 몰랐다. 명색이 공인된 신학도인 내가 그랬으니 신자들은 오죽하랴. 그래서 글을 쓰는 내내 깨달음이며 회개였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 문화의 보물이다. 여기에는 교파도 없고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별도 없다. 그리스도교에 속한 모든 이들은 적어도 세 가지 보물을 공유한다. 그 첫째가 ‘성경’, 둘째가 ‘주기도문’, 셋째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 속에 금맥이 있다. 어떤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기가 막힌 좋은 것들을 주님께서 사도신경에 감춰놓으셨다.
또한 인천교구장인 최기산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젖줄이다. 이것으로 많은 이들의 신앙이 잉태되고 성장되고 유지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신경은 하늘 밥이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사도신경이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연합을 위한 매개체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지 않는 천주교회와 인위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믿지 않으며 사도신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천주교회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문을 외우듯이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에 대한 결론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의 일부를 짧게 표현한 신앙고백문이지만 몇몇 부분에서 치명적인 로마 카톨릭주의의 비성경적 교리가 많이 가미되었으므로 주 예수님의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는 암송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말세를 맞아 천주교를 중심으로 종교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고 사도신경이 이를 위한 매개체로 쓰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여기에 어떤 가치를 둘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신교회들이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함으로써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하려 한다면 이 같은 행위 자체가 전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아무리 많이 암송한다 해도 성령님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일이 생기고 인격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그것은 백해무익하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 덕분에 믿음이 자랐다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신경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도신경을 외우는 사람들을 무조건 수준 낮은 사람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모르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의미를 바로 알려주고 각자가 주님 앞에서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든 기관이든 뿌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대부분 개신교회는 뿌리가 천주교회이므로 언젠가는 종교 통합의 미명 하에 다시 천주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들에게 천주교회의 실체를 바로 알려줌으로써 이들이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교회, 사도 바울과 여러 성도들이 직접 순교하면서 몸으로 세운 교회, 바로 이 기독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진리를 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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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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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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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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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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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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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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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8 10:11:55 | 관리자
왜 안 하는가? (사도신경, 주기도문, 축도, 새벽기도, 통성 기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주일 대예배 때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끝에는 목사가 두 손을 들어 축도를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갖고 있는 침례교회나 한국의 독립침례교회 - 앞으로 이 책에서는 이런 교회들을 자유교회 혹은 독립교회라 하겠음. - 등에서는 예배 순서에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와 같은 교회를 방문하면서 이 교회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단 감별의 시금석으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암송 여부를 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순서에 이런 것들이 없는 교회에 들어서면 일단 이 교회가 이단이 아닌가 하고 의아한 눈으로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기존 교회와 달리 자유교회에서는 새벽기도나 통성기도를 하지 않고 또 자매들이 공적인 기도를 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존 교회와 자유교회는 겉모습만 살펴봐도 무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존 교회에서는 대개 목사가 가운을 입고 시간이 되면 ‘땡땡땡’ 하고 종을 친 뒤 예배 의식을 집행하며 이런 의식의 일환으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또 기존 교회는 예배당을 가리켜 성전이라 부르며 많은 경우 축도를 하는 목사는 축복권 및 저주권을 가진 구약시대 제사장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자유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까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궁극적으로 어느 것이 신약 교회의 예배 형식으로 더 적합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자에서는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를 추적하고, 사도신경 및 주기도문 암송, 축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등이 성경적인 예배 절차라 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책자를 통해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성도들이 불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4:22-24).
두 종류의 교회
한국에는 개신교회가 주류이므로 역사적으로 두 종류의 교회가 존재해 왔음을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예배 형식의 큰 차이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므로 먼저 교회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I will build my church, 마16:18)라는 웅대한 선언을 통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라는 기관을 세우실 것을 천명하셨습니다. 이 획기적인 선언 속에는 신약 교회의 소유주가 예수님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예배당을 교회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교회 곧 ‘에클레시아’(Ecclesia)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즉,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성도들 자체가 교회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달리 신약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벧전2:5, 9).
그러나 주후 1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구약의 제사장 계급 체제로 돌아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무리가 교회 안에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은 예수님의 신약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계2:15). 그 이후의 교회 역사는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와 창조물인 교회를 따르는 ‘교회교’ 사이의 심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입니다. 즉, 교회 역사는 ‘국가교회’(State church)인 ‘교회교’가 ‘자유교회’(Free church)인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고 박해해 온 역사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참된 교회와 바른 교회사에 근거하여 ‘성도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말세의 배도가 바로 교회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천주교가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약 성도들, 열두 사도들, 첫 순교자 스데반, 첫 선교사 바울 등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천주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으며 성경의 대부분이 유대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었으며 사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들은 천주교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신약의 복음 또한 로마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확산되어 땅 끝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시작부터 천주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을 믿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입니다. 기독교회사가 필립 샤프 같은 자유주의자 즉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교회사가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었고 또 ‘천주교에서 나왔으나 천주교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이처럼 ‘왜곡된 교회사’ 즉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교회사를 자기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여과 없이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고귀한 무리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시민으로 국가의 법에 순응하였으나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가이사)가 자기를 주 하나님으로 선언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기를 신이라 부르면서 자기에게 경배와 희생을 드릴 것을 요구했으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였으며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도덕이나 가치관뿐 아니라 심지어 황제의 법도 주 하나님의 법에 우선할 수 없다고 믿었고 결국 자기를 신으로 선언한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카이사르는 기독교와 바빌론 신비 종교를 혼합해서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가교회인 천주교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많은 교인들이 천주교라는 배도의 넓은 길을 따라갔습니다. 한편 이것을 거부하는 참 성도들은 맹렬한 핍박을 받으며 맹수들의 밥이 되면서도 결코 국가교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귀한 무리들은 자기들 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로 신앙 양심을 따라 국가교회가 아닌 자유교회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냐, 카이사르냐?
주후 313년, 대음모자 콘스탄틴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가 종교로 공인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타락한 국가교회는 이교도들의 풍습에 근거한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각종 우상 숭배, 제사장 체계, 교황, 추기경, 교부, 연옥, 면죄부, 유아 세례 등 도저히 성경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가증한 것들을 강제로 교회에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교회는 자기들의 범주 안에 거하려 하지 않는 자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참 성도들을 화형이나 수장 등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이단이란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중세암흑시대에 천주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피 흘린 발자취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 1세기 후반에는 그 당시의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또 국가교회의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짊어지고 도시를 떠나 산지에서 계곡에서 유랑하며 꾸준히 순례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주후 2세기에는 처음으로 소아시아에서 몬타니스트들이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외치면서 믿는 성도만이 교회의 회원이 됨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유아세례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임을 선언하고 재침례를 행했습니다.
주후 3세기에는 전 로마제국에서 노바티안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들 역시 유아세례의 죄악을 폭로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외쳤습니다. 이들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후에 ‘순수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카타리들이 되었습니다. 그 뒤 4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도나티스트들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외치며 일어났습니다. 또한 7세기경에는 타우루스 산지에서 폴리시안들이 초대 자유교회의 맥을 이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선교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침례와 그런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을 주장했습니다.
그 뒤 자유교회는 12세기경의 왈덴시스(왈덴시안)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알프스 계곡에서 바른 성경을 붙들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임을 외치면서 천주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불가리아와 보스니아에서는 보고밀이라는 이름의 자유교회가 천주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으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는 폴리시안의 뒤를 이은 알비겐시스들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주후 1517년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교황과 천주교회에 대항하며 ‘항거자’ 즉 프로테스탄트가 되어 개신교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의 자유교회에서 출발하지 않았기에 천주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보다는 그 안에 남아 있으면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루터교회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핵심 교리를 제외하고는 천주교회의 악습과 전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아 생명이 없는 국가교회로 전락하고 말았고 결국 1998년 6월에 미국의 루터교회는 다시 천주교회와 하나가 되기로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로교회의 아버지 칼빈 역시 유아세례 등의 악습을 타파하지 못하고 제네바에서 구약시대 장로들의 신정정치 국가교회를 구축하면서 재침례교도 같은 자유교회 무리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들 - 개신교회들 - 은 교회가 다스리는 세상이 곧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천주교회의 신념을 그대로 수용하여 한결같이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를 따랐고, 성경 말씀 준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교리에서 자유교회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근대 자유교회
한편 종교개혁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교회는 재침례성도, 메노나이트 등의 이름으로 온 유럽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회중 통치를 가르치며 믿는 자들만의 교회 회원권, 전 성도 제사장 직분,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등을 외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민의 물결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7,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은 침례교인들(Baptists)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존 번연, 찰스 스펄전,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국가교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침례교인들이 이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결국 이들로 인해 국가와 교회의 분리,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헌법에 명시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양심에 따라 종교를 택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국가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국가들의 대부분이 미국 헌법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자유들을 허락함으로써 결국 전 세계 시민들이 자유교회의 투쟁으로 인한 인권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세의 배도
지금 온 세상은 정치와 경제와 종교의 통합을 원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UN 주도 하에, 경제는 WTO 등을 통해 이미 통합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종교는 1960년대의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천주교회의 주도 하에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WCC, NCC, 오순절/은사주의, 뉴에이지 운동, 록음악, NIV, Living Bible 등의 타락한 성경,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복음주의자와 천주교도의 연합, ECT) 등이 모두 천주교회의 통제를 받으며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천주교회가 주축이 된 사상 최대의 국가교회가 우리 앞에 출현하여 다시 한 번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말세의 배도에 대하여는 이미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들에 여러 차례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떻게 루터로부터 출발한 프로테스탄트 루터교회가 천주교회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를 성경에 두지 않으면 누구나 배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배도한 교회와 철저히 분리된 사람들이 성경을 따라 피를 흘리며 남겨 준 발자취를 따를 때에만 배도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아합 왕의 극심한 우상 숭배 속에서도 칠천 명의 남은 자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당신도 그런 남은 자 중에 있습니까? 성경대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고 후에 주님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크기를 보지 말고 내가 속한 무리가 순결한 자들인가 살펴보기 바랍니다. 부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과연 맹목적으로 ‘교회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지금 당신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그분의 ‘내 교회’에 속해 있습니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배 형식 차이의 원인
자, 이제 기독교와 개신교 그리고 천주교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알았으면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자유교회의 예배 형식이 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곧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천주교회는 아직도 구약의 제사장 체계를 유지하면서 구약시대의 성전 예배와 비슷한 형식의 ‘의식 예배’(Ritual service)를 드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임 장소를 성전 대신 성당이라고 부르고 사제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세워 평신도와 다른 부류로 취급하며 예배 안에 각종 형식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이런 형식과 의식을 보면서 천주교 예배는 대단히 장엄하다고 말합니다.
천주교회에서 나온 개신교회도 태생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대부분 천주교회와 유사한 형태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내의 개신교회는 대개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며 목사가 거의 구약시대 제사장 수준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평신도와 확연히 구분되고 있습니다.
약 2,000년 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고 이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내리면서 예표였던 구약시대가 사라지고 실체인 신약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므로 마태, 마가, 누가가 모두 이것을 기록하였습니다(마27:51; 막15:38; 눅23:45). 이를 확증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죽기 전날 밤 유월절 관례를 주의 만찬으로 바꾸시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 마26:28의 ‘새 상속 언약’은 영어로 ‘New Testament’이며 짧게 ‘신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주교 사본에서 나온 개역성경(개정개역 포함)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새’(New)를 제거하여 새 언약의 신약시대가 열린 것을 성도들이 보지 못하게 한다. -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 희생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신약시대가 열렸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형식과 계급체제 등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확실히 인식한 자유교회 성도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구약시대의 형식에 갇힌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드려왔고 이것은 ‘의식 예배’가 아니라 ‘비의식 예배’(Non-ritual service)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 이전까지 신약시대의 초기 10년 동안에는 그리스도인이 모조리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자연스럽게 예배 장소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10년이 지나서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이 있은 이래로 사도 바울에 의해 곳곳에 이방인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형식으로 가득한 구약시대의 의식 예배는 완전히 폐지되고 간결한 형태의 비의식 예배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면서 제사장처럼 가운을 입고 예배를 집례했을까요? 예배당을 성전 혹은 성당이라고 불렀을까요? 구약시대의 의식 예배를 집행했을까요?
이 모든 것은 사도 베드로의 표현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유대인 조상들이나 심지어 유대인 사도들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입니다(행15:10). 이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성령님과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우상숭배, 부정한 음식, 음행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짐도 지우지 아니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유교회 성도들의 예배에는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와 대언(설교)만 있었습니다(엡5:19; 고전14:26-33). 또한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도들이 예배 모임에서 회중이 정하는 대로 원하는 때에 주의 만찬을 행하였습니다(마26:26-30; 고전11:23-34). 이것이 자유교회 예배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예배에는 천주교 예배의 일부인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암송이나 목사의 축도 등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뒤 사도신경, 주기도문, 축도, 새벽기도, 통성기도 등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 더 확실히 진리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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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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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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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4
축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5
새벽기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6
통성기도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5637
2013-05-08 10:03:4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방언과 은사"라는 제목으로
방언, 신유, 축사 등의 은사들을 설명한 비매품 책자를
미디어 선교의 일환으로 사랑침례교회에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PDF 파일은 누구나 마음대로 배포하거나 인쇄해서 써도 됩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3-05-08 09:51: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구원의 기쁨과 확신"이라는 제목으로 구원의 방법, 지식, 기쁨, 안전 보장에 대한 비매품 책자를 미디어 선교의 일환으로 사랑침례교회에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10권 이상 주문해서 나누어 주시기 원하면 인천 사랑침례교회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032-66-1611).
이 PDF 파일은 누구나 마음대로 배포하거나 인쇄해서 써도 됩니다.
샬롬
2013-05-08 09:50:07 | 관리자
본인은 처음에 새마을호에서 시작되었던 철도 관심사가 KTX, 전기 기관차를 거쳐 요즘은 증기 기관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기관차의 이름을 지금처럼 0000호대라는 번호로 붙인 게 아니라 미카, 파시, 마터, 허기 등의 이름으로 붙였구나. 고 김재현 기관사가 몰았던 증기 기관차(미카)와, 경의선 장단역에 방치되어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마터)는 차종이 다른 것이었구나.” 같은 식이다.
증기 기관차까지 마스터해야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철도를 연계하여 다 꿰뚫은 진정한 철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우치는 중이다. 이렇듯, 한번 철도의 맛을 접한 철덕은 차량, 시설, 지리, 역사 등 분야별로 철도 안에서 계속 골고루 자라야 한다. 그 성장이라는 게 금방 빨리 되는 게 아니다.
그나저나 증기 기관차의 보존 상태를 보다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용어를 접했다.
정태보존: 어떤 물건이나 시설을 이제 동작은 못 하지만 그냥 외형만 멀쩡해 보이는 상태로 보존동태보존: 언제라도 다시 가동을 할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하면서 보존
쉽게 말해서 예비군 훈련 중에 아저씨들에게 그냥 폼으로 지급되는 낡은 소총은 '정태보존'만 된 카빈/M16 소총이다.하지만 현역 군인은 자기들이 받은 소총이나 차량(운전병의 경우)을 '동태보존' 잘 하고 있어야 하며, 예비군이라도 실탄 사격 훈련은 동태보존된 별도의 총을 써서 한다.
퇴역한 식빵 모양의 서울 지하철 1호선 초기 저항 전동차, 서울시 노면 전차, 철도 박물관에 있는 증기 기관차들도 모두 정태보존된 차량들이다. 이들은 이제 상당한 수준의 재정비와 청소, 부품 교체, 보수를 하지 않으면 레일 위를 스스로 달릴 수 없다.
동태보존이 정태보존보다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인 건 당연지사다.
이 두 개념은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분야가 많은 것 같다. 성경론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필 원본이 소실된 이후로 가장 오래 된 바티칸/시내 사본 같은 데 짱박힌 채로 '정태보존' 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계보가 있는 반면, (변개와 삭제 같은 이슈는 이 글에서 일단 논외로 한다)
공인 본문 이래로 순교자의 피를 흘리면서 필사본들이 잡초처럼 끈질기게 생기고 읽히고 없어지길 반복하다가, KJV에 이르기까지 '동태보존' 되어 왔다고 생각하는 계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히 4:12)
그냥 말씀의 보존만 믿는 걸로는 불충분하다. 문제는 어떤 방식, 어떤 상태로 보존되어 왔느냐이다.여기에 대한 관념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심지어 KJV의 언어가 그저 읽기 힘든 '사어, 고어'이냐 아니면 “현대 영어보다 언어적 우월성을 갖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언어”가 되느냐도 응당 갈릴 것이다.
이렇듯, 철도 차량의 보존에 대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보존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2013-05-06 17:48:14 | 김용묵
2013-05-05 23:24:44 | 조양호
대체신학주의 에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였기에 교회로만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계시록 7장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숫자 144,000 명을 교회시대의 모든 성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대체신학이 주장한 것중에 현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있지만 계시록에 나오는 12지파는
있지않으며, 또 구분되지고 않고 다만 세파르딤과 아쉬케나지 유대인으로만 구분 한다고 합니다.
혹시 12지파를 아직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2013-05-05 00:46:06 | 조양호
안녕하세요?
IT 업계에 종사하시면서 저희 교회 설교를 듣고 있는 귀한 형제님께서
구원과 성장이라는 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안에는 구원 바로 알기 CD와 시리즈 말씀 설교 CD의 MP3 파일들이 60개 정도 들어 있습니다.
구원과 성장에 관한 말씀들만 있으니 초신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안드로이드 폰의 구글 플레이나 아이튠즈 앱스토어에 가서 구원과 성장 혹은 제 이름을 치면 무료 앱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정동수
2013-05-03 11:19: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한국 해외 장로교에 소속한 교회에 다니는 청년입니다.일 년 전 구입한 킹제임스 흠정역으로 인해서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정보 그리고 말씀들을 들으면서 많이 알게 되고 또 깨달은 점도 많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구원에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인지 점검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인 사람은 그 열매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누가 구원 받았는지 혹은 받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시고 어떤 때는 당신 구원 못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상처 받는 분들도 많고요. 구원의 조건이 정말 이런지요?
제 생각에는 순간순간 잘 못 할 때도 있고 주님이 주인이 아닌 하루를 보낼 때도 많은데...
제가 구원 받은 것인지 자꾸 흔들립니다.
저는 예수님이 제 주인이라고 고백하지만
정말 죄를 지을 때도 또 내 자아가 주인일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구원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고 회개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순종을 항상 강조 하십니다.
영적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주님께 하듯이 교회에 세워진 영적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하시는데 잘되지 않네요…
순종하지 않으면 마치 제가 제 삶의 주인이고 주님이 주인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정말 영적 권위에 100% 순종해야만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인지…
내가 이해되지 않고 하기 싫어도 무조건 순종하면 주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적으로 이것이 맞는 것인지요?
또 하나는 우리 목사님께서 아버지,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이름만 틀리고 다 같은 분이라고 하시는데 맞는지요?
물이 액체 그리고 수증기 또 고체 (얼음) 인 것처럼요.
신약과 구약에서 이름만 틀리지 사실은 다 한 분이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2013-05-02 10:47:1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사랑침례교회에서는 5월 19일에
전주 소망침례교회의 김재근 목사님을 모시고 킹제임스 성경 세미나를 갖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개역성경분석입니다.
개역성경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성경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하시는 성도님들은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미나: 개역성경분석
강사: 김재근 목사(전주 소망 침례교회)
일시: 2013년 5월 19일(주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장소: 사랑침례교회
감사합니다.
샬롬
2013-04-30 09:27:3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비교 신약성경과 하드커버 성경 그리고 박사성경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주변의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어
박스로 구매하는 경우 다음과 같이 큰 폭으로 할인해서 보내드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할인은 2013년 말까지 40일 동안 박스로 구매하는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webmaster@KeepBible.com으로 주문주세요.
이메일 주문만 받습니다.
이메일 주문 시 주소, 성함, 그리고 핸드폰 번호를 기재해 주세요.
입금 계좌는 우리은행 256-031553-12-009(정동수)입니다.
샬롬 1. 비교신약성경1박스(18권): 22만원(택배비 포함, 권당 12,200원 꼴, 원래 가격 19,000원)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484
주문하실 때 전체가 흰색인 것과 검은색에 흰색 띠를 두른 것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해 주세요.
2. 하드커버 성경1박스(12권): 17만원(택배비 포함, 권당 14,160원 꼴, 원래 가격 23,000원)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46
주문하실 때 검정과 자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해 주세요.
3. 박사성경1박스(24권): 20만원(택배비 포함, 권당 8,300원 꼴, 원래 가격 13,000원)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45주문하실 때 검정과 자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3-04-29 17:41:09 | 관리자
신학대(총신-합동)에서 전천년 이야기를 나오면 거의 교수님들은 존 다비의 세대주의를 거의 설명없이
잘못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대주의라는 말 자체를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근본주의 독립침례교단의 체계를 받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존 다비의 세대주의와 근본주의 독립침례교단의 세대주의가 같은지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다르다면 존 다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2013-04-28 20:28:57 | 조양호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24)
인간은 누구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수정란에서 기원한다. 성숙한 난자와 성숙한 정자가 만나 정자가 난자 안으로 파고 든 뒤, 둘이 가지고 있던 반쪽의 유전물질을 하나로 합치면 비로소 생명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마치 마술과 같다. 인간이란 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해서 본인 스스로조차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신할 수 없는데, 그런 복잡한 존재가 눈에도 잘 뵈지 않는 작은 세포 하나에서 시작했다니.
생식세포를 둘러싼 비밀이 벗겨지고 있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있어 이 과정은 오랫동안 더없이 신비로운 과정이었다. 포유동물에 속하는 인간의 특성상 수정과 임신의 전 과정이 여성의 몸 속에서 일어날 뿐 아니라, 인간에게만 있는 ‘배란 은폐(concealed ovulation)’ 현상으로 인해 여성 본인조차도 언제 배란이 되는지 임신을 하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들의 기원이 수정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인류가 번식을 해온 역사에 비하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이후 연구들을 통해 두 생식세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베일들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나서, 어떻게 착상되어 어떤 과정을 통해 자라나는지 등등을 말이다.
현대 의학에 의한 ‘위대한 탄생’, 시험관 아기
이런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태어날 수 없었던 아기들을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태어나게 하는 ‘위대한 탄생’을 가능케도 했다. 1978년 7월,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이래, 시험관 아기 탄생율은 급속도로 성장해 2000년에는 100만 명, 2010년에는 4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400만의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는데 공헌한 로버트 에드워즈(Robert Edwards, 1925~)는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수정 후 9주의 태아. <출처: (cc) Ed Uthman, MD>
난자 내로 정자를 주입하는 ‘세포질 내 정자주입술’ 장면. 시험관 아기 시술법 중 하나.
이처럼 생식의학과 불임치료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에, 어지간한 생식기 이상이나 호르몬 문제는 임신에 있어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라 ‘조금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도 여전히 ‘불가능’으로 남아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난자와 정자, 생식세포 자체가 없는 경우다. 지금까지는 정자를 전혀 생성할 수 없는 무정자증의 남성, 조기 폐경을 겪어 난자를 만들어낼 수 없는 여성의 경우에는 현대의학도 아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남은 불가능의 영역 - 무정자증, 조기 폐경
그렇다고 이 분야가 완전히 ‘빨간불’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들은 이 분야가 앞으로 ‘파란불’로 바뀔 가능성이 다분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9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레니 레이조 페라(Renee Reijo Pera, 연구실) 교수 연구팀은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원시 상태의 생식세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생식세포는 그가 생식에 참여할 나이가 되기 훨씬 이전인 배아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레이조 페라 박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모두 동일한 조건이었던 배아의 세포들 중 일부를 생식세포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전자들을 찾아냈고, 이를 조절하여 인위적으로 배아줄기세포에서 원시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록 레이조 페라 박사가 만들어낸 생식세포는 성숙한 생식세포가 아니라 원시 생식세포여서 수정란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원시 생식세포를 성숙시키는데 필요한 유전자와 환경 조건이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생식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레이조 페라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는 발생 중인 배아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했지만, 성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통해서도 같은 실험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생식세포를 생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자손을 보게 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미 이전에 영국 뉴캐슬대의 카림 나예르니아 교수팀이 골수에서 얻은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정조세포를 분화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그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리고 2011년 3월, 이번에는 일본의 한 과학자가 이 ‘가능성’이 꿈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공으로 동물의 정자를 만드는데 성공
2011년 3월 일본의 오가와 박사가 인공으로 생쥐의 정자를 만들었다. <출처: NGD>
일본 요코하마 대학의 오가와 타케히코(Ogawa Takehiko) 박사가 실험용 생쥐를 이용해 수정이 가능한 성숙한 정자를 시험관에서 발생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를 이용해 실제 새끼를 낳을 수 있음을 증명한 논문을 역시 ‘네이쳐’지에 발표한 것이다.
오가와 박사팀은 생쥐의 고환 조직을 추출한 뒤, 이를 KSR 배양액(Knockout serem replacement, 혈청을 뺀 배양액이란 의미로, 보통의 세포 배양에는 혈청이 첨가되지만 배아줄기세포 배양시에는 종종 혈청이 없는 배양액이 사용되기도 한다)을 이용해 키우면, 고환 속에 존재하던 미성숙한 정자가 우리에게 익숙한 꼬리를 지닌 성숙한 정자로 만들어짐을 관찰하였다. 오가와 박사는 4마리의 수컷 생쥐의 고환에서 추출한 미성숙한 정자를 이런 방식을 통해 성숙한 정자로 분화시켰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자는 난자를 만나자 스스로의 힘으로 수정란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수정란을 암컷에게 이식해 12마리의 새끼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출산한 12마리의 새끼들은 정상과 다름없이 건강했으며 생식력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인간은 생쥐가 아니다. 따라서 생쥐에게 성공했던 방식이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성공하리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레이조 페라 박사와 오가와 박사의 연구는 그간 생식세포 자체를 만들지 못해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람들 역시 아이를 얻을 수 있는 날이 그리 멀리 않았으리라 예측하게 만든다.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만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아이를 얻을 수 없는 이들에게 그들의 유전자가 담긴 아이를 안겨주는 기술의 개발은, 축복에 가까운 기술이다. 개인적인 경험상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아이가 찾아와 주지 않을 때의 심정은 차라리 절망감에 가까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시험관 방식과는 달리, 원시생식세포 혹은 피부세포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정자와 난자를 분화시키는 것은 기술의 실용화 이전에 다양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방식이 상용화된다면, 불임부부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생식세포를 만들어낼 수 없는 고령자도 임신이 가능하며 줄기세포를 이용하게 되면 여성의 세포로부터 정자를, 남성의 세포로부터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해 질 수 있다. 현대 기술이 좀더 복잡한 난자보다는 그보다 단순한 정자를 만들어내는 데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다는 점에 있어서, 남성에게서 만들어지는 난자보다는 여성에게서 만들어지는 정자의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향후 인공 정자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이론적으로는 ‘홀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진다.
기술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선행해야
이렇게 된다면 여성이 자신의 난자와 자신의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정자를 이용해 스스로의 몸에 이식해 처녀생식과 동시에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자궁이 없어서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는 없겠지만, 같은 방식으로 수정란을 만들고 대리모 여성에게 착상시켜 자신과 동일한 유전적 정보를 가진 아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빠르면 5년 내에 수정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 정자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도 보고 있다. 예측이 맞을지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조금 늦든 빠르든 이는 이미 ‘가능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현대 과학기술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아차 하는 사이 새로운 결과가 우리 삶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경험은 우린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뻔히 예측되는 미래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글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13-04-25 10:50:42 | 신진성
다윗 왕이 치리 기간이 40년인데 삼하 15장 7절에는 사년이 뒤에가 아닌 사십 년 뒤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꾀할려고 시도 했을 때도 다윗 왕이 왕좌에 앉아 있을 때였고요
. 압살롬이 다윗 왕에게 찾아 갔을 때도 다윗 왕이 왕좌에 있을 떄였는데 이건 제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요?
왕상 2장 11절에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날들이 사십 년이더라. 그가 헤브론에서 칠 년을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을 통치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 더요 왕하 24장 8절에 여호야긴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예루살렘의 엘나단의 딸 느후스다더라. 라고 되어 있고요.
대하 36장 9절에 여호야긴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팔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통치하면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두 문장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정확이 아시는 분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3-04-24 12:26:17 | 김기덕
안녕하세요?
요즘 싸이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배후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싸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노영기 형제님이 올려 준 기사가 있습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109#c_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1110
오늘 지인에게서 매우 유용한 정보가 와서 소개합니다.
안의 내용을 살펴보니 거의 다 맞습니다.
특히 싸이와 호루스를 다루는 첫째 링크를 주의 깊게 잘 보기 바랍니다.
물론 싸이가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바빌론 미스테리를 이루어가는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래서 뉴에이지 세미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안전합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세요.
우리 안에 계신 분께서 싸이를 덮은 악령인 마귀보다 훨씬 더 크십니다.
샬롬
(1) 「싸이의 Gentleman과 호루스」
http://blog.naver.com/esedae?Redirect=Log&logNo=90171244147&from=postView
(2) 가수 싸이는 장막성전(신천지의 모태가 되는 이단)의 교주였던 유재열의 사위이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48
유재열은 한국 기독교 이단 중 가장 어린 나이(18세)에 교주가 되었고 과천을 중심으로 수천명의 신도를 이끌었다고 한다.
70년대 사기사건에 연루된후 잠적하였고, 이후 장막성전은 여러개의 이단종파를 파생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다.
유재열은 현재 스포츠제품회사와 철강회사를 경영한다고 한다.
가수 싸이는 유재열의 딸인 유혜연과 결혼하였다.
2013-04-23 23:40:27 | 관리자
안녕하세요?
본 사이트 안의 정보들이 늘어나면서 상세한 기사 검색에 대한 필요가 있어서
현재 사이트의 검색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구글 검색기를 우측 상단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사이트 안의 모든 기사가 구글처럼 검색되어 올라올 것입니다.
완성이 되는 대로 공지하겠습니다.
샬롬
2013-04-22 11:09:3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킵바이블 사이트를 통해 말씀을 듣는 분들 가운데
사랑침례교회의 미디어 선교 사역 특별 헌금에 참여해 주실 분들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768
샬롬
정동수
2013-04-22 10:58:23 | 관리자
안녕하세요?
공휴일인 5월 17일 오후에 뉴에이지 세미나를 사랑침례교회에서 엽니다.
새 시대를 이야기하는 뉴에이지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사업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혼을 마귀에게로 이끄는 시대적 추세입니다.
특히 진리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교회도 이제 거의 뉴에이지 사조에 의해 넘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이 땅에 임하게 될 일들을 살펴보며
우리 자녀들과 함께 정신차리고 바르게 살기 위해 3시간의 세미나를 여니
시간을 내서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제목: 뉴에이지 운동의 실체
강사: 정동수
장소: 사랑침례교회(www.cbck.org)
시간: 2013년 5월 17일(금) 오후 2시-5시
참가비: 5000원(교재비)
감사합니다.
샬롬
(*) 점심이나 저녁 식사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2013-04-22 10:19:54 | 관리자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교회가 이스라엘의 역할을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의 시작과 과정과 현재를 알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절--- '해를 입은 여자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지 않고 '교회'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대체신학에 대해서 자료를 부탁합니다.
2013-04-20 12:56:43 | 조양호
주전 800년대이던 먼 옛날,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악녀 이세벨의 치하에서 영적으로 최악의 막장으로 치달았고, 국내에 이제 ‘주’(여호와)의 대언자란 완전히 씨가 마르지 않았나 여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년간 절망적인 기근까지 겪으면서 국가는 가히 멘붕 직전이었다.
바로 이때 엘리야라는 걸출한 대언자가 나타나서 각종 이적들을 행했으며, 일당백도 아닌 수백 명의 우상· 거짓 대언자들을 갈멜 산에서 “떡실신”시켰다. (아니, 사실은 기근 자체부터가 엘리야가 동족의 영적 각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사주한 일이기도 하다. 약 5:17 참고)
그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남긴 뒤 회오리바람을 타고 혼자 홀연히 승천했다.엘리야의 승천 소식은 대언자 업계(?) 내부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서 큰 이야깃거리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 엘리사가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벧엘로 가던 길이었는데 수십~수백 명의 어린아이들이 도시에서 떼거지로 몰려와서 엘리사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성경에는 “너 대머리여, 올라가라”라고 점잖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뉘앙스는 ‘올라가라’가 아니라 ‘꺼져라’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건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빈정대면서 “당신이 그 이름도 유명한 엘리사냐? 네 스승이 실종이나 돌연사가 아니라 승천했다고 그러는데, 그럼 너도 한번 올라갈 테면 올라가 보시지(그리고 영영 사라져 버리지?) ㅋㅋㅋ” 정도의 뉘앙스이다. 엘리사가 진짜로 대머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악담에 엘리사는 의분하여 아이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쩌면 왕하 1:10, 눅 9:54의 심상을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들, 감히 하나님의 행적을 모독하다니. 네놈들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숲에서 커다란 암곰 두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 아이들 중 무려 42명를 붙잡아 사지를 찢어 분질러 놓고 사망 아니면 중상을 입혔다. 주변은 피바다로 변하고 아이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에 아비규환이 됐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엘리사의 저주 한 마디에, 사상자 수로만 따지면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비슷한 급의 재앙이 터졌다(사상자 49명, 그 중 32명 사망).
곰은 성경에서 어떤 이미지로 묘사되는 동물인가?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은 개인 1인을 동물의 공격으로 벌하실 때는 사자가 주로 동원되는 편이었다. (왕상 13:24와 왕상 20:36가 대표적인 예) 그러나 사자가 아니라 곰의 직접적인 ‘어택’이 성경에 기록된 건 저 장면이 유일하다.
성경은 사자와 곰을 거의 같은 레벨로 인간과 가축에 해를 끼치는 무서운 맹수로 인정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윗의 말(삼상 17:34-37)부터 시작해서 잠 28:15, 애 3:10, 암 5:19를 보면 되겠다.거기에다 성경은 특별히 새끼를 빼앗긴 암곰의 전투력에 대해 이례적으로 주목하는 편이다(잠 17:12, 삼하 17:8, 호 13:8). 그 전투력이 현장에서 저런 엄청난 살상력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
사상자만 42명이었을 정도이면 그때 엘리사가 얼마나 유명인사였으며, 아이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떼거지로 엘리사에게 몰려들었을지부터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비좁은 장소에서 엘리사가 코너에 몰려 있었고 곰이 군중의 뒤를 아무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덮쳤다면 그 사람들은 미처 달아나지도 못하고 몰살당하는 게 가능은 했겠다.
킹 제임스 성경은 이들이 어린 아이들(little children)이었다고 말한다. 즉, 시쳇말로 ‘초글링 개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소리이다. 요한일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수신 대상도 little children이고, 예수님께서 내게 오는 걸 막지 말라고 하신 대상도 동일하게 little children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라 해도 어떤 배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벌써부터 저렇게 징그럽고 표독스럽고 못돼먹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싸잡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신성모독적으로 조롱할 정도였으면, 그 당시에 ‘주 하나님’에 대한 영적 권위가 얼마나 밑바닥에 곤두박질쳐 있었겠는지도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의 개독안티들을 뺨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저주에 응답하셔서 일벌백계를 내린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영어 성경 역본은 하나님께서 곰을 시켜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끔찍하게 죽였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 표현을 교묘하게 바꿨다. 딱 초글링 급인 아동 대신, 최소한 청소년이나 청년 정도는 되는 lad, youth라는 표현을 쓰고, tear도 maul로 바꿔서 표현의 수위를 크게 낮췄다. 사지를 완전히 찢고 분지르는 치명상 대신, 그냥 생명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타박상· 골절상만 입히는 느낌이 든다.
행위 구원을 조장한다거나 예수님의 ‘피’를 삭제하거나 지옥을 삭제하는 것 같은 교리적인 변개에 비해 심각성이 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다뤄질 뿐이지, 사실 성경 변개 내역 중에는 너무 잔인해 보이는 부분을 제멋대로 완화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상 20:3이다. 다윗이 이방 민족들을 연장으로 잔인하게 처형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 그 연장으로 강제 노역을 시켰다고 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하긴, 성경 변개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인본주의 박애주의 정신이 너무 투철한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더러 가나안 민족들을 전부 학살하고 진멸하라는 명령조차도 하나님의 야만성과 잔인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면모로 보인다. 성경을 비판하는 불신자들 앞에서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는 흑역사인 것이다. 하물며 다윗이나 엘리사 같은 우리 진영 ‘아군’이 이교도들을 톱으로 잘라 죽이고, 어린애들을 사지를 찢어 죽였다니, 이 어찌 납득이 되겠는가?
그래서 주 하나님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보정해야겠다는 충정이 지나친 나머지 단어 뜻을 변개하고 번역까지 변개한 게 아닐까 싶다.이 글의 주제가 성경 변개 쪽은 아니니,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라면, 그렇게 제멋대로 변개되고 윤색된 성경 역본으로부터 오히려 더 답답함과 안타까움과 불쾌함을 응당 느끼리라 본인은 생각한다.
성경에서 비교적 충격적이고 마이너한 에피소드에 속하는 왕하 2:23-24 하나만 갖고도 얘기가 꽤 길어졌다.모세가 아들들에게 할례를 안 했다가 하나님께 살해당할 뻔한 이야기,자기를 때리라는 대언자의 요청을 거부했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고 죽은 사람 이야기,예수님의 체포 현장에서 아마포 한 장만 달랑 두르고 그분 뒤를 따르다가 아마포를 버리고 줄행랑을 친 청년 이야기 등,
성경에는 이런 시시콜콜한 게 왜 기록되었을까 싶은 이야기도 많이 있다.철도로 치면 시골 간이역 같은 짤막한 이야기들도 다 인간에게 필요하니까 하나님께서 기록으로 남겨 주셨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당장 적용 가능한 교리를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런 이야기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도 적지 않은 유익과 교훈을 얻었다는 간증이 많이 나눠졌으면 좋겠다.
* 여담이지만 현행 맞춤법에 따르면 she bear는 ‘암콤’이 아니라 ‘암곰’이 바른 표기이다. 그런데 개역, 공동, 표준새번역 등 1990년대에 나온 거의 모든 한국어 성경들은 개역성경의 영향을 받았는지 ‘암콤’을 답습하고 있다. ‘아니요/아니오’만큼이나 성경이 미묘하게 비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는 예인 것 같다. 흠정역은 진작부터 바르게 ‘암곰’을 쓰고 있다.
2013-04-19 12:42:00 | 김용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