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질문 안에 넣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분명히 답을 올렸는데 사라졌고 김학준 형제의 글도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샬롬
2012-07-25 09:44:54 | 관리자
안녕하세요 킵바이블 싸이트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웁니다.
또 성경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삼하24:13절에 칠년, 석달, 사흘 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상21:12절에는 삼년, 석달, 사흘 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이 칠년과 삼년의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다른 번역본에서도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알려주시면 저의 궁금증이 풀릴 것 같습니다.
답변:
삼하24:13,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왕의 땅에서 칠 년 동안 왕에게 기근이 임하리이까? 아니면 왕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추격을 받고 그들 앞에서 석 달 동안 도망하시려나이까? 아니면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역병이 있으리이까? 이제 나를 보내신 분에게 내가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살피고 알려 주소서, 하매
대상21:11,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택하라. 12 삼 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할 것인지 혹은 석 달 동안 네 원수들의 칼이 너를 따라잡아 네가 네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될 것인지 혹은 {주}의 칼 곧 역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있어 {주}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역을 두루 멸하게 할 것인지 택하라, 하시나니 그러므로 이제 나를 보내신 분에게 내가 무슨 말을 다시 전해야 할지 친히 알려 주소서, 하매
삼하24:13은 7년의 기근이하고 말하고 대상21:12는 3년의 기근이라고 말합니다.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이것이 질문의 핵심입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런 것을 대할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은 옳고 사람은 틀린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현대 성서 학자들이 신봉하는 소위 70인역이라는 이단 성경은 이런 문제가 나오면 즉시 숫자를 고칩니다.
그래서 70인역의 삼하24:13은 7년이 아니라 3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두 군데가 딱 맞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 알렉산드리아 철학자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또 훌륭한 성경학자들 중에는 “여기서는 서기관이 오류를 범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이런 것은 결코 믿음을 세우지 못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경 신자들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안 풀리면 하늘에서 풀릴 줄 믿고 본문을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두 부분의 성경 구절을 잘 살펴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삼하 24:13에는 ‘왕의 땅에서’라는 말이 들어 있고 대상21;12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삼상21:1을 보면 이 사건이 생기기 전에 다윗의 땅에 3년 동안 내리 기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21:1, 그때에 다윗 시대에 해를 이어 삼 년 동안 기근이 있어서 다윗이 {주}께 여쭈었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그것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으므로 그와 및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인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들로 인한 3년의 기근과 인구 조사를 위한 9달 20일의 기간(삼하24:8) 그리고 사울의 일곱 아들을 죽이고 매장하는 일(삼하21:2-14), 블레셋과의 전쟁(삼하21:15-22)을 다 합치면 1년이 됩니다. 3년의 기근 이후의 이 1년 동안에는 작물이 자라야 하므로 그의 땅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 땅에서 4년의 기근이 있은 뒤에 인구 조사로 인한 3년의 기근이 다윗에게 임하게 될 터이므로 그 땅에서는 총 7년의 기근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7년과 3년은 인구 조사 이전의 4년간의 기근을 더하느냐, 더하지 않느냐에 의한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완벽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7년과 3년으로 된 성경을 보셨습니다. 3년과 3년으로 된 성경은 가짜 성경입니다.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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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18:15:27 | 강인숙
아멘- 좋은 글 읽고 가요.
2012-07-07 14:17:49 | 신진성
재밌어요. 저장해 가요.
2012-07-07 14:05:46 | 신진성
크리스천에게 구원은 늘 민감한 문제 같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듯이, 구원 문제는 늘 신중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임해야겠습니다.
자기 부족함 때문에 행위는 늘 실망스럽지만, 말씀을 믿음으로써 나의 구원을 알고 확신하는 한편,
남의 구원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구원은 죽어봐야 알겠다면서도
타인의 행위에서 부족함을 보고 구원을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판단하기도 합니다.
또한 구원 문제를 가지고 사람을 위협하고 겁주는 이단들도 많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지탱하는 방법이지요.
바른 말씀을 알고 믿었다는 것, 그리고 이 말씀이 영원히 흔들릴 일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2-07-06 15:11:09 | 김재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교단체 중 하나인 네비게이토 이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시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시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때로 사람들에게 성경 이슈와 현대 교회들의 심각한 문제들을 나누다 보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구원의 확신이 확실히 있고 지금 다니는 교회에 만족합니다.
당신 말에 일리도 있고 관심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평안한 신앙생활을 깨고 싶지 않군요.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듭니다. 내가 교회에서 받고 싶은 것은 위로와 평안이에요.
당신 말에 끌려가서 원치 않는 고민의 나락에 빠지기보다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며 머물러 있으렵니다.”
물론 이 대사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과 대화를 제가 종합적 함축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부디 형제님처럼 구원받은 젖먹이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고통과 번민이 기다리는 길일지라도
영적 성숙을 향한 여정을 담대하게 내딛는 신자들이 이 땅에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귀한 간증에 감사합니다.
2012-07-06 13:03:46 | 김대용
구원의 확신에 대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1:12의 전반부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라면, 후반부에 나오는 것,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고, 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다들 자기에게 확신을 주는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 한 가지씩은 붙잡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2012-07-06 10:23:29 | 김문수
1991년 어느 봄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교정을 두리번 거리며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한 형이 다가와 " 형제는 구원을 받았습니까?"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 저요?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라고 대답을 하였는데, 그 형은 교회에 다니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르다며,함께 성경공부를 하자며 bible 모임에 초청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여 동안 "네비게이토"라는 선교회에서 매주 2~3차례 말씀교제를 가졌습니다.
1대1 양육 방식이라 교회는 다녔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던 저에게는 일시적 기쁨,강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서 믿는 자를 어떻게 보는지, 즉 영원한 신분을 확인하면서 드디어 믿은 이후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1:12절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인 이후로는 구원의 영원한 안전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구절을 비교해가며 말씀교제를 나누었는데요,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 전에 저를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한 구절이라 가장 자랑하는 말씀이 요1:12절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한 TV방송(나가수2)에서 여가수가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혼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 속에서, 단지 가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랫말 속의 주인공이
되어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노래의 속 뜻은 이별한 연인간의 사랑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동일하게 'I Will Always Love You'라고 부르고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히10:14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2-07-06 09:47:40 | 양희석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거의 구원받은 사람, 혹은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사람!
경각심을 일깨우는 글에 감사합니다.
2012-07-04 16:42:12 | 김용묵
그랬군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런 친구나 가족이 죽으면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고 허탈하게 하지요.
전도할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뿐인데 무기력하기만 한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합니다.
2012-07-04 15:03:12 | 김재욱
가까운 친구분의 얘기라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그 친구분은 어릴적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으므로, 사춘기를 지나면서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 하였더라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훈삼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에 복음을 전하여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7-04 13:27:37 | 양희석
듣고보니 참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아마 주위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구원을 얻는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구원의 길을 모르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주님께로 나아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 5:39-40).
2012-07-04 09:44:53 | 김문수
내 친구가 몰랐던 점
이번 주 김문수 목사님의 “ 나를 기억하소서” 라는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회 중등부를 같이 다녔었던 친구인데 고등부로 올라가자 마자 교회를 안 나오는 것 이었습니다.
마침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 친구를 만나 “OO야 왜 교회 안 나오냐?”
나중에 지옥가면 어떡할라고 그래? (그 당시는 믿음이 없이 교회를 다니던 터라 교회를 안 다니면 지옥에 가는 줄 알았지요 -_-;)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괜찮아 하나님께서는 내가 교회를 안 나가고 잘못을 많이 해도 죽기 전에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
그 이후로도 그 친구는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 제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출석하던 교회의 주일 저녁예배에 참석을 하였는데
예배가 끝난 후 나온 광고가 그 친구가 사고를 당해 지금 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친구의 부모님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을 하셔서 광고가 나온 것이지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 영안실로 찾아가 보니 친구의 부모님과 남동생이
저를 맞아주시더군요
주변에 연락이 안되어 저만 빈소를 지키었고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 있는 상태라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고를 당했나 알아보니 그 친구는 공수부대 P.X 방위로 근무 하던 중 은행에 잔돈을 바꾸러 외출했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운구까지 하는데 찹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알고 있었던 점은
예수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의 공로를 의지하고 회개를 하면
주님께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몰랐던 점은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몰랐던 것이었죠
전 그 친구의 혼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죽기전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면 천국에서 다시 만나겠지요 그러기를 바랄 뿐 입니다.
저는 친한 거래처 사장님 두 분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분들께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상황이 너무 바빠 교회 갈 시간이 없다. 아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교회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한테 큰 상처를 입어 교회이야기 하면 엄청 싫어한다. 일요일도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빠지면 안 된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등등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안타깝지만 절대로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기도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 사람은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신 분이라면
지금 즉시 자신이 영원히 지옥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주 김문수 목사님의 설교 “나를 기억하소서” 를 꼭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잠언 27 : 1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야고보서 4 : 14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요한복음 5 : 25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로마서 13 : 11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
고린도후서 6 : 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2012-07-04 00:18:42 | 송재근
참 재미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2012-06-27 08:59:00 | 송호
한눈에 들어오게끔 되어 있어 이해가 빠릅니다.
자료를 저장해 뒀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6-27 08:58:32 | 양희석
기발한 발상이네요..
2012-06-27 08:37:51 | 허광무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던 2006년,저의 20대 초반과 중반 사이이던 그 시절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특례 업체 근무를 위해 이제 막 서울 생활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진리 침례 교회에도 이제 막 출석을 시작한 초창기였죠.그때 저는 정신 세계가 성경과 철도를 중심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의 황금기라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 해 초부터 처음으로 교회의 거리 설교에 참여하여 난생 처음으로 프리칭을 시작했습니다.성경 변개 이슈에 대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글을 읽고 공부하다가 갑자기 본능적으로 소재가 떠올라서 몇 시간 만에 글을 하나 썼는데 그게 바로 <음란한 성경은 가라>입니다.또 성경에 나오는 drunk, drunken 표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을 쓰기도 했고, 교회 출판사에서 내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그와 동시에 철도에 대한 사랑과 애정, 집착도 날로 깊어졌습니다.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사실 두 종류의 차량이 존재한다는 것,서울 도시철도 공사 관할 지하철역의 승강장 역명판은 두 종류 모양이 존재한다는 것(▶와 >)등을 관찰을 통해 터득했고, 서울에서 본격적인 철도 동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유튜브에 등록되어 있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연주 장면은 다 제가 2006년에 촬영해서 2008년에 등록한 것들입니다.그래서 저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두 분야를 융합해서 둘을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까 골똘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하철 노선도에서 착안하여 성경 노선도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6년 전 그때의 작품입니다.
주황과 분홍 같은 붉은 계열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 지식이 되는 기초에 해당합니다. 구약에서는 모세오경, 신약에서는 복음서입니다.파란색은 역사서입니다. 구약에서는 역사서가 모세오경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죠.에스더기 구간이 저런 선형을 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적으로는 느헤미야보다 이전이기 때문입니다.신약에서는 역사서가 사도행전이 전부입니다. 사복음서 중 누가복음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게 지당한 결과라 하겠습니다.자주색은 소위 대언서입니다. 신약에서는 계시록이 유일합니다.위쪽은 major prophets이고 아래쪽 호세아부터는 minor prophets입니다.사무엘하~열왕기하, 그리고 역대기상~역대기하는 병렬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를 대언서가 수직으로 관통하는데요, 왼쪽은 다윗 이전이고, 오른쪽은 다윗 이후입니다.그리고 에스라와 그 오른쪽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시간대입니다.다음, 연두색은 문학서입니다. 욥기는 창세기 시대에서 파생되어 나오지요. 룻기는 역사적으로는 사사기 중간에 속하지만 결말이 다윗의 계보로 끝나는 점을 감안하여 그림과 같이 분류했습니다.문학서는 위쪽을 차지하면서 예레미야서와 교차하여 예레미야애가로 끝나게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신약을 보시면, 사도행전 중간부터 바울이 활동하기 시작하므로 바울 서신서의 노선은 그림과 같이 분기되어 나옵니다.시기적으로 사도행전 28장까지 다 끝난 뒤에(로마 감금 내지 그 이후 4차 전도 여행) 기록된 것은 사도행전보다 오른쪽에 놓입니다.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 서신들 중 상당히 초기에 기록된 서신입니다.히브리서는 바울 서신과 일반 서신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책이므로 응당 저렇게 배치됩니다.즉, 이 노선도는성경 각 책의 성격, 책이 다루는 연대나 기록된 연대, 그 책이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적당히 시각적으로 나타내면서 책의 66권 배열 순서도 크게 안 흐뜨리려 했습니다.사소한 고증 오류가 있을 수는 있으나, 취지는 충분히 설명되었으므로 그런 부분만 약간 고치면 성경에 대한 시청각 교육에 꽤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특별히 대한민국에 철도 같은 아름다운 교통수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저는 처음에 그냥 마우스로 대충 끄적인 노선도만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위와 같은 깔끔한 그림을 몇 년 전에 만들어 주신 분은 저희 교회의 다른 모 자매님입니다. 그분께도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2012-06-26 17:52:24 | 김용묵
한마디로 있을 때 잘하고, 있을 때 살려야 한다는 교훈이 있네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전하기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복음 자체도 그렇고, 바른 진리도 그렇고요...
상대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기보다는 사랑과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성경 문제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가족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텐데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6-22 09:44:51 | 김재욱
알고보니 위의 내용을
교회에서는 "가족과 가까운 이웃을 늦기전에 전도하자"는 전도 세미나용으로
보험사에서는 "늦기전에 생명보험에 가입시키자"는 영업사원 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2012-06-22 08:36:59 | 양희석
1979년 어느 봄날 어머님 손잡고, 가슴에는 코수건을 달고 국민학교 입학하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운동회 때에 어머니께서 저를 업으시고 운동장을
달리시던, 다리에 힘이 있으셨던 건강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지금 제가 벌써 1979년 당시 어머님의 나이를 한 참이나 지나온 나이가 되었네요.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 봉양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데....
어릴적 부모님께서 제게 하셨던 것만큼 저도 하고 살아야 도리인데...
부모님 죄송합니다.
아래의 가져온 글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읽으면서 아내와 어머니가 생각나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는 성경교리를 가르치고, 한가지 길만을 고집하는 저의 모습에 많이
미안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온화함과 사랑으로 대하여야겠다고 반성합니다.
킵바이블 지체들께서도 아래 글을 읽으시고, 인간의 나약함과 하나님의 주권, 생명주신
예수님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합니다.
♥ 여보 사랑해.... 미안해.....♥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 출장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빔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에 올려 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올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몇 번을 버티다 마침내 베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 했는데...”
“어,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 봐.”
여러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는 미련하냐가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뿐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으 보이며 검사 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 만큼 이기적으로 부려 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테니까.”
큰 소리 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 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을거야. 나 명절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 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 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수가 없다고,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와 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 온 말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 가기 전에...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 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것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고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타면 울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를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 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 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하면서 했던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것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2012-06-21 16:42:19 | 양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