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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성경 전쟁 - 성경의 무오성조회수 : 1053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6시 53분 19초
  • 성경 전쟁 - 성경의 무오성

    정동수

     

    1976년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린젤의 「성경전쟁」(The Battle for the Bible)이라는 책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잘 나간다고 하던 풀러 신학교의 창립 멤버로 일하던 린젤 박사는 이 책에서 풀러 신학교를 비롯한 신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진적 사상 즉 '성경이 처음부터 오류를 담고 있다는 사상'의 위험성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독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성경의 토대가 무너지면서 풀러 신학교는 각종 인본주의 사상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 피터 와그너 등 - 교수로 채용하여 궁극적으로 빈야드 운동과 같은 비성경적 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인본주의 신학교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성경의 무오성은 번역본의 무오성이 아니다. 지금의 인본주의자들은 성경 원본 자체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영감을 부인하고 있다. 본서는 특별히 미국의 루터 교회의 배도 현황, 남침례교회의 성경 무오성 부인, 풀러 신학교의 성경 무오성 부인 등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풀러 신학교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린젤의 결론은 성경의 무오성이 무너지면 교회들이 배도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과연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맞이할 세상이 얼마나 무신론적이며 인본주의적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버렸기 때문에 확실한 성경에 대한 진리 탐구를 하려 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다행히 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교회와 성경 무오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상당히 중요한 책이니 한 권씩 소장하고 틈틈이 읽어 보기 바란다. 성경의 무오성이 파괴되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다. 독자는 이런 교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교회와 성경 무오성」의 소개의 글

    (기독교문서선교회 책에서)

    개신교의 복음주의적 분파가 움트는 이러한 때에 린젤(Dr. Lindsell)의 저서 『교회와 성경무오성』(The Battle for the Bible)을 출간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마틴 마르티(Dr. Martin Marty)가 제안한 것처럼 만약에 복음주의가 역사적인 주류를 이루는 19세기의 개신교 정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한다면 바로 성경 무오성에 관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복음주의적 역사가가 그 문제를 밝혀야 할 때이다.

    복음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분열의 전조가 점점 더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성경의 영감에 관한 복잡한 의문이 복음주의 운동의 통일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두드러진 두 견해가 있다. 두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각자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에 호소하고 있다.

    첫번째 견해는 역사적, 지리학적, 과학적 가르침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것은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견해는 구속사와 구속 교리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즉,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대해서만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 중에 어떤 이들은 성경은 완전하게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으나 하나님은 기자들의 제한된 지식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기자들이 계시받지 못한 진술을 기록할 때에는 오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중요한 신학적인 차이를 평가함에 있어서 린젤은 정확하고 솔직하며 평화 지향적으로 또한 객관적이고도 공평한 입장에서 글을 썼다. 비록 그가 개개인들의 견해를 인용할지라도 그는 인신공격을 하지 않으면서 견해의 차이점을 밝히려고 했다. 본질적으로 정통적인 성경관을 버림으로써 파생된 신앙과 행위에 대한 위험의 전조를 복음주의적으로 경고할 때가 온 것이다. 린젤과 나는 모두 지난 수 십 년 동안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수많은 논쟁에 연루되어 왔으며 서로 다른 상황들 가운데서 논쟁점이 일어났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이 주제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가하고 이 용어를 정의해야 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1920년 나는 슬론(Dr. Harold Paul Sloan)이 편집한 잡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생활」(Christian Faith and Life)에서, 감리교에서 일어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논쟁에 관하여 기사를 썼다. 20년 후에 무오성에 관한 문제는 미국 장로교 내에서 근본주의자와 현대주의자(Fundamentalist-Modernist)들의 성경 무오성에 관한 논쟁에서 나타나서, 1929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궁극적인 분열로 표면화되었다. 그 해 프린스톤에서 공부한 학생이었던 우리 그룹은 메이첸(Dr. J. Gresham Machen), 윌슨(Dr. Robert Dick Wilson), 앨리스(Dr. Oswald T. Allis), 밴틸(Dr. Cornelius Van Til), 그리고 스톤하우스(Dr. Ned Stonehouse)를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설립에 참가했다.

    1942년 성경의 권위에 대해 내려진 거부 영향으로 교회연방회의(the Federal Council of Churches)의 4개의 신교 교파 안에서 우리는 민족복음주의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세인트루이스에서 설립하게 되었다. 민족복음주의협회는 성경적 권위, 신뢰성, 진실성의 회복을 강조하고 무오한 성경에서 나온 신학적 입장으로 복귀할 것을 강조하였다. 국제복음주의협회가 구성된 초창기에 보수주의에 속했던 많은 목사들은 이 연방회의에 속한 교파의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고 국제복음주의협의회에 연합했다.

    나는 1944년과 1945년의 여름에 매사츄세츠주 마노메트포인트에서 복음주의적 원리와 특히 무오한 성경에 기초한 새로운 복음주의적 저술의 필요성을 토론하기 위해 신학자들과 함께 모였다. 비록 복음주의적 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을지라도 그것은 이전 세대의 문헌에 의존한 것이었다. 이 모임의 결과로 복음주의적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복음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다.

    1947년에 풀러(Charles E. Fuller)는 선교와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풀러 신학교를 창설하면서 나를 초청했다. 당시에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12 명의 멤버가 파크스트리트 교회에 있었는데 그들은 프린스톤에서는 성경의 권위를 가르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의 신앙에까지도 위험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이에 우리는 성경의 무오함에 근거하여 보다 수준 높은 신학 교육기관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함께 토론과 기도를 한 후에 풀러가 기금을 만들고 내가 그 학교에 학장으로 일한다는 의견을 합의했다. 이 신학교 창립 멤버로서 유능한 린젤은 성경의 무오성에 근거를 둔 풀러 신학교의 신학적 신조를 표명했다.

    세계복음주의단체(The WORLD Evangelical Fellowship) 모임에서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도 두 가지 성경관이 있음이 드러났다. 1966년 6월 20일에서 29일까지 매사츄세츠주의 웬함의 고든 대학(Gordon College)에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인 국제복음주의 학자회의가 이러한 분기점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50명이 넘는 신학자들이 이 논의를 위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왔다. 회의 결과 복음주의의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는 못하고 오히려 분열된 파벌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1955년 빌리 그래함의 제안에 따라 매사츄세츠주의 바스룩과 뉴욕에서 만난 우리 그룹은 지적인 차원에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변호할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경을 무오하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Christian Today」라는 잡지는 처음에 린젤이 편집자였는데 이러한 성경 무오관에 충실하여 복음주의적 신학의 부흥에 공헌했다.

    신복음주의라는 말은 1948년 파사데나 시민회관에서 있었던 집회의 연설에서 탄생했다. 이 집회는 근본주의의 신학관을 재천명하면서도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적인 교회론과 사회론을 거부했다. 분리주의에 대한 반대와 사회참여의 명령은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해롤드 린젤, 칼 헨리(Carl F. H. Henry), 에드워드 카넬(Edward Carnel), 글리슨 아쳐(Gleason Archer)와 같은 인기 있는 신학자들이나 대표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어떤 운동을 일으킬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그 강조점이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 신복음주의는 성경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지만 그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신정통주의와는 다르고, 또한 신복음주의는 이 세상에서 분리하려고 하지 않고 그 시대의 신학적인 대화에 참여한다는 면에서 근본주의와도 달랐다. 신복음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의 전반 영역에 복음을 적용할 것을 새롭게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신복음주의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기독교 신학을 재진술 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즉, 신학적 논쟁의 참여, 교파적 지도력의 회복, 그리고 인류의 고대성, 홍수설의 보편성, 하나님의 창조 방법 등과 같은 신학적 문제들의 재검토 등이다.

    신복음주의는 개개인이 기치를 올릴 수 없고 또 개인에 의해서 신학이나 명확한 입장을 발전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그 운동에 가담해서 복음주의라는 복음을 내세웠지만 정통교리적인 입장을 고백하지는 않았다. 이것 때문에 신복음주의가 자주 비난을 받았으며 급기야는 부당하게도 이러한 비난이 신복음주의의 초기지도자들에게로 쏟아졌다.

    린젤은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부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현대 신학 논쟁의 분수령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신뢰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이후의 우리의 입장을 결정하며 신앙뿐만 아니라 행위까지도 결정한다는 그의 주장은 옳은 것이다.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포기한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정통주의로부터 빗나간다는 증거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권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신빙성 있고 진실하고 무오한 성경을 포기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포기한 것이 분명하다.
     린젤이 이 책을 씀으로 해서 교회에 특별히 복음주의적 교회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해롤드 옥켄가
    고든 콘웰 신학교 교장
       


    「교회와 성경 무오성」의 결론부 : 최후의 호소

    (기독교문서선교회 책에서)

     

    성경 무오성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은 많은 복음주의자들도 아직은 상대적으로 볼 때는 여전히 복음주의자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무오성을 한번 버린 사람이 복음주의자임을 주장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한 순간도 인정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라는 이름은 전통적으로 일련의 교리적 확신들을 상징하는 사람을 뜻하며 그 중에 하나가 성경의 무오성이었다.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그분의 속죄는 대속적인 것이 아니라거나, 처녀 탄생은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는다거나,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육체적으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주장이 '복음주의'라는 입장을 부인하는 이유가 된다면 성경 무오성의 교리 즉 다른 교리들이 진리임을 확신시켜 주는 유일한 보증의 교리를 부정하는 자도 진실로 복음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 순간에 성경의 무오성에서 떠났거나 떠나고 있는 복음주의자들에게 호소하는 바는 역사적인 자료들에 비추어서 그 상황을 분명하게 숙고해 보고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라는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을 포기하게 되면 구원의 본질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있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무오성을 믿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리막길은 그런 부정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함정으로 맞닿아 있음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세대가 성경의 무오성만을 부정하고 얼마 간은 복음주의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이 세대 이후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가 멈춘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다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의 무오성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복음주의자들에게도 또한 당부한다. 한번 사도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열정적으로 굳게 지킬 것을 호소한다. 또 그 울타리 위에 앉아서 항복하고 있는 복음주의자들과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은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기를 당부한다. 여러분은 역사상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은 진보된 신학적 훈련이 없이 성경에 접했던 사람들이며, 가장 엄한 신학적 훈련을 겪은 많은 사람들 보다 더 훌륭한 해석가들이었고 영적 지도자들이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한 여러분은 복음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하는 부드러운 한 마디 권고가 대학과 신학교 교수들을 성경에 충실하며 신뢰하는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소위 성경 상의 모순들이라고 불리는 문제들이 현재 학자들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된다. 이것들은 수년 전 성경비평주의자들에 의하여 알려졌으며 다양한 묘책들이 그 동안 제시되어 왔다. 성경 무오성의 경우 사실상 지난 수 백 년 동안 해답들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져 왔다.

    만일 복음주의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성경의 무오성과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들 위에 굳게 선다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 그렇게 되는 날 성령의 능력이 새롭게 역사하고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사역에 새로운 진보가 전개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세계 전역에 교회가 설립되어, 참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거룩한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을 나는 예견할 수 있다. 주여, 속히 그 날이 오게 하소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무오성이나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들을 전부 믿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천사들이 마지막 날 추수 일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 항상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나는 것이다.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진리는 영원히 반석 위에 설 것이며 오류는 영원히 가시밭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가를 지불하시고라도 성경 말씀이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말씀에 대한 순전한 신앙으로 충성을 다하는 자기 백성들을 불러모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 믿음은 밝히 드러날 것이며, 현재는 희미해서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그때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의 모든 신비들이 풀릴 때 우리는 늘 믿고 지켜왔던 것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오류도 없으며 모든 성경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며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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