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성경은 종교 문제에 있어서만 권위를 지닙니까? 아니면 역사나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도 권위를 지닙니까? 오늘날의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견해는, 성경이 참으로 믿음의 책이요, 종교적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책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종종 오류를 포함하는 인간의 기록의 틀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과의 "실존적 만남"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타당한 의미와 권위를 가질 지도 모르지만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이야기와 자연 현상들에 관한 묘사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타협하면서 성경에 접근하려는 방식은 지난 두 세대 동안 자유주의 및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의 옹호를 받아왔으며, 현재도 대부분의 큰 교파 신학교들은 물론 주일학교 문서에 이르기까지 널리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공립학교의 교과 과정 및 교과서들은 대개 무신론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조심스럽게 피하면서도, 성경을 하나의 종교 서적이라고 말하면서 역사적 사실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경이 아무런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가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이것들은 우리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입증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 관찰과 실험의 영역 밖에 있는 구원, 천국, 영적인 세계, 영생 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그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성경의 과학적 권위를 배척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종교적, 도덕적 권위 및 교회와 학교와 가정과 기타 모든 것의 권위를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각 사람은 스스로 결정한 진리와 도덕의 기준을 이용하여 자기가 자신에게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적당하지 못한 존재임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절대적 좌표와 권위에 대한 절실한 필요도 예민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어떤 절대 무오한 기반을 찾아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과학"이나 "공산주의" 혹은 "인본주의" 등과 같은 데서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자들도 보통 사람처럼 편견을 가졌다는 것과 또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기적이며 본래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이내 발견하게 되며 또한 공산주의자나 인본주의자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학적 방법과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도 어쩔 수 없이 부적당하며 또 자기 모순에 빠지는 부조리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 - 물리학적 계(界), 생물학적 조직, 사회학적 단위, 심지어 개인의 영혼까지 - 은 소위 성경이 말하는 "썩음의 속박"에 묶여 있습니다.(롬8:21) 이 원칙은 과학적으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공식화되어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죄로 인해 인간의 통치 영역 위에 내리신 하나님의 저주로 인한 결과입니다. 세상과 개개의 영혼들은 구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철학적 고안물 또는 과학적 고안물은 결코 그것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유일하고도 참된 해결책은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며 사실 이것은 사도들과 대부분의 우리 선조들(미국)의 특징이었습니다. "과학" 자체는 성경 말씀에 결코 반기를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성경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창조주이시자 장래의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굴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결코 두 부류의 구절들, 곧 믿는 자에게 기본이 되는 구절들과 내버려도 상관이 없는 구절들로 분류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식으로 취사선택하여 구별을 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어떤 객관적 표준도 물론 없습니다. 성경은 결코 이런 식으로 그 안의 구절들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자기 스스로를 전체와 각 부분이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온전히 신뢰할 만하며 전혀 오류 없이 영감을 받았으며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인간의 판단과 견해가 주관적이며 늘 변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 생물학적으로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가르침이 지니는 영적 가치에 합당치 않다고 판결할 것입니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적이 가능한 일이므로 처녀 탄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죄 없는 인성(人性)을 나타내는 당연한 결과라고 올바르게 판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종교적으로 합당치 않다고 판단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창세기 1장이 실제의 창조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만을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창세기 1장 1절이 우리에게 바로 창조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것과 만약에 전자의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창세기 1장의 나머지 부분은 그저 합당치 않은 추가 정보 즉 사람을 그릇된 곳으로 인도하는 추가물에 불과하게 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는, 나중에 성경 기록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창세기를 진실한 실제의 역사로 받아들였다는 것에 대해 언급할 것이며 동시에 만약에 그분들이 믿음과 실행에 기초가 되는 이 창조 계시에 관하여 잘못을 범했다면 그 밖의 다른 것에 관하여 과연 어떻게 우리가 그분들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존적 통찰력을 주는 정도의 집합체나 상대론의 입장에서 부적절한 것을 담고 있는 잡동사니 집합체로 전락하고 만다면 우리는 정직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 전체를 다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완전무결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믿고 회개하는 믿음으로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과학이나 역사의 참된 사실들에 의해 잘못으로 입증된 성경 말씀은 지금까지 단 한 구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사람의 믿음과 증거를 귀히 여기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