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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조회수 : 843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7시 1분 52초
  •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귀납적 방법인가 연역적 방법인가?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한 방법은 사람을 이단적이고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하고 다른 방법은 온전한 진리에 이르게 한다. 전자는 인간의 사악한 불신앙과 교만을 부추기고, 후자는 겸손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리가 가지는 권위 앞에 순복한다.

    1. 귀납적 방법

    귀납법은 과학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으로 흔히 과학적 방법으로도 불린다. 즉, 어떤 특정한 문제를 두고 '검증과 관찰'이라는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는 방법이다. 예를 들자면, 한 과학자가 땅에 떨어지는 두 물체를 관찰한 뒤 충분한 실험을 거쳐 '중력의 법칙'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방법은 자연 과학에서 적용되어 수많은 결과들을 산출해 내었다. 그런데 위험한 일은 사람들이 신학의 영역에서까지 이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려는데 있다.

    2. 연역적 방법

    연역법은 신학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하나의 전제(전부터 진리라고 알려진 것)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 전제를 통해 모든 문제를 관찰하는 것이다. 연역법은 종종 수학 분야에서 사용된다. 다음 문제를 보자:

    2a + 4 = ?

    이 문제를 풀려면 반드시 전제가 있어야 한다. 가령 한 사람이 a를 3으로 했다고 하자, 그러면 답은 바로 10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앞에 나온 두 가지 방법이 신학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자. 우리는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을 통해 이를 알아볼 것이다.

    1)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는가?

    이 물음에 대해 귀납법으로 답하자면 복음서의 사건들을 면밀히 연구하여 예수님께서 죄를 지으셨는지 어떤지를 알아보아야만 한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오는 사건 하나 하나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 모든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주님께서 모세의 법을 어기시지는 않았는가? 안식일을 어기시지는 않았는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시지는 않았는가? 분에 못 이겨 화를 내신 적은 없는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은 그분의 잘못이 아니던가? 어떤 여자가 죽었는데도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거짓말하신 것이 아닌가? 귀납법으로 나올 수 있는 결론이 무엇이겠는가? 바리새인들과 유다교 지도자들도 이 귀납법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려 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시작할 때부터 어떤 하나의 전제를 갖고 시작한다.(벧전 2:22를 보기 바란다) 따라서 그는 복음서의 기사들을 읽을 때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절대적으로 옳은 전제를 통해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사람은 죄로 가득한 사악한 존재인가?

    어떤 사람이 이 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시도한다고 해보자. 시작부터 그는 사람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둑질, 살인, 증오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결혼이 깨어지고 이혼율은 급증하고 부도덕과 부패가 없는 곳이 없다. 신문지상에 나타난 여러 사건들은 인간의 타락상을 좀더 극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연구를 지속하다가 그는 이와 반대되는 몇 가지 행동 양상을 보게 된다.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떤 병사, 전 생애를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며 보냈던 슈바이처 박사, 어린 아기를 위해 사랑을 붓고 끝내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쏟아 붓는 어머니, 그 외에도 인간이 보여주는 친절과 관심과 자선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 이제 그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 아마도 그는 다음과 같은 이단 사상을 결론으로 내릴 것이다: "사람에게는 선과 악의 두 경향이 있다. 각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절대적 전제(렘17:9)로부터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결론은 절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죄성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 과학적인 방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과학적 방법은 오로지 관찰에 기초하기 때문인데,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관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는 오직 한 분뿐이다(삼상 16:7; 렘 17:10).

    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정당하고 의로운가?

    이번에도 귀납적 방법을 사용한다면 전혀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의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번성하는 예를 쉽사리 볼 수 있다. 게다가 세상은 죄와 질병으로 가득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들이 죽고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로 멸망한다. 불평등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런 것들을 관찰할 때 하나님이 결코 정의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전제를 주셨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9:14)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 두라. 바로 이같은 접근만이 이런 질문을 하는 영혼들에게 참된 위로와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4) 오늘날에도 방언의 은사가 있는가?

    이 질문을 누가 과학적으로 조사한다고 해보자. 즉, 오늘날의 방언 체험이 유효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실제 방언이 행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답사한다. 어떤 교회에서는 전혀 그런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교회나 모임에서는 방언 현상(성경의 방언이 아님)을 실제로 볼 수 있다. 결국 그는 타언어(방언)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그릇된 결론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전제를 무시할 때 생겨난다. 타언어(방언)에 대한 근본 전제는 고전13:8에 나와있다: "타언어(방언)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전후 문맥과 하나님께서 타언어(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을 고려한다면 이제 안전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5) 사후의 삶이 있는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짓이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관찰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사후의 삶, 혹은 내세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를 보여준다는 책자들(그것도 소위 "복음적"이라는 저자들이 쓴)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특징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즉 임사 상태(임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들어간 사람이 다시 살아서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의 대부분은 성경이 말하는 사후 삶에 대한 전제와 전혀 반대된다. 죽고 난 뒤 그런 종류의 책들이 틀렸고 하나님이 옳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6) 성경에는 오류가 없는가?

    이 이슈는 오늘날 소위 "복음주의" 진영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귀납적인 방법을 기초로 삼는다. 귀납법으로 성경의 구절 구절들을 조사하며 어떤 실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의 오류를 찾는 일에 착수한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과학적인 진술들, 창세기의 첫 부분, 가계, 연대기, 역사 기록 등 오류나 모순으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면밀히 검토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명확한 전제를 의지한다(요 17:17; 딤후 3:16; 벧후 1:20-21). 그는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확실한 전제하에 소위 성경의 모순이라고 알려진 모든 구절들을 본다.

    이 외에도 독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히 말하는 전제와 진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의 오류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는 규칙에 대해 말 한 바를 기억하자: "이는 우리가 믿음(연역법: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약속과 전제들을 믿는 것)으로 걷고, 보는 것(귀납법: 사람의 경험과 관찰, 느낌에 기초에 그릇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걷지 아니함이라"(고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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