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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여름은 끝났습니다. 조회수 : 8370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7시 10분 0초
  • 여름은 끝났습니다.

     

    설교_버드 칼버트(Fairfax Baptist Temple 담임목사)/ 번역 김희섭 박사
    예레미야서 8장 20절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바깥은 매우 좋은 날씨인데 이제 여름이 끝나가는 시기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와 관련된 것을 하고자 합니다. 봉독할 동안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예레미야는 매우 위대한 하나님의 예언가로서 그의 민족에게 진리와 교훈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봉독: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끝났으나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도다.”(이하 흠정역)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주셔서 우리가 따르며 인생의 안내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길과 뜻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여기 있는 분들 중 이미 주님의 가족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여 주시고 또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남녀노소 모두에게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 오늘 그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설교할 때 능력을 주시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들을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는 공식적으로 여름이 끝나는 것은 9월 21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저에게는 여름이 정말로 끝나는 시기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때였습니다. 더 이상 많이 자지 못하고 바깥에서 놀지 못하고 저녁에 공부 때문에 재미있게 지내지 못하게 되는 그 때에 저는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600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본문의 말씀을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잠깐 이 때의 시대적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부족은 10지파가 되는데 이들은 남쪽에 있는 유다 부족과 떨어져 예루살렘 북쪽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본문이 쓰여진 기원전 약 600년보다 122년 전에 즉 기원전 약 722년에 시리아가 쳐들어 와서 이들을 붙잡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남쪽에 자리 잡았던 유다인들은 북쪽의 동포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서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복종과 사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까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바는 아무것도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저 해오던 방식을 바꾸어가며 계속 그들의 길로 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대언자인 예레미야는 남쪽 예루살렘 지역에 있는 부족에 가서 그들도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않으면 북쪽 부족들과 같이 다른 나라 군대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가 혹독한 생활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의 바빌론 군대에 의해 침략당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듣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이고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으로 믿었고 절대 침략당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의 도시에 있었으며 그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메시야(예수님)가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벌써 몇 년 전에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고 어떤 이는 성벽 뒤로 숨기도 하는 등 방황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관여해서 쳐들어오는 바빌론 군대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처럼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끝났으나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를 돌보지 않고 포로와 노예로 끌려가게 놔두었다”라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왜 그들이 그렇게 됐는지 조금 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여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여름이 지나갔지만 나는 아직 하나님의 가족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자, 이제 모두 주목해 봅시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처럼 교회에 와서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데 서로 비슷한 용모를 갖고 있으며 또 이질적이지 않고 서로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며 예배를 마치면서 아멘하고는 올 때와 똑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성경적 지식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매우 종교적이고 신앙심이 깊다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나 오늘 분문에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매우 종교적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도 잊지 말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여러분 중 일부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향하고 있으며 또 여러분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성경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정말로 많은 사람을 혼란시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데 아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재물, 오락, 스포츠, 그리고 종교라는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상태에 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분이나 구원받지 못한 분 모두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이스라엘 부족을 잘 살펴보게 된다면 우리들도 그들과 너무나도 똑같은 이유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7장 23절을 펴 주십시오. 23절에 보면 “너희는 내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길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잘 되리라 하였으나”라고 하였지만, 24절에는 “그들이 듣지도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악한 마음이 꾀하고 상상하는 대로 걸으며”라고 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너무 두껍고 어려운 것이 많고 명령 또한 너무 많으며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 잠깐 다음의 명령들을 실행해 보십시오.

    “너는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뜻대로 걷지 말라”(시 1:1).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신6:5).”

    이 명령들을 이해하십니까. 솔직히 우리가 성경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성경구절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말씀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복종 안하고 또 우리 부모들은 교통법규에 복종 안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명령하는 것을 싫어하며 아울러 우리 위에 어떤 권위도 두길 싫어합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성경이 올바른 말씀으로 알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귀찮을 뿐이죠.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장 5절과 6절에는 “그들이 속임수를 굳게 붙들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는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었거니와 그들은 바르게 말하지 아니하며 아무도 자기의 사악함을 뉘우치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하였던가? 말하지 아니하고 싸움터로 달려가는 말같이 저마다 자기 길로 돌아서는도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음주, 반항, 부도덕적 생활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속적으로 하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구원은 이 거룩한 성경책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죄에서부터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책에 의하면 구원이란 예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과 의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 과거를 생각해서 이런 변화가 없으면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간 정도 변화가 있다가 다시 원래상태로 돌아온 이들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그 안에 모셔들이지 못하여 영적으로 길 잃어버린 상태일 겁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따라서 구원받은 자라면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미국인들은 교회에 대해서도 삶의 스타일처럼 변화를 추구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텍사스주 달라스에 동성연애 교회가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 내가 해오던 대로 계속하고자 합니다. 나에게 죄를 설교하지 말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이기에 이렇게 말하는가?”라며 저를 힐문합니다.

    저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성경책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성경은 우리 삶의 거울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과 몸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사랑해야 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고 죄를 지었으며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았고 아침에 커피와 도넛을 즐기려고 성경공부에 참가하지 않았군” 하며 우리 생활을 반성하고 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라며 다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부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구원을 받지 못했든지 아니면 완전히 하나님과 떨어진 그릇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많은 교회가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나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책에서는 믿으면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8장 9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놀라며 붙잡히는도다. 보라, 그들이 주의 말을 거절하였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

    많은 사람이 자신이 명하는 대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여기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지식이란 성경의 말씀을 아는 것이고 지혜는 이 성경적 지식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교육기관에 자녀들을 보내기가 무섭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어떤 지혜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지혜와 달리 성경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처럼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믿는 것이 무엇이든 진실 되게 믿으면 된다고 하나 이것은 성경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책은 좁은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종교나 신이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8장 10절에 이들이 탐욕적이라고 했는데 이곳 버지니아주 페어팩스군(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곳임)에는 물질적이고 탐욕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전세계인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누어야 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육체적 구원 즉 바빌론 군대로부터의 보호를 말하나 신약성경의 구원은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말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교회만이 올바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여기에 메시야가 있다” 하거나 혹은 “이 종교 지도자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의 길, 하나의 진리, 하나의 생명이라 하지 않고 유일한 길, 유일한 진리, 유일한 생명이라 하셨고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좁은 길이지만 이것 역시 성경말씀 곧 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관용에 대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또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하고 사악한 세상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만 빼고 이 세상을 모두 멸망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에 대해 관용하시지 않습니다.
    침례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국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아멘”했습니까?(웃음)

    여러분, 어느 누구나 버지니아 북쪽에 있는 침례교인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동시에 곧바로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도 천국에 가게 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잠깐 말씀드리자면, 마리아도 우리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마리아도 구세주를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눅 1:48~49). 죄인들은 누구나 구세주를 필요로 합니다.

    로마서 5장 8~10절, 3장 23~2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고려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네, 물론이죠. 마귀가 인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와 영원히 살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한 어떤 행위도 우리를 천국에 한 발자국도 가까이 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픈 사실은 요즈음 많은 교회와 종교기관들이 성경책은 옆에 제쳐 놓고 사람이 만든 교리를 신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성경책과 비교하여 나를 포함해서 어떤 사람이라도 틀리면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여기 있는 여러분 중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분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이 저를 너무나도 애통하게 만듭니다. 아직도 계속해서 여름이 가게 내버려두고 구원을 안 받고자 하십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어떤 의사에게 가서 진찰받은 결과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른 의견도 듣고 싶어 다른 의사에게 가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내 몸 속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데 내일이라도 수술 받으면 완쾌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일 가서 수술을 받고 완쾌되어야겠지요. 그런데 다시 첫 번째 의사한테 가서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안심하시겠습니까? 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입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교회에는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이웃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울러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은 오늘 꼭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여름이 지나갔으나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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