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바위(The Rock)위에 세워진 결혼
설교_버드 칼버트(Fairfax Baptist Temple 담임목사)/ 번역 김희섭 박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하고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 에베소서 5장 33절 성경은 예수님께서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돌아오실 준비를 하신다고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곧 신부를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 크리스천이 휴거가 되어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있게 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영광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지구상에는 혼돈과 동요가 있을 겁니다. 미움과 전쟁이 있을 겁니다. 휴거시의 징조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대환난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의 징조가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원관을 진흙탕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인의 상당수는 모든 종교가 천국으로 안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서로 조금씩 상이하나 궁극적으로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성경에서 함께 보았듯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천국에 가게 합니다. 어떤 종교는 자기들만의 성경을 가지고 있고 어떤 종교는 자기들의 전통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에게서 온 것처럼 말 합니다. 그러나 한 성경, 한 구세주, 한 가지 구원의 길 , 한 하나님, 한 천국이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매우 종교적이고 형식적이며 신실하더라도 예수님 외에 천국에 가는 길은 없습니다. 사탄은 또한 교회를 하나님의 의로부터 떨어지게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히 서 있던 교회가 세상과 점점 같이 하고, 세상에 좀더 다가가려고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세상 것을 받아들여 이 세상과 같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는 하나님의 일이 성취될 수 없습니다. 사탄은 또한 결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확실히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는 가정도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길 건너에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한 가정이 유일한 이혼가정이었을 정도로 이혼한 가정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마귀가 전보다 더 힘이 세진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인간이 더욱 나약해 진 것인가요? 그것은 약간은 맞을 수 있겠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나와 여러분의 결혼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행복한 결혼을 하면 사탄은 더욱더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본능입니다. 지난 호에서 결혼을 파괴시키는 네 가지 원인 간통, 무관심, 결별, 학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예수님(Rock)위에 기초한 결혼, 즉 결혼의 기본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127편 1절에서는 주님 위에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교회건 가정이건 주님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오랫동안 결혼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크리스천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관심한 배우자가 있으면 상대방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도 참으로 힘이 듭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우리 교회에서도 종종 봅니다. 저는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결혼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헌신에 대한 성실도입니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아프나 건강하나 죽기까지 상대방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38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면서 저희 부부가 이혼한 부부와 다른 점을 살펴보았을 때 결혼할 때 맹세한 것을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희 부부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 부부는 해결을 위하여 서로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같이 있게 하시는데 사람이 천둥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혼에 천둥을 놓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입니다. 어느 교회에나 이혼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결혼생활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조사 결과에 의하면 첫 번째 배우자와 이혼율은 50%, 두 번째는 60%, 세 번째는 70%, 네 번째는 80%라고 합니다. 첫 번째 여자와 같이 있을 확률이 제일 많다는, 즉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빠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것은 한명의 이성을 제외한 다른 어떤 이성에게도 감정이나 육체적 접촉이 없을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한명에게만 맹세한다는 것은 다른 30억 인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의 맹세입니다. 맹세했으면 노력하십시오. 두 번째는 우리의 성경적인 역할에 진지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양육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주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같이 하기 때문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엡5:28,29,33).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신과나 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중에는 부인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입니다. 보너스가 나오면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압니다. 나의 최대의 문제점은 이 세상이나 마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내 자신이 영적으로 계속해서 확고하지 못하고, 죄를 지으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의 집사람에게 Good morning이라고 하기도 전에 저의 외모를 가다듬느라 샤워도 하고 넥타이도 곧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벌써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 헝크러져 있어도 자신을 사랑하기에 왜 세상은 이렇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원망하며 자신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헝클어져 있어도 우리는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25절에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즉 2개의 원칙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갖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악함, 부도덕, 죄를 예수님이 갖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내가 심한 죄를 짓고 악하게 행하더라도 우리는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들아, 너희 자신을 낮추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이 때문이니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듯 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 (엡5:22,24,33) 이와 같이 아내는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자가 결혼할 때는 남편의 동반자요, 돕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아이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이 결혼이 아닙니다. 남녀동등 사회에서는 성경의 원칙에 호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세워주고 존경해야 하며 절대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존 필립은 아내가 주의하여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면 남편을 지배하게 되고 남편은 아내에게 분노를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이는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외에 기초를 둔 결혼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서로 즐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된 까닭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주께서 증인이 되셨음이라. 그녀는 네 짝이요, 네 언약의 아내로되 네가 그녀를 대적하며 배신하였느니라.”(말2:14) 아내는 동반자입니다. 결혼은 2개의 수입, 2개의 계획, 하나의 가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내를 부수입을 얻게 하기 위해 결혼을 만든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되라고 한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같이 즐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피크닉, 박물관, 연주회 등 모든 것을 같이 즐기고 전도지를 돌릴 때도 같이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같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벽지를 바르는 것 때문에 헤어지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런 것은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너희 자신을 낮추어 다른 이에게 복종하라.”(엡5:21) 매일 부부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면 그 자체로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제를 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매일 풀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부부생활의 핵심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며느리 베카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떤 문제도 가지고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요. 결혼에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그때 그때 즉시 해결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같이 즐거워해야 합니다. 인생은 매우 힘이 듭니다. 일도 매우 힘이 듭니다. 결혼도 매우 힘이 듭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웃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집에 있는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은 약같이 좋으나 상한 영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웃음은 결혼의 매일 생활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커밍은 ‘최고로 낭비하는 날은 웃음이 없는 날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시온의 포로 된 것을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자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노래가 가득하였도다. 그때에 이교도들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들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들을 행하셨으니 이로 인하여 우리가 즐겁도다.”(시126:1~3) 즐거움을 같이 하십시오. “고난받는 자의 날은 다 악하거니와 마음이 즐거운 자는 계속해서 잔치하느니라.”(잠15:15) 마음이 즐거우면 뷔페, 즉 고기와 생선이 항상 앞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헨리 비처는 웃음이 없는 결혼은 쿠션이 없는 차가 자갈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결혼식 때 서약한 것에 충실하고 성경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서로 같이 즐기도록 노력해야 하며 마음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웃으면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에 심한 문제와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혼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배우자가 어떻건 오늘 다시 배우자에게 충실하겠다 맹세하십시오. 배우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하거나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려워서 상태가 비참하면 상담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결혼에 대한 해결책을 나누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 결혼의 기초입니다. 그분이 없이는 우리는 실패합니다. 예수님의 기초위에 결혼을 세우는 데는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기초한 결혼을 하는 데는 한 사람만이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이 있어서 결혼에 문제를 일으키면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시키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시킬 수 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