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왜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을 겪는가?
설교_버드 칼버트(Fairfax Baptist Temple 담임목사)/ 번역 김희섭 박사
“내가 행하는 것은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로써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이니 따라서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이는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하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는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이는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15-25)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왜 어려운 시련을 겪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인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 받고 난 이후 저는 정말로 환상과 같은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저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난 후 안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저도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의 죄 값을 하나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복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바꾸셨지만 제가 기대한 만큼 제 생활은 완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죄와 싸워야 했습니다. 크리스천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죄와의 투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증가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때 당시 교회에서 다른 사람처럼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쁜 생각을 하였고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신앙심도 없었으며, 성경 읽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미숙한 초보자였습니다. 아울러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죄와 싸워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놀랍게도 저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가 East Carolina University를 그만 두고 Bob Jones University에 왔을 때 저는 목회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크리스천으로서 죄와 투쟁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4년 뒤 대학을 졸업할 때는 성경도 많이 배우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죄와 싸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죄에 대한 투쟁을 하는 크리스천들은 도대체 우리에게 승리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진실로 크리스천은 옛날의 자신을 버리고 새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죄와 유혹에 대해 더 이상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인지, 왜 우리는 시련을 겪어야 하며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으로서 엄청난 전쟁을 치르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린이나 초신자도 아닌, 성경 66권 중 13 (혹은 14) 권의 책을 쓴, 모든 시대에서 제일 위대한 선교사요, 유일한 사도에 대해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라.” 내가 미워하는 것을 어떤 때는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문제라고 하는 사실은 때로는 우리를 실망하게 만듭니다. 가장 큰 싸움은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 내가 행하여야 할 것은 아나 어떻게 하여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고 그것이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다.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여러분의 일기가 아닙니다. 모든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로 쓴 자신의 문제를 우리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크리스천의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만 구원을 받은 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으면 새로운 본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고 천국을 사모하며 성경을 읽고 따르며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신과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언젠가 믿는 자는 완전하게 되어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Praise the Lord! 그러나 이제는 나쁜 소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들에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영적 전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는 갈등과 다툼이 있고 집에서는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곤란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천국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그 곳에 가게 될 때에는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 3:2) 앞으로 내가 예수님을 볼 때는 예수님같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지도 않았고 지을 수도 없으며 지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실하고 진실된 크리스천은 자신이 죄를 짓는다고 자백합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크리스천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지 도리어 나는 죄를 짓지 않는 단계까지 왔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임은 어떤 속임보다도 나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말하면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며 또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느니라.”(요일 1:9-10) 우리 모두가 죄를 짓고 불행하게도 옛날로 자주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예수님의 피에 의해 미래의 죄도 용서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세 가지의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귀입니다. 성경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을 삼켜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두 번째 적은 자신으로서 이것이 가장 나쁜 적입니다. 내 주위의 형제, 자매가 아니라 자신이 적입니다. 세 번째는 세상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다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기 때문이라. 세상도 그 정욕도 사라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으니 이로써 우리가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5-17) 우리는 모두 이 시련을 겪습니다. 안목, 정욕, 인생의 자랑이 다 이 세상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가져야겠고 다른 사람에게 낮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요즈음 왜 그렇게 식이성 질환(eating disorder)이 많은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데 너무 많이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약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아직 낮일 때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하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파멸과 세상의 끝이 오리라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때나 오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예수님 위해 사는 시간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려는 유혹 곧 육신과 안목의 정욕은 믿는 자에게 계속해서 일어나는 시련입니다. 이것은 정상입니다. 이 투쟁은 언제나 있을 것이고 우리는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매일 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과 어려움이 우리 앞에 있고 삶을 살아가면서 죄에 대해 승리하지 못하면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같이 하면 세상의 마귀와 자신에 대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면 승리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러한 시련 속에서 희망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요? 시도해 볼 수라도 있는 것인가요? 승리는 할 수 있는 건가요?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기뻐할 수 있는 건가요? 대답은 “예”입니다. 승리와 시련을 이겨내고 마귀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면 분명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요? 로마서 7장 24-25절을 보십시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첫 번째로 승리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결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항상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 믿는 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나는 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나 자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가 “버드야, 너는 성령 충만해 있니?”라고 저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어떤 방언 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님으로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신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옛날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영으로 충만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말한 것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령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종권위 곧 성경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타계한 빈 하우스가 성령의 능력에 대해 아주 잘 기술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전쟁의 포로로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획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총을 겨누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예수님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사탄이 물러날까요, 대답은 아닙니다. 대신 당신도 총을 가지게 됩니다. 당신도 총이 있기에 더 이상 사탄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떻게 할까요? 사탄은 우리에게 총알이 없다고 믿게 하거나 그 총은 고장이 나서 아무 위력이 없다고 믿게 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싸움은 공평하게 총 없이 주먹으로 하자고 하며, 당신의 관심을 사서 자기에게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권능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너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사탄에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신을 죽이고 성령 안에서 걷고 싶어 하는 모든 거듭난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인생에서 승리를 원하십니까? 당신이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 13:14)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운 영화나 잡지를 보면서 참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술이 있는 파티에 가지 마십시오. 더 이상 술과 같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담배를 끊었다고 하면서 주머니에 넣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자신의 방어 즉 칼을 내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있는 것처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마귀와 싸울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들을 빵으로 되게 해 보라 시험하였을 때 예수님은 신명기 8장의 말씀 곧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며 물리치셨고, 마귀가 예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시며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방어는 하루 24시간과 일주일 내내 계속 되어야 합니다. 일요일에 예배에 참석했으니 좋은 오후가 될 거라 상상하면서 예배 끝나고 차에 타는 순간 배우자와 싸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방어를 내려놓지 마십시오. 제 처남이 플로리다에서 잠시 근무할 때 하루는 대통령 전용기가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사이렌이 울렸는데 이유는 쿠바 조종사가 미그 21을 몰고 망명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철저한 경비망을 뚫고 비행기가 미국 땅에 왔을까요?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국방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일요일은 방어망을 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 6일간 일하다가 7일째는 쉰다면 국가 방어가 괜찮겠습니까? 우리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절대로 방어를 한순간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 4:7)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교회도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벧전 5:8-9) 이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의(義)와 거룩함(聖)에 대한 종입니다. “너희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관례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함과 불법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기억하십시오. 무엇이든 의롭고 거룩하지 않으면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유혹이 오면 언제나 도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하여금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언제든지 도망할 길이 있습니다. 절대로 내가 한 것은 마귀 때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마귀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즐거움이요 환희입니다. 우리는 실족하나 다시 일어납니다! 이상 말씀드린 요소들이 우리에게는 매일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 아직도 거듭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