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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장 16절)

  • 'Do’종교와 ‘Done’복음 조회수 : 963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2일 17시 23분 56초
  • ‘Do’종교와 ‘Done’복음 

    이 글은 Christians Evangelizing Catholics(P.O. Box 99141, Louisville, KY 40269, USA)에서 천주교인들과 이들에게 복음을 심어 줄 크리스천들을 위해 발행한 「What Must We Do or Has Christ Done the Work for Salvation?」(Dr. Bill Jackson)이라는 소책자를 역자가 번역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설교 형태로 만든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유익을 얻으면 얻을수록 우리는 신실한 증인이 되어 우리의 선교지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Do’ 종교와 ‘Done’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복음의 핵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 믿는 바가 더 확실해져서 좋은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선교사와 선교지

    로마서 10장은 성경에서 선교사와 선교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는 복음 선포에 대한 도전의 말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와 선교지가 무엇인지 잘 정의되어 있습니다.

    먼저 선교사에게 주는 도전의 말씀은 13-15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이것은 기록된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함과 같으니라.

     

    예수 믿은 이후에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폭발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도 바로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이었습니다. 이것을 전하는 사람을 증인이라고도 하고 복음 선포자라고도 하며 선교사라고도 합니다. 선교사는 영어로 ‘missionary’인데 이 말의 뜻은 사명을 가진 자, 사명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방금 읽은 13-15절 말씀처럼 화평의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으며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누구나 선교사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교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선교사’에 대한 진리는 4절 말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4절).

    여기에 나오는 ‘끝마침’은 영어로 ‘End’인데 사실 이 단어는 짧지만 참으로 중요한 단어입니다. 길을 가다가 끝이 나면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더 이상 없는 것이 바로 끝입니다. 그것이 ‘end’입니다. 선교사는 바로 이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말 그대로 끝을 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여러분이나 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다 끝냈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거기에다 무엇을 더하려고 한다면 “다 이루었다.”고 말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씩 접시를 닦습니다. 그런데 제가 접시 닦는 일을 다 마쳤다고 하는데 제 아내가 또 다시 닦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를 모욕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를 못 믿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이미 십자가에서 다 끝냈다.”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자꾸 거기에다 무엇을 더하려고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되며 결국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끝내신 일 즉 요19:30 말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석서를 썼지만 이 일에 대한 가장 좋은 주석서는 성경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1-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우리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지금도 서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을 다 끝내시고 앉아 계십니다. 일이 다 끝났으므로 서 계시지 않습니다.

    자 이제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2000년에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 구원을 얻어서 2040년에 죽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기 위해 이 40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십일조를 하고, 주일 성수하고, 큰 죄를 짓지 않고, 선행을 베풀고, 전도하고 등등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참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끝내 놓으셨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행을 베풀고 큰 죄를 짓지 않으며 남을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이 여러분을  하늘 나라로 보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하고도 충분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분을 통해서 우리는 완전한 용서(시103:12)와 완전한 구속(사53:5-6)을 얻으며 사실 이것을 위해 그분께서는 무한대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선물은 누구나 값없이 얻을 수 있지만 값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크리스천은 로마서 10장 4절의 진리 안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모두 선교사입니다.

    로마서 10장은 이처럼 선교사가 누구인지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교지가 어디인지도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다 같이 로마서 10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지 못하여’로 번역된 ‘ignorant’라는 단어는 결코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고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학식이 많은 사람도 칼국수 만드는 법을 모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여인이라 해도 자동차가 고장 나면 그것을 고치는 방법을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모르는 것이 있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학식 있는 사람들도 로마서 10장 4절의 말씀 즉 예수님께서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일을 모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를 따르려고 노력합니까? 그들은 자기가 세워 놓은 기준대로 일들을 행하고는 가슴 뿌듯해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로마서 10장 3절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로마서 10장 4절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범주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는 어떻습니까? 선교사입니까? 선교지입니까?

    힌두교도들은 영원한 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갠지스 강에 몸을 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교인들 중에서는 도덕률을 잘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목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구원을 받을 줄 알고 충성 봉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주교인들은 선행을 하고 주일에 미사에 참석하며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면 구원을 받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들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90%를 했고 나머지 10%는 각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사역 즉 십자가에서 단 번에 끝마치신 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에 끝내신 사역을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이 끝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계속해서 일을 해서 그것을 끝내려 할 것입니다. 사실 일이 끝났음을 알게 되면 참으로 큰 위안을 받습니다.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도 집에 가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손님들이 많이 와서 대접을 한 뒤에 설거지 할 그릇이 수북이 쌓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식사 후 또 곧 바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 제 아내는 교회 가서도 설거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예배 끝나면 빨리 와서 설거지를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런데 제 딸이 엄마를 생각하고 이미 설거지를 다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배드리는 동안에 이미 설거지는 다 끝났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제 아내는 그것으로 인해 걱정할 것입니다. 딸이 이미 설거지를 다 끝냈음을 안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요? 그렇습니다. 일이 끝났음을 알게 되면 언제나 위안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구원 사역을 다 끝내 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내 것으로 적용하면 구원받습니다. 정말로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선교사든지 선교지든지 둘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단번 속죄의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나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교지가 멀리 있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 가족, 이웃, 친구, 직장 동료 등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선교 대상이며 선교지입니다. 선교 후원금을 모금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야만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0장에서 바로 선교사와 선교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선교지와 선교사가 바로 붙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로마서 10장 4절의 진리 안에 있으면 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의 선교지는 10장 2-3절에 있는 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의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Do’ 종교와 ‘Done’ 복음

    이것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바구니를 비유로 들겠습니다. 하나는 여전히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속한 ‘Do 바구니’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알며 믿는 사람이 속한 ‘Done 바구니’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추구하는 사람은 우리의 선교지로서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이며 복음을 믿는 사람은 선교사로서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입니다.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은 무엇인가 자신이 계속해서 해야만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고 따라서 쉬지 않고 일하며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전하게 끝내놓으신 일을 100% 신뢰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 차이를 보여 드리기 위해 검은 색과 하얀 색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것들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검은 색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말에 검은 색을 표현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새까맣다”, “까맣다”, “검다”, “거무튀튀하다”, “거무스레하다”, “거무잡잡하다”. 도대체 어느 것이 거무잡잡하냐고 물으면 대답이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밤과 낮을 비교해 봅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밤이 낮과 다른 것같이 이것은 저것과 다릅니다.” 자,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언제 밤이 시작되는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느 누가 절대적으로 밤과 낮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저녁 6시면 밤입니까? 낮입니까? 물론 언제 낮이 시작되는지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이처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즉 ‘Do’와 ‘이미 끝난 것’ 즉 ‘Done’ 사이에는 절대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너무 명확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끝난 것은 아직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것”과 “이미 끝난 것”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보다 더 절대적으로 확신 있게 구분하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집을 떠나서 교회에 왔으면 집을 떠난 것입니다. 아직도 집에 있으면 교회에 안 온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찬송을 부르고 설교를 들으면 이미 찬송 부르는 것은 끝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일을 끝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아직도 무엇을 하고 있으면 아직 끝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끝을 냈으면 더 이상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다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구원에 필요한 속죄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이것은 보상의 문제요, 구원받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다 선교사로서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이고 선행과 학식과 지식과 재물을 통해 자기 의를 세우려는 사람은 선교지로서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입니다. 전자는 복음에 속한 사람이고 후자는 종교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양만 다를 뿐이지 다 같습니다. 거기 속한 이들은 다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모든 사람을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이냐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이냐로 분류하면 됩니다. 정치가냐, 종교인이냐, 잘 생겼냐, 부자냐, 학식이 많으냐로 구분하지 마시고 선교사냐 아니면 선교지냐로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일들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시니 아브람이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가 없사오며 내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커스에서 온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속 중심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창15:1-6)

    도대체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기 위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신뢰할 때에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아브라함은 바로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구절이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3장 5절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구원받기 위해 여러분의 선행과 종교와 전통과 학식과 재물과 지혜를 따르시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Do 바구니’에 속한 사람입니다. 아니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일을 신뢰하며 오직 그분만 의지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Done 바구니’에 속한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뿐이 없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스스로 판단하셔서 “나는 Do 바구니에 속했다.”고 느끼시는 분은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단번에 끝내신 일만을 신뢰하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들의 용서와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Done 바구니’에 속하신 분들은 다 선교사입니다. 내 선교지가 어디인지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예수님의 ‘Done 바구니’의 복이 여러분 위에 영원히 임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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